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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4)

    ◎매신의 항일논조/을사조약 다음날 즉각 “무효” 보도/일진회의 합병주장 사흘에 걸쳐 통박/“매국의 자유는 없다”… 친일지 정면비판/황성신문과 공동보조… 민족지의 방향 주도 20세기 초반의 국운은 풍전등화 그것이었다.일제의 만행을 지켜보면서도 그저 「침묵」만이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암울한 시기이기도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이하 신보)가 깨어있는 언론으로 날카로운 배일논조를 통해 사라져가는 민족혼을 불러일으켰다.또 다투어 일제 찬양에 앞장서고 있던 친일지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논조뿐 아니라 기사는 물론 연재소설까지 총체적으로 일본침략에 맞섰기 때문에 친일적 사회분위기에 늘 경종을 울렸다. ○타지의 논조 감시 1904년 발발한 노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이 땅에 배타적 지배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이듬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통감부를 설치한 일제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초대 총감에 앉혔다.그리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몰수하고 민족의 분열을 획책하는등 조선을 합병키위한 온갖 탄압통치를 자행하고 나섰다.이같은 상황에서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며 민족 단합의 기치를 올렸다.황성신문 제국신문 만세보등 민족지들은 이에 동조했지만 국민신보 대한신문등 친일지들은 통감부에 추파를 던지면서 아부까지 일삼았다.민족혼을 일깨우는 일방 친일지들의 논조와 태도를 감시하는것 또한 민족지들의 중요한 임무가 될수밖에 없었다. 신보는 민족지들 가운데 통감정치에 대한 대항과 친일지들을 비판하는데 선봉장 이었다.주필 양기탁을 비롯하여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황희민등 논설기자를 주축으로한 당시 신보의 필진은 신랄한 필봉으로 통감부및 대한제국의 친일내각 정부를 규탄했다.그래서 신보의 논조는 일제침략의 두려움과 조정의 무능에 실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에게 각성제가 되었다.결국 환영받는 신문으로 다투어 구독함으로써 당시 다른 신문들의 발행부수가 2천부내외에 불과했던 것과는 달리 신보는 1만부를 돌파하기에 이른다. 1905년 11월17일 을사조약의 체결은 대한매일신보로 하여금 배일논조의 강도를 더높이게 하는계기가 됐다.조약체결 바로 다음날인 11월18일자를 보면,이 조약의 무효를 공공연히 제기한다.『한국황제께옵서는 한국 독립을 중념하사 정대한 의리로써 거절하시고 칙어로써 불윤하셨다』는 대목이 그것이다①. 이어 신보 21일자는 황성신문 20일자에 장지연사장의 사설 「시일야방성대곡」과 을사조약이 강제로 맺어진 경위를 폭로한 기사인 「오건조약청체전말」등의 게재로 벌어진 황성신문사태를 보도한다.이 기사는 황성신문이 일군의 검열을 받지않고 배포함으로써 사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사원이 체포되고 무기정간 당한 사실등을 상세히 보도했다.또 23일자에는 장지연에 대한 수사 속보와 함께 「황성긍지」 제하의 사설에서 황성신문의 매국적들에 대한 규탄을 찬동하면서 일제의 언론탄압과 친일지들의 침묵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이같은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는 통감부가 보면 눈의 가시처럼 여겨졌으나 사장 배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섣불리 손을 댈수도 없었다.2년후인 1907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과정에서 신보의 논조는 국민들의항일구국의지에 또한차례 불을 댕겼다.이 문제를 사설로 처음 다룬것은 이해3월1일자 「한인충애」란 표제의 글이다.여기서 신보는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으로부터 면탈하려는 인민의 제의이다.이를 성취시켜야겠다는 것과 신문이 이러한 가찬할만할 일을 돕는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라고 일제의 비위를 긁어버린다.이는 결과적으로 이 운동에 국민들이 적극 동참,애국운동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다한다②.일제는 점차 두려움을 느껴 이 운동에는 배일사상이 개재돼 있으며 미국이 이를 배후조정하는 것이라고 공격하면서 탄압을 가중해오거나 회유책을 쓰는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그러나 신보는 이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일제회유책 거부 1909년12월4일 한일합병을 주장해온 일진회가 소위 「일진회합병성명서」를 발표하자 당시 민족지는 물론 일반국민들의 격분은 극에 달했다.이때 신보는 「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이라는 반박사설을 연3일에 걸쳐 실을 정도로 강력히 항의했다. 대한매일신보는 또 1906년 1월 국민신보에 이어 이듬해대한신문,1909년 9월 시사신문등 친일지들이 잇달아 창간되자 그 필봉을 더욱 날카롭게 갈았다.그들의 매국적 보도태도를 감시하고 지적하는데 한시도 눈을 팔지 않았다.1907년 12월17일자에 보도된 「위국민대한양신문초혼」 제하의 사설은 친일지들의 신보 비판에 대한 답신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당시 친일지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고 있는 의병을 「폭도」라고 보도하는데 대한 김정익이라는 독자의 반박문을 신보가 게재했다.그러자 친일지들은 「대마두매일보」「대화태매일보」등 사설로 일제히 신보를 비판했던 것이다.장문의 이 신보의 사설은 『공격도 자유고 비판도 자유다.그러나 매국하는 자유는 있을 수 없다』는 논지를 펴며 조목조목 친일지들의 반성을 촉구했다③. 이어 1910년 4월1일자의 「고·시사신문」제하의 사설은 시사신문이 일제에 아부하는 비천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서슴없이 경고한다.특히 시사신문이 사내에 관광계를 설치하여 일본관광단을 모집하고 있는데 대해 강력한 비난을 퍼부었다.『일본관광의 목적이 선진실업을 수입하여 실업개발을 이룩하자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한국인을 일본인화 시키려는 일제의 획책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면서 관광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것을 촉구했다.그밖의 경고성 사설들을 보면 「본보의 우인과 적혐자」(07·5·11)「부국민신보」(7·18)「대한신문마기자아일람」(12·8)「국민보마기자아」(09·5·21)「국민대한양마두상각일봉」(5·23)「파외파의 담계」(6·6)등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다. 대한매일신보의 배일은 논조나 기사를 통해서만 나타난것이 아니라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신문소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대표적인것으로는 「소경과 앉은뱅이 문답」(1905년 11월17일부터 12월13일까지 연재)이 있다④.무기명으로된 이 작품은 미신타파와 단발령선포등 사회개혁으로 생활기반을 상실당한 소경 점쟁이와 앉은뱅이 망건쟁이의 대화형식을 빌려 구성한 것이다.수구파와 개화파로 갈라지는 신구세력의 대립,외세의 가열한 침투,무능한 정부의 외세의존,자유주의사상 전래등 급격한 변혁으로 인한 현실비판이 주요골격이다.이들의 대화중에는 을사오적에 대한 규탄도 있고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비분강개도 나온다.또 「이태리국 아마치전」에서는 이탈리아의 건국영웅 아마치의 구국투쟁 편력을 서술함으로써 은연중에 애국사상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적극적 배일 태도는 1909년 5월 사장 배설이 죽고 만함(Marnham)이 사장직을 이어받은 후에도 1년여간 계속되었다.그러나 1910년 6월 이장훈에게 양도된 이후 그 예리한 필봉이 비운을 맞는다.그래서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①정진석,일제하한국언론투쟁사(정음사 1975)PP26∼32◎최준,한국신문사론고(일조각 1976)PP113∼117 ②이해창,한국신문사연구(성문각 1983)PP405∼406 ③이재선,한말의 신문소설(한국일보 1975)PP40∼47
  • 물건도 준비않고 “1일 한정판매”/백화점 3곳,허위광고

    ◎소비자연 조사 시내 유명백화점들이 고객유치를 위해 1일 한정판매 품목을 선정,요란하게 선전하고 있으나 실제 상품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이 헛걸음질 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12일에서 14일까지 3일간 「롯데 잠실점」 「현대 압구정점」 「신세계 미아점」 「한신코아 노원점」 등 4개 백화점의 1일한정판매품목 준비여부를 개점과 동시에 판매장소로 찾아가 조사한 결과 3개 백화점의 6개 품목이 매장에 준비돼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롯데 잠실점은 「파울로구치」 장갑 「주디스」 핸드백 「필라」 지갑 등 3개 품목,신세계 미아점은 「앤클라인」 재킷 「신데렐라」 잠옷 등 2개 품목,현대 압구정점은 「엘리자베스 아덴」 화장품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또 한신코아 노원점은 일반 상품인 「잔피엘」 신사정장을 마치 1일한정품목인양 허위 광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인제대교수 권태완의 성남(명사의 고향:49)

    ◎청계산돌아 십리길 타박타박 걸어 등하교/초가집·등잔불이 정겹던 소박한 촌락/다리네고개 공동묘지 지날땐 “으시시”/서울시 지척인 내고향서 콩이나 심고 가꾸며 여생보내는게 꿈 내 고향은 수평선이 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바닷가도 아니요,기암괴석과 함께 산수가 수려한 멋진 곳도 아니다.말하자면 별로 특색이 없는 조용한 벽촌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듯이 서울 발치에 있으면서도 문명의 혜택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토박한 농촌에서 나는 태어났다. 지금은 눈앞에 경부고속도로가 달리고 등잔불은 전등으로 바뀌었으며 어디에나 전화를 걸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 버스까지 들어오고 있다. 이젠 도시의 문명이 부러울 것이 없다 할 만큼 그동안 크게 변화한 것이다.물론 초가집은 사라졌으나 집다운 집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데에서 아직도 이 동네의 어설픈 생활 수준을 살필 수 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외부인의 비닐하우스가 일부 덮였을 뿐 농촌이면서도 농토를 놀리고 농사를 팽개친 현실이 그저 가슴 아프기만 하다. 이제 내 고향은농촌이 아니요,외부인이 잠자러 들락거리는 그러면서도 또 한 차례의 큰 변화를 기다리는 엉거주춤한 촌락이 되고 만 것이다.행정구역으로 볼 때에는 도시에 속해 있으나 그 모습은 여전히 시골이요,분당을 눈 앞에 두고서도 개발 제한 구역에 묶여 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게 될지 그 예측을 불허하는 정중동(정중동)의 고요함이 감싸고 있을 따름이다. ○농촌모습 곳곳에 내 고향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3통이다.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자면 첫 고개를 넘게 된다.다리네 고개라고 하는 이 고개를 넘어서면 왼쪽에 도로공사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검푸른 청계산으로 끌고 가는 포장 길이 눈에 들어 온다.이 마을 길이 어린 시절에 내가 학교에 다니던 길이요,지금도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로서 마을 버스가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이 길을 따라 비닐하우스 숲 사이로 들어가서 구버러진 모퉁이를 한번 돌면 내 고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여기가 경기도 성남시로 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원래 이곳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금토리 내동이었다.옛날 어른들은 둔투리 안말이라 하셨고 (안동)권씨 양촌자손 안양공파 후손들이 대대로 살 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이 마을로 시집을 오시니까 양식을 넣어 놓을 만한 그릇조차 변변히 없었다고 한다.그래서 할아버지 잠방이의 다리를 잡아 매어 놓고 거기다가 보리쌀을 넣어 놓고 잡수셨다는 이야기다.그때야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가난하였다고 하거니와 우리 집에는 특별히 그럴만한 사유가 있었던 것 같다.할아버지께서 5대 독자이셨고 양자로 이어 온 집안인지라 그때는 농사를 짓고 사는 데 생산력이될 일손이 늘 부족하다 보니 무엇이고 축적될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남달리 부지런히 일하신 덕분에 나는 그래도 배고프지 않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던 것이다.일찍이 할아버지한테서 천자문을 배웠고 서당에 가서 명심보감을 배우다가 국민학교에 다니느라고 판교까지 10리 길을 매일 왕래하였던 것이다.지금의 도로공사 자리가 그때는 공동묘지였는지라 하학길에 혼자서 그 앞을 지나갈 양이면 무서워서 힐끗 힐끗뒤돌아 보면서 뛰어 갔던 생각이 지금도 난다. 또,아버지는 12남내 중에 늦게 태어나시고 유일하게 살아남으셨으니,6대째로 독자가 되셨던 것이며 이렇게 우리 집안은 그야말로 자손이 늦고 귀해서 번창하지 못한 것이다.그러니 자연히 항렬이 높아져서 나는 같이 자라던 일가 아이들에겐 증조(증조)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같은 나이 또래에 종조할아버지가 되다 보니 그 아이들은 나를 꽹가리 할아버지라고 놀려대었고 어린 나에겐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가 싫었던 것이다. ○손이 귀햇떤 집안 지금은 나이도 들고해서 고향에 가면 일가들이 반기면서 대부(대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도 않을뿐더러 당연시되고 말았으니 어느덧 나는 동네 대부가 되고만 것이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때 고향을 떠나왔으며 다시 고향에 잠시 머무르게된 것은 6·25때였다.고향을 피란처로 삼았으며,이집 저집에 가서 얻어먹기도 하였다.의용군에 끌려 가지않은 것도 고향 덕분이며,고향의 인심이 나를 그렇게 숨겨준 것이다. 그러길래 나는 고향과끊임없이 숨쉬고 있으며,틈만 있으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나무도 심고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도 객지 생활을 하셨지만 말년에는 고향에 자주 드나드셨다.여러가지 묘목을 심으시면서 아버지의 이상향(이상향)을 가꾸시던 어느날,그 꿈을 채 이루지도 못한신채,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20년이 지난 오늘날,그 묘목은 제법 자라서 아버지의 산소는 물론,할아버지의 산소와 동네까지도 푸르게 하고있다.그때만해도 나는 아버지께서 나무를 심으시는 이치를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경제성이 없다고 만류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할아버지와 할머니,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산소를 모신 내 고향에 나는 지금 나무와 꽃을 심으면서 가신님과 속삭이고 있다. ○부친의 뜻 깨달아 언젠가 이헌조사장(금성사)이 김호길박사(포항공대)와 다녀갔는데,그는 한시 한수속에 내고향을 이렇게 그려냈다. 방권태완박사고리 지호금토격매연 일사귀래반무전 과우취미위수장 천운홍조범화선 금조종두하심작타일유민원계연 시문인생궁극의 청계산하송여년 금년에 소위 회갑을 맞이 했다.그동안에 쓴 글들이 모아져서 수상집이 되었고,가족과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조촐하게 저녁을 같이했다.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비닐하우스가 임시로 세워졌고,고향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가운데 술잔이 오가고 노래 소리가 울려나왔던 것이다.이 잔치에 초대된 손님은 바로 판교에 같이 다니던 낙생 국민학교 17회 동창생들이었다.어제의 코흘리개들이 모두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와 준것이 고마웠다.이렇게 내고향이 가까이 있는것이 나의 기쁨이요,자랑이기도 하다.이제 나는 내가 하고있는 봉사가 끝나는대로 고향에 가서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공덕비 건립 감사 성천 유달영선생께서 청계산 밑에서 태어났다해서 그 이름에서 「계」자를 따시고 「인」자를 붙여서 「인계」라고 호를 지어 주셨다.이에 부끄러움없이 그야말로 인계답게 여생을 살았으면 하는 것도 내 작은 소망중의 하나.그리고 동네 새마을회관 앞에는 「권태완 박사 공덕비」라고 새겨진 비가 서 있으니,내 어찌 고향 사람들의 따사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빚진 마음에서 헤어날 수 있으랴! 「고향!」이 얼마나 포근하고 편안함인가! 동양을 빼놓고도 독일말에는 옛고향(AltHeimat)이라는 멋진 말이 있다.그런데 영어에는 그런 말이 없으니 어찌 된 셈인지 나는 모른다.고향이 없는 영어권의 사람들은 아마도 마음의 한구석이 비어 있으리라. □약력 ▲1932년 12월16일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출생 ▲서울대 화학과 졸업 ▲미 플로리다주립대 박사 ▲미 아이오와주립대 조교수 ▲KIST 책임연구원 한국식품개발연구원장 ▲인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대한화학회 한국식품과학회 회원 ▲저서 「한국식품 연구문헌총람」외
  • 회사채지보 취급 증권사/한신 등 16개사 추가

    오는 2월부터 회사채를 지급보증할 수 있는 증권사가 현행 8개사에 16개사가 추가돼 24개사로 늘어난다.이들 증권사들은 지급보증잔액의 50%이상을 반드시 중소기업발행분으로 유지하도록 의무화된다. 이에따라 중소기업들은 앞으로 3년동안 약8조3천억원 가량의 회사채를 증권사로부터 지급보증받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재무부는 11일 이같은 내용의 회사채지급보증제도 개선안을 마련,2월중 증권관리위원회를 거쳐 시행하기로 했다. 새로 회사채 지급보증이 가능케된 증권사는 한신·서울·제일·산업·한일·신영·보람·선경·대유·유화·부국·신한·상업·한양·한국·한진등 16개사이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

    ◎여명기의 민족지/“항일구국” 염원안고 대한매일신보 탄생/국운 기울어 암울했던 1904년 창간/주권수호 앞장서며 숱한 고난/해방직후 서울신문으로 속간/초대사장에 오세창 취임… 권동진·홍명희 고문에 영입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그 시대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1904년 국운이 기울어가는 암담한 나라 운명속에서 한가닥 빛으로 창강된 대한매일신보.그 항일구국지가 1945년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살았다.당시 민족의 생존이 그렇듯 일제의 모질고 간교한 탄압에 쓰러진 대한매일신보의 맥락은 서울신문이 잇고있다.일제 강점기 사이에 변화도 없지 않았으나 서울신문의 뿌리는 분명히 대한매일신보에 두었다.그 위대한 항일구국지 창간 1세기를 불과 1년 앞둔 오늘,그 역사를 조명하여 서울신문의 연륜을 다시 헤아리고자 한다.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제국 말기 6년동안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민족주권 수호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가히 전설적인 신문이었다.근대 언론사에서 「다시 없는민족의 대변기관」으로 평가 받는 이 신문은 나라 안팎이 매우 복잡한 시기에 발행됐다. 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이 한국의 지배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아 한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던 때이기도 했다.그리고 국내정세는 일본의 한국지배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불길처럼 치솟던 시기였다. 특히 나라안에서는 일본의 한국 황무지 개간권을 막으려는 민중운동과 함께 의병 무장투쟁,국채보상운동,애국계몽운동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한매일신보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창간되어 항일구국의 가시밭길을 걸었다.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1702∼1909년)이다. 러·일전쟁때 취재차 한국에 왔던 런던의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통신원인 그가 한글전용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날짜는 89년전인 1904년7월18일로 돼있다.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도 동시에 창간했다. 창간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모를 보아도 쟁쟁하다.당대의 언론을 주도했던 논객이자 우국지사였던 양기탁을 비롯,박은식·신채호·옥관빈등이 그 주역들. 나중에는 안창호·이갑등 구국운동조직인 서북학회의 인사들도 뛰어들었다. 창간호(타블로이드판)는 한호의 지면이 6면으로 4면은 영문,2면은 한글전용의 2개국어 신문체제였다.그러나 이듬해 8월에는 국한문 혼용판과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를 분리,2종을 발행했다.1907년5월에는 한글전용 「대한매일신보」를 새로 창간,3종의 신문을 한꺼번에 펴 냈다.국한문·영문·한글등 3종의 신문이 발행되기는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황실(고종)의 은밀한 재정적 뒷받침과 민족진영의 도움을 받았다.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는 처음부터 반일구국일수밖에 없었다.그 첫 지탄공격은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이를 시발로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전재,샌프란시스코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 저격사건보도,영국의 트리뷴지에 실린 고종밀서사진 전재등 기사와 논설로 항일언론의 횃불을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신문의 강력한 반일논조야말로침략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저해요인이었다. 일본은 이에 대응,「경성일보」(일어)「Seoul Press」(영어)등 통감부의 기관지를 직접 발행하여 언론대응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또 한편으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외교적 압력과 사법적인 탄압을 가했다.외교적 압력은 영국측에 대해 배설의 추방요구로,사법적 탄압은 통감부의 신문압수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항일언론 자세는 좀체 꺾이지 않아 국한문판 24차례,한글판 21차례의 압수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지속됐다.민족진영의 언론보루로서 이처럼 항일언론을 펼칠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이 영국인 소유여서 치외법권을 누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신문에 몸담고 있던 항일언론투사들의 민족사상과 구국정신이 그같은 논조를 주도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매일신보」가 남긴 족적중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이 신문이 주동이 되어 벌인 국채보상운동이었다.이는 을사보호조약이후 일본으로부터 얻은 나라의 빚 1천3백만원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아 일본의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일대 구국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국지사 대거 참여 대한매일신보는 이 운동의 중심기관이 되던 시기에 사세를 크게 신장,발행부수가 1만부를 넘어섰다(1907년 9월3일 기준 국한문 8천,한글3천부).이같은 발행부수는 그때까지 한국언론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강경한 논조를 터뜨리던 이 신문은 일본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끝에 배설의 상해옥살이와 양기탁의 구속으로 물이 꺾이기 시작했다.그후 배설이 숨지면서 이 신문은 더욱 기울어졌으며 영국인 만성(Alfred Marnham)이 사장직을 인수받았다.그러나 영·일간의 외교문제를 꺼리던 주한 영국총영사 보나르(Bonar)와 통감부의 회유및 압력을 받아 1910년 5월21일 결국 통감부에 팔리고 만다.국권수호의 상징적 존재였던 「대한매일신보」가 마침내 비극적인 종언을 고한것이다.그때의 지령은 제1461호(국한문판)였다. 그리하여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병 이튿날인 1910년 8월30일부터 제호가운데 국가를 상징했던 두글자 「대한」을 빼앗겨 버린다.「대한」이 없어진 「매일신보」는 결국 통감부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것이다.그러면서도 「매일신보」는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 종간호인 제1461호(1910년 8월28일)의 지령을 계승,제1462호부터 국한문판을 발간했다.(한글판은 제939호부터) 이 날짜의 사설제목은 「동화의 주의」로 나온다.제국주의 36년간의 일본 전위역할을 이렇게 상징하고 일제 선전기관으로 얼굴을 바꾼 매일신보는 이틀만인 9월1일 대한제국의 기관지 성격이던 한양신문(전대한신문)까지 합병한다.국한문판과 한글판의 두가지 신문을 발행하는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었지만 한국인이 만드는 한국의 소리는 담기지 않았다.이는 「일선융화와 세도인심의 감화유도」를 내건 일제의 어용언론활동의 전주곡이었다. 경영의 측면에서 경성일보사에 흡수통합,경일편집국의 한부서로서 철저하게 총독부기관지 역할을 수행한 매신은 그후 3·1운동의 결과로 일제의 무단정치가 표면상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1920년 독립된 편집국으로 확대 승격됐다.그리고 1929년에는 한국인 편집국장이 임명된데 이어 1930년 한국인 부사장이 처음 기용되어 다소 편집제작의 재량권이 이루어지는듯 했다. 그러나 매신은 철저하게 일제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집방향은 「내선일체」를 고수했다.이러한 목적을 위해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를 위주로 했으나 민족민간지들의 논조를 반박하거나 민족진영을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의 비호속에 이같은 논조로 일관하던 매신은 기구를 확대,경성일보사에서 분리하게 됐다.1938년 4월16일 독립된 언론기관으로서 제호를 매일 「신」보로 고쳐 새로 출발한 것이다. 매신이 경일과 맞붙은 지금의 프레스센터 자리에 4층 콘크리트 사옥을 짓고 들어선 것은 바로 이때였다.하지만 경일은 매신의 주식 45%를 소유한 대주주로 남았고 여기에 총독부 소유의 주를 포함한다면 매신의 경일예속은 이전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셈이었다.매신의 일제옹호논조 또한 해방직전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다.1945년 8월15일 마침내 조국광복을 맞았다.매신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의「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됐다.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청이 그해 10월2일 매신을 접수,매신 한인주주총회를 열어 새중역진을 구성토록 종용했다.이에따라 10월25일 주총이 열려 「서울신문」이라는 새로운 제호와 오세창을 사장으로하는 간부진용이 결정됐다.이 무렵은 사장 이성근이 지난날의 과오를 전사원에게 사과하고 자퇴한뒤 사원자치위원회에 의해 신문이 발행되던 때였다. 경영간부가 없는 상태에서 신문을 만들어오던 6백명의 자치위는 그러나 주총의 간부진용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주총결정은 자치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는게 그 표면적 이유였으나 실상은 간부진용에 우익인사가 너무 많은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관망상태에 있던 미군정당국은 11월10일 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신에 정간명령을 내렸다.매신이 정간되던날 자치위는 「3천만 민중의 정당한 공기」로서 신문이 새롭게 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 한뒤 일단 한발 물러섰고 이를 계기로 개편실무진과 자취위 사이에 얽혔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때 총독부 기관지로 미군정당국으로부터 매신개편의 대업을 새로 위임받은 이관구와 하경덕은 재원확보문제와 함께 내외에서 모두 수긍할수 있는 권위있는 인사들로 경영·편집진을 구성하는 작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초대사장에 위창 오세창이 추대됐다.근대 신문계의 선구자이자 지조높은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사회적·정치적 덕망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울신문의 이미지에 걸맞는 것이었다.위창과 함께 역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인 권동진과 당시 문단의 원로격인 홍명희가 고문에 영입됐다. 서울신문 탄생의 산파역을 맡은 저명교육자 하경덕이 부사장에,그리고 사려 깊은 논조를 감당할 주필에는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이관구가 선임됐다. 이러한 일사천리의 준비작업은 21일 5층 옥상에서 가진 오세창사장의 취임식으로 그 결실을 보게됐다.해방의 감격과 함께 독립한 이 민족의 진실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울신문이 마침내 그 첫 지면을 이 땅에 선보인 것이다. 이날이 1945년11월22일이었는데 신문은 11월23일자로 발행됐다. 이때의 서울신문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를 그대로 계승,제13738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그 고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련의 역사를 향해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었다. □연보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 ▲1904년 7월18일 창간 ▲편집겸 발행인 배설,총무 양기탁취임 ▲1910년 5월21일 통감부가 매수 ▲1910년 8월28일 국한문판 1461호,한글판 938호로 종간 ◇매일신보(1910·8·30∼1938·4·28) ▲경성일보에 흡수 통합,1910년 8월30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대한매신을 계승) ▲경성일보사장 길야태좌위문 취임(매일신보사장 겸임) ▲1912년 3월1일 국한문판과 한글판을 한글전용으로 합간 ▲1938년 4월28일 매신의 제호로 최종발행(지령11 012호) ◇매일신보(1938·4·29∼1945·11·10) ▲경일에서 분리독립,제호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사장 최린,부사장 이상협취임 ▲1945년 11월10일미군정에 의해 정간 ◇서울신문(1945·11·23∼현재) ▲1945년 11월23일 매신을 서울신문으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초대사장 오세창,고문 권동진 홍명희,부사장 하경덕,전무 김동준,주필 이관구취임
  • 부도심·수도권 백화점분점 러시/“먼거리쇼핑 기피”9월후 8곳 개장

    ◎상권 나눠먹기식 출혈경쟁 우려도 올들어 주요 백화점들의 부도심 및 수도권분점 신규오픈과 신설 대형백화점의 출점이 러시를 이루며 백화점 춘추전국시대를 맞고있다.이에따라 백화점간의 상권재편성과 함께 유통업계의 판도변화가 예견된다. 올하반기에 수도권 및 부도심권에 새로 문을 연 백화점은 모두 8곳.지난 9월1일 미도파 상계점이 문을 연것을 비롯,뉴코아 과천점(10월3일) LG안산점(10월30일),세반유통안양점(10월24일)그레이스 신촌점(11월19일)등이 오픈했다.12월 들어서도 한신코아 광명점이 16일 문을 연데 이어 17일엔 신세계 천호점과 뉴코아 동수원점이 동시에 문을 열었다. 지난해말 삼성그룹에서 분리독립한 신세계가 천호동 신4거리에 문을 연 신세계 천호점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목산백화점을 임차,4개월간 3백억원을 들여 새롭게 단장·개장한 것.지하1층 지상6층 건물에 연면적 4천9백평·매장면적 2천6백평 규모의 지역형 백화점이다.신세계는 천호점을 영등포상권 및 동북부 상권에 이은 새로운 부도심강동상권의 핵점포로 육성시킬 계획이다.신세계 천호점이 개점됨에 따라 명일·고덕지구의 해태백화점과 잠실지구의 롯데잠실점·한양잠실점·현대무역센터점들이 각각 시장 점유율을 놓고 경쟁할것이 분명해 강동상권의 판도 역시 크게 재편될 전망이다.신세계는 이밖에도 삼성생명이 구화신백화점자리에 짓고있는 빌딩에 지하2∼지상10층을 차지하는 종로점을 94년말 개점할 예정이며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호남·영동선 부지에 터미널점(96년)을,서초동 한미자동차학원 자리에 강남점(97년)을 각각 개점할 계획이다. 뉴코아의 경우 지난해 12월 수원시 인계동에 지상12층 지하4층 규모로 수원지역 최초의 직영백화점을 오픈한데 이어 올해들어 과천점(10월) 순천점(12월)을 열었고 수원시 매탄동의 동수원점(지상10층 지하5층)까지 합세했다.뉴코아는 89년 다점포전략을 세우고 신도시권 및 수도권 시장개척에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결과 매장규모에서는 2만9천평으로 롯데(3만4천7백평)에 이어 2위지만 연면적에서(6만6천여평)는 선두에 나서게 됐다. 한편 88년 중계점을 개점,중·상계지역상권 선점에 성공한 한신코아는 광명시 철산동에 지하3층 지상4층규모의 광명점을 오픈함으로써 재래시장에 의존하거나 쇼핑을 위해 서울까지 원정을 해야했던 지역주민들을 집중공략하고 있다. 이같은 백화점들의 신규출점러시는 서울의 인구확산·소득증가와 함께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신흥부도심상권과 서울외곽의 신흥개발지역이 공략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또 교통난으로 인한 부도심 고객의 도심진입기피현상과 내년도 유통시장 3단계 개방을 앞두고 외국업체 진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도권 선점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점포신설경쟁을 부추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처럼 수도권 및 부도심 상권이 확장되고 대형업체간의 점포신설경쟁이 가열되는데 따른 부작용이 없는것은 아니다.신세계백화점 유통산업연구소의 서영철선임연구원은 『상품개발을 통한 이익확보보다는 상권나눠먹기식의 고객확보전쟁을 치르다 보면 출혈경쟁은 불가피하다』면서 『외형은 성장할지 모르지만 이익구조의 악화로 자유경쟁 체제에서 버티지못하는 업체도 나올것』이라고 전망했다.
  • 선거 불법홍보물 “홍수”/비방유인물 등 주택가 마구 살포

    ◎경찰,24명 입건 대통령선거를 사흘 앞두고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선관위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홍보물을 나눠주다 입건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동부경찰서는 15일 조영란씨(35·주부·서울 성동구 구의1동 동아주택B동1호)등 3명을 대통령선거법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14일 하오7시쯤 성동구 구의동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입구에서 중앙선관위에 등록되지 않은 민자당 유인물 20여장을 시민들에게 나눠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또 민주당당원 김영환씨(43·부동산중개업·성동구 중곡동93)와 주부 이경순씨(37·중곡4동18)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민주당 성동병지구당원인 김씨는 14일 상오10시쯤 선거운동원이 아닌 이씨에게 같은 이름을 가진 선거운동원의 신분증을 빌려주고 중곡4동 주택가에 유인물을 나눠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서울청량리경찰서도 박현철씨(29·치과의사·서울 노원구 화계동133 한신아파트 2동1301호)등 「청량리·동대문지역 시민회의」회원 4명을 대통령선거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술값 시비끝 손님살해/20대 종업원 영장신청

    서울 서초경찰서는 8일 장윤석씨(20·술집종업원)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씨는 이날 상오1시쯤 자신이 근무하는 강남구 역삼동 827의47 「도도」가라오케에서 손님 이정국씨(35·카페경영·서초구 반포동 한신아파트213동 502호)등 4명이 23만여원어치의 술을 마시고 1백만원짜리 수표를 낸뒤 『술값이 비싸다』며 얼굴을 때리자,주방에서 흉기를 들고나와 이씨의 목과 배등 6군데를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의협,뇌사판정 심사기구 구성/장기이식병원도 선별지정

    ◎수술 무분별 확산따른 부작용 막게 대한의학협회(회장 김재전)는 8일 뇌사판정자문회의를 개최,뇌사판정및 장기이식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별 지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심사할 중립적 전문기구를 설치,운영키로 했다. 의협은 이날 하오 의협회의실에서 심영보의협기획조사이사등 관계자와 대한이식학회 대한신장학회대표자,서울대병원등 장기이식기관대표자 등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갖고 전문심사기구구성방안과 운영규정및 재원조달방법등 구체적 실행방안을 논의했다. 의협은 「뇌사자장기의 이식에 관한 법률」이 입법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각 병원이 자체판정기준에 따라 뇌사판정및 장기이식수술을 시행하고 있어 뇌사판정에 대한 의혹과 장기매매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이를 예방하기 위해 전문기구 구성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의협은 각 병원이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관계전문가들로 중립적인 기구를 의협안에 설치,지난 89년 마련한 기준에 따라 뇌사를 판정토록 하고 장기이식기관은 각 병원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인력·시설·의료기술수준 등을 평가해 선별지정한 뒤 다른 병원에 대해서는 장기이식을 일체 불허할 방침이다. 의협의 뇌사연구특별연구위원회가 마련했던 뇌사판정기준안은 지난 3일 서울대병원이 발표한 뇌사판정기준의 모태가 됐던 것으로 의협은 죽음을 「심장·폐기능의 불가역적 정지,또는 뇌간을 포함한 모든 뇌기능의 불가역적 소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 루머퍼뜨려 손해/2증권사에 항의/삼미

    삼미그룹이 계열사인 삼미종합특수강의 법정관리신청설을 증권사 단말기를 통해 투자자에게 알린 제일,한신증권에 항의하는 한편 다시는 근거없는 루머를 유포시키지 말 것을 촉구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25일 증권당국및 삼미그룹에 따르면 삼미그룹은 삼미종합특수강의 법정관리신청설이 나돈 지난 20일 이를 유포시킨 제일및 한신증권에 회사대표를 보내,확인절차도 없이 근거없는 소문을 단말기를 통해 투자자에게 알린것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또한 삼미그룹측은 지난 23일 박종석증권감독원장과 고병우증권거래소이사장에게 「악성루머 근절을 위한 대책수립」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 미화원에 4억 갈취/폭력배 6명 구속/권리금 뜯어 사채놀이

    경찰청은 19일 미화원(속칭 구두닦이)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고 권리금을 멋대로 매겨 일수금 형식으로 거액을 뜯은 임흥기씨(44·서울 중랑구 면목2동 한신아파트 8동 1205호)등 기업형 폭력조직 6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차재수씨(47)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전에 미화원으로 일한 임씨등은 서울 명동과 남대문·용산·을지로등 수입이 좋은 서울시내 미화원 점포 1백50여개소를 상대로 권리금을 1천5백만∼6천6백만원씩 멋대로 정해 일수금 형식으로 하루 10만∼20만원씩 뜯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91년 8월 한사람앞에 6천만원씩 내 4억2천만원의 사채자금을 조성한뒤 미화원들에게 고리로 빌려줘 4억여원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화원들로부터 갈취한 돈 7천만원으로 노래방을 공동 운영하고 고급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법률근거 명시않은 과태표부과는 부당”/대법원

    행정당국이 발부한 과태료 납부고지서에 과태료 부과에 대한 법률적근거를 명시하지 않았다면 이는 부당한 처분으로 취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박우동대법관)는 17일 한신공영이 전주시 덕진구청장을 상대로 낸 벌칙금부과처분취소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덕진구청은 1천3백만원의 과태료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 수도권 4개 신도시 “서울가는 길 시속 15㎞”

    ◎종일 “러시아워”… 교통전쟁의 현장을 가다/노폭넓히기·전철공사로 병목현상 극심/분당/진입도로 2곳 버스결행 잦아 만성체증/평촌·산본/신행주대교 무너져 내년엔 더 혼잡예상/일산/전철공기 늦춰져 연계도로망 조기 확장·포장에 전력 꿈의 신도시로 불리는 분당·평촌·산본·일산등 수도권 4개 신도시에 입주한 주민들은 매일같이겪는 교통난으로 「고통도시」에 살고있다며 푸념이다.현재 이들 신도시에 살고있는 주민들은 3만3천2백가구 13만3천여명으로 올해말 첫입주가 시작되는 중동신도시 주민들까지를 합치면 모두 5만여가구 19만9천여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신도시주민들이 겪고있는 교통난의 실태와 당국의 대책,전문가들의 의견등을 알아본다. 이지역 주민들이 겪는 교통난은 한마디로 늘어나는 차량에 비해 교통시설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 주민들이 신도시에 입주를 시작하면서 출근시간대(상오8∼9시)에 서울로 진입하는 차량은 줄잡아 12만2천대,이전보다 1만1천9백20대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더구나 신도시건설이완료되는 97년까지는 중동신도시를 포함,5개도시에 인구 1백17만6천여명을 수용할 계획이어서 교통혼잡도는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국에 따르면 97년에는 하루 서울 진입차량이 분당82만8천대,평촌·산본 2백5만6천대,일산 1백9만3천대,중동 30만6천여대로 추산하고 있다. ▷분당◁ 지난해 9월 입주가 시작된 분당신도시는 출근자·통학생·건설인부등 유동인구가 하루 8만여명에 이르고 이들중 80%가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으나 도로망이 제대로 개설되지 않은 데다 버스·택시등 대중교통수단의 횡포로 매일 몸서리치는 교통전쟁을 치르고 있다. 특히 이곳 교통소통에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됐던 분당∼수서간 지하철공사가 올해말 완공예정에서 93년말로 연기돼 교통난은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분당주민들이 서울로 가려면 ▲판교∼경부고속도로 ▲성남시가지∼송파대로 ▲세곡동4거리로 이어지는 393번 지방도등 3개 노선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제외한 나머지 도로는 도로확장공사와 전철공사들을 하느라 노폭이들쭉날쭉해 곳곳에서 심한 정체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고속도로역시 양재인터체인지구간부터 차선이 8차선에서 4차선으로 좁아지는 바람에 심한 적체현상을 빚고 있다. 지난1월에 입주한 김현태씨(36·회사원·분당구 서현동 시범단지 한신아파트 126동)는 『아침 6시30분에 집을 나서지만 고속도로위에서 꼬박2시간을 허비한뒤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 도착할 때면 온몸은 파김치가 돼 근무의욕조차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게다가 노선버스들은 배차시간과 운행노선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다 밤10시 이후엔 아예 운행조차 않고 있으며 택시들도 승차거부·부당요금징수등 횡포를 일삼고 있다. ▷평촌·산본◁ 평촌과 산본신도시의 교통사정은 어느 신도시 보다도 열악하다. 서울로 진입하는 도로가 ▲비산4거리∼시흥∼영등포의 경수산업도로와 ▲군포4거리∼인덕원4거리∼과천∼사당로등 2개노선밖에 없는데다 이들 도로는 이미 수년전부터 교통지옥으로 불릴 정도로 만성체증을 겪고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산4거리∼군포4거리간 4.6㎞ 확장공사와 사당동∼금정역간 전철공사,흥안로 확장공사가 평촌주변에서 진행되고 있어 출퇴근 시간은 물론 온종일 적체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현재 1만1천3백가구 4만5천여명이 입주한 평촌신도시는 주민입주에 맞춰 18개노선 82대의 버스가 운행될 예정이었으나 버스회사측에서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운행하지 않아 주민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인근의 산본신도시 주민들도 노선버스의 배차간격이 길고 일정치 않은데다 안양방변으로 편중돼있고 지난6월 임시개통된 산본역의 전철 운행간격도 20분으로 한번 전철을 놓치면 40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산본 주공1단지 김현숙씨(36·여)는 『결혼 10년만에 내집을 마련,부푼 꿈을 안고 신도시에 입주했으나 교통문제는 물론 자녀교육문제,편의시설부족등 고충은 이루 헤아릴수 없다』며 『이같은 문제는 당장 해결될것 같지도 않아 집을 팔거나 전세를 놓고 다시 서울로 이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산◁ 97년까지 6만9천가구(27만6천여명)가 들어설 이곳은 3차입주가 시작돼 현재 1천6백여가구가 입주했으며 올해내로 모두 3천5백68가구(2만여명)가 입주하는등 본격 입주가 시작되는 내년부터는 극심한 교통체증이 예상된다. 현재 일산신도시와 서울도심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백석∼능곡∼화전∼수색∼모래내∼신촌간 노선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매일아침 7시30분 백석고 앞을 떠나 15㎞지점인 신촌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또 올림픽대로나 행주대교와 성산대교간 강변북로를 이용,서울로 진입하려는 차가 몰려드는 행주산성앞 교차로에서도 매일같이 심한 병목현상을 일으켜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만 1시간가까이 소요되고 행주대교를 건너는데도 역시 1시간이 걸려 신도시주민들의 짜증은 극에 달한다. 더구나 이곳은 올해말 완공예정이던 신행주대교가 무너져내려 교통사정이 호전될 기미가 전혀 없는데다 통일전망대관광을 위해 찾아오는 수많은 차량들로 도로기능을 잃은지 이미 오래이다.또 서울시계마다 위치한 검문소도 신도시민의 바쁜 발목을 붙잡고 있다. 신도시내 복덕방을 찾은 이모씨(40·주부·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남편의 직장이 김포쪽으로 신행주대교가 붕괴돼 출퇴근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입주포기를 심각하게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대책◁ 건설부는 신도시교통난해소를 위해 지난6월 모두 44개노선 3백52㎞의 신도시주변 도로망을 확정,이미 완공된 4개노선 12.5㎞에 이어 올해말까지 21개노선 1백7㎞를 개통하고 전철 3개노선도 완공시기를 앞당기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 7월31일 올해말 개통예정이던 신행주대교가 붕괴되면서 교통시설 공급이 차질을 빚은데 이어 분당·일산·과천선등 3개 수도권전철의 완공시기가 당초계획 보다 6개월∼2년간 늦어져 신도시주민들의 교통불편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말 완공예정이던 과천선의 금정∼인덕원간(5.7㎞)은 연내 개통하되 인덕원∼사당간(10㎞)은 내년 6월로,분당선의 1단계(수서∼분당 19㎞)는 올해말에서 내년말로,2단계(수서∼왕십리)는 내년말에서 95년말로,일산선(지축∼장촌 21.2㎞)은 내년말에서 94년말로 완공시기가 각각 늦춰졌다. 현재 신도시와 관련해 계획된 도로중 완공·개통된 곳은 세곡∼판교간 7.5㎞(6차선 확장)등 7개노선의 총연장 26.9㎞이다. 또 양재∼내곡동간 3.8㎞를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공정 70%를 보이며 연말완공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며 ▲비산사거리∼군포사거리간 4.6㎞를 4차선에서 10차선으로 확장 ▲군포사거리∼이동교∼대한전선 4.5㎞ ▲산본고가교 1백60m의 신설공사도 올해말 완공예정이다. 경기도는 일산신도시 주민을 위해 고양시 용두동(서오릉)∼식사동간 9.9㎞(너비 20∼40m)와 덕은동(수색)∼행신동간 4.6㎞(너비 27∼35m)의 도로 개설공사를 당초 예정보다 5개월 앞당겨 올해말까지 완공·개통키로 했다. ◎버스­지하철 환승요금체계 도입 시급/고속직행좌석 신설·전용차선 확대/병목지점 입체·순환도로 건설토록/김수철박사 교통개발연구원(전문가 의견) 『신도시 건설은 단기간내 한곳에 집중된 교통수요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고질적인 수도권교통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있습니다. 입주가 완료되는 97년이후 이같은 교통문제는 더욱 심각할 전망이어서 수도권 순환도로·광역전철망등이 조기완성돼야 합니다』 교통개발연구원 도시교통실장 김수철박사(40)는『신도시교통문제는 신도시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수원·안양·성남등 수도권전역에 영향을 미치는만큼 국가적인 해결차원에서 지속적인 도로망 확충과 대중교통수단의 개편등 장단기적인 시설투자및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대중교통 운영방법으로 버스전용차선제의 확대실시와 함께 고속기능을 갖는 직행좌석버스를 신설,신도시와 서울등 기존도시를 연결토록 하고 중장기적으로 벼스요금제도의 개선과 버스­버스,지하철­버스 환승요금체계의 일원화로 대중교통의 이용도를 높여야한다고 제시했다. 또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서는 병목지점과 서울­신도시간 접속도로에 입체시설을 설치하거나 교차로운영방법을 개선하고 평촌신도시처럼 주간선도로변에 주거단지가 밀집된 도로는 통행량을 분산시킬수 있도록 집·분산도로를 확대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박사는 이밖에 ▲안양∼군포∼평촌∼의왕시를 연결하는 경전철건설 ▲평촌신도시와 서울 관악구 신림동간을 연결하는 관악산도로개설 ▲경의선 복선전철화 추진등 방안을 제시했다. 김박사는『신도시 교통문제는 신도시계획단계에서부터 교통수요를 감안치 않았기때문에 발생한 필연적 현상』이라며 『이같은 교통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수도권교통청을 신설하거나 서울시와 수도권도시를 통틀어 행정구역을 초월한 광역단위 교통행정체계를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노동신문 창간 47돌 계기로 본 실태(오늘의 북한)

    ◎북한신문/선전·선동 기능에 충실/30종 발행… 당서 모두 지도·검열/노선·정책 홍보… 김일성 우상화에 앞장/노동신문/입법·행정부의 사업지침 시달에 치중/민주노선 북한의 대표적 일간지인 「노동신문」이 1일로 창간 47주년을 맞았다.해방후 대중을 「조작」키 위한 수단의 하나로 45년 공산당에 의해 발간되기 시작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은 현재 1백50만부를 발행,북한신문 가운데 최고의 부수를 자랑하고 있을뿐 아니라 그 영향력면에서도 북한 제일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노동신문」창간기념일을 계기로 북한신문의 특성과 주요신문의 발행 실태등을 알아본다. 구소련에서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은 1900년 「이츠크라」를 발간하면서 『신문은 공산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무기…』라고 그 임무와 역할을 선언했다.이로부터 후세의 공산주의자들은 언론,특히 신문의 3대기능을 △선전 △선동 △조직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공산화를 위한 도구로 삼아 왔다.북한의 대신문관도 다를 바 없기는 마찬가지. 북한의 모든 신문들은 완전히 당에 의해서 장악된채 인민대중을 조직하고 교육하며 이들을 공산주의 사상으로 교양시키기 위한 학습적 도구로서,그리고 사회주의 제도의 모순을 숨기기 위한 선전·선동의 수단으로서 이용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신문은 대중매체로서의 언론이 아니라 당의 유일사상과 주체사상및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당노선과 정책을 해설·광보하는 선전매체에 불과하다. 북한의 신문은 다른 보도매체와 마찬가지로 당에 의해 철저히 장악되고 있다.당보인 「노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 「민주조선」도 당관계 부서의 직접적인 지도·통제를 받고 있으며 각 도 인민위원회와 단체들에서 발간되는 신문의 발행도 단체내의 당조직 핵심당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신문의 북한내 최고지도기관은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이어 당내 서열 2위인노동당 중앙당 선전선동부 신문과다. 현재 북한에서는 중앙과 지방에서 모두 30여종의 신문이 발행되고 있으나 개인이나 민간단체의 신문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노동당과 정무원및 그들 산하단체에서 발행하는 기관지들 뿐이다.중앙지로는 「노동신문」「민주조선」을 비롯,평양시 인민위원회기관지 「평양신문」인민무력부기관지 「인민무력신문」사로청기관지 「노동청년」등 7개가 있다.격일간지로는 「노동자신문」등 9개가 있고 그밖에 2개의 주간지가 발행되고 있다.지방지로는 도당과 도행정위원회기관지 10개가 있으며 영자지는 매주 토요일마다 발간되는 「The PyongYang Times」지가 있다. ▲노동신문=지난 45년 11월 1일 「정로」라는 제호로 발간을 시작,이듬해인 46년 9월 1일 신민당기관지 「전진」과 합치면서 「노동신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무와 기능은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 선전 △당의 활동과 목표달성에로 대중을 조직, 선동·선전하며 △김일성 1인독제체제 강화를 위한 김일성 우상화선전 △당원과 근로대중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 △각급 당 단체와 당원들의 사업지침 적시 하달 등이다.편집국안에 책임주필,부주필 3∼5명이 있으며 편집부·당생활부·이론선전부·공업부·농업부·남조선부·국제부·사진부·지방서한부·재정경리부·보도부·군사부 등을두고 있다.각 부에서 작성된 기사는 제1단계로 각 소속부장­편집부국장­편집국장­부주필­주필의 단계를 거치면서 차례로 검열을 맡는다.제2단계는 정무원 직속의 「출판지도검열국 신문과」의 검열로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최종단계인 「노동당 중앙당 선전선동부 신문과」의 검열을 받을 수 있다.대부분 전일 낮 12시쯤 기사작성,편집이 완료되고 하오 5시 초판이 인쇄되어 검열과정으로 넘겨진다.발행된 신문은 다음날 10∼14시 사이 사전에 배정된 배포선에 따라 교체위원회 산하 우편기관을 통해 독자에게 배달된다.판형은 우리 신문보다 약간 크며 제호 왼쪽에 『전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구절이 있고 그 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자!』는 노동당의 선동적인 구호가 들어간다. ▲민주조선=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행정부인 정무원을 대변하는 기관지.지난 45년 8월 평남 인민위원회의 직속기관지로 출발했다. 행정부에서 채택한 결정사항이나 법령 등을 상세히 다룬다.「노동신문」에 비해서는 권위가 떨어지지만 다른 신문보다는 앞선다.북한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입법기구와 행정기구의 사업을 홍보하고 김일성 1인독재체제의 강화를 위한 유일사상체제 확립과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선전사업에 비중을 두고 있다.또 각급 인민위원회와 행정위원회 간부들에게 수시로 제기되는 입법및 행정사업 지침을 하달하는 것 등도 주요 임무와 기능에 들어간다. 주필·부주필 2∼3명,인민행정부·공업부·국제부·농업부·교육문화부·편집부·교정부 등이 있다.「노동신문」에 비해 기구와 성원이 적다. ▲평양신문=노동당 평양시인민위원회의 기관지이지만 평양에 국한치 않고 북한 전역에 배포되는 중앙지의 일종으로 지난 57년 뒤늦게 창간됐다.노동당의 노선·정책선전과 그를 위한 당원과 근로대중의 조직·동원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노동신문」과 「민주조선」에서 볼 수 없는 연재소설과 만화 그리고 상품광고까지 실어 비교적 편집의 다양함을 보이고 있으나 이들 소재의 대부분이 당의 시책을 선전하는 내용이어서 대중의 관심을끌지 못하기는 다른 언론매체나 다름없다.
  • 환경보호운동/종교계서 적극 나서

    ◎기독교/생명보존을 93목회방침으로 설정/카톨릭·원불교·증산도 등도 교단차원서 활동전개/불교/「생태학교」 개설 생활양식 개선 교육 기독교계가 93년도 목회 방침을 생명보전에 두는등 새해에는 종교계를 중심으로한 생명및 환경보호운동이 활발해질 전망이다.이는 환경파괴행위를 반종교적 차원의 반생명적 행위로 간주,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의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과 사회의 근원적 문제로 보려는 종교계의 접근으로 풀이된다. 기독교가 관심을 두는 환경보존은 성서에 근거한 창조질서와 깊은 관련을 갖는다.그래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원장 김상근)의 경우 93년도 목회의 목표를 「생명목회」로 설정하고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충북 중원군 수안보 이화여대 고사리수련관에서 신년목회계획에 관한 교육회를 가졌다.에큐메니컬운동 차원에서 성공회,복음교회등과도 연합하여 준비한 이 교육회에는 교단 목회자 3백여명이 참석,인간과 자연의 총체적 삶의 문제인 생명문제를 본래의 고귀한 모습으로 환원시키는 생명회복운동을 폭넓게 논의했다. 이 교육회의 발제는 ▲창조세계의 반생명적 현상(이경재·시립대) ▲반생명적 문명의 원인과 구조(강원룡·크리스챤아카데미원장) ▲생명회복을 향한 신학과 목회(김경재·한신대)등 주제강연과 목회분야별 7개영역의 시안 제시,「생명노래한마당」을 통한 교회노래문화에 대한 새로운 모델도 소개됐다. 이와 더불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오는 9일 창립하는 「민주사회구현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도 산하에 환경특위를 두기로 했다.대선이후 내년부터 추진해나갈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8대정책에 환경정책강화를 포함시키게 된다. 불교계도 현대사회의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 가치체계의 생활양식을 지양하고 참다운 삶을 모색하기위한 교육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불교사회교육원은 「지구생태계의 위기와 인류의 미래」라는 주제로 최근 「생태학교」를 개설했다.이 교육원이 올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이 강좌는 오는 22일까지 ▲자연과 인간의 일체된 삶 ▲현대과학의 성과와 생명인식 ▲우리의 환경 우리손으로」등 모두 13개의 생명및 환경관계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또 공해추방불교인모임과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은 5일 서울 마포 불교방송국 공개홀에서 「불교사상과 환경보존」세미나를 개최한다.불교사찰이 자연환경보호의 최일선에 있다는 인식에서 열리는 이 세미나에는 「사찰환경보호와 공해문제」(법광)등이 발표돼 사찰자연환경문제가 최초로 심도있게 논의될 계획이다. 지난10월 교단 차원에서 대대적인 환경주간행사를 전개했던 원불교는 우주만물의 생명의 존귀함과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목표로 새해부터는 교당및 교구별로 책임있는 환경보존활동을 펴기로 했다.인근공원이나 공공시설을 선정,「1교당1사업」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가톨릭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환경보호운동을 벌여오고 있으며 증산도도 최근 열린 개벽대성회에서 생명및 자연환경보호를 새해의 도무지침에 포함시키는등 각종교가 새해 사회운동의 방향을 생명및 환경운동으로 집약시키고 있다.
  • 안만나 준다 앙심/20대 여 밀어 숨지게/30대,아파트서

    서울 서초경찰서는 31일 김재일씨(32·상업·서울 강동구 성내2동 21)를 폭행치사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2년전부터 사귀어 오던 오미숙씨(25·여·서초구 잠원동 한신8차아파트 311동1113호)가 최근 만나주지 않자 이날 0시10분쯤 오씨 집으로 찾아가 다투다 오씨를 복도 난간 위로 들어올려 25m 아래 땅으로 떨어져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서 『단지 겁을 주려고 난간위로 들어올렸는데 오씨가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고 말했다.
  • 각계원로 56명 대국민 위기극복 호소문

    ◎“깨끗한 승부”·“책임있는 행정” 촉구/대선후보들 실현가능한 공약을/유권자는 냉소주의 탈피하도록 크리스천 아카데미(원장 강원용)가 주최한 「나라를 위한 원로들의 대화모임」이 29·30일 양일간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강영훈·남덕우·이한기전국무총리 등 각계원로 56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각계원로들은 이 모임에서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안정과 민주발전을 염원하는 뜻에서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채택,발표했다. □참석자 강영훈 강원용 고정훈 공덕귀 구 상 김수환 김 증 김경수 김관석 김옥라 김은호 김점곤 김지길 김창규 김태길 남덕우 문동현 문인구 박세경 박영준 박용구 박형규 백선엽 서돈각 서영훈 석주선 송남헌 송서암 신도성 안병욱 안춘생 양호민 엄규진 오재경 유명선 유창순 이강훈 이능가 이동욱 이만갑 이병주 이영복 이태영 이한기 이한빈 전택부 전유초 전숙희 정헌주 조아라 조향록 최태섭 한신 한경직 한양원 황온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한마디로 위기라고 규정합니다.이른바 「총체적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구심점과 방향을 잃고 불안과 회의,냉소주의와 자포자기에 빠져 있습니다.그리고 이같은 상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의 위기와 다각적으로 관련돼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세계는 냉전종식후 약육강식의 경제전쟁시대로 돌입했으며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주변 4대국의 새로운 세계전략,특히 동북아전략이 안보상황과 관련해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상황이 민주발전과 경제도약 그리고 남북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함축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우선 지난날의 역사에 직접 관여했던 당사자로서 뼈아픈 책임을 통감하면서 우리의 위기상황을 창조적인 기회로 역전시키기 위해 특히 중차대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충정을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먼저 국민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절대로 냉소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맙시다.우리 모두는 유권자로서의 존엄한 권리는 물론 의무와 책임을 엄숙히 자각하면서 본분에 충실해야 합니다.특히 경제가 어려운 이때 기업가는 기술개발과 경쟁력 제고에 힘쓰고 근로자는 땀흘려 일하면서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합니다.그리고 청년 학생들은 진취적 이상을 튼튼한 현실인식과 결합해 부단히 자신을 연마하면서 사고하고 행동해주기를 바랍니다. 2,행정,입법,사법부의 위정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이른바 「중립내각」을 출범시킴으로써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겠다는 그 충정을 이해합니다.그러나 「중립」이란 「아무일에도 관계하지 않는 것」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며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는 특히 공무원의 기강확립과 투철한 책임의식이 요망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도 남은 임기동안 외교보다는 선거관리등 내정에 힘쓰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랍니다. 최근 적발된 북한측의 대규모 체제전복 조직은 그 전모가 명쾌하게 밝혀져야 합니다.이 사건은 대통령선거에서 정치 쟁점으로 이용돼서도,또 선거후에후유증으로 남아서도 안됩니다. 3,대통령 후보들에게 바랍니다. 대통령후보로 나선 사람들은 누구든지 솔직하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공과를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깨끗한 심판을 받을 자세가 돼있어야 합니다.더이상 술수나 선동,인기발언으로 국민을 속여서는 안됩니다.후보 여러분은 대통령후보가 됨으로써 이미 국가의 운명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그리고 무엇보다 실현가능하고 과학적인 정책과 공약들을 제시해야 합니다.또 각 후보들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스스로 법을 지키면서 깨끗한 승부를 벌여 승자에게 패자가 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염원합니다. 4,종교인 언론인 문화인 기타 사회전문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촉구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온 국민의 잠재적인 도덕역량과 건설역량을 최대한 동원하는 일입니다.이를 위해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선도가 필요합니다.특히 정보공급원으로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언론은 공정선거를 위해 공정보도와 국민계도에 힘써주기를 당부합니다. 우리는 두번 다시 물리적 혹은 비민주적 방법에 의한 역사의 단절이나 후퇴를 되풀이 할 수 없습니다.요즘 떠도는 위기설 운운은 낭설에 그쳐야 합니다.도약과 발전은 종종 위기로부터 비롯됩니다.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통한 민주정부의 수립으로 인간성이 회복되고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국민모두가 공동체로 결속된 정의로운 사회의 초석을 세울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우리들 역시 미력하나마 국민여러분의 노력에 동참할 것입니다.
  • “문정동 땅 고도제한 구역 아니다”/국방부,특혜의혹 해명

    국방부는 28일 (주)건영의 조합주택건립 특혜의혹과 관련,『문제의 문정동일대 부지는 공군기지법상 비행고도 제한을 받는 지역은 아니나 해당 공군부대가 한신공영측의 질의에 건립불가 통보를 한 것은 부대의 작전상 검토결과와 강동구청장,경찰서장 등으로 구성된 「기지안전협의회」의 결정에 따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한신공영측의 질의 당시 기지안전협의회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행사시의 경호문제 등을 고려,15층짜리 아파트 건립을 제한하기로 결정했으며 해당부대도 비행기 이착륙시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건립에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뒤 건영측에 대해서는 경호문제가 해소되고,한시기구인 기지안전협의회가 88년 5월1일자로 해체됨에 따라 해당부대가 아파트 건물배치의 조정,반사유리의 설치금지 등을 전제로 조건부 동의를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 땅매입→전매→고도제한 해제순/「건영특혜」의 시말

    ◎88년 땅산뒤 1년만에 백53억 차익/토개공,대금분할상환허용 이례적/진실 캐려면 로비자금·외압여부 밝혀야 건영의 서울 송파구 문정동 조합주택건립에 대해 특혜의혹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에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검찰이 내사를 하고 있다. 건설부·토지개발공사·서울시·송파구청·감사원·군부대 등 6개 기관이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건영사건의 의혹은 고도제한 해제,사업승인 과정,전매가 가능하도록 한 규정개정 등으로 집약된다. 특히 이번 사건은 철저히 법 테두리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의혹만 증폭되고 있을 뿐이다.따라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로비자금이 오갔는지와 외부압력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분정동 땅 6천4백여평은 주변 장지 거여동 등과 함께 고도제한지구에 묶여 있었다.한신공영은 86년4월 토개공으로부터 이 땅을 매입,15층 고층아파트를 건립하려 했으나 고도제한이 풀리지 않아 해약금을 물면서 토개공에 반납했다. 그러나 2년뒤인 88년4월 건영이 매입해 고도제한을 해제하고 15층 5개동 5백45가구분의 아파트 건립을 가능하게 했다.특히 건영이 제한해제 2개월전에 이같은 아파트건립계획으로 송파구청에 입지심의신청을 한 것은 사전에 고도제한 해제를 확신하고 있었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의혹부분은 이 땅의 전매가 가능하도록 건설부가 토개공에 토지관련 규정을 고치도록 지시한 점이다. 건설부는 88년 9월 정부의 주택 2백만호 건립계획을 촉진하기 위해 건설업체 소유토지를 주택조합에 전매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이에따라 건영은 66억1천만원에 사들인 땅을 89년7월 2백19억5천만원을 받고 주택조합에 되팔아 1년여만에 1백53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더욱이 토개공은 한신공영에는 계약후 2개월내 토지대금을 완납하라고 했던 반면 건영에 대해서만은 5년분할상환조건을 제시했다. 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건영의 조합주택 건설사업계획 승인과정이다.건설부의 당초 지침은 건설사업자가 주택조합에 땅을 팔 경우 건설에 공동사업자가 될수 없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도 건설부는 건영이 주택조합에 땅을 팔기로 계약한 직후인 89년 8월1일 이후에 주택조합이 건설사업자로부터 땅을 살 경우 사업계획 승인을 하지 않을수 있다는 새 지침을 제정했다.즉 89년 8월 이전에 땅을 살 경우 공동사업자가 될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건설부의 이같은 지침을 받은 서울시는 규정을 한층 강화시켜 「8월1일 이전에 땅을 매입한 경우 사업승인을 내준다」고 각 구청에 전달했다. 건영은 토개공의 동의없이 무자격조합인 신한은행 제4차조합에도 땅을 불법전매했다가 91년 2월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이에대해 감사원측은 감사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특감결과가 주목된다. 사고 많고 말도 많지만 여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기가 좋은 조합주택의 특혜의혹은 행정의 일관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관계및 업계의 지적이다. □건영아파트사건 일지 86·4 한신공영,문정동 땅 매입 87·12 한신공영,토지개발공사에 땅 반납 88·4 건영,토개공과 부지매매계약 89·7·11 건설부,전매허용 지침시달 89·7·19 건영,주택조합과 전매계약체결 89·7·29 주택조합 설립인가 89·8·1건 설부,공동사업자 가능 지침 시달 90·9·28 송파구 사업계획 승인 90·11 조합아파트 건설
  • 특혜의혹 문정동땅 주택조합에 전매/건영,차익 1백53억원 남겨

    ◎88년 매입뒤 고도제한 전격 풀려 건설부·서울시·한국토지개발공사가 특혜를 준 것으로 의혹을 사고 있는 건영의 서울 송파구 문정동 주택조합 부지는 86년 한신공영이 당시 고도제한지구때문에 5층이상의 아파트를 짓지 못했으며 건영은 이 땅을 매입한지 1년만에 주택조합측에 팔아 1백53억4천만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22일 토개공과 한신공영측에 따르면 86년4월 한신이 토개공으로부터 62억여원을 주고 문정동72 일대 6천4백여평을 사들였는데 5층까지만 지을 수 있는 고도제한지구에 묶여 당시 국방부측과 협의를 했으나 고도제한을 풀지 못해 87년 12월 토개공에 땅을 반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영은 88년 4월 토개공으로부터 이 땅을 66억1천만여원에 사들인뒤 11월 입지심의과정에서 군당국으로부터 고도제한해제를 얻어냈다. 이에따라 건영은 89년 10월 신한증권등 8개 주택조합에 2백19억5천만원을 받고 땅을 다시 팔아 1년여만에 1백53억4천만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문제가 되고 있는 문정동 땅은 당초 국가안전기획부 소유로 85년 11월 토개공이 사들였으며 이웃에 성남시 둔전동 서울비행장이 위치해 있어 공군기지법에 따른 비행고도구역으로 고도제한을 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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