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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계 왜 ‘아바타’에 민감?

    종교계 왜 ‘아바타’에 민감?

    장면# 1 지난달 바티칸 교황청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영화 ‘아바타’를 두고 “놀랄 만한 기술과 황홀한 이미지는 많지만, 자연 숭배와 연결된 정령주의에 빠져 있다.”고 혹평했다. 바티칸 라디오도 “‘아바타’는 생태학을 21세기 신흥 종교처럼 믿게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장면# 2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 5일 자승 총무원장과 부·국장 스님들을 비롯해 200여 종무원이 ‘아바타’를 단체관람했다. 총무원장 취임 100일 맞이 내부 단결을 위한 자리라고 했지만, “불교적 메시지가 깔려 있다.”는 ‘아바타’가 대중적 사랑을 받자 스님들이 이를 직접 보고 싶어한 것도 한 이유였다. 종교학의 거장 미르치아 엘리아데(1907~1986)는 “영화는 현대의 종교”라고 말했다. 영화를 통해 세속적인 일상의 시공과는 전혀 다른 시공을 체험하며, 현실과의 단절을 느끼는 것이 종교적 행위와 비슷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론의 시비를 떠나 영화라는 예술이 종교와 충돌을 일으킬 만큼 대중적 지지를 얻게 된 건 사실이다. 종교적 성격이 짙은 경우 영화가 종교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06년에 기독교 단체들이 신성을 모독했다며 영화 ‘다빈치 코드’를 거세게 비난한 게 대표적 예다. ●교황청이 혹평한 아바타, 스님들 단체관람 ‘아바타’ 역시 국내에서만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가운데, 그 내용을 두고 종교계가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교황청은 ‘아바타’를 비판했다. 영화 속 ‘나비족’의 사상과 생활이 기독교와 동떨어진 종교 색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불교계는 환영했다. 영화 곳곳에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불교의 불이(不二)나, 하나가 모두와 통한다는 화엄(華嚴) 사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바타’를 단체관람한 조계종 문화부장 효탄 스님은 “인간과 나비족, 자연과의 교감은 불교의 연기적(緣起的) 세계관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이를 확대해석할 수는 없지만 영화 저변에서 불교적 메시지를 많이 발견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색채가 우리에겐 익숙함으로, 서구에서는 이채로움으로 읽혀 영화의 인기를 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민반응은 종교계 위기의식의 발로”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종교계의 반응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런 주제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예술 장르로서 영화의 다양한 상상력을 인정해야지 여기에 일일이 종교의 잣대를 예민하게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적 감동이 목적이 아닌 상업영화를 두고 종교계가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창익 한신대 학술원 연구교수는 “종교계의 반응에는 영화가 종교를 위협할 정도로 문화의 첨단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면서 “매체 환경은 급속하게 변하는데 종교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자, 오히려 영화 같은 발전된 매체를 종교가 경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는 영화가 보여주는 대중적인 신학이 정통신학을 약화시킨다는 위협감에, 불교는 자신들이 최신 기술이나 유행에 뒤처진다는 생각에 대중영화에 급격히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반성 없는 일왕방한 과거사 면죄부 우려”

    [한·일 100년 대기획] “반성 없는 일왕방한 과거사 면죄부 우려”

    하종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는 “일왕의 방한은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방한을 계기로 향후 양국 관계에 있어 카드(협상 우선권)를 일본에 넘겨줄 수도 있다.”며 경계했다. →역대 한·일 관계에서 일왕의 역할이 어떠했나. -해당 시기에 따라 일왕의 정치적 역할이 달랐다. 메이지 일왕은 조선 병합에 관여했고, 다이쇼 일왕은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쇼와 일왕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등 군국주의를 선동했다. →일왕의 시대적 역할이 달랐지만 총체적으로 일본을 군국주의로 내몬 것은 일왕제에 대한 폐해 때문이지 않나. -일왕은 군부를 명령할 권한이 있었다. 내각이 있었지만 육군대신과 해군대신 등 군 통수권자를 일왕이 실제로 지휘했다. 중국과의 전쟁은 군부가 일왕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결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왕은 전쟁 상황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중 모든 보고가 일왕에 보고됐다는 점에서 일왕이 태평양 전쟁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평가가 진실에 가깝다. →전쟁에 대한 책임은 일왕과 군부중에서 누가 더 크나. -군부가 일왕을 앞세우고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 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일본 재벌의 책임은 없나. -일본 재벌은 우익의 속성을 지녔고, 일왕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지탱한 또 다른 세력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없고, 아무런 대가없이 일왕이 방한하는 게 실익이 없다는 차원에서 반대한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日프로야구 ‘최고의 1번 타자’ 후쿠모토 유타카

    日프로야구 ‘최고의 1번 타자’ 후쿠모토 유타카

    ’세기의 도루왕’ 하면 얼마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리키 핸더슨(51)이 금방 떠오른다. 핸더슨은 통산 12번의 도루왕과 역대 최다인 1,406개의 도루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2년에는 무려 130번이나 베이스를 훔치기도 했다. 통산 출루율 .401 가 말해주듯 그는 도루를 할수 있는 필수조건까지 갖춘 위대한 타자였다. 하지만 핸더슨이 빅리그에 등장하기 정확히 10년 전인 1969년, 일본에서는 이미 ‘세기의 도루왕’ 이란 수식어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가 있다. 바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1번타자’ 라고 칭송받는 후쿠모토 유타카(한큐 브레이브스)다. 오사카 출신인 후쿠모토는 아마시절 때만 해도 그렇게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야구선수로서는 너무나 작은 168cm에 불과한 그의 키는 고교졸업 후 프로에 직행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고 결국 사회인 야구팀인 마츠시다 전기팀에서 활약하게 된다. 마츠시다 전기팀에는 당시 아마 최고의 선수로 주목받던 카토 히데지가 있었는데 카토의 플레이를 보러 왔던 한큐 스카웃터의 눈에 들어 1969년 카토와 함께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13년연속 도루왕, 그리고 106개의 도루 여타의 선수들이 그러하듯, 후쿠모토 역시 입단 첫해엔 주로 대타나 대주자로 기용되며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후쿠모토의 진가를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인 1970년 팀의 주전 외야수로 정착한 그는 단숨에 75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등극한다. 1971년 67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2년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후쿠모토는 1972년 일본야구 역사상 길이 남을 대기록을 수립하게 되는데 ‘불멸의 기록’ 이라고 평가받는 한시즌 106개의 도루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122경기에 출전하며 수립한 이 기록이 전무후무한 위대한 기록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후쿠모토 이후 아직까지 한시즌 세자리수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해에 후쿠모토는 106개의 도루 뿐만 아니라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끌었음은 물론 리그 MVP까지 거머쥐며 사상 최초로 도루왕-MVP의 타이틀을 동시에 수상하는 선수가 됐다. 이후 계속해서 도루왕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1977년 7월 6일 난카이 호크스전에서 히로세 요시노리(난카이)가 가지고 있던 일본 통산 최다도루 기록을 넘어섰다. 1982년까지 13년연속(1970~1982) 도루왕을 차지한 후쿠모토는 1983년 55개의 도루를 기록하고도 도루왕을 차지하지 못했는데 그의 도루왕을 저지한 선수는 작년시즌까지 오릭스 감독을 맡았던 오이시 다이지로(당시 킨테츠. 60도루)다. 이해 후쿠모토는 6월 3일(세이부전)에 당시 미국의 루 블록이 가지고 있던 도루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는 통산 939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에까지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세계기록 달성 후 당시 나카소네 일본수상이 국민영예상 및 특례 명구회 입회(통산 2천안타를 기록해야 가입)를 제의했으나 후쿠모토는 모두 거절한다. 후쿠모토는 그해 롯데 오리온스전(9월 1일)에서 통산 2,000 안타(사상 17번째)를 쳐내며 자신의 손으로 명구회 입회 자격을 획득하기도 했다. 후쿠모토가 가지고 있는 불멸의 기록들 후쿠모토는 도루에만 특화된 능력을 발휘했던 선수가 아니다. 그는 1969년 루키시즌과 은퇴년도인 1988년을 제외하고 18년연속 세자리수 안타(최다안타왕 4회)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타격실력을 겸비했음은 물론 통산 43개의 1회 선두타자 홈런기록(43개)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빠른발과 더불어 장타력까지 갖춘 타자였다.(1회초 24개, 1회말 19개) 더불어 한시즌 20개 이상의 2루타만 14회(일본 타이기록)를 기록했으며 일본시리즈 최다 도루(14개)와 올스타전 최다도루(17개) 기록까지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도루가 현시대로 넘어오는 동안 기술적인 발전의 토대는 후쿠모토가 만들어 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도루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투수의 투구패턴과 버릇을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후쿠모토는 자신의 플레이를 직접 비디오 카메라로 담아 시합 후 상대 투수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열정을 높이 산 한큐 구단은 후쿠모토를 위해 구단에서 직접 비디오 분석을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다. 106개의 도루를 달성한 해에 후쿠모토는 칸베 토시오(전 KIA 투수코치)에게 유독 도루 실패를 하는 일이 빈번해 비디오 분석을 한 결과, 투구시 축이 되는 발의 움직임과 견제할때의 모습에서 미세한 차이점을 발견하고 이듬해부터는 편하게 도루를 성공할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후쿠모토는 은퇴할 때(1988년)까지 통산 1,065개 도루(당시까지 세계기록)를 기록하며 일본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중 한명으로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다. 은퇴 후인 1992년, 메이저리그에서 리키 핸더슨이 자신의 기록을 돌파하자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 축하를 해준 일은 너무나 유명하다. 후쿠모토는 오릭스를 거쳐 1999년까지 한신에서 코치생활을 했고 이후 TV 해설자로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아직도 야구와 인연을 끊지 않고 있다. 현역 생활 20년동안 가장 강렬했던 1번타자, 그리고 호타준족의 대명사였던 후쿠모토는 야구에서 발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증명해 준 선구자나 다름없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日프로야구 ‘비운의 홈런왕’ 알렉스 카브레라

    日프로야구 ‘비운의 홈런왕’ 알렉스 카브레라

    2000년대 일본프로야구는 외국인 타자들의 독무대였다. 갈수록 토종거포가 사라지는 일본야구의 추세를 대변하듯 태평양을 건너온 거구의 파워히터들은 일본 각팀들의 전력보강용 중심타선에 배치되며 리그를 호령했다. 작년시즌을 끝으로 일본을 떠난 터피 로즈(전 오릭스)가 홈런에 특화된 타격능력이 돋보였다면 알렉스 카브레라(오릭스)는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한 보기드문 외국인 타자 중 한명이다. 특히 카브레라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장 비거리 홈런기록(공식 175m)을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퍼시픽리그의 돔구장 천장을 여러차례 강타한 경험이 있을만큼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줬다. 50홈런을 치고도 홈런왕을 차지하지 못했던 특이한 경력을 가진 카브레라는 2001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면서부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하지만 카브레라 역시 2001년 로즈가 그러했듯 일본프로야구 역대 한시즌 최다홈런 신기록에 도전했지만 외국인 선수에 대한 차별과 노골적인 홈런방해 작전등으로 인해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 중 한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2000년대 초반 로즈와 카브레라가 펼치는 홈런왕 경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2002년, 말한마디 잘못해서 55호 홈런에 머물러야 했던 카브레라 1964년 오 사다하루가 세웠던 역대 한시즌 최다홈런(55개)기록에 도전했던 로즈(2001년)가 상대팀들의 방해작전으로 실패한지 1년 만인 2002년, 이번에는 카브레라가 다시한번 이 위대한 기록에 도전장을 던졌다. 카브레라는 2001년 애리조나에서 세이부로 이적한 첫해에 49홈런을 쏘아올리며 역대 일본프로야구 첫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시 카브레라는 시즌 개막 후 64경기만에 30홈런(최단 경기 30홈런 기록)을 쳐내며 새로운 리그에 대한 적응 따위는 해당사항이 없음을 과시했다. 이듬해인 2002년엔 시즌초반부터 끝날때까지 압도적인 홈런포 생산능력을 선보이며 오 사다하루의 기록에 다가서는데 2001년 후반기에 다소 부진했던 것을 만회라도 하듯 전혀 다른 포커페이스를 자랑하며 흔들리지 않는 홈런페이스를 보여줬던 것. 당시 카브레라가 50홈런을 기록할때 세이부의 남은 경기수는 무려 22경기였다. 그리고 오 사다하루와 동률인 55호 홈런을 쳐냈을때의 남은 경기수는 5경기. 이때까지만 해도 카브레라의 한시즌 최다홈런 신기록 작성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전년도 로즈의 홈런신기록 방해작전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던 퍼시픽리그 사무국은 각구단 최고 책임자들을 불러 엄중 경고, 페어플레이를 주문하며 재발방지를 약속 받았기 때문이다. 카브레라가 홈런을 쳐내는데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5경기를 남겨두고 55호 홈런을 쳐낸 카브레라는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결국 최다홈런 타이기록에 머물러야 했다. 시즌막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6홈런을 반드시 쳐서 오 사다하루의 기록을 깨고 싶다.” 고 밝힌 카브레라의 말실수는 이게 전부였다. 자신들의 영웅이 가지고 있는 기록을 다른 외국인 타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견제는 결국 히트 바이 피치드볼로 돌아왔다. 카브레라는 치바 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번타자로 타석에 들어섰지만 안타 하나만을 기록했을 뿐, 급해진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며 땅을 쳐야했다. 당시 카브레라의 홈런 신기록 달성 여부는 센트럴리그의 마쓰이 히데키(당시 요미우리)에 가려 빛을 잃은 케이스나 다름이 없었다. 일본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냈던 마쓰이가 2002년에 쏘아올린 홈런갯수가 50개다. 마쓰이의 50홈런 달성여부는 센트럴리그에선 1985년 랜디 바스(한신), 요미우리 팀으로는 1977년 오 사다하루에 이은 첫번째 기록이라 모든 언론의 관심은 마쓰이에게 가있었다. 정교함과 장타력을 모두 겸비한 카브레라 그러나… 카브레라는 분명 지금까지 일본야구에 뛰어든 여타 타자들과는 다른 스타일의 선수다. 세이부 시절 7년동안(2001-2007) 상대투수의 공에 오른쪽 손목 골절상을 당해 전반기를 날려버린 2004년(후반기에만 25홈런)을 제외하고 매시즌 규정타석을 채웠다. 또한 다른 외국인 슬러거들이 많은 홈런을 생산하는 대신 다소 정교함이 떨어졌던 것에 비해 카브레라는 2007년을 제외하고 매시즌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또한 오릭스로 이적한 2008년에는 3할(.315)-30홈런(36개)-100타점(104)의 성적을 남기며 한물 갔다는 평가를 돌려놓기도 했다. 이해에 카브레라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단기간에 300홈런(934경기)을 달성한 타자가 됐다. 작년엔 시즌 초반 상대타자가 친 타구에 골절상을 당해 65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하며 타율 .314, 홈런13개, 타점39에 머물며 일본진출 후 두번째로 규정타석에 도달하지 못했다. 카브레라는 상황에 따라 팀배팅을 할 줄 알며 바깥쪽 공을 무리하게 잡아당기지 않고 밀어쳐서 적시타를 때리는 능력도 뛰어난 선수다. 하지만 이러한 카브레라의 활약 이면에는 ‘약물 의혹’이 뒤따르고 있다. 무섭게 홈런을 뽑아낼때의 몸을 보면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발달해 있는걸 볼수 있었는데 2007년말 ‘미첼 보고서’에도 카브레라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브레라는 세이부에서 오릭스로 이적한 2008년 계약당시, 만약에 약물양성반응이 적발될시엔 계약을 파기한다는 조건(계약금 포함 연봉 2억5천만엔)의 단서를 달았으나 두번의 시즌을 치른 지금까지 양성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카브레라는 일본통산 타율 .308 홈런 322개, 타점 829의 성적을 기록중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메트로플러스] 화성시·한신대 무료클리닉 인기

    경기 화성시와 한신대학교가 2008년부터 서신보건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료건강클리닉이 지난 한 해 6000여명이 이용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클리닉에는 3차원 영상 척추 측정장비와 낙상위험도(신체밸런스) 측정장비, 신체 성분조성 측정기기 등 첨단장비를 갖추고 전문가 상담을 통해 개인별 운동법을 처방해 주고 있다. 또 한신대가 자체개발한 근골격계 질환 운동프로그램과 생애주기별 운동 프로그램을 접목한 6개 분야 24개 운동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드문 농번기에는 ‘어린이 척추 이상체크’와 ‘척추 튼튼 프로그램’, ‘축구교실’ 등 방과 후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과 최첨단 의료 기기로 진단 및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참여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한신대는 수원시와도 연계, 지난해 9월 화성시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영통구보건소에 도입했고, 앞서 지난해 5월부터는 오산시 건강 가정지원 센터와 함께 ‘건강가정 상담 교육 문화사업’도 펼치고 있다.
  • 뒤안길로 사라지는 日최고용병 터피 로즈

    뒤안길로 사라지는 日최고용병 터피 로즈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평가받던 터피 로즈(전 오릭스)가 전력외 통보를 받으며 사실상 일본무대를 떠나게 됐다. 작년시즌 부상에 시달리며 겨우 84경기밖에 뛰지 못한 로즈는 올해로 만 42살이 되는 그의 나이와 만년하위권인 오릭스가 처해 있는 개혁의 바람이 방출수순을 밟게한 원인이었다. 메이저리그의 위대한 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시애틀)와 같은 동향출신으로도 유명했던 로즈는 일본에서 활약하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로 인해 각종 신기록 달성실패를 비롯, 파란만장했던 13년의 선수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996년 보스턴에서 킨테츠로 이적하며 극강의 파워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로즈가 일본야구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역대 한시즌 최다홈런 타이기록 보유자이자 최다 퇴장선수에게도 그 이름을 올리고 있는 로즈가 일본의 배타성을 뚫고 오릭스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발자취를 살펴보자. 2001년. 로즈의 홈런신기록 달성 실패가 낳은 일본야구의 추태 로즈가 일본프로야구 무대로 뛰어든 후 첫 홈런왕에 등극한 해가 1999년(40개)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홈런생산능력이 폭발한 것은 2001년이다. 당시 로즈는 9월 24일 세이부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현 보스턴)으로부터 시즌 55호 홈런을 쏘아올리며 1964년 오 사다하루(요미우리)가 가지고 있던 한시즌 최다홈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남은 경기에서 홈런 하나만 더 추가하면 새로운 기록달성은 물론, 1985년 외국인 선수 랜디 바스(한신, 홈런 54)가 차별로 인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던 아쉬움에 대한 보상을 만끽할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로즈는 노골적인 심판판정과 상대투수들의 정면승부 회피로 인해 끝끝내 56호 홈런을 쏘아올리지 못하며 타이기록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킨테츠가 마지막으로 남은 경기가 공교롭게도 오 사다하루가 감독으로 있던 다이에(현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이었다. 오 사다하루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즈가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길 바란다는 멘트를 남겼지만 와카나 요시하루 배터리코치는 경기전 선수들에게 정면승부를 하지 말것을 주문했다. 특히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9월 30일 경기에서 로즈는 4번의 타석 기회를 가졌지만 상대투수가 던진 18개의 공 중 스트라이크는 단 2개에 불과할 정도로 철저히 그를 봉쇄했다. 일본 언론 역시 로즈가 55호 홈런을 터뜨린 이후부터 ‘오 사다하루 기록지킴이’의 선봉에 섰을 정도로 그 배타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 아나운서는 생방송 도중 “우리와 피부색과 피도 다른 선수에게 오 사다하루 감독의 기록이 깨지지 않길 바란다.”라며 적대적인 멘트를 날렸을 정도다. 결국 로즈는 다이에와의 3연전 동안 단 한번도 배트를 휘두르지 못하며 어쩌면 다시는 도전하기 힘든 위대한 기록에 대한 다가섬을 끝내야 했다. 훗날 요미우리에서도 활약한바 있는 로즈는 2005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포수 머리위를 지나 백네트까지 날아간 공이였는데도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해버렸다.”며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가 살아남으려면 실력외적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우회적인 표현과 더불어 그때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듬해인 2002년 알렉스 카브레라(당시 세이부)가 다시한번 오 사다하루의 기록에 도전했지만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시즌 막판 엄청난 히트 바이 피치드 볼을 얻어 맞고 결국 55홈런에 그치고 만다. 터피 로즈가 가지고 있는 불멸의 기록들 로즈는 2006년 메이저리그 신시네티 레즈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잠시 일본을 떠난 것을 제외하고 13년을 일본에서 활약했다. 로즈는 역대 외국인 선수 최초의 450홈런(2009년) 달성과 통산 최다안타(1,792개), 최다경기 출전(1,674), 역대 외국인 선수 최다 홈런왕(4차례) 타이틀 획득, 오치아이 히로미쓰(현 주니치 감독)에 이어 사상 2번째로 양리그에서 연속시즌 홈런왕 타이틀 홀더(2003-오사카 킨테츠,2004-요미우리), 외국인 선수 통산 최다타점(1,269), 외국인 선수 최다 2루타(311개), 외국인 선수로서 40대에 첫 40홈런 달성(2008년), 키요하라 카즈히로(오릭스에서 은퇴)를 제치고 가장 많은 투수(224명)에게 홈런을 쳐낸 타자, 역대 최다 퇴장기록(14회)까지 도루를 제외한 타격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좌타자인 로즈는 공을 쪼개 버릴정도로 무시무시한 파워와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손목힘으로만 타구를 걷어올려 홈런을 만들어낼 정도로 압도적인 홈런생산 능력을 보유한 선수다. 야구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승부근성에 있어서 만큼은 지기를 싫어했으며 특히 심판의 노골적인 볼판정에 항의를 하다 퇴장을 당한 사례가 빈번할 정도로 차별에 맞서 지금까지 일본야구를 호령했다. 이미 로즈는 오릭스 구단으로부터 퇴출을 통보받았지만 그의 기량을 감안할때 이대로 버리기엔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있는 선수다. 작년시즌 84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한 것은 호시노 토모키(세이부)의 투구에 오른쪽 손가락을 강타당해 골절상을 당한 것이 컸는데 그럼에도 타율 .308과 22홈런을 쏘아올릴 정도로 부상만 없다면 활용가치가 아직은 충분하다. 로즈는 일본에서 통산 타율 .286과 홈런464개의 성적을 남겼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문화계 블로그] 자비·생명나눔의 불교 장기기증 왜 미미할까

    [문화계 블로그] 자비·생명나눔의 불교 장기기증 왜 미미할까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 기증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나눔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장기 기증 급증 속에서도 종교 간 온도차는 상당히 큰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교리와 실제 기증자 수의 불일치가 두드러진다. 교리상 장기 기증과 가장 가까운 불교는 정작 기증에 소극적이고, 거부감이 있을 법한 기독교는 오히려 기증 서약이 가장 많다. 왜일까. ●장기기증 등록자 80% 개신교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금껏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장기 기증 등록을 희망한 종교 신자 중 80%는 개신교도로 23만 4000여명에 이르렀다. 반면 불교신자는 11%, 천주교신자는 9%가 고작이었다. 천주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자체 장기 기증 지원활동을 벌이는데 지난 한 해 3만여명이 새로 서약을 했다. 불교 역시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있지만 지난해 서약자는 2020명에 그쳤다. 많은 신자 수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장기 기증이 턱없이 미미한 이유는 뭘까. 스님들은 “교리로 보면 사실 불교가 장기 기증을 가장 많이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을 그린 전생담(前生譚)만 봐도 중생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이야기가 수없이 나온다. 얼마전 장기 기증을 서약한 혜국(전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스님은 “스님들의 몸은 누군가에게서 빌려와 쓰는 것으로 잘 돌려줘야 한다.”면서 “수계 때 의무적으로 기증 서약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교식 생각 지닌 불교신자 많아 그럼에도 신자들의 참여는 뜨뜻미지근하다. 실무자들은 ‘유교와의 습합(習合·사상이 절충됨)’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오랜 기간 습합 과정을 거친 한국 불교의 특성상 신자 중에는 불교식이 아닌 유교식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면(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스님은 “불교 교리로 보면 다른 생명을 위한 자비의 마음으로 기꺼이 장기 기증을 해야 하겠지만, 부모가 준 신체를 훼손할 수 없다는 유교식 발상을 가진 신자들이 종단에 많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교단 소속감 부족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김윤성 한신대 종교학과 교수는 “조직 특성상 불교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 체계적인 계몽과 활동이 쉽지 않다.”며 “교리상으로는 오히려 ‘육체 부활 사상’을 가진 기독교가 거부감을 가져야 하겠지만 기독교는 이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해 장기 기증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고 풀이했다. 다른 종교에 비해 홍보가 부족하다는 실무적 문제점도 지적된다. 이에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올해 혜국 스님을 시작으로 불교계 명사들의 장기 기증 서약을 받는 ‘장기기증 희망등록 릴레이 캠페인’을 벌인다. 이를 통해 장기 기증에 대한 안팎 홍보를 활성화하고, 불교신자들의 기증 참여도 활성화시킨다는 복안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인사]

    ■국무총리실 ◇고위공무원 승진 △정책분석평가실 정책분석관 임찬우 ■교육과학기술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 추진지원단장 편경범◇부이사관△기획담당관 최은옥△교육과학기술부 류혜숙 이동호◇서기관△과학인재육성과장 홍민식△인재정책기획〃 김문택△학교정책분석〃 김환식△평생학습정책〃 김재금△행정관리담당관 노경원△사교육대책팀장 한형주△교육과학기술부 이경희 설세훈 이상연(한국학중앙연구원)◇기술서기관△인재정책실 김진우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콘텐츠기획관 이종수 ■환경부 ◇과장급 전보 △국립생태원건립추진기획단 전시연구팀장 김철우△영산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병철<과장>△환경보건정책 백운석△기후변화협력 황석태△수도정책 조병옥△토양지하수 정은해△자연정책 이희철△자원순환정책 박미자 ■경찰청 ◇총경 승진△본청 이훈 김학관 전병현 유재철 남구준 김관태 한형우 김희규 최종문 윤명성 박기태 김상철 이원희 최재천 윤성혜△서울경찰청 김종보 유진규 허찬 이문수 김갑식 손장목 이충호 홍완선 윤후의 연영흠 김영배 정병권 곽생근 이상률 권두섭 임병호 홍순원△경기〃 고기철 고창경 이명균 안기남 김근수△인천〃 조정필 안영수△부산〃 김성수 김형철 고영일 신영대 박재구△울산〃 유윤근△대전〃 김재훈 주현종△대구〃 정동식 박희룡 이근영△광주〃 강칠원 권영만△충북〃 신희웅△충남〃 이동기 박희용△경북〃 김광수 정흥남△경남〃 유재응 김한수 최호윤△전북〃 강윤경 강황수△전남〃 이유진 김학남△강원〃 김택근 이철민△제주〃 김학철△서울 영등포서 엄영민△〃 남대문서 박창호△〃 송파서 김성완△〃 중랑서 김순정△부산 남부서 김성훈△인천 중부서 하용철△경찰교육원 노재호 ■특허청 ◇일반직 고위공무원 승진 △특허심판원 심판장 조은영 천세창 안대진◇전보 <부이사관>△인사과장 권혁중<기술서기관>△산업재산정책과 김갑병△국제협력과 윤세영△특허심사지원과 고준석 ■국가핵융합연구소 △WCI핵융합이론센터 부센터장 김진용<융복합플라즈마연구센터>△센터장 유석재△NAP사업팀장 이봉주△사업관리실장 조성윤<행정관리부>△부장 조연수△총무회계팀장 정병국△인력경영〃 김준배△조달계약〃 이인노<건설관리부>△부장 김준겸△시설·보안관리팀장 김남규△건설사업〃 황인성<정책전략부>△연구정책팀장 장한수△경영전략〃 송승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부장 <융합기술연구부문>△RFID·USN 표철식△로봇·인지시스템 손주찬△그린컴퓨팅 문경덕△자동차·조선IT융합 임동선<소프트웨어연구부문>△임베디드소프트웨어 박승민△차세대컴퓨팅 한동원<융합부품소재연구부문>△시스템반도체 정희범△차세대태양광 오수영<방송통신융합연구부문>△방통융합미디어 김진웅△위성무선융합 안도섭<인터넷연구부문>△무선시스템 권동승△미래네트워크 이순석<창의연구본부>△융합부품소재미래기술 박성수△방송통신융합미래기술 홍진우△인터넷미래기술 함진호<기술전략연구본부>△기술경제 한성수△서비스정책 이지형◇실장 <창의경영기획본부>△전략기획 김종서△정보시스템센터 정태수<사업화본부>△사업화전략 박태웅△지식재산경영 신정혁△융합기술생산센터 정하재<선진경영관리본부>△경영관리 조철호△인재경영 황춘식◇사업지원실장△융합기술연구부문 이진식△소프트웨어연구부문 황찬수△융합부품소재연구부문 손재현△방송통신융합연구부문 한강희△인터넷연구부문 배한균 ■가톨릭중앙의료원 △가톨릭중앙의료원 및 서울성모병원 홍보팀장 남혜경 ■한국남동발전 ◇승진 △영흥화력본부 발전기술처장 유성대◇전보△삼천포화력본부 발전기술처장 김성래△〃 발전운영실장 채길석△영흥화력본부 건설처장 김명현△〃 대외협력실장 황익주△영동화력발전처 발전운영〃 한신원 ■미래에셋증권 ◇전보 △기획팀장 성필규◇직책임면△퇴직연금기획팀장 이종태△퇴직연금고객서비스〃 오일택 ■하나대투증권 ◇임원 선임 <상무>△자본시장본부 ECM실 이윤형◇부서장 전보 <실장>△PI 정용만△전략지원 이은용<팀장>△인수금융 안병래△Global Business 조성창△PI 1팀 김학우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점프 코리아 2010-3대 스포츠이벤트] ‘2010마법’ 양朴에 건다

    [점프 코리아 2010-3대 스포츠이벤트] ‘2010마법’ 양朴에 건다

    이제 대한민국 축구에선 ‘양박’ 하면 통한다. ‘산소 탱크’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박주영(25·AS모나코)을 일컫는다는 점이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그만큼 둘의 활약이 중요하다. 2008년 초부터 태극사단을 지휘한 허정무(54)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에게 줄곧 믿음을 줬다. 82차례 A매치에서 11골을 뽑은 캡틴 박지성과, 38차례 뛰며 13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한국 전력의 절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허정무호에서 박지성은 5골, 박주영은 8골을 넣으며 팀을 이끌었다. 2008년 1월30일 칠레와의 친선경기(0-1 패)를 시작으로 모두 30차례 A매치를 치르며 터뜨린 43골 가운데 30%를 넘는다. 영양가를 따지면 값어치는 껑충 뛴다. 이번 월드컵 예선 14경기에서 박지성은 가장 많은 5골을, 박주영은 4골로 그 뒤를 따랐다. 남아공행 티켓을 확정한 지난해 6월17일 쾌거는 박지성의 발끝 덕분이었다. ‘사막의 아들(팀 멜리)’로 불리는 이란을 맞아 마수드 쇼자에이에게 골을 내주며 끌려가던 터였다. 후반 36분 박지성은 페널티 지역 바깥 왼쪽에서 단독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따돌린 뒤 왼발 슛으로 골을 낚았다. 한국은 자·타칭 아시아 맹주였지만 중동국 앞에만 서면 꼬리를 내리곤 했다. 이런 징크스를 깨고 무패(7승7무)로 본선 티켓을 따내는 데 박지성이 앞장선 것. 그는 최대 고비였던 2월11일 테헤란 원정에서도 0-1로 뒤진 후반 36분 헤딩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오른발, 왼발, 머리를 가리지 않고 위기 때마다 한방씩 터뜨렸고 국민들은 “역시 박지성”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주영 또한 중동 모래바람을 잠재우는 데 한몫 톡톡히 해냈다. 2007년 11월19일이었다. 19년간 한 번도 꺾지 못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리야드에서 맞선 한국은 또 징크스를 걱정하고 있었다. 박주영은 1-0으로 앞선 후반 45분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로 텃세를 부리는 것으로 유명한 사우디의 기세를 완전히 눌렀다. 허 감독은 ‘양박’에게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다. 한때 부상 여파로 맨유에서 박지성의 대표팀 차출에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여전히 불러들였다. 박주영도 마찬가지였다. 허 감독은 그의 플레이를 볼 때마다 “프랑스 리그에서 경험을 쌓으며 자신만의 감각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며 반겼다. 월드컵 본선처럼 큰 무대에 강한 ‘양박’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맞은 한국에 더없이 소중한 보배로 떠올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한국(당시 FIFA랭킹 56위)은 토고(48위)와만 해볼 만했을 뿐 프랑스(4위), 스위스(13위)엔 언감생심이었다. 16강은 1승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엔 아르헨티나(현재 8위), 그리스(12위), 나이지리아(22위) 모두 만만찮지만, 그렇다고 꼼짝도 못할 상대는 아니다. 그리스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16년만에 두 번째로 본선에 나선, 이렇다 할 경험이 없는 국가이다. 나이지리아 역시 미드필더인 미켈 존 오비(22·첼시) 등 빅리거 7~8명을 거느렸다고는 하지만, 4년간 더 성장한 박지성과 박주영도 밀릴 게 없다. 박지성은 새해를 맞아 “4년 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 동점골을 뽑았을 때처럼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월드컵 G조 리그에서 벤치워머로 머물다 스위스를 맞아 후반 25분만 뛴 박주영도 “반드시 주전경쟁을 뚫고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겠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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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 ◇승진 <부이사관>△재정기획과장 양철수<서기관>△재정기획과 최병협△총무과 유성훈△심판사무2과 윤해정◇과장 전보△총무과장 황병일△인사관리〃 김정희△심판자료〃 김성수△법무감사〃 장유식<파견>△국방대 김정성△통일교육원 이규현 ■감사원 ◇고위감사공무원 승진△공보관 왕정홍△특별조사국 감찰정보기획관 한현철△기획관리실 기획심의관 강경원△심의실 심사심의관 김병석△감사원(파견예정) 조규호 황상길 김상곤◇고위감사공무원 전보△감찰관 정태문[국장]△재정·경제감사 윤영일△금융기금감사 송기국△사회·문화감사 염차배△행정안보감사 박시종△특별조사 김영호[실장]△원장비서 최재해△심의 이종철[단장]△전략과제감사 김상윤△감사청구조사국 지역민원·조사 김영진[기획관]△행정안보감사국 국방감사 김진해△자치행정감사국 자치감사 김정하<감사원>△파견예정 이욱 신언성 김충환◇부이사관 승진 [과장]△재정경제감사국 제5과 남궁기정△금융기금감사국 제1과 유희상△〃 제2과 이수성△〃 제3과 원성희△공공기관감사국 제1과 박찬석△사회문화감사국 제4과 진유조△행정안보감사국 제1과 장인출<감사교육원>△행정과장 황장호△감사교육〃 전광춘△교수 이효선<감사원>△파견예정 최기정△파견 주승노◇과장 신규보임 [과장]△건설환경감사국 제4과 유인재△전략과제감사단 제2과 이영웅△특별조사국 감찰정보과 박재신△〃 기동감찰과 유병호△감사청구조사국 지역민원조사과 조웅길[담당관]△기획관리실 결산 이상욱△〃 성과관리 장난주△공보관실 공보 이영△심의실 법무 윤승기△〃 조정 정항면△〃 심사2 백복수△〃 재심의 정수영△감찰관실 감찰 최달영<감사연구원>△연구1팀장 최승기<감사원>△파견예정 김현국 이관직△파견 조성은 이영하◇과장 전보 [과장]△금융기금감사국 제4과 최성호△건설환경감사국 제3과 최대선△전략과제감사단 제1과 김경호<재정경제감사국>△제1과 이익형△제2과 이병률△제3과 권형중△제4과 이해인△제6과 정상복<공공기관감사국>△제3과 오종석△제4과 문린곤<사회문화감사국>△제2과 정정수△제3과 최채우△제5과 김기영<행정안보감사국>△제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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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전무>△한국신용평가정보 남욱△나이스알앤씨 이상호△나이스채권평가 김종현△KIS정보통신 박세진<상무>△한국신용정보 홍춘기△나이스정보통신 이은대△나이스디앤비 조성태△나이스채권평가 신동훈△에스이티아이 김용수<상무보>△한국신용평가정보 이호제 박현섭 송경수△한국신용정보 김명수△한신정평가 김승훈△나이스정보통신 황우양△나이스디앤비 강용구◇전보△한국전자금융 사장 박상태△〃 상무 노영훈△한국신용평가정보 상무보 황윤경 ■동국제강그룹 ◇승진 <동국제강>△전무 신정환 김두호△이사 서영태 차영덕 고광덕 엄세용 제국환 이삼익<유니온스틸>△상무 노양준△이사 최종철 김갑태<국제종합기계>△대표이사 사장 유제선△이사 홍재덕 윤기호△이사대우 성장용△대표이사 부사장 변명섭△상무 김광선<인터지스>△대표이사 사장 정표화 ■노루그룹 ◇승진 <디피아이홀딩스>△전무 송윤빈 이주길△상무 이상철<노루페인트>△전무 장형석△이사 정성헌 우경현 이경재 이명희<노루케미칼>△대표이사 전무 강석규△전무 백성빈△상무 신동훈 ■미래에셋그룹 <미래에셋증권> ◇승진 [상무]△경영서비스부문 대표 김신△HR본부장 박형규△서울사업〃 이만희△WM센터장 강길환△자산운용컨설팅본부장 이재호△기업금융2〃 조효승[상무보]△경영지원본부장 황유원△기업금융1〃 박희재△프로젝트금융2〃 안종균△퇴직연금C&A〃 맹민재△마케팅〃 이종필△북경사무소장 정이훈[이사]△전략상품추진본부장 강효식△대전지점장 임인수△수원〃 조봉식△영남사업본부 퇴직연금컨설팅1팀장 박기관△채권본부 채권영업팀장 송창섭△프로젝트금융1본부 PF2팀장 전태욱△프로젝트금융2본부 PF2팀장 김찬일△퇴직연금컨설팅2부문 1본부 1팀장 정중근△〃 1본부 2팀장 이남곤△IT사업부 IT기획팀장 김우정△IT개발본부 정보관리팀장 한원돈<미래에셋자산운용> ◇승진 [상무]△연금마케팅본부장 장부연△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 CEO 이덕청[이사]△운용기획본부장 이정훈△On-Line마케팅〃 구필희△리테일2〃 성태경△홍보실장 임명재△IT본부장 김완규△미래에셋자산운용 브라질 CIO 김영환◇승격△리스크/컴플라이언스부문 CRO 박진수<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승진 [상무보]△컴플라이언스2본부장 홍성기[이사]△마케팅2본부장 류경식△주식운용〃 이태윤<미래에셋캐피탈> ◇승진△이사 서래호<브랜드무브> ◇승진 [이사]△광고팀 국장 김은령 ■대우건설 ◇승진 △전무 구임식 김경수 남기혁 강우신△상무 강승구 김근영 김남철 성현주 소경용 신희식 윤기종 이광윤 이찬빈 임순주 최규명 하익환 허경필△상무보 김창환 민경복 박종혁 서복남 서영근 신익수 심우근 오진균 윤완섭 이정한 정익권 정재학 정훈 조재덕◇보직 <전무>△기술연구원장 조성태[본부장]△플랜트사업 조응수△토목사업 구임식△국내영업 김경수△경영지원 남기혁△해외영업 강우신 ■한미약품 <한미약품>△총괄대표이사 사장 임선민△R&D본부 〃 이관순△R&D본부 상무이사 김맹섭(연구소장 겸임) 권세창(부소장)△〃 연구위원 김영훈△경영지원본부 부사장 한창희△〃 상무이사 고민섭 임종호△공장·생산본부 전무이사 우종수△〃 이사대우 최성철 <한미IT>△상무이사 정정희 ■LIG투자증권 ◇보임 △법인사업부장 서영석△기획관리부문장 박용희△경영기획팀장 박종인△인사총무〃 김진호△리스크관리〃 박장석 ■하이마트 ◇승진 <하이마트>△부사장 박철균 김효주△전무 한병희△상무 장대종 이민균△상무보 한동일 최영석<하이마트쇼핑몰>△부사장 박무열<하이마트로지텍>△전무 이병기△상무 선현석 ■정·식품 ◇선임 △감사 곽호병◇승진 [전무]△총괄 손헌수[상무]△청주공장장 이순구[이사대우]△청주공장 관리부문 김희준<자연과사람들> ◇승진 [전무]△담양공장장 김석민 ■한일시멘트그룹 ◇승진 <한일시멘트>△부사장 원인상△전무 유황찬 곽의영△상무 양승권 최덕근 전근식<한일산업>△전무 이용우△상무 이덕우△상무보 선우석훈<한일건설>△전무 경지선△상무 허순도 이동열<오늘과내일>△전무 박지훈 최항기△상무 전효식 ■순천향대병원 △서울병원장 신병준△천안〃 이문수△부천〃 홍대식△구미〃 오천환 ■청호나이스 △대표이사 이석호△상무이사 최병준△이사 김대영 박재익<마이크로필터>△대표이사 이기형△대표이사 고상영△대표이사 김완영 ■그랜드코리아레저 ◇승진 <1급>△기획조정실장 박황숙△부산롯데점장 김형직◇전보 <1급>△교육팀 자문위원 홍은미△모니터실장 송덕종△감사〃 조용담<2급>△홍보팀장 김도곤△마케팅기획〃 김홍래△밀레니엄서울힐튼점장 민춘기
  • 오바마 걸?…이번엔 ‘류시앙 걸’ 中서 인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가 유명해진 일명 ‘오바마 걸’에 이어 이번에는 육상 허들선수 류시앙과 이야기를 나눈 미모의 자원봉사자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육상의 자존심인 류시앙은 지난 11일(한국시간) 홍콩 장쥔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제5회 동아시안대회 110m 허들 부분에 출전했다. 국민적인 인기를 끄는 스포츠 스타인만큼 중국인들의 눈은 류시앙을 향했다. 그러나 류시앙이 몸을 푸는 동안 중국 네티즌들의 시선은 한 여성에게 집중됐다. 검은색 옷을 입고 류시앙 바로 뒤에 대기한 자원봉사자가 그 주인공. 미모의 여성을 본 많은 네티즌들은 ‘오바마 걸을 잇는 일반인 스타’임을 직감했다. 게다가 갈아입다가 유니폼이 걸린 류시앙에게 다가가 이 여성이 “도와줄까요.”라고 수줍게 묻는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순수한 매력이 아름다운 여성”, “얼굴도, 마음도 예쁜 자원봉사자”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 직후 이 여성은 단번에 인터넷 스타로 뛰어올랐다. 일부 네티즌이 “류시앙도 이 여성의 매력에 반한 것 같다.”고 근거 없는 소문을 내자 관심은 더욱 치솟았다. 중국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밝혀진 이 여성은 황 치잉이란 17세 여고생. 지난해 홍콩 수학경시대회에서 우승한 재원이란 사실도 추가로 전해졌다. 그녀는 현지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류시앙이 옷을 갈아입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도와준 것일 뿐”이라면서 “평범한 학생이라서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우한신보 등은 지난달 16일 열린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인터넷 스타로 도약한 대학원생 왕즈페이(21)이 연예인이 되려고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다시 고개 든 지구 종말론

    다시 고개 든 지구 종말론

    최근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영화 ‘2012’의 흥행 성공을 계기로 종말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대 마야인의 예언에 따라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영화의 핵심 내용은 출판물과 방송·인터넷 등을 통해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2012년을 기점으로 20년 전인 1992년에도 한 교회의 휴거(携擧)설로 사회가 떠들썩한 적 있다. 거기다 세기 말 분위기를 등에 업은 각종 예언까지 가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종말론도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왜 끊임없이 종말론이 회자되는 것일까. 이렇듯 종말론이 대중 사이로 떠도는 현실을 종교계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천재지변에 대한 확장적 상상” 지적 종교계에 따르면 세상을 순환적인 시각으로 보는 힌두교나 민족종교에도 어느 정도 종말의 요소는 있다. 하지만 종말이 주요 교리로 등장하는 것은 기독교 전통. 기독교에서 종말의 모습은 요한묵시록에 잘 표현돼 있다. 묵시록에 따르면 세계가 멸망하는 날에는 일곱 개 봉인이 뜯어지고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며 온갖 재앙이 닥친다. 하지만 실제 기독교에서는 종말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차동엽 미래사목연구소 신부는 “기독교의 종말은 제한돼 있던 우주 질서가 새로운 차원으로 완성되는 때”라면서 “그 순간의 장면은 선인과 악인 간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기독교에서의 종말은 하느님의 뜻이 완성되는 시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세간에 떠도는 종말론은 고통의 장면만을 흥미에 따라 확대한다고 차 신부는 지적했다. 그는 이를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낳은 파괴 욕망” 또는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등 천재지변에 대한 확장적 상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교리에 따른 올바른 종말 이해는 “그 날에 깨어 있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도덕적 자기 반성 vs 포퓰리즘 불교계에서는 종말론 유행 현상을 “도덕성 파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이해한다. 불교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리에 종말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순환적인 시간론에서도 새로 한 시대가 시작될 때는 재앙의 순간이 있다고 본다. 이에 빗대어 불교에서는 지구의 멸망 장면을 일종의 방편법으로 이해한다. 조계종 불학연구소 원철 스님은 종말론 유행이 지구 멸망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현재 우리 삶에 충실해지자는 반성” 또는 “지적 문명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위기의식”이라고 분석했다. 종교계가 아니라 종교학자가 보는 눈은 또 다르다. 김윤성 한신대 교수는 최근의 종말론 유행은 일종의 ‘놀이’ 성격이 짙다고 했다. 그는 “종말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지만 각 교단에서 주장하는 종말에 대한 반응은 다 다르다.”면서 “2000년 이전의 종말론은 세기 말과 얽혀 보편적 전환의식을 유발했지만, 최근에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김 교수는 “종교가 현대사회에서 필수가 아닌 일종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면서 그 교리조차도 대중적 소비문화의 대상이 됐다.”면서 “종말론 유행은 현대사회의 종교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극단적 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서울광장] 인사동다워야 할 이유/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인사동다워야 할 이유/김성호 논설위원

    뉴욕 센트럴파크와 42번가 브로드웨이, 파리 샹젤리제와 몽마르트르, 베이징 톈안먼광장과 왕푸징(王府井), 도쿄 신주쿠(新宿)와 하라주쿠(原宿)….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을 찾는 이라면 한 번쯤 보고 싶어 하고 발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리 명소들이다. 이렇게 보란듯이 이름을 알려 사람들이 찾아들게 할 만한 한국의 거리가 있다면 어떤 곳일까. 한국의 ‘문화지구 1호’ 서울 인사동이라면 그 반열에 올릴 수 있을까. 인총이 몰리는 명소라면 이름에 걸맞은 가치들이 있을 터.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인사동의 가치는 한국문화의 전통과 숨결일 것이다. 인사동이 어떤 땅인가. 조선 정궐에 가깝다 하여 내로라하는 세도가며 명인들이 자리잡아 살았고 그에 따른 문화와 풍습들이 옹골차게 배어든 곳이다. 조선시대 중부 관인방의 인(仁)자와 지명인 대사동의 사(寺)자를 엮어 이름 지어진 인사동이다. 오래도록 탑동, 사동, 탑사동이란 이름이 통용된 건 원각사에 딸린 석탑이 유명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비슷한 이름의 상호며 건물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이름과 명성은 사람과 사건을 불러오게 마련. 조선조 최대의 철학가 이이, ‘사동대감’이라 불렸던 문신 김병학은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장안의 부호와 총독부 관리들이 즐겨 찾았고 3·1독립선언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교가 개교한 승동교회는 일제치하 전국으로 번진 학생운동의 발상지였으니 인사동은 분명 보통 땅은 아니다. 일제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골동품 상가는 아무래도 인사동 정체성의 으뜸이다. 살아 있는 노상박물관의 별명답게 200여개의 골동품, 전통공예상이 즐비했고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한국미술협회가 이곳에서 태어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수도 한복판에 이만큼 한국의 가치를 담았던 역사적 공간이 또 있을까마는 인사동의 모습은 영 딴판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 5000명, 한 해 170만명이 방문한다니 연간 외국인 관광객의 25%가 찾는 셈이다. 이같은 숫자의 성황 속에 가치 변질이 급속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2002년 기준으로 골동품점은 33%, 필방·지업사는 21%가 준 데 비해 술집은 80%, 음식점은 35%가 늘어났다고 한다. 먹거리, 잡상품을 팔려는 호객이며 목소리의 홍수는 여느 유흥가와 다르지 않다. 인사동 변질의 아픔은 10년 전 이미 겪은 바여서 안타까움이 더 크다. 인사동길 복판, 이른바 ‘전통 12가게’가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이 보존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종로구가 호응했고 서울시가 문예진흥법에 따라 2002년 지정한 게 문화지구이다. 빼어난 전통과 가치의 자랑이 아닌, 홍수처럼 밀려드는 싸구려 상점과 먹거리 장사들을 제어하기 위한 태생의 아픔을 갖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인사동의 값싼 상업화는 악의 개선이 아닌, 전철의 답습으로밖에 볼 수 없다. 가치의 상실은 현실의 쇠퇴와 몰락을 불러옴을 역사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외국인이 더 이상 찾을 가치가 없는, 이름뿐인 인사동의 함몰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한국 ‘문화지구 1호’ 명예(?)의 손상이고 그것은 곧 한국전통의 큰 훼손이다. 우리가 스스로 지켜내지 못할 소중한 가치를 그 어느 외국인이 찾아낼까. 다행히 서울시는 최근 인사동 새 정비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문화지구 1호의 박탈을 보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부고]

    ●김명현(전 하이트맥주 대표이사 부회장)씨 별세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0 ●이종환(서울경제 부사장·서울경제TV 사장)승환(와이드필드 대표)창환(사업)씨 부친상 이윤철(천일농원 대표)씨 장인상 이병학(성우사 대표)동일(한신서울 〃)씨 형님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410-6928 ●김동석(빙그레 경인대리점 대표)동현(전 서울은행 동경딜링센터장)순영(전 방송인)선영(국민대 교수)씨 부친상 서석재(전 국정원)장덕주(국민대 경제학부 교수)강준민(전 리만브라더스 상무)씨 장인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2227-7566 ●홍순철(전 서울시의원)순범(경기경찰청 경사)씨 모친상 승표(전 뉴라이트 학생회장)씨 조모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02)2258-5971 ●임창섭(송원고 교사)연섭(순천 율산초 행정실장)봉섭(광주시 환경시설공단 매립운영팀장)용섭(담양소방서)건섭(현대자동차)씨 부친상 김북중(송정중 교사)씨 시부상 정한진(전 광주매일)씨 장인상 7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8시 (062)250-4407 ●한경호(미소인치과 원장)씨 모친상 강석만(기아자동차 평촌지점장)하태균(리얼네트웍스 이사)이기선(공주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씨 장모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010-2294 ●김용회(전 아도니스 대표)준회(자영업)광회(〃)기회(서울 서초구청 도로관리과장)붕회(전 하나은행 지점장)씨 모친상 이창식(불리틱스 전무이사)씨 장모상 7일 서울 역삼동성당, 발인 9일 오전 6시 (02)553-0820 ●이창세(청주시 공원녹지과장)씨 모친상 7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11-485-1953 ●윤영순(삼창엔지니어링 대표)영걸(〃 상무)영걸(미래피엔디 대표)씨 부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2 ●송진의(대치에듀 대표)진우(마이크로인피니티 이사)씨 모친상 차재영(삼우설계 소장)김기환(수성엔지니어링 이사)씨 장모상 이혜영(광운대 교수)씨 시모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265
  • 나신용씨 신용등급 어떻게 정해졌을까

    나신용씨 신용등급 어떻게 정해졌을까

    신용도 돈이 된다. 신용등급은 자신의 경제적 인생을 통제한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신용평가회사(CB)는 1000여가지가 넘는 요소를 고려해 등급을 결정한다. 한국신용정보(한신정)의 도움을 받아 가상인물인 나신용(28)씨의 신용등급을 알아봤다. 등급 결정에 중요한 것은 이자연체 외에 직장이나 연봉이 아닌 성실한 생활이었다. ●“5만~10만원 소액연체도 반영” 올해 초 서울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달 대기업에 입사한 나씨는 평범한 경제인생을 살았다. 대학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2장의 체크카드를 사용했다. 5차례에 걸쳐 10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자를 3차례 연체했다. 입사하면서 만든 신용카드가 나씨의 생애 첫 카드다. 평가 결과 나씨는 5등급(보통)이 나왔다. 1~10등급의 딱 중간이었다. 한신정 관계자는 “나씨는 막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신용거래실적이 충분치 않았다. 이 경우 보통 등급을 받는데, 나씨는 대출 이자 연체 때문에 점수가 낮아졌다.”고 했다. 이처럼 신용등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체 여부다. 문제는 연체를 몇 번 해야 등급이 내려가는지 가늠하기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연체 금액, 횟수, 기간 등 수많은 요소들이 점수화되고, 점수가 다시 등급화되기 때문이다. 한 번 연체해도 등급이 내려갈 수 있고, 서너번 연체했어도 유지될 수 있다. 관계자는 “3등급이 800점까지, 4등급이 799점부터라고 가정했을 때 800점에 걸쳐 있던 사람은 한 번 연체로 4등급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 조회해도 신용등급 안 떨어져 신용등급 결정에 대해 상식과 다른 것도 많다. 연봉이 높거나 직장이 좋으면 더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요인은 신용도와 상관없기 때문에 반영되지 않는다. 부모님의 집 소유 여부, 재산 등도 마찬가지다. 카드를 많이 발급받으면 신용등급이 내려간다고 알려져 있지만 CB사 관계자는 “발급 갯수보다 얼마나 꼬박꼬박 갚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전한다. 자신의 신용정보를 조회할수록 신용등급이 내려간다는 상식도 틀렸다. 금융회사가 아닌 본인이 자신의 신용정보를 조회할 경우엔 상관없다. CB사 관계자는 “수시로 자신의 신용등급을 확인해 신용테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신용정보는 각 CB사 홈페이지(www.mycredit.co.kr)에서 확인할 수 있고 1회에 한해 무료로 제공된다. 신용등급을 조회했을 때 생각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수도 있다. 대개 자신이 모르는 연체 등의 신용정보가 있는 경우다. 드물게는 명의도용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명의 도용을 당한 은행, 카드사 등에 연락하면 신용정보가 수정돼 등급이 회복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센트럴리그 MVP’ 라미레즈 선정…아베는?

    ‘센트럴리그 MVP’ 라미레즈 선정…아베는?

    알렉스 라미레즈(요미우리)가 2009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수상자로 결정됐다. 라미레즈는 작년에 이어 이부문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는데 요미우리로서는 3년연속(2007년 오가사와라) MVP를 배출하는 구단이 됐다. 요미우리는 이뿐만 아니라 신인왕 역시 마츠모토 테츠야가 선정돼 작년 야마구치 테츠야에 이어 2년연속 리그 신인왕을 배출, 올시즌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마츠모토는 올시즌 2번타순에 배치돼 비록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타율 .293(16도루)를 기록했다. 폭넓은 외야수비와 빠른발, 그리고 작전수행 능력에서 만큼은 리그 최강의 타자로서 손색이 없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야마구치와 마츠모토는 모두 육성군 출신으로 요미우리가 돈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키운 선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수 있다. 마츠모토는 이미 외야수부분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해 그동안의 무명설움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뜻깊은 한해로 기억될듯 싶다. 하지만 라미레즈의 MVP 선정은 안팎으로 잡음이 생길것 같다. MVP 수상자가 발표된 직후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같은 팀 소속의 아베 신노스케가 그 주인공이 됐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치고 있는것. 그도 그럴것이 올시즌 아베는 요미우리가 7년만에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는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타자다. 비록 라미레즈가 리그 타율 1위(.322)를 차지하긴 했지만 그와 비교해 전혀 모자름이 없다. 올시즌 아베는 타율 10위(.293) 홈런 2위(32개) 장타율 1위(.587)는 물론 OPS(출루율+장타율)마저 .943으로 리그 1위였다. 지금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포수로서 OPS 1위를 기록했던 적은 1963년 난카이 호크스시절 노무라 카츠야(전 라쿠텐 감독)가 1.004, 1975년 왕정치의 연속홈런왕 등극에 제동을 걸었던 당시 한신 소속의 타부치 코이치가 1.096을 기록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아베가 포수라는 중책을 맡으면서도 이러한 성적을 올린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4번타자 라미레즈가 중심타자의 상징적인 숫자인 100타점(103) 이상을 기록했다지만 아베는 주로 6번내지는 7번타순에 배치되면서 76타점을 쓸어담았다. 특히 아베는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막강한 클러치 능력을 과시하며 올시즌 팀이 후반기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음은 물론 일본시리즈에서도 맹타를 휘둘러 팀 우승의 절대적인 역할들을 다해냈다. 단지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기록만으로 아베를 평가할수 없는 문제다. 오히려 기록으로만 대입시켜 보면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라미레즈와 비교될만 하다. 라미레즈가 타율과 최다안타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오가사와라(타율 .309, 3위)와 홈런 공동 3위(31개) 출루율은 .347로 .384를 기록한 오가사와라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진다. 그가 .322의 타율을 기록하고도 이렇게 낮은 출루율을 기록한 것은 치려는 성향이 강해 볼넷을 얻어 나가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OPS 역시 9할이 채되지 않은 .893를 기록한 라미레즈가 오가사와라의 .927보다 떨어진다. OPS 9할을 달성하지 못한 타자가 리그 MVP를 수상했다는 점이 일본언론에서는 납득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MVP 2연패를 달성한 라미레즈의 이 기록은 통산 9번의 리그 MVP를 수상했던 왕정치가 마지막(1976-1977)으로 2연패를 한 이후 32년 만이다. 한편 퍼시픽리그 MVP는 다르빗슈 유(니혼햄)가 신인왕은 소프트뱅크의 세츠 타다시가 각각 수상했다. 다르빗슈는 지난 2007년에 이어 개인통산 2번째 MVP를 차지했는데 일본 제1의 에이스라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해냈다. 다르빗슈는 시즌 막판 부상으로 인해 3번의 로테이션을 건너뛰긴 했지만 15승 5패(평균자책점 1.73)를 기록하며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다해냈다.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와는 다르게 최근 5년동안 오가사와라(2006년)를 제외하고 모두 투수가 MVP를 차지했는데 타자와 비교해 압도적인 구위를 지닌 투수들이 그만큼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인왕 세츠는 올시즌 70경기에 투입돼 79.2이닝을 던지면서 5승 2패 34홀드(평균자책점 1.47)를 기록하며 사회인 야구출신으로 27살의 나이에 뒤늦은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범호 “헐값에 日진출 생각없다”

    올해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 A) 시장에 나와 있는 이범호(2 8·전 한화)가 일본 진출 여부를 이번 주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범호는 18일 전화통화에서 “금주까지 결판나지 않는다면 일본 프로야구 진출 의사를 접고 내게 관심 있는 국내 구단과 협상하겠다.”라면서 “12월 2일까지가 협상기간이지만 내년 시즌을 대비해 훈련하고, 나를 원하는 국내 팀의 전력을 보강하려면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범호의 이 같은 발언은 일본 구단들이 이달 초부터 외국인선수들과 협상을 하기 시작한 것을 고려한 것이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1~2위 안에 들어야 11월 중 계약이 가능하고 연봉 1억엔 수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범호는 전 소속팀인 한화가 제시한 4년간 40억원(계약금 10억원, 연봉 7억 5000만원, 옵션 10억원가량 제외) 조건을 거절하고 일본 진출에 매진해 왔다. 이범호는 “헐값에 일본에 갈 생각은 없다. 2년간 3억엔(계약금 1억엔, 연봉 1억엔)을 받고 싶다.”고 계약조건도 밝혔다. 현재 일본에서는 한신, 요미우리, 야쿠르트, 라쿠텐 등 4개 구단이 이범호에게 눈독을 들여왔다. 일본 야구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범호의 몸값은 여러 팀이 경쟁할 경우 7000만~8000만엔까지 오를 수 있지만 1억엔은 어렵다.”면서 “2년 계약에 계약금을 합쳐 1억 8000만~2억엔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행이 좌절되면 롯데 자이언츠가 가장 먼저 이범호와 접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롯데는 한화가 이범호에게 제시한 금액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롯데가 이범호를 영입하려면 한화에 9억 9000만원과 보상선수 1명을 내주거나 최대 14억 8500만원을 보상금으로 줘야 한다. 여기에 이범호에게 50억원보다 더 높은 액수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70억원 가까이 지출해야 한다. .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은퇴공직자 희망찾기

    은퇴공직자 희망찾기

    2005년 퇴직한 경기도공무원 윤종태(63)씨는 매일 아침 안성시 삼죽면 내강리 ‘아힘나 평화학교’로 출근한다. 이 학교는 청소년들에게 평화활동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로 중·고생 12명이 다닌다. 윤씨는 이곳에서 3년 전부터 인성교육과 함께 한자·서예 등을 가르치고 있다. 틈나는 대로 학생들과 함께 경기지역 유명 사적지를 찾아 역사의 소중함도 일깨워준다. 윤씨가 이 학교 교사로 나서게 된 것은 경기도와 한신대가 운영하는 ‘경기도 행복설계 아카데미(단장 홍선미 한신대교수)’를 통해서다. 경륜과 각종 지식을 쌓은 뒤 은퇴하는 공직자들의 능력을 사회에 환원토록 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2007년 마련했다. 윤씨도 행복설계 아카데미 1기 과정을 수료한 뒤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됐다. 교육과정은 40시간의 비영리민간단체(NPO·Non-Profit Organization) 기본교육과 NPO 현장탐방, 2주간의 인턴체험 등으로 진행된다. 단순 노무 중심의 ‘생계형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재취업 프로그램과 달리 공직자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육생의 능력과 경험을 펼칠 기관을 찾아주고 참여 방법과 절차에 대해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1대1 컨설팅도 해 준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퇴직 및 예정 공무원들이 대상이다. 2007년 1기 당시 25명이 교육에 참여해 이 중 13명이 각종 민간단체에서 봉사하며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2기 수료생 22명 중 9명도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올해도 3기생을 모집, 지난달 입학식을 시작으로 두 달간 교육에 들어갔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해 김운호 경희대 비정부기구(NGO) 대학원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전한다. 윤씨는 “공직생활만 했기 때문에 처음엔 ‘대안학교’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며 “하지만 이제 사회의 일원으로 봉사하며 산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일정액의 보수도 받을 수 있어 그야말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日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수상자 면면을 보니

    지난 10일 2009 일본프로야구 각 포지션별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발표됐다. 센트럴리그에서는 올시즌 일본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딕키 곤잘레스(투수), 카메이 요시유키(외야), 마츠모토 테츠야(외야)를 배출했다. 특히 마츠모토는 육성군 출신으로 골든글러브를 받는 첫번째 영광을 안게돼 그 의미가 크다고 볼수 있다. 주니치는 베테랑 포수 타니시게 모토노부, 키스톤 콤비 아라키 마사히로(2루)와 이바타 히로카즈(유격)가 수상했고 1루수 부문은 히로시마의 쿠리하라 켄타, 야쿠르트 역시 아오키 노리치카(외야)와 미야모토 신야(3루)를 배출하며 올시즌 A클래스 팀의 위력을 과시했다. 반면 한신과 요코하마는 단 한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퍼시픽리그는 리그 우승팀인 니혼햄 파이터스의 독무대였다. 니혼햄은 무려 7개 포지션에서 수상자를 배출하며 타팀의 부러움을 샀다. 사와무라상을 차지한 와쿠이 히데아키(세이부)와 오릭스의 톱타자 사카구치 토모타카(외야)를 제외하면 포수 츠루오카 신야를 비롯한 내야의 전 포지션과 이나바 아츠노리(외야), 이토이 요시오(외야)까지 싹쓸이 했다. 퍼시픽리그는 니혼햄의 이나바와 타나카 켄스케(2루)가 4년연속 수상했고 사카구치의 2년연속 수상을 제외하면 모두 첫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이다. 아라키 마사히로-이바타 히로카즈의 명품 키스톤 콤비 역시 이번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가장 큰 관심은 과연 주니치의 명콤비인 아라키와 이바타가 6년연속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할수 있을까에 모아졌다. 예상대로 아라키(2루)와 이바타(유격)는 2위표를 받은 선수들을 큰표 차이로 따돌리며 영광을 함께했다. 일본야구에서 아라키와 이바타의 키스톤 플레이는 메이저리거들의 뺨을 칠정도로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을 자랑한다. 아라키가 중전안타성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서 잡은후 뒤 따라오던 이바타에게 누워서 토스해 1루로 뛰던 타자주자를 잡는 장면은 전율이 일어날 정도. 이 선수들은 수비뿐만 아니라 팀의 테이블세터 역할까지 맡고 있다. 올시즌 아라키는 타율은 .270에 머물렀지만 37도루를 기록(리그 2위)하며 명품다리를 변함없이 과시했다. 6년연속 30도루 이상을 기록한 아라키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도 승선해 국내팬들에게 낯이 익다. 아라키가 빠른발과 재치넘치는 플레이가 돋보이는 선수라면 유격수 이바타는 폭넓은 수비범위와 정교한 타격솜씨를 자랑한다. 올시즌 이바타는 지난 2005년 이후 4년만에 3할 타율에 복귀(.306 리그 4위)하며 다시 방망이를 조율했는데 그의 전매특허라고도 할수 있는 수비없는 공간으로 밀어치는 타격기술이 되살아난 시즌이었다. 올시즌 전 어깨통증에 때문에 아라키와 포지션을 체인지 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아라키가 개막직전 부상을 입어 본인의 자리에서 144경기 모두 출전했다. 이바타는 30살이 넘어서 결혼하겠다는 평소 소신대로 2008년 시즌 후 아사히 텔레비젼 아나운서였던 코노 아키코와 결혼했다. 이바타는 프로데뷔 후 지금까지 매년마다 한자리수 실책만 기록할정도로 일본의 대표적인 유격수로 공히 인정 받고 있는 선수다. 마츠모토 테츠야의 기적과 같은 골든글러브상 이번 골든글러브 수상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요미우리가 육성해서 키운 마츠모토의 골든글러브 수상이다. 육성군은 국내야구로 말하자면 신고선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마츠모토가 대박을 터뜨렸다. 메이저리거 캐빈 유킬리스(보스턴)의 그것을 보는듯한 독특한 준비타격 자세가 특징인 마츠모토는 올시즌 스즈키 타카히로를 대신해 요미우리 중견수 자리를 굳건히 했다. 좌우 수비폭은 물론 타구판단력이 뛰어나고 발도 빨라 특별한 일이 없는한 내년에도 요미우리 2번타순에 고정으로 배치될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규정타석을 채우진 못했지만 올시즌 마츠모토는 타율 .293를 기록했고 한방능력은 없지만 작전수행 능력이 뛰어나 하라 감독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이밖에도 내년시즌 선발로 보직을 바꿀것으로 예상되는 올시즌 리그 홀드왕 야마구치 테츠야가 2008년 육성군 출신으로는 첫 신인왕을 차지한 적이 있다. 요미우리 팀을 일컬어 돈으로 야구를 한다는 그동안의 평가는 이젠 먼나라 이야기가 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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