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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아오르는 증시…7백선 돌파/호재겹쳐 주말 14P 뛰어「7백10」

    ◎1천7백만주 거래… 상한가 3백71개 한숨 돌릴 줄 알았던 상승세가 지수 7백10선 너머까지 주가를 밀어 붙였다. 20일의 주말장은 플러스 8.7로 개장했으며 종가는 전일장보다 14.43포인트가 상승했다. 종합지수가 7백10.44에 닿아 최근의 반등세는 지수 7백선 회복이라는 또하나의 개가를 올렸다. 많은 증시관계자들은 종합지수 7백선을 금년 주가의 장기적 추세변화의 분기점으로 지목해 왔었다. 따라서 주말의 반나절 장에서 고비라는 별다른 의식없이 이를 훌쩍 뛰어넘어서자 반등세에 대한 평가가 한층 긍정적이다. 이날 첫 매매가 끝남과 동시에 지수가 7백4로 뛰었던 것이다. 지수 7백선이 지난 7월13일 2차로 붕괴되면서 주가는 극심한 속락국면에 빠져 20차례나 연중 최저지수를 경신한 끝에 5백66(9월17일)까지 침몰했었다. 반대매매 실시직후 지수 6백6이 기록되자 6백선 재차붕괴를 걱정하는 투자자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주가는 당일 후장부터 거센 반등세를 펼쳐 9일장만에 근 3개월간의 속락국면을 말끔히 털어낸 것이다. 주말장 개시 전만 해도이날만은 틀림없이 조정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짐작한 관계자와 투자자가 상당했으나 그냥 반등해 4일간 통틀어 72.1포인트의 지수상승이 이뤄졌다. 게다가 거래량 또한 1천7백54만주에 달해 종전 최대치를 4백20만주나 웃돌면서 새로운 반일장 최고기록을 세웠다. 폭발적인 거래량 증가세가 계속되면서 지수상승의 힘이 꺼지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이번 주말장을 경계로 그동안 구구했던 반등세에 대한 뒷공론이 설득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짙다. 즉 내주 주가는 이주의 반등연속에 따른 조정을 반드시 거칠 것이나 조정기간 중에 이식 및 경계매물의 대량 출회로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이번주 장세는 투자자들이 사고싶은 만큼 충분히 샀다고 결론짓기에는 매수세가 증가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말장 반등의 외부요인인 정국완화ㆍ이라크사태 호전ㆍ북방개선 진전 등이 증시 내부사정의 호전 추세를 옆에서 거들어줄 전망이다. 주말장에서는 7백6개 종목이 상승한 가운데 상한가 종목은 3백71개 였다.
  • 농협초청으로 서울주부 6백명 농촌견학

    ◎「UR태풍」 앞둔 농민의 시름 청취/현지 찾아 대화 통해 농촌의 실정 이해/“우리 농산물만 애용하자”… 공감대 넓혀 소비자인 도시주부들이 농촌을 방문,농민과 농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서울의 주부 6백여명은 18일 경기도 여주군 등 4개 농촌지역을 4개조로 나누어 방문,그곳의 실정을 확인하고 농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도시주부들의 이날 방문은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의 타결시한이 불과 한달남짓 남아있어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농민들의 소리와 농촌 현장을 직접 듣고 볼 수 있게 돼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고충이해와 농산물 직거래 등 서로 돕는 방안을 끌어내는데 좋은 계기가 됐다. 이같은 도시주부와 농민과의 만남의 장은 농협중앙회 서울시지회가 처음으로 주부고객들에게 그동안 농협을 이용해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한편 우리농촌의 모습을 알리면서 소비자들속에서 국내농산물 애용운동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것. 이날 경기도 여주지역 농촌을 방문한 가정주부 1백57명은 상오 9시30분에 서울을 출발,신륵사와 영릉을 관광한뒤 영릉앞 소나무 밭에서 현지 농촌주부들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의 장을 가졌고 근처 사과과수원을 둘러보았다. 이어 여주농협공판장을 견학,농산물을 구매한뒤 하오 6시40분 서울로 돌아오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주부들은 이런 짧은 하루속에서도 힘들여 일해도 마냥 제자리 걸음에 불과한 농업의 현주소를 똑똑히 볼 수 있었고,특히 우루과이라운드라는 복병을 만나 어쩔줄 몰라하는 농민들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표정. TV등을 통해 농민들이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업의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며 정부를 높은 톤으로 비판하는 것을 접하고,어느정도는 정부의 많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엄살이겠거니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을걷이로 풍요로워야 할 농촌이,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시한대로 연내 타결되면 내년부터 당장 전체 농산물이 수입개방된다고 알려져 농민들이 당장 무엇을 심어야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잦은 일기불순으로 쌀ㆍ과일 등의 수확량마저 예년보다 10∼20% 정도 줄어들어 훈훈하던 농심마저 예전같지 않았다. 이런 농촌 모습을 대한 도시주부 김명희씨(38ㆍ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그동안 별생각없이 사들인 아몬드ㆍ자몽 하나 하나가 농민들을 더욱 못살게한 것이라는 점을 여기와서 깨닫게됐다』고 털어놓고 앞으로 비싸더라도 국내 농산물만을 애용키로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사과과수원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사과를 따는 일을 돕던 10여명의 인근주부들이 도시에서 온 말쑥한 주부들의 모습에서 소외감을 느낄것을 우려한 주인의 배려로 잠시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고 좀더 검소한 평상복을 입고 오지 못한것을 뉘우치기도 했다. 답답한 서울을 떠나 농촌을 향할 때는 누런 벼물결,듬성듬성 쌓여있는 볏짚더미,주렁주렁 매달린 과일에서 넉넉해졌던 마음이 서울로 되돌아오는 길에는 착잡한 느낌으로 반전,우리 농민이 이 위기를 벗어나 잘살 수 있는 방안이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이날 농촌을 본 주부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 피해자 보호에 좀더 신중하라(사설)

    1년반 동안 삼동네를 휘저으며 부녀자를 폭행하며 강도행각을 벌여온 흉악범 사건은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환멸을 안겨 주었다. 정신질환자 하나 때문에 소중하고 건강한 시민가정이 숱하게 망가져 불행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불행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하고 한숨 돌려지는 것은 그가 잡혔다는 사실이다. 폭행으로 피해자를 침묵시키고 강도한 물건으로 물욕을 채우는 짓에 재미들린 범인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같은 짓을 거듭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는데 천만다행으로 붙잡아 주었기 때문에 더이상 희생을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기왕의 피해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범인검거에 협조를 해줬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증언은 범인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부녀자폭행범의 경우는 범인의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데 피해자의 증언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숨어버린다. 그렇게 범인을 잡았는데 보도가 나가자 이번에는 또 다른 피해자가 속출하고 항의가 빗발치는 모양이다. 강도만 당하고 말았던 주부까지도 「남편의 오해」 때문에 새로운 가정파괴 위기에 직면했다는 호소와 원망을 해온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한 정신병자의 미친 짓에 사로잡혀 멀쩡한 집안의 남편과 아내까지가 가상의 피해로 시달린다는 것은 분통이 터지는 노릇이다. 미친개한테 물린 것도 억울한 데 공수병까지 얻은 셈이다. 아내가 「아니라」면 아닌 것으로 믿는 것이 가정과 가족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되고 불행을 막는 일인데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미친 것이 부린행패쯤 무시하고 늠름해야 미친짓을 하는 범인도 그짓으로 피해자의 입막음을 할 생각을 포기하게 될텐데 현실은 정반대인 것이다. 심신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당사자는 남편에게 죄인이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남편들이 의식을 전환하여 만약에 아내가 폭행을 당했다면 그걸 위로하고 악몽에서 치유되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그건 무망한 일인 것 같다. 그러므로 피해자와 증인을 보호하는 일은 이같은 현실까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엽말단이나 덮어서 누구나 추리가 가능하게 한다든가 피해내용을 필요이상 공개하는 따위는 오히려 화를 불러준다. 특히 선정주의적 관심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도 반성할 일이 많다. 폭력보도를 빙자하여 선정주의적 호기심에 봉사하는 상업주의적 보도태도는 2차,3차의 가해행위를 하는 셈이다. 경찰은 그런 자료를 매스컴에 아예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 5겹 10겹의 장치로 피해자를 보호해도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보사부가 「재해구제로 인한 의사상자구호법」을 확대 활성화하여 그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보상하겠다고 한다. 증인보호,피해자 보상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라는 뜻에서 대단히 환영한다. 범죄의 예방을 위해 유효하게 공헌할 수 있는 방책의 하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본인이 책임질 수 없는 시민의 불행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탄탄한 보호막을 발휘해 주는 것이 사회의 책임이고 이것이야말로 복지정책의 핵심이다.
  • 「깡통계좌」회오리… 증권가“폭풍전야”/「일괄정리」D­1일 증시주변

    ◎투자자ㆍ직원 합세… 농성ㆍ매도봉쇄 움직임/「장세회복」보단 증권사 「원금회수책」인상/담보부족액 6백억 추정… 1만여개 처분예상 주가 폭락으로 말이 많은 주식시장이 요즘 「깡통계좌」정리문제까지 겹쳐 더욱 소란스럽다. 「깡통계좌」라고 불리는 일부 통장들을 투자자의 손으로부터 뺏어 증권사가 이를 강제로 정리,주식매각으로 생긴 돈은 증권사가 챙기고 통장주인인 투자자들은 빈통장과 빈손의 완전한 「깡통」신세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주식통장의 금액이 불어나기는 커녕 주가속락으로 투자원금이 야금야금 잠식돼 깡통화하는 것도 서러운데 통장에 남아 있는 주식마저 증권사의 손으로 넘어가는 「해괴한」일을 왜 당해야만 한다는 것이냐. 따라서 증권가를 뒤덮고 있는 깡통계좌 정리소동은 단순히 소란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살벌한 분위기까지 조성하고 있다. 25개 전 증권사들은 지난달 8일 결의했던 대로 자진정리의 유예기간을 한달만인 8일 시장종료와 함께 마감하고 9일 휴장에 이어 10일 「깡통계좌」의 강제정리 절차를 밟게된다. 통장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그들이 목청이 쉬도록 외친 처분 반대의 아우성소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10일엔 주식시장에서 「깡통계좌」를 깨끗이 정리하는 동시에 해당 투자자들을 시장에서 추방시킨다는 것이다. 깡통계좌의 이같은 강제정리가 결코 해괴하지 않다는 증권사 및 증권당국의 말은 깡통계좌의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증시침체가 계속되면서 1년반 사이에 종합주가지수는 40%정도 하락했는데 1천만원을 주식에 투자한 경우 지금은 6백만원 밖에 찾아갈 수 없다는 뜻이 된다. 4백50만개를 넘는 주식통장계좌 대부분이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한숨이 끊일 새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가가 일정한 위험선 밑으로까지 폭락하자 투자자들 못지않게 증권회사들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증권사의 이같은 걱정은 업종침체의 악화 때문이 아니라 돈을 꿔준 사람이 망하기라도 하면 빚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자기 돈만으로 주식을 매입하는게 아니라 증권사로부터 돈 빌려 주식을 살수 있다. 증권사는 투자자들에게 신용 융자(3조원을 육박하기도 했다)를 해주고 5개월까지는 연 13%,상환만기를 지나서는 19%의 이자를 챙겨왔다. 그런데 일부 계좌는 원금상환은 물론 이자까지 계속 연체해 와 증권사를 애먹여 왔다. 미상환융자금으로 불리는 이들 문제계좌에 대해 증권사는 신용융자를 줄 때 투자자의 보유ㆍ매입 주식을 담보로 잡았기 때문에 「빚」을 떼일 염려는 없다. 즉 투자자 담보 주식의 시가합계가 대출융자금의 1백30%에 밑돌게 되면 투자자에게 빚 독촉을 하고 1백%에 달하는 순간 강제적인 반대매매로 외상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돼 있다. 「깡통계좌」는 담보유지 비율이 1백%에도 못미쳐 증권사가 자의로 투자자의 보유주식을 처분하더라도 빌려준 빚을 1백% 회수할 수 없는 계좌이다. 담보비율이 1백%로 떨어지는 즉시 반대매매를 실시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면 깡통계좌는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상환융자금이나 미수금 가운데 깡통계좌는 증시침체 시작과 함께 상존해 왔는데이는 증권사가 규정대로 즉시 반대매매를 실시해 청산하는 대신 이를 유예하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턱없이 비싼 이자를 챙기면서 「모른 척 눈감아 주다가」한달전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깡통에 걸린 계좌는 사정없이 완전 일소하겠다」는 것이다. 즉시 반대매매를 유예해 왔던 증권사는 그 이전 투자자들에게 신용융자를 권유하고 무책임하게 남발해 깡통계좌를 양산시켜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사의 이번 일괄강제 정리는 표면상으로 「장세회복의 걸림돌 제거」란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기실은 「증권사의 융자 원금 건지기 작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해당 투자자는 방침 발표와 함께 연일 항의시위를 벌여왔고 추석 연휴기간 중에도 증권업협회 등에서 저지 농성을 벌였으며 10일 당일 전국각지의 일선점포에 집결,주문 단말기의 온라인선을 차단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신용융자계좌가 대부분 투자자 단독 결정에서 나오지 않고 일선점포 직원과의 협의나 또는 일임에서 나왔기 때문에 증권사 실무 직원들 역시 반대의사를 표명했을 뿐 아니라 10일 단체휴가 실시를 비롯,주문표작성 및 전산입력 거부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일선 직원들의 이같은 강경한 입장은 고객과의 마찰도 문제지만 「담보부족금액」을 고객 대신 자신이 메워넣어야 할지 모르는데서 나오고 있다. 담보부족금액은 깡통계좌를 처분해서 증권사 금고로 들어오는 현금과 증권사가 원래 꿔준 총액의 차이인데 정확한 수치는 9일에야 집계될 예정이나 약 6백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증시안정기금이 10일 전량 매입할 깡통계좌는 대략 1만2천여개이며 그 시가총액은 2천5백억원 정도로 전망된다. 따라서 증권사는 3천1백억원(2천5백억원+6백억원)을 꿔주었다가 우선 2천5백억원만 되찾게 됐으며 반대매매 이후 나머지 원금회수방안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깡통계좌 투자자들은 주가폭락으로 2천5백억원의 주식재산을 끽소리 못하고 빼앗기는데 이어 나머지 「빚」을 딴 재산에서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 한가위 맞는 두가족의 명과 암

    전국이 한가위 명절분위기에 들뜨고 있다. 올해는 닷새동안의 황금연휴인데다 홍수가 들긴 했지만 풍년이 들어 추석기분이 한껏 높은 가운데 근반세기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할린 귀국교포들의 감회가 더 없이 깊은가 하면 65년만의 대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들의 가슴은 아프기만 한다. 추석을 맞는 명과 암을 찾아봤다. ◎46년만에 가족과 명절잔치/사할린서 영주귀국한 밀양 정희찬옹/25살 일제때 징용… 7순 백발노인으로/조카ㆍ손자등 30명모여 웃음꽃 한마당 『사할린에 뜬 한가위달을 보면 어머니와 아내의 얼굴로만 보여 추석때마다 눈물이 났지』 2차대전 말기인 지난44년 일제의 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간뒤 46년만인 올해 영주 귀국한 정희찬할아버지(71ㆍ경남 밀양군 초동면 덕산리)는 추석을 사흘 앞둔 30일 반백년만에 다시 만난 아내 최분순할머니(70)에게 『고향의 추석이 진짜추석』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한집에 사는 동생 희판씨(62)도 덩달아 『아이들이 언제 도착한다고 했느냐』고 몇번씩 부인에게 되묻다 『멀리서 오는 아이들의 요기거리를 준비하라』고 다시 재촉하는 등 온집안이 명절분위기에 넘쳤다. 4살박이이던 큰딸 종수씨(50)가 한창 재롱을 부리고 작은딸 옥이씨(46)가 아직 아내의 뱃속에 있을때 정씨는 탄광부로 사할린에 끌려갔다. 혼인한지 7년만이었다. 그로부터 한 많은 세월이 흐른뒤 지난 3월13일 남편을 다시 만날때의 기억을 최할머니는 『쇠약해 보이는데다 보청기까지 낀 백발의 남편이었지만 다시보는 순간 지나간 세월의 고통이 모두 잊혀지더라』고 회상했다. 정할아버지는 사할린생활 1년만에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소련 당국에 의해 귀국이 금지돼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최할머니에게도 해방은 엄청난 기다림의 시작을 의미했다. 시아버지(지난80년 사망)와 시어머니(지난85년 사망)를 모시고 시동생과 시누이 세명의 뒷바라지를 해야하는 육체적 고통은 소식조차 알수 없는 남편을 끝없이 기다리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은 지난83년 정할아버지의 사망신고까지 했다. 장손이면서도 아들이 없는 정할아버지의 대를 잇기위해 희판씨의 아들 종목씨(34)를 아들로 입적시키기도 했다. 어머니 조씨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이미죽은」 큰아들이 살아돌아오게 해달라며 매일밤 정화수를 떠놓고 큰며느리 최할머니와 함께 빌었다. 사할린에 발이 묶인 정할아버지는 55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쓸쓸히 지내다 어느날 하루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 고향집에 편지를 띄웠다. 그리고는 배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치고 또 부쳤다. 지난86년 마침내 소련땅에서 부친 편지 한통이 고향집에 날아들었고 최할머니는 평생 처음으로 펑펑 울고말았다. 그뒤로 어렵게 어렵게 서신연락이 이어졌고 지난 겨울 소련당국에서 초청장이 있는 한국인의 귀국을 허용하자 정할아버지는 가장 먼저 귀국신청을 낸끝에 이번 추석을 고향에서 맞게됐다. 소백산맥 줄기에 둘러싸여 요즘에도 하오5시도 못돼 해가 지는 장송마을 정할아버지 집은 추석날이 되면 두형제의 8자녀와 손자 등 30여명이 북적이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이날하오 부산에서 올 아들과 창원에서 올 작은딸을 아침부터기다리던 정할아버지는 『좋은날일수록 더욱 죄스럽다』면서 낫을 들고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제사상도 못차리게 됐어요”/수해로 시름에 젖은 고양 최웅렬씨/물빠진 집 허물어져 학교강당서 생활/“노부모ㆍ자녀 추석선물은 꿈도 못꿔요” 경기도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 수재민 최웅렬씨(43)의 일곱가족에게는 올 추석처럼 괴로운 명절이 없다. 65년만의 대홍수로 한강둑이 무너지면서 보금자리인 집은 물론 삶의 터전인 논밭마저 모두 물에 잠긴 빈털털이가 돼 명절을 바로 쇨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노릇은 커녕 자식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가족들을 바라볼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맘때엔 풍성한 수확과 함께 노부모 최돌성(69)ㆍ박필순씨(65)에게는 속옷을 사드리고 어린아들 은철군(15ㆍ능곡중 2년)과 딸 은숙양(10ㆍ능곡국교 4년)에게도 예쁜 추석빔을 마련해주는 기쁨에 넘쳤었다. 딸 은숙양도 이같은 어른들의 아픔을 벌써 알아챘는지 추석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않고 오히려 가족들의 시름을 달래주려는 듯 재롱을 떨다가는 혼자 풀이 죽곤한다. 남들은 닷새씩이나 되는 추석연휴로 고향을 찾거나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등 명절 분위기에 들떠 있지만 최씨의 가족들은 오히려 「이산가족」 신세이기까지 하다. 최씨와 동생 웅석씨(35)는 곧 닥쳐올 겨울동안 지낼 비닐하우스를 짓느라 마을앞 둑기슭에 2인용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다. 나머지 가족들은 이곳에서 3㎞쯤 떨어진 능곡국민학교의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며 새우잠을 자며 밤을 보내고 있다. 물에 잠겼던 집은 기둥이 뽑혀져나가고 벽도 헐어버려 도저히 살수가 없게 돼버린 때문이다. 부인 김정희씨(41)만 낮이면 집에 돌아와 남편 최씨의 일을 돕고 밤에는 노부모와 어린 남매들을 돌보기 위해 대피소로 돌아가고 있을 뿐 일곱식구가 함께 모인지는 벌써 보름이 지났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지내고 싶지만 학교의 대피소가 좁은데다 텐트속에 놔둔 쌀 20㎏짜리 2부대,조그만 장롱 1개,밥솥 1개,그릇 3∼4개 등 남아있는 가재도구라도 지켜야 하기에 이같은 이산가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동생과 함께 자기 논 5마지기와 남의 논 18마지기를 빌려 농사를 지어왔다. 비록 지난해 보다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풍년인 셈이어서 한마지기에 8∼9가마는 능히 수확해내 1천2백만원의 수입을 올릴수 있으리라고 자신했었다. 이 돈으로 농촌출신이라는 이유로 이태껏 결혼을 못한 노총각인 동생 웅석씨를 올해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결혼시키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이웃 벽제에서 5대째 농사만 지어오다 27년전 이곳으로 옮겨 정착한 최씨로서는 이같은 소박한 꿈들이 모두 깨어진 마당에 가슴이 저며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곳이 일산신도시에 편입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더더욱 불안하다. 좌절을 이기고 내년에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그는 농사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토박이 농부이다. 『해마다 명절이면 벽제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뵙고 선산의 묘소에 벌초도 해왔으나 올해는 그마저 못하게 됐다』는 최씨는 『조상님들도 후손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실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 뻘밭에 새길 1.6㎞… 복구 급진전/한강둑 유실현장

    ◎강물 흐름 차단… 수해주민 안도/밤새워 흙메우기작업 박차/응급복구 빠르면 주내 완공될듯/3만일손 구슬땀… 둑공사 1백50m 진척 【일산=육철수기자】 한강둑이 붕괴된지 나흘남짓만에 우회도로의 구축으로 물길이 막힌 16일저녁 경기도 고양군 지도읍 일산읍일대 침수지역 주민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실된 둑부분의 수심이 예상보다 깊어 둑의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여겨져 시름이 그칠날 없던 주민들은 이날 한강물이 빠진 틈을 이용해 고수부지로 우회도로가 건설돼 강물의 유입이 차단됐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너도나도 복구의 의지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3백34m가 유실된 한강둑에는 이날 군용 치누크헬기 4대와 덤프트럭 1백9대,포크레인 21대 등 중장비와 복구작업반의 전인력이 투입돼 하오7시까지 유실된 둑 1백50여m를 복구한데 이어 하오7시10분쯤에는 1.6㎞에 이르는 우회도로를 뚫는데 성공했다. 복구작업반은 우회도로의 개통에 힘입어 이날 밤을 새워가며 유실된 둑부분에 흙을 메우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복구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정주영 현대건설명예회장과 이명박 현대건설사장은 『그동안 한쪽 둑에서만 복구작업을 벌여 공사가 늦어졌으나 오늘 우회도로가 개통됨에 따라 복구공사 기간도 예정보다 빨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우회도로는 이날 한강물이 빠진 틈을 타 고수부지쪽으로 흙과 돌을 메워 나가 완성한 것이다. 복구작업반은 그동안 끊어진 한강둑의 두쪽으로 나뉘어 한쪽 방향에서만 흙메우기 작업을 해왔으나 이제는 양쪽에서 덤프트럭 등 차량의 통행이 가능해져 작업능률을 훨씬 높일 수 있게 됐다. 한편 이 지역에는 일요일인 이날도 민ㆍ관ㆍ군 및 초ㆍ중ㆍ고교 학생까지 3만여명이 수해복구작업에 나서 비지땀을 흘렸다. 이 일대 침수지역은 이날 상오9시쯤 그동안 괴어있던 강물이 거의 모두 빠져나갔다. 이에따라 민ㆍ관ㆍ군 합동복구반은 소방차 등을 동원,도로청소와 벼세우기ㆍ의료ㆍ방역활동 등 수해복구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답지하는 성원과 구호품 등 온정에 용기를 얻어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으며속속 집으로 돌아가 침수됐던 가재도구 등을 꺼내 햇볕에 말리는 등 복구작업에 안간힘을 다했다. 또 이웃 수원ㆍ의정부ㆍ안산시 등 14개 시ㆍ군에서는 1백∼5백여명씩의 관공서직원을 보내 수몰 농경지의 벼세우기 등 복구작업의 일손을 거들었다. 경기도 교육위원회 등 35개 경기도내 기관 및 사회단체도 지도읍 신평리 등 수해 42개 마을과 자매결연을 해 수재민들의 아픔을 달랬다. 그러나 물에 완전히 잠겼던 지도읍 신평리와 일산읍 장항 4ㆍ5ㆍ6리 등 6개마을은 깊이 30㎝의 진흙벌로 덮여 수렁과 같은 모습이었으며 집들은 앙상한 뼈대만 드러내는 등 황폐상을 보여 주민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 안방 진흙더미 퍼내며 집안손질/고양주민들

    ◎물 빠지자 거의 귀가… 복구 구슬땀/양수기 수십대 동원,“총력배수”/침구등 지급 늑장… 신문지 깔고 새우잠/임시 가로등 설치… 군장병등 밤샘작업 【일산=오승호ㆍ박대출기자】 온통 물바다로 변했던 경기도 고양군 지도ㆍ일산읍과 송포면 등 3개 읍면은 13일 한강 수위가 급격히 낮아진데 힘입어 흘러들었던 강물이 다시 한강으로 빠져나가면서 침수지역의 상당부분이 제모습을 되찾고 있다. 물이 계속 불어날 것을 걱정했던 주민들은 이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가 복구작업을 서둘렀다. 무너진 둑의 복구작업에 나선 재해대책본부측은 한때 집중 검토했던 컨테이너 투하공법을 『물살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물도 빠지고 있어 굳이 물길을 돌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포기하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흙과 돌 등을 투입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특히 이 일대 농민들이 각종 중장비 등이 수확기에 접어든 논에 드나들 경우 벼가 손상된다고 반대하고 나선것도 복구공법을 보편적인 흙붓기로 바꾸게 한 원인이 됐다. 이날 복구현장에서는 흙을 가득 실은 23tㆍ15t짜리 대형트럭이 잘려나간 강둑을 향해 줄을 이었고 공중에는 흙과 복구장비를 실어 나르는 헬기들이 바쁘게 날아 다녔다. 복구현장 주변에는 페이로더 등 각종 중장비와 컨테이너 1백여개가 길가에 널려 있어 복구작업의 규모를 실감케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하류쪽 복구작업을 하던 헬기는 철수하고 한전측이 임시로 설치한 70여개의 가로등으로 밤을 밝히며 대형덤프트럭 1백63대가 무너진 제방을 계속 메워나갔다. 철야작업에는 군장병과 현대건설 대림건설 한국건업직원 등이 동원돼 14일 새벽까지 1백90m의 제방가운데 70m를 복구했다.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된 고양군청에는 이날 밤 늦게까지도 식수와 라면 된장 간장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 생활필수품을 실은 차량이 줄을 이었다. 13일하오 침수지역은 일산ㆍ지도ㆍ송포ㆍ파주ㆍ화전 등 6개읍 1개면으로 늘어났으나 한강수위가 계속 낮아지는데다 12일 하오11시20분쯤에는 파주군 교하면 산남리 심학산 둑이 50여m가 무너져 내리면서 침수지역의 물이 한강으로 빠져 송포면 구산리 지역수위가 1m쯤 낮아지는 등 대부분의 마을에서 수위가 50∼60㎝쯤으로 낮아졌다. 일산읍 장항2리,지도읍 법곶2리,능곡리의 주민들은 물이 빠지자 각자 집으로 돌아가 경운기 등을 동원해 복구작업에 나섰으나 날이 어두워지면서 한전측이 감전 등을 우려해 전기공급을 중단하는 바람에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임시대피소로 되돌아왔다. 한편 12일 낮12시쯤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지축1리 속칭 「싸리발」 다리밑에서 이 마을에 사는 이은정씨(22ㆍ여)가 숨진채 발견된데 이어 13일 상오9시50분쯤에도 고양군 지도읍 강매1리 경의선 철도건널목에서 1m65㎝가량의 키에 40∼50대로 보이는 남자 1명이 익사체로 발견됐다. 재해대책본부는 침수지역의 물이 빨리 빠져나가 주민들이 하루빨리 복구작업을 벌일 수 있도록 하기위해 송포면 이산포ㆍ구산리 배수장과 송포면이 보유하고 있는 농업용 대형양수기 11대를 한강하류지역인 송포면일대 침수지역에 보내 1초에 1만여t씩 물을 한강으로 배수시키고 있으며 이같은 속도로 가면 오는 16일까지는 침수지역의 물이 대부분빠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고양군청에는 수재민들을 위한 라면 3천8백60상자,간장 1백50상자,고추장 9백64상자,멸치젓 1천2백90상자,소시지 5백상자,치약 3백점,의류 3백35점,수건 5백장,도시락 5천개,생수 1천병,모포 4천장 등 의연품이 들어왔다. 그러나 주민들은 침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신문지 등을 깔고 누웠다 이날 자정이 지나서야 모포 1장씩을 제공 받았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중부 대홍수의 기록은 대단하다. 연간 총강우량 기록도 깨뜨렸고 한강수위 높이도 경신했다. 한가지 기록만 미달로 남았다. 3일간 내린 우량 5백80㎜. 이번 내린 비는 5백60㎜에 그쳤다. 이런 기록들에 비한다면 피해기록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만하다. 예컨대 물난리 규모에 비해 인명피해의 수치는 놀랍게 줄었다. 72년 8월 4백11명,65년 7월 1백76명,84년 9월 1백5명,이번엔 고양군 제방 붕괴까지 겹쳐서도 1백명선이다. ◆말하자면 수방능력이 훨씬 개선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느낌은 여러 구석에서 받게 된다. 안양천이 무사히 넘어갔다는 것도 전의 수재를 생각하면 한숨이 놓인다. 재해방제노력이 왜 필요한가를 실감시킨다. 그러나 풍납동은 결국 같은 피해를 반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지역의 조건이 방제로는 해결하기 무척 어려운 저지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해방제기준을 근본적으로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를 당해본 수준에서 거점별로 부분적 방재책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는 하다. 그러나 이상기후현상까지빈발하는 현실에서 방재항목별로 대처를 함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사태만봐도 여러 댐이 개별적으로 방류량 조절은 했지만 댐들끼리의 종합적 조절훈련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더 포괄적으로 총괄하는 시야에서 대책의 과학성과 치밀성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갖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우량의 추정도 연평균치를 대상으로 해서는 곤란하다. 이상집중호우의 최대량까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렇다면 강변의 집짓기 역시 60년만에 한번 올 수도 있는 비가 전제가 돼야 한다. 재정이 가능하냐 할 것이다. 하지만 시야를 어디에 두고 어떤 목표로 일을 추진해가느냐와 재정이 있을 때 일을 할 수 있다와는 다른 것이다.
  • 마음만 모으면 재난은 이긴다(사설)

    ◎복구 서두르고 겨레의 온정을 마침내 한강둑까지 무너졌다. 시시각각으로 멱에 차는 물길을 뜬눈으로 지켜보다가 그래도 고비를 넘긴 것같아 한숨을 돌렸는데,새벽녘에 기어이 둑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렇게 무서운 홍수는 처음 당하는 것 같다. 98명이 죽고 15만명의 이재민을 낸 이번의 중부 대홍수는 아직도 피해가 진행중이어서 얼마나 더 크게 번질지 알 수가 없다. 12일 새벽의 한강둑 붕괴만 아니었어도 재난의 규모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이번에 무너진 제방은 일제시대 쌓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에도 붕괴위험이 지적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강은 옛날의 한강과는 전혀 다르다. 엄청난 개발공사를 했고 상류의 댐만 해도 한두개가 아니다. 이 모든 기능을 감당하기에 충분한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보강하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것을 중장비로도 당분간은 못막는 결과를 부르고 말았다. 불지난 자리보다 물지난 자리가 더 허망하고 난감하다. 복구하기도어렵고 지어놓은 농사,길러놓은 가축,쌓아놓은 생산자재,모두가물거품에 쓸려 떠내려가고 만다. 뒤따라오는 어려움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생활기반시설이 파괴되고 상하수도에 전기시설까지 무너져 당장 생활을 되찾기 어렵고 질병 악취 등으로 고통이 겹치게 된다. 시민의 삶의 터전이 무너진 일도 큰일이지만 국가적 차원의 경제적 손실도 심각하다. 풍년 농사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물론이고 공단지역의 침수로 생산시설이 망가지고 자재가 유실되어 수출에 차질을 빚게 되었고 시멘트생산 등에도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사태가 이러하니 재난 극복을 위한 비상동원령이라도 선포하고 이 불의의 재앙을 이겨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마침내 한강둑마저 무너지는 위기에까지 이르렀지만,그래도 이번 홍수사태를 지켜보며 우리는 우리 사회가 축적해온 역량과 능력에 적지않은 자신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인총이 이토록 밀집한 채 그토록 넓게 자리잡은 수도권에 이 만큼 엄청난 재난이 덮쳤는 데도 비교적 견딜만한 수방대책이 예비되었었고,대응책도 상당히 신속했다고 생각된다. 관계공무원의 기민하고 조직적인노력도 꽤 뒤따랐고 무엇보다도 책임감있게 맡은 부서를 감당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특히 방송사들의 솔선적이고 기민한 특별방송 대응은 시민을 위해 크게 공헌했다. 천재지변이 있을 때면 으레 그렇듯이 군의 전투차원의 복구구호활동은 보통 고마운 것이 아니다. 힘좋은 젊은이들이 헌신적으로 수해지역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고 지원하는 모습은 우선 믿음직하고 위안이 된다. 통제된 올림픽도로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던 일본관광객 태운 버스에서 위기에 처한 외국관광객을 구출해낸 시민의 미담은 국제간에 나라 체면을 빛내준 것이기도 하다. 기상정보,각급 학교의 휴교조치,도로형편에서 단전단수에 이르는 생활정보에 이르기까지 시민이 해야할 비상시의 생활수칙을 전달하는 것에 모든 분야가 그만하면 능력을 잘 발휘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의 잠재된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십이분발휘하면 엄청난 재난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장비도 넉넉하고 인적자원도 얼마든지 있다. 국고가 넉넉하지는 못할지 몰라도 최소한의 부담능력은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문제는 마음이다. 뜻이 합치면 못할 것이 없다. 특히 우리 국민처럼 마음만 모으면 기적에 가까운 순발력을 발휘하는 민족에게는 이만한 재앙쯤은 반드시 전화위복으로 이겨낼 저력이 있다. 경직된 예산집행으로 복구에 차질을 빚거나 정치지도층의 안일함으로 실책을 범하지만 않는다면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재난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급하고 아쉬운 일은 시민 모두의 온정이다. 내가 당할 불행을 대신 당한 이웃을 위해 위로나 구호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그들과 고난을 함께 이기지 못하면 그들의 재난속에 우리도 함몰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 교민들 불안한 나날…탈출계획 매일도상연습/전운감도는 중동의 한국인

    ◎방공호 구축… 연말까지 버틸 식량 비축/건설업체선 사우디 미군 기지 신축등 군수 기대/안전문제 한시름 덜자 장사안돼 고통 장기화하고 있는 중동사태가 이곳에 진출해 있는 한국교민과 기업에 점차 주름살을 더해주고 있다. 교민들과 기업체의 사정은 지역별로,취업형태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안전문제는 한숨 돌린 반면 경제적 타격이 커지는 비슷한 상태가 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태발발 초기 한국교민과 기업체 직원,그리고 공관 관계자들 상당수가 가족들을 대피시켰으나 한달이 넘는 지금 되돌아오고 있는 숫자가 늘고 있다. 사태의 폭발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분위기 때문이다. 사우디 제다에 개인 취업해 있는 구영복씨는 사태 초기에 놀라기는 했지만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한국의 친지들이 너무 걱정해 많은 교민가족이 서둘러 대피했었다고 당시 사정을 돌이켰다. 구씨는 『한국상사가 철수명령을 내렸을때 가장 불안했지만 갈 사람 가고 나니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진정됐고 비상 식량과 비상 연락망이 마련돼 있어 불안하지 않다』고 현재의 분위기를 전했다. ○비상차량 상시 대기 요르단주재 무역진흥공사의 한 직원도 지난 6일 가족들이 다시 들어왔다며 불안함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정은 쿠웨이트접경이 가까운 다란시의 건설현장에서도 비슷했다. 현지 대림건설의 김무균부장은 과거 이란에서 이라크의 공습으로 근로자들이 사망한 예가 있어 근로자 가운데 일부 귀국희망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이제는 거의 동요가 없다고 전했다. 유사시 대피계획은 지역마다 차이가 컸다. 전선이 가까운 다란시의 경우 현지 건설업체인 대림과 현대는 거의 매일 계획을 보완 검토하고 있었으며 차량도 대기시켜 놓고 있는 상태. 이라크의 미사일 사정권에서도 벗어나 있는 제다시의 경우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제다 한인학교에 모이도록 계획이 마련돼 있으며 비상연락망이 짜여 있었다. 정작 제다 총영사관의 김문경 총영사는 유사시에는 예멘접경에 가까운 곳에 있는 교민들의 대피가 더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총영사는 예멘이 사우디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 못되기 때문에 예멘에 가까운 지역의 교민에게는 유사시 바로 제다로 차량대피토록 통보했다고 말했다. 요르단의 경우 교민수가 많지 않은데다 지금까지는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대피하는 교민처리에 영일이 없었던 탓인지 비상식량 준비정도 이상의 대피계획은 없는 상태. 요르단주재 일부 상사원은 시리아를 통한 육로대피를 위해 시리아 비자 발급을 시도하고 있으며 진영준목사등 대다수 교민은 닥치는 상황에 따라 처신해야 할 형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란의 현대건설의 한 관계자는 대피차량이 쏟아지면 도로가 막혀 대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지적,일말의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안전문제가 점차 한숨을 돌리고 있는 상태라면 경제적 측면에서의 영향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태. 현지 진출형태를 건설등 기업체ㆍ상사ㆍ개인 취(사)업 등 크게 3부류로 나누어 볼때 가장 타격이 큰 쪽은 개인사업과 상사쪽. 상담이 보류되거나 현금을 갖고 있으려는 불안심리로 말미암아 구매력이 떨어져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이나오고 있다. 특히 요르단의 경우 2년전부터 인플레가 심해지고 IMF(국제통화기금)의 권고로 재정긴축이 강화되던 차에 이번 사태로 요르단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객의 발길마저 뚝 끊어져 교민들이 더욱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건설회사의 경우에는 플러스 효과와 마이너스 효과가 교차하고 있다. 사우디에 진출해 있는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는 철수가 불가피하지만 그외 지역은 철수방침이 없다고 밝혔다. 우선 전쟁의 위험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고 건설공사의 계속성과 많은 인원ㆍ장비의 철수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완전 철수는 어렵다는 것. 현대건설의 경우 이라크 건설현장에서 근무 만기자와 휴가자를 철수시키고는 있지만 현장유지에 필요한 최소인원 1백여명은 잔류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잔류자의 식량은 올해말까지 충분하나 육류가 모자라 비공식 루트로 공급하고 있으며 유사시를 대비해 방공호를 파놓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귀국해도 생계 막연” 중동의 건설경기는 이곳 지역의 사회하부구조(인프러 스트럭처)가 거의 마무리되고 일부 부문은 설비과잉현상이 빚어지고 있으며 현지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고전을 겪고 있던 차에 이번 사태로 다급하지 않은 공사의 발주가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 마이너스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사우디에서는 미군 기지 공사와 사우디 국방성 발주물량이 제법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지공사의 경우 신속함이 요구되고 있어 한국기업이 적합한 것으로 평가돼 이미 미군쪽과 접촉이 이뤄지고 있으며 계약조건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건설업체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이번 중동교민 취재과정에서 개인취(사)업 교민의 보호대책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들 교민 상당수가 국내에 생활기반이 없기 때문에 중동지역을 떠나기 어려운 형편. 이들이 현지에 머무르려 할 경우 안전문제가 대두되고 떠나면 생활대책이 거의 마련되지 않고 있다. 쿠웨이트 철수교민 일부가 요르단에서 정부의 대책을 강력히 촉구한데서 보듯이 유사시에 재외 거류민들의 안전과 생활보호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북녘 손님을 보내며… /실향작가 강용준씨

    ◎“겨우 잡힌 「통일의 가닥」 놓칠 수 없기에 「망향설움」도 삼키며 화답 기다리려오”/새벽부터 통일로 달려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5년쯤 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그때도 이와 비슷한 취지와 내용의 글을 어느 일간지에 쓴 일이 있다. 상당한 세월의 흐름이 있은 뒤의 얘기라 지금 그 구체적인 내용이며 정확한 날짜 등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무슨 가무단의 교환방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했던 바로 그 회담때의 일이 아니었던가 싶고,그나마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식의 다분히 냉소와 불신이 주조가 된 그런 글이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그로부터 5년간의 세월이 지나 북측 대표단을 다시 맞게 되었고,3박4일 동안의 일정이 모두 끝나 이제 다시 또 그들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면 5년전의 그때와 거의 비슷한 내용 비슷한 느낌을 되풀이 확인하고 체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고,그 가사에 또 그 곡조로구나」 이렇게 다가온다. 예의 그 불신감이며 냉소라고 하는 악마 같은 놈 말이다. 이 점 필자는분명이 해두려한다. 어떤 당위성이나 분위기의 압력 때문에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 개인의 경우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저쪽의 이른바 통일전선 노선이 변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우리는 저쪽을 믿어야 하고 또한 믿을 수 있으며,그래야지만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우리앞에 바짝 다가서게 된다. 하는 투의 발언을 어느 얼빠진 대학교수 하나가 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야말로 대단히 수상하고 진짜로 얼빠진 언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결과적으로 오히려 반통일주의자의 행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속으로는 이렇다 할 신념도 자신감도 없으면서 그저 시세에 따라 무책임하게 언동해대는 감상주의적 작태,혹은 또 그 얄팍한 인기주의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하는 식의 편승주의 내지 파렴치한 기회주의적 작태를 필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점 대단히 기이하지만 이번은 그 색감이며 분위기가 약간은 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아직은 너무 막연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없어서 그 섬세한 기미의 핵심을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전체적으로 와닿는 느낌이 전과는 조금 다르다. 4일 상오 10시경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으로 넘어온 북측 대표들의 표정이며 언동들이 비교적 밝고 활기에 차 있었다는 점,서울이 처음이라는 연형묵 총리가 계속해서 『45년동안 넘어서지 못한 곳을 오늘 넘어와 보니 쉽게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을때 그것이 예의를 갖춘 인사말쯤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가슴에 와닿는 부피같은 것 때문에 이제까지 많이 보아온 그 과장된 경직성의 제스처며 혹은 또 그 무지막지한 혁명선동자 같은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런 사정들 때문이었는가. 북쪽의 연총리가 경제테크노크라트 출신이라는 사실도 이쪽의 신경을 풀어놓는 일에 다소간의 심리적 기능으로 작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강영훈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서 『여기 북과 남의 동포형제들이 어울려 있지만 누가 북이고 누가 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가 갈라져 있는 것이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해준다』고 했다는 대목을 기사를 통해 읽으면서 필자는 솔직히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런데 남북한 유엔 단일가입 문제,팀스피리트훈련 문제,콘크리트장벽 철거문제,미군 및 핵철수문제 등을 다시 들고 나왔을 때는『아이고』하고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이것이 또 그 판에 박은 자장가인 것이다. 남북문제라고 할 때 가장 현실적인 당면의 문제이면서 절실하고 또한 가장 해결이 쉬운 이산가족의 재회문제에 대하여 북측은 거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또한 필자는 그렇게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한 것」이 불과 몇시간 전의 일이었는데…. 막말로 필자는 우리식의 나이로 겨우 스무살일 때 그림자까지 합쳐야 겨우 혈혈단신의 몸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이에는 자그마치 40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의 틈이 끼어들었고 따라서 내일이면 환갑의 나이가 된다. 앞으로 필자몫의 시간이 어느정도나 남아있는 것일까.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오지 못한 터라 결코 많은 시간이 남아 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흔한 말로 그 전에 한번쯤이라도 고향땅을 밟아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모형제의 생사라도 확인해 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지 않을까. 근년으로 접어들면서 필자는 이런 식의 절박감 같은 것을 일종의 섬뜩한 본능처럼 종종 체험하게 된다. 그래 필자의 경우 속으로는 불신감과 냉소감으로(더 노골적으로는 분노감과 증오감으로) 속이 편치가 않으면서도 북측 대표들이 판문각을 넘어오는 그 시각부터 3박4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나 돌아가는 그 시각까지 내내 텔레비전앞에 붙박이듯 앉아서 양측 대표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흡사 기도라도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이른바 실세라고 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필자 같은 사람의 처지로서는 알 길도 없고 또한 솔직히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어쨋든 한 국가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총리들이 아닌가. 이번만은 어떻게든 좀 해달라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그들의 언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던 것이다. 북측 대표들이 돌아가는 7일 아침 필자는 참 웃기지도 않게 평소 같으면 9시쯤이나 되어야 겨우 일어나 꾸무럭대기 시작하는 평소의 생활패턴에도 불구하고 진새벽부터 일어나 소란을 피웠고 이번엔 서둘러 그들이 거쳐갈 통일로까지 직접 달려갔으며 그리하여 또한 그들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이제 알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그 절박감과 또한 기도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원컨대 원로에 몸들 편히 잘들 가시도록. 아울러 부탁하거니와 85년도인가 가무단을 따라 서울을 다녀간 기자들을 텔레비전앞에 끌어다 놓고는 『거 보니까니 남반부 인민들은 거저 소원이 밥이라도 한번 실컷 먹어보구 죽었으믄 한이 없갔다 그러더구만요』하는 식의 그 우스꽝스러운 짓거리 역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마시도록 당부한다. □약력 ㆍ1931년 황해도 안악태생 ㆍ1950년 평양사대 재학중 인민군 입대,참전중 포로 ㆍ1960년 「사상계」 제1회 신인상에 「철조망」 당선 문단데뷔 ㆍ한국문학 창작상ㆍ작가상ㆍ대한민국문학상 수상.
  • 외언내언

    분단 45년만에 서울서 열리는 남북 총리회담. 어제 북쪽손님들이 왔고 오늘 회담이 열린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 시민은 『북쪽 손님들의 말쑥한 옷차림이 옛날과 달라 보이더라』고. 그들이 옛날과 같지 않은 자세로 이번 회담에 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나온 인상이리라. 이번 회담을 맞으면서 동서분단을 꿰맨 독일인들의 협상지혜가 떠오르는 건 웬일일까. ◆며칠 전에 조인된 통독조약 가운데 가장 말썽이 많았던 대목가운데 하나는 낙태법. 서독은 반대,동독은 찬성. 그래서 몇개월간의 토의끝에 『이 문제를 당장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이는 2년안에 어떤 합의든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 그러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조문에는 쉽게 합의를 했다. 서독으로의 탈출자들이 잃어버렸거나 공산주의자들이 이들의 가족들로부터 빼앗은 동독내 부동산들에 대한 서독인들의 소유권주장을 허용한 것. 이 조항을 유심히 들여다 본 한 월남인사는 『우리도 통일이 되면 고향에 두고온 땅에 가서 농사를지을 수 있을까』하면서 긴 한숨을 뿌린다. ◆동서독의 통일조약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동독의 한 지식인은 『동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무용하거나 바보스런 것은 아니다』라면서 동독의 법률이나 생활규범 가운데 살만한 것은 통일된 독일에서도 통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동독이 양보할 것은 하더라도 서독으로부터 양보받을 것은 받아내야 한다는 뜻. 협상이나 토의를 성공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보의 미덕을 강조한 말이다. 통독조약에서 유예기간을 두고 조정키로 한 것의 대부분은 두 독일이 한발짝씩 물러선 것들. ◆서울회담에 올려놓을 예상의제들은 기본적으로 쌍방의 시각차가 큰 것들이라고. 그러면서도 양측은 태도여하에 따라서는 부분적인 합의가능성도 있는 것들이라는 얘기다. 단 한차례의 만남에서 큰덩어리의 열매가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건 욕심치고도 지나친 것. 다시 만나지 않기로 합의하는 것만 빼고 무엇이든 합의했으면 하는 것도 지나친 바람일까.
  • 본사 강석진특파원,전운 드리운 사우디에 가다

    ◎“포성없는 전선… 사막이 달아오른다”/긴장ㆍ불안속 겉으론 평온… 군인들만 부산/주민들,느긋한 표정… 라디오값 2배 껑충/“다음 공격 목표 바레인” 보도에 왕족들 한때 출국소동 서울신문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페르시아만 일대의 사태진전을 취재하기 위해 국제부 강석진기자를 현지로 특파했다. 강특파원은 한국기자로는 이번 사태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입국비자를 받아 바레인을 거쳐 29일 제다에 도착했다. 다음은 강특파원이 바레인과 사우디에서 보고 들은 주민들의 모습과 페르시아만 사태를 보는 시각 등을 묶어 보내온 현지표정 제1신이다.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요즘 폭풍이 지나갔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다시 비바람이 몰아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다. 「중동대란」발발 4주가 지났음에도 긴장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고 주민들의 표정에서도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신속한 배치로 예민해졌던 위기감은 많이 무뎌진 듯 보였다.어렵지만 일상생활을 꾸려나갈 수 밖에 없다는 현실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봐야 일반주민들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무력감등이 이곳 중동주민들로 하여금 긴장과 불안의 마루턱으로부터 평상시의 일상생활로 내려오게 만들고 있었다. 기자가 거쳐온 바레인과 홍해에 면한 이곳,제다가 약간 차이는 있었지만 이같은 인상은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다. 기자가 중동에 첫 발을 내디딘 바레인은 이라크로부터 멀지않은 곳이어서 제법 긴장감을 주리라 예상했었으나 의외로 평온했다. 모든 것이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검색하는 공항직원은 엄하다기보다는 무표정한 편이었다. 바레인 신문들이 1면부터 수개면을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된 기사로 메워 역시 최대의 관심사임을 보여 주었지만 두려움이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조보다는 사태가 이라크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뉴스들이 크게 클로스업 돼 있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곳곳에 하얀 전통 아랍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어슬렁거리거나 벤치위에 한 쪽 다리만 괴고 비스듬히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바레인의 해안고속도로 킹파이잘로를 자동차로 달리며 살펴본 페르시아만은 일망무제로 탁 트인 수평선과 한가롭게 떠있는 두 척의 요트가 어울려 그림처럼 아름답기까지 했다. 기자를 태운 택시기사 하심 아마드씨(45)는 어떻게 해서든지 요즘에 바가지를 씌워 보려는 집요한 생활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교민들 “걱정없다” 한국 대사관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굴라즈 모하메드 하산씨(여)는 『이라크 폭탄 한 방이면 바레인은 끝장이라는 생각도 들어 걱정은 되지만 요즘은 말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면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은 체념과 무력함을 동시에 읽게 해 주었다. 바레인 주재 우문기 대사는 『한 영국신문이 다음 공격목표가 바레인이라고 보도한 지난 8일이 가장 긴장이 높았던 때였다. 외국인과 왕족이 속속 빠져 나가고 달러화가 동이 났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그후 미국등 다국적군과 아랍연맹군이 사우디에 진주하면서 긴장감이 많이 줄었다. 다만 아직도 변변한 방위능력이 갖춰져 있지 못한데서 오는 불안감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민대책을 묻는 질문에 우대사는 부녀자들의 경우 모두 대피했으나 아직도 교민 2백75명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는 『교민가족중 교사자격증 소지자와 교민자녀로 이루어진 20여명의 한인학교(국민학교과정)가 오는 9월2일 개학예정인데 모두가 출국해버려 개학예정일이 걱정』이라고 색다른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공항선 검색 엄격 휴가를 마치고 리야드 건설현장으로 들어간다는 현대건설의 심준수 차장은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며 리야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다를 통해 사우디에 입국하자 보안검색이 엄격해져 이곳 사정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공항밖의 표정은 달랐다. 수많은 차량의 물결과 느긋한 주민들의 표정은 완벽한 평상시 그대로였다. 검색이 엄한 것은 사우디가 이슬람 종주국으로서 원래 검색이 까다롭기 때문일 뿐 이번 사태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게 공항 직원들의 설명이었다.가로수가 싱싱하게 가꾸어진 널찍한 도로,깨끗한 보도 등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국무역진흥공사(KOTRA) 제다지점의 한 관계자는 사태초기에는 단파라디오 시중가격이 2배로 뛴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사람들이 불안해 했지만 지금은 조용하다고 말했다. 이곳 김문경 총영사도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느낌이라며 교민사회도 동요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때 이라크가 수단에 전투기와 미사일을 배치했다는 보도로 불안감이 조성됐으나 수단이 이를 부인하고 제다가 이라크미사일의 사정권 밖에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다시 평온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찾은 사우디 아메리칸 뱅크의 환전창구도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북적거리지 않았고 직원들도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여유있게 근무하고 있었다. 이곳 TV방송도 회교사원의 예배모습을 내보내고 정규 프로그램을 진행시킬 뿐 특별히 전투의욕을 고취시키는 프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사우디 정부도 국민들에게 민방위대에 지원하라는 권고를 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는 않고 있다.KOTRA의 김재효 관장은 회교권의 주말(목ㆍ금)과 서방세계의 주말(토ㆍ일)이 겹치면 뉴스량이 줄고 월ㆍ화ㆍ수요일에는 다시 뉴스량이 늘어나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3한4온」 현상을 보여왔다고 전했다. ○“후세인 굴복” 내다봐 이곳에서 만난 사우디주민들과 제3국인(수단인ㆍ이집트인 등)들도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사태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정보취득형 질문보다는 『이라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지도에도 호텔방에도 붙어있는 메카를 향한 화살표처럼 이곳 사람들은 이미 사태의 흐름을 「이라크의 패배」라는 한 방향으로 추론하고 있는 듯했다. 사우디정부가 한국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사우디에 입국하려는 기자에게 선선히 비자를 발급한 것도 어쩌면 「자신감」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 「깡통구좌」 속출… 증권사 연쇄부도 위기/허탈한 객장주변

    ◎“뭐하는 거냐” 증안기금에 항의 빗발/괴청년 “재무장관집 폭파” 협박 전화/지수 7백일때 부총리가 “지금이 살때”라 했는데… ○미수금 2조 추산 ◎…종합주가지수가 후장한때 6백선아래로 가라앉자 증권사 직원들은 『드디어 올것이 왔다』며 체념한 표정들. T증권사 한 직원은 『장이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망상이 돼버렸다』고 한숨을 내쉬며 이대로 가다간 「적자구좌」 속출로 증권사의 연쇄부도가 우려된다고 지적. 고객이 주식을 사고나서 결제잔금을 지불하지 않아 생긴 미수금 등 증권사에 걸린 외상물량만도 1조3천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는데 최근 주가폭락이 이어지자 증권사들이 자구책으로 손실을 줄이기 위해 구좌의 주식을 강제매각토록 유도. 그러나 구좌고객들은 증권사직원들이 장기투자를 권유하는 바람에 진작에 팔아버렸어야 할 주식을 여태까지 갖고 있어 손실폭이 깊어졌다며 반대매매를 하려는 증권사에 항의하는등 소동이 잇따라 적지않은 마찰이 일고 있는 실정. ◎…증권업협회의 증시안정기금에는 이날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지수 6백선이 흔들리자 투자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느냐』『6백선이 무너지고 있는데 받칠 생각은 않고 방치할 셈이냐』등등 증안기금의 적극개입을 촉구하는 전화를 받느라 관계자들이 진땀. 증권업협회 한 간부는 『현 상황에서 뚜렷한 묘책은 없어 보인다』며 『증시안정기금만이라도 빨리 조성해야 되는데 증권사의 자금여력마저 최악의 상태여서 여의치 않다』고 걱정이 태산. 그는 증권시장이 붕괴돼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부의 증시정책이 아직까지 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증권시장을 살려놓고 나서 통화를 잡든가 해야지 뭘하는지 모르겠다고 흥분. ○악성루머만 넘쳐 ◎…이날 지수 6백선하락을 가속화시킨 원인은 장중에 나돈 악성루머들. 「중동전이 드디어 붙었다」는 근거없는 루머와 연쇄폭락으로 증시가 휴장될 것이라는 설등 악재성 소문들이 무성하게 나돌아 주가하락을 부채질. 주가붕락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폭락때마다 시위에 나섰던 명동지역 투자자들도 이날 대유증권지점에 잠시 모였다가는 곧 흩어져 투자자들도 지칠대로 지친 분위기. ○파출소에 신고 소동 ◎…23일 개장부터 계속 떨어지던 주가가 마침내 종합주가지수 6백선이 무너지는 사태로까지 이어지자 재무부는 망연자실한 분위기. 증권국 직원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유구무언이라며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넋이 빠진 표정들. 이들은 주가가 5백선대쪽으로 향해 계속 뒷걸음질치던 이날 상오중 『고사라도 한번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주가만 오른다면 한번이 아니고 수십번이라도 지내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 이들은 또 증권시장의 회생을 위해 투자자들이 요청한 관련제도의 개선은 거의 대부분 받아들여 이미 시행중이기 때문에 재무부로서도 주가를 부추길 구체적인 수단이 없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호소. 오직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지난해 12ㆍ12 부양책처럼 증시에 무제한으로 돈을 쏟아붓는 길밖에 없으나 이는 통화증발에 따른 물가상승의 우려때문에 여간해서는 기대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 한편 일부 투자자들은 주가지수가 7백대일 때 『지금이 살 때』라고 말했던 이승윤 부총리와 정영의 재무부장관이 지금은 무어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다고 비아냥. 주가지수가 6백선에서 턱걸이한 22일 밤에는 투자자를 자처하는 남자가 재무부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특공조를 조직해서 정장관 집을 폭파하겠다고 협박,관내파출소에 신고하는등 한밤중에 부산을 떠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물가ㆍ증권국장 교체” ◎…주가가 연일 하락하자 과천에 모여있는 경제부처 직원들 사이에서는 경제기획원 물가국장과 재무부 증권국장을 맞바꾸면 우리경제가 잘 될 것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이는 떨어졌으면 하는 물가는 계속 오름세를 타는 반면 상승하기를 바라는 주가는 계속 하락하기만 하는 현실을 빗댄 것. 한편 증권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어느 독자는 서울신문에 전화를 걸어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해 증권시장을 건전하게 육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국민이 훨씬 더 많은 현실에서 전체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증시를 부양해서는안된다고 주장. 그는 평균적으로 따져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일터인데 이들의 손실을 정부가 지원해주면 국민들의 경제행위로 인한 모든 손실을 다 정부가 보전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
  • 요르단서 서울까지… 본사 육철수특파원 교민철수 동승기

    ◎“사지 벗어났다”… KAL기 이륙하자 환호/암만공항 대합실 출국자로 북새통/“총소리에 뜬 눈 밤샘”전쟁악몽 회상/일부 교민,“피땀 흘려 모은 재산 잃었다”한숨 쿠웨이트와 이라크 교민 3백21명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기 보잉747 점보기가 21일 상오 4시23분(한국시간) 암만국제공항활주로를 이륙하자 한국교민들은 마침내 사지에서 벗어난다는 안도로 환호를 지르며 옆사람의 손을 잡고 서울의 가족ㆍ친지들을 만날 기쁨에 들떴다. 1천8백여㎞의 사막길을 횡단,전쟁터를 빠져나온 교민들은 대부분 암만국제공항부근 호텔과 공항대합실등에서 3∼4일간 초조하게 특별기도착을 기다리며 불안에 떨었으나 무사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태극마크가 선명한 대한항공 특별기에 탑승하자 「한국의 영토」에 발을 들여 놓은 듯 안도감에 젖었다. 교민들은 『전쟁중인 사막에서 손가락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고국에 살아 돌아가니 기쁘기 한량없다』고 입을 모으고 『쿠웨이트 등에 버리고 온 재산이야 다시 벌면 되지 않느냐』고 서로 위로하는 분위기였다. 요르단 대피교민 귀국을 위한 대한항공 특별전세기 제1편이 20일 상오 7시24분 김포공항을 이륙,바레인을 거쳐 암만의 퀸 알리아공항에 도착한 것은 14시간만인 하오 9시28분(현지시간 하오 3시28분)이었다. 공항대합실에는 한국교민을 비롯,쿠웨이트와 이라크에서 빠져나온 아시아ㆍ아랍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 이곳에 온 어린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공항대합실을 이리뛰고 저리뛰며 마냥 즐거워했다. 대림산업 쿠웨이트 지점장 김진서씨(33)는 『전쟁이 일어나던 날 새벽내내 대포와 총소리에 놀라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에 공관에서 「전쟁이 났으니 지하실로 대피하라」는 전화연락을 받고서야 일이 터진 줄 알았다』면서 당시의 급박하고 불안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김씨가 살고 있던 안달로스의 옆동네 리카이에는 쿠웨이트 육군본부가 있었다. 2,3일이 지나자 상가는 모두 문을 닫고 국제전화가 불통됐다. 식량부족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당국에서 주는 배급은 가족당 하루 쌀 1∼2㎏,담배 1갑정도였고 식수는 아예 없었다. 시내에는 온통 이라크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일반인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라크군인들은 필리핀이나 인도계 여성들에는 폭행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인에 대해서는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김씨 가족은 17일 이웃교민의 도움으로 「시보레」자동차를 타고 피난행렬에 낄 수 있었다. 쿠웨이트시에서 이라크국경쪽으로 통하는 포스링로드와 식스링로드는 유럽ㆍ아시아 아랍인 등 피난민의 차량행렬로 가득 메워졌다. 국경부근 검문소에 이르렀을 때 한국교민들은 다행히 철저한 검문을 피할 수 있었다. 이라크 군인들은 한국인을 보면 『꼬레』를 연발하며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까지 흔들어 줄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식량과 식수는 다행히 떠날 때 충분히 준비해 어려움이 없었으나 열이 나고 설사를 해 애를 먹었다. 교민들은 한국인들이 무사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근로자들이 성실하게 일해와 그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준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라크에서 온 김정원씨(35ㆍ여)는 전쟁당일 바그다드시는 매우 조용했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언론통제가 심해 외국에서 보도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의 6백여 교민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이라크에 대한 응징조치가 임박했다는 소문에 귀국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의 한국교민들은 건설회사를 통해 식량을 공급받아 사정이 괜찮았으나 현지인들은 생필품수준이 쿠웨이트 보다 오히려 못하다는 것.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처럼 한국교민들의 생명에는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이역만리 타국까지와 애써 가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특히 쿠웨이트에서 개인사업을 했던 20여 교민들은 참담한 모습이었다. 좌석에 앉아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창쪽을 바라보는 이홍식씨(60). 그는 11년전부터 쿠웨이트에서 개인주택공사를 만들어 사업을 벌이면서 모은 5억원 재산을 몽땅 잃었다고 했다.
  • “사막탈출때 이라크군 겹겹검문”/귀국 중동교민ㆍ근로자들 안도의한숨

    이라크­쿠웨이트사태로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집결해 있다 20일 하오8시20분쯤 대한항공전세기편으로 귀국한 1백57명의 교민들은 공항에 도착하자 탈출의 악몽을 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13일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탈출,이날 귀국한 정창호씨(31)는 공항에서 『사막을 자동차로 5시간이상 달려 탈출하는 동안 탱크를 탄 이라크군인들의 검문을 네번씩이나 받아야 했다』고 전하고 『검문소를 통과할 때 마다 한국인이라면 아무런 제지없이 무사통과시켜 주었다』고 탈출당시를 설명했다. 정씨는 또 『탈출하는 동안 이라크군인들이 쿠웨이트 저항군을 향해 쏘는 총격이 계속됐으나 한국인은 희생자나 별다른 부상자가 없었다』고 밝혔다. 정씨와 함께 도착한 교민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료품점이 많아 식량사정은 어렵지 않았다』고 밝히고 시간이 지난면서 빵이나 물은 하루세번 배급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비행기에는 쿠웨이트 탈출교민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건설현장 근로자들도 탑승,함께 귀국했다.
  • 상항 차이나타운이 시들어간다(세계의 사회면)

    ◎지난해 강진후 달라진 사정을 보면/도로등 복구 미비… 관광객들 큰 불편/상점 수입도 절반으로/파산 상인들 이주 러시 올해는 중국인들이 사업과 금전운이 가장 좋다고 믿고 있는 말띠해. 그러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 사회에서는 정작 말띠해임에도 불구,사업부진으로 파산하는 상인들의 숫자가 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지금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그동안 가격과 독특한 기념품으로 전 세계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이 도시의 명소였다. 그러나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고있는 많은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은 이제 종말을 맞고 있다』며 자조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30년동안 차이나타운에서 일반잡화상을 경영해 왔다는 제임스 디아씨는 『최근 몇달동안 수입이 35%나 줄어들었다』고 울상을 지으며 『이젠 더 이상 버틸힘이 없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현재의 상황을 토로했다. 차이나타운이 이처럼 존립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한 지진때문이다. 이 지진으로 차이나타운의 동맥역할을 해오던 고속도로(프리웨이)가 완파되고 이에 따라 교통사정이 나빠지면서 차이나타운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만신창이가 됐던 고속도로는 지진발생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완전복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 그런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뛰어오른 건물 임대료는 차이나타운의 침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난해 지진이후 차이나타운의 여건이 나빠지자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중국인들은 지금 차이나타운을 벗어나 이웃 오클랜드나 샌호제이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화교사회가 이렇게 위축되자 본토인 중국 상공회의소의 로제팍씨는 『비록 현재의 상황이 어렵다 할지라도 선조들의 정착 초기시절을 생각하며 차이나타운을 지켜달라』고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만류에도 불구,정든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사정때문에 차이나타운을 등지는 중국인들 수는 계속 늘고만 있다.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중국인들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형성된 차이나타운. 그러나 차이나타운도 이제는 더이상 이들에게 꿈과 이상은 주지못한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 「남남북녀」를 보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KBS 2TV 코미디 프로그램에 「남남북녀」라는 코너가 있다. 젊은 애인으로 나오는 탤런트가 하는 짓이 아주 재미있어서 형편이 닿으면 즐겨 시청한다. 자신이 관광안내원이 되었을때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백두산이나 묘향산을 설명하는 말투나 목소리,이쪽에서는 예사로워진 일상의 문명에도 많이 어두워서 실수를 연발하고는 웃음거리가 되는 짓의 흉내가 탁월하여 그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는 것이다. 머리에 커다랗고 뻘건 리본을 달고,인형같은 몸짓과 꾸며진 말투로 김일성 찬양하기에 동원된 어린이들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어린아이가 하는 그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몸짓은,그렇게 반응하도록 어떤 물질같은 것을 주입한 것 같아 쟁그랍고 오금이 저리게 했다.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신에게 할 수 있는 생명의 진을 뽑아바치듯 짜내는 그 가성의 찬양을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몸배게 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것을 흉내내는 것으로 코미디를 꾸미는 TV극이 재미있다는 것은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이상한 것을 흉내내는데서 느끼는 단순한 웃음거리의 재미가 아니다. 닳아빠진 도회적 여성에게서는 풍기지 않는 소박함과 순진함같은 것을 동반하고 있어서 친밀감이 드는 「재미」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의 북쪽에 사는 동포들은 현대문명의 부정적 요인과 격리되어 오염되지 않은 수줍음과 순진함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마전이 잘된 올이 고운 무명처럼 기분좋고 건강한 느낌같은 것이다. 「8ㆍ15 대교류」에 참여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방북신청이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다. 시작하던 날부터,사무개시 시간인 9시보다 4시간 앞서 새벽 5시부터 몰려온 대부분이 실향민인 그들이 신청서만 받아들고도 희망에 부푼듯이 보이는 모습도 소박하고 순진해 보인다. 그들은 그들의 「방북 꿈」이 이번에도 「말짱 헛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신청을 하고 허가증을 받아서 손에 들어보고,설마 하면서 기다려보는 마음으로라도 「유사방북」을 맛보면서 위로를 느끼는 것이리라. 월남해온 사람들이 그동안 보여온 생활력은 「이남」사람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집요함과 강인함을 지니고 있었다. 담대하고 강하고 무뚝뚝한 것으로 알려져온 그들의 기질 깊은 속에 오래오래 간직되어온 그 소박한 소망이 우리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남남북녀」에 등장하는 오염되지 않고 순진해 보이는,미소를 머금고 받아들이고 싶은,약간 숙맥같지만 씩씩하고 건강한 사람들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희망사항」이 무망한 일임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에 중국 광동에 사는 한 동포 아주머니를 만난 일이 있다. 그는 북한에 살고 있는 친척 한 사람이 자신을 방문했던 때를 이야기해 주었다. 어렵게 지낸 것 같아 기름진 것을 해주었더니 처음에는 탈이 나서 못먹고,다음에는 가족이 걸려 못먹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돌아갈 때에는 하도 여러가지를 가져가고 싶어해서 난처했던 이야기를 두루 해주었다. 그러고나서 한말이 특히 우리 마음을 안쓰럽게 했다. 『젤루 먹을 것이 없어서 죽겠다누만요. 새끼덜 먹을 것 좀 실컷 먹여봤으문 한이 없겠대요. …사탕을 사달래길래 좀 고급으로 만든걸 사줄랬더니 그거이 싫대요. …딴딴하니 입에 넣으문 오래 안녹는 걸루 사달래서 그걸 자루째 사줘서 가져 갔어요』 중국서 듣고운 이런 이야기를 북쪽의 동기간 때문에 늘 마음을 앓고 있는 ㅈ씨에게 들려줬더니 그는 한숨을 후루룩 쉬며 자신이 접한 또다른 북한 소식을 털어놓았다. 연변사는 친지가 최근에 다녀갔는데,그가 한국방문에 앞서 북한을 들러서 왔다기에 만나 보았다고 한다. 연변인사는 북한의 어렵고 힘듦을 대충 얘기해 주고는 어느 정도에 이르러서는 입을 다물고 말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사는 집은,먹는 것은,고달픈 정도는,가족들끼리는 우애있게 잘 지내는 것 같던가 따위를 축조하듯 물어보았지만 건성으로 대답하곤 하여 ㅈ씨의 애타는 궁금증을 거의 풀어주지 않았다. ㅈ씨의 동기간이 북쪽에 있고,그 동기간에 대한 소식을 애타게 목말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친지이므로 당연히 목격하고,들어온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친지인데 그렇게 어느 대목에서 입을봉해버리는 일은 매우 노엽고 섭섭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심경까지 얹어서 뭔가 좀 아는 것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연변인사는 급기야 『…나 말하기 싫으니 나한테서 그 얘기 들으려 하지 마시지요…』하고는 눈물이 글썽해지더라는 것이다. ㅈ씨는 그후로 더는 연변인사에게 그곳 소식을 묻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가슴이 아파 예사롭게 전할 수가 없는 현실이라는 뜻인 것도 같고,ㅈ씨에게 그런 형편을 들려주는 일이 가혹하기만할터인즉 안 전하겠다는 뜻도 된다. 또는 그런말 잘못 옮겨서 화같은 것이 북쪽 가족에게 미칠까봐 그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ㅈ씨는 그중의 어느 경우라도 동기간의 불행을 뜻하는 것이므로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사태 같은 것이 우리 북쪽에서는 생기지 말고 지혜롭게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는데,지금 심경으로는,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변화가 빨리 이뤄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북」에 설레고 있는 실향민을 보며 ㅈ씨의 성난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도 첩첩이 가로놓인 산과강이 아득하다. 그래도 신청이라도 해놓고 기다리는 일에 들떠 있는 순진한 육친들이 남쪽에 이렇게 많다는 것을 북쪽의 동기간들이 알게 되면 많이 위안이 될 것 같다.
  • 국회 떠난 야 의원들 “소일거리 찾기” 고심

    ◎당사 나가도 앉을 자리 없어 “빈둥”/사무실 가진 율사들은 나은 편/세비 거부로 지구당 운영비 마련도 걱정 복중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야당의원들 대다수가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평소처럼 의정활동 준비를 하려 해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다 당사에 나가더라도 앉을 자리마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다방 등지를 전전하며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여의도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고 「사퇴의원」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피서를 떠나려해도 정국상황 때문에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지역구활동도 무더위속에서는 오히려 지역주민들을 불편하게만 만들 우려가 커 몸을 사리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의정활동 차원의 외유는 절대금지하라는 당방침에 따라 「출국정지」 조치를 받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 한동안 가속화되던 야권통합문제마저 최근들어 주춤한 상태인데다 여권과의 대화단절로 「원상회복」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하기조차 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호소다. 특히 8월부터는 세비를 일체 거부키로 함에 따라 보좌관·비서관·운전기사 월급과 지구당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마저도 마련할 길이 막연하다고 한숨짓는 의원들이 적지않다. ○…이런 상황속에서 최근들어 대다수 의원들의 관심은 서울시내에 개인 또는 합동사무실을 차리는 문제에 쏠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의원회관에서 철수를 완료함에 따라 개인비품을 보관해야 할 장소가 당장 필요한데다 적어도 전화연락을 할 수 있는 연락장소 정도는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사무실 개설의 가장 큰 이유. 일부 중진의원들은 야권통합이 이뤄질 경우 예상되는 계보정치에 대비한 전초기지 마련이라는 계산까지 염두에 두고 개인사무실 마련을 서두르기도. 평민당의 경우 개인사무실 개설 자체가 김대중총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기시되어 왔던 사정을 감안하면 의원직사퇴서 제출을 빌미로 한 당중진들의 개인사무실 마련은 『당내에 두어명의 후계자를 양성하고 있다』는 김총재의 최근 발언과 연관지어 주목되고 있다. ○…평민당의 경우 당직자들은 당사에 있는 사무실을,서울출신 의원들은 지구당사무실을,율사출신 의원들은 변호사사무실을 활용하고 있으며 지방의원들은 중진의 경우 개인사무실을,소장의원들은 2∼4명이 합자한 합동사무실을 마련했거나 준비중이다. 1일 현재 개인사무실을 별도로 마련한 의원들은 김원기문교체육위원장,유준상·임춘원의원 등이다. 이협·정균환·김영진·이돈만의원은 당사 근처 태양빌딩에 1천2백여만원의 보증금으로 합동사무실을 마련했고 조홍규·정상용·홍기훈의원도 여의도 산정빌딩에 「망명국회」를 함께 마련해 「소장파 학습장」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소장의원은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사무실을 계속 유지하며 세미나 개최·신문잡지 공동발행 등을 통해 새 정치 창출을 모색하겠다고 기염. 유인학의원은 의정활동의 필요에서 얻어두었던 여의도 초원아파트를 개인사무실로 차렸는데 박석무의원이 짐을 맡기러 왔다가 「더부살이」. ○…의원직사퇴서 제출이후비상대기 상태로 일관해 오던 평민당의원들은 야권통합문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당분간 당내행사도 전무한 상태임을 감안,김대중총재의 하계휴가기간으로 예정된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에 맞춰 가족동반 휴가를 계획중. 특히 겨울에는 정기적으로 집단휴가를 떠났던 초선의원들은 이번에도 단체로 2박3일 정도의 단체피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유는 정부지원 차원은 절대불가라는 것이 당방침이지만 얼마전 허만기의원이 개인적 사유로 중국을 방문했다 31일 귀국했고 이철용의원이 미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중. ○…의원직 사퇴서 제출이후 평민당의원들의 정치적 활동보폭이 좁아지고 있는 반면 민주당의원들은 상대적으로 활동공간이 넓어진 듯한 인상. 지난 임시국회를 비롯한 여야 1대1 대결구도하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민주당은 존립기반조차 위태로울 정도였으나 「사퇴정국」이 「통합정국」으로 옮아가면서 일사불란한 김대중총재 체제의 평민당의원들에 비해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는 민주당의원들은 그만큼 독자적인 목소리를 표출한 기회가 늘어난 셈. 특히 현역의원 8명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박찬종·김광일·장석화·노무현의원 등 율사출신의원들은 야권통합 논의와 늘어나는 변호사수임등으로 바빠진 느낌. 이들 중 개인변호사사무실을 내고 있는 장석화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3인은 장기욱 전의원과 함께 이번 의원회관철수를 계기로 합동변호사사무실을 개설할 계획. 김정길의원은 의원직사퇴후 4·3 보선직후 야권통합을 위해 평민당 이해찬·이상수의원 및 민주당 노무현의원 등과 공동으로 마련한 마포합동사무실에서 소일해 왔으나 사퇴정국의 장기화에 대비,여의도에 별도개인사무실을 낼 채비. 이밖에 이기택총재는 계보사무실을 현재 사용중인 이태원 H호텔에서 광화문쪽으로 옮길 계획이고 허탁의원도 과거 염업조업이사장시절 사용하던 광화문의 개인사무실을 활용할 계획.〈김명서·구본영기자〉
  • 외언내언

    삼복 더위의 계절을 이르는 영어가 도그데이즈(dogdays). 「개의 날들」이다.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인)과 개(견)가 합쳐진 「복」자와 인연이 닿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이 대서고 내일이 중복. 개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양하다. ◆하지후 세번째의 경일이 초복. 중복은 네번째이다. 그리고 말복은 입추후의 첫째 경일. 간격은 각 10일씩이지만 중복으로부터 10일이 지나서 입추가 들면 중복과 말복 사이는 20일이 된다. 그것이 월복. 올해의 입추는 8월8일이므로 중복에서 10일을 넘는다. 그래서 월복으로 말복은 8월13일. 무더위는 여느 여름보다 더 오래가게 되어 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은 해이다.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비. 전국적으로 예년보다 평균 4백㎜쯤 더 많이 내린 것으로 집계된다. 도시 사람들이야 짜증스러운 채 불편만 느끼면 되지만 농촌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농사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비가 안온다 해도 하늘이 찡그리고 있는 날이 많으니 일조량이 턱없이 모자라다. 지금쯤 한낮의 무논 물은 발을 들여놓기가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야 한다. 밤에는 그것이 다시 식고. 벼는 그 냉온의 교차 속에서 영글어 가는 법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날씨가 습하니 병충해까지 극성을 떨고 있다. ◆벼 뿐이 아니다. 밭 작물도 햇볕 못보아 서러운 것은 마찬가지. 열매를 못맺고 썩어간다. 설사 열매까진 맺었다 해도 제대로 자라나지 못한 형편. 그것은 각종 나무 열매의 경우라 해서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인위가 대자연의 영위를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을. 실의에 빠진 농민들의 한숨 소리가 비에 섞여 땅속으로 스며든다. ◆앞으로나마 고른 날씨를 보인다면 좀 좋으랴. 하건만 엘니뇨현상하며 태양 흑점폭발설 등이 낙관을 못하게 한다. 제발 태풍이나 비켜 지나갔으면. 문득 불쾌한 듯 찌푸린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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