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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여성광역선거구제 위헌 논란 유감/김신명숙 페미니스트 저널·’IF’ 편집인

    여성광역선거구제 도입문제가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특히 대다수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과잉특혜라며 눈을 흘기고 있는데,여성계가 애초에 주장했던 것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대폭확대해 여성에게 50%를 할당하고 지역구 후보의 30%도 여성몫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그러나 지역구 후보 30% 할당은 애초부터 씨가 먹히지 않았고 비례대표 50%할당은 수용되긴 했으나 의석수를 오히려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되고 있다. ‘이번엔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한숨을 쉬던 차에 느닷없이 여성광역선거구제 도입 문제가 핫 이슈로 등장했다.올 총선을 어떻게든 여성정치참여의 획기적인 전기로 삼으려는 여성계의 염원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인 듯싶다.그런데 이 제도의 도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여기저기서 위헌 논란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논리에서 보자면 이미 합의를 본 비례대표 50%할당 역시 위헌이 아닌가? 할당제 혹은 여성특별대우와 위헌문제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근대 민주주의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 우선 짚어볼 필요가 있다.근대 민주주의가 자유와 함께 평등을 근본가치로 내걸고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남녀간의 실질적 평등,특히 정치 분야의 평등한 참여가 그리 더딘가 하는 문제는 여성 정치학자들의 오래된 의문이었다.연구결과 그녀들은 근대의 새로운 민주적 질서란 기본적으로 남성들간의 ‘형제적 사회계약’에 기초한 것이었고,여성들은 성적 차이를 근거로 사적 영역에 예속돼 정치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돼 왔음을 밝혀냈다.민주적이라는 근대 정치체제가 구성원의 절반을 무시한 채 남성중심적으로 형성돼 온 것이다.한마디로 기존의 정치는 남성복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옷을 얻어입기도 힘들고 어쩌다 얻어 입어도 남의 옷이기 때문에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솝우화를 비유로 들 수도 있다.여우에게 두루미와 똑같은 호리병을 준다면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가? 그것이 평등한 대우인가? 할당제 혹은 여성특별대우는 여우의 실질적인 식사를 위한 특별한 도구 제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민주정치 선진국들에서는 불평등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형식적 평등보다는 잠정적으로 그것을 침해하더라도 현실속에서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근대화,민주주의 완성의 척도로서 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의 실질적인 양성평등이 부각되고 있으며 독일이나 프랑스는 이를 위해 헌법까지 개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비춰볼 때 할당제나 여성광역선거구제가 위헌인가? 궁금한 사람들은 여성개발원에서 나온 ‘할당제의 합헌성에 대한 연구’를 참고하기 바란다.연구결과에 의하면 할당제는 ‘여성과 남성의 실질적 평등실현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에 헌법적으로 부과된 의무 달성수단의 하나’라고 한다.개인적인 견해지만 여성광역선거구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여성’만 부각된 여성광역선거구제보다는 ‘여성과 계층’ 문제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 확대가 더 나은 방안이라고 본다.민주노동당이 여성광역선거구제에 반대하며 여기서 설정된 26석을 모두 여성 비례대표로 전환하라고 한다는데 설득력 있는 주장인 것 같다.무엇보다 정치적 득실에 골몰하는 정개특위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결론이 나든 여성계와 진보정당이 대립각을 세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없었으면 한다.양 진영이 힘을 합쳐도 현재의 남성 보수 정치세력은 너무나 거대한 상대다. 김신명숙 페미니스트 저널·’IF’ 편집인˝
  • [’장애인 외출길’ 동행 르포] 1시간이면 갈 거리 3시간씩이나 걸려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외출을 하고 싶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외출하는 것은 장애인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이다.장애인들은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중심으로 4년째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선천성 뇌질환을 앓고 있는 1급 장애인 이흥호(34·서울 도봉구 창동)씨와 지하철과 버스·택시를 이용한 외출에 나섰다. ●험하고 어려운 외출길 지난 15일 오전 11시50분쯤 이씨가 사는 창동 주공아파트 1709동을 출발했다.이씨는 1주일에 4차례씩 성동구 구의동에 있는 노들야학에 공부를 하러 간다.평소에는 그나마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지하철만 이용하지만,이날은 지하철을 이용해 석계역까지 간 뒤 버스와 택시로 귀가했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이씨는 아파트 15층 집 현관을 나선 뒤 하강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부터 힘들었다.이웃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이날은 5분 정도 기다렸지만 30분 이상 기다리는 날도 있다고 한다. 울퉁불퉁한 길을 힘겹게 지나 지하철 1호선 녹천역에 도착,리프트를 타기 위해 직원 호출 버튼을 눌렀지만 고장이 났는지 신호가 가지 않았다.하는 수 없이 휴대전화로 역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역 직원은 계단 위에서 작동버튼만 눌러주고 되돌아갔다.이씨는 “원래 다 내려갈 때까지 직원이 도와줘야 하는데….”라고 아쉬워했다.지하철역 직원만 탓할 수도 없다.녹천역 정자영 팀장은 “매표소 2개에 3명의 직원이 일하다보니 바쁠 때는 장애인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 지하철역 구내로 들어간 뒤 리프트를 타고 60계단을 올라갔다.이어 매표소를 들른 뒤 다시 리프트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여기까지 10분 이상 걸렸다.전동차를 타려고 하니 전동차와 플랫폼 사이 한뼘 정도의 공간이 걸림돌이 됐다.전동휠체어의 앞바퀴가 걸려서 기우뚱거렸다.석계역에서 내릴 때는 공간이 더 넓어 기어이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공익근무요원이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면 큰 위험에 빠질 뻔했다. 오후 1시10분쯤 석계역에 도착한 이씨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장애인·노약자를 위한 셔틀버스를 기다렸지만 30분이 넘게 오지 않았다.할 수 없이 일반 버스를 탔다.1m가 넘는 버스 출입구를 혼자 힘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운전사도 “배차시간에 쫓겨 시간도 없는데….”라며 고개를 돌렸다.보다 못한 시민 4명이 힘을 합쳐 뒷문을 열고 이씨를 가까스로 버스에 태웠다. 노원역 근처에 도착,버스정류장 앞에 서 있던 택시를 잡았다.운전사는 전동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으려고 했지만 트렁크가 너무 작아 들어가지 않았다.운전사는 “어쩔 수 없다.”며 그냥 떠나려고 했다.이씨가 애원을 해서 트렁크에 엉성하게 휠체어를 얹어놓은 채 느린 속도로 택시를 운행했다.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비장애인에게는 1시간 거리의 외출이었지만,이씨에게는 3시간 이상 걸렸다.이씨는 “밖에 나가는 길이 늘 어렵고 험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멀기만 한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01년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면서 타고 있던 박모(71·여)씨가 숨지고 고모(71)씨가 중상을 입으면서부터다.장애인 관련 5개 단체가 ‘오이도역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다음달 6일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철로를 점거,농성을 벌이던 장애인 32명이 연행됐다.같은 해 4월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출범한 이후 이동권 확보를 위한 ‘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현재 28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라는 행사를 29차례나 개최,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특히 2002년 8월에는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발생한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건에 항의해 서울시의 공개사과 등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에서 39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다.2001년 6월부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시민 50만명의 서명도 받았다.이들의 가장 큰 바람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 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장애인 이동권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또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장애인이 대중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줄 것 등을 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 中최저임금 인상 한국 中企 ‘비상’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이 새달 1일부터 새로운 최저임금규정(最低工資規定)을 시행한다. 중국정부가 최근 공포한 최저임금규정 실시에 따라 최저임금은 전년보다 평균 10% 올랐다.저임금을 노리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등 외국 중소기업들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 노동·사회보장부의 ‘최저임금 규정’ 공포에 따라 지난 93년부터 시행돼 왔던 ‘기업최저 임금규정’은 자동 폐기됐다. ●엄격한 최저임금제 적용 신 최저임금 규정은 과거와 달리 전국적으로 최저임금의 산정 기준이 통일된다.최저임금 산정기준은 ▲지역주민의 생활비 지출 ▲직공 개인이 납부하는 사회보장비 ▲직원 평균임금 ▲주택공동 적립금 ▲실업률 ▲경제 발전수준 등을 감안,지역별로 산정된다. 중국 주요 도시의 최저임금(양로보험 등 복리비용 제외)은 지난해 말 기준(단위:위안)으로 ▲상하이(上海) 570▲베이징(北京) 495 ▲톈진(天津) 480 ▲선전 600(특구),465(특구외) ▲쑤저우(蘇州) 460 등이다. 주중 대사관 이태희 노무관은 “중국 진출 대기업들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월급을 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방 정부가 그동안 1년에 1회 이상 고시하도록 규정됐던 해당지역의 최저임금도 물가상승 등을 감안해 앞으로는 매월 1회씩 고시하도록 변경됐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벌칙도 강화됐다.최저임금 기준을 지키지 않는 고용주는 부족한 임금의 1∼5배를 근로자에게 배상하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두자리 수로 인상되는 최저임금 상하이시도 2002년 7월 최저임금을 535위안으로 전년도 490위안보다 9.2% 올렸다.최근 5년간 상승률은 연평균 13.1%에 이른다. 톈진시와 베이징시도 2002년 최저임금을 각각 440위안과 465위안으로 확정했다.이는 전년도에 비해 10% 내외의 인상률을 기록한 것이며,이들 도시의 지난 5년간 최저임금 상승률도 모두 10%를 넘었다. 중국 각 지역의 최저임금이 급격한 속도로 올라감에 따라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채산성도 악화일로에 있다는 것이 현지 기업인들의 전언이다. 한국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칭다오(淸島)시에서 앨범 공장을 운영하는 박모(51)씨는 “98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달 임금이 200∼300위안(4만 5000원)도 안 됐지만 지금은 800위안(12만원) 이상을 줘야 직원을 구할 수 있다.”며 “채산성 악화로 초기 1000여명이던 직원들을 지금은 300여명으로 줄였다.”고 한숨을 쉬었다. oilman@˝
  • 미소 띤 조순형-한숨 진 한화갑

    17일 민주당 전·현직 대표의 표정이 엇갈렸다.최근 소장파들로부터 지도력을 의심받아 온 조순형 대표는 모처럼 웃었고,한화갑 전 대표는 한숨이 깊어가는 모습이다. ●대구지역교수 출마 환영 성명 경북대 유진춘 교수와 계명대 장병옥 교수 등 대구 지역 교수 179명은 이날 성명을 내고 “조 대표의 대구 출마를 환영한다.”고 밝혔다.이들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기 위해 험난한 길을 자초한 조 대표의 선택에 신선한 충격을 느낀다.지역주의를 깨는 석수장이를 자처한 그의 충정이 전국으로 확산돼 한국정치가 정상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지지성명에 화답하듯 조 대표는 18일 대구를 찾는다.대구지하철 참사 1주년을 맞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희생자 추모비 건립 문제를 논의한다. 강운태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가 대거 동행,‘조순형 바람’을 도모할 계획이다.대구 어느 선거구를 택할지는 아직 미정이다.한나라당의 공천상황을 지켜본 뒤 낙점한다는 방침이다. ●무안 귀향 당내 반발 부딪혀 조 대표와 달리 한화갑 전 대표는 귀향(歸鄕) 출마가 당내 일각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고심하고 있다.그는 SK로부터 4억원을 받은 혐의로 다음달 중 구속될 상황에 놓이자 서울 출마의 뜻을 접고 고향인 무안·신안에서 옥중출마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그러나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은 지난 16일 “국민은 한 전 대표에게 당당한 모습을 기대한다.”며 그의 무안 출마를 정면으로 반대했다.한 전 대표는 이날 “당의 뜻에 따른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당이 가라면 가고,가지 말라면 안 갈 것이다.추 의원은 한번 만나볼 생각이다.”고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진경호기자˝
  • FTA 지연… 칠레진출기업 반응

    “3번째 도전이라서 이번에는 통과될 줄 알았습니다.비준안이 통과되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려고 준비했는데 또 미뤄지다니 막막할 뿐입니다.” 9일 오전 11시쯤(현지시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이 끝내 유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법인·지사 관계자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칠레에는 LG전자,삼성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현대·기아차,LG상사,삼성물산 등 10여개 업체가 외국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지난 2002년 휴대전화 20만대를 수출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27만∼28만대의 수출실적을 기대했지만 예상치를 밑돌았다.올해는 FTA 비준을 전제로 40만대까지 내다봤지만 계속 미뤄진다면 10만대 이상의 수출차질이 예상된다. 삼성전자 칠레지사 문성원 과장은 “비준안 처리 지연으로 효자품목인 휴대전화가 직격탄을 맞았다.”면서 “침체됐던 남미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이 때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관세가 면제된 경쟁제품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세탁기·냉장고를 수출하고 있는 LG전자는 지난해 9월 산티아고 지사를 법인으로 승격시키는 등 수출확대에 진력하고 있다.그러나 수출비중이 큰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단말기와 세탁기가 미국 월풀·GE나 멕시코 가전업체들보다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는 상황이다.특히 프리미엄 가전은 창원공장에서 수출하기 때문에 FTA가 통과되지 않으면 고전이 예상된다. 자동차업계도 다급해졌다.FTA 타결 지연으로 한국산 자동차의 칠레 수출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는데 당분간 회복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산 자동차의 칠레 수출은 지난 96년 4만 5316대였으나 이후 해마다 급격히 감소,지난해에는 2만 3299대에 그쳤다. 한·칠레 FTA 협상이 시작된 98년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전년도인 97년에는 4만 3533대로 소폭 감소했다가 98년 2만 6300대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자동차 업계는 이처럼 수출이 급감한 것은 칠레와 FTA를 맺은 프랑스나 아르헨티나,브라질 등이 관세(6%)철폐를 계기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린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이달초 미국·칠레 FTA가 발효된데다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인 일본·칠레 FTA마저 타결될 경우 자동차업계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아차 산티아고 사무소 윤태현 차장은 “올해 칠레의 경제가 호황이어서 수출목표를 1만대 이상으로 잡고 있는데 비준안 지연으로 인해 차질이 불가피하다.”면서 “올해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7%에서 6%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종락 류길상 김경두기자 jrlee@˝
  • [러일전쟁 100주년]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본지 기고(하)

    1904년 2월8일 러·일전쟁의 첫 교전지였던 제물포항은 러시아·일본·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의 포함이 우글대던 열강의 각축장이었다.대한제국은 제물포항을 중립국의 항구로 선포해 러·일전쟁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열강도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제물포가 중립국항임을 내세웠으나 일제의 야욕을 막을 수는 없었다.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제물포 해전’을 자신들의 “영웅적인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어 약소국의 비애를 되새기게 한다.박종효 전 국립모스크바대 교수가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러시아의 입장에서 쓴 ‘러·일전쟁의 서막,러시아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의 제물포해전’ 가운데 열강의 움직임과 대한제국이 처했던 상황을 요약한다. 1904년 2월8일 팔미도 앞바다에서 러·일전쟁의 첫 교전이 있은 뒤 러시아의 카레예츠함은 제물포항으로 돌아왔다.당시 제물포항은 대한제국이 중립국항으로 선언했으므로 절대적 열세에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이 임박함에 따라 궁여지책으로 중립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열강이 승인하면 일본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하여,독립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러시아는 중립을 바로 승인했으나,기대했던 미국은 회피했다.하지만 일본은 중립 승인 단계에서부터 거부했다. 카레예츠함을 뒤따라온 일본함대는 제물포항에 닻을 내렸다.러시아함대의 지휘관인 바략함장 루든예프 대령은 제물포에 정박하고 있던 영국 탈보트함의 베일리 함장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당시 제물포항에는 러시아와 일본·영국 군함 말고도 프랑스의 파스칼함,이탈리아의 엘바함,미국의 빅스버그함이 머무르고 있었고,독일군함은 전날 출항한 상태였다. 베일리는 제물포에 정박 중인 외국 군함의 선임 함장 자격으로 일본함대의 우리우 제독을 만나 “중립국에서는 어느 국가의 군함도 다른 나라의 군함에 발포나 어뢰를 발사할 권한이 없다.그와 같은 행위를 하면 어느 나라 함정이든 영국군함이 발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베일리는 우리우에게 “제물포에 정박한 일본의 모든 함정에 러시아함에 대한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리라.”고 요청했다.우리우는 마지못해 동의를 하면서도 러시아함의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을 염려했다.베일리는 어느 나라 함정이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지겠다고 확언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수송선 3척에 나누어 태워온 3000명의 병력과 장비를 경비정의 보호 아래 8일 오후 5시30분부터 9일 새벽 2시30분 사이 제물포항에 상륙시켰다. 9일 오전 7시30분,우리우는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외국 함장에게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상태에 돌입했다.’는 통보장을 전달했다.러시아 군함에는 ‘정오까지 제물포항을 떠나야 하며,출항하지 않으면 오후 4시 이후 정박지에서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외국 군함들에는 ‘전투가 일어났을 때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박지를 옮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통보장을 받은 프랑스 파스칼함의 세네스 함장과 이탈리아 엘바함의 보레아 함장이 루든예프 함장을 만났고,세 사람은 다시 베일리 함장을 찾아갔다.이들은 장시간 논의했으나,별다른 방책을 찾아내지 못했다. 루든예프가 자리를 떠난 뒤 세 사람의 함장은 ‘러시아함이 출항하지 않을 경우 영국·프랑스·이탈리아 군함은 오후 2시까지 출항한다.’는 데 합의하고,이 결정을 루든예프에게 전달했다.우리우에게는 ‘일본함대의 중립 위반을 엄중히 항의한다.’는 항의서를 보냈다.세 사람의 함장은 루든예프를 동정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물었다.루든예프는 비장한 각오로 “일본 함대와 해전을 하면서 공해로 나갈 돌파구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오전 11시20분 러시아 순양함 바략함은 닻을 올리고 소형 포함 카레예츠를 앞세워 제물포 정박지를 출발했다.일본 함대는 이미 오전 7시에 항구를 벗어나 팔미도 앞바다에서 러시아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초라한 2척의 러시아 함대가 출전하자 우리우는 전투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보고 항복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러나 루든예프는 응답하지 않고 전투 깃발과 러시아해군기를 달고 전투자세로 항진해 나갔다.2척의 러시아 군함의 앞에는 아사마와 지오다,뒤쪽에는 나니바와 나다카,그 뒤로 다카치오,아카시 등 6척의 일본 순양함이 둘러쌌다.또 8척의 어뢰정과 3척의 수송선도 대기하고 있었다.팔미도에서 공해로 나가는 해로는 일본군함으로 모두 차단됐다. 두 나라 함대가 9000∼7000m로 접근한 오전 11시45분 아사마함이 8인치포를 먼저 바략함에 발포했다.이어 모든 일본 군함이 바략함에 집중포격을 가했다.카레예츠함도 일본 함대에 응사했다.바략함은 일본 함대가 사정권에 접어든 오전 11시57분 응사하기 시작했다.러시아 함대가 살아 돌아올 가망성은 전혀 없었다.일본 함대는 사전에 유리한 거점을 차지하고 있었고,무엇보다 군함 수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14대2였다.나아가 영국에서 건조한 철갑 순양함 아사마는 러시아의 바략함보다 월등한 화력과 기동력을 갖고 있었다. 바략함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그래도 바략함의 포는 아사마함의 사령탑을 강타하여 함장을 즉사시켰고,다카치함도 크게 파손시켰다.다카치함은 결국 긴급 수리를 위하여 200여명의 부상자를 태우고 일본의 사세보 해군기지로 향하던 중 2월10일 침몰했다.나니바함 작전실에도 포탄을 명중시켜 함장에 중상을 입혔다.두 나라 함대가 격전을 벌이는 동안 포성은 서울까지 들렸다. 바략함은 마침내 여기저기 구멍이 나면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좌현이 기울어졌다.루든예프도 파편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루든예프는 피투성이가 됐지만 다시 일어나 독려했고,일본의 어뢰정 한 척을 그 자리에서 격침할 수 있있다. 낮 12시45분 바략함은 전투해상을 벗어나 추격하는 일본함대에 응사하면서 제물포로 후퇴했다.루든예프 함장은 파손된 부분을 응급 보수하고 부상자 대책을 세운 뒤 일본함대의 통보대로 오후 4시까지는 다시 출항하여 해전을 계속할 각오였다고 했다.일본함대는 제물포 내항까지는 외국 함장들의 항의 때문에 추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검해보니 40%가 파손된 바략함은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했다.프랑스 파스칼함의 세네스 함장은 바략호의 참상을 이렇게 기술했다.갑판은 피바다였으며 사방에 시체와 사지가 찢어져 널려 있고 함정은 어느 곳 한 군데도 파손을 입지 않은 데가 없었다.철판은 구멍이 나고 환풍기는 부서져 있었으며,선실과 침대는 불에 타 아직도 뜨거웠다.산산이 파괴되어 브리지의 잔해는 포탄을 맞고 벌집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략호에만 포화를 집중하는 바람에 카레예츠함은 단 한 발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루든예프는 장교들과 협의하여 함대를 일본에 전리품으로 넘겨주지 않기 위하여 폭파하기로 결정했다.외국 함장들에게도 함대가 자폭할 것이라고 알렸다.미국을 제외한 외국 함장들은 러시아 생존자와 부상자를 구조하기로 합의했다.곧 의사를 태운 보트에 적십자 깃발을 달고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으로 향했다. 루든예프는 뱌략함을 폭파하면 주위의 외국 군함에 파편이 떨어질 수 있다는 영국함장 베일리의 염려에 배를 전사자와 함께 침수시켜 수장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바략함은 40분만에 천천히 바다에 가라앉기 시작했다.카레예츠함은 외국 함대의 피해가 없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폭파하여 가라앉혔다.제물포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여객선 순가리호도 불을 질러 침수시켰다. 해전 장면을 목격한 영국·프랑스·이탈리아 함장들은 러시아 해군의 투혼에 감격했다.프랑스의 파스칼함은 바략함장 루든예프와 카레예프함장 벨야예프를 비롯하여 237명의 장교와 수병을 승선시켰다.영국 탈보트함은 6명의 장교와 268명의 수병,그리고 순가리호 승무원을 태웠다.이탈리아 엘바함도 6명의 장교와 170명의 수병을 구조했다.일본함대는 이들 외국 함정이 적십자기를 게양하고 있어서 구조 장면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2월10일 서울의 알렌 미국 공사가 파블로프 러시아 공사를 찾았다.하야시 일본 공사가 러시아 공사관원의 서울 철수를 요구하고 있으며,불응하면 강제 출국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 자리에 있던 프랑스 공사대리는 전쟁 중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이해는 프랑스 공사관이 보호하겠다고 밝혔다.파블로프는 공사관의 모든 재산을 프랑스 공사관에 위탁하고 철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의 철수 소식을 듣고 파블로프 공사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나는 일본군의 포로상태에 있으며 모든 권력을 빼앗겼다.곧 전황이 변하여 러시아가 승리하리라고 확신한다.앞으로 러시아군에 적극적인 협조를 하겠다.”고 전했다. 12일 오전 8시30분 파블로프를 비롯한 공사관원과 무장해제된 공사관 경비병,그리고 러시아정교회 신부 등 민간인들은 제물포로 가기 위하여 서울역으로 향했다.도열해 있던 일본 군악대는 이별곡을 연주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이로써 러시아는 본의 아니게 대한제국과 외교를 단절했다.이후 러시아는 포츠머스조약 체결로 1906년 서울에 공관을 다시 열었으나,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없어진 만큼 공사관은 총영사관으로 격하됐다. 2월16일 외국함장들과 일본의 우리우,하야시 공사가 벌인 협상 결과에 대한 일본 정부의 승인이 있었다.일본은 프랑스 공사대리에 ‘제물포의 러시아 해군은 승선 국가 함장의 책임 아래 출항할 수 있으나,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해전에 참가할 수 없으며 상하이 이북으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각서를 요구했다.결국 프랑스 파스칼함은 러시아 공사를 비롯한 공사관원을 더 태우고 상하이에서 가까운 우순으로,영국함 탈보트함과 이탈리아 엘마함은 홍콩으로 각각 출항했다.제물포의 러·일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
  • [돋보기]프로농구 드래프트 '유감’

    한국농구연맹(KBL)의 2004신인드래프트가 열린 지난 4일 대학농구 감독들은 참담했다. 4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제자들이 취직하지 못하고 ‘백수’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드래프트에서는 사상 최저인 17명만 선택됐다.1∼2순위 지명권을 쥔 KCC와 SBS,5순위의 KTF는 1명씩만 구제(?)했다. 단 한 명의 제자도 프로무대에 진입시키지 못한 감독들은 “이제 어떡하느냐.”고 묻는 것만 같은 선수와 학부모의 눈빛을 차마 받아내지 못했다.팀의 주포이자 지난해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표였던 한 선수는 “삶이 끝난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참담함은 고졸 출신 이항범이 전체 14순위로 지명될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군대를 ‘제대로’ 제대한 168㎝의 최단신 이항범이 프로에 진출한 사건은 일반인들에게는 한편의 드라마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분노로 받아들여졌다.한 감독은 “트라이아웃에서 이항범보다 못한 선수가 누가 있느냐.”면서 “뽑는 것은 구단의 자유지만 최소한의 잣대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어떤 학부모는 “코치도 없이 맨땅에서 운동한 선수는 프로에 가는 데,합숙이다 전지훈련이다 하며 우리 아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감독은 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간승리’를 폄하하는 듯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그러나 이들의 비판은 표면적으로는 이항범의 ‘깜짝 선발’에 모아졌지만 실은 선수발굴에 인색한 구단들을 겨냥하고 있다.냉정한 프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고,엔트리와 연봉총액 상한제(샐러리 캡)에 묶인 구단의 고민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잠재력이 엿보이는 대학센터 하나 뽑지 않고,학맥과 인맥에 얽혀 선심 쓰듯 지명권을 행사한다면 ‘꿈을 주는 프로농구’는 요원한 것 아닌가. 이창구기자 window2@˝
  • 서울탱고-59년 왕십리

    ‘호랑나비’ 가수 김흥국(45)씨가 어릴 적 짝사랑했던 여자를 찾아 50리 길을 걸어걸어 숨어들곤 했던 곳.어머니 혼자 구멍가게를 하는 집안 살림살이가 어려워 50리를 떠나와서도 판자촌을 덮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짓던 곳 왕십리….‘왕십리 밤거리에 구슬프게 비가 내리면/눈물을 삼키려 술을 마신다.’로 시작하는 ‘59년 왕십리’ 노랫말 속에는 이런 사연이 숨어 있다. 너나 없이 가난했지만,지지리도 못살았던 서울 가난뱅이들의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구절마다 배였다. ●첫눈에 어찌나 예뻐 보였던지… “허허,툭하면 번동 집에서 왕십리까지 찾아갔지 뭡니까!” 장난이 심해 ‘사고뭉치’로 불리던 구멍가게 막내아들 흥국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70년 어느 날 급우가 집으로 놀러오면서 데리고 온 여자친구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지,몇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개성은 강하지만 잘 생긴 얼굴은 아닌 흥국은 그 소녀로부터 눈길을 끌기에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다. “비록 짝사랑이었지만,아니 짝사랑이기 때문이었겠지만 한눈에 반한 그 애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조선시대 서예가 김정희 선생과 이름이 똑같아 지금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짝사랑 소녀가 사는 곳이 하필이면 끝에서 끝인 행당동이었던 게 탈이었다.더구나 당시만 해도 변두리 중 변두리여서 어린 흥국은 여름엔 더위에 짓눌리고,겨울엔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꼬불꼬불 굽은 길 20여㎞를 걸어가야만 했다.가사에 이어지는 ‘옛 사랑을 마신다.’는 표현이 와닿는 대목이다.먹고 살 만큼 됐을 때 고향이 생각나듯,고교 졸업 이듬해인 79년 8월 어린시절을 더듬어 왕십리를 다시 찾아갔지만 소녀의 흔적은 세월에 묻혀 사라지고 없었다.‘(소주잔과 함께) 옛 사랑을 마신다.’라는 노랫말엔 생각만 해도 애간장 녹아나게 만드는 옛 얼굴을 떠올리며 맛본 그리움과 아쉬움이 서렸다. ●‘먹자촌’으로 탈바꿈한 왕십리 ‘정 주던 사람 모두 떠났고/서울하늘 아래 나 홀로/아아 깊어가는 가을 밤만이 왕십리를 달래주네.’ ‘호랑나비’가 뜨고 난 뒤,돼지띠 동갑인 작곡가 이혜민씨가 뜸금없는 제의를 해왔다.김씨는 월드컵 유치 뒤 축구 홍보에 나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흥국아,왕십리는 우리에게 고향이나 다름없지 않냐? ‘왕십리’ 노래를 네가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이씨는 “이제 조금은 살 만하게 됐다고 생각하니 옛 기억이 어슴푸레하게나마 되살아나 왕십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선술집 앞으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 왕십리의 밤 하늘이 너무 구슬퍼 곡을 짓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언뜻 어울리지 않을 듯한데도 1959년생 돼지띠를 가리키는 59년이란 말을 제목에 넣은 것도 가슴 뻐근해질 만큼 쓰린 회색빛 추억을 지닌 두 사람의 ‘의기투합’ 때문이다. 지금은 언제 이곳이 판자촌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고 시청 등 주요 지점으로 이어지는 버스가 쉴새 없이 다닌다.‘상왕십리’라는 새 지명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신도심이 됐다. 송한수기자 onekor@˝
  • TV드라마 '스타 모시기’ 안간힘

    “쓸 만한 배우들 영화에 다 뺏겨 더이상 드라마 못해 먹겠다.” 4일 모 방송사 제작국.서너명의 드라마 PD들이 모여 서로의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미니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 한 PD는 “요즘은 스타급 연기자를 캐스팅해야 시청률이 확보되는데 미리 점찍은 3∼4명의 배우들이 모두 ‘영화에 비해 출연료가 낮아 드라마에 관심 없다.’며 거절했다.”고 하소연했다.대하드라마를 준비중인 또 다른 PD도 “드라마의 흡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병헌,원빈 등 중량감 있는 정상급 배우의 출연이 절대적인데 ‘촬영 기간이 길어 영화에 출연하지 못한다.’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돈 안되는 드라마는 NO! 치솟는 배우 몸값 봄철 개편을 앞둔 요즘 지상파 방송사에 드라마 PD들의 입술 타들어 가는 소리가 가득하다. 주연 배우 캐스팅 작업이 한창이지만,정작 필요한 스타급 연기자들은 영화에만 관심을 가질 뿐 드라마엔 눈길조차 주지 않기 때문이다.특히 최근 한국영화가 승승장구하면서 배우에게 고액의 출연료는 물론 러닝개런티까지 보장하는 사례가 늘자 PD들의 고민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들은 영화 출연을 인기있는 수목·주말드라마나 대하 사극의 주인공으로 발탁되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했다.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배우들은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자마자 곧바로 영화로 ‘점프’한다.영화를 해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KBS 드라마 제작국 전기상 차장은 “요즘 잘나가는 주연급 배우의 경우 서너달 영화 촬영으로 3억∼4억원 이상의 개런티를 보장받는다.”면서 “1회당 최고 200만원이라 쳐도 TV 16부작 미니시리즈에 출연해 봐야 고작 3200만원밖에 손에 쥐지 못하니 누가 드라마에 관심을 갖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엔 외주 제작사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면서 드라마 ‘수요’에 비해 배우의 ‘공급’이 더욱 부족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이에 따라 연기자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다.얼마 전 송혜교는 SBS ‘천국의 계단’ 후속으로 방영되는 ‘햇빛쏟아지다’에 출연 계약을 하면서 회당 1500만원의 개런티를 약속받았다.드라마가 16부작이니 총액으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2억 4000만원+α가 된다.앞서 신현준도 ‘천국의 계단’에 출연하면서 회당 1250만원을 받았다. ●영화로 가면 다시는 오지 않아 영화의 고액 개런티에 맛을 들인 대부분의 배우들은 드라마 복귀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그동안 대하 드라마 캐스팅 1순위로 꼽히던 배우 유동근의 경우가 그 예다.그는 사극에서 인기를 끌고 ‘가문의 영광’에 출연한 뒤 “드라마로 꼭 복귀한다.”고 공언했었다.하지만 약속과 달리 억대의 개런티를 약속받고 곧바로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에 출연했다.이후에도 오는 3월 개봉 예정인 ‘어깨동무’에 거액을 받고 계약했다.장동건,한석규,최민수,최민식,유오성,고소영,전도연,박신양,이정재 등도 영화로 간 뒤 드라마로 복귀하지 않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PD는 물론 방송사 전체가 합심해 ‘스타 모시기’에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해졌다.MBC의 한 PD는 “상당수 드라마 PD들이 배우 집으로 꽃과 선물을 보내는가 하면,영화와 겹치는 일정 조정은 물론 최고의 출연료 보장 등 스타 대접하기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털어놨다.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방송사들이 자사 드라마 출연 스타 연기자를 붙잡아두기 위해 수십개의 상을 남발해 시청자들의 비난을 산 것도 같은 맥락의 해프닝이다. 이영표기자 tomcat@˝
  • 천안 용정리 양계마을 르포

    조류독감이 발생한 충남 천안 풍세면 용정리 양계마을은 29일 긴급 투입된 방역요원들이 닭을 살처분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다.그러나 방역작업에 허술한 구석이 눈에 많이 띄었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 마을에서 처음 발견된 신모씨의 산란계 농장 주변 500m 지점에는 빨간색 줄이 쳐져 있었다.양계농가 11가구와 양돈농가 2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흰 방역복을 입은 시 축산과 직원 50여명이 외부인을 통제하며 방역에 한창이었다.우체원들도 통제선 밖에서 방역요원에게 우편물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28일부터 닭 21만 4000마리 매립 방역요원들은 28일부터 마을의 닭 21만 4000여마리를 바이러스 소독 효과가 있는 생석회와 함께 마대자루에 담아 3,4m 깊이의 구덩이에 파묻고 있었다. 그러나 급하게 방역작업을 하는 탓인지,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다.초중학교 학생들은 별다른 소독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삼삼오오 마을 바깥의 학원을 다녀왔고,일부 주민은 장을 보러 통제지역을 벗어나기도 했다. 특히 닭의 매립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방역당국이 침출수의 안전성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바람에 살처분이 이틀이나 미뤄졌다.또 닭을 묻기만 할 뿐 밀봉하지 않아 조류독감이 재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됐다. 게다가 통제구역 인근 2차선 도로에 대한 방역작업은 이날 오후에야 시작됐다.이는 차량을 통해 바이러스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방역요원이나 주민들 가운데 방역용 마스크 대신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는 일반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이조차 착용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뒤늦은 방역작업…재발 가능성 주민들은 인체 감염의 불안감과 유일한 수입원인 닭을 파묻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풍계면 용정2리의 한 주민은 “아직 건강에 문제는 없지만 동남아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용역직원과 함께 닭을 마대자루에 담던 양계농민은 “소중한 자식을 죽이는 것 같은 심정”이라고 했고,다른 농민은 “우리는 피해자인데 마치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보는 사람도 많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양계장을 운영하는 박정길(59·용정 2리)씨는 “닭을 묻으면 보상이 나오긴 하겠지만 노계 한 마리에 100원을 받아서 어디에 쓰겠느냐.”면서 “아예 이번 기회에 양계를 그만두려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그는 “빚이 없어서 그만둘 수라도 있지만 빚을 진 주민들은 그만둘 수도 없고 그저 발만 구르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 김효섭기자 newworld@
  • 서울 송파구 문정동 무허가 ‘개미마을’ 르포/“개발도 좋지만 우린 어디로 가나”

    “돈 있으면 여기 들어왔겠어? 개발도 좋지만 어디로 가란 말이야.” 김정임(91) 할머니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신세타령부터 한다.할머니는 서울시가 오는 2007년까지 대규모 상업단지로 조성하겠다며 청사진을 내놓은 송파구 문정동 무허가 비닐하우스촌,‘개미마을’ 주민이다. 김 할머니는 “살 곳을 찾아 헤매다 이곳에 들어온 지도 10년이 넘었다.”면서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성화도, 이사할 필요도,방세를 낼 걱정도 없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 누워있고 어머니가 비닐하우스 농사일을 도와 5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박형진(12)군은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집이 물에 잠기기 일쑤”라면서 “여기가 개발되면 우리집도 새로 지어주나요?”라고 물었다. ●비닐하우스촌 5곳에 350여 가구 1000여명 거주 서울시가 올해 문정지역에 대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부터 토지보상 및 건축공사에 착수한다고 하니,김 할머니를 비롯한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당장 내년부터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 판이다. 문정지역 비닐하우스촌은 97가구 284명이 거주하는 개미마을을 비롯해 새마을,문정작목반,장지마을,장지작목반 등 5곳에 모두 350여가구 1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무허가 건축물 이주 지원 못받아 문제는 대부분 생산녹지(농토)인 이 지역에 무허가로 만든 비닐하우스의 경우 거주자들에 대한 이주지원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시행자가 토지 및 허가건물 소유자에게 이전비·이사비·이주정착금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무허가 건물이나 비닐하우스와 같은 무허가 가설건축물은 지원대상이 아니다. 서울시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을 개발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이주지원 여부를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면서 “다만 해당 구청에 등재된 무허가 건물은 허가건물에 준해 보상할 수 있어 이에 대한 해석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송파구청 관계자도 “무허가 건물의 경우 개발에 따른 보상을 보다 엄격히 적용해 가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소외계층에 임대주택 지원자격 줘야” 이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김한수 개미마을 자치회장은 “도시개발사업이 주로 저소득층이 사는 낙후지역에서 이뤄지는 만큼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문제를 법적으로 명시해 둘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이주비 몇푼보다 안정적인 삶의 보금자리를 지원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에 대한 지원자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한국배구에 푹 빠졌어요/호주서 배구유학온 마이클 클리시

    “기회가 된다면 한국 배구코트에 서고 싶습니다.” 지난 20일 배구 V-투어 3차대회 대학부 경희대-한양대의 경기가 열린 인천 도화체육관.코트 엔드라인 바깥쪽 광고판 뒤에 선 벽안의 한 청년이 연신 팔몸짓을 해댄다.총알 같은 속공이 터질 때마다 놀라운 듯 탄성을,대포알 같은 백어택이 블로킹에 막힐 때면 아쉬운 듯 한숨을 토해내는 모습이 열성팬의 모습 그대로다. 경희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마이클 클리시(사진·19·호주)는 한국 배구를 배우고 싶어 태평양을 건너온 호주의 배구선수.지난해 8월 경희대 배구팀의 호주 전지훈련 당시 연습경기에 뛴 그는 한국 배구의 파워에 푹 빠졌다.슈퍼마켓의 부점장으로 차곡차곡 비행기삯 모으기를 4개월.고교를 졸업한 그는 지난달 26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거처는 경희대 수원캠퍼스의 선수단 합숙소.가끔씩은 김찬호 감독의 집에서 숙식을 하기도 한다. 누나만 둘인 막내 클리시는 집을 떠난 직후 세상에 나왔을 조카의 얼굴이 그립기도 하지만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아침 저녁으로 3시간 이상씩 치러야 하는 강훈.“초등학교 때 농구로 시작,배구만 5년째지만 고교와 뉴사우스 웨일즈주 대표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연습이라야 고작 일주일에 세 번뿐이었다.”면서 “한국배구가 호주보다 월등하게 앞서는 이유가 강한 훈련 때문인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찬호 감독은 “꾀부리려면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집에 돌려보낼 땐 한국배구의 그 무엇이라도 쥐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올 4월 시드니대학에 입학,호주배구리그(AVL) 코트에서 뛰게 될 클리시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코트에도 서고 싶다.”면서 “V-투어 경기장이 선수들의 열기로 후끈하지만 이빠진 듯 비어 있는 관중석은 보기에 좋지 않다.”고 따끔한 한마디도 곁들였다. 인천 최병규기자 cbk91065@
  • 폭력남편 살해 아내·딸 호흡기 뗀 아버지 “法은 관대했지만 마음은 늘 감옥에…”

    가치 상실과 혼돈의 시대를 맞아 우리의 가정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가정폭력과 불치병 치료에 따른 가계파탄에서 헤어나기 위해 남편과 딸을 살해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이들은 역설적이지만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절규한다.이웃 중의 하나일 수 있는 이들의 가슴속에 담긴 고통과 회한을 들어보며 다시한번 사회와 가족의 뜻을 되새겨본다. “그냥 언젠가 하느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이제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술을 마시고 자신과 두 딸의 생명을 위협하던 남편을 살해한 노모(46)씨와 희귀병을 앓던 딸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 숨지게 한 전모(50)씨.지난 15일 이례적으로 둘다 집행유예를 법원에서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풀려났다.외부와의 일절 연락을 끊었던 이들은 18일 기자와 만나 간신히 입을 열었으나 여전히 마음의 감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법원은 노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전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들이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고 범행경위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숙박시설과 집 등으로 돌아온 이들은 그나마 가정에 대한 지푸라기 같은 미련과 의지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고통의 나날 계속되는 ‘비극의 가정’ 노씨와 두 딸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지난해 10월 사건 이후 세상 사람의 눈을 피해 이들은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서울 은평구 쉼터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어렵게 접촉한 큰딸 최모(24·전문대 졸업 예정)씨는 “우리 세 식구는 모두 심신이 피폐한 상태”라며 자신들을 돌봐주고 있는 원 베네딕트(37)선교사를 만나보라고 했다.원 선교사는 2001년부터 청소년 선교재단을 통해 최씨와 동생(22·대입 준비중)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들을 위로해왔다. 원 선교사는 “두 자매는 사건 뒤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고,노씨는 정신적인 고통과 지병인 자궁암·협심증으로 구치소에서 사경을 헤맸다.”고 전했다.노씨가 수감된 석달 동안 두 딸은 하루도 빠짐없이 구치소 면회를 다녔다.노씨는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지만치료비는 물론 생활비조차 막막하다.유일한 재산인 집을 내놨지만 소문 탓인지 사려고 나서는 이가 없다.친척들도 ‘남편과 아버지를 죽였다.’며 인연을 끊었다. ●‘아버지가 쫓아오는 꿈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최씨가 그동안 원 선교사에게 보낸 수십통의 이메일에는 가족의 참혹한 삶이 담겨 있다.“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쉼터로 처음 도망간 날,아버지가 칼을 들고 쫓아오던 꿈이 갑자기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랐다.그냥 다 놓고 쉬고 싶다.”(2003년 4월4일) “‘다 죽이고 나도 죽으면 그뿐’이라는 아버지의 눈빛이 너무 무섭다.”(5월16일) “화장품이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두껍게 바르면 아버지께 엊어맞은 눈밑의 멍이 잘 안보인다.”(7월22일)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썼다가 스스로 놀랐다.”(9월29일)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다.”(10월9일)….10월 26일 새벽,어머니는 술에 취해 두 딸을 칼로 찌르겠다고 위협하는 남편을 흉기로 살해했다. 원 선교사는 “사건 발생 전 법원이 남편에게 접근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면서 “남성중심적인 법과 의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이런 불행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이 사건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노씨의 큰딸은 다음달 전문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 중이다.둘째딸은 지난 연말 대입 수능을 치렀다.이들 자매는 “우선 어머니와 가정을 지키고,앞으로 언젠가,누군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래도 희망은 역시 가족” 서울 용산구 후암동 전씨의 집 앞에는 쓰레기봉투에 담긴 수북한 담배 꽁초와 빈 소주병이 널려 있었다.몇차례나 거절하다 겨우 말문을 연 전씨는 “아직도 내가 딸을 왜 죽여야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느냐.”면서 “더 이상 세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떨궜다. 전씨는 “5년 넘게 딸아이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아내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돼버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퀭한 전씨의 얼굴에는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지난 98년 15살의 딸은 경추탈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택시운전을 그만두고 집까지 팔아 2억여원을 치료비로 쏟았지만,딸은 회복될 가능성이 없었고 빚만 1억원 가까이 지게 됐다.지난해 10월 12일 전씨는 딸의 인공호흡기 전원을 직접 껐다. 전씨는 기자와 헤어지면서 “가족을 죽여야만 했던 심경을 어떻게 얘기한들 세상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고 되뇌었다. 유영규 채수범기자 whoami@
  • [나의 건강보감] 국민소리꾼 신영희 씨

    “득음은 먼놈에 득음이라우?죽을 때꺼정 득음,득음 허다가 말겄제.”우렁우렁한 우조와 애절한 계면조,12박 중모리에서 4박 휘모리까지,그리고 동·서편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지만 환갑을 넘긴 그는 지금도 제 목으로 내는 ‘소리’가 성에 안찬다.그래서 나이 들수록 ‘명창’이라는 찬사가 부끄럽고,‘국민소리꾼’이라는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오메,저거이 먼 소리랑가.’싶어 턱,하고 오금이 꺾인다.“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내가 소리꾼 아부지헌티 받은 것은 이것이 전부라 따른 일 생각한 적도 고,그래서 이것 아니믄 내가 어치케 험한 세상 살겄냐 싶어 젊어서는 20년 30년을 미친년겉이 소리 소리 토했어도 득음은 숭내도 못내봤소.” ●소리꾼 아버지 반대 무릅쓰고 시작 명창 신영희(63).그는 소리꾼이다.그것도 ‘내가 난데…’하고 수염만 훑는 ‘방안풍수’가 아니라 전국 팔도 소리가 있어야할 곳이라면 불원천리 뛰어가는 소리의 전령이다.“세상이 그란다는디 말해 뭣하겄소만 사람이 지 뿌리럴 모르고으게 사람노릇 허겄소.요새 젊은 사람덜 신식노래 좋아허는 거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뭣이 우리 껏인지는 알어야 안쓰겄소.” 영화 ‘서편제’와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박동진 명창의 CF,그리고 그가 TV에서 개그맨 김미화씨 등과 함께 엮은 ‘개그 소리’를 묶어 ‘소리 중흥의 3대 사건’이라고 일컫는다.이렇듯 그는 소리의 대중화에 젊은 시절을 한 허리 뚝 떼어내 바쳤다. “소리,소리 말도 마쑈.나야 내가 좋아서 했제마는,참말로 피눈물 나는 세월 안살믄 소리 못허요.암만 웃음서 해도 소리는 한(恨)이 내는 것 아니요.”열한 살 나던 해,아버지한테 소리를 배우던 젊은 소리꾼이 한 대목 고비를 못넘기고 꺽꺽거리자 그는 대뜸 방문을 열고 들어가 ‘들은 풍월’로 흥부 매품팔러 가는 대목을 뽑아 넘겼다.“그때 울아부지가 내 소리럴 듣고넌 후∼,허고 한숨을 쉬시면서 고개럴 푹 꺾습디다.그때만 해도 여자소리꾼은 기생 취급하던 시절인디,어느 부모가 지 새끼 소리를 시킬라고 했겄소.”그런 아버지를 어머니가 설득했다.“기생이든,말든 명창되믄 안되겄소?”해서 겨우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소리꾼의 삶을 시작했다.그의 아버지 신치선씨는 진도 어름에 소문이 짜한 소리꾼이었다.그는 소리꾼의 끼를 타고났다.아버지는 그의 손을 끌고 수백리길을 걸어 소리품을 팔러 다녔으며,가는 곳마다 “그놈,한 소리 허겄다.”는 말을 들었다.이듬해,‘소리 한번 원없이 해보겠다.’고 작정한 가족은 목포로 거처를 옮겼으나 신식 바람에 살랑거리는 도회는 소리꾼에게 결코 녹록한 삶터가 아니었다. “유달산 아래 죽교동에서 살었는디,새벽 4시 통금 사이렝만 울리믄 털고 일어나 후적후적 유달산을 타고 올라갔어요.거그 유선각 아래 쬐끄만 바위굴에 들어앉아 바위등을 두들기며 6∼7년 소리연습을 했더니 목이 자리를 잡습디다.”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선머슴처럼 자라 몸 하나는 실한 그였지만 허튼 공력으로 명창이 될 수는 없었다.열 여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잔칫집,소리판을 전전해 심봉사 젖동냥 하듯 큰오빠 대학까지 공부시키면서도 김상룡 강도근 장월중선 최일환 박봉술 김준섭씨 등 당대의소리꾼은 모두 찾아다니며 내공을 쌓았다.서른 한살나던 73년에는 춘향가 세종제를 완창하더니 마침내 그 이듬해 명창 김소희씨를 만나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그가 요새 선보이는 창법은 바로 김소희씨의 만정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시간 연습하다 보면 목에 통증… 똥물 접해 “천하는 사람도 앉아서는 득도 못허요.소리꾼 치고 골병 안든 사람 봤소?나도 한창 클 때 주린 속에 하루 열 대여섯시간씩 소리연습을 허고 나면 목울대며 배가 띵띵 붓고 아퍼 내 살인디도 내가 만지덜 못허겄습디다.그때 말로만 듣던 똥물 첨 묵어봤소.”아무리 몸에 좋다 해도 남의 똥은 엄두가 안나 자신의 똥을 우려 마셨다.소리꾼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옹구그럭에 물붓고 그걸 푼 뒤 하루밤쯤 가라앉혀 우러난 물을 마시는디,소리로 골병든 어혈 푸는데는 그만입디다.” 소리는 단전에 기를 모아 내뱉기 때문에 기력이 달리면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그가 지금도 반신욕으로 항상 단전을 따뜻하게 지키고 뜀뛰기로 기력을 키워가는 이유다.“사람마다 목욕법이 다르겄지만,나는 반신욕과 욕탕 뜀뛰기가 좋습디다.”더운 물에 하반신을 담그고 20∼30분쯤 지나 몸이 덥혀지면 간단한 맨손체조로 몸을 유연하게 한 뒤 곧장 냉탕에 들어가 제자리뛰기를 하는데,뛰는 횟수가 한번에 3000번 가량 된다.뜀뛰기를 하다보면 금세 더워져 몸이 오그라 붙는 찬물 속에서도 차갑다는 느낌을 못받는다.“그 운동이 장(腸)을 정리하는 데는 그만이요.소리가 배에서 나는디,장이 시끌벅적허믄 좋은 소리가 나올 턱이 지요.” ●‘똥물 마셔 목 틔우기' 소리꾼 통과의례 소리꾼은 물론 방송일을 같이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식도락도 그가 세상을 ‘재미나게’ 사는 방법.“식도락인지는 몰라도 음식은 꼭 가려서 묵지요.조미료로 맛내는 집은 두번 걸음을 안허요.나도 손끝이 매워 음식은 제법 맹근다는 말 듣고 살었지요.”이런저런 밑반찬에 농어·민어매운탕과 게장 등 그의 손맛은 소문이 나 전통음식책까지 펴냈을 정도다.또 사철 집에 홍어가 끊이지 않아 부군인 서석주씨도 “집사람음식 아니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 지난 81년,그는 월정사로 탄허스님을 찾아가 심청가 중 심청이 유언하는 대목으로 ‘소리공양’을 했다.그의 절창에 노스님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더니 그에게 무현(無絃)이라는 아호를 내렸다.그후,탄허스님이 입적하기 직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생전 처음 병실을 찾아 소리를 하기도 했다.이렇듯 ‘소리밭’에 한 줌 거름으로 생애를 묻고 살지만 그는 아름다운 가인(歌人)이다.그래도 ‘소리’와 ‘웃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강성남기자 snk@ ■소리꾼과 똥물이야기 사실,목을 틔우고 전신의 어혈을 풀어내기 위해 똥물을 마시는 일은 예전 소리꾼에게 통과의례 같은 일이었다.설령 똥물을 안마신 사람도 엄두가 안났을 뿐 몰라서 안마신 경우는 없었다.“소리허다 보믄 목이 띵띵 붓고 잠겨 피를 토하기도 하고,뱃거죽이 붓고 땡겨 ‘이러다가 죽는 것 아닐까.’싶을 때가 있습디다.그때 나도 똥물을 마셨지요.” 지금이야 의사 많고 약이좋아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예전에는 ‘매맞아 생긴 장독(杖毒) 푸는데는 똥물이 최고’라고 했다.일종의 민간요법이다.그는 “그래도 남의 똥은 생각도 못했고 내 걸 썼으니 좀 낫지요.그냥 물에 풀어 말갛게 가라앉은 웃국을 마셨는데,전신에 후끈 열이 돌고 땀이 배어 이불 뒤집어쓰고 한숨 자고 나믄 소리로 골병든 삭신이 정말로 말짱해집디다.” 민간에서는 대나무 마디를 통째로 잘라 돌을 매단 뒤 잘 삭은 똥통 속에 담가 뒀다가 며칠 뒤 꺼내 속에 고인 노란 물을 마셨다.더러는 소줏병 주둥이를 솔잎으로 틀어막아 거르거나,묵은 똥통을 작대기로 휘저어 곰삭은 아래쪽 똥물을 퍼올린 뒤 고운 무명베로 걸러 마시기도 했다. 판소리 연구가인 군산대 최동현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주로 인분을 사용했으나 더러는 개똥을 사용하기도 했으며,이런 방식이 목을 다치기 십상인 소리꾼에게 약이 됐던 게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심재억기자
  • “의리·진실 사이 고민”강삼재, 安風항소심서 피력

    “진실을 밝히든지,감옥행을 자처하든지 머지않아 결정하겠습니다.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지난 96년 4월 15대 총선 당시 안기부 예산 940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전용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은 16일 항소심 4차 공판에 참석,침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정인봉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강 의원에게 돈을 전달한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발표한 지 4일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노영보) 심리로 열린 이날 ‘안풍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최근 심경을 밝혀 달라.”는 이정락 변호인의 요청에 강 의원은 심호흡을 한 차례 한 뒤 “언론에 기사가 나간 뒤 잠 한숨 못자고 있다.”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에서 유죄를 받은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그 당시 모든 것을 안고 감옥에 가겠다고 결심했다.내가 아는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기로 각오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그러나 인간적 의리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왜곡,국민과 역사 앞에 커다란 배신행위를 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두 손을 맞잡은 채 한숨을 거듭 내쉰 강 의원은 “수만가지 생각이 교차해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고 있다.”면서 “정리할 시간을 주면 진실을 밝힐지,스스로 감옥행을 자처할지 여부를 머지않아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2년8개월 동안 진행된 1심 재판부에서 굳게 입을 닫았던 강 의원의 태도가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강 의원은 1심에서 징역 4년,추징금 731억원을 선고받았다. 변호인단이 “다음기일에 밝힐 수 있느냐.”고 재차 묻자 강 의원은 “조속한 시기에 심경을 정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재판부는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사실을 진술해야 한다.”면서 “개인적 의리 때문에 역사적 진술과 정치 발전을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강 의원은 “정 변호사가 언론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겠다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사전교감설’을 일축했다.또 “당시 정치자금으로 940억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안기부 예산인지전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날 법정에는 정인봉 변호사는 물론 한나라당 홍준표·이주영 의원 등 7명이 변호인으로 출석했다.방청객 50여명이 법정을 가득 채웠다.공판시작 10분전,카메라 세례 속에서 법정에 출석한 강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법정에서 뵙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재판이 시작되기 전엔 눈을 감은 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정은주기자 ejung@
  • 주말매거진 We/실미도&무의도

    영화 ‘실미도’가 난리다.400만이니,500만이니,연일 관객수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북파 공작을 목적으로 구성됐던 684부대원들의 난동사건을 다룬 영화 실미도.쉴 틈 없이 몰아치는 스펙터클한 영상 속에선 장마때의 파란 하늘처럼 살짝살짝 비치는 촬영 세트장의 주변 경관이 관객들에게 잠시 한숨을 돌리게 한다. 실미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옆의 무의도에 거의 붙어있는 작은 무인도.684부대는 실제로 무의도에서 대부분의 훈련을 받았고,실미도에선 부분적인 훈련만 받았다고 한다.춤추는 무희의 옷처럼 아름답다는 무의도,투명하고 평화로운 해변이 인상적인 실미도를 찾았다. 실미도는 무의도 실미해수욕장과 마주하고 있다.썰물 때 해수욕장과 실미도 사이에 거대한 갯벌과 모래톱이 드러나 2시간가량 길을 내준다. 갯벌은 굴 천지다.크고 작은 돌엔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모래사장은 거의 굴껍데기가 쌓여 층을 이루고 있다.갯바위를 밟아 비트니 껍데기가 깨지며 엄지 손톱만한 굴 알갱이가 드러난다.뽀얗게 살이 오른 굴 맛이 참 신선하다. 뾰족한 돌멩이를 집어 본격적으로 굴을 까먹으려고 했으나,너무 힘들어 포기했다.인근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굴을 채취하고 있다.갈고리로 굴을 깨서 담는 솜씨가 순간 부럽게 느껴진다. 무의도와 이어진 실미도 해변을 걷다 보니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다.영화 ‘실미도’ 촬영 세트장이 있던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다.하지만 아무런 표지판도 없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볼품없는 소나무들과 잡목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올라 정상에 서니 반대편으로 아담한 해변이 펼쳐져 있다. 하얀 모래사장과 양 옆의 갯바위들,투명한 바다가 어우러져 제법 아름답다.갯벌 때문에 혼탁한 대부분의 서해안 해수욕장과는 딴판.갯바위엔 역시 굴껍데기가 빈틈없이 붙어 있다.이곳이 영화 ‘실미도’ 촬영세트장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모두 철거되고,지금은 막사가 들어섰던 터,굴러다니는 모래주머니,나무계단 등이 촬영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다.서둘러 길을 되짚어 무의도로 향했다.시간을 지체하면 자칫 혼자 섬에갇혀서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행선지는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오전에 배를 타기 전 매표소 직원이 “요즘 뜨고 있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 세트장이 있다.”며 꼭 가보라고 했던 곳이다.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서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가면 먼저 오른쪽으로 실미해수욕장 가는 길이 나오고,그대로 지나쳐 5분 정도 더 가면 우측으로 하나개해수욕장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선착장에서 10분 정도 소요. 해수욕장 앞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 입구 주변에 횟집들이 많은 것을 보니 한여름엔 제법 피서객이 많이 몰리는 듯하다.하지만 겨울 한가운데 선 지금은 주차장 한 편에 대여섯대의 승용차가 서 있을 뿐이다.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여주인공 ‘정서’(최지우)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으로 나오는 세트장은 해수욕장 남쪽 끄트머리 언덕 위에 서 있다.꼭 동화속 장난감처럼 만들어진 별장이 시원하게 펼쳐진 해변과 잘 어울린다.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막상 별장 안마당에 서서 보는 해변 풍광은 그저 평범할 뿐이다.세트장 방문객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데이트족들.드라마 인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저마다 세트장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서 갖은 포즈를 취한다. 세트장에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면 무의도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일명 ‘환상의 길’로 불리는 곳.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닳아 생긴 기암괴석과 수직절벽 사이로 자연분재 서식지라고 이름 붙여진 소나무 군락지,사자바위,총석정 등 자연의 아름다운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해수욕장에서 왕복 1시간 남짓 걸린다.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호룡곡산(244m) 산행에도 나서보자.나지막하지만 경사의 완급이 적당하고 곳곳에 조망대와 쉼터가 갖춰져 있어 아기자기한 섬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하나개해수욕장 입구 오른쪽에 세워진 ‘호룡곡산 산림욕장’이란 큰 푯말을 따라 들어가니 소나무 숲을 지나 등산로가 시작된다.졸참나무,신갈나무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이따금 꿩이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라 깜짝 놀라게 한다. 호랑바위,신선약수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끝없이 펼쳐진 서해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이 등줄기의 땀을 식혀준다.동쪽으로는 서해의 관문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하산길은 마당바위∼부처바위∼환상의길∼하나개해수욕장 코스로 잡았다.총 2시간 정도 걸렸다. 실미도(인천)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핵심주역 3인도 역사의 뒤안길로… 실미도 특수 부대의 핵심 주역은 김형욱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부장,이철희 중앙정보부 제1국장,이후락 후임 부장 등 3인.김 부장은 1968년 1·21 사태 직후 창설을 지시했고 이 국장은 세부 프로젝트를 입안한 뒤 부대 운영과 훈련 지원 등을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부장은 1971년 8월 실미도 사건이 터진 뒤 해체를 지시했다. 특수 부대원 31명에 대한 훈련은 대북 첩보 부대인 공군 2325 전대 209 파견대에서 3년4개월간 극비리에 시행됐다.작전명은 ‘684’.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은 “실미도 사건이 터졌을 때야 부대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할 만큼 실미도 부대운영은 중앙정보부 주도로 극비리에 이뤄졌다. 세 사람 가운데 김형욱씨는 법원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고 이후락씨와 이철희씨가 생존해 있으나 역사적 요구에도 좀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후락씨는 1년전 서울 반포에서 경기 하남시 감이동 동서울골프장 입구의 별장으로 이사를 했다. 지난 11일 동네주민 K씨는 “얼마전 중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집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띈다.”면서 “처음 이사올 때는 마을 행사에 기부금도 내놓고 했는데 요즘에는 윷놀이 행사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의 별장은 대지 500평에 건평 250평 규모로 울타리를 정원수가 죽 둘러싸고 있었다.주변 야트막한 야산까지 포함하면 별장 지대가 족히 2000평은 돼 보였다.드나드는 사람은 부동산을 봐주는 O씨나 바둑동무를 해주는 예비역 장성 Y씨 외에는 거의 없다.요즘 서울 모병원에서 안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다음달 23일 파란과 곡절의 만80살 생일을 맞게 된다. 김문 기자 km@ ●가는 길 올림픽대로 또는 강변북로를 타고 김포공항 방면으로 가다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빠진다.영종대교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용유·무의도 이정표가 나온다.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빠져서 10여분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잠진도선착장 가는 길이 나오고,이 길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선착장이다.선착장에선 무의도행 배가 아침 7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있다.물때에 따라 하루 2∼3시간씩 결항되므로 미리 결항시간을 알아보는 게 좋다. 뱃삯은 승용차를 가져갈 경우 운전자 포함 2만원.동승자는 1인당 2000원.무의도내에 실미해수욕장,하나개해수욕장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으나 운행시간이 일정치 않아 이용하기 불편하다.실미도는 무의도 실미해수욕장 앞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들어가야 한다.문의 무의도해운(032-751-3354). ●숙박 하나개해수욕장,실미해수욕장 주변에 민박집이 많다.대부분의 식당에서도 민박을 겸한다.요즘은 성수기가 아니라서 2만∼3만원이면 언제라도 방을 구할 수 있다.문의 하나개해수욕장(032-751-8866). ●무의도 낚시 실미해수욕장에선 인근 갯바위에 앉아 바다낚시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우럭,망둥어,광어,전어,숭어 등이 잘 올라온다.배낚시(1인당 5만원)도 가능하다.문의 실미해수욕장 번영회(032-752-4466). ■싱싱한 굴밥 꼭 맛보세요 무의도와 실미도 해안에선 전혀 과장됨 없이 발에 차이는 게 굴이다.요즘은 굴이 가장 맛있는 계절.또 겨울엔 쉽게 변질되지 않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무의도에 들어서면 선착장 주변은 물론 실미,하나개해수욕장 인근 대부분의 식당이 굴요리를 낸다. 식사로 싱싱한 자연산 굴을 맛볼 수 있는 대표 메뉴는 굴밥정식.승선권 매표소 직원이 추천해준 하나개해수욕장내의 ‘번영회식당’을 찾았다. 주문한 지 20분쯤 지나 나온 것은 뚝배기에 지은 굴밥과 굴국,굴회,굴전,굴무침.이렇게 다양한 굴요리만으로 밥을 먹기도 처음이다. 이곳 굴밥은 우선 그 화려함이 눈길을 끈다.뚝배기에 지은 밥 위엔 뽀얗게 익은 굴과 함께 대추,무,당근,호박씨,해바라기씨,검은깨,콩나물이 어울려 입맛을 다시게 한다. 잘 섞은 밥을 작은 대접에 덜어 양념간장을 쳐 비볐다.향긋한 굴냄새와 고소한 견과류 맛이 어울린다.굵게 썬 무채와 굴을 넣고 끓인 국도 제법 시원하다. 생굴을 몇가지 야채와 양념으로 버무린 무침은 매콤달콤한 맛이 별미.두툼하게 지진 굴전은 술안주로 잘 어울릴 것 같다. ‘굴밥정식’은 1만원.생굴과 굴전,굴무침을 빼고 굴밥과 몇가지 기본 반찬만 차린 상은 8000원.(032)752-7250. 임창용기자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4)일년내내 일해도 남는게 없어-어느 소득작목 농가의 눈물

    시쳇말로 ‘골병’이 든 마을이 있다.수십년씩 농사일에 매달린 농사꾼치고 신경통이 없을 리 만무지만,무릎 관절통에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유난히 많다.집안에는 몸에 붙이는 파스가 통째로 있고,머리 아플 때 먹는 항생제는 농가의 필수품이다. ●쥔 건 없고 몸만 망가져 전남 보성군 조성면 귀산리 수당·귀산마을.하우스(온상)를 가장 먼저 시작한 하우스 ‘원조마을’이라고 소문난 곳이다.주민들은 “아이고! 쥔 건 없고 몸뗑이만 망가졌지.다 하우스병이제,뭐.”라며 스스로를 진단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30여 농가는 여전히 방울토마토가 주 소득원이다.마을에서는 1988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방울토마토를 재배했다는 자부심이 남다르다.당시 방울토마토를 이고 지고 서울이나 광주로 가서 팔 때면 “산에 맹감 가져 왔느냐,산딸기냐.”며 조롱당하기도 했다. 68년 대나무를 꽂고 볏짚으로 만든 거적을 덮던 시절부터 하우스에서 굵은 토마토를 수확했다는 김용래(63·수당마을)씨는 “낮에는 어지러워서 온상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했다.옆에서 술잔을 들이키던 박영수(64)씨는 “온상에서 일하다가 중간중간에 바깥 바람을 쐬러 나와야 가슴이 안정되지라우.”라고 거들었다. 이 집에 놀러온 옆집 할머니는 “젤로 뒷머리가 땡겨 진통제를 많이 묵은디.다 아는 병인께 아파도 약국에 가서 파스나 사다가 붙이고 말지 뭐.”라며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병으로 여겼다.동네 골목에서 만난 70대 할머니에게 “하우스 하시냐.”고 하자 “아이고 온상 일에 몸서리가 쳐 오래 전에 때려치웠다.”며 뒤도 안돌아보고 갔다. ●신경통등 일년 내내 잔병치레 하우스 일이라는 게 눈뜨면 나가고 해진 뒤 보온덮개로 갈무리를 해야 끝난다.담배도 안피우는 데 가래에다 잔기침으로 고생한다는 귀산마을 이장 임영수(48)씨는 “4월만 지나면 하우스 안은 30∼40℃로 올라가고 높은 습도로 후텁지근해 그야말로 찜통”이라며 “주민들 가운데 기관지가 안좋고 감기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옆마을인 수당마을 이장 임영모(47)씨는 “어머니(68)도 하우스에만 가면 얼굴이 벌게지고 몸에두드러기 같은 게 난 적이 있다.”면서 “작물 이랑 사이에서 왼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하다 보니 무릎 관절이나 팔다리가 쑤시고 아픈 게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토마토 농사 ‘달인’이라고 치켜세운 오근호(57)씨는 “원래 내가 젊어서부터 밥을 많이 묵는 밥 호랭이였는디,아 요즘에는 하루에 한 공기도 못먹는당께.”라며 오히려 “그런 내가 어째서 달인이냐?”고 반문했다.마을에서 가장 젊은 정평오(38)씨는 “9년째 하우스를 하는데 빚만 1억원을 져 돌파구를 찾으려고 5년 전에 토마토에서 부지화(한라봉)로 작목을 바꿔 올해 첫 수확을 한다.”며 한 개를 따 맛보라고 권했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연대보증 도미노 파산… 마을 쑥대밭 “그 사람이 호의호식하다 부도났으면 원망이라도 할 텐데….” 오이 작목반 동료의 보증을 섰다가 그의 빚까지 떠안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 지전리 김학도(45)씨는 하루에도 수십번 이렇게 탄식한다.그는 “소금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던 사람이라 욕할 수도 없다.”며 “악하게 산 것도 없는데 웬 천벌이냐.”고 한탄했다. 김씨가 한모(53)씨에게 보증섰다가 떠안은 빚은 2000만원.한씨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하던 2500평짜리 하우스 시설을 김씨에게 넘겼지만 4년째 놀리고 있다.자기 하우스 1500평을 운영하는 것조차 벅차기 때문이다.돈이 안되는 하우스를 물려받았을 뿐 땅은 남의 것이어서 매년 370여만원의 임대료만 물고 있다. 김씨 등이 오이 작목반을 구성한 것은 1996년.주민 8명이 작목반을 만들어 오이 재배에 나섰으나 IMF사태 후 어려움이 계속되다 2000년 한씨 등 회원 대부분이 동시다발로 무너졌다.외부인에게 보증 부탁이 어려워 서로 서준 게 탈이 났다.연대보증이 서로 얽히고 설켜 한 명이 무너지면 연쇄 붕괴되고,빚이 많다 보니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동시에 부도가 난다.김씨는 “개인당 빚이 1억원 안팎이면 계속 농사를 지어 갚아 보려고 애쓸 텐데 대부분 그 이상을 넘어 어쩔 수 없이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작목반은 ‘쑥대밭’이 됐다.유모(50)씨는 논밭을 다 팔아빚을 갚고 도시에서 야채장사를 한다.구모(44)씨는 도시로 가 막노동을 한다.어떤 회원은 저온창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면서 주변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한다. 김씨는 “쌀이 떨어져 굶고 있는 동료를 보면 같은 농민이지만 눈물이 난다.”고 울먹였다.한 회원은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떴고 박모(44)씨는 다시 오이를 키우며 재기를 꿈꾸다 2002년 여름 태풍에 하우스가 날아간 뒤 고향을 등져 연락이 끊겼다.이 마을 최고 대농인 한 명은 그때 보증으로 물린 빚을 아직 갚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명문대 농대 출신으로 젊음을 농촌에 바친 한씨는 현재 농협의 토양검정 용역을 받아 그 수입으로 농협 빚을 갚고 나머지로 사글세 집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지난 14일 이 마을을 찾았더니 하우스라는 하우스는 대부분 비닐이 갈기갈기 찢겼고,하우스 안은 마른 풀로 가득했다.김씨는 일이 터진 뒤 토마토 하우스 재배로 바꿨다.하지만 그도 한씨의 보증 빚,마을 친구와 친척에게 보증을 섰다가 물린 빚,자신이 농사를 짓다 진 빚 등이 총 2억원 이상돼 마음은 늘 불안하다. 벼농사만 짓다 답답해 오이 재배에 손을 댄 그는 “일이 터진 뒤 몇 달은 술로 지냈다.”며 “일부는 지금도 서로 얼굴 보기를 꺼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김씨가 다닐 때 한 학년에 400명이 넘던 청산초등학교는 인근 3개 학교를 통폐합해 면내 유일한 초등학교로 남아 있지만 40명이 채 안돼 이 마을의 쇠락을 대변해 주었다.김씨는 “자살하고 싶어도 처자식과 새싹이 돋는 작물이 생각나 못한다.”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일해도 빚 갚을 길이 막막해 힘이 안난다.”고 맥없이 말했다. 특별취재팀 sky@ ■결혼 11년만에 8억 빚진 부부 농사 100마지기에 하우스 1200평으로 부농(富農) 소리를 들을 만도 한데,아이들에게 변변한 옷 한 벌 못 사주는 기막힌 농촌가정이 있다.김태환(42·전남 장흥군 관산읍 남송리)·서선희(34)씨 부부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눈물로 삶을 이어간다. ●잘못된 보증·영농비 상승 빚 눈덩이 1988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김씨는 대농(大農)으로 선진농업인에 뽑히는 등 남부럽지 않은 부자였다. 결혼 11년째인 이들이진 빚은 김씨가 7억 700만원이고,부인 앞으로 대출받은 1억 6000만원 등 모두 8억 6700만원이다. 비극이 싹튼 것은 IMF사태 직후인 98년.94년 이웃에게 1억 5000만원 보증을 섰다가 농협으로부터 보증빚 상환 독촉을 받았다.적금을 깨고 2000만원을 빌려 7000만원을 갚았다.그해 트랙터와 콤바인을 사느라 자신도 1억원을 빚졌다. 하지만 15∼24%에 이르는 살인적인 이자로 원금 1억 8000만원이 2000년 3억 47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자를 내느라 이곳저곳에서 대출 횟수가 늘었다.2000년에 보증선 5000만원이 또 터졌다.그러다 보니 2001년에는 5억 2300만원,2002년 6억 2900만원,2003년 5억 3700만원으로 자고 나면 빚이 눈덩이처럼 늘었다. 지난해 김씨 부부는 이자로만 4300만원을 냈다.주위에서 생활비와 농사 경영비 등으로 진 빚 4000만원도 갚았다.이 과정에서 2500만원을 또 빌렸다.100마지기 농사 매출액은 5000만원이다. ●논 담보 설정돼 있어 팔지도 못해 김씨는 “논을 팔아서라도 채무를 정리하고 싶지만 농협 등에 설정이 돼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한숨을 지었다.“기가 막힌다.”는 부인은 “아이들(2남1녀) 유치원비와 학교 다니는 아이가 급식비 6만 400원을 제때 못내 칠판에 이름 적히고 선생님한테 핀잔까지 들었다는 말을 듣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며 눈물지었다. 특별취재팀 ■영농비·농산물값 등락비교 ‘농산물 값은 종종걸음,영농비는 뜀박질’ 농산물 값은 최근 8년간 별 차이가 없다.반면 영농비는 크게 올라 영농 압박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와 농협중앙회 등에 따르면 쌀값(연평균,중품,도매기준)은 정부의 쌀 수매가격 인상 덕을 봐 1994년 ㎏당 1550원에서 2002년 2263원으로 45% 올랐다..반면 양념·채소류인 건고추(태양초,중품,㎏당)는 7183원에서 7782원으로 8.3% 인상됐다.마늘(한지형,중품,접당)은 1만 2660원에서 1만 1497원으로 1163원 하락했다. 양파(〃 ㎏당)는 784원에서 342원으로 폭락했고,과일은 사과(후지,중품,㎏당)가 1534원에서 2758원으로 1224원 인상된 반면 배(신고,상품,10개당)는 2만 2169원에서 2만 648원으로 1521원이떨어졌다.품삯(성인 남자)은 3만 1313원에서 5만 3093원으로 70% 폭등했다.농기계(이앙기) 사용료도 2만 2220원에서 3만 2564원으로 46% 올랐다.농약값(가격지수 100기준)은 76.4에서 102.7(26.3%)로,비료값은 64.7에서 100.1(35.4%)로 뛰었다.배합 사료값(25㎏,육성돈용 포대당)은 2500원대에서 8400원대로 급등했다.농가당 부채는 788만원에서 1989만원으로 1201만원이나 늘어 이자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특별취재팀
  • [술따라 맛따라]한산 소곡주

    설이 다가옵니다.명절이 가까워지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지요.전통주를 빚는 이들입니다.비록 반짝경기지만,이맘때는 술도가 사람들이 가장 신명나게 일할 때입니다.하지만 올핸 신명과 함께 한숨소리도 배어나옵니다. “반품이 얼마나 나올지.밤에 잠이 안오네요.”충남 서천에서 전통주를 빚는 나장연(40·한산소곡주 사장)씨의 걱정이 말이 아닙니다.백화점,할인점 등에 보낸 술이 무사히 소비자의 손에 닿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통주만큼 토속적이고 문화적인 것이 있을까요.술엔 우리 고유의 맛과 멋,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이같은 우리술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양주와 맥주,와인이 차지한 널찍한 매장 한 구석에,초라하게 자리한 전통주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의 자화상인 듯해 보기 민망합니다. 서울신문 주말판 We가 이번 주부터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주가(酒家) 기행’을 떠납니다.주가 기행은 전통주에 얽힌 애환과 역사,술 빚는 이들의 치열한 장인 정신,정감 넘치는 술도가 작업장의 이야기를 담을 것입니다.또 가까운곳의 여행 명소도 함께 소개합니다.우리 조상들이 궁궐에서,주막에서,집에서 즐겼던 우리 술의 맛과 멋을 주가기행과 함께 느껴보십시오.첫회는 ‘한산소곡주’ 편입니다. 한산소곡주를 처음 마시면서 속기 쉬운 한 가지.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주도가 낮다고 판단해 폭음하기 쉽다는 것.오죽하면 ‘앉은뱅이술’이란 별명이 붙었을까.문헌상 가장 오래된 백제의 술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의자왕이 달콤한 소곡주에 취해 삼천궁녀와 놀다가 나랄 말아먹었구나.’란 추측이 들기도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무왕 37년(635년) 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백마강 기슭 고란사 부근 경치 좋은 곳에서 마셨던 술이 한산 소곡주다.소곡주 제조법은 조선시대의 산림경제,양주방,임원십육지,동국세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현재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의 우희열(64) 여사와 아들 나장연씨가 소곡주를 빚고 있다.어머니는 제조 기능 보유자(충남 무형문화재 3호)겸 명주 명인,아들은 제조기능 이수자다. 두 모자(母子)를 한산모시관내 양지바른 곳에서 마주했다.모시관 길 건너편엔 소곡주 공장이 있지만,상당 부분의 공정이 대형화,자동화돼 예전의 술도가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다.모시관 한쪽엔 관광객들이 단체로 오면 소곡주 빚기를 시연하기 위해 아궁이와 소주고리 등 전통적인 술 도구들을 갖춰놓았다. “술맛은 누룩이 첫째지유.누룩을 잘 띄워야 맛이 깊고 은근하니께유.” 나씨 집안으로 시집와 시어머니(김영신)의 가르침을 받아 소곡주를 빚은지 35년.시어머니가 친정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소곡주 제조 비방을 시집오면서 가져와 며느리,손자에게 명맥을 잇게 했다. “술 빚는 방법이야 비슷하지만 같을 수는 없지유.그래서 똑같은 술이라도 빚는 사람마다 맛이 달러유.아니 지가 빚는 술도 빚을 때마다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나유.” 그래서 술은 ‘만든다’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하나 보다.예술하는 이들이 저마다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며 그림이나 조각을 ‘창조’하듯,술도 미세하지만 빚는 이만의 맛이 담겨있는 것이다. 소곡주 맛은 달고 그윽하다.이는 술 빚을 때 들어가는 들국화가상당 부분 작용한다는 게 우씨의 설명.들국화 자체의 그윽한 향과 잡균에 대한 강한 살균력으로 잡미를 없애 곡주 그대로의 감칠맛을 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생하는 들국화를 채취해다가 말려서 썼는데,이젠 여의치 않아 고민입니다.” 나장연씨는 술 생산량이 늘면 결국 들국화도 재배해서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제조과정도 다른 약주와 조금 다르다.우선 술을 빚을 때 물을 절반 정도만 써 알코올 도수(18도)가 약주치고는 꽤 높은 편.또 다른 약주는 효모균이 알코올을 만들 때 전분에서 나온 당분을 모두 소모하지만,소곡주는 절반 정도만 소모,남은 당분이 술 맛을 달게 한다.대개의 약주는 사라진 단맛을 내기위해 올리고당이나 아스파탐 등 인공적으로 당을 가미한다. 나씨는 어머니로부터 소곡주 제조 기능을 전수받았지만 맛의 개선에 관심이 많다.젊은 세대의 미각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 “누룩 특유의 냄새가 문제지요.예전의 어르신들은 누룩에서 나는 묵직한 맛을 좋아했지만 젊은 세대들은 가볍고 깨끗한 맛을 좋아합니다.누룩이 아닌 효모균만을 넣어 빚은 일본의 청주 같은 술 말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소곡주는 그대로 보존하되,이를 개선한 술도 빚을 수 있기를 바란다.이는 단순히 상업적 차원이 아니라,우리 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유럽이나 일본에서도 명주를 빚는 집안에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 더 좋은 맛을 창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전통식품 관련법상 민속주로 지정돼 제조면허를 받은 것은 재료나 방법을 조금이라도 달리하면 술을 생산할 수 없어 제도적으로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한산소곡주는 현재 약주(18도)와 증류식 소주(43도) 두가지로 나온다.주도를 더 낮춘 13도짜리도 곧 나올 예정이다. “명절 때가 아닌,평소에 누구나 마시는,특히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소곡주를 빚고 싶습니다.” 모자의 꿈이 마치 술잔에 담긴 소곡주의 고운 빛깔만큼이나 담박했다. 서천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한산소곡주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에서 빠져 서천읍내를 지나 23번,29번 국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한산모시마을에닿는다.모시관 건너편에 한산 소곡주 공장이 있으며,모시관 옆 특산물 판매장에서 소곡주 시음 및 구입이 가능하다.소곡주공장(041-951-0290).신성리 갈대밭은 모시마을에서 금강 방향으로 차로 10분 정도 가면 나오며,금강하구둑은 모시관에서 29번 도로를 타고 15분쯤 남쪽으로 달리면 닿는다. 한산소곡주 따라 만들기 ●준비물 찹쌀,멥쌀,누룩(통밀을 쓴 것),들국화 말린 것,메주콩,엿기름,생강 각각 한줌씩.홍고추.들국화는 경동시장 등 한약재시장에서 살 수 있다. ●빚는 법 멥쌀 2.4㎏을 빻아 떡(백설기)을 찐다. 백설기를 누룩가루(1㎏)와 혼합해 독에 넣고 물 8ℓ를 부어 섞어서 밑술을 만든다. 3∼4일간 밑술을 발효시킨다. 찹쌀 8㎏으로 고두밥을 짓는다. 누룩가루 1㎏ 및 들국화 말린 것,메주콩,엿기름,생강을 각각 한줌 정도 고두밥, 밑술과 혼합한다. 덧술에 홍고추를 꼽아 서늘한 곳(섭씨 15도 정도)에서 100일간 발효,숙성시킨다. 용수를 박아 술을 떠낸다.용수를 구하기 어려우면 베보자기 등에 덧술을 담아 짜내도 된다. ●여행명소 겨울철엔한산 소곡주 공장이 있는 한산모시마을,마량포구,금강하구둑,신성리 갈대밭,희리산 자연휴양림이 가볼 만하다.모시마을에선 그 유명한 한산 세모시를 구경하고,구입도 할 수 있다. 충남 장항과 군산을 잇는 금강하구둑 주변은 철새들의 천국.청둥오리,고니,붉은부리 갈매기 등 겨울철새 수만 마리가 연출하는 군무를 하루에도 여러번 감상할 수 있다.다른 철새 도래지와 달리 먹이를 주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가까이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금강변에 펼쳐져 있는 폭 200m,길이 1㎞의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으로 유명해진 곳.저녁 무렵 금강의 금빛 물결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마량항은 해돋이와 동백숲이 유명한 곳.서해에선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종천면 산천리의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해송 휴양림으로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한다.숲속의 집과 야생화 관찰원,저수지 등이 주변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서천군 문화공보실(041)950-4224. ●맛집 서해안은 간재미가 제철이다.모양은 홍어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작다.값은 홍어보다 싸지만 맛은 홍어 못지 않아 날씨가 추워지면 간재미를 찾는 발길이 잦다.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먹을 수 있다. 서천에선 대부분의 횟집에서 간재미를 낸다.마서면 당선리의 ‘해강’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식당.이곳에서 내는 간재미 요리는 회와 회무침 두가지.연한 뼈째 두툼하게 저민 회는 기름소금에 찍어 상추에 싸서 먹거나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고소하면서 연골과 함께 살점이 씹히는 맛이 일품.달콤한 소곡주 맛과 잘 어울린다.회무침은 매콤달콤한 양념맛 때문에 여성과 아이들이 좋아한다.간재미 회는 한 접시에 1만 8000원.둘이서 먹을 만하다.회무침은 2만 5000원.(041)956-8885.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2)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가부채

    예고없이 터지는 자연재해,해마다 늘어나는 영농비용,수입산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락 등으로 농가마다 빚더미에 쌓여 아우성이다.신용불량자가 속출하고 막다른 길로 몰리면서 삶을 포기하는 농민들도 수두룩하다.아무리 노력해도 늘어만 가는 부채는 이제 농민에게 ‘시시포스’와 같은 ‘천형’(天刑)이 됐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부채 밭 1800평에서 멜론을 재배하는 충남 청양군 비봉면 신월리 이병익(52)씨는 빚이 1억원이 넘는다.5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었는데,자녀 교육비 등을 도저히 댈 수 없어 멜론 재배에 손을 댔다.그러나 태풍과 폭설 피해를 네번이나 겪어 하우스시설을 재설치하면서 몇 백만원이던 빚이 이렇게 늘었다. 이씨는 “멜론을 재배해도 원금과 이자는 물론 어머니 병원비 등을 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빚을 얻어 수명이 6∼7년인 이앙기·트랙터·콤바인을 대당 2000만∼5000만원 들여 산 뒤,허덕이면서 갚다보면 농기계가 낡아 다시 거금을 들여 구입해야 해 농민들은 ‘빚의 악순환’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우스 1200평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유원균(43)씨도 빚이 8000만원에 이른다.1996년 처음 오이를 재배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1000만원이던 빚이 이렇게 불어났다. 전남 강진군 칠량면 당월리 김변중(39)씨는 빚이 1억원이다.지난해 1800평 시설하우스에서 1억 2000여만원 매출을 올렸으나 기름값 4000여만원 등 인건비와 농약대 등을 빼면 이자갚기도 빠듯하다. 벼농사만 짓는 농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지난 12일 찾은 옥천군 안내면 인포리는 전체 40가구 가운데 폐가가 10가구를 넘었다 농가주택 사이사이로 주인이 떠나 문짝이 떨어지고 지붕이 내려앉은 폐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마을회관에는 환갑이 넘은 노인 6∼7명이 모여앉아 얘기하고 있었다.주민 홍모(68·여)씨는 “빚을 진 이웃이 하나둘 떠나면서 이제는 초등학생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기준 농가의 가구당 부채는 1989만원으로 이 가운데 농기계 구입 등 농사를 지으면서 발생한 생산성 부채는 1500만원선에 이른다.하지만 시설하우스를 하는 농민과 미래의 농촌을 짊어질 대부분의 청장년은 가구당 보통 5000만원,많게는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신용불량자와 자살 속출 20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 중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1리 위성춘(43)씨는 자신을 포함해 부인과 아버지·어머니 등 가족 모두가 빚쟁이로 내몰렸다.자신이 진 것과 보증으로 떠안은 것 등 빚이 2억원이었으나 연체이자에다 외환위기 때 ‘살인금리’가 붙으면서 5억원대로 증가했다.위씨는 이미 신용불량자가 됐다.연말이면 연체이자를 갚느라 아내와 부모 명의로 추가 대출을 받다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경북 군위군 H농협의 경우 지난해 말 1400여명의 조합원 중 30%인 420여명이 신용불량자다.한해 농사를 지어도 이자 등을 갚지 못하면서 전년보다 100여명 증가했다.이들 농가의 부채 규모는 가구당 5000만원에서 1억원 수준이다.군내 다른 농협의 농민 신용불량자도 100∼300여명에 이른다.막다른 길에 몰린 농민들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청양군비봉면에 사는 조모(52)씨는 지난해 여름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했다. 쌀과 담배농사를 짓다가 빚이 해마다 늘어 1억원이 넘으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이 길을 택했다. 이모(55·옥천군 안남면)씨도 쌀·담배농사를 짓다가 빚이 1억원을 넘어 갚을 수 없게 되자 한달 전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면사무소 관계자는 “700여 농가가 있는 안남면에서 IMF사태 이후 빚 때문에 자살한 농민이 1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비상구가 없다 옥천군 유원균씨는 “농사를 지어도 생산비조차 안 나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농산물 가격은 변동이 심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토마토의 경우 10㎏에 2만∼3만원을 호가하다 어떤 때는 2000∼3000원으로 떨어지는 등 10배 가까이 차이날 정도로 변동폭이 심하다. 청양군 이병익씨는 “배운 게 농사밖에 없고 이 나이에 뭘 하겠느냐.당장 농사를 그만두면 앉아 굶어죽는 수밖에 없어 빚이 늘어도 농사를 포기하지 못한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장흥군 위원환씨의 대차대조표 지난 97년 고향에 정착해 16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 7년째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위원환(42·전남 장흥군 관산읍)씨는 벌기는커녕 되레 2억 2400만원의 빚이 있다. 그 해 여름,정부 보조·융자 각 40%,자부담 20%로 1억 4000만원을 들여 하우스 등 시설을 갖췄다.연리 6%에 3년 거치 7년 상환으로 융자금 5600만원이 그대로 빚이 됐다. ●기름값 인건비 상승… 방울토마토값 폭락 출발은 토마토 값이 좋아 산뜻했다.그 해 겨울 첫 수확에서 제반 비용을 떨고도 3000만원이 손에 들어왔다.5㎏짜리 7000상자(상자당 1만원)를 팔아 매출 7000만원에 난방비 1500만원,인건비 1000만원,포장상자 425만원,비료와 농약 600만원 등 4000만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98년은 최악의 해였다.경유값이 드럼(200ℓ)당 12만원으로 치솟은 반면 토마토는 상자당 5000원 이하로 곤두박질했다.여름 수확(매출 2000만원)을 빼고 11월부터 나오는 겨울 토마토는 이듬해 5월까지 나온다.매출액이 3000만원에 그쳤다.기름값(2300만원)을 주고 나니 사실상 빈 손이었다.인건비와 종자대,농약값,경영비 등 3000만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왔다. 99년 흙이 아닌 물 속에서 토마토를 기르는 수경재배로 돌아섰다.8000만원을 더 들여 양액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보조(40%)를 빼고 융자·자부담 등 다시 4800여만원의 빚을 졌다.값마저 낮아져 매출이 3000만원으로 떨어졌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체이자(18%)를 막기 위해 추가로 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비교적 순조롭게 2000년 3000만원,2001년 2300만원,2002년 3000만원의 순익을 냈다. ●최저가격 보상제 실시 농민불안 없애야 다행히 올해 ‘토마토가 인체에 좋다.’는 언론홍보 덕에 토마토가 상자당 1만 5000∼2만원으로 높아져 위안이 되고 있다.올해 순익 5000만원을 내다본다.1년이면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만 해도 4000만원이다.쌀 농사도 없고 다른 사업을 한다거나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다.오로지 토마토에 매달린다.위씨는 “특용작물은 생산과잉이나 소비감소 등으로 폭락하기 일쑤다.돈이 된다면 우르르 심는 농민들의 태도도 문제지만 정부에서 최저가격 보장제를 제도화해 농민들의 불안을 없애는 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농경지 경매 작년 의성서만 664건 농민들에게 잇단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있다.돈가뭄으로 금융기관에서 논·밭을 담보로 얻어 쓴 빚을 갚지 못해 농경지가 경매처분돼 파산농이 속출하고 있어서다.담보로 집까지 날리게 될 농민은 가족과 함께 딱히 살 곳이 없어 한겨울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해마다 ‘뼈빠지게’ 농사를 지었지만 돌아오는 건 회한과 눈물 뿐이라며 허탈감에 빠져 있다. ●대출금 연체 논·밭·집까지 경매 5000여평의 농사를 짓는 이모(55·경북 군위군 효령면)씨는 5∼6년 전만 해도 부자는 아니었지만,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그러나 해마다 농산물 값은 하락한 반면 농자재·인건비 상승이 보태져 빚은 갈수록 쌓여만 갔다.결국 지난 연말 전 재산 2억원 정도를 법원경매에 넘기고 말았다. 의성군 단촌면 박모(43)씨는 IMF사태때 회사의 부도로 농촌에 돌아와 4년째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있다.그러나 2년 연이은 자연재해로 은행빚만 5000만원으로 늘어났다.대구지법 의성지원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의성·군위·청송지역에서 나온 전체 경매건수는 664건(농경지가 90% 이상)이나 됐다.2001년 438건,2002년 558건에 비해 해마다 큰 폭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지난해는 IMF사태로 부동산 경매가 절정을 이뤘던 1999년(752건) 수준에 육박했다. 충남 논산시와 부여군을 관할하는 대전지법 논산지원에도 연간 100여건의 경매물건이 접수되고 있다.이중 절반 정도가 농가 주택과 농경지라는 게 논산지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영농자금 상환기간 되는 1분기 더 심각 군위 H농협의 경우,올 들어서만도 30여건이 부채상환이 안 돼 경매처분됐다.의성군 D농협도 최근 농경지 등 20여건을 경매에 부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올 1·4분기다.각종 영농자금 상환기한을 앞두고 있기 때문.농협 군위군지부 4개 농협은 3월말까지 38억 4000만원을 농가로부터 상환받을 계획이다. 특별취재팀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1)무너지는 소도시 상권

    농촌 경제의 어금니였던 읍내 상권이 무너졌다.구매력의 원천인 농민들은 호주머니가 비었다.농협 빚이 자라나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연체자 비율이 회원농협별로 조합원의 8∼20%를 웃돈다. 대목 중의 대목인 설이 코앞에 닥쳤지만 읍내 거리는 썰렁하다.경기(景氣)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고 한다. ●물좋다는 다방·모텔 매물 홍수 이농에 따라 인구가 줄면서 관공서들도 하나 둘 떠났다.자석처럼 손님을 끌고 다니며 읍내 경제를 쥐락펴락 하던 공무원들도 철수하거나 구조조정으로 그 수가 크게 줄었다. 또 읍내 우회도로나 국도 주변에 들어선 대형 할인마트들이 주차시설과 값싼 가격,편리함을 내세워 수백명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대신하고 있다.여기다 고속도로 등 도로 확장·포장과 개설로 접근성이 좋아지자 읍민들도 시 단위 시장을 찾아간다.경북에서는 2001년 이후 대구에서 왜관,김천∼구미,구룡포∼포항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군위·의성·청도·칠곡군 등 대구권역 군들은 개발 기대와는 달리 지역상권이 오히려 위축됐다.특히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인근 군 지역의 인구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으며,시가지 상가매출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군청과 가장 번잡하다는 중앙로·버스터미널·5일시장 주변 등 이른바 황금상권도 수천만원을 웃돌던 권리금이 없어졌다.상인들은 “경기침체라는 홍역에다 농촌붕괴로 상가마다 링거를 꽂고 연명하는 중환자 신세”라며 하소연이다.“하던 일인데다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내 집이어서 하루하루 장사한다.”며 더 묻지 말라고 손사래다.읍내마다 내려진 셔터나 출입문 위에 ‘휴·폐업.임대.건물 세놓음.몽땅세일’ 등 부도난 건물에나 붙어 있을 법한 종잇장이 나붙어 있다.2000년대 이후 ‘물좋다.’는 다방이나 모텔도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의성군 1년새 100여개 문닫아 가장 큰 문제는 농촌에 현재 소득원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불확실성에 있다.이 때문에 고향을 지키던 젊은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흘러들고 있다.날품을 팔고 노점상을 하더라도 도시가 낫다는 생각에서다.하루라도 빨리 고향을 뜨는 게 당대는 몰라도 자식을위해서라도 밑지지 않은 장사라고들 말한다. 특별취재팀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 대구 김상화기자 농도인 전남도는 어느 지역보다 심각하다.전남도민(206만명)의 25.3%인 52만명이 농민이다.도내 22개 시·군 중 5개 시를 제외한 17개 군의 경우 전체 주민의 절반이 농민이다.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 군민의 20%를 넘는 곳도 있다.강진군의 경우 관내 130개 중소기업 가운데 최근 2년 새 11개가 휴업하고 5개가 폐업했다.읍내 상가번영회 김병완(60) 회장은 “군민 전체라야 5만명도 안되는데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읍내 600여개 상가 가운데 지난 2년 동안 100여개 업체가 휴·폐업했다.소규모의 구두가게·양복점·식당·옷가게 등이 손들고 나갔다.”고 말했다. 마늘과 사과·고추 주산지로 돈이 돌았던 경북 의성군을 비롯해 군위와 예천,영양,청송군의 읍내도 폐업과 매물로 넘쳐난다.의성군의 경우 1800여개 업소 가운데 1년 새 100여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800여개가 가게를 내놨으나 거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가게당 1000만∼5000만원씩하던 권리금이 공중에 떴다.문을 연 가게들도 매출이 지난해의 50∼80%선으로 격감했다.수개월째 임대료를 못내는 경우도 적잖다.종업원 해고 등 자구책을 쓰지만 ‘언발에 오줌누기’ 식이다.세입자들은 주인의 독촉에 사채와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버티고 있다.부도 위기설로 술렁거린다.옷가게를 하는 김모(43·여)씨는 “농촌경제 붕괴로 읍내 상가가 줄줄이 쓰러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고 있다.”며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이제 상권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충남에서 군세가 가장 작은 청양군 읍내는 휴·폐업중인 점포수가 전체 80∼90개 가운데 10여개를 넘었다.부동산업을 하는 이상선(58)씨는 “10년 전만 해도 5일장이 서면 버스 안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차 장날 분위기가 났는데 요즘은 서너명만 내리고 장날도 썰렁하기만 하다.”고 말했다.예전에 손수 가꾼 농산물을 바리바리 이고 와 팔던 농민들 대신 트럭에 물건을 가득 떼온 떠돌이 장사꾼들이 장터 곳곳을 메우고 있다. ■무너지는 소도시상권 르포 지난 9일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30분여만에 도착한 경북 의성군 의성읍내는 날씨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했다.사람들로 붐벼야 할 점심 시간인 데도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눈 앞에 보이는 몇몇 상가들은 문이 잠기거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7만 군민들의 중심 상권이라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가 임대·매각 딱지만 ‘더덕더덕' 필름을 사려고 들른 한 사진관에서는 난방을 하지 않아 한기가 돌았다.한참만에 밖에서 들어선 주인에게 “장사하지 않고 어디 다녀 오세요.”라고 묻자 “손님도 없는 점포를 지키면 뭐 해요.인근 가게 주인들 대여섯이 모여 매일 고스톱이나 치고 놀죠.”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건너 편에서 부동산을 하는 이성민(60)씨는 “전체 점포 중 절반 정도가 휴업하거나 세로 내놓았지만 거래는 전혀 없다.”며 “그동안 점포세로 재미를 봤던 건물주들도 세입자들이 불황으로 세를 연체하자 건물 관리가 안돼 매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생활정보지도 태반은 건물 임대·매물란으로 채워져 있었다..군청앞에서 식당을 하는 김종우(59)씨는 “요즘 손님을 받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라면서 “식당한 지 1년이 지났으나 때려치워야 할 판”이라고 씁쓰레한 표정이었다.의성농협의 한 직원은 “예전 같으면 상가 주인들이 평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하루 매상을 들고 왔지만 요즘에는 그 분들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구 3만 8000여명으로 충남도에서 가장 적은 청양군 읍내는 산사(山寺)와도 같았다.9일 점심 때,외관상 그럴듯한 식당에 들어섰으나 주인과 종업원인 듯한 여자 4명만이 식사중이었다.주인은 “장사,말도 말아라.하루종일 파리만 날린다.어디 밥먹고 살겠느냐.”고 푸념부터 늘어놓았다.문 닫은 상가와 ‘무조건 1만원’이란 딱지가 붙은 가게도 듬성듬성 보였다. ●군청직원 월급일부 상품권으로 곡창지대인 예산군 읍내는 초저녁인데도 서너집 걸러 한집씩 불이 켜지지 않았다.급기야 예산군은 지역상권 활성화를 내걸고 직원들의 월급 가운데 실·과장은 10만원,6급 이하는 5만원짜리 상품권으로 대체해 지역상품을 의무적으로 사도록 했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은 탐진댐 건설에 따라 읍내 식당(523개)과 유흥주점(36개) 등이 한동안 특수를 누렸으나 겨울해는 길지 않았다.식당을 하는 이동철(43)씨는 “주민들 보상이 마무리되면서 식당이고 술집이고 썰렁해 졌다.”고 말했다. 국도 2호선(부산∼목포)이 왕복 4차로로 뚫리면서 목포시와 20분거리로 좁혀진 강진읍은 상권 붕괴가 가속화했다.읍내에서 비교적 목이 좋은 매일시장이나 5일시장이 가장 먼저 손님을 빼앗겼다.5일 시장에서 20년 넘게 옷가게를 해온 구연호(65)씨는 “이러다간 굶어 죽겠다.하루 3만∼4만원어치 파는 게 고작”이라며 “하루 매상 30만원씩 올리던 80년대 시절이 그립다.”고 회고했다.이 시장 내 장옥(점포) 120개 가운데 20%는 비었다.윤천식(63) 시장상가번영회장은 “23년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데 7∼8년 전부터 매상이 뚝 떨어져 부부 인건비나 건지는 셈 친다.”면서 “시장에 오는 사람 찾기가 힘든 판이니….”라면서 혀를 찼다.군에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20억여원을 들여 장옥을 현대식 건물로 단장했고 주차장(70대)도 짓는다.입점 상인들도 친절과 청결 등 소비자 만족을 위한 자체 교육에 눈을 돌리고 있다.시장통에서 만난 주민들은 농협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할인마트가 그나마 있는 손님까지 몽땅 훑어갔다고 불평불만이다.시장안에서 40년도 넘게 콩나물과 두부·대파·시금치 등을 팔아온 할머니 세분은 “오늘은 아직 개시도 못했다.저쪽에 있는 마트에서 두부나 콩나물을 여기보다 100원씩 더 싸게 판다.”며 성질부터 냈다. 특별취재팀 ■러브호텔 불황 직격탄 농촌에서 불황을 비웃으며 현금을 거머쥐던 모텔(러브호텔)이나 다방도 2000년대 들어 맥을 못추고 있다.우후죽순 격으로 늘던 모텔도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또 웬만한 읍내마다 50여개를 웃돌던 다방도 여종업원들이 티켓비(일명 봉값·시간당 2만∼2만 5000원)를 못 채우는 불황에 휴업이 속출하고 있다.읍내 소재 다방마다 아가씨 4∼7명을 두고 장사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러브호텔로 통칭되던 여관이 충남 연기군 50개,금산군 55개에 이른다.그러나 농촌경제가 결딴나면서 회전율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기름값도 안 나오고 매매가마저 폭락해 이중고다.금산읍 H모텔 종업원은 “모텔 손님들이 1997년 외환위기 전의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연기군내 다방은 140개에서 112개로 줄었다.조치원읍내의 한 다방 여주인은 “아가씨 구하기도 어렵고 장사도 잘 안돼 일부 티켓다방 등은 노래방으로 업종전환을 하는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40여개의 러브호텔이 몰려 있는 팔공산 자락인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는 매물 10여개가 나왔다.20∼50여개의 객실을 갖춘 러브호텔 가운데 최근에 지은 10∼20%만 그런대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20억원을 호가하던 매매가는 13억원으로 내려갔다.임대기간이 끝난 D모텔 등도 올 들어 임대료를 30∼40%가량 낮췄다.군위군 동산리 10여개의 러브호텔 가운데 2곳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는 개점휴업 상태다.의성군에는 다방 161곳이 등록돼 있지만 영업중인 곳은 100여곳이다.군위군 61곳,영양군 43곳도 20%가량 휴업중이고 나머지도 도산위기다. 전남 보성군도 99년 하루에도 서너개씩문을 열던 다방이 한때 120여개였으나 지금은 87개다.이 가운데 정상영업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인근 장흥군도 다방 83개가 있으나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종업원 4명을 둔 P다방 업주 김모(39·여)씨는 “예전에 월 평균 1000만원까지 오르던 매출이 300만∼400만원도 간신히 건진다.”고 말했다.군청 위생계의 한 직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다방 아가씨들의 봉값(티켓비)을 둘러싼 실랑이나 신고가 잦았으나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점포 임대·매매 실종 “상가 점포 임대요.더는 말 마이소.불황에 누구 속 뒤집어 놀라캅니까.” 경북 의성군의 ‘명동 거리’로 불리는 의성읍 후죽리에 사는 임모(68)씨는 요즘 화병이 났다. 10여년전에 신축한 건물(4층) 점포 대부분(1∼3층,100여평)이 3년째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1층 20여평을 임대한 것이 고작이다.4층은 살림집이다.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가게 임대문제론 걱정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큰소리 떵떵 치면서 세를 놔 먹었다.‘노른자위’ 점포여서 사람들이 줄을 서세들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가 경기가 주저앉기 시작한 2001년부터 점포세가 슬슬 빠지더니,다시 나가지 않고 있다.1년전부터 점포세를 예전의 절반 정도로 내렸지만,감감무소식이다, 임씨는 “점포세 놔 먹기가 이젠 끝장난 것 같다.”며 “‘애물단지’가 된 건물을 매각하려고 해도 그마저 어렵다.”고 한숨 지었다. 인근 건물에서 점포 20여평을 세 얻어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49·여)씨의 심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매출부진으로 7000만원을 투자한 점포를 십 수개월전부터 처분하려고 해도 임자가 나서질 않는다.그저 울며 겨자 먹기식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한달에 5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본전치기라도 되지만,300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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