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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행정] 성동구 재래시장 살리기

    [현장 행정] 성동구 재래시장 살리기

    서울 성동구가 ‘재래시장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재래시장 시설현대화, 상인 건강의 날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성동구가 올해에는 소액 대출, 쇼핑환경 개선, 상품권 활성화 지원 등에 나섰다. 17일 성동구에 따르면 올해 6억 5000만원을 재래시장에 지원, 폐쇄회로(CC)TV, 상품진열대, 양심저울 등 쇼핑환경 개선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발행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이호조 구청장은 “재래시장은 우리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라면서 “각종 행정·재정적 지원으로 웃음 넘치고 인정 넘치는 ‘성동 재래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친절의 생활화로 고객만족도 높여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마장 축산물시장이 있는 성동구는 그동안 지역 재래시장 환경개선 사업으로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꾸몄으나 그에 상응하는 매출액 증가 효과는 미미했다. 그래서 올해는 4억 6000만원어치의 전통시장 상품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이는 구가 나서 직접 물건을 팔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셈이다. 성동구는 이렇게 발행한 전통시장 상품권을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에 활용한다. 홀몸노인이나 기초 수급자들에게 지급하던 기존의 농협이나 문화상품권을 전통시장 상품권으로 대체 지급한다. 구청 직원들에게 주는 각종 포상금과 격려금도 현금 대신 전통시장 상품권으로 대체했다. 또 지역의 50인 이상 중소기업에 전통시장 상품권을 사용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나운찬(61) 뚝도시장 상인회장은 “전통시장 상품권 발행으로 재래시장 매출액이 20% 이상 증가했다.”면서 “시장 상인들도 각종 이벤트와 친절의 생활화로 고객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백화점처럼 꾸미고 상인교육도 성동구는 재래시장 접근성, 주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입체식 공영주차장을 만든다. 또 1시간 이내 주차료 50% 할인 혜택도 준다. CCTV도 설치한다. 고객을 위해 식수대를 설치하고 시장 자체 방송을 준비해 신바람나는 장보기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다. 시장 매출을 늘리기 위해 각종 공동마케팅사업도 지원한다. 좌판에 무질서하게 늘어놨던 각종 상품들을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처럼 위생적인 상품진열대에 전시, 판매할 수 있도록 상품진열대를 지원한다. 또 각 시장마다 매월 3개 우수점포를 선정, 점포 이름과 사진이 인쇄된 간판을 나눠주는 우수점포 실명제도 실시할 방침이다. 상인들이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강의하는 ‘상인아카데미’와 우수시장 벤치마킹 등 다양한 지원도 한다. 김수환 지역경제과장은 “경기한파로 인해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는 재래시장에 상인과 주민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겠다.”면서 “앞으로 구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해피 성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섬세한 손길&치열한 노동 예술을 만들다

    섬세한 손길&치열한 노동 예술을 만들다

    휴!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 붓에 물감을 듬뿍 묻혀서 대형 캔버스에 쓱쓱 그려낸 그림들이 아니다. 존 폴락처럼 캔버스에 물감을 쓱쓱 뿌려댄 것도 아니다. 작품 하나를 만들려면 일일이 수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작품을 끝내고 나면 급격한 체력저하와 시력저하가 불가피하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가 4월15일까지 여는 ‘The Great Hands-손길의 흔적’ 전은 이처럼 노동하는 예술가의 땀방울과 작품 탄생의 산고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작가 17명의 사진, 조각,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50여점이 나왔다. 노동을 통한 예술행위에 대한 일종의 경배다. 과연 이런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다. 주얼리에 이용되는 새끼 손톱보다 작은 크리스털을 100호 크기의 캔버스에 꼼꼼히 하나씩 붙여서 산수화 ‘금강전도’(황인기 작가)를 만들어 내거나, 부처님 얼굴이나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동재 작가)을 형상화해 낸다. ●손톱보다 작은 크리스털·스테이플러 침을 손으로 붙여 스테이플러 침을 하나하나 본드로 이어붙여서 놀이기구와 첨탑이 달린 건물을 조형하고 이것을 사진(김정주 작가)으로 찍었다. 수천개의 스팽글을 이어 붙여서 대형 원을 만들고는 한가운데 손이 슬쩍 미끌어졌는지 스팽글이 느슨하게 타원형으로 늘어져 있는데 찔끔 흘린 ‘눈물’(노상균 작가)로 표현됐다. 가구용 못에는 머리가 없어 다루기 힘든데 이것을 촘촘히 박아서 노송이 가득한 풍경화(유봉상 작가)가 됐다. ‘야호’와 ‘세월아 돌려다오’라는 단어를 아주 작은 글씨로 써서 산수화(유승호 작가)를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작업은 작품의 크기 탓에 최소한 한 달 정도는 꼬박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어깨는 빠질 것 같고 허리는 욱씬거린다고 한다. 완전히 육체적인 노동이다. 형편이 어려워 물감을 사지 못하자 색깔이 다른 여러 장의 장지를 겹쳐 놓은 뒤 인두로 지져 태워낸 그 사이로 형상(이길우 작가)을 만들어낸 21세기형 미인도 ‘동문서답’은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형상을 지워 낸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관찰도 필요하다. 붓이 아니라 주사기로 캔버스에 물감을 폭폭 찍어내 그려낸 사물들이 모두 몽실몽실하고 따뜻할 것 같은 환상(윤종석 작가)을 만들어 낸다. 나무에 쇠못을 ‘ㄱ’자로 구부려서 박고 그 쇠못의 절반 정도를 사포로 갈아낸 탁자(이재효 작가)는 조각품으로 훌륭하다. ●갤러리현대서… 이동재 등 작가 17명 작품 50여점 전시 이밖에도 일본 모리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중견작가 전광영의 한지 작업과 1937년 생으로 뉴욕에서 활동했던 원로 조각가 존 배의 기하학적인 조형물도 볼 만하다. 일각에서는 제자나 도우미의 도움을 받은 작품이 아니냐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 노동력을 투여한 작업이 다수다. 일부 전시 작품은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 직접 노동력을 동원한 작품으로, 억만금을 줘도 팔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02)2287-350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그럴리가… 아닐거야” 부정하다 끝내 실신

    “뭐…뭐라고요? 죽…죽었다고요? 누가 말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환하게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데….” 16일 새벽 예멘에서 날아든 비보에 한국인 사망자 유가족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충격에 휩싸인 채 오열했다. 통곡과 ‘아닐거야.’라며 부정을 거듭하다 끝내 실신하기도 했다. 아내 김인혜(64·서울 양천구 목동)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남편 윤구(64·문화일보 전 논설주간)씨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잘 다녀오라.’고 전송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밤새 잠 한숨 못 잤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생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김씨집 거실에는 김씨가 직접 그린 추상화가 2점 걸려 있었다. 그는 평소 문화유적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등 중동의 여러 지역을 두루 다녔다. 예멘은 친구들의 권유로 함께 가게 됐다. 윤씨는 “예순이 넘으면 평상심을 지녀 감정 기복이 없다는데, 아내의 죽음 앞에 한없이 무너질 뿐이다. 충격이 가시질 않아 아직 형님 등 다른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연락조차 못했다.”면서 목 놓아 울었다. 언론 보도를 접하고 달려온 김씨의 여동생도 “너무 많이 놀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서 눈물만 훔쳤다. 주용철(59·서울 강동구 암사동)·신혜윤(55)씨 부부 사망소식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주씨의 동생 용수(56·인천 부평구)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용수야.’하고 친근하게 부르며 나타나실 것 같은데, 어떻게 형님의 죽음을 믿을 수 있겠느냐.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굵은 눈물 방울을 떨어뜨렸다. 주씨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1978년 6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자녀가 없어 부부간 의지하는 게 더 컸고, 애정도 각별했다. 여유가 있던 부부는 평소에도 둘만의 여행을 자주 다녔다. 20년 넘게 주씨 부부를 알고 지낸 유미선씨는 “두 분은 금슬도 좋을뿐더러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열심이었는데, 이렇게 좋으신 분들이 가시다니….”라며 애석해했다. 잠결에 남편 박봉간(70·서울 강남구 삼성동)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아내 이선자씨는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라며 연방 허공으로 손을 휘저으며 남편의 죽음을 부인하다 그대로 실신하기도 했다. 숨진 박씨는 광주서중·광주일고·전남대 상대를 졸업하고 광주 MBC 상무이사와 방송영상진흥원장을 역임했다.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은퇴 후 부인과 함께 성지 순례를 자주 다녔는데, 이번에는 혼자 갔다. 박씨의 동창인 정구선씨는 “부부의 사랑이 정말 돈독했는데 혼자만 떠난 여행에서 친구가 죽었으니, 그 아내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느냐.”면서 안타까워했다. 김승훈 이재연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안돼”…자살 시도자 구하는 中여경 ‘감동’

    자살하려는 여성을 간발의 차로 구해낸 중국의 여경이 네티즌 사이에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1시 경 장춘(長春)시의 한 주택가는 건물에서 뛰어내리려는 젊은 여성으로 소란에 빠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 여성과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끝내 이 여성은 이를 거부해 주위를 애타게 만들었다. 이때 함께 출동한 여경이 나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고 침착하게 여성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다. 약 2시간이 흐른 뒤 결국 이 여성은 건물에서 몸을 내던졌으나 여경이 신속하게 달려가 공중에서 그녀를 붙잡는데 성공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건물 아래로 함께 떨어질 수 있는 위험에도 자살하려는 여성에게 달려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버티는 여경의 모습에 많은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여경이 그녀의 팔과 몸을 붙잡는 사이 남자 경찰들이 달려와 두 사람을 안전하게 구하고 나서야 여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 여경은 사건이 마무리 된 뒤 “우리 둘(자신과 자살을 시도한 여성) 모두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건물을 내려오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여의치 않아 위험한 순간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예전부터 고소공포증이 있어 건물위로 올라가자마자 무서움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소속 경찰서로 돌아간 그녀에게 네티즌들은 “미녀 영웅이 탄생했다.”,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받았다.”등의 댓글을 남기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편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18세의 나이로 식당에서 일을 하던 중 사장이 자신에게 어떤 누명을 씌운 것에 분노를 느끼고 충동적으로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물동량 반토막… “임대료라도 동결을”

    물동량 반토막… “임대료라도 동결을”

    “평소 땐 서너번씩 왕복했는데 요즘엔 한번 갔다 오기도 힘드네요. 주말에라도 일감이 있으면 나오려고 했는데 역시 없군요. ”(트럭운전기사 김모씨) 지난 13일 오후 3시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 기지.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야적장엔 빈 컨테이너만 수북이 주차장에는 빈 트럭들이 쉬고 있다. 텅빈 컨테이너가 수북이 쌓인 야적장은 황량하기까지 하다. 평소 이 시간대면 컨테이너를 싣고 드나드는 대형트럭으로 정신없이 번잡한 곳이다. 하지만 움직이고 있는 트럭은 거의 찾아 보기 어려웠다. 의왕ICD(Inland Container Depot)는 부산, 광양 등 주요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실은 기차가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한 물건들은 수도권 공장으로 옮겨진다. 거꾸로 공장에서 생산된 수출품들도 기차에 실려 주요 항구로 간다. 수도권을 드나드는 주요 수출, 수입 물동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의왕ICD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육로 수송과 철도 수송을 합쳐 월 18만 3000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를 처리할 만큼 활발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올 1월 물동량이 절반인 9만 7000TEU로 뚝 떨어졌다. 세계 경기의 동반 침체로 인해 수출량과 수입량 모두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경인ICD 정동권 영업지원팀 차장은 “물동량이 이렇게 급격히 떨어진 것은 처음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화물 운임도 최대 30%까지 ‘뚝’ 부산과 광양의 철도수송량은 지난해보다 65% 이상 줄었다. 화물이 크게 줄다 보니 운송업체들은 화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운송료를 낮추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정해 놓은 표준 요율이 있지만 최대 30%까지 운임료가 내려간 상태다. 운송업체 사무실에서 만난 트럭운전기사 변모(56)씨는 아침 일찍부터 나와 일감을 기다렸지만 한 건밖에 일감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외환위기 때는 수출물량이라도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기름값은 3배 오르고 일감은 3분의1 수준이니 한마디로 더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일부 운송업체는 원가절감 차원에서 월급의 일부를 반납하기 시작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폭풍전야’라고 말했다. ●운송사들 “지옥이 따로 없어요” 이 관계자는 “지난해 6~7월은 고유가로 화물연대가 파업을 했는데, 몇개월 만에 유가는 떨어졌지만 화물이 없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했다. 1년새에 지옥을 두번이나 경험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의왕ICD에 입주해 있는 15개 운송업체는 올해만이라도 임대료를 동결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글 사진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창작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17일 첫 무대

    창작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17일 첫 무대

    창작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두 가지. 자살이 테마이니 우울하고 칙칙하진 않을까, 외국 소설이 원작이라 문화적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을까. 결론은 둘 다 아니다. 올해 창작 뮤지컬 기대주인 ‘기발한 자살여행’이 17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첫선을 보인다. 개막에 앞서 연습실에서 미리 만난 리허설 공연은 우울함보다는 유쾌함이, 한숨보다는 웃음의 파동이 훨씬 컸다. 핀란드 대표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했지만 남북통일이 이뤄진 가상의 미래 시점이란 것 말고는 현재 한국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매끈한 각색은 원작의 존재를 의심할 정도다. 발단은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은 중소기업 사장과 통일 이후 대기발령 상태가 된 육군장교가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면서 비롯된다. 목을 매려던 전깃줄이 길어서 어이없게 살아나고, 권총 자살에도 실패한 이들은 동반 자살을 결심하고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의 자살 여행단을 모집한다. 이렇게 해서 삶의 모든 의욕과 희망을 잃은 채 오직 죽음만을 갈구하는 12명의 자살 희망자들이 자살버스에 탑승한다. 실연당한 여인, 기러기아빠, 시한부 노동자, 매맞는 아내, 추락한 스타 여배우 등 저마다 피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 이들은 최후의 목적지인 백두산 천지를 향해 힘껏 달린다. 이들의 절박하고, 야심찬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공연은 국내 초연이면서 세계 초연이다. 제작사 쇼팩의 송한샘 대표는 2006년말 원작소설에 대한 전세계 독점 뮤지컬 저작권을 따냈다. “소설을 읽자마자 뮤지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송 대표는 “스토리가 재밌고, 기발할 뿐만 아니라 삶이 아무리 힘들고 비참해도 살아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동적인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향후 핀란드 공연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해외 라이선스 수출을 염두에 둔 작품인 만큼 창작에 참여한 제작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연극 ‘보이첵’으로 영국 에든버러페스티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임도완 연출이 작품 전반에 유머 코드를 적절히 배치했고, 극작가 이수연은 원작의 배경인 핀란드와 유럽 대륙을 통일 한국과 중국,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로 각색해 공감대를 높였다. 뮤지컬에서 드라마 못지않게 중요한 음악은 영화 ‘실미도’ ‘올드보이’로 유명한 작곡가 이지수가 맡았다. 40인조 체코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들은 장중하면서도 경쾌하고, 긴장감 넘치는 등 다양한 정서를 자유자재로 뿜어낸다. 임도완 연출은 “자살이란 무거운 주제를 위트와 유머로 따뜻하게 그려낸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음악은 웅장하게, 드라마는 코믹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객석쪽을 바라보던 버스가 양옆으로 갈라져 방향을 바꾸는 등 재치있는 무대 전환도 눈길을 끈다. 4월19일까지. 4만 4000~7만 7000원. 1544-155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늪에 빠졌어요”...‘숏다리’ 조랑말 신고 소동

    “이게 다 일어선 거예요!” 선천적으로 짧은 다리를 가진 ‘숏다리’ 조랑말을 두고 말이 늪에 빠진 것이라고 오해한 사람들이 잇따라 소방서에 신고하는 웃지 못 할 소동이 벌어졌다. 영국 대중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사우스햄턴의 한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흰색 조랑말 메이플라워(12)는 최근 짧은 다리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해를 단단히 받았다. 몸길이는 보통 조랑말과 비슷하지만 유난히 짧은 다리의 메이플라워를 본 사람들이 “말이 늪에 빠져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며 지역 소방서로 다급하게 신고했다. 출동한 소방관과 동물구조협회 자원봉사자 10여 명이 농가에 도착했을 때 늪에 빠진 말 대신 키가 73cm밖에 안되는 조랑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메이플라워의 주인인 산드라 위처는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말을 보고 늪지대에 빠졌다면서 이미 3번이나 소방서, 경찰서, 동물 구조대 등에 다급하게 구조요청을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멀리서 보면 다른 말의 키에 반밖에 안되기 때문에 메이플라워가 늪지대에 빠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충분하기 때문. 위처는 “더 이상의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 말 옆에 ‘12살 조랑말이며 늪에 빠진 게 아니고 키가 작은 것이다. 다 일어서 있는 상태’라고 큰 팻말을 적어 놓겠다.”고 말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50년 전 링컨의 회중시계에 새긴 메시지는…

    150년 전 링컨의 회중시계에 새긴 메시지는…

     거의 150년 만에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회중시계 안에 시계수리공이 몰래 메시지를 새겨놓은 사연이 10일(현지시간) 공개됐다.이날 마침 백악관을 배경으로 링컨 전 대통령이 촬영된 사진이 함께 공개됐지만 시계 속 메시지와 그 사연이 눈길을 더 끄는 건 당연해 보인다.  ● “우리가 정부를 가졌음을 신에게 감사”  1861년 워싱턴의 펜실베이니아가에서 시계 수리점을 운영했던 조너선 딜론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남북전쟁의 첫 총성이 울렸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자신이 수리하고 있던 링컨의 회중시계 안에 다음의 메시지를 새겨넣었다.시계판 뒤 금속판에 돋보기를 들이대야 읽을 수 있는 작은 크기로 ‘1861년 4월 13일. 섬터 요새가 반란군의 공격을 받았다. 우리가 정부를 가졌음을 신에게 감사한다.’고 새겨놓은 것.  아일랜드계 이민자였던 딜론은 당시에 첨예하게 남과 북으로 의견이 갈렸던 워싱턴에서 가게 소유자로선 유일하게 북부동맹에 동조했다고 돌아본 바 있다.링컨을 응원하고는 싶은데 드러내놓고는 할 수 없어 시계에 응원 문구를 적어넣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비밀스러운 링컨 지지를 표명했다는 것은 친구들과 후손들을 통해 전해졌고 1906년 뉴욕타임스 기자 귀에 흘러들어갔다.당시 86세였던 딜론은 링컨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시계 속에 감춰진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재미있게도 그는 자신의 메시지가 ‘첫 총알이 발사됐다.노예는 죽었다.적어도 노력은 하는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에 신에게 감사한다.’라고 신문에 잘못 일러줬다.  그러나 NYT는 이 회중시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에 딜런의 회고가 잘못된 것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증손자로 아일랜드에 살고 있던 더그 스틸레스도 몇십년 전 이 얘기를 작은 할아버지로부터 처음 들었다.몇달 전 스틸레스는 구글 검색을 통해 뉴욕타임스 기사를 확인한 뒤 지난달 스미소니언 박물관 큐레이터와 연락이 닿게 됐다.이 큐레이터는 비밀 메시지 얘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10일 자원봉사로 박물관의 시계 수리를 도맡아하는 조지 토머스는 몇분을 투자해 이 시계를 조심스럽게 뜯어보았다.기자들과 박물관 직원들이 지켜본 가운데 시계를 뜯는 장면은 비디오로 녹화됐다.  ”자,진실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새겨진 글씨가 있을까요,없을까요.”라고 말하면서 토머스는 시계를 열었고 거기 새겨진 글씨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토해냈다.토머스는 스틸레스를 불러 자신의 선조가 남긴 글씨를 확인하게 했고 스틸레스는 “진주만 피습이나 9·11 테러처럼 (남북전쟁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었다고 말했다.이어 “16대 대통령의 회중시계인데 제 선조께서 낙서를 해놨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시계는 링컨이 죽을 때까지 늘 지니고 다녔으며 유족들은 1958년 이 박물관에 기증할 때까지 이를 보관하고 있었다.이 시계는 11일부터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며 딜론의 얘기와 사진 등이 곁들여진 설명문이 붙여진다고 박물관측은 전했다.  ●암살당하기 한달 전 촬영된 사진도 공개  한편 링컨이 백악관을 배경으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사진도 화제를 낳고 있다.현존하는 링컨 사진 130여장 가운데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지금까지 한 장도 없었다.  이 사진의 원래 주인은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의 후손이었다.율리시스 그랜트 4세(38)는 고조부의 개인 앨범에서 키 큰 남성이 백악관 앞에 서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그랜트는 원래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할 때만 해도 꼴찌권을 맴돌았고 음주로 물의를 일으켜 불명예 제대했던 인물.그러나 링컨의 각별한 신임과 본인의 부단한 노력과 헌신(담요도 깔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한뎃잠을 잤고 칫솔 하나만 들고 다녔다)으로 북군의 승리를 이끌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별 넷 대장이 됐고 46세에 당시로선 최연소로 1868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랜트 4세는 사진 속 남성이 링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바로 전문가에게 고증을 의뢰했다.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희미했지만 컴퓨터 대조 작업 등을 거쳐 링컨과 매우 유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사진 수집가 케야 모건은 사진 속 주인공의 키를 가리키는 표식을 남긴 뒤 ‘6.4’를 새겨넣었다.바로 링컨의 키 6피트 4인치.  더 확실한 증거는 ‘백악관 앞 링컨’이라고 쓰인 사진 뒷면의 설명이었다.1865년 3월6일에 촬영돼 링컨이 암살당하기 한 달 전에 찍힌 마지막 모습일 것으로 추정된다.사진에는 또 매사추세츠 출신의 상업사진사인 헨리 워런의 인장이 찍혀 있었고 남북전쟁의 전비 조달을 위해 모든 사진에 부과됐던 정부의 수입인지도 붙어 있었다.  찰스 해밀턴과 로이드 오스텐도프가 공동집필한 ‘사진속의 링컨‘이라는 책에 따르면 워런은 이 시기에 링컨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여행했으며 링컨의 2기 취임식 직후 링컨의 막내아들 타드를 촬영하면서 타드에게 아버지와 함께 포즈를 취하도록 요청,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이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모건은 지난달 그랜트 4세로부터 이 사진을 5만달러에 구입했다.  이 사진의 인물이 설령 링컨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백악관을 촬영한 사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골목길, 그 추억까지 개발할 수 없나요

    골목길, 그 추억까지 개발할 수 없나요

    서울 강남과 강북을 한번에 잇는 편리한 교통 탓에 옥수동은 값싼 ‘전·월세방 천국’에서 수억원대 ‘고급 아파트 천국’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김 소장은 빼곡하게 붙어 있는 주택가 골목길을 걸으며 “옥수동은 건축가 없는 건축물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그러면서 옥수동 주택의 단상을 들려주었다. “10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옥수동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원래 1층짜리 집들이 점점 한층 한층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그때그때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개발차관(AID)을 받은 돈으로 지었거든요. 예를 들어 서로 붙어 있는 집인데 하나는 5층이고 다른 하나는 6층이에요. 서로 다르게 층수를 올리다보니 그렇게 된 거죠. 또 무수한 계단이 이어져 있기도 합니다. 계단을 끝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하면 다시 그 계단이 다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기도 하죠. 모두 한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필요할 때마다 지어졌기 때문이죠. 같은 건물이지만 층마다 외벽 색깔이 다른 데도 있습니다. 질서도 없고 도면도 없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주택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재개발되면 ‘이윤’을 위해 천편일률적인 비둘기집이 만들어지겠죠.”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던 삶의 터전 옥수동 주택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꼭 닮았다. 얽히고 설킨 채 얼굴 맞대고 살아서 그럴까, 옥수동 사람들은 누가 누구라고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비슷하게 닮아버렸다. 동네 입구에서 17년째 목화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동갑내기 부부 김성무(44)·최종현씨는 이 동네 터줏대감으로 통한다. 김씨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요. 여기선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알아요. 가족 같은 이웃이지요. 그래선지 손님들도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넉넉하게 웃었다. 옥수동을 닮았다. 이들 부부는 “재개발이 되면 정들었던 이웃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딸내미 둘 키우며 살아온 옥수동이 그대로 없어지는 게 서운하고 아쉽다.’는 김씨 부부의 한숨이 짙다. 38년 전 옥수동에서 태어난 차희경씨는 역시 옥수동에서 태어난 딸 혜원(6)이의 손을 잡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 중턱에 있는 차씨의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린 혜원이가 혼자 들락날락하기 위험해 보였다. 항상 차씨가 데리고 다닌다. 여섯살배기를 항상 데리고 다니는 게 귀찮아서라도 옥수동이 싫어질 법한데, 차씨는 “이게 다 행복”이라며 배시시 웃는다. “어렸을 적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누비면서 뛰어놀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어요. 그 추억을 잊지 못해 결혼해서도 여기서 살고 있어요. 우리 딸에게도 그런 정겨운 추억을 갖게 해주고 싶어 이런 불편쯤은 감수하죠.”라는 게 차씨의 설명이다. 차씨에게 재개발이 반가울 리 없다. “어디 가서 아파트 한 채 사기도 모자란 보상금도 문제지만, 30년 추억이 서린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파요. 꼭 갈아엎고 아파트를 지어야 하나요.”라며 차씨는 되물었다. 그 옆에서 골목길을 올라가던 김말덕(76) 할머니는 기어이 눈물을 내비쳤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다 먼저 떠난 남편과 사별하고 30년 전 옥수동에 정착해 4남매를 길러낸 김 할머니다. 팍팍한 세월을 동네 친구들과의 수다로 견뎌냈는데, 이제 동네가 재개발되면 무슨 재미로 그 답답한 아파트 골방에 박혀 있겠냐는 게 할머니의 사연이었다. ●일상의 역사도 가치가 있다 옥수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쥐꼬리만 한 보상금만큼이나 그들의 삶터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분노했다. 몇 십년간 고수해온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부정(否定)되는 것은 그들 자신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다. 김 소장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경제적 약자일지 모르겠으나 문화적으로는 강자예요. 제가 사진을 찍으러 재개발 지역을 돌아다니면 재개발 업자들은 ‘뭐 이런 잡동사니를 다 찍나.’ 하는 눈빛이지만 동네 할머니들은 ‘이런 곳이 서울에 또 어디 있겠어. 잘 찍어놔.’ 하며 격려해줘요.”라며 자랑했다. 옥수동뿐 아니다. 서울의 곳곳은 재개발과 뉴타운 광풍에 밀려 점차 옛 정취를 잃어버리고 있다. 개성 넘치는 조그만 집들과 그 사이로 난 골목길, 그 길을 걸을 때 뭉글뭉글 풍기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는 자꾸만 들어서는 네모반듯한 아파트에 밀려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김 소장은 “한양이 조선의 도읍이 된 1394년부터 사람들은 서울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아왔어요. 그런 역사들이 동네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다 없애버리면 어떡하나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소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탈리아는 골목길로 유명한 곳이 많습니다. 불편하기 이를데 없지요. 물도 안 나오고 웬만한 차도 들어가기 힘듭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그곳에 사는 건 그 정도의 문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스의 산토리니는 보존을 잘해서 관광지도 되는데, 우리는 왜 못하는 겁니까.” 김민희 이영준 안석기자 haru@seoul.co.kr
  • 구직처녀 불러 여관방서 신체검사

    구직처녀 불러 여관방서 신체검사

    신체검사를 해야한다며 웃옷을 벗겼다. 젖가슴을 만져본 뒤 바지도 벗겼다. 남자를 알아야 한다며 두 사나이가 차례로 덮쳤다. 그리고는 합격이라며 기지촌에 창녀로 팔아 넘겼다. 구직소녀들을 이렇게 팔아 먹는 일당 중 1명이 경찰에 잡혔다. 놀랍게도 그의 나이는 겨우 이제 20살. 어릴 것, 가슴 풍만할 것 등 3가지 기준 내세워 뽑고 지난 4월25일의 일. 『미군 「홀」여급 초보자 환영 학력불문 18~25세 침식제공 (99)4XX5』 신문광고를 본 이(李)모양(17)이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는 이들의 「아지트」인 성북구 미아동 P여관의 것. 이양은 충청도 C읍에서 무작정 상경한 가출소녀. 이양의 전화를 받은 柳모(20·구속)는 여관 근처 다방에서 이양을 만났다. 차를 마신뒤 중국집에 데려가 점심까지 사 주는 친절을 보였다. 그리고는 여관으로 데려갔다. 여관에는 공범 나(羅)모(27·미체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양을 침대에 걸터앉게 했다. 어느 새 여관방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사나이들은 이것저것 쓸데없는 몇가지를 물어왔다. 『남자와 관계 해 본 적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신체검사를 해 봐야겠다』며 옷을 벗으라고 했다. 「홀」에 근무하자면 남자도 알아야 하니 성교육을 시켜주겠다며 발가벗으라고 강요했다. 유가 침대에 걸터앉은 이양을 떠밀어 누이고는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웃옷을 벗기고는 떡주무르듯 하더니 바지를 벗기려 들었다. 이양의 반항이 더욱 거칠어졌다. 보고만 있던 나(羅)가 거들기 시작했다. 이양은 깨끗이 발가벗기고 말았다. 사나이들은 할딱거리며 발버둥치는 이양을 차례로 욕보인 뒤 김(金)모(46·미체포·문산 거주)에게 넘겼다. 일금 1만원을 받고. 이들은 구직소녀들을 첫째 나이가 어려 가급적 남자 경험이 없을 것, 둘째 그러나 젖가슴이 풍부할 것, 세째 국부에 있어야 할 것이 풍부할 것 등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는게 유의 진술. 이렇게 하여 17살 어린 소녀의 푸른 꿈은 무참히도 꺾이고 미군상대의 창녀가 되어 버린 것. 유에 의하면 이양은 이들의 첫 손님. 그날 하루 광주(光州)에서 온 김모양(16)마저 처리한 뒤 「아지트」를 옮기고 다시 광고를 냈다. 남자를 알아야 한다면서 차례로 덤벼든 후에 “합격” 고향인 전북 D읍에서 중학교를 나온 유는 69년 무작정 상경, 외삼촌집에서 얼마를 얹혀 살다가 S식빵에 들어갔다. 20개월 정도 일하다 사고를 내고 지난 봄에 쫓겨난 뒤 형의 친구인 김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잘 수 있는 곳이면 아무데고 취직 좀 시켜줄 것』을 부탁했다. 부탁을 들은 김은 처남 나(羅)를 소개시켜 주며 둘이서 광고를 내어 아가씨들을 꾀어 넘겨주면 1만원씩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로 신문에 광고를 내고 찾아온 아가씨를 팔아 먹었던 것. 잡힐 때까지 20여일 동안 5차례에 걸쳐 「아지트」를 바꿔가며 6명의 소녀를 팔아먹었다고 유는 경찰에서 자백했다. 이들이 잡힌 것은 5월16일. 욕을 본 한 처녀의 고발로 경찰이 현장을 덮친 것이다. 다섯번째 광고를 내자 시내 미아동에서 이모양(17)과 장(張)모양(16)이 함께 찾아왔다. 여관에 데려가 유와 나(羅)가 각각 1명씩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서 남녀관계를 몸소 가르쳐 주는 성교육(?)을 하려던 순간 또다시 이들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서 나(羅)는 새로 전화를 해 온 아가씨를 데리러 갔다. 그동안 유가 둘을 한방에 두고서는 지키고만 있었다. 나(羅)는 새로 온 아가씨를 옆방에 데려가 성교육을 실시했다. 아지트 바꿔가며 1만원에 기지촌 넘겨 그리고는 유가 있는 방으로 와서 미처 성교육을 못했던 두 소녀에게 덤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먼저 당한 옆방의 아가씨가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던 것. 그동안 나(羅)는 달아나 버리고 유만 잡혀 영리를 위한 유인혐의로 구속됐다. 이때 신고한 아가씨는 대구(大邱)에서 편물을 하다 신문광고를 보고 바로 전날 상경한 이모양(20). 유는 경찰에서 『처음 다방에서 만날 때 그렇고 그런 곳인데 갈 마음이 있느냐를 물은 뒤 가겠다는 아가씨들만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고 진술. 만일 오는 대로 다 데려갔었으면 40명도 넘었을 거라며 그래도 자기들은 착한 편이었다는 표정. 그러나 장·이 두 소녀는 『맥주만 날라다 주면 되며 한달 수입이 7~8만원은 거뜬하다』기에 따라 갔다고 말했다. 경찰이 김을 잡기 위해 문산 김의 집을 덮쳤을 때 김은 없고 다른 곳에서 팔려온 아가씨가 1명 있었다. 김모양(19)이라는 이 아가씨는 고향인 강원도 S읍에서 지난 4월29일 집을 떠나 이튿날 새벽 4시30분 서울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차장이 되고 싶어』서울에 올라온 김양은 청량리역을 무사히 나와 묻고 물어 마장동 시외「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정류소 근처에서 40대의 한 남자가 『취직을 하러왔느냐?』며 친절히 물어왔다. 『차장이 되고 싶다』는 김양의 말에 이 사나이는 자기는 운전사인데 마침 차장을 바꾸려는 참이었다며 데리고 갔다. 데려간 곳이 경동시장안 D여인숙. 이곳에서 나흘 동안 갇혀 있으면서 순결을 뺏긴 김양은 5월3일 김을 따라 문산에 갔다. 문산에 도착, 김양이 인계된 곳이 김씨의 집, 이곳에서 다시 욕을 본뒤 경찰이 덮칠 때까지 있었던 것. 김양은 나이에 비해 덩치도 워낙 작고(150㎝ 미만) 몸매도 형편 없었기 때문에 미군상대로는 불합격품(?)이라 한국인 상대 창녀촌에 넘기기까지 김의 집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경찰은 김을 잡고 보면 여죄가 많을 것으로 보고 계속 김의 뒤를 쫓고 있다. 취조 형사는 『이들도 지독히 나쁜 놈들이지만 무작정 상경하는 소녀들이 없어야 이런 일이 없어질 것』이라며 안타까운 한숨을 지었다. <하(夏)> [선데이서울 72년 5월 28일호 제5권 22호 통권 제 190호]
  • [엄마와 읽는 동화] 못 버려 할머니/유은실

    [엄마와 읽는 동화] 못 버려 할머니/유은실

    우리 할머니는 못 버려. 오래된 물건을 모아두고 날마다 조금씩 꺼내보지. “이건 우리 어머니가 만들어준 바늘집.” “이건 우리 아들이 아홉 살 때 선물한 종이 카네이션.” “이건 죽은 남편이 사준 모자.”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할머니는 물건에 시간이 담겨 있다고 믿어. 옛날 물건을 만지면 그것과 함께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대. 할머니는 주워 모으는 것도 좋아해. 날마다 오래된 손수레를 끌고, 오래된 물건을 찾으려고 동네를 돌아. 그러다가 맘에 드는 걸 발견하면 “아이고 이렇게 쓸 만한 걸 누가 버렸대.” 그러면서 얼른 수레에 실어. 한번은 내가 이렇게 물었어. “할머니, 왜 그렇게 주워 모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셨지. “언젠가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할머니 집에는 ‘언젠가 쓸 데’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건으로 가득해. 물건은 다락을 가득 채우고, 옥상을 가득 채우고, 마당을 가득 채우고, 집안 곳곳에 가득가득해. 할머니는 물건 더미 사이에 난 길을 따라서 집안 이곳저곳을 다녀. 나는 할머니 집이 재밌어. 동생이랑 미로 찾기, 숨바꼭질 하면 딱 좋아. 한 번은 할머니 집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대문을 두드리고 물었어. “여기 고물상이죠? 빈 병 받나요?”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만들어 냈어. 바로 ‘고물상 놀이’. 나랑 동생은 고물상 놀이를 하면서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그래도 할머니는 내버려둬. 엄마 아빠는 할머니 집이 복잡한 걸 싫어해. 먼지랑 곰팡이 때문에 할머니 건강이 나빠질까봐 걱정된대. 사람들이 “저 할머니 미친 거 아니야? 집이 쓰레기장 같네.”하고 수군거리는 것도 싫은가봐. 동네 사람은 할머니가 제 정신이 아닌 줄 알아. 하지만 할머니 뇌는 아주 건강하지. 집에 빈 내복 상자가 57개, 오래된 라디오 21개, 빨래집게가 179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어머니, 필요한 것만 두고 좀 버리세요.” 엄마는 오십 번도 넘게 말했어. 하지만 할머니 대답은 언제나 똑같지. “얘, 그거 다 필요한 거다.” “엄마, 꼭 간직할 것만 두고 좀 버립시다.” 아빠가 백 번도 넘게 말했어. 하지만 할머니 대답은 언제나 똑같아. “얘, 그거 다 꼭 간직할 거다.” “할머니, 아무 것도 버리지 마세요. 재밌어요.” 내가 딱 한 번 말했어. 그러니까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지. “그래. 하나도 안 버릴게.” 우리는 토요일마다 할머니 집에 가. 음식은 꼭 싸가지고 가야 돼. 아니면 밖에 나가서 사먹거나. 부엌이 오래된 물건이 가득해서, 음식 만들기가 불편하거든. “참, 저 미로 같은 데서 어떻게 밥을 해 드시나 몰라.” 엄마는 할머니가 신기하대. 할머니 집에 가면 밥을 꼭 안방에서 먹어야 돼. 부엌에 커다란 식탁이 있지만, 오래된 그릇이 쌓여 있어서 밥 그릇 하나 올려놓을 틈도 없거든. “얘, 내가 서운한 게 있다.” 지난 주 토요일에 할머니가 말씀하셨어. “뭔데요?” 아빠가 대답했지. “왜 엄마 집에서 한 번도 자고 가지 않니? 집에 이불도 많은데. 우리 집 이불이 스물 두개, 베개는 스물네 개야.” “엄마는 참. 이불이랑 베개가 많으면 뭐 해요. 우리 식구 잘 데가 없는데.” “방이 세 개나 되잖아.” “작은 방은 짐으로 꽉 찼잖아요.” “그럼 안방에서 같이 자면 되잖아.” “어휴 엄마. 여기서 어떻게 다섯 식구가 자요.” 할머니는 안방을 빙 둘러보았어. 그리고 얼굴이 어두워졌지. 안방은 오래된 물건으로 가득해서, 다섯 식구가 앉아 있을 순 있지만 누울 순 없거든.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가만히 계셨지. “너희들 말이 맞구나.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버려야 했어.” “예에?” 엄마는 눈이 커다래졌어. 아빠는 입을 쩍 벌렸지. 할머니가 “버려야 했다.”고 말한 건 처음이니까. 다음날 아침 일찍 할머니는 정리를 시작했대. ‘꼭 간직할 것만 두고 버리자.’ 할머니는 굳게 마음을 먹었대. 하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니, 뭐가 더 간직할 만한 건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나봐. ‘그럼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버리자.’ 할머니는 눈을 딱 감고 결심했대. 하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니, 뭐가 꼭 필요한 건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나 봐. 할머니는 오전 내내 안방을 뒤지다가 버릴 걸 딱 2개 찾아냈대. 녹슨 옷핀 하나, 그리고 광고지 한 장. ‘도저히 안 되겠어. 아들 며느리한테 부탁해야지.’ 할머니는 안방을 정리하는 동안 이모할머니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대. 그러지 않으면 버린 물건을 죄다 가지고 들어올 것 같아서. 우리는 어제 할머니 집을 정리하러 왔어. “꼭 간직할 거랑,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버려라.” 할머니는 이모할머니 집으로 떠나면서 말씀하셨어. 할머니는 택시 트렁크에 커다란 가방 2개, 라면 상자 2개를 싣고 가셨어. 이모할머니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모아둔 거래. “아빠, 저거 필요 없으면 어떡하지?” 내가 물었어. “괜찮아. 엄마가 떠나면 분리수거해서 버릴 거니까.” 아빠가 씩 웃으며 말했어. 하긴, 엄마도 그래. “어머니, 이거 꼭 필요한데, 저 주세요.” 그래놓고 분리수거 하는 날 버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할머니 집은 발 디딜 틈도 없을 거라나? 엄마 아빠는 장갑을 끼고 안방 정리를 시작했어. 빈 내복 상자 57개, 고장 난 안마기 9개, 그리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쌓인 신문을 내다버리는 건 쉬웠어. 하지만 빛바랜 상자를 연 다음부터 문제가 생겼지. 아빠는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이렇게 말했어. “이건 내가 초등학교 때 쓰던 책받침이네.” “어, 이 그림일기가 아직도 있네.” “세상에 이건 내가 쓰던 슬리퍼잖아.” 아빠는 나를 부르더니 낡은 슬리퍼를 신어보라고 했어. 슬리퍼는 나한테 딱 맞았지. “아, 이 상자는 내가 가져가야겠다. 완전 추억의 상자야.” 아빠는 상자를 들어다 차 트렁크에 실었어. 그러고는 계속 추억의 상자를 찾아냈어. 트렁크는 어느새 아빠 추억으로 가득 찼지. “못 살아, 누가 그 어머니 아들 아니랄까봐.” 엄마는 짜증을 냈어. 그러고는 아빠를 안방에서 쫓아냈지. “내가 싹 치울 거니까. 나가!” 엄마는 우리 집 안방이 할머니 집처럼 될까봐 겁이 났나봐. 쫓겨난 아빠는 우리랑 놀았어. 마루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할머니 놀이’도 했어. 할머니 놀이는 내 동생이 만든 건데 물건을 집고 “이건 내 친구가 준 액자.” 이렇게 지어내는 거야. 그러면 다음 사람은 “이건 옆집에서 주운 바구니.” 이러고 그 다음 사람은 “이건 죽은 남편이 사준 인형.” 이러는 거야. 말이 막히면 죽는 건데, 잘 안 죽었어. 집어도 집어도 또 집을 물건이 있으니까. 엄마는 결국 우리 식구들이 누울 만큼 방을 치웠어. 하지만 싹 치우지는 못했지. “왜 싹 치운다더니?” 아빠가 물었어. “그게 잘 안 되네. 어머니한테 뭐가 꼭 소중한 건지, 뭐가 꼭 필요한 건지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엄마는 짐들이 할머니 인생 같았대. 자기 인생은 자기만 정리할 수 있는 거라나? 오늘 아침, 엄마 아빠는 미로 같은 부엌에서 겨우 밥을 했어. “부엌도 좀 치워야겠어. 잘 데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음식도 해먹어야지.” 엄마 아빠는 할머니랑 부엌을 함께 치울 거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엔 할머니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잠도 잘 거래. 나는 재밌는 할머니 집에서 자는 게 기대되었지. 하지만 나는 곧 기대를 접었어. 택시를 타고 오실 줄 알았던 할머니가 트럭을 타고 오셨거든. “할머니, 이게 다 뭐예요?” 내가 물었어. “니 이모할머니가 글쎄 멀쩡한 가구랑 물건들을 버린다잖니. 두면 쓸 데가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 운전사 아저씨는 트럭에서 짐을 내렸어. 아빠는 한숨을 쉬고, 엄마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어. “할머니, 이 거 어디다 놓을까요?” 기사 아저씨가 물었어. “우선 안방에 갖다놔요. 나중에 정리할 거니까.” 할머니 집 안방은 다시 다섯 명이 앉을 데밖에 없게 되었어. “다음 주에 와서 자고 가. 내가 다 정리해 놓을 거야.” 할머니는 우리를 배웅하면서 말했어.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안 될 거래. 물건을 배 위에 올려놓든지, 차곡차곡 포개서 자지 않는다면 말이야. ●작가의 말 친구에게 잘 버리지 못하는 어머님 얘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몰래 장롱 속 오래된 물건을 뒤지던 생각이 났다. 손때 묻은 물건은, 그 물건이 활발하게 쓰였던 시간과, 그 시간과 얽힌 사람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효용가치가 다해 버려지는 물건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극도로 아끼는 할머니와 그걸 바라보는 자식, 손자 얘길 그려봤다. 그리고 내가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 너무 쉽게 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못 버려 할머니’ 집에 가서 하루만 실컷 놀아봤으면 좋겠다. 할머니 놀이, 고물상 놀이 만들어낸 아이들이랑. ●약력 1974년 서울 생. 창비어린이 2004 겨울호에 ‘내 이름은 백석’ 발표하면서 등단. 펴낸 책으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만국기 소년’, ‘멀쩡한 이유정’이 있음
  • 팀 해체 대만, 월 100만원 계약직 시장에 나온 선수들

    팀 해체 대만, 월 100만원 계약직 시장에 나온 선수들

    7일 WBC 1라운드에서 최약체 중국에게 패해 충격에 빠진 대만 야구팬들은 이날 또 하나의 힘빠지는 소식을 접했다. 6개팀으로 운영되던 대만 프로리그는 지난해 도박사건 여파와 경기침체로 종신 웨일즈 등 2개팀이 해체됐는데. 이 와중에 실직한 프로 선수들이 정부가 실업해소를 위해 마련한 계약직 구직 시장에 대거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7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시 수리처(水利處) 공모 시험 장소. 월 120만원 수준의 급여를 주는 기능직을 뽑는 자리였는데. 그나마 계약직이었다. 특별할 곳 없는 이 곳에는 뜻밖에도 월 평균 500만원 정도 받았던 20여 명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들이 몰려 나와 일찍부터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스피커를 통해 “8번. 량뤼하오 선생”이라는 방송이 나오자 한 선수가 일어 섰다. 량뤼하오는 지난해까지 라뉴 베어스 마운드를 지켰던 선수. 그의 앞에는 62㎏짜리 모래 포대가 놓여 있었다. “지금부터 모래 포대를 들고 10초 안에 10m를 왕복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어떤 식으로 들든 상관없습니다. 자 출발!”이라는 방송이 나오자 그는 포대를 어깨에 걸치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그처럼 안간힘을 썼다. 이날 구직에 나선 한 선수는 “지난해 퇴출된 뒤 막막한데다. 경기도 좋지 않아 생계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훈련을 하며 복귀를 시도하고 싶지만. 이상과 현실을 둘다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구직시장을 전전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민 식탁서 삼겹살 사라진다

    서민 식탁서 삼겹살 사라진다

    남녀노소가 즐겨먹는 음식이자 황사를 막는 음식으로 알려진 돼지고기가 올봄 서민들의 식탁에서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불황 때문에 지갑은 얇아진 반면 지난해 광우병 파동 이후 급등한 돼지고기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서다. 한국양돈협회에 따르면 3월 현재 돼지고기 1㎏당 가격은 4773원(도매 기준)이다. 지난해 이맘때 3245원과 비교하면 1년 동안 1500원 정도 오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돼지고기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수입산보다 가격이 비싼 국내산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정육점에서는 “죽겠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H정육점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은 데다 삼겹살 한 근에 1만원을 넘으니 지난해보다 돼지고기 매출이 40%가량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돼지고기 가격이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광우병 파동이 일던 5월 무렵부터다. 그 해 1월만 해도 1㎏당 2860원이었던 돼지고기 값은 5월엔 4500원, 6월엔 5000원까지 올랐다. 서울시내 음식점에서 ‘삼겹살 1인분에 1만원’을 받기 시작하던 때다. 전통적으로 황사나 바깥 나들이 때문에 돼지고기 수요가 급증하는 봄엔 가격이 더 오른다. 서울 서대문구 E정육점 관계자는 “보통 한 근(600g)에 1만원쯤 하는 삼겹살이 5월쯤엔 1만 6000원까지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와 한국양돈협회는 지난 3일을 ‘3·3 삼겹살데이’로 정해 대대적인 판촉에 나섰지만 마진율을 대폭 낮춘 반짝 행사였던 터라 지속적인 가격 인하라고 보긴 어렵다. 한국양돈협회 김동환 회장은 “오는 5월쯤이면 돼지고기 가격이 쇠고기를 추월할까봐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희망 만들기] 암 투병 한부모 가장 장금님씨

    [희망 만들기] 암 투병 한부모 가장 장금님씨

    ‘통장 잔액 -500만원, 카드 빚 1억원, 사채 5000만원, 현재 지갑에 든 돈 3000원….’ 1년 6개월째 암 투병 중인 미혼모 장금님(42)씨의 재산 현황이다. 그는 유방암 2기로 한창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가족이라곤 중학생 외아들(14)뿐이다. 아이 아버지는 14년 전 장씨의 돈을 몽땅 갖고 달아났다. 장씨는 마포구 합정동 반지하 단칸방 친구집에서 아들과 같이 얹혀 지내고 있다. 5일 장씨를 만났다. 장씨는 “잠잘 곳조차 마련해 주지 못하는 애미 만난 탓에, 우리 애 혼자 컸어요. 그런데도 반에서 4등이나 해요. 쟤 봐서라도 저 일어나야 해요, 쟤한텐 저밖에 없잖아요.”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장씨가 사는 6.6㎡(2평) 남짓한 방은 군데군데 벽지가 찢겨 떨어졌다. 침침한 등, 신발장도 없는 현관…. 장씨는 넉넉지 않은 친구집에 얹혀 사는 게 늘 마음에 걸린다. 그는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한다. ●아이 아빠에게 수억원 사기 당해 장씨는 전남 강진 시골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용사로 성공할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아이 아빠를 만나면서 꿈은 악몽으로 변했다. 아이 아빠가 장씨를 속이고, 수억원을 가로챈 뒤 종적을 감춰버렸다. 장씨는 졸지에 미혼모 ‘빚쟁이’가 됐다. 장씨는 미용실에서 ‘눈물밥’을 먹으며 돈을 모았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악착스럽게 일했다. 빚을 거의 갚고 한숨을 돌릴 무렵인 2007년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 한 달만에 재발해 여태 투병하고 있다. 유방암이 임파선까지 전이됐다. 수술 뒤로는 가위 들 힘이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 “전, 꼭 살아야 해요, 아니 살 거에요.” 엉치등뼈, 허리까지 타는 듯한 고통은 하루가 갈수록 심해졌지만 살아야 한다는 장씨의 의지는 더 강해졌다. 아들 때문이었다. 합정동주민센터는 장씨를 기초수급자로 정하고, 매월 70만원의 생계비와 의료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수백만원에 이르는 장씨의 병원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위를 놓아 수입도 없다. 장씨가 맞는 항암주사 ‘허셉틴’의 1회 비용이 200만원 가까이 든다. 이 약은 의료보험 수혜 대상이 아니다. 순전히 장씨가 다 부담한다. 장씨는 이 주사를 지난 1년 6개월간 3주에 한번씩 맞았다. 종합검사, 초음파검사 비용까지 병원비로만 월 520만원이 든다. ●비싼 항암치료비에 눈물만 다시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지금까지 병원비로만 1억 5000만원이 나갔다. 암 투병 중이라 식이에도 신경써야 하지만 워낙 어려운 형편이라 밥과 김치로만 식사를 때운다. 장씨는 “병원에서 이제 주사를 두 세번만 더 맞으면 병세가 좋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 당장 수중에 있는 돈은 3000원뿐”이라고 말했다. 장씨의 동기는 7남매로 형제가 많지만, 여러차례 병원비를 빌린 탓에 사이가 소원해졌다. 이젠 친척들과의 소식도 끊기다시피 했다. 신연숙 합정동 주민생활팀장은 “아이 때문에 살려고 애쓰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목이 멜 지경”이라면서 “모자가 시련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웃들의 따뜻한 도움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합정동주민센터 322-3631. 글ㆍ사진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5일 항암 치료중인 장금님씨가 친구집인 마포구 합정동 반지하 단칸방에서 자리보전하고 있다.
  • [국민생활 발목-전봇대를 뽑아라] 공장입지유도지구 내 공장 설립 민간에겐 그림의 떡

    [국민생활 발목-전봇대를 뽑아라] 공장입지유도지구 내 공장 설립 민간에겐 그림의 떡

    “공장입지유도지구 내 공장설립요? 그림의 떡입니다.”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장설립 여건이 좋은 지역을 사전 지정해 개별 공장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2년 전 만들어진 ‘공장입지유도지구’가 탁상행정에 가로막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특히 공장입지유도지구 사업시행자를 지정권자인 시장·군수로만 제한하고 있어 실수요자인 민간기업들은 개발할 수조차 없는 상황. 때문에 2007년 4월 국토계획법 개정으로 도입된 공장입지유도지구는 아직 한 곳에서도 형성되지 못했다. ●2년간 지구설립 ‘제로’ 5일 지역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자동차부품·조선기자재 등을 제조하는 W회사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일대에 7만 8244㎡ 규모의 공장을 짓기 위해 공장입지유도지구지정 신청을 했다.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도로, 오·폐수처리시설 등 기반시설을 닦고 공장을 지어 5개 업체를 입주시키려 했으나 민간개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 업체의 사장은 “소규모 기업들의 공장 운영을 돕겠다고 만들어진 공장입지유도지구의 취지와 운영이 너무 달라 혼란스럽다.”면서 “기업들은 적시에 공장을 세워 운영해야 하는데 사업시행권이 없으면 공장설립 허가와 토지매입 등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장·군수에게만 있는 사업시행자 권한을 민간기업에 줘야 한다는 의견은 비단 기업인들만의 하소연이 아니다. 재정력이 약한 중소 지방자치단체들은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 지형상 도로 등 각종 기반시설 설립 부담 때문에 공장입지유도지구 지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밀양시 관계자는 “현행 제도가 활성화되려면 입주를 원하는 민간기업도 사업시행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산이 많아 공장 진입로부터 상·하수도, 오·폐수처리관로 설치 등 기본적인 정비들이 같이 이뤄져야 기업들이 입주할 텐데 수백억원의 예산이 들어 엄두도 못 낸다.”고 한숨지었다. ●국토부 “지자체 재정과 의지 문제”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입장은 완강했다. 공장입지유도지구에 사업시행자를 실수요자인 민간기업에 넘기면 일반산단과 개념상의 차이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장입지유도지구는 개발실시계획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자체가 공장을 짓는 구역만 지정해주는 것”이라면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자체의 재정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때문에 공장입지유도지구를 계획중인 김해시, 아산, 수원, 공주, 삼척 등 곳곳의 지자체들은 정부가 경제난에 허덕이는 지역 현실을 무시한다며 속앓이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규제개혁자문단은 “환경이 열악한 지방에 5~10개의 소규모 기업이라도 유치하려면 기반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대로라면 제도의 실효성이 전혀 없다. 민간기업에 개발근거를 만들어줘 지역 입지를 꺼리는 기업들이 마음을 돌리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회사 팔아도 빚 못갚아” 구인광고 자리엔 ‘매매·임대’ 전단지만

    “회사 팔아도 빚 못갚아” 구인광고 자리엔 ‘매매·임대’ 전단지만

    원·달러 환율 급등과 엔고(円高)의 깊은 늪에서 중소업체들이 허덕대고 있다. 환율이 대기업 수출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중소업체들에는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부품소재 대부분을 일본에서 들여오기 때문이다. 5일 찾은 인천 남동공단의 중소업체들은 내수침체와 수입가 폭등, 엔화 대출 상환 부담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천 전체 제조업체의 48%, 근로자의 30%를 차지하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국가산업단지 공단에 들어선 기자를 처음 맞은 건 전봇대였다. ‘매매’ ‘임대’라고 적힌 전단지가 나붙었다. 싱크대를 생산하는 한 공장은 한창 프레스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지만 잠잠했다. 철문 앞에 바리케이드인 양 일렬로 늘어선 자동차에는 ‘신용대출’을 권하는 전단지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주변 상인들은 “공단이 한창일 때는 술집이나 안마업소 명함이 서너 개씩 꽂혀 있었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 업체가 밀집한 2지구의 한 공장을 찾아 신분을 밝히자 “지금 바쁘니깐 나가라.”며 발끈했다. 열한 번의 문전박대 끝에 간신히 한 업체의 공장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10년째 엔진관련 부품을 만들고 있다는 김모 사장은 환율을 원망했다. “2006년 공장을 확장하면서 연 2% 금리로 30억원을 엔화로 대출받았지. 그때만 해도 월 이자 600만원만 부담하면 되니 많이들 빌려 썼어.” 하지만 1년 만에 금리는 3%대로 올랐고 지난해 말 원·엔 환율이 100엔당 1500원대로 급등하면서 원금은 순식간에 50억원이 됐고, 금리도 6%로 폭등했다. 월 이자만 1500만원이 넘었다. 1월에만 직원 5명을 줄였다. 이자라도 갚으려고 공장을 돌렸는데 협력업체가 휴무에 들어가면서 납품할 곳도 없어졌다. 땅값도 폭락해 이젠 회사를 팔아도 빚도 못 갚는다. 자동차 금속공구 수출업체 사장 최모씨는 “치솟던 원자재 값이 그나마 내려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제는 환율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생산비용이 40% 가까이 뛰면서 18명의 직원 가운데 4명을 지난 1월 내보냈고, 지난 2주 동안은 공장 가동도 중단했다. 30년째 베어링을 생산해 온 L사는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연 매출 1100억원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이 업체는 새로 개발한 금형제품에서 활로를 찾았다. 까다로운 일본 자동차 회사를 뚫는 데 성공했고, 환율이 뛰면서 가격 경쟁력도 높아졌다. 업체 관계자는 “부품을 직접 생산, 수출하는 덕에 환율 부담은 적은 편”이라면서 “원자재값 상승으로 일부 생산라인을 중단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아직까지 1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고 버텨내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 내 한 부동산엔 최근 공장 매물이 100건 정도 올라와 있었다. 500평 공장이 30억원에 거래되던 게 올해 20% 정도 떨어졌다. 대형 공장은 더 싼 값에도 나온다. 대부분이 사업을 그만두거나 대출금을 갚기 위해 내놓고 있지만 지난달 거래는 1건이 전부였다. 부동산 관계자는 “올해 경기가 안 풀리면 당장 급매물이 쏟아지거나 경매로 넘어가는 일도 생길지 모른다.”고 말했다. 목표 물량 달성을 위해 한창 바빠야 할 오후 5시30분. 공장 곳곳에서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밀려나왔다. 그러곤 다시 30분이 지나 6시가 되자 공단 대부분의 공장에서 불이 꺼졌다. 기계소리도 멈췄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남동공단의 공단 가동률은 69.1%. 10곳 중 이미 3곳이 멈췄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첫 견습공무원→정식임용 ‘그들의 3년’

    첫 견습공무원→정식임용 ‘그들의 3년’

    지난 2005년 ‘제1회 지역인재추천채용’을 통해 공직에 발을 들였던 46명의 견습 공무원들이 3년간의 견습을 마치고 지난달 6일 6급 공무원으로 공식 임용됐다. 공채가 아닌 특채라는 따가운 시선과 첫 견습 신분에 대한 주변 공무원들의 호기심 속에서도 무사히 견습을 마친 이들의 3년 애환과 포부 등을 들어보았다. “대학의 추천을 받아 선발됐기 때문에 특채 중의 특채라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견습이 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산술적으론 5000대1 뚫은 것 홍성덕(29·교육과학기술부)씨의 말처럼 견습 공무원으로 뽑히는 것은 바늘구멍 통과만큼이나 어려웠다. 견습채용에 지원하려면 먼저 학교대표로 선발돼야 하는데, 경쟁률이 치열하다. 학교마다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학과 수석만 모아 시험을 치른 뒤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경북대학교 대표로 선발됐던 성명진(27·여·보건복지가족부)씨는 “2만명의 학생 중 4명이 뽑혔으니 산술적으로 보면 5000대1을 뚫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률이 높은 만큼 우수인재도 많다. 홍성덕씨는 현대자동차에, 한혜림(27·여·통일부)씨는 삼성전자에 각각 합격했지만 견습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함께 시험을 쳤던 응시자 중에는 ‘신의 직장’공사에 근무하던 사람도 많았다. ●첫 출근날 경비원한테 제지 당해 천신만고 끝에 견습으로 뽑혔지만,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법제처로 발령을 받고 부푼 마음으로 첫 출근했던 황정순(28·여)씨는 입구에서 견습공무원증을 내밀었다가 제지당했다. 경비원이 견습공무원에 대해 몰랐던 것. 황씨는 “첫 한 달은 ‘견습이 뭐냐.’고 묻는 공무원들이 하도 많아 하루 종일 앵무새처럼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며 웃음 지었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정식으로 임용되기 때문에 실수를 했을 때는 아찔했다. 황정순씨는 공문을 잘못 보내는 바람에 직속 상사가 민원인들에게 곤욕을 치렀다. 성명진씨는 발송해야 할 공문을 두 달이나 대기함에 넣어 놨다가 다른 부처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성씨는 “용기를 내 상사에게 실수했다고 털어놨더니 오히려 ‘견습다운 실수를 했다.’고 웃고 넘겨 한숨 놓았다.”고 회상했다. 황정순씨는 “견습과정을 함께 밟았던 동기 중 3명이 다른 길을 가겠다며 떠나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나머지 동기들은 우리들이 ‘제도의 얼굴’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지난 3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1월 실업급여 신청 40대 48.7%↑ ‘최고’

    1월 실업급여 신청 40대 48.7%↑ ‘최고’

    실업급여 만료 인정을 받기 위해 3일 서울 북부고용지원센터를 찾은 허모(40)씨는 지난해 9월 노원구의 토지개발회사에서 일하다 회사 사정으로 해고됐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취업에 도전했으나 허사였다. 2년간의 직업훈련 대상자로 판정받으면 실업급여도 2년간 연장할 수 있으나 허씨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업급여를 더 이상 받지 못하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허씨는 “대학에서 전자과를 전공했고 관련 경력도 있어 소프트웨어 직종을 지원했는데, 40대라는 이유로 면접도 못 보고 있다.”면서 “희망 연봉을 1500만원까지 낮춰도 일자리가 없어 가족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1월 40대의 실업급여 신청자수가 처음으로 3만명을 넘어서면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8.7% 늘어나 증가율이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가족을 부양하는 부담이 가장 큰 연령대인 40대 실업 증가율이 가장 높다는 것을 의미해 주목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07년 1월부터 2년간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40대의 실업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3일 밝혔다. 지난 1월 실업급여 신청자 증가율은 40대에 이어 30대가 39%로 두 번째로 높았다. 20대 이하 33%, 50대 27.7%, 60대 이상 25.4% 순이었다. 조사 결과 지난 1월 실업급여를 신청한 40대 가운데 절반을 웃도는 53.1%는 실직하기 이전 사업장에서 1년도 근무하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1∼3년 미만 근속자가 26.7%, 3∼5년 미만 8%, 5∼10년 미만 7.7%, 10∼20년 미만 3.5%를 기록했다. 직업능력개발원이 이날 내놓은 ‘2009년 노동시장 전망 조사’에서도 ‘40대의 우울함’은 잘 드러난다. 조사 결과 고용전망 악화를 예상한 비율은 40대가 75.1%로 가장 높았다. ‘괜찮은 일자리’의 최소 월급은 40대가 291만 7000원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게 제시했다. 조사를 맡은 황규희 박사는 “40대는 가장 많은 지출이 필요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고용 불안은 가장 높게 느끼는 세대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에 고통받는 연령층”이라고 말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비정규직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40대 여성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과, 희망퇴직 여파로 인해 40대 실업급여 신청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뛰는 소년범죄… 기는 교화정책

    뛰는 소년범죄… 기는 교화정책

    소년 범죄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을 재판하고 교육하는 제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우선 소년보호사건을 처리하는 판사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서울가정법원 판사 2명이 8000건의 소년보호사건을 처리했다. 올해는 다행히 판사 1명이 늘었다. 이들은 소년사건에만 집중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방에서는 판사 1명이 이혼 등 다른 가사사건과 함께 소년사건을 맡는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법정에 아이들 수십명을 세워 놓고 이름만 확인하고 몇 호 처분인지 불러주기 일쑤다. 아이와 그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심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사들은 고백한다.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전문조사관, 보호전문가,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소년사건을 처리하지만, 지방에서는 이마저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법원 예산이 부족해 지방까지 지원금을 내려보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소년범의 75%가 이처럼 열악한 지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소년사건을 맡은 지방의 한 판사는 “처음 범죄를 저질렀을 때 국가가 최대한 빨리 개입해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며 정부의 인력 및 예산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걸림돌은 보호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법원은 재범 가능성이 있거나 부모가 가정문제로 자녀를 돌보기 어려울 때 아동복지시설이나 소년보호시설 등 수탁기관이 소년범을 보호하도록 한다(6호 처분). 처벌의 의미가 짙은 소년원과 달리 수탁기관은 교육과 상담을 목적으로 한다. 법무부가 아니라 종교단체와 사회복지법인이 시설을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전국 법원이 위탁계약을 맺은 시설은 35곳뿐이다. 총정원은 470명밖에 안 된다. 수탁기관의 정원이 꽉차면 법원은 6호 처분이 필요한 소년범에게 다른 처분을 내려야 한다. 수탁기관의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길거리에 내버려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이기주의’도 소년범 재교육을 어렵게 한다. 지난해 지방의 한 판사는 그 지역에 있는 소년보호시설이 열악해 소년범을 다른 지역의 시설로 감호·위탁하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해당 지자체가 관내 시설에 수용되는 소년범에 대해서는 예산을 지원하겠지만 관외로 보낼 경우 관련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판사는 “법원과 지자체 간 견해 차이는 결국 좁혀지지 않았다.”면서 “더 좋은 기관이 있는데도 아이들을 보내지 못하니 답답하다.”고 한숨 지었다. 결국 재범률은 심각할 정도로 높은 상태다. 처음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적절한 교육으로 바로잡지 못하고 아이들을 방치한 탓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6호 처분(아동복지시설이나 소년보호시설에 감호위탁)을 받고 전국 7개 소년보호시설에서 보호받았던 77명 가운데 63%인 49명이 다시 법정에 섰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아이들이 소년원이나 보호시설을 들락거리며 새로운 범죄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며 “소년범 관리는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 연극·뮤지컬 ●경남 창녕군 칠곡면 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계획에 없는 아이를 임신한 부부. 계산기를 두드려 보지만 아이 한 명 키우기에 턱없이 모자란 살림살이에 한숨만 나온다. 돈 없으면 아이도 못 낳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김선영 이주원 등 출연. 1만 5000~2만원.(02)518-6687. ●청춘 18대1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1945년 광복 한 달전,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청춘들의 뜨거운 열정, 혹은 무모한 객기. 극작가 한아름·연출가 서재형 콤비의 독특한 무대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민대식 이진희 등 출연. 2만 5000원.(02)708-5111. ●아이러브유 6일~9월13일 KT&G상상아트홀. 첫 만남에서 연애, 결혼, 육아, 노년의 로맨스 등 사랑에 관한 모든 에피소드를 담았다. 4명의 배우가 60개의 배역을 쉴새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경주 난아 등 출연.3만5000~5만원.(02)501-7888. ■ 대중음악 ●여행스케치 대학로 컴백쇼2 15일까지 평일 오후 7시55분, 토 오후 4시33분·7시55분, 일 오후 5시55분(월 쉼) 대학로 스타시티 5만원.(02)745-1575. ●조규찬 소극장 콘서트 15일까지 목·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7시30분, 일요일 오후 6시(월~수 쉼) 대학로 신연아트홀 5만원.(02)745-1575. ●추가열 라이브 콘서트 6~8일 금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5시 문화일보홀 4만~5만원.(031)871-5044. ■ 전시 ●김구림 개인전 3~21일 김재선갤러리. ‘음양 시리즈’ 중 소개되지 않았던 신작들과 최근 몇 년간의 드로잉 소품이 전시된다. 음양시리즈는 사실과 추상, 자연과 문명, 있음과 없음, 실제와 허상, 실제와 이미지 등 대립되는 요소들이 강하게 마찰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여 새롭게 통일된 제3의 이미지다. (02)3445-5438. ●독일의 ‘디갤러리’ 한국지점 개관전 4월 3일까지. 디 갤러리는 197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 독일의 대표적 화랑. 이탈리아,미국,스페인에 이어 한국에 화랑을 열었다. 개관전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게오르그 바젤리츠,베르너 뷔트너,A.R.팽크 등 독일 현대 미술 거장들의 회화 및 조각 작품 30여 점이 전시된다.(02)3447-0049. ■ 국악·클래식 ●명창 김혜란이 걸어온 소리인생 ‘가인(歌人)’ 6~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한국민요연구회 이사장인 김혜란 명창의 소리 인생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6일은 제자들과 함께 부르는 ‘우리 비나리’, 제자들이 들려 주는 ‘스승을 위한 노래-가인(歌人)’ 등이 이어진다. 7일에는 민요, 단소 병창, 이생강류 산조합주 등 다양한 국악 공연으로 꾸몄다. 5만~10만원. (02)926-4177. ●마티아스 괴르네 리사이틀 13일 오후 8시, 14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독일 가곡의 거장, 첼로처럼 노래하는 바리톤으로 평가받는 마티아스 괴르네가 선사하는 독일 연가곡의 진수. 정겨운 슈베르트, 베토벤의 가곡을 느낄 수 있는 기회. 6만~12만원. (02)399-1114~6. ●정명훈과 함께하는 로마 한인교회를 위한 자선음악회 7일 오후 7시 연세중앙교회 문화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이탈리아 로마 한인교회를 거쳐간 성악가가 성가곡과 오페라 ‘토스카’ ‘세비야의 이발사’ 등의 주요 아리아 등을 들려 준다. 특별출연하는 정명훈은 일부 성가곡을 반주한다. 1만~2만원. (02)565-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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