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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연준이 틀렸다”… 월가의 깊은 한숨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금리를 인상한 직후부터 세계 경제가 요동치자 “연준이 금리를 너무 빨리 올렸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규모 양적완화(QE)로 신흥국과 상품 시장에 흘러 들어갔던 저금리 달러 자금이 빠르게 미국으로 되돌아와 증시 폭락과 원유 가격 붕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전 세계 시장들이 일제히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월가에서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너무 서둘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올해 미국 경기 상승 탄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보고 현상 유지를 원했는데, 연준은 미국의 경제 체질이 나아졌다고 판단해 금리 인상을 단행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연준은 2008년 12월 ‘제로 금리’(0~0.25%)를 도입한 지 7년 만인 지난해 12월 0.25% 금리 인상에 나섰다. 2015년 신차 판매 대수가 15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개인 소비가 호조를 보이자 미국 경제가 충분히 회복됐다고 낙관한 것이다. 하지만 새해 들어 중국 주식 시장이 폭락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나빠졌다. 연초부터 지난 15일까지 뉴욕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1400포인트 떨어지며 연초 10일간 하락 폭으로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여기에 국제사회 제재가 해제된 이란이 18일부터 현재 하루 280만 배럴 수준인 원유 생산량을 330만 배럴로 증산한다고 밝히면서 당분간 국제 유가도 더욱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주가 하락은 가계 자산 감소로 이어져 개인 소비 하락을 부추기고 저유가는 연준의 물가 상승 목표(연 2% 안팎) 달성을 어렵게 만들어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한다. 상황이 빠르게 나빠지자 연준 관계자들은 시장 동요에 우려를 나타내며 연 4회(총 1.00% 포인트)로 예정된 추가 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3월쯤 금리를 한 차례 올려야 하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상반기 금리 인상이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지난 15일 한 강연에서 “추가 금리 인상은 매우 완만하게 진행할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세계 최대 규모 헤지펀드사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최고경영자(CEO)도 “연준은 당분간 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며 하반기에도 시장이 금리 인상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제재 풀린 이란-국제사회 전망은] 美 -이란 관계 개선 급물살… 한숨 돌린 오바마, 다음은 북핵?

    [제재 풀린 이란-국제사회 전망은] 美 -이란 관계 개선 급물살… 한숨 돌린 오바마, 다음은 북핵?

    미국이 16일(현지시간) 이란의 핵합의 이행에 따라 제재를 해제하고 이란이 미국인 수감자들을 석방하면서 양국의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날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 해제와 함께 전해진 소식은 이란이 1년 6개월간 구금해 온 워싱턴포스트(WP) 테헤란특파원 등 미국인 5명을 맞교환 형식으로 석방한다는 발표였다. 이란의 핵합의 이행과 함께 수감자 교환이 이뤄지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게 됐다. 당초 이란의 핵합의 이행과 제재 해제는 일러야 올 상반기로 예측됐으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의 결과, 이행일이 앞당겨졌다. 지난 12일 신년 국정연설에서도 이란 핵합의를 성과로 내세웠던 오바마 대통령은 제재 해제와 수감자 석방을 계기로 1979년 이후 적대 관계였던 이란과의 앙금을 털어내고 로하니 정부에 더욱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리아 등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해 전략적으로 손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제사회도 이날 핵합의 이행 발표를 반겼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논평에서 “이란 핵합의 이행은 중대한 이정표”라며 “합의 이행이 중동의 안정과 안보, 평화를 위한 협력에 기여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은 “핵합의 이행은 세계를 좀더 안전한 곳으로 만든 중요하고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수년에 걸친 인내와 끈질긴 외교가 성과로 이어졌다”고 반겼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도 “외교의 역사적인 승리”라며 시리아 내전과 같은 중동 지역의 위기도 이란 핵 문제처럼 해결되기를 기대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핵합의 이후에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야심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이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김으로써 중동 지역을 동요시키고 전 세계로 테러를 확산시켰다”고 성토했다. 반면 미국과 이란의 관계 정상화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번에 해제되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미국이 직접 제재를 가한 ‘1차 제재’가 아니라 이란과 거래 관계에 있는 제3국 개인·기업에 대한 ‘2차 제재’에 해당한다. 제재가 해제돼도 미국과 이란의 직접 교역·투자는 여전히 제한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핵합의 이행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의심스러운 핵활동이 없다는 결론을 얻어낸다면 미국은 1차 제재를 전면 해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과의 핵합의를 반대한 공화당이 당장 반발하면서 추후 1차 제재 해제 여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란 핵합의 이행으로 한시름 놓은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과도 협상에 나설 것인지도 주목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란 핵협상에 매달려 온 오바마 대통령이 여유가 생겨 북한을 돌아볼 수도 있으나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는 등 ‘전략적 무시’ 입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임신한 여친 복부에 주먹질…분노 부른 실험 영상

    임신한 여친 복부에 주먹질…분노 부른 실험 영상

    데이트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유튜버 ‘트롤스테이션’(Trollstation)이 이를 주제로 한 실험 영상을 제작했다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논란이 된 영상은 트롤스테이션이 지난해 4월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으로 최근 페이스북에 올라오며 구설에 올랐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임신한 여자친구와 유아용품 매장을 찾은 흑인 남성은 여자친구에게 차마 듣기 힘든 욕설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매장 직원들은 다른 고객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며 이들에게 나가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매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오게 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테라스에서 식사 중인 남성들에게 길을 묻는다. 바로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친구는 유부남과 바람을 피운다며 여자친구를 추궁하더니 임신한 여자친구의 복부에 주먹질을 일삼는다. 깜짝 놀란 시민들은 여성을 남자친구에게서 떼어놓고 그제야 남자친구는 실험카메라였음을 알린다. 이에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어떤 이들은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쏟아낸다. 실험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역겹다”, “평소 실험카메라를 좋아하지만 이것은 도를 넘어선 것 같다”, “그래서 이 실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데?”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유튜브에는 며칠 새 이를 비난하는 2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한편 트롤스테이션은 최근 런던 지하철에서 상의를 내린 채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과 이를 지켜보던 남성이 승강이를 벌이는 실험 영상을 제작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영상=Trollstation/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실형 안타깝지만 법정 구속 면해 안도감”

    효성그룹이 조석래 회장에게 실형 판결이 내려진 것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법정 구속을 면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효성그룹은 15일 법원이 조 회장에게 징역 3년에 벌금 1365억원을 선고한 것과 관련해 “분식회계와 법인세 조세포탈 혐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라며 “회장 개인이 사적 이익을 추구한 사안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형이 선고돼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룹은 이어 “추후 항소심에서 적극 소명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일단 조 회장의 법정 구속을 막은 것에 대해서는 효성그룹 내부적으로 한숨 돌리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대기업 총수들의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반재벌 정서’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판결에 대해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게 중론이다. 아울러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은 면했다. 일단 총수의 경영 공백 사태를 피한 효성그룹은 조 회장과 조 사장이 그룹의 경영을 이끌면서 항소를 통해 재판을 이어 갈 방침이다. 효성그룹 측은 재판 과정에서 조 회장의 분식회계 및 법인세 조세포탈에 대해 “정부와 금융권의 강요에 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합병함에 따라 떠안은 부실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 왔다. 한편 효성은 업황 개선과 저유가 등으로 지난해 실적 호조세를 이어 오고 있다. 효성은 지난해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매출이 3조 2150억원, 영업이익이 277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8.6%, 118.9% 증가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노후 집 한 채·전세금, 정부가 굴려준다

    노후 집 한 채·전세금, 정부가 굴려준다

    모아 둔 재산 없이 달랑 빚으로 산 ‘집 한 채’ 들고 은퇴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부터 치솟은 전세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차라리 월세로 돌린 ‘2030’ 세대까지 한숨이 깊다. 정부가 이들을 위해 ‘내집연금 3종 세트’와 ‘전세금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쉽게 말해 힘들게 장만한 집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자신의 노후에 쓰거나 원치 않게 생긴 목돈(전세금)을 안전한 은행에 넣어 묵히지 말고 적극적으로 굴리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상품 설계와 시장 조성은 정부가 맡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경제 관련 7개 부처는 14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의 새해 첫 합동 업무보고를 했다. 내집연금 3종 세트는 기존 주택연금(역모기지)의 문턱을 낮추고 혜택을 더 얹어 가계빚 부담을 줄여 주고 노후도 대비하자는 데서 착안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주택연금으로 전환해 빚을 미리 갚고 연금을 매달 받는 60대 이상용 갈아타기 상품 ▲장기 고정금리 대출인 ‘보금자리론’을 받으면서 훗날 주택연금 전환을 미리 신청하는 40~50대용 예약 상품 ▲은행의 주택연금보다 20%를 더 주는 서민용 우대 상품 등 세 가지다. 예컨대 주택을 담보로 7500만원을 대출받아 3억원짜리 집을 장만한 60대가 주택연금으로 갈아타면 평생 받을 연금의 일부를 중도 인출해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갚을 수 있다. 매달 19만원씩 내는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고도 매달 26만원씩 연금을 받게 된다. 대신 자식에게 물려줄 집은 포기해야 한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 기준 2만 5600여 가구에 불과한 주택연금 가입자를 2025년까지 33만 가구로 10배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다. ‘전세금 펀드’는 기존 전세 세입자가 반전세(전세+월세)나 월세로 전환하면서 뜻하지 않게 돌려받은 전세보증금을 한데 모아 굴리는 상품이다. 전세자금인 만큼 원금 손실을 최소화하되 은행 이자보다는 높은 4% 안팎의 수익률을 추구한다. 채권·펀드·뉴스테이(민간 임대주택) 사업 등에 투자해 운용 수익을 주기적으로 배당함으로써 월세를 충당케 할 계획이다.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기 침체, 저유가 등 3대 악재에 맞서기 위한 내수 진작책도 마련한다. 올 1분기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조원 많은 125조원을 풀 계획이다. 뉴스테이 사업 물량도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5만 가구로 늘려 잡았다. 서울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사설] 노동계와 야당은 일단 ‘파견법’ 논의에 나서라

    고용 위기를 알리는 비상 경보음이 연일 울리고 있는 가운데 노동개혁 협상이 성패의 기로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개혁 4개 법안이라도 처리해 달라고 국회에 제안했다.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이에 야당과 노사정 타협 당사자인 한국노총 모두 거부 반응을 보였다. 파견 근로 확대가 노동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을 펴면서다. 그러나 이는 ‘번듯한 일자리’라는 나무만 보면서 그런 나무가 이룬 숲이 통째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단견일 수 있다. 그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2%에 이르렀다. 전년보다 0.2% 포인트 오른 데다 1999년 통계 기준 변경 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전체 실업률 역시 3.6%로 2010년 이후 최고치였다. 통계의 맹점을 고려하면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구직난과 고용 불안감은 더 심각할 게다. 기간제법 처리를 유보한 박 대통령의 이번 양보안은 이런 절박한 사정을 고려한 고육책일 듯싶다. 즉 야권이나 노동단체들의 기간제법 반대 논리엔 수긍하지 않지만, ‘9·15 노사정 대타협’의 큰 줄기는 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공은 이제 야당과 노동계로 넘어갔다고 본다. 당면한 경제난국을 각 경제주체가 고통을 분담해 헤쳐 나가자는 게 노사정 대타협 정신이 아닌가. 노동단체들도 기득권을 갖고 있는 대기업 노조에 경사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이유다. 한국노총은 “파견 확대는 직접고용을 간접고용으로 전환하는 회전문 효과만 발생시킨다”며 파견법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직장이 있는 이들의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려는 기간제법 개정안에 비해 파견법 적용 대상은 중장년 구직자 등 일자리 그 자체가 생명줄인 절박한 계층이다. 이들을 대기업에 고용할 대안이 없다면 파견법 처리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세계적으로도 ‘고용 없는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할 조짐이다. 우리의 지난해 전년 대비 취업자 수 증가 폭은 33만 7000명으로 5년 만에 가장 낮았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사업에 2조원을 쏟아부으며 나름 애를 썼는데도 그렇다. 더군다나 한국 경제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최대 시장인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우리 경제의 고용 창출의 모종밭이었던 제조업도 성장세가 꺾이면서 신규 고용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용 창출을 위해서라면 속된 말로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고 뭐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1만 78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는 파견제법을 비롯한 노동개혁 4개 법안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69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긴다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다른 쟁점 법안도 마찬가지다. 물론 고용 창출 효과가 다소 부풀려졌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고용 절벽 앞에선 구직자들의 한숨에 응답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시대적 책무가 어디 있겠는가. 야권과 노동계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경직적 자세를 버리고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기를 당부한다.
  • 화려한 부활 문이 열렸다

    화려한 부활 문이 열렸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노리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기둥은 역시 문창진(23·포항)이었다. 문창진은 14일 카타르 도하 수하임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조별리그 C조 1차전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원맨쇼를 펼쳤다. 문창진은 그동안 각급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했고 U-23(23세 이하) 대표팀이 본격 출범한 2014년부터 리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잔부상이 잦은 게 흠이었다. 올림픽대표팀 신태용 감독도 평가전에 문창진을 선발로 내보내는 것조차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문창진은 지난해 6월 프랑스와의 튀니지 원정 평가전에서 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지만 같은 해 11월 소속팀 포항의 K리그 경기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직후 열린 중국 4개국 친선대회에는 선발에서 제외됐다. 한 달 뒤 울산, 제주로 이어진 전지훈련에서도 문창진의 최종 엔트리 합류는 미정이었다. 공격진에 류승우(23·레버쿠젠), 최경록(21·상파울리) 등 유럽파가 득세하면서 입지도 좁아졌다. 문창진도 애가 탔다. 제주 전지훈련 당시 문창진은 “유럽파 때문에 내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신 감독은 문창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필요할 때 터지는 그의 한 방과 같은 연령대 선수 가운데서는 풍부한 실전 경험 그리고 다재다능한 공격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 감독은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예선을 겸한 AFC U-23 챔피언십에 그를 불렀다. 문창진은 신 감독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날 우즈베크와의 첫 경기에서 두 골을 혼자 터뜨렸다. 오른쪽 미드필드를 책임진 문창진은 저돌적인 돌파로 우즈베크의 측면 뒷공간을 넘나들며 골 기회를 엿보다 전반 20분 상대의 핸드볼 파울로 얻은 페널티킥을 과감하지만 실수 없이 차 넣었다. 지난해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파넨카킥’(골키퍼 정면을 향해 차는 슛)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대범하게 골키퍼 가운데를 향해 찬 강한 왼발 슈팅은 그대로 우즈베크 골망에 박혔다. 경기 선제골이자 8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여는 대회 첫 골이었다. 후반 3분에는 포항 유스팀 출신 황희찬(20·잘츠부르크)의 도움을 받아 추가골까지 성공시킨 뒤 후반 32분 이영재(22·부산)와 교체됐다. 문창진은 “부상 5개월 동안의 아픔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진한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신 감독도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팀에나 자신에게 고마운 일을 했다.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면서 “예멘과의 2차전은 다득점 전략으로 몰아친 뒤 이후 편안하게 조별리그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첫 승을 기록한 대표팀은 예멘(1패)을 2-0으로 물리친 이라크에 골득실에서 밀려 조 2위에 올랐다. 예멘과의 2차전은 16일 오후 10시 30분, 이라크와의 3차전은 20일 오전 1시 30분 열린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국회 이야기에 “어휴” 한숨… “대통령이 더 어떻게 해야 하죠?”

    국회 이야기에 “어휴” 한숨… “대통령이 더 어떻게 해야 하죠?”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기자단과의 거리는 두 걸음 정도였다. 대통령 회견에서 처음으로 책상을 없앴던 지난해 신년회견보다 의자 한 개 이상 거리가 더 좁혀졌다. 담화 내용은 무거웠지만, 일문일답에서 박 대통령은 ‘만담’에 가깝도록 세세한 설명들을 이어갔고 여과 없이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주요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대통령이 더이상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거꾸로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규제 완화’에 대한 질문에서도 “규제 프리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고 말하다가 “어휴…”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금 같은 국회에서 어느 세월에 되겠나. 만들기도 겁난다”라고 답했다. 담화문 말미에 “국민 여러분께서 나서서 힘을 모아 주신다면 반드시 개혁의 열매가 국민 여러분께 돌아가는 한 해를 만들겠다”며 “다 함께 힘을 모아 변화와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갑시다”라고 말할 때에는 감정에 북받친 듯 목소리가 떨렸다. 박 대통령은 진행시간을 고려한 정연국 대변인이 다음 순서로 이어가려 하는 것을 두 차례 말려 가며 쏟아지는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려 애썼다. 매번 기자들이 한 번에 여러 개의 질문을 쏟아내자 “제가 머리가 좋아서 기억을 하지 머리 나쁘면 기억도 못 해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회견 마지막 ‘규제 프리존 특별법’ 대목에서는 “여러분도 많이 도와주시고, 이거 꼭 해야 된다고 얘기 좀 많이 해 주세요”라고 말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은 시국을 반영한 담화의 ‘엄중함’을 빼고 나면 질의응답 시간과 주제의 다양성 등에서 예년의 신년 기자회견과 다르지 않았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까지 담화문을 낭독했고 오후 12시 10분 정도까지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박 대통령은 ‘붉은색 재킷’을 입었다. 주로 결연한 의지를 밝힐 때 등장하던 것이어서 ‘전투복’ 또는 ‘경제활성화복’이라고 불려 왔다. 담화에서 ‘국민’이란 단어는 38차례 나왔고 ‘경제’는 34차례, ‘일자리’ 22차례, ‘개혁’은 21차례 사용됐다. ‘북한’ 19차례, 국회 18차례 ‘노동’ 16차례 등의 순이었다. 연단 뒤편에는 이병기 비서실장,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과 수석 비서관들,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이 배석했다. 예년과 달리 국무위원들은 배석하지 않았다. 내외신 기자 110여명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회견 마지막에 일본 마이니치신문 특파원의 질문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한 여론과 관련한 질문에 “앞으로 합의된 내용이 잘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한국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 언론이 어떻게 하느냐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큐” 사인 떨어지자, 400명의 눈빛이 번뜩였다

    “큐” 사인 떨어지자, 400명의 눈빛이 번뜩였다

     “오늘 심사 볼 안무입니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 11일 오후 12시 50분 서울 중구 남산창작센터 제1연습실에서 진행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앙상블 오디션 현장. 한파보다 더 매서운 ‘배우 선발’의 살얼음판을 통과하려는 남녀 응시자들의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심사 시작을 알리는 정도영 안무가의 저음이 연습실을 가득 메운 긴장감을 뚫고 퍼져나갔다. 연습실 곳곳에 대기하고 있던 응시자들이 안무가 곁으로 모여들었다. “원, 투, 쓰리, 포~.” 안무가가 팔다리를 들어 올리고 턴을 하며 심사를 볼 안무를 시연했다. 극 중 ‘해적’ 장면의 안무였다. 50초 정도의 짧은 안무였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동작들은 복잡하고 어려웠다. ‘심사 당일 저 동작들을 현장에서 처음 보고 어떻게 그대로 무대에서 재연할 수 있나.’ 안무가의 춤 동작을 보고 든 첫 느낌이었다.  안무가의 구령과 동작에 맞춰 60여명의 응시자들이 그의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했다. 뒷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며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여러 번 반복되자 응시자들의 동작이 통일을 이뤄나갔다. 반복 연습을 한 지 30분이 지나자 이곳저곳에서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체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열을 바꿔서 한 번만 더 해볼게요. 이제 마지막이에요.” 안무가의 ‘마지막’이라는 말이 응시자들에게 다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몬테크리스토’ 국내 초연 때부터 연출을 맡았던 로버트 요한슨이 응시자들 앞에 섰다. “이번 오디션에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해적을 찾고 있습니다. 굉장히 거친 사람도 있고 섹시한 사람도 있고 해적 캐릭터는 다양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자기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캐릭터를 보여줬으면 합니다.” 정근용 제작감독, 권은아 협력연출, 홍현표 무술감독, 원미솔 음악감독 등 심사위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갈게요. 음악 주세요.” 권 협력연출의 ‘큐 사인’으로 심사가 시작됐다. 남자부터 5명씩 한 조가 돼 무대에 올랐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동작을 잊고 한숨을 내쉬거나 당황하는 응시자들도 눈에 띄었다. 조별 오디션 이후 개인기, 검술 연기, 노래 등의 심사가 이어졌다. 오디션 서류 접수는 지난달 14~31일 진행했다. 1800명이 지원해 400명이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오디션은 지난 8일 시작됐다. 이날을 포함해 12일까지 세 차례 진행된다. 몬테크리스토, 메르세데스 등 남녀 주·조연 18명, 앙상블 19명을 뽑는다. 현장에서 만난 연출가 요한슨은 심사의 첫째 기준으로 “노래를 잘하는 게 우선”이라고 못박았다.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는데 배우가 노래를 못하면 그 실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지난 8일 첫 오디션에서 노래를 기준으로 응시자들 중 100명 정도를 추렸어요. 딱 세 음절만 들어보면 당락이 결정됩니다. 그동안 수천명을 심사하다 보니까 심사와 관련한 제6의 감각이 발달한 것 같아요.” 그는 주역 몬테크리스토와 관련해선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고 관객들을 몰입케 하는 로맨틱한 면도 있어야 한다. 노래는 기본이고 청년에서 노년까지의 몬테크리스토를 보여줘야 하기에 연기력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응시자 안상은(27)씨는 “너무 하고 싶은 작품이어서 많이 긴장되고 설렜다. 다른 오디션과 달리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돼 개개인이 가진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2013년 오디션에 통과했던 이정선(36)씨는 “3년 전보다 안무가 훨씬 디테일해지고 정교해졌다. 첫 오디션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동작 하나하나에 몸속의 모든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했다. ‘몬테크리스토’는 프랑스의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5년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원작으로,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감성적인 음악이 더해진 작품이다. 친구들의 음모로 14년간 투옥됐다가 극적으로 탈옥한 몬테크리스토의 복수와 용서, 사랑 등을 담고 있다. 2010년 국내 첫 공연 이후 2013년까지 매년 흥행에 성공했다. 오는 11월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3년 만에 재공연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달리는 세계 기업들] ‘위기의 샤프·전자산업 구하기’ 日 정부 2조원 쏟아붓는다

    [달리는 세계 기업들] ‘위기의 샤프·전자산업 구하기’ 日 정부 2조원 쏟아붓는다

    ‘위기의 샤프’, ‘위기의 전자산업’을 구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나섰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전자업계가 최근 헤매자 정부가 구원 투수로 직접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경영 위기 속에 빠진 샤프의 회생을 위해 적자의 주원인이 된 액정(LCD) 사업을 분리하고, 민관투자 펀드인 ‘산업혁신기구’의 2000억엔(약 2조 610억원) 규모의 출자를 통해 샤프를 재탄생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일 샤프가 최근 혁신기구의 이 같은 제안을 놓고 주거래 은행인 미즈호은행 등과 최종 협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성사되면 국가 주도의 재건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산업혁신기구가 경영권을 쥐고 도시바의 백색가전 사업과 샤프의 통합을 포함한 전자업계 재편을 주도하고 근본적인 체질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뜻이 깔려 있다. 산업혁신기구는 기업구조조정 및 첨단산업을 지원하는 민관 펀드회사다. 그러나 산업경쟁력강화법에 의해 기금의 95%가량을 정부가 출연해 만든 경제산업성 산하로, 사실상 정부 산하기관이다. 산업혁신기구는 분리시킨 액정 부문을 중소형 패널 등 액정제조 전문 기업인 재팬디스플레이(JDI)와 통합시키겠다는 복안도 깔아놓고 있다. 샤프 살리기 과정을 통해 도시바 등 부진의 수렁에 빠진 전자기업의 재편에 속도를 내고, 차세대 성장 먹거리 분야로 사업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산업혁신기구를 관할하는 경제산업성 등이 국가 주도로 전자산업의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산업성은 항공기 엔진, 발전용 터빈 등 기존 제조업 제품들을 인터넷에 연결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사물인터넷(lot) 발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존 전자업체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강국이지만 정보화·서비스 기반의 부가가치 창출에서 뒤처졌다고 보고 전통적 제조업과 이들의 결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겨냥하고 있다. 또 백색가전이나 복사기 등 수익이 비교적 안정된 분야와 로봇, 의료 등 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정상화시켜 나가겠다는 처방이다. 강점인 고성능 센서 기술을 활용해 신상품 개발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샤프에 대해 대만의 홍하이정밀과 미국의 애플 및 사모 펀드회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인캐피털 등도 인수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산업혁신기구와 샤프 간 합의를 통한 회생이 우선이라는 단호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1912년 설립된 샤프는 1964년 트랜지스터 계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 초 절정을 맞았으나 스마트폰 등 첨단제품의 흐름을 잡지 못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일본 전자기업들은 두터운 기술 축적과 연구력을 갖추고도 중국의 추격 등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고전을 거듭해 왔다. 히타치와 파나소닉은 철도 등의 사회인프라 같은 견실한 수입 확보가 용이한 기업용(B2B) 사업으로 경영 축을 옮겨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도시바는 “20세기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난해 회계부정까지 겹쳐 해체의 길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고,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으로 최근 소니는 적자가 쌓이면서 1958년 상장 이후 첫 무배당을 하는 등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부진한 샤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치를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겨울철 더 심한 아토피 동대문에선 걱정없겠네

    “밤에 자다가 다리를 심하게 긁어서 피가 흘러요.” 아토피 피부염이 심한 김민기(휘경초 3)군의 어머니는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지만 먹고살기 빠듯한 살림살이에 제대로 된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는 민기 어머니 이모씨는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이면 민기 팔다리에서 성한 곳을 찾기 힘들다”며 눈물지었다. 서울 동대문구는 대한아토피협회와 함께 지난 8일 민기군 가정에 이불과 보습제 등 80만원 상당의 아토피 전용제품을 전달하는 등 동대문 지역 어려운 가정의 자녀 아토피 치료 돕기에 나섰다고 11일 밝혔다. 동대문구가 2010년부터 경희의료원 소아청소년과와 의료협약을 맺고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특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역 자원인 국립산림과학원(홍릉수목원)과 연계해 숲 체험을 할 수 있는 ‘아토피교실’은 간판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이 생활 속 아토피 예방법을 구연동화와 숲 체험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숲 해설가와 함께 다양한 야생 열매를 모으고 풀과 나무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놀이프로그램을 통해 체험학습의 시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구는 지난해 아토피 고위험군 아동 100여명을 찾아냈으며 매월 방문상담 후 치료용품을 지원하는 ‘내 몸 사랑 프로젝트’ 등으로 아토피 예방·관리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장승희 지역보건과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토피와 천식 등 각종 환경질환을 치료받지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장기적으로 각종 건축물에 엄격한 환경기준을 만들어 모든 지역 주민이 건강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아토피를 잡아라, 동대문구

    “밤에 자다가 다리를 심하게 긁어서 피가 흘러요.” 아토피 피부염이 심한 김민기(휘경초 3)군의 어머니는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지만 먹고살기 빠듯한 살림살이에 제대로 된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는 민기 어머니 이모씨는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이면 민기 팔다리에서 성한 곳을 찾기 힘들다”며 눈물지었다. 서울 동대문구는 대한아토피협회와 함께 지난 8일 민기군 가정에 이불과 보습제 등 80만원 상당의 아토피 전용제품을 전달하는 등 동대문 지역 어려운 가정의 자녀 아토피 치료 돕기에 나섰다고 11일 밝혔다. 동대문구가 2010년부터 경희의료원 소아청소년과와 의료협약을 맺고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특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역 자원인 국립산림과학원(홍릉수목원)과 연계해 숲 체험을 할 수 있는 ‘아토피교실’은 간판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이 생활 속 아토피 예방법을 구연동화와 숲 체험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숲 해설가와 함께 다양한 야생 열매를 모으고 풀과 나무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놀이프로그램을 통해 체험학습의 시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구는 지난해 아토피 고위험군 아동 100여명을 찾아냈으며 매월 방문상담 후 치료용품을 지원하는 ‘내 몸 사랑 프로젝트’ 등으로 아토피 예방·관리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장승희 지역보건과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토피와 천식 등 각종 환경질환을 치료받지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장기적으로 각종 건축물에 엄격한 환경기준을 만들어 모든 지역 주민이 건강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하나은행, 역전패 충격 씻어내며 단독 2위로

     KEB하나은행이 황망한 역전패의 충격을 털어내며 신한은행을 5연패로 몰아넣었다.  지난 4일 삼성생명에 종료 47초를 앞두고 7점 차로 앞서다 51-52로 역전패한 하나은행은 8일 경기 부천체육관으로 불러 들인 신한은행과 4라운드 마지막 대결을 69-58 압승을 거뒀다. 샤데 휴스턴이 28득점 11리바운드, 첼시 리가 19득점 10어시스트 둘다 더블더블 활약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하나은행은 10승10패 승률 5할을 맞추며 단독 2위로 올라섰고, 지난 주말 KB스타즈에 종료 직전 충격적인 2점 차 역전패를 당했던 신한은행은 9승11패로 삼성생명, KB스타즈와 공동 3위를 형성했다.  하나은행은 1쿼터부터 잘 풀렸다. 김이슬과 김정은이 3점슛 하나씩을 집어넣었고 리와 휴스턴이 6점씩으로 거들었다. 반면 신한은행은 김단비의 3점슛 두 방 6점으로 1쿼터를 13-18로 뒤졌다.  신한은행은 2쿼터 종료 4분30여초를 남기고 모니크 커리의 2점으로 첫 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공격에 맥을 찾지 못했다. 하나은행은 김정은 5득점, 리와 휴스턴이 4점씩 보탠 반면, 신한은행은 커리가 8점 올린 게 팀 득점의 전부로 이 쿼터에만 8-15로 밀려 전반을 21-33으로 뒤졌다. 21점이라면 한창 잘나가던 시절 한 쿼터 득점보다 못한 점수였다. 리바운드 수 12-19로 한참 밀렸으니 다른 도리가 없긴 했다.  3쿼터 종료 4분29초를 남기고 신한은행이 32-42로 쫓아왔다. 윤미지와 최윤아가 5점씩 넣었지만 하나은행은 강이슬에게 3점슛 두 방을 허용해 38-49로 간격은 그리 좁혀지지 않았다.  4쿼터 종료 8분여를 남기고 42-50까지 쫓아오자 하나은행은 휴스턴의 연속 4득점으로 한숨 돌렸으나 신한은행은 김단비의 3점으로 9점 차로 좁혔다. 그러나 리의 연속 4득점과 휴스턴의 연속 6득점을 묶어 64-49로 멀찍이 달아났다.  종료 2분56초를 남기고 박종천 하나은행 감독은 “무리하지 말고 3점 맞지 말고 수비에 집중하자”고 선수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나흘 전 당한 뼈아픈 역전패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었다.  종료 2분여를 남기고 휴스턴이 나홀로 드라이브인으로 골망을 갈라 사실상 승기를 잡았고 정인교 신한은행 감독은 주전을 쉬게 하고 앞서 퓨처스리그 경기에도 나섰던 후보 선수를 내보내 백기를 들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의원 ‘카톡 홍보’할 때 원외 후보는 ‘단체 문자’ “그마저 5회 제한” 한숨

    # 서울의 한 선거구에 예비후보 등록을 한 A씨의 선거사무실은 종일 비어 있다. “예비후보는 선거사무원을 최대 3명만 둘 수 있어 주민 인사, 홍보물 제작만도 손이 딸린다. 전화받는 직원을 두기도 벅차다”는 게 A씨의 하소연이다. 반면 상대 당의 현직 의원은 최근 의원회관 소속 비서관·인턴들까지 지역 사무실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불법이지만 사문화된 조항이다. ●‘선거사무원’ 최대 3명 vs 비서관 +α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이 4·13 총선 선거구 획정 시까지 예비후보자들의 선거운동 단속을 잠정 유보키로 결정했지만, 구도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게 7일 현재 예비후보들의 볼멘소리다. 이들은 명함 배포부터 온라인 홍보까지 기득권의 높은 벽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 카카오톡은 새로운 의정보고 수단으로 대유행 중이다. 의원 얼굴과 함께 “○○사업 예산에 국비 ○○억원 확보” 제목이 달린 ‘카톡 의정보고’는 “종이 값도 덜 들고 팸플릿보다 ‘면대면’ 홍보 효과가 더 뛰어나다”는 중평이다. 그러나 예비후보들에게 카톡은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개인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탓에 1대1로 보내야 하는 카톡은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에서다. 현역 의원은 의정 홍보 문자 메시지도 횟수 제한 없이 돌릴 수 있지만, 예비후보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대량 문자메시지를 5회 이내로만 보낼 수 있다. ●‘명함배부’ 배우자·직계만 vs 무제한 # 예비후보의 명함 배부는 본인 외에 배우자, 직계 존·비속만 가능하다. 반면 현역 의원은 당원을 포함해 배포자에 제한이 없다. 대구 지역 새누리당 소속 한 예비후보는 “지방선거 때 자신이 공천한 시·군·구 의원들을 시켜 경로당·복지관에 달력을 돌리는 등 정식 선거운동원 외에 변칙 활용하는 인력들이 태반”이라고 주장했다. # 현역 의원 또는 원외 당협위원장이 독점한 당원 명부를 예비 후보는 당내 경선 직전에나 손에 쥘 수 있다. 충성도 높은 당원 관리는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 선점으로 직결된다. 경기 지역 새누리당 예비후보 B씨는 “말로는 당내경선을 통한 상향식 공천을 한다면서 당원 명부 공개를 안 하면 신인들은 맨땅에 헤딩하라는 격”이라고 답답해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애물단지’ 백조 데려갈 동물원 어디 없나요

    ‘애물단지’ 백조 데려갈 동물원 어디 없나요

    경북 안동시가 사육 중인 천연기념물 백조(혹고니)와 흑고니가 개체 수를 불리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5일 안동시 등에 따르면 시는 2014년 9월 남후면 무릉유원지 인근 2만여㎡에 49억원을 들여 국내 처음으로 백조공원을 조성했다. 평화로운 도시 안동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관광 자원화하기 위해서다. 2011년엔 특허청에 ‘백조의 도시 안동’을 브랜드로 등록하기도 했다. 현재 백조공원에는 혹고니 50마리와 흑고니 3마리 등 모두 53마리가 있다. 네덜란드로부터 마리당 150여만원에 들여온 27마리(혹고니 24마리, 흑고니 3마리)와 백조공원에서 번식된 혹고니 26마리 등이다. 공원 운영은 안동시설관리공단이 맡았다. 백조는 천연기념물 제201호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으며, 환경 분야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한 희귀 조류다. 하지만 백조가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개체 수 증가로 기존 백조공원(관리동, 부화장, 검역장, 생태연못, 관찰로 등)이 협소해진 데다 연간 관리비로 1억 8000만원 정도가 드는 등 관리상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어서다. 특히 공원 개장 이후 2014년, 지난해 2년 연속 국내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방역 등 관리에 초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게다가 시는 백조가 천연기념물인 관계로 함부로 처분조차 못 해 울상이다. 시는 최근 문화재청에 백조를 민간 등에 무상 분양하기를 문의했으나 사실상 불가 통보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동물원 등 전문기관을 제외한 곳에는 분양할 수 없고, 분양 시에는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백조공원 연간 관람객도 2만 4000여명에 그쳐 당초 목표 인원인 20만명에 크게 못 미친다. 안동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당초에는 일정 수준의 백조 개체 수가 확보되면 낙동강 등에 방사해 텃새화할 계획이었지만 문화재청이 겨울철 시베리아 등지에서 찾아오는 백조와의 교잡종 발생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등을 우려해 이를 금지토록 했다”면서 “백조공원의 적정 사육 개체 수 조절을 위해 현재 백조를 무상 증여할 동물원을 찾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朴대통령 “과거 적폐 척결… 사전 예방책 곧 발표”

    朴대통령 “과거 적폐 척결… 사전 예방책 곧 발표”

    박근혜 대통령은 5일 “과거의 적폐가 경제활력의 걸림돌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각 부처는 부정부패 척결에 더욱 매진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적폐가 잔뜩 쌓여 있는데 돈을 쏟아붓는다고 피와 살로 가겠는가”라며 “부패요인을 선제적으로 감시, 경고하는 인프라를 구축해 예산 낭비와 비리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대형 국책사업을 비롯해 정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나가길 바란다. 사전 예방 조치를 곧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과의 티타임에서는 국회에서 노동개혁 및 경제활성화 법안 등이 처리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면서 맨날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눈앞에 할 수 있는 것도 안 하는 것은 신세타령밖에 안 되는 것”이라면서 “한숨만 쉬고 어려우니까 어쩌니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지금이야말로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은 임기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낼 것”이라면서 “국무위원께서도 경제활성화와 국가혁신의 구체적 결실을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올해는 외교안보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기인 만큼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 한편 “최근 북한도 8·25 합의 이행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민간 통로 확대와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 남북 관계 정상화에 힘써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실종된 눈·얼음 축제, 웃자란 농작물… ‘철없는 날씨’에 속탄다

    실종된 눈·얼음 축제, 웃자란 농작물… ‘철없는 날씨’에 속탄다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겨울축제장과 농민들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5일 자치단체와 농민들에 따르면 예년 평균보다 2~6도 높은 기온이 이어지면서 눈·얼음 테마 겨울축제들이 속속 취소되고 웃자람과 병충해로 겨울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울상을 짓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슈퍼 엘니뇨 영향으로 올겨울에 한반도에 따뜻한 공기가 유입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당장 겨울축제를 취소하거나 축소하면서 축제를 준비하던 지자체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겨울철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6일 예정했던 ‘원조 겨울축제’인 강원 인제군 빙어축제는 지난겨울 가뭄으로 취소한 데 이어 올겨울에는 포근한 날씨에 발목 잡혀 2년째 축제를 접었다. 강원 홍천군의 홍천강 꽁꽁축제를 비롯해 경기 가평군의 자라섬 씽씽 겨울축제, 전북 무주 남대천 얼음축제는 일찌감치 취소를 결정했다. 3년 연속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던 자라섬축제는 오는 9일부터 열 예정이었지만 얼음 두께가 2㎝에 불과해 관광객 안전을 우려해 취소했다. 2011년 구제역 파동 이후 두 번째다. 수천명이 한꺼번에 얼음낚시를 즐기려면 얼음 두께가 적어도 20㎝ 이상 돼야 한다. 평창 송어축제는 지난달 18일 예정대로 개막했지만 축제의 핵심인 얼음 낚시터는 얼음이 얼지 않아 31일 간신히 개장했다. 경북 안동 암산얼음축제는 안전 점검을 거쳐 축제 개최 여부와 시기 등을 곧 정하기로 했다. 지난달 24일 열려던 강화도 빙어축제도 잠정 연기했다. 경남 대표 얼음축제인 금원산 얼음축제는 개최를 보름가량 미루다 지난달 30일에야 개막했지만 얼음이 얼지 않아 무늬만 얼음축제가 됐다. 지난달 25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문을 여는 대구 비슬산 얼음축제도 얼음조각을 비롯한 조형물은 볼 수 없고 눈썰매장만 있는 반쪽짜리 축제가 됐다. 충북 영동군은 높이 40∼100m, 폭 200여m의 거대한 인공빙벽을 만들어 관광자원화하고 빙벽대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얼음이 얼지 않아 오는 24일 예정된 국제빙벽대회를 취소했다. 그나마 국내 대표 겨울축제로 오는 9일 개막하는 강원 화천 산천어축제는 현재 15㎝ 이상 얼음이 얼어 당장 축제를 여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포근한 날씨 속에 안전을 위해 얼음낚시 구멍을 기존 2m 간격에서 4m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최전방 산골마을 화천 산천어축제장에서라도 겨울축제를 끝까지 열어 관광객들에게 겨울의 낭만과 추억을 심어 주겠다”고 말했다. 겨울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한숨도 깊어 가고 있다. 파종한 마늘이 웃자라고 양파의 생육은 더디기만 하다. 지난가을에 파종한 보리도 웃자라고 노균병과 고자리파리와 같은 병해충도 늘었다. 비까지 자주 내려 토양에 습기가 많다 보니 뿌리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북 의성과 군위 등에서는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 벌써 꽃이 피는 기현상이 생겼다. 광주·전남지역에는 지난해 11월부터 비가 자주 내려 일부 겨울 작물이 습해를 당했다. 습해가 가장 심한 작물은 지난해 11월 중순 출하를 시작한 시금치다. 광주·전남지역 시금치 최대 생산지인 신안에서는 전체 재배량 절반이 뿌리썩음병에 걸려 농민들이 울상이다. 신안군의 피해 신고 결과는 시금치를 재배하는 1571가구 가운데 1100농가(70%)가 피해를 봤다. 재배 면적을 기준으로 한 피해 규모는 1057㏊ 가운데 783㏊(74.1%)다. 버섯과 곶감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대표 표고버섯 노지 재배지인 전남 장흥은 470여 농가 가운데 70% 정도가 습해를 당해 수확을 못 했다. 표고버섯 재배 농가는 내년 봄 원목의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아예 못 쓰게 되는 2차 피해도 우려한다. 감 주산지인 전남 장성·광양·구례, 전북 완주 등에서는 곶감을 말리면서 꼭지가 빠져 상품성이 크게 떨어졌다. 인천 강화군은 총채벌레 개체 수의 증가 여부를 주시한다. 겨울이 따듯하면 총채벌레 개체 수가 늘어나 이듬해 고추 생육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벌레는 주로 고추나 토마토의 즙을 빨아 먹으며 황화잎말림병 등을 일으킨다. 김철우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농업연구사는 “이상 기온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철저한 배수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가평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신년기획] “올 동북아 갈등 변수는 北… 핵·미사일 카드 다시 꺼낼 것”

    [신년기획] “올 동북아 갈등 변수는 北… 핵·미사일 카드 다시 꺼낼 것”

    지난해 아시아는 한·중·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 동남아국가의 갈등이 첨예하게 맞섰다. 하지만 새해에는 동북아 특히 한반도를 둘러싸고 숨 가쁜 변화와 움직임이 예상된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적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71)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에게 이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3일 도쿄 게이오대 미타캠퍼스에서 이뤄졌다. →2016년 새해의 국제환경,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는. -중국의 해양 진출로 인한 남중국해 갈등이 새해에는 진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중국도 주변 국가와의 협력과 경제에 더 집중해야 할 처지다. 정책의 우선순위도 바다에서 ‘실크로드 경제개발벨트 활성화’ 등 내륙 개발로 옮겨갈 것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도 아베노믹스의 유지와 7월 참의원 선거가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 흐름에도 동북아에서는 새로운 갈등 요소가 꿈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갈등 요소라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외교가 재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력 안정을 다진 김정은 정권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외교수단으로서 ‘핵·미사일 카드’를 활용하는 대외 공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외부 자원’을 얻어내기 위한 보다 돌발적인 행보가 우려된다. 11월 미국 대선을 기회로 여기는 북한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길 원한다. 대미 접근 및 정상화, 나아가서는 불가침조약 수립을 위한 포석이 예상된다. 북한은 미국의 새 정권 출범 초기마다 위기를 만들어 대화 국면 조성과 고립 타개를 시도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은 올해 미사일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는 내년에는 핵실험 카드를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이런 시도가 제재 국면을 더 심화시킬 것 아닌가. -제재를 강하게 하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이뤄진 시도는 별 성과가 없었다.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일은 이 문제를 미국에 기대려 했고, 미국은 중국에 떠넘기려 했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도, 능력도 부족했다. 책임을 서로 떠넘기면서 북한 비핵화에 손을 놓은 상황이 이어졌다. 과거와 달리 북한의 핵능력은 진전됐다. ‘핵 위협’이 구체적 행동으로 진전될 우려도 크다. 북한이 핵 카드를 다시 꺼내 든다면 그저 무시만 할 수도 없게 됐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지만 외부에서 얻을 것이 있다면 핵 동결에는 응했다. 북한의 핵 능력이 더한층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차기 행정부가 접촉 정책을 다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은 불가능한가. -남북한과 미·중, 일본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이 예상된다. 회담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대안 없는 상황에서 6자회담으로 갈 수밖에 없다. 회담 의장국이던 중국도 재개를 줄곧 주장해 왔다. 어떤 식으로든 비핵화 노력을 보여 줘야 할 상황에서 관련국들이 회담 재개를 거부하기만도 어렵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 요구 등 한국에 관계 개선을 압박해 올 것이다. 남측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을 경우 북한은 6자회담을 먼저 움직여 나가려고 할 것이다. 남북 관계와 6자회담이 동시에 진전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2월 말 한·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 올해 한·일 관계의 과제라면. -두 나라는 비슷한 시대적 압박과 현안에 직면해 있다. 전략적 협력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할 때다. 미·중 사이에서 양국의 전략적 대화 확대는 생존 공간과 선택권을 넓혀 줄 것이다. 자원개발에서 인프라 건설 등 국제무대에서 한·일의 적잖은 기업들은 이미 정보력, 자금력 등을 보완하면서 전략적 협력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해 나가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50년을 맞는 원년인 올해, 보다 중장기적으로 서로의 발전과 전진을 위해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 →위안부 문제 합의가 주는 국제정치적 함의는. -우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예상된다. 미국은 이를 위해 뒤에서 합의를 뒷받침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의 관심은 안보로, 중국의 해양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한·미, 미·일 동맹을 연결시켜 서태평양에서 남태평양까지 중국의 활동을 감시하고 제약할 체제를 만들려고 한다. 평택에서 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을 잇는 방어망의 강화다. 한·일 협력은 이를 위해 필수적이다. 중국은 그런 움직임을 자국을 견제, 포위하는 것으로 여기며 탄도미사일 공중방어시스템인 사드 협력으로 확대되는 것을 걱정한다. →한·중·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을까. -안보 분야와 달리 경제 분야의 3국 협력은 확대되고 활성화되고 있다. 경제 중심의 실용적인 협력과 발전이 기대된다. 새해 일본에서 열릴 3국 정상회담은 경제, 환경, 에너지 등 비안보 분야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일본이 먼저 가입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관련 협의도 진행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창한 동북아평화구상도 세 나라가 심도 있게 논의해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다. →중국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북·중 관계를 생각하고 있나. -지난 12월 북한의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철수 소동 이후 두 나라는 부정적인 여파를 최소화하려고 조심하고 있다. 한반도를 대미 관계 속에서 보고 있는 중국은 미·중 관계 속에서 ‘말판’인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고려하고 있다. 미·일 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국을 자극하고 북·중 관계의 긴밀화로 이끄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 틀인 미·중간 긴장이 완화되고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대적으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다. →5월 북한 노동당대회를 중요한 분수령으로 보고 있는데. -김정은 체제 정비의 완성이란 측면이 있고 이를 기점으로 중장기적인 대외정책에 돌입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당 대회를 어떤 형식으로 열지도 대중 관계 개선에 중요하다. 해외사절을 부르고 성대하게 열려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과도 연결지어 볼 수 있다. 당 대회 전후 또는 올해 안에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한숨을 돌린 북한이 중장기적인 안정을 위해 고립 탈피 및 대외관계 정상화, 생존자원 확보 등을 겨냥해 핵·미사일 카드를 흔들어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일본의 대북 정책은 납치 문제에 납치당했다”는 조크가 있다.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아베 총리의 중요한 선거 공약이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대북 관계 정상화를 별개의 ‘투 트랙’으로 가려는 고이즈미 정권 때와 달리 아베 정권은 이를 연결시켜서 대북 제재를 강화했다. 납치, 핵, 미사일 문제가 해결돼야 제재를 해제하고 관계 정상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014년 5월 일·북 스톡홀름 합의에서 보듯 아베 정권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 했지만 고이즈미 때의 정책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납치 문제 가족회와 관련 민간단체들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조기 붕괴설’에 근거한 아베의 정책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올해 일본 국내 정치를 전망한다면. -7월 참의원 선거는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과 헌법 개정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헌법 개정은 국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국민투표를 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아베는 양적 완화 등 경제적 기대감을 주면서 경제에 대한 국민 지지를 정권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오코노기 마사오 명예교수는 1945년생으로 일본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에 대한 연구를 개척하고 이끌어 온 원로 정치학자다.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위원장으로 양국 관계 발전의 청사진 마련을 주도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자문기관인 ‘대외 태스크포스’ 위원,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자문기구인 ‘외교정책연구회’ 위원 등을 지내며 일본의 한반도 정책 결정에 관여해 왔다. 이런 연유로 한국의 전문가 집단에도 지인이 많다. ‘조선전쟁’(중앙공론사), ‘일본과 북조선’(PHP연구소) 등의 저서가 있다.
  • [데스크 시각] 빨간 해야, 어둠을 살라 먹고…/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빨간 해야, 어둠을 살라 먹고…/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새해가 얼굴을 빼꼼 내밉니다. 우리네 가슴은 한껏 벅차오릅니다. 부푼 꿈으로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 그토록 질긴 목숨이어서입니다. 금세 꺾여 버리는 희망에 시퍼렇게 ‘쑥물’이 들지라도. 올해 또한 녹록잖을 터입니다. 숱한 어려움이 옥죌 것이기에. 서민 살림살이가 잔주름을 펴리라. 이런 말은 어디도 없습니다. 더러는 되묻기도 합니다. “새해라며 반길 게 뭐냐”고. “또 하루가 바뀌었을 뿐”이라며. 삶이 팍팍한 사람들 얘기입니다. 시나브로 겨울이 익습니다. 곧 땅까지 잔뜩 얼어붙는 탓입니다. 짐승도 몸을 움츠립니다. 우리들은 “어디 그뿐일까” 고개를 내젓게 됩니다. 없이 살아가는 낮은 이웃에게, 계절의 변심은 날카로운 칼날입니다. 자꾸자꾸만 생채기를 파헤칩니다. 칼바람 복판에서 한숨이 거셉니다. 참 착한 국민들은 세상 이치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품어야겠습니다. 2015년 마지막날 잔치라도 벌인 듯 들떴던 것과도 같이. 지난 잘못을 따진들 무엇을 하랴, 이제 고스란히 잊자며. 눈보라를 꺾고 피어오른 인왕산 자락 핏빛 진달래꽃처럼. 아스라히 스러진 지난해는 참말로 버거웠습니다. 이 땅의 보통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랬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갑질’ 밑에서 허덕였습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꼭 1년 전, 그때 품었던 소망은 야속하게도 주인을 저버렸습니다. 차라리 하늘 세상은 평등하지 않겠느냐며, 저승을 선택한 이도 쏟아졌습니다. 제발이지, 올해만큼은 다르기를. 원숭이띠 2016년 첫날에 빕니다. 정부3.0 정책이 실생활 속으로 녹아들기 바랍니다. 더이상 정부3.0 단어마저 낯설게 새겨지지 않기를. 단 한 사람에게라도 불편을 끼친다면, 그런 규제를 없애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기를. 여느 해에 견줘 한결 알차고 값진 열매를 거두기를. 그래서 많은 국민이 기쁨에 넘쳐 갈채하기를. 또한 나아가 공직사회가 한층 사랑받기를. 뾰족한 손가락질 대신에. ‘갑’(甲) 노릇은 고사하고 ‘을’(乙)에다 ‘병’(丙) 자리까지, 죄다 물리쳐 머슴을 자처했으면 합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게 ‘패배’를 넘어 다 함께 일어서는 일이라 깨우치길. 막 발걸음을 뗀 병신년 소망은 내달립니다. 채찍질에 쫓깁니다. 성화에 못내 밀려납니다. 마찬가지로 짙은 그늘이 드리운 곳 얘기입니다. 비무장지대(DMZ) 대성동 마을입니다. ‘자유의 마을’에서 이제 ‘평화의 마을’로 화끈하게 탈바꿈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짧게는 500m 거리인 기정동 마을)과 아주 가깝지만 무섭지 않다”는 그곳 아이들의 말처럼. 정부와 민간이 손잡은 지원 사업이 펄펄 날아오르기 바랍니다. 두 마을끼리 악수는 또 어떨까요. 본디 큰 일도 작은 것부터, 가까이에서 출발합니다. 두꺼운 얼음장 밑으론 머잖아 봄이 졸졸 흐를 것입니다. 하긴 동장군(冬將軍) 덕에 ‘봄 처녀’가 빛나는 법입니다. 외로우니 사람이고, 사람이니 외로울 터입니다. 서로서로 그렇게 다독이길. 스크럼을 짜기보다 어깨동무를 하도록. 목덜미를 붙잡는 절망의 꼬리를 감추도록. 박두진(1916~1998) 선생의 작품을 떠올립니다.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어느 시인은 노래합니다. 진솔(한 차례도 빨지 않은 새 옷)과도 같은 새하얀 첫날에 속삭입니다. 세상을 더 가까이서 보려고 하늘이 눈을 내린다. 다른 이는 이렇게 맺습니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사라지지 말아라. onekor@seoul.co.kr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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