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종이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9)
◎삶을 지속시킨 ‘소중한 존재’ 자각/요강·동고리·고비 등 갖가지 종이용품에/유물인식시스템·종이접기·한지제작 체험도/종이 쓰임새 변천 한눈에 알아보게 전시/기획전시실선 닥종이 인형전·부채전도 함께
한솔종이박물관은 재미있고,현장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는 곳이다.
박물관중에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곳은 없겠지만 한솔종이박물관도 흥미있고 지식에 보탬이 되는 가볼만한 박물관이다.
한솔종이박물관 관람이 재미있는 이유는 두가지.첫번째는 눈길이 쉽게 떠나지 않는 유물이 많다는 점이다.우리 조상들은 종이로 온갖 물건을 만들었다.갓·등·부채·미투리·반닫이·우산·베개뿐만 아니라 음식물과 곡식을 담던 동고리와 채독,문서를 꽂아 보관하던 고비,화살을 넣던 전통도 종이로 만들었다.
중국종이(華紙),일본종이(和紙)와 비교해도 역시 조선종이(韓紙)의 질이 으뜸이었다.옛 우리 선비들은 읽고 난 책들을 모아 함경도,평안도 변방을 지키는 병졸들에게 보내는게 관례였다.독서를 장려키 위함이 아니다.책장을 뜯어 옷을 만들어입으라는 배려였다.종이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던 기록도 있다.
전시품 중 흥미를 끄는 것은 종이요강.여인네들이 가마를 타고 먼 길을 갈때 필수품이었다.종이를 꼬아 과자 그릇처럼 예쁘게 만들었다.겉면에는 콩기름이나 들기름을 정성스레 발랐다.놋쇠로 만든 요강과 달리 중요한 순간에 소리가 나지 않았다.
종이박물관이 재미있는 두번째 이유는 스스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우선 유물인식시스템이 있다.미투리를 센서에 올려놓으면 ‘종이·삼·짚을 섞어 꼬아 만든 신발’이라는 설명과 그것의 유래가 컴퓨터 화면에 친절하게 나온다.
관람객이 컴퓨터 영상을 따라 재미있게 종이접기를 하는 코너도 있다.한지 재현관에서는 직접 종이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2시간여 종이박물관을 돌아보면 ‘뭔가 배운 것 같다’는 뿌듯한 느낌이 온다.
박물관 제1전시실의 첫째 방은 ‘종이 이전의 세계’다.종이가 만들어지기전까지 인류의 모든 문명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이었다.기록을 위해 갖가지가 쓰였다.점토판·파피루스·양피지·짐승뼈·갑골문·죽간 등.종이가 없었던 시절의 불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째 방은 ‘종이의 탄생과 전파’.서기 105년 중국 후한(後漢)시대 蔡倫이 종이사용을 실용화 시킨 이래 종이의 전파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의 종이 사용 역사도 중국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통일신라 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알려준다.종이박물관에는 고려 초기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제삼십육’원본(국보 제277호)이 소장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종이의 오늘과 내일’을 알려주는 곳이다.컴퓨터 시대에도 종이의 효용가치는 변함없음을 강조한다.전시의 주제는 ‘종이는 영원한 친구’.그와 관련된 영상물도 준비되어 있다.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종이 퀴즈게임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매직비전이라는 특수전시기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스스로 빛을 내는 ‘축광지’도 볼거리다.안네 프랑크,베토벤,李仲燮 등 국내외 유명인사의 메시지가 담긴 종이도 있다.
특히 서울대 金安濟 교수의 ‘종이인생’이 눈길을 끈다.젊은 시절의편지와 일기,결혼 청첩장,첫 직장 임용장,첫 월급봉투 등 ‘종이’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축소판’이다.
이어 기획전시실과 한지재현관을 둘러보면 관람은 끝난다.기획전시실에는 김영희씨의 ‘닥종이 인형전’에 이어 8월31일까지 ‘부채 특별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한지재현관에서는 닥나무 껍질을 벗겨 삶고 두드리고,한지를 떠내는 13개 과정을 옛 그대로 보여준다.한지 전문가 金泰福씨(52)부부가 관람객들을 친절히 맞는다.
한솔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종이박물관이다.세계적으로도 9번째다.한솔그룹이 공익사업 차원에서 설립,운영도 책임지고 있다.개관한지 1년이 채 안됐다.
담임선생님의 인솔로 종이박물관을 찾은 전북 고창군 부안초등학교 학생들은 “이제는 시험에 종이에 대해 어떤 문제가 나오더라도 맞힐 자신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큐레이터 嚴素姸씨/“미래에도 종이는 다정한 친구”/관람객과 일심동체 유도 유물수집 등 60억원 들여 지역민과 융화에도 신경
한솔종이박물관은 전문 큐레이터(박물관운영책임자)를 두고 있다.미국 뉴욕대 예술학대학원을 졸업한 嚴素姸씨(34).
“전라도는 옛부터 예술의 고장이라고 불리지 않았습니까.그러나 지금은 문화 관련 기관이 별로 없어요.저희 박물관은 이 지역의 문화 갈증을 푸는데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지요” 때문에 종이박물관측이 신경을 쓰는 것도 ‘지역민과의 융합’이다.최근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민화 그리기 공모전을 가졌다.박물관쪽에서 먼저 학교를 찾아 특활시간을 활용한 교육기회를 갖는 프로그램도 개발중이다. 아빠와 함께 연만들기,크리스마스 카드 그리기 등도 계획하고 있다.전주시청을 비롯한 정부 관공서와 연계해 박물관 소개 등 관람객 유치작업도 적극 벌이고 있다고 嚴씨는 설명했다.
박물관 시설도 관람객들과 전시유물의 ‘일심동체’를 이뤄내기 위해 스스로 참여토록 유도하는 것이 많다고 밝혔다. “유물인식 시스템,종이접기 코너 등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해 ‘종이’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데 전시의 중점을 두었습니다”
“종이라는 주제로 박물관을 만드는데어려움이 컸습니다.어디까지가 종이의 영역인지 자르기가 쉽지 않았죠.그러나 ‘종이는 영원한 친구’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종이가 과거는 물론 미래에도 인류 문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유물을 수집,정리했습니다” 유물수집과 정리에 60억원 남짓 들었다.기원전에 사용됐던 파피루스도 어렵게 영국에서 구입했다.
그녀는 “컴퓨터시대를 맞아 종이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그러나 외국 언론기관의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젊은이들도 컴퓨터 화면보다는 종이에 쓴 활자를 보는게 편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아무리 첨단화되어도 ‘종이 문화’는 지속된다고 생각합니다”면서 말을 맺었다.
◎종이박물관 가는 길/전주 IC서 7㎞ 거리 터미널서 택시로 15분/단체는 사전예약해야
호남고속도로 전주 인터체인지에서 7㎞ 정도 떨어져 있다.인터체인지를 나와 전주 시내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한솔종이박물관 푯말이 간간이 있어 그것을 따라 오면 된다.전주 고속버스터미널과 전주역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각각 15분,30분 정도 걸린다.
관람료는 무료.월요일과 국경일은 휴관하며 화요일∼일요일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까지 문을 연다.하루 7차례에 걸쳐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코스도 있다.관람 소요시간은 2시간.
한지뜨기 실습,한솔제지 공장 견학 등을 위해서 20인 이상 단체관람객들은 꼭 사전 예약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단체관람일은 매주 화,수,목요일이며 한지재현관은 수,목,토,일 주 4회 운영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2가 180번지.(0652)210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