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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 난제 푼 오희 교수 등 호암상 5명 선정

    수학 난제 푼 오희 교수 등 호암상 5명 선정

    호암재단(이사장 손병두)은 10일 오희(49)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 등 5명을 제28회 호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오 석좌교수는 과학상을 받는다. 공학상은 박남규(58) 성균관대 교수, 의학상은 고규영(61) 카이스트(KAIST) 특훈교수, 예술상은 연광철(53) 성악가, 사회봉사상은 강칼라(75) 수녀에게 각각 돌아갔다. 시상식은 오는 6월 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메달과 상금 3억원이 각각 돌아간다. 재단 측은 “노벨상 수상자인 티머시 헌트, 다니엘 셰흐트만 박사 등 국내외 저명 학자와 전문가 38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 국제적 명성을 가진 해외 석학자문단 36명의 검증과 현장 실사 등을 거쳐 수상자를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아폴로니우스의 원 채우기’에 관한 수학계의 오랜 난제를 해결한 인물로 꼽힌다. 2015년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수학회로부터 ‘새터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미국 ‘구겐하임 펠로’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실리콘 소재 태양전지의 단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고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고 교수는 인간 장기의 모세혈관과 림프관의 숨겨진 특성을 규명해 관련 신약 개발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암 혈관 생성에 관한 국제적 전문가다. 연씨는 세계적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가 ‘차세대 가장 주목해야 할 베이스’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정상급인 베이스 오페라 가수다. ‘푸른 눈의 천사’로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 강 수녀는 1968년 우리나라로 건너온 이후 한센인을 보살피는 데 평생을 바쳤다. 호암상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호암(湖巖) 이병철(1987년 작고) 회장의 뜻을 기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0년 제정한 상이다. 올해까지 총 143명의 수상자가 244억원의 상금을 받았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단독] ‘천형 낙인’ 한센병 환자 5년 뒤 사라진다

    [단독] ‘천형 낙인’ 한센병 환자 5년 뒤 사라진다

    고령화·적극적 감염예방 일환 활동성 환자 작년 125명으로 ‘나균’ 신규 환자 3명으로 감소5년 뒤 한센병 환자가 국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환자 고령화와 적극적인 감염 예방 정책의 영향이다.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800년이 넘도록 주변의 따돌림과 비난, 공권력의 폭압을 피해 숨어 살다시피한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저무는 것이다. 6일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이 최근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한 ‘한센병 관리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한센병 환자로 부르는 ‘활동성 환자’는 2001년 581명에서 지난해 125명으로 줄었다. 활동성 환자는 한센사업대상자(한센인)의 1%에 불과하다. 나균에 감염된 신규 활동성 환자는 2005년 15명에서 지난해 3명으로 감소했다. 정근식 평화통일연구원장은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2년에는 활동성 환자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센병 감염 경험이 있는 전체 한센인도 2001년 1만 7712명에서 지난해 1만 33명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기준 한센인 평균 연령은 76세다. 70세 이상의 비율이 71%로 20년 뒤면 현재 한센인의 대부분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다. 한센인은 대부분 소록도에 거주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말 기준 60.3%가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정착마을은 31.2%, 소록도 등 한센생활시설에 거주하는 비율은 8.5%다. 소록도병원에 거주하는 한센인은 511명이다. 해마다 사망하는 한센인은 평균 500명에 이르러 한센생활시설 입소자도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눈썹이 빠지고 피부와 근육이 문드러지는 증상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은 늘 사회의 차별과 폭력에 시달렸다. 특히 일제는 소록도에 환자들을 몰아넣고 평생 격리, 강제 단종수술, 감금실 운영 등 ‘증오의 역사’를 이어 갔다. 소록도에 환자가 많을 때는 6000명이 넘을 정도였다. 해방 이후인 1954년과 1963년 전염병 예방법 개정을 통해 강제 격리가 폐지되고 정착마을이 활성화됐지만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아픔은 지금도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현재는 7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이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다. 2016년 조사에서 한센인 정착마을 거주자의 70.9%가 기초생활수급자이고 9.9%만 경제적으로 독립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착마을 한센인 3명 중 1명꼴로 가장 큰 어려움은 ‘빈곤’이라고 답했다.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정책의 개선도 필요하다. 정 원장에 따르면 과거 한센병 유병률이 높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부랑 한센인 수용’ 정책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정 원장은 “‘2017 한센사업지침’에는 과거 한센인 강제 송환의 근거가 됐던 ‘부랑 한센사업대상자 선도 및 이송’ 항목이 여전히 포함돼 있다”며 “고령화라는 한센인의 특성에 맞게 일상생활을 위한 생활복지적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공직체험] 간호인 한 명이 40~50명씩 매일 ‘섬 라운딩’…한센인 몸과 마음 둥글게 치유하는 천사들

    [공직체험] 간호인 한 명이 40~50명씩 매일 ‘섬 라운딩’…한센인 몸과 마음 둥글게 치유하는 천사들

    매년 1월 마지막 주 일요일(지난달 28일)은 ‘세계 한센병의 날’이다. 프랑스의 자선사업가인 라올 홀레로가 한센인들을 돕고자 1954년 프랑스 의회에서 이날을 세계 한센병의 날로 제정하는 의결을 이끌어낸 것이 그 유래다. ‘한센인’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소록도다. 소설가 이청준은 이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 제목을 ‘당신들의 천국’이라 지었다. 지난 100년 한센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간직된 이 천국에서 이들을 묵묵히 돌보는 ‘천사’들이 있다. 국립 소록도병원 간호사·간호조무사들이다.# 7개 마을 환자 380명 최대 하루 4~5번 방문 이들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병동간호, 마을방문간호, 외래간호다. 병동이나 외래는 다른 병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마을방문간호는 섬 전체가 병원인 소록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달 19일 국립 소록도병원 남미화 간호사의 마을방문간호를 따라갔다. 너무 바쁜 발걸음에 당황한 기자가 “조금 천천히 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했다. 남 간호사는 “그러면 시간 내에 다 못 돌아요”라고 잘라 말했다. 소록도에는 중앙리·동생리 등 7개 마을이 있다. 전체 간호인력 정원은 111명(간호사 45명, 간호조무사 66명)이지만, 현원은 96명(간호사 36명, 간호조무사 60명)이다. 특별한 사명감이 요구되는 자리라 정원을 채우기가 녹록지 않다. 이들 중 마을방문간호에 배치된 인력은 20명이다. 소록도 병원 전체 환자 511명 중 병동에 있는 환자를 제외한 약 380명 정도가 마을방문간호 대상이다. 간호인력 한 사람당 40~50명 정도의 한센인을 하루에 방문해야 한다. 공식적으로는 오전·오후 하루 두 번 방문간호를 하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서 4~5번 방문하는 일도 많다. 즉 한센인들은 하루 최소 두 번 이상 담당 간호사 얼굴을 본다.# 바쁜 발걸음 속 한 분 한 분 건강체크 꼼꼼히 쉴 새 없이 빠르던 남 간호사의 발걸음이 중앙리의 한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남 간호사는 조용히 방문을 두들기며 “어르신 저 왔어요. 들어갈게요”라고 말했다. 병동을 다 돌지 못할까 급했던 마음은 방 안으로 들어서자 사그라졌다. “지금 어디 아픈 데 있으세요?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남 간호사는 몇 분 동안 방 안의 노인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또 올게요”라는 말과 함께 방문을 나선 남 간호사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소록도병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이곳에 활동성 한센병을 앓는 환자는 없다. 과거 병력으로 인한 신체 변형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으로 인한 질환을 앓는 환자가 대다수다. 병원에 등록된 한센인은 511명이다. 평균 나이는 75.5세다. 50대 미만도 있지만, 대다수가 60세 이상 노인이다.# 보호자 없는 어르신에게는 말벗이자 자식처럼 이 병원 환자들에겐 보호자가 없다. 그래서 간호사·간호조무사들 업무는 단순히 간호에서 그치지 않는다. 환자들 손발톱관리·목욕 등 일상적 위생관리부터 대소변 수발과 세탁물 정리까지. 그리고 적적한 분들에게 다정한 말벗이 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남 간호사는 한 환자 방 안에 어지러이 놓인 지폐 다발을 보고는 “돈을 이렇게 놓으면 어째요, 어르신”이라고 장난스레 타박하며 한쪽에 잘 정리해 뒀다. # 그냥 공무원 아닌 남다른 사명감으로 근무 이들에겐 공무원이란 직업 자체가 주는 것 이상의 특별한 사명감이 있다. 20여년간 이곳에서 일한 허옥희 국립소록도병원 간호조무사는 “그냥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이 일을 택한 건 아니었어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라운딩하면서 어르신에게 ‘아리랑’을 가르쳐 드렸어요. 제가 방에 들어가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이 기억에 떠올라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요.” 글 사진 소록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한센인 문제, 한·일 과거사 중 유일한 해결 의의”

    “한센인 문제, 한·일 과거사 중 유일한 해결 의의”

    “10년 넘게 함께 고생한 동료 변호사들에게 미안했는데 작은 보답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좀더 많은 변호사가 공익 활동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30일 사단법인 법조언론인클럽 ‘올해의 법조인상’을 수상한 한센인권변호인단 단장 박영립(65) 변호사는 “모두 안 되는 일이라고 했고, 나도 승소하리란 기대는 없었지만 한센인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돕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센인과의 인연은 2004년 5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맡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센인 인권 침해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낸 일본 변호사들이 한국의 한센인도 돕겠다며 대한변협을 찾아온 것이다. 박 변호사는 “일본 변호사들도 관심을 갖는데 한센인에 대해 무지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처음 한센병에 대해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판결을 받기까지 2~3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면서 “한센인 단체에서도 회의적이었지만 우리가 열의를 보이자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60명에 달하던 변호사들은 12명으로 줄었다. 박 단장과 김성기, 김준우, 박종강, 서중희, 양정숙, 이영기, 이정일, 장철우, 조영선, 최용근, 한석종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일제 정책으로 고통당한 한센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상을 이끌어냈고, 한국 정부로부터도 배상받았다.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서 보상과 배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처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후 일본 변호사, 시민단체, 언론 등의 도움으로 한국인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일본 법이 개정됐지만, 공식 문서가 없어 증명할 길이 없었다. 결국 변호사들이 팀을 꾸려 주말마다 소록도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센인 정착촌을 돌며 설명회를 열고, 한 달에 5~10명씩 직접 만나 진술서를 작성했다. 일제 당시 한센인 정착촌에 강제억류됐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교회 교적부, 학교 학적부 등 관련 자료를 모두 뒤졌다. 결국 피해자 590명이 일본 정부에서 1인당 1억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박 변호사는 “변호사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가 합심해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입법청원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며 “한국, 일본, 대만 3국 국민 50만명이 서명운동하는 등 3국의 힘을 합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한센인들에게 단종과 낙태수술 등을 강요했다. 정부는 2007년 보상법을 제정해 의료비만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박 변호사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법원은 538명에 대해 1인당 3000만~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 단장은 한센인 문제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과거사 문제 중 유일하게 해결된 점에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도 변호사, 시민단체, 언론 등이 다양하게 합심해 한국 정부와 힘을 합쳐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며 “한센인 문제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 해냈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커버스토리] “100년사 발간은 기적”… 소록도의 기록은 끝나지 않는다

    [커버스토리] “100년사 발간은 기적”… 소록도의 기록은 끝나지 않는다

    “언제나 역사엔 밟은 자의 근거만 있지. 밟힌 자의 근거는 지워지기 마련이야.”소록도 주민 강선봉(79)씨는 이런 상황 속에서 100년사가 발간됐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처음에는 갈등이 무척 심했다”면서 “완벽하게 만족할 순 없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946년 이곳에 들어온 강씨는 이청준이 소설 제목에 쓴 ‘천국’(天國) 표현에 반박하는 수필 ‘천국(賤國)으로의 여행’을 펴낸 인물로도 이곳에서 유명하다.역사편 227페이지엔 반가운 이름이 등장한다. ‘소록도 할매천사’ 마리안느 스퇴거(84)와 마가렛 피사렉(83)이다. 한센병 의료봉사단체인 다미안재단에서 간호원으로 활동한 두 사람은 각각 소록도에 온 시기가 다르다. 마리안느는 1962년 이곳에서 영아원을 운영했고 그리스도왕 시녀회 소속 마가렛은 1959년 전북 정읍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 1966년부터 다미안재단에 합류했다. 다미안재단이 소록도를 떠날 때도 이들은 계속 남아 봉사활동을 이어 갔다. 이곳에서 각각 ‘큰할매’와 ‘작은할매’로 통한다. 40여년 이곳에서 지내다 2005년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돌연 귀국한다. 주민들에게 서툰 한국어로 쓴 편지 한 통만 남겼다. 작은할매를 친어머니처럼 따랐다는 허옥희 소록도병원 간호조무사는 그들이 떠나던 마지막 날을 기억했다. “녹동항에서 두 할매를 봤어요. 할매들이 잠시 피정(종교인들이 수련을 떠나는 일) 가시는 줄 알았죠.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했습니다. 할매들은 알겠다며 웃었지만 왜인지 한 번 돌아보시더라고요. 그때 왜 그랬는지, 나중에서야 알았죠.” 소록도의 200년은 어떻게 기록될까. 강의원 주무관은 “그때쯤엔 이곳에 삶의 이야기가 더이상 없기 때문에 질문이 성립하지 않습니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소록도에 사람이 있는 한, 그의 기록도 끝나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전했다. “앞으로는 국가가 무엇을 했다는 얘기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인 걸요. 그보다도 한센인들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 그런 흔적들을 찾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소록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커버스토리] 소록도, 아픔 품은 100년史… 희망 품는 200년史

    [커버스토리] 소록도, 아픔 품은 100년史… 희망 품는 200년史

    한 세기 가까이 격리·억압의 공간… 섬 전체가 병원… 2009년 소록대교로 삶의 모습 변화… 한센인 511명 평균 나이 75.5세지난 16일 국립 소록도병원 100년사 ‘한센병 그리고 사람, 100년의 성찰’이 발간됐다. 개원 100주년(2016년)에 내지 못하고 두 해를 넘겼다. 풀어낼 이야기가 많아서였을까. 이유를 듣고자 소록도를 찾았다. 지난 19일 찾은 섬은 아무 일 없었단 듯 조용했다. 서울 서초구 호남선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5시간 걸려 전남 고흥 녹동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뒤 차로 15분 정도 이동했다. 이곳은 섬 전체가 병원이다. 예전엔 한센인과 직원들만 오갈 수 있었다. 지금은 소록도 중앙공원과 한센병박물관 정도를 일반인에게도 개방한다. 자원봉사자들에 한해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까지 허용한다. 한센병박물관은 병원 본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2016년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이곳에선 아직 새 건물의 냄새가 났다. 이곳에서 조명래 학예사에게 대뜸 “(책 발간이) 왜 늦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더 잘하려다 보니 그랬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한센인에 대한 학살 ‘84인 학살사건’ 한 세기 가깝도록 소록도는 격리와 억압의 공간이었다. 그만큼 사연도 많다. ‘84인 학살사건’도 그중 하나다. 1945년 해방 직후 치안공백 상태에서 병원 내부 갈등이 직원과 한센인 갈등으로 번졌다. 당시 병원 직원들은 자신들이 끌어들인 외부 치안대와 함께 한센인 84명을 끔찍하게 살해했다. 나중에 밝혀진 희생자까지 공식 사망자만 85명이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반년 정도가 지나서다. 진상조사가 이뤄졌지만 직원들을 면직하는 데 그쳤다. 제대로 된 피해보상은 없었다. 2002년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시작됐다. 이들이 묻혔던 자리에 ‘애한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에야 이 사건을 직원들에 의한 한센인 학살사건으로 규정했다. 관련 피해보상법은 2007년 마련됐다. 한센인들의 인권보상 이야기는 1996년도에 편찬된 ‘소록도 80년사’에는 담기 어려웠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소록도가 우리 사회를 향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00년사 편찬에서는 이런 부분이 강조됐다.소록도로 들어가는 첫 관문 ‘소록대교’는 10년 전만 해도 어색한 풍경이었다. 2009년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전남 고흥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했다. 배가 운행하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격리의 상징인 소록도에 연륙교가 놓인 것은 여느 다리가 갖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원래 이곳은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밖에 나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젠 누구나 자유로이 이곳을 드나들 수 있다. 박물관 소속으로 이번 100년사 편찬 작업을 한 강의원 소록도병원 주무관은 소록대교를 이곳의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록도는 한센인들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소설 제목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말처럼요. 다리가 놓이고 삶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상을 향해 열리게 됐달까요.”●한센인들을 괴롭히는 건 한센병이 아닌 ‘세월’ 한센인들은 ‘본병객병’이라는 말을 쓴다. 본병(本病)은 한센병을 뜻하고 객병(客病)은 그 이외의 병을 뜻한다. 현재 소록도에서 본병을 앓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 1982년 도입된 병형별 다제요법(MDT)으로 한센병은 거의 종결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완치율을 보였다. 소록도에 가장 환자가 많았을 땐 6254명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 소록도병원에 등록된 한센인은 511명이며 이 중에서 활동성 한센병 환자는 한 명도 없다. 신체변형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으로 노환을 앓는 한센인이 대부분이다. 소록도병원 환자 평균연령은 75.5세다. 이제 한센인들을 괴롭히는 건 본병이 아닌 객병과 세월이다. 소록도에선 환자가 환자를 돌봤다. 환자가 5000~6000명에 이를 때에도 이들을 치료할 의사는 10명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의료인력이 부족했다. 한센인 중에는 “소록도에 수십년 살았는데 의사선생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 이도 있다. 1949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녹산의학강습소’는 시험을 통해 우수한 환자를 선발해 2~3년 동안 기초 의학지식을 가르쳐 의료조무원으로 양성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소록도에선 이들이 의사 역할을 도맡았다. 1952년 1기 졸업생 16명이 배출됐고 1971년 7기 졸업생은 45명이었다. 여기서 의학을 배운 뒤 섬을 나가 더 공부해서 실제로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의학강습소는 당시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커다란 배움의 기회였던 셈이다.●“소록도엔 아이가 없고 무덤이 없다” “소록도엔 두 가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아이와 무덤이다.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오해로 소록도에선 오랜 시간 정관·낙태수술이 자행됐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가 없다. 또 오랜 섬 생활로 육지 가족과 인연이 끊겨 이곳에서 죽은 이들을 기억해 줄 무덤이 없다. 소록도에서 생을 마감한 한센인 유골은 본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만령당’으로 간다. 이곳에 안치된 유골은 10년이 지나면 만령당 뒤에 있는 봉분에 합장한다. 매년 10월 넷째 주 목요일에 합동 추도식이 열린다. 조 학예사는 이곳을 소록도에서 가장 뜻깊은 장소로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소록도병원엔 입원하는 사람만 있습니다. 퇴원은 어쩌면 불가능하죠. 한센인은 죽음으로써 이 섬을 떠납니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기에, 우리가 기억해 드려야 하는 거죠.” 섬 전체가 병원인 소록도에서 병원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원장이 펴는 정책에 따라 생활양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소록도 역사는 원장들의 역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해방 이후 최초 한국인 병원장이었던 김형태 전 원장은 억압 일색이었던 소록도 분위기를 확 바꿨다. 이때부터 주민자치회가 결성됐으며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를 나누던 철조망이 사라졌다. 차기 원장 때 부활하지만, 이때 한센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던 단종수술도 폐지했다. 정관·임신중절수술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건 1990년대 이후다. 김 전 원장 시기 소록도에선 일제의 관리체계가 무너졌으며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과 함께 현역 군의관 조창원 대령이 제14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조백헌 대령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한센병이 다 나은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계획했다. 이 사업으로 조성된 330만평의 농토에서 경작하며 살 수 있을 거라 한센인들은 기대했다. 삽·괭이 같은 원시적 도구에 한 달 30원이라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한센인들은 공사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인근 고흥 주민들의 사업 반대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1964년 7월 사업권이 전남도로 이관됐다. 이에 따라 한센인들의 꿈도 같이 좌절됐다. 공사에 참여했던 한센인들은 6개월간 밀린 임금도 받지 못했다. 소록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한센인 시각으로 재조명 ‘소록도 100년, …’ 출간

    국립소록도병원은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한 소록도 100년사 집필·편찬 사업을 마무리해 ‘소록도 100년, 한센병 그리고 사람, 백년의 성찰’을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100년사는 역사편과 의료편 2권으로 구성됐고 사진집도 따로 발간했다. 역사편은 기존에 발간된 소록도 80년사를 토대로 하면서 한센인의 시각에서 과거를 재조명했다. 의료편은 국제 한센병 정책의 흐름, 병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주체와 제도의 변화, 치료약의 발전 과정 등을 서술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 다시 머물고 싶은 곳

    !… 다시 머물고 싶은 곳

    올해도 ‘서울신문 렛츠고’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쉼 없이 돌았습니다. 렛츠고의 여정은 늘 혼자였으되, 발걸음은 여럿이었습니다. 등 뒤로 늘 독자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듯했지요. 그 때문에 발견의 기쁨도 좋았지만, 공유의 행복은 더 좋았습니다. 올해 찾았던 곳 가운데 되새길 만한 곳들을 추리려 합니다. 당시 최적화됐던 풍경 몇몇을 가려내 보자는 거지요. 지난 시간의 단순 복기가 아닌, 발견의 기쁨을 공유하는 자리여서 느낌이 더욱 각별합니다.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 ① 고흥 소록도한 해를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기별로 나누는 것입니다. 굳이 경중이나 의미 등을 따질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한데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입니다. 외형이 아름다워서는 아닙니다. 시나브로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을 서둘러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지요. 올해의 여행지 가장 윗줄에 소록도를 세운 건 그 때문입니다. 소록도 안에서도 몇몇 곳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너머에 있는 금단의 땅입니다. 그곳엔 1916년 세워진 자혜의원과 병사(病舍)들이 있습니다. 한센인들이 100년에 걸쳐 치료받고 생활했던 공간입니다. 그 공간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식량저장고, 소록도 등대 등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들은 늘 살뜰한 보살핌을 받습니다. 하지만 용도 폐기된 병사 건물은 다릅니다. 우리의 역량이 시험받아야 할 곳은 바로 여기, 그리고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 보존사업’을 이끈 조성룡 성균관대 교수 등을 중심으로 소록도를 보존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제 갓 발걸음을 뗀 이들에게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해 보입니다. 세계를 울린 역사에 감동받다 ② 정선 아리랑 박물관정선아리랑박물관은 ‘한류 원조’ 아리랑이 세계를 울린 역사에 놀라고 감동받았던 곳입니다. 박물관 전시물은 사진 두 장을 제외하고 모두 진본입니다. 진용선 관장이 젊은 날을 통째 바쳐 수집한 것들입니다. 아리랑을 번안한 미국 장로교단의 찬송가 229장(Christ, You Are the Fullness), 유엔이 아리랑을 담아 아프리카 나라들에 보급한 음악책 등 진귀한 전시물과 만날 수 있습니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아리랑을 담아낸 소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일본 여가수 고바야시 지오코의 아리랑 앨범 ‘금색가면’ 역시 이곳에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사람과 국토를 산산조각 냈지만, 역설적으로 아리랑이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위문 공연차 한국을 방문한 뮤지션들이 세계에 다양한 장르로 아리랑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야전화장실에서 통역관의 아리랑 휘파람 소리를 듣고 이를 재즈풍으로 재해석한 오스카 페티포드의 ‘아디동(아리랑) 블루스’, 종군기자가 기록한 아리랑 멜로디를 편곡한 미국 여가수 엘리 윌리엄스의 ‘아디동’, 미국 포크 음악의 비조로 꼽히는 피트 시거의 ‘아리랑’ 앨범, 그리고 1970~80년대 폴 모리아 악단의 ‘아리랑’ 등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섬 산행을 원하는 당신③ 통영 사량도중국발 미세먼지 탓에 여정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래전 찾았던 경남 통영의 사량도가 그랬습니다. 빼어난 암릉미의 명산이 청아한 옥빛 바닷물 위로 솟았지만 당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아쉬움에 사량도를 다시 찾았습니다. 마침 사량도 윗섬과 아랫섬을 잇는 사량대교가 놓인 터라 의미가 더했습니다. 하늘은 먼지 한 톨 없는 공기를 허락했고, 그 덕에 이전의 것들은 무효라 할 만큼 멋진 풍경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량도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섬 산행이 목적입니다. 윗섬 가운데를 지리산(398m)과 불모산(400m), 옥녀봉(303m) 등이 가로지르는데, 공룡의 등뼈를 닮은 암릉을 따라 걷는 재미가 각별합니다. 풍경전망대를 꼽으라면 윗섬의 향봉과 연지봉을 잇는 출렁다리 주변입니다. 사량도의 거의 모든 풍경을 담을 수 있습니다. 아랫섬은 아직 여행 불모지입니다. 칠현산 등산로 외에 뚜렷하게 개발된 관광지가 없습니다. 윗섬과 아랫섬에 각각 17㎞짜리 일주도로가 놓여 있습니다. 차를 가져가면 사량도 전체를 속속들이 엿볼 수 있습니다. 과장 좀 보태 ‘별유천지’ 그곳④ 서천 비인만충남 서천의 비인만은 이름만으로 관심을 끄는 곳이었습니다.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닌 데다, 어딘가 맑은 풍경을 가만히 숨겨 두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비인만은 활처럼 휘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그린 갈매기 그림을 연상하면 알기 쉽습니다. 날개 위는 마량포구입니다. 전어축제로 이름난 홍원항, 붉은 동백이 예쁜 춘장대가 이 언저리에 있습니다. 아래는 장항입니다. 서천의 명물이자 ‘JSA’ 등의 영화 촬영지로 이름난 신성리 갈대숲이 이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그러니까 갈매기의 몸통에 해당되는 곳이 바로 비인만입니다. 마량포구 인근 산자락에 올라 굽어보면 이 모습이 확연히 보입니다. 비인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 월호리 월하성 포구와 비인면 선도리 해변입니다. 월하성은 이름 그대로 ‘달 아래 성’이란 뜻입니다. 일대 풍경이 바다에 비치는 달빛만큼이나 아름답다네요. 선도리 해변의 해넘이는 단연 압권입니다. 해가 월하성 쪽으로 떨어지며 사위를 붉게 달굽니다. 이때면 하늘도, 바다도 죄다 짙은 주황빛이지요. 기러기 날자 풍경 떨어지더라⑤ 완주 비비정먼 길 날아온 기러기가 쉬어 가는 정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북 완주의 비비정(飛飛亭)입니다. 1998년 복원된 비비정은 건물 자체로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깃들지 않은 탓입니다. 한데 주변 풍광은 정말 멋들어집니다. 만경강이 뱀처럼 휘돌아가고, 그 너머로 드넓은 호남평야와 억새 무성한 습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저물녘엔 더 멋집니다. 사위가 시뻘겋게 물듭니다. 불 칼처럼 빛나는 만경강 위로는 기러기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내려앉습니다. 완산8경의 하나인 ‘비비낙안’(飛飛落雁)이 펼쳐지는 거지요. 이건 뭐 딱 ‘한 폭의 그림’입니다. 비비정 오른쪽엔 옛 만경강 철교(등록문화재 579호)가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문화재입니다. 비비정 뒤편 마을 언덕엔 카페 비비낙안이 있습니다. 옛 물탱크를 리모델링한 전망대와 도회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카페 건물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기껏해야 ‘동네 뒷산’ 정도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사방이 훤히 트인 덕에 비비낙안에서 굽어보는 미감은 아주 색다릅니다. 비비정 레스토랑에서 ‘엄마의 레시피’로 만든 농가 집밥을 맛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백제의 고도를 새로 보았지요⑥ 익산 미륵사지고백하자면, 그간 무지했습니다. 백제의 고도인 전북 익산을 개성 없는 중소도시쯤으로 여겼으니 말입니다. 이런 오만불손은 미륵사지 돌탑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여명의 긴장이 사라지고 햇살이 게으른 소의 발걸음처럼 느릿느릿 퍼질 무렵이었습니다. 익산의 아침을 깨우던 햇빛이 동원구층석탑 여기저기를 비췄습니다. 그때마다 화강암 돌탑은 스스로 빛을 냈습니다. 풍경 소리를 곁들여서요. ‘자체발광’의 몽환적인 풍경이랄까요. 해와 돌탑의 앙상블은 그처럼 오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오래전, 이 자리에 돌탑을 세웠던 백제인 역시 이 장면을 염두에 뒀겠지요. 동탑 맞은편은 저 유명한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그때면 얼마나 더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질까요. 나바위 성당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초저녁 달을 이고 선 한옥 성당은 기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인근 마을을 보듬고 있는 듯한 피에타 조각상도 감탄을 자아냈지요.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예배당에 불이 켜질 때였습니다. 깜빡하며 주황색 불빛이 팔각창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 장면이 달빛과 어우러져 얼마나 그윽하던지요.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내년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받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내년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받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성균관대 총동창회가 내년 1월 시상하는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수상자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선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성균관대 안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책임자로서 ‘적폐’로도 지목되고 있는 황 전 총리에게 ‘자랑스러운 성균인상’을 시상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성균관대 민주동문회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총동창회가 내년 1월 시상하는 ‘자랑스러운 성균인상’에 성균관대 법률학과 77학번인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을 선정했다”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의 책임자로서 ‘적폐’로 지목되고 있는 황교안 전 총리의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선정과 관련해 성균관대 내외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반감과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성균관대 총동창회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거나 탁월한 성과로 대학 명예에 이바지한 졸업자에게 주는 ‘2018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수상자로 황 전 총리를 선정했다. 황 전 총리는 내년 1월 열릴 성균관대 총동창회 신년하례식에서 이 상을 받을 예정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해 1월엔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2015년 1월 같은 상을 수상했다. 이에 맞서 성균관대 민주동문회는 오는 22일 동문회가 시상하는 ‘제4회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수상자로 방송인 김미화씨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를 선정했다. 이명박 정부 집권 당시 국가정보원이 만든 ‘연예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방송 출연 정지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았던 김미화(2001년 사회복지학과 입학)씨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소송을 준비하는 등 ‘문화계 적폐청산’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점이 선정 이유로 꼽혔다. 조영선(1984년 토목공학과에 입학) 사무총장은 노동권 및 인권 변호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 사무총장은 광양·포항제철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한 해고 노동자 출신의 변호사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사무총장을 지냈고 소록도 한센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인권을 대변하는 변호인으로 활동해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40년간 한센인 돌본 ‘백의의 천사’ 마리안느·마가렛 정신 널리 알릴 것”

    “40년간 한센인 돌본 ‘백의의 천사’ 마리안느·마가렛 정신 널리 알릴 것”

    “천사 같은 모습으로 한평생 한센병 환자분들을 치료한 그분들의 봉사정신과 사랑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기리는 그런 일이 보람이 있어서 수락했습니다.”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23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40여년 동안 봉사와 인류애를 실천한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렉(82)의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남도는 이날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노벨평화상 추천을 위해 36명으로 구성된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위원회 발족식을 가졌다. 위원회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나경원·노웅래·박지원 국회의원, 우기종 정무부지사 등 정관계, 학계, 법조계, 재계, 금융계, 복지·의료·봉사기관, 해외 교포 등으로 조직됐다. 연말까지 50명으로 위원을 늘릴 방침이다. 앞으로 100만명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해외 홍보 활동도 펼치기로 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과 1966년 소록도에 찾아왔다. 이후 한센병 환자와 그 자녀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실천해 수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평생을 한센병 퇴치와 한센인 인권 향상에 헌신했음에도 나이가 들어 부담을 줄 것을 염려, 2005년 11월 22일 아무도 모르게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그분들의 업적 등을 잘 정리해 노벨평화상 위원회에 평화상 수상자로서 추천 의뢰를 할 예정”이라며 “그런 과정에서 국민들도 뜻을 같이 모아 사랑의 정신들을 함께 기억하고 나눠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혜를 모으고, 국민들의 호응을 모아서 노벨상 수상 추천을 할 계획이라는 김 위원장은 “이제 위원회가 구성된 만큼 필요한 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을 추천하는 데 특히 의미가 있다”며 “국경에 관계없이 사랑을 펼치는 이번 활동이 서로 감사하고 격려하는 운동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부인 차성은씨의 할아버지인 고 차남수씨가 1960년 6월 3일부터 1961년 1월 13일까지 제11대 국립소록도병원장을 지낸 인연이 있어 2012년 5월 17일 소록도병원 개원 제9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한센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 ‘소록도’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 ‘소록도’

    소록도가 앓고 있습니다. 개발의 압력도 거세지만 그보다 문화재급 옛 건물들이 허물어져 가는 게 더 문제입니다. 한센인들이 거주하던 마을 몇몇은 이미 흔적 없이 사라졌고 서생리 등 그나마 남은 자취마저 생멸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즐겨 찾을 곳을 소개해야 하는 본연의 직무와 동떨어진 소록도 안쪽을 낱낱이 보여드리는 건 이 때문입니다. 시나브로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을 서둘러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번 여정은 국민들이 아직 가볼 수 없는,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이 모여야 할 곳을 전한다는 의미만 갖습니다.먼저 전남 고흥 소록도의 발자취부터 살핍니다. 소록도 한센인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자혜의원이 들어서면서 시작됩니다. 현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이지요. 자혜의원 주변으로는 한센인들이 거주했던 병사(病舍)들이 하나둘 들어서게 됩니다. 여기가 서생리 일대입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한센인들이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한센인 마을도 급속도로 확장됩니다. 1933년부터 시작된 확장공사로 자혜의원은 현재의 국립소록도병원 자리로 이주하게 됐고 한센인 마을도 남, 북 병사에서 9개 마을로 확대됩니다. ●병에 대한 무지·공포에 유린당한 인권 현재 일반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소록도 초입의 수탄장 일대와 관사 지대, 소록도병원 주변 정도입니다. 수탄장은 한센인 부모와 ‘미감아’(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동이란 뜻)들이 눈물로 상봉하던 장소입니다. 한센인 부모와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각각 도로 양쪽 끝에 서서 마주 보기만 했다지요. 아이들은 바람을 등지고 섰고, 부모들은 그 반대편에 섰습니다. 미구에 발생할지도 모를 전염을 우려한 조치였다고 합니다. 소록도 병원 주변에도 명소들이 많습니다. 한센인들을 동원해 조성한 중앙공원, 일제강점기에 인권 유린이 자행됐던 소록도갱생원 검시실(등록문화재 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67호) 등이 남아 있습니다. 한센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와 이동권을 박탈당했고, 병의 대물림을 우려해 단종(정관수술)과 낙태를 강요당했습니다. 우리가 한센인들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도 이 대목 때문일 겁니다. 병에 무지해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 지독했던 인권유린과 탄압은 결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나을 수 있고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일부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무지와 편견으로 거대한 벽을 쌓았던 우리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지난 2013년에 보건복지부 등이 밝힌 한센인 피해 진상조사 결과를 보면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6462명의 한센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공학(共學) 반대운동 등 거대한 차별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지요. 하지만 우리는 여태 우리가 벌인 일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과의 뜻을 밝혔을 뿐이지요.●애환 담긴 간장공장 허물고 기념관으로 관사지대는 병사지대 건너편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센인을 돌보던 병원 직원 등 정상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저 유명한 ‘소록도 할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아네 스퇴거(83)와 마르가레트 피사레크(82)가 1962년부터 머물던 집도 관사지대 초입에 있습니다. 소박하고 단아한 두 ‘할매’의 집을 지나면 소록도 선착장이 나옵니다.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바깥세상과 소록도를 이어 주던 공간입니다. 당시 운항하던 행정선과 철부선 등이 여태 남아 있습니다. 선착장 뒤는 2층 건물을 짓는 신축 공사장입니다. ‘소록도 할매’들의 기념관이라고 합니다. 건물을 짓는 명분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경위를 짚어 보면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건물이 들어서는 자리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옛 간장공장 건물이 있었다고 하지요. 한센인의 애환이 담긴 기억의 집을 허물고 자신들의 기념관을 짓는다는 걸 두 할매들은 반길까요. 게다가 훗날 소록도를 찾는 우리 후손 역시 ‘이 자리에 간장공장이 있었다’는 사실만 전해 들어야 하잖습니까. 무엇보다 할매들께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걸 굳이 끄집어내는 게 감사의 뜻일까요. 이 신축 건물을 보자면 이제 여러 사람의 합리적인 생각을 모으고 정당한 방법으로 소록도를 기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이제 소록도 안쪽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외부인 출입금지 시점을 지나 조붓한 언덕을 몇 번 오르내리면 서생리 자혜의원(지방문화재자료 238호) 건물과 만납니다. 소록도의 역사가 시작된 곳입니다. 하지만 병원의 문을 열면 감회는 곧 실망으로 바뀝니다. 복원 작업을 거쳤다는 내부는 시골의 버스 대합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이쯤 되면 복원이 아니라 개악으로 보입니다. 자혜병원 아래로는 한센인 병사가 여러 채 이어집니다. 소록도에서 가장 먼저 들어선 병사도 이 마을에 있습니다. 마을 아래는 바다입니다. 지금이야 아름답지만, 유배 생활을 하는 한센인들에게도 어디 그랬으려고요. 아마 절벽 같은 바다였을 겁니다.●30년 가까이 폐가로 방치된 한센인 병사 병사 건물들은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가옥 양식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기와가 특히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데려온 연와공에게 기술을 전수받아 한센인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와는 사각형의 평탄한 모습입니다. 우리 전통 기와처럼 물결치는 모양새가 아닙니다. 건축 양식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차차 연구돼야 할 부분일 겁니다. 몇몇 건물은 강관 파이프들이 외관을 감싸고 있습니다. 소록도병원의 의뢰를 받아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이 진행한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 보존사업’의 결과물입니다. 보존사업을 이끈 조성룡 성균관대 교수는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큰 부분만 보강하면서 가능하면 기와 한 장, 벽돌 한 무더기도 그대로 뒀다”고 했습니다. 뭔가를 덧대고 개선을 운운할 단계가 아니라는 거지요. 조 교수의 말처럼 지금은 보존이 시급한 때입니다. 굵은 나무들이 건물을 휘감고 있습니다. 그 서슬에 낡은 벽과 담장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자혜병원 왼쪽 언덕엔 옛 목욕탕과 이발소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소록도 할매들’이 고국에 읍소해 지원받은 돈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발소 건물에 서면 남해 바다가 창문 자리 가득 채워집니다. 말 그대로 ‘오션 뷰’지만 당시 한센인들에겐 아마 그림의 떡보다 못했을 겁니다. 한센인 병사들의 건물로서의 ‘법적 지위’는 등록 말소된 폐가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아니란 거지요. 1920년대 세워진 이후 1990년대까지 한센인들이 거주했으니 이후 30년 가까이 폐가로 방치된 셈입니다. 감금실, 안치실 등은 그나마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사 건물은 다릅니다. 보호받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지금도 소록도병원의 많지 않은 관리 예산으로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의 역량이 시험받아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시민사회의 지원이든, 나라의 지원이든 보존을 위한 역량이 모여야 합니다. 조 교수는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의 말을 빌려 “집은 기억”이라고 했습니다. 집이 허물어지면 기억도 사라집니다. 그 자리에 회한만 남겠지요. 그러니 한센인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은 그들이 머물던 집의 보존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겁니다. 서생리에서 서남쪽 해안 절벽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 있습니다. 소록도 성당 측에서 치유의 길로 조성해 일반에 공개하려던 곳입니다. 더 오래전에는 한센인들이 박해를 피해 도망가려던 탈출의 길이었고, 이들을 잡기 위한 추격의 길이기도 했지요. 담긴 내력은 슬퍼도 길은 아름답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급하지 않고, 주변의 숲 그늘도 퍽 깊은 편입니다. 죄지은 한센인들을 구속했던 교도소(옛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가 이 길 끝에 있습니다.●오마도 간척사업은 ‘좌절·분노의 장소’ 정말 아름다운 길은 구북리에서 신새마을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한 굽이 돌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길입니다. 오래된 삼나무와 편백나무, 곰솔들이 더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소록도의 상징인 사슴을 만난 것도 이 언저리였습니다. 1992년쯤 경기 호법의 한 농장에서 기증했다는 사슴입니다. 소록도에 터를 잡은 녀석들은 번식을 거듭해 지금은 주민 텃밭과 야생화를 해치는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그래도 큰 말썽 없이 그럭저럭 어울려 사는 듯합니다. 동생리 쪽에도 허물어져 가는 병사가 몇 채 있습니다. 소록도 병사성당(등록문화재 659호), 녹산초등학교 등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들도 제법 많습니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소록도갱생원 식량창고(등록문화재 70호), 1937년 세워진 소록도 등대(등록문화재 72호) 등도 이 마을에서 멀지 않습니다. 소록도를 둘러본 뒤엔 오마간척지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한센인들에게 깊은 좌절과 분노를 안겨줬던 장소지요. 1962~64년 소록도의 한센인은 고흥 도양면의 다섯 섬을 잇는 ‘오마도 간척사업’ 공사에 동원됐습니다. 사업이 완료되면 간척한 토지를 나눠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도 받았지요. 하지만 약속과 달리 한센인들은 간척사업 중도에 손을 떼야 했고, 이후 어떤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센인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기념물이 오마간척지 언덕에 조성돼 있습니다. angler@seoul.co.kr
  • [오지로 간 공무원…그들이 사는 세상] 오지? 하기에 따라 요지!

    [오지로 간 공무원…그들이 사는 세상] 오지? 하기에 따라 요지!

    우리나라 영토 끝에 있는 섬에서부터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산골 마을까지 공무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한센인을 치료하는 전남 고흥 소록도병원과 강원도의 크고 작은 탄광 190여개의 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동부광산보안사무소, 경북 청송 산간 마을에 있는 청송교도소 등지에도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2002년 12월부터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소록도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의원(41)주사는 “소록도 병원은 일제강점기 시대인 1916년 만들어진 곳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현재 한센인들의 삶을 담은 100년사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5월 100주년 기념식과 함께 한센병 박물관이 개원했는데 공무원으로 일조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다리가 개통돼 편리해졌지만 그 이전까지는 관사에서 생활을 했다”면서 “소록도 병원은 한센인들만 치료하기 때문에 아파도 큰 병원에 가려면 순천까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승진과 인사상 특혜는 없지만 특수지근무수당(6만원)과 위험근무수당(4만원) 정도의 혜택이 있다.국어선 등 불법어업 단속을 하는 지일구(55) 해양수산부 남해어업관리단장은 “소속 배가 10척이 있는데 제주도에서 출동해 통상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중국 쪽에서 일본 쪽으로 쭉 내려갔다가 일주일에서 열흘뒤에 돌아온다”면서 “2~3주에 한번 집에 가는데 금요일 오후 7시 퇴근 후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에게 별도의 교통비를 주지 못하고, 단속을 나가면 24시간 근무하지만 하루 4시간 정도 초과근무를 인정받아 수당을 받는다”고 말했다. #中어선 단속 24시간… 초과근무 4시간만 인정 법무부 청송교도소는 산세가 험한 곳에 위치, 비교적 외딴곳에 위치한 시설로 분류되지만 특별한 혜택은 없다. 최제영 법무부 교정기획과장은 “5급 이상 교정직 공무원은 2~3년마다 근무지를 바꾼다”면서 “청송교도소 근무자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청송교도소 주변 교통이 불편하고 주변 문화 인프라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해 청송교도소 근무자가 전보할 때 최대한 희망 근무지를 반영해 주는 정도의 조치는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법무부는 1998년까지 교정시설로 순천교도소 산하 소록도지소를 운영했다. 전염성 높은 한센병 감염을 피하기 위해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 일제가 세웠던 격리 수용소가 63년 동안 운영됐었다. 한때 70여명이 이 격리 수용소에 수용돼 인권유린적인 처분을 받았지만, 1990년대 말 수용 인원이 5명 미만에 불과하자 법무부가 1998년 광복절을 기해 시설을 폐쇄했다. 직군별, 지역등급별 차이가 있지만 ‘오지’(奧地)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추가 수당이 주어진다. 일반 공무원과 경찰, 교사 등은 공통적으로 대통령령인 인사혁신처의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는다. 해당 규정 12조(특수지근무수당)는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교육시설이 거의 없는 지역이나 근무환경이 특수한 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는 예산의 범위에서 지급 구분표에 따른 특수지근무수당(교육공무원에게는 도서벽지수당)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공무원은 행정안전부의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같은 혜택을 받는다.# 버스정류장 ·슈퍼마켓·목욕탕 유무 등으로 등급 매겨… 추가수당 3~9만원 지급 특수지의 등급은 ‘가(특)·나(갑)·다(을)·라(병)’ 지역으로 나뉜다. 특수지 실태에 대한 13개 항목을 1~5점으로 평가해 39점 이상이면 가(특), 31~38점이면 나(갑), 23~30점이면 다(을), 15~22점이면 라(병) 지역으로 분류된다. 등급 구분 요소는 시·군·구청, 역 및 시외버스 정류장, 병원, 금융기관, 슈퍼마켓, 미용시설 및 대중목욕탕 등과의 거리와 일일 대중교통 운행횟수, 해당 지역 차량 보급률, 8㎞ 이내 학교 여부 등이다. 경찰을 포함한 국가공무원(군인·군무원·재외공무원 제외)은 월 특수지근무수당으로 6만원(가지역), 5만원(나지역), 4만원(다지역), 3만원(라지역)씩 받는다. 인천 옹진군의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소연평도)에서 근무하는 경찰에게는 3만원이 추가된다. 서해 5도가 남북 분단 현실과 특수한 지리적 여건상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라는 이유에서다. 항로표지관리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의 자녀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취학하면 자녀 1명당 10만원의 수당이 더해진다. 3만~9만원에 이르는 도서벽지 수당 이외 규정된 금전적인 혜택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인센티브에 연연하며 오지로 오는 직원이나 대원은 없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다만 직급과 직책별 직무수당과 초과 근무수당에서는 직원별로 일부 차이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속 기관 이외에 일부 항공사나 지자체에서 오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주는 소액의 교통비·통행료 등 할인 혜택은 일부 있다고 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장·오지 근무자에 대한 수당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인사 혜택에 대해선 대통령령 등으로 규정된 것은 없지만, 나름 ‘유배’ 근무를 한 데 대한 인사상 보상은 도의적으로 이뤄진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독도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이런 곳에서 일하고 나면 인사상 반영되는 가점이 있다”면서 “근무하고 나가면 일반 경찰관에게 주어지지 않는 9박 10일간의 위로 휴가 혜택도 있다”고 말했다. #인사 혜택 규정 없지만 도의적 보상… 교육부, 오지 근무 가산점이 학폭교사의 5배 ‘최고’ 그러나 오지 근무 기피 현상이 여전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된다. 교육부는 이를 촉진하고자 교감·교장 승진을 위한 가산점을 유인책으로 쓴다. 이 가산점은 담임교사를 비롯해 20여종의 전체 교원 가산점 가운데 가장 점수가 높다. 도서벽지 교육진흥법에 따라 도서벽지는 가, 나, 다, 라로 나뉘는데, 가장 오지인 ‘가’가 월 0.042점, ‘라’가 월 0.017점 수준이다. 전체 상한선은 2.0점이다. 예컨대 가장 오지인 ‘가’ 지역에서 4년을 근무하면 2.0점을 모두 채울 수 있다.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연 0.1점인 것에 비하면 거의 다섯 배나 되고, 석사학위(1.5점)를 받는 것보다도 높다. 한 지역교육청 관계자는 “가산점 0.5점이면 교감 후보자 수십명을 앞설 수 있는 점수”라고 했다. 혜택이 너무 크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교육청은 1998년 가산점을 폐지했지만 타 지역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어 도서벽지 근무를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교사도 일부 있다. 다만 최근 승진에 관심이 적은 교사들도 많아지면서 전체적으로 도서벽지 근무는 줄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한센인과 40년 ‘할매 천사’ 노벨평화상 추천합니다”

    “한센인과 40년 ‘할매 천사’ 노벨평화상 추천합니다”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수녀님들이 아닙니다. 자원봉사 간호사입니다. 그래서 두 분의 희생과 사랑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소록도 성당 김연준(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이사장) 주임 신부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힌 뒤 “당시 수녀님들로 알려져 빈손으로 떠나도 수녀원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당시 소록도 사람들이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감동을 받아 천사의 이미지인 ‘수녀님’으로 불렀지만, 사실 이들은 오스트리아 가톨릭 교회의 평신도 재속 회원이라고 설명했다. “40년 동안 보수 없이 헌신했고, 월급도 연금도 없었다”고 김 신부는 덧붙였다. 이날 회견은 ‘소록도의 할매 천사’로 불리는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렛(82)에 대한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작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근 총리실은 소록도에서 40년 남짓 한센인을 돌본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에 대한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계획을 밝히고,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범국민추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하자는 민간 의견을 청와대에 건의한 바 있다. 김 신부는 회견에서 김 전 총리가 위원장직을 기꺼이 수락했으며, 현재 노벨평화상 추진 위원회 태스크포스(TF)팀이 우기종 전남 정무부지사를 비롯해 고흥군·소록도병원·대한간호협회·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관련 인사 등 11명으로 꾸려져 활동 중이라고 전했다. 추진위는 다음달 중 공식 발족할 예정이다. 김 신부는 “김정숙 여사에게서는 아직 공식 답변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현재 마가렛은 치매를 앓고 있지만 소록도 사진에 나온 아이 이름을 말할 정도로 당시 기억은 또렷하게 갖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안느는 한때 대장암을 앓았지만 지금은 건강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현재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거주하고 있으며, 마리안느는 부모가 마련해 준 집에서 살고 있고 마가렛은 시립 양로원에서 지낸다. 김 신부는 “우리는 두 분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도 노후를 챙겨 주지 못했다. 이제는 감사할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인스브루크 간호대학 동기로, 1962년과 1966년 입국해 소록도 병원에서 자원 봉사로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한센인 자녀 영아원 운영, 의료시설 모금 등의 활동을 펼치다 2005년 건강 악화로 출국했다. 김 신부는 두 간호사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이낙연 총리라고 소개했다. 이 총리가 전남도지사를 지내던 지난 4월 당시 김 신부와 함께 목포의 한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감상했을 때라고 한다. 두 간호사의 삶을 조명한 이 영화는 김 신부와 ‘그놈 목소리’ 등의 영화로 알려진 윤세영 감독에 의해 소록도 100주년에 맞춰 기획, 제작됐다. 이 총리의 제안을 계기로 현재 두 간호사에 대한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전남도와 사단법인 마리안마가렛, 오스트리아 티롤주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편 이 총리는 이날 저녁 정부세종청사에서 부처 공무원 및 가족 등과 함께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관람했다. 다음달 5일과 19일에는 정부서울청사 별관과 청와대 직원들을 대상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1004달러

    [정찬주의 산중일기] 1004달러

    소록도로 가려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 김밥은 안사람이 아침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소록도는 승용차로 내 산방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상예보를 보니 비 소식이 있어 마음이 좀 급해진다.가뭄 끝이므로 논밭의 작물들에는 감로수이리라. 며칠 전부터 텃밭에 물을 주곤 했던 얼치기 농사꾼인 나의 수고도 덜어질 것이다. 조금 전에도 텃밭을 다녀왔지만 시들시들하던 고추와 가지, 아욱 등이 응급 치료를 받은 환자처럼 이제는 조금 풋풋해진 듯하다.소록도는 한센인과 성직자, 의사와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살고 있는 섬이다. ‘작은 사슴 섬’인 소록도는 내 산방과 지척에 있으니 그분들이야말로 이웃사촌인 셈이다. 한센인에게 43년간 봉사하고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렛(82) 두 분은 이 지상에 잠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싶다.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에 자원봉사자 간호사로 와서 70세가 넘어 떠날 때 두 분이 남긴 말은 단 한마디였다. ‘헤어지는 아픔을 줄까 봐 말없이 떠납니다.’ 문득 재작년 가을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 ‘코닉 추기경 하우스’로 강연하러 갔을 때, 나를 초청한 분에게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뵈려고 하니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안사람이 빈의 ‘암파크 갤러리’에서 도예 초대전 중이었으므로 두 분에게 도자기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알프스 밑의 인스브루크에 사는 두 분과 연락은 닿았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마가렛은 치매 치료 중이었고, 마리안느는 나서기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두 분은 수녀가 아니므로 수녀원 생활을 못한 채 친척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희소식이 들렸다. 고흥군에서 두 분에게 매월 1004달러씩 노후생활 안정자금으로 지원한다는 소식이었다. 2026년 10월까지 10년간 지원한다고 해서 혼자 손뼉을 쳤다. 1004달러에다 고흥 군민의 따뜻한 마음까지 보태졌을 것을 생각하니 고흥 가는 길이 행복하기만 하다. 녹동항까지 뻥 뚫린 외길 곳곳에 고흥을 자랑하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 ‘우주항공 중심도시 고흥’. 바다를 배경으로 한 승경(勝景)과 나로도의 우주센터를 홍보하려고 내건 광고판일 것이다. 소록대교를 건넌 뒤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왼편의 언덕 위에 두 분이 살았던 단층 벽돌집이 보인다. 과묵한 낙락장송들이 묵상 중이다. 소록도 본당 신도이자 ‘마리안느, 마가렛 사택’ 관리자인 서(徐)스텔라님이 현관문을 열어 준다. 신발장 위에 두 분께서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주워 온 소라고둥, 조개껍데기, 조약돌들이 있다. 작은 거실은 외국인이 사용했던 공간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벽에는 매화나무가 그려진 한국화와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더구나 두 분이 남기고 간 카세트와 테이프들이 있기에 아무 곡이라도 듣고 싶어 하자 서스텔라님이 테이프 하나를 빼서 틀어 주는데 국악 명상 음악이다. 내가 놀라자 “저는 1981년부터 뵀는데 마리안느 큰할매는 육자배기를 좋아하셨어요. 저 액자는 마가렛 작은할매가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수녀님한테 선물받은 거고요”라고 알려 준다. 두 분의 침실은 각각 3평 정도다. 마리안느 방의 유리창으로는 낙락장송이 보이고, 마가렛의 창호에는 하심(下心)과 사랑이란 글씨가 붙어 있다. 천등산 금탑사 비구니 스님들이 왕래하면서 한 스님이 써 준 글씨라고 한다. 두 분이 살았던 집은 현재 헌신과 봉사의 삶을 기려 등록문화재 제660호로 지정돼 있고, ‘마리안느, 마가렛 사택’이라는 패가 붙어 있다. 그러나 나는 ‘천사의 집’이라 부르고 싶다. 천사는 구름 위가 아니라 지상에 있어야 한다고 갈망해서다. 어제 비가 내렸는지 땅은 촉촉하나 하늘은 푸르다. 오스트리아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비 갠 뒤 해가 나자 어느 파란 눈의 수녀분이 ‘천사가 소풍 가는 날’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두 분이 후원받아 지은 숲속의 결핵 병동과 호젓한 치유 숲길로 언젠가는 두 분의 맑은 영혼이 소풍 올 것만 같다.
  • ‘한센인 사랑’ 원장님, 소록도서 인술 편다

    ‘한센인 사랑’ 원장님, 소록도서 인술 편다

    갑상선·복부 등 초음파 검사 “감염 겁 안 나… 좋아해서 기뻐” “감염 경로를 잘 알아 겁은 안 납니다.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계속 가게 되네요.”이숭(53) 강진의료원장은 지난해 8월부터 매달 한 차례 전남 고흥에 있는 국립 소록도병원을 찾아 한센병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강진의료원장으로 부임한 이 원장은 소록도병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면서 직접 출장 진료에 나섰다. 한두 번 찾아 봉사하기도 하지만, 수개월간 지속하는 경우는 이 원장이 처음이다. 환자 10~15여 명이 대기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승용차로 1시간 30분 떨어진 소록도병원을 찾아간다. 식사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갑상선과 복부 초음파 검사를 주로 한다. 질병 판독, 처치법까지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하루 내내 집중적으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이 원장은 “힘들어 그만둘까도 했었는데 반겨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계속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소록도병원 환자들은 520여명으로 간·장 등 소화기 질환이 좋지 않다. 상당수가 외부 상급병원에 정기 정밀검사와 진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10명 이상 외래 진료자가 발생하면 응급차로 보성 삼성병원, 순천 성가롤로병원, 광주 전대병원, 여수 애양원 등으로 이동했다. 내과 공중보건의가 있지만, 초음파로 진단하고 병명을 다룰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다. 한꺼번에 움직여야 해서 대기자가 많아질 때까지 몇 주에서 몇 개월 진료를 기다려야 했다. 진료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병원에서 꺼리는 일도 많은 등 따가운 눈총 탓에 외부로 진료검사를 나가는 걸 거부하는 환자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원장 진료는 소록도병원과 환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 자체다. 소록도병원 환자 평균연령은 76세로 노인성 난청 환자가 많다. 이 원장은 악의 없이 외치는 습관성 고성도 미소 띤 얼굴로 견뎌낸다. 휠체어에서 진료대로 옮기고 진료대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노인 환자들의 투정도 잘 참는다. ‘우리 어머니와 똑같네’ 하면서 웃으면서 진료를 계속한다. 박형철 소록도병원장은 “이 원장의 방문 진료 후 자발적으로 진료를 받는 환자가 많이 늘었다”며 “진료 만족도가 아주 높아졌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고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국내 최대 한센인촌 왕궁 축산단지 악취 사라진다

    새만금 수질오염의 주범인 전북 익산시 왕궁면 축산단지 악취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12일 전북도에 따르면 휴·폐업한 축사는 물론 현업 축사를 매입해 나무를 심고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해 환경오염 요인이 대폭 감소했다. 도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1113억원을 들여 65만㎡의 축사를 사들인 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바이오순환림을 조성했다. 축사매입은 현재 계획량의 80%를 달성했고 이달 말이면 모두 끝난다. 가축분뇨로 수질오염이 심했던 익산천은 생태하천복원사업을 통해 습지로 재탄생했다. 그 결과 악취 지수는 2012년 21에서 2017년 4로 87% 개선됐다. 수질은 총인(TP) 기준으로 2012년 4.593㎎/ℓ에서 2017년 0.180㎎/ℓ로 96% 향상됐다. 왕궁 축산단지는 1948년 조성한 한센인촌으로 면적이 170만㎡에 이른다. 이는 국내 90여개 한센인 정착촌 중 가장 큰 규모다. 한센인들은 돼지와 닭, 한우 등 수십만 마리의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잇고 있으나 낡고 밀집된 축사와 주택이 인접해 극도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았다. 한때 이곳에서 배출되는 오·폐수 1000t가량이 매달 새만금 상류인 만경강으로 흘러 수질과 악취의 주범으로 지적받기도 했다. 오정호 전북도 새만금추진지원단장은 “축산단지 환경대책이 마무리되는 내년쯤에는 왕궁이 혐오·기피 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백제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쾌적한 생태 마을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보건의 날’ 유공자 40명 포상

    보건복지부는 7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제45회 보건의 날’ 기념식을 갖고 보건의료 분야 유공자 40명에게 포상한다고 6일 밝혔다. 김종필 한국한센복지협회 연구원장은 묵묵히 음지에서 한센인과 함께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한다. 신경림 이화여대 간호대 교수는 여성과 노인 건강에 기여한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류재광 목포한국병원 원장은 응급의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 최영길 대한비만학회 자문위원과 신흥묵 한약진흥재단 원장은 각각 비만, 당뇨병 등 만성질환 관리와 한의약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한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국민과 소외계층의 보건의료 향상과 건강증진 분야에 공로가 큰 숨은 유공자를 적극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올해 보건의 날 슬로건을 ‘우울하세요? 톡톡하세요’로 정하고 우울증 예방 캠페인을 실시한다. 지난해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우울증 환자는 61만 3000명으로 전체 국민의 1.5%를 차지했다. 여성이 46만 9000명으로 남성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약 15%에 그쳤다. 이는 미국(39.2%), 호주(34.9%), 뉴질랜드(38.9%) 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휴먼 다큐멘터리 ‘마리안느와 마가렛’ 예고편

    휴먼 다큐멘터리 ‘마리안느와 마가렛’ 예고편

    소록도 100주년을 맞아 기획·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사랑’ 예고편이 공개됐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해와 편견이 빚은 애환의 섬 소록도에서 43년간 한결같은 사랑을 선사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을 조명한 휴먼 다큐멘터리다. 공개된 예고편은 마리안느의 나지막한 독백과 함께 시작한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로 보내는 이 편지는 43년간 소록도에 머물렀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마음을 전한다. “내가 낳은 자식들도 나는 그렇게 못 키우겠는데…”, “환자들 상처 같은 거, 맨손으로 만지고…” 등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들과 함께한 소록도 주민과 동료의 인터뷰는 짧지만 강한 울림을 전한다. 주변인들의 인터뷰로도 알 수 있듯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는 ‘간호사, 수녀, 엄마, 소록도 할매’ 등 그들이 머문 시간만큼이나 다양한 호칭이 있다. 이는 그 모든 시작과 끝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반세기 가까이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모습은 너무도 진실하여 빛바랜 사진만으로도 감동을 자아낸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1962년부터 2005년까지 43년간이나 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살피며 사랑을 실천했다. 간호사였던 두 사람은 구호 단체인 다미안재단을 통해 처음 소록도에 들어갔으며, 공식적인 파견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자원봉사자로 남아 한센인들을 보살폈다. 이들의 사연은 그들이 떠난 후에야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해와 편견으로 사회와 이웃,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했던 한센병 환자들을 사랑으로 돌본 이들이 타국의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동과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는 오는 4월, 개봉 예정이다. 전체 관람가. 78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40여년간 한센인들과 동고동락…푸른 눈의 ‘전라도 할매’ 이야기

    40여년간 한센인들과 동고동락…푸른 눈의 ‘전라도 할매’ 이야기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40여년간 한센인을 보살핀 ‘한센인의 어머니’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렉(82)의 삶이 영화와 책으로 나란히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리고 책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예담)이 그것. 한센인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함께 동고동락하며 성자적 삶을 살았던 두 수녀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두 수녀는 오스트리아 가톨릭수도회의 파견으로 1960년대 소록도에 입도해 각각 43년과 39년을 봉사하다 2005년 마리안느 수녀가 대장암에 걸리자 고국으로 떠났다. ‘현지인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써가며 자신들을 ‘전라도 할매’라 칭했던 두 수녀는 한센인들에게 반말과 구타가 일상화된 곳에서 한센인들의 곁을 늘 지켰다. 윤세영 감독이 연출, 이해인 수녀가 내레이션을 맡은 영화는 상영시간 78분 동안 두 수녀가 소록도에서 겪었던 43년간의 삶을 기록 영상과 실제 촬영 등을 통해 보여준다. 한센인과 의료인의 생생한 육성이 실감나게 전해진다. 특히 고향에 돌아간 뒤 치매로 요양원 생활을 하면서도, 소록도 생활을 “행복했다”고 회고하는 마가렛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전한다. 소록도 성당의 김연준 주임신부는 “마리안느, 마가렛 간호사님은 마음과 믿음이 각박해진 현대인들에게 ‘사람에게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전 세계인의 귀감”이라면서 “우여곡절 끝에 성당 신도들의 헌금과 고흥군의 도움을 모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영화는 다음달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잠실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책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저자 성기영 작가는 “정말 드물게 순수하고 품위 있고 동시에 겸손하고 인간적으로 선한 분들을 목격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고흥군은 이들의 숭고한 봉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5건의 선양사업을 추진 중이며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볕이 그리운 땅, 눈물로 빚은 진주섬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볕이 그리운 땅, 눈물로 빚은 진주섬

    전남 고흥으로 봄마중 나선 길이었습니다. 나로도 끝자락의 봉래산에 올라 먼발치로나마 바다 건너 오는 봄을 맞으려 했지요. 한데 정작 눈과 가슴을 휘어잡은 건 소록도였습니다. 고백하자면 고통과 절망의 섬이라고만 알았던 소록도에 두 외국인 간호사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이 깃들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체감했던 것이지요. 그 감동 덕에 고흥 여정은 한결 깊어졌고 따뜻해졌습니다.●소록도 소록도는 고흥반도 끝자락의 녹동에 딸린 섬이다. 섬의 생김새가 어린 사슴을 닮았다 해서 소록도다. 2009년 소록대교가 놓이면서 배를 타지 않고도 섬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한센병을 이겨 낸 500여명이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고 있다. 현지에선 이들을 ‘환우’라 부른다. 한센병에서 완전히 치유됐으나 후유증으로 몸의 일부가 온전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 ‘소록도 주민’이라 바꿔 불러야 옳지 않을까 싶다. 환우라는 표현에서조차 어두웠던 기억의 편린이 가시질 않으니 말이다. 소록도는 중앙공원 등 극히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오래전엔 ‘외부인’이 ‘소록도 주민’들을 가둬 두기 위해 출입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지금은 반대다. ‘소록도 주민’들이 ‘외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 바다와 나란히 놓인 소나무 길이다.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리는 곳. 예전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한 채 그저 눈길로만 상봉하던 장소다. 소록도 성당의 김연준 주임신부는 “소나무 하나하나에 자살의 기억이 담겨 있다”고 했다. 희망을 잃은 데다 끔찍한 노역에 시달리던 많은 한센인들에게 소나무가 유일한 탈출구였던 셈이다. 김 신부는 소록도를 두고 진주라고도 했다. 진주가 조개의 눈물이 응집된 것에 빗댄 표현이다. 이 애절한 사연 담긴 소록도 갯벌 위로 초록빛 감태가 지천이다. 봄은 시나브로 섬 여기저기서 넘실대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소록도의 명소는 중앙공원이다. 2만㎡(6000평) 규모로, 예상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중앙공원 초입의 소록도갱생원 검시실(등록문화재 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67호)은 일제강점기에 인권 유린이 자행됐던 곳이다. 환자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와 이동권을 박탈당했고, 걸핏하면 감금과 체벌을 당했다. 지금도 당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1962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83)와 1966년 마가렛 피사렉(82)이 소록도에 정착하면서부터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두 간호사는 당시 동포 의사들조차 꺼렸던 환우들의 상처를 맨손으로 만지며 치료했다. 전염에 대한 오해를 단박에 깨는 행동이었다. 이후 이들은 ‘큰할매’(마리안느), ‘작은할매’(마가렛)란 애칭으로 불리며 소록도 주민들과 40여년을 함께 지냈다. 김연준 신부는 “두 분은 수녀가 아닌 간호사”라고 했다. 당연히 수녀였을 거라 여겼던 그간의 인식이 오해였던 셈이다. 두 할매가 2005년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뒤에도 우리는 이들이 수녀원에서 편히 여생을 보낼 것이라 여겼다. 이 또한 오해였다. 김 신부는 “두 할매가 최저 수준의 국가연금으로 민가와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극히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김 신부가 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성금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두 할매에게 빚진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다큐멘터리는 지난 6일 시사회를 마쳤고, 4월 중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두 할매가 머물렀던 사택은 지난해 ‘고흥군 소록도 병사성당’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병사성당’은 소록도 내 한센인들의 생활 공간인 병사(病舍) 지역에 1961년 건립됐다. 중앙공원 맞은편의 소록도 성당(1번지 성당)과 구별하기 위해 흔히 ‘2번지 성당’이라 불린다. ‘마리안느·마가렛 사택’이나 소록도 1, 2번지 성당 모두 일반인 출입 금지다. 한데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고흥군이 운영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면 된다. 중앙공원 등 소록도의 일반적인 명소 이외의 곳들까지 돌아볼 수 있다. 물론 이때도 성당이나 사택 밖을 오가는 건 금지된다. ●봉래산 고흥반도 왼쪽에 소록도가 있다면 오른쪽엔 봉래산이 있다. 아름다운 다도해 전경과 2만여 그루의 삼나무,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들머리는 봉래면사무소에서 나로우주센터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무선국 주차장이다. 정상(410m)을 찍고 편백나무숲을 지나 원점 회귀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거리는 약 6㎞ 정도.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족하다.주차장 바로 아래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은 편백숲(1.9㎞), 오른쪽은 정상(2.2㎞)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초반부에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그리 힘들 정도는 아니다. 등산로 양쪽으로는 노란 복수초가 지천이다. 동토(凍土)를 뚫고 핀 꽃의 자태가 가냘프면서도 단단하다. 소사나무들이 시립한 산길을 30분 정도 오르면 머리 위로 느닷없이 하늘이 열린다. 바로 여기부터 다도해의 진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능선길을 걷는 내내 양옆으로 빼어난 풍경들이 매달린다. 가장 큰 볼거리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다. 수령 100년을 헤아리는 삼나무 9000여 그루와 편백나무 1만 2000여 그루가 산등성이에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아침 햇살이 퍼질 때면 뾰족한 우듬지들이 화살촉 모양으로 빛난다. 그 모양새가 멀리 나로우주센터에 세워진 로켓을 닮았다. 고흥 앞바다엔 밤하늘의 별처럼 섬이 많다. 다도해의 풍경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팔영산이나 천등산, 거금도 적대봉 등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 빠듯한 일정의 여행자로선 선택하기 어려운 코스다. 방법은 있다. 마복산을 찾으면 된다. 정상 아래 마복사를 겨냥해 차를 몰아 가다 마복사 못미처 사거리에서 해재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빼어난 풍경 전망대가 나온다.영남면 쪽에도 바닷가 풍경이 많다. 남열해돋이해수욕장 옆은 고흥우주발사전망대다.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다.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미산 아래 용암마을은 고흥 8경 중 6경인 용바위를 품었다. 먼 옛날 용이 승천할 때 타고 올랐다는 바위산이다. 높이 약 120m에 이르는 바위산의 자태가 웅장하다. 용바위와 남열해변 사이엔 다랭이논이 펼쳐져 있다. 고흥 여정을 마칠 무렵 중산일몰전망대는 꼭 들르길 권한다. 너른 갯벌 너머 섬들 사이로 해가 지는 장관과 만날 수 있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익산 갈림목에서 익산~포항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완주에서 다시 완주~순천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순천 초입의 해룡교차로에서 남해고속도로 영암·순천 구간을 타고 고흥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고흥 시티투어는 순천역에서 출발한다. 고흥에선 남해고속도로 고흥나들목 앞 만남의 광장에서 타면 된다. 탑승 신청은 고흥군 관광과(830-5244)에서 받는다. 요금은 1만원이다. 65세 이상 어르신은 5000원. →맛집:이맘때 고흥에서 맛봐야 할 것이 토속 음식인 피굴이다. 굴을 껍데기째 살짝 끓여 속과 국물을 따로 보관한 뒤 냉장고에 서너 시간 넣어 둔 국물에 속을 넣고 김 등을 뿌려 먹는다. 토속 음식 전문 식당에 미리 부탁해야 맛볼 수 있다. 해주식당(834-7242)이 알려졌다. 4인 이상 주문하면 피굴, 낙지팥죽 등 다양한 토속 음식을 한정식으로 내놓는다. 1인 3만원. 일반 백반(7000원)도 정갈하고 맛있다. 과역면에 있다. 도화면 중앙식당(832-7757)도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참빛횟집(843-8890)은 붕장어탕을 잘한다. 녹동항에 있다. 해송식당(835-2288) 역시 정갈한 백반으로 이름난 집이다. 고흥읍에 있다. →잘 곳:가고파그집(www.gagopahome.co.kr)이 널리 알려졌다. 내나로도에 있다. 하얀노을모텔펜션(833-8311~3)도 정갈하고 조용하다. 펜션 옆 나로2대교에 서면 빼어난 해돋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녹동항 쪽에도 썬비치호텔(844-7661) 등 일반 숙박업소들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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