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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바이러스2009] 환란도 못막은 20년 체육꿈나무 사랑

    [나눔 바이러스2009] 환란도 못막은 20년 체육꿈나무 사랑

    충북 청주의 한 중소기업이 체육 장학금을 통해 나눔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도 20년간 해마다 1000만원 안팎의 적지 않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고 있다. 차단기 등을 생산하는 ㈜태인(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은 최근 회사 강당에서 체육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올해는 충북대·충주대·서원대·청주대·세명대 등 도내 7개 대학 산악부, 황영조씨가 추천한 마라톤 유망주 2명, 충북체고 소속 육상선수 2명, 국가대표 이은경 코치가 추천한 양궁 유망주 2명, 청주 운호중 축구선수 2명, 충북지역 스키 유망주 2명, 청주 직지 축구팀 등에게 총 1420만원이 전달됐다. 대학 산악부에는 각각 80만원, 직지축구팀에는 200만원이 후원됐다. 나머지 선수들에게는 각각 60만원이 지원됐다. 이인정(64) 태인 대표이사는 “장학금 지원이 20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직원 모두가 노력한 결과”라며 “체육꿈나무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인의 장학금 전달은 1990년 시작돼 올해로 스무해째다. 지금까지 후원한 장학금은 총 1억 8500만원에 달한다. 수혜를 받은 유망주는 350명이나 된다. 태인이 체육장학금 지원에 나선 것은 산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이 대표 때문이다. 그는 1980년 히말라야 마나슬루(해발 8163m)를 정복하는 등 사실상 전문 산악인으로 산을 찾는 후배들을 돕고 싶어 했다. 고교시절까지 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스포츠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던 김재덕(55) 부사장의 역할도 컸다. 이들이 의기투합, 처음에는 충북지역 대학 산악부에 국한해 장학금을 지원하다 1994년부터 지급대상을 확대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성수 충북도 체육과 팀장은 “기업들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은 흔하지만 체육꿈나무들을 해마다 발굴해 장학금을 주는 것은 보기 드물다.”며 “많은 기업들이 태인의 나눔철학을 본받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 부사장은 “향토기업으로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운동선수들을 돕기로 한 것”이라며 “도내 기업들의 동참을 기대했지만 아직 나서는 곳이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 대표는 현재 대한산악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후원 행정안전부, 농협 글 사진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주택청약종합저축 출시 첫날 은행창구 가보니

    주택청약종합저축 출시 첫날 은행창구 가보니

    ‘만능 통장’이라 불리며 사전예약에만 150만명이 몰린 주택청약종합저축의 인기가 출시 첫날인 6일 은행 창구에서 속속 확인됐다. 이날 서울 관악구 우리은행 신림동 지점. 오전부터 고객들이 붐비더니 오후에는 대기자만 100명이 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엔 장바구니를 든 주부도, 아들 대신 은행을 찾은 노모도 보였다. 창구 직원은 “3분의2 이상이 주택청약종합저축을 신청하려는 신규가입자들”이라면서 “문의 전화가 이어져 결국 점심도 걸렀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많은 도심 지역엔 점심시간을 이용해 통장에 가입하려는 20~30대 수요가 많았다. 신한은행 서울 여의도지점을 찾은 서모(24)씨는 “한 달에 2만원이면 가입할 수 있고, 1순위가 되면 주택규모도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점이 맘에 들어 가입했다.”고 밝혔다. 사전 예약을 많이 받은 탓에 의외로 한산한 곳도 있었다. 명동의 한 은행 지점장은 “사전 예약으로 이미 수천좌를 받아 사실상 내방 고객은 이미 가입해둔 통장을 찾으러온 고객이 대부분”이라면서 “어느 정도 초반 수요는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약통장의 인기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앞으로 경쟁률이 치열할 것이란 얘기도 된다. 은행원들은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청약 1순위 자격은 24개월을 먼저 납입한 사람에게 우선 주어지기 때문에 가급적 일찍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미성년자도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명의로 미리 가입하는 것도 당첨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형평성을 위해 20세 미만의 불입 횟수는 24회로 제한된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연변 아줌마들 “몇달째 송금못해요”

    연변 아줌마들 “몇달째 송금못해요”

    연변 아줌마들이 고(高)환율 속에 갇혀버렸다. 최근 환율이 하락 안정세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최근 2~3년간 평균 환율과 비교하면 이주 노동자들이 느끼는 온도 차가 크다. 반년 이상 고공비행 중인 환율 탓에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작정 송금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달인 중국의 어린이날(6월1일) 전에는 환율이 떨어져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한국에 들어와 식당일을 한 지 2년 6개월이 됐다는 이홍(34·여)씨는 원·위안 환율을 찾아보는 게 버릇이 됐다. 직장에서 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남편의 병원비를 보내야 하는데 자꾸 손해 보는 듯한 느낌에 막상 은행 앞에만 가면 발길을 돌린다고 했다. 이씨는 “환율 변화로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월급이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실제 이씨가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2006년 초만 해도 환율은 1위안에 120원 정도를 유지했다. 1000만원을 보내면 8만위안 정도였으나, 지금은 1000만원을 환전해도 5만 3000위안 정도밖에 못 받는다는 계산이다. ●하루 100명 송금하다가 지금은 고작 3~4명 이씨처럼 본국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송금을 못하는 조선족 노동자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이정화(44)씨도 본국에 남은 아이들을 위해 석 달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송금을 했지만 올 들어서는 전혀 송금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가 몇 달치 월급을 날린 것 같아 며칠간 후회했다.”면서 “하지만 아이들 생활비를 못 부친 지가 넉 달이 넘으면서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 다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송금 수요도 눈에 띄게 줄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울 구로구 외환은행 대림역지점의 경우 지난 3월 한 달간 중국 송금액이 61만 6000달러로 집계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송금액 310만 3000달러와 비교하면 5분의 1수준이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난해 9월과 비교해도 송금액의 40% 수준이다. 결국 해당 은행은 지난달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특별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열어봐야 손님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최병열 외환은행 차장은 “한때 하루 100명 이상이 송금할 정도로 북적였던 창구가 온종일 3~4명밖에 없을 정도로 한산할 때도 있다.”면서 “연장근무를 오후 5시30분까지만 한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 외국인 노동자 일자리 급감 더 큰 고민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점이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은 건설 업종에서 일하는 연변 아저씨들에게 가장 먼저 날아왔다. 조선족 이성학(39)씨는 “아파트 건설 현장 일자리도 줄어서 요즘은 1주일에 3일 일하기도 어렵다.”면서 “조선족은 평균 1만 5000원가량 낮은 일당을 줘도 돼 인기가 좋았지만 이마저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달부터는 건설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 수를 제한한다고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내국인에게 돌리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달부터 건설 현장에 취업하는 조선족 등 재외동포 수는 제한을 받는다. 유영규 최재헌기자 whoami@seoul.co.kr
  • 정묘·병자호란 전개 과정 한·중·일 관계서 새로 조명

    1637년 1월30일, 인조는 피란처인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항복했다. 척화파와 주화파가 성안에서 대책없는 소모전을 벌이는 동안 청군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심양으로 끌려간 포로는 수십만을 헤아렸다. 특히 여성 포로의 고통은 처절했다. 만주족 본처에게 끓는 물을 뒤집어쓰는 등 고문을 당했고, 갖은 고생끝에 조선에 돌아와선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푸른역사)에서 “척화파나 주화파 모두 총론에서는 그럴 듯한 사자후를 토해냈지만 전쟁을 피하거나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각론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후금이 1633년 6월에 이미 조선을 언젠가는 정복하되 명나라와 몽골을 복속시키기 전까지는 회유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반면 조선은 1627년 정묘호란을 겪고나서도 속수무책이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서울신문에 총 104회에 걸쳐 연재한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를 통해 병자호란의 참상을 세밀하게 짚어냈던 한 교수는 이 책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동아시아 국제질서라는 대외관계사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정묘호란과 조선·후금 관계, 병자호란과 조청관계는 물론 정묘호란과 조·일관계의 추이, 병자호란 무렵 조선의 대일 정책과 인식 등 일본으로까지 관계의 그물망을 넓혔다. 조선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있는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할 때 어느 한 나라와의 관계 변화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나라와의 관계추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임진왜란으로 철천지 원수가 됐던 일본은 두차례 호란으로 위기에 처한 조선에 무기 원조를 제안하면서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약삭빠른 태도를 보였다. 저자는 강국 사이에 끼여있는 상대적인 약소국 조선이 생존하기 위해선 외교적 지혜가 필수적이며, 이와 더불어 약체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한반도의 정권들에 요구되는 절실한 과제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3만 5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가족 나들이객 찜찜한 외출

    모처럼만에 찾아온 황금 연휴였지만 이를 즐기려는 시민들의 마음은 불안했다. 밖으로 놀러나가도 왠지 찜찜하기만 했다. ‘신종 플루’ 주의보 영향 때문이었다.휴일인 3일 전국의 관광지나 산, 놀이공원 등에는 연휴를 즐기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적지 않았지만 신종 플루에 대한 공포 탓에 연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해외여행 일정을 취소하거나 아예 집에서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보건소와 병원에는 하루종일 신종 플루와 관련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서울 북한산에는 1만 8000여명의 등산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산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고 일찍 하산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날 관악산을 등반한 이모(57·서울 은평구)씨는 “신종 플루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 오는 것을 꺼렸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딸과 함께 오게 됐다.”면서 “혹시나 해서 마스크와 물수건을 챙겨 왔지만 아무래도 불안해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여행을 아예 취소하거나 일정을 단축하는 여행객도 속출했다. 연휴 동안 가족들과 거제도로 여행갈 계획을 세웠던 주부 김모(35)씨는 “해외에선 아기들도 신종 플루에 걸렸다는데, 갓 두 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여행 가기 불안해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는 23일 파타야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던 김모(30)씨는 “양가 어른들이 말려서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면서 “아무래도 해외보단 국내가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소와 병원 등에는 신종 플루 예방법을 묻거나 예방약으로 알려진 타미플루에 대한 문의 등이 끊이지 않았다. 휴일인 이날도 비상근무를 위해 나온 서초구 보건소 전염병관리팀 관계자는 “오전 9시부터 낮 12시 무렵까지 문의전화가 25통가량 걸려왔다.”면서 “대부분 나들이를 나가도 되는지, 회사에 나가도 되는지를 묻는 등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타미플루를 얻을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계속 걸려와 재고도 없을뿐더러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줬다.”고 말했다.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충무공으로 하나되는 영·호남

    ‘불멸의 영웅, 이 충무공이 영·호남을 손잡게 했다.’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 때 부산에서 진도 앞바다까지 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 나라를 구했던 충무공 이순신이 영·호남을 껴안았다. 전남도는 1일 “전날 경남 통영시청에서 충무공 축제를 여는 전남도와 해남군, 진도군, 여수시, 경남 통영시, 남해군이 영·호남 축제 교류협력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충무공을 주제로 전남도와 진도·해남군은 명량대첩축제, 여수시는 거북선대축제, 통영시는 한산대첩축제, 남해군은 노량해전 승첩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이번 교류협력은 영·호남에서 벌어지는 충무공 축제에 서로 참가해 대표적인 공연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공동 홍보무대를 마련해 축제 내용을 알리기로 했다. 또 두 지역 축제 관계자와 주민들이 상대편 축제 현장을 방문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이 충무공 관련 사업계획도 함께 만들어 신청키로 했다. 실제로 충무공이 삭탈관직 당한 뒤 백의종군했던 옛길을 영·호남이 함께 정비키로 했다. 나아가 전남도와 경남도는 이번 축제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충무공이 활약했던 남해안에서 크루즈선 운영, 역사문화현장 탐방 등 학습 프로그램 개발, 백의종군로 걷기 등을 함께 열기로 약속했다. 이번 교류 협력사업은 지난해 통영시의 한산대첩축제에 전남도의 명량대첩기념사업회 관계자와 해남·진도 군민들이 참관하면서 물꼬가 터졌다. 두 지역 축제 관계자들은 “이 충무공 축제에서 두 지역 민초들의 활약상을 기리는 축제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영·호남 화합과 교류협력의 매개체로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류태수 한산대첩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은 “두 지역에서 충무공 관련 축제로 관광교류가 활발해지면 상호 이해와 소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창환 전남도 관광정책과장은 “전남도와 경남도는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충절의 고장”이라며 “이러한 역사성을 함께 확인하는 충무공 축제를 남해안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키워 가면 지역 화합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연필로 쓴 인터넷 소설… 김훈 ‘공무도하’ 1일 첫 회

    연필로 쓴 인터넷 소설… 김훈 ‘공무도하’ 1일 첫 회

    지난달 28일 찾은 경기도 일산 소설가 김훈의 집필실. 좌우가 뒤집어진 ‘ㄱ’자로 이어진 책상 위 한쪽에는 예의 원고지 더미가 쌓여 있었고, 그 위에 지우개와 샤프펜슬이 뒹굴고 있었다. 연결된 또다른 책상 위에는 두꺼운 국어사전 두 권이 펼쳐져 있었다. 또다른 벽면에는 예닐곱 권의 법전과 한문대자전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컴퓨터? 없다. 또 하나, 당연히 있을 법한 것 중 없는 것은 소설책이다. 한쪽 벽을 빼곡히 채운 서가에는 소설책은 단 한 권도 없고, 사기(史記) 등 역사책·고전 등이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는 김훈의 오피스텔이다. 이곳으로 매일 ‘출근’해서 원고를 쓰고 책을 본다. 인터넷과 철저히 담을 쌓은 그가 1일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문학동네(http://cafe.naver.com/mhdn.cafe)에 매일 연재소설을 쓴다. 제목은 ‘공무도하(公無渡河)’. 김훈과 인터넷이라니…어울리지 않는 파격, 그 자체다. 그는 “글쓰기가 힘들어서 자꾸 미뤄오다가 내가 먼저 문학동네 쪽에 인터넷 연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면서 “하루에 원고지 8~12장 정도 써서 오는 8, 9월 정도까지는 써야 할 것 같다.”고 입을 뗐다. 인터넷에 연재하지만 형식은 지금처럼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써서 넘겨줄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나는 인터넷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이 특별한 독서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특별히 그들을 배려할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이 내 고유의 문장과 사고를 이끌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훈 특유의 까칠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엄청난 형식의 파격을 택했건만 역시 형식의 변화만으로는 내용을 견인하지 못한다. 많은 현상적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소통과 참여’의 질적인 발전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이미 박범신, 황석영을 비롯해 공지영, 이기호 등이 인터넷 연재를 통해 ‘혼자 쓰지만 함께 쓰는 소설’을 쓰고 있다. 인터넷 연재소설의 쌍방 작용은 댓글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김훈은 “댓글을 보지도 않을 것이고 볼 생각도 없다.”면서 “독자들이 따라오면 함께 가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나 혼자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무도하’는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역사소설을 주로 써온 김훈의 본격적인 당대(當代) 소설이다. 신문기자로서 활약하던 시기인, 대략 1970~80년대를 다루지만 현재라고 불러도 관계없는 요즘의 이야기라고 한다. 김훈은 “지금까지 300장 정도 원고를 써놓았고 서사의 줄거리도 잡아놓았다.”면서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라고 소개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근로자의 날’이 더 쓸쓸한 그들은… 황우석 사기 핵심이 차병원에 끝까지 ‘막장’ 고수하고 퇴장한 ‘아내의 유혹’ ’최불암 시리즈’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기막힌 ‘보이스 피싱’ 수법들 해군 간부 계좌에 뭉칫돈이
  • 은마아파트 보유세 477만원→131만원

    은마아파트 보유세 477만원→131만원

    국토해양부가 29일 공개한 올해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4.1% 하락하면서 주택소유자들의 보유세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서울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공시가격이 떨어진 데다 올해부터 보유세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재산세·종합부동산세의 세율과 과표구간이 조정됐고, 시장 여건에 따라 과세표준이 달라지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이 새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은 종부세가 80%, 재산세가 60%로 시가표준액에 이 비율을 곱해 과세표준 금액을 산정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43㎡는 공시가격이 지난해 9억 2800만원에서 올해 7억 2000만원으로 22.4% 떨어지면서 종부세 대상에서 빠졌다. 이에 따라 이 아파트는 지난해 재산세와 종부세를 더해 477만원(전년도 세부담 상한은 고려하지 않음)을 냈지만 올해는 131만원으로 72%나 줄어든다. 삼성동 아이파크 269㎡는 종부세 대상이지만 공시가격이 48억 2400만원에서 올해 42억 8800만원으로 11.1% 떨어져 보유세는 3091만원만 내면 된다. 지난해 산출세액(7442만원)보다 58.5% 줄어들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재산세만 내는 주택도 세 부담이 줄어든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1단지 65㎡는 올해 공시가격이 3억 66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1.1% 떨어졌다. 재산세는 지난해(108만원)보다 59% 감소한 44만 2000원만 내면 된다. 공시가격이 2억 92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5.6% 하락한 일산 호수마을 현대아파트 84.81㎡는 재산세가 57.3% 줄어든 30만 9000원이다. 공시가격이 오른 곳도 올해 재산세율 인하로 세 부담이 줄어든다. 강북구 미아동 북한산시티 아파트 59㎡는 공시가격이 지난해 1억 7200만원에서 올해 1억 7600만원으로 2.3% 상승했지만, 재산세는 지난해 23만 7000원에서 올해 15만 4000원으로 35% 줄어든다. 다만 실제 2008년 세부담과 비교해 올해 세부담이 늘어나는 곳이 나올 수도 있다. 지자체별로 세부담 상한선에 걸려 산출세액의 30~70%만 내왔던 수도권 주택들은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떨어져도 올해 실제 부과되는 세금은 지난해보다 약간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밝힌 올해 재산세 과세액은 성남 분당 서현시범단지(85㎡, 3억 9600만원)의 경우 재산세 부담이 지난해 47만원에서 올해 50만원으로 6% 증가한다. 이에 비해 종부세 대상은 과세기준이 지난해 6억원에서 1가구 1주택의 경우 올해 9억원으로 상향조정됐고, 세율도 줄어들어 재산세 증가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 보유세 부담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서울플러스] 북한산 자연학습장 조성

    성북구(구청장 서찬교) 정릉4동 231번지에 450㎡ 규모의 ‘북한산 자연학습장’을 조성했다. 지난 23일 개장식에는 인근 학교 교사, 학부모, 주민 등 12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앞으로 학습장에 방울토마토와 가지, 상추, 옥수수 등 17종에 달하는 작물 모종을 심고 가꿀 예정이다. 구는 어린이들이 정기적으로 학습장을 방문해 작물의 생육상태를 관찰하도록 할 방침이다. 수확체험과 조롱박만들기 등 계절에 맞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공원녹지과 920-3785.
  • 한려수도 해상케이블카로 관광한다

    한려수도 해상케이블카로 관광한다

    한려수도에 보석처럼 떠 있는 섬들이 해상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경남 통영시가 ‘동양의 나폴리’로 변신하기 위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용초도, 학림도, 연대도 등을 잇는 케이블카를 만들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통영시는 지난해 시내 도남동에서 미륵산 정상을 오르는 조망 케이블카를 개통해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설치사업 전담팀 구성 통영시는 최근 문화예술관광과 안에 ‘해상 케이블카 추진팀’을 구성했다. 추진팀은 도남동 미륵산에 운행되고 있는 조망 케이블카와 연계해 통영시의 여러 섬을 잇는 해상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전담한다. 이를 위해 하반기에는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겨 경제성, 노선, 환경에 미치는 영향, 해외 사례 등 사업타당성을 분석하도록 했다. 추진팀의 홍성갑 담당은 “연구용역을 통해 케이블카를 어느 섬과 어떻게 연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 단계적으로 어떤 섬과 이어 나가면 사업성과가 높을지를 구체적으로 따진 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해상 케이블카 때문에 유람선 이용객이 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유람선 업주들과 협의해 유람선 운항이 어려운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통영시는 앞서 2006년에도 도남동 유람선터미널에서 한산도 구간에 대한 해상 케이블카 설치 타당성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번 용역 결과가 2010년에 나오는 대로 케이블카 설치 공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현재 사업성이 높은 케이블카 노선으로는 ▲통영 시내~한산도~용초도 ▲통영 시내~학림도~연대도 등 2개 구간이 꼽히고 있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인기 통영시는 지난해 4월 도남동 하부 정류장에서 미륵산 정상(해발 461m) 상부 정류장까지 1975m를 잇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개통했다. 이 케이블카는 국내 첫 바다조망용 케이블카로, 노선도 가장 길다. 개통 직후 몇차례 고장이 나 40여일 동안 운행을 멈추기도 했으나 안정성이 입증되면서 지금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해상관광 케이블카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8인승 곤돌라 47대가 시간당 1800명을 수송하고 있다. 통영시 측은 전체구간 중간의 1곳에만 철제 지주를 세워 환경훼손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이용객은 토요일인 지난 11일 8802명에 이르는 등 지난 21일까지 누적탑승객 95만명을 기록했다. 이용객 10명 중 6명은 외지 관광객으로 나타났다. 이용객은 다음달초에 무난히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신경철 통영관광개발공사 사장은 “인구 13만명인 통영에 굴뚝 없는 대규모 ‘청정 공장’이 생긴 것으로 경제효과를 기대하면 된다.”고 말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수유동 관광버스 브레이크 사고 7명 사망·5명 부상

    수유동 관광버스 브레이크 사고 7명 사망·5명 부상

    지난 23일 밤 서울 수유동에서 12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교통사고는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브레이크 이상을 감지하고도 무리하게 운행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를 낸 버스 운전기사 이모(61)씨는 24일 경찰조사에서 “버스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버스를 멈출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날 밤 10시쯤 강북구 수유동의 북한산 중턱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에 외국인 관광객들을 내려놓고 차고지로 향했다. 출발 뒤 끽끽거리는 소리가 세 차례 나는 등 브레이크 이상 징후를 감지했지만 무시했다. 네 번째 이상 징후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당시 차량 속도는 시속 70∼80㎞였다고 이씨는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씨는 차량을 멈추려고 반대편 도로가에 주차된 렉스턴 차량을 들이받은 뒤 진행 방향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다마스 차량을 다시 들이받았으나 가속이 붙은 버스를 세울 수는 없었다. 이 버스는 이어 삼거리 횡단보도 부근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이묘숙(45·여)씨의 아반떼XD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아반떼XD 위에 올라탄 버스는 그 상태로 160m가량 내달린 뒤 옵티마, 싼타페, 카니발, 렉서스, EF쏘나타 등 6대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9중 추돌이었다. 이 사고로 아반떼 차량에 타고 있던 운전자 이씨 등 7명은 모두 숨졌고, 다른 차량에 있던 5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들은 20년 전부터 친목모임을 가져온 교육공무원들로, 사고가 발생한 날 오후 7시쯤 수유동에 있는 S음식점에서 만나 저녁식사 모임을 가진 뒤 차를 마시러 인근 찻집으로 옮기기 위해 승용차 한 대에 동승해 수유동 4·19탑 주변을 지나던 중이었다. 모임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1명은 몸이 좋지 않아 자신이 몰고 온 승용차를 타고 먼저 귀가하는 바람에 참변을 피했다. 경찰은 “이씨가 출발 뒤 브레이크 이상을 알았으면서도 운행한 점, 첫 충돌 뒤 핸드브레이크를 당기고 저속기어로 감속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과실이 중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이씨에 대해 교통사고특례법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편 사망자들의 시신은 안치된 서울 수유동의 대한병원과 안암동의 고대병원에는 비보를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의 오열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고 김은경씨의 형부는 “이달 28일 결혼 20주년을 앞두고 남편과 처음으로 해외여행 간다고 소녀처럼 좋아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 전수애씨의 남편 강신규(56)씨는 “군에 있는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말도 못했다.”면서 “시내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고 곽향숙씨의 남편(49)은 “어젯밤 줄곧 전화를 받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데 사망소식을 들었다. 큰아들이 올 7월 제대한다며 좋아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 이묘숙(45)씨의 사연은 주위를 숙연케 했다. 이씨는 미혼으로 3남1녀 중 장녀다. 혼자 벌어 남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장가도 보냈다. 노부모도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고 한다. 남동생 원식(43)씨는 “지난 달에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하려다 8월이 길하다 해서 뒤로 미뤘는데….”라며 목놓아 울었다. 다음은 사망자 명단이다. ▲하해용(57·여·월곡초등학교 행정실) ▲곽향숙(45·여·상경중 행정실) ▲이묘숙(44·여·전동초 행정실) ▲전수애(49·여·배봉초 행정실) ▲김은경(43·여·성북교육청 근무) ▲박홍순(48·여·창동중 행정실) ▲최문숙(52·여·수송초 행정실) 오달란 박성국기자 dallan@seoul.co.kr
  • [나눔 바이러스 2009] 장애인과 쌀보다 더 소중한 情 나눠

    [나눔 바이러스 2009] 장애인과 쌀보다 더 소중한 情 나눠

    정을 나누면서 서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나눔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신문, 농협중앙회, 행정안전부가 공동으로 펼치고 있는 ‘지역공동체 행복나눔 행사’가 지난 17일 낮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시립 평화로운집에서 펼쳐졌다. 지난 9일 농협중앙회가 내놓은 1004포대의 사랑의 쌀 가운데 100포대(20㎏짜리)를 전달하는 자리. 그러나 이날 행사는 단순한 쌀 전달을 넘어 자원봉사자들이 장애인들과 쌀보다 더 소중한 정을 나누는 시간이 됐고, 행사장엔 봄볕 같은 따사로움이 넘쳤다. 행안부 공무원들로 구성된 행복드림봉사단원 30여명은 사랑의 쌀 전달식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앞서 평화로운집에 도착, 장애인들과 산책을 하면서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182명은 모두가 중증 장애인이다. 지체 장애와 함께 정신장애를 동반한 복합 장애인이 절반을 넘는다. 하루의 대부분을 건물 내에서만 생활하거나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채 지내야만 한다. 강효봉 원장수녀(프란치스카)는 “무연고 장애인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다.”면서 “표현은 못하지만 연락이 두절됐거나 비록 자신을 찾지 않는 가족이지만 몹시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이날 원생들은 행안부 공무원들의 방문으로 모처럼 봄나들이를 즐길 수 있었다. 비록 시설내의 화단, 그리고 시설과 인접한 북한산 자락의 산책로였지만 완연해진 봄볕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진달래, 라일락, 튤립 같은 봄꽃도 볼 수 있었다. 한 정신지체 원생은 즉석 태권도시범을 보여주며 고마움에 화답했다. 김정한(행안부 운영지원과) 사무관은 “표현은 못해도 기분 좋아하는 표정과 느낌은 전해졌다.”면서 “가능한 한 자주 찾아 이들과 많은 시간을 나눌 계획”이라고 말했다. 살기좋은 지역재단(종로) 소속의 자원봉사자 10여명은 산책 후 저녁식사를 도와주는 일을 맡았다. 시설 내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90여명 있지만 식사 수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식사 자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원봉사자가 함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소변까지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식사수발에 나선 이현숙씨는 “서울에 이런 시설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몸은 잠시 힘들었지만 따뜻한 정을 가슴에 담아 갈 것 같다.”면서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서울광장] 무궁화를 보고 싶다/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무궁화를 보고 싶다/노주석 논설위원

    ‘무궁화는 어디 있나?’ 벚꽃이 흩날리는 남산길을 걷다가 문득 ‘나라꽃’ 무궁화를 본 지 꽤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무궁화에 대한 기억은 학창시절 이후 업데이트가 정지된 상태다. 즐겨 찾는 청계천, 남산, 북한산에서도 무궁화는 보기 어렵다. 애국가에 나오는 ‘무궁화 삼천리’라는 표현이 무색하다. 정부가 전국에 무궁화 1000만그루를 심었다고 들었다. 어디 숨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다. 실제로 청계천이나 남산에 심고 싶어도 심을 만한 5년 이상된 묘목이 없다고 한다. 품종개량과 신품종연구, 재배단지 조성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서울시내에서 무궁화나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세종문화회관에 1그루가 있고 동대문 2그루, 과천 서울대공원에 20여그루가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의 것은 무궁화로 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나라꽃’을 식물원에 가서 돈을 내고 관람해야 될 판이다. 무궁화를 왜 나라꽃으로 정했나.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도시 아이들은 무궁화가 희귀하기 때문에 국화로 지정된 것으로 알게 될지도 모른다. 무궁화 묘목 나눠주기와 식목일 무궁화 심기, 육종 무궁화 품종 사진전시회 같은 무궁화 관련 행사가 간간이 열리곤 하지만 관심을 끌지 못한다. 효과도 미미하다. 식목일, 제헌절, 광복절 같은 행사 때 반짝하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기 마련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그런데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기 전까지는 무심했다. 자기 것을 등한시하는 것이 우리 고질병이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라는 사실을 행여나 잊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무궁화는 행정부·사법부·입법부의 휘장, 호텔의 등급표시, 경찰의 계급장, 훈장, 태극기의 봉 무늬로 남아 있을 뿐이다. 실물을 대하기 어려운 나라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가 상징물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국기와 국가, 국화가 대표적이다. 이중 태극기가 대한민국 국기로 법제화된 것은 불과 3년 전 일이다. 얼마전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이 국기와 국가, 국화 등 국가상징의 권위를 높이는 ‘대한민국 국가상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태극기나 애국가와 달리 무궁화는 심지 않아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다. 보이지 않아도 탓하지 않는다.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하기 위한 전폭기가 날아가는 와중에도 벚나무를 실은 배를 미국으로 보냈다. 강점기 한반도에서 무궁화를 뽑아버리고 벚꽃 강산을 만들었다. 학교와 관공서의 무궁화를 베어냈다. 보기만 해도 눈병이 나고, 꽃가루가 닿으면 부스럼이 생기며, 진드기가 꼬이는 꽃으로 매도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 벚꽃축제는 있어도, 무궁화축제는 없게 됐다. 무궁화 품종육성의 대가 심경구 성균관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얼마전 일본에서 건너온 ‘일제 무궁화’가 독도에 식재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개발한 품종을 독도에 심으려 했던 것을 간신히 막았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통일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 북한의 국화는 목단이다. 우리가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종이다. 금강산에 새길 만큼 끔찍이 아낀다. 통일 국화를 정할 때 우리가 무궁화로 하자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라꽃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재배하고, 심고, 가꿔야 한다. 가치를 부여하고,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보험금 11억 챙겼다 3년만에 들통

    남편이 낚시 갔다가 실종된 것으로 신고하고 장례까지 치른 뒤 11억여원의 보험금을 챙긴 동갑내기 부부의 사기행각이 3년 만에 들통났다. 경남 통영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남편 서모(35)씨와 부인 손모씨 부부는 모두 6개의 보험에 가입, 한 달에 49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냈다. 카페 영업이 신통찮던 2006년 초, 부부는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세웠다. 남편 서씨가 보험회사에 근무했을 때 ‘선박·항공기·전쟁 등 특별실종의 경우 실종된 지 1년이 지나고 6개월 이상의 법원 공시를 거치면 실종으로 최종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범행에 악용하기로 했다. 서씨는 2006년 3월13일 혼자 보트를 빌려 경남 통영시 한산면 비진도로 낚시를 갔다. 그는 바다에서 실종된 것처럼 보트만 남겨 두고 몰래 빠져나와 부산으로 달아났다. 최근까지 3년 넘게 부인과는 수시로 연락하며 부산·서울·대전 등을 돌며 숨어 다녔다. 부인 손씨는 남편이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어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 소송을 내 1년8개월여 만에 실종선고 심판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손씨는 법원 판결문과 통영해양경찰서의 사건사고 확인원을 6개 보험사에 제출해 11억 10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손씨는 남편의 장례식도 치렀다. 초등학교 1, 4학년인 두 딸과 친정 및 시댁 식구 모두에게 남편이 실종됐다고 거짓말을 했다. 손씨는 장례식장에서 실신하는 연기까지 하며 조문객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조의금도 받았으며 제사도 두 차례 지냈다. 손씨는 보험금으로 받은 돈 가운데 1억원은 서씨에게 도피 자금으로 건네줬다. 나머지 10억여원은 건설업과 주식·펀드투자, 채무 변제 등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3년가량 숨어 지내던 서씨는 지난 2월 대구의 한 주점에서 술김에 무심코 자신의 범행을 주변에 말했다가 경찰에 제보돼 들통이 났다. 경남지방경찰청은 20일 서씨를 사기(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손씨는 두 딸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국내 첫 수출형 농업법인 가시화

    국내 처음으로 전남 해남 간척지(713㏊)에 들어설 수출형 농업법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20일 전남도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해남군 산이면 영산강 3단계 2-1공구 간척지에서 수출주도형 농업법인을 꾸려갈 우선 협상자로 4개 법인을 선정했다.공모한 12개 법인 가운데 ▲한빛들주식회사(대표 정두채) ▲㈜장수채 ▲대영산업 컨소시엄 ▲삼호 용앙영농조합이 선정됐다.한빛들은 강진탐진들 등 소규모 영농법인 7곳으로 짜여져 있고 파프리카 등 특산물(250㏊)을 키워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장수채는 한산바이오 등 컨소시엄으로 새싹땅콩 등 신선농산물(150㏊)을 키워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대영산업은 유기농으로 양돈과 한우 등 축산업(100㏊)을, 삼호 용앙영농조합은 친환경 쌀·보리와 한우 등 식량작물과 축산(200㏊)을 병행하는 복합영농안을 냈다.법인 평가는 사업계획과 사업성 등 5개 항목(200점 만점)으로 이뤄졌고 여기서 수출기여도와 지역경제 활성화 부문에 높은 점수가 주어졌다. 최종사업자는 연말쯤 영농 면적과 품목, 수출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그러나 걸림돌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전남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농업법인이 들어설 산이면 간척지는 수년 전부터 전남도가 서남해안관광레저기업도시(J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송천지구를 추진, 최근 5000만달러 외자유치가 성사단계이다. 송천지구(15.4㎢)는 농림식품부의 수출농업법인 설립 예정 간척지와 일부가 겹친다.도 관계자는 “전남도가 전남의 미래를 걸고 추진하는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예정지에 농림식품부가 굳이 대규모 유리온실을 짓는 농업법인을 설립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다 산이면 구성리 등 인근 농민들도 간척지에 전남도의 기업도시나 농식품부의 수출형 농업법인이 들어서면 농토를 경작할 수 없는 데다 결국 소작농으로 전락한다며 “간척지 조성 당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반발하고 있다.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이사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이사장

    이기웅(李起雄·69) 파주출판도시 이사장은 4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위를 완전 절제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출판도시병’ 이다. 병은 별것 아니지만 힘이 달려 맘껏 일을 못하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전문출판사 열화당의 대표이지만 회사일을 제쳐두고 파주출판도시를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데 매달린 결과다. 출판도시를 완성하는 데 걸린 20년 세월이 암세포가 되어 위를 갉아먹었다. 지난 13일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출판도시의 심장부인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활판공방, 열화당출판사를 이리저리 오가며 6시간 동안 이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갖가지 업무와 모임이 그를 놓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쉴새 없이 전화를 받고, 지시를 내리고, 협조를 구했다. 사안마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입주 출판인클럽 회원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곰탕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엘리베이터 타기를한사코 거절한채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1단계를 마무리짓고 2단계로 접어든 파주출판도시에는 아직도 그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일산 집을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출판도시내 열화당 출판사에 침대를 들여놓고 산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집을 처분하고 출판사 신관 4층에 꾸민 생활공간으로 아예 이사를 오기로 했단다. 여러 출판인들의 이사 행렬도 이어질 예정이다. 불꺼진 출판도시의 밤을 가장 싫어하는 이 이사장이‘불이 꺼지지 않는’ 출판도시에 상주할 날이 머지않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책이란 무엇입니까. 또 출판인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이 서야 나라가 섭니다. 책은 말을 세우는 도구입니다. 출판인은 문자를 통해 말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책은 ‘영혼의 지도’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출판인이라면 유네스코 헌장 중에 ‘우리는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는 문구를 명심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1980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출판협회(IPA)총회에서 ‘도서관 사서의 나태함’을 출판의 자유를 저해하는 요소의 하나로 지적한 보고서를 읽고 감회에 젖은 적이 있습니다. 책의 남발도 경계의 대상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경우 무려 100여종이 쏟아졌습니다. 세계 10위권 출판대국의 허명이자 숨기고 싶은 치부죠. 파주출판도시는 흐트러진 책의 질서를 바로잡고, 출판인들의 허물을 성찰한 뒤 회복시키는 ‘책의 유토피아’가 될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2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사장께서는 ‘비와 바람의 도시일지(都市日誌)’라는 책에서 1988년부터 2007년까지 장장 20년 간의 출판도시 건설과정의 풍상을 정리하셨는데 출판도시의 미래상은 어떤 겁니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출판도시는 21세기 한국출판의 미래입니다. 책의 내일이기도 하지요. 21년 전 이기웅, 김경희(지식산업사), 김언호(한길사), 박맹호(민음사), 윤형두(범우사), 전병석(문예출판사), 허창성(평화출판사) 등 뜻이 맞는 출판인 7명이 북한산과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산상(山上)결의’를 맺은 결과물입니다. 여기에 입주업체와 건축가들이 맺은 ‘위대한 계약서’덕분에 출판과 건축의 만남, 출판과 도시의 희귀한 만남이 이뤄졌어요. 전체 부지 48만여평 중에서 26만여 평에 해당하는 1단계 지구에 250여출판 관련업체가 입주했습니다. 앞으로 22만 평에 이르는 2단계 지구에서는 영화와 활자가 만나게 될 겁니다. 또 두 개의 도서관 즉 ‘아시아지식문화 아카이브’와 ‘영혼의 도서관’이 새로운 코어가 될 겁니다. →자서전을 집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네. 틈틈이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살아 생전 자서전을 출간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료를 정리해 놓을 뿐이고 출간여부는 내가 죽고 나서 행해질 일입니다. 영혼의 도서관에서 그런 일이 이뤄질 겁니다. →‘영혼의 도서관’이라는 개념이 생소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책 중의 책은 자서전입니다. 고인의 유족 또는 친지와 협력해서 고인이 써 왔던 자서전의 원고를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킨 뒤 소장하는 사후 도서관입니다. 죽어서 아름다운 책더미에 묻히게 되는 셈이지요. 저의 마지막 책, 자서전도 영혼의 도서관 서가에 꽂히게 될 것입니다. →출판도시는 도시 전체가 건축물의 경연장이네요. 단순한 출판도시가 아니라 인간성 회복을 꾀하는 인간도시, 문화도시, 박물관도시를 지향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목표를 이루셨나요. -출판산업의 세 요소는 기획, 생산, 유통입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하고 편집해 바로 옆 인쇄소에 보내 인쇄·제본·제책을 완료한 뒤 출판물종합유통센터를 통해 공급하는 원스톱 체제를 갖춘 것이죠. 책의 수요를 예측해 남발을 막고, 서로 노출돼 있기에 부끄러운 책을 만들지 못합니다. 편집자끼리 책을 교환하게 되면서 기획과 편집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책의 질이 30% 이상 좋아졌고 물류비용도 30% 이상 줄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게 최고의 성과이죠. →열화당의 도서목록에서는 생소한 안중근 의사 관련 책을 내신 적이 있는데…. -대문호 톨스토이는 삶 자체가 ‘참회록’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해 온 인생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참회록을 쓰듯 인생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1993년 일산에 출판도시를 들이기로 한 계획이 틀어지고 난 뒤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빛을 찾은 것이 1995년 노산 이은상 선생이 정리한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 번역본이었지요. 그때까지 안 의사를 너무 몰랐습니다. 안다는 것은 깨달음인데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공판기록 속에서 안 의사의 엄청난 외침을 듣고 비로소 깨달은 거죠. 나의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자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2000년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안중근투쟁기록을 옮겨 엮은 까닭입니다. 출판도시 본부에 안의사의 흉상을 세웠죠. 안 의사는 출판도시의 정신적 감리인입니다. 개인적으론 안 의사로부터 출판도시를 완성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현재 수행 중입니다. ■ 李이사장 문화유전자는 강릉 선교장서 자라 ‘제2의 율곡’ 꿈꾸다 이기웅은 한때 1만명의 소작인을 두고 ‘관동제일가’를 자처하던 강릉 선교장(船橋莊)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전주 이씨 종손의 당숙이다. 선교장의 사랑채이자 문집과 서책을 간행하던 열화당(悅話堂)이 놀이터였다. 군불을 때고, 책 심부름하던 소년이었다. ‘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는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했다. 예전엔 ‘열화당 강릉 1815, 서울 1971’이라고 새긴 명함을 들고 다녔다. 서울서 출판사를 세운 것은 비록 1971년이지만 열화당의 전통은 선교장이 지어진 1815년부터라는 자부심의 발로였다. 1996년 바르셀로나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때 100년 넘은 유서 깊은 출판사에 기념패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에 1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사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확인소동이 벌어졌다. 얼마 전 열화당 출판사 신관 도서관건물에 개인생활공간을 지으면서 선교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인 활래정(活來亭)의 개념을 부활시켰다. 그가 강릉에 가면 묵는 정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감실(龕室)도 만들었다. 신위(神位)나 불상, 초상, 성체(聖體)를 모시는 종교적 장소다. 모친의 사진과 오늘의 이기웅과 열화당을 있게 한 스승들을 모실 생각이다. 그는 선교장의 ‘문화적 유전자’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후손이다. 하지만 친탁과 외탁의 비율을 처음엔 ‘7대3’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6대4’로 정정했다. 모계 혈통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율곡 이이 선생을 닮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본(율곡은 덕수 이씨)도 다르고 500년 가까운 세월 차에도 불구하고 강릉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활동했으며, 말년에 파주에 정착해 생을 정리하는 것이 율곡의 삶의 궤적과 동일하다. 결코 우연은 아닌 듯싶다. ●약력 ▲강릉 출생(1940년) ▲강릉상고,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일지사 입사 ▲열화당 설립(1971년) ▲서울 올림픽조직위 전문위원 ▲서울예술대학 강사 ▲출판저널 창간편집인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수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출판학회상 ▲백상출판문화상 ▲중앙언론문화상 ▲가톨릭 매스컴 대상 ▲인촌상 ●주요 출판·저술 미술문고, 미술선서, 한국의 굿, 한국의 고궁, 한국의 탈놀이, 교양한국문화사,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열화당미술문고, 영상원 총서, 경주 남산, 서원,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 몽골의 암각화,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 의리를 지킨 소
  • ‘스파이더걸’ 김자인 스포츠 클라이밍 銀

    ‘스파이더 걸’ 김자인(21·고려대·152㎝)이 인공암벽 등반 종목인 스포츠클라이밍 월드컵대회에서 국내 선수로는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 주변을 놀라게 했다.대한산악연맹은 김자인이 지난 11~12일 일본 사이타마현의 가조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대회 여자부 볼더링(줄을 매지 않고 높이 5m, 너비 4m의 암벽을 등반) 경기에서 일본의 아키오 노구치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14일 밝혔다. 몸에 줄을 매고 15m 높이의 인공암벽을 제한시간 내에 오르는 난이도 경기와 달리 볼더링은 홀드(인공 손잡이)의 간격이 보통 2m 정도로 넓어 체격이 작은 동양 스포츠클라이머에게는 불리한 종목이다. 볼더링에선 5개의 코스를 차례로 시도해 가장 많이 등반에 성공한 선수가, 횟수가 같으면 짧은 시간에 성공한 선수가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번 대회에서 김자인은 5차례 시도에 볼더(암석) 2개 등반에 성공한 데 비해 아키오는 4차례 시도만에 볼더 2개를 올랐다.김자인은 역시 선수인 오빠 둘과 스포츠클라이밍 심판으로 활약하는 어머니 이승형(47)씨 등 등반가 집안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기량을 익혀 기술과 체력에서 빼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한 시간 4분인 이번 대회에서 20여개국 33명과 겨뤄 한국인의 저력을 뽐냈다. 한국 선수가 스포츠클라이밍 국제대회 볼더링에서 메달을 딴 것도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김자인이 2007년 월드컵대회 난이도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게 최고 성적이었다.김자인은 “주종목은 아니지만 경험을 쌓으려고 출전했는데 예선 2위로 준결승에 올라가며 자신감이 붙었다.”면서 “볼더링에서도 세계적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게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또 “6월 하순 중국 세계선수권을 비롯해 올해 6, 7차례 열리는 지역별 월드컵 대회에서 난이도는 물론 볼더링에서도 1위에 꼭 올라보고 싶다.”고 덧붙였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18일부터 남한산성 ‘등 문화제’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성에서 한지로 만든 각양각색의 전통등(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등 문화제’가 열린다. 13일 경기문화재단에 따르면 경기도 및 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행사에서는 옛 조상들이 궁중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던 한지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등 400여점이 전시된다. 또 용과 탑, 사람 형태의 대형등도 25점이 전시되고 행사장 일대에는 전통가로연등 1000여점, 초롱 200여점도 설치된다. 호국영령을 위한 영산재, 전통음악 공연, 경전찍기 체험, 전통등 만들기, 전통무예 18기 시연 및 무예체험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서울 도봉산에 가면 다른 산에서 좀체로 보기 힘든 이들이 있다. 해발 650m 지점에 자리잡은 산악구조대, 전국에 3개뿐인 경찰산악구조대 중 하나다. 서울에선 북한산구조대와 더불어 등산객들의 지킴이 역할을 해 왔다. 상춘객들의 이어지는 이맘 때, 그들에겐 봄을 즐길 여유가 없다. 26년간 등산로에서 조용히 사람과 산을 지켜 왔을 뿐이다. 생명을 지키는 의무감과 끈끈한 동료애로 뭉친 그들이 ‘산에서 배워 사람들에게 베푸는’ 등정길을 따라가 봤다. 글·사진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산악구조대’라는 글씨가 새겨진 녹색점퍼 차림의 구조대원들의 순찰길을 따라나섰다. 구조대 산장에서 마당바위 쪽으로 가다 신선대로 방향을 트는 비교적 짧은 코스였다. 10분쯤 지났을까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대원들은 축지법을 쓰며 날아다니는 손오공 같았다. 다들 아무리 20대 초반이라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발걸음은 마치 솜털 같이 가벼워 보였다. 세 갈래 길 앞에 다다르니 등산로를 벗어나 낙엽이 쌓인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인명을 구조할 때 이용하는 단축 루트라고 한다. 김준석(22) 대원은 “구조할 때 헬기가 뜰 수 있는 날은 절반밖에 안 된다. 대부분 우리들이 들쳐 업거나 들것에 싣고 119구급대가 있는 산밑까지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대부터 주봉, 포대능선을 거쳐 사패산까지가 구조대의 영역이다. 하루 24시간 비상대기체제다. 도봉산은 대부분 암반과 기암절벽으로 돼 있어 안전사고가 잦은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125명이 다치고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는 3월 현재까지만 17명이 다치고 3명이 숨졌다. 지난달 28일엔 1만 4245명이 방문해 하루 동안 구조 헬기가 세 번이나 떴다. 구조대원이라고 다치지 말란 법은 없다. 김병철(54) 대장은 “지난해 송추에서 신선대로 오는 길목에서 사고가 접수됐는데 우리 대원이 구조하러 뛰어가다가 돌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골절됐다.”면서 “사람 구하기도 전에 대원들이 먼저 일 치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나더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득주(45) 대장은 아침에 올라오면 근처 석굴암에 들러서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부터 올린다. 종교는 없지만 지난해 5월 도봉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생긴 버릇이다. ●산에서 인생을 배운다 의경 신분이라 아직 어린 대원들은 산에서 인생의 첫 죽음을 경험했다. 홍기문(22) 대원이 겪은 첫 사망자는 아직도 그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칼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20대 남자다.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결혼을 미뤄 왔다고 한다. 결혼할 때까지 약혼녀가 뒷바라지해 준 끝에 어렵게 취직했다며 좋아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약혼녀와 등산복을 맞춰 입고 다정하게 손잡고 도봉산을 찾았다. 가파른 암벽 앞에서 약혼녀를 산에서 내려가는 길로 먼저 보내고 혼자 바위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이렇듯 죽음이 쌓여갈수록 그들은 삶을 배운다. “구조하면서 오히려 저희가 더 배웁니다. 삶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돼요. 산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홍 대원은 순찰을 돌다 사망지점을 밟을 땐 이 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눈에 선해진다. 그럴 땐 영혼이 산을 맴돌지 말고 편한 곳으로 가시라고 잠시 두 손도 모아 본다. 대원들의 목소리는 하나 같이 차분하고 얼굴은 부처처럼 온화하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현장에선 나이가 서너배 많은 어르신도 그들의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산은 인생이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급한 맘에 성급히 추월하거나 준비없이 덤벼들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엔 오히려 사고가 적다. 노인들의 사고 빈도도 낮다. 험한 날엔 일부러 조심하고 노인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이다. ‘등산 좀 했다.’고 자부하는 30~40대들이 잘 다친다. 사고는 순간이다. 대원들은 “산에선 1초도 만만히 봐선 안 된다.”라며 신신당부했다. 구조대원들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때문에 ‘One for all, all for one(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의 정신이 강조된다. 고참이니 신참이니 하는 위계 질서는 중요치 않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로프처럼 단단히 엮여져 있어야 한다. 전득주 대장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원을 뽑을 때 신체조건보다 인성을 더 본다.”고 소개했다. ●“등산도 경쟁의 장이 돼서 안타깝다” 조난 접수가 들어오면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 걸려도 온 산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 김준석 대원은 “그럴 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발 빨리 찾아서 구하게 해달라는 간절함 뿐이다.”라고 말했다. 구급장비가 담긴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힘든 걸 느낄 새도 없이 뛰고 난 다음날이면 옴짝달싹 못한다. 등산객들이 봄꽃을 즐기는 쉼터가 그들에겐 촉각을 다투는 응급현장이자 삶의 배움터다. 사망자가 생길 땐 내 탓인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전 대장에겐 지난해 12월에 사망한 40대 여성의 경우가 그랬다. 영하 12도가 넘는 칼바람 추위에 해질 무렵쯤 만장봉에서 추락자 신고가 접수됐다. 전 대장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헬기 예열시간을 벌려고 미리 헬기 요청을 띄워 놓고 현장에 나선 사이 최종 결재를 기다리다 시간이 좀 걸렸다.”면서 “그날따라 사정상 헬기는 뜨지 못했고 구조대가 병원으로 옮겼지만 환자는 결국 숨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주5일제 이후 등산객이 급증했지만 등반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즐기는 게 아니라 남보다 앞서서 산 정상을 올라가기에 바쁘다는 지적이다. 전 대장은 “원래 우리의 산 문화는 ‘입산(入山)’이다. 굳이 정상을 밟지 않아도 물 좋고 바람 좋은 바위에 걸터 앉아 시 한 수 읋고 피리부는 풍류를 즐기는 쪽이었다.”면서 “그런데 서양식 산행 문화가 도입되면서 언제부턴가 정상탈환이 목표가 돼버렸다. 등반시간을 단축해야 된다는 생각에 산도 대결의 장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깝다.”며 멀리 산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몸짱·마음짱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등산로는 대원들에겐 생명길이다. 구조대에 들어오면 먼저 도봉산 등산로 지도를 그리고 읽는 법부터 배운다. 지난달 23일 입산한 막둥이 김수호(21) 대원은 아직도 등산 루트를 정확하게 외지 못했다. 마당바위~관음암~칼바위~신선대~포대능선 등 주 순찰 코스는 서너곳. 그러나 산악구조대원이라는 명함이라도 들이밀자면 등산로 수십 개를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김 대원은 그러면서도 “사고 다발지역인 칼바위, 포대능선쪽은 자신있다. 순찰 때마다 앞장서서 가보곤 한다.”며 자랑했다.  등반대에 들어오면 3주 정도는 구조요청 접수, 응급처치 연습 등 실전에 투입될 준비를 한다. 대원들에게 주어지는 덤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련되는 몸이다. ‘물살’로 입산해서 한 달이 지나면 배가 들어가고 6개월이 지나면 잔근육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산할 때쯤엔 다들 몸짱으로 변신한다. 자신만의 은신처도 생기게 마련이다. 홍 대원은 “마당바위로 가는 길목에 아지트가 있다. 사람들의 왕래도 적고 햇볕이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바위가 험하지 않아 힘들 때면 찾곤 한다.”고 귀띔했다. 입산해서 처음 내려다 봤던 서울 야경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홍 대원은 “새까만 바탕에 별빛처럼 박힌 도심의 불빛을 보고 고참들에게 ‘절경 보고 왔습니다.’고 보고했더니 막 웃더라. 그것도 한달만 지나면 지겨워진다고.”라며 웃어 보였다.  하산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최고참 박서광(22) 대원 눈에 비친 산과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박 대원은 “의외로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도 많다. 술이 취했거나 다투는 사람들, 불법취사를 하거나 인화물질을 소지한 이들까지. 안 된다고 말하면 막 대하는 분들도 많다.”며 씁쓸해했다. 의무경찰기간을 대충 때우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박 대원은 “우리에게 ‘대충’이란 없다. 산에서 생명을 구하는 이들은 우리뿐이고 또 그 우리도 그 속에서 많은 걸 배운다.”며 힘주어 말했다. ■ 도봉산 산악구조대는 총8명 24시간 비상대기 26년째 ‘생명 지킴이’로 1983년 3월 북한산 인수봉에서 대학생 산악연맹 소속 7명이 암벽에 매달려 동사한 사고가 일어났다. 119구조대가 출동했지만 꽁꽁 언 로프 때문에 바위 아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 비극을 계기로 북한산과 도봉산에 산악구조대가 생겼다. 24시간씩 교대근무하는 대장 3명과 대원(의경) 5명이 한 식구다. 도봉산 정상 선인봉 약 300m 아래의 암벽 밑에 위치한 구조대는 2003년 12월, 99㎡(약30평) 남짓한 아담한 단층 목재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침실 2개와 주방, 화장실을 갖췄지만 대원들은 그전까지 움막 같은 곳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물도 맘놓고 쓸 수 없었지만 지난해 11월 근처 샘(푸른샘)을 연결해 그나마 생활이 나아졌다. 대원들은 “이제는 등산객들이 언제고 방문해도 마음껏 물동냥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1t짜리 물탱크와 정화조를 갖춰 도봉산 환경 문제도 해결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순찰로 시작해 순찰로 끝난다. 아침 6시30분쯤 일어나 끼니 때와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2인 1조로 짜여 무전기를 동반하고 순찰을 돈다. 하루 최소 7시간 이상을 산 속에서 보낸다고 한다. 구조대에 도착하면 마스코트인 혼혈 진돗개 ‘마초’가 먼저 맞아 준다. 앞서 자리를 지켰던 흑삽살이가 병으로 아쉽게 저 세상으로 간 뒤 들여온 녀석이다. 등산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심하게 짖지는 않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마초’란 이름이 붙었다. 낯을 익히면 금방 짓궂게 달려드는 놈이다. 구조대를 힘빠지게 하는 것은 오래된 구조 매뉴얼과 부실한 현장 지원이다. 구조헬기는 소방방재청장의 최종 결재가 떨어져야 뜰 수 있다.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선 가슴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장까지 6명, 소규모 살림에 의경 한 끼 부식비 1200여원은 빠듯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을 오르내리며 등산객들이 건네는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 도움받은 이들이 고맙다며 산 아래 맡겨 놓는 김치 한 통에 오늘도 대원들은 밤낮없이 도봉산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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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우이령 길/강석진 수석논설위원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연결하는 북한산 우이령 길이 오는 6, 7월쯤 개방된다고 한다.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이 이 길을 따라 청와대를 습격한 뒤 줄곧 닫혀 있던 길이다. 인수봉 바로 밑 인수산장에서 계곡을 따라 우이령 쪽으로 가는 길도 덩달아 막혀 있었다. 사람 발길이 드물었던 그 길은 상상만으로도 솔 향기 가득하고 다람쥐 눈망울엔 구름 빛 어려 있을 것 같다. 이 봄 보는 이 없어도 진달래 가득 피어났을 터. 가을엔 아기 손같이 발갛게 달아오른 단풍이 파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 것이다. 계곡엔 수녀의 마음처럼 맑은 물 돌돌돌 흐르고 청아한 산새 소리 앞 산 바위를 돌아 들려오겠지. 충분히 휴식한, 그리하여 온전해진 해맑은 얼굴로 사뿐히 우리 앞에 다가온 우이령 길은 역설이지만 ‘공비(共匪)’가 남긴 선물. 깨끗한 계곡물에 떨어져 내린 산그늘 파란 빛에 바람과 함께 온 몸을 적시는 꿈이 황홀하게 다가온다.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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