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한산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모임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악수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통로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소유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40
  • 프리허그아토피학교 ‘힐링, 아토피 주말캠프’ 모집

    프리허그아토피학교 ‘힐링, 아토피 주말캠프’ 모집

    여름방학을 맞아 프리허그 아토피학교에서 유소아 아토피 환아와 성인가족들을 위한 주말 힐링 아토피 캠프를 주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캠프는 7월 27일(토)과 8월 24일(토) 두 차례에 걸쳐 푸른 생태도시 경기도 의왕에서 열린다. 아토피한의원 의료진 및 예술심리치유, 이완요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전문강사들이 함께 뜻을 모아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교육단체 프리허그 아토피학교는 각 지역의 보건소, 아토피 안심 초등학교, 안심 어린이집에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일회성의 즐기기 위주의 단순 체험이 아닌 아토피 환자와 가족에게 꼭 필요한 생활관리 부분부터 체험활동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소통의 장이 될 전망이다. 또한 과거 이번 캠프와 동일하게 진행되었던 2012년 북한산국립공원, 은평구보건소와의 장기 캠프에서 200일 동안 이루어진 생활습관 개선 프로젝트가 아토피 환아의 객관적인 증상 호전에 큰 효과를 보인 경험이 있다. 전문의들은 아토피피부염은 아토피 치료법과 함께 생활습관의 개선을 이뤄 유지하는 것이 완치의 지름길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번 여름학기 캠프의 목표는 아토피의 근본 원인을 알아보고 아토피 치료를 위한 효과적인 생활관리법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하지마라. 먹지마라”가 아닌 ‘긍정적인 생활습관의 개선’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캠프 문의는 프리허그 아토피학교 홈페이지(www.freehugatopy.com)와 유선으로 신청하면 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아웃도어 업체, 산악인 사지로 몬다?

    귀국 보고를 겸한 간담회를 마친 지 사흘이 됐는데 머릿속에 세 가지 질문이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인으로 처음 히말라야 14좌를 인공산소의 도움 없이 완등한 김창호 대장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야 할 자리였는데 지난 3일 간담회에는 내내 가슴 먹먹한 침묵이 깔렸다. 안타깝게 빙원(氷原)에 스러진 서성호 대원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기자들은 산 아래의 사람들이 산 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갖는 의구심을 대신 풀어야 한다는 숙명에 짓눌려 얼음처럼 차가운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그렇게 값어치 있는 일이었다고 확신하느냐?’ ‘10여년 전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홀로 헤매던 김창호와 아웃도어업체 몽벨의 후원을 받아 14좌를 완등한 김창호의 간극은 없느냐?’ ‘일부에선 아웃도어업체가 경쟁을 부추겨 근래 적지 않은 불상사를 초래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 김 대장은 30여년 산과 인연을 맺은 선배의 첫 번째 질문에 “생명보다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없다. 성호가 한사코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한 것이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며 “산악인은 다른 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산 위에서 깨닫는다. 성호가 단순히 (무산소 완등) 기록 때문에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있었고 그걸 뒷받침할 풍부한 등정 경험이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대장으로서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답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고산 등반 틈틈이 해발 고도 7000m급 봉우리 7개를 초등했다는 점이 답이 될지 모르겠다”고 에둘렀다. 간담회 말미에 나온 ‘수평 여행’ ‘창의적 고도’ ‘산을 모르는 이들과의 소통’(서울신문 4일자 29면) 등도 이런 답의 연장 선상이었다. 사실 마지막 질문이 가장 난감했다. 기자 생각에도 필요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몽벨 관계자가 실토한 대로 최근의 경기 둔화에도 가장 견실한 성장을 지속한 것이 아웃도어 업체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비용을 댈 수 있는 업체가 어디 있겠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끼리의 후원 경쟁이 산악인들을 사지로 내몬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해 보인다. 몽벨 관계자도 탐사나 등반 계획에 일절 간여하지 않았으며 마케팅 모멘텀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아웃도어업체들도 이 점은 새겼으면 하다. 산악인들을 후원하는 일이 유통 마진을 줄이려는 노력을 회피하려는 방패로 활용돼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북한산 아래에 늘어선 호사스러운 대리점들을 바라보며 늘 품었던 의구심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엎을 걸 엎어라/송한수 메트로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엎을 걸 엎어라/송한수 메트로부 부장급

    “이곳에 웬 아스팔트….” 벗이 한숨을 훅 내뱉었다. 일요일 북한산에 올랐다. 한참 내려오던 참이다. 참으로 빼어난 산이다. 숱한 이들이 이야기한다. 오르고 또 올라도 새롭단다. 그러나 풍경을 깨는 게 있다. 지금 마주친 그런 길이다. 벗은 혀를 끌끌 찼다. 화난 얼굴로 볼을 실룩거렸다. 북한산 예찬론을 펴는 친구다. 처음 지나는 곳도 아닐 터인데. 자꾸만 길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또 중얼댔다. “젠장, 누가 저런 일을….” 엊그제 남산에 올랐다. 국립극장 바로 위로 갔다. 어느 선배의 말이 겹쳤다. 활터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석호정(石虎亭) 얘기다. 가뜩이나 없애거나 옮기라는 요구가 많았다. 네댓 해 전 불거졌다. 남산 르네상스 사업을 하면서다. 석호정이 경관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곳엔 6명이 145m 앞 과녁을 겨누고 있었다. 국궁 애호가와 마주쳤다. 그는 “석호정을 그냥 두기로 했다고 들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바꿨다. “자세한 것은 (땅 주인인) 서울시에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연 석호정을 지켜야 하나. 문제는 석호정이 남산에 적절치 않은 곳이냐다.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서울 정도(定都) 600년 사업이 벌어졌다. ‘남산 제 모습 찾기’가 뜨거웠다. 석호정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보존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다시 도마에 오른 셈이다. 석호정엔 이런 역사가 얽혔다. 조선 인조 때 세워졌다. 1630년이니 383년이 지났다. 이름에 깊은 뜻이 숨었다. 중국 한나라에서 따왔다. 바탕은 이광(李廣) 설화다. 활을 잘 쏜 장군이다. 어느 날 밤 길을 걷고 있었다. 호랑이와 마주쳤다. 금세 겨냥해 시위를 잡아당겼다. 화살은 깊숙하게 박혔다. 그런데 가까이 가니 바위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온 힘을 다하면 못 이룰 게 없다. 사자성어를 하나 낳았다. 사석위호(射石爲虎)다. 이를 두 글자로 줄이고 정자를 뜻하는 정(亭)을 뒤에 붙였다. 석호정은 그렇게 태어났다. 차라리 아스팔트를 걷어내자. 너무 과격한 주장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산을 철갑처럼 칭칭 감았다. 남북측 순환로 통틀어 7.5㎞다. 너비 8m에 이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몇몇 건물에 눈길이 간다. 군사정권 때 지은 것이다. 당시 안전기획부 터다. 모두 성냥갑 모양을 했다. 때때로 외벽에 색깔을 입혔다. 그래도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뚱맞기는 마찬가지다. 과연 남산을 그르치는 게 무엇인가. 이쯤이면 또렷하다. 더욱이 석호정은 1940년대 철폐 대상이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석호정 철거는 일제를 따르려는 것인가. 그러면서 30년 전 정부의 결정과는 거꾸로 달린 꼴이다. 반면 석호정 철거론도 교훈을 준다. 공직자들의 정책결정 과정이 지닌 무게를 새삼스럽게 일깨운다. 국궁을 아끼는 이들에게 생채기를 안겼을 터이다. 문화유산은 무너지면 일으키기 참 어렵다. 서울시는 괜한 것을 사냥할 뻔했다. 마냥 밀어붙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옛 말씀에 ‘경당문노 직당문비’(耕當問奴 織當問婢)라고 했다. 농사를 지으려면 마땅히 머슴 의견을 들어야 하고, 베를 짜는 일을 하려면 계집종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몸 낮추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충고를 담았다. onekor@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④한강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④한강

    >>청계천:거꾸로 흐르는 역수(逆水)가 서울 풍수의 핵심 서울은 하천의 도시다. 서울 바닥에는 35개의 하천이 흐른다. 큰 하천은 강(江)이요, 작은 하천은 내(川)다. 한강이 모든 하천의 본류이자 유일한 강이며 나머지 청계천, 중랑천, 홍제천, 불광천, 양재천, 안양천, 탄천, 고덕천, 성내천 등이 한강의 지류인 하천이다. 하천의 발원지는 대부분 북한산, 도봉산, 남산, 관악산이다. 2000년 이전에는 한강을 제외한 34개 하천의 31%가 복개돼 생명을 잃었다.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19개 하천 복원 계획이 세워져 지금까지 15개의 하천이 되살아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도 절반가량의 하천이 청계고가를 뜯어내고 복개도로의 배 속을 갈랐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다. 빛과 바람이 끊기면서 광합성 활동이 정지된 지하 세계에 남아 있다. 정도전의 북악주산설(北岳主山說)에 의한 한양 풍수의 핵심은 북악을 주산으로 목멱산(남산)이 내명당(內明堂)을 이루는 혈(穴) 자리에 경복궁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도읍 중심부에 개천(청계천)이 흐르고 외명당(外明堂)을 이루는 목멱산과 관악산 사이에 한강이 흐르도록 설계했다. 청계천을 내수(內水), 한강을 외수(外水)라고 불렀다. 서울을 관통하는 두 개의 하천, 한강과 청계천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본류인 한강은 태백에서 발원해 황해로 흘러가지만 지류인 청계천은 역으로 북악에서 발원해 사대문 중심부를 흐르고서 중랑천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청계천을 역수(逆水)라고 한다. 풍수에서 ‘세상만사는 순(順)해야 하나 지리(地理)는 역(逆)해야 한다’는 이치 그대로다. 풍수에 따르면 거꾸로 흐르는 청계천의 역기(逆氣)가 사대문 안을 조선 도읍터로 600년 세월을 버티게 한 ‘힘’이라고 풀이한다. >>한강의 섬과 나루:여의도 등 10여개 크고 작은 섬들 물길 따라… 뚝섬, 잠실(잠실도), 여의도, 난지도가 대표적 하중도(河中島)였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300년 전 강원도를 여행하고 나서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면 한강으로 흘러들어 한강의 깊이가 점점 얕아진다”라고 기록했다. 한강을 따라 흘러들어 온 모래와 흙은 자연 제방과 삼각주 섬을 형성했다. 한강변 지명에 섬 도(島)와 나루 진(津) 자가 많이 들어 있는 이유다. 눈에 보이는 밤섬, 노들섬, 선유도를 하중도의 전부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한강에는 뚝섬, 잠실도, 여의도, 난지도 같은 큰 섬을 비롯해 석도, 부리도, 저자도, 선유도 같은 크고 작은 10여개의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광나루(광진)부터 뚝섬, 이촌, 노량진, 양화진(합정)까지 은빛 백사장으로 이어져 강(江)수욕을 즐기던 자연 휴양지였다. 뽕나무가 숲을 이룬 잠실은 대대적인 매립공사가 이뤄진 1971년 이전에는 강북 쪽에 근접해 있었다. 지금은 내륙의 인공호가 돼 버린 석촌호수는 한강의 물줄기가 이곳으로 흘렀던 유일한 증거로 남았다. 난지도는 이름처럼 꽃섬이었지만 쓰레기매립장으로 둔갑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호대교 아래 저자도는 정선의 그림에 등장하는 경승지였으며 얼음을 채빙하는 벌빙꾼이 살았다.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도는 정수장이 되었다가 공원으로 돌아왔다. 1968년 한강제방과 여의도를 짓는 골재 채취로 파괴된 밤섬은 자연의 치유력으로 기적처럼 되살아나 철새도래지가 됐다. 지금은 서강대교를 머리에 이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은 전국의 재물이 모이는 수운(水運)의 중심지였다. 한강 중 한양을 감싸고 흐르는 강을 경강(京江)이라고 불렀는데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경강상인들이 용산과 마포 그리고 서강 나루를 주름잡았다. 두모포(두무개)와 뚝섬은 땔나무의 집산지였다. 송파나루에는 쌀과 지방 특산품 등이 몰렸다. 고려시대 한강은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래 천지였다. 광나루, 뚝섬, 난지도 등이 퇴적 사면이며 백사장이었다. 한강 나루를 이루는 이촌은 사평리(沙坪里)라고도 불렸고 광나루 둔치는 서울의 마지막 강수욕장이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선거 구호가 난무했던 1959년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 20만 인파가 구름 떼처럼 몰린 곳이 한강백사장이었다. 한강제방이 축조되기 전 경원선(지금의 용산~성북 간 전철) 철길 바로 옆 지금의 동부이촌동에서 흑석동까지가 바로 그곳이다. 이때 강물은 흑석동~노량진 언덕에 붙어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10만, 15만명의 인파가 강수욕을 즐겼다. 겨울이면 천연 얼음 스케이트장이 제공됐다. 60년 전 한강 풍경이다. >>3차례 한강 개발:개발독재시대의 비극 3차례의 한강 개발 사업은 한강의 쓰임새와 풍광을 바꿨다. 지도를 다시 그려야 했다. 강변은 콘크리트 호안과 도로가 됐으며 강수욕을 즐기던 모래밭은 매립용 모래로 쓰였다. 한강은 ‘강물’이 주가 아니라 ‘강변’이 주가 되는 이상한 강이 됐다. 손이나 발을 담글 수 없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변했다. 일차적인 원인은 홍수와의 전쟁 때문이었다. 한강 상류에 댐이 없고, 제방이 없던 시절 물난리는 최악의 재앙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용산, 뚝섬, 광진, 여의도, 잠실, 압구정동, 신사동, 반포, 잠원이 잠겼다. 이때 몽촌토성과 암사동 유적지가 발견됐다. 한강은 자원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에서 보았듯이 군사정권은 한강을 피란 시간 확보 대책용으로 여겼다. 1967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급조한 ‘한강 개발 3개년 계획’에 따라 강변을 메워 제방을 쌓았고, 제방 위에 강변도로가 건설되고, 여의도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윤중제가 건설되고, 잠실이 내륙이 됐다. 택지 개발과 도로 건설을 목적으로 한강을 파괴한 것이다.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대비용으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진행된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2개의 수중보(잠실보와 신곡보)와 올림픽대로, 한강둔치공원이 들어섰다. 두 번의 공사를 거친 이후 한강은 본모습을 잃었다. 풍광은 사라졌다. 혹자는 ‘빠질까 봐 겁나는 강’ ‘거대한 콘크리트 호수’라고 깎아내린다. 개발독재시대의 즉흥적인 개발이 빚은 비극이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는 2001년 펴낸 ‘한강의 어제와 오늘’에서 1982년 착공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말끔하게 정리된 한강의 모습이 보기에 좋을지 모르나 자연미의 상실과 함께 한강 본래의 생태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말았다.…한강종합개발사업은 한강 자연 하천의 모습을 앗아갔으며 생명 서식지 교란으로 한강 생태계를 크게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 도심 속에서 한강 생태계가 갖는 기능과 역할은 경제 가치로는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2007년 오세훈 시장이 내건 ‘한강 르네상스’도 구호만 요란했을 뿐 저수 제방 탈피, 호안 콘크리트 철거라는 한강 복원의 핵심에는 손이 미치지 않았다. ‘유람선과 요트가 떠다니는 한강’이라는 서구식 만화경에 매달려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다. >>한강 복원:도시고속도로 울타리를 걷어내자 동서로 뻗은 두 개의 도시고속도로가 거대한 철책선처럼 한강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있다. 강은 도시와 유리된 채 따로 흐른다. 서울은 남과 북으로 인위적으로 절단됐으며 서울 사람은 강북 사람, 강남 사람으로 나뉘었다. 양쪽은 다리로만 통행한다. 자전거길과 산책길이 부분적으로 열렸지만 강북 사람은 강북 쪽으로, 강남 사람은 강남 쪽에서 다닐 뿐이다. ‘한강의 남북 절단’에서 ‘한반도의 분단’이 떠올려진다. 환경학자들은 두 도로를 일반도로로 바꿔서 건널목과 신호등을 놓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건너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스전용차선을 놓거나 전차를 놓는 방법도 제시됐다. 한강은 사람들을 위해 심장(잠실)과 내장(여의도)을 아파트 택지로 내놓았다. 두 개의 보(洑)가 목젖과 다리를 각각 누르고 있고, 29개의 한강 다리가 포박하고, 고층 아파트 숲이 태양과 바람을 가로막고 있다. 양팔과 두 발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도로가 돼 꼼짝달싹 못하지만 묵묵히 흐를 뿐이다. 이제 한강을 풀어줘야 한다. 한강은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지난해 서울 시민 1000명에게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37%가 한강을 꼽았다고 한다. 남산타워(35%)와 경복궁(25%)이 뒤를 이었다. 외국인에게도 ‘한강의 기적’은 한국과 한국의 경제성장을 대표한다. 우리는 60년 전 아름다운 섬과 백사장이 있었던 시절의 한강을 잠시 잊고 있다. 다리 위에서, 배 위에서, 자전거 위에서,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강이 아니라 손발을 담글 수 있는 강이 필요하다. 사람이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는 진정한 한강 복원이 이뤄져야 서울 소통, 한민족 통합도 가능하다. 서울이 세계 최고의 관광 휴양 도시로 발돋움하는 건 덤이다. 파괴된 밤섬이 20년 만에 기적처럼 스스로 살아난 것이 그 예언이다. joo@seoul.co.kr
  • [구본영 칼럼] 화려한 합의, 멀어만 보이는 통일

    [구본영 칼럼] 화려한 합의, 멀어만 보이는 통일

    휴전선 가까이 강원도 양구의 산야는 짙푸름을 더해 가고 있었다. 휴가 나온 병사들이 드문드문 오갈 뿐 최전방의 거리는 한산했다. 지난 주말 군부대로 아들을 면회 갔을 때의 풍경이다. 문득 1980년대 초 군 복무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30여년 전 그해 서해안의 여름도 참 더웠다. 땀에 젖은 군복 안 끈적거리는 살갗에 모기떼가 달라붙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세대가 두번 바뀌고도 남북으로 대치 중인 분단국에 살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간 남북 간에는 7·4공동성명-남북기본합의서-6·15공동선언-10·4선언 등 ‘기념비적 합의’도 많았건만, 통일의 길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지 않은가. ‘10·4선언’을 도출한 노무현-김정일 간 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싸고 남북 및 남남 갈등이 중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유무를 놓고 벌이는 여야의 입씨름에 며칠 전 북한도 끼어들었다. 북측 조평통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NLL은 유령선”이라며 “그에 대해 ‘사수’요 ‘고수’요 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라고 강변했다. 우리 내부의 갑론을박과는 별개로 북한은 숫제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북측이 10·4선언문은 물론 노태우 정부 때의 남북기본합의서 등 모든 합의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얘기다. 남북 합의문에 대한 북측의 독단적 ‘해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정부 때인 지난 1972년 오늘, 남북은 7·4공동성명을 공표했다. 자주·평화·민족 대단결 등 통일 3원칙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해석은 천양지차였다. 북한이 말하는 ‘자주’는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논리로 활용됐음은 물론이다. ‘민족 대단결’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대남전략인 ‘통일전선’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책임 있는 당국 간 협상을 우선하는 우리의 문법과는 너무 달랐다. 민관 구분이 안 돼 일사불란한 북한 세습체제와 달리 여야나 민간단체별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마련인 우리 체제에서 남북 간 합의 이후 남남 갈등이 되레 증폭되는 배경이다. 남측이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반쯤 수용한 6·15공동선언 제2항을 보라. 이 조항의 인정 여부를 놓고 여태껏 우리 내부의 보수와 진보, 여와 야가 딴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서해 공동어로수역 설정’ 협의 약속을 포함한 10·4선언 이행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한 남남 갈등은 극심해지면서 통일로 가는 여정은 한층 험난해 보이는 요즘이다. 북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핵 개발에 매달리면서 문을 닫아걸고 있는데도 말이다. 거창한 수사로 버무린 합의가 통일 열차의 엔진 구실은커녕 남쪽 승객들 간 드잡이의 빌미만 되고 만 꼴이다. 독일은 달랐다. 민족성 자체가 건조하고 실용적이어서인지 양독 간 합의문은 언제나 실질적이었다. 서독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협이 동독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보다 기울어져 가는 동독 정권을 강화해 분단 고착화를 초래할 것을 경계했다. 서독은 경제 지원을 지렛대로 동독주민의 여행 자유화와 인권 개선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해 관철해 나갔다. 심지어 동독 내 정치범 석방을 대가로 서독 마르크화를 지급하겠다는 비밀 합의가 있을 정도로 디테일에 강했다. 반면 수십조원의 대북 경협 ‘약속어음’을 발행한 10·4선언문은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협의하기로 했다”는 등 막연한 예고편으로 채워졌다. 정작 북한으로 하여금 약속을 이행토록 해 개혁·개방을 이끌 구체적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남북 간 엄청난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분단 극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비밀은 이런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향후 남북회담에서 화려한 수사보다 하나씩 구체성 있는 합의를 해 쌍방의 실천을 담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논설실장 kby7@seoul.co.kr
  • [피플 인 라운지] 한국인 첫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 김창호 대장

    [피플 인 라운지] 한국인 첫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 김창호 대장

    “(성호) 어머님이 물으시더군요. ‘너 또 히말라야 갈 거지?’라고요. 제가 차마 답을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이 그러시더군요. ‘가겠지? 그렇겠지?’” 지난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정상을 밟아 한국인 첫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의 마침표를 찍은 김창호(44) 2013 한국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장이 3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음식점에서 뒤늦은 귀국 보고회를 가졌다. 김 대장의 14좌 완등은 고(故) 박영석 대장이 2001년 첫 테이프를 끊은 뒤 한국인으로는 여섯 번째(오은선은 칸첸중가 등정 논란)이자 처음으로 산소통에 의지하지 않은 채 이룬 것이어서 각별하다. 여기에 인도 벵골만에서 갠지스강을 거슬러 156㎞를 카약으로, 콜카타에서 네팔 툼링타르까지 893㎞를 사이클로, 베이스캠프까지 162㎞를 트레킹한 뒤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최초의 무산소, 무동력, 무폐기물 등반으로 의미를 더했다. 또 하나, 예지 쿠쿠츠카(폴란드)의 7년 11개월 14일을 7년 10개월 6일로 단축시킨 최단 기간 완등이었다. 하지만 장한 행보는 하산 과정에서 운명을 달리한 서성호 대원의 비극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김 대장은 “정상에 머물렀던 2시간의 기억이 마치 오래된 영화필름처럼 뚝뚝 끊어졌다 이어지면서 1분 남짓으로만 남아 있다”고 털어놓았다. 80여일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체중이 15㎏ 정도 빠져, 베이스캠프에서 그를 만난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 30주년 기념 드림원정대의 한 대원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고 썼다. 어깨 쪽 살이 많이 빠져 실제보다 커 보인다고 너스레를 떨던 김 대장은 이제 몸은 어느 정도 추슬렀지만 5년 동안 8000m급 11개 봉우리를 함께 올랐던 서 대원이 옆에 없는, 슬픔이란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처는 채 극복되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달여가 흘렀지만 이게 현실인지, 아니면 희박한 공기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가상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는 독백이 허허롭기만 했다. 김 대장은 “성호가 2006년 봄 북동릉(중국령 티베트)을 통해 이미 에베레스트에 올랐고 워낙 체력이 뛰어난 친구라 이내 극복할 줄 알았다”며 “이런 비극이 발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더욱이 일행은 서 대원에게 인공산소를 쓸 것을 계속 권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하산 도중에라도 인공산소를 쓰면 무산소 등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김 대장은 오는 8일 고인의 49재가 열리는 부산의 한 사찰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후원사인 몽벨은 부산산악연맹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청소년들에게 탐험과 도전 정신을 고취시키는 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장은 공기 속 산소 용존량이 30%대로 떨어지는 해발고도 8500m 이상에서 무산소 등반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2007년 5월 에베레스트 정상 공격을 하루 앞두고 오희준, 이헌조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느라 포기했다. 이때 다시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면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듯 바다에서 산으로 오르겠다고 결심했다”며 “인간의 힘만으로 고봉을 발 아래 두는 것이 초등학생 정도가 생각하는 원초적인 탐험의 의미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카약 때문에 인도의 하천법을, 사이클 때문에 인도와 네팔의 도로교통법 등을 준수하면서 탐험을 준비하느라 아주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전에 올랐던 가장 높은 봉우리가 K2(8611m)였던 만큼 에베레스트가 더 높은 240m 구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늘 두려웠다고 털어놓은 김 대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성호 추모사업에 힘을 쏟겠다”고 밝힌 그는 “이제 고봉보다 창의적 고도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오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산소나 고정 로프, 셰르파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새로운 루트나 미답봉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산을 잘 모르는 이들과 소통하고자 강연에도 힘을 쏟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2000년부터 여덟 차례에 걸쳐 1700여일 동안 파키스탄 히말라야 지역을 탐사했다. 1년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자료를 모으고 7개 부족어의 단어를 외운 일은 유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꼼꼼히 모든 일정을 기록하는 산악인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국내 산악인들이 파키스탄 히말라야 지역을 오르기 전 그를 찾아 조언을 구한다. 집에는 산과 관련된 책만 3000권이 있다고 했다. “후배들이 무산소 등정에 도전하겠다면 많이 생각해 보라고 권하겠다. 내가 원래부터 고산이나 거벽 등반 같은 수직 여행보다 카라코람 지역을 혼자 훑는 수평 여행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고 털어놓은 김 대장은 “파미르 고원에서 주먹만 한 별똥별이 떨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던 기억을 늘 떠올린다”고 읊조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김창호는 누구 ▲1969년 9월 15일 경북 예천 출생 ▲1988년 서울시립대 무역학과 입학하며 산에 입문 ▲1993년 트랑고타워로 거벽 첫 도전 ▲2000년부터 여덟 차례 나홀로 1700여일 카라코람 탐사 ▲2005년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으로 14좌 첫 등정 ▲2012년 5월 대학 후배와 결혼 ▲201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14좌 완등 ▲한국대학산악연맹 이사, 히말라야 카라코람 연구소장, 몽벨 자문위원 ▲2005년 월간 사람과 산 알파인 클라이머상, 2006년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 산악대상, 2007년 한국산악회 황금피켈상, 2007년 한국대학산악연맹 올해의 산악인상, 2012년 제7회 황금피켈상 아시아상
  • 무등산에 국내 최대 생태탐방연수원

    국립공원 무등산 자락에 전국 최대 규모의 생태탐방연수원이 들어선다. 2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내년부터 2017년까지 250억원을 들여 부지면적 2만㎡(건축면적 1만㎡) 규모의 생태탐방연수원을 건립한다. 이곳엔 산악박물관과 연수시설, 문화시설, 숙박시설 등이 갖춰진다. 위치와 각 시설의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원효사지구가 유력시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생태탐방연수원이 들어선 곳은 북한산 국립공원이 유일하며, 2011년 6월 176억원을 들여 개원했다. 그러나 건축면적이 무등산의 22% 수준인 2206㎡로 좁고, 숙박 정원도 100여명에 불과하다. 북한산 생태탐방연수원에서는 시민등산반·청소년 등산반, 숲 유치원, 환경성 질환 치유 프로그램, 자연환경해설사 양성, 환경작업 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산악박물관도 들어서 있다. 산악박물관에는 1977년 국내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원정대 장비(1977년)를 비롯한 시대별 등산도구와 등산 관련 서적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다섯 새끼 다 잃은 ‘토종 여우’ 부부의 비극

    다섯 새끼 다 잃은 ‘토종 여우’ 부부의 비극

    서울대가 경북 영양군과 공동 사육 중인 멸종위기종 1급인 북한산 토종 여우들이 최근 2년간 새끼 다섯 마리를 출산했으나 모두 폐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영양군에 따르면 2009년 8월 서울대 수의학과 야생동물의학연구실 측과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전에 관한 업무 협약을 맺고 입암면 연당 2리 산촌생활박물관 내 여우증식센터에서 키우는 토종 여우 2쌍(7살 추정) 중 한 쌍이 지난해와 올봄 각각 새끼 세 마리, 두 마리를 낳았다. 2009년 5월 서울대공원이 40년 만에 토종 여우의 자연 번식을 성공한 데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다. 그러나 서울신문의 취재 결과 이들 새끼 여우는 모두 폐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3월 말~4월 초 태어난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어미 여우가 젖을 먹이지 않는 등 돌보지 않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인공포유를 하던 중에, 다른 한 마리는 생후 3개월쯤에 각각 죽었다. 올 3월 말 출산한 두 마리의 경우 한 마리는 태어난 지 불과 수일 만에, 다른 한 마리는 젖을 뗄 무렵인 생후 1개월여 만에 죽었다. 하지만 서울대와 영양군 등은 이 같은 토종 여우의 출산 및 사망 사실을 지금까지 외부에 숨겨 왔다. 토종 여우 번식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와 예산 낭비 논란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2009년부터 매년 여우 사육을 위해 4000만원 안밖의 예산을 투입해 왔다. 이에 따라 서울대 측은 조만간 환경부와 이들 여우 2쌍을 오는 9월까지 경북 영주 소백산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중부복원센터로 옮겨 자연 번식시키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영양의 여우증식센터가 인근의 소음 등으로 인해 여우 사육에 부적합하다고 최종 판단된 데 따른 조치다. 서울대 관계자는 “영양군과 야생 여우 복원 및 대량 증식에 심혈을 쏟았으나 제반 여건이 좋지 않아 자연 번식에 실패했다”면서 “영양에서 사육 중인 여우의 나이가 많아 내년 봄 마지막으로 자연분만을 시도해 본 뒤 시험 방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양군 관계자는 “새끼 여우 출산 등을 고의적으로 숨긴 것이 아니라 생존이 어느 정도 확실시되면 발표하려 했으나 그 전에 죽어 그러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영양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서울 플러스] 북한산 순국선열 심포지엄

    강북구(구청장 박겸수) 27일 덕성여대 대강의동 202호에서 ‘북한산 순국선열·애국지사 심포지엄’을 연다. 이준, 손병희, 여운형 등 북한산 자락에 묻힌 애국지사의 생애에 대해 논의한다. 북한산 자락에 예정된 시립근현대사기념관 건립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행사다. 문화체육과 901-6213.
  • [커버스토리] 1000만 시민이 걷는다… 힐링 로드 157㎞

    [커버스토리] 1000만 시민이 걷는다… 힐링 로드 157㎞

    터벅터벅, 기나긴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가난하게 걸어간다는 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독자가 읽었다는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는 정처 없이 방황하는 목동 산티아고 이야기인데, 어떤 왕이 길 떠나는 산티아고에게 건넨 이 말이 그토록 유명한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아의 신화를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그간 너무 나를 잊고 살아왔다는 후회 때문일까. 한국 사람들도 언젠가부터 순례자의 길이라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에 열광하더니, 그 열광은 곧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1년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다는 서울에서 서울둘레길 조성공사가 시작됐다. 올해 안에 수락산~불암산 구간, 용마산 구간, 봉산~앵봉산 구간, 북한산 구간 등 64㎞를 개통하고 내년 말까지 157㎞ 전 구간을 다 완성할 예정이다. 되도록이면 새 길을 내는 대신 기존 길을 이용하고 계단, 다리, 배수로를 만드는 데 철근, 콘크리트 등을 쓰는 대신 태풍에 쓰러진 아까시나무를 재활용하는 친환경 방식을 쓴다. 올해 가을부터는 서울둘레길과 산마다 있는 둘레길, 서울성곽길, 자락길, 생태문화길 등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가장 큰 우려는 안전 문제. 제주 올레길에서 흉측한 사건이 일어난 뒤 폐쇄회로(CC)TV 설치문제가 논의됐으나 큰 산의 출입구에만 CCTV를 설치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발터 벤야민이 그랬던가. “어두운 길을 걸을 때 가장 힘이 돼주는 것은 함께 걷는 옆 사람의 발자국 소리”라고. 나를 찾고 싶다면,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나란히 나서보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커버스토리] 둘레길 대해부… 서울 157㎞

    [커버스토리] 둘레길 대해부… 서울 157㎞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대지를 꽉 깨물고 있는 산들의 위용은 인구 1000만 대도시 서울의 또 다른 맛이다. 그래서 ‘불수사도북 무용담’이 넘쳐난다. 불암산에서 시작해 수락·사패·도봉·북한산으로 이어지는 40㎞ 남짓 되는 코스인데 무박 2일에서부터 7~8시간 주파까지 이야기가 다양하다. 뒤질세라 나온 게 ‘삼관우청광’이다. 강남의 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광교산으로 이어지는 50㎞ 남짓 되는 코스다. 관악산을 제외하곤 비교적 완만한 흙산이다. 서울 둘레길은 내년 말까지 불수사도북과 삼관우청광을 동그랗게 말아서 한 길로 잇겠다는 것이다. 모두 8개 구간으로 구성된 서울 둘레길의 전체 길이는 157㎞이니까 시속 2㎞의 속도로 하루에 8시간씩 걸으면 완주에 10일 걸린다. 2015년부터는 인터넷에서 서울 둘레길 완주 무용담이 등장할는지 모르겠다. 구간별로 꼭 챙겨볼 만한 곳이 없을까. 모든 길을 가본 강인호 서울시 산림관리팀장에게 물었다. 강 팀장은 둘레길 조성의 임무를 띠고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강 팀장은 수락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코스를 짚어 가며 설명했다. 숱한 풍경이 눈에 어리는 듯했다. 설명 전에 조건을 달았다. 산 정상들을 이어 붙인 종주길에 도전, 정복 같은 단어가 어울린다면 산 옆구리를 타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둘레길에 어울리는 건 친밀한 대화라고. 그러니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손 맞잡고 천천히 걸어 달라고. ■수락산~불암산 코스 도봉산역(1호선)에서 시작해 수락산, 당고개, 불암산둘레길, 화랑대역(6호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봄철에는 도봉산역 부근 창포원을 꼭 가보세요. 5~6월 창포와 붓꽃이 만발할 때 장관을 이룰 뿐 아니라 꽃, 나비, 곤충 모두 만나볼 수 있어요. 수락산과 불암산은 등산로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둘레길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해 뒀어요. 가을에는 잔잔한 제명호와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서어나무 숲을 찾아보세요. 바람과 갈대와 낙엽에 파묻혀 가을 사색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용마산~아차산 코스 화랑대역에서 묵동천을 따라 망우산 자락, 중랑 캠핑 숲을 지나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곳이에요. 꿈틀대며 흘러가는 한강이 한눈에 들어와 눈이 시원해지는 곳이지요. 망우산 공동묘지도 빼놓지 마세요. 기분 좋은 산책길에 웬 공동묘지냐고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서울에서 이곳만은 꼭 지키자고 정한 6곳 가운데 하나가 여깁니다. 오세창, 한용운, 지석영, 조봉암, 방정환, 박인환, 이중섭 등 역사적 인물들이 여기 있어섭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줍니다. ■고덕산~일자산 코스 광나루역(5호선)에서 출발해 고덕산, 일자산, 수서역(3호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여기서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농촌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암사선사유적지를 낀 고덕산 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게 논두렁, 밭두렁, 미나리 밭이에요. 직업란에다 ‘농부’라고 기재하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어요. 공원도 무척 많아요. 샘터공원, 방죽공원, 명일공원, 허브천문공원, 길동생태공원…. 아, 습지생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방이동 생태경관보전지역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대모산~우면산 코스 수서역에서 대모산, 구룡산 숲길을 거쳐 양재시민의숲, 우면산, 사당역(2호선)으로 연결되는 길이에요. 여긴 300m가 채 안 되는 낮은 흙산들이라 예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 있던 곳이에요. 이 코스의 매력은 깊고 호젓한 참나무숲을 걷다가 발견하게 되는 대도시 고층 빌딩들이에요. 자연과 도심이 안 어울릴 듯 어울리는 길들이지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다 울창한 숲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 양재시민의숲도 꼭 들러 보세요. ■관악산 코스 사당역에서 관악산과 삼성산을 지나 석수역(1호선)까지 갑니다. 관음사, 호압사 같은 절도 있고, 삼성산엔 천주교 성지가 있고, 무당골도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을 모신 사당인 낙성대도 있지요. 종교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거기에다 이 코스에는 숲길 중간에 아주 짙은 메타세쿼이아 숲과 잣나무 숲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왠지 이 코스를 ‘치유의 길’이라 부르고 싶어요. 북카페 같은 것을 더해서 굳은 머리와 무거운 어깨를 털어낼 수 있었으면 해요. ■안양천 코스 석수역에서 안양천, 한강을 따라 가양대교에 이르는 길이에요. 정말 추천 드릴 만한 길은 안양천 둑길. 안양천 제방을 걸어가다 보면 둑 양쪽에 심어 놓은 온갖 식물들을 계절에 따라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봄에는 화사한 벚꽃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터널을 이룹니다. 장미꽃 터널도 좋아요. 물새들이 안양천에 노니는 풍경, 억새와 갈대의 물결, 버드나무의 출렁임까지 모두가 시원한 풍경들입니다. ■봉산~앵봉산 코스 가양대교에서 월드컵공원, 불광천, 봉산, 앵봉산을 거쳐 북한산 둘레길과 만납니다. 월드컵공원이야 이제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지요. 이 공원을 지나 들어서는 봉산과 앵봉산은 능선 따라 이어지는 숲길이 매력적이에요. 특히 팥배나무 숲은 꼭 가보세요. 정식 명칭은 봉산생태보전지역인데 이름에 걸맞게 온갖 식물이 다 있어요. 팥배, 작살, 중국단풍, 미국참나무, 화살, 굴참, 자귀, 병꽃, 노린재, 귀룽, 초피 등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북한산 코스 많은 분이 이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조성한 북한산 둘레길을 즐기고 계시지요. 서울 둘레길은 북한산 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길에서 시작돼 도봉 옛길까지 함께 갑니다. 북한산 둘레길이야 워낙 유명해 이 길에 대해 두 번 설명드리는 건 불필요할 것 같고요. 다만 4·19국립묘지와 이준 열사 등 독립유공자 묘역, 조선 세종의 딸의 정의공주 묘 같은 역사의 현장들은 꼭 한 번씩 챙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삼송2차 아이파크 분양 앞둔 삼송지구 중소형 오름세

    삼송2차 아이파크 분양 앞둔 삼송지구 중소형 오름세

    현대산업개발, 7월 A-20 블록에 중소형 1066세대 분양 경기도 고양 삼송지구 중소형 아파트의 가격 상승세가 뚜렷하다. 대규모 입주 초기 수도권 주택시장 침체 탓에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던 삼송지구 중소형 아파트가격은 최근에는 웃돈이 붙은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삼송지구 중개업계에 따르면 삼송지구 전용 84㎡의 6월 시세는 3억7000만~4억2000만원 선으로 분양가를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삼송지구 아파트의 분양가 할인 등을 고려하면 웃돈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삼송지구 중소형 아파트가격이 오름세를 보이는 이유는 삼송지구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저평가됐던 삼송지구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삼송지구는 중소형 평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수요층이 안정적인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지점에 있어 사실상 서울생활권이지만 가격은 서울권 아파트보다 저렴한 삼송지구의 입지적 장점도 아파트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삼송지구는 지하철 3호선 삼송역, 외곽순환도로 통일로IC, 1번 국도 등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4·1부동산대책으로 양도세 감면 혜택을 주고, 분양시장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고양시와 서울 은평구 등에서 입지여건이 좋은 신흥 주거단지인 삼송지구에 관심을 보이는 수요가 여전히 풍부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삼송지구 중소형 아파트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는 상황 가운데 최근 중소형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인 ‘삼송2차 아이파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삼송지구 A-20블록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지하1층~지상29층, 10개 동 규모로 전용 74㎡ 288세대, 전용 84㎡ 778세대로 구성된다. 삼송2차 아이파크의 특징은 삼송지구 최고의 입지여건, 뛰어난 서울 접근성, 북한산과 창릉천의 자연환경, 중소형 특화 평면,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 풍부한 개발 호재(신세계복합쇼핑몰, 삼송 테트노밸리 예정), 안정화된 이후의 입주 등으로 요약된다. 분양관계자는 “삼송2차 아이파크는 삼송지구에서 노른자위로 꼽히는 입지에다 요즘 인기가 많은 중소형 대단지”라며 “삼송2차 아이파크 분양을 기다리며 청약통장을 아끼며 대기하는 수요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3호선 삼송역에서 가까운 단지로서 삼송 웰빙환경의 핵심인 창릉천변에 위치한다. 삼송역 주변으로 삼송 테크노밸리가 조성되는데다 단지 인근에 신세계의 대형 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자족기능 확충과 생활편의시설 이용이 더욱 수월해질 전망이다. 이 아파트는 비슷한 규모의 주변 단지와 비교할 때 단지 내에 축구장 약 3배 크기의 오픈 스페이스가 돋보인다. 단지를 공원처럼 꾸미고, 지상 공간을 보다 다양하게 활용하고, 넉넉한 동간거리를 확보하는데 유리한 구조다. 또한 가족캠핑장 및 전망카페 등을 설치하여 입주민의 생활편의를 극대화 시킨다는 계획이다. 북한산과 창릉천을 조망할 수 있는 신평면이 선보인다. 채광 통풍이 우수한 판상형 구조와 파노라마조망이 가능한 2면 개방형 평면 등이 조화를 이룬다. 거실 또는 안방을 광폭형으로 설계해 개방감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다양한 수납공간과 가변형 벽체도 눈길을 끈다. 모델하우스는 삼송지구 내 삼송2차 아이파크 현장 인근에 위치한다. 분양문의: 1566-3022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친문계’ 만드나

    ‘친문계’ 만드나

    “친문(친문재인)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 시기가 더 빨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부쩍 정치적 보폭을 넓히자 당내에서는 이 같은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대선 패배 뒤 한동안 침묵하던 문 의원은 최근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면서 부쩍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여야가 강대강 충돌을 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의혹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문 의원은 최근 출입기자들과 북한산 산행을 하면서 국정원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몸통으로 박근혜 선거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권영세 주중대사를 지목하면서도 현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는 공격하지 않는 것도 이런 가이드라인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문 의원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기 직전인 지난 4일에는 블로그에 ‘정치적 피해 당사자’라고 지칭하면서 장문의 글을 올렸다. 당사자인 문 의원이 입을 열고 이어 검찰의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국정원 사건은 다시 현안으로 떠올랐다. 문 의원은 글을 올리기에 앞서 박영선 의원과 당의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신경민 의원과 모여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친노(친 노무현)계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해찬 의원과 한명숙 의원 등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 사건을 겪으면서 문 의원이 자연스럽게 친노계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20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소속 의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국정원·경찰 규탄 및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갖기로 했다. 민주당이 ‘국정원 사건’으로 옥외집회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23일에는 국회의원-지역위원장 연석회의를 열고, 24일에는 김한길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는 등 지속적으로 국정원 사건을 쟁점화하기로 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자연을 품은 녹색아파트 ‘삼송 아이파크’ 특별분양

    자연을 품은 녹색아파트 ‘삼송 아이파크’ 특별분양

    우수한 교통여건 및 개발 호재, 배산임수 지형을 두루 갖춘 지역으로서 고양시 삼송지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삼송지구는 서울과 인접하고 수도권 서북부 개발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자연 친화적 택지지구다. 이 지역은 서울 접근성도 뛰어나고 서울 및 수도권 사통팔달의 교통여건을 갖추고 있어 서울 통근자들에게도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서울 도심을 벗어나 쾌적한 주거환경을 찾고 싶어도 불편한 교통여건과 부족한 생활편의시설 등을 이유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수요자들의 관심이 주목된다. 이 지역은 자연을 머금고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손꼽힌다. 북한산과 노고산이 삼송지구를 두르고 있으며 공릉천과 창릉천이 주변을 감싸고 흐른다. 이 외에도 주변에는 서오릉도시자연공원, 한양CC, 뉴코리아CC 등이 있다. 삼송지구 내에도 수많은 근린공원과 소공원, 어린이공원 등이 조성된다. 뛰어난 교통환경도 눈길을 끈다. 삼송지구는 통일로, 외곽순환도로, 내부순환도로가 인접해 있어 서울 및 수도권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다. 지하철 3호선 삼송역이 있으며 원흥역(2013년 개통예정)도 개통을 앞두고 있어 대중교통이용도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수도권 광역급행열차(GTX, 2017년 개통예정)마저 개통하면 강남역까지 20분대 진입할 수 있어진다. 일대의 생활편의시설도 풍부해질 전망이다. 삼송지구는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되는 지역으로 계획적이고 체계화된 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삼송역 주변으로 삼송 테크노밸리가 들어선다. 또 신세계그룹이 지난해 10월 LH공사로부터 삼송지구 내 부지 9만 6000여㎡의 부지를 사들여 2017년까지 교외형 복합쇼핑몰을 건립할 계획이다. 쾌적함, 편리한 교통, 생활편의시설 등 삼박자를 모두 갖춘 삼송지구 내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자연을 품은 녹색아파트 ‘삼송 아이파크’를 분양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총 7개 동, 지하 2~지상 24층 규모로 610가구, 전용 100㎡, 116㎡로 구성된다. 또 전 세대가 남향 위주로 배치됐다. 단지 내 녹지율은 48% 수준이며 단지 전체가 자연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분양관계자에 따르면 “전용 100㎡형은 삼송아이파크의 주력상품으로서 조망이 우수하고 남향 위주로 배치됐으며 4·1대책 이후 문의가 훨씬 증가했다”며 “북한산 조망과 뉴코리아 골프장, 공릉천 등 탁월한 조망권 프리미엄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단지 바로 동쪽으로는 공릉천이 있어 가벼운 산책하기도 수월하다”고 전했다. 삼송 아이파크는 분양가상한제 적용받는다. 계약 즉시 전매도 가능하다. 대출이자 60% 4년간 지원, 발코니확장무료, 이사비용 지원서비스 등 계약자들에게 수많은 혜택이 제공된다. 분양문의: 1577-1551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朴대통령, 국정원·警 바르게 할 책임”

    “朴대통령, 국정원·警 바르게 할 책임”

    지난 대선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제 와서 박 대통령에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16일 지난 대선 때 자신을 전담 취재했던 기자들과 북한산 둘레길 산행을 한 뒤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그 일을 제대로 수사하게 하고, 엄정하게 처리하게 하고, 국정원과 경찰이 바로 서게 만드는 계기로만 만들어 준다면 그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촉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 의원은 “국정원 부분은 솔직히 조금 분노가 치민다. 그 시기에 국가정보기관이 특정 후보 당선은 막아야겠다, 이런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갖고 선거를 좌우하려고 했던 거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런 식의 시도가 행해졌다는 것 자체도 분노스러운 일이고, 또 그런 행각이 드러났는데도 경찰이 수집한 증거 자료까지도 파기해 버리고 왜곡된 발표를 한 건 파렴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 결과를 보면서 더더욱 분노스러운 건 그렇게 국가 기본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들이 발생했는데 아직도 정권 차원에서 비호하려는 그런 식의 행태”라면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독자 세력화에 나선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 대해서는 “가는 방향은 같아서 결국에는 필요할 때 강물이 모이듯이 모일 수 있을 것이며 안 의원의 여러 활동은 ‘2017년 희망’이라는 차원에서 아주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라면서 “민주당을 혁신하게 만드는 외부 동력이나 자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안 의원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세운 것에는 “민주당과 다르다는 생각으로 쓴다면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며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말을 독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당원정당론’을 앞세운 데 대해서는 “그나마 확고했던 (국민) 참여를 다 잘라 버리고 당원 중심으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 정당으로 커 나가야 한다”며 반대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한산모시·나전칠기 스타들마저… 웬만해선 그들을 살릴 수 없다?

    [주말 인사이드] 한산모시·나전칠기 스타들마저… 웬만해선 그들을 살릴 수 없다?

    독일 ‘쌍둥이칼’은 280년 전 군인용 단검을 만들던 대장장이 마을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출발했다. 산업혁명 때 민수용으로 전환했다. 오롯한 장인 정신에 생산환경 변화에 맞춰 디자인과 기술 개발이 덧칠됐다. 러시아 목각인형 ‘마트료시카’는 120여년의 역사를 뽐낸다. 일본 목각인형에 착안했다. 예술가들이 수작업으로 만들면서 러시아 상징 민예품이 됐다.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명품이나 한 나라의 상징물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제품들은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했다. 보잘것없는 규모로 출발했을 가내수공업이 전통의 두께를 더하고, 현대 감각에 맞게 발전하면서 세상 사람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최고 명품이 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전통 가내수공업은 딴판이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수공업 제품조차 ‘몰락’했다고 할 만하다. ‘화문석’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인천 강화군 강화읍 남산리 강화토산품판매장이 몇해 전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 재래 돗자리 중 최고급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다. 화문석체험장을 운영하는 고미경(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씨는 “예전에는 강화 5일장에 화문석시장이 따로 마련됐는데 줄어든 거래량 탓에 아예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1880년대 강화 일대에는 화문석 재료인 왕골 재배 농가가 1000여 가구나 됐으나 지금은 고작 100가구 남짓이다. 그나마 가구당 재배 면적은 330~660㎡뿐이다. 대개 부업에 그치고 송해·양사면 일부 가구에서 주문을 받아 연간 2000~3000장 짜는 정도다. 1970년대 강화에서만 연간 5만여장이 생산됐는데 말이다. 39년간 수도 역할을 한 고려 중엽 왕실에까지 공급했던 화문석이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것이다. 화문석의 몰락은 1980년대 이후 주거 형태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카펫이 대세를 이룬 탓이다. 전북 전주 부채도 에어컨과 선풍기에 자리를 내줬다. 부채는 일부 무형문화재들이 소량 생산하고 있다. 양반들은 합죽선, 서민들은 태극선을 무더위를 날리는 필수품으로 삼았지만 이젠 장식품, 소장품, 선물용으로 나가는 정도다. 반면 제작 과정은 복잡해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최공호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 가내수공업은 원형만 고집하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산업화가 자신의 역사인 외국에선 가내수공업도 자연스럽게 진화했지만 우리는 새것을 급히 받아들이면서 전통 수공업을 버리다시피 한 게 큰 이유다. 외국인들이 선뜻 구입할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전통 제품이 없는 게 아쉽다. 관련 통계조차 없다”고 말했다. 한때 1만 4000가구에 이르던 전남 보성삼베 제작 농가는 10가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원료인 대마 생산량은 2004년 40t(30㏊)에서 2011년 7.1t(4.3㏊)으로 줄더니 올해 5농가에서 겨우 2㏊를 재배한다. 보성삼베 영농조합 이찬식(70) 대표는 “36년째 종사하는데 너무 힘들고 일손도 부족해 버티기 힘들다”면서 “삼베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고, 일당이 5만원도 안돼 일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남 담양 죽세품의 명성도 옛날얘기다. 대나무공예 명인 9명, 준명인 4명, 무형문화재 6명과 일부 농가에서 만들지만 31개 판매 업소에서도 중국산을 팔 정도로 위상은 초라하다. 경기 안성 유기는 현재 3곳만 가족 공방을 운영 중이고, 경북 안동포는 100여명이 삼베를 짜고 있으나 예전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권구찬 안동시 주무관은 “삼에서 실을 만드는 삼삼기가 삼베 짜기의 95%를 차지하는데 기계화가 안 돼 있다”면서 “그렇다 보니 값이 비싸 일부 부유층의 옷과 침구 등으로만 만들어지고 청바지 등 현대 의류 제작은 엄두도 못 낸다. 정부가 기계 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안동포 부활은 꿈도 못 꾼다”고 내다봤다. 명성이 덜한 가내수공업은 더 쪼그라들었다. 충남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 고살메마을의 ‘갈꽃비’가 그 예다. 한때 농한기 최고 농가소득원이었던 이 빗자루가 청소기와 플라스틱 빗자루에 밀린 것이다. 농촌 고령화도 한몫했다. 갈꽃의 부드러움으로 자잘한 먼지까지 쓸어 내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은 10명 남짓한 주민이 해마다 3000자루를 만든다. 본래의 용도를 벗어나 장식용으로 많이 팔린다. 이장 한병우(51)씨는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우면서 빗자루를 만들던 옛날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요즘은 강원 철원 등에서 조금씩 갈대를 사와 빗자루를 만들지만 이마저 머잖아 사라질 판”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스위스는 한 마을 전체가 가위만 만들어 유명해졌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유리공예, 일본은 도자기 마을을 상품화해 외국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면서 “우리 가내수공업은 외국인 특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생산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최고 명품은 수공업에서 태어난다. 우리도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나전칠기가 명함 케이스 등으로 상품을 다각화하는 것에 주목했다. 충남 서천 한산모시도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150년간 양반들 바지저고리를 만들던 데서 벗어나 청바지, 와이셔츠, 팬티, 양말 등 현대 제품까지 제작한다.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고 브랜드화해 모시떡과 모시막걸리 등 먹거리까지 제품을 확대했다. 모시풀 재배 농가도 지난해 150곳에서 올해 190곳으로 늘었다. 2005년 서천군이 한산모시세계화사업단을 만들어 지원한 뒤 모시 제품이 다양하게 개발돼 팔리기 시작하자 주민들이 ‘돈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간 소득은 20억원으로 늘었고, 고용 33명 등 부수 효과도 생겼다. 김맹선 군 한산모시계장은 “아직 해외 지명도가 낮지만 현대 감각에 맞게 상품을 개발하고 고급화해 부유층이 찾다 보면 외국에서도 알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농업과학원 정명철 박사는 “(전통 가내수공업은) 지금 없어지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이미 많이 사라졌다.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가져야 부활을 꿈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천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강화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日관광객 8개월 연속 감소

    日관광객 8개월 연속 감소

    평소 일본인 관광객으로 붐비던 서울 중구 명동의 화장품 매장 앞이 항공권 경품에도 불구하고 14일 오후 한산했다. 일본인 관광객 수는 엔화 약세와 북핵 위기 등이 겹치면서 8개월 연속 감소했다. 지난 4월 한국에 온 일본인 관광객은 20만 2000명으로 2년 2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13일 박영석기념관 국민참여 선포식

    서울 마포구는 13일 오후 3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영석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은 물론, 여야 정치인들, 대한산악연맹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박영석기념관 건립 국민참여선포식’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박영석은 8000m급 히말라야 14개봉과 북극·남극 및 대륙별 최고봉에 올랐고, 2009년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남서벽에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는 등 한국이 낳은 최고의 산악인으로 꼽힌다. 2011년 새로운 길을 뚫기 위해 안나푸르나에 올랐다가 실종됐다. 그를 기리기 위해 박영석의 고향 마포구는 지난 3월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 등 400여명으로 이뤄진 ‘박영석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번 행사는 기념관 건립을 국민적 행사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추진위는 기념관 건립을 위한 부지 확보와 성금 모금 캠페인도 함께 벌인다. 추진위 관계자는 “이번 국민선포식을 새롭게 확대 개편된 추진위원회 위원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로 진행함으로써 조속한 시일 내에 서울시가 부지 확보에 나설 수 있도록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높은 山만 제맛인가, 바위맛도 한번 보소

    높은 山만 제맛인가, 바위맛도 한번 보소

    ‘불수사도북’이라고 합니다. 한강 이북, 그러니까 서울 강북과 남양주 등 경기 북부 지역을 둘러친 불암산(507.7m)-수락산(637.7m)-사패산(552m)-도봉산(740m)-북한산(836.5m)을 뭉뚱그려 일컫는 표현입니다. 등산 애호가들에게 서울 등 수도권은 축복받은 곳일 겁니다. 지하철, 혹은 버스를 타고 조금만 나가도 이 같은 명산들과 만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외국인들이 한국처럼 산행하기 좋은 나라 드물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불수사도북의 막내’ 불암산에 올랐습니다. 크기와 높이가 다른 산들에 뒤질지언정, 갖출 건 다 갖췄습니다. 우람한 기암들의 기세는 융융했고, 잎 너른 나무들이 이룬 숲은 제법 깊었습니다. 정상에서 맞는 풍경 또한 어지간한 명산에 뒤지지 않더군요. 꼭 고산준봉에 올라야 제맛이겠습니까. 멀찍이 떨어져 가슴으로 품어도 좋은 것이지요. 마음 단단히 먹고 산에 오르기 부담스러운 당신이라면 불암산이 좋은 대안이 되지 싶습니다. 불암산은 서울과 경기 남양주 등에 걸쳐 있다. 두 도시의 경계가 되는 산이기도 하다. 도시와 인접한 산이다 보니 등산로가 많다. 서울 쪽에서만 무려 열 개다. 걷기 열풍에 힘입어 조성된 불암산 둘레길까지 포함하면 11개의 길이 뒤엉켜 있다. 오르는 길이 많으니 들머리를 어디로 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하기 십상이다. 산속에 들더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존 등산 이정표에 둘레길 이정표까지 함께 세워져 있어 어디로 가야할지 헷갈리기 일쑤다. 이게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들고 나는 곳을 임의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루트로 오르내릴 수 있다. 등산 거리와 산행 시간 등을 각자 상황에 맞게 조정하기 쉽다는 뜻이다. 예전엔 남양주 쪽의 불암사 코스로 오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요즘엔 서울 공릉동 백세문(제9등산로)을 들머리 삼는 이들이 많다. 거리는 5.3㎞로 다른 코스들에 비해 월등히 길다. 원점 회귀한다면 소요시간 또한 4~5시간 이상으로 확 늘어난다. 여느 코스들의 2~3시간에 견줘 다소 긴 편이다. 이 길의 최대 장점은 평탄하고 수월한 길을 자박자박 걸을 수 있다는 것. 불암산 정상 아래 깔딱고개까지 언제 도착했나 싶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공릉동 백세문을 들머리 삼아 오른다. 길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 있다. 인근 군부대, 그리고 태·강릉 등 문화재 지역을 등산로와 구분하려는 철책이다. 30분 만에 첫 전망대와 만난다. 발 아래로 육군사관학교 등 태릉 일대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서울을 둘러싼 명산에 전설 한 자락 없으랴. 등산로 중간의 안내판에 담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었단다. 그러다 조선 개국 초기, 위정자들이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려다 남산이 없어서 주저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불암산은 한양의 남산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끝에 무작정 상경을 결심한다. 한데 서울에 와 보니 남산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발끈한 불암산은 그때부터 서울을 등지고 서 있게 됐다는 얘기다. 공명심을 좇는 건 사람과 산이 다르지 않은 게다. 104마을 갈림길과 삼육대 갈림길 등을 줄줄이 지나면 학도암 갈림길이다. 예서 학도암까지는 약 500m 남짓. 왕복 1시간 이상을 험한 내리막과 오르막길을 번갈아 걸어야 한다. 현재 학도암 전체가 공사 중이니만큼, 꼭 절집을 들러야 할 이유가 없다면 굳이 발걸음 하지 말길 권한다. 학도암의 자랑은 길이 13m의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보살좌상이다. 조선 후기에 명성황후의 지시와 후원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정으로 주변의 돌들을 모두 파내는 ‘돋을새김’ 방식으로 조각돼 한결 이채롭다. 마애불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상계동 달동네다. 바짝 육박해 온 아파트 숲과 허름한 달동네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학도암에서 헬기장을 지나 깔딱고개에 이르면서 풍경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삐죽 솟은 기암들 가운데 일부는 바깥쪽으로 너른 반석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풍경 전망대를 겸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등산로를 벗어나 거대한 암릉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특수 리지화를 신고 암벽 등반을 즐기는 이들이다. 불암산은 워낙 암릉이 발달해 북한산에 견줄 만큼 암벽 리지 등산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불암산 정상은 360도 파노라마 전망대다. 어느 한곳 막힘이 없다. 온통 암벽으로 이뤄진 석장봉 너머로 ‘불수사도북’의 형제산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장쾌한 풍경이다. 최근 ‘불암산 둘레길’을 이용하는 ‘걷기 마니아’들도 늘고 있다. 정상은 밟지 않고 불암산 서쪽 자락을 따라 걷는다. 잎 넓은 나무들이 푸른 그늘을 만들어 여름철에 특히 돋보이는 구간이다. 학도암과 남양주 쪽의 삼육대를 거쳐 ‘한국 스포츠의 요람’ 태릉선수촌, 육군사관학교 옆의 메타세쿼이아 길까지 이어진다. 길이는 총 13㎞ 정도다. 둘레길의 ‘실질적인 들머리’는 노원구 상계동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다. 상계역을 나와 좌회전, 다시 좌회전해 큰길로 나와 경남아파트단지 왼쪽 편을 끼고 크게 돌면 ‘불암산 공원’이라 쓰인 큰 비석이 보인다. 이게 둘레길의 출발점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100m 정도 오르면 ‘불암산 숲탐방로 입구’라고 쓰인 안내판 옆으로 갈림길이 나온다. 활엽수림 사이로 난 길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이어지는데, 운동효과가 만점이다. 힘든 산행 뒤 맛있는 국수로 일정을 마무리 짓는 것도 좋겠다. 연세방병원~공릉초등학교 사이 1.3㎞ 구간에 국수거리가 조성돼 있다. 멸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등 다양한 국수를 파는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산행 들머리인 공릉동 백세문 가는 길은 쉽다. 원자력병원 뒤쪽, 효성아파트 옆에 있다.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1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거리다. 글 사진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다시 주목받는 박정희 前대통령 유품

    다시 주목받는 박정희 前대통령 유품

    미술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나 유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친필 휘호인 ‘독서하는 국민’(1970)이 위작 논란을 불러온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부친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는 13일부터 역대 대통령 휘호전을 개최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휘호를 함께 내놓았다. 새마을 운동의 기조가 된 ‘조국근대화’(1965)부터 ‘우리들의 후손들이’(1967), ‘개척과 전진’(1970),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1971) 등 박 전 대통령의 휘호 10여점이 관심을 끈다. 시해되기 한달여 전 남긴 ‘민족정기의 전당’(1979)도 공개됐다. 미술계에서 박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정치 이념을 휘호로 가장 잘 드러낸 이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공개된 박 전 대통령의 휘호나 현판은 1200개에 이른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성윤진 롯데갤러리 책임 큐레이터는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휘호를 쓴 연도와 날짜가 기록된 참조문헌도 있다”고 밝혔다. 미술품 경매사인 아이옥션도 오는 18일 박 전 대통령과 이현진 장군이 1974~1978년 주고받은 서신을 경매한다. 또 다른 경매사인 마이아트옥션은 20일 경매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시조 형식의 ‘한산섬: 친필시고’를 공개했다. 1970년 충무공 탄신 425주년을 맞아 시조작가협회에서 발간한 기념 시조집에 실린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 원고다. 이는 친필로 쓴 유일한 시 작품으로 추정되며 경매 최저가는 2000만원으로 잡혔다. 미술시장에서 전직 대통령의 휘호에 대한 선호도는 박정희, 이승만, 김대중, 김영삼, 윤보선 전 대통령 순으로 알려졌다. 미술시가감정협회가 2006~2012년 집계한 기록에 따르면 휘호 거래 총액은 박정희(9억 230만원), 이승만(5억 1550만원), 김대중(1억 9463만원) 전 대통령 순으로 높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