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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문재인 대통령-北 김정은 위원장, 기념촬영 마치고 자리로

    [서울포토] 문재인 대통령-北 김정은 위원장, 기념촬영 마치고 자리로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평화의 집 북한산 그림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북한산 그림 바라보며 마주선 남북정상

    [서울포토] 북한산 그림 바라보며 마주선 남북정상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평화의 집 북한산 그림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통일의 맛 찾아라”… 정릉 개울장 문열다

    “통일의 맛 찾아라”… 정릉 개울장 문열다

    정릉의 명물 ‘동행(同幸) 개울장’이 개장한다.서울 성북구는 지역 주민과 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인 개울장을 오는 28일을 시작으로 11월까지 매월(7~8월 제외) 둘째·넷째 토요일에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정릉시장과 정릉천 일대에서 펼쳐지는 개울장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2014년 시작됐다. 주민과 청년이 수제물품과 중고물품의 판매자로 참여한다. 지역 단체가 진행하는 다양한 체험 워크숍과 인디밴드, 마을·상인 동아리가 참여하는 ‘미태극장’ 등 다채로운 행사도 마련된다. 특히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통일의 맛을 찾아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북한 주민에게 인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하는 정릉시장 먹거리를 뽑는 것이다. 이밖에 통일 포토존, 통일 응원 메시지 남기기 등의 이벤트가 진행된다. 지난해까지 개울장에 참여한 판매자만 2000여명이며 장이 설 때마다 평균 4000여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구 관계자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우이신설선의 개통으로 북한산 등산객 등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울장 판매자로 참여하려면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cfmarket)에서 신청하거나, 카카오톡 친구 맺기를 하면 된다. 문의는 마을인시장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화(02-941-3683)하면 된다. 백재선 정릉시장상인회장은 “많은 사람이 개울장을 찾아 만족해하는 것을 보면서 ‘전통시장도 경쟁력만 있다면 해볼 만 하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2000년 진돗개·풍산개, 2007년 병풍·송이버섯

    2000년 진돗개·풍산개, 2007년 병풍·송이버섯

    文, 평화·통일 의미 선물 예상 술·화장품·귀금속 제외될 듯 정상 간 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의식 중 하나가 선물 교환이다. 선물 속에는 만남의 의미와 목적, 남다른 친밀감이나 드러나지 않았던 서운함 등을 담는다. 앞서 두 차례의 남북 정상 간에도 선물이 오고 갔다.2000년 첫 번째 회담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선물했다. 또 국내방송이 수신되는 60인치 TV 1대, 영상녹화재생기(VTR) 3세트, 전자오르간 등을 선물했다. 진돗개 두 마리는 평화 통일을 바란다는 뜻에서 각각 ‘평화’와 ‘통일’로 이름을 지었다. 김 대통령이 북한에서 받은 선물은 방북 둘째 날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방문했을 때 주준호 어린이가 쓴 붓글씨 ‘조국통일’이었다. 진돗개의 답례로는 북한의 명견 풍산개를 받았는데 이름이 ‘단결’과 ‘자주’였다. 이후 남으로 와 풍산개 이름은 ‘우리’와 ‘두리’로 바뀌었다. 2007년 두 번째 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통영 나전칠기로 만든 12장생도 8폭 병풍, 무궁화 문양의 다기와 접시를 포함해 전남 보성 녹차 등 8도 지역의 명품 차(茶),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 DVD 등을 선물했다. DVD 목록에는 배우 이영애씨의 팬으로 알려진 김정일 위원장을 위해 이씨가 사인한 ‘대장금’도 포함했다. 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통 큰’ 선물을 했다. 함경북도 칠보산의 자연산 송이 500상자로, 무게는 4t에 가격이 8억원 규모였다. 이 북한산 송이는 이후 남측 사회지도층과 소외계층 3800여명에게 1㎏씩 전달되었는데, 김 위원장은 “민족의 향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기호를 고려한 선물이나 평화, 통일 등 특별한 의미를 담은 선물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에 따라 사치품의 대북 거래가 금지됨에 따라 주류, 화장품, 귀금속, 전자기기 등은 선물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산(産) 산삼, 청색 돌냄비 등을 선물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서 교환할 선물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서 교환할 선물은

    정상 간 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의식 중 하나가 선물 교환이다. 선물 속에는 만남의 의미와 목적, 남다른 친밀감이나 드러나지 않았던 서운함 등을 담는다. 앞서 2차례의 남북 정상 간에도 회담 때마다 선물이 오고 갔다. 2000년 첫 번째 회담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진돗개 2마리와 국내방송이 수신되는 60인치 TV 1대, 영상녹화재생기(VTR) 3세트, 전자오르간 등을 선물했다. 진돗개 2마리는 평화통일을 바란다는 뜻에서 각각 ‘평화’와 ‘통일’로 이름을 지었다. 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풍산개 2마리, 자연산 송이로 화답했다.2007년 두 번째 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통영 나전칠기로 만든 12장생도 8폭 병풍과 무궁화 문양의 다기와 접시를 포함해 전남 보성 녹차 등 지역별 명품 차(茶),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 DVD 등을 선물했다. DVD 목록에는 배우 이영애씨의 팬으로 알려진 김정일 위원장을 위해 이씨가 사인한 ‘대장금’도 포함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기호를 고려한 선물이나 평화, 통일 등 특별한 의미를 담은 선물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 등의 후속 조치에 따라 사치품의 대북거래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주류, 화장품, 귀금속, 전자기기 등은 선물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북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산(産) 산삼, 청색 돌냄비 등을 선물했다. 이번에 양 정상은 별도 만찬을 갖는 만큼 만찬을 전후해 선물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5000년, 세월이 지나 시간으로 남다 - 국립중앙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5000년, 세월이 지나 시간으로 남다 - 국립중앙박물관

    “피의 유물(blood antiquities, 블러드 앤티크)” 전쟁과 침략은 모든 것을 바꾼다. 그 중 수천 년 동안 한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문화재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최근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즉 IS라고 불리는 테러 집단이 점령했던 시리아의 고대 로마, 비잔틴 유적지인 아파메아(Apamea)의 경우 위성으로만 보아도 5,000여개 이상의 도굴 흔적이 확인 된다. 실상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IS가 쓸고 간 시리아 지역에서 약탈된 피의 유물(blood antiquities, 블러드 앤티크)은 현재 추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및 각종 전란, 일제 강점 및 6.25 한국전쟁을 거쳐 수탈된 우리 문화재는 확인된 것만 8만 7천여 점이 넘는다. 국가도 다양해서 일본이 거의 80%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박물관 등지까지 우리나라 박물관에 당연히 있음직한 귀한 우리의 문화재들이 고스란히 전시중이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에 반환을 요구했던 공공기관 소장 한국문화재만도 4천4백79점이었으며 이중 일본 정부 소유 1천 3백여 점만이 1966년 5월에 반환되었고, 1967년에는 조선총독부가 동경박물관으로 반출했던 창령 고분 출토유물 1백6점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여전히 문화재 반환 노력은 진행 중이지만 해결은 쉽지 않다. 말 그대로 ‘로마는 로마에 있지 않고 프랑스와 영국에 있다’라는 말처럼 조선은 서울에 있지 않고 동경과 파리에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천 년 역사의 풍파 속에서 남은 흔적을 모으고 모아,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에 들어간다는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가 보자. 2005년에 용산에 이전한 국립 중앙 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나 전시품들이 훌륭하다. 당연히 대한민국 최고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소장 유물만으로도 약 33만 점이 넘는 규모이니 관람객 수 기준으로는 아시아 1위는 분명하다. 지금의 국립 중앙 박물관의 연혁은 1909년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이후 일제 강점 시기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 기간을 거쳐 1946년에 덕수궁 안의 석조전 건물에서 지금의 박물관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이후 중앙청 건물과 경복궁 내 건물 등에 옮겨 다니다 2005년에 용산에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장은 총 6개의 관과 50개의 실로 구성되어 12,044점의 유물을 전시하여 제공하고 있다. 국보 3호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비롯해서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들과 보물 등이 외부전시일정 및 유물의 보존 상태를 위하여 주기적으로 교체 전시되고 있다. 우선 중앙 로비인 으뜸홀을 기준으로 1층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통일신라, 발해 시기까지의 선사 고대관과 고려, 조선, 대한제국의 역사자료가 있는 중, 근세관이 있다. 2층에는 개인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기증관과 서화와 불교 회화, 목칠 공예 등을 전시하는 서화관이 자리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3층에는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아시아관과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의 도자 공예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조각 공예관이 있다. 또한 이러한 상설전시 외에 특별전시회 등도 시기마다 다채롭게 열리고 있어 1년 365일 볼거리가 가득한 박물관임은 분명하다. 오천 년의 세월을 지나 시간의 흔적으로 남은 귀한 유물들을 통해 다시금 우리 역사와 문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시간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히 봄하늘 미세먼지 공습으로 인한 바깥나들이가 여의치 않다면 국립중앙 박물관은 훌륭한 체험 장소임은 분명하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당연하다. 한 번이 아니라 수 십 번이라도 방문을 해도 좋다. 상설전시는 무료다. 2. 누구와 함께? - 어린이 박물관 시설이 아주 훌륭해서 가족 동반 나들이 장소로도 훌륭하다. 3. 가는 방법은? - 4호선 / 경의중앙선(문산-용문) / 이촌역 2번출구 방향 '박물관 나들길’ 4. 감탄하는 점은? -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나마 보았던 실물 유물들, 3층 아시아 문화관.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너무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주중은 한산한 편. 6. 꼭 봐야할 장소는? - 1층 대한제국실, 3층 고려 청자실 7. 먹거리 추천? -인근에 이태원이나 경리단길에 훌륭한 식당들이 많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www.museum.go.kr/site/main/home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이태원 거리, 경리단 거리, 전쟁박물관, 한글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한 국가가 지닌 문화의 힘은 박물관에서 나온다고 한다. 박물관 나들이는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고 실내 나들이 공간으로는 최고의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봄나들이 적극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文·金 동시 입장…심리적 거리감 줄인 ‘타원 테이블’ 앉는다

    文·金 동시 입장…심리적 거리감 줄인 ‘타원 테이블’ 앉는다

    출입구서 南 왼쪽 北 오른쪽에 정상 의자엔 독도 포함 한반도기 정면 벽면엔 금강산 그림 걸어 파란 카펫…한옥 모티브 실내 3층 만찬장도 대대적 리모델링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 동시에 입장해 ‘2018년’을 기념하는 2018㎜ 너비의 긴 타원형 책상을 두고 마주 앉는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판문점 평화의집 주요 공간을 정비했다”며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대표단과 함께 열띤 논의를 벌일 책상은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둥근 형태로 제작됐다. 고 부대변인은 “남북이 함께 둘러앉아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남북 정상은 회담장 가운데 있는 출입구로 동시에 입장해 남측 대표단은 왼쪽에, 북측 대표단은 오른쪽에 앉을 예정이다. 양 정상은 팔걸이가 있는 흰색 의자에 앉는다. 등받이에는 독도, 울릉도, 제주도까지 포함된 한반도기를 새긴 문양을 넣었다. 배석자들은 흰색 의자를 기준으로 양쪽에 3개씩 모두 12개가 놓인 노란색 의자에 앉는다. 새로 배치된 가구들은 남북 정상회담 현장의 원형 보전을 위해 뒤틀림이 적은 호두나무 목재를 주로 사용했다. 고 부대변인은 “당초 장관급회담 장소였던 평화의집에는 정상회담에 걸맞은 기본적 가구가 구비되어있지 못했다”며 “정비 과정에서 예산 절감을 위해 꼭 필요한 가구만 신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회담장 정면 벽면에는 남북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을 그린 작품을 걸었다. 서양화가 신장식 화백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다. 신 화백은 금강산을 10여 차례 방문해 ‘금강산 작가’로 불린다. 회담장 입구 양쪽 벽면에는 천경자 화백의 제자인 이숙자 화백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를 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푸른 보리를 통해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시각화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회담장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정상은 12폭 전통 창호문을 배경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게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푸른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파란 카펫으로 회담장을 단장하고 전체적으로 한옥 내부 느낌이 나도록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될 1층 로비 정면에는 민중미술 대표작가인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이 걸렸다. 고 부대변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라며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이름은 ‘북한’산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한지 창호문으로 꾸민 1층 환담장에는 서예가 여초 김응현의 ‘훈민정음’을 재해석한 김중만 작가의 사진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을 걸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성씨 중 ‘ㅁ’과 김 위원장 성씨 중 ‘ㄱ’을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강조했다. 방명록 서명대와 의자는 각각 ‘해주소반’과 ‘길상 모양’이 떠오르도록 제작했다. 방명록 서명대 뒤로는 김준권 화백의 ‘산운’이 배치됐고 정상 접견실 정면으로는 수묵화가 박대성 화백의 ‘장백폭포’와 ‘일출봉’을 걸었다.기존 대회의실로 쓰였던 3층은 하얀 벽에 청색 카펫을 깐 연회실로 바뀌었다. 환영 만찬이 열릴 연회실엔 수묵화가 신태수 화백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걸렸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 두무진에서 황해도 용연반도 끝부분인 장산곶까지는 불과 15㎞다. 고 부대변인은 “분쟁의 상징이었던 서해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연회장 밖 복도에는 이이남 작가의 디지털 작품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평화의 길목’을 놓았다. 꽃 장식은 조선백자의 정수로 꼽히는 ‘달항아리’에 화사한 작약과 우정의 의미를 지닌 박태기나무, 비무장지대의 야생화, 제주 유채꽃 등을 담았다. 판문점공동취재단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서울포토] 남북정상회담장 장식한 미술품 눈길…‘북한’ 최고 지도자 맞는 ‘북한’산

    [서울포토] 남북정상회담장 장식한 미술품 눈길…‘북한’ 최고 지도자 맞는 ‘북한’산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평화의집 실내 곳곳에는 성공적 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기원하는 의미의 다양한 미술품이 걸려 눈길을 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로 미술품을 선정했다”며 ”그림 하나에도 이야기와 정성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될 1층 로비 정면에 걸린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이름은 ’북한’산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고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청와대 제공
  • [영상] 미리 가본 남북정상회담장 ‘평화의 집’

    [영상] 미리 가본 남북정상회담장 ‘평화의 집’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평화의집 실내 곳곳에는 다양한 미술품이 걸려 눈길을 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로 미술품을 선정했다”며 “그림 하나에도 이야기와 정성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될 1층 로비 정면에는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이 걸렸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이름은 ‘북한’산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고 부대변인은 설명했다.방명록 서명 장소 뒤쪽으로는 김준권 작가의 ‘산운’이 배치됐다. 수묵으로 그린 음영 짙은 산이 안정적인 구도를 연출하는 그림이다. 1층 정상 접견실 내 병풍은 세종대왕기념관이 소장한 ‘여초 김응현의 훈민정음’을 김중만 작가가 재해석한 사진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이다. 김 작가는 문 대통령 성(姓)의 ‘ㅁ’을 푸른색으로, 김 위원장 성의 ‘ㄱ’을 붉은색으로 강조해 두 정상이 서로 통하기를 소망하는 뜻을 작품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 접견실 정면으로는 박대성 작가의 ‘장백폭포’와 ‘일출봉’이 놓였다. 국토의 남북단에 있는 백두산 장백폭포와 제주 성산일출봉 그림을 한 데 모아놓은 것이다. 2층 회담장의 배경이 될 출입문 맞은편 벽에는 금강산의 높고 푸른 기상을 담은 신장식 화백의 작품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 걸렸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그림을 뒤로 하고 취재진 앞에서 악수할 예정이다. 고 부대변인은 “2008년 이후 다시 가지 못하는 금강산은 누구나 다시 가고 싶어하는 명산”이라며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을 회담장 안으로 들여 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소망했다”고 말했다. 또 회담장 입구 양쪽 벽면에는 이숙자 작가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이 배치됐다. 강인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푸른 보리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3층 연회장 헤드테이블 뒤에는 신태수 작가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걸렸다. 북한과 마주한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해안가를 묘사한 회화로, 서해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이밖에 연회장 밖 복도에는 이이남 작가의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평화의 길목’을 놓았다. 액정표시장치(LCD)에 고전 회화를 띄우는 형식의 디지털 작품이다. 고 부대변인은 “무릎이 닿을 만큼 함께 할 남북 정상에게 이 상징적 공간이 소리 없이 말을 걸게 했다”며 “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순신 장군 리더십 배우고 체험하는 이순신 리더십 국제센터 개관

    이순신 장군 리더십 배우고 체험하는 이순신 리더십 국제센터 개관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리더십을 체험하고 배우는 연수시설인 ‘이순신 리더십 국제센터’가 경남 진해에 건립됐다. 경남 창원시는 25일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옛 해군 시설 운전학부 터에 2014년 착공한 연수 전문 시설인 ‘이순신 리더십 국제센터’가 완공돼 충무공 탄신일인 오는 28일 개관한다고 밝혔다.이순신 리더십 센터는 정부가 주도하는 남해안 관광 클러스터 개발사업 가운데 하나로 추진한 사업이다. 국비와 지방비 159억원을 들여 지었다. 시는 이순신 리더십 이론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관광산업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해 연수시설 이름을 이순신 리더십 국제센터로 지었다고 밝혔다.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6692㎡ 규모로 1·2층에는 대회의실과 중회의실 , 식당, 편의시설 등이 있다. 3층에는 이순신 리더십을 체험하는 전시·체험관이 설치돼 있다. 4~5층은 커뮤니티 공간과 숙소시설이다. 숙소는 모두 34실이며 100명을 수용한다. 센터 핵심 공간인 체험·전시관은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프롤로그·생애관·창조관·해전관·기록관·통솔관·에필로그 등 모두 7개 구역으로 나누어 최신 전시기법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꾸몄다. 건물 입구와 야외 마당에 웅장한 거북선과 어록을 새긴 조형물도 설치했다. 1층 로비 벽면에는 이순신 장군 초상화와 학익진(鶴翼陣·전투에서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로 적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진법)으로 왜군을 유인해 모조리 무찌른 한산대첩,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 그림을 파노라마 벽화로 그려 놓았다.시 관계자는 “앞으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여러가지 교육과정과 현장 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 이순신 리더십 센터를 세계적인 리더십 교육의 전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미술품…‘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미술품…‘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평화의집 실내 곳곳에는 다양한 미술품이 걸려 눈길을 끈다.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5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이라는 주제로 미술품을 선정했다”며 “그림 하나에도 이야기와 정성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될 1층 로비 정면에는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이 걸렸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이름은 ‘북한’산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고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방명록 서명 장소 뒤쪽으로는 김준권 작가의 ‘산운’이 배치됐다. 수묵으로 그린 음영 짙은 산이 안정적인 구도를 연출하는 그림이다. 1층 정상 접견실 내 병풍은 세종대왕기념관이 소장한 ‘여초 김응현의 훈민정음’을 김중만 작가가 재해석한 사진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이다. 김 작가는 문 대통령 성(姓)의 ‘ㅁ’을 푸른색으로, 김 위원장 성의 ‘ㄱ’을 붉은색으로 강조해 두 정상이 서로 통하기를 소망하는 뜻을 작품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 접견실 정면으로는 박대성 작가의 ‘장백폭포’와 ‘일출봉’이 놓였다. 국토의 남북단에 있는 백두산 장백폭포와 제주 성산일출봉 그림을 한 데 모아놓은 것이다. 2층 회담장의 배경이 될 출입문 맞은편 벽에는 금강산의 높고 푸른 기상을 담은 신장식 화백의 작품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 걸렸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그림을 뒤로 하고 취재진 앞에서 악수할 예정이다. 고 부대변인은 “2008년 이후 다시 가지 못하는 금강산은 누구나 다시 가고 싶어하는 명산”이라며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을 회담장 안으로 들여 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소망했다”고 말했다. 또 회담장 입구 양쪽 벽면에는 이숙자 작가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이 배치됐다. 강인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푸른 보리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3층 연회장 헤드테이블 뒤에는 신태수 작가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걸렸다. 북한과 마주한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해안가를 묘사한 회화로, 서해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이밖에 연회장 밖 복도에는 이이남 작가의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평화의 길목’을 놓았다. 액정표시장치(LCD)에 고전 회화를 띄우는 형식의 디지털 작품이다. 고 부대변인은 “무릎이 닿을 만큼 함께 할 남북 정상에게 이 상징적 공간이 소리 없이 말을 걸게 했다”며 “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은평 ‘북한산 韓문화벨트’ 연다

    은평 ‘북한산 韓문화벨트’ 연다

    서울 ‘은평 북한산 한(韓)문화 체험특구’에 삼각산 금암미술관, 너나들이센터, 한옥전망대 등 문화체험 시설 3곳이 오는 26일 동시 개관한다. 은평구 진관동 한옥마을과 천년고찰인 진관사 등 관광명소에 이어 문화시설까지 개관하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한문화 체험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은평구는 19일 “이번 문화시설 3곳의 개관으로 ‘한문화벨트’가 완성돼 지역브랜드로서 은평 북한산 한문화 체험특구의 가치를 높이게 됐다”고 밝혔다. 은평한옥마을에 자리잡은 3개 문화시설은 ‘한문화 흥취(興醉)’를 테마로 문을 연다. 먼저 삼각산 금암미술관은 시조 시인 이근배의 소장품과 작품을 통해 문인의 서재를 구성했다. 또 장인 박정애의 삼칠일, 백일, 첫돌에 사용한 복식을 전시해 무병장수, 부귀영화 등의 의미를 되새겼다. 무형문화재 중 전통기술 분야 전승자가 제작한 ‘전승공예품’도 전시된다. 너나들이센터는 한옥을 주제로 한 전시와 한복을 직접 입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가 사는 한옥’을 주제로 한 화가 김은희의 작품과 은평한옥마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 아카이브관이 마련됐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옥상에 있는 한옥전망대는 한옥마을과 북한산의 산세가 어우러진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전통적인 정자의 누마루 형식으로 은평한옥마을과 어우러지게 디자인됐다. 앞서 2015년 중소기업청은 진관동 한옥마을과 북한산성 마을 일대를 북한산 한문화 체험특구로 지정했다. 이후 구는 ‘은평한옥마을 8경’과 구의 문화유산 및 한옥을 전시·체험할 수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또 ‘G20 서울정상회의’ 당시 세계종교지도자 사찰 음식 시연회가 열리기도 한 천년고찰 ‘진관사’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마애여래입상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풍부한 ‘삼천사’ 등 한문화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다. 천상병·이외수·중광 등 세 작가의 작품과 유품이 전시된 ‘셋이서문학관’, 중요민속문화재인 ‘금성당’ 등도 둘러볼 수 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인수봉 사진 외길… “서울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담았죠”

    인수봉 사진 외길… “서울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담았죠”

    “고개를 들어 보니 큰 바위 얼굴이 있더군요. 제 회화와 사진 작업의 출발점이 인수봉이었음을 3년 전 깨닫고 너무 놀랐어요. 처음에는 북한산을 주제로 삼았는데 인수봉이 80%가 넘는 거예요. 벼락 맞은 것처럼 인수봉으로 좁혔지요.”호방하고도 보폭 넓은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온 임채욱(48)씨가 인수봉 작품전을 연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재학 시절 인수봉을 그린 그림과 한지로 구겨 표현한 것 등 서울의 46개 산 가운데 백운대 다음가는 봉우리이면서도 서울의 큰 바위 얼굴인 그 봉우리의 ‘초상’을 오롯이 담았다. 이뿐만 아니다. 인수봉과 인연이 깊은 클라이머들의 얼굴을 담은 ‘사람’, 여느 천만도시와 확연히 구분되는 인수봉과 ‘서울’의 어우러짐 등 세 주제로 나눠 50여점만 내건다. 다음달 1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의 4개 층에서 전시한다. 지하 2층에는 인수봉과 관련된 아카이브 전시를 보여 주고, 그로부터 차례로 서울, 사람, 초상으로 나눠 전시한다. 다음달 초에는 100여점의 사진과 인수봉에 관한 글 등을 담은 사진집이 세상에 나온다. 18일 서울 을지로 3가 인쇄골목의 작업실을 찾았더니 한지업체와 공동 개발한 작품용 한지에 현상한 작품들과 선우중옥과 함께 인수봉을 올랐던 이본 취나드(미국)가 초창기에 만들었던 취나드 피켈과 카라비너 배낭 등 등산 장비가 널려 있다. 작가의 맞은편에 무심코 앉았는데 등받이 쿠션이 나중에 보니 인수봉 바위 모양이다. 김민기 선생의 저 유명한 ‘봉우리’의 음원에 임 작가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곤 흔쾌히 허락해 줬다고 한다. 김 선생의 무심한 내레이션과 낡고 굵은 음색, 인수봉의 사계절이 멋지게 어우러졌다. “군대 생활할 때 수유리에서 강원 철원 가는 버스 타며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을 떠올렸어요. 인수봉이 보이면 서울에 왔구나 했어요. 인수봉이 서울이고 큰 바위 얼굴이었죠.” 초등학교 5학년 때 대학 은사인 이종상 화백의 화문집 가운데 독수리 작품을 모사한 것이 동양화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이미 인왕산, 설악산 등으로 작품전을 열었던 그의 사진에 수묵화의 멋이 스며든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그린 동양화가 독수리 그림이었는데 인수봉 귀바위도 보기에 따라 독수리 부리처럼 보이거든요.” 바위를 타진 않지만 인수봉과 인연이 깊은 클라이머 10명을 인수봉 앞에서 렌즈에 담았다. 인수봉 바윗길 가운데 첫손 꼽히는 취나드 코스를 개척한 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창업해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취나드의 철학과 마인드를 닮고 싶다고 했다. 여느 작가와 달리 등반가만의 인수봉이 아니라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끄는 인수봉의 면모를 함께 즐기고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인수봉과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런 맥락에서 심지어 ‘스마트 인수봉’도 만들었다. 한지의 투과성을 이용해 입체 모형 안에 스마트 전구를 넣어 1600만 가지 색깔을 내게 만들었다. 음악의 파동과 연결해 인터랙티브하게 반응하며 색깔을 달리하는 것까지, 이 작가의 새롭게 길 내는 작업은 가히 경계를 모르고 넘나든다. 임 작가는 “다들 이제 마무리된 건가 하실 텐데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조선 불황 경남 ‘해양 마리나’ 메카로

    조선 불황 경남 ‘해양 마리나’ 메카로

    2025년까지 1264억원 투입 통영엔 마리나 비즈니스 센터 고성엔 첫 해양전문 양성기관 침체된 지역 경제 살리기 시동 경남도는 장기간 불황에 빠진 조선업을 대체, 보완하기 위해 해양 마리나 산업을 육성한다.도는 이를 위해 조선산업이 몰려 있던 창원·통영·거제시와 고성군 등에 2025년까지 모두 1264억원(국비 584억원, 지방비 680억원)을 투입한다고 18일 밝혔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조선업 침체 지역 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대책’에 따라 통영시 산양읍 일원 4만 5000㎡에 2021년까지 국·지방비 190억원을 들여 ‘마리나 비즈센터’를 건립한다. 비즈센터에는 레저선박 및 해양레저 제조·수리·정비·전시·판매 시설을 비롯해 서비스 산업이 입주한다. 도는 비즈센터 조성, 운영에 경남 지역 조선산업 관련 인프라와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또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관광지 인근에 국·지방비 182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의 해양 전문 양성기관인 ‘해양레포츠 아카데미’를 하반기에 착공, 2020년까지 건립한다. 수상·수중레저 교육시설을 한 곳으로 모아 표준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해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창원시 진해구 명동에는 요트 300척을 계류할 수 있는 국가지원 거점 마리나 항만인 ‘창원 명동 마리나’를 450억원을 들여 하반기 착공, 2020년 완공한다. 거제시 남부면 근포리에 건설 중인 104척 계류시설 규모 ‘거제 근포 마리나’는 155억원을 들여 내년 완공한다. 계류시설 100척 규모인 ‘고성 당항포 마리나’는 156억원을 투입,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도는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통영 지역 9개 섬에 요트, 보트 등을 정박하고 머물 수 있도록 2025년까지 섬과 섬을 잇는 ‘어촌 마리나 역(驛)’을 구축한다. 국비 54억원과 지방비 10억원이 들어간다. 지난해 매물도항을 준공한 데 이어 올해는 욕지도와 사량도, 한산도에 계류시설과 클럽하우스 등을 설치한다. 김해 낙동강변 대동면·생림면과 밀양 밀양호, 진주 진양호, 하동 섬진강·하동호 등 6곳에 내수면 마리나 조성도 추진한다. 해양수산부가 오는 6월쯤 사업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도는 마리나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해양레저 관광산업이 활성화돼 지역경제 조기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민정식 해양수산국장은 “어업활동과 해양레저가 공존하는 피셔리나 조성 사업과 해양레저스포츠 대회를 개최하는 등 마리나 산업을 다각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양레저 전문가들은 “경쟁과 과잉 투자로 어려움을 겪는 조선산업 현실을 마리나 사업 추진에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국내에서는 아직 해양레저의 대중화가 안 돼 있어 정확한 수요 예측을 토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인수봉 사진전 임채욱 작가 “고개 드니 큰바위 얼굴”

    인수봉 사진전 임채욱 작가 “고개 드니 큰바위 얼굴”

    “고개를 들어 보니 큰바위 얼굴이 있더군요. 제 회화와 사진 작업의 출발점이 인수봉이었음을 3년 전 깨닫고 너무 놀랐어요. 처음에는 북한산을 주제로 삼았는데 인수봉이 80%가 넘는 거예요. 벼락 맞은 것처럼 인수봉으로 좁혔지요.”  호방하고도 보폭 넓은 사진작가의 길을 걸어온 임채욱(48)씨가 인수봉 작품전을 연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재학 시절 인수봉을 그린 그림과 한지로 구겨 표현한 것 등 서울의 46개 산 가운데 백운대 버금 가는 봉우리이면서도 서울의 큰바위 얼굴인 그 봉우리의 ‘초상’을 오롯이 담았다. 이뿐만 아니다. 인수봉과 인연이 깊은 클라이머들의 얼굴을 담은 ‘사람’, 여느 천만도시와 확연히 구분되는 인수봉과 ‘서울’의 어우러짐 등 세 주제로 나눠 50여 점만 내건다.  다음 달 1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의 4개 층을 전시한다. 지하 2층에는 인수봉과 관련된 아카이브 전시를 보여주고, 그로부터 차례로 서울, 사람, 초상으로 나눠 전시한다. 다음 달 초에는 100여 점의 사진과 인수봉에 관한 글 등을 담은 사진집이 세상에 나온다.  18일 서울 을지로 3가 인쇄골목의 작업실을 찾았더니 한지업체와 공동 개발한 작품용 한지에 현상한 작품들과 선우중옥과 함께 인수봉을 올랐던 이본 취나드(미국)가 초창기에 만들었던 취나드 피켈과 카라비너 배낭 등 등산 장비가 널려 있다. 작가의 맞은편에 무심코 앉았는데 등받이 쿠션이 나중에 보니 인수봉 바위 모양이다.  김민기 선생의 저 유명한 ‘봉우리’의 음원에 임 작가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곤 흔쾌히 허락해줬다고 한다. 김 선생의 무심한 내레이션과 낡고 굵은 음색, 인수봉의 사계절이 멋지게 어우러졌다. “군대 생활할 때 수유리에서 강원 철원 가는 버스 타며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을 떠올렸어요. 인수봉이 보이면 서울에 왔구나 했어요. 인수봉이 서울이고 큰 바위 얼굴이었죠”  초등학교 5학년 때 대학 은사인 이종상 화백의 화문집 가운데 독수리 작품을 모사한 것이 동양화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이미 인왕산, 설악산 등으로 작품전을 열었던 그의 사진에 수묵화의 멋이 스며든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그린 동양화가 독수리 그림이었는데 인수봉 귀바위도 보기에 따라 독수리 부리처럼 보이거든요.”  바위를 타진 않지만 인수봉과 인연이 깊은 클라이머 10명을 인수봉 앞에서 렌즈에 담았다. 선우중옥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 오후 인천공항으로 떠나야 하는 그를 납치하듯 우이천으로 모셔 인수봉이 멀리 보이는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택시로 공항 환송한 일로 적지 않은 화제가 됐다. 처음에는 당연히 등반 동작을 담은 사진을 찍겠거니 했던 산악인들이 인수봉과 얼굴을 거의 대등한 크기로 담는 촬영에 뜨악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했다.인수봉 바윗길 가운데 첫 손 꼽히는 취나드 코스를 개척한 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창업해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취나드의 철학과 마인드를 닮고 싶다고 했다. 여느 작가와 달리 등반가만의 인수봉이 아니라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끄는 인수봉의 면모를 함께 즐기고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인수봉과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렇게 인수봉이 바라 보이는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우이천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소년과 남미 파타고니아를 닮은 풍광도 담아냈고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 됐다. 이런 맥락에서 심지어 ‘스마트 인수봉’도 만들었다. 한지의 투과성을 이용해 입체 모형 안에 스마트 전구를 넣어 1600만 가지 색깔을 내게 만들었다. 음악의 파동과 연결해 인터랙티브 하게 반응하며 색깔을 달리하는 것까지, 이 작가의 새롭게 길 내는 작업은 가히 경계를 모르고 넘나든다. 임 작가는 “다들 이제 마무리된 건가 하실 텐데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북한산 추락사고 1명 사망…폐쇄된 곳 암벽 타다가 추락

    북한산 추락사고 1명 사망…폐쇄된 곳 암벽 타다가 추락

    북한산 추락사고로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16일 오후 1시 10분쯤 서울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인근 수인암장에서 암벽을 타고 내려오던 이모(59)씨가 1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소방헬기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폐쇄된 암벽등반장이었다. 일행과 함께 이곳에 들어가 암벽을 타던 이씨는 안전장치에 줄을 매달고 암벽을 탔다. 그러나 안전장치는 낡은 상태였고, 이 장치가 부서지면서 이씨는 아래로 추락했다. 이씨가 추락하면서 아래 있던 배모(64)씨를 덮쳐 배씨도 다쳤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사고가 난 암벽장은 정식 코스가 아니라 현재 폐쇄된 곳”이라면서 “바위에 고정된 일부 장비가 빠지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이씨와 함께 있던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장 플러스] “종교 관계없이 모든 사람 쉴 수 있는 휴양 도량으로 건립”

    [현장 플러스] “종교 관계없이 모든 사람 쉴 수 있는 휴양 도량으로 건립”

    북한산 서암사가 48칸 규모, 5년 계획으로 복원된다. 2004년 토지매입 완료를 시작으로 2007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0호로 지정된 후 15년 만이다. 서암사는 조선 시대 숙종 때 승려 광헌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서 북한산성을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수문(水門)과 대서문 일대의 축성과 관리를 맡았던 곳이다. 그렇다 보니 서암사지는 북한산성 백운동 계곡 옆에 있는 절터로 등산로 입구에 있어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곳이다. 북한산성은 축성사적 의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산성 내부의 행궁, 사찰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서암사는 산성의 준공과 더불어 건립되기 시작했던 11개 사찰 중의 하나로 133칸 규모 창건됐다. 복원사업을 위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결과 서암사지는 1만 1000여평의 절터에 대웅전과 산신각, 세심루와 군기고가 있었다. 또 조선 시대의 수파면 기와편과 청화백자편, 명문기와, 백자편 등이 출토되어 그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다. 이에 따라 본지는 북한산 서암사 복원에 앞장서온 혜안 스님을 만나 그 과정을 인터뷰했다. 혜안 스님은 “부처님 제자로서 조상의 얼을 되살리고 부처님 도량을 복원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는 휴양 도량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암사가 조선시대에는 ‘호국 도량’이었다면 21세기에는 ‘힐링 도량’이길 바란다는 것이다. 호국의 보훈 가족이기도 한 혜안 스님. 그가 ‘휴양과 힐링’ 도량으로 추진하는 북한산 서암사의 문화재 복원사업의 성공을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북한산 서암사 복원사업이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첫 삽을 뜨게 됐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간의 소회를 부탁드립니다. -잘 알다시피 북한산 서암사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6년에 시작됐습니다. 2007년 경기도 문화재심의위원회에서 문화재 지정이 가결된 후 발굴조사를 확대한 결과 1만 1000여평의 터에 대웅전과 산신각, 세심류, 군기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발굴조사에서 조선조 수파면 기와편과 청화백자편, 명문기와, 백자편 등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 복원사업을 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초기에 힘도 들었습니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복원에 긍지를 갖고 참고 인내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선조들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인 데다 부처님 도량을 가꾸게 됐다고 생각하니 그 보람된 기쁨이 크다고 할까요. 그간의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봄눈 녹듯 합니다. →스님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군요. 그렇다면 북한산 서암사지 복원사업에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요. -서암사지는 북한산성 수구문 주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의 구축과 수비를 위해 광헌스님이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133칸 규모로 창건한 사찰로서 수구문 일대의 산성 구축과 수비를 담당하는 역할을 해오다 갑오개혁 때 승병이 해산되면서 19세기 말에 폐사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서암사는 호국 도량으로 역할을 해 온 사찰입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조상의 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요. →그렇다면 북한산 서암사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서암사는 북한산에 위치해 있잖습니까. 우선 북한산은 높이가 848m며, 면적은 78.45㎢로 서울특별시에서 39.7㎢, 경기도에서 38.7㎢를 관할하고 있습니다. 북한산은 지정학적인 중요성뿐만 아니라 불교적 시각에서도 신성한 곳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이는 북한산 내 문수봉, 보현봉, 원효봉, 의상봉 등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산성 내 건립된 승영사찰들은 중흥사를 수사찰로 삼아 전체적으로 팔도도총섭이 겸하는 승대장 1명과 각사승장 11명, 의승 350명이 주둔했습니다. 의승은 각 도에 있는 승려들 중에서 차출해 2개월씩 복무하도록 했죠. 그러니까, 서암사는 북한산이라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자락에 위치했습니다. 성지의 명성에 맞게 서암사도 조성된 다수의 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북한산은 특히 조선 시대에 이르러 남한산과 함께 지리적 위치 등의 이유로 수도방위에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의 수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졌죠. 그래서 문헌에 따르면 숙종 당시 1711년 2월에 이르러 산성 축성과 함께 서암사도 건립되게 됐는데요, 서암사는 처음 133칸 규모로 창건됐으나 이후 107칸으로 규모가 축소되기도 했다고 합니다.→서암사지는 특히 경기도 문화재자료 140호로 등재가 돼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2004년도에 땅을 매입했는데요. 서암사는 북한지 등에 수록된 고지도를 통해 볼 때 현재의 위치와 일치해 고증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두 차례에 걸친 문화재 지정에 따른 지표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 시대의 유물이 출토돼 그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습니다. 특히 조산된 서암사 절터의 규모는 총 1만 1000여평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경기도는 2007년 8월 30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506과 509를 비롯해 총 9필지에 대해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등재를 했습니다. 그동안 문화재 발굴해서 현재 2권의 책이 간행됐고, 3권 발행이 예정돼 있습니다. 사실, 발굴과정에서 재정과 행정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서암사 복원사업을 추진하는데 재정과 행정에서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문화재 복원사업을 여러 관청에서 관장을 하는 데서 오는 행정절차가 까다롭고 또 복잡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불필요한 시간적 낭비가 많아 복원사업이 더디게 진척됐죠. 특히 2009년에는 국정감사까지 진행되기도 했고요. 허가가 지연되면서 그로인한 어려움이 컸습니다.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문화재 복원사업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힘써 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앞서 서암사는 과거 133칸으로 대규모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원 규모는 얼마이며, 몇 년간 진행되는가요. -1차 복원은 48칸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2차 발굴과 3차 발굴도 해야 되는데, 재정이 턱없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향후 5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앞으로 서암사 복원이 완성되면 북한산의 새로운 문화명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신가요. -북한산성의 정문은 고양시 대서문인데요. 대서문에서 계곡 탐방로 방향으로 그러니까, 서암사지는 북한산성 백운동 계곡 옆에 있는 절터잖습니까. 특히 서암사는 북한산성 내의 여러 사찰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함으로써 북한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죠. 나아가 서암사에는 현재에도 큰 바위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르는 이 바위 아래에는 큰 계곡물이 있고, 옛 선인들이 ‘탁족(濯足)’을 즐기던 서암사 넓적바위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암사가 복원되면 많은 사람이 찾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유원지 등 자연휴양림으로서 손색이 없는 곳인 만큼 종교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는 도량을 세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기도와 고양시를 비롯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문화재 복원사업에는 많은 재원이 소요됩니다. 반명 각 행정기관 등 정부의 문화재국의 재정은 너무 미약합니다. 그렇다 보니 지원되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죠. 그런 만큼 경기도와 고양시는 문화재 발굴과 복원이라는 큰 틀에서 행정을 모아 주시고, 재정을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홍의석 객원기자 hong5960@seoul.co.kr■서암사(西巖寺) 서암사지(西巖寺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옛 절터다. 2007년 8월 13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0호로 지정됐다. 서암사는 조선 숙종 37년(1711년) 때 북한산성 축성 이후 잦은 왜란과 호란에서 큰 활약을 했던 승려들을 활용하기 위해 산성 내에 건립한 11개 사찰 가운데 하나다. 규모는 133칸으로 승려 광헌(廣軒)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고려 문인 민지(閔漬:1248~1326)가 살았던 유지가 그 옆에 있었기 때문에 민지사(閔漬寺)로 불렸다. 수문 일대의 산성 수비 역할을 담당하다가 19세기 말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절은 전하지 않는다.
  • [역사 속 행정] 고려와 조선의 수령

    [역사 속 행정] 고려와 조선의 수령

    ‘중앙·지방 중재자’ 고려 박시용 향리에게 부담 공정하게 나눠줘 ‘군현 총괄 경영자’ 조선 이보림 마을 재원 펀드 ‘제용재’ 만들어1349년(고려 충정왕 1년) 충남 한산군의 관아가 너무 낡아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수령이던 박시용은 향리들을 소집해 관청 재건축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향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곳이 바닷가여서 목재를 구하기 힘들고 군의 백성 상당수가 권세가의 노비여서 세금을 받아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박시용은 향리들의 반대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한밤중에 낡은 관아 건물을 허물어 배수진을 쳤다. 향리들은 기가 막혔고 화도 치밀었다. 하지만 당장 청사가 없으니 건물을 새로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박시용의 수완이 발휘됐다. 그는 관청 규모를 군의 형편에 맞게 다시 설계하고 향리들에게도 각자 형편에 맞춰 공정하게 부담을 지웠다. 향리들도 점차 박시용의 공정함과 능력을 신뢰하게 됐다. 이들은 관아가 완성되자 감사의 의미로 예정에 없던 수령 사저와 부대시설까지 추가로 지어 줬다. 목은 이색의 아버지이자 한산 출신 학자 이곡은 이 소문을 미담 삼아 글을 쓰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관아 건축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철저하게 향리에게 의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면 변화가 감지된다. 명문장가 이제현의 손자인 이보림이 남원 부사로 내려왔다. 이때는 고려 말기여서 재정 상황은 더 나빴고 사회 혼란도 극심했다. 관청 수선은 고사하고 경상비용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이보림은 재치가 있어 재판을 잘 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소송을 처리해 주고 수수료를 받았다. 여기에 마을의 여러 재원을 더해 일종의 펀드를 만들고 이를 ‘제용재’(濟用財)라고 불렀다. 향리들 중에서 공정한 사람이 운용을 하고 지출할 때는 수령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은 뒤 지출하게 했다. 박시용이 행정 권력만 가진 ‘중앙과 지방의 중개자’라면 이보림은 ‘군현의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모든 제도와 법령은 이런 ‘이보림식 수령상’에 바탕을 두고 운영됐다. 고려 말 관청 건축붐이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방관의 역할과 권위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것에 수반해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려 때는 향리 세력이 강하고 조선에서는 수령 권한이 강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두 나라 지방행정의 본질적 차이를 제대로 알려면 지방사회에서 수령의 역할과 기능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조선시대 수령은 왕의 대행자로 군현의 행정과 조세, 사법권, 군사권까지 모두 장악했다. 경제와 산업경영도 책임졌다. 수령은 관내 농경지가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경영될 수 있도록 감독할 책임이 있었다. 경작 가능한 토지가 경작되지 않으면 향리나 토지 주인을 불러 처벌하기도 했다. 조선의 수령은 마치 농장주처럼 밭갈기와 씨뿌리기, 모내기 등이 제때 진행되는지까지 점검했다. 심지어 작물 종류까지도 간여했다. 16세기에는 지방 사족들이 “우리가 알아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민원을 넣을 정도였다. 흉년 구제 역시 고려 때만 해도 사찰이나 부호가 담당했지만 조선에서는 이 권한을 관청이 모두 회수했다. 오히려 사적 구제를 금지했다. 고려 시대에는 향촌 사회에서 벌어지는 웬만한 사건은 향리들이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이 권한을 수령에게 모두 몰아줬다. 이웃 간 사소한 말다툼 정도가 아니면 향촌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은 없었다. 여기에 불효와 불화 등도 삼강오륜에 저촉하는 것으로 보고 반드시 수령이 감독하고 처벌하게 했다. 수령이 도덕과 가치관의 수호자 역할까지 한 것이다.■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임용한 대표(KJ&M인문경영연구원)
  • [최준식의 거듭나기] 한국 문화는 중앙박물관에서

    [최준식의 거듭나기] 한국 문화는 중앙박물관에서

    나는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있다. 가끔 내게 강연 부탁이 오는데 그때 당사자는 종종 ‘우리가 좀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한국 문화에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또 긍지 타령인가?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자신의 문화에 자신감이 없을까? 한국이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이 된 것도 그렇고, 세계 최고의 문자를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자랑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한국인들은 자국 문화에 긍지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한국인들에게 문화적인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용산에 있는 중앙박물관을 심층적으로 보는 것이다. 어느 나라건 중앙박물관은 그 나라 문화의 최고 상징이다. 그 나라 문화의 최고만 모여 있는 곳이 그곳이다. 우리 중앙박물관에는 세계적인 명품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다. 일전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자원봉사 일을 했던 아들아이와 함께 중앙박물관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관람객이 얼마 없는 것을 보고 아들아이가 깜짝 놀라면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항상 사람이 많은데 여기는 왜 이리 한산하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우리 박물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주말에는 그래도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과외로 한국 역사 공부하러 오는 어린이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사설 학원의 강사가 일군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 어린이들이 없는 주중에 가면 아주 한가하게 그 명품들을 감상해서 좋은데 너무 관람객이 없어 공연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나는 박물관 갈 때마다 내 눈을 의심한다.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이리도 가까운 데에 있으니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이촌역에 내려 잠깐만 걸어가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명품들을 수두룩하게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입장료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들을 볼 때마다 황송하다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예를 수도 없이 들 수 있지만 3층 독방에 전시돼 있는 ‘미륵반가사유상’만 보자. 이 불상은 일본 교토 광륭사에 있는 목조미륵반가유상과 자매 같은 것으로 두 불상 모두 세계적인 조각품이다. 일본 것에 대해서는 20세기 서양의 최고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인 야스퍼스가 극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유럽에서 본 어떤 성상(聖像)보다 이 불상이 뛰어나다고 칭송했다. 우리 것도 그런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주중에 가서 보면 그 방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관람하기에는 아주 좋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인류의 걸작을 내가 혼자만 보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아무 때나 지하철 타고 와서 공짜로 봐도 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나는 가 보지 못했지만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 그림은 사람들이 항상 많이 있어 제대로 못 본다고 한다. 그런데 중앙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명품 앞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신라 금관 앞에도 없고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앞에도 사람들이 없다. 왜 한국인들은 중앙박물관에 잘 가지 않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자국 문화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일 게다. 또 하나는 박물관에 가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적절한 안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중앙박물관에 있는 명품들만 골라 아주 쉬운 소개서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것도 단 2시간 안에 볼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1층 선사실부터 3층 백자실까지 훑으면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가지지 말라고 해도 자동으로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박물관에 사람들이 넘쳐나길 바랄 뿐이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선 선비 분투기(奮鬪記)…강진 다산초당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선 선비 분투기(奮鬪記)…강진 다산초당

    “폐족(廢族) 집안의 자식으로서 학문마저 게을리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과거를 치를 수는 없을지라도 책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구나”(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정약용)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불운하였고 불우하였다. 그의 집안은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의 소용돌이 속에서 멸족(滅族)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신유박해는 사학(邪學)으로 규정한 천주교의 전파를 막는 것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 벽파들이 남인 시파를 제거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적 숙청이었다. 남인들 가운데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노론들이 이를 트집 잡은 것이었다. 이로써 조선은 다시 한 번 더 세상에 나갈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조선 후기의 집권 주도층이었던 노론 세력들은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는 망국(亡國)의 주연들이 된다. 나라가 끝모르게 기울어져 가던 조선 후기, 선비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 땅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다. 조선의 뿌리부터 바꾸어 세계와 교류하고자 하였던 앞선 지식인, 다산 정약용의 삶이 담긴 전라남도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으로 가보자. 다산은 분명 조선조(朝鮮朝) 여타 선비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양반 구색이나 맞추어볼 심사로 삶을 띄워 보내던 게으른 사대부들과는 달리 정약용은 강진땅 험한 유배지에서도 여전히 정갈한 삶을 이어 나갈 정도로 타고난 선비였다. 다산은 일찌감치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던 인물이었는데, 1762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태어난 그는 이미 4살 때에 천자문을 익힐 정도로 문재(文才)가 비상하였다. 1789년 봄 대과에 차석으로 급제한 정약용은 초계문신(抄?文臣)의 칭호를 얻어 예문관 검열에 임명이 되면서 승승장구의 삶을 살아갈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산은 정조(正祖. 1752-1800)가 가장 아끼던 젊은 신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1789년 한강의 배다리를 만드는 공사의 규제를 만들어 한강의 주교(舟橋)를 설계하였을 뿐만 아니라, 1796년에 축조한 화성 성곽을 올리는 공사에서 거중기를 이용하여 일을 수월하게 하였으니 정조 임금의 눈에는 꼭 들어맞는 신하임에는 분명하였다. 하지만,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삶은 대변혁을 맞게 된다. 정조임금이 승하한 뒤 바로 순조(純祖. 1790-1834)가 1800년에 즉위하고 정순대비 김 씨가 수렴청정하면서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된다. 이 와중에 다산과 가까이 교유(交遊)하였던 이가환, 권철신, 이승훈, 최필공 등과 아울러 친형인 정약종마저 목숨을 잃는다. 정약용과 정약전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여 각기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고, 정약용은 1801년 11월에 강진 땅에 도착한다. 다산이 처음 강진 땅에 머문 곳은 바로 동네 주막이었고, 후일 그는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고마움을 표하기도 하였다. 이후 다산은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인 이청의 집 등등을 전전하다가 외가(外家)인 해남 윤씨 자손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던 강진 땅 만덕산 언저리 야트막한 야산인 다산(茶山)의 산정(山亭) 주변에 초당을 짓는다. 다산초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저술에 몰두한다. 조선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안을 정리하는 데 우선 대표적인 목민관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하여, 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經世遺表)>, 죄와 형벌에 관한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을 포함하여 약 500여권 이상의 책을 갈무리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다산초당은 다산이 머물렀던 때의 초당(草堂)이 아니라 1958년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으면서 초가를 허물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중건한 것이어서 실제 그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머물던 초당의 자리에서 그가 품었음직한 삶의 회한과 슬픔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다산초당에 오르는 뿌리의 길은 그가 머물던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관람객들에 여전히 깊은 여운을 준다. <다산초당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강진 땅을 밟게 된다면, 불우한 조선 선비의 삶을 이해하려면. 2. 누구와 함께? -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 귤동마을에 내려 걸어올라가야 한다. 4. 감탄하는 점은? - 다산초당에 이르는 길. 흔히 뿌리의 길이라고 불리며 다산초당의 진짜 모습이라고 일컫는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강진 땅에서 제일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 평일은 한산하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천일각, 동암, 연못. 뿌리의 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한정식 ‘설성식당’. ‘수인관’ ‘해태식당’ ‘제일식당’ ‘청자골 종가집’ ‘남문식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korean.visitkorea.or.kr/kor/bz15/where/where_main_search.jsp?cid=126419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두륜산 대흥사, 고산 윤선도 기념관, 해남우항리공룡화석지, 땅끝마을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다산초당에 이르는 뿌리의 길이 바로 다산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몸으로 전해오는 다산이 겪었던 삶의 흔적들. 다산초당이 목적지가 아니라 다산초당에 이르는 뿌리의 길을 꼭 밟아 보도록. 눈물겹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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