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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정답은, 봄이다 -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정답은, 봄이다 -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늘 보는 바다 / 바다가 그 날은 왜 그랬을까 / 뺨 부미며 나를 달래고 / 또 달래고 했다 ” <김춘수의 시, 통영읍 中에서> 다시 통영(統營)이다. 그리고 통영의 바다. 그래서 통영의 바다 위로 건너온 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강구안 바다 너머로 흔들던 통영 유약국 집 둘째 아들 청마 유치환도, 소설가 박경리 역시 <토지(土地)> 속과부 ‘모화’의 눈으로 ‘뚝지먼당’ 언덕받이 너머 호젓한 통영 바다를 바라보았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푸르스름 패랭이꽃’ 같은 피를 입으로 쏟아내던 음악가 윤이상 또한 죽어서조차도 ‘고양이 울음같은 갈매기의 울음’이 온종일 퍼지는 통영 바닷가 언덕으로 기어이 돌아왔다. 통영이 고향(故鄕)이라 말하는 사람을 보면 괜스레 부럽다. 고향다운 이름을 가져서일까. 골목마다 고향 이야기 가득 품은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이다.통영의 지명 유래는 이러하다. 조선 선조 37년(1604년)에 이르러 삼도수군통제영이 이 곳으로 옮겨 오면서 통영의 이름이 시작한다. 그러다 1955년 9월 1일에는 통영읍을 충무시(忠武市)로 바꾸었고 또 다시 1995년 1월 1일에 이르러서는 옛 이름인 통영시라는 명칭을 다시금 살려낸다.570개의 섬과 617Km에 달하는 해안선을 지닌 통영은 예로부터 항구로서는 남도 최고의 터로 인정받아 왔다. 바다 앞마당에는 한산도와 거제도가 떡하니 각각 한 자리씩 잡고 있어 통영으로 몰아오는 큰 파도, 작은 바람 앞뒤에서 다 막아준다. 이 뿐만 아니라 내륙 속으로 슬쩍 바닷물 들어오는 강구안은 사시사철 삼남지방의 조운(漕運) 길목으로서, 이순신(李舜臣) 장군님 바닷길 굽어보시며 큰 칼 갈고 닦던 세병관(洗兵館)의 엄중한 자리로도 그 역할 톡톡히 하였다.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은 남해 바다가 가장 가깝고, 훤하게 보이는 세병관 동쪽에 위치한 언덕 골목길에 위치해 있다. 원래 ‘동피랑’이라는 뜻은 동쪽에 위치한 ‘비랑’, 즉 벼랑, 언덕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하는 데, 원래 이곳은 구불구불 통영 옛 마을인 동호동, 정량동, 태평도, 중앙동이 언덕마다 옹기종기 낮은 담벼락 아래 모여 있던 낙후된 마을의 다른 이름이었다.통영시의 계획은 동피랑 마을을 철거하고 이순신(李舜臣) 장군님의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마을을 복원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동피랑을 살리기 위해 몇몇 시민단체들이 2007년 10월에 공공미술의 도심 복원 가치를 내걸고 ‘동피랑 백일장 및 벽화그리기’, ‘마을 잔치’, ‘생태 문화지도 제작’을 추진하였고, 급기야 18개 미술팀이 동피랑 낡은 ‘비루박(통영 사투리로 벽을 뜻함)’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강구안에서 올려 본 벽화 그림 가득한 동피랑 마을의 풍광은 한 마디로 끝내 주었다. 온종일 절간 아랫마을같이 조용하던 동피랑 벽화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금은 골목 골목 관광객들이 넘쳐 난다. 결국 통영시는 동피랑 마을 철거 방침을 철회하였다. 그림이 시간을 이겨내었다. 통영의 봄은 이렇게 다시 찾아 왔다. 동피랑 언덕길에 철빠르게 피어오른 벚꽃은 여전히 아름답다. 정답은 봄이다. <동피랑 벽화마을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동피랑, 서피랑 두 군데 모두 가 볼 만하다. 천천히 봄을 느끼기에는 제격. 2. 누구와 함께? - 연인들을 위한 곳. 3. 가는 방법은? - 경상남도 통영시 동피랑1길 6-18(구,동호동 118-1) / 버스 101번 중앙시장 -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 따라서 강구안 주변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는 편이 낫다. 4. 감탄하는 점은? - 강구안의 풍경들. 중앙시장의 먹거리. 벽화마을에서 느껴지는 옛 시간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인산인해. 주말 동피랑 벽화마을은 올라가는 관람객 반, 내려오는 관람객 반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강구안 풍경들. 서피랑의 설치 미술과 99계단.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알쓸신잡의 ‘분소식당’, 멍게비빔밥 ‘수정식당’, ‘대풍관’, 물회 ‘통영해물가’, 복어 ‘만성복집’, 시래기국 ‘원조시락국’, 해물뚝배기 ‘통영식도락’, 수요미식회 ‘물보라다찌’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dongpirang.org/main/main.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통영 서피랑 99계단, 박경리 문학관, 스카이루지, 케이블카, 김춘수 전시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지금은 골목길 여행이 대세다. 동피랑 마을을 비롯하여 서울의 익선동, 동묘 벼룩시장, 삼청동길, 북촌마을, 동해 논골담길, 태백 상장동 골목,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이 이름난 곳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생활공간에 대한 배려도 늘 염두에 두어야 여행의 의미가 더욱더 깊어질 듯.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역사의 아픔 보듬는 거제!

    역사의 아픔 보듬는 거제!

    ●한국전쟁 흔적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거제는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되돌아보는 ‘다크 투어리즘’ 공간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에게 대패한 칠천량 해전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6·25 이후엔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 포로를 수용했던 포로수용소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고현동 거제시청 인근에는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이 있다. 6·25 전쟁 초반 낙동강까지 밀리는 열세를 딛고 북으로 전진하면서 포로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전국 곳곳에 임시 수용하던 포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대규모 시설이 필요했고 1951년 고현동 일대에 28개 수용동이 들어섰다. 당시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섬이었고 주변이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포로 관리에 유리한 지형이었던 탓이다. 인민군 15만명, 중공군 2만명 등 17만 3000여명이 이곳으로 이송됐다. 수많은 포로를 관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52년 5월에는 수용소 사령관이었던 돗드 미군 준장이 반란을 일으킨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편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 사이에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면서 포로들 간의 폭력이 잦아졌다. 친공 포로가 많은 구역에서는 인민재판이 횡행했고 수백명의 포로가 희생됐다. 폭동과 대립이 끊이지 않자 이념에 따른 포로 분리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소란스러웠던 거제포로수용소는 휴전을 계기로 끝을 맞는다. 1953년 8월 5일부터 33일간 포로 송환 업무가 진행됐고 수용소는 곧 폐쇄됐다. 대규모 산업단지와 주거지 개발로 옛 수용소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유적공원 내부와 인근에 잔존유적이 일부 남아 있다. 공원 내 탱크전시장, 포로생활관, 유적박물관 등 여러 전시관에는 전쟁 발발부터 포로 송환까지의 역사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전투 과정 한눈에 ‘칠천량해전공원’ 거제도 중심부의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 차를 타고 30여분 북쪽으로 달리면 또 다른 아픔의 현장을 만난다. 거제도 부속섬 중 가장 큰 칠천도 남쪽 중앙부에 위치한 칠천량해전공원이다. 칠천량 해전은 임진왜란·정유재란 가운데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배한 해전이다. 1597년 조선을 다시 침범한 일본은 임진왜란이 실패한 것은 이순신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이간책을 꾸몄다. 당시 임금인 선조는 이간책을 눈치채고도 이순신을 하옥하고 원균을 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원균은 삼도의 수군 160여척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해 왜군의 본진이 있던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탐지한 적의 교란작전에 고전했고 가덕도에서 기습을 받아 400여명의 군사를 잃었다. 황급히 칠천량으로 후퇴했지만 거푸 기습을 당했고 여러 장수들이 전사했다. 육지로 탈출한 원균도 결국 추격을 받아 전사했다. 해전공원전시관은 당시 조선과 일본 수군의 전력과 전투 전개 과정 등을 보여 준다. 공원 중앙에는 바다를 향해 평온하게 앉아 있는 아이 형상의 설치물이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여행가방 →거제포로수용소 입장료는 어른 7000원이다. 계룡산 모노레일 탑승요금(왕복 1만 2000원)을 낸 경우 2000원에 수용소 관람을 할 수 있다.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은 지난해 11월부터 무료입장으로 바뀌었다. →잘 곳 :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지난 15일 거제시에 문을 열었다. 거가대교를 건너면 금세 만날 수 있는 농소몽돌해변 인근에 자리잡았다. 거제의 바다와 해변, 웅장한 거가대교 전망과 함께 럭셔리 리조트의 호화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총 470실의 객실은 일반고객도 예약 가능한 벨버디어와 회원 한정인 프리미엄으로 나뉜다. 프리미엄 객실 이용객은 21층에 조성된 바다 전망 풀을 이용할 수 있다. ‘바운스 트램펄린파크’, ‘뽀로로 키즈카페’ 등 국내 최대 수준의 키즈 엔터테인먼트 존을 갖춰 가족 투숙객에게 추천할 만하다. ‘양지바위횟집’, ‘다리집’ 등 거제 맛집 8곳을 입점시킨 푸드코트도 눈길을 끈다.
  • 남해~하동 잇는 새 연륙교 노량대교 13일 개통, 세계최초 대칭 경사주탑

    남해~하동 잇는 새 연륙교 노량대교 13일 개통, 세계최초 대칭 경사주탑

    경남 남해군과 하동군을 잇는 새 연륙교인 노량대교가 13일 개통된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11일 노량대교 및 연결도로 건설 공사가 준공돼 12일 개통식을 한다고 밝혔다. 차량 통행은 13일 오후 6시 개통된다.노량대교는 1973년 준공된 2차로 남해대교가 좁고 오래돼 남해대교 옆에 새로 건설됐다. 노량해협을 가로질러 남해군 설천면과 하동군 금남면을 잇는 노량대교는 길이 990m, 폭 25.7m, 4차로 현수교로 건설비 1600억원이 들었다. 노량대교는 양쪽 주탑을 바다에 설치하지 않고 육상에 세워 바다 오염을 막고 공사비도 절감했다. 양쪽 주탑은 각각 육지쪽으로 8도 기울어지게 건설된 세계 최초 대칭 경사주탑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노량대교는 경사주탑 사이에 케이블을 직선이 아닌 유선형으로 설치하는 3차원 케이블 배치 첨단기술을 적용해 교량의 수평저향력을 높여 바람에 취약한 현수교 단점을 크게 보완했다. 부산국토관리청은 노량대교 형태에는 이순신 장군 3대 대첩지 가운데 하나인 노량대첩 승전과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섬멸할 때 펼쳤던 학익진(鶴翼陣) 전술, 거북선 등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노량대교가 지나는 노량해협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치고 전사한 임진왜란 마지막 해전지역이다. 노량해협 양쪽 남해군과 하동군 지역에는 ‘노량리’라는 공통된 지명이 있다.개통식은 12일 오전 10시 20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노량대교 하동군 종점지점에서 부산국토관리청 주최로 열린다. 다리 이름을 놓고 대립했던 남해군과 하동군은 12일 개통식이 끝난 뒤 오후 2시~4시 노량대교 개통기념 걷기대회와 화합 행사를 갖고 다리로 얽힌 앙금을 털어낸다. 두 군은 각각 군수와 군민 등이 참여한 가운데 노량대교 양쪽 지점에서 출발해 대교 중간에서 만나 박터트리기, 풍선날리기,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다리를 한바뀌 돌며 화합을 다진다. 노량대교 명칭 결정 과정에서 남해군은 기존 남해대교 대체교량으로 건설되는 다리이고 섬 지명을 따라야 한다며 제2남해대교를 주장했다. 하동군은 노량이라는 명칭이 다리가 건설되는 지역의 역사성과 지명 등을 모두 나타낼 수 있다며 노량대교를 제안했다. 두 지자체 의견이 팽팽히 맞서 국가지명위원회 표결 끝에 노량대교로 결정됐다. 부산국토관리청은 노량대교 개통으로 남해군 고현면과 하동군 금남면을 잇는 국도 19호선 13.8㎞를 4차선으로 확장·신설하는 공사가 모두 개통돼 이 구간 교통안전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밝혔다. 2009년 착공돼 9년여만에 완공됐다. 총 사업비 3913억원이 투입됐다. 노량대교 및 연결도로 구간 개통에 따라 기존 남해대교와 연결도로는 국도에서 폐지돼 지자체로 이관될 예정이다. 국토부와 남해군·하동군은 국내 최초 현수교로 건설된 기존 남해대교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남해대교 관광자원화 기본구상 및 타당성 용역’을 공동 발주하기로 했다. 국토부·남해군·하동군은 내년 초까지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해 남해대교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남해대교 관광자원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지역경제 활성화 모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남해·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양화대교는 ‘이별의 제2한강교’?… 감수성 폭발하네

    [미래유산 톡톡] 양화대교는 ‘이별의 제2한강교’?… 감수성 폭발하네

    지난 25일 진행된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6차 양화진(한강의 밤풍경) 편의 서울미래유산은 무형유산 1건과 무형유산 2건 등 모두 3건이었다. 유형 유산은 양화대교이고, 무형 유산은 분단으로 잃어버린 시인 백석의 수필 ‘마포’와 변훈 작곡, 정공채 작사의 1986년 발표가곡 ‘한강’이다. 양화대교는 2013년, 수필 ‘마포’와 가곡 ‘한강’은 2017년 12월에 각각 지정됐다.양화대교 구교는 한강 위에 가설된 세 번째 교량이면서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교량이다. 마포구 합정동 352와 영등포구 당산동 7 사이 한강에 놓인 다리이다. 서울 도심에서 서부 지역으로의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한강대교만으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한강 하류에 다리를 가설하고 ‘제2한강교’라고 했다가 양화대교로 바꿨다. 제1한강교는 한강대교, 제3한강교는 한남대교이다. 교통난 해소를 위해 1982년 원래 있는 양화대교에서 한강 상류 쪽으로 양화대교 신교를 가설했다. “안녕하고 돌아서는 그대 두 눈에/담뿍 고인 이슬을 나는 보았소/수없이 주고받은 사랑의 맹서/흐르는 강물위에 던져버리고/마지막 이별하는 제2 한강교”라는 한산도 작사, 나화랑 작곡, 진송남의 ‘이별의 제2한강교’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훤칠한 외모에 큰 키, 검은 곱슬머리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깔끔한 옷차림. 조선 최고의 모던보이였던 백석은 해방 전 요정 대원각(길상사) 주인 자야와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하다. 백석의 문학적 감수성에 불을 지폈던 것은 오산학교 7년 선배 김소월이었다. 백석의 시는 소월이 그랬듯 향토색 짙은 민속어를 통해 질박하고 정감 있는 우리의 일상과 민족혼을 담아내고 있다. 수필 ‘마포’는 1930년대 마포나루의 모습을 운치 있게 묘사해 마치 그때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 듯 생생하게 표현한 점이 인정받았다. ‘명태’, ‘떠나가는 배’를 작곡한 변훈의 작품인 가곡 ‘한강’은 “한강수야 흘러라 넘실넘실 흘러라/굽이굽이 휘돌아 오늘도 흐른다/꿈과 사랑 품안고 잘도 흐른다/님도 나도 품안고 잘도 흐른다/한강수야 흘러라 오늘도 흐른다”로 평화로운 한강의 흐름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세계 4대 해전, 한산대첩 승전지 통영에서 10~14일 한산대첩축제

    세계 4대 해전, 한산대첩 승전지 통영에서 10~14일 한산대첩축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구국정신을 기리는 ‘제57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한산대첩 승전지인 경남 통영시 일원에서 10~14일 열린다. 한산대첩축제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 지휘 아래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물리친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62년 부터 해마다 개최하는 축제다. 한산대첩은 세계4대 해전 가운데 가장 위대한 해전으로 꼽힌다.통영한산대첩축제는 5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축제로 지정됐다. 올해 한산대첩축제는 ‘이순신과 함께 놀자’를 주제로 강구안 문화마당과 통제영, 이순신공원 등에서 5일 동안 다양하게 펼쳐진다. 10일 오후 이순신 장군 전통무예시연과 고유제로 축제 시작을 알린 뒤 삼도수군통제영 군점과 이순신 장군 행렬 재현 행사에 이어 오후 8시 개막식과 축하공연이 열린다. 군점은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통제사들이 조선시대 수군 훈련 때 했던 군사점호 의전을 고증을 거쳐 재현하는 행사다. 이순신 장군 행렬 재현은 무기와 깃발을 든 조선 수군이 해군 군악대와 취타대를 앞세워 시내 행진을 하며 이순신 장군 및 조선수군 행차를 재현한다.축제 중심 행사이자 백미인 한산대첩 재현이 11일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당포항에서 펼쳐진다. 이순신 함대가 당포항에서 출발하는 출정식을 한 뒤 통제영거북선과 전라좌수영거북선 등 40여척의 함대가 당포항에서 달아공원 앞 해상을 거쳐 한산도 앞 바다까지 해상 퍼레이드를 펼치며 장관을 연출한다. 10·12일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조선수군 군선 모양을 한 구조물을 공중에 띄우고 불꽃과 조명 아래 한산해전을 연출하는 공중 한산해전이 펼쳐진다. 해군·해병대 의장대 시범 및 축하 음악회, 통영 거북선 음악회, 승전무 공연, 남해안 별신굿 공연, 통영 오광대 공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정기공연. 통제영 시조창 한마당 등 다양한 공연이 이어진다. 이순신 장군 활쏘기 체험, 해군과 해양경찰 함정 공개·체험, 거북선 얼음조각 체험 등 많은 체험·전시행사가 열린다. 청정한 통영앞 바다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수산물 무료 시식회가 매일 문화마당에서 열린다. 축제장에 워터파크 공간을 조성하고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매일 운영한다. 축제기간 통영지역에서 2만원 이상 결제한 영수증을 제출한 응모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 순금 10돈으로 만든 황금 거북선, 세탁기, 냉장고, 멸치 등 다양한 경품을 주는 ‘황금 거북선을 찾아라’ 행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 한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조선 불황 경남 ‘해양 마리나’ 메카로

    조선 불황 경남 ‘해양 마리나’ 메카로

    2025년까지 1264억원 투입 통영엔 마리나 비즈니스 센터 고성엔 첫 해양전문 양성기관 침체된 지역 경제 살리기 시동 경남도는 장기간 불황에 빠진 조선업을 대체, 보완하기 위해 해양 마리나 산업을 육성한다.도는 이를 위해 조선산업이 몰려 있던 창원·통영·거제시와 고성군 등에 2025년까지 모두 1264억원(국비 584억원, 지방비 680억원)을 투입한다고 18일 밝혔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조선업 침체 지역 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대책’에 따라 통영시 산양읍 일원 4만 5000㎡에 2021년까지 국·지방비 190억원을 들여 ‘마리나 비즈센터’를 건립한다. 비즈센터에는 레저선박 및 해양레저 제조·수리·정비·전시·판매 시설을 비롯해 서비스 산업이 입주한다. 도는 비즈센터 조성, 운영에 경남 지역 조선산업 관련 인프라와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또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관광지 인근에 국·지방비 182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의 해양 전문 양성기관인 ‘해양레포츠 아카데미’를 하반기에 착공, 2020년까지 건립한다. 수상·수중레저 교육시설을 한 곳으로 모아 표준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해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창원시 진해구 명동에는 요트 300척을 계류할 수 있는 국가지원 거점 마리나 항만인 ‘창원 명동 마리나’를 450억원을 들여 하반기 착공, 2020년 완공한다. 거제시 남부면 근포리에 건설 중인 104척 계류시설 규모 ‘거제 근포 마리나’는 155억원을 들여 내년 완공한다. 계류시설 100척 규모인 ‘고성 당항포 마리나’는 156억원을 투입,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도는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통영 지역 9개 섬에 요트, 보트 등을 정박하고 머물 수 있도록 2025년까지 섬과 섬을 잇는 ‘어촌 마리나 역(驛)’을 구축한다. 국비 54억원과 지방비 10억원이 들어간다. 지난해 매물도항을 준공한 데 이어 올해는 욕지도와 사량도, 한산도에 계류시설과 클럽하우스 등을 설치한다. 김해 낙동강변 대동면·생림면과 밀양 밀양호, 진주 진양호, 하동 섬진강·하동호 등 6곳에 내수면 마리나 조성도 추진한다. 해양수산부가 오는 6월쯤 사업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도는 마리나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해양레저 관광산업이 활성화돼 지역경제 조기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민정식 해양수산국장은 “어업활동과 해양레저가 공존하는 피셔리나 조성 사업과 해양레저스포츠 대회를 개최하는 등 마리나 산업을 다각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양레저 전문가들은 “경쟁과 과잉 투자로 어려움을 겪는 조선산업 현실을 마리나 사업 추진에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국내에서는 아직 해양레저의 대중화가 안 돼 있어 정확한 수요 예측을 토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큰 대(大) 자에 이길 첩(捷) 자, 대첩이란 곧 크게 이긴 싸움을 이른다. 흔히 임진왜란의 3대첩이라면 1592년 8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과 같은 해 10월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그리고 이듬해 2월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을 들곤 한다. 꺼져 가던 목숨을 가까스로 이어 가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4일 발발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가 지휘하는 왜군 1만 8700명을 태운 배는 전날 밤 이미 부산진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왜군은 이튿날 안개가 걷히자 상륙해 부산진성을 포위했고 첨사 정발이 이끄는 500명 남짓 조선군은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다. 이후 왜군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양도성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한다.북변 방비에서 용맹을 떨치던 신립 장군이 갑작스럽게 삼도순변사에 임명된 이후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이 그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은 4월 28일이다. 탄금대 패전 소식이 알려지자 조정은 우왕좌왕했고, 결국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이치 승리로 권율 전라도 순찰사 올라 행주대첩 한편으로 왜군은 곡창 호남으로 진출하려 안간힘을 썼는데 당연히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왜군이 장악한 부산진-한양 라인에서 호남으로 가는 방법은 수군(水軍)이 해로를 장악하거나, 보군(步軍)이 진주를 공략해 서진(西進)하거나, 지금은 충청도 땅이 된 전라도 금산에서 이치(梨峙)를 넘어 전주로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수군은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에 대패해 기세가 꺾였고, 보군은 곽재우, 김면, 정인홍 등이 이끄는 경상도 의병에 가로막혀 쉽사리 서쪽을 넘보지 못했다. 결국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1만 병력으로 하여금 이치를 공략하게 했다. 배치재라고도 하는 이치는 오늘날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의 경계에 해당한다. 해발 340m의 고갯마루에 서면 완주 쪽으로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대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주목사 권율은 7월 8일 1500명 남짓한 군사를 지휘해 험준한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복병전으로 왜군을 격퇴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관군(官軍)이 거둔 첫 번째 대승이었다. 권율은 이치의 승리로 전라도 순찰사에 올랐고, 같은 직함으로 이듬해 행주대첩의 명장이 된다. 권율의 휘하에는 화순 동복현감 황진도 있었다. 세종시대 명재상 황희의 5대손이라고 한다. 황진 역시 이치 승리로 익산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에 올랐다. 이듬해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 그는 경기도 죽산 전투 이후 패퇴하는 적을 경상도 상주까지 추격해 연전연승하기도 했다. 그는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막아내다 머리에 조총을 맞고 전사했다. ‘선조실록’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왜장(倭將)이 또 대군(大軍)을 출동시켜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해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장 위대기·공시억 등과 재를 점거해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해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해 적병을 대파하였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草木)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수들을 독려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 왜적은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 이치 전투를 첫째로 쳤다’●부친 순국 소식에 장ㆍ차남 참전 나섰다 모두 전사 당시 왜군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도 의병에게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이치 전투 당시 권율 장군의 휘하에도 적지 않은 의병이 가세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7월 3일 관군과 합동으로 금산성을 공격하다 순국한다. 옥천의 조헌은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8월 18일 금산성을 공격했지만 모두 순절하고 만다.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이들의 무덤이다. 전라도 익산 유생 이보와 소행진은 금산에서 들려온 조헌 의병의 순절 소식에 400명 남짓한 의병을 규합한다. 이들은 금산으로 향하다 8월 27일 이치에서 왜군과 맞닥뜨렸다. 400명의 무명 의병은 급조한 활, 낫과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순국했다. 소행진의 큰아들 소계는 아버지 장사를 마치자 금산으로 달려갔고, 작은아들 소동도 형의 순국 소식에 금산으로 달려가 전사했다. 소동의 부인 민씨는 강화 친정에서 남편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권율 대첩비 1940년 왜경이 파괴… 1964년 재건 이치에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는 금산, 호남고속도로는 논산이나 전주를 경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치 전투라는 하나의 역사를 기리건만 유적은 ‘금산 이치대첩지’와 ‘완주 이치전적지’로 나뉘어 있다. 이치대첩지는 충남 기념물 154호로, 이치전적지는 전북 기념물 26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금산이 1963년 충남에 편입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굳어졌다. 완주 전적지는 이치 정상에 있다. 길가에 ‘이치전적지’라 새긴 비석이 있고, 그 안쪽으로 ‘무민공(武愍公) 황진장군 이현(梨峴)대첩비’가 보인다. 이치전적지 비석은 1993년, 이현대첩비는 2006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대첩비 뒤편에 숨어 있는 ‘이치대첩유허비’(遺墟碑)에서는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조금은 느껴진다. 전적지 옆에는 휴게소가 있다. 탐방객은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게 마련인데, 전적지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휴게소와 주차장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으로 행정구역이 갈린다. 이곳에서 금산쪽으로 1.5㎞쯤 달리면 대첩지가 나타난다. ‘이치대첩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는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권율 장군을 기리는 충장사와 대첩비각이 보인다. ‘도원수권공이치대첩비’(都元帥權公梨峙大捷碑)는 당초 금곡사(金谷祠)와 함께 1902년 건립됐다. 하지만 1940년 일본 경찰이 비석과 사당을 모두 파괴했고, 지금의 비석은 1964년 다시 세운 것이다.●무명 의병 희생 외면하다 2016년 ‘반성 비석 ’ 세워 이치전적지와 이치대첩지는 행정구역뿐 아니라 기리는 주체도 갈려 있다. 전적지는 황진의 기념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대첩지는 완벽하게 권율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념물이 승리한 관군의 역사만 기억할 뿐 무명 의병의 희생은 외면하고 있다는 반성도 뒤따랐다. 2016년 전적지에 400명의 무명 의병을 기리는 작은 비석이 세워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름하여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다. 이런 글귀도 보인다. ‘관군의 주력부대가 승리를 거둔 7월 전투는 세상에 자세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병이 주도한 8월 전투는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채 묻혀지고 있다. 그것이 아쉬워 이 비를 세워 바로 알리고자 한다.’ 글ㆍ사진 dcsuh@seoul.co.kr
  • [서동철 칼럼] 정족산성의 기억

    [서동철 칼럼] 정족산성의 기억

    한자에 첩(捷) 자가 있다. ‘이길 첩’이라고 새긴다. 그러니 ‘대첩’(大捷)이란 크게 이긴 싸움을 가리킨다. 우리 역사에서 ‘대첩’이라고 이름 붙여진 싸움은 많지 않다.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과 고려가 거란군을 무찌른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정도가 생각난다. 고려시대에는 황산대첩도 있다. 조선왕조를 창건하기 이전 이성계 장군이 전라도 지리산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싸움이다. 살수대첩과 귀주대첩은 존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승리이다. 황산대첩도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싸움이었다. 왜구는 이미 소규모 해적 떼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오늘날의 남원 땅인 황산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이다. 지리산까지 몰려들었다는 것은 삼남 전체가 왜구에게 유린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임진왜란의 3대첩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김시민 목사의 진주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이 그것이다. 한편으로 의령 의병 곽재우의 솥바위 전투, 옥천 의병 조헌의 청주 수복 전투, 함경도 의병 정문부의 길주 전투를 의병 3대첩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장덕산대첩(長德山大捷)이라고도 하는 길주 싸움의 전말은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어난 수많은 의병의 처절한 싸움 가운데 단순히 이기고 진 것을 가려 3대첩이니 하고 부르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는 반성을 해야 할 것 같다.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신했던 선조는 ‘승전’이 ‘조선에 파병한 명나라의 은혜’라 하지 않았나. 임진왜란을 ‘이긴 전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은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수긍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 긍정의 주체가 사실상 왜란을 불러온 국왕이고 조정 대신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래전 강화도 전등사를 찾았을 때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이 절을 둘러싸고 있는 정족산성의 동문으로 들어서면 나타나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巡撫千摠梁公憲洙勝戰碑) 때문이었다. 흔히 ‘양헌수 승전비’라 부른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이곳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양헌수 장군을 기리는 비석이다. 프랑스군은 병인양요 당시 갑곶돈대를 공격하며 강화도에 상륙해 강화성을 점령한 데 이어 염하(鹽河) 건너 김포의 문수산성과 통진부에 진주하기도 했다. 강화부에서는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왕실 의궤를 훔친 뒤 건물에 불을 질렀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프랑스군은 갑곶돈대와 문수산성에서는 조선군이 저항에 부딪혀 사상자를 내기도 했지만, 강화성과 통진부는 무혈입성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물론 양헌수의 승전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순무 천총이란 당시 그의 직함이었다. 조선은 전쟁이나 민란 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순무영(巡撫營)이라는 임시 군사조직을 가동했는데, 천총은 중상급 지휘관에 해당한다. 500명의 육지 포수를 이끌고 정족산성에 잠입해 프랑스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술과 부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이런 군인이 있었나 싶다. 정족산성 전투의 승리를 전쟁의 승리로 인식해 쇄국을 강화하는 데 이용한 것은 대원군이었다. 1871년 미국이 강화도를 침공한 신미양요 때도 다르지 않았다. 대원군은 미군을 기습공격으로 몰아냈다며 승전으로 간주했고,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워 통상수교금지정책을 강화했다. ‘두 전쟁’에서 ‘이겼다’는 인식은 결국 조선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야구계의 격언은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당대가 아니라 역사가 이겼다고 평가해야 진짜 이긴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는 오늘날의 우리 정치도 한번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지금이 아니라 훗날의 평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도 당시에는 민심의 일방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만 뒤따르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dcsuh@seoul.co.kr
  • 추석연휴 가볼만한 국립공원 탐방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추석 연휴 및 가을 단풍철을 맞아 가족 등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슬로탐방코스 10곳을 발표했다. 전국 국립공원에 근무하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직원들이 추천하고 내·외부 여행전문가들이 코스 구성도와 매력도, 문화확산 기여도 등을 평가해 가족·연인·나홀로 여행족 등 소규모 그룹에 적합한 코스를 선정했다. 공단이 선정한 슬로탐방 10선은 ▲한려해상 달아공원~만지도와 연대도~미륵도 달아길 ▲지리산 쌍계사~의신옛길 ▲지리산 신선길~실상사 ▲경주 포석정~삼릉숲길 ▲설악산 소공원~비룡폭포 ▲태안해안 기지포~몽산포 ▲오대산 전나무숲길~선재길 ▲북한산도봉 송추 우이령길 ▲소백산 어의곡숲길 ▲변산반도 닭이봉 전망대~채석강~적벽강 등이다. 공단은 코스별 지역명소와 숙소·맛집 등 탐방에 필요한 정보를 가이드북으로 제작하고 탐방객들이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홈페이지·SNS 등을 통해서도 제공할 계획이다. 김영래 탐방복지처장은 “가을철 슬로탐방코스는 여유롭게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선정했다”면서 “탐방객들의 요구를 반영해 다양한 맞춤형 탐방정보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이순신 전적지 스토링텔링 테마투어’ 인기

    ‘이순신 전적지 스토링텔링 테마투어’ 인기

    이순신전략연구소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시행하고 있는 ‘이순신 전적지 스토리텔링 테마 투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순신 전적지 스토리텔링 테마 투어’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당일 혹은 1박2일 일정으로 이순신 장군 전적지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으로부터 위탁 받아 전국의 7개 단체가 시행하는 ‘2017 톡톡 이순신 충무공탐험대’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순신전략연구소 관계자는 “학생들에게는 역사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생생한 체험교육의 기회가 되고 있으며, 일반인들 또한 역사기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28일 이순신 장군 탄신기념일에는 서울 상곡초등학교 학생들이 ‘톡톡 이순신 충무공 탐험대 발대식’에 참가한 후 아산현충사와 이순신 장군 묘소를 참배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코레일과 협의해 ‘거북선 열차’를 띄워 인천지역 학생 및 일반인 200여 명과 함께 전남 보성의 이순신 전적지를 답사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중학생 자유학기와 관련해서도 인기를 끌어 지난 7월 27일에는 경희중학교 학생 25명이 1박2일로 전남 해남의 명량해전지와 전라우수영지를 답사하고, 거북선 승선과 활쏘기 체험 등을 경험했다. 오는 9월 22~23일에는 중평중학교 학생 28명이 경남 통영의 한산대첩 현장을 찾아갈 예정이다. 일반인들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송파구 부동산 최고위과정 멤버들은 통영과 한산도의 이순신 전적지를 다녀왔으며, 한화그룹의 전직 임원모임인 한화회는 2박3일 일정으로 남해안 이순신전적지를 답사했다. 오는 10월 24일에는 경상북도 교장선생님들이 청렴연수의 일환으로 통영과 남해 노량을 답사할 예정이다. 참여자들은 “출발하기 전 사전 교육을 실시하고,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도 임진왜란과 이순신에 대해 강의를 진행함과 더불어 현장에 가서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역사 교육으로, 재미가 더해졌다”고 후기를 전했다. 한편 테마투어와 관련한 더 자세한 사항은 이순신전략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한여름 출렁거리는 마음…연대도 출렁다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한여름 출렁거리는 마음…연대도 출렁다리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중략) 현해탄의 거센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統營)은 사시사철 여름이다. 박경리(1926~2008)는 ‘김약국의 딸들’(1962) 초입에 일찌감치 그녀의 고향인, 통영의 바다를 이리도 살가웁게 옮겨 놓았다. 통영은 그녀가 보기에도 사람이 살아가기가 ‘매우’ 좋은 곳이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진짜배기 여름인 시절에는 태양빛, 날빛이 이 곳에는 그대로 살아있어 통영 앞바다 다도해는 언제나 피서객들이 흐드러지게 모여 든다. 여름 거센 날씨도 거제도가 맏형 격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고, 한산도마저 만만치 않으니 웬만한 풍랑이나 센 물살은 통영 앞바다에 닿지도 못하고 물러간다. 그러하니 통영 앞바다 올망졸망 526개의 섬들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통영 앞바다 연대도로 가 보자. 이 많은 무리 섬들 중에서 최근 연대도의 출렁다리는 관광객들의 마음도 출렁출렁 앗아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출렁다리는 행정자치부의 명품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선정되어 국비 13억 2000만원이 투입된, 길이 98.1m, 너비 2m의 현수교로 2015년 1월에 준공되었다.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이 출렁다리는 내륙의 그것과는 달리 해풍이 불어 올 때마다 현수교 전체가 출렁되기에 관람객들은 여름날 식은 땀 맺히는 아찔한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바다 한가운데를 관통하기에 다도해 풍광은 덤으로 안겨 준다. 연대도는 이렇듯 출렁다리와 아울러 다른 볼거리도 작은 섬에 비하여 넉넉하다. 주민 100명이 채 되지 않는, 해안선 4㎞ 남짓의 작은 섬인 연대도는 탄소 배출량 제로에 도전하는 국내 최초 에코 아일랜드이기도 하다. 2011년 연대도 마을 회관을 지을 때 화석 연료를 전혀 쓰지 않고, 태양광 등의 자연 에너지만을 이용하여 냉난방을 할 수 있게 하는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공법을 이용하였다. 이후 2012년 4월에는 연대도의 분교 건물에 에코체험센터가 열려 이 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태양열 조리기, 자전거 발전기 등의 체험공간도 제공한다. 이렇듯 연대도는 통영 앞바다 여러 섬들 중에서 출렁다리와 더불어 태양광 패널이 반짝이는 에코 아일랜드의 이름으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방문장소로 매력적인 곳이다. <연대도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통영을 다 둘러보았다면.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가족. 3. 가는 방법은? -미륵도의 달아항에서 배로 15분.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1시간 단위로 출항하는 배가 있음. 대인 왕복 8000원, 소인 왕복 5000원. 4. 감탄하는 점은? -생각보다 섬 풍광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최근에 출렁다리와 더불어 에코 아일랜드로 이름나고 있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에코체험센터, 출렁다리, 몽돌해수욕장.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충무김밥 ‘뚱보할매김밥’(645-2619), 복국, 복매운탕 ‘분소식당’(644-0495), ‘오미사 꿀빵’(645-3230), 매운탕, 볼락구이 ‘한산섬식당’(642-8330)/ 지역번호 (055)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yeondaedo.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통영 동피랑벽화마을, 박경리 문학관, 만지도. 10. 총평 및 당부사항 -넉넉한 여름 한철, 가족과 함께 조용한 피서지로는 제격인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中,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 北 타격 클 듯

    中,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 北 타격 클 듯

    北 최대 수출품… 유엔 결의 이행 거듭되는 도발에 中의 불만 표시 밀무역 석탄은 통계 안잡혀 맹점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김정남 피살사건 등으로 북·중 관계가 미묘해진 시점에서 중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올해 말까지 금지하기로 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중국 상무부는 19일부터 올해 12월 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한다고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했다. 상무부는 이번 조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321호 결의와 상무부·해관총서 2016년 제81호 공고에 근거한다고 밝혔다. 석탄은 북한의 최대 수출품으로 전체 중국 수출에서 4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이번 조처는 북한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4월부터 석탄·철광석 등을 대북 수입금지 품목에 포함했지만, ‘민생 목적’의 교역은 허용했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에 나서자 유엔 안보리는 북한산 석탄 수출량에 상한을 두는 2321호 대북 제재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 결의에 따르면 2015년 석탄 수출 총량 또는 금액의 38%에 해당하는 4억 90만 달러 또는 750만t 가운데 금액이 낮은 쪽을 기준으로 올해부터 수출량이 이 기준선 밑으로 통제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집행하겠다고 밝힌 게 상무부·해관총서 제81호 공고이다. 주목할 점은 올해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 상한액이 오는 4월쯤에야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상황에서 중국이 왜 벌써 석탄 수입을 사실상 전면 금지시켰느냐는 것이다. 한 중국 소식통은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에 중국도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면서 “사실상 최고 수위의 불만 표시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따른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 압박, 지난해 말 북한의 밀어내기식 석탄 수출을 중국이 묵인한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석탄 수출은 2250만t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BBC 중문망은 “김정남 피살도 중국이 북한에 더 큰 압박을 가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은 최근 석탄 수요 급증으로 전체 석탄 수입량이 올 1월에 벌써 2491만t에 이르러 전년 대비 64%나 급증했다. 이 때문에 북한산도 예년보다 폭증해 상한선에 빠르게 근접했을 수도 있다. 중국은 이번 조치를 ‘잠정적’이라고 밝혀 나중에 다시 수입을 재개할 여지도 남겨 뒀다. 더욱이 밀무역으로 들어오는 석탄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맹점도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울릉도, 슈퍼 꿀벌 대량 생산 추진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한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슈퍼 꿀벌 ‘장원’ 여왕벌 생산이 본격 이뤄진다. 경북도농업기술원은 올해 청정지역인 나리분지에서 장원 여왕벌 3000~4000마리를 생산, 도내 농가에 보급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사업은 울릉군, 예천군 곤충연구소와 공동 추진한다. 이에 따라 도는 지난해까지 한산도 등 전국 도서지역에서 ‘장원’ 여왕벌을 생산해 도내 농가에 보급해 오던 것을 전량 자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도농업기술원 등은 오는 5월까지 2억 5000만원으로 나리분지 일대 1만 9800㎡에 장원 여왕벌 육종 격리 교미장을 설치, 7월까지 3개월간에 걸쳐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울릉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교잡벌의 접근이 어렵고 마가목, 야생화 등 밀원식물이 풍부해 꿀벌 사육과 여왕벌 생산에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다. 특히 나리분지 일대는 바람이 적고 아늑해 벌의 공중 교미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2014년 정부 장려품종 1호로 등록된 장원벌은 예천곤충연구소와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이탈리안 황색종과 카니오란 흑색종 등을 삼원 교배해 육성한 꿀 다수확 잡종 강세 품종이다. 꿀 수집능력이 일반 꿀벌보다 31% 뛰어나며, 개체당 수집하는 꿀 양도 19% 많다. 번식력도 뛰어나다. 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울릉도 나리분지가 국내 벌꿀 육종의 최적지로 확인됐다”면서 “앞으로 전국 최대·최고의 꿀벌 생산 메카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영보정 등 복원 본격화… ‘충청수군의 본거지’ 위용 되찾을까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영보정 등 복원 본격화… ‘충청수군의 본거지’ 위용 되찾을까

    충남 보령시는 조선시대 보령현과 남포현을 합친 지역이다. 오늘날 보령시의 중심부는 옛 대천시에 해당한다. 보령읍성은 북쪽의 주포면, 남포읍성은 남쪽의 남포면에 흔적이 남아 있다. 대천이라는 땅이름은 시내를 흐르는 한내, 곧 대천(大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서 보령군이 됐고, 대천은 당시 면(面)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뒤 1962년 읍(邑)으로 승격했다. 보령군은 1986년 대천시와 보령군으로 나눠졌다가 1995년 보령시로 다시 합쳐졌다. ●조선시대 군사·행정적 역할 컸던 충청수영성 고종 9년(1872) 그려졌다는 ‘보령부지도’를 보면 두 개의 성(城)이 보이는데, 보령읍성과 충청수영성이다. 고려시대 현(縣)이었던 보령은 조선시대 부(府)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현으로 격하되기도 했다. 그런데 내륙의 보령읍성보다 바다에 면한 충청수영성이 훨씬 넓어 보이는 것은 물론 건물의 규모가 크고 숫자도 많다. 충청수영성이 수행한 군사적, 행정적 역할이 매우 중요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충청수영, 곧 충청도수군절도사영(忠淸道水軍節度使營)은 말할 것도 없이 충청수군의 본거지다. 관할 해역은 북쪽 아산만에서 남쪽 금강 하구 장항만에 이르렀다. 해안선 길이는 992.8㎞로 점점이 이어진 섬이 250개나 된다. 충청수영성은 관할 해안선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다. 주꾸미 배낚시로 유명한 오천항이 충청수군의 옛 군항(軍港)이다. 충청도 앞바다는 고려시대 이후 남부 평야지대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도성(都城)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왜구가 무리지어 침범했던 것도 양곡 탈취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따라서 고려시대부터 충청도 해안선에는 수군을 주둔시켰다. 조선시대에도 태조 5년(1396)에 벌써 ‘수군절도사의 병영이 보령현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 수군첨절제사를 두어 방어케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곳에 군영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세종 29년(1447)이다. 서해 바다의 운치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영보정을 지은 것은 연산군 10년(1504)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보정은 시인 묵객이 줄지어 찾는 대표적인 명승의 하나가 됐다. 수영을 둘러싼 석성(石城)은 중종 4년(1509)부터 16년 동안 쌓은 것이다. 비로소 방어성으로 제 모습을 갖추었을 것이다. 당시 충청수영의 군선은 142척, 병력은 8414명에 이르렀다. 충청수군의 역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수군(水軍)이 가장 주목받은 임진왜란 때도 지원군 역할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충청수군은 선조 29년(1596) 한산도로 남하해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 칠천량해전에서 패전하기도 했다. 충청수군은 해전에 나선 것은 물론 안면도 소나무를 베어 삼도수군의 군선(軍船)을 건조하는 역할도 맡았다고 한다. 충청수영성은 안면도·원산도로 둘러싸인 천수만에서도 좁은 내만(內灣)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앞바다의 수심이 깊은 데다 서해안의 심한 조수간만의 차이에도 다른 포구와는 달리 배가 드나드는 데 어려움이 없다. 주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의 자연 지형까지 감안하면 천혜의 해군 요새라 할 수 있다. 충청수영은 관할 수역의 움직임을 봉화로 신속하게 파악했다.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에 따라 자체적으로 권설봉수(權設烽燧)를 운영했다. 어청도 봉수에서 외연도, 녹도, 원산도를 거쳐 수영성 남쪽 1.2㎞ 지점의 망해정 봉수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다른 수영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보령, 역사관광 도시로 발돋움해야 충청수영성은 병자호란 이후 수도권 방어가 가장 중요한 군사적 목표로 떠오르면서 이전론이 제기된다. 왜구를 막아 조운선의 안전한 운항을 도모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왕실과 조정의 피난처인 강화도 일대를 보호하는 데는 적절치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결국 정조 3년(1779) 충청수사의 지휘소인 행영(行營)을 태안반도 서쪽 끝 안흥으로 옮겨 10년 남짓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의 충청수영성에서 전성기 위용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영보정 복원을 시작으로 옛 모습을 되찾는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성곽을 되살리려는 발굴조사도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현장이기도 하다. 보령이 대천해수욕장의 ‘머드 축제’를 넘어선 역사관광 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충청수영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dcsuh@seoul.co.kr
  • 6월 추천여행지! 이국적인 풍경에 변함없는 작은 천국! 통영, 외도, 거제 기차여행

    6월 추천여행지! 이국적인 풍경에 변함없는 작은 천국! 통영, 외도, 거제 기차여행

    한려수도에 가본 적이 있는가? 통영에 가면 첫째로 많은 섬에 놀라고 둘째로 이국적인 풍경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섬은 유무인도를 포함해 526개로 청산도, 욕지도, 대소매물도, 연화도, 한산도, 장사도, 비진도 등 언뜻 생각나는 이름만 나열해도 예닐곱 개가 훌쩍 넘는다. 이 섬들은 한국 속의 작은 유럽이라 불리며 수려한 풍광 덕에 관광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려수도에서 관광객에게 가장 잘 알려진 섬 중에 하나인 외도해상농원은 남해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며 4만8천여 평의 섬을 온통 꽃과 조각품, 나무 등으로 꾸며 놓은 해상농원이다. 4만 5천평의 동백숲이 섬 전체를 덮고 있으며 선샤인, 야자수, 선인장 등 아열대 식물이 가득해 이채로운 풍경을 뽐낸다. 외도는 해금강과 연계해 유람선 관광도 가능하다. 장사도 역시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섬이다. 최근 유명드라마에 비춰져 외국인 관광객까지 발을 딛고 있다. 장사도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해 해안경치는 물론 온화한 기후에 맞춰 식물경관이 아름답다. 섬의 모양이 뱀의 형태를 닮고 마을에 뱀이 많아 장사도라 칭해졌다. 울창한 동백수림 또한 장사도의 자랑거리다. 연대도는 4km 남짓의 둘레로 한바퀴 관광이 두 세시간으로 충분한 작고 호젓한 섬이다. 연대도 외에도 저도, 송도, 학림도, 만지도 등 주변 4개의 섬을 유람선으로 관광할 수 있다. 낚시 체험으로 알려진 매물도는 대매물도, 소매물도, 등대섬 이렇게 세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사이좋게 마주해 있어 하루에 두어번 ‘열목개 자갈길’ 이라고 불리는 몽돌해변이 바다 위로 드러나 두 섬이 연결된다. 바다 한가운데 마주한 두 섬은 거센 파도와 바람이 만든 암벽들 덕분에 멋진 풍광이 만들어졌다. 비진도는 산호해면과 고운 모래사장이 푸른 물결을 만들어내며 그림처럼 펼쳐진 관광지다. 통영을 관광하다 보면 멋진 자연경관과 더불어 통제영지와 세병관, 충렬사, 관음포 등 곳곳에 통제영의 문화와 이 충무공과 관련된 유적지를 찾아볼 수 있다. 수 많은 수식어 중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 8경중에 하나인 남망산 공원도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쪽빛바다에 촘촘히 박여있는 수많은 섬들이 이루는 경치는 빛이 반사된 호수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또한 꼭대기에는 이 충무공의 동상이 의젓하게 서있다. 또한 통영여행에 있어서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 통영항과 한려수도의 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미륵산 정상에서 보는 한려수도 일대는 쾌청한 날이면 멀리 일본의 대마도와 여수의 소리도까지 볼 수 있다. 통영여행은 계절별로 별미를 맛보는 즐거움도 더해준다. 봄에는 도다리쑥국, 멍게유곽비빔밥, 여름에는 장어탕, 가을에는 전어구이, 겨울에는 대구탕, 바다메기탕이 선호된다. 복국은 사시사철 맛볼 수 있으며 충무김밥 또한 간단한 먹거리로 즐길 수 있다. 기차전문여행사 ‘홍익여행사’는 통영식 별미와 이국적인 풍경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여행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홍익여행사 관계자는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통영에 대한 여행객들의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통영은 먹고 마시는 즐거움 뿐만 아니라 멋진 풍경에 제대로 된 힐링까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여름철 관광지”라고 전했다. 자세한 내용은 홍익여행사 홈페이지와 전화로 확인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봄나들이 나선 ‘오마베’ 세 가족들 ■토요일이 좋다 오! 마이 베이비(SBS 토요일 오후 4시 50분) 아이들이 봄을 맞이해 제각각 봄나들이에 나섰다. 리키 김의 아들 태오와 딸 태린이는 축구장에서 포착됐다. 슈의 라둥이 자매는 빨래에 빠졌다. 그것도 세탁기가 아닌 손빨래의 희열에 빠졌다. 사강의 두 딸은 동물파크체험에 나섰다. 첫째 소흔이는 이날 일명 ‘파충류 소녀’로 등극했다. 커다란 동물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어른들보다도 한발 먼저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 엄마 사강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날의 백미는 채소 자매의 아빠이자 사강의 남편 신재호씨. 둘째 채흔이가 비단구렁이를 너무 무서워하자, 댄서 출신의 감각을 100% 발휘해 뱀을 어깨에 두르고 화제의 ‘픽미 댄스’를 선보이며 채흔이의 무서움을 풀어줬다. ■숨은 한국찾기(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MC 김일중과 한수연이 한산도의 매력을 소개한다. 역사 이야기와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한산도는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에 있다. 충무공의 땅, 한산도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푸른 바다를 소개한다.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MBC 일요일 오전 8시) 연예전문 리포터이자 방송인 조영구. 그는 자타 공인 ‘한밤의 터줏대감’이다. 그의 마지막 방송 출근길을 따라간다. 다른 때보다 옷을 고르는 그의 손길이 유난히 신중해 보인다. 아내와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한 마지막 방송, 그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한다.
  •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길은,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삶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대처로 떠나는 자식의 발걸음이 잠시 떨리며 머뭇거렸음을, 옷고름 사이로 떨어진 어미의 눈물방울이 짭짜름했음을 동구밖 길은 아주 오래 기억했다. 동네를 감아 도는 그 길을 걸었다. 1930년대 중반 그 봄,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으면 통영 앞바다가 훤히 펼쳐졌을 게다. 여황산자락 아래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을 지난 눈 속에는 쉴 새 없이 고깃배가 오갔고, 부푼 꿈을 안고 오는 이, 또 다른 꿈을 이고 타향으로 떠나는 이가 엇갈리는 낡은 선창이 비쳤을 테다. 하지만 사랑을 잃은 사내에게는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도 오롯이 아름답기 어려웠으리라. 한참 나중에 호사가들이 통영을 일컬어 ‘한국의 베니스’ 운운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칭송했지만, 스물넷 평안도 출신의 청년시인 백석(1912~1995)에게는 실연의 상처가 훨씬 컸을 수밖에 없었다. 백석은 사랑을 위해 멀리 남쪽 바다까지 헛걸음을 반복해야 했다. 한 번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른 두 번은 사랑을 기억하며 가슴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찾았다. 그러나 한 번 떠난 사랑이 돌아올 리는 없는 법. 통영을 다녀왔던 길은 그의 작품 속 중요한 지역의 하나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으로 갈무리됐다. ●삼도수군통제영 복판 여황산 끼고 돌아 백석의 발길로부터 80년의 시간이 흐른 봄, 통영을 찾았다. 그가 시 ‘통영1’에서 묘사한 것처럼 통영 여황로에는 마침 ‘김 냄새 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차들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고, 타관의 학생들을 실은 수학여행 버스들은 줄을 지어 여황로 길을 지나고 있었다. 여황로는 174m의 야트막한 여황산(艅山)에서 비롯된 이름의 길이다. ‘여황’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임금이 아끼던 화려한 배로, 훌륭한 군세를 갖춘 큰 전선을 상징했다. 통영항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산세를 펼치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의 복판에 자리잡은 산이니 딱 걸맞은 이름이다. 통영시 북쪽 여황산 아래쪽으로 4113m 이어지며 문화동, 북신동, 명정동 등을 감싸고 돈다. 통영은 현대문화예술의 보물창고와도 같다. 특히 여황로 하면 일단 백석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여황로 충렬사 앞에는 백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통영2’라는 시다. 편의상 ‘통영1’, ‘통영2’라고 했지만 발표 당시 원래 제목은 모두 ‘통영’이었다. ‘통영2’는 그가 통영에 대해 쓴 시편 중 가장 길고 유려하며 음율을 잘 살렸다. 그는 ‘통영2’에서 이곳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또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에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여황로 길가에 앉아 한껏 달떠서 혼자 히죽거리는 백석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곧 깨지고 말 단꿈이었지만. 여기에 원체 아름다운 통영의 풍광까지 한눈에 들어왔으니 시인의 시심이 절로 우러났을 것임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백석 시비 앞 명정샘 박경리가 소설에 써 ‘난’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막 문청을 벗고 등단해 시인이 된 그는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통영 출신의 이화고녀 졸업반이던 박경련을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귄다. ‘난’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는 박경련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통영을 찾았지만 걸음이 엇갈려 만남이 어긋나게 됐다. 난의 집이 충렬사 근처인 명정동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사이 그의 직장(조선일보)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가 난과 결혼을 해 버리고 말았다. 사랑과 친구를 함께 잃은 아픔 탓이었을까. 그는 그해 조선일보를 그만뒀다. 그리고 기생 자야(子夜·본명 김영한·역시 백석이 붙여준 애칭이다)를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눴고, 고향집 부모님의 성화에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렀지만 다시 자야에게 돌아갔다. 1940년 자야마저도 떠나 고향땅인 신의주, 정주로 갔다. 그가 통영에 대해 직접 남긴 작품은 ‘통영 1, 2’ 외에 ‘남행시초2-통영’ 등 모두 세 편이다. 특히 ‘남행시초2-통영’ 시편 마지막에는 난의 외사촌 오빠인 ‘서병직씨에게’라고 적었다. 그를 통해 통영 장터며 선창 등을 둘러봤음을 알게 해준다. 백석이 들여다본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골 명정샘은 지금도 여황로 시비 앞에 있었다. 충렬사 문화해설사인 옥복주(47)씨는 “일(日)정과 월(月)정 두 개의 샘이 있어 명정(日+月=明井)이 됐다.”면서 “1670년 만든 이후 몇 년 전까지 330년 넘도록 식수로 썼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여전히 맑지만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통영2’ 중)을 찾을 수는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명정골은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1926~2008)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문장 속에도 그 흔적을 흩뿌려 놓았다. 박경리는 명정골에 대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고 했다. 박경리의 생가는 여황로 충렬사 주차장 맞은편 바로 곁의 좁은 골목길인 ‘토영 이야길’을 따라가면 있다. 하지만 현재 다른 이가 살고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표지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남편과 사별한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에게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무려 5000통의 연서를 보냈던 유부남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사연이 남겨진 곳도 그리 멀지 않다. 유치환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중)고 노래했던 통영중앙우체국은 여황로에서 서문로를 따라 7~8분 남짓 내려오다가 세병로(청마거리) 오른쪽으로 접어든 뒤 3~4분쯤 걸어가면 있으니 그리 멀지 않다. ●지긋한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읊어 이른 아침 여황로 어귀에서 만난,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는 늙수그레한 중년의 김모(58)씨는 “그 사람들이야 먹고살만 하니까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썼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도 유치환, 이영도의 ‘아름다운 불륜’이며, 시인 김춘수, 화가 김용주,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박경리 등 통영 출신 예술가의 이름들을 줄줄이 들먹였다. 흔히 돈을 잘 버는 동네에서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들 하는데, 통영이라면 ‘중늙은이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소설 한 토막쯤 읊조린다.’는 말이 좋이 쓰일 법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후딱 오른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통영시내 쪽으로는 강구안길이며, 여황산이 보이고, 다도해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산도, 매물도, 그리고 멀리 대마도까지 한눈에 푹 안긴다.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과분할 만큼의 통영이다. 이곳의 길 위에서 시집 한 권, 소설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그 옛 기억과 향취까지 가져간다면 더욱 어울릴 법하다. ● 역사의 보고 통영의 길들 동피랑·서문까꾸막… 토박이말 길이름 천국 통영은 바다의 왜적들과의 싸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바람으로 다져진 곳이다. 통영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역사의 현장으로 뚜벅뚜벅 들어감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4년(선조 37)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 세운 뒤 ‘통영’이라는 지명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통제영의 약칭에서 따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와 통제영의 일종의 객사 역할을 했던 세병관(洗兵館·세병로 27), 그리고 북포루(北樓) 등은 통영 출신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고,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 필수 방문지다. 길 이름 역시 이러한 역사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세병로, 충렬로 등은 물론이고 통제영을 굳게 지키던 문들도 이름을 남겼다. 동문로(東門路)와 서문로(西門路)는 모두 옛 통영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였던 동문과 서문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두 문 모두 고갯마루의 정상쯤에 위치해 있었으니, 통영 토박이들의 말로 ‘동문까꾸막’(동문고개), ‘서문까꾸막’(서문고개)이라고 불렀던 길들이다. 북신로(北新路) 역시 통영성 북문 바깥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길이라는 뜻이다. 또한 세병로와 여황로 사이를 잇는 갈림길인 운주길은 옛 통제영의 관아였던 운주당(運籌堂)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남해안대로에서 갈래져 나온 원문마을길은 통제영 입구였던 원문성(轅門城)에서 따온 마을 이름을 달았다. 이 밖에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동피랑길은 정겨운 마을 벽화로 유명하다. ‘피랑’은 벼랑을 일컫는 통영 말이다. 통영시의 동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배기로 통영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자랑한다. 통영성과 동포루(東樓)의 유적이 있다. 사진=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통영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통영은 진하다. 색이 진하고, 향이 진하고, 맛이 진하다.역사가 그러하고, 문화가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다.좁은 골목에도 음악가와 화가의 삶이 얽혀 있고, 낡은 가옥에도 소설가와 시인의 인생이 묻어 있다. 얽히고 묻은 것들은 하나같이 묵직하다. 참 농밀하기도 하다. 그래서 통영의 여운은 오래도록 맴돈다.강구안. 멀리 동피랑과 나폴리 모텔이 보인다세병관의 서쪽 망루인 서포루동피랑의 상징인 벽화세병관 마루에 앉아 회상하다 통영 앞에는 어김없이 비경, 예향,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달라붙는다. 수식어 대신 ‘동양의 나폴리’만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통영이 나폴리가 되기 이전에 통영은 이순신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왜군에 치가 떨린 조정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5개 수영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영을 마련한다. 뼈아픈 치욕은 무너진 궁궐의 재건보다 먼저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도록 했다.1604년에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영은 300여 년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이었다. 초대 통제사는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인 이순신. 그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다. 이후 6대 통제사가 지금의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겼다.삼도수군통제영을 거닐어 본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발끝에서 단단하게 전해진다. 400년 넘게 닳은 돌층계 위로 겨울비가 흩날린다. 층계 끝의 문에는 지과문止戈問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칠 지止, 창 과戈, 즉 창을 거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칠 ‘지’자를 창 ‘과’자 밑으로 가져와 두 글자를 합치면 싸울 무武 가 된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창을 거두지만, 유사시에는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무장의 기상이다.무장의 다짐은 지과문을 지나 세병관에도 고스란하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구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가져왔다. ‘하늘의 은하수로 피 묻은 병기를 씻는다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 즉,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씻을 세洗의 삼수변을 제거하면 먼저 선先이 된다. 평상시에는 세병이나, 유사시에는 선병. 평화를 바라는 마음 중에도 전투를 유념한다. 세병관의 현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단다. 목이 아프도록 현판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세병과 선병 모두 결국은 백성과 조국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인 것을.삼도수군통제영과 어우러진 통영 시내의 모습이 통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듯하다 국보 305호 세병관은 정면 9칸, 측켠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목조건물이다. 이는 우리나라 단일 면적의 목조건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의전과 연회를 행했던 객사건물이었으나 일제시대에는 기둥 사이에 벽을 세우고 초등학교로 사용됐다. 긴 세월 동안 몇 차례의 보수는 있었을지언정 삼도수군통제영의 다른 건물들이 소실될 때에도 세병관은 당당하게 세월을 견뎌냈다.세병관의 마루로 올라선다. 동쪽 망루인 동포루와 서쪽 망루인 서포루, 북쪽 망루인 북포루가 좌청룡과 우백호, 북현무로서 세병관을 감싼다. 정면으로는 멀리 미륵산 자락이 너울대고, 세병관 뒤로는 여황산이다. 마루가 맑고 서늘하다. 세병관 마루에서 바라보는 통영시내는 겨울비로 흠뻑 젖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기와 너머로 통영의 땅과 바다가 들어온다.통영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을 숱하게 잉태한 이유를 파헤치다 보니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답이 나온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삼도수군통제영으로부터 파생된 것들로 인해 통영의 문화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란 말이다. 통제영의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군수품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통영 12공방 장인의 수가 가장 많아서 1895년 폐영 당시 2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생산품 역시 최상품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통영소반 위에 안주를 차리는 것으로 부를 과시했다고 한다. 통영에서는 버선 한 켤레, 빗 하나, 갓 끈 하나조차 허술하지 않으니 그 안목들이 오죽했을까.한편, 통제영 300년이라 함은, 통제사가 300년 동안 부임했다는 이야기다. 통제사는 조선시대 정2품의 벼슬이었다. 정2품의 양반이 통제사로 부임하면 통영으로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식솔들과 노비들을 모두 끌고 온다. 일년 반마다 새롭게 부임하는 통제사는 한양의 최신식 유행을 퍼트렸고, 이는 통영의 복색을 세련되게 만들었다.뿐만 아니라, 세병관에서 의전과 연회 때마다 연주되는 예악을 들음으로써 통영의 음악도 풍부해졌다. 예악은 궁궐이 있는 한양이 아니고서는 듣기 힘든 고급 음악이었다. ‘전라도 가서는 소리하지 말고, 경상도 가서는 춤추지 말라’고 했다. ‘통영 가서는 춤도 소리도 하지 말라’가 되겠다. 충청, 경상, 전라 수군이 모여 저마다 춤 한 사위, 노래 한 가락 읊조리는 곳이 삼도수군통제영이었기 때문이다. 춤과 소리를 잘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축적되고 융합되었고, 순간마다 땅은 비옥해졌다. 이후 이 땅은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등과 같은 근사한 꽃들을 피워냈다.서호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강구안 골목의 대표적인 조형물 ‘이중섭 물고기’강구안 골목의 오래된 가게 사이로 세련된 감각의 가게들이 함께 공존한다히히히 강구안, 정겨운 서호시장‘어, 나폴리 모텔이다.’ 통영의 강구안 해안가를 거닐다 중얼거렸다. 나폴리 모텔은 2009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서 남여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는 장소다. <하하하>는 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영화로, 영화의 배경인 통영의 매력이 가득 담긴 영화다. 강구안에서 나폴리 모텔을 보니 ‘하하하’가 아니라 ‘히히히’ 하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이제 강구안은 늘상 웃음소리로 소란하다. 물론 영화 때문은 아니다. 오래된 강구안 골목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강구안은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항구를 일컫는다. 통영에서는 중앙동, 항남동 등의 일부 해안을 옛날부터 강구안이라고 불렀다.통영의 명동으로 불릴 정도로 번화했던 강구안이 통영여객선터미널의 이전으로 쇠락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골목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 강구안 골목에는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70년간 이어 온 돼지국밥집, 55년 동안 풀무소리 끊긴 적 없는 대장간, 30년 넘은 목욕탕들이 여전히 소곤댄다. 그 사이로 게스트하우스와 작은 카페들도 함께 살 비비며 공존한다. 골목 어딘가에는 화가 이중섭과 유치환 시인이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 있을 것이다. 지금 강구안은 새벽 1시에 후루룩 먹는 우짜우동과 짜장을 섞은 요리 맛처럼 달큰하고 뜨뜻하다, 히히히.서호시장은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건너편에 위치한다. 예전 서호만 터를 매립해 만든 새 땅에 자리한 시장이라 새터시장으로도 불린다. 이른 아침부터 서호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굴이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통통하고 뽀얀 굴이 곳곳에서 보인다. 볼락과 학꽁치가 지천이다. 시장 한 켠 방앗간에서는 아침부터 고소한 기름 짜는 냄새가 번지고, 과일이며 나물이며 바구니마다 수북하다. 부지런한 상인들은 새벽부터 좌판을 벌였을 것이다. 알뜰한 사람들은 조금 더 싱싱하고 조금 더 저렴한 물건을 찾아 시장 골목 여기저기를 누빈다. 새벽 조업을 마친 어부들은 뜨끈한 해장국으로 거친 속을 푼다.서호시장에는 시래기를 뭉근하게 끓인 시락국, 국물이 시원하고 맑은 물메기탕, 해장에 최고라는 졸복국 등 다양한 해장국 가게가 많다. 시장의 활기가 궁금하다면 아침에 갈 것. 오후가 되면 비교적 한산해진다.▶travel info 욕지도·통영FERRY욕지도 여행의 출발은 통영이다. 통영의 통영여객선터미널과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과 카페리가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1시간 30분,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45분이다. 삼덕여객선터미널의 경우 통영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 떨어져 있으므로 교통편에 따라서 터미널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통영→연화도→욕지도 하루 5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9,7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5,000~2만6,000원 삼덕→욕지도 하루 8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7,6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8,000~2만4,000원FESTIVAL 욕지섬문화축제 욕지섬문화축제는 욕지도의 대표적인 축제다. 1992년부터 10월 중순경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120여 년 전 처음으로 사람들이 욕지도에 살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욕지도 특산물인 고구마와 고등어를 주제로 한 ‘GO(구마)GO(등어)페스티벌’과, 과거 어민들의 어선인 전마선을 체험할 수 있는 ‘전마선노젓기대회’와 같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STAY욕지도 옵타티오펜션 전 객실이 바다 전망이다. 일반형 객실 외에도 가족단위 여행객이 머물면 좋을 복층형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복층형 객실의 2층 천장의 창을 통해 욕지도의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www.optatio.co.krrestaurant욕지도 늘푸른횟집 욕지도의 싱싱한 고등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고등어회를 주문하면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친절히 설명해 준다. 고등어회뿐만 아니라 욕지도 고등어로 만든 고등어조림도 일품이다. 칼칼한 양념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 055 642 6777통영 통굴가 제철 굴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가격에 따라 코스에 나오는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통통하고 맛이 진한 굴을 다양한 요리로 즐겨 보자. 055 645 2088통영 분소식당 겨울이면 제철 물메기탕이, 봄이면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 시원한 국물과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드라운 물메기살을 호로록 맛보다 보면 어느새 속이 뻥 뚫린다. 졸복으로 만든 졸복해장국도 인기. 055 644 0495MUSEUM박경리 기념관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박경리 선생은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념관 내부에는 선생의 친필 원고를 비롯하여 유품,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뒤쪽으로는 선생의 묘소가 자리한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09:00~18:00,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 055 650 2541~3 pkn.tongyeong.go.kr윤이상 기념공원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한 공원. 전시실과 카페 및 기념품숍, 각종 공연과 세미나와 같은 실내행사를 위한 메모리홀, 야외행사장인 경사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실에는 윤이상의 생애와 함께 생전 사용하던 악기 및 친필 악보를 비롯하여 생전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27 도천테마공원 09:00~ 18:00 1월1일, 설날 및 추석연휴, 매주 목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단, 공연 및 세미나는 별도) 055 644 1210 www.isangyunmemorial.com통영옻칠미술관 옻칠과 회화를 접목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정제하고 안료를 배합하여 옻칠을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빛나는 광채가 신비롭다.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 용남해안로 36 10:00~18:00,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설날, 추석 휴관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055 649 5257 www.otchil.org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윤정 취재협조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www.hanbada.or.kr,통영시 www.tongyeong.go.kr
  • [공기업 사람들 국립공원관리공단] 생물자원·문화유산 보존·관리… 국가 생태계 건강 지킴이

    [공기업 사람들 국립공원관리공단] 생물자원·문화유산 보존·관리… 국가 생태계 건강 지킴이

    최운규 경영기획이사 정무 능력 뛰어나 김종천 자원보전이사 국제교섭 역량 발군 정정국 탐방관리이사 안전관리 전문가 황명규 기획재정처장 기획·분석력 탁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87년 설립된 공원 관리 전문 기관이다. 이전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국립공원 관리를 맡았으나 부실 문제가 불거져 정부가 직접 관리하게 됐다. 건설부 산하기관으로 출발해 내무부를 거쳐 1998년 환경부로 이관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보존된 국립공원 20곳(한라산 제외)을 관리한다.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생물 자원의 50% 정도가 서식하고 멸종 위기종의 60% 이상이 분포하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꼽힌다. 공단은 자체 수집한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국민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등 이용 편의와 만족도를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올 한 해는 공단에 특별한 해다. 서울 시대를 마감하고 연말 원주혁신도시 이전을 앞둔 데다 2017년 공단 설립 30년, 국립공원 제도 도입 50년을 앞두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미래의 약속’(가칭)을 담은 선언문을 준비 중이다. 30년간 쌓아 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단의 미래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기후변화 적응과 해양·문화 자원 보전을 위한 조직 개편도 추진한다. 공단 살림을 총괄하는 최운규(58) 경영기획이사는 설악산사무소장과 탐방지원처장, 자원보전처장, 기획재정처장 등 주요 보직과 현장을 거쳤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후손이다. 소탈하고 정무적 감각과 대외 협력·업무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종천(60) 자원보전이사는 환경부 국제협력관과 국립환경인력개발원장, 국립생물자원관장, 2012세계자연보전총회 조직위원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의 국제기구 및 각국 공원관리청과 다양한 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감각과 교섭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정정국(56) 탐방관리이사는 산불과 안전 등 국립공원 탐방을 총괄하는 안전관리 행정 전문가다. 사리가 밝고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명규(57) 기획재정처장은 상생협력실장과 월악산·북한산도봉사무소장 등을 거쳤다. 기획력과 분석력이 뛰어나고 부서 간 협업을 통해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공단 예산 시스템의 기초를 마련했다. 취미가 성악으로, 학창 시절 강변가요제에 참가해 입상하기도 했다. 정장훈(58) 홍보실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시문과 서예에도 조예가 깊다. 현장 근무 당시 국립공원 난공사로 꼽히는 전남 여수 거문도 삼호교와 고흥의 내발~남성 도로공사 등을 국토부로부터 인수받아 무난히 마무리했다. 공단의 홍보 역량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종관(52) 자원보전처장은 환경 지식과 업무 열정이 뛰어나다. 2007년 태안해안국립공원 유류 오염 사고 때 현장에서 초기 대응으로 오염 확산을 차단하는 등 뚝심과 추진력을 보였다. 안수철(60) 탐방복지처장은 음악과 미술에 해박한 ‘감성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야영장 힐링콘서트 개최 등 문화가 있는 국립공원 조성과 미래 세대 환경 교육, 건강 나누리 캠프 등 대국민 생태복지 서비스에 힘을 쏟고 있다. 용석원(58) 행정처장은 공단의 인사·기획 전문가로 임직원 사이에 신망이 두텁다. 노조와의 협상과 협력을 통해 노사가 상생하는 직장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용상(52) 상생협력실장은 차분한 성격과 논리적이며 긍정적인 마인드가 장점이다. 지리산북부소장 시절 야영장 푸드뱅크 운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바 있다. 나공주(56) 공원환경처장은 공원 관리 전문가로 탐방문화 개선을 주도했다. 아마추어 야구심판 자격을 보유할 정도로 야구광이다. 지난 1월 임명된 이진화(57) 감사는 춘천여고와 강원대(생물학과)를 졸업했다. 공단의 첫 여성 임원으로 공단의 청렴도를 높일 적임자로 주목받고 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남 통영

    [新국토기행] 경남 통영

    경남 통영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다도해 지역이다. 남해안 경남 중간에 육지와 유인도 44개, 무인도 526개로 이뤄졌다. 잔잔한 푸른 바다와 올망졸망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이 어우러진 풍광이 환상적이다. 항구와 동·서호만을 낀 도심 경치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린다. 면적은 239.54㎢, 인구는 13만 9349명이다.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에 동해 난류가 흘러 수산자원이 풍부, 일찍부터 수산업이 발달했다. 통영은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의 현장으로 많은 유적이 있다. 충청·전라·경상, 삼도 수군을 총지휘하던 삼도수군통제영이 1604년부터 1896년까지 300년 동안 있었던 군사도시였다. 통영 지명도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것이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시인들조차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할 만큼 빼어난 한려수도 통영의 비경은 문학·예술 창작의 자양분이 됐다. 극작가 유치진과 시인 유치환 형제를 비롯해 시인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이 통영 출신이다. 박경리 선생은 그의 바람대로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양지바른 언덕에 영원히 잠들었다. 통영은 대전~통영 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이 편리해지면서 사계절 관광지가 됐다. 경남도와 통영시는 김천~통영~거제를 잇는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수도권과의 교통이 더욱 편해져 세계적인 해양 휴양 관광도시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볼거리 ●한려수도 한눈에 보는 ‘국내 최장 케이블카’ 우리나라 100대 명산이며 한려수도 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미륵산(해발 461m)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다. 아래 하부역에서 정상 근처 상부역 사이 선로 길이가 1975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8인승 곤돌라 47대가 시간당 800여명을 수송한다. 정상에 오르면 호수처럼 잔잔한 한려해상공원의 환상적인 다도해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90㎞쯤 떨어진 대마도는 1년에 30여일, 105㎞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은 절반쯤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동양 최초의 바다 터널 ‘통영 해저터널’ 1932년 개통된 동양 최초의 바다 터널이다. 길이 483m, 너비 5m, 높이는 3.5m다. 바다 양쪽을 막은 뒤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건설했다.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주요 연결도로로 사용되다가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건설되면서 지금은 사람만 다닌다. 터널 입구에 ‘용문달양’(龍門達陽)이 쓰여 있는데 ‘용문을 거쳐 산양(山陽)에 통하다’라는 뜻으로 산양은 미륵도를 일컫는다. ●은하수 끌어와 병기를 씻는 세병관 통제영이 설치된 다음해인 1605년 건립된 객사로 통영시 세병로 27에 있다. 국보 제305호. 통정면 9칸, 측면 5칸으로 된 단층 팔작집으로 1646년과 1872년에 증개축됐다. ‘세병관’(洗兵館)이란 이름은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에 나오는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것으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통제영 주요 건물과 12공방 건물 등은 2000년부터 13년에 걸쳐 복원·건립됐다. ●한산도 곳곳에 서린 이순신 장군의 혼 한산도 두억리 일대 52만 5123㎡에 제승당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 영정을 봉안한 충무사, 활터인 한산정, 각종 비석 등이 있다. 한산도는 한산면을 이룬 29개 유·무인도 가운데 가장 큰 본섬이다. 섬 중간쯤에 전망 좋은 망산이 있어 가벼운 등산과 유적지 탐방을 같이할 수 있다. 제승당 자리에는 이순신 장군이 기거하는 운주당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이순신 장군은 1593년 8월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돼 1597년 파직될 때까지 운주당에서 삼도수군을 통제했다. 1740년 통제사 조경이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터에 건물을 지어 제승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930년대에 중수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한 뒤 1975~76년에 새로 지었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가 다닌다. ●김춘수 유품 전시관·박경리 기념관 예향 도시 명성에 걸맞게 곳곳에 통영 출신 문인·예술인 기념관과 생가 등이 있다. 망일 1길 82(정량동)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청마문학관이 있다. 유치환(1908~1967)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2000년 2월 14일 개관했다. 육필 원고를 비롯한 유품과 서적·논문 등 문헌자료가 전시됐다. 청마 초가집 생가도 복원했다. 통영항이 한눈에 보이는 해평5길 142의 16(봉평동)에는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 유품전시관이 있다. 2008년 3월 28일 문을 열었다. 김 시인의 육필 원고와 쓰던 가구, 옷가지, 시집 등 유품 330여점을 볼 수 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 유품과 자료를 전시한 박경리기념관도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에 2010년 5월 5일 개관했다. 기념관이 있는 박경리 공원에 선생 묘소가 있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전혁림(1916~2010) 미술관이 남포3길 19-1(봉평로) 미륵산 자락에 있다. 전 화백이 오랫동안 생활하던 집을 헐고 미술관을 지어 2003년 5월 11일 개관했다. 전 화백 작품을 타일 조각을 이용해 벽화로 만들어 단장한 미술관 외벽이 눈길을 끈다. 도천동 중앙로 27 도천테마공원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기념관이 있고 옆에 생가가 있다. 통영시 큰발개 1길 38(도남동) 해변에 있는 음악 전용 공연장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3만 3038㎡ 부지에 2013년 5층 규모로 개관했다. 메인홀은 1300여석 규모다. 윤이상의 음악 업적을 기리려고 2000년부터 매년 여는 통영국제음악제 공연장으로 사용한다. ●발아래 바다와 함께 즐기는 섬마을 산행 사량도는 발아래 아름다운 바다를 두고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통영에서 뱃길로 20㎞쯤 떨어졌다. 사량도 이름은 뱀이 많이 서식해 붙여졌다는 설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윗섬과 아랫섬에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고 두 섬을 잇는 연도교가 지난해 10월 개통됐다. 상도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지리산~불모산~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 종주 등산길은 쇠 사다리와 출렁다리로 아찔한 절벽을 지나며 섬 산행의 스릴을 맛볼 수 있다.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4㎞에 있는 연화도는 통영 8경의 하나인 용머리 바위로 유명하다. 연화도는 바다에 핀 연꽃이란 뜻이다. 깎아지른 해변 기암괴석이 늘어선 모습이 신비롭다. 특히 용이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양으로 바다에 떠 있는 용머리 바위는 연화도 절경의 백미로 꼽힌다.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등대섬으로 이뤄진 매물도도 가 볼만하다. 특히 등대섬은 경치가 빼어나 영화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면서 유명하다. 소매물와 등대섬은 바닷물이 들 때는 분리됐다가 빠지면 ‘열목개’라는 자갈길로 이어져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1910년 일본이 등대를 세워 미군 함정을 감시하는 초소로 이용했다.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다. 해수욕장 서편은 모래밭이고 동편은 몽돌밭이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욕지도는 욕지면의 주 섬으로 까만 몽돌로 된 덕동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해발 392m의 천왕봉은 산세가 아름다워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일주도로가 잘 뚫려 있다. 장사도는 동백이 섬을 뒤덮어 꽃이 피면 섬 전체가 불타는 것처럼 아름답다. ●남망산국제조각공원과 동피랑 벽화골목 남망공원길 29(동호동) 야트막한 남망산 공원 야외 1만 5700㎡에 10개 나라 조각가 15명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1997년 10월 개장한 조각공원은 작품을 감상하며 통영 시가지와 바다를 구경할 수 있어 인기다. 동호동 언덕에 ‘동쪽에 있는 벼랑’이란 뜻의 동피랑 마을이 있다. 중앙시장 뒤쪽에 비탈진 골목과 작은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마을이다.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에 딸린 시설인 동포루가 있었다. 통영시는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와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지역 시민단체가 나서 벽화 그리기 운동을 벌였다. 예쁜 벽화마을로 변신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시도 철거 계획을 철회했다. >>먹거리 ● 고기잡이 나간 남편 생각에 만든 ‘충무김밥’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도록 김 안에 밥만 넣고 만든다. 반찬으로 나오는 무 김치, 오징어무침과 같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충무김밥은 1930~40년대 통영지역 어촌에서 시작한 향토 음식으로 알려졌다.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바다에서 술만 먹는 것을 보고 아내가 김밥을 만들어 줬으나 금방 상해서 버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밥만 넣어 김밥을 만들고 깍두기와 주꾸미로 반찬을 따로 만든 게 충무김밥 시초로 전해진다. 충무김밥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1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문화행사 ‘국풍 81’이 계기가 됐다. 당시 통영지역 ‘원조 뚱보 할매’ 어두이 할머니가 만들어 팔면서 홍보가 됐다. ●철·구리·칼슘·비타민 풍부한 ‘통영굴밥’ 흑미 찹쌀과 콩, 밤, 대추, 수삼 등으로 지은 밥에 통영 굴을 얹어 살짝 익힌 건강식이다. 밥이 뜸이 들 무렵 깨끗하게 손질한 굴을 밥 위에 얹는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인정한 청정한 통영 앞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생굴을 쓴다. 굴밥은 일반 밥에는 없는 철, 구리, 칼슘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A·B·C·D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청정해역 졸복이라 더 시원한 ‘통영복국’ 통영복국은 통영 청정해역에서 잡은 싱싱한 졸복을 사용한다. 일반 복국보다 국물 맛이 더 시원하고 담백하다. 복어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유지방이 없어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꼽힌다. 간 해독이 뛰어나고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나리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 숙취 해소에도 좋다. ●밤처럼 타박하고 단맛 강한 ‘욕지 고구마’ 욕지도 고구마는 섬 특유의 자연환경에서 자라 맛이 탁월하다. 욕지 고구마는 물 빠짐이 좋은 섬의 비탈진 황토밭에서 강한 해풍과 풍부한 일조량 속에 자라 속살이 밤처럼 타박하고 단맛이 강하다. 욕지도 고구마 순을 육지로 가져가 재배해 본 결과 욕지 고구마와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욕지도 밭 가운데 70%가 고구마를 재배한다. 택배 주문할 수 있다. ●팥앙금에 꿀까지 바른 ‘통영 꿀빵’ 뱃사람들이 따뜻한 기후에 상하지 않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간식이다. 6·25전쟁 이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밀가루를 반죽, 속에 팥앙금을 채우고 기름에 튀겨 만든 뒤 상하지 않게 겉에 꿀을 바른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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