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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하/생태계 복원… 자정력 키워야(서울 6백년 만상:6)

    ◎분류하수관·수중보 득보다 실이 많아/라인강처럼 자연과학방법 총동원을 수천년동안 우리를 지켜온 한강.그러나 한강은 지금 베푸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낚시와 수영하는 기쁨을 잊은지 이미 오래됐고 식수를 주는 일 또한 예전과 같지 않다.이 모두 한강이 지칠대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강의 상처를 치유해준 기억은 별로 없다.우리가 한 일은 그저 버리고 쏟아붓고 더럽히고 그대로 방치한 것이 고작이다. 지금 한강은 운명의 기로에 서 있다.새롭게 탄생할 것인지의 여부가 판가름 나는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우리는 한강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수질개선 노력 지속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논쟁이 한창인 오염된 식수원을 맑게 하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지금까지 숫하게 들어왔던 분류하수관증설 및 정수장의 수질관리체계 개선과 폐수방류금지등 임기응변적인 대책은 오염수치를 놓고 승강이를 더해줄 뿐이다. 미래학자나 환경분야 전문가들은 한강살리기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한강을 포함한주변 생태계를 되살리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수질오염에 대한 대응개념 이상의 내용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생화학·미생물학·물리학·기후학·지질학등 모든 자연과학의 총체적 개념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목표치인 것이다. 상수원 보호지역을 단순히 묶어 놓는 상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그 지역을 대상으로 물이 정화될수 있도록 동·식물을 이식,번창시키며 강변유역을 시멘트로 막아두지 말고 자연 식생물이 자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가꾸는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잡은 강으로서 한강보다 더 많이 오염됐다가 이같은 생태계 보호대상으로 돌봐지고 있는 강은 많다.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한복판을 흘러가는 라인강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인강의 오염회복은 복잡한 과학기구를 동원한 것이 아닌 강변의 둑을 허무는 아주 단순한 것에서 시작했다. ○갈대숲 조성 효과 생태계를 무시한채 콘크리트의 강둑과 운하를 만들면서 주변의 동식물은 물론 미생물까지 모두 사리진 죽은 강이됐다는 자각에서 출발했다.즉 강둑을 헐어 물이 자연스럽게 넘나들게 한다면 넘친 곳에는 흘러간 물이 나름대로 지류를 만들고,지류가 완만히 흐르면서 배후 습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자연히 유속이 줄고 수생식물들이 자라며 이내 자연의 자정·회복능력이 강화돼 「자연」이 되살아날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전제가 되는 것은 물이 왠만큼은 깨끗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하고있는 수질개선 노력을 그만두란 말은 결코 아니다. 이 계획은 유럽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WWF(세계야생동물재단)이 지난 63년부터 부르짖어 이미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우리와 비교해볼 때 환경보호 목표와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느낄수 있다. 결국 인공적인 모든 것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고 고도의 자연환경보호책은 다시 자연의 상태로 환원하는 것이란 말이된다. 한강에 인공적으로 설치했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많다.방수시설이 안된 분류하수관이 폐수를 스며나오게 하는가 하면 수위조절을 위해 만든 수중보는 갈수기때 수질오염을가중시키고 오물질이 보 아래 쌓여 물고기를 집단폐사케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근본대책 아쉬워 반면 긍정적인 계획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한강철교와 반포대교에 이르는 공원부지 주변과 동작대교와 한남대교 사이등 4곳 13만7천㎡부지에 조성한 갈대숲이 바로 그것이다.갈대는 다른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생존할뿐 아니라 그 뿌리로 인해 토양의 자정능력이 높아지고 주변유역을 생기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의 한강은 지금 이같은 고도의 대응력을 지닌 보호대책을 필요로 한다.하루 아침에 깨어나 마련되는 그런 단편적인 수질관리 대책이 아니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근본적인 대책만이 우리 민족의 젖줄인 한강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 넣을수 있을 것이다.
  • 자정능력 상실한 호남젖줄/긴급점검

    ◎영산강은 “죽은물”… 공용수로도 부적/광주천과 합류하며 5급수 전락/기름·축산폐수 뒤섞여 심한 악취 나주평야의 생명줄인 영산강이 광주천의 오염으로 서서히 숨을 거둬가고 있다.시커먼 광주천을 받아들여 흐르고 있는 영산강은 식수원이나 농업용수는 커녕 강물의 마지막 쓰임새인 공업용수로마저 쓸수없는 죽은강으로 변한다. 광주시 일원을 관통해 영산강에 합류하는 광주천을 멀리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화선지위에 먹물로 강줄기를 그려놓은 것만 같다.원래 평탄지대를 흐르기때문에 황토색짙은 강물이기는 하지만 70년대 들어 아예 검붉어지기 시작해 끝내는 먹물이 돼버렸다. ○폐수처리장 방불 강물은 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장 폐수처리장이라고 해야 옳다.가장자리·한복판을 가릴것없이 강물위에는 예외없이 보통사람으로는 도대체 무슨 기름인지도 모를 지독한 냄새를 뿜는 기름띠들이 뒤덮고 있다.영산강 가장자리에는 상·하류 구분없이 플라스틱용기나 과자·빵류의 비닐포장지가 둥둥 떠다닌다.갈수기를 맞아 유수량이 가뜩이나 적은 요즘에는 강한복판에 나무조각,폐타이어,철체파이프등이 반쯤 물에 잠긴채 그자리를 빙빙 맴돈다. 영산강은 전국의 5대강 가운데 오염도가 가장 심하다.영산강은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공해업소가 6백12곳으로 낙동강이나 한강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지만 가장 오염이 심한 것은 강의 길이가 짧아 자체정화작용이 안되는 데다 상류에 담양·장성·광주·나주댐등이 건설돼 방류량이 초당 11t에 불과할 정도로 수량이 적기 때문이다.또 영산강 하구언의 건설로 유속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도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속느려 더악화 그러나 영산강도 처음 강으로서 모습을 갖춰가며 노령산맥 산자락인 전남 담양일대를 떠나 3백60리길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파란 물색을 자랑한다.영산강의 발원지인 담양군 용면의 작은 호수인 용소만 하더라도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이 0.4㎛이고 보면 영산강이 이미 강으로 임종을 마친것은 역시 인간들의 횡포에서 비롯된다. 장성천과 만난 영산강 본류가 흘러흘러 1백20만 광주시민과 하남·본촌·소촌·송암공단지역을 관통한 광주천과 합류해 광주시일원을 벗어날 때쯤이면 한마디로 흑과 백이 된다.광주시 일원에서 마구 쏟아진 광주천이 영산강에 쏟아붓는 각종 폐·하수는 자그마치 44만8천t.광주시등에서는 이가운데 생활하수및 공장폐수 30만t은 위생 정화처리된다고 밝히고 있다.그래도 나머지 14만8천t이 악취를 내뿜으며 흰 거품을 일구며 그대로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영산강 오염 부하량의 65%가 광주시일원 한곳에서만 쏟아지는 것이다.사실 유수량이 적고 강흐름이 극히 완만한 영산강으로서는 이정도의 오염물질만으로도 이미 위험수치를 넘어선다.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이 순식간에 10.4㎛으로 치솟아 공업용수나 농업용수로도 쓸수없는 5급수로 전락한다. 그러나 영산강의 오염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광주시를 벗어나 1백리쯤 흘러 나주시 나주교 부근에 이르러 다른지역에서 흘러온 황룡강 지석천과 만나면 ㎛은 4·5까지 올라가 그런대로 3급수를 유지한다. 이곳을 지나노라면 이번에는 나주·무안·함평·영암군등 농촌지역의 오염원이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다.영세농가에서 사육하는 소·돼지·닭등의 축산폐수가 하루 5천8백여t씩 그대로 영산강에 흘러든다. 26만 목포시민의 식수를 취수하는 무안군 몽탄면 몽탄정수장부근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은 3.6㎛으로 간신히 식수로서 사용할 수 있는 수치를 보인다.몽탄취수장의 영산강물은 광주시민의 생활폐수와 나주군등 지역의 60여개에 이르는 양식장과 곳곳에 산재한 축산폐수·생활오수와 뒤엉켜 악취를 풍기는 혼탁한 물로 변한다. 지난달 중순쯤 이곳 물을 원수로 정수한 물에서 암모니아성질소가 기준치인 0.5㎛보다 2∼4배나 높은 1∼1.9㎛이나 검출됐고 보면 영산강 오염의 심각성은 더욱 분명해진다.때문에 목포시민이면 누구나 수돗물에서 녹물및 흙탕물 그리고 악취를 경험해 보지않은 사람이 없다.영산강은 더이상 방치해둘 수 없는 지경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 도읍 공주서 부여로(백제를 다시본다:1)

    ◎부여 금동용봉향로가 말하는 사비시대/풍요로운 곡창서 「사비문화」 무르익다 백제는 곧잘 잃어버린 왕국으로 간주되어왔다.그 까닭은 정사성격의 사료부족과 또 승자에 의한 문화유산파괴에서도 찾아진다.이러한 상황속에서 지난 연말 발굴된 부여 능산리 출토유물 김동용봉봉래산향로는 백제사 연구의 한줄기 빛으로 떠올랐다.서울신문은 이를 계기로 전문학자들이 백제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장기기획물 「백제를 다시본다」를 주1회씩 연재키로 했다.금동향로가 제시하는 자료를 근거로 백제사 복원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넓은평야 끼고 있어 “3국중 가장 자족”/도성체제 완벽… 5부 구획에 2중 방어/국방 한창 뻗어나갈때 나·당 연합군 침공으로 비명에 저버려 일찍이 조선후기의 대실학자인 정채산은 국가의 운명이 수도의 입지조건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고 보았다.그런만큼 반드시 요충지대를 점거하여 위압의 형세를 이루어야만 일단 위기가 닥치더라도 능히 이를 극복하여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의하면 백제의 첫 도읍지이던 오늘날의 서울은 문자 그대로 김성탕지와 같은 곳이라서 건국이래 4백93년간이나 국세를 유지했으나,한번 웅진(공주)으로 옮겼다가 다시 사비(부여)로 옮긴 뒤에는 1백85년만에 망했다고 한다.사비시대는 웅진시대 63년을 제외하면 겨우 1백22년에 지나지 않는다. ○각부는 또 5권으로 큰 들녘의 한복판에 위치한 사비도성은 확실히 한성(서울)과 같은 천연적인 요새는 아니다.그렇다고 백제의 지배층이 도성의 방어체제를 게을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지난 십수년간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된 결과 우리들은 사비시대의 도성계획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사비도성은 기본적으로 부소산성을 배후에 두고 외곽의 요해지에 부분적으로 나성을 쌓아 방어체제를 이중으로 견고하게 다졌다. 그런 다음 왕궁은 부소산성밖 남쪽에 세웠다.이는 웅진시대 왕궁이 공산성 내의 광장에 구축된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옛 문헌에 의하면 사비도성의 시가지는 크게 5부로 구획되고 또한 각부는 5권으로 나누어지는등 실로정연한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한마디로 사비도성은 백제의 역사에서 볼 때 가장 잘 디자인된 수도였다.한국고대의 도성제 발달사상 거의 완성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백제가 공주에서 서남쪽으로 30㎞쯤 떨어진 부여로 천도한 것은 일세의 영주인 성왕 16년(서기538년)봄의 일이었다.실로 국가재흥을 목적으로 한 웅대한 경륜에서 나온 결단이었다.백제는 이보다 앞서 서기 475년 서울로부터 공주로 천도했는데,이는 고구려 군대에 의해서 수도가 함락되고 개로왕이 피살되는 등 급박한 국가위기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그러나 부여천도는 이와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공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는 유리한 점이 있으나 그자체는 고립된 곳이고 수도가 들어시기에는 너무나 협소했다.이 야영도시를 벗어나 평야지대로 진출하여 본격적인 수도를 건설하는 것이 공주시대 역대 군주들의 꿈이었다.마치 고구려가 압록강가의 산악지대인 집안으로부터 평양으로 천도하려 한 것과 같은 취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동성왕때부터 부여의 중요성에 주목한 백제의 최고지배층은 이곳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요량으로 사냥을 겸하여 자주 이곳에 들러 지세를 살피는등 전반적인 입지조건을 예의검토해왔다.금강가에 위치하면서 산으로 둘러싸인 부여지방은 방어에도 적합했을 뿐 아니라 더욱이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풍요한 곳으로 비쳤다. 그리고 지리상 호남평야의 경영이나 가야지방으로의 진출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백제조정은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유역의 땅을 이 기름진 곡창지대를 적극개발함으로써 보상하려고 했다.요컨대 부여천도는 장기간에 걸친 준비작업 끝에 마침내 단행된 것이었다. ○결실못본 화평세계 이처럼 사비시대는 개막되었다.당시는 삼국간의 항쟁이 극심한 전란기였다.영토확장을 목표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삼국간의 국경선은 수시로 뒤바뀌었다.이같은 살벌한 시대풍조 속에서도 백제는 삼국중 가장 자족함을 알며 인을 실현코자 노력했다.한성시대인 근소고왕때 장군 막고해가 승승장구 고구려군대를 추격하던중 수곡성(황해도 신천)북쪽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회군을 결행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비시대 법왕은 서기 599년 즉위하자마자 살생을 금하는 칙령을 내린다.이에따라 민가에서 기르던 매를 놓아주도록 했으며 사냥도구와 그물마저 태워버리게 했다.이는 같은 시대 신라와는 크게 대조되는 현상이다.즉 신라왕의 최고고문이었던 원광법사는 바로 이때 「살생유택」의 덕목이 들어 있는 세속5계를 제정하여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살생을 인정했던 것이다. 백제가 신라에 패망한 궁극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같은 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어쨌든 백제의 지배층이 국가의 위기상황 아래서도 인을 구현하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주목되는 사실이다. 사비시대 화평의 세계를 실현하려던 백제인의 웅지는 끝내 결실을 하지 못했다.무왕의 야심에 찬 팽창정책과 그 아들 의자왕의 거듭된 실정은 신라를 자극했다.그래서 신라로하여금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아예 지도상에서 말살하려는 비밀외교에 열중하게 만들었다.신라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당과의 군사동맹이 체결되었고 양국 연합군은사전계획에 따라 서기 660년 전격적으로 백제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였다.마침내 사비도성은 함락되고 백제는 그 찬란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수도의 지세를 중요시하는 정다산은 백제의 멸망원인이 사비도성의 집중성 결여에 있는 것인 양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그 방위체제는 결코 허술한 것이 아니었다. ○우아·격조 높은 문화 한 시대의 문화는 정치를 비추는 거울이다.흔히 이야기되고 있듯이 사비시대야말로 백제문화가 그 절정에 도달한 황금기였다.얼마전에 별세한 삼불 김원용선생은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의 미술은 민족이나 국가가 무기력해질 때 생기는 퇴폐나 타락의 양식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소멸되어버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백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사비시대의 백제문화 역시 쇠퇴·타락의 징후는커녕 완숙의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고 있다.결국 백제는 쇠퇴기에 접어든 끝에 멸망된 것이 아니라 한창 국력이 뻗어나갈 즈음 칼에 등을 찔려 비명에 간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방 직후일제가 이른바 부여신궁을 지을 목적으로 거두어들인 석재더미 속에서 백제말기 대좌평이었던 사택지적의 당탑 건립기념비석이 일부 파괴된 채로 발견된 일이 있다. 이로써 사비시대 백제문화의 우아하고도 격조높은 기품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요 백제말기 정치사를 해명하는 데 유력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지난해 연말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 근처의 한 건물지에서 새로운 유물들이 출토되었다.여기서 나온 금동제 향로를 비롯한 사비시대 후기의 유물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완숙기에 접어든 백제문물의 찬란함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또 덧붙여 말하거니와 신비스러운 빛깔로 떠오른 새로운 문물 금동용봉봉래산향로를 대하면서 백제를 뒤돌아보고 재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비시대의 문화상/출토유물 통해 「선진문화」 확인/능산리·궁남지유적발굴로 실체 드러나 사비시대 백제(AD538∼660년)의 문화상은 고분과 절터·성곽유적 등에서 출토된 매장문화재를 통해 드러난다.신라와의 각축에서 패망의 길을 걸은 백제는 외형의 문화유산을 철저히 파괴당했기 때문에 땅속에 묻힌 유물만이 겨우 백제의 잔영을 남기는 비운의 역사를 겪었다. 이 시대의 백제고분은 충남 부여군전역에 분포되어 있다.마지막 도읍지 부여를 중심으로 능산리등 13개 고분군이 대표유적으로 꼽힌다.거의가 돌방무덤(석실분)인 고분유적은 껴묻거리(부장품)라는 유물이 많이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고고학이나 역사연구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사비시대 고분 가운데 고고학적으로 처음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15년 능산리 고분군 발굴이후부터다.1917년까지 모두 6기가 발굴되었다. 능산리 고분에서 사신도벽화가 있는 1호분이 특히 유명하다.널길(선도)이 달린 굴식돌널무덤(횡혈식석실분)이 주류를 이루는 능산리 고분군에서는 금동투조식금구 등이 발굴되었다.그리고 일찍부터 왕릉으로 전해왔다.이번에 햇빛을 본 금동용봉봉래산향로도 바로 능산리 고분군 이웃에서 출토되었고,마주보고 있는 나성의 일부도 발굴되어 사비도성 방어요새가 밝혀진바 있다. 최근에는 금동향로가 출토된 능산리지역 말고도 궁남지유적 3차발굴사업이 진행되어 벼농사유적인 논유구와 함께 목각의 새와 수레바퀴 등을 출토하는 수확을 거두었다.이밖에 정림사터를 비롯,부소산성 도성내의 도시계획 유구 등이 발굴되어 사비시대 백제의 선진문화상을 속속 보여주었다.특히 사비시대 백제문화권을 전북 익산지역으로까지 확대,백제 최대의 가람 미륵사터를 발굴함으로써 불교문화의 실상을 가늠하게 되었다. 그리고 웅진시대(AD475∼538년) 유적으로는 세기적 발굴이라 할 수 있는 무령왕릉을 비롯,공산성과 임류각 발굴도 고고학 성과로 치부된다.이와 더불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발굴된 한성시대(AD18∼475년)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서울 몽촌토성과 백제 초기의 건국집단의 무덤으로 보이는 서울 석촌동 돌무지무덤(적석총)도 백제연구 고고학자료가 되고 있다.
  • 남산/민족의 기상 충정의 표상(서울 6백년 만가:1)

    서울이 나라의 으뜸도읍으로 정해진지 6백년.태조 이성계가 당시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서울은 무수한 변화속에서도 수도의 위치를 의연히 지켜왔고 이제 세계속의 큰 도시로 새로 태어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6백년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들을 골라 시리즈로 소개,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해 본다. ◎옛이름 목멱산… 태조읍후 개명/고종때 공원지정… 일반인 휴식처로/“제모습 되찾기” 올해부터 본격착수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를 틀고 우리민족의 영욕을 묵묵히 지켜보아온 남산. 세월에 따라 그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남산만큼 우리민족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산도 없을 것이다.왕권이 건재하던 시기에는 충직하고 현명한 백성들에게 믿음직한 충정의 표상이었으며 민족수난기에는 목숨을 바쳐 지켜야할 국가 이상의 상징이었으며 그것이 품어안고있는 소나무의 변하지 않는 푸르름은 우리기상의 본보기 이기도 했다. 서울사람치고 남산을 보지않고 하루를 지나는 사람은 없으며 서울을 찾는 사람중에 남산을먼저 보지않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해발 2백65m의 남산은 야트막하고 봉우리도 둥그스름한데다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해 온국민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정상에서 동서로 2.7㎞,남북으로 2.1㎞ 뻗어 오늘의 행정구역으로는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성동구 왕십리쪽으로 꼬리를 내리고 있다.면적은 1백2만9천3백여㎡. 조선왕조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한갓 작고 평범한 구릉에 지나지 않았던 남산이 처음 역사의 무대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1394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부터다.이때까지만 해도 인경산으로 불리다 서울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하여 남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남산의 본래명은 목멱산으로 목멱이란 옛말「마뫼」의 한자음 표기이다.「마뫼」는 남쪽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1910년 고종황제는 남산을 백성들의 공원으로 정해 일반에 공개,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친필로 한양공원이란 석비를 써 하사했다. 이 석비는 지금도 구통일원 자리에 남아있다. 그러나 남산은 한강 이남의 개발과함께 서울이 남쪽으로 넓어지면서 남쪽 끄트머리에서 어느틈엔가 한복판으로 옮겨 앉았다. 일찍이 한양의 남쪽 방패로 시인묵객의 풍류와 일반인의 휴식처로 사랑받아오던 남산은 근세에 들면서 여기저기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남산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을 전후해 일본인이 지금의 예장터일대에 거류하면서 부터다.일제는 현 안기부자리에 통감부를,수방사 자리에는 헌병사령부를 설치했는가 하면 1926년에는 정상에 모셔졌던 우리민족의 표상이던 국사당을 폐쇄하고 수천그루의 벚꽃을 심는등 민족정신의 혼을 말살하는 상징물로 남산을 이용했다. 안타깝게도 남산훼손은 광복후 우리손에 의해서도 계속됐다.지난 57년부터 3공때인 75년까지 36차례의 공원용지해제로 중앙방송국·남산방송소·외국인 임대주택단지·타워호텔등 갖가지 대형 건축물들이 산허리를 깍아내고 들어앉았다. 다행히 시는 올해 정도 6백년을 맞아 남산복원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키로해 웅장하지는 않으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옛모습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외인아파트는 내년에 헐리며 산의 경관을 헤쳐온 정상의 서울타워와 숭의학원등도 늦어도 2000천년까지는 모두 철거된다.철거작업이 이미 끝난 수방사자리엔 남산골이 조성돼 옛정기를 확인할 수 있는 한옥등이 들어서게 된다. 외세의 침탈속에 그리고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상처받았던 남산이 제모습을 되찾으면 서울의 고풍스런 운치는 한결 돋보일 것이다.
  • 재래 도매시장/연말·연시맞아 연일 대목 분위기

    ◎“장보기·선물 값싸게” 알뜰파 북적/의류·화훼 등 판매 “불티”… 한파 녹여 계유년 한해가 저물어간다.가까운 친지나 웃어른,은사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동시에 주부들은 신년 방문객들을 맞이할 상차림 준비로 부산한 때이기도 하다. 각 백화점과 재래시장등에는 각종 선물용품을 준비하고 신년상차림 장을 보러나온 사람들로 연일 대목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또 1일과 2일 각 시장의 연휴를 앞두고 형성되는 매기도 시장활기에 한몫을 더하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와 더불어 백화점과 같은 쾌적한 쇼핑공간을 선호하는 소비패턴의 변화로 재래시장의 경기는 지난 수년간 내림세.그러나 서울 동대문시장과 광희시장 경동시장등 재래도매시장은 선물마련과 장보기를 값싸게 할 수있어 여전히 알뜰실속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선물류의 가격은 지난해와 비교,같거나 품목에 따라 10∼20%정도 올랐다』고 분석한다.재래시장을 이용,저렴하고 질좋은 상품을 구입해 포장을 정성껏 예쁘게 하면 오히려 실속있는 선물이 될 수있다.남대문과 동대문시장등의 의류도매시장에서는 선물용으로 알맞은 겨울철 방한복및 블라우스,내의류를 싼가격에 구입할 수있다.웃어른에 적당한 선물인 패딩점퍼가 3만∼4만원선이고 백화점등에서 9만∼12만원을 줘야 구입할 수있는 나이트가운이나 목욕가운도 5만∼6만원이면 살 수있다.실크블라우스도 2만8천∼3만5천원선이다.고운색의 한지로 포장하면 금상첨화다. 아파트생활을 하는 가구가 늘면서 최근 인기를 끄는 선물품목은 화훼류.신년인사인 만큼 신선한 분위기를 내는데다 가격도 적당하기 때문이다.서울 남대문 대도상가 꽃도매시장등을 이용하면 1만원 내외의 선인장과 화분꽃을 구입하고 일반 장보기도 겸할 수있다. 신년 새해에는 연휴기간동안 여러곳을 방문해야하기 때문에 손님맞이 상차림은 떡국등 일품식사와 간단한 다과상만 차리는 것이 오히려 방문자를 예우하는 것.수정과나 모과차 유자차등의 전통음료와 함께 한과나 과일등을 내놓는 다과상이 적당하다. 지난 20일부터 산지 출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곶감은 수정과용과 선물용으로 많이 나간다. 아직 굳지 않고 분이 생기지 않아 말랑말랑하고 쫀득한 단맛이 일품.가격은 다른 과일류와 마찬가지로 작황이 부진,지난해보다 두배이상 올랐다.서울 경동시장에서 상품이 3∼4개 1천원에 거래되고 있고 수정과로 쓰이는 중·소 크기의 것이 각각 5개,12개 1천원에 거래되고 있다.1백개들이 선물용 상품은 3만5천원,중품 3만3천원선이다.
  • 사진작가 이재길 누드전/「몽환」 주제,한국적 에로티시즘 추구

    모델의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낸 누드사진전이 열려 눈길을 끈다.오는 26일까지 서울갤러리(721­5968)에서 열리고 있는 「몽환」전이 그 전시로 사진작가 이재길씨가 전통속의 에로티시즘을 추구한 이채로운 누드사진을 모아놓은 자리. 누드사진 작업을 해온지 10여년,한국여인의 고혹스런 자태와 애잔한 정서를 자신의 필름에 옮기는데 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어온 이씨가 비로소 자신있게 선보이는 작품들이 범속한 누드사진들과는 달리 환한 모습으로 관객을 맞고 있다. 작가의 뚜렷한 연출에 의해 적절히 통제된 에로티시즘이 세련된 영상으로 드러나면서 한국여인의 감칠맛,다소곳한 운치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말이다. 누드사진에 인격과 예술성을 부여했다는 평을 듣는 그의 출품작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네로부터 알몸을 반쯤 드러내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여인,호박색 광선속에 사지를 내던지고 누워있는 모습등 어느 무엇에 의해서도 풀리지 않는 여인들의 깊게 맺힌 가슴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돼 담겨있다. 외설스런 것으로만 인식돼온 누드사진에 인격을 부여하는데 천착해온 이씨는 『나의 카메라앞에 서준 모델들이 한결같이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큰 용기가 됐고 그녀들의 그런 힘을 정직하게 사진으로 옮겨 놓을수 있었다』고 했다.
  • 전위 디자이너 홍미화/국내 첫 패션쇼

    ◎광목등 소재 한복 새이미지 창출/원초적인 선함·자연의 순수함 드러내/“상가같은 실내장식” 묘한 분위기 연출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벤센느숲속에서 야외 패션발표회를 개최,아방가르드적 신예패션인으로 세계패션계의 주목을 끌었던 디자이너 홍미화(38)씨가 17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국내에서의 첫 패션쇼를 가졌다. 이날 패션쇼는 백열등이 듬성듬성 켜진 허름한 창고같은 전시공간과 그 바닥에 깔려진 광목천,대나무로 얼기설기 세운 기둥위에 달린 한지로 만든 등등 마치 상가집같은 분위기의 실내장식이 연출돼 참석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날 홍씨가 발표한 옷은 모두 65점.소창 옥양목 광목 거즈등의 소박한 듯 묘한 분위기를 내는 우리 전통의 소재를 이용,흰색이 주는 순수함을 한복선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응용해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아름다운 옷」「형식을 탈피,마음이 가장 편한 상태로 입어서 즐길 수 있는 옷」을 진정한 「옷」으로 본다는 홍씨가 추구하는 패션감각이 드러난 작품들이 중심. 자신의 브랜드마크인 천사모습의 인장과 눈물자욱을 모델들의 얼굴과 몸등에 찍고 흘러내린 머리카락 위의 거즈 장식물과 이름을 적은 부적같은 종이등으로 옷의 이미지 완성을 위한 총체적인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씨는 부드러운 느낌의 거즈로 드레스와 베일을,투박한 삼베에 주름을 넣어 유연함도 동시에 느낄수 있는 바지와 치마수트를 만들어냈다.색상은 흰색을 주조로 고운 흙색과 베이지 카키·검은색을 주요 색상으로 썼다. 특히 화관을 연상하는 커다란 모자와 함께 연출한 풍성한 웨딩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등은 한국적인 선과 중국풍,인도풍의 다양한 민속적인 특징이 드러난 작품들로 갈채를 받았다. 옷 발표회를 지켜본 코오롱 패션산업연구원의 이호정씨(이학박사)는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부담되는 전위적인 요소가 강한게 사실이나 인간의 원초적인 선함과 자연이 갖는 순수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홍씨의 이번 옷발표회에서 나타난 전위성은 세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라고말했다. 대구출신으로 경북여고와 계명대(공업미술 전공)를 졸업한뒤 국제복장학원과 일본 문화복장학원을 마친 홍씨의 주요 활동무대는 일본도쿄.지난 7월의 파리진출로 고지노 준코,이세이미야케등을 잇는 동양의 뛰어난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현지언론으로부터 받기도 했다.국내에서는 지난 86년부터 최근까지 (주)데코「텔리그라프 바이 홍미화」라는 상표로 자신의 이름이 나가는 서구형 계약제 디자이너로 패션업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홍씨는 자신의 디자인사무실 「홍크리에이션」을 최근 서울로 옮기고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내년 봄 국내브랜드매장을 낼 예정이다.
  • 야 쌀공세 박차…여선 “속수무책”/국회정상화 불구 가파른 UR정국

    ◎민주 이 대표 “현정권 국민 기만” 성토/민자 “거리투쟁 특되나” 비난속 관망 7일 하오 여야 합의에 의해 국회가 정상화 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날 농민·재야단체 등과 연대,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한 장외집회를 계기로 쌀시장 개방 파문이 가열될 전망이어서 정국의 대립양상도 더욱 가파라질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은 쌀정국 수습묘책의 부재상황에서 파문의 전개 추이를 가늠하고 있으며 민주당등 야당은 서울대회에 이어 시·도단위 집회를 계속하면서 장외투쟁을 가속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 뜻을 물어야” ▷민주당▷ 이기택대표는 이날 집회 개회연설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김영삼대통령과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 이대표는 『대통령직을 걸고라도 쌀수입개방을 막겠다던 김대통령은 며칠전부터 TV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면서 『국민을 무시하고 속인 현정권은 거짓말쟁이 정권,부도덕한 정권,마지막까지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연출한 정권』이라고 성토. 이대표는 이어 『쌀은 미국에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는국민의 주식이자 민족의 생명줄이며 피와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뒤 『정부는 대세를 주장하지만 4천만이 단결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호소. 이대표는 『쌀시장 개방은 김대통령과 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으며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면서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 이대표는 집회 시작에 앞서 서울역장실에서 외신기자회견을 갖고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분명한 입장을 피력. 민주당은 이날 서울역집회에 이어 시·도 단위별로 도청소재지에서 집회를 개최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최고위원 2명씩이 포함된 특별연사의원단을 파견할 계획. ○“질서요원 배치하자” ○…민주당은 집회가 불법 폭력으로 흐를 것을 우려해 이날 상오 박지원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불온유인물의 배포,흉기사용,공공기관 파괴행위 등에 대해 사전경고. 박대변인은 『폭력을 사용하는 불순세력이 있다면 평화시위를 반대하고 공작하는 세력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면서 『특히 모기관이 오늘의 집회를 이용,안기부법 개정 반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이용한다는 믿지 못할 정보를 가진 우리로서는 더욱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안기부를 겨냥. 이에 앞서 열린 최고위원간담회에서 이부영최고위원은 『농민은 김영삼정부 뿐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에 적대감을 보이고 있어 농민들을 서울 한복판에 모아놓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면서 『우리측에서 질서요원을 배치하고 사회단체에게도 농기구 등을 지참하지 않도록 사전에 협의하자』고 제안. 허경만부의장도 『참석자들이 농기구를 지참할 경우 집회의 의미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고 이최고위원의 우려에 동감을 표시. ○“깃발만 흔들지말라” ▷민자당◁ 민주당의 쌀개방반대집회에 대해 대변인 성명을 통해 공식적으로 비난하면서도 당직자들은 개인적으로 비난발언을 삼가는 모습을 보여 쌀문제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는 당분위기를 반영. 그러면서도 쌀개방 반대 집회가 향후 정국에 끼칠 파장에 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표정이 역력. 강재섭대변인은 성명에서 『야당이 세종문화회관 같은 훌륭한 무대가 있는데도 또 다시 거리의 악사를 자처하며 거리로 뛰어나간다』고 민주당측의 행태를 겨냥. 강대변인은 『야당은 만약 파괴행위가 생기면 평화시위를 반대하는 공작세력의 개입이 있는 것이라는 등 곰팡이 냄새나는 구태의연한 마타도어를 그대로 동원하고있다』고 공격. 그는 안기부법과 추곡수매 협상타결을 들어 『우리당이 원만한 국회운영을 위해 전폭 양보했음에도 불구,거리로 뛰어나간다』면서 『야당은 농민의 아픔을 담보로 깃발만 흔들지말라』고 촉구. 하지만 다른 당직자들은 이와는 달리 집회가 불상사없이 조용히 끝나는데 초점을 맞춰 대조. 황명수사무총장은 『국회의원이 거리에 나서는게 모양상 좋지 않지만 굳이 나서겠다면 할 수 없는 일 아니냐』면서 『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시위를 한다면 그것까지 말릴수는 없는 일』이라고 언급. 김영구총무는 『야당이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면서 『만일 무슨 불상사라도 나면 모든 책임을 야당이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
  • “우린 개혁동지” 백악관서 동반조깅(김대통령 방미여로)

    ◎외국정상으론 처음 트랙 3.2㎞ 달려/김대통령 “짧은 일정속 많은일 했다”/정담 주고 받느라 공식만찬 45분 길어져 김영삼대통령은 8박9일간의 방미일정을 마무리짓고 미워싱턴을 떠나기 직전인 24일 아침(이하 현지시간)에도 백악관에서 클린턴대통령과 조깅을 함께 하는 등 한미우호를 거듭 다졌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23일 한미정상회담이 끝난뒤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방미성과를 결산했으며 저녁에는 클린턴대통령이 주최한 공식만찬에 참석했다. ▷백악관 조깅◁ ○…김대통령은 24일 귀국에 앞서 클린턴 미대통령과 백악관 뜰에서 조깅으로 방미일정을 마무리. ○손흔들며 담소 나눠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7시45분(현지시간)부터 약 15분동안 클린턴대통령과 백악관 뜰에 마련된 4백m 트랙을 8바퀴 조깅. 흰색 점퍼에 빨간 모자 차림의 김대통령은 역시 흰색 점퍼에 파란색 모자를 쓴 클린턴대통령과 정답게 얘기를 나누며 조깅했는데 달리는 도중 기자들에게 함께 손을 흔들며 다정한 포즈를 취하기도. 김대통령은 『지난 7월 서울에 이어다시 함께 뛰게되어 기쁘다』며 『재생고무트랙이 달리기 편하다』고 인사. 또 김대통령이 평소 새벽 5시에 조깅하는 습관이 생각난듯 『조금 일찍 뛰는게 좋다』고 얘기를 건네자 클린턴대통령은 『나는 7시20분쯤 딸을 학교에 보내고 난뒤 뛴다』고 설명. 클린턴대통령은 『젊어서 운동을 많이 해야 건강에 좋다』는 김대통령의 말에 『젊을때 체중이 많이 나갔었는데 지금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대답.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조깅을 마친뒤 천천히 걸으면서 트랙을 두바퀴 더돌며 의료보험문제를 화제로 담소. 「우정의 조깅」으로 이름 붙여진 이날 백악관 조깅은 클린턴대통령이 취임 이후 외국 정상과 가진 첫 조깅이어서인지 20여명의 미국기자들도 나와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백악관 공식만찬◁ ○…김대통령 내외는 23일 저녁 클린턴대통령이 취임이후 처음으로 국빈에게 베푼 백악관 공식만찬에 참석. 김대통령은 이날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백악관에 도착,입구에서 클린턴대통령과 힐러리여사의 영접을 받고 곧바로 예정에도 없이관저로 안내돼 약 10분간 양정상 내외만의 시간을 가져 돈독한 우의를 과시.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만찬사를 통해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발전에 대한 김대통령의 지도력과 1백만 한인사회의 역할을 치하한뒤 『지난 7월 방한시 김대통령과 조깅을 하면서 한국지도자의 따뜻함과 정력,인내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한국민족의 계속적인 번영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건배를 제의. ○예정없는 관저 안내 김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나는 변화하는 시대의 개혁의 동지로서 클린턴대통령에게 각별한 연대와 우정을 새롭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청와대에서 했던 것처럼 내일 백악관에서 조깅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소개해 좌중에 웃음. 이날 만찬에 김대통령은 블랙타이 만찬복을,손여사는 노란색 한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만찬장인 스테이트 다이닝룸은 초대된 한국측 27명을 비롯,1백40명이 촘촘히 앉을 정도로 비좁은데다 헤드테이블도 별도로 마련되지 않아 김대통령과 힐러리여사,클린턴대통령과 손여사는 떨어진 테이블에착석. ○…이날 만찬은 두정상 내외간 정담이 계속되는 바람에 당초 예정시간을 45분이나 넘긴 11시15분까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진행. ○제시 노만 공연관람 두정상 내외는 국빈만찬을 끝낸뒤 기자회견장이었던 이스트룸으로 자리를 옮겨 유명한 여자오페라가수 제시 노만의 공연을 20여분간 관람. 조지아 출신으로 피바디에서 수학했고 영국 왕립음악아카데미 명예회원이기도한 제시 노만은 이날 번스타인과 거쉬인작곡의 「Falling in Love」 「Lonely Town」등 모두 6곡을 열창,국빈만찬의 분위기를 돋구었다. ▷수행기자 간담회◁ ○…김대통령은 23일 하오 캐피틀 힐튼호텔에서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이번 방미일정을 결산. ○“쉴틈 없어 머러 멍해” 김대통령은 『이번 방미는 너무 짧은 일정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이뤄졌다』면서 『특히 기자 여러분들이 하루 1∼2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일할 수 밖에 없었던데다 시차까지 겹쳐 고생이 많았다』고 위로한뒤 『나 자신도 한시도 쉴틈없이 왔다갔다 하느라 머리가 멍하다』고 조크. 김대통령은 이어 『이번 여정에 몇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면서 LA를 첫 방문지로 선택한 배경,재미교포 사회의 의식전환,APEC 지도자회의,한미정상회담,NDI민주주의상 수상,아메리칸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참석과 연설 순으로 그 의미등을 평가. 김대통령은 특히 『재미교포사회가 과거에는 따로따로 놀았으나 이번에 하나로 합심해서 격려해 준데 대해 무한한 힘과 용기를 얻게 됐다』면서 『오늘의 국제화시대에 동포들이 미국화돼 가는 것을 보고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 김대통령은 『APEC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적으로까지 한국의 정치개혁에 대해 물어오더라』고 소개하고 『우리나라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실감하고 자부심을 느꼈다』면서 『이번 APEC의 성과는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큰 변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피력. 김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이 예정된 시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데 대해 『북한핵개발 저지라는 절대절명의 문제,7천만 생명에 관한 문제를 충분히 협의하느라 그랬다』고 설명하면서 『한미가정말로 하나가 되어 안보문제에 한치의 빈틈이 없도록 한다는데 합의했으므로 조금도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주문. 김대통령은 『그러나 이런 모든 것 때문에 변화와 개혁을 중단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여러분도 이부분(개혁)을 빼고 다른 부분(외교)만 취급하지 말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 ▷한미정상회담◁ ○…클린턴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각료회의실인 「캐비닛룸」에서 23일 상오11시10분부터 열린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의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은 예정시간(65분)을 훨씬 넘겨 1시간55분동안 진행. ○옛친구 다시 만난듯 정상회담시간이 이같이 길어진 것은 당초 35분으로 예정됐던 단독회담이 1시간30분동안 계속됐기 때문으로 이바람에 확대회담은 당초 예정시간 30분에서 25분간으로 축소. 먼저 우리측에서 정종욱외교안보수석·장재용외무부미주국장,미측에서 고어부통령·크리스토퍼국무장관·레이크안보보좌관이 배석한 가운데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두 정상은 시종 화기애애하고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북한핵문제를 비롯한 양국간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 이어 열린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한승주외무장관·한승수주미대사·박관용비서실장·이양호합참의장·박재윤경제·정종욱외교안보·이경재공보수석·장재용외무부미주국장이,미국측에서 고어부통령·크리스토퍼국무장관·애스핀국방장관·레이크안보보좌관·로드국무부동아태차관보·레이니주한대사·크리스토퍼보좌관이 배석.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손명순여사와 힐러리 여사는 블루룸에서 별도 환담을 갖고 7월 서울회담때 만난 「구정」을 되새기며 반갑게 인사. ▷손여사 워싱턴요양원 방문◁ ○…힐러리여사와 백악관환담을 마친 손여사는 이날 낮 숙소인 영빈관에서 한글학교교사 20여명을 접견한데 이어 워싱턴요양원(양로원)을 방문,입원자들을 위로. ○휠체어 밀어주기도 이날 요양원에 도착한 손여사는 입원자대표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홀리스원장으로부터 요양원현황을 청취. 손여사는 이어 노인들이 숙박하는 1·2층 각방을 돌며 입원자들의 뺨을 부비면서『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 격려했으며 휠체어를 탄 노인들을 위해 휠체어를 붙잡아주기도. 손여사는 이 요양원의 브라운이사장으로부터 요양원안내책자를 선물받고 금일봉을 전달.
  • 주부부업/전문직종 택해야 대우·고소득 보장

    ◎손해사정인·원예사 등 자유직 전망밝아/신종 독서지도인은 다방면서 수용증가/「한복그림」 집안서 할수있어 각광… 교육기간 3∼6개월 고물가 시대에 조금이라도 가계에 보탬을 주려는 주부들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원하는 기혼여성들의 수가 늘고 있다.그러나 주부들은 오랫동안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우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부 지원으로 지난 7월 개관한 서울YWCA 「일하는 여성의 집」이 이런 여성들을 위해 손해사정인·독서지도인·원예사·한복그림그리기등을 기혼여성 유망직종으로 개발,본격적인 교육을 실시중이거나 실시 할 계획이어서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이들 직종은 6개월이상 교육을 받아야 하며 직종에 따라서는 자격증까지 따야 합니다.이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과연 할 수 있을까 부담을 느끼는것을 보게 되는데 다소 힘들더라도 한번 배워두면 고소득이 보장되고 전문직으로 대우 받을 수 있습니다』여성의 집 프로그램부 이순우 간사는 앞으론 여성도 전문직종을 택해야 대우를 받을 수있다고 강조한다. 이 가운데 손해사정인은 자동차 사고·선박및 비행기사고·대형화재등 각종사고 발생시에 피해액을 산정,보상금 지급범위를 결정하는 자유직 전문인을 말한다.사고 발생시 피해 견적을 뽑는것으로 현대사회는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사고가 속출,계속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그러나 93년 현재 자격증을 취득한자들은 취업 전선에 진출해 볼만하다. 자격증은 봄·가을에 실시되는 1·2차 시험을 합격한후 2년간 실무 실습을 거치면 보험감독원에서 자격증을 주는데 손해보험회사,보험감독원,손해보험협회,손해사정인사무소등이 주요 취업처다.또 2명 이상이 법인을 설립,변호사 사무실처럼 운영할 수도 있다. 한편 독서지도인은 전문적으로 독서 교육을 시키는 사람으로 독서 교육이란 책읽기·글짓기와 말하기·듣기·생각하기·양서선택등을 일컫는다. 독서지도인은 94년부터 대입 수학능력 시험에 논술고사가 포함되면서 독서와 글쓰기를 배우려는 초·중·고교생들이 늘어 남을 감안한 것으로 아직 자격증제는 없다.이 직종은 배워 둘 경우 직접 글짓기교실을 운영할 수도 있고 속셈학원·웅변학원등 각종학원에 취업 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자녀도 지도착안한 것. 원예사로 활동 하려면 한국산업인력 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원예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요즘 주말농장·관광농장등 일터가 넓어 역시 전망이 밝다.요즘은 특히 큰 농장도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며 수확하는 전과정을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매뉴얼만 잘 읽으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원예사들의 경우 1일 인건비가 5만∼6만원선이다. 한편 한복그림그리기는 한복지나 양장지를 염색,부가 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드는것.즉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개성이 강한 상품이 각광을 받는 시대특성을 겨냥해 개발한 여성 직종으로 한복치마를 넓게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나무틀만 갖추면 주단집등에서 주문을 받아 프리랜서로 자기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편히 할 수 있는것이 장점이다.일하는여성의집에서 주관하는 이들 직종의 교육기간은 독서지도인(12월 개강 예정)과 손해사정인의 경우 6개월과정에 40세이하의 고졸이상학력을,원예사는 6개월 교육에 45세이하의 중졸여성을,한복그림그리기는 3개월 교육에 나이 제한 없이 고졸이상을 교육 대상으로 한다.
  • 전통한복 작품집「출생에서 임종까지」출간/한복연구가 박선영(인터뷰)

    ◎“한복선 무시한 개량옷들 많아 안타까워”/배냇저고리부터 상복까지 제작법 꼼꼼히 정리 한복연구가 박선영씨(62)가 자신의 한복만들기 생활 40여년을 정리하는 전통한복 작품집 「출생에서 임종까지」를 펴냈다.우리나라에서 한복 디자이너가 팸플릿형식외에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담은 작품집을 내는 일은 드문편. 『눈이 침침해지고 총기도 없어져 더늦기전에 후배들을 위해 일생동안 한복을 매만지면서 경험한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정리해야겠다는 각오로 만들었습니다』 5∼6년전부터 틈틈이 준비,출간을 앞둔 한달동안에는 밤을 새다시피 해 만들었다는 작품집에는 제목 그대로 출생시 입는 배냇저고리에서 부터 돌복,아동복,장년복,수의,상복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일생동안 살아 가면서 입었던 한복등의 작품사진과 만드는법 치수 설명등이 꼼꼼히 정리 돼 있다. 충남 당진에서 출생,6∼7세때부터 집안에서 삼베 양잠등 길쌈 과정을 체득하고 조모와 어머니곁에서 바느질을 배워 야무진 손놀림이 몸에 밴「전통한복인」이라는 주위의 평을 듣고 있다. 84년 한·중·일 전통의상 발표회와 87년 동남아 5개국 전통의상 순회발표회,88년 올림픽「아름다운 우리옷 자랑쇼」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박씨는 91년 서울과 92년 일본에서 전통한복 작품전시회를 열어 노익장을 과시 했다. 지난 10월에는 작품집 발표를 기념,한복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이어 만드는 「조각재 한복전」을 개최해 우리조상들의 재활용정신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이 조각한복사진을 작품집에 함께 담은 박씨는 『아이들에게 주로 입혀졌던 조각천 한복에는 질병으로 쉽게 숨지는 경우가 허다하던 옛날,어린 자식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한 우리네 부모들의 깊은 정이 숨겨져 있음을 현대인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최근 젊은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개량한복에 대해 『활동성만 강조한 나머지 양장 단추를 함부로 박는등 한복의 선을 완전히 무시한 옷들이 많이 보여 안타깝다』면서『끈이 불편하다면 전통매듭단추를 달아야하고 배래선등의 변형을 주지 않아야 하는등 한복선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만추의 낭만” 패션 행사 푸짐

    ◎「울 컨벤션」이어 섬유주간·SFA컬렉션 등 잇따라/기성복전·유행 정보전람 등 볼거리 풍성/국내정상급디자이너 16명 작품전 눈길/올겨울·내년봄 “자연회귀·실용성 강조” 유행 전망 「인공을 거부하고 순수한 자연을 찾아가자」「섞어입고 겹쳐입는 의상연출로 옷장의 재고를 없애자」.11월 만추의 낭만과 함께 풍성하게 마련되고 있는 패션쇼및 패션관련행사에서 드러나는 올 겨울,내년 봄 여름으로 이어지는 유행움직임이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국제양모사무국(IWS)한국지부 주최 코리아울컨벤션행사와 9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개최된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의 「94봄·여름 컬렉션을 비롯,한국섬유산업연합회주최 섬유주간(9∼13일)행사」18일부터 열리는 서울패션디자이너협의회(SFA)컬렉션등 11월 내내 5∼6개의 다채로운 패션행사가 자연회귀와 실용성을 주제로하는 의상들을 내보이면서 가을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이들 행사들은 특히 최근 해외패션업체의 국내진출공세에 대한 대응책및 유통구조의 선진화등 현안을 쌓아두고 있는 패션계가 이의 해결을 위한 각오로 준비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국내패션시장의 성패와 관련,어느해 보다도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섬유산업연합회가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섬유의날인 11일을 전후한 9일부터 13일까지 「섬유주간」으로 설정해 상공자원부의 후원을 받아 열고 있는 패션행사는 5개.제4회 서울텍스타일디자인경진대회작품및 제11회 패션디자인경진대회작품전시회와 패션유행 정보전람 행사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전시장에서 열고 있다.또 한국패션협회(회장 공석봉)가 연합회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국제여자기성복 박람회및 서울컬렉션패션쇼도 이들 행사 가운데 하나.국내외 58개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패션시장의 국제화를 모토로 서울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정상급 디자이너 16명으로 구성된 서울패션디자이너협의회(회장 박항치)가 18일부터 21일까지 KOEX에서 개최하는 제7회 컬렉션도 해외진출의 물꼬를 튼 중견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성숙기에 접어든 단체의 행사라는 점에서 주목거리다. 최근 파리컬렉션에 입성하고 동경컬렉션 진출을 앞둔 진태옥·이신우,김동순씨를 비롯,루비나 한혜자,설윤형,장광효,배용씨등 16명의 디자이너가 참가한다.
  •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박근혜 지금(화제의 책)

    ◎박전대통령 큰딸 근혜씨 수필집 박정희전대통령의 큰딸 박근혜씨의 수필집이다.1989년1월13일부터 지난 7월26일까지의 생각들을 일기체로 정리했다. 이 책을 보면 89년까지만 해도 박씨의 마음속에는 박전대통령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일기의 대부분이 박전대통령에 대한 기억과 그에 대한 사회의 평가에 대한 불만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89년을 박전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을 계기로 아버지에 대한 사회의 재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해 어두움이 가셔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이 책에 나타난 박씨의 삶에 대한 느낌은 외로움이다.역사의 한복판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사회와는 격리되어 있던 그녀의 과거 삶이 책의 제목처럼 아직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모하게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박근혜 지음 남송 5천원.
  • 일기도의 고려교/박성수 (일본속의 한국문화:8)

    ◎김방경장군이 1274년 왜병 섬멸한 곳/여몽연합군,대마도 이어 공격… 1천명 몰살/일제때 「원구순국비」 건립… 고려군존재 은폐 일기섬은 일본인들도 가보았다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절해의 고도다.그러나 그곳에 고려교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대마도에 간김에 들러보기로 했다. 고려교가 있다는 곳은 일기섬 북단의 가쓰모토(승본)항.그곳 향토사가 중상사행씨의 안내를 받아 먼저 산성에 올라갔다.본시는 대마도에 있는 백제산성이 아니었나 생각했는데 안내판에는 풍신수길이 우리나라를 치기 위해 전초기지로 사용했다고만 적혀 있었다.이름하여 승본산성.이 산성에서 북쪽바다를 바라보면 대마도가 보이고 세섬이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해주고 있는 가쓰모토항이 내려다 보인다.우리나라 기록인 「고려사」에는 이 항구를 삼즉포라 이름하고 있는데 위구의 소굴로 치부하고 있다.하늘은 푸르고 오징어잡이배가 힘차게 열을 지어 출항하는 광경이 어쩐지 왜구가 떠나가는 것같이 느껴졌다. 1274년 음10월 여몽연합군 9백척이 이 항구를 쳤다.그 상륙지점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해서 내려가 보았다.시내 한복판 길가에 「문영지역 원군상육지」라는 표석과 이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전몰기념비가 서 있었다.물론 대마도의 경우와 같이 1백년전 일제침략자들이 세워놓은 최근작이었다.바로 그 옆에 신공황후를 모셨다는 성모궁이 있어 이 지역 일대가 대한침략의 성지처럼 되어왔던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왜 그들이 고려군을 빼고 몽고군(원군)만 이곳에 쳐들어 왔다고 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조선은 약하다고 선전해 놓았는데 그렇게 약한 조선군(고려군)이 여기까지 쳐들어 왔다고 하게 되면 곤란했을 것이다. ○왜장 평경륭 영웅화 그래서 몽고군만 쳐들어온 것으로 하면 그런 모순이 없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명치정권이 여몽련합군을 원구니 원군이니 하여 고려군의 존재를 말살해버린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항구로부터 차로 2∼3분 걸리는 고려교로 달려갔다.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자칫하면 사진도 못찍게 될까 걱정이 돼서 먼저 사진을 찍고 중상씨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작은 구름이 있고 그 아래 골짜기에 「문영지역 고려교 고전장」이라는 표석이 서있었다.대석이 없어서 약간 기울어진 것같았으나 바로 이곳이 우리 김방경장군이 적을 쳐서 전멸시킨 장소라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오랫동안 위구에 시달리기만 하다가 적을 응징한 자리.그리고 그 뒤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고려라는 이름.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그런데도 우리 국사책에 지워져 없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 고려교 표석의 유래는 7백년전 지금은 없는 이 다리위에서 고려군과 왜군이 싸워 1천명의 왜군이 쓰러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어 있다.「고려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보자. 『몽한군 2만5천,우리 군사 8천 그리고 선장 수부등 6천7백명이 전함 9백척에 나누어 타고 단숨에 합포(지금의 마산)를 떠나 대마도를 치고 일기섬에 이르니 왜병이 해안에 진을 쳤다. 아군이 그들을 쫓으니 왜가 항복을 청하더니 다시 와서 싸우므로 몽고군이 쳐서 1천여명을 죽이고 이어 적을 쫓았다.이때 중군 김방경은 효시를 뽑아 소리를 크게 질러 호령하니 왜가 겁을 먹어 달아났다.왜병은 크게 패하여 시체가 산더미와 같았다』 김방경의 전공은 너무나 컸다.그래서 『몽고군이 잘 싸운다고 하나 고려군에 비길손가』하는 탄성이 나왔던 것이며 이곳에서는 그뒤 이 싸움을 고려교 전투라 치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명치정부는 이 싸움을 신성고전장이라 이름을 바꾸고 고려군과 맞서 싸우다가 자진한 평경륭을 영웅화하였다.아울러 이때 같이 죽은 1천명의 시신을 기려 신성 천인총이라 하였고 신성 언덕위에 신사까지 세워 오늘에 이르렀다.고려교 표석옆에는 지금도 「원관순국충혼비」가 서있고 꽃다발이 생생한데 설명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문영의역 신성고전장(현지정사적). ▲천인총­문영11연10월14일(1274)에 몽고군이 내습하여 상륙하였다.수한대 평경륭은 1백여기로 이틀동안 싸웠으나 원군이 너무 많아 전멸당하였다. ▲신성신사(평경륭의 묘)경륭은 고전끝에 자신의 거관인 신성에 패주하여 다음날 최후의 일전을 시도하다가 일주 모두가 성내에서 자결하였다고 전한다」 ○몽고군 1만명 익사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몽고군의 수탈과 삼별초의 항전으로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하던 민식초목지실의 시대였다.그런 속에서 3만여명의 목수들이 징발당해 단 5개월만에 9백여척이나 되는 전선을 만들어 냈으니 스스로 일본정전같은 큰일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군사들은 물론 목수들까지 극도로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특히 목수들은 몽고군의 횡포와 강압에 격분한 나머지 불양선함을 만들어내 몽고군이 타고 가다가 모두 수장되기를 바랐다.고려군은 이 사실을 알고 태풍이 불자 재빨리 튼튼한 배에 올라타서 대부분 생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몽고군은 이 사실을 전혀 몰라 1만3천여명이 물귀신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였다.따라서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때 불어닥친 바람은 신풍이 아니라 고려목수들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고려교와 신풍의 왜곡된 현장 일기도는 아직도 안개속을 헤매는한일관계처럼 시정되지 않은채 오늘을 살고 있다 할 것이다.
  • 파괴·번영 공존지역(평화 싹트는 중동:9)

    ◎레바논,내전상처 복구사업 한창/2천년 겨냥 사회간접시설 집중투자/3개교파 갈등 여전… 「불안한 평화」 유지 서베이루트(이슬람지구)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연결된 드골장군로를 타고 바다쪽만 보면서 달리면 니스나 나폴리해안으로 착각할 만큼 잔잔한 지중해의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나스르」는 이 도로 중간 해안돌출부에 그림같이 자리잡은 최고급 레스토랑.바닷가재 등 해물요리전문으로 롤스로이스,캐딜락 등 고급 승용차가 문전에 즐비하다.베이루트 최고 절경인 쌍바위 그로테 피존을 감상하며 풀코스 정찬을 즐기려면 샐러리맨 몇달치 봉급이 들어가는데도 빈 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동베이루트 외곽에 올봄 개업한 「아베체(ABC)백화점」.3층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파리시내 백화점으로 착각하게 할만큼 진열된 상품도 많고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판매원만 빼놓고는 모두 수입품』이라는 귀띔처럼 온통 수입상품들로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그릇세트점에서는 5천달러 하는 리몽즈세트가 없어서 못판다고 한다. 시가지 한복판 사라광장을 중심으로 금융가 뱅킹스트리트와 호텔가 파크레딘가 등 과거 동·서베이루트를 가르던 그린라인 일대의 모든 건물들이 파괴된 베이루트는 20년 내전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군데군데 파괴가 덜된 빌딩에는 아랍난민들이 들어가 살고 있다.이른바 「어큐파이드」(점거된)빌딩들이 시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다. 하루 세시간 제한송전,시내전화의 90% 이상 불통,제한급수 등 온갖 불편에도 시민들은 익숙해 있다.총성이 끊긴 것만도 고마울 뿐이다.이렇게 두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 베이루트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피폐해 있다. 「호라이즌(Horizon) 2000」.이는 지난해 취임한 라피크 하리리 총리가 레바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올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후경제재건프로그램이다.2000년까지 레바논의 전흔을 씻고 과거의 명성과 영광을 되찾게 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올4월부터 총1백30억달러를 전력·통신·운송 등 8개 사회간접시설 분야에 투자하는 것으로 돼있다.레바논재건및 개발위원회(CDR)라는 별도의 기구가 이를 추진중이다.사우디에서 건설업으로 성공한 하리리 총리는 개인재산만 40억달러가 넘는 세계1백대 부호중의 하나.레바논 경제부흥에 자신의 사재를 털 용의까지 있음을 밝혀 국민들로부터 「레바논의 마지막 희망」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같은 시점에서 터져나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협정은 그동안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대리전쟁으로 위축돼온 레바논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호기로 전망되고 있다.그러나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반환에 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 시리아가 협정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레바논도 『시리아 없는 평화협정은 무의미하다』며 적극 반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수니파·시아파 회교도와 마론파 기독교도들간의 3파전에 팔레스타인·시리아등의 개입으로 복잡한 양상을 이뤄온 레바논 내전은 현재 시리아군의 장악으로 일시 진정된 상태를 보이고 있다.시가지 곳곳에 시리아군이 참호를 구축하고 경비를 서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기독교,총리는 수니파,국회의장은 시아파가 각각 분점하는 불안한 평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레바논은 70년 서베이루트에 아라파트의장의 PLO본부가 들어서면서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항전 중심지가 돼 이스라엘의 표적이 돼왔다.이때문에 남부지방은 현재도 「안전지대」라는 명목으로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다. 현재 PLO본부는 튀니지로 옮겨졌지만 3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서베이루트와 남부 시돈지역 캠프에 거주하고 있다.그러나 이번 협정안에 레바논 거주 팔인들과 시리아 거주 35만명에 대한 언급이 없어 문제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쿠르드계의 현지 기업인 셰이크 무사그룹의 라우시 무사 부회장(35)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가 바로 우리의 평화이기 때문에 레바논과 시리아의 협조없이 평화는 불가능하다』면서 『이제 레바논에서 모슬렘과 크리스천이 종교적인 이유로 더 이상 싸우지는 않을 것이며 서로 화합하여 국가건설에 나설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 여성교양학회가 소개하는 올바른 생활예절

    ◎명함은 상대방이 바로 보도록 건네야/웃 어른에 절올린 후엔 정면서 비껴 앉도록 우리사회의 산업화 현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최근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는 규범인 기본 예절이 간단하게 생략되거나 무시돼 인간관계가 점차 삭막해져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국 전문대학 여성교양학과 교수들의 연구모임인 「한국여성교양학회」(회장 임희규)가 지난 27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생활의질서 삶의평화」를 주제로 제1회 한국생활예절 연구발표회를 가져 관심을 모았다. 인천 인산전문대와 부천 유한전문대등 7개 전문대생들의 시연으로 흥미롭게 펼쳐진 발표회에서는 결혼예식에서 함받기와 신방차리기,차예절·한복·양장차림의 절하는법 등이 재미있는 상황설정과 함께 선을보였다.특히 방문이나 손님맞이·웃어른 뵙기·문상갔을 때의 예절,명함주고 받기 시연은 현대생활에서 꼭 필요한 예절로 참석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임희규교수(인천 인산전문대)는 『우리의 예절규범이 실제 현대생활과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일상생활속에서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지속적인 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이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생활 예절중 남녀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명함주고 받기와 웃어른 뵙기의 올바른 예절법을 소개한다. ▲명함을 주고 받는 것은 서로가 어떤곳에 소속돼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확인하는 절차다.명함을 건네면서 「이런 사람입니다」「이런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명함을 교환할때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남자가 여자에게,손님이 주인에게 먼저 주어야 한다.자기의 성명이 상대방에게 보아 바르게 되도록 해 두손으로 건네고 받고 모르는 글자기 있으면 곧바로 물어 확인하는 것이 예의다. 명함은 받아서 눈여겨 보고 핸드백이나 웃주머니에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넣어야 한다.손에들고 만지작거리거나 아무데나 넣는것은 상대방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태도로 보여진다. ▲아랫사람이 먼길에서 돌아왔거나 오래간만에 어른을 뵈었을때 드리는 문안인사는 절을 하는것이 바람직하다.이때「어머니 절받으세요」라는 인사는 명령형으로 잘못된 표현.「어머니 인사 여쭙겠습니다」혹은 「인사드리겠습니다」란 말을 써야 한다.절을 올린 다음에는 일반 온돌인 경우 방석을 자기 앞쪽으로 당겨 앉되 정면으로 마주 앉지 않고 사선으로 비껴 앉도록 한다. 여자는 두 무릎을 가지런히 한뒤 오른쪽 무릎에 왼손을 얹어놓고 그위에 오른손을 가볍게 얹으며 남자는 무릎을 끓는다. 어른이 「편히 앉으라」고 하면 여자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무릎 조금 안쪽으로 두손을 가볍게 포개고 남자는 책상다리로 앉는다.이후 어른이 일어서면 얼른 따라 일어서고 또 어른이 들어오면 앉았던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 맞이한다.
  • 여몽연합군 일 정벌(일본속의 한국문화:7)

    ◎“원구 3만명에 결사항거” 표석 곳곳에/대마도주 종조국,“80기로 맞섰다” 용전 과장/일제 군국주의자들,증오심 부추기려 미화 13세기말,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백여년전인 1274년에 몽고군과 고려군이 연합하여 대마도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우리는 이 사건을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이라 부르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통상 문영·홍안의 역이라 부르고 있다.이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대마도와 일기도 그리고 북구주의 박다였다. 여기서는 사건을 좀 더 강하게 원구의 내습이라 부르면서 곳곳에 표석을 세워 그날의 참화를 잊지 않도록 환기시키고 있다.심지어는 위령비에다 신사까지 세워서 이날 이때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말썽 많은 동경 한복판의 정국(야스쿠니)신사와 같은 것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1274년에 도해 대마도 서해안에도 위령비와 신사가 있다고 해서 오늘은 그곳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소위 원구라는 호칭은 우리가 하는 위구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 하겠으나 일본은 단 한번 당한 침략인데도 곳곳에 기념물(?)을세워 놓고 있는 반면 우리는 수없이 당한 위구였는데도 단한곳 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다는 점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만일에 우리가 위구고전장이라고 해서 절을 세운다고 가정하면 전국 도처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찰 투성이가 되고 말 것이다.그런데 왜 일본에는 이런 곳을 만들어서 요란하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일까.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대마도에서는 제사를 지낸 뒤에 서북쪽 바다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행사가 반드시 있다고 하며 수년전에는 원구700주년기념행사를 성대히 거행했다는 소문이다.두말할 나위도 없이 일제잔재이며 이 잔재때문에 일본인들은 대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일본속의 한국문화를 솔직하게 시인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시신 두토막… 묘2개 엄원(이즈하라)에서 원구고전장이 있다는 소무전(고모타)마을로 가자면 이 섬의 진산인 백악산을 넘어가야 한다.백악산도 백두산이란 우리 민족고유어에서 유래하고 있다.도중에 차는 어동총이라는 곳에 잠시 머문다.「어동총」이란 무엇인가.여몽연합군이 대마도를 공격하였을때 항전하다가 죽은 제1대 도주 종조국의 무덤인데 그가 두 토막이 나서 시체가 두군데 묻혀 있다는 것이며 그중의 하나가 이곳의 오동총이라고 하니 듣기에도 소름이 끼친다.비문에는 종조국공어동총이라 새겨 놓았으나 그 옆면에는 자신이 없는 듯이 『종조국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다』고 부기해놓고 있다. 다시 차는 고개를 넘어 해안에 닿는다.멀리 바다 건너에는 우리나라의 남해안이 바라보이고 작은 어선들이 항구에 들어선다. 항구에 들어서는 어선들이 마치 옛날 왜구들이 우리나라를 약탈하고 돌아오는 장면같이 느껴져 섬찢했다.물론 필자의 시대착오이긴 했지만 이 마을에다 지어놓은 소무용국신사와 또하나의 종조국어동총을 보는 순간 갑자기 지난날의 어린 시절이 눈앞에 다가섰다. 왜 그랬을까.바로 이 신사와 동체묘가 일본군국주의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이 섬 사람들은 7백년이나 지난 일을 기억할리가 없는데 명치유신 이후 이나라에 군국주의가 되살아나더니 케케묵은 신공황후라는 귀신의 삼한정벌설이 대대적으로 등장하는가하면 원구고전장 같은 곳이 만들어져서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바로 그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본시 원구란 말은 없었고 명치유신이전에는 「이국합전」정도로만 불렀었다는 사실을 상기할때 원구고전장이란 말자체가 근대적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또 그보다 더 뚜렷한 증거는 이 신사앞에 세워놓은 안내판이다.하나는 일제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원구분전지도」라는 안내판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관광협회에서 만들어 세운 「원군침공요도」라는 안내판이었다.앞의 것은 한마디로 증오심을 유발하기 위한 문구로 가득차 있는데 반해 뒤의 것은 매우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원구분전지도. 문영 11년 10월15일에 원군 3만여명이 선수를 서로 맞대고 쳐들어와 대마도를 포위하였다.수호대 종조국은 겨우 80여기로 그들과 싸웠으며 의용전사한 도민이 부지기수였다.적들은 살아남은 노유부녀들을 붙잡아서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새끼를 꿰매어 뱃머리에 엮어서 매달았으며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하였으니 그 참상은 눈뜨고 볼수 없는 일이었다.적의 선봉은 그 나라의 중죄인들로서 이름하기를 생권군이라 하였으며 악랄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종조국은 일기당천의 용사들을 지휘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죽음에 임해서도 그는 눈을 부릅뜨고 적을 응시하며 쓰러졌다.종조국의 동생 마지윤도 함께 쓰러져 충사하였으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원군은 오지 않았으니 오호라 슬프도다.명치29년 11월2일 종조국에 특지를 내려 종2위로 삼으니(천황의) 성은이 고골을 적시고 전국이 감읍하였다」 ○태풍에 배침몰,철수 누가 읽어 보아도 소름이 끼치는 글이요 제1대 도주 종조국의 용전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그러나 그때 종조국은 결코 일본천황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또 그런 종조국에 종2위라는 작위를 내린 해가 명치29년,즉1896년이었다.청일전쟁을 도발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한 바로 그해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관광협회에서 만들어 세운 안내판의 글귀는 담담하기만 하다. 「원군침공요도 문영지역 ­문영11년10월에 고려군을 포함한 3만여명의 원군은 먼저 대마와 일기를 공격하고 10월19일 박다만에 이르러 이튿날 상륙하기 시작하였다.일본군은 주로 구주의 무사들이었는데 원군이 장궁독시와 철포와 같은 신식무기로 싸운데 반하여 일본 무사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1대1로 싸울줄밖에 몰랐다.그래서 대패했는데 때마침 태풍이 불어 원의 군선이 거의 다 침몰하고 1만3천명의 군사를 잃고 고려로 철수하였다.이것이 문영의 역이다」 일제말기에 「신풍」이라는 자살부대를 만들어 10대 청소년들을 몰살시킨 역사를 일본인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원구때의 신풍이 다시 불지 않는 조작된 역사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런 역사 왜곡의 현장을 그대로 둔채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들.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수 있단 말인가.
  • 오늘은 더 춥다/춘천·청주 영하1도/설악산·대관령 어제 첫눈

    ◎서울엔 첫얼음 22일 서울지방에 첫얼음이 어는 등 전국 대부분지방의 기온이 크게 떨어져 초겨울날씨를 보인데 이어 상강(상강)이자 주말인 23일은 기온이 더 떨어져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이겠다. 특히 23일은 차가운 기온과 함께 강한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을 것으로 보여 감기예방 등 건강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기상청은 주말을 이용,나들이객이나 등산객들은 방한복과 방한장비를 반드시 갖출 것을 당부했다. 기상청은 22일 『북서쪽에 중심을 둔 찬 대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23일 대체로 맑은 날씨를 보이겠으며 아침 최저기온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지방이 예년보다 4∼6도 낮은 영하3도에서 영상 6도를 기록,쌀쌀하겠다』고 예보했다. 23일 전국 주요지방의 예상최저기온은 춘천·청주 영하 1도를 비롯,수원 0도,인천·대전 영상 1도,서울·전주 2도,광주·대구 3도,강릉 6도 등이다. 【속초=조성호기자】 설악산에 올들어 첫눈이 내렸다. 전국이 초겨울 날씨를 보인 22일 하오 설악산 대청봉등 고산지대와 대관령일대에 진눈깨비가 내렸다. 이날 내린 눈으로 대청봉에는 3㎝,대관령에는 3·5㎝의 강설량을 보였다.이날의 첫눈은 지난해 설악산 대청봉의 10월18일보다는 4일,대관령보다는 3일 늦은 것이나 예년보다는 10일정도 빠른 것이다.
  • 김남일 「국경」/김영현 「풋사랑」(문학월평)

    ◎민중적 세계관·탄탄한 묘사력 탁월/국경/함경도 방언·농민생활 생생히 재현/풋사랑/소설을 시적정서 자리로 이동시켜 이 달의 문학평은 김남일의 「국경」(1부)과 김영현의 「풋사랑」이 있어서 무척 즐겁다.질척거리는 시궁창 속을 헤매다가 맑은 샘물을 만난 듯,산뜻한 산들바람을 만난듯한 느낌이 반갑고 상쾌하다.「청년일기」의 작가 김남일이 오랫동안의 산고끝에 마침내 발표한 「국경」에는 과연 만만치 않은 공력이 배어 있다.작가는 우리를 1920년대말에서 30년대 초의 함흥지방으로 안내한다.그 안에서 조선 공산당 재건운동과 함흥지방의 적색농조 운동,질소비료공장의 제네스트가 펼쳐진다(또 그 얘기? 왠 사회주의? 하고 지레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작가 스스로가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시간과 공간을 소설로 재현한다는 것은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난감한 정도를 넘어서 위험한 일이기조차 하다.상상력의 무한정한 자유운동과 그것을 끊임없이 억누르는 사실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위험은 모든 역사소설이 피할수 없는 위험이기도 하지만,또한 역량있고 야심있는 작가라면 기꺼이 대결하고픈 위험이기도 하다.「임꺽정」,「토지」,「장길산」,「태백산맥」이 그러했고 그 작가들이 그러했다.그러나 「토지」나 「태백산맥」은 말할 것도 없고 「임꺽정」마저도 작가 당대의 언어와 생활체험이 창작의 긴요한 자산이 되었던 것이었다.김남일은 위의 작가들에 비하면 거의 완벽하게 무의 지점에서 출발했다고 보아야 한다.그런만큼 야심과는 달리 소설이 무미건조한 다큐멘터리나 과거사의 단순한 발굴­복원으로 끝날 위험성이 컸다는 말이다. 그 위험을 거뜬히 넘어서게 한 것은 이 소설 속에서 풍요롭고 다채롭게 재현된 함경도 지방의 생활상이다.절묘한 운율과 뚝심이 어우러지는 함경도 방언의 생생한 재현과 농민 생활묘사의 구체성은 이 소설이 지닌 최대의 미덕이며,무릇 소설의 성패가 바로 그 디테일의 진실성과 구체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작가를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작가이게끔 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그점에서 김남일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역량을 보여주었다.디테일의 풍부함에 비추어 서사적 골격이 좀 미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은 이제 1부만이 완결된 시점에서는 성급한 속단일수도 있겠다.김남일은 우리 민족문학이 미처 캐내지 못한 광맥을 잡았다.그의 탄탄한 묘사력과 민중적 세계관은 이 광맥을 90년대 민족문학의 새로운 보고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김영현의 「풋사랑」은 80년대 청년들의 이야기이다.소재로만 보면 새로울 것도 없다.그러나 이 첫 장편에서 김영현은 80년대가 낳은 작가로 그를 일컫게 했던 「김영현적인 것」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끔찍한 리얼리티」를 차마 보아내지 못하는 그의 정신은 소설을 차가운 산문성의 공간이 아니라 시적정서의 자리로 이동시키는 한편,세상 바깥의 어디로도 차마 나가지 못하는 그의 정신은 소설의 인물들을 이세상 한복판 그 격류 속에 집어넣고 마구 휘젓는다.내가 일찍이 다른 글에서 「낭만적 아이러니」라고 했던 그것은 김영현의 힘이기도 하고 또한 굴레이기도 하지만,어찌하랴 그것이 우리 시대의 숨길 수 없는 모습이기도한 것을.
  • 서울Y주최 재활용의류 발표회 으뜸상수상 김복순할머니(인터뷰)

    못입게 된 한복 두루마기를 요즘 유행하는 긴조끼로 만들어 선보인 김복순 할머니(68·경기도 광명시 하안동)가 12일 열린 서울YWCA 주최 재활용의류 발표회에서 최고의 으뜸상을 수상했다. 『지금이야 모두 성장,출가를 했지만 어려운 시대에 2남3녀나 되는 아이들을 낳아 키우다보니 옷을 개조해 재활용 하는것은 저의경우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그것은 또 제 세대의 공통된 특징으로 과거엔 사람들이 아무리 물자가 풍부해도 아껴써야만 복을 받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김할머니가 이번에 내놓은 재활용 옷들은 크기가 맞지않고 유행과 안어울려 그대로 장농속에 넣어뒀던 자신의 옛날 두루마기와 한복류를 뜯어 만든것으로 여성투피스와 긴조끼 및 조바우와 복주머니등 8가지다. 김할머니는 이 옷들을 발표회에 직접 입고 나왔는데 조끼에는 아웃 포켓까지 달아 심사위원들로부터 멋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옛날에는 자식들 옷을 만들었지만 요즘에는 11명이나 되는 손자들을 위해 털실로 스웨터를 짜고 짜투라기 옷감을 이용,모자같은것을 만들어 주는데 아이들이 돈주고 산것보다 더 멋있다며 고마워할땐 정말 삶의 기쁨을 느낍니다』 김할머니는 마음만 먹으면 옷을 리폼하는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알뜰한 살림을위해 여성이라면 누구나 재봉틀은 갖추어야 할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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