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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親日의 군상:5/시인 朱耀翰(정직한 역사 되찾기)

    ◎臨政 독립신문 편집국장서 ‘皇國臣民’ 변신/대표적 친일 행적­일 건국이념 八紘一宇서 따온 ‘松村紘一’로 개명.각종 잡지에 친일시 발표·친일단체 간부 역임.“천황 위해 목숨 바쳐라” 전국 순회 강연회 개최/해방후의 족적­전경련 부회장.국회의원 재선.부흥·상공장관.사망후 국민훈장 “아아 날이 저문다.西便하늘에,외로운 江물 우에,스러져가는 분홍빗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우는 밤이 또 오것마는,오늘은 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듯기만 하여도 흥셩시러운 거슬 웨 나만 혼자 가슴속에 눈물을 참을 수 업는고?……”(‘창조’ 창간호,1919년 2월) 4월 초파일 저녁 대동강변에서 벌어진 불놀이 장면을 보고 죽은 애인을 그리는 애상조의 이 시는 송아(頌兒) 朱耀翰(1900∼1979년)의 대표작 ‘불놀이’다.이 시는 종래 우리 시의 기본형식을 거부하고 상징적인 수법과 대담성 때문에 흔히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자유시’로 불려왔다.특히 일제하 우리민족의 아픔과 시대상황을 민족정서로 표현했다 하여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왔다.우리 역사앞에 처음 등장한 ‘시인 주요한’의 첫출발은 이처럼 좋았다. 주요한은 20세기가 시작된 1900년 10월 평양 목사집안의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12년 숭덕소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그는 메이지(明治)학원에서 중등과정 5년을 마치고 도쿄 제1고등학교에 진학했다.문학에 심취해 있던 그는 이 무렵 도쿄유학생이자 같은 문학청년 金東仁을 만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 동인지 ‘창조(創造)’를 탄생시킨다.‘3·1만세의거’가 터지기 꼭 한 달 전의 일이다.그의 대표작 ‘불놀이’도 바로 여기서 선을 보였다. ‘창조’ 2집이 나올 무렵 고국에서 ‘3·1만세의거’가 일어나자 그는 서둘러 짐을 싸서 귀국했다.그러나 그의 부친은 다시 도쿄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였다.동생 耀燮(작가·72년 작고)이 몰래 삐라를 복사하여 돌리다가 체포되자 장남인 그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하였다.결국 도쿄로 되돌아온 그는 한동안 방황하다가 한인(韓人)YMCA 총무 崔承萬을 만나 상하이(上海)로 가라는 권고를 받는다.시인이자 애국청년으로 보낸 그의 상하이시절 9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상하이는 그를 반겼다.당시 임시정부에서는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 발간을 준비중이었는데 문사(文士)가 필요했었다.‘독립신문’은 그 해 8월21일 창간호를 냈다.춘원 李光洙가 사장겸 주필이었다.그는 춘원 밑에서 편집국장겸 기자로 있었다.상하이 임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시절 동지로 지내는데 나중에 ‘동우회(同友會)사건’으로 변절,친일의 길로 들어서면서도 행동일치를 보이게 된다.상하이시절 그는 자신이 기자로 있던 ‘독립신문’에 ‘송아지’라는 필명으로 ‘조국(祖國)’등 수 편의 애국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송아’라는 그의 아호는 필명 ‘송아지’에서 따온 것이다. 1927년 그는 9년간의 상하이생활을 청산하고 돌연 서울로 돌아왔다.귀국동기는 분명치 않다.다만 그는 귀국후 곧바로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입사 2년만에 편집국장이 된 그는 그 해 광주학생의거 관련 민중대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말썽이 돼 일제로부터 곤욕을 치렀다.33년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겼으나 사주(社主)와의 갈등 끝에 李光洙에게 편집국장 자리를 물려주고는 얼마 뒤 퇴사하였다.그 해 그는 화신(和信) 사장 朴興植의 권유로 ‘화신산업’에 입사,언론인에서 회사 중역으로 일대 변신을 꾀한다. 그는 이 무렵 李光洙와 함께 도산 安昌浩가 1913년 미국에서 설립한 ‘흥사단(興士團)’의 국내단체인 ‘수양동우회’(1929년 11월 ‘동우회’로 개칭함)의 핵심간부(이사장)로 활약하고 있었다.이 단체는 친목단체로 위장한 민족단체였는데 당시로선 합법단체였다.회원들은 교육자·목사·변호사·의사 등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주류였다.중일전쟁(中日戰爭)을 앞두고 이 단체가 일제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중일전쟁 발발(1937.7.7) 1개월전 일제는 동우회 해산명령과 함께 동우회원 일제검거에 나섰다.이는 민족주의 계열 인사에 대대적인 검거작전의 신호탄이었다.뒤이어 흥업구락부사건,천도교인사 탄압,조선어학회사건 등이 뒤따랐다.이 때 검거된 동우회 회원은 150여명.4년여에 걸친 재판기간 동안에 2명은 옥사하였고 그를 포함해 ‘화수분’의 작가 田榮澤,작곡가 玄濟明·洪蘭坡 등 18명이 ‘전향서’발표와 함께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 가입을 선언하였다(1938년 6월29일). 경기도경찰부가 작성한 비밀문건(特秘제2494호,38년 11월5일)에 따르면,李光洙·朱耀翰 등 보석출소자 28명은 11월 3일 서울시내 효자동 소재 李光洙의 집에 모여 사상전향에 관한 회의를 열고는 충성서약의 표시로 11월 말까지 동우회 입회금 300원(현재 약000)을 포함,총 2,888원을 국방헌금으로 바치기로 결의하였다.헌금 전달자는 朱耀翰으로 결정되었다.상하이 임정에서 ‘독립신문’을 만들고 애국시를 쓰던 그는 어느새 이렇게 변해 있었다. 주요한의 친일성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는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라는 그의 유별난 창씨명이다.이름에 해당하는 ‘紘一’은 일본의 건국이념인 ‘팔굉일우(八紘一宇)’에서 따온 듯한데 실지로 그는 ‘팔굉일우’라는 시도 썼다.(‘삼천리’41.1) 철저한 일본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친일잡지 ‘삼천리’(40년 12월호)에 ‘동양해방(東洋解放)’ 기고를 시작으로 이후 각종 매체에 다수의 친일시·논설을 발표하였다.또 조선문인협회·문인보국회·조선임전보국단·언론보국회·대의당·대화당 등 대표적 친일단체에서 간부로도 활동하였다.그의 대표적인 친일문장 몇을 만나보자. ‘대동아전쟁’ 개전(1941년 12월8일) 직후인 41년 12월 14일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미영(美英)타도대강연회’에서 그는 ‘루즈벨트여 답하라’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를 ‘위대한 어릿광대’라고 지칭하고는 “반도의 2,400만은 혼연일체가 되어 대동아 성전(聖戰)의 용사 되기를 맹세하고 있다”고 포효했다.‘조선임전(朝鮮臨戰)’(‘신시대’,41년9월)이라는 글에서는 “지금 시국이 요구하는 것은 행동이요,희생이요,무조건의 헌신”으로 “동아의 성전이 조선에 구하는 것은 땀과 피와 살과 생명”이라며 “오직 우리는 (천황이)부르실 때 바칠 뿐”이라고 했다. 일제의 징병제 실시를 맞아서는 “오늘에야 우리를/부르시는 높은 뜻을/서로 전해 말하며/눈물 흘리는 것을…”(‘오늘에야’제1절)이라며 감격해 했다.또 조선인 지원병으로서 최초의 전사자 李仁錫군의 죽음을 두고는 “보아라,너들의 피가/내 핏줄을 통해/여기 뿜는다.2,300만의/뜨거운 피가/1억의 피로/한덩어리가 되는/처음의 피가/지금 내 핏줄에서/콸콸 솟는다…”(‘첫피’제3연,‘신시대’41년 3월)고 했다. ‘동의어(同意語)’라는 시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는 것은 아니다…폐하를 위해 살고 또,죽는 것만이 즉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이쯤되면 그를 조선사람으로 보기 힘들다.이 시들은 대부분 일본어로 번역돼 ‘손에 손을’이라는 그의 시집에 실렸는데 그는 이 시집출간으로 제4회 조선문예상 문학상을 수상했다.해방때까지 친일행각은 계속됐다. 해방후 반민특위에 불구속,기소됐다가 풀려난 후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대한무역협회장,국회의원(재선)을 거쳐 4·19후 張勉 정권에서 부흥·상공장관을,다시 5·16후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대한일보 사장,대한해운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1979년 그가 사망하자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주었다.지난 93년엔 서울의 한복판 세종로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 뒷면 약력란에는 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된 이후 해방때까지의 친일경력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언급이 없다.그에 대한 서훈과 시비건립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八紘一宇’ 무슨 뜻인가/‘온세계를 병합해 한집으로 한다’/일본서기서 인용… 1940년 처음 사용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일본의 제1대 천황인 신무천황(神武天皇)이 야마토(大和)에 도읍을 정하면서 ‘육합(六合)을 겸(兼)하여 도(都)를 개(開)하고 팔굉(八紘)을 병(倂)하여 우(宇)로 한다’(6대양 8대주를 병합하여 한 집으로 한다는 뜻임)는 내용의 조칙(詔勅)을 내렸는데 여기서 생겨난 말이 ‘팔굉위우(八紘爲宇)’다. 1940년 8월 제2차 고노에(近衛)내각이 기본국책 요강에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위해 ‘황국(皇國)의 국시(國是)는 팔굉(八紘)을 일우(一宇)로 하는건국정신에 근거한다’고 밝혔는데 이 때 ‘팔굉일우’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됐다.그 후 이 용어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건설’의 기치를 내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와 일제의 식민지국가에서 광범하게 사용되었으나 패망이후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주요한 연보 ▲1900년 평양 출생 ▲1918년 도쿄제일고교 입학 ▲1919년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편집국장 ▲1921년 상하이 호강대 화학과 입학 ▲1929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1933년 조선일보 편집국장,화신산업 입사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체포 ▲1938년 보석출소후 친일로 전향,해방때까지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함. ▲1949년 반민특위에 불구속,기소 ▲1951년 조선민주당 사무국장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당선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당선 상공·부흥부 장관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1968년 대한해운공사 사장,대한 일보 회장 ▲1975년 능률협회 회장 ▲1977년 전경련 부회장 ▲1979년 숙환으로 사망
  • 北京의 한국학교/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9월1일 마침내 北京에 “베이징 한국국제학교”가 개교됐다. 주중 한국대사관과 한국상공인·한중양국 교육부의 노력과 협조로 문을 연 이 학교는 초등학교 전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과정을 개설했다. 교육과정으로 보면 아직은 기초단계이지만 중국수도 한복판에 한국학교가 세워졌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동안 북경에 거주하는 3만여 한국인들에게는 한국학교를 갖는 것이 숙원사업이였다. 한국학교가 없어 중국이나 미국·일본인 학교에 진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모국어 학습은 아예 생각조차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나라 문화권의 교육을 받다보니 민족문화와 전통을 접할 수 없어 얼치기 한국인이 된다는 우려가 높았다. 더욱이 평생교육의 기초가 되는 초등하교 교육과정마저 없어 귀국후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 탈락하는 폐해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에 “베이징 한국국제학교”가 개설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수교 6년을 맞은 오늘의 한·중 관계는 년간 교역량이 236억달러로 막강한 경제협력의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지난해 인적교류도 58만 8천명으로 비정치 분야의 급속한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양국관계 발전과 함께 北京에 한국학교가 문을 연 것은 앞으로 문화부문의 협력증대라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성과로도 평가된다. 그리고 북경에 한국학교가 개설된 것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200만 조선족동포 문제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중국내 조선족 실태를 보면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민족주의가 와해됐고 역사의식마져 상실돼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북3성에 밀집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도시이동현상이 늘어남으로써 소수민족의 응집력과 결속에 약화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 취학아동의 급속한 감소현상으로 폐교되는 조선족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감안할때 이번 北京의 한국학교 개설은 조선족 동포사회에 미치는 교육적 가치는 자못 클 것으로 본다. “영원한 한국인”이라는 한민족 뿌리를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족교육이 필수조건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앞으로 재중동포지원 사업은 교육부문에서 확대돼야 한다.
  • 생활한복 입는 사연/沈雨晟 민속학자·공주민속극박물관장(서울광장)

    금년에 들어 한복을 입는 사람의 수가 꽤 늘고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대로 된 한복은 아니지만 한복 비슷한 차림을 길거리에서 자주 만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나는 10여년전부터 기왕에 입던 한복을 활동하기 편하게 손질해서 입기 시작했으니 남들 말마따나 이 방면 선구자 소리를 들을만 하다. 올해 아흔이신 어머님께 부탁을 들여 옷고름을 떼고 단추를 단다든가,대님 대신 역시 단추로써 간편히 고정시키는 등 이른바 생활한복을 만들어 입으면서 이제는 서양옷 하고는 담을 쌓게 되었다. 옷이 날개라 했는데 이처럼 궁상스레(?)한복을 고집하게 된데는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 1987년 늦은 가을,3년마다 세계인형극제가 열리는 북 프랑스의 ‘샤르르빌·메지에르’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30여개국 100여 극단이 참여하는 큰 잔치라 개회식 단상에는 한 나라에서 한 사람만이 올라간다. 나라 이름을 부르면 대표가 지정된 의자에 앉게 되었는데 나도 차례가 되어 점잖게 자리잡고 앉아 주위를 살피니 “어허! 이게 아니로구나!” 제 옷 입지않고나온 사람이 꼭 셋이니 일본,대만 그리고 나 한국 뿐이 아닌가. 북 프랑스의 가을 날씨는 아침저녁 쌀쌀한데 인도며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아주 맨발로 올라왔다. 민족의상,제 문화권 옷 입지않은 사람이 용케도 무형문화제를 업으로 지정·보호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대만·한국 뿐이다. 넥타이까지 잔뜩 동여매고 멀쭉하니 앉아 있구나. 그 순간 내 다시는 이런 기회 있으면 꼭 한복을 입겠다고 어금니를 씹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후 있었던 일본 도쿄의 도립극장 개관축제에도 아뿔싸 양복 차림이 되고 말았다. 귀국한 나는 있는 양복을 모조리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오늘의 복색을 고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작년 봄인가 정부의 한 부처가 한복입기를 권장하면서 ‘개량한복’이란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개량이라니 뭘 조상이 잘못했다는 말씀인가. 오늘의 생활에 맞도록 하는 것이라면 듣기도 편한 ‘생활한복’이 좋지 않을까. 한편,모처럼 장사가 된다 싶어지니 개량한복이라는 것의 값이 대단히 비싸다. 다량제품을 하지 못해서 그렇다 하지만집에서 만들어 보니 그런것도 아니다. 거기다 개량을 한다면서 우리 한복에서 이어 받아야 할 ‘선’과 ‘색’과 실용면의 안온한 조화로움은 온데간데없이 국적불명의 신판 ‘아리랑 드레스’가 판을 치고 있다.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오늘의 일터에서 불편없이 입을 수 있는 생활한복을 창출해야 할 터인데 엉뚱하게도 남녀간에 회고풍 유한층의 사치스런 모양새만 꾸며 내니 참으로 속상한 일이다. “…남자 한복은 교도소에서,여자 한복은 술집에서 입는다….”는 치욕적 불명예를 씻기 위하여 한복은 꼭 일상의 생활복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입기는 하는데…. 아직도 높은 빌딩과 관공서의 안내실 앞에서는 눈총을 받는다. 아직 비위약한 사람은 제 옷 입기가 어려운 세상인가 싶다.
  • 한울림,‘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출간

    ◎질병은 역사를 바꾸고 문명은 질병을 부른다/페스트로 중세 붕괴·종교 권위 추락/르네상스→매독 산업혁명→결핵 연관 중세는 흑사병에 의해 종식됐고 산업혁명은 결핵환자를 잉태시켰다.한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듯이 한 시대를 휩쓴 질병에는 인류의 문명사가 응축돼 있다. 도서출판 한울림에서 펴낸 ‘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황상익 편저)는 질병을 사회와 문명 변화를 가져온 주요 인자로 본다.이러한 사회사적 접근법은 유럽인 4명중 1명이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다거나 현대 질병인 암 또는 호흡기 질환이 문명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쉬 수긍이 간다. 중세에는 림프절 페스트를 비롯 홍역,결핵,인플루엔자,발한병,무도병 등 다양한 질병이 있었다.그러나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나병.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이 억압된 장원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음습한 생활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중세라는 시대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질병이었다.십자군 운동을 통해 동방에서 귀환하는 병사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됐고 13세기 극성을 떨다 14세기 중엽 쇠퇴기에 들어갔다. 1348년에 시작된 페스트(흑사병)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페스트는 근대를 탄생케 했다.엄청난 전염력으로 유럽인구의 4분의 1을 잃게 하고 장원경제와 농노제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또 고위 성직자들이 흑사병을 피해 달아나자 중세를 지배해온 종교적 권위도 붕괴됐다.매개체인 야생쥐는 12세기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트가 사라지게 된 것은 검역과 격리 등 방역조치가 이루어진 탓도 있지만 생활상의 변화도 무시할수 없다.중세의 목조나 점토로 만들어진 집이 석조가옥으로 바뀌고 집집마다 지하실이 생겨나자 주거가 안정된 쥐들은 이제 더이상 도시나 마을을 옮겨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르네상스 시대의 밑바닥에는 매독이라는 악의 꽃이 피어났다.인간해방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성적 자유라는 사회 통념이 널리 퍼져 간데다 잦은 전쟁을 통해 성폭력과 매춘이 부산물로 떨어졌다.매독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항해하면셔 유럽에 전파한 것으로 전해진다.신대륙 발견은 유럽에 부를 안겨주었지만 매독이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루게 한 것이다. 산업혁명은 결핵을 불러왔다.인구의 급격한 도시집중과 슬럼가의 출현,열악한 작업환경과 주거환경,장시간 노동,오염된 공기 등은 영국 노동자들을 결핵이라는 만성 질환에 걸리게 했다. 산업화는 현대인을 발암물질의 바다 한복판에 떠있게 했다.방향족 화합물, 비소 등 새로운 화학물질이 추가될 때마다 발암물질도 하나씩 늘어난다.이 때문에 모유에서 DDT가 나오고 성인병이던 암이 어린이들에게 발병한다. 황씨는 결론적으로 생산력의 단순한 팽창과 성장만이 아닌 인간을 위한 문명이 진정 인간 개개인과 인간 사회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 막강한 권한·책임… 국장에 버금(중앙부처 총무과장:中)

    ◎행자부 李在忠 과장­고함 잘 치는 ‘뚝심’/교육부 張基元 과장­바뀐 장관도 능력 인정/과기부 具本悌 과장­치밀한 성격 行試 22회/문화부 金俊英 과장­9급 출발 외유내강형/농림부 鄭勝 과장­아이디어 기획력 탁월/정통부 李圭太 과장­성품 온화 업무는 정확 행정자치부 李在忠 총무과장(45·행시 21회)은 소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강한 추진력의 소유자다. 청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서울대 시절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MBC아나운서인 趙一秀 부장이 부인이다. 내무부 출신으로 충북 보은·중원군수와 지방행정연수원 기획과장,내무부 사회진흥과장을 거쳤다. 지난 94∼95년 청와대 파견 시절 총무처 업무를 맡아 행자부 안팎 사정에 두루 밝은 것이 강점이다. 최근 2국 5과를 줄이는 부내 2차 구조조정에 따른 인사를 무리없이 해냈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한다. 게다가 소리도 잘 질러 직원들은 ‘못살겠다’고 비명이다. 교육부 張基元 총무과장(41·행시23회)은 安秉永 전 장관이 재직하던 지난해 4월 장관비서관으로 기용돼李明賢 전 장관 때까지 일하다 12월 총무과장이 됐다. 서울대 생물학과 출신이다. 李海瓚 장관 취임 후에도 총무과장을 계속 맡으면서 지난달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李장관의 스타일대로 지연이나 학연보다는 능력을 인정한 케이스로 꼽힌다. 합리적이고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그러나 총무과장의 핵심 권한인 인사문제에 있어 고시 출신을 더 챙긴다는 비고시 출신들의 원성도 들린다. 과학기술부 具本悌 총무과장(41)은 치밀하고 정교한 성격으로 일찍부터 총무과장 적임자로 꼽혀왔다. 보성고와 서울사대 독어과를 졸업한 행시 22회 출신. 기술협력1·2과장,기술협력총괄과장,법무담당관,공보담당관을 거쳤다. 공보담당관을 지내며 세상보는 안목과 어려운 과학기술정책을 쉽게 풀어 알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호방한 듯하면서 까다로운 성격의 姜昌熙 장관을 보필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깝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문화관광부 金俊英 총무과장(53)은 서울대 농대 출신으로 69년 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10년만인 지난 79년 사무관에 올랐다. 박물관과장과 문화진흥과장·문화산업기획과장을 지낸뒤 지난 3월 국장 승진이 약속되다시피한 총무과장에 임명됐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공직자다. 문화관광부 안에서는 공무원답지 않은 공무원으로 불린다. 그만큼 할 말을 다하고 산다. 아이디어도 반짝인다. 박물관 행정에 일가견이 있으며 복식사에도 해박해 ‘한복입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농림부 鄭勝 총무장(41)은 아이디어가 출중하다. 우유마시기 운동과 ‘자린고비 행정’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전남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행시 23회. 국무총리 행정조정실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파견을 거쳐 농촌인력과장을 지냈다. ‘농업을 사랑하는 농림공무원들의 모임’(농사모)을 구성,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례적으로 서기관이 총무과장을 맡아 농림부 분위기를 젊고 밝게 만들고 있다. 金成勳 장관이 각별히 아낀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게 장점이다. 정보통신부 李圭太 총무과장(43)은 전북대 행정학과 출신으로 행시 22회. 체신부 법무담당관과 정보통신기획과장·기술기획과장을 지낸 뒤 지난 6월 현재의 자리에 왔다. 현재의 장·차관이 모두 의전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일하기가 매우 편하다고 느낀다. 성품이 온화하고 부하들을 편하게 대한다. 그러나 업무처리는 정확하다는 평이다.
  • 21년만에 숲 떠나는 산림청/오늘 大田 청사 입주 홍릉시대 마감

    ‘아듀(adieu),홍릉 수목원’ 오늘 대전 정부청사에 입주하는 산림청이 21년간의 ‘홍릉시대’를 마감했다. 산림청이 홍릉수목원에 터잡은 것은 지난 77년 12월. 서울 서소문동 삼령빌딩에서 출범했지만 ‘산림행정과 현장의 접목’을 이유로 임업시험장이 있는 홍릉에 합류했었다. 산림청의 홍릉시대는 서울 한복판에,그것도 13만여평에 이르는 광활한 숲속이라는 ‘환상적인’ 여건을 갖춰,다른 부처 직원들로부터 ‘최상의 근무처’라는 부러움을 샀었다. 앞으로 홍릉수목원에는 임업연구원 등 산림청 소속 단체 사무실만 남게 되며 산림청 청사도 임업연구원이 넘겨받아 사용하게 된다. 산림청은 단지 국회연락기능과 서울에서 이뤄지는 업무협조 등을 위해 임업연구원에 단촐한 연락사무소만 남겨뒀다. 산림청의 한 직원은 “대전청사로 가면 숲 속에서 일하던 홍릉시대를 한동안 그리워하게 될 것같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 옷도 상품도 공간도 연출시대/감각을 익히면 취업이 보인다

    IMF 시대에도 비교적 취업이 잘 되는 분야가 있다. 특히 디자이너 쪽은 점점 수요가 많아지면서 인기 직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업·공업·의상·전시디자이너 등을 소개한다. ○상업디자이너/제품·포장지에 멋내기 인쇄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에 문양을 그리거나 광고,포장지,색표지,카탈로그 등 시각디자인을 창작 및 제작한다. 전문분야에 따라 그래픽 광고 포스터 인쇄 시각디자이너 등으로 구분된다. 고졸 이상의 학력으로 사설학원의 그래픽디자인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대학 또는 전문대학 산업디자인,시각디자인 관련학과를 졸업하면 유리하다. 광고대행사,기업체 홍보실,출판사,디자인포장센터,방송국 등에 취업이 가능하다. ○실내장식가/기능·용도맞게 설계·장식 주택,사무실,상가건물의 내부 환경을 기능과 용도에 맞도록 설계·장식하는 일을 한다. 고졸 이상의 학력으로 사설학원의 인테리어디자인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대학 또는 전문대학의 인테리어디자인과,실내장식과,건축학과,장식미술과,응용미술과를 졸업하면 취업에 유리하다. 자격증으로는 의장기사 1·2급이 있다. 건축설계사무실,실내장식 전문업체,건설업체,백화점,가구회사,방송국 등에 취업할 수 있다. ○의상디자이너/양복·한복기능사로 구분 양복,양장,한복,아동복,유니폼 등 각종 의류의 새로운 디자인을 기획·창안하고 샘플을 제작하는 일을 한다. 고졸 이상의 학력으로 사설학원의 패션디자인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한 양복기능사,양장기능사,한복기능사 자격증이 있다. 각종 의류제조업체,개인의상실,백화점의 패션기획실 등에 취업하거나 직접 운영할 수도 있다. 연락처 대한양재협회 (02)741­2048,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02)501­6964. ○공업디자이너/제품 전문지식 갖춰야 생산되는 모든 제품을 대상으로 기능,재료,구조,경제성,심미성 등을 고려해 디자인을 기획·개발하는 일을 한다. 단순히 미적 감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제품에 대한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고졸자가 진출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대학 또는 전문대학의 산업디자인,공업디자인,응용미술 관련학과를 졸업하면 무난하다. 제품디자인기술사 및 제품디자인기사 1·2급이 있고 개인의상실이나 백화점의 패션기획실에 취업하거나 직접운영이 가능하다. 연락처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02)744­6865∼8. ○전시디자이너/색조감각·손재능 요구 고객의 욕구를 자극,상품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상품의 특징과 성격이 효과적으로 나타나도록 진열하는 일을 한다. 진열할 제품을 설치하기 위해 공구 및 도구를 기술적으로 사용하고 작은 물건을 정밀하게 다루는 손재능이 요구된다. 또 색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파악해 매혹적인 디장인을 창안하기 위해 조화,대조되는 색을 인식할 수 있는 색 판단력이 필요하다. 고졸 이상의 학력으로 사설학원의 전시디자인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패션코디네이터/공인된 자격·면허 없어 의상과 장식용품을 조화롭게 연출해 토탈패션을 연출하는데 관련된 일을 한다. 전문대학 또는 대학에서 의상,디자인 관련학과를 전공하면 유리. 공인된 자격·면허는 없다. 어패럴메이커,백화점,의상실,패션잡지나 카탈로그 제작사,광고대행사,영화사,방송사,패션이벤트업체,모델업체,각종 문화센터,차밍스쿨 패션연구원,복장학원,모델학원 등에 취업이 가능하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토탈패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패션관련 전문인이 많이 필요하므로 전망이 밝다. 연락처 한국패션협회 (02)528­4741.
  • 申昌源 교도소 동기 계좌 추적/자금 제공 의혹

    ◎서울 독산동 일대 탐문 강화 탈옥수 申昌源을 쫓고 있는 경찰은 27일 申이 지난달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다방에 나타났던 사실을 확인하고 탐문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다방주인 金모씨(27)로부터 申이 연한 하늘색 개량한복 차림으로 지난달 21일 이후 3∼4일 간격으로 3차례나 다방에 드나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당시 申이 입었던 개량한복이 지난 16일 申이 버리고 간 앤트프라이즈 승용차안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점으로 미뤄 申昌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난 4∼5월 경기도 남양주시와 구리시 일대 다방에서도 개량한복에 맥가이버형 머리를 한 30대 남자가 자주 출현했다는 제보가 있었던 점으로 미뤄 申이 평소 한복차림으로 다방이나 유흥업소에 자주 돌아다녔을 것으로 보고 탐문 수사를 펴고 있다. 한편 경찰은 申과 고향이 같은 교도소 동기 유모씨가 申에게 도피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유씨와 부인 金모씨(28)의 거래은행 예금계좌에 대해 압수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수사 중이다. 유씨는 94년 만기 출소한 뒤 지난해 7월부터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다.
  • 美 의사당 공포의 총격전 3분

    ◎40대 정신병자의 소행… 의원용 출입구로 잠입/관광객들 놀라 혼비백산… 2명 죽고 2명 부상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미국 워싱턴시 한복판에 있는 국회 의사당에서 24일 하오 4시쯤(현지시간) 한 괴한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은 이날 관광객들로 붐비던 의사당 1층 건물의 하원 공화당 부총무 톰 딜레이 의원사무실에 침입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의회 경찰관들이 즉각 응사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이 숨지고 범인과 여성 관광객 1명이 부상했다. 범인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러셀 웨스튼(41)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사고 당시 하원은 본회의를 열고 있었고,상원은 산회했었으나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의사당을 구경하러온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톰 딜레이 부총무의 대변인 존 피허리는 “하오 4시쯤 범인이 공화당 부총무 사무실에 들어와 총을 마구 쏘아댔으며 20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말했다. 범인이 침입했을 때 딜레이 부총무는 사무실 안에 있었으나 무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3분간에걸쳐 범인과 경찰관이 총격전을 주고 받는 동안 의사당을 구경하던 관광객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며 급히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사고현장은 주변에 하원 공화당 간부들의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으로 범인은 의원들의 출입구를 이용,부총무실에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사건과 관련,일단 범인은 현장에서 총상을 입고 체포된 1명 뿐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범행동기와 공범여부 등에 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의사당은 83년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으며,걸프전 이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가능성과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건물 폭파사건 등을 계기로 출입자들에 대한 보안검색을 대폭 강화해왔다.
  • 申昌源 서울 출현… 또 놓쳤다

    ◎어제 새벽 강남에 고급승용차 타고 나타나/순찰 경관 차적 조회… 도난차 확인후 검문/격투 끝 도주… 거액 돈가방·가발 등 발견 지난해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무기수 申昌源(31)이 서울에 나타나 경찰과의 격투 끝에 또다시 달아났다. 이로써 경찰은 모두 5차례에 걸쳐 申을 눈앞에서 놓쳤다. ▷발견◁ 申은 16일 상오 4시15분쯤 강남구 포이동 229 C식당 앞에서 순찰 중이던 수서경찰서 개포4파출소 소속 嚴宗鐵 경장(42)과 吳昌祐 순경(30)에게 적발됐다. 嚴경장 등은 서울 48라 5186 엔터프라이즈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있던 申을 수상하게 여기고 휴대용 차적조회기(MDT)를 통해 도난 차량임을 확인,검문을 했다. 嚴경장이 “차 주인이냐”고 묻자 申은 “당구장에 있는 차주인의 돈가방 심부름을 왔다”고 대답했다. 嚴경장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申과 함께 10여m 떨어진 M당구장으로 걸어 갔다. 吳순경은 순찰차로 이들을 따라갔다. ▷격투 및 도주◁ 嚴경장과 함께 지하당구장 입구에 도착한 申은 계단으로 내려가는 순간 검정색 가방을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嚴경장의 오른쪽 눈을 때렸다. 嚴경장은 申의 목을 감싸 안으며 격투를 벌였다. 뒤따라 온 吳순경도 차에서 내려 합세했다. 嚴경장 등이 수갑을 채우기 위해 申의 손목을 잡는 순간 申은 목을 조른 嚴경장의 오른 손목과 귀를 물어 뜯고 주택가 골목으로 달아났다. 吳순경이 30여m를 뒤쫓아 갔으나 결국 놓치고 말았다. 申은 격투 과정에서 신고 있던 슬리퍼가 벗겨져 맨발 상태였고 주홍색 반팔 T셔츠에 검정색 반바지 차림이었다. 嚴경장은 申의 가슴에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검거 실패 이유◁ 朴양이 吳순경의 부탁을 받고 곧바로 112에 신고했지만 서울경찰청,수서·서초경찰서 중 어느 곳에도 접수되지 않았다. 10여분동안 격투가 계속됐던 점을 감안할때 신고 직후 즉각 출동했다면 申이 또다시 도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嚴경장은 “申이 몸이 날랬고 뜀박질이 매우 빨랐으며 단순 강도라고 생각해 총을 쏘지 못했다”고 말했다. 吳순경은 수갑을 채우기위해 申의 팔을 잡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을 정도로 힘이 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嚴경장이 유도 2단,吳순경이 태권도 4단인 점을 감안하면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류품◁ 申이 버리고 간 가방에는 미화 6,922달러,10만원권 수표 6장과 1만원권 865장(925만원),회칼 2개,운전면허증 2개,주민등록증,안경,도피과정 등을 적은 대학노트 등이 있었다. 차량 뒷자석에서는 여자가발,옥색과 붉은색 개량한복 각 1벌,검정색 구두,슬리퍼,검정색 가방,전국지도가 발견됐다. 뒷 트렁크에는 쇠톱과 훔친 차량번호판 5개 등이 있었다. ▷추적◁ 경찰은 서울시내 모든 지역에서 투입,검문검색을 실시하는 한편 8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강남구의 구룡산과 대모산 일대를 수색했으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또 차량에서 지문 10개를 채취,감식 중이다.
  • 北 ICBM 대포동2호 美 ‘심장부’ 위협/美 의회 보고서 충격

    ◎오대호까지 사정권… “본토 공격 못한다” 평가 번복/일부 전문가 “스타워즈 구축위해 과대포장” 의심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북한이 개발중인 대륙간탄도탄(ICBM)의 도달 범위가 미국 본토 한복판인 오대호 연안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예전에는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타격권에 들 것으로 분석됐었다. 미국 의회와 중앙정보국(CIA)이 위촉한 9인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는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대륙간탄도탄은 사거리가 1만㎞(6,200마일)로 미국 서부의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중서부의 위스콘신주 매디슨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의 대륙간 탄도탄은 대포동 2호 미사일로 사거리 5,000㎞ 안팎의 대포동 1호에 비해 훨씬 공격범위가 넓다. 미국 CIA는 95년 기존의 5대 핵보유국 이외에 15년 이내에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것으로 평가했으나 요즘은 형편이 달라져 한 국가가 대량파괴 무기를 개발하는데 불과 5년이 걸린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미 정보당국은 그동안 북한이 94년 제네바협정에 따라 영변 핵원자로를 폐쇄하기 이전에 1∼2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한 것으로 관측해왔다. 이렇게 볼때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의 개발을 완료해 여기에 핵탄두를 실어 미국 본토를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은 “이번 보고서는 냉전시대 종식 이후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경고인 셈”이라면서 다른 나라의 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보호할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 공화당이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추진하려다 중단한 이른바 ‘스타워스’로 불리는 요격 미사일망의 구축 필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북한,이란,이라크 등의 미사일 위협을 과대평가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 국악­서양음악 벽 허물기/K­1TV 국악한마당

    ◎재즈·록과의 만남 등 파격적 시도 KBS가 지난달 15일 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초점을 둔 사항 중 하나가 전통 문화와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늘린 것이다. ‘찬밥’ 신세이던 1TV의 ‘국악 한마당’을 일요일 상오 9시로 옮기고 방영시간도 1시간으로 늘린 사실은 이런 의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새로 단장한 ‘국악 한마당’은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달 21일과 28일 두 차례의 방송에서 국악만을 무대에 올리는 기존의 형태에서 과감히 탈피,크로스오버 공개 콘서트 형식으로 재즈·록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21일 첫 무대에서 피아노·드럼·국악기의 반주가 흐르는 가운데 이정식의 색소폰과 김원선의 피리 선율이 감미롭게 어우러지면서 동·서양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흑인에게 영혼의 소리인 재즈·블루스와 우리의 신명과 한을 담은 국악이 이루는 조화는 듣기에도 보기에도 좋았다. 진도 씻김굿의 명인 박병천옹이 가르치는 우리 장단과 우리 춤의 시간도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는 뛰어난 편성이었다. 28일에는 80년대를 풍미한 안치환과 자유밴드가‘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국악기와 밴드로 반주,벽허물기를 시도했으며 안숙선 명창과는 ‘남누리 북누리’를 함께 불러 국악의 지평을 넓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진행자인 이금희 아나운서도 한복 차림의 정적이고 정형화한 진행에서 탈피해 현대 국악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국악의 비중을 너무 낮게 두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악보다는 서양음악이 판을 주도하는 느낌을 줘 자칫하면 국악 자체에 멋을 변질시킬 우려를 낳았다. 이제 출발 단계이기에 가능성은 더 열려 있다. 모처럼 시도한 우리 문화 가꾸기가 더 깊게 뿌리내려 주기를 바란다.
  • “과천청사에 방 한칸” 여 공무원 작은 소망

    ◎공동문화공간 신설요청 청사관리소서 “No”/여성담당관실 발끈… 복지문제차원 대응키로 ‘지상의 방 한칸’.셋방을 구하기 위해 서울 근교를 헤매는 얘기를 담은 작가 朴榮漢의 80년대 후반 소설 제목이다.그런데 비슷한 일이 요즘 세종로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최근 행정자치부 여성담당관실이 여성 공무원의 각종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세종로 청사에 ‘평등 사랑방’을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다.과천 정부청사 여직원회 연합 趙珍姬 회장(보건복지부 사무관)이 이 소식을 듣고 과천청사에 ‘공동의 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7월말 대전청사로 이사가는 통계청의 자료실을 쓰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과천청사는 각 부처 여직원회 회장들이 연합체를 만들어 서예는 공정거래위원회,종이접기는 재정경제부,상품포장은 환경부,수지침은 과학기술부,손뜨개는 건설교통부,메이크업은 보건복지부 하는 식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를 한곳에 모아서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지난 10일 열린사랑방 현판식이 열렸다.이 자리에는 행자부의 金正吉장관과 石泳哲차관이 참석했다. 黃仁子 여성담당관은 金장관에게 ‘공동의 장’문제를 조심스럽게 건의했다.金장관은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정부청사관리소측도 “과천만의 문제겠느냐.세종로 청사에도 그런 공간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행자부 산하 정부청사관리소(소장 金浩吉)측은 그러나 “무슨 여성 공간이냐,그러면 흡연실과 남성휴게실도 만들어야 한다”고 일축했다.그러면서 “방을 달래려면 내부비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관리는 누가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지않느냐”며 ‘요건 미비’를 지적했다.“과천에는 청사가 모두 5동(棟)인데 한 동에 여직원 공간이 있으면 다른 동의 여직원들은 불편하니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당장은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관리소측은 한편으론 장관 지시가 마음에 걸리는 듯 직원을 여성담당관실에 보내 “곧 정부조직 추가 개편이 있을 것이니 그 때 검토하자”고 달랬다. 여성담당관실은 즉각 반발했다.‘방 한칸’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면 존립의가치가 없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제기됐다.가장 강경한 사람은 남성직원인 李炳述 사무관.그는 ‘처리 결과를 오는 7월15일까지 회신해달라’는 공문서를 최근 관리소에 보냈다. 여기서 해결이 안되면 차관이 주재하는 여성정책협의회에서 정식 거론할 작정이다.여성 문제에 대한 미온적 자세를 공문서와 회의록에 남겨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처럼 여성 공무원들은 ‘지상의 방 한칸’은 아직도 이루어지기 힘든 꿈인 것 같다.
  • 사이버 여대생 탄생/숙대 98학번 스노우양

    생일 74년 5월1일,성격 부드러우며 개방적,단정한 스트레이트 단발머리에 즐겨입는 옷은 개량한복,취미는 여행 스키 수영 골프 최신곡 부르기 등…. 숙명여대가 제작,10일 공개한 국내 첫 사이버(cyber) 여대생 ‘스노우’의인적 사항이다. 스노우양은 최근 가수 아담·류시화,작가 새파란,대학생 라이언에 이어 탄생한 사이버 인물.키 168㎝,몸무게 50㎏,발크기 245㎜로 지난 해 숙대 광고모델이었던 3명의 재학생 사진을 컴퓨터로 합성해 만들었다. 숙대가 발족한 ‘숙명 가상 교육센터’의 안내도우미로 활약할 스노우양은 이 센터 사회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98학번 새내기.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리포트를 제출하고 학점도 이수한다.스노우양이 있는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sookmyung.ac.kr/snow다.
  • 무역전쟁 새 첨병/외통부 통상전문가

    ◎박사·국제변호사·연구원 등 12명/고수입 버리고 “국익 보호” 자원 외교통상부가 새로 뽑은 통상전문가 12명이 이달 중순부터 ‘국제통상전쟁’에 투입된다.이들 모두 박사학위나 국제변호사 자격증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대학교수와 국책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 등 이미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1차 서류전형,2차 면접시험과 논문평가를 거쳐 선발됐다.특히 20여분 동안 영어로 진행된 면접시험에서는 한·미 사이의 자동차 협상 등 통상협력문제와 미국의 최근 통상정책기류 등이 주제가 됐다.10여쪽 짜리 영어논문도 냈다. 이렇게 뽑힌 馬在信 단국대 무역과교수 등 전임 9명은 통산분야 및 국제금융·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일한다.金鉉宗 홍익대 무역학교수(39) 등 비상근 3명은 자문역할을 맡는다. 계약기간은 일단 1년.이후 근무실적에 따라 2∼3년 단위로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진다.보수는 한달 평균 2백50만원 정도.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의 보수수준보다는 낮은 편이다.그렇다면 이들은 왜 적은 보수에 그토록 어려운 선발과정을 마다않고 공무원이 되려고 했을까.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에서 2년 동안 일했던 馬在信 교수는 “당시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가 국제통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통상전문 공무원으로 변신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孫基允 국회 통상담당 전문위원(38)은 “통상전쟁의 한복판에서 직접 부딪치는 역할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고,金尙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경제실장(40)은 “그동안 축적한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아주통상분야의 정책을 세우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黃宰淵 쌍용양회 자금팀차장(42)은 “정부 정책이 논리적으로는 맞으나 현실과 맞지않을 때도있다”면서 “실무경험을 정책에 반영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비전임으로 선발된 王相漢 서강대 법학과 교수(35)는 “미국 통상법과 대외정책에 관해 오래 전부터 연구해왔다”면서 “미국 통상법이 다른 나라에 적용될 때 적지않은 문제가 있는 만큼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논리개발에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金병주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사무소 홍보실장(33)과 金형진 변호사(36),李溶植씨 버클리대 법과대학원 객원연구원(30) 등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귀국준비에 한창이다.
  • 전국민의 5·18로(사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오늘로 18주년을 맞는다.올해는 어느해보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마련돼 망월동 묘지에 참배객이 줄을 잇는 등 추모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다.5·18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돼 공식적인 정부행사가 열리기는 지난해부터지만 오늘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金大中 대통령이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후 처음 맞는 기념일이다.따라서 광주 시민들로서는 어느해보다 뜻깊은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5·18이 광주 시민들만의 기념일을 벗어나 전국민의 기념일로 역사속에 자리매김 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朴正熙 대통령의 시해(弑害)로 초래된 권력공백기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꾀하던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며 민주화를 요구,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 광주 민주화운동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하는 동안 ‘폭동’으로 규정됐다.‘문민의 정부’에 들어서서야 ‘민주화 운동’으로 재평가받고 학계 등 일부에서는 4·19와 맞먹는 민중항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그러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해는 지역적으로 아직 편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지금 내리기에는 金대통령이 5·18의 직접적인 당사자이고 지역주의라는 현실적 벽이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바로 그 두가지 이유로 인해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그동안 왜곡돼 왔다는 점에서,지금이 감추어진 진실을 밝히고 5·18을 국민적 기념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우리는 본다. 5·18의 실체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광주·전남지역 사람들의 생각이다.그들이 군화발에 짓밟히며 신음할 때 당시 신문과 방송은 광주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양했고 형제와 자식의 시체를 옆에 두고 평화적 질서를 지킬때 광주 시민은 폭도로 묘사됐다.金대통령은 지난 15일 광주지역 방송과의 합동 회견에서 “5·18과 광주의 위대함은 비폭력”이라고 규정했지만 지금도 광주·전남 이외의 지역에서 5·18은 무질서와 폭력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따라서 시민에 대한 발포명령자,정확한 사망자 숫자,참혹행위 등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실 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지고 5·18의 진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광주 민주화운동이 이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궐기이고 항쟁이며 광주의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 국민 전체의 역사가 되도록 ‘국민의 정부’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생활한복의 물결/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굄돌)

    얼마전에 선릉 근처의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한복의 패션상품화를 위한 ‘한복의상전’이 개최되었다.궁중복을 비롯한 전통복식과 근래 생활한복이라 일컫는 복식 몇십점을 선보였는데,‘전통의상에 바탕을 둔 생활한복 재창조 방향의 모색’이라 하여 가보았다.10여년 전만 해도 한복은 주로 연만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입은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사라져 의례복이나 극히 일부 노인들의 외출복 또는 실내복으로 전락하였다. 원래 한나라의 복식은 기후나 지리적 환경 등에 따라 신체를 보호하는 목적과,그 민족의 정서·사회적 연대감을 주는 사회적 기능에서 특정지어진 것이다.한복은 알타이계 복식이라 하는데 오랜기간 우리 환경에 알맞게 변화해온 결과다.조선시대 궁중이나 사대부의 예복은 중국계통이고,서민은 토속한복을 입는 2중구조였으나 사대부도 생활복은 토속한복이었다고 한다. 필자는 한복을 통하여 선인들의 삶의 모습과 체취를 확인하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겨울에는 한복을 입어 왔으며 작년부터는 생활한복을 입는다.처음에는 부자연스럽고 거추장스러웠으나 점차 품위있고 우아한 정감과 너그러움의 여유를 느끼게 되었고 특히 방한복으로 훌륭하였다.생활한복은 서양문화가 전통문화를 압도하고 자주성을 짓밟는 서구물결에 대한 반동으로 우리 것을 찾는 젊은층에서 70년대부터 시도해 왔다. 생활한복은 전통적인 색상과 자연산 원단에,간결하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등 실용적이며 개성있고 편리한 옷이다.이러한 생활한복의 대중화 물결은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유치원 원복,여학교 교복,회사 제복 등 제도적 복장으로 파급되고 있다.또한 제조회사도 늘어나고 다양하게 특성을 살려나가 유망한 사업으로 발전한다니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복식문화가 전통적을 유지하면서 현대화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은 문화전통 유지·발전에 이바지할 것임을 확신한다.
  • 누구를 위한 폭력시위인가(사설)

    근로자의 날인 지난 1일 근로자들과 일부 학생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쇠파이프·각목을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폭력시위를 벌인 것은 매우 유감된 일이다.도대체 누구를 위한 폭력시위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이번 폭력시위는 새정부 출범이후 처음 발생한데다 우리나라가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아래 있는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 부정적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 자해행위에 불과 이번 폭력시위는 근로자가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한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생존권을 스스로 잃어버리게 하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안타깝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의 근로자 해고 등 구조조정은 외환위기를 해소하고 경제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통이자 고통분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일부 근로자가 이러한 역할분담은 하지 않은 채 노·사 또는 노·정간 대립으로 이끌어 간다면 그 결과는 근로자 스스로의 자해행위이자 국민경제를 망가뜨리는 엄청난 위해 행위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폭력시위는 외환위기해소를 위해 정부가 적극 권장하고 있는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직·간접투자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증시 붕괴 우려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를 꺼리는 주요한 이유중 하나가 노사분규이다.이번 폭력시위는 바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투자하기가 ‘위험한 나라’라는 인상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나 다름없다.만약 폭력시위가 계속된다면 한국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한국을 떠날 것이다.국내 증시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그렇게 되면 국내기업은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이자를 지불하지 않고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서 직접금융시장으로 불리는 증시가 붕괴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끔직한 일이다.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한국을 떠나기 위해 일시에 달러를 구입하게 되면 환율은 급등하게 된다.현재 외환보유고가 넉넉지 못한 상태에서 달러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면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밖에 없다. 환율이 폭등하면 외국에서 사오고 있는 주요 원자재가격의 재인상이 불가피하다.밀가루·설탕·라면·분유·휘발유 등 원자재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생활필수품 가격이 다시 인상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생필품 가격 인상은 결국 서민가계(근로자가계)를 압박하게 된다.근로자의 폭력시위가 자기가정의 생활비 부담을 늘리는 자기모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생필품 가격 폭등은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고 있는 내수시장을 꽁꽁 얼게 하여 내수기업 도산을 속출시킨다.기업 도산은 결국 실업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폭력시위가 근로자의 일자리를 스스로 잃게 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기업 구조조정 더욱 지연 또 근로자의 폭력시위는 우리경제가 살아 남기 위해 절실한 과제인 기업의 합병·매각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게 마련이다.현재 빚더미에 눌려 숨쉬기조차 어려운 국내 재벌그룹이 빚을 갚기 위해서는 우량계열사까지 매각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국내기업을 인수할 자금력을 갖고 있는 기업은 현재 국내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신용도 크게 떨어뜨려 국내 재벌계열사를 사들일 수 있는 기업은 외국의 다국적 기업정도이다.외국의 거대한 기업은 세계 각국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기업을 살 수가 있다.그런데 하필이면 폭력시위가 난무하는 한국에 와 기업을 사겠는가.은행 등 금융산업구조 조정도 마찬가지다.국내은행은 다른나라 은행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인력감축이 전제 되지 않으면 외국금융기관이 국내은행 등 금융기관과 합작을 원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IMF체제 이전 근로자의 폭력시위와 그 이후 폭력시위는 다르다.폭력시위는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한층 더 떨어뜨린다.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한국의 노동불안이 지속될 경우 국가신용등급 조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우리 근로자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현재 외환위기의 근인은 한국의 국가신용도가 최악의 상태로 떨어진 데 있다.근로자의 폭력시위는 위험수위에 있는 신용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일임을 자각하고 자성이 있기를 거듭 당부한다. ○재벌 대량해고 없어야 정부는 불법·폭력시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폭력은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고 근절시켜야 한다.오늘의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데 한 몫을 한 재벌그룹 등의 사용자는 기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근로자를 대량으로 해고시켜 사회에 불안을 야기시켜서는 안된다.노·사는 ‘한배를 타고 있는 공동운명체’라는 점을 재확인하기 바란다.정치권 역시 파당적 쟁점을 놓고 정치투쟁이나 하겠다는 구태에서 벗어나 국가경제살리기에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을 당부한다.
  • IMF 한파와 안식처/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굄돌)

    아침저녁으로 아직도 쌀쌀한 날씨에 지하철 대합실이 가정을 등진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간다고 한다.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일당이라도 해야할 형편이기에 어린 자식을 데리고 보육원을 찾는 이도 많아졌다 한다.이들은 그래도 막연하나마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이다.아예 세상을 영원히 등지거나 처자까지 데리고 가는 경우가 하루에 30여명이나 된다는데,이러한 현상이이제 시작이라니 어디까지 언제까지 갈런지 상상하면 두렵기만 하다. 우리의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의 뇌리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좌절과 분노의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또 어찌할꼬. 우리 삶을 이 지경까지 몰고온 IMF한파의 주범은 과연 누구인가?혹자는 자업자득이라 말하는가 하면,돈을 벌 수만 있다면 지옥에라도 간다는 자본주의의 일면인 금융제국주의자들의 계략이라는 이도 있으며,세계를 지배하려는 집단이나 국가의 음모라고 하는 이도 있다.주범이 누구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국가부도를 우선 막아야 하지만,한편으로 한파에 떠는 우리의 부모와 형제자매,그리고 자녀들에게방한복을 입히는 것이 화급한 일이다. 지하철에서 신문지를 이불삼은 저 눈물도 마른 웅크린 군상을 보라.저들의 안식처가 저세상이나 지하철이나 보육원이 되거나,가정과 인격이 파괴된 채 방황하는 무리를 옆에 두고 못본 척 지나간다면 우리는 제사장이나 레위人이 아닌가!丁丑國恥(정축국치)라고도 부르는 이 난국에도 권력과 명예와 돈방석에 앉은 양반네들이나,아직은 배부르고 등더운 중산층은 구두선이나 보신에 급급하여 이 한파를 체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가난과 전쟁의 고난을 이겨낸 향약과 村契(촌계)의 患難相恤(환난상휼)정신을 살려 동네마다 가정과 세상을 등진 자들을 구제함이 어떨까.그렇다,우리 착한 서민들이여!다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돌아가자! 진정한 안식처를 위하여.
  • 10만명 몰려 기금 3억 조성/국민회의 실업 바자

    ◎金 대통령 지팡이 1,000만원 이상에 팔려/각계인사 서화 등 기증… 이틀동안 대성황 국민회의가 실업기금 조성을 위해 마련한 ‘온국민 한마음 바자회’가 갖가지 화제를 남기고 26일 막을 내렸다.국회 후생관 광장에서 열린 바자회는 이틀동안 10만여명이 몰려 모두 3억여원의 실업기금을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바자회의 인기코너는 단연 金大中 대통령과 李姬鎬 여사의 기증품을 경매한 ‘총재관’.金대통령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휘호는 막판에 1천7백만원을 내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일찌감치 1천6백만원을 쓴뒤 안심하고 있던 수집가를 울렸다.민주화 운동 당시 전국을 누비며 썼던 3개의 지팡이 가운데 하나는 1천2백50만원,나머지 두개도 모두 1천만원을 넘어섰다.또 양복은 3백50만원,넥타이와 벨트는 1백만원,구두는 50만원,金대통령의 손때가 묻은 ‘서양철학사’는 30만원에 팔렸다.李여사의 휘호 ‘남북통일(南北統一)’은 3백70만원,‘경천애인(敬天愛人)’은 3백만원을 내겠다는 입찰응모서가 각각 들어왔다. 金대통령은 25일에는 행사장을 직접 찾아 ‘가훈 써주기 코너’에서 ‘분수를 지키고 만족하며 산다’는 뜻의 ‘수분지족(守分知足)’휘호를 써 한 실업자 가족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각계 저명인사들이 기증한 400여점의 도자기와 서화가 전시된 ‘국민관’도 눈길을 모았다.車一錫 서울신문사장이 기증한 독일화가 카리스 슈미트의 풍경화 등이 시가보다 휠씬 싼값에 나와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趙世衡 총재권한대행과 愼順範 전 의원 등이 직접 휘호를 써준 ‘명사관’도 인파가 북적였다.또 당 3역과 대부분의 당직자,의원들이 안내역을 자임하며 동분서주했고,특히 柳在乾 총재비서실장은 개량한복 차림으로 나와 축제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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