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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5)안전 우려되는 한국의 단기선교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5)안전 우려되는 한국의 단기선교

    지난달 이집트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 충돌이 발생하자 일각에선 민주화 혁명이 종교 갈등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기독교의 한 분파인 콥트교를 믿는 압둘라 만수르(32)는 카이로에서 기자와 만나 “갈등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건 일부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무슬림과 기독교가 서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싸울 일도, 오해가 생길 일도 없다.”고 말했다. ●대형교회 일방적 선교 활동 역풍 우려 오히려 중동 현지에서 활동하는 목사와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일부 대형 개신교회의 자극적인 단기 선교 활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중동 각국의 정정이 불안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선교 활동이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칫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중동의 유서 깊은 모스크를 방문해 그 주변을 돌면서 모스크가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이른바 ‘땅 밟기’ 선교 활동이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기에는 땅 밟기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 성을 함락시켰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멸망시키겠다는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는 셈이다. ●시내 한복판 ‘통성기도’에 현지인 기겁 현지 목사와 선교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단기 선교팀들은 주로 대학생 등 청년부가 주축을 이루며 역사가 오래된 모스크를 찾아 주변을 돌면서 우상이 무너지길 기도한다. 랜드마크로 유명하고 일반 관광객에게도 개방되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그랜드 모스크’가 대표적 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슬림들이 이 같은 의도를 알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어 보통 두세명씩 조심스럽게 ‘땅 밟기’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단기 선교단은 시내 한복판에서 무리지어 ‘통성 기도’를 해 현지인들이 기겁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올여름도 수백명 중동 찾을 것” 중동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한 목사는 “영적으로 강한 곳, 주로 역사가 오래된 모스크에 가서 회랑을 밟고 지나가면서 우상이 무너지라고 ‘기도 사역’을 한다.”면서 “보통 대학생들로 구성된 교회 청년부가 단기 선교의 주축이다 보니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땅 밟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여름에도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이 중동을 찾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지 무슬림들은 선교를 하는 이유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카이로의 한 시민은 “선한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준다면 주변에서 그가 믿는 종교에 호감을 갖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학대학원 교수는 “중동에서 이슬람은 단순히 개인의 믿음이면서 동시에 과거 한국에서 유교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공식적·비공식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들이 한국 선교사를 경계하는 것은 한국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사회 시스템을 적대시하고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비치게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교사는 “현지에서 어렵게 만들어놓은 우호적 분위기가 단기 선교 한 번이면 물거품이 된다.”면서 “현지와 협의 없이 보여주기식으로 보내지는 단기 선교단은 오지 말아 달라고 권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글 사진 아부다비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야한 옷 입을 권리”… ‘슬럿워크’ 런던 강타

    캐나다에서 시작된 ‘슬럿워크’(SlutWalk)가 미국에 이어 지난 11일(현지시간) 런던 한복판을 강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슬럿워크(SlutWalk)란 야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에 나서는 시위를 의미한다. 지난 1월 캐나다 경찰 마이크 생귀네티가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여성은 매춘부 같은 야한 옷차림을 피해야 한다.” 는 발언이 이 캠페인의 발단이 됐다. 이 발언은 성폭행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해석돼 여성계의 분노를 샀다. 슬럿워크는 지난 4월 3일 캐나다 토론토를 시작으로 미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30여 곳에서 진행됐고 지난 11일에는 런던에서 5천여명의 여성이 참가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시위자들은 “내가 뭘 입든 상관 말라.” “비난받을 사람은 성폭행범” 과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야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볐다. 런던 행사를 기획한 아나타시아 리차드슨(17)은 “이렇게 많은 여성이 모여 함께 싸운다니 놀랍다.” 며 “여성에게는 어떤 옷이든 안전하게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정상외교에서 한복 더 자주 봤으면…”

    ”정상외교에서 한복 더 자주 봤으면…”

     오는 10월 3일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한복 패션쇼가 열린다.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패션쇼를 여는 주인공은 28년간 한복 디자이너의 외길을 걸어온 김혜순(54)씨. 김씨는 오는 17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뉴욕 패션쇼’를 미리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에서 여는 쇼는 그에게 한복을 소개한 외삼촌 허영(1947~2000) 선생의 10주기 추모 의미도 담았다.   ‘황진이’ 하지원·김윤옥 여사 한복 디자인  패션쇼 준비로 분주한 김씨를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아직도 외삼촌의 인형에 새 한복을 지어 입히고 있었다. “저에게 한복 디자이너의 길을 열어준 분이 바로 외삼촌입니다.”  허영은 KBS 연기자 출신으로 전통인형작가와 한복연구가로 활동했다. 김씨의 작업실에 전시된 허영의 한복 인형은 고운 아미와 섬세한 연지 화장이 살아있는 미인의 모습이다. “나는 인형에게 한복을 입히지만 너는 움직이는 사람에게 한복을 입혀라.”라는 외삼촌의 한마디가 그를 한복의 세계로 이끌었단다.  ‘김혜순 한복’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장 큰 계기는 2006년 방송된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황진이’였다. 당시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화려한 한복 디자인은 지금까지 아이들의 돌 한복에 사용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커다란 붉은 꽃이 박히거나 서양의 드레스처럼 속이 비치는 저고리 등은 우리 한복에도 저런 디자인이 있었나 하는 반응을 끌어냈다. “모두 18세기 말의 옷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는 게 김씨의 거듭된 설명이다.   패션쇼 모델은 송일국·채시라·윤석화  화제를 뉴욕 패션쇼로 돌렸다. 지난해 그는 책 ‘왕의 복식’을 출간했다. 실제로 왕이 입었던 옷을 보고 다시 만들어서 소개한, 조선 왕실 의복의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조선 왕의 행렬을 재현한 초대형 한복 패션쇼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를 준비하게 됐다고. 그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복식과학재단의 최인순 이사장이 쇼를 기획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후원한다.  패션쇼가 끝나면 ‘왕의 수라’란 제목으로 한식이 제공되어 전통적인 옷과 음식을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패션쇼 모델로 왕은 송일국, 왕비는 채시라, 왕의 어머니는 윤석화가 나선다. 뉴욕 패션쇼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반기문 UN 사무총장, 한국계 미국 배우 샌드라 오, 미국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 미국에서 활동한 배우 김윤진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는 한복을 변형한 드레스 패션쇼를 열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패션쇼를 봤다는 김씨는 “큰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가야 할 길이 겁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갓을 변형한 검은색 모자를 쓴 백인 여성 모델의 모습이 한편으로 우스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똑같은 걸 보더라도 해석이 다르구나. 우리 옷을 보고 어떤 생각으로 저런 옷을 만들었을까. 전통에 안주해서도 안 되지만 생각 없이 변화를 줬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호텔서 한복 쫓겨나는 현실에 책임감 더 생겨”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씨가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일도 그에게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신라호텔에서 열린 도올 김용옥 선생의 자제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을 만났는데 한복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름이 같아 저를 이혜순씨로 착각한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우리 옷을 입고 갔는데 쫓겨났다는 현실 앞에서 한복하는 사람으로서 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그가 한복을 통해 꿈꾸는 한류는 어떤 것일까. “옷에는 그 나라의 정신이 부여되어 있죠. 우리가 싫어하지 않으면서 많이 입고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저변 확대랍시고 아무렇게나 입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대통령 취임 축하연에 입고 나온 황금색 한복을 만들었던 김씨는 정상 외교에서 더 자주 한복을 볼 수 있길 바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물 한병 약 14만원…中 ‘명품슈퍼’ 논란

    물 한병 약 14만원…中 ‘명품슈퍼’ 논란

    최근 중국 시내 한복판에 고가의 생활용품과 식재료를 파는 일명 ‘명품슈퍼’가 등장해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다고 중국청년보 등 현지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선양시에 있는 이 슈퍼마켓은 생수, 소고기, 치즈, 우유 등 일반 대형마켓이나 슈퍼에서 살 수 있는 물품들을 판매하지만 가격만큼은 천지차이다. 이 명품슈퍼에서 파는 생수의 가격은 무려 800위안(약 13만 5000원). 현지에서 주로 판매되는 생수의 가격이 2~5위안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액수다. 쇠고기는 600g에 1700위안(약 28만 5000원), 애완견 목줄은 1만8000위안(약 300만원)에 팔고 있으며, 한켠에서는 30만 위안(약 5000만원)에 달하는 커피머신으로 내린 아메리카노가 소비자들을 기다린다. 명품슈퍼 측의 설명에 따르면, 쇠고기는 호주에서 사료로 유기농 옥수수만 사용하고 음악을 틀어주며 키운 30개월 이내의 소이기 때문에 원가가 높아 고가에 판매된다, 애완견 목줄은 각종 ‘진짜’ 보석으로 치장했고, 생수는 미국 청정산지에서 제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고가의 생활용품과 식재료 등이 수 십배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일반 물품들과 나란히 판매돼 소비자들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대부분 “구경 한번 하려고 들렀다.”면서 “같은 공간에서 돈 많은 사람은 비싼 쇠고기에 커피를 마시고, 일반 시민들은 옆 판매대에서 현저히 싸게 파는 고기를 사야 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시민은 “애완견 목줄이 이렇게 비싸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결국 돈 없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명품슈퍼 측은 “소비자 계층이 다양해지면서 높은 퀄리티의 일상생활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물 한 병을 사먹더라도 믿고 마실 수 있다면 많은 돈을 낼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명품슈퍼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중국 전역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먹거리 사태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발하는 시민들과 ‘명품 생활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명품슈퍼 측의 입장이 대립되는 가운데, 업계 전문가들은 “판매량 추이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사치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사진=위는 중국 ‘명품슈퍼’에서 파는 고가의 생수, 아래는 쇠고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김옥균,… ’ 펴낸 박은숙 씨

    [저자와 차 한 잔] ‘김옥균,… ’ 펴낸 박은숙 씨

    ‘1892년 2월 22일(양 3월 28일) 오후 4시경. 중국 상하이 미국 조계(租界) 지내 일본인 호텔 동화양행. 한복을 차려 입은 조선인 자객 홍종우의 권총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읽고 있는 김옥균을 향해 불을 뿜었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알은 머리와 몸통을 꿰뚫었고 김옥균은 즉사했다. 이 장면은 김옥균의 죽음을 둘러싼 상징적 기호들로 가득하다. 중국, 미국 조계, 일본, 조선, 한복, 홍종우, 자치통감…. 김옥균의 죽음은 이러한 상징적 기호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짜인 국제적 타살이었다. 신간 ‘김옥균, 역사의 혁명가 시대의 이단아’(너머북스 펴냄). 첫 대목부터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저자 박은숙(55)씨는 이 책을 통해 김옥균의 뒤에는 유교 국가 조선이 있었고 앞에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세계가 있었다는 시대 변화를 중요한 배경으로 삼아 인간 김옥균을 새로이 조명하고 있다. 풍운아 이미지로 굳어진 채 애국과 매국 양 극단의 평가를 받아 온 김옥균에 대한 인간적 시선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그러면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오늘, 김옥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지면서 역사 인식의 허점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려 애쓰고 있다. 지난 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저자를 만났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과 직업적 변화, 갑신정변과 역사의 저 편에 묻혀 버린 행동대원들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김옥균에 대해 느낀 점이 많았다.”면서 “어떤 시대, 전환기에 왔을 때 김옥균은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며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부분에서 배울 점을 많이 던져 주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갑신정변 때 김옥균 휘하의 행동대원들은 모두 200여명이며 암호는 하늘을 뜻하는 ‘천(天)’이었다. “김옥균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려 있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는 점도 특장입니다. 넓은 도량과 포용력, 유창한 언변, 강렬한 카리스마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김옥균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했다. 그의 무덤이 될 상하이행을 만류하는 지인들에게 ‘인간만사 운명’이라는 말로 ‘죽을 때’를 암시했다는 것. 결국 김옥균은 조선의 독립과 개화라는 너무나 무겁고 혹독한 숙명의 굴레 앞에서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김옥균의 파란만장한 인생 골목골목에 밴 절망과 아픔, 고뇌가 느껴져 무심하게 글을 엮어 나가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정읍 출생으로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원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는 ‘갑신정변 연구’(역사비평사, 2005), ‘시장의 역사’(역사비평사, 2008), ‘한국노동운동사’(지식마당, 2004, 공저) 등 다수가 있다. 글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인사]

    ■보건복지부 ◇과장급 전보 △대변인실 홍보기획담당관 김현숙△보건의료정책실 공공의료과장 이상진△건강정책국 건강정책〃 류근혁△〃 구강·가족건강과장 신승일△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파견 은성호△복지부 근무 강민규 ■중소기업청 ◇부이사관 승진 △운영지원과장 이인섭△소상공인정책〃 김일호 ■방위사업청 ◇국장급 △방산진흥국장 김철수△사업관리본부 유도무기사업부장 이길섭◇과·팀장급△대변인 손현영<팀장>△기동장비사업 전영복△경공격기사업 김일동△항공유도무기사업 김영산△지상유도무기원가분석 정갑진△가격분석 이철원△국제가격검증 민장근△국제장비계약 홍일승△기동화력계약 성우영△지휘통제감시정찰계약 김성종△일반장비계약 홍은수△표준기획 강용규△계획총괄 백광석△군수정보관리 김창근△핵심기술사업 이종렬△물자규격 김성호△위성무인기사업 이명우△구성품개발관리 이경호△전자전사업 원종대△전차장갑차사업 서형진<담당관>△재정계획 김태곤△예산운용 김병부△정보화기획 백동호△공직감사 김병철△사업감사 김한복<과장>△절충교역 김종출△수출진흥 정재운△방산지원 한경수△사업분석 한기인△시험평가1 김형택<센터장>△고객지원 박근영 ■특허청 ◇과장급 전보 △비서관 박진환◇기술서기관 전보△국제특허심사팀 조정한 황윤구 ■EBS ◇승진 △평생교육본부장 김명세△콘텐츠기획센터장 최혜경△스마트서비스〃 박성환△콘텐츠사업단장 류현위△디지털통합사옥추진〃 류경선◇전보△융합미디어본부장 김석태△정책기획센터장 박치형△교육방송연구소장 윤문상△감사실장 정호영 ■한겨레신문사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겸직) 이창곤 ■국민일보 ◇부장 <판매국>△지방팀장 김용술 ■아시아경제 △논설실장 양재찬△논설위원 이주명 ■아시아투데이 ◇상무이사 △비서실장 김용태 ■교보증권 ◇승진 <전무>△OTC운용본부장 이완석◇신임 <상무>△경영지원실장 조옥래◇전보 <상무>△IT지원실장 최유화 ■대우증권 ◇본부장 전보 △퇴직연금 김현종△리스크관리 현정수△동부지역 최규성△PB영업 민경부△멀티채널 신윤근(총괄) 박재현(고객지원센터/투자상담센터담당)△법인영업 박용식△경기지역 문성형△서부지역 고정식△남부지역 최용수◇본부장 신임△커버리지2 박희명△파생운용 김응삼 ■차티스 ◇승진 △기업보험 총괄 상무 모재경
  • [여도 야도 ‘반값등록금 정책’ 눈치보기] 국민은 속타는데… 개점휴업 與

    [여도 야도 ‘반값등록금 정책’ 눈치보기] 국민은 속타는데… 개점휴업 與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 논의에 주춤하는 모양새다.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논의를 집중하겠다더니, 그 팀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팀장인 임해규 의원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해외에 체류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팀내 일각에서는 “사회·정치적으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만큼 논의의 장을 국회 상임위로 옮겨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7일 당의 한 관계자는 “반값 등록금이 정쟁의 한복판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여야가 등록금을 놓고 주도권 싸움이나 벌이고 있을 때는 넘어섰다.”면서 “더 크게 갈등을 키우기 전에 논점을 모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는 것도 한나라당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교과위 위원들은 지난 주말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방문하려 했으나 “‘등록금 반값’을 확정지어 오라.”는 요구에 막혀 계획을 접었다. 반값 등록금 논의에 불을 지핀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도 딱지를 맞았다. 시위에 참여 중인 학생들과의 면담을 추진하려다 “‘등록금 반값’을 약속하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는 답을 들었다. 한나라당은 정부와도 한바탕 줄다리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정부가 협조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쯤 되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할 교육과학기술부가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의 한 인사는 “개인별 소득분위를 계산하고 시뮬레이션 작업이라도 시작하면서 정부 내부에서 협의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게 이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면서 앞으로 당·정 논의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소득분위 및 학점 기준 원칙은 폐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 대학생의 75%가 B학점 이상을 받고 있고 학자금 융자도 이런 기준에서 이뤄지고 있어, 등록금이 ‘무조건 반값’이 아닌 한 일정한 ‘기준’은 필요하다는 논리에서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돈으로 인해 왜곡된 인간관계의 모습

    돈으로 인해 왜곡된 인간관계의 모습

    9일 오후 11시 5분에 방영되는 MBC 50주년 특별기획 다큐 ‘타임’ 제2편 ‘돈’은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스카우트’, ‘광식이 동생 광태’, ‘YMCA 야구단’의 김현석 감독이 지상파 방송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진짜 같은 허구)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돈’은 자신의 전 재산을 건물 옥상에서 뿌리려 하는 가상의 인물 장세춘(66)씨의 사연을 추적하면서, 돈으로 인해 왜곡된 인간관계의 모습, 더 나아가 돈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려 본다. 제작진은 장씨가 자신의 전 재산을 건물 옥상에서 뿌리려 한다는 제보를 받고 그를 찾아간다. 제보자는 다름 아닌 장씨의 큰아들. 방송에 알려 아버지의 기행을 막아 보겠다는 심산이다. 굳게 잠근 방 안에서 발견한 여러 개의 사과 상자, 그 안에는 수십억원어치의 만원권 돈다발이 들어 있다. 장씨는 그 돈을 거리에 뿌리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우여곡절 끝에 전 재산이 아닌 2억원을 서울 여의도 한복판 건물 옥상에서 뿌리겠다고 최종 결정한 장씨. 길거리에 뿌려진 돈을 줍고 나서 돌려준 사람들에게 주운 돈의 10배를 보상해 주겠다고 자식들에게 공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의 양심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장씨가 이러한 시험을 강행하게 된 이유는 아내의 비참한 죽음 때문이다. 장씨의 아내는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 가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가방에서 빠져나와 흩어진 돈을 줍느라 다친 그녀를 외면했다. 이 사건을 잊을 수 없다는 장씨. 그래서 돈을 뿌려 사람들이 얼마나 돌려주는지, 사람들의 양심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단다. 김 감독이 만든 페이크 다큐의 결론은 “돈은 비료와 같아서 뿌리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장씨의 사연 중간마다 돈을 둘러싼 금융권과 정치권의 문제점이 슬쩍슬쩍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돈이 가장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 가운데 하나인 여의도 금융가 한복판에서 수억원을 뿌리는 행위는 그야말로 여러 개의 의미가 중첩된 상징적 행위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300인 전사(戰士) /박홍기 논설위원

    조지 레이코프 미국 UC 버클리대 교수는 저서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보수와 진보의 가치 분석에 가정을 끌어들였다. 이념이 아닌 도덕관과 가정관의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가를 가정에 비유해 정부는 부모로, 국민은 자녀로 봤다. 그러면서 보수는 ‘엄한 아버지’에, 진보는 ‘자애로운 부모’ 모델에 대비시켰다. 엄한 아버지 모델에서는 ‘험한 세상에서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제와 극기를 통해 도덕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악에 굴복하거나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논리를 폈다. 때문에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비판의 대상이다. 사람들을 공공의 도움에 의존하는, 도덕적으로 나약하고 절제와 의지력이 부족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자애로운 부모 모델에서는 ‘세상이란 최대한 보살핌을 받고 남을 보살펴야 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도 보수 쪽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방종한 이들이 아니라 사회적 이유나 건강 문제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이들로 규정했다. 결국 정부는 자애로운 부모처럼 사회적 약자를 공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당위론이다. 복지 논쟁이 뜨겁다. 등록금 반값엔 여야가 따로 없다. 재원 확보 방식이 다를 뿐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복지 경쟁도 본격화된 지 오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 김문수 경기지사는 맞춤형 무한복지,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형 그물망 복지를 내세웠다. 민주당은 ‘3+1’(무상 급식·보육·의료+등록금 반값)을 내걸었다. 보편적이든 선택적이든 복지는 시대의 흐름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굳건히 협곡을 지켜야 한다.”며 정치권을 겨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또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도록 가시밭길을 떳떳하게 선택하자.”고도 했다.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의 왕으로 BC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대군이 쳐들어오자 300명의 전사와 함께 테레모필레 협곡에서 끝까지 맞서다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전사 300명의 용맹과 위대함은 2007년 할리우드 영화 ‘300’으로 재현됐다. 박 장관은 ‘자애로운 부모’보다 ‘엄한 아버지’ 모델을 선택했다. 복지 포퓰리즘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게 새 경제사령탑의 다짐이다. 하지만 내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어느 모델을 선택할지 자못 궁금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정치이슈 Q&A] 6일 출범 선진통일연합… 가능성과 한계

    [정치이슈 Q&A] 6일 출범 선진통일연합… 가능성과 한계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도하는 ‘선진통일연합’(선통련)이 6일 출범한다. 국내 300개 지부, 해외 30개 지부를 목표로 발기인만 1만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통련은 ‘선진’과 ‘통일’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떠오르는 전국적인 조직이어서 한나라당 등 정치 지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선통련의 성격과 활동 방향을 둘러싼 정치권 안팎에서의 논란을 Q&A로 정리한다. Q 정치단체인가, 시민운동 단체인가. A 시민운동을 표방한 정치단체 선통련은 스스로를 ‘선진과 통일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운동 단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선통련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선통련이 필요할 경우 정치조직으로 변환할 수 있으며, 내년 총선에서 후보를 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일부 의원은 선통련이 한나라당, 자유선진당과 통합할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는다. 선통련 자체적으로도 국민운동으로 확산된 요구를 정치현실에 담아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 참여 자체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고 있다. 박세일 이사장과 선통련 관계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선통련은 이미 정치적인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Q 뉴라이트 운동과 다른점은. A 뉴라이트보다 대중적인 조직과 운동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반감, 자기 혁신이라는 출발점은 같다. 박세일 이사장이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뉴라이트 운동이 소수 전문가 그룹별로 차별화 전략을 통해 전개됐다면, 선통련은 범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개혁을 모색한다. 뉴라이트보다 외연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A 정치이슈 선점과 전국 조직화 정치 이슈화와 조직 확대를 병행해 갈 계획이다. 기존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대선의 최대 이슈로 복지를 꼽고 있지만, 선통련은 더 큰 가치로 선진과 통일이라는 화두를 내걸었다. 새로운 정치이슈 선점과 함께 차별화를 통한 중도진영 껴안기라는 측면도 포함돼 있다. 앞으로 정치제도 개편, 정치지도자 교육·양성 운동도 벌일 계획이다. Q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가. A 십시일반? 선통련은 국민운동에 맞게 자력갱생 원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발기인 대회는 박 이사장의 개인 재산 출연과 발기인들의 모금으로 치렀다. 발기인에 참여한 1만여명의 회원들이 형편 껏 회비를 낸 자금으로 운영해 간다는 방침이다. 회원별로 월 1000원, 5000원, 1만원 단위로 회비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지역별 조직들도 지역 내에서 모금된 회비를 가지고 독립채산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방대한 국내외 조직을 운영하는 데 회비 납부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선통련의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이 정치권 일부에서 계속 나오며, 이 부분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선통련이 안착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될 수 있다. Q 한나라당과의 관계는. A 관계없다 vs 예비군 or 보완재 박 이사장은 올해 초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과 통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선통련을 한나라당의 대체재 또는 보수연합을 위한 매개체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 일각에선 선통련이 전국조직으로서 본궤도에 오를 경우 독자 정당화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선통련 핵심 관계자는 이런 정치권의 시각이 하나의 ‘바람’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Q 친박계가 바라보는 선통련은. A 친이계에 가까운 조직? 친박계는 선통련이 기본적으로 내년 대선을 겨냥한 친이계 성향의 조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선통련을 이끄는 박세일 이사장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부상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선통력의 파급력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이미 ‘박근혜 대세론’을 꺾기에는 시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대권 경쟁 과정에서 의외의 변수가 될 가능성은 있기 때문에 경계의 끈을 늦추지는 않는 분위기다. Q 친이계가 바라보는 선통련은. A 마지막 변수 박근혜 전 대표 및 친박계의 독주를 달가워하지 않는 친이계 측에서는 선통련이 ‘박근혜 대세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마지막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 친이계 측도 이미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박근혜 전 대표가 내년에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선통련이 규모와 참가자 면면으로 볼 때 박 전 대표의 전국 조직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범여권 측 조직이기 때문에 친이계의 새로운 후보가 등장하는 등 변수가 생길 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Q 박세일 이사장은 정치적 야망이 있나? A 본인은 ‘없다’… 외부선 ‘있는 것 같다’ 박 이사장은 선통련의 활동이 통일을 위한 순수한 국민 운동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통일 자체가 한국에서는 ‘큰 정치’를 상징한다. 따라서 박 이사장의 개인적인 뜻과는 무관하게 이미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오게 된 셈이다. 선통련 관계자들은 박 이사장이 보수진영의 ‘이론가’에서 ‘활동가’로 변모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

    나의 정치는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출발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 세 번째 해를 넘겼다.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이나 정치의 한복판에 있는 지금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짜 약자 편에 서 있는지,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내 고향 경기도 포천은 마른 바람이 자주 불었다. 미군부대가 철수한 자리마다 곧바로 개발이 시작됐지만, 하나둘 늘어가는 빈 집을 보며 스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터전을 잃고 가슴 먹먹했을, 약자에 대한 내 유년의 연민일 것이다. 대학에서 야학을 했다. 두려웠던 ‘1980년 광주’를 안고 졸업한 뒤 구로 봉제공장에 취직했지만 옴을 얻어 석달 만에 그만뒀다. 한 선배가 “넌 귀부인이 되겠다.”고 했다. 비수처럼 꽂혔다. 그 칼을 마음에서 거둬내는 데 십년이 걸렸다. 무슨 일을 해도 목숨 걸고 하는 습관은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광주에 대한 죄책감은 나를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으로 이끌었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임신한 몸을 이끌고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암흑 같던 시절, 우리는 버티고 또 견뎌 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이 역시 약자에 대한 내 청춘의 연민이었다. 1995년 김근태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의 권유로 지방선거대책위 부대변인을 맡으며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꼬박 3년 반을 한 뒤 청와대 첫 여성 대변인이 됐다. 8년 반을 대변인·부대변인으로 지냈다. 여성 1호,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힘든 자리였다. 언젠가 이 자리에 올 후배들을 생각하며 사력을 다했다. 그런 나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겉은 부드러운 버드나무 같지만 속에는 철심이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도 이 ‘철심론’은 든든한 울타리다. 청와대와 정부(환경부차관)를 거쳐 민주당 비례대표가 됐다. 억울해도 목소리를 못 내는, 조직돼 있지 않는 다수를 돕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무위 활동을 하면서 이미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이들의 편에 선 정부와 많이 다퉜다.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 카드수수료 인하, 채권추심법 개정 등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찾는 데 노력했다. 나를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 권력의지가 없는 정치인이라고들 한다. 사실 ‘내 정치’를 꿈꾸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에 들어왔다. 무엇이 되겠다는 것보다 얼마나 쓸모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가 내 정치의 시작과 끝이라고 여겼다. 그러고 보면 정치는 노력이 아니라 숙명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 “여기 ‘국민’에선 저는 빼 주세요.” 15년 전 한 기자가 내게 한 말이다. 무심코 ‘국민’을 넣은 나의 논평을 들고 와서 말이다. 함부로 국민을 논하지 말라는 점잖은 충고에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땀 흘려 일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스무살 나의 바람은 쉰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가던 길을 끝까지 가 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야 새 길도 보이지 않겠는가. ■닮고 싶은 어머니… 어머니는 홀로 두 자매를 키웠습니다. 쉽지 않은 삶이었지만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지 말라.”며 질책할 만큼 당찬 분이었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 시절, 매일 새벽, 김대중 총재의 집이 있는 경기 일산을 향할 때면 곤히 잠든 초등학생 아들이 맘에 걸렸습니다. 말 없이 등을 두드려 주던 어머니. 아들 녀석이 올해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2002년 돌아가신 어머니는 지금도 세 살 터울 언니의 꿈에 나타나 “선숙이 밥 먹었냐.”라고 물으신답니다.
  • [씨줄날줄] SOFA/박홍기 논설위원

    2000년 2월 9일 미군이 독극물을 한강에 무단 방류한 이른바 ‘맥팔랜드 사건’이 터졌다. 서울 한복판인 용산 미8군기지의 영안실 부소장 앨버트 맥팔랜드가 한국인 군무원을 시켜 주검 방부처리용 독극물 포르말린 475㎖짜리 480병을 싱크대에 버린 사건이다. 독극물은 한강으로 흘러들어갔다. 맥팔랜드는 2003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주한미군의 환경오염에 따른 첫 처벌로 기록됐다. 이 사건은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소재가 됐다. 2002년 6월 13일 오전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로에서 ‘미선·효순 사건’이 발생했다. 미2사단 공병대 장갑차가 친구 생일에 가던 중2년생 심미선과 신효순양을 치어 숨지게 한 것이다. 가해자 미군 2명은 미군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군의 오만한 자세는 ‘촛불 집회’의 도화선이 됐다. 두 사건은 2000년대 들어 국민들에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에 대한 인식을 크게 일깨워준 대표적인 사례다. SOFA는 1966년 7월 9일 한국 외무장관과 미국 국무장관 간의 조인에 따라 이듬해 2월 9일 발효됐다. 6·25전쟁 당시 대전에서 체결한 ‘주한 미군의 관할권에 관한 한·미 협정’의 대체 협정이다. SOFA는 1991년과 2001년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미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한 독소조항이 다소 수정됐다. 이에 따라 올 4월엔 노부부를 마구 때리고 부인을 성폭행하려 한 미군을 인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정부지법이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계속 구금권’을 행사한 두번째 사례다. 미군이 주둔하는 80여개국과 미국 사이에 맺은 SOFA는 주둔군의 성격이나 당사국 간의 관계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요즘 SOFA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주한 미군이 1978년 캠프 캐럴 안에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독극물인 고엽제를 대량 매립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부터다. 1991년 이후 20년 동안 주한미군은 기름 유출, 불법매립 등 47건의 환경 범죄를 저지르고도 피해 복구 및 보상에 소극적이다.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만 오염 정화 책임이 있다는 SOFA 규정에 근거해서다. 때문에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이고 실효성있게 고쳐 주한미군 스스로 오염을 방지하고 제거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SOFA 개정 목소리는 반미 정서가 아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에서 출발하고 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탈레반 최고지도자 오마르 사망”

    “탈레반 최고지도자 오마르 사망”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52)가 지난 21일 파키스탄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아프가니스탄 톨로TV가 23일 보도했다. 같은 날 이란 관영통신 파르스도 익명을 요구한 아프간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오마르는 파키스탄 중서부 도시 퀘타에서 사망했으며, 현재 검시관들이 그의 시체를 부검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프간 탈레반 대변인은 오마르의 사망 보도를 즉각 전면 부인했다. 아프간 정보국 대변인은 오마르의 사망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5일째 자취를 감췄다고 밝혔다. 탈레반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 사망 이후 3주 만에 나돈 오마르 사망설이 사실이라면 국제 테러단체 두 곳 모두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아프간 톨로TV는 “오마르가 지난 21일 숨졌다.”면서 “그는 전직 파키스탄 정보국(ISI) 국장 하미드 굴에 의해 파키스탄 퀘타에서 북부 와지리스탄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탈레반 대변인은 오마르가 퀘타에서 ISI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지지 않아 사망 진위와 경위에 대한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또 아프간TV는 오마르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지만 이 역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아프간 탈레반은 “오마르는 아프간에 안전하게 살아 있다.”면서 “근거 없는 사망 보도를 부인한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이슬람 무장 세력인 ‘테흐리크 파키스탄 탈레반’(TTP)도 오마르 사망설을 부인했다. 아프간·파키스탄 탈레반의 영적 지도자인 오마르는 1996~2001년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수장으로 군림해 왔다. 9·11 테러 이전 수년간 빈라덴과 알카에다 대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혐의로 2001년 10월부터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지명수배범’ 명단에 올랐다. 그의 목에는 2500만 달러(약 274억원)의 포상금이 걸려 있다.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전투를 벌이던 도중 파편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했다. 하지만 2m에 이르는 장신에 단단한 체격을 갖추고 있으며, 수줍은 성격이라 낯선 사람들과는 말을 거의 섞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22일 밤~23일 새벽(현지시간) 파키스탄 탈레반이 카라치시 한복판에 있는 해군 항공기지를 급습, 최소 14명이 숨졌다고 파키스탄 관리들이 밝혔다. 에사눌라 에산 파키스탄 탈레반 대변인은 23일 AFP와의 통화에서 “카라치 공격은 우리들이 감행했다.”면서 추가 공격을 경고했다. 탈레반은 미국이 파키스탄에 제공한 대잠 초계기 ‘P3C 오리온’ 등 수백만 달러짜리 전투기 2대를 파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조국 교수 서재엔 무슨 책 꽂혀 있을까

    조국 교수 서재엔 무슨 책 꽂혀 있을까

    서재에서 음악을 잔잔히 들으며 보고 싶은 책을 읽는 모습은 누구나 갈망하는 풍경이 아닐까. 5월의 꽃향기가 스며들지 않더라도 한 잔의 커피를 곁들이면 글 읽는 냄새는 더욱 짙어지리라. 그런데 ‘서재’라는 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컴퓨터다, 스마트폰이다, 뭐다 하면서 책이 점점 더 소외돼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재라는 단어도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서재에 대한 낭만’을 우선 갈구했을 터인데 말이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지식인의 서재’(한정원 지음, 행성:B잎새 펴냄)라는 책은 다소 의외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은 머리말에서 “책이 소외되고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대가 품었던 가장 고결한 꿈, ‘나만의 서재’에 대한 은밀한 로망과 그 지적 욕망을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고 하면서 우리 시대 지식인의 서재를 찾아 나선 까닭을 밝히고 있다. 하여 이 책은 법학자 조국, 자연과학자 최재천, 솟대예술가 이안수, 섬진강 시인 김용택,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북디자이너 정병규, 사진작가 배병우, 블로거 정치인 김진애, 아트스토리텔러 이주헌,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건축가 승효상, 출판 문화인 김성룡, 영화감독 장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 등 15인의 서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서재 철학’을 심도 있게 다룬다. 예를 들어 김용택 시인의 경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같고, 밥 먹는 것과 같고 바람 같고 햇살 같다. 서재에 있으면 전 세계를, 우주를 돌다니는 것이다.”라고 시인답게 표현한다. 아울러 ‘생각의 나무’ ‘학고재’ 등 여러 권의 도서를 읽을 책으로 추천한다. 14년차 방송작가인 저자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은 서재에서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달고 1년여 동안 발품을 팔아 이번에 책으로 펴내게 됐다고 말한다. 인생의 고비마다 그들을 잡아 주고, 열정을 키워 주고, 시대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갖게 해준 ‘그들을 만든 그들의 책’ 목록과 인생의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와 ‘그들에게 권하는 책’도 보너스로 만나볼 수 있다. 1만 7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정운천 前 최고위원 도민에 석고대죄 “LH 전북 유치 공약 못지켜 죄송”

    정운천 前 최고위원 도민에 석고대죄 “LH 전북 유치 공약 못지켜 죄송”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 일괄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정운천 전 최고위원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사죄했다. 그는 도민에게 사죄하는 의미에서 19일 오전 흰색 한복을 입고 전주의 관문인 호남제일문 앞에 마련된 함거(죄수를 이송하기 위해 수레 위에 만든 감옥)에 스스로 들어갔다. 정 전 최고위원은 함거에 들어가기 전에 배포한 ‘미안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망국적인 지역장벽 극복을 위해 LH 전북 유치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공약을 지키지 못한 잘못과 지역장벽을 더 심화시킨 결과에 대해 도민들께 석고대죄를 청한다.”고 밝혔다. 또 “선거 직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무 장관과 대통령을 만나 30년 지역장벽을 풀고 지역균형발전과 서해안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LH가 반드시 전북으로 일괄 배치돼야 한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설득했다.”면서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해 마음이 참담하고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 없다.”며 용서를 구했다. 정 전 최고위원은 “전북도민이 LH 유치 실패로 큰 상처와 실의에 빠져 있다.”며 “정부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LH유치 실패에 따른 세수보전 조치와 새만금 특별회계 및 새만금개발청을 신설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민들이 용서해 줄 때까지 전북대 앞과 객사, 롯데백화점 전주점, 전북도청 앞 등 전주 시내에서 석고대죄를 계속할 예정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19일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개막식을 한국 속담으로 시작했다. 박 의장은 오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모인 세계 입법부 수장들에게 “여럿이 힘을 합치면 쉽게 풀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각국의 공조를 강조했다. ●국회 ‘중앙홀’에 모인 의회 수장들 앞서 오전 8시 30분 개막식을 앞두고 박 의장은 8시부터 국회의사당 내 정현문 앞에서 각국 의회 정상들을 직접 맞았다. 의회 정상들은 레드카펫을 따라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말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몸싸움을 벌였던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공식 회의장이 마련됐다. 푸른색으로 장식된 회의장에는 정중앙의 대형 테이블에 각국 의회 대표들의 자리가 놓여졌다. 원형 테이블 안쪽 바닥에는 태극을 형상화한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엠블럼이 새겨졌고, 회의는 9개국 언어로 동시통역됐다. 회의가 열리는 국회 본청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철통 보안·경비가 펼쳐졌다. 국회 외곽 및 경내 경비를 위해 회의 기간 4500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된다. 의장단의 근접 경호는 서울·부산·경기·울산 등 지방경찰청에서 파견한 외빈경호팀이 맡았다. 회의에 참석한 25개 의장단은 서울 하얏트·롯데·신라·프라자 등 4개의 지정호텔에 묵는다. 호텔에서 국회로 이동할 때는 현대차가 무상 제공한 ‘에쿠스 VS 380’을 이용했다. 캐나다 최초 한국계 상원의원인 연아 마틴 의원은 회의 도중 “한국 태생으로 캐나다 대표로 한국에 와 감회가 새롭다.”면서 “한국은 희망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마틴 의원은 “1972년 떠난 한국을 와보니 많이 달라졌다.”면서 “최근 캐나다 6·25 참전용사와도 한국을 방문했는데 세계가 함께하고 국민 의지가 모였을 때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목도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각국 입법 수장들의 ‘한류’ 체험 회의에 참석한 의장단은 국회 내 전통 한옥인 ‘사랑재’에서 공식 오찬을 가졌다. 전복 잡채와 인삼닭죽, 삼색전, 한우 갈비구이, 떡, 한과 등의 메뉴에 복분자주를 곁들여 올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천일염이 선물로 전달됐다. 사랑재에서는 한복을 입은 직원들이 음식을 날랐고 가야금 앙상블그룹의 가야금 연주가 고즈넉하게 울려퍼졌다. 박 의장은 “한옥에서 한식을 먹으며 한류에 듬뿍 젖어달라.”면서 “또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한류의 바람을 세계로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의장의 건배제의로 참석자들은 한국어로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부딪혔다. 저녁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국회의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환영 만찬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대한민국은 전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첫 나라가 됐다.”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한국형 개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한 의장들의 부인들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의장 부인들은 오전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에서 전통 자수 작품을 둘러보며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어 직접 수를 놓는 체험시간도 가졌다. 오후에는 한남동 리움박물관에서 고미술품을 감상한 뒤 국회의장공관으로 이동해 전통 가정 문화를 체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경제성장·민주화 선배 한국의 도움 절실”

    “경제성장·민주화 선배 한국의 도움 절실”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몰아낸 이집트 시민혁명이 22일로 100일을 맞는다. 그러나 이집트는 여전히 폭풍의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 이슬람 신도와 콥트 기독교인 간 유혈충돌로 최근 10여명이 숨지는 등 치안마저 불안하다. 이집트 시민혁명의 도화선으로, 타임이 정한 ‘2011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첫번째로 선정됐던 와엘 고님(31)은 걸음마 단계의 이집트 민주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18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30년 넘게 억압받아 온 이집트 국민에게 민주화 과정의 홀로서기 연습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며 상황을 낙관했다. 고님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모두 이룩한) 한국을 존경한다.”면서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통해 이집트 사회가 안정화될 수 있으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자국 내 빈곤과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 비정부기구(NGO) 설립을 추진 중인 고님에게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물었다. “문제는 역시 경제다.” 고님은 ‘경제난’을 독재정권이 물러난 이집트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지만 혁명 성공 이후에는 반대로 민주개혁 작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걸림돌이라고 걱정했다. 고님은 특히 “이집트 국민 중 관광업에 종사하는 가구 구성원이 100만명 이상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혁명 이후 직업을 잃거나 관광객 감소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집트는 반정부 시위가 처음 발생한 지난 1월 25일 이후 석 달 동안 관광수입이 22억 7000만 달러(약 2조 4740억원)나 감소, 관광대국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IMF)에 100억~120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님은 “아랍혁명의 이정표가 된 이집트 사회가 혁명 이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주려면 경제성장이 지속돼야 하고 이를 위해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집트에 혼란이 계속될 경우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독재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치안문제와 민주적 정부 운영방식 및 반부패제도 확립을 둘러싼 혼란도 이집트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고님은 또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의 피살 이후 아랍권역에 극단주의세력의 입김이 세질 것이라는 우려를 부정했다. 특히 ‘아랍권의 민중 봉기가 빈라덴이 이끈 성전의 일부였다.’는 알카에다의 주장에 대해 고님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의 시위는 평화혁명이었다. 지난 1월 이집트인들이 거리에 모여 처음 외친 구호 역시 ‘평화’였다.”면서 “무바라크 반대 시위가 이집트인 수백만명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건 철저히 평화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님은 ‘아랍의 봄’이 어느 지역까지 확산될지 묻자 “‘아랍의 봄’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현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국민으로부터) 공경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인 표현 안에는 ‘물러날 시기를 놓치면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이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는 “독재자들은 이집트와 튀니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봐야 한다. 이곳의 낡은 독재자들은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또 고님은 아랍권역의 젊은 세대가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의 불길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뜻을 가지고 있다.”며 민주화 선배 국가로서 더 나은 이집트를 위해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집트의 한국대사관이 한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이집트의 기업가 정신을 끌어올려 줬으면 좋겠다.”면서 “또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 한국 국민이 있다면 다음 관광지로 이집트는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단독]이집트 혁명영웅 “한국에 무한한 존경과 경의”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몰아낸 이집트 시민혁명이 22일로 100일을 맞는다. 그러나 이집트는 여전히 폭풍의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 이슬람 신도와 콥트 기독교인 간 유혈충돌로 최근 10여명이 숨지는 등 치안마저 불안하다.  이집트 시민혁명의 도화선으로, 타임이 정한 ‘2011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첫번째로 선정됐던 와엘 고님(31)은 걸음마 단계의 이집트 민주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18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30년 넘게 억압 받아 온 이집트 국민에게 민주화 과정의 홀로서기 연습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며 상황을 낙관했다. 그러면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모두 이룩한) 한국을 존경한다.”면서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통해 이집트 사회가 안정화될 수 있으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자국 내 빈곤과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 비정부기구(NGO) 설립을 추진 중인 고님에게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물었다.  “경제난이 혁명 이후 최대 걸림돌”  “문제는 역시 경제다.”  고님은 ‘경제난’을 독재정권이 물러난 이집트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지만 혁명 성공 이후에는 반대로 민주개혁 작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걸림돌이라고 걱정했다. 고님은 특히 “이집트 국민 중 관광업에 종사하는 가구 구성원이 100만명 이상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혁명 이후 직업을 잃거나 관광객 감소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집트는 반정부 시위가 처음 발생한 지난 1월 25일 이후 석 달 동안 관광수입이 22억 70000만 달러(약 2조 4740억원)나 감소, 관광대국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IMF)에 100억~120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님은 “아랍혁명의 이정표가 된 이집트 사회가 혁명 이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주려면 경제성장이 지속돼야 하고 이를 위해 한국과 서방국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집트 혼란이 계속될 경우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독재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치안문제와 민주적 정부 운영방식 및 반부패제도 확립을 둘러싼 혼란도 이집트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화시위로 과격세력 준동 없어한국 도움이 절실”  고님은 또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의 피살 이후 아랍권역에 극단주의세력의 입김이 세질 것이라는 우려를 부정했다. 특히 ‘아랍권의 민중 봉기가 빈라덴이 이끈 성전의 일부였다.’는 알카에다의 주장에 대해 고님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의 시위는 평화혁명이었다. 지난 1월 이집트인들이 거리에 모여 처음 외친 구호 역시 ‘평화’였다.”면서 “무바라크 반대 시위가 이집트인 수백만명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건 철저히 평화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님은 ‘아랍의 봄’이 어느 지역까지 확산될지 묻자 “‘아랍의 봄’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현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국민으로부터) 공경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인 표현 안에는 ‘물러날 시기를 놓치면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이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는 “독재자들은 이집트와 튀니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봐야 한다. 이곳의 낡은 독재자들은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또 고님은 아랍권역의 젊은 세대가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의 불길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뜻을 가지고 있다.”며 민주화 선배 국가로서 더 나은 이집트를 위해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집트의 한국대사관이 한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이집트의 기업가 정신을 끌어올려 줬으면 좋겠다.”면서 “또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 한국 국민이 있다면 다음 관광지로 이집트는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최소비용 1억… 이젠 ‘캐슬웨딩’까지

    최소비용 1억… 이젠 ‘캐슬웨딩’까지

    특급호텔에서 하우스웨딩, 이제 ‘캐슬웨딩’까지. 17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서울 강남 한복판에 중세 유럽의 성주처럼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섰다. 건설사 트라움하우스가 3년간 기획해 2000억원을 들여 경복아파트 사거리에 세운 ‘더 라움’. “공연, 전시, 파티 등 대한민국 상위 0.1%를 위한 사교공간”임을 내세우는 이 곳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는 예식이다. ●기본 메뉴에 캐비어·푸아그라 지상 4층, 연건평 1만여평의 건물은 13~14세기 프랑스 남부 유럽 고성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됐다. 완벽한 재현을 위해 외관에 쓰인 석재와 내부를 채운 가구·장식물 등은 프랑스 남부 부르고뉴 지방에서 직접 공수해 왔으며, 대리석은 이탈리아, 벽돌은 호주에서 들여왔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일찌감치 이 공간의 출현에 대해 알고 있던 커플이 지난달 30일 정식 개관 전에 첫 결혼식을 가졌다. 최소 비용만 1억원. 특급호텔 결혼식보다 2배 이상 비싼 만큼 국내외 최고 전문가들이 예식을 위해 총출동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 등 세계 3대 진미가 피로연 기본 메뉴로 제공되며, 바로크음악 전문 연주단이 웅장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책임진다. 라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꾸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6월 예약은 이미 마감됐다. 최근 2~3년 새 이처럼 특급호텔의 서비스를 넘어서는 초호화 웨딩홀이 속속 등장하면서 프리미엄 결혼시장에 불이 붙고 있다. 고급 웨딩홀의 출현은 결혼식 트렌드가 과거 ‘대규모·과시형’에서 ‘소규모·은밀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하객수 200여명… 소형·개인화 성자영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연회예약 실장은 “2000년대 이후 하객 수는 줄이고 개인의 취향에 맞춰 고급화를 추구하는 ‘미니멀&퍼스널’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하객 수는 과거 1000명에서 500~600명으로, 최근에는 200~400명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규모는 줄어들지만 음식부터 꽃, 식기, 장식품 등을 최고급으로 사용하는 추세로 비용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4개월간의 재단장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연 조선호텔도 웨딩 부문을 한층 고급스럽게 정비했다. 유명 건축가 아담 티아니, 컨설턴트 마샤 이와다테, 패션 디자이너 서정기 등이 동원됐다. 또 할리우드 스타 등 미국 상류층의 결혼식을 기획해 유명해진 한국계 웨딩 플래너 정 리씨의 손길도 빌렸다. 지난 16일 저녁 VIP고객 100명만을 초청해 처음으로 연 웨딩박람회에서 정 리씨는 직접 나와 자신이 제안한 결혼식과 피로연 컨셉트를 소개했다. 그녀가 제안한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결혼식을 치르려면 300명 기준으로 기본 3000만원이던 예식 비용은 4800만원으로 비싸졌다. 꽃장식도 800만원부터 시작한다. 신라호텔도 소규모·은밀형 결혼식의 선호도 증가에 맞춰 지난해 영빈관을 한층 고급스럽게 손본 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유명 디자이너 피터 리미디우스를 기용해 고급스럽게 개·보수한 이후 전에 비해 예식 고객이 2.5배 증가했다고 호텔 관계자는 밝혔다. 결혼식 이후 뒤풀이도 조용하게 진행되길 원하는 고객들의 요청으로 피로연 상품도 지난달 처음 출시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간디! 흔히 ‘인도 독립의 아버지’, ‘힌두의 성자’라고 불리는 ‘위인’. 그러나 청년 시절의 간디는 조혼이나 카스트 제도를 부끄럽게 여겼고, 육식을 금지하는 힌두교 전통을 낙후된 것이라 생각했던 식민지의 젊은 문명론자였다. 그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인도의 대개혁을 위해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당연한 일. 이 촌뜨기 식민지 유학생은 식민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영국 신사’의 꿈을 꾸면서 새 옷을 맞추고, 실크 모자와 야외복과 고급 넥타이를 사고, 그것도 모자라 댄스와 프랑스어와 웅변술과 바이올린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 빠진다. 물론 이런 부박한 충동은 금세 극복되었다. 그렇다고 ‘문명=개혁’에 대한 간디의 이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간디는 귀국 후 집안에서 자녀에게 체조 교육을 시키고, 음식을 개량하고 의복을 서구화했다. 그에게 영국은 문명과 이성의 대명사였고, 인도는 교화시키고 개혁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식민지 엘리트 청년은 스스로를 위대한 대영제국의 신민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샤 계급 출신으로 인도 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 ‘식료품상’이란 뜻의 ‘간디’란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변호사 자격을 따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개업하기가 어려웠다. 집안의 꿈이었던 정치 관료로 출세하기란 더 난감해 보였다. 간디는 스물넷에 ‘잘나가는 변호사’를 꿈꾸며 남아프리카로 떠난다. 안타깝게도 날선 바지에 영국식 양복을 입은 변호사도 그곳에선 ‘갈색 피부’에 불과했다. 1등석 차표를 지녔지만 “같이 못 타고 가겠다.”는 백인의 말 한마디에 강제로 끌려나와 낯선 기차역에 버려진다. 최초의 충격! 그랬다. 간디는 당시 남아프리카에 5만명가량 존재했던 이주노동자, ‘쿨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쿨리들의 구심점이 되어 버린 간디. 이제 스물여섯 살 청년 간디는 ‘쿨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결국 남아프리카의 나탈에서 인도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가, 혁명가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간디는 23년간 남아프리카에서 그리고 귀국 후 조국 인도에서 죽을 때까지 정치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에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대영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전국적인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해 왔던 것은 정치적 실험이 아니라 “정신적 실험”이며 ‘모크샤’(자기 구원)를 향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징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기억이 없다.”거나 도둑질을 했을 때 깊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속죄를 했다는 식의 자기 성찰은 진지하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모든 위인이나 성인의 특징이라고 말해버리면 간디는 그냥 ‘본투비(Born to be) 성인’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간디의 삶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매번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낯선 상황, 낯선 사건에 놓였고, 매번 그 현장에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영국에 협력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정치적 문제에서부터 육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까지 간디에게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 그는 책을 통해서 진리의 길을 발견했다. 그가 자발적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유학 시절에 읽었던 책들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시절 이후 그가 생산해야 하는 진리의 길은 매번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던 투쟁의 한복판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놀라울 정도의 윤리적 감수성으로 매번 창조적인 ‘진리 실험’을 한다. 소위 ‘비폭력 불복종’이라고 불리는 ‘사티아그라하’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사티아그라하’는 단순한 정치적 불복종, 지문찍기를 강요하는 영국 지배에 대한 정치적 저항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정신적 고결함을 파괴하며, 인간 관계의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폭력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그것은 영국을 향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이기도 했다. 나부터 한없이 고귀해지겠다는, 나부터 한없이 낮아지겠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맹세. 간디의 진리 실험이 더해질수록 그는 유명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삶은 점점 더 간결해졌다. 그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만큼만 입었으며(윈스턴 처칠은 그가 “반쯤 벌거벗은 몸으로 총독 궁전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보자 기절초풍하며 “경악스럽고 역겹다.”고 했다), 가장 비천한 불가촉천민이 하는 일, 청소나 똥 푸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간디의 아내는 때때로 절망하고 울부짖었으며,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났다. 맏아들은 마치 아버지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말썽을 피우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명하고 단호했다. 비록 때때로 좌절하고 비틀거렸지만 그는 단 한번도 ‘사티아그라하’, 모든 폭력과 지배에 대한 그 위대한 불복종을 멈춘 적이 없다. 간디의 물레! 그건 간디의 상징이고, 인도 독립의 상징이고, 나아가 모든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해서 진부하기조차 한 물레! 그러나 간디의 물레, 그것은 단순한 ‘국산품 애용’ 운동이 아니다. 흔히 자치로 번역되는 ‘스와라지’ 역시, 단순한 정치 체제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건 사람들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 인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형제, 자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정신적 힘을 의미했다. 도대체 인도가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 물론 동인도회사의 지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 때문인가. 그 이면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들어온 영국 상인만큼 단숨에 돈을 벌고자 했던 인도인의 욕망과 협력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인도인의 마음에 뿌리박힌 영국 문명에 대한 동경, 물질과 화폐에 대한 욕망. 독립과 해방은 영국 통치가 끝나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영국적 삶의 방식 전체, 근대 문명 전체가 종식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물레’는 도구가 아니라 비전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힘으로 노동하고, 그 노동의 힘으로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그 자립하는 정신들이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이상적인 꿈. 그걸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나 대량생산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수공업들이 리바이벌되는 작은 마을들의 연합. 간디가 꿈꾼 인도의 미래였다. 마을 스와라지에 모든 사람이 환호와 갈채를 보냈을까. 아니다. 타고르는 ‘실을 잣고 천을 짜는 것’이 과연 한 민족의 구루가 전하는 메시지로 적절한가에 대해 간디에게 물었고, 간디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고칼레조차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어리석은 짓이라 비웃었다. 간디는 대답했다. “나는 원시적 방법 자체를 위해 원시적 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시적 방법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는 것은 이 방법 말고는 할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마을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한 걸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네.” 절대적 빈곤 속에서 술과 아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존심과 고결함을 돌려주는 일. 상호 의존과 형제애를 일상에서 실감하는 일. 노동과 명상과 섬김이 함께하는 마을에서의 삶! 그건 어떤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간디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인도의 비전, 아니 인류의 비전이었다. 1947년 의회를 통과한 인도독립법령에 따라 8월 15일 영국의 인도 지배가 종식되었다. 어찌 보면 간디의 이상이 실현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립의 날, 그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독립은 온갖 적대와 폭력 속에서 힌두와 이슬람이 결국 결별을 하는 분단 인도가 탄생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평생 간디를 추종했고 간디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네루는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버렸다. 그는 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발전된 인도’를 열망했다. 간디의 머리에는 타고르의 시가 떠나지 않았다. “혼자 걸어가라!” 간디는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얼마 못가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투비 성인’으로 출발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영혼’으로 잠들었던 간디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간디의 출발점에 다시 서고 있는 게 아닐까. 혁명의 길과 구원의 길이 다른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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