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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나지 않은 ‘7m도로 분쟁’

    끝나지 않은 ‘7m도로 분쟁’

    지난 연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알려진 분당∼죽전 간 7m 접속도로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소득없이 길을 내준 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성남시와 분당 주민들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들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도로접속이 강행된 것은 지난해 11월18일. 당시 한국토지공사는 경찰병력 10개 중대 1200여명과 무려 900여명에 달하는 용역직원을 동원한 가운데 크레인과 굴삭기 등 중장비를 현장에 투입해 왕복 7차로 도로를 개통했다. 그러나 이 7개 차로의 도로는 사실상 왕복 3차로의 비좁은 도로로 전락했다. 시 경계를 사이에 두고 성남시가 새로 꾸민 도로형태가 희한한(?)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경계를 중심으로 용인쪽 도로는 조성 당시 7차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성남쪽 도로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경계 부분 삼거리 신호대기에서 분당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분당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넓은 화단식 중앙분리대와 곳곳에 자리잡은 횡단보도, 보행자 안전분리대, 스쿨존 경고판, 과속방지턱, 과속카메라 등이 위협적으로 버티고 있다. 서행표지판만 있는 용인쪽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폭 5m가량의 화단식 중앙분리대. 교통지옥을 뚫고온 죽전 주민들을 주눅들게 한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 한복판에 이처럼 넓은 화단이 필요한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눈치다. 이 화단은 무려 600m나 늘어서 차량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그나마 남은 5개 차로 가운데에도 도로 끝 1개 차로는 분당 무지개마을 아파트단지로 진입하는 우회전 전용도로로 만들어 직진차량이 이용할 수 없다.7차로 도로가 사실상 2∼3차로로 줄어버린 셈이 됐다. 이 때문에 아침마다 이 도로를 이용하는 용인주민들은 시 경계를 지나면서 심각한 병목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화단식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구간에는 과속감시카메라가 무려 4대가 설치됐다.2대씩 조를 이뤄 시시각각 차량을 감시하고 있다. 더욱이 20∼30m 간격으로 늘어선 과속방지턱은 지나치게 높고 넓어 과속을 하려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칫 조심하지 않으면 승용차 밑바닥이 긁힐 정도다. 이 방지턱과 어깨동무하듯 늘어선 횡단보도와 곳곳에 자리잡은 신호등도 연동되지 않아 차량들은 시속 30㎞를 낼 수 없는 지경이다. 도로 양편은 보행자 안전분리대가 완벽하게 설치돼 정차조차 할 수 없도록 했다. 더욱이 도로 끝부분에는 노상주차장까지 마련됐다. 게다가 과거 철거된 시 경계 부분 언덕에는 새롭게 에코 브리지(생태 육교)가 설치될 예정이다. 성남시와 주민들은 불곡산 마지막 자락의 녹지를 보존하고 동물과 곤충들의 이동을 위해 설치하려고 한다지만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용도가 불분명한지 내세우는 목적도 다양하다. 토지공사는 등산로, 성남시는 동물이동, 관할 동사무소는 차량통제억제용이라고 한다. 성남시는 8억여원의 예산을 잡아놓고 있다. 용인시 죽전동 주민 김모(33·중앙하이츠빌)씨는 “도로가 연결되면서 분당과 죽전의 경계가 없어졌는데 이제 와서 에코 브리지를 설치하는 것은 분당과 용인을 반드시 나누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경계 지점에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사용된 돈은 모두 20여억원으로 모두 죽전지구 개발사업자인 한국토지공사가 지급했고 설치는 성남시가 주축이 됐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성남시 분당지역 주민들이 용인에 비해 월등히 비싼 아파트가격을 인식해 용인과 경계가 맞닿는 것을 기피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0) 소자화를 막아라

    [일본을 다시본다] (10) 소자화를 막아라

    |도쿄 특별취재팀|올해 세 살이 된 신타로는 부모와 함께 ‘출퇴근’을 한다. 부모가 일을 하는 동안 직장에 마련된 보육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돌보는 보육교사만 2명이고, 함께 부모를 기다리는 친구도 있어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 않다. 선박유통회사인 ‘니혼유센(NYK)주식회사’에서는 3년 전부터 30여평 규모의 보육실을 회사 안에 만들어 직원들의 자녀를 돌보고 있다. 일본에서 자녀를 적게 낳는 ‘소자화’ 현상이 국가적인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보육서비스 지원의 제도화 등 정부 차원에서만 접근했던 소자화 대책에 최근에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도 나서고 있다. 인구 감소가 노동력 부족을 넘어 소비자 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소자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애쓰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아이는 회사에 맡기고 마음 편하게 일하세요” 니혼유센에서 보육실을 마련한 것은 2000년 사내 인터넷 사업 비즈니스 캠페인 공모에서 몇몇 직원들이 보육사와 부모를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사업을 제안, 수상한 것에서 비롯됐다. 도쿄역이 위치한 도심 한복판에 보육시설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은 사업주 등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2년만에 실용화됐다. 보육실은 15명 정원으로 생후 57일∼초등학교 취학 전인 직원 자녀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지만, 부모가 잔업 등으로 일이 늦게 끝나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이용료는 공립 보육원과 비슷한 수준이며, 정기적으로 등록하지 않고 사정에 따라 하루씩 이용하는 것도 가능해 지금까지 100회 이상의 이용실적을 냈다. 아동의 안전을 위해 방재센터, 경비실 등과 연결되는 카메라를 보육실 입구에 설치해 정해진 친권자가 왔을 때만 문을 열어준다. 향후 계약을 맺어 다른 회사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보육실 운영은 기혼여성뿐 아니라 미혼여성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직원 가시마 나호는 “니혼유센 여직원이 260명 정도 되는데, 꼭 아이가 없더라도 여성을 이만큼 소중하게 생각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회사에 더 강한 소속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니혼유센의 하마모토 요시코 공보과 매니저는 “소자화를 막기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비즈니스가 아니라 복지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하게 됐다.”면서 “현재 매달 정규등록하는 아동은 2명뿐이지만, 단 한 시간이라도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서비스의 질을 계속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로 여성인재 빼앗기면 회사 손해” 통신·전자기기 종합회사인 ‘NEC’에서는 보육 지원 문제를 철저히 기업 이윤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애써 키워놓은 여성 인재들을 보육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여직원들이 출산과 육아를 위해 잇따라 퇴직하자 인재보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게 됐다. NEC는 육아휴직제도가 법제화되기도 전인 1990년 이미 휴직제를 도입했으며, 현재 출산 전후는 물론 아이가 만 한살이 되는 해의 3월 말까지 육아휴가를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육아 단시간 근무제도’를 도입, 자녀가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는 하루 2시간까지 단축근무를 할 수 있게 했다. 2002년부터는 ‘패밀리 프렌들리 휴가제도’를 새로 만들어 1년에 5∼20일 수업참관이나 어머니회 모임, 소풍, 운동회 등 자녀의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패밀리 프렌들리 펀드’를 만들어 아이를 낳으면 1명당 55만엔을 지급하고, 부양하는 자녀 1명당 매달 5000엔씩 주고 있다. ●“주민 수가 힘!” 지자체도 앞장 시즈오카현에서는 2003년 정부에서 ‘소자녀화 사회대책 기본법’과 ‘차세대 육성지원대책 추진법’을 제정해 현·시·읍·촌과 기업주가 함께 소자녀화 대책을 추진한 뒤 2005∼2010년간 진행할 ‘시즈오카 차세대 플랜’을 책정했다. 차세대 플랜은 미혼화와 만혼화를 막기 위해 젊은층이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임신과 출산을 위한 안전한 의료환경을 확립하는 한편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지역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현은 2010년까지 부모와 자녀가 전문적인 육아상담을 받을 수 있는 지역 자녀양육센터를 현재의 133개에서 193개까지 늘릴 예정이며, 보육원도 259개에서 35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아동기뿐 아니라 청소년기의 교육까지 책임지겠다는 입장이다. 현은 사춘기 보건상담실 등을 이용, 청소년기의 성관계와 임신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상담과 검사가 보다 편리하고 정확하게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2010년 10대의 인공임신중절률을 지금의 1.06%에서 0.6%까지 낮추는 게 목표다. wisepen@seoul.co.kr ■ 후생성 ‘패밀리 프렌들리 기업’ 제도는 |특별취재팀| 일본 후생노동성이 집계한 2003년 출산율은 사상 최저치인 1.2905이었다. 출산율이 이같이 처음으로 1.3을 밑돌자 일본 열도는 ‘1·29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후생노동성은 지난달 2004년도 출산율은 이보다 더 떨어진 1.28 후반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잠정집계를 내놓았다. 가속화되는 소자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정부는 출산 장려를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본의 출산율은 1975년 1.91을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인구 현상유지가 가능한 2.07을 밑도는 저출산 경향이 이어져왔다.2004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는 112만 4000여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2006년의 1억 2774만명 이후에는 총 인구수도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2030년 추계인구는 1억 1758만명으로 2000년보다 934만 6000명이 줄어들 전망이다. 출산율 저하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은 2005∼2010년이 인구 증가의 마지막 시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1차 베이비붐 세대가 출산기에 다시 베이비붐을 일으켰듯 2차 베이비붐 시기인 1971∼74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주니어’ 세대가 30대에 접어든 지금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베이비붐 주니어’ 여성들을 위해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소자화대책 각료회의를 열어 출산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여성의 재도전 지원책검토회의’(가칭)를 설치하기로 했다.2006년도 예산에 구체적인 방안을 반영하는 것을 비롯, 연내에 ‘응원 플랜’(가칭)을 확정해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는 복안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장화경 교수는 “일본 정부는 제도 정비는 물론이고, 육아지원에 기업과 지자체를 끌어들여 지원 주체를 다양화함으로써 예산절감과 함께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wisepen@seoul.co.kr ■ 심각한 ‘少子化’ 실태 |특별취재팀|일본 후생노동성은 매년 10월을 ‘일과 가정을 생각하는 달’로 정하고, 일과 육아 및 간병이 양립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도입,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을 ‘패밀리 프렌들리 기업’으로 선정해 표창하고 있다. 등급에 따라 후생노동대신우량상, 후생노동대신노력상, 도도부현 노동국장상으로 나눠 수상하고 있으며, 처음 제도를 도입한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227개 기업이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 후생노동대신우량상은 생활용품 제조회사인 ‘카오 컴퍼니’가 수상했다. 인사부 내에 아예 보육지원을 전담하는 ‘EPS(Equal Partnership) 추진실’을 따로 만들어 상근 인력을 두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5845명(남성 4927명, 여성 918명)의 사원 가운데 135명이 육아휴직제도를 활용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위해 상사와 면담할 때는 은근한 압력이 행사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상 EPS 담당자가 입회한다. 카오 컴퍼니의 사카쿠라 다카히토 홍보과장은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원의 92%가 복직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내 3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영업장에서는 어느 정도 보육지원제도가 정착돼 있는 상태이다. 규모가 영세해 육아휴직 등을 활성화하기 힘든 회사에는 후생노동성이 휴직인력을 대체하는 보조인력 고용비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다. 후생노동성 고용균등 아동가정국의 이노우치 미야비 취업원조계장은 “눈앞의 이익보다 사회발전에 공헌한다는 의미를 강조해 기업들에 꾸준히 패밀리 프렌들리 기업 표창제도를 홍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wisepen@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美 아마골프 ‘한국 샛별’ 떴다

    한국의 ‘여고생 유망주’가 미국 한복판에서 여자아마추어골프대회 패권을 거머쥐었다. 한영외고 3학년에 재학중인 이은정(17)이 17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스웝메모리얼골프장(파71·6047야드)에서 36홀 매치플레이로 펼쳐진 US여자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 결승에서 티파니 추디(미국)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지난 1988∼89년 펄 신,2003년 미셸 위 등 미국 국적의 한국계가 몇 차례 정상에 선 적은 있지만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포천의 동남중학교 1학년 때 골프채를 잡은 이은정은 지난 4월 제주도지사컵 주니어대회 8위가 최고 성적인 무명. 그러나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목표로 국내 대회보다 미국 전지훈련에 충실했던 이은정은 앞서 캘리포니아 지역 예선에서 합계 5언더파의 1위로 본선에 올라 돌풍을 예고했다.18일 밤(한국시간)부터 열리는 US여자주니어챔피언십과 내달 1일 개막하는 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에 출전한 뒤 귀국할 예정. 전반 18홀에서 4홀차로 크게 뒤지고 후반 초까지 1홀을 더 잃은 이은정은 후반 6번부터 12번홀에서만 4홀을 따내 1홀차로 따라붙는 투혼을 발휘한 뒤 마지막홀 극적인 버디를 성공시켜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갔고, 첫홀에서 파세이브에 성공, 파퍼트를 놓친 추디를 따돌리고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한편 오하이오주 레바논의 세이커런골프장(파70)에서 36홀 매치플레이로 치러진 US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 결승에선 8강전에서 미셸 위를 따돌린 클레이 오그덴(미국)이 마틴 우레타를 1홀차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오그덴은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내년 마스터스골프대회 출전 티켓을 받아 기쁨을 더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김후년의 클럽하우스] 궂은 날의 해피라운딩

    장마로 궂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린에 공이 떠다닐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면 당연히 라운드를 포기하겠지만 비옷이나 우산으로 가릴 수 있을 정도라면 대부분 강행할 것이다. 바람난 사람이 복상사를 무서워할 리 없듯이 라운드 도중 풀 위에서 죽는 초상사(?)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골퍼들인 만큼 장마철 한복판에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골프장 문턱을 넘나드는 마니아들이 적잖다. 낙뢰에 의한 불상사, 주행 사고의 위험이 높은 카트 도로, 잦은 안개, 물기를 잔뜩 머금은 잔디….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필드 나들이를 강행하는 골퍼들의 심리를 일반인에게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장마철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는 폭우는 물론 짙은 안개도 골퍼들의 적이다.20∼30야드 앞에 있는 레이디스 티박스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도우미에게 공 보낼 곳을 묻고 클럽을 휘두르는 자신의 모습에 묘한 웃음이 입가에 머무는 것을 금할 수 없다.“프로로 나설 것도 아니고 골프에 환장한 것도 아닌데 내가 이 무슨 참….” 그러나 빠져나올 수 없는 골프의 매력을 만끽하는 것은 바로 다음 순간. 페어웨이 한복판이나 그린 중앙에 놓인 공을 발견했을 때다. 평소 좋은 날씨에도 좌우로 휘어지면서 넓은 페어웨이를 외면하던 공이 짙은 안개 속에도 똑바로 날아간 것이 신기하다. 물론 코스 곳곳을 꿰뚫고 있는 도우미의 조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짙은 안개는 공을 보내야 할 방향이나 거리를 알 수 없게 하지만 도우미의 조언대로 스윙하면 공은 보내고자 하는 방향으로 날아간다. 짙은 안개 속에선 벙커나 해저드의 부담도 없기 때문이다. 또 날이 궂은 만큼 공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고 자신이 알고 있는 스윙에 대한 최대한의 지식을 충동원해 평소보다 신중하게 스윙하게 된다. 헤드업도 없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니 처음부터 머리를 쳐들 필요조차 없다. 짙은 안개 속의 라운딩은 늦은 티오프 때문에 한두 홀을 남겨 놓고 어둠 속으로 공을 날릴 때와 흡사한 상황이다. 한 사람은 티박스 뒤에 쪼그리고 앉아 낙하 지점을 확인하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걷다 보면 골프화에 차이는 공에 키스라도 해주고 싶은, 그런 묘미라고나 할까. 짙은 안개나 일몰 이후 등 비정상적인 날의 라운딩은 불편하지만 집중력은 높아진다. 궂은 날의 라운드.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즐길 일이다. 스윙 도중 집중력이 높아지는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 디스커버리호 14일 발사

    지난 2003년 2월 컬럼비아호의 공중폭발 참사로 2년 5개월여 중단됐던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우주왕복선 운항이 13일(현지시간) 디스커버리호의 발사로 재개된다. BBC와 AP통신 등은 13일 오후 3시51분(한국시간 14일 오전 4시51분)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기지를 떠나게 될 디스커버리호의 기내 발전기에 12일 연료가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디스커버리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될 경우 45시간 만에 360여㎞ 상공의 지구 궤도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 유럽 우주실험실인 ‘콜럼버스’의 조립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2008년 수명을 다하게 될 허블 우주망원경의 성능을 점검하게 된다. NASA 과학자 등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구조조정과 예산 절감으로 한계에 맞닥뜨리고 있는 우주왕복선 탐사의 미래와 운명이 디스커버리호 발사에 달려 있다고 판단, 비상한 관심 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NASA는 지난해 디스커버리호를 발사할 계획이었으나 컬럼비아호 참사 원인을 분석해온 자문위원회의 권고사항과 29가지의 안전 지침을 충족시키느라 일정이 지연됐다. 자문위의 권고에 따라 디스커버리호는 단열재가 떨어져 나가기 쉬운 부분에 추가로 히터를 장착해 이륙시 연료탱크에 얼음이 어는 것을 막는 등 문제를 해결했다. 컬럼비아호 참사 이후 개정된 안전 지침에 따라 발사는 낮시간대로 제한하고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한 항공기들과 지상 카메라 등을 대기시켜 발사 상황을 3개 각도에서 정밀 촬영하도록 했다. 지난 1984년 처음 우주여행에 나섰던 디스커버리호는 31번째인 이번 비행에 여성 선장 아일린 콜린스 등 미국인 5명 외에 일본과 호주인 각 1명 등 모두 7명이 탑승한다.특히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일본인 우주인 노구치 소이치(40)와 그의 세차례 우주 유영에 각별한 관심기대를 보내고 있다. 요코하마 출신으로 도쿄대 대학원 수료 후 중공업 회사에서 기술자로 근무하다 어릴 적 꿈이었던 우주비행사 시험에 도전,1996년 마침내 꿈을 이룬 노구치는 ISS 수리를 위한 우주 유영에 나서게 된다. 한편 대서양 한복판에서 형성 중인 열대성 저기압 5호가 주말쯤 허리케인 ‘에밀리’로 변신할 가능성이 예보되고 있어 디스커버리호의 발사에 악영향을 미칠지 우려된다.임병선기자 외신 bsnim@seoul.co.kr
  • 10년 뒤 서울 - 걸작 서울, 추악한 서울

    10년 뒤 서울 - 걸작 서울, 추악한 서울

      <시장 김현옥(金玄玉)씨가 말하는, 걸작 서울> 10년 후의 서울은 인구 638만 3천명(서울시발행·4백만 우리의 기운)을 수용하는 거대한 국제도시가 되리란다. 다음은「돌격시장」김현옥씨가 말하는 10년 후의「걸작(傑作)서울」(본인의 표현) 청사진-. 당신이 만약 오류동에 살고 있는 중앙청의 평범한 5급 공무원이라 하자. 아침 7시 30분, 맛있고 영양가 있는 분식(粉食)의 아침을 마친 후 당신은「버스」정류장 아닌 전철(電鐵)정류장으로 향한다. 곧이어 닿은 전철「방사(放射)1호」를 타고 한 30분「선데이·서울」이나 뒤적거리다 보면 어느덧 세종로. 10여 년 전처럼「버스」차장에게 짐짝 밀리듯 하는 일 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중앙청에 출근할 수 있다. 갑자기 시내 출장을 나갈 일이 있다 하자. 차를 타자마자 시속 40「마일」의 경쾌한「스피드」감이 피로한 머리를 식혀준다. 곳곳에 고가고속(高架高速)도로가 설치되어 있고 옛날이면 2, 3분씩「고스톱」에 걸려 멈춰 있어야 했던 번화가 거리는 모두 입체교차로. 그래서「논스톱」으로 목적지에 갔다가「논스톱」으로 돌아 올 수 있다. 그러니까 옛날처럼 시내 출장을 핑계로 두어 시간 영화구경을 즐길 여유(?)가 없다. 저녁 5시. 퇴근이다. 아침출근 때 아내가 부탁한「쇼핑」건을 해결하러 시청 앞 지하상가로 간다. 지하 1층에서 의류를, 지하 2층에서 식품을 사들고 자동판매기에서 신간주간지 서너 권을 첨가한 뒤 곧장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전철정류소. 정각 7시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목욕물이 더웠단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컬러·텔레비전」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 아이녀석들을 식당으로 몰고 와 함께 닭고기 저녁요리를 즐긴다. 화려한 청사진의 세목(細目) 10년 후 서울의 변모 중 가장 뚜렷한 건 한강변. 여의도가 국회의사당의 이전으로 완전히 제2의 도심화하는 것은 물론, 강변엔 즐비한「아파트」가 늘어선다. 한강 남안(南岸)엔 강변 1, 2로에 이어 5, 7, 9로가 개통되어 마곡동(김포입구)부터 잠실동을 거쳐 광진교까지, 또한 북안은 압구정(행주산성입구)부터「워커힐」까지 유료고속도로가 개통되며 한강에는 6개의 다리가 놓이고 제1한강교와 보광동~잠원동 간에 2개의 하저(河底)「터널」이 뚫려 완전히 육속화(陸續化). 한편 용두동에서 3·1로를 거쳐 신촌「로터리」까지 고가고속도로가 놓여 붐비는 도심의 교통량을 풀어주고 있으며 산악「스카이웨이」와 고가도로, 강변「하이웨이」로 이어진 환상도로가 완성되어 서울의 외곽을 원형으로 이어준다. 한편 번화가 네거리엔 곳곳에 입체교차로가 가설되어「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고 연희동~세검정~정릉~고대앞~용두동~한양대~마포~망원동~연희동을 잇는 순환 전철과 오류동~화곡동~김포를 잇는 방사1호, 시흥~안산~과천~말죽거리를 잇는 방사2호, 구의동~망우동~창동~도봉동을 잇는 방사3호, 박석고개~삼송리~화전리를 잇는 방사4호가 개통되어 도심과 교외의 교통시간을 30분 이내로 단축시켜 준다. 또 시장도 현대화 되어 15층의 낙원시장과 13층의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모두 14개의 시장이 고층건물로 바뀌어 주부들은 질퍽한 쓰레기를 밟지 않고도 저녁 찬거리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며, 성동, 용산, 여의도, 영등포, 서교동, 서빙고 등 6개소에「가스」생산공장이 생겨 연료난을 풀어주게 된다. 한편 서울운동장~장충체육관을 연결하는「스포츠·센터」, 구마다 한 개씩 도서관, 112개소에 대소 공원이 마련되며 어린이 왕국이 건설되고, 벽제엔 24구(具)를 한꺼번에 화장할 수 있는 새 장제장(葬薺場)이 마련된다. 한편 한강 이남엔 인구 1백만을 수용할 수 있는 무궁화형의 제2서울이 건설되어 단핵적(單核的) 도심 기능을 분산하게 된다. 불량건물이 판을 치고 있는 현재의 낙산(駱山), 응봉(應奉), 정릉(貞陵), 영천(靈泉), 창전(倉前), 이태원, 신대방동 지구엔 69년 7월까지 모두 1백동의 서민「아파트」가 들어서 수도서울을 면목없게 하는 판잣집 촌은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이들「아파트」는 입주자와 합작해 세워지는 것. <건축가 김중업(金重業)씨가 말하는, 추악한 서울> 『즉흥과 환상, 창구분식적(窓口粉飾的)인 시위효과만을 노린 현재의 서울시 건설상으로 미루어 이대로 나간다면 10년 후의 서울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수도(羞都)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라고 도시계획 전문가 김중업씨는 흥분한다. 『가령 당신이 고가도로 위를 달린다고 하자. 차들이 점점 밀려들어 고가도로의 수용능력을 넘쳐버리거나 그 중 한 차가 중간에서 고장이 난다 하자. 고가도로에선 차가 빠져나갈 기회란 거의 없다. 만약 지상에서라면 골목으로 우회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가능하지만 고가도로에선 이런 편법이 통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선 하루종일 고가도로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라고 김중업씨는 도심 한복판을 뚫는 고가도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고가도로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번화가 한복판에 세운다는 건 큰 일이다. 수많은 차들이 분출하는 배기「가스」와 소음, 그리고 시민의 통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고속도로로 고가도로 주변은 자연히 땅값도 떨어져, 결국 고가도로 연변은 완전히「슬럼」가(빈민가)로 변해버린다. 가장 요긴히 써야 할 도심을「슬럼」가화 하려는 것이 김시장의 구상인가?』 결국 차의 움직임에 밀려 시민은 점점 도심주변에서 소외되어 버린다는 것. 『고층건물이 빽빽이 들어서는 건, 지면의 확장이란 면에서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도시재개발에 있어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녹지대의 형성, 태양광선의 조사(照射)를 무시한 고층화란 지옥이다. 도시의「스모그」를 제거해줄 녹지대가 무시되고, 멸균과 인체의 성장에 크게 영향을 주는 태양광선이 무질서하게 들어선 고층건물로 가려져버릴 때 시민들은 살균 안된 쓰레기가 잔뜩 쌓인 시가를 햇빛을 못 받아 창백한 얼굴로 걸어야 할 것이며 그나마 소정의 주차시설들을 갖추지 않은 때문에 좁은 거리에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보행은 골목만 골라 걸어야 할 판. 또 이미 완공된 낙원상가「아파트」의 경우 차의 통행을 위한 지면의 구조가 꺾여있어「콘크리트」기둥과 차가 충돌할 위험은 무척 크다』고. 한편 김씨는 전철화 계획엔 찬성하면서도『서울의 지반이 딱딱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이걸 파내고 지하로 전철을 넣는다는 건 시민들의 세금을 무책임하게 쓰는 것밖에 안 된다.「파리」의 도시계획자인「요나·프라이드맨」의 말처럼 서울 같은 저층도시 위에 또 하나의 도시를 이루는 게 가장 좋다. 그러니까 일광(日光)의 차단을 막는 범위 내에서 지하전철보단 오히려 고가전철이 싸게 먹히고 훨씬 유용하다. 이렇게 되면 지진과 태풍의 위험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지상에 널려있는 전깃줄, 전화줄, 상수도 등을 이 고가(高架)도시에 집어 넣을 수 있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개공사 때 미리 전화줄과 전깃줄을 지하로 넣을 줄 모르는 행정력으론 힘든 이야기』라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한강과 여의도의 개발은 환영할만한 일이나 그 근본 목표가 틀렸다. 강 양쪽에 고속도로가 나면 시민은 어떻게 한강에 접근할 수 있는가? 여의도를 제2의 도심화한다는 것도 착오. 오히려 한강과 여의도는 7백만(78년의 경우) 서울시민을 위한「레크리에이션·센터」로 하는 것이 시민을 위해 훨씬 좋을 것이다』라고 김씨는 밝히면서 현 서울시 도시계획의 즉흥성과 환상성은 무궁화형으로 만들겠다는 제2서울건설계획이 증명해주고 있다고. 일부러 무궁화형을 만듦으로써 도시 외곽선을 꾸불텅꾸불텅한 곡선화해 버린 건『거의 치기(稚氣)에 가깝다』는 것. 이렇게 끝없이 이어져 나가는 김중업씨의 결론은 보다 세계적이고 보다 훌륭한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선「돌격」도 좋지만 우선 심사숙고,「플래이닝」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십분 참작하고 또 실행에 앞서 주먹구구식 아닌 정확한「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렇게 치밀한 구상이 세워질 때 김시장의「돌격」은 환영할만한 것이라는 것. [ 선데이서울 68년 11/24 제1권 제10호 ]
  • 남대문·중부署 ‘명동 大戰’

    남대문·중부署 ‘명동 大戰’

    서울 중구 명동의 경찰 관할권을 놓고 인접 경찰서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팽팽하다.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두고 서울경찰청이 주민편의를 높이기 위해 ‘1구(區) 1경찰서’제도를 준비 중인 가운데 명동이 조정대상에 올랐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중구는 그동안 성동·남대문·중부 3개 경찰서가 치안을 맡아왔다. 특히 명동은 각종 공공기관과 금융기관·기업·호텔 등이 몰려 있는 강북의 노른자위 땅이다. 최근 성동경찰서는 조정을 통해 동부경찰서에서 성동구 성수동을 넘겨받는 대신 중구 신당 1∼6동과 황학동의 관할권을 중부서에 넘기기로 결정, 하루아침에 중부서의 관할구역이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경찰서간 치안수효를 맞추기 위해 명동을 남대문서로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경찰 창설 이래 줄 곳 명동의 치안을 맡아 온 중부경찰서는 못마땅한 눈치인 반면 남대문서는 반기는 분위기다. 결국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22일 3개 경찰서장과 명동 주민들이 참석한 공청회를 열었다. 하지만 공청회에서 나온 시민들의 발언을 두고 경찰서들의 해석은 제각각이었다. 중부서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은 거리상 중부경찰서가 가까워 현행 관할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대문서 관계자는 “주민들은 관할인구 급증으로 인한 치안의 누수를 걱정하며 남대문서 편입을 원했다.”고 맞섰다. 서울경찰청은 최근 중부ㆍ남대문경찰서장에게 서신을 보내 명동을 남대문서 관할로 이관하는 제1안과 관할구역을 그대로 두는 제2안을 설명한 뒤 조만간 해당 경찰서장들과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낸다는 계획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종로 금은방 대낮 강도

    대낮 서울한복판 귀금속 전문상가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억대 현금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들 중 1명은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잡혔고 2명은 도주했다. 4일 오후 5시5분쯤 서울 종로3가 J귀금속 건물 2층의 한 금괴 도매점에20대 3인조 강도가 침입해 흉기로 주인 백모(34)씨 등을 위협했다. 경찰에 따르면 3인조 강도는 도매상의 문 옆에 있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주인 백씨가 은행에서 결제대금으로 쓸 현금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가 백씨 등 3명의 손발을 묶고 범행했다. 그러나 범인들은 결박이 풀린 백씨 등과 가게 안에서 격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범인 송모(28)씨는 순찰 중이던 사복 경관 2명에 발각돼 검거됐다. 나머지 주모(28)씨 등 2명은 미리 가져 온 배낭에 1만원권 현찰 3억원을 넣어 달아났다.경찰은 “이들이 침입한 도매상은 간판이나 귀금속 진열장도 없는 점으로 미루어 인근 사정을 잘 아는 범인이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범행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붙잡힌 범인을 상대로 범행 경위와 도주 공범의 신원을 캐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儒林(379)-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5)

    儒林(379)-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5)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5)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어진 것은 바로 공자가 ‘춘추’라는 사기를 통해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으로, 어쨌든 공자는 춘추시대 때의 사람이고 맹자는 전국시대 때의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와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천양지차의 시대적 배경을 보이고 있다. 우선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때에는 140여개의 제후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처럼 강국과 약소국이 함께 혼재하고 있어 끊임없이 약육강식의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그래도 제정일치의 종교적 권위를 가진 천자 주 왕실에 대한 봉건주의적 존경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강자와 약자의 국가적 병합은 있었지만 주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하려는 야망을 가진 제후국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전혀 양상이 달랐다. 이미 진(秦),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의 전국칠웅(戰國七雄)이 성립되었으므로 각국의 군주들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등용에는 타국 출신이나 서민이나 할 것 없이 발탁하였던, 천하통일을 꿈꾸는 폭풍전야의 질풍노도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부국강병책은 철제농기구의 사용과 소와 쟁기를 이용한 우경(牛耕)으로 급속한 농업의 발전을 일으켰고, 화폐의 사용으로 눈부신 경제의 발달도 함께 가져왔다. 급속한 사회와 경제의 변동과 함께 질서의 붕괴는 약 300년간에 걸쳐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탄생시켰으며, 새로운 가치관과 질서에 대한 활발한 논쟁을 벌여 중국사상사에 있어서 여명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제자백가. 중국춘추전국시대의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들 학파들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제자백가들의 자유로운 논쟁과 토론으로 학문과 사상은 더욱 발전되어 ‘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난다는 뜻’인 ‘백화제방(百花齊放)’의 르네상스시기가 도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문예부흥기의 르네상스이지만 실은 궤변과, 맹자의 표현대로 ‘사설(邪說)’과 ‘방자하고 음탕한 말(放淫)’들이 난무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암흑기였던 것이다. 맹자는 바로 이러한 전국시대의 한복판에서 태어났으며, 자라날 때부터 백가의 학파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쟁명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치 바울로가 빛의 갑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고 예수의 전사로 나섰던 것처럼 맹자는 이 백가쟁명의 암흑기 속에서 스스로 유가의 갑옷을 입고 성자 공자로 온몸을 무장하고 공자의 투사로 나선 것이었다. 이것이 맹자를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든 계기이며, 유가의 검객이자 검투사로 불리게 만든 시대적 배경인 것이다. 실제로 맹자의 제자 공도자(公都子)는 맹자에게 어째서 사람들과 논쟁하기를 즐겨하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 이 질문에 맹자는 이렇게 해명한다. “내가 어찌 논쟁하기를 좋아하겠느냐.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천하에 사람이 생겨나기는 오래되었고, 세상은 한번 다스려지고 한번 혼란해지기를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 일상속의 아이러니 특유의 문체로 다뤄

    ‘회색 눈사람’ ‘하나코는 없다’의 작가 최윤(52·서강대 프랑스문화과 교수)씨가 소설집 ‘첫 만남’(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장편 ‘마네킹’ 이후 2년 만, 소설집으로는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이후 6년 만이다. 계간지에 실렸던 단편 7편과 미발표 신작 1편 등 8편을 묶었다. 수록작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의 반복과 그 안에서 버둥대는 개인의 실존에 오감을 활짝 열어둔 작가 특유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가 개인의 삶의 기억이 유난히 많이 들어간 이번 작품집에 대해 그는 “할 얘기가 하나도 없는데 입을 열면 말이 쏟아져 나오고, 써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상 앞에 끌려가 앉아 쓰기 시작하면 글이 스스로의 작동법칙에 따라 연결돼 나오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집 앞’은 화자인 ‘나’가 세살 위 언니 ‘K’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이다. 내가 아홉살 되던 무렵, 집 문턱을 넘어 가족의 일원이 된 ‘K’는 나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늘 불온한 존재다. 직업 여행가로 세상을 떠돌던 ‘K’는 서른 살 기념으로 사막여행을 제안하고, 여행 도중 사막 한복판에 나를 버려두고 가버린다. 고통스럽게 기억을 더듬던 화자는 결국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명제를 꺼내든다.‘K, 너를 사랑한다’. ‘밀랍 호숫가로의 여행’은 부부 약사로 순탄한 결혼생활을 해오던 중년여성이 맞닥뜨리는 삶의 위기를 다룬다. 어학연수를 떠났던 딸아이는 행방불명되고,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까지 선고받은 나는 남편으로부터 혼외정사로 아이가 있다는 고백까지 듣게 된다.“뒤늦게 나는 기쁨과 고통은 별개로, 그렇기에 서로 상관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다.”(87쪽) 미발표작 ‘파편자전-익숙한 것과의 첫 만남’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의 색채가 짙다.‘나’는 십수년 전 파리의 한 정신분석자와의 면담을 떠올리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개인적 삶의 이미지들을 탐색한다. 가족, 개, 노래, 어머니, 우표로 이어지는 기억의 파편들은 글쓰기의 욕망 혹은 쾌락으로 전이된다.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능동 주민자치센터] 가족처럼 오순도순 즐기면서 여가활용

    [능동 주민자치센터] 가족처럼 오순도순 즐기면서 여가활용

    ‘인정 넘치는 이웃사촌의 문화를 찾는다.’ 광진구 능동 232의 4 능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지난 25일 가족영화감상회가 열렸다.‘니모를 찾아서’라는 애니메이션이 상영된 이날 170여명의 어린이와 주민들이 자치센터에 모여들었다. 한여름 밤, 서울 한복판 능동 동네 어귀에서 마을주민들과 어린이들이 모여 앉아 영화를 보는 모습에서 정다움이 묻어났다. 지난 4월20일 밤에는 ‘가족‘이란 영화가 상영돼 많은 주민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이웃사촌의 정 능동 주민자치센터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이웃사촌 문화와 정을 되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현재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모두 17개. 이 가운데 요가, 서예, 노래교실, 피부관리, 어린이 영어회화 등 11개 과목은 월 1만원 이상의 회비를 받는다. 주부인터넷 교실, 성인영어기초반 등 5개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된다. 운영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주부, 아동, 노년층 주민들을 위한 것으로 하루 평균 150여명이 참여한다. 월 회원으로 꾸준히 센터를 찾는 주민도 250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50여명은 각각의 동호회를 구성해 서로의 친목뿐 아니라 가족, 이웃의 정을 돈독하게 하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능동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을 맡고 있는 문제국 위원장은 “자치센터가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공간, 주민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의 아픔도 함께 이곳에서는 다른 자치센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도 매주 2차례 이상 펼쳐진다. 매주 화·목요일 오전 10시면 센터에는 정신지체 장애인 15명이 찾는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댄스 스포츠 교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비록 정신적인 장애를 겪고 있지만 1시간동안 사회복지사, 전문 댄스강사 등과 함께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칭, 댄스강좌 등에 푹 빠지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보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하고 사회활동이 턱없이 부족했던 이들의 사회성을 키워주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매월 마지막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이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김종설 원장이 직접 센터를 찾아 인근의 경로당에서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무료 건강강좌와 혈압, 당뇨 체크 등 간단한 검진을 해줘 이웃 사촌의 정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센터의 행정적인 지원을 맡고 있는 능동사무소 정금희씨는 “센터는 프로그램을 통해 8명의 전문강사와 4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열성적인 강의와 봉사를 펼치면서 참가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이웃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에게도 이용 기회를 센터 및 프로그램 운영시간이 주로 낮시간대에 집중돼 있다. 이로 인해 센터 이용자의 90%가 주부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나머지 10%는 어린이나 자영업자들이다. 이에 따라 자치센터는 직장에 다니는 주민들에게도 센터 이용의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야간 시간대 개방 및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우선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포츠·사교댄스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하고 현재 ‘직장인 댄스 스포츠 교실’에 참여할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월 1만원의 수강료만 내면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전문강사로부터 요즘 유행하는 갖가지 댄스를 배울 수 있어 직장인들의 관심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센터 1층에는 ‘토이(Toy) 아저씨 집’이란 장난감 코너가 마련돼 있다. 이 코너에는 25명의 주민자치위원들이 기증한 인형소방차, 동물오케스트라에서부터 세발자전거 등 무려 157종의 장난감이 비치돼 주민이면 누구나 빌려갈 수 있다. 센터가 노인부터 어린이, 젊은 주부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동네 김현숙(37)씨는 “주민자치센터에서 하는 에어로빅을 하면서 신체건강은 물론 음악과 함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돼 정신건강까지 다지게 됐다.”면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방학 기간동안 하루하루를 좀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주민자치센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日파친코회사 ‘마루한’ 한창우 회장

    日파친코회사 ‘마루한’ 한창우 회장

    |도쿄 이춘규특파원|1945년 10월22일 밤 11시 일본 시모노세키 해안. 얼굴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남아있던 열다섯살 한국 소년이 주위를 살피며 밀항선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 손에는 고향의 모친께서 쥐어준 쌀 두 말과 영어사전 뿐이었다. 그것으로 거친 일본생활을 헤쳐가야 했다. ‘일본 파친코 제왕’으로 불리는 재일교포 1세 한창우(75) 마루한 회장의 60년 전 모습은 이랬다. 상전벽해. 일본어판 포브스지는 지난달 순자산 1200억엔(약 1조 2000억원) 이상 되는 일본의 거부 명단을 발표했다. 한국계로는 정보통신(IT) 재벌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순자산 4730억엔으로 8위였고, 한 회장은 1210억엔으로 24위에 랭크됐다. 한 회장은 포브스가 지난 3월 발표한 전세계 갑부 순위에서도 584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마루한의 매출은 1조 2778억엔, 순이익은 210억엔이었다.2010년 매출목표는 5조엔이다. ●도쿄 한복판에 우뚝 선 밀항소년 스스로를 “한국의 보트피플 1호”라고 말하는 한 회장이 도쿄 한복판에 우뚝 섰다. 도쿄역이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초현대식 빌딩의 28층에 있는 마루한 도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건물 벽면이 대형유리로 돼 있어, 일왕궁도 일부 보이는 요충지다. 임대료가 평당 4만 4000엔인 일본의 심장부에 밀항소년이 우뚝 서있는 것이다. 그의 경상도 사투리는 구수하고, 유창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지금 고향 삼천포에는 동생이 살고 있다.3남 2녀 중 차남으로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벽돌쌓기 일을 했던 형을 따라 밀항선을 탔다. 한때 사천시로 변경됐다가 삼천포라는 옛 지명을 되찾은 것을 모른 그는 “삼천포라는 명칭을 왜 없애냐고 고향의 선·후배들에게 따졌다.‘삼천포로 빠졌다.’는 것보다 ‘삼천포에 가자.’라는 긍정적인 면을 선전하면 오히려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 아닌가. 그게 내 철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말을 들으며 차별이 심한 일본사회에서 역경을 이겨낸 긍정적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밀항 뒤 혼란스러운 일본에서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딴 뒤, 호세대학 경제학부를 마쳤다. 호세대학은 당시 일본내 마르크스경제학의 총본산이었다. 그도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을 접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귀국해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접어버렸다. 이후 관심도 마르크스에서 패션으로 옮겨갔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하려 했지만 안돼 프랑스로 패션 유학을 떠나기 위해 교토의 미네야마에서 파친코를 하던 매형을 찾아간 것이 인생 항로를 바꿔버렸다. 여비를 빌리러 갔다가 매형이 한사코 파친코 일을 돕게 하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업체간 경쟁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매형이 사업을 그만두려고 하자 “성공하면 두배로 드리겠다.”며 인수했다. 그것이 마루한의 모태가 됐다. 이후 미네야마에서 클래식 음악다방도 개업해 성공했고,1967년에는 당시 인기를 끈 볼링장 사업에도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시련이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매일 자살하려 했었다” “시즈오카에 120레인 볼링장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볼링 열기가 식으면서 경영상태가 악화됐고,5년 뒤에는 6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말았다. 빚 독촉은 심하고, 갚을 길은 없어 매일 자살을 생각했지만 아이들 얼굴을 보니 못하겠더라.” 마음을 다잡았다. 택시운전이나 라면가게라도 해서 빚을 갚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히 채권은행측이 “독촉을 안할 테니 천천히 갚아라. 신용·노력을 인정한다.”고 해 인감까지 은행에 맡겨놓고 뛰어다녔다. 새 사업을 물색하던 중 나고야 교외의 수천평 벌판에 주차시설까지 갖춘 파친코를 보고 힌트를 얻어 교외형 대형 파친코를 열기로 했다. 볼링장을 처분한 돈과 사채와 곗돈 등으로 시작했다. 자동차시대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 사업 전략 덕분에 히메지, 고베 등에 세운 파친코점에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호사다마일까. 이즈음 미국으로 영어연수를 갔던 당시 고교 2학년이던 장남이 요세미티 국립공원 계곡서 탁류에 휩쓸려 숨지는 액운을 당한다. 충격으로 열흘 정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울고 또 울었다. 충격은 2년가량 이어졌다. 그래도 사업은 급성장,10년만에 60억엔 부채도 청산했다. 파친코의 선입견을 바꾼 영업전략이 주효했다. 손님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했다. 돈을 많이 잃은 고객에게는 구슬을 융통해주고 담배로 위로했다. 담배냄새 제거시설이나 샤워시설도 갖춰 카페식 분위기를 연출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급성장,1995년에는 도쿄 입성의 꿈을 이루고 현재는 전국 180여개 점포에 종업원만 7000명에 달한다. 이 중 한국인은 100여명.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도 추진 중이다. ●파친코, 이제는 폭력배와 무관 “파친코 하면 폭력조직과 검은돈을 연상한다.20∼30년전만 해도 폭력배들이 귀찮게 했었다. 청소해줄 테니 한 달에 얼마씩 달라는 정도가 있었지만 10여년전 법이 한층 강화되면서 그마저도 없어졌다. 가끔 행패를 부리려는 폭력배가 있지만 즉각 체포된다.” 한 회장은 파친코의 이미지를 바꿔 거대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파친코 사장중 한국계가 70%라고 소개했다. 매년 250∼300명의 신입사원 중 대졸이 200여명에 이르고, 도쿄대 출신도 도쿄 본사에만 3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은 파친코의 이미지가 바뀐 방증이란다. 그는 일본내 차별을 뛰어넘기 위해 수익금의 1%는 지역사회 봉사용으로 내놓는다.3년 전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국계 일본인’으로 만족한다. 조국에 대한 끈끈한 정은 여전해 1년에 서너차례는 꼭 한국을 찾는다.22일에는 도쿄 인근 지바에서 한국인 150여명 등 7000∼1만명을 초청해 대규모로 ‘매출 1조엔 돌파 기념행사’를 갖는다. 비용만 15억엔이나 들였다. 7남매를 낳아 현재 딸 둘, 아들 넷인 한 회장은 교토의 저택에서 부인, 막내 아들(31)과 함께 살고 있다. 손주들만 7명으로 다복한 편이다. 파친코 제왕의 파친코 실력은 얼마일까. “7∼8번 가볍게 해 본 경험밖에 없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taein@seoul.co.kr
  • 심야의 수류탄 소동 14시간

    대구판 김희로(金嬉老) 사건의 도화선은? 푼푼이 모은 돈 8만원 양공주된 누이에 주고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이 자기와 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학대 끝에 미군 위안부로 전락시켰다고 앙심을 품은 사나이. 이 파월병사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은 채 전 가족을 몰살시키고 자신도 폭사하겠다고 약 14시간 동안 버텨 50여 명의 군경이 출동하고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등 큰 소동이 대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67년 10월 군에 입대, 지난 2월 파월된 김용태(金龍泰)(25)상병은 8개월만인 지난 10월 2일 휴가로 귀국, 대구시 서구 비산동 2구 19 아버지 김점준(金点俊)(63)씨를 찾았다. 가족 모두가 무사한데 서울로 식모살이간 누이동생 옥선(玉仙)(22)양이 보이질 않아 서자의 설움이 복받쳐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올라갔다. 이 무슨 변일까? 식모살이 하는 줄만 알았던 누이동생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주택에서 미군 위안부 노릇을 하지 않는가. 두 남매는 부둥켜 안고 자신들의 신세를 이렇게 모질게 꺾어버린 이복형제들을 원망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누이동생 결혼 때 값진 혼수감을 사주려고 푼푼이 모아 갖고 온 10여만원 중 푼돈 쓸 2만여원만 남기고 몽땅 털어주었다. 좋은 신랑감 만나서 호강하며 잘 살려니 생각했던 부푼 꿈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김상병은 치솟아 오르는「복수심」을 억누를 길 없어 발길을 대구로 돌렸다. 생모는 25년 전 이웃 과부 6세 때부터 집떠나 유랑 김상병과 옥선양은 아버지 김씨와 지금 군위군 효령면으로 개가한 것으로 알려진 이모(55)여인 사이에 태어났다. 25년 전 김씨가 대구시 태평로3가(당시 금정2정목)에 살 때 이웃 과부 이여인과 눈이 맞아 동거생활을 시작, 두 남매를 낳고 19년 전 헤어져 세 살 난 옥선양만 데리고 떠났다. 여섯 살 난 김상병은 어머니 품을 떠나 큰 엄마 안학봉(安學鳳)씨와 이복 네 형과 함께 살아왔다. 8세 때 인지국민학교에 입학, 2학년 때 중퇴, 충북 영동군 상촌면 유곡리 아들 없는 고모부 허달(許達)씨 집으로 옮겨 살았다. 거기서 18세 때 귀가, 멍게장수, 품팔이 등을 하다가 군에 입대. 김상병은 이복형들 밑에서 기가 꺾여 남과 다툴 줄 모르나 어딘가 야무진 데가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이웃 사람들은 얘기한다. 세 살 때 어머니 따라 떠났던 옥선양은 7년 전 15세 때 귀가, 완대동 모 직조공장에 취직하여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아 아버지 김씨에게 몽땅 넘겨주곤 서울에서 금은방을 경영한다는 이부동복(異父同腹) 오빠인 강씨에게 간다고 집을 나간 후 이때까지 소식이 없다가 지난 9월 30일께 이복맏오빠 영조(永祚)씨에게 부탁, 호적초본 2통을 서울로 부쳐달라 하며 떠났다는 것. 대구에 되돌아온 김상병은 가족몰살과 함께 자폭한다는 끔찍한 결심을 간직한 채 기회를 노렸다. 설움과 울분이 뒤범벅된 착잡한 심정으로 기회를 잡을 때까지 매일 술로 지새워 지에서는 이틀 밤 밖에 자지 않았다. 기회는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월남으로 떠날 13일이 다가와 마음이 초조해졌다. 10월 11일 밤 8시쯤 시장에서 오징어, 무, 술 등을 사서 짐꾼을 시켜 집으로 보냈다. 짐꾼편으로 가족「파티」를 열겠으니 전 가족을 모아달라고 아버지에게 전했다. 떠나기에 앞서 가족「파티」를 열고 일을 저지를 계획이었다. 이날 밤 12시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결혼 후 달성동에서 별거하는 맏형을 제외하고는 아버지를 비롯, 큰어머니, 둘째형, 셋째형, 넷째형, 이복누이동생 등 6명의 가족이 모여 있었다. 술을 한 잔씩 나눈 뒤 김상병은『우리 형제끼리 의논할 일이 있으니 아버지 어머니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김상병의 심상찮은 태도를 눈치챈 아버지 김씨는『내가 있는 데서 할 말 못할 것 있느냐』하며 비켜주지 않고『너 태도가 이상한데 그러면 못쓴다』고 꾸짖었다. 그러자 갑자기 왼쪽 안주머니 속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고『터뜨리면 3초만에 끝장난다』고 소리쳤다. 『왜? 내 동생을 공부 안시키고 양공주로 만들었느냐? 다같이 죽자』고 소리소리 질렀다. 이때가 상오 1시쯤. 이러한 위협 속에 아버지 김씨는 빠져나와 관할 북비산 파출소에 신고했다. 그동안 방안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이복형제들은『술 받으러 간다』『변소에 간다』『물 떠온다』등 핑계로 간신히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 신고에 접한 경찰은 16헌병대로 연락, 출동한 헌병들과 함께 김상병의 자폭을 우려, 접근하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집을 포위, 집 주위 모든 골목길을 차단, 통행을 막았다. 사타구니에 낀 수류탄은 2차 수면제작전에 뺏어 아침 6시쯤 김일수 2군헌병부장, 김덕희 대구경찰서장 등이 김상병과 접선,『수류탄을 터뜨리지 않고 나오면 처벌하지 않을 것은 물론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김상병은『가족을 들여보내 주지 않으면 터뜨린다』고 위협, 계속 수류탄을 수건에 싼 채 사타구니에 끼고 버티었다. 아침 7시쯤 세든 옆방 정순자 아주머니가 사다 준「사이다」한 병을 이불을 덮어쓰고 그 속에서 마셨다. 왼쪽 손에 수류탄을 쥐고 안전「핀」에 엄지손가락을 낀 채, 상오 10시 30분이 좀 지나 김상병과 가장 친하다는 이웃 김종성(金鍾聲)씨와 이부동복형 강씨가 설득을 위해 위협을 무릅쓰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때 김상병은 큰방에서 건넌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막걸리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김·강양씨는 기지를 써 막걸리 한 사발에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하루치를 넣어 갖다 주었다. 잠들게 한 뒤 수류탄을 뺏을 계획이었다. 1차 계획은 실패, 하오 1시쯤 2차 계획이 진행, 조금 뒤 김상병은 졸기 시작, 때를 놓칠세라 김·강양씨와 16헌병대 송윤호 중위가 숨을 죽여가며 방안으로 들어가 잠든 것을 확인, 김씨는 수류탄을 쥔 김상병의 왼쪽 손목 맥을 힘껏 쥐고 강씨는 사타구니 속에 넣은 수류탄 쥔 주먹을 살며시 끌어냈다. 한편 송중위는 김상병의 뒤로 돌아 양팔을 요동 못하게 힘껏 안았다. 위기일발 - 이 긴장된 순간 용감한 세 사람은 김상병의 손가락 하나 하나를 제쳐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탈취, 잡는데 성공했다. 이때가 약 14시간만인 하오 1시 50분, 인산 인해를 이룬 군중 속에서 함성이 터져나오고 모든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대구 = 최종하(崔鍾夏)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0/20 제1권 제5호 ]
  • [일본을 다시본다] (1) 일본은 ‘미래’를 대비했다

    [일본을 다시본다] (1) 일본은 ‘미래’를 대비했다

    도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쿄 시내 시오도메의 덴쓰빌딩 47층 ‘지팡구’나 시내 한복판 도쿄돔호텔 4층의 ‘유교안’ 등 고급식당은 요즘 예약이 어려워졌다. 골프장의 부킹도 힘들어졌고, 할인요금은 사라졌다. 장기 불황시대와 대비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나 서민들이 이용하는 시설 등은 여전히 어렵다. 국내총생산(GDP) 등 거시경제 지표와 소비·생산·수출 등도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는 것이 장기불황의 터널 끝에 서 있는 일본이다. |특별취재팀|최근 1∼2년 사이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확 바뀌고 있다. 도쿄 시내의 시오도메, 롯폰기, 시나가와 등에는 40층 안팎 초고층 빌딩들이 재개발이나 도시정비 사업으로 속속 들어섰다. 요즘은 도쿄역 부근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10∼20년 후를 대비한 상징적 모습으로 꼽힌다. 국회 주변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개혁정책의 결정판이라는 우정사업 개혁문제로 시끄럽다. 고이즈미 총리가 중의원 해산까지 시사하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집권 자민당내 ‘우정족’ 의원을 중심으로 한 108명이 야당인 민주당과 연대 운운하며 결사적으로 반대한다.19일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를 연장하자는 주장과 우정민영화 절충론이 9일 동시에 나오고 있다. 집권 5년차로 들어선 ‘고이즈미 개혁’은 곳곳의 철밥통을 깨고 있다. 사법개혁, 도로공사 민영화, 연금개혁, 국립대학 등의 특수행정법인화, 기초자치단체의 대대적 합병 등이 숨가쁘게 이뤄졌다. 공무원들도 실적주의가 도입되고, 국회 직원 수도 대폭 축소된다. 그런 탓에 인사, 돈, 정보의 3대 축으로 이뤄지던 낡아빠진 파벌정치도 크게 약화됐다. 민간부문도 낡은 것을 벗어던지는 변신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신흥 인터넷기업인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32) 사장 등 30∼40대의 야심찬 기업가들이 인수·합병 등을 앞세워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와 기업·가계 등 전 부문이 “패전 60주년을 맞아 패러다임을 확 바꾸겠다.”는 의지가 넘쳐난다. ●거품과 비효율이 제거된 10년 유명한 온천휴양지인 이즈반도 해안지대에 가면 폐업했거나 휴업 중인 중규모 호텔들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거품경제 시절 과도한 접대비로 회사나 각종 단체의 연수, 회식 등의 ‘이벤트 손님’이 사라진 것이 이런 현상을 촉발한 것이다. 기업들도 대전환기를 맞았다. 현재 기업들은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체력을 강화한 뒤 고용을 다시 늘리는 ‘선순환적’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와코 주이치 수석연구원은 분석한다. 아시아경제연구소 히라쓰카 다이스케 지역통합연구그룹장도 “지난 10여년간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좋아졌다.”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거품붕괴는 미국의 베트남전 패전과 같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통신사 특파원 출신의 자유기고가 도쿠모토 에이치로는 “학연이나 지연, 파벌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사라졌다.”며 “능력에 의해 경쟁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특히 IT업체의 창업이 활발해지며 기득권적인 기업구조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피드 경영의 싹이 보인다 일본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물건을 사고 배달을 요청하면 1주일 정도 기다려야 하던 것은 옛말이다. 급행료를 내면 다음날 혹은 당일도 배달된다. 관청이나 기업, 은행 등도 민원을 신청하면 종전엔 1∼2주일가량 기다려야 했으나 지금은 빠르게 해결되는 곳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스피드 경영도 요즘 기업들의 화두다.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95년 사장 취임 때 “해외사업을 위해 스피드를 향상시켜야 한다.”며 스피드 경영을 진두지휘, 오늘의 초일류 자동차 기업을 일궈냈다. 한 발 앞서 문제점을 개선하고,1초도 아낀 부품조달 등으로 속도를 높인 것이다. 일본인만에 의한 기업경영도 옛말이 됐다. 도요타·닛산·혼다·미쓰비시·마쓰다 등 5대 자동차 업체 중 닛산 등의 3개사 최고경영자가 한동안 외국인이었다.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소니도 22일 주주총회에서 미국인인 하워드 스트링거를 회장으로 정식 추대한다. 스피드 경영은 일본 최대 IT재벌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 온라인 쇼핑몰 업체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 등 신세대 벤처기업인들이 선도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거품붕괴 이후 위기경보 강화돼 요즘 마루젠이나 기노쿠니야 등 대형 서점에 가면 ‘허구의 경기회복’,‘국가재정파탄’,‘희망격차사회’‘이극화 일본’ 등 향후 일본경제의 위기를 경고하는 서적들이 넘쳐난다. 거품붕괴 뒤 일본에선 ‘위기에 대한 경보’가 발달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일반적이다. 거품경제 내내 언론이나 분석가들이 일본의 장밋빛 미래만을 찬양하다가 거품이 붕괴되자 그 반성으로, 사전 경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 아나운서인 오노 게이코는 “지난해 시중에 경제가 좋다는 책들이 넘쳤는데 실제 GDP는 2분기나 마이너스였다. 반면 올해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책들이 주류다. 그것은 경기가 좋다는 방증”이라고 소개했다. ●후유증, 그늘도 많이 남겼다 5월말 도쿄도 시나가와구의 오이마치역 인근의 라면가게와 술집 밀집 골목은 오후 7시인데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실직이나 비정규직 전환 등의 서민들에게는 장기불황 후유증이 큰 것이다. 장기불황의 그늘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들이 10여년 동안 고용을 기피,“생산직은 물론 사무직, 연구소도 91년 이후 신입사원 선발을 안한 곳이 많아 기술·기능 전수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10년 이상 된 사원이 오차 심부름을 하는 곳이 많다.”라고 환동해권 경제연구소 에리나의 미무라 미쓰히로 연구원은 우려했다. 글로벌화 부작용도 극복해야 한다. 도요타자동차·소니 등 굴지의 대기업에는 미국·중국 등 다국적 사원이 많다. 대부분 영어로 이뤄지는 회의에서 ‘사원간 의사소통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아울러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정사원, 계약사원, 촉탁사원, 파견사원 등 사원제도가 복잡해지면서 조직 화합이 어려워진 것도 큰 숙제로 부상했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사회적 과제다. taein@seoul.co.kr ■ ”日은 대수술 막 끝낸 환자” 후카가와 도쿄대교수 인터뷰 |특별취재팀|“일본경제는 커다란 수술을 받은 직후의 환자 같은 상황이다. 연간 0∼2%의 성장을 할 수는 있게 됐지만 그나마 이전 같은 고성장은 없을 것이고 미국·중국 등의 외부 충격에 약하다.”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학교 연구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현재 일본 경제의 상태를 이같이 요약했다.10여년의 장기불황 기간 중 중반까지는 재정의 과도한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으로 우왕좌왕했지만, 이후 실효적인 개혁이 시작되면서 좋아졌다는 설명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7년 정도는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면서도 “하지만 이 기간과 이후 기업·가계 부문의 의미있는 개혁들도 진행됐고, 제조업이나 은행 등의 부채 처리가 잘 되면서 전체적으로 개혁작업이 본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기간 일본을 부정적으로 짓눌렀던 학벌지배 현상이 약화되는 등 체질개선이 많이 이뤄진 것으로 진단했다. 오랫동안 도쿄대 법학부 출신들이 경제부처를 좌지우지했으나 세계적인 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 경제분야 인재들이 이들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부실기업과 구조조정이 늦어진 기업들이 망해도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법 정비도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 주가가 저평가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쓰러질 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주가는 지금 정도가 적당하다.”면서 주가 저평가론을 부인했다. 나아가 지금까지는 시장을 공업기술이 이끌었지만 앞으로는 마케팅이나 소비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삼성이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과 스피드로 제품을 만들어 성공했다.”며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만성병이 천천히 진행되는 것처럼 일본의 위기가 그렇다는 설명이다. 이런 까닭에 일본은 ‘조용히, 천천히 성장하는 사회’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래에 대한 조심스러운 낙관이다. 그러면서 환경기술에서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할 경우 제1의 희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진·태풍 등 환경·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발달시킨 환경·기상기술 등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750조엔에 이르는 재정적자에 대해서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taein@seoul.co.kr ■ 김상연기자의 “일본은 있었다” “일본의 사정은 어떠한가.” “신이 본 바로, 쇼군은 군병의 일을 힘쓰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포성을 들으면 어쩔 줄 몰라하였습니다.” 지난달 16일 특별취재를 위해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머릿속은 1636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임광과 인조(仁祖)의 대화로까지 달려 올라갔다. 일본 근대화의 배아를 잉태했던 그 도쿠가와 막부시대로부터, 근대화를 완성한 120년 전 김옥균(金玉均)의 황망한 도일과 40년 전 김종필(金鍾泌)의 다급한 방일, 그리고 21세기 대명천지에도 현재진행형인 독도, 야스쿠니 등등…. 번잡한 상념이 무색하게 비행기는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나리타공항에 착륙했다. ●개별과 집단 사이… 도쿄시내 남쪽 시나가와역에서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인파는 이방인을 익사시킬 것만 같다. 바쁜 걸음으로 각자의 방향으로 돌진하는 사람의 물결은 윌리엄텔 서곡 2부의 리듬을 연상시킬 만큼 일관성 있게 빠르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풍경은 돌변한다. 식객의 주류는 혼자서 밥 먹는 사람들. 다른 사람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후다닥 먹고 서둘러 나간다. 전철역 인파를 보고 ‘일본은 있다.’고 하고, 식당안을 보고는 ‘일본은 없다.’고 하는 건가? 식당안의 그저그런 ‘나카무라’들이 고니시 유키나가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촉매’를 만나면 전철역의 위협적인 검은부대로 변신하는 건 아닐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 아무리 붐벼도 열차에서 승객이 내리기 전에 몸을 밀치며 올라타지 않는 사람들. 도로에선? 횡단보도를 밟고 선 자동차는 없다. 자로 잰 듯 정차해 있다가 일제히 평행을 유지하며 주행하는 행렬. 각박함이 지배했을 법한 ‘잃어버린 10년’도 일본인의 소프트웨어 진보는 막지 못했다. 계층과 빈부를 막론하고 국민 전체가 한몸처럼 움직이는 질서의 소프트웨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축적의 발현일 것이다. 그것이 메이지(明治)유신에서 발원한 전체주의적 교육의 소산이든,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두려워하는 일본인 특유의 DNA 때문이든. ●전통과 외래 사이… 서울보다 사람이 많다는 도쿄지만 식당 간판이나 인테리어 디자인만큼은 전통 일본풍이다. 그러나 시부야 같은 번화가는 ‘자본주의의, 자본주의에 의한, 자본주의를 위한’ 일본의 다른 얼굴이다. 고층빌딩들의 앞면에 매달린 대형 광고전광판에서부터 바닥에 엎드린 소규모 상점들의 스피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볼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소리가 소리를 누르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동원하는 메커니즘은 초기 자본주의의 원초적 경쟁을 연상시킨다. 전통과 외래가 자본이라는 동질의 목표를 향해 각개약진하는 모습은 불안하면서도 절묘하다. 인상적인 점은 억압보다는 방임으로 균형을 맞춰 가고 있다는 것. 여고생들이 미니스커트에 가까운 교복을 거리낌없이 입고 다니는 광경에서 전통과 외래의 절묘한 ‘팽창 시너지’가 느껴졌다. “그래, 일본은 어떠한가.” “신이 본 바로, 일본은 있었습니다. 언제든 계기가 주어지면 무섭게 뭉칠 수 있는 잠재력이 엿보였습니다. 방비를 게을리 하다간 장래에 큰 화가 다시 닥칠까 심히 염려되옵니다.” carlos@seoul.co.kr ■ 도움 주신 분들 이번 한·일 수교 40주년 특별기획에 도움주신 분들을 2회에 걸쳐 싣습니다(무순입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자민당 중의원(부간사장) ▲구사노 다다요시(草野忠義)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국장 ▲다카하시 요시오(高橋由夫)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부국장 ▲구마가이 겐이치(熊谷謙一)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 국제국장 ▲무쿠타 사토시(田哲史)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환경·기술본부장 ▲마스다 기요시(益田淸) 도요타자동차 이사 환경부장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도쿄대학교 대학원 교수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자민당 참의원 ▲기타하시 겐지(北橋健治) 민주당 중의원(역원실장) ▲미카즈키 다이조(三日月大造) 민주당 중의원 ▲기타지마 가즈토시(北嶋一甫) ㈜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 사장 ▲오이케 가즈오(尾池和夫) 교토대 총장 ▲사사키 미사오(佐佐木節)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교수 ▲나카무라 가즈야(中村一也) 교토대 총장 비서실장 ▲사고 노리치카(佐合紀親) 오사카대 우주물리학 박사 ▲다카하시 도루(高橋徹)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박사후 과정(오사카대 핵물리학 박사) ▲이시무라 시게이치(石村繁一) 남코(NAMCO) 사장 ▲히라이 아쓰오(平井淳生)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정보통신기기과 과장보좌 ▲나카지마 구니오(中島邦雄) 정책대학원대학 교수 ▲오카타 야스오(緖方靖夫)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국장, 참의원 의원 ▲오모카와 마코토(面川誠) 일본공산당기관지 新聞赤旗 외신부 기자 ▲노히라 신사쿠(野平晋作) 피스보트 공동대표 ▲다나카 쓰네유키(田中恒行)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노동정책본부 기획조사그룹장 ▲스즈키 아키히코(鈴木明彦) UFJ종합연구소 조사부 수석연구원 ▲이노우에 사토시(井上哲) 인사원 직원복지국제과 주임국제전문관
  • 코스닥 1000억대 주식갑부 7명

    주식재산이 1000억원을 넘는 코스닥 대주주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6일 코스닥기업이 증권선물거래소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와 대주주 지분변동 보고 등에 따르면 보유주식 평가금액이 1000억원을 넘는 코스닥기업 대주주는 ㈜동서 김상헌 대표 등 모두 7명으로 나타났다. 작년말 기준으로 보유주식 시가가 1000억원을 웃돈 코스닥 대주주로는 김 대표가 유일해 올 들어 6명이 새로 1000억원대 주식 부자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김 대표는 동서가 환율하락 수혜주로 꼽히면서 주가가 상승, 보유주식 평가액이 1932억원으로 늘어나 코스닥 최고 부자의 지위를 유지했다. 발광다이오드(LED) 패키지 전문업체인 서울반도체의 이정훈 대표는 최근 일부를 매각하고 남은 주식 평가액이 1430억원으로 2위에 올랐다. 반도체·LCD 장비업체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대표는 1249억원으로 늘어나며 이 대표와 더불어 벤처 갑부 선두권에 자리했다. 학습보조기 ‘엠씨스퀘어’로 잘 알려진 대양이앤씨의 이준욱 대표와 국순당의 배중호 대표도 주식가치가 각각 1165억원과 1051억원으로 증가,1000억대 자산가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이외 비에스이홀딩스의 박진수 대표와 코미팜의 양용진 대표도 신흥 갑부에 속한다. 비에스이홀딩스 박 대표는 휴대전화 마이크로폰 전문업체인 비에스이를 우회상장시켜 주식평가액 1043억원의 코스닥 재산가로 등장했고 코미팜의 양 대표는 코미팜이 바이오테마의 한복판에 서면서 보유주식이 1021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밖에 줄기세포 관련 테마주 핵심인 산성피앤씨의 최대주주 김판길씨는 무상신주 취득과 주가급등으로 주식가치가 959억원으로 치솟았다. 온라인음원 테마주인 에스엠의 최대주주 이수만씨도 외국인들의 ‘러브콜’에 주가가 10배 가까이 뛰어 780억원대 자산가가 됐다. 또 유가급등에 따른 대체에너지주로 부각된 유니슨의 이정수 회장도 주식재산이 779억원으로 15위권으로 부상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모두 요란스레 찾아들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당시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랜다며 짙푸른 5월의 광주에 발길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허탈감에 온몸이 뒤틀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광주를 찾은 386정치인들이 도우미가 딸린 단란주점에서 유흥 잔치를 벌였다던 소식에 분노를 삼키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건만 뇌리에서 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권을 꿈꾸는 서울시장이 5·18국립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참배하고 나오다 파안대소했다는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본질을 흐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라면 광주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게 한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역사적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해관계로 요란을 떨며 다들 희생당한 영령들의 사연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5·18 묘역을 순회한다지만 정녕 광주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누구에 의해 짓밟히고 뭉개졌는지 ‘용서와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아직도 규명이 되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광주의 5월정신은 그 숭고한 역사적 의미가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가 가고 정권이 바뀌었건만 여전히 소외받고 낙후된 지역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광주시민들이 어떤 특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국토균형발전’이라는 현 정권의 정책에서 우선권을 부여받으려 한다거나, 혹은 핍박받았던 역사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생각해 보라.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이 남아 있는데 망월동 5월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제6회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인도네시아의 와르다 하피즈 여사는 “광주는 아시아의 등대와 같은 곳으로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배와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하며 “광주정신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외에서도 5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그 가치를 배우고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를 추앙하고 있건만 광주시민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실미도 사건’과 대학생들의 강제징집을 야기한 ‘녹화사업’을 대상으로 진상규명에 임한다는 공언을 반복해왔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위원회에서 발표할 안건이라며 결정을 유보해왔다. 드디어 군 관계자 5명과 민간인 8명 등 총 13명으로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는데, 과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위원회에서는 당연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며 하루속히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부에서 직접 망월동 5·18묘지의 관리를 맡겠다고 나서서 광주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아직 진상의 배경과 최초발포명령자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방부가 국방부장관 명의로 국회에 ‘국립묘지에 관한 기본법안’을 제출, 입법예고한 것이다. 그런 후 4·19나 3·15 묘지와 함께 공동관리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군 관련 희생자들과 민주영령들 묘지의 성격을 동일시하여 관리하겠다니 어느 나라에 있을 법한 일인가. 그보다 국방부는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매캐한 최루가스와 김밥을 눈물로 삼키며 항거하던 민주영령들과 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재일동포 60년, 왜 귀화하는가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재일동포 60년, 왜 귀화하는가

    광복 60주년인 올해가 60만 재일한국인들에겐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광복 이전부터 일본에 살았던 ‘재일동포’ 1∼1.5세와 그 가족 47만 1756명(2003년말 현재)은 더욱 그렇다. 일본에선 한국·조선인으로, 모국에선 일본인으로 취급당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일본인도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오늘도 식민시대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재일동포들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 이전부터 일본에 거주한 특수영주권자다. 그런데 매년 1만명 정도의 재일동포들이 줄어들고 있다. 차별을 견디기 힘들고, 조국에 대한 기대도 사그라지는 현실에서 일본인으로 귀화하기 때문이다. 한 일본 중견 언론인이 “지난해 한류열풍은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이 몰려다니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어이없게 말하는 것에서 재일동포들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차별과 푸대접의 60년 도쿄 시내 한복판의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중앙본부에서는 23일에도 일본 우익들의 확성기 비난이 그치지 않았다. 도쿄 시내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중앙본부도 우익들의 공격을 우려, 삼엄하게 경비한다. 이게 광복 60년을 맞는 재일동포들의 현주소다. 한때 70만명까지 이르렀던 재일동포들은 매년 감소추세로 현재 40만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외국인등록증을 언제나 갖고 다녀야 하고, 일상 생활에서 받는 각종 차별은 여전하다. 특히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조선국적 동포들의 피해는 막심하다. 조총련중앙본부 동포생활국 진길상 부국장은 “취직을 하고자 할 때 한국국적 동포가 5곳에서 거절당하면 조선국적 동포는 10곳 가까이서 거절당한다.”고 지적했다. 민단측은 지방참정권이라도 실현되면 귀화가 줄 것으로 보고 참정권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귀화절차 간소화를 통해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단 중앙본부 정몽주 사무총장은 “일본이 헌법을 개정, 징병제를 도입하면 귀화한 재일동포가 모국에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귀화자는 27만명이고, 그들의 자녀는 40만명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갈라서 있는 민단과 조총련 민단과 조총련이 광복 60주년인 올해에도 중앙 차원에서 합동 기념행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동포사회의 분열을 웅변적으로 대변한다.1990년대 초반 탁구 남북단일팀 공동응원이나 2002 월드컵축구 공동응원 등은 옛 이야기다. 민단 정몽주 총장은 “1991년부터 중앙·지부 단위에서 총련과 교류를 해오고 있다.”면서 “지금도 지부 단위서는 적극 교류가 있지만 중앙 차원은 (정치상황 때문에)의견접근이 어렵다.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조총련 중앙본부 통일운동국 조선오 부장은 “몇년 전 오사카에서는 양쪽 동포 3만명이 공동행사를 하는 등 좋은 분위기도 있었지만 민단 중앙과는 여러 면에서 최근 2∼3년간 좋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방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민단과 조총련은 입장차가 확연하다. 민단은 유럽쪽에서 인정하는 외국인 지방참정권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조총련은 참정권에 소극적이다. 일본에만 요구하는 게 무리라는 이유에서다. ●국적포기 사연도 제각각 동포 3,4세대들은 1,2세대와는 국적에 대한 자세가 다르다.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처럼 자신들은 한국 국적을 유지할 필요성이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가 유언 등으로 “한국적을 포기하지 말라.”고 해 유지하고는 있지만 계기만 되면 포기하겠다는 동포들이 적지 않다. 일본 언론사 기자인 30대 초반 H모씨는 한국이름으로 일본 언론에 취직했지만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는 “80대인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바로 한국적을 포기할 예정”이라고 고백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올해 34세인 조선 국적의 김모씨는 명문 사립대를 졸업했다. 졸업 뒤 100여 군데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50곳은 한국식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했다. 결국 유수의 일본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0년만에 그만두고 가업(식당)을 잇고 있다. 그는 국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귀화 후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배철은 민단신문 편집장 등은 “귀화하면 동포사회에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완전히 일본인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면서 “귀화한 뒤 후회하거나 돌아오는 사람도 일부 있다.”고 소개했다. ●우익·야쿠자 많다는 것은 왜곡 재일동포들은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교수 등 교원도 2000여명이다. 의료보험기술자도 4300여명이고, 관리직 직업종사자는 1만 7000여명이다. 사무종사자도 5만여명이고, 비교적 차별이 덜한 연예인이나 프로야구선수도 많다. 정몽주 총장은 “광복 뒤 귀국선을 타기 위해 간사이 지역으로 많은 동포들이 몰려갔다가 국내 정정이 불안하고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주저 앉았다. 그분들이 재일동포의 뿌리”라고 소개했다. 당시 180만여명이 귀국했고,60만여명이 남아 동포사회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3D 업종 등에서 영세업자가 된 동포들을 일본의 야쿠자들이 텃세를 부리며 괴롭히자 자위 차원에서 동포 젊은이들도 조직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야쿠자 관련 부분을 적극 해명했다. 재일동포에 야쿠자나 우익이 많다는 것은 취직이 안되던 30여년 전의 일이란다. 차별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공식적인 일자리가 적지 않아 야쿠자나 우익이 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taein@seoul.co.kr ■ 재일 대한민국청년회 조수융 회장 |도쿄 이춘규특파원|‘재일본 대한민국청년회 중앙본부’의 조수융(33) 회장은 재일동포 3세다. 부친은 경상도, 모친은 전라도 출신으로 현재 한국말은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 두 누나는 현대자동차 미국법인과 일본 무역회사에 다니고 남동생은 청년회 간부다. 조 회장은 일본의 왜곡 역사교과서 채택반대 운동에 열심이지만 “한국의 국회의원들이나 운동권이 일본에 건너와 항의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그럴 경우 재일동포가 불이익을 받게 되고, 그것이 무엇보다 싫다.”고 말했다. 그는 부친이 “일본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일본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만은 한국인임을 잃지 말라.”고 교육한 탓에, 민족의식이 넘친다. 현재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다이시고교 사회과 교사인 조 회장은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민족차별을 체험했다. 초·중·고교와 대학 모두 일본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고교 때까지는 한국식 이름을 쓰지 못하고 일본식 이름으로 학교를 다녔다.19세 때부터 겨우 조수융 하나만 썼다. 집단 따돌림을 당할 것이란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동포 7000여명이 모여사는 가와사키시에서 이 정도니 동포들의 집단거주지가 아닌 곳은 짐작할 만하다. 일본에서 공무원이나 공립학교 교사 등은 한국인이 되기 어려운 직업이다. 하지만 그는 각고의 노력끝에 공립고교 교사가 됐다. 한국에는 16세 때 민단 모국방문단으로 처음 가봤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 한국은 어두운 이미지만 있었다. 웃지 않는 사람들만 사는 걸로 알았다. 일본 미디어에 한국의 어두운 면만 전해졌기 때문이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올해처럼 양국이 독도·교과서문제 등으로 충돌할 땐 정말 곤혹스럽다. 일본인들은 자신을 한국인이라 꺼리고, 한국에서는 자신을 일본인으로 보는 것 같아 서럽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 국민들을 나쁘다고 비판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taein@seoul.co.kr
  • [위기의 축산농 비상구를 찾아라] (하) “축산농지 확보·가축보험制 확대해야”

    [위기의 축산농 비상구를 찾아라] (하) “축산농지 확보·가축보험制 확대해야”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농가수입 34조 4000억원 가운데 축산농이 올린 수입은 26%인 9조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쌀 소비량은 지난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온 반면 육류소비량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여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쌀 못지 않게 육류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젖소를 제외한 축산 전업농의 비율은 20%에 못미치는 등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다. 축산농이 엄연히 농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쌀 정책’에 밀려 제도적 지원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전문가들은 친환경적 농가육성을 위해 최소한의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 축산農 경쟁력 제고 어떻게 ●쌀 농가와 축산농의 ‘윈윈전략’ 절실 현재 축산농가의 상당수는 도시 근교의 축산단지에 밀집돼 있다. 그러다 보니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 집단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는 ‘축산단지’를 분산,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정책으로 선회했으나 문제는 옮겨갈 땅이 없다는 데 있다. 반면 쌀과 채소, 과일 등을 생산하는 농가는 농업인의 고령화와 쌀 시장 개방 등으로 유휴농지가 늘어나는 추세다. 쌀의 경우 1인당 연간 소비량은 2000년 93.6㎏,2001년 88.9㎏,2002년 87㎏에서 2003년에는 83㎏으로 떨어졌다. 정찬길 건국대 축산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같은 쌀 소비 추세라면 앞으로 농지 20만∼30만㏊가 남을 것”이라면서 “화학비료가 아닌 분뇨를 활용한 유기농법으로 쌀 농가 등과 축산농가를 연계시키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축산농가의 대형화를 유도, 경쟁력을 갖춘 전업농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남는 농지의 활용방안이 불가피하다. 전업농의 비율은 한우 2%, 닭 1%, 돼지 21%, 젖소 45% 등으로 가축종별 전업농 비중이 50%를 넘는 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축산업계도 농지에 축사를 세울 수 있는 대상을 친환경적 분뇨처리시설을 갖춘 기존의 축산농가로만 제한, 쌀 농가 등으로부터 신뢰를 먼저 쌓겠다는 입장이다. ●경영 안정화 위한 ‘원산지표시’와 ‘정책보험’ 도입 시급 가축이 구제역과 같은 1종 전염성 질병에 걸리면 정부가 지원해 준다. 그러나 다른 질병에 걸렸거나 자연재해로 축사가 무너졌을 경우 피해는 농가 스스로가 부담해야 한다. 농촌경제연구원 송주호 박사는 “축산농의 농지 확보도 절실하지만 무엇보다 가축보험이나 공제제도의 확대가 시급하다.”면서 “일반인이 의료보험에 가입하듯, 가축에 대한 정책적 보험이 마련돼야 전업농이 안정적으로 경영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단계에서의 원산지 표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실제 시중에서 유통되는 쇠고기의 경우 60∼70%가 수입쇠고기나 젖소임에도 한우로 둔갑해 팔리고 있다. 삼겹살도 절반 이상이 중국산 등 수입산이다. 이러다 보니 축산농이 더 공급할 수 있는 육류를 수입산에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강광파 이사는 “소비자들은 식당에서 파는 육류에 대한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면서 “축산농가를 편드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알 권리와 유통질서 개선 차원에서 보더라도 원산지 표시는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원산지 표시는 대형 고기전문점부터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식품위생법 개정을 정부에 요청했다. ●분뇨처리 기술은 유기농법의 출발점 정찬길 교수는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분뇨를 퇴비로 사용하는 것은 유기농법으로 가는 출발점이라며 이를 위해 화학비료의 사용금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산농은 현재 분뇨를 정화시켜서 버리거나 발효과정을 거쳐 퇴비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퇴비를 위한 발효 과정에서의 냄새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분뇨 활용보다 환경오염 측면에서 바라본다. 때문에 축산업계는 광물질을 첨가해 발효 과정을 속성으로 진행시키는 다양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자체가 새로운 분뇨처리시설의 건립에 제동을 거는 예가 적지 않다. 따라서 분뇨처리기술의 도입에 정부가 유연한 자세를 갖고 특히 생산자 단체인 농협이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분뇨 가운데 토지를 황폐화시키는 인 성분보다 냄새를 유발하는 질소 성분의 제거에만 관심을 가져서도 안된다는 주장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국회 농해수위 조일현의원 “식량이 최고의, 최후의 무기인 시대인데도 우리 농업 현실은 무척 열악합니다. 관련법을 고치고, 방만한 농협 조직은 손보고, 해야 할 일이 많고요.” 국회 농해수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조일현의원은 17일 농업진흥구역에도 축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농지법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평평한 옥토에는 축사를 못 짓게 하니, 축산농은 산비탈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곳은 땅도 척박하고, 무엇보다 땅값이 두배는 더 비싸 축산농의 고충이 크다.”면서 “농지는 무조건 보존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이제 버릴 때가 됐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조 의원은 또 “대부분 축산농가가 300평 규모인데, 이 정도면 농지의 자연을 훼손할 수준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마을 한복판, 논 한가운데 축사를 지으면 각종 전염병이 생길 우려가 있겠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허가를 내줄 때부터 꼼꼼하게 따지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투기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허용 지역에 영구적인 건축물을 못 짓게 하면 된다.”면서 “축산 행위가 중단되는 즉시 원상 복구토록 관련 문구도 법안에 추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음식점에서 파는 쇠고기에도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조 의원은 이미 지난달 이같은 내용이 담긴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조 의원은 “닭고기·돼지고기는 국산으로 90% 이상 충당할 수 있지만, 쇠고기는 45%에 그친다.”면서 “엄청난 물량의 젖소와 수입소가 시중에 나돌더라도 소비자들은 ‘한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면적이 100㎡를 넘는 음식점에서 수입 쇠고기를 팔 때는 원산국가, 젖소·한우 여부를 모두 표시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최고 3000만원 이하의 벌금,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방대한 농협 조직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 의원은 “농협중앙회장 연봉만 4억 45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농협은 임직원 뱃속 불리기에만 급급했다.”면서 “조합원의 40% 정도가 중복되는 등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총괄적으로 농협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쌀 재배농가· 농민단체 정부가 유휴 농지에 축사를 짓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쌀재배 농가와 농민단체들은 식량안보와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박웅두 정책위원장은 “농지의 균형있는 활용, 주변과의 조화, 농지 오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농지내 축사 허용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특히 한번 훼손된 농지를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서정의 회장도 “대부분의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최소한 쌀만이라도 자급이 가능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특히 쌀시장 개방으로 품질 경쟁력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환경오염을 불러올 수 있는 축사 건축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농지 전용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경우 지가상승을 부추겨 농업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축산농가들은 수입쇠고기나 젖소가 한우로 둔갑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현재 정육점과 백화점 등 식육판매자에 대해서만 의무화돼 있는 원산지표시제를 음식점 등 모든 유통단계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같은 원산지 표시제 확대에 대해 음식점 등은 난색을 표시한다. 한국음식점중앙회측은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되지 않아 축산농가의 피해가 커지고 수입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해 소비자들의 선택이 쉽지 않다는 것은 논리가 비약된 것”이라면서 “원산지 표시제가 확대되더라도 단속이 실효를 거둘 수 없는 등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美 예상밖 성원…현대차 글로벌 톱5 ‘올인’

    |몽고메리(미 앨라배마주) 안미현특파원|인종차별을 고발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이 됐던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차별만큼이나 인권운동도 가장 치열했던 도시의 한복판을 지나 자동차로 20여분 달리자 왕복 4차선의 널따란 진입로가 나왔다. 몽고메리시가 현대자동차를 위해 이름을 ‘현대로(Hyundai Boulevard)’로 바꿨다는 그 도로였다. 눈에 들어온 거대한 흰색 건물은 공장이라기보다 세련된 기술연구소를 연상시켰다. 번지수를 보니 700. 현대차 울산공장의 끝주소와 같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몽고메리시의 눈물겨운 노력이 전해져 왔다. 시는 210만평이나 되는 땅도 현대차에 “공장만 지어달라.”며 거저 줬다. ●지게차 없는 최첨단 공장 공장에 들어선 첫 느낌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아산공장보다 자동화가 더 많이 이뤄져 있었다. 차체는 지게차 대신 거대한 기계가 운반했고, 용접 등도 254대의 로봇 몫이었다. 차에 색을 입히는 일도 ‘백조’ 모양의 로봇 48대가 맡고 있었다. ●초임 시급 14달러 22센트 그렇더라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을 수는 없다. 앨라배마 공장의 직원수는 현재 1500여명. 도요타·혼다·벤츠 등 경쟁업체에서 스카우트해온 핵심 인력을 빼고는 90%가 앨라배마 주민들이다. 급여는 시급제. 갓 입사하면 시간당 14달러 22센트(1만 4000여원)를 받는다. 하루 8시간 근무는 한국 공장과 같지만 새벽 6시30분에 일을 시작해 오후 3시15분(점심시간 11시15분∼12시)에 마치는 것이 독특하다. 자녀를 돌봐야 하는 맞벌이 부부를 배려해서다. 야근(오후 5시15분까지)이나 토요 근무는 정상 급여의 1.5배, 일요 근무는 2배를 받는다. ●미 근로자들“우리는 노조 원치 않는다” 실린더 헤드를 조립하는 지니 커(42)는 “인근(버밍햄)에 벤츠와 혼다차 공장도 있지만 임금 등 근로조건을 비교할 때 현대차가 전혀 뒤지지 않는다.”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노조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바로 옆 라인의 숀 보든(29·실린더 블록 생산)도 “다른 동료들이나 앨라배마 주민들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동조했다. 앨라배마주도 ‘무노조 공장’ 구현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방침이어서 현대차로서는 일단 큰 시름을 덜었다. ●그 시각 맨해튼에선… 차를 돌려 뉴욕 맨해튼으로 건너갔다. 도요타·크라이슬러 등 세계 자동차메이커들이 다닥다닥 마주보며 ‘마케팅 혈전’을 벌이고 있는 11번가에 현대차 대리점도 자리잡고 있었다. 도요타 차를 20년간 팔다가 현대차의 잠재능력에 끌려 과감히 직장을 옮겼다는 총책임자 빈센트 테페디노는 “현대차를 사는 주된 고객층이 연봉 4만∼6만 5000달러의 35∼50세”라며 현대차는 더이상 싸구려차가 아니라고 잘라말했다. 한달 평균 판매실적은 100대. ●MK, 미국 시장공략 지시 전 세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뉴욕 타임스 스퀘어 광장에는 NF쏘나타 옥외광고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당분간 모든 힘을 미국시장 공략에 집중하라는 MK의 특별지시에 따른 것이다. 지난 16일부터는 미국 전역에서 TV·신문·잡지 광고도 시작했다. 미국 550여개 극장에서 ‘스타워즈’ ‘배트맨’ 등 인기 개봉영화를 상대로 극장광고도 개시한다.660개인 미국내 대리점 수는 연말까지 700개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문희 앨라배마공장 법인장은 “앨라배마를 지렛대 삼아 세계 5위(지난해 8위) 업체로 도약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hyun@seoul.co.kr
  • [Zoom in 서울] 도심 지하도상가 테마거리로 변신

    [Zoom in 서울] 도심 지하도상가 테마거리로 변신

    고만고만한 매장들로 가득차있는 시내 한복판 지하도 상가에 각종 정보센터와 특색있는 매장들이 이달 말부터 순차적으로 들어선다. 새서울 지하도 상가에는 대학교 정보센터·기업홍보관이, 을지로 3가 지하도 상가에는 ‘세계공예 전시장’이 들어선다. 상설공연장을 만들고, 조명을 높여 상가분위기도 산뜻하게 바꾼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사장 김순직)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도심지역 지하도상권 개선방안을 마련했다고 17일 밝혔다. 지하상권이 위축돼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을지로입구역 사이 새서울 지하도 상가에는 이달 말까지 약 70평 규모의 ‘전국대학 정보센터’가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등 4년제 대학과 명지전문대·서일대 등 전문대학 등 약 20곳의 대학이 제공하는 입시·학교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적성검사·진로상담 등도 함께 제공한다. 입학원서도 공동으로 접수하고 입시설명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동아리나 언더그라운드 밴드 등이 공연할 수 있는 상설 공연장을 만들어 상가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방침이다. 학교 상징물이 새겨진 의류·학용품 등 기념품도 판매한다. 10평 규모의 장묘문화상담센터도 다음달 말 들어선다. 장례관련학과 출신자나 장례상담사 등 전문인력을 배치한다. 화장·산골 등 바람직한 장례법, 장례절차, 각종 상담 등을 원스톱서비스로 제공한다. 30평 규모의 기업 홍보관도 설치된다. 현재 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입점희망 제안을 받고 있어 입점계약이 체결되는 대로 문을 열 계획이다. 을지로 3가 지하도상가에는 약 50평 규모의 ‘세계공예 전시장’을 유치해 오는 6월 말 문을 연다. 스페인·터키·러시아 등 20여개국에서 만들어진 전통공예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현지 외국인들이 직접 제품과 나라를 소개해 내·외국인들이 즐겨찾는 관광명소로 꾸며갈 계획이다. 을지로 6가 지하도상가에는 중국 기업들의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중국 기업체 전시장’을 운영한다. 각종 품질기준에 부합하는 우수제품만 취급할 예정이다. 지난 2월부터 2호선 을지로 입구역∼을지로3가역 사이에서 운영하는 ‘내고향 특산물 장터’는 을지로 5가 지하도 상가에도 추가로 설치한다. 점포공간도 넓어졌다. 공단은 희망점포의 신청을 받아 점포를 기존보다 50%정도 넓혀주고 있다. 그동안 조명이 어둡다는 지적을 받은 을지로 3가 지하도상가 등은 천장을 높이고 조명을 밝게 하는 공사를 벌인다. 올해 말부터는 불편했던 화장실의 바닥재·칸막이·변기 등을 새로 바꾼다. 특히 여성화장실은 규모를 넓히고 기저귀 교환대, 소지품 선반대 등 편의시설을 확충한다. 새서울 지하도 상가와 을지로 지하도 상가 등은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시설이 낡고 입주상점에 특색이 없어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 5월 서울광장이 만들어지고 보행권 확보차원에서 새서울 지하도 상가 바로 위에 횡단보도가 생기자 지하도를 찾는 발길은 더욱 뜸해졌다. 점포를 비우는 상인들까지 생겨났다. 입주 상인들과 공단이 머리를 맞대고 상가 활성화 방안을 모색했지만 묘수를 찾지 못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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