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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싱크탱크] (14)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세계의 싱크탱크] (14)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21세기 첫 10년간 중국의 부상(浮上)만큼 세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Ezra Vogel) 교수의 이같은 예견은 중국의 부상이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력과 중국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최근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 외교는 동북아시아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중국 외교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로서 ‘국제문제연구소’가 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홍콩 일간 대공보(大公報)는 최근 중국을 이끄는 10대 싱크탱크를 소개하면서 외교 분야에서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중국태평양경제협력 전국위원회,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소 등을 꼽았다. 지난 7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1회 즈쿠(智庫·싱크탱크) 포럼’의 참가 기관들을 토대로 한 것이다. 대공보는 “중국의 국제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갈수록 이 기관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서 국제문제연구소는 외교부 산하 기관이라는 점에서 위치와 역할이 남다르다. 정부 설립후 처음으로 설립된 ‘국가급’ 국제문제 연구소로 24일로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등 국가 지도자들이 설립을 제안했다. 국제문제연구소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외교부와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마전강(馬振崗) 소장은 “연구의 토대가 중국 관방의 소식과 움직임, 믿을 만한 정보”라고 연구소의 특장을 소개했다. 국제문제연구소는 우선 외교부가 의뢰하는 공식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한다.“1년에 5∼6개의 전략성, 종합성, 미래지향적 성격의 대형 연구 과제를 맡는다.”고 한다. ‘향후 15년 중국외교가 직면할 기회와 위기’‘중국에 닥친 국제 경제환경과 대응정책’‘새시대 중국외교의 강화를 위한 이론 체계건설’ ‘평화발전과 중국의 선택’ 등이 그간 주요 과제였다.“최근에는 ‘인도 궐기 문제’나 ‘유럽과의 관계 설정’ ‘에너지 이용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국제문제연구소는 연구 기관만은 아니다.‘외교’를 직접 수행한다. 연구와 정보수집 등 해외교류라는 두가지 역할에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그만큼 현장성이 강하다. 그 중요성은 점점 강조돼 ‘대외연락처’까지 설립했다.2003년에는 ‘국연논단(國硏論壇)’을 만들어 외국 고급 외교관이나 주요 학술기관과의 교류를 본격화하고 있다. 국제문제연구소는 젊은 연구원들을 해외 공관에 내보내 현장에서 직접 연구를 하게 한다. “현장에서 얻은 생생한 정보로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장점”이라고 외교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담당하는 단 1명의 외교관이 본래 업무 외에 가욋일 식으로 동북공정 관련 업무를 하는 것과는 적지 않은 차이다. 해외 주요 공관에 파견된 연구인력만도 30여명이나 된다. 또한 연구소는 경험이 풍부한 퇴직 외교관들을 연구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베이징의 외국 공관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현장에서의 정보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장과 연구간의 조화 못지않게 노장(老壯)간 조화는 연구소의 또 다른 장점이다. 또 매년 국제문제 전문인력을 6∼7명씩 선발해 ‘청년학자 연구포럼’을 꾸려가고 있다. 현재 구성원의 40%가 40세 미만이다. 중국의 대부분 관방 싱크탱크가 그렇듯, 국제문제연구소도 사회에 대한 홍보 및 계도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각종 TV토론 프로그램이나 대언론 접촉 등을 통해 중국 외교에 대한 자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나아가 외국 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다. jj@seoul.co.kr ■ 외교서적·문서 30만건 보유… ‘자료의 寶庫’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국제문제연구소 도서관에는 30만여건의 외교 관련 서적과 주요 문서들이 보존돼 있다.1920년대 ‘중국정치학회’ 시절의 자료와 국민당 정부 당시 외교 문서를 비롯한 각종 국내외 사료 등 중국내에서 국제관계 자료가 풍부한 곳으로 손꼽힌다. 연구소가 갖는 경쟁력 중 하나다. 연구소는 1980년대 초부터 국제 심포지엄 등 다양한 국제교류를 실시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과의 교류는 1985년 시작돼 올해까지 19차례 회의가 열렸다. 한국과의 왕래는 1992년 시작돼 올해 서울에서 15차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북한과는 ‘평화와 군축연구소’와 1988년부터 교류를 해왔다. 다자 교류로는 ▲중·미·일 3자대화 ▲중·미·러 관계 국제토론회 ▲중·러·인도 3국 학자 토론회 ▲상하이합작조직 토론회 ▲중·아프리카 연구토론회 ▲중·유럽 싱크탱크 원탁회의 ▲중·인도·독일 국제안전토론회 등이 있다. 베이징 한복판의 장안가(長安街) 주변에 위치한 연구소는 100년이 넘은 청나라 시절의 옛 오스트리아 공관을 사용하고 있다.‘중점문물보호 건물’로 지정된, 정원이 잘 꾸며진 옛 서양식 건물이다. jj@seoul.co.kr ■ 마전강 소장 인터뷰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외교정책이 싱크탱크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다.” 마전강 소장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중국 외교 정책 수립과정에서 국제문제연구소의 영향력을 물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동안 중국의 다른 종합적 성격의 싱크탱크들이 국가 주요 지도자들에게 몇편의 보고서를 내는지를 소개하며 국가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설명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다.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외교의 속성을 표현한 발언이면서도, 외교관 출신으로서의 조심성과 겸손함에서 비롯된 듯 보였다. 마 소장은 전 영국대사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신문, 잡지의 내용을 분석하지는 않는다. 외교부의 실질적이고 정확한 정보와 재료를 근거로 분석하고 연구한다.”고 말했다. 국가 공식 싱크탱크로서의 자부심을 굳이 숨기지 않은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외교정책의 수립에 있어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은. -중국 외교는 관방(官方)이 결정한다. 우리는 정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외교부와 특수관계에 있다 보니 정보가 많고 정확하며 과학적이다. 중국 외교부의 정책결정 등 업무를 위해 연구를 하지만, 관점은 전적으로 우리의 것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돌발 사건에 대한 순발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예컨대 북한의 핵실험 같은…. -최근 단기성 연구가 많이 중시되고 있다. 중대하고 돌발적인 사건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우는 것이 최근 연구소 개혁의 핵심이었다.2005년에 ‘동태 분석연구센터’가 설립됐다. 돌발 사건에 대한 ‘대처 부대’라 할 수 있다. 물론 연구원들은 이전부터 중·장기 프로젝트 외에 외교 이슈마다 토론을 진행하면서 보고서를 써왔다. ▶보고서는 외교부에 전달되나. 국가지도자들에게는 어떻게 건네지나. -보통 외교부에 전달된다. 그 다음은 모른다. 선택의 여부는 우리 문제가 아니다.(그러나 그는 뒤에 “기밀문서도 생산해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 문서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보는지 안 보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다만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뿐”이라고 했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될까. -6자회담이 유일한 출구다. 그러나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핵은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다. 양국이 서로 양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은 수년전 실질적으로 개혁·개방을 하려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다녀가고 한 것이 다 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 동북아 주변의 긴장이 높아졌고, 김 위원장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사담 후세인이 저렇게 된 것도 핵 무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향후 연구소 운영 방향은. -큰 틀에서 변함은 없다. 중국의 발전이 다른 나라의 희생을 의미하지 않고, 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중국에 대한 일부의 잘못된 이해를 풀고 국민을 국가 외교에 참여시키는 일 등이다. 1940년생인 마 소장은 산둥(山東)성 출신으로 베이징외국어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외교부에 들어가 미국, 영국 등에서 주로 근무했다. 국무원 외사판공실 부주임(차관급) 등을 역임하고 2004년부터 소장직을 맡아왔다. jj@seoul.co.kr
  • “절망의 산을 토막내 희망의 이정표 세우자”

    “절망의 산을 토막내 희망의 이정표 세우자”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내 희망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 중) “모든 이의 존엄과 인간됨이 존중받고 미국의 약속이 누구에게도 부인되지 않는 날이 오도록 우리는 계속 힘써야 합니다.”(조지 W 부시 대통령) “인간의 마음이 진짜 싸움터로 변할 때 시민 불복종은 자살폭탄보다 훨씬 큰 호소력을 갖습니다.”(빌 클린턴 전 대통령) 흉탄에 스러진 지 38년이 지나서야 평생을 민권운동에 헌신한 그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관의 첫 삽이 떠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기념관인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 기공식이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내셔널몰에서 13일(현지시간) 성대히 열렸다고 CNN이 전했다. 주요 방송들은 이를 생중계했고 뉴욕, 휴스턴 등 주요 도시에선 추모 행사와 콘서트가 잇따랐다. 이날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쌀쌀한 날씨에도 5000여명이 “한 위대한 인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부시 대통령) 기념관 기공식을 지켜 보았다. 생전의 그와 함께 투쟁했던 앤드루 영·제시 잭슨 목사,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차기 대선 출마가 유력한 바락 오바마(민주·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등이 눈에 띄었다. 암살 40주기인 2008년 봄 완공 예정인 기념관은 포토맥 강변의 링컨 기념관과 인공호수 건너편의 제퍼슨 기념관을 일직선으로 연결할 때 한 가운데인 호숫가에 들어선다. 유명한 워싱턴 기념비에서 남서쪽 방향이며 한국전쟁기념관 바로 뒤쪽이다. 이곳은 1963년 ‘직업과 자유를 위한 평화대행진’을 마친 킹 목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 중 하나로 꼽히는 ‘나에겐’을 외쳤던 바로 그 장소다. 부시 대통령은 “알맞은 장소에 기념관이 들어서게 돼 미국의 약속을 선언한 이들, 이를 지키려 노력한 이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96년 기념관 건립안에 서명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가 있음으로 해서 더 정의롭고 품위로워진 수많은 미국인들의 가슴과 마음에 기념관이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역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총 공사비 1억달러(약 940억원) 가운데 6500만달러는 의료기기업체 토미 힐핑거, 제너럴 모터스 등 대기업과 수많은 개인들로부터 모금됐다. 영화제작자 조지 루카스, 전직 국무장관들인 콜린 파월·잭 발렌티 등도 참여했다고 영국 BBC는 소개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캐롤린 잭슨은 18세때 사람들 틈에 끼어 ‘나에겐’ 연설을 들었다며 “킹 목사 때문에 내셔널몰에 발을 다시 들이게 될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감격했다. 그녀는 “시민권 투쟁에 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HAPPY KOREA] 경남·울산 마을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경남·울산 마을 주민활동 탐방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격언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지역개발사업에서는 흔히 협력보다는 갈등이 번지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주민들은 행정기관이나 외부단체와 협력을 우려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행정기관과 외부단체는 주민들의 우려를 ‘고집불통’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협력으로 상생의 원리를 배워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 울산 울주군 서생면 화산리 맑은내배꽃마을,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사이버타운 등을 찾아 협력의 중요성을 되짚어봤다. 1. 밀양 연극촌 경쟁력 ‘쑥쑥’ 밀양 연극촌은 연극을 테마로 한 ‘국내 유일’의 마을이다. 월산초교가 폐교된 직후인 1999년 밀양시는 연극단체인 연희단거리패에 5000평의 학교 부지와 건물을 무상임대했다. 연희단거리패는 여기에 공연장과 연습실 등을 꾸미고,2000년부터 매주 토요일 ‘주말극장’을 열어 연극 마니아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듬해부터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여는 등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밀양연극촌은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이사장을, 이윤택 전 국립극단 예술총감독이 예술감독을, 밀양백중놀이 기능보유자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68호인 하용부씨가 촌장을 맡는 등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또 50여명의 연극인이 상주하며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말극장을 찾는 관람객만 평균 200여명 수준으로, 웬만한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극장이 부럽지 않다. 연간 방문객은 5만∼6만명에 이른다. 하 촌장은 “방문객이 늘었지만, 아직은 적자를 면치 못해 외부공연 등으로 운영비를 충당한다.”면서 “하지만 연극인으로서 마음껏 재능을 뽐내고, 일반인들에게 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로는 서서히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밀양연극촌은 행정기관과 민간단체가 협력으로 일궈낸 성공사례다. 다만 지역주민들과 연계한 프로그램은 빈약하다. 하 촌장은 “지역주민들과 협력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포장을 할 줄 모른다.”면서 “그런 사람이 와서 도와줬으면 좋겠는데….”라며 아쉬워했다. 2. 맑은내배꽃마을 역할분담 행정기관과 민간단체가 손을 잡고, 주민들까지 끌어들여 꿈을 키워나가는 곳도 있다. 70가구 220명의 아담한 시골동네인 울주 맑은내배꽃마을에는 올초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울주군은 이곳을 농촌체험마을로 꾸미기 위해 ㈜코엑스포라는 기획업체와 협약을 맺었다. 코엑스포는 마을 이름을 화산마을에서 현재 이름으로 바꾸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도시민을 상대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이광복 마을 운영본부장은 “소득 분배의 투명화로 갈등요인을 차단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지난 9월 문을 열자 한달만에 1만2000명이 다녀갔다. 참가비와 생산품 판매로 1억원의 수익도 올렸다. 농산품 판로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마을 주산품인 배의 절반 이상을 체험객들이 구입했다. 올해 말까지는 모두 2만명이 예약되어 있다. 체험마을 안내요원 등으로 13명을 채용해 고용 창출효과도 내고 있다. 이같은 초기 성공은 부산·울산지역의 유일한 체험마을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한몫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주민들은 생산·판매, 외부단체는 프로그램 마련, 행정기관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 분담’이다. 여기에 울주군은 마을과 500m 가량 떨어진 명산초교를 울산지역 유일의 영어학교로 지정하는 한편, 이웃 외고산옹기마을이나 간절곶 등과 연계한 개발계획도 추진한다. 이 본부장은 “지금은 구멍가게, 민박집 하나 없지만 귀농을 유도해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면서 “다만 농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를 한데 묶어줄 인적·조직적 네트워크는 없는 만큼 정부 차원의 보완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3. 진주 사이버타운 특화 집중 밀양연극촌이나 맑은내배꽃마을처럼 모든 동네가 ‘홀로서기’가 가능할 만큼 자체 경쟁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지닌 것’보다는 여전히 ‘없고 불편한 것’이 많다. 때문에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일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반성면을 비롯, 일반성면, 진성면, 사봉면, 지수면 등 5개 면에서는 1999년부터 정보화 기반 지역개발사업인 ‘사이버타운 프로젝트’가 추진됐다.2001년부터 조성된 정부 주도의 정보화마을에 앞서 행정기관의 도움 없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역단체인 진주농촌정보문화연구회의 주도로 진행된 민간 차원의 농촌정보화운동이다. 이제는 정보화 관련 영농조합까지 운영할 정도로 기반을 다졌다. 황인철 진주농촌정보문화연구회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다고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며,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각각의 마을이나 동네가 갖고 있는 장점을 한데 묶어 특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중”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사봉면은 지방공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 일자리 창출에 유리하고, 진성면은 과학고와 체육고 등이 자리잡고 있어 교육을 특화할 필요가 있다. 또 연간 7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경남수목원과 정수예인촌이 조성된 이반성면과 오일장이 열리는 일반성면은 외지인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투입요소는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확대재생산돼야 한다.”면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가 자칫 구체적인 성과는 없이 지역간 위화감만 조장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 밀양·울주·진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남해 가천다랭이마을 성공사례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다랭이마을은 농촌체험마을로 ‘대박’을 터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험마을을 시작한 2002년에 방문객은 20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는 벌써 17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60가구 150명의 주민이 벌어들이는 한해 수입은 모두 합쳐 1억 5000만원이 고작이었으나, 지금은 5억원가량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마을 이웃에 펜션 등을 지으려는 사람들까지 몰리면서 땅값은 50∼100배나 올랐다. 성공 비결은 마을 고유의 다랭이논을 특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다랭이논은 비탈지를 계단 형태로 깎아 만든 논(다랑이논)을 일컫는 사투리로, 다락논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다랑이논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거의 유일한 해안가 마을인데다, 다랭이에 대한 상표권까지 확보해놨다. 또 방문객들이 먹고 자기 위해 쓰는 돈 말고도, 방문객들이 현장에서 사갈 수 있는 마늘 등 맞춤형 농작물을 재배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가천다랭이마을은 이제 살기 좋은 지역이 됐을까. 오히려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람냄새 나는 마을이 상혼만 판치는 관광지로 둔갑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싹트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한 문제점도 쏟아냈다. 마을을 들어서면 온통 콘크리트로 덕지덕지 바른 길과 시멘트 담장뿐이다.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정취가 느껴지던 돌담길은 온데간데 없다. 마을터가 경사지에 위치하다 보니 가파른 마을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주민의 상당수는 관절염 환자라고 한다. 현행 기준대로라면 주택의 90% 이상이 불법 건축물일 정도로 주거환경도 열악하다. 또 마을 앞 바다는 해삼·전복·미역·갈치 등 어족자원이 풍부하지만, 배를 댈 방파제와 선착장이 없어 생선은 시장에서 사먹어야 한다. 이웃마을의 선착장을 이용하려 해도 만만치가 않다. 주민들은 ‘달빛에도 논이 마른다.’고 말할 정도로 주민들의 주업인 농사가 잘 될 리도 만무하다. 김주성(50) 이장은 “도시민들이 살고 싶다는 문의전화를 많이 하지만, 텃밭만 가꿔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방문객이 늘기만 기다린다면 마을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공감대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있다. 김학봉(61)씨는 “마을을 가꿔나가려면 상인이 아닌 주민, 그것도 젊은이들이 들어와야 한다.”면서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동 생산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구획정리로 주변환경과 어울리는 주택을 짓는 것은 물론 폐교도 대안학교로 조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대세(70)씨도 “처음에는 소득을 높이는 데만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우수한 자연자원이 훼손되지 않도록 상업화를 경계해야 할 시기”라면서 “마을 뒷산인 설흘산과 응봉산 등을 찾는 등산객도 많지만,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 훼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해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년 하이라이트(9라운드)] 거대한 흑집 장만에 성공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년 하이라이트(9라운드)] 거대한 흑집 장만에 성공

    이제 9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생존 기사는 단 10명뿐이다. 김지석 3단은 1라운드 때 강동윤 5단에게 패한 뒤 파죽의 7연승을 거두고 7승 1패를 기록중이다. 한편 서건우 3단은 7라운드 때 2패째를 당한 뒤에 8라운드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인 박영훈 9단을 물리쳐서 탈락시키며 서바이벌에 성공하고 있다. 장면도(77∼78) 좌하귀 눈사태 정석의 결과는 원래 좌변은 흑이, 하변은 백이 차지하는 갈림이다. 그런데 김지석 3단이 백진 한복판에 쳐들어와서 욕심 사납게 잡혀 있던 흑돌을 살리고 거꾸로 백돌 여섯점을 잡겠다고 나섰다. 흑77로 한칸 뛰어서 하변 흑돌이 무사하게 탈출한다면 흑의 목표는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러려면 백78의 붙임수라는 어려운 숙제를 잘 풀어야만 한다. 실전진행(79∼89) 흑돌의 약점과 백의 주변 세력을 감안하면 흑이 외곽으로 탈출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김 3단은 흑79부터 교묘한 수순으로 89까지 안에서 사는 데에 성공했다. 백에게 막강한 세력을 내주었지만 좌변에서 하변에 이르는 거대한 흑집을 감안하면 흑의 우세가 확실해졌다. (참고도) 실전진행 수순 중 흑85로 본도 1에 나가도 괜찮을 것 같지만 이것은 지나친 욕심으로 백14까지 흑의 파탄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주말 본사 앞마당에서 ‘아름다운 가게’열려

    서울신문이 나눌수록 아름다워지는 세상 만들기에 동행합니다.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은 아름다운 가게와 더불어 오는 11일(토) 오전 11시 본사 1층 앞마당에서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아름다운 가게를 개최합니다. 아름다운 가게(대표 박원순)는 각종 기증물품을 저렴한 값에 판매하고 판매수익금 전액을 자선과 공익에 사용함으로써 나눔과 순환을 실천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행사는 한국퀄컴㈜과 한국언론재단,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공동 후원합니다. 장터에서는 서울신문, 스포츠서울은 물론 한국언론재단,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원 등이 내놓은 5000여점이 일반에 판매되며 문예작품 등 희귀 소장품도 특별경매에 부쳐질 예정입니다.11일 첫 행사에는 프로축구단 전남 드래곤즈의 허정무 감독, 인기 탤런트 한지민씨,KBS 성세정 아나운서가 일일점원으로 나섭니다. 서울시청과 청계천을 잇는 서울 태평로 한복판에 위치한 ‘서울신문과 함께하는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는 앞으로 정부 기관, 공기업, 기업체,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정치인, 연예인, 문화예술인들도 함께하는 주말의 볼거리가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참여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 주관 : 서울신문사·스포츠서울21 ■ 후원 : QUALCOMM’·한국언론재단·한국방송광고공사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 Out] 전직 대통령의 품위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 Out] 전직 대통령의 품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현역 정치인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현역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제는 부산을 찾아 국제 교통·물류 박람회(ESCAP)에서 기조연설을 했고,14일에는 충남 공주를 방문해 ‘민족의 운명과 우리 교육’을 주제로 특강할 예정이라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무색케 할 정도다.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DJ는 아예 현실 정치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달 고도의 정치적 발언(여당의 비극은 분당에서 비롯됐다)과 정치적 고향인 목포 방문(28∼29일)을 통해 현실 정치 참여의 사전 정지작업을 끝낸 DJ는 현직 대통령과의 동교동 사저 회동이란 헌정 사상 초유의 이벤트로 정가, 특히 여권을 확 뒤집어 놓았다. 자연히 정계개편의 주도권은 DJ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정계개편 동력은 김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의 발언은 이를 여실히 방증한다. 김 의원은 여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맥으로 정치권 기류 읽기에 능한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DJ는 왜 전직 대통령이란 울타리를 뛰어넘어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는 것일까. 우선 북한 핵실험 이후 존폐 위기에 처한 햇볕정책의 존속이 1차적 과제일 것이다. 만약 햇볕정책이 용도폐기될 경우 ‘남북 평화공존 시대’를 연 자신의 업적이 크게 훼손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햇볕정책의 과실인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DJ다. 이는 곧 정권 재창출 논리의 근거가 된다.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바뀔 경우 햇볕정책은 상당부분 수정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따른 공과(功過)도 심층 해부될 게 뻔하다. 보수진영으로의 정권 교체만은 막아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다음으론 자신이 결단코 지켜내야 할 햇볕정책의 또다른 과실이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국민의 정부 당시 대북 지원의 세세한 항목과 곁가지는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완전히 드러나 있지 않다.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돼 이 대목까지 낱낱이 까발려질 경우 그 후폭풍은 매머드급일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도덕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DJ로서도 이런 것들을 지켜내야만 하는 절박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한 호남의 절대적 영향력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은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현실 정치에 지나치게 발을 담그고 있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언제까지 DJ인가.’에 다름아니다. 더욱이 상당수 국민들은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 원로 중에 원로다. 현실 정치 개입보다는 국민통합과 민초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이 ‘상왕(上王)’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DJ의 우산’ 속에 안주하려는 정치인들도 문제다.DJ를 극복하지 않고는 더 나은 발전이 없다는 점을 정치권의 구성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jthan@seoul.co.kr
  • [사고] 아름다운 가계 엽니다

    서울신문이 나눌수록 아름다워지는 세상 만들기에 동행합니다.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은 아름다운 가게와 더불어 오는 11일(토) 오전 11시 본사 1층 앞마당에서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아름다운 가게를 개최합니다. 아름다운 가게(대표 박원순)는 각종 기증물품을 저렴한 값에 판매하고 판매수익금 전액을 자선과 공익에 사용함으로써 나눔과 순환을 실천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행사는 한국퀄컴㈜과 한국언론재단,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공동 후원합니다. 장터에서는 서울신문, 스포츠서울은 물론 한국언론재단,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원 등이 내놓은 5000여점이 일반에 판매되며 문예작품 등 희귀 소장품도 특별경매에 부쳐질 예정입니다.11일 첫 행사에는 프로축구단 전남 드래곤즈의 허정무 감독, 인기 탤런트 한지민씨,KBS 성세정 아나운서가 일일점원으로 나섭니다. 서울시청과 청계천을 잇는 서울 태평로 한복판에 위치한 ‘서울신문과 함께하는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는 앞으로 정부 기관, 공기업, 기업체,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정치인, 연예인, 문화예술인들도 함께하는 주말의 볼거리가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참여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 주관 : 서울신문사·스포츠서울21 ■ 후원 : QUALCOMM’·한국언론재단·한국방송광고공사
  • [2008 베이징올림픽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4) 일본을 배우자

    [2008 베이징올림픽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4) 일본을 배우자

    |도쿄 이춘규특파원|1970년대부터 국제 체육무대에서 주춤하던 일본의 ‘국제경기력’이 최근 급격히 향상되고 있다. 첨단스포츠과학을 통한 경기력 향상과 스포츠 상업주의를 도입,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 입상자에게 당근 정책을 강화하면서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5개에 그쳤던 일본의 금메달 수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6개로 늘어나 국제 스포츠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의 엘리트체육 정책 부활이 주목을 끈다. 우선 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지난 2001년 “10년 뒤 올림픽 메달 수를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토대로, 메달유망 종목에 강화자금을 중점 배분하기도 했다. 과학적 훈련기법 도입과 함께 선수와 감독 등을 자극하는 당근책을 병행, 구사한 것이다. 일본 체육 과학화의 선두에는 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가 서있다. 이곳은 도쿄시내 한복판에서 전철로 2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접근이 편리하다. 주택과 각종 민·공영 연구소 등과도 이웃해 있는 등 시민들의 생활 공간 속에 위치, 선수들이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다. 도쿄 북구에 위치한 JISS는 지상 7층, 지하 1층의 웅장한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에 축구장과 테니스장이 있다.6일 낮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대비, 대규모 옥내·외 국립트레이닝센터(훈련장)를 국립스포츠과학센터 옆 부지에 건설하고 있었다. 이 훈련장과 추가 숙박 시설이 2007년까지 완공되면 우리의 태릉선수촌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말 그대로 이 지역의 체육시설이 일본 엘리트체육의 종합산실이 되게 된다. 일본 체육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담당하는 JISS는 스포츠 과학화의 첨단을 보여 주었다. 모든 훈련시설에는 전자인식카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했다.7층 식당에는 합숙과 출·퇴근하는 선수들이 영양사의 지도 아래 한 끼 1000엔(약 8000원)짜리 식사를 했다. 센터 5∼6층은 선수들의 합숙용 숙소가 80실이 있다.76개가 1인실. 합숙소는 ‘저산소시설’이 가동중이었다. 고지적응이나 경기막판의 적응력 강화를 위해서다. 4층 체육관에서는 미국 배구 대표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옆 체조훈련장에서는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요네다 등 10여명이 몸풀기 운동을 했다.3층 정보서비스실에서는 컴퓨터로 관련경기 등 각종 스포츠정보를 30여개의 개인용 컴퓨터에서 언제든지 검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1층 클리닉은 대표선수나 경기단체 소속 선수들만 이용이 가능하다. 건강진단이나 체크를 수시로 한다. 지하 1층의 수영장도 천장과 벽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돼 선수들의 자세교정에 활용되게 했다. 싱크로나이즈 연습장은 대표팀 강화위원장이 두 선수에게 실전과 이론지도를 하고 있다. 테니스장과 수영장은 주민에게 개방된다. 실제 JISS를 이용, 합숙훈련하며 과학적 데이터를 활용해 효과를 거둔 경기단체가 늘고 있다. 시드니올림픽까지 2개 대회 연속 메달이 없었던 체조는 JISS의 일부를 1년간 전세내 과학적으로 훈련하고, 막판 3000만엔 이상의 강화자금을 쏟아부은 결과 아테네올림픽에서 남자 단체 종합의 금메달로 연결된 것으로 해석됐다. 스포츠과학화와 함께 일본 체육의 부활에는 선수들이 생계 걱정없이 경기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며 상업주의가 도입된 것도 중요한 힘이 됐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실제 아테네올림픽 유도 여자 48㎏급에서 우승한 다니 료코(도요타자동차)는 5명의 연습상대를 대동하는 등 1000만엔(약 8000만원)의 프로선수와 유사한 돈이 투자됐다. 비용은 모두 도요타자동차가 부담했고, 그녀는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도 했다. 전에는 경기단체가 특정선수를 지원했으나 이제 특정 선수가 특정 기업이나 단체의 재정지원을 받아 활동할 수 있도록 상업주의가 용인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JOC는 스포츠스타의 TV광고 출연도 용인했다. 선수 개인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허용, 금전적 부담을 덜어 주어 훈련에 집중하려는 취지에서다. taein@seoul.co.kr ■ ‘학교체육의 힘’ |도쿄 이춘규특파원| 일본이 스포츠강국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자산은 육상, 수영 등 기초체육 종목의 힘이다. 이들 종목은 막대한 시설투자를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육성되고 있다. 정부차원의 체육시설 정비도 활발하다. 일본 문부과학성 관계자에 따르면 2005년도 현재 일본 초등학교 2만 2856 개교 가운데 86.8%인 1만 9838개교에 병설 수영장이 있다. 일선 학교는 이런 수영장을 이용, 모든 학생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으며 학내 수영대회를 통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발굴, 육성하게 된다고 도쿄도내 A중학교 교장이 밝혔다. 이 학교는 교내 체육대회와 마라톤 대회를 매년 열어, 학생의 체력을 기르고 잠재능력이 있는 선수를 조기발굴한다. 일선 중·고등학교에서는 체육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학교생활기록에 반영돼, 반의무적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남학생용 동아리는 연식정구, 농구, 탁구, 축구, 육상 등이 각각 7000여개 안팎이고, 여학생은 배구, 테니스, 육상 등이 성하다. 지역별 차가 있다. 또 평생스포츠사회 실현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학교체육시설 정비를 촉진중이다. 지방공공단체 또는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수영장과 체육관 등 체육시설에 대해서는 문부과학성이 보조를 하고 있다. 아울러 학교체육시설을 지역주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시설개방에 필요한 야간조명시설, 클럽하우스를 정비하는 것도 정부가 보조하고 있다. 이런 스포츠 활동은 문부과학성이 2000년 9월 ‘스포츠진흥계획’을 책정,2009년까지 달성을 목표로 시행되고 있다.▲평생스포츠사회의 실현 ▲10년내 4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광역스포츠센터 설치 ▲스포츠지도자 양성과 확보 ▲스포츠정보의 충실 제공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에 따라 수영장, 운동장, 체육관 등 일본 전국의 스포츠시설은 25만 5000여개소다. 그 가운데 학교체육시설이 15만 8000여개소이고, 나머지는 공공스포츠시설(6만 5000개소), 민간스포츠시설(3만 2000여개소-문부과학백서 종합)이다. 다만 학교의 통·폐합 등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taein@seoul.co.kr ■ “모든 지방자치단체마다 1개 스포츠센터 목표” |도쿄 이춘규특파원|유진환 주일 한국문화원장은 일본이 스포츠 강국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좋은 시설들을 이용, 체육을 평생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사회·생활체육의 저변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체육의 저변이 정말 강한가. -고교야구 팀만 해도 4200여개가 넘는다. 저변이 매우 강하다. 우리나라(56개팀)와 비교된다. 일본의 경제력은 우리보다 10배 가까이 크다. 그런데 기반체육시설은 차가 더 크다. ▶정책면에서 우리와의 차이는. -우리는 국위를 선양하기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엘리트체육에 치중했었다.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은 그리 오래 안됐다. 일본은 20여년 전에 주5일제가 도입됐다. 한국과 일본의 주5일제 도입시기 차이만큼 스포츠 시설의 차이가 난다. ▶일본 체육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일본에서는 스포츠가 사회교육장의 일환이다. 평생교육센터로서 체육을 많이 활용한다. 도쿄 메구로구에 있는 한 스포츠클럽은 건강증진은 물론 여가활용뿐 아니라 지역주민과의 교류, 사회교육의 장이 된다. 이용자격을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초심자에서 상급자까지 구분하지 않는다. 종목도 탁구, 테니스, 육상, 수영 등을 두루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연령층과 수준의 사람이 같이 교류하는 장으로서 지역통합스포츠클럽이 활용된다. ▶국가 체육시설의 활용도는 어떤가. -도쿄도 세다가야구에는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쓰던 경기 시설들이 지금은 일반생활체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러 경기시설을, 일반시민들에게 개방한다. 국가체육시설을 지역주민의 체육시설로 활용하는 것이다. ▶스포츠 과학의 수준은. -국립스포츠과학센터는 시설도 훌륭하고, 전반적으로 스포츠과학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발달해 있다. ▶지역통합스포츠클럽의 상황은. -기초단체(대통합으로 3281개서 3월 현재 1821개)에 1개 이상의 지역통합스포츠센터를 만드는 것이 문부과학성의 목표다. 거의 육박해 있다. 경영에도 민간기법을 도입, 이용자를 늘리는 등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 체육 수준은.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이 앞서가는 추세였다. 최근 일본이 국제경기력 향상을 도모,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는 비약적으로 약진했지만 동계올림픽 성적은 좋지 않아 한국에 ‘비법’을 배우려 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조선통신사행렬 242년만에 도쿄 재현

    |도쿄 이춘규특파원|17세기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간 문화·외교 교류의 첨병역할을 했던 조선통신사의 웅장한 행렬이 29일 낮 일본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재현됐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쓰시마와 오사카, 우시도마 등에서 재현된 적은 있으나 통신사의 최종 목적지로 에도막부가 있던 도쿄에서 재현되기는 처음이다. 또 1764년 조선통신사가 에도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 242년 만이다. 지난해 10월 ‘한·일 우정의 해’를 기념해 같은 장소에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가 계획됐으나 폭우 때문에 무산됐다. 일본의 전통예술 축제인 ‘제34회 도쿄 니혼바시 퍼레이드’의 첫 외국 손님으로 선보인 이날 행렬은 많은 도쿄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과거 통신사가 에도성을 향해 건넜던 관문인 니혼바시를 통과,30여분 동안 행진했다. 선도기를 따라 취타대, 국서 가마행렬, 정사행렬, 수행행렬로 이어진 조선통신사 행렬에는 현지 유학생 등 150여명이 참여, 옛 모습을 재현했다. 특히 행렬의 중심인 정사(正使)역에는 1711년 정사였던 조태억 성균관 대사성의 후손인 조동호(72)씨가 맡아 의미를 더했다.taein@seoul.co.kr
  • ‘돌아온 태화강’ 시민 휴식처로 각광

    ‘돌아온 태화강’ 시민 휴식처로 각광

    ‘강물에는 고기들이 펄떡이고 강변에서는 시민들이 뛰고….’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난 울산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태화강으로 물고기에 이어 시민들도 돌아왔다. ●물 맑아지자 시민 몸·마음도 건강해져 5∼10년 전만 해도 악취가 풍겨 찾는 시민이 거의 없었던 태화강이 시민들의 웰빙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오·폐수를 차단하고 준설로 강바닥을 청소해 상시 2급수 수준의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며 대숲공원을 비롯해 다양한 생태환경을 조성하자 고기뿐 아니라 시민들도 강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특히 강남쪽 중구 강변 대숲을 따라 태화동∼다운동 사이에 조성해 놓은 5.5㎞에 이르는 너비 4∼6m의 강변도로는 울산에서 가장 인기있는 산책·조깅 코스가 됐다. 삼호교에서 끝났던 길을 올들어 다운동 척과천 하류까지 1.4㎞를 연장해 개설하고, 뛰거나 걸을 때 무릎 등 관절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길 전체를 우레탄으로 포장했다. 40m 간격으로 놓여 있는 가로등이 밤을 환하게 밝혀 이 강변 길은 퇴근 무렵부터 밤 늦게까지 가족·이웃끼리 어울려 걷거나 뛰는 사람으로 붐빈다. 오가는 사람끼리 부딪치지 않도록 길 가운데 중앙선을 표시해 달라는 건의도 있다. 뛰면 1시간, 걸으면 2시간쯤이면 왕복 할 수 있다. 시민들은 물고기가 펄떡펄떡 뛰는 강물과 푸른 대숲을 보며 강변길을 걷거나 달리면 마음이 상쾌해져 스트레스가 풀리고 지루한 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조기수 울산시 환경국장은 “태화강이 맑은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난 덕분에 시민들의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쪽 시민들 위해 부교설치 시는 2만 7000여평에 이르는 태화강변 대숲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지난 2004년 말 개장했다. 대숲 공원옆 콘크리트로 된 강둑 1.4㎞를 걷어내고 각종 수생식물·꽃·수풀 등이 우거진 생태둑으로 바꾸었다. 둑 위로는 조깅도로를 만들었다. 태화강 남쪽 주민들도 강 건너편 대숲공원과 조깅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강 양편 중·남구를 잇는 보행전용 부교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대숲 주변 13만여평의 태화들(현재 각종 농작물 재배)을 국·시비 852억원을 들여 편입한 뒤 강변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계획이 완성되면 태화강 대숲과 산책길을 찾는 시민들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태화강 생태 하천 및 공원 조성 등의 성공사례는 환경정책의 교과서가 돼 전국 자치단체·의회·환경관련단체 등의 견학이 줄을 잇고 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는 어딜 가나 길이 있다. 하얀 포플러 줄기가 끝없이 가로수가 되어 길을 잇고 길을 만든다. 실크로드의 길이다. 그리고 길에는 사람이 있고 양떼가 가끔씩 길을 메운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떠나 대상들이 지쳐버릴 때쯤 나타나는 오아시스의 도시가 비슈케크다. 중앙아시아의 지붕인 천산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풍요와 설렘의 길이다. 3개월은 족히 걸렸을 실크로드 길을, 비행기로 5시간 반 만에 비슈케크에 도착한 것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소비에트 시절 뚫어 넓은 길에는 마로니에 낙엽이 나부끼고 하얀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는 노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인상은 우리와 매우 닮았다는 친근감이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 이웃의 다른 투르크계 사람들보다도 훨씬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해맑은 웃음을 싱긋 건네는 아이들의 웃음은 석류보다도 눈부시고, 포도만큼이나 싱그럽다. 다음날 날이 밝자 무작정 시내로 걸어나왔다. 소비에트 시절의 계획도시답게 인적도 드문 길은 사통팔달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시내 중심가 관공서 건물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단층으로 된 초라한 벽돌집이다. 키르기스스탄이 오랜 소련연방 통치를 벗어나 독립한 것은 1991년. 그렇지만 공산당 출신의 아스카르 아카예브가 초대 대통령이 되어 독재권력을 유지한 결과, 지난해에는 민중혁명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서방화를 꾀하며 3000명가량의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꿔보지만, 이웃 강국인 우즈베키스탄의 위협과 자원의 제한으로 삶의 질은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흉노 역사를 밝힌 노인 울라가 발굴한 유물 처음 찾아보는 이 나라의 역사와 과거를 더듬어 보기 위해 습관처럼 역사박물관부터 들렀다. 시내 한복판 대통령궁 옆의 역사 박물관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직원들 몇 사람만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시절의 홍보 전시관 같은 2층을 지나 3층에는 키르기스의 역사시대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3층 난간에는 투르크 시대 석상들을 초원에서 옮겨 놓았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연상시키듯이 7∼8세기 무덤을 지키던 수호신상들이다. 원래 유목전사들은 죽으면 화장을 했다는데,10세기 이후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매장관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석상들의 오른손은 물그릇을 들고, 왼손은 칼을 들고 있다. 물을 마시면서 칼을 잡던 돌궐시대 유목전사들의 맹약의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놀랍게도 흉노역사를 세상에 알린 노인 울라의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1924년 러시아 지리학회 소속의 코즐로프 탐험대가 212개의 고분을 발굴하게 되는데, 그 중 상당수가 기원 전후 흉노귀족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직도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2000년 전 인류최초의 카펫을 바라보는 감동은 표현할 길이 없다. 그밖에도 각종 금속제품과 펠트 위에 아플리게 기법으로 장식한 수공예품 등을 보며 책에서만 읽었던 흉노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을 혼자서 만끽했다. 키르기스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의 현장을 호흡하기 위해 대시장인 오쉬 바자르로 달려갔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찾아 온 상인들이 눌러 앉아 장사를 해 오던 곳이다. 빼곡히 들어선 가게 사이 길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길을 걷는다기보다는 인파에 떠밀려가는 느낌이다. 인구 100만의 키르기스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다. 좁은 골목 길마다 각기 다른 물품들이 줄을 잇고, 거대한 삶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오쉬 바자르에서 만난 고려인 아주머니 없는 것이 없단다. 코너를 돌 때마다 과일, 공산품, 토산품, 수입 잡화, 음식점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전통 모자다. 염소 털로 곱게 짜서 금실로 수를 놓은 칼팍이라는 모자는 키르기스 남성들의 명예와 존재의 상징이다. 처음 뜨거운 목욕탕에서 머리의 열기를 보호하기 위해 썼다는 칼팍이 이제는 모든 공식행사나 축제 때 빠질 수 없는 전통 모자가 됐다. 식품코너에서는 어김없이 하얀 김치가 등장하고, 고려인 아주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손님을 맞이한다.“안녕하세요.”란 말에 대뜸 “코리아에서 왔수까?”라는 질문과 함께 표정이 달라진다. 먼 길을 찾아온 서울 한국 손님에게 좌판 한 구석을 가리키며 앉아서 김치국시 한 그릇 말고 가란다. 이곳에도 1만 8000명가량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에서 시작된 스탈린에 의한 한국인 강제이주의 한과 핏줄에의 강한 집착은 이처럼 중앙아시아 전역에 슬픈 역사를 남긴 채 이어지고 있었다. 양고기 꼬치구이인 샤슬릭 두 줄에 모처럼 고향의 맛이 담긴 국시 한 그릇을 비우고 40숨을 주었다. 그래야 우리 돈 1000원 남짓한 값이다. ●아타 베이릭 학살 현장에서 서서…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천산산맥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비슈케크에 온 김에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바깥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타 베이릭 학살기념관이다.1938년 11월15일,138명의 키르기스 지식인들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채 매장된 엄청난 사건의 현장이다. 당시 공산정권에 협조를 거부한 작가와 교수, 민족지도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비밀리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 끝에 모두 처형당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행해진 세기의 학살은 우연히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한 농부의 몫으로 남는다. 농부는 임종을 앞두고 가슴에만 품고 있던 그 비밀을 18살의 딸에게 전하고, 조국이 독립을 쟁취하는 날 이 사실을 알리라는 유언을 남긴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자주독립을 선포한 후, 이미 70대의 노파가 된 딸이 이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릴 뻔했던 잔혹한 역사가 빛을 본 것이다. 홀로 묵념하고 서서 조용히 감회에 젖어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관리인 할아버지가 희생자 중에는 한국인 2∼3명이 들어있다며 자료를 들쳐주었다. 윤상신·강태주 같은 이름이 분명하다. 연해주에서 겨나 낯선 땅에서 정치적 희생이 되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을 원통함과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그들의 영혼에 한 줌 간절한 위안을 실어 보낸다. 길거리에서 만난 비슈케크 시민들은 반갑게 눈웃음을 보낸다. 남자들은 칼팍 모자를 쓰고 여성들은 면화로 된 편안한 점박이 치마를 입었다. 놀랍게도 이곳 주민들의 거의 8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음에도 차도르를 쓴 여성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이슬람 국가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 모스크도 찾을 길 없었다.120년 가까운 소비에트의 점령 하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변질을 강요당했고, 이슬람 문화는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금요일 주일 예배가 열리는 날, 비슈케크에서 몇 안되는 모스크를 힘들게 찾아보았다. 오후 1시쯤 예배하러 몰려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젊은 남성들이었다. 독립한 지 이제 겨우 15년. 조금씩 잃어버린 종교와 전통을 찾아가는 비슈케크 시민들의 발길에서 희망을 읽었다.
  • 24일 기온 3~5도

    22∼23일 가을 가뭄을 해소하는 비가 전국적으로 내린 가운데 24일부터는 비가 그치고 기온이 뚝 떨어진다. 비가 내리기 전보다 3∼5도가량 낮아질 듯하다.하지만 그래도 지난 30년 평균치보다는 1∼3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22∼23일 강릉 226.0㎜를 비롯, 속초 182.5㎜ 등 강원 영동 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다른 지역에도 비교적 많은 비가 내렸다. 전남 완도에는 52.0㎜, 서울 21.5㎜, 춘천 32.5㎜, 여수 51.5㎜의 비가 왔다. 기상청 관계자는 “비가 내린 뒤 10월 하순에는 기온이 크게 낮아져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일 것”이라면서 “서울지역 역시 점차 기온이 낮아져 오는 30일 아침기온이 7도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을의 한복판으로 접어드는 11월 상순과 중순에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아 맑고 건조한 날이 많겠다. 하지만 기온은 여전히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비가 내리기 전 ‘이상고온’이라고 할 정도로 기온이 높았기 때문에 비가 내린 뒤 갑자기 3∼5도가 낮아지면 10월 하순은 더욱 춥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닛산 ‘게릴라 티저 마케팅’ 화제

    닛산 ‘게릴라 티저 마케팅’ 화제

    이달초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마당에는 독특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사람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광장 한복판에) 시커먼 대형 상자가 가로놓인 것. 겉면에는 ‘10월17일, 상상을 넘어서다.’라고만 적혀 있다.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상자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구불구불한 도로가 옆에 펼쳐진 것으로 보아 자동차와의 연관성만 막연히 짐작할 따름이다. 상상을 넘어선다는 ‘D-데이’ 전날밤, 마침내 상자가 벗겨졌다. 드러난 것은 ‘신형 인피니티 G35’ 승용차. 일본의 자동차회사 닛산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인 새 모델이다. 엔진과 차체를 완전히 바꾼 풀 체인지 모델로, 출시 전부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신차다. 공식 수입·판매원인 닛산코리아의 손창규 전무는 “신비감을 증폭시켜 신차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이 주효했다.”며 만족해했다. 이른바 ‘게릴라 티저 마케팅’이다. 더욱이 고급 수입차의 ‘안방’인 강남을 뛰쳐나와 강북에서 게릴라전을 벌인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다. 설치 장소가 청계천과 연결되는 길목이어서 청계천 구경 인파의 덕도 톡톡히 봤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닛산의 약 5000만원짜리 새 차는 길 위에 ‘태연히’ 전시돼 있다. 문의 전화가 많이 걸려와 아예 전시 차량 옆에 노상(路上) 상담 창구도 마련했다.G35는 V6엔진에 배기량 3500㏄다.‘움직이는 음악 감상실’이라고 자부할 만큼 오디오 시스템이 동급 최고다. 힘(315마력)도 좋다. 그런데 궁금증 하나. 일주일간 상자 속에 정말 차가 들어 있었을까. 물론 대답은 ‘아니오’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대낮 강남서 은행 권총강도

    대낮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권총을 든 강도가 은행에 침입해 억대 현금을 빼앗아 달아났다. 20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민은행 강남지점 2층 PB센터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권총을 들고 침입해 직원들을 위협한 뒤 현금 1억 50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이날 3시55분쯤 은행에 들어와 “8억원을 투자할 곳을 찾고 있다.”며 지점장 면담요청을 한 뒤 황모(48) 지점장과 1시간가량 상담을 하다 갑자기 권총과 실탄을 꺼내보이며 현금 2억원과 수표 1000만원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황 지점장은 “은행 금고에 이것밖에 없다.”며 직원을 시켜 현금 1억 500만원을 보라색 종이가방 2개에 담아 건넸다. 범인은 오후 5시10분쯤 강남역 방향으로 걸어서 도주했다. 황 지점장은 경찰에서 “범인은 175∼178㎝ 정도의 키에 짧은 머리, 진한 감색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둥글고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며 서울 말투를 썼다.”면서 “범인이 우리 집과 가족을 알고 있어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해 1시간이 지나서야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센터에는 손님이 없었고 직원만 12명 있었지만 별다른 상해를 입지는 않았다. 한편 경찰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쯤 양천구 목동사격장에서 발생한 권총 도난 사건 용의자와 이 범인이 동일인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은행 강도범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인물이 사격장을 찾아와 “실탄 사격장을 자주 찾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홍보회사 직원인데 권총 사진을 찍게 해주면 홈페이지에다 홍보해 주겠다.”고 요구한 뒤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 오스트리아제 삽탄식 9㎜ 글락(GLOCK)17 권총 1정과 실탄 여러 발을 훔친 뒤 달아났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단독 범행으로 보이며 사격장 주인에게 은행 폐쇄회로(CC)TV 화면에 찍힌 용의자와 권총 도난 사건 용의자를 보여준 뒤 두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확인, 인근 지하철역과 주차위반 CCTV를 조사하고 있으며 현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수배 전단지 10만장을 배포해 용의자를 공개수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고는 서울 강남경찰서 (02)552-0112로 하면 된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2) 양약으로서의 공사상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2) 양약으로서의 공사상

    나는 20대부터 철학공부를 해왔었는데, 오랫동안 저 공(空)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주로 의식철학을 중심으로 공부하였기 때문이리라. 나는 현상학적 실존주의에서 서양철학을 시작했고, 동양철학도 유학사상을 주자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종지(宗旨)로 삼았다. 이 사상들은 다 깨어있는 의식의 형이상학과 도덕학에 해당한다. 의식철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과 역사와 신과 인간에 대한 진선미를 읽는 예리한 분별심을 키우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식학에 대한 회의가 레비-스트로스로부터 시발된 구조주의로부터 왔다. 의식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이 모르는 어떤 자연적 문화적 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을 구조주의가 가르친다. 이 구조가 무의식의 영역이다. 구조의 무의식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나의 깨달음은 기존의 의식학이 표명하는 진리는 다 세상에 대한 표피적인 인식일 뿐이고, 세상에 대한 심층적 통찰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과 직결된다.17세기 네덜란드의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든 비유대로, 무의식의 원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철없는 아기가 자유선택으로 젖을 먹었다거나, 소년이 의식의 자유에서 분노의 복수를 하게 되었다거나, 겁많은 아이가 자유결단에 의하여 도망가게 되었다고 다 착각하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하겠다. 구조주의에 이어서 나는 데리다 등이 대표하는 해체주의의 가르침으로 세상의 기본 무의식의 문법이 불교가 가르쳐 온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둘도 아닌)의 이중적 교차법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문법은 노자와 장자가 ‘도덕경’과 ‘남화경’(장자내편)에서 각각 설파한 도(道)의 본질과 흡사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이어서 나는 이 이중적 교차법의 도(道)가 불법이 말하는 연기법(緣起法)과 아주 유사한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 우주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깊은 심층적 무의식의 도는 무(無)를 바탕으로 하는 교차법의 존재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차적 존재방식으로서의 연기법은 모든 존재가 상관적 관계의 매듭임을 말하는 것이므로 독존적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자기 스스로 홀로 서는 실체가 아니라, 반드시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하여 생기고 또한 다른 것과의 관계가 끝나면 사라진다. 따라서 존재는 명사로 지칭될 수 있는 고체처럼 딱딱한 단독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설정으로 무수히 많은 다른 것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유연한 해면체의 삼투작용과 비슷한 공동의 존재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 된다.‘나무’의 존재도 많은 다른 것들과의 상관관계요, 심지어 ‘나’라는 존재도 내가 만난 무수한 인연들이 남긴 흔적들이 공존하는 세계다. 우리가 ‘나무’나 ‘나’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사실 그 개념들은 편의상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방편이지 실상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상은 아주 복잡한 관계의 총화다. 이 복잡한 관계의 총화를 불교에서 연기라 부른다. 제2의 붓다라고 불리어지는 인도의 고승(2~3세기) 용수(龍樹=나가르주나)의 유명한 저서 ‘중론’에 이 연기법의 의미가 먼저 나온다. 연기의 존재방식은 ‘생기하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영원한 실체도 아니고 영원한 허무도 아니고,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석되어 있다. 이 우주의 일체적 존재방식은 서로 그물 망처럼 상응해서 짜여진 상호관계 속에서 생기하면서 동시에 사라지고, 항상 있거나 항상 없는 것도 아니므로 존재하고 동시에 없어지는 이중성을 정시하고 있고, 계속 동일한 존재방식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로 아주 다른 존재방식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또 새 것이 오면서 헌 것이 가는 신진대사를 중단 없이 행하고 있지만, 우주의 존재방식은 오는 새 것이 가는 헌 것과 얽히고설켜 공존하기에 무엇이 가고 무엇이 오는지 정확히 분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라고 용수가 말했겠다. 연기의 존재방식은 생/멸(生/滅=생기/소멸)과 상/단(常/斷=실체/허무)과 동/이(同/異=같음/다름)와 내/거(來/去=옴/감)를 택일적으로나 분별적으로 말할 수 없는 반(反)개념적 사유를 지니고 있다. 반개념적 사유는 어느 것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는 사유를 의미한다. 심지어 어떤 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그 진리라는 것에 얽매이고 집착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인간을 미망으로 빠뜨리는 마군(魔軍)이 된다. 진리도 자기의 이면에 악마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이 우주적 도의 본질이고, 그 본질이 무의식적이므로 인간의 의식은 이것을 보지 못한다. 용수는 이 도를 공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는 연기법의 존재가 곧 공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설법했다. 공은 유/무를 택일적으로 선택하거나 그 둘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키는 것도 아니다. 공은 유/무를 비동시적 동시성으로 동봉시키고 있다. 이 비동시적 동시성의 의미를 나는 이미 중국 화엄학의 대가인 현수법장 스님(7세기)의 ‘화엄금사자장’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명한 적이 있었다(30회 글). 황금사자상이 사자라고 생각하면, 황금이라는 생각은 약간 후퇴하여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황금이라 여기면, 사자라는 생각이 숨어 버리게 된다. 황금과 사자는 동시에 공존해 있지만, 생각은 비동시적으로 나타난다. 유/무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가을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은 높푸른 하늘의 허허로움을 바탕으로 나타나 있지만, 구름에 눈이 가면 허공은 뒤로 숨고, 허공에 마음이 가면 구름은 약간 뒤로 물러앉는다. 이것을 우리는 유/무의 비동시적 동시성을 동봉한 의미로서의 공이라 불러도 되겠다. 그러므로 사실상 공은 유/무를 다 동봉한 의미로서 유는 무로부터 나타난 무의 욕망과 같은 현상이고, 무는 유가 항상 있는 존재자로서의 실체처럼 고착될까봐 무로 사라지는 은적의 의미를 말한다. 존재자는 하이데거가 말한 용어인데, 그것은 존재가 연기법처럼 이해되지 못하고 실체처럼 단독명사로서 고착되는 개념화와 같다. 존재가 항상 있는 실체적 존재자로 간주되면, 사람들은 존재를 소유물처럼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항상 존재하는 것(존재자)들을 사람들은 자기 것으로 장악하려는 탐욕을 의식에서 표출시키기 때문이다. 이 공사상은 의식철학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식철학은 논리적 자아의 힘인 지성의 보편성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지배하는 주인의 위치를 고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신의 지성이 우주를 창조했을 때에, 무로부터 유를 있게 했다고 한다. 창조는 무를 부정하여 유를 있게 하는 행위이므로 그 창조론은 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의식철학에서 무는 존재의 결핍인 악과 동의어로 취급된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사상에 의하면 무를 배제한 의식의 철학은 유(존재)를 필연적으로 존재자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철학에서 무는 유와 동거할 수 없는 유의 파괴자처럼 간주되고, 유는 무와 싸워 승리해야 하는 의지로 여겨지므로 유는 무와 다른 ‘어떤 것’으로서의 자기동일성을 단단히 무장한 존재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동일성으로 무장된 유는 위에서 지적된 해면체처럼 우주의 모든 것과 삼투작용을 하면서 일체감을 느끼는 공동존재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존재자는 존재와 다르다. 의식은 자의식이고 그 자의식의 철학은 존재자의 철학이다. 이것이 소유의 철학을 필연적으로 부른다. 중국 선종의 3대 조사인 승찬대사(6세기)는 그의 ‘신심명’에서 ‘유(존재)가 곧 무고, 무가 곧 유’라고 언명했다. 이것을 풀이하면 유는 무의 욕망이고, 무는 유의 은적과 같다는 뜻이겠다. 무는 허무가 아니고 고갈되지 않는 무한대의 기(氣)의 힘을 말한다. 무한대의 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욕망과 같다. 무의 욕망은 자아의 욕망과 다르다. 자아의 욕망은 자아의 이기적 소유를 위한 탐욕을 말하지만, 무의 욕망은 세상에 한없이 일체로서의 공동존재의 기쁨을 보시하고픈 증여 자체다. 그 욕망을 우리는 그동안 소유론적 욕망과 구별된 존재론적 욕망이라 불렀다. 유가 무의 욕망이라면, 무는 유의 은적이다. 은적은 숨는 것이다. 왜 숨나? 존재(유)가 때가 되어 무로 숨지 않으면, 그 존재는 자기동일성의 강한 성채를 지어서 존재자적인 소유물로 모두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인생은 존재론적인 사유로 이해되지 않고 전적으로 소유론적 탐욕으로 가득 차게 되리라. 그때에 세상은 끝 모를 소유의 투기장으로 변할 것이다. 그것이 지옥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무를 삶의 한복판에서 생각케 하는 양약이다. 유/무를 동시적으로 동봉하고 있는 공사상은 탐욕의 병을 씻게 해주는 양약이다. 탐욕이 왕성하다고 국민 각자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나라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한국인은 치유하기 힘든 탐욕의 병을 앓고 있다. 특히 각계각층의 지도층의 탐욕은 도를 넘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들의 세속적 탐욕을 그들은 그럴싸한 명분으로 치장한다. 그 위선의 껍데기를 벗겨내야 한다. 탐욕이 곧 성공의 길이 아니기에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사기를 친다. 사기가 도처에 판친다. 마음을 비운 사람이 사업을 해야 망하지 않고 부자 기업을 일으키고, 마음을 비운 사람이 정치를 해야 입으로만 떠드는 허상의 명분이 아니라 국민의 괴로움을 실질적으로 더는 실상(實相)의 정치인 지혜의 방편을 찾아낼 수 있고, 마음을 비운 사람이 교육을 해야 유치한 이념의 노예나 개인출세의 탐욕으로 교육을 망가뜨리지 않고 진실로 2세 국민을 훌륭히 키울 수 있다. 또 마음을 비운 사람이 장군이 되어야 호국의 간성인 강병을 육성할 수 있다.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다 비우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가장 빠른 효과의 길은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길이다. 옛 신라가 삼국 중에서 가장 후진국이었는데, 지도층의 솔선수범으로 통일의 길로 나갈 수 있었다. 공은 마음을 비우는 무욕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무욕은 사리사욕을 없애는 것이지, 힘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공에서 무욕의 힘이 솟는다. 그 힘을 나는 무의 욕망이라 불렀다. 무의 욕망은 일체를 이롭게 하고 복되게 하는 무사심의 존재론적 욕망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ㄹ형, 제 토굴 앞에 0자를 가로 눕혀 놓은 듯한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서울을 버리고 온 날부터 ‘연꽃 바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제목으로 장편소설 한 편을 썼습니다. 호수 같은 바다 남쪽에는 고흥반도 산봉우리들이 뻗어나가고, 남서쪽에는 완도의 섬들이 첩첩 떠 있고, 서북쪽에는 장흥과 보성의 산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 콤플렉스가 많은 글쟁이입니다. 그것을 자궁 콤플렉스, 혹은 고향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40년 동안 바다 이야기를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 쓰지 못했다 싶어 고향 바닷가로 돌아왔고,‘멍텅구리 배’,‘물보라’,‘바닷가 학교’,‘검은댕기두루미’에 이어, 이 바다에서 생산되는 ‘키조개’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있습니다. 여성의 음부처럼 생긴 키조개를 통해 우주 시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을 앞 연안을 산책하곤 하는 저의 사전 한 구석에는, 그 연안이 꼬마 나폴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지개처럼 휘움한 그 연안 동쪽에는, 사자산 엉덩이에 붙어 있는 삼비산에서 흘러온 냇물로 인해 형성된 거무스레한 모래 잔등이 질펀하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갈매기 청둥오리 해오라기 물떼새들이 찾아오고, 황새와 검은댕기두루미도 한 발로 서 있다가 돌아가곤 합니다. 이사 오던 첫해 한여름에 저는 아침마다 그 연안바다 모래밭을 혼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청소했습니다. 그 모래밭에는 밀려온 쓰레기들이 해전으로 죽어 늘어진 시체들처럼 볼썽사납게 쌓여 있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 울력을 하여 그것들을 치우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불어댄 동남풍으로 인해 쓰레기들은 다시 쌓이곤 합니다. 스티로폼 부표, 헌 그물자락, 페트병, 통발들, 수초들…. 그것들을 제가 혼자서 하루아침에 십m씩 치우곤 한 것입니다. 저혼자서 그 바다를 관리하겠다는 영웅심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저의 환경 사랑 의지를 만방에 선전하려는 만용이나 허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배살이를 자청하고, 스스로를 토굴 속에 가둔 저의 고독과 슬픔과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제 가슴속에 ‘이것은 내 바다’라는 확신을 심고 싶었습니다. 그 바다 한복판에 저의 뿌리를 내리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비지땀 흘리며 하는 저의 도로(徒勞) 같은 몸짓이 보기에 민망했던지 당시의 김면장이 그해 가을부터 공익 요원들을 투입하였고, 이후로 그 바다는 계속 깨끗함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환갑을 두 해 앞둔 때였습니다. 저는 소설 쓰는 틈틈이 저와, 바다와 씨름하며 사는 마을 사람들과 거기에 서식하는 물고기 물새 바람 해 달 별 이슬을 시편에 담았습니다. 그것들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세 번째 시집 ‘노을 아래 파도를 줍다’로 펴내 주었습니다. 그 시들은, 토굴에 저를 가두고 기르는 제 자신과 바닷가를 산책할 때마다 저를 늘 환희심에 젖어들게 하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앞바다와 하늘에 바치는 헌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젊은 조면장이 그 여닫이 연안 모래 언덕 위쪽의 아스팔트길 가장자리 숲에 600m쯤의 소로를 내고 20m 간격으로 저의 시비 30기를 세워 놓았습니다. 저의 시와 짧은 동화와 소설 한 대목들을 새긴 그 비석들은 각기 7t 무게의 바위와 보조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야 할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육중한 흔적들을 그 연안바다 모래 언덕길에 놓아두도록 허락한 것은 저의 허망하고 미련스러운 탐욕이 아닌지, 그 탐욕으로 인해서 나라는 인간이 하나의 상업적인 싸구려가 되고 있지 않은지, 자못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면목 없어하는 저에게 젊은 면장은 말을 합니다.“이것은 억지로 하고자 하여 된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한 발짝 한 몸짓의 일상이 이 연안 바다 모래밭의 전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
  • [사설] 北 핵실험 세계평화에 대한 도전이다

    북한이 어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이성을 상실한 행위다.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북한 정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북한이 그동안 벼랑끝 전술로 이득을 얻긴 했지만 이번 핵실험은 경우가 다르다. 한반도 비핵화를 깨뜨렸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도발행위였다. 여기서 덮지 못하면 주변국의 핵무장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동북아를 넘어 세계평화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북한은 한민족을 파멸 위기로 몰아넣으면 핵무장을 인정받거나, 많은 반대급부를 따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크나큰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를 서울 한복판에 터뜨리면 수십만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북한은 또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마쳤다. 때문에 한국·미국·일본은 물론 중국·러시아가 북핵을 인정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클럽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한국·일본에 이어 타이완도 핵무장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동북아 주변환경은 인도·파키스탄과 비교하기 힘들다. 북한의 핵보유가 용인될 국제 조건이 전무한데 이를 무시하는 북한의 무지가 안타깝다. 엄포용 외교전략 측면에서도 북한은 잘못된 판단을 했다. 북한은 단계적으로 도발 강도를 높여왔다. 핵시설 봉인제거, 흑연감속로 가동, 핵무기 보유선언, 연료봉 인출과 재처리, 미사일 발사 등이다. 이같은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 정부는 대북 유화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포괄적 접근방안을 새로 만들어 북한이 6자회담장으로 돌아올 경우 줄 수 있는 보상방안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핵실험 강행은 이런 대화 노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반대급부가 커지기는커녕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핵실험이 내부 결속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북한 정권은 깨달아야 한다. 노동당 창건 61주년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핵실험을 함으로써 이른바 강성대국의 면모를 과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제재 강화로 주민들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면서 핵무기만 움켜쥐고 있으면 김정일 독재체제가 유지된다고 보는가. 국제사회의 경제·금융 제재가 확대되고, 군사조치가 논의되기 시작하면 북한 사회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 북한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핵보유국 위치를 인정받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핵무기를 가졌다가 폐기한 전례가 있다. 옛 소련이 붕괴한 뒤 우크라이나는 핵미사일 176기, 핵탄두 1800기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러시아·영국과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에 관한 안전보장각서’를 체결하고 모든 핵무기를 없애거나 러시아로 넘겼다. 관련국의 경제지원과 다자안전보장이 대가로 주어졌고, 이는 핵폐기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북한은 우선 추가 핵실험이나 핵기술 이전을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비핵화를 약속한 ‘9·19 공동성명’의 정신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북·미대화를 통해 이견을 절충한 후 6자회담에 복귀, 핵폐기-보상 협상을 본격화하는 것만이 북한의 생존을 보장할 것이다.
  • “귀향길 무상점검 받으세요”

    “귀향길 무상점검 받으세요”

    자동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서 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즐거운 귀향길을 망치지 않으려면 미리 점검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내 자동차업체와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공동으로 4∼8일 전국 고속도로에서 특별 차량 무상점검 행사를 벌인다.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엔진, 브레이크, 에어컨, 타이어 등을 무상 점검해 준다. 냉각수나 각종 오일도 보충해 준다. 필요하면 일반 소모성 부품도 무상으로 교환해 주거나 20% 할인해 준다. 고장차량에 대한 긴급출동 서비스도 병행한다. 대한타이어공업협회도 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교통안전공단과 공동으로 타이어 점검 서비스를 벌인다. 지난해의 경우 점검차량(244대)의 23.8%가 공기압 부족과 못박힘 등 정비 불량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9) 중세 문화중심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이슬람 문명과 도시] (19) 중세 문화중심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언제부터인가 이 곳을 찾을 때마다 아프라시압 언덕에 오르곤 한다.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시압강을 휘돌아 날아오는 바람을 맞으며 비비하눔 성원(모스크)이 있는 방향을 바라다본다. 저 푸른 빛의 돔은 중세 이슬람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지 않은가. 해질 무렵의 검붉은 장관은 또 어떤가. 관광을 마치고 돌아서는 발걸음마저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지금 서 있는 바로 이 곳이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의 출발선이자 경계선인,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도시 사마르칸트다. 이 이름의 역사적 대가는 잔혹했지만 사마르칸트는 그 슬픈 역사를 두터운 황토 아래 묻어둔 채 넉넉한 문화적 향기만 내뿜고 있다. 사마르칸트(Samarkand)는 한때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였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중세 아미르-티무르 제국의 정치행정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고대에는 ‘마라칸다’로 불렸다. 중국은 ‘강국(康國)’이라 불렀다. 사마르칸트는 원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라는 뜻이다.‘사마르’는 산스크리트어이며,‘칸트’는 페르시아말로 도시를 뜻한다.9세기쯤 이슬람이 전파되기 전에는 ‘고대 동방의 에덴’이란 멋진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 사마르칸트는 이슬람을 만나면서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중심, 문화의 중심이 됐다. 중앙아시아의 문화는 언덕 위에서 이뤄졌다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프라시압 언덕이 바로 도시문명 사마르칸트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곳인 셈이다. 이처럼 사마르칸트는 그 옛날 찬란히 빛나는 소그디아나의 수도였기에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다양한 역사적 유물 유적을 갖고 있다. 아프라시압 언덕과 시압언덕 사이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눈앞에 두고 있는 고고학연구소로 향했다. 고고학연구소는 아프라시압 언덕 남서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고고학연구소의 압둘하미드 아나르바예프 부소장은 언제나 호기심 많은 소년처럼 나를 이리저리 안내해준다. 연구소가 지니고 있는 사마르칸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무 꺼릴 것 없이 보여주는, 그런 고고학자다. 본디 그는 페르가나 출신이다. 젊은 시절 구 소련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사마르칸트 남동쪽으로 40여㎞ 떨어진 펜지켄트라는 도시에서 5년간 발굴작업에 참여하면서 사마르칸트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펜지켄트와 아프라시압에 있는 벽화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압둘 하미드 부소장의 말에 따르면,1950년대 어느 날 한 목동이 이 곳을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직까지도 아프라시압은 땅 속에 묻혀 찬란했던 ‘소그드 문화’가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아프라시압(AФPACNAE)’이란 말의 어원은 페르시아의 전설적인 왕 ‘투란(Typah)’과 관련이 있다. 1965년이었다. 아프라시압 역사박물관에서, 지금까지도 너무 유명하고 큰 관심을 끌고 있는,7세기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라시압 벽화’라 불리는 벽화를 처음 공개했다. 위 아래 길이만도 2m가 넘는 이 벽화는 우아한 이야기를 독창적인 제작 기법으로 담고 있다. 벽화는 소그드 사람들이 맞은 문화적 절정기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벽화 중앙부와 서쪽 벽에는 각국 사절들로부터 선물받은 각종 귀금속 등으로 장식한 예복을 갖춰 입은 통치자(혹은 신이라는 해석도 있다.)가 묘사돼 있다. 통치자에게 인사를 하러 온 각국 사절들은 온갖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 중에는 비단옷을 입은 중국인, 긴 머리의 투르크인, 파미르 고원에서 온 유목민들이 눈에 띈다. 여기다 머리를 땋은 한인(韓人)의 모습이 보인다. 머나먼 중앙아시아 땅 한복판에서, 그것도 낯설기만 한 이슬람문명권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 한인의 모습은 당시 고구려인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활발한 대외관계를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그러나, 지금도 역사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하는 국내외 학자들에게는 미증유의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각국의 사절을 맞이하고 있는 소그드인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다. 정치적인 해석과 의례적인 해석이 대립하고 벽화에 묘사된 인물이 누구냐에 대해서도 온갖 의견들이 분출한다. 또, 벽화가 그려진 시기가 정말 7세기쯤이냐에서부터 화공이 굳이 벽화를 완성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 둔 것은 무슨 의미냐를 두고 학계는 수십가지의 의견을 제출해둔 상태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고구려인의 복장을 한 사람이 두 명이나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머나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이 중앙아시아에까지 닿았을까. 그 사연은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와 중앙아시아의 인연 혹은 운명적 만남에 대한 충분한 근거자료임에는 분명하다.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내려와 비비하눔 모스크로 걸어갔다.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오늘도 내일도 번잡한 시압 바자르를 지나서니 당대 세계 최고의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비비하눔 성원이 위용을 드러낸다. 사마르칸트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꼽으라면 당연히 비비하눔 성원이다. 원래 이름은 아미르-티무르 성원이었다. 대제국을 건설하느라 바빴던 정복군주 아미르-티무르에게 왕비 비비하눔이 지어서 바쳤다는, 그런데 그 와중 건축사와 놀아난 게 들통나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 뒤 티무르는 모든 여자들에게 얼굴을 가리도록 했는데 이게 바로 ‘부르카’의 시초다. 웅장한 피쉬탁 양식의 정문을 들어서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앙 성원의 화려함과 몇 그루의 뽕나무다. 정사각형의 비비하눔 정원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다. 직사각형의 성원 뜰에는 네 면의 가장자리에 걸쳐 미나레트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쳐든 듯 솟아 있다. 비비하눔 성원은 중앙아시아 이슬람 성원 건축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외벽에 구운 듯 입힌 푸른 타일은 건물 전체를 더욱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게 한다. 마치 태양빛 가운데서도 가장 형형하고 아름다운 푸른 빛이 내려앉아, 한 모금의 자주빛을 뿌리고 사뿐히 날아오르는 듯하다. 빛의 향연이다. 이 성스러운 광장 가운데에는 이슬람 문화에서 가장 고귀하다는 ‘오스만의 코란’이 놓여 있었다. 지금이야 주인 없는 돌 받침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오스만의 코란이 있던 돌자리를 신성불가침의 공간으로 여긴다. 양각과 음각으로 돌을 새기고 타일을 붙여서 구운 비비하눔의 건축양식은 다름 아닌 아프라시압의 정신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결점투성이인 채로 마무리된 복구작업에도 비비하눔의 아름다움과 종교적 심성이 이 곳 사람들에게 남아있을 리 없다. 사마르칸트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이자 이 곳에 사는 사람들 마음의 역사다.2007년이면 사마르칸트는 도시 창건 2800주년을 맞는다. 사마르칸트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사마르칸트에서 다시 한번 이슬람 문화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길 고대한다. 장 준 희 우즈베키스탄 국립동방학대학교수 이슬람문화硏 연구원
  • [지금 인천에선] ‘제2의 번영기’ 누리는 차이나타운

    [지금 인천에선] ‘제2의 번영기’ 누리는 차이나타운

    인천시 중구 선린·북성동 일대에 자리잡은 차이나타운의 불빛은 언제나 휘황찬란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한국 속의 작은 중국’인 이곳 가로등에 불이 하나둘씩 켜질 무렵이면 중국 전통 대문인 파이러우(牌樓) 사이로 자석에 이끌리듯 사람들이 몰려든다. 외식을 하러온 가족, 중국 물품을 사러온 사람, 그저 이국적 정취를 느끼려고 온 연인 등으로 옛날 우리 장터와 같은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인천 개항과 같은 역사를 지닌 차이나타운은 한때 사양길을 걸었지만 중국인 특유의 뚝심을 반영하듯 최근 제2의 번영기를 누리고 있다. ●거리 곳곳 이국적 정취 물씬 인천차이나타운 하면 흔히 자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져 중국요릿집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격으로 이곳에 가면 중국 만물상을 접할 수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중국 의상와 민예품, 각 지역의 차(茶) 등 이색적인 물품들에 정신이 팔려 이곳이 인천인지, 중국 도시의 뒷골목인지를 잊게 만든다. 그래도 역시 차이나타운 얘기는 ‘먹을거리’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순리인 것 같다. 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골목길 왼편에는 ‘공화춘(共和春)’이라는 중국요릿집이 있다. 이곳이 바로 1905년 ‘외식의 왕중 왕’인 자장면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당시 가난한 부두노동자 등을 위해 간편식으로 춘장(중국 된장)에 면을 비빈 것이 빅 히트를 쳤다. 이로 인해 공화춘은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요릿집으로 명성을 누리다 1984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빈 건물로 방치돼 있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에 있는 25개 음식점들은 모두 자장면에 관한 한 ‘원조급’임을 내세운다. 종류도 삼선자장, 유니자장, 사천자장, 옛날자장 등 백가쟁명식이다.‘자장면의 날’이 있을 정도로 이곳 화교들의 자장면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술은 한술 더 뜬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량주와 이과두주는 기본이고 수정방, 주귀주, 모태주, 소흥주, 공부가주, 오량순 등 이름조차 야릇한 중국술들이 애주가들을 솔깃하게 한다. 중국만두만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이 따로 있고 월병, 오향 등 중국과자를 취급하는 점포도 있다. 차(茶)를 파는 집에는 철관음, 오룡차, 감비차, 용정차, 국화차 등 중국 차들이 망라돼 있다. ●중국 만물상도 접할 수 있어 거리 곳곳에는 중국 공예품과 의상, 문구류, 잡화 등을 파는 상점 30여개도 있다.‘화하량자’라는 이색적인 간판을 내건 점포는 도자기, 공예품, 전통의류 등을 취급하고,‘중강무역’은 점잖은 명칭에 걸맞게 골동품과 옥, 그릇 등을 판다.‘중화예원’은 중국 의상과 신발, 액세서리 등을 다루는데 맞춤복을 전문으로 한다.‘홍복’은 중국 술과 차, 음료 등을 취급한다. 이들은 중국 상하이·베이징·다롄·광저우 등에서 배로 수입한 중국물품을 파는데, 국내 제품보다 40∼50% 가량 싼 편이다. 차이나타운내 유일한 백화점인 ‘보문중국백화점’에는 60∼100평 규모의 대형 매장 7개가 자리잡아 차, 생활용품, 도자기, 조각품, 옷 등을 판다. 특이한 것은 화교들의 본거지인 차이나타운에 수년 전부터 중국인들의 진출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중국음식점은 아직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는 반면, 상품점은 절반 가량이 중국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오래 거주한 화교가 운영하는 가게는 대화가 통해 흥정이 가능한 반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점포는 정찰제지만 상품의 수준은 더 높다는 평이다. 거리에서 만난 화교 손미령(孫美·41·여)씨는 “이곳 화교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났다.”면서 “한국 사람들이 차이나타운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자주 찾아주어야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중국인 특유의 자존심을 반영하듯 호객을 하는 행위가 전혀 없다.‘오고 싶으면 오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딱딱한 상술 같지만 거리를 다니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식 한약방도 두곳이 있지만 우리나라 한의대에서 학위를 딴 전문의들이 개업했다고 한다. 한약방만은 ‘한국식’인 셈이다. 무엇보다 차이나타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은 화교학교다. 거리 중간 ‘중화당한의원’ 뒤편에 있는 화교학교에는 유치부 및 초·중·고 과정에 500여명의 화교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2004년 12월 이 학교 후문 담장에 그려진 ‘삼국지 벽화’는 차이나타운의 새로운 명물이다. 무려 135m에 달하는 담장에는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에서부터 진(晉)의 삼국통일까지 ‘소설 삼국지’의 77개 주요장면이 자세한 해설과 함께 천연색 벽화로 그려져 있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워낙 생생해 금방이라도 벽을 뚫고 나올 것 같다. ●활성화 대책 인천시 중구는 2001년 차이나타운을 포함한 월미도 일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되자 120억원을 들여 차이나타운 활성화 사업을 펼쳤다. 차이나타운 3곳에 큰 대문 모양의 중국 상징물인 파이러우(牌樓)와 사자상, 삼국지벽화 등을 설치했다. 파이러우는 중국 웨이하이(威海)시 등이, 공자상은 칭다오(靑島)시가 각각 중국 현지에서 만들어 기증한 진품으로 한·중 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 도로는 전선 등을 지중화한 뒤 바닥은 붉은색 아스콘으로 포장했다. 도로 곳곳에는 중국풍 붉은 깃발을 꽂은 기둥을 설치했다. 차이나타운 한복판에 위치한 북성동사무소까지 중국풍으로 바꿨다. 지난해 4월 한·중 교류 활성화를 위해 차이나타운 입구에 들어선 한·중문화관은 720평 부지에 중국 전통양식의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로 중국문화소개관, 중국기증물품전시관, 문화예술공연장 등을 갖추었다. 중구 관계자는 “차이나타운 활성화 대책 이후 수백명에 불과하던 관광객들이 주말이면 수천명으로 크게 늘어났다.”면서 “차이나타운을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관광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신용대출 규제 완화·편의시설 확충 절실” “인천차이나타운 개발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인 손덕준(50)씨는 인천시와 중구 등이 추진하는 차이나타운 활성화 대책에 기대를 표하면서도 “지금까지 지자체가 추진한 활성화 방안이 지지부진한 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손씨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요릿집인 ‘태화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장면 원조인 ‘공화춘’의 마지막 주방장 아들이기도 하다. 손씨는 화교에 대한 규제가 차이나타운 활성화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8년 외국인부동산취득법 개정으로 화교들의 부동산 취득이 자유로워지는 등 규제가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아직 금융기관에서 신용대출이 안 되는 등 보이지 않는 규제들이 상존해 있습니다.” 외국인부동산취득법 완화 이전에는 화교는 상업지역의 경우 50평 이하, 주거지역은 200평 이하만 취득이 가능했다. 화교 2세들이 대거 미국이나 동남아 등으로 떠난 것은 이러한 재산권행사 제한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화교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등 당국이 화교에 대한 차별철폐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좀더 과감한 규제철폐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특히 중국 투자자들이 차이나타운에 진출하려면 초청장을 받아야 하는 등 출입국상의 규제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차이나타운 자체 자본만으로는 활성화에 한계가 있어 중국 본토 및 동남아 등의 화교자본이 유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씨는 또 차이나타운 내 부족한 주차장과 편의시설 등을 지적하면서 “차이나타운이 관광특구로 지정된 만큼 이들 시설에 대한 보완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미국·일본과 같이 제대로 된 차이나타운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손씨는 중구와 협력해 중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1990년대 중반 중국음식점 10여개만이 남아 숨이 끊어질 듯하던 차이나타운을 회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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