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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박 탕진 조폭 대로서 난동

    조직폭력배들이 한밤중 서울 강남대로에서 유혈 충돌을 벌인 사실이 경찰 수사를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5일 도박자금을 탕진한 뒤 이를 보복하기 위해 카지노바 운영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동아파’ 조직원 채모(33)씨를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하고, 이를 방조한 혐의로 ‘신양관광파’ 조직원 이모(3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채씨는 지난달 16일부터 이틀 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불법 카지노바에서 바카라 게임으로 5000여만원을 잃은 뒤 같은 달 19일 오후 9시30분쯤 카지노바 운영에 관여해온 ‘국제PJ파’ 행동대원 강모(34)씨를 강남구 청담동 대로로 불러내 “1000만원을 보상차원에서 돌려달라.”며 승강이를 벌이다 흉기로 옆구리를 찔러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강씨는 불법 카지노바 영업 사실이 적발될까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았으나 경찰이 첩보를 입수해 전모를 밝혀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열린세상] 늑대 이야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일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네 돼지 한 마리가 한밤중에 사라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어른들은 늑대 짓이 틀림없다고 했다. 늑대는 본래 영리한 짐승이어서, 소리도 없이 돼지를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돼지가 울 안에서 뛰쳐나오게 겁을 준 다음 제발로 걸려 데려갔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고, 늑대는 두 마리가 넘게 왔을 것이라는 자상한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딱히 늑대를 본 기억은 없다. 돼지를 데려갔다는 동네서 좀 떨어진 해받이고개 초입에서 어느 날 만났던 큼직한 개가 혹시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지레 겁을 먹은 적은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늑대 소리는 이내 쑥 들어가 버렸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늑대와 흡사하다는 이리를 주제로 삼은 황순원의 단편 ‘이리도’를 국어책으로 배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리떼 이야기를 빌려 늑대도 그러려니 하는 어림잡은 상상의 날개를 달았다. 정해(丁亥) 돼지의 해 들머리에 무슨 늑대냐고, 되받아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두 지지(地支) 띠 이름에도 끼어들지 못한 늑대를 새삼스레 들춘 까닭은 따로 있다. 지난 세밑 경상북도가 이미 멸종한 늑대를 지리산 반달곰처럼 복원할 계획이라는 대구발 뉴스가 내심 반가워서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야생과 종(種)이 같은 늑대 2∼3쌍을 몽골이나 러시아에서 들여와 안동 야생동물생태공원에서 키워 5년 뒤에 방사(放飼)한다는 것이다. 이참에 친구네 돼지가 사라졌을 때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더 해야겠다. 무아지경에서 사람을 만난 늑대는 사람 키를 훌훌 타 넘다가 해코지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기다란 담뱃대 장죽(長竹)을 저고리 등자락에 세워 꽂아 뾰죽한 물부리가 드러나면, 늑대는 그만 달아났다고 했다. 이에 곁들여 ‘혼자 길을 가다 만난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로 이야기 끝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이말은 옳다. 서구인들은 일찍부터 늑대를 심술궂고도 탐욕스러운 짐승으로 몰아세운 설화(說話)를 빌미로 죽음 이상의 고통을 주고, 또 늑대를 독살하는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8세기까지도 북아메리카에서는 황무지 개간에다 신의 은총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늑대 멸종을 부추겼다. 그래서 1883∼1918년 사이 몬태나 주에서만 3만마리 이상의 늑대를 죽인 기록이 남아 있다. 지난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는 가운데 동물 가까이로 다가간 영국의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에 이어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르스트 헤켈에 의해 생태학(生態學)이 태동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환경보호주의자로 나선 ‘동물기’의 작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늑대를 비롯한 동물의 삶과 죽음을 연민(憐愍)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여러 사람들이 어여쁜 마음으로 키우는 애완견의 조상이 1만 4000여년 전 극동 아시아에서 사육한 늑대라는 사실을 알면, 야생의 동물이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늑대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2만여년 전 유적인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늑대를 실제 스케치한 그림이 보이거니와, 이보다 2000여년이 앞선 로스앤젤레스 판초라 유적에서는 수백마리 몫의 늑대뼈가 나왔다. 늑대는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를 잇는 북반구에 널리 퍼졌던 식육목(食肉目) 개과(科)의 무리 사냥꾼이다. 그러나 멸종에 가까울 만큼 숫자가 줄어들었다. 오늘날 생태보존 문제는 인류가 자연계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세계의 생태학자들은 문제의 실마리가 아시아 쪽에서 먼저 풀어지기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유교적 자연관(自然觀)과 불교적 자비관(慈悲觀)이 아직은 다 메마르지 않은 지역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행여 생태를 복원하는 날이 오면, 늑대가 어슬렁거렸던 고향땅 해받이고개를 거닐어 볼란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 추사 김정희, 중인들과 만나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 추사 김정희, 중인들과 만나다

    시곗바늘을 조선 후기,200여년 전으로 돌려보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오늘에 새롭게 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전문기술자 신분인 중인(中人), 즉 위항인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위항(委巷)은 좁고 지저분한 거리, 현재의 골목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한양의 창덕궁을 중심으로 옥인동, 통의동, 누하동 등의 인왕산 자락과 청계천 언저리에는 궁중 기술자들이 살았다. 이들은 60여개의 시사(詩社)를 만들어 ‘위항문학’을 꽃피웠다. 특히 이들은 서양의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한 신지식인들이었다. 조선 후기 근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이들의 실용주의적 역할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과연 이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또 그 발자취들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이들의 문화를 재발견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다. 연세대 허경진 교수의 눈을 통해 연중기획으로 이들의 궤적을 추적해 본다.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누구 못지않게 19세기초 중인들과 교류를 가진 양반 선각자였다. 그는 중인들의 모임터인 송석원의 글씨를 써주는가 하면 조수삼·이상적·오경석과 같은 중인들과 교류를 갖기도 했다. 한양 인왕산의 서당 훈장 천수경(千壽慶·1758∼1818)은 집안이 가난했지만 글 읽기를 좋아하고, 시를 잘 지었다. 옥류천(玉流泉) 위 소나무와 바위 아래에 초가집을 짓고, 호를 송석도인(松石道人)이라고 했다. 아들 다섯의 이름은 일송(一松), 이석(二石), 삼족(三足), 사과(四過), 오하(五何)이다. 첫째 소나무와 둘째 바위는 자기 집 이름을 아들에게 붙여준 것이고, 셋째는 아들 셋이면 넉넉하다는 뜻에서 ‘삼족’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아들 하나가 더 생기자 너무 많다는 뜻으로 ‘과(過)’라 했는데, 하나가 더 생기자 “이게 웬 일이냐.”는 뜻으로 ‘하(何)’라고 했다. 창덕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양반 사대부들이 살았고, 그 오른쪽 인왕산 자락과 청계천 일대에는 역관이나 의원 같은 중인, 경아전들이 많이 살았다. 지대가 높고 외져서 집값이 쌌기 때문에, 가난한 서리들이 관청과 가까운 인왕산쪽으로 올라와 살게 된 것이다. 인왕산의 물줄기는 누각골(지금의 누상동)과 옥류동(지금이 옥인동)에서 각기 흘러내리다가 지금의 옥인동 47번지 일대에서 만났다. 깊은 산속에서 옥같이 맑게 흐르는 이 시냇물을 옥계(玉溪)라고 했다. 인왕산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친구들이 옥계 언저리에서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놀았는데,1786년 7월16일 옥계 청풍정사에 모여 규약을 정하고 시사(詩社)를 결성했다. 달 밝은 밤 솔숲에 흩어져 앉아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뜯고 시를 읊다가, 정기적으로 모여 시를 지으며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13명이 모여 이날 지은 글들을 모은 ‘옥계사(玉溪社)’ 수계첩에 ‘차서(次序)’가 실려 있어 구성원의 이름과 나이를 알 수 있다. 장혼은 발문에서 “장기나 바둑으로 사귀는 것은 하루를 가지 못하고, 술과 여색으로 사귀는 것은 한 달을 가지 못하며, 권세와 이익으로 사귀는 것도 한 해를 넘지 못한다. 오로지 문학으로 사귀는 것만이 영원하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문학으로 사귀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모였고, 그때마다 제목을 정해 시를 지었다. 주로 정월 대보름, 삼짇날, 초파일, 단오, 유두(6월보름), 칠석, 중양절(9월9일), 오일(午日), 동지, 섣달그믐에 모였다. 또 기쁘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돈을 모아 축하해 주기도 했다.1791년 6월 보름날에도 옥계에 모여 시를 지었는데, 달밤에 술 마시며 시 짓는 모습을 이인문(李寅文·1745∼1821)이 그림으로 그렸다. 솔숲 큰 바위에 ‘松石園’이라 쓴 곳이 바로 이들의 모임터인데, 이날은 풍악 없이 조촐하게 모였다. 제시(題詩)는 여든을 바라보는 마성린(馬聖麟·1727∼1798)이 썼는데, 옥계사 동인이 아니라 선배격인 백사(白社) 동인으로 격려한 것이다. ●당대 문인들 송석원서 교류하다 승문원(承文院·외교문서 관장) 서리였던 마성린은 살림이 넉넉했기에 위항(委巷) 시인들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 평생 인왕산 일대를 떠나지 못하고 몇차례 집을 옮겨가며 살았다. 그는 늘그막에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이라는 자서전을 지었다. 제목 그대로 기쁘고 슬픈 한평생이다. 그의 집에 수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으며, 이제 친구들이 다 세상을 떠나자 후배들의 시첩에 와서 그림에 글씨를 써주며 격려했다. ‘송석원시사’가 장안의 화제가 되자, 문인들이 이 모임에 초청받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해마다 봄가을이 되면 남북이 모여 큰 백일장을 열었는데, 남쪽의 제목은 북쪽의 운(韻)을 쓰고, 북쪽의 제목은 남쪽의 운을 썼다. 날이 저물어 시가 다 들어오면 소의 허리에 찰 정도가 됐다. 그 시축을 스님이 지고 당대 제일의 문장가를 찾아가 품평받았다. 장원으로 뽑힌 글은 사람들이 베껴 가면서 외웠다. 무기를 가지지 않고 흰 종이로 싸우는 것이라서 백전(白戰)이라고 했는데, 순라꾼이 한밤중에 돌아다니던 사람을 붙잡아도 “백전에 간다.”고 하면 놓아 주었다. 송석원시사가 커지자, 천수경이 60세 되던 해에 당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에게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추사는 송석원시사가 결성되던 해에 태어났는데, 어느새 그에게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이름이 났던 것이다. 추사의 집은 충남 예산 용궁리에 있는 추사고택이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인왕산 건너편의 통의동에 주로 살았다. 수령 600년의 통의동 백송(白松)이 10여년 전에 수명을 다해 쓰러졌는데, 이 나무가 바로 추사의 집 정원수였다. 추사의 증조할아버지 김한신이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에게 장가들어 월성위에 봉해지자, 영조가 통의동에 큰 저택을 하사했다. 너무 큰 집이어서 월성위궁(月城尉宮)이라고 불렸다. 추사는 김한신의 장손, 큰아버지 김노영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는데,12세에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어 할아버지 김이주(형조판서)마저 세상을 떠나 큰 집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추사 32세에 송석원을 쓰다 송석원시사의 부탁을 받은 추사는 예서체의 큰 글자로 ‘松石園’을 쓰고, 그 옆에 잔 글씨로 ‘정축(丁丑) 청화(淸和) 소봉래서(小蓬萊書)’라고 간기를 쓴 뒤에 낙관했다. 정축년은 1817년이니, 추사의 나이 32세. 청화는 음력 4월(또는 2월)이고, 소봉래는 추사의 또 다른 아호이다. 예산 고향집 뒷산을 소봉래라 했는데, 청나라에 다녀온 뒤부터 호를 자주 바꾸는 습관이 생겼다. 1809년 10월에 호조참판으로 있던 생부 김노경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가게 되자,24세 되던 추사도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따라나섰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사신뿐만 아니라 상인·학자·승려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교류했지만, 조선초부터는 국경을 폐쇄하고 사신만 오가게 했다. 합법적으로 가볼 기회는 사신, 또는 사신의 수행원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사신들은 자기의 자제를 개인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서 견문을 넓혀 주었는데, 이를 자제군관이라고 했다. 추사의 스승 박제가가 자제군관으로 가서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보고 돌아와, 추사에게 반드시 청나라를 구경하라고 당부했다. 청나라의 문인 학자들에게는 이미 추사를 한껏 자랑해 놓았다. 추사는 연경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 완원(阮元)을 만나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받았다. 추사는 이때부터 상황에 따라 당호와 아호를 새로 짓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추사로서는 금석학자이자 서예가인 옹방강(翁方綱)을 만난 것이 더 큰 행운이었다. 그의 서재 석묵서루에는 희귀본 금석문과 진적(眞蹟) 8만여점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추사는 조선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진본들을 맘껏 보았고, 모각본까지 선물받았다. ●청 문물 경험후 서체 달라져 청나라에서 돌아온 뒤에 그의 글씨가 달라졌을 것은 당연하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추사의 글씨가 바뀐 과정을 논하면서, 청나라에 다녀온 뒤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완옹(阮翁)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書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董其昌)에 뜻을 두었고,(청나라에 다녀온 뒤) 중세에는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그의 글씨를 열심히 본받았다.(그래서 이 무렵 글씨는)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꺼운데다 골기(骨氣)가 적다는 흠이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씨가 바로 ‘松石園’ 석 자이다. 장중하면서도 아름답다. 박제가의 제자였던 추사는 신분의 벽을 넘어서 송석원시사의 조수삼과 가깝게 지냈으며, 이상적이나 오경석 같은 역관 제자, 조희룡이나 전기 같은 중인 화가들을 길러냈다. 위항시인의 시가 순수하다는 성령론(性靈論)이나 ‘인재설(人才說)’도 그러한 생활 속에서 나왔다. 송석원은 위항시인들의 모임터로도 이름났지만 김수항(안동 김씨), 민규호(여흥 민씨), 윤덕영(해평 윤씨) 등의 권력가들이 서로 집을 넘겨주며 살았던 곳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이 일대가 고급 주택가로 바뀌었지만, 시멘트 벽속에 ‘松石園’ 글씨가 아직도 남아 있고, 복개된 길 밑으로는 옥계가 흐르고 있다. 인왕산 재개발을 앞두고, 이 일대의 문화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 허경진 연세대 교수 > ■ 중인이란 중인(中人)이란 신분계급으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사이를 말한다. 중인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좁은 의미로는 주로 중앙의 여러 기술관청에 소속되어 있는 역관(譯官)·의관(醫官)·율관(律官)·산관(算官)·화원(畵員) 등 기술관원을 총칭했다. 이들은 잡과(雜科) 시험에 합격, 선발된 기술관원이거나 잡학 취재(取才)를 거쳐서 뽑혔다. 넓은 의미로는 중앙의 기술관을 비롯하여 지방의 기술관, 그리고 서얼(庶孼), 중앙의 서리(胥吏)와 지방의 향리(鄕吏), 토관(土官)·군교·교생·경아전 등 여러 계층을 포괄적으로 일컬었다. 양반 사대부 계층에 비하여 차별대우를 받았으며, 신분과 직업은 세습됐다. 육조(六曹)와 삼사(三司) 등의 일반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고, 한품서용제(限品敍用制)에 의해 관직 승진에도 제한이 가해졌다. 또 이들은 지방 양반의 명단인 향안(鄕案)에 등록되지 못했고, 향교(鄕校)에서도 양반의 아래에 앉아야 하는 등 천시를 받았다. 하지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문적인 기술지식이나 행정경험을 통해 양반 못지 않는 능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오늘날의 통역관에 해당되는 역관(譯官)들은 17세기부터 청(淸)나라와의 무역이 왕성해짐에 따라 자주 청나라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밀무역을 하거나, 상인들의 무역업무를 교섭해주고 돈을 받아 부자가 된 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전문적인 기술지식과 특수한 문서양식, 그리고 독특한 시문(詩文)인 위항문학(委巷文學)을 발전시켰으며 외세에 의한 변동기에 민감한 정세판단으로 전통문화의 해체와 근대화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 필자 허경진은 ▲1952년 목포 출생 ▲70년 제물포고 졸업 ▲74년 연세대 국문학 학사 ▲84년 연세대 박사 ▲84년∼93년 목원대 교수 ▲93∼2001년 미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연구교수(한국한시) ▲01년∼현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우리 옛시(80년), 허균의 시화(82년), 평민열전(89년), 다산 정약용 산문집(94년), 연암 박지원 산문집(94년), 매천야록 매월당집(95년), 선조독살 전말기(95년), 조선위항문학사(97년), 허균평전(02년), 악인열전(05년) 등 다수.
  • 한밤중 빚독촉 못한다

    한밤중 빚독촉 못한다

    금융감독원은 28일 금융회사의 채권추심업자가 지켜야 할 규준을 발표했다. 한밤중에 방문하거나 수시로 방문해 빚독촉을 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다. 금감원은 이 규준을 채권금융회사와 채권추심업자의 내부통제 기준에 반영, 쓰이도록 할 방침이다. 그러나 채권추심에서 발생한 개별적 행위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과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을 어기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법당국 몫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이 불법 채권추심행위를 적발해도 이를 조사할 권한이 없고 경찰에 알아봐 달라고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규준은 금감원의 ‘희망사항’인 셈이다. 규준에 따르면 허위 소식으로 채무자에게 충격을 줘서는 안 된다. 자녀를 해치겠다고 협박해도 안 된다. 채무자를 미행하거나 정상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로 전화를 걸어서도 안 된다. 또 법원이 채무자의 면책을 결정한 경우나 채무자가 중병에 걸린 경우 등은 채권추심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채권자 또한 채권추심업자에게 필요한 채무자의 개인신용정보만 줘야 하며 채무자와 관련된 사람의 신용정보는 본인 동의 없이 제공해서는 안 된다. 현행 대부업법과 신용정보법에도 채무에 관한 허위사실을 알리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고은 ‘평화’ 품고 찾아오다

    고은 ‘평화’ 품고 찾아오다

    시인 고은이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2002년 ‘두고온 시’ 이후 4년만에 창작시집 ‘부끄러움 가득’(시학 펴냄)을 최근 출간했다. 시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다가 아깝게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스웨덴 정부가 주관하는 시카다문학상을 받는 등 세계는 이미 그의 시 세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시인은 새 시집 첫머리에서 ‘나에게 시가 왔다.’라고 외친다. “브루디외가 물었다/지금 너에게 시가 왔느냐/라고/(새가 지나갔으니 틀림없이 너에게 시가 왔을 것이다)//나는 창 밖의 물 속에서/방금 솟아올라/오래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나는 젖은 장님으로 대답했다/그렇다 시가 왔다/라고”(‘너에게 시가 왔느냐’ 부분) 그에게 찾아온 시는 어떤 모습일까. 시인의 이번 시집은 평화시집이라고 불릴 만하다. 모두 96편의 시와 다섯 편의 시조가 실린 시집 마지막을 8편의 ‘평화’ 연작시로 마무리했다. 시인은 “피이스/라는 낱말에서/나는 피 묻은 사체를 본다/피이스/라는 낱말에서/나는 한밤중 포탄이/작렬하는 광경을 본다/…/피이스/라는 낱말에서/나는 침략과 수탈을 본다”(‘평화·3’ 부분)며 평화를 위해, 평화를 짓밟는 인간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시인이 생각하는 평화의 진정한 의미도 내비쳤다. 시인은 “평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곳/그곳을/평화라 한다/”(‘평화·4’ 부분) “오직 누구의 평화만이 평화이다//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는/평화가 아니다”(‘평화·6’ 부분)라고 외친다. 이번 시집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목이 메며 낭송했던 즉흥시 ‘대동강 앞에서’와 같은 격정적인 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 분단의 비극 등 시인의 주된 관심사는 여전하다. “저 장대비 그대로 맞은 순하디 순한 사람이//1950년 9월 12일/ 그날 밤 저 혼자/원당부락 남녀노소 서른 아홉 명을/몽둥이로 쳐 죽인 사람이란다//저 사람이/다 죽이고 나서/뒷산 솔밭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절하고/사라졌던 사람이란다”(‘극악’ 부분) “한강과/임진강이/허어/허어 오랜만에 만나는 듯 만나는 곳/조강/조금 더 가면/예성강을 만나는 곳/분단국경/거기라면 좋겠다”(‘또 하나의 무덤’ 부분) 이외에 시집에는 폴란드, 라오스, 타클라마칸 사막 등 시인이 주유했던 세계 여러 곳과 제주도, 부산, 삼천포, 백두산, 금강산 등 한반도 곳곳을 방문해 얻은 시적 영감도 함께 묻어 있다. 생활주변의 소소한 이야기, 가족과의 애틋한 감상 등 서정시들도 함께 실려 있다. “딸이 오는 날/제라늄화분 여섯이/일제히 꽃들을 피웠다//딸이 가는 날/늙은 내 손가락/씀뻑 벴다”(‘그 아비’ 전문) 노벨상 수상에 실패했지만 세계 문학계는 여전히 시인에게 주목하고 있다. 풍부한 시적 감수성에다 민주화운동 경력까지 갖춰 문학외적 요인도 중요한 심사기준으로 삼는 노벨문학상에 그만큼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작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의 2007년이 주목된다.1만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9) 賻儀(부의)

    儒林(735)에는 ‘賻儀’(부의 부/예법 의)가 나오는데,‘상가(喪家)에 扶助(부조)로 보내는 돈이나 물품’을 말한다.弔意金(조의금)을 전하는 봉투의 전면에 흔히 謹弔(근조),賻儀(부의),弔儀(조의)와 같은 문구를 사용한다.謹弔는 ‘죽음에 대하여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뜻이요,賻儀는 ‘초상난 집에 부조로 돈이나 물건을 보낸다.’는 의미다.弔儀는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뜻이다.奠儀(전의),香奠(향전),菲儀(비의),哲人其萎(철인기위),千秋永訣(천추영결)의 문구를 쓰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빈 봉투에 弔意金만을 넣고 單子(단자)를 생략하는 게 일반화된 느낌이다.禮(예)는 時俗(시속)을 따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왠지 迫切(박절)하다는 느낌이다. 單子는 ‘부조나 선물 따위의 내용을 적은 종이’를 말한다. 조선시대 문서 작성의 길라잡이라는 儒胥必知(유서필지)에 의하면,單子에는 弔辭(조사),物目(물목),日字(일자), 보내는 사람의 성명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말미에 護喪所(호상소:초상 치르는 데에 관한 온갖 일을 맡아보는 곳) 入納(입납)이라고 적는다. 봉투 전면의 우측에는 弔辭, 좌측에는 ‘○○宅 護喪所 入納’(○○댁 호상소 입납), 후면에는 ‘○○○ 謹上’(○○○ 근상)이라고 쓰면 된다. ‘賻’는 ‘貝’(조개 패)가 意符(의부)로 쓰인 形聲字(형성자).‘貝’는 고대 중국에서 화폐로 사용하던 ‘조개’의 상형이다.‘甫’(보)는 ‘밭’과 ‘풀 한포기’의 상형이 합쳐진 글자로 ‘밭’을 의미한다.‘薄賻(박부:가벼운 부의),賻助(부조:부의를 보내 장사를 도움),賻贈(부증:장례를 돕기 위해 초상집에 부조하는 물건)’ 등에 쓰인다.‘儀’의 본디 글자는 ‘義’이다. 깃털로 만든 장식을 나타내는 ‘羊’과 무기류의 일종인 ‘我’를 합쳐 ‘깃털로 장식한 儀仗用(의장용) 武器(무기)’의 뜻을 나타냈다. 후대로 오면서 본뜻과 달리 ‘마땅하다’ ‘옳다’의 뜻으로 널리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글자가 ‘儀’이다.用例로 ‘容儀(용의:몸을 가지는 태도),儀軌(의궤:본보기),祝儀(축의:축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내는 돈이나 물건)’등이 있다. 조선 중기의 정희등(鄭希登)은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선비였다. 그를 사위로 맞으려는 김안로(金安老)의 의중을 간파하고,“평생을 홀아비로 살지언정 醜門(추문)에 들지 않겠다.”고 거부하였다.實權(실권)을 장악한 윤원형(尹元衡)이 그의 인물 됨됨이를 알고 出仕(출사)를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윤원형과 손잡고 일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화답하니 윤원형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결국 그는 혹독한 拷問(고문)의 후유증으로 別世(별세)하고 말았다. 殮襲(염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구차한 살림살이는 가족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덕은 외롭지 않다는 말을 實證(실증)하듯, 한밤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비들이 300여尺(척)의 베를 가지고 와 염습을 하고 사라졌다.額數(액수)의 寡多(과다)로 성의를 가늠하는 風潮(풍조). 우리의 慶弔文化(경조문화)를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 했던 淸末(청말)의 사상가 강유위(康有爲)가 다시 온다면 어떻게 평할지 궁금하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피지 쿠데타 조짐

    피지 쿠데타 조짐

    남태평양의 작은 섬 피지가 6년 만에 쿠데타 위기를 다시 맞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뉴질랜드에서 라이세니아 카라세 총리와 피지군 사령관 프랭크 베이니마라마 해군 준장간 담판이 소득 없이 끝난 이후 이날 밤부터 30일 새벽까지 3시간 동안 피지 수도 수바는 무장병력에 의해 완전 장악됐다. 호주와 뉴질랜드 언론들은 자동 화기소총 등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수바 시내의 전력시설과 국회의사당, 통신시설 등을 모두 장악했고, 일부 군인들은 총을 쏘기도 했으며, 검문소도 곳곳에 설치했다고 전했다. 이날 유엔 안보리는 피지 정부와 군부에 대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군부는 “병력 배치 훈련의 일환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3000여명의 예비군까지 동원해 훈련을 실시하면서 외국의 간섭을 물리치기 위한 훈련이라고 주장했다. 호주 언론들은 ‘외국의 간섭’은 베이니마라마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국제사회에 피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온 호주를 일컫는 것으로 보고 있다. 30일엔 한밤중에 펼쳐진 무력시위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관측통들은 여전히 이번 병력배치가 군부의 훈련을 가장한 쿠데타 위협으로 보고 있다. 베이니마라마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입법안 즉,2000년 쿠데타 주역으로 반란죄가 적용돼 누쿨라우 섬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는 조지 스페이트를 사면시키는 안과, 피지원주민에게 해안가 영토 소유권을 넘겨주는 안을 철회할 것을 카라세 총리측에 요구하고 있다. 한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호주인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피지 인근 해역에 파견된 호주 해군의 상륙정 카님블라함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블랙 호크 헬기가 29일 바다에 추락, 승무원 1명이 숨지고 1명은 실종됐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매제와 처남댁이…불륜의 현장 잡혀

    매제와 처남댁이…불륜의 현장 잡혀

    매제와 처남댁이 한밤중에 여관방에서 불륜의 정을 나누다가 남편 이(李)모씨(45)의 신고로 덜컥한 망측한 이야기. 3월23일 전주 경찰서는 강(姜)모씨(42)와 장(張)모씨(41)를 간통 혐의로 입건했는데…. 이씨의 처 장여인과 매제 강씨는 지난 3월22일 밤 11시50분께 전북 전주시 전동 H여관 12호실에서 정을 나누고 있다가 평소부터 이들 사이를 의심하고 있던 이씨가 미행, 경찰과 함께 급습하여 현장을 잡았던 것. [선데이서울 70년 4월 5일호 제3권 14호 통권 제 79호]
  • [깔깔깔]

    ●야임마 줄서! 바람둥이 아내를 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불륜의 현장을 잡기 위해 어느날 출장을 떠난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집으로 돌아왔다. 한밤중에 담을 넘어 침실을 엿본 남편은 드디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열 받은 남편이 참을 수가 없어 현관으로 들어 가려는 순간 뒤에서 어떤 남자가 인상을 쓰며, “야 임마 줄서!”●찰떡궁합 이름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성은 ‘임’이요, 이름은 ‘신중’이다. 그래서 붙여 부르면 ‘임 신중’이다. 그가 어느날 선을 보게 되었다. 선을 보러 나온 여자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임 신중’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기를, “실은 제 이름이 ‘오 개월’입니다.”
  • [독자의 소리] 밤 운동때 밝은색 운동복 입자/진병진

    웰빙 붐이 일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걷기나 달리기 등 운동을 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에 나서다 보니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적지 않아 보인다. 특히 한밤중이나 새벽시간에 운전을 하다 보면 어두운 옷을 입고 도로를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이 잘 식별되지 않아 아찔한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이왕 즐거운 마음으로 나서는 운동이니 밝은 옷을 입는 등 안전 장비를 갖춰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유의하기를 당부한다. 운전자들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전방 주시, 교통법규 준수 등 안전운전을 해야 할 것이다. 진병진 <전남 여수시 여서동>
  • ‘천사표’ 이효리

    가수 이효리(27)가 한밤중 길가에 쓰러진 남성 취객을 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효리의 도움을 받은 남성이 어느 일간지에 ‘이효리씨 고마워요’라는 독자투고를 하면서 이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투고에 따르면 지난 14일 새벽 이효리는 일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 자신의 집으로 가던 중 한전아트센터 인근에 쓰러진 취객을 발견했다. 이효리의 소속사인 DSP엔터테인먼트는 “그때 이효리는 혼자가 아닌, 코디네이터와 함께 있었다.”며 “취객을 그 자리에 두면 범죄의 위험에 처하고 교통사고를 당할까봐 깨웠다. 하지만 만취한 상태여서 일어나지 않자 취객의 휴대전화로 그의 집에 전화해줬다.”고 설명했다. 이효리는 취객의 동생이 현장에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지키고 서 있었다고 한다. 이효리의 도움을 받은 취객은 서울 서초구에 사는 건축설계사 정모씨. 정씨는 “동생은 내가 쓰러져 있는 곳까지 올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 준 사람, 또 그곳까지 가는 동안 근처에서 떠나지 않고 지켜준 사람이 놀랍게도 연예인 이효리라고 했다.”며 “그의 이름 석자에도 놀랐지만 취객이 쓰러져 있어도 나 몰라라 하는 세태를 생각하면 그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용기가 놀라웠다.”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데뷔 5년에 꿈같은 행운 김부자(金富子)양

    데뷔 5년에 꿈같은 행운 김부자(金富子)양

    『사랑은 이제 그만』이란 노래로 한창 방송, 「디스크」계의 화제를 휩쓸고 있는 김부자(金富子)(22). 「디스크」가 나온지 석달 남짓한 사이에 8만장 이상(제작자쪽 주장)이 팔려나가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벌린 입을 못다 물고 있다. 김부자(金富子)의 가요계서의 상표는 「민요가수」였다. 현역 여자가수중에서 민요조 또는 타령죠에 특징을 갖고 있는 가수로는 김(金)「세레나」와 조미미(曺美美)가 있고 여기에 김부자(金富子)가 포함돼서 이를테면 「민요조 3총사」. 「데뷔」곡 『강화(江華) 아가씨』 (김부해(金富海)곡)부터 민요조를 들고 나온 김부자(金富子)는 가수생활 5년동안 줄곧 이 재래식 노래를 불렀다. 취입한 노래 80여곡 중 「히트」했다고 꼽을 수 있는 노래가 『팔도기생(八道妓生)』과 『임오시는 길』. 이 두곡은 김(金)양의 대표곡으로 꼽혀 69년 5월 도일(渡日) 때는 일본에서 「도너츠」반(盤)으로 취입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김부자(金富子)가 받은 각광은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민요풍의 노래라면 김(金)「세레나」가 단연 「톱」. 김(金)「세레나」가 대낮 같은 인기가도를 달렸다면 김부자(金富子)는 달밤을 달려온 응달의 가수다. 65연도 DBS 「가요백일장」에서 1위 (김(金)「세레나」) 2위 (김부자(金富子))들 차지하여 가수로서의 출발은 똑 같지만 전자에 비해 후자는 신인(新人)의 인상을 벗어나지 못한게 이제까지의 실정. 이런 인상이 『사랑은-』의 「히트」로서 완전히 벗겨졌다. 「트로트 ·리듬」의 『사랑은-』은 김(金)양이 즐겨 부르던 단조로운 민요조와는 전혀 다른 창법의 노래. 한동안 창법(唱法)이 일본색(日本色)이란 시비도 있었지만 대중가요로는 완숙의 기교를 부렸다는 평판이다. 『「히트」가 얼마나 신나는 것인지 처음 느꼈어요. 없던 「팬 ·레터」가 평균 하루 10여통씩 날아오고 한밤중까지 전화받기에 땀이 날 정도예요』 김부자(金富子)의 즐거운 비명. 제조 발매원인 「오아시스 ·레코드」쪽은 이 「디스크」의 매진속도가 가요 사상 최고라고 큰 소리다. 「베스트 ·셀러」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동백(冬栢) 아가씨』(이미자(李美子))가 통칭 20만장 나갔다지만 이 숫자는 발매 후 3년간의 집계고 남진(南珍)의 『가슴 아프게』(8만) 이미자(李美子)의 『섬마을 선생님』(10만)도 1년 이상의 장기간 판매부수. 『사랑은 - 』이 3개월에 8만장이라면 확실히 「디스크」계의 신기록이다. 1백 55cm의 단신(短身)에 방울처럼 동그란 얼굴의 김부자(金富子)는 이 노래로서 가수생활의 전환점을 삼게 됐다. 「민요가수」에서의 「이미지 ·체인지」는 이미 다양해진 그녀의 「레퍼터리」로서 실증하게 됐다. 새로 취입한 노래 『찾아온 천릿길』도 민요조가 아니라 달콤하게 흐느끼는 「트로트」풍의 대중가요 가락. 덩달아서 그녀의 줏가도 뛰어 올랐다. 지방무대에서 그녀가 받은 「개런티」는 하루 8천원의 C급에서 1만 5천원~2만원의 B급으로 껑충 뛰었다. 「나이트 ·클럽」에서도 김부자(金富子) 쟁칼전이 벌어졌고 방송국의 출연회수도 증가일로. 전속사에서는 이미 전화를 사줬고 곧 자가용차도 사주겠다고 약속했단다. 김부자(金富子)의 행운에 박수를 보내는 한 가수는 색다른 이류로 그녀를 추켜세웠다. 강화도(江華島)가 고향인 그녀는 홀어머니와 두 동생의 생계를 도맡은 세대주. 아버지가 돌아간 뒤 가정생활은 온통 김부자(金富子)의 두 어깨로 감당해왔다는 귀띔이다. 69년 12월에 그녀의 「매니저」격인 이상문(李相文)씨(32)와 약혼 , 『올 가을쯤 결혼식을 올릴 것같다』는 김(金)양. 『엄마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아서 결혼을 늦추고 싶어요』라고 방울같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선데이서울 70년 2월 15일호 제3권 7호 통권 제 72호]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한밤중 억지보증 서줬는데…

    Q동생이 카드빚을 지고 힘들어하다가 최근 파산신청을 했습니다. 저는 S카드회사 채무에 보증을 1000만원 정도 했는데, 동생이 파산신청을 해 그 빚독촉이 제게 올까 겁이 납니다.2년 전 어느날 밤에 자고 있는데, 추심하는 신용정보업체 사람이 동생을 앞세우고 들어와 동생이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대환대출에 누군가 보증을 해야 한다고 말해 보증서류에 사인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억울합니다. - 이영수(30) - A이영수씨와 S카드사 사이의 보증계약은 얼핏 유효하게 성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흠이 있습니다. 평온한 사생활의 장이 되어야 할 가정에 밤에 불쑥 들어와 형사처벌의 공포심을 유발시키고는, 계약을 맺었다고 하면 공정성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사자 사이에 대등한 지위가 전제되지 않은 계약은 허구입니다. 민법 104조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해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상대방의 약한 지위에 편승해 부당한 이득을 얻는 행위를 무효화시키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젊은이인 이영수씨가 야간에 잠에서 깨 경솔하게 계약을 맺은 것인데, 자신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고 S카드사만 부실채권의 가치를 높이는 이익을 얻게 된 보증계약은 불공정한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보증채무를 무효로 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민법 110조는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계약 당시 상황을 다시 보면,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이영수씨 동생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든지 하는 것으로 이영수씨를 속인 것일 수도 있고 겁을 줬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추심행위를 한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을 만한 상황을 묘사했을 뿐 현실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협박을 입증하기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물며 “사랑한다.”는 말도 반복해서 하면 사생활침해가 되는데,“돈달라.”는 이야기는 불편한 시간, 장소, 상황에서는 침해 정도가 심하고 경우에 따라 강박과 사기의 효과를 가집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강박과 사기 범주에 포함되기 어렵지만, 사실상 강력한 침해의 수단이 되는 행위를 별도의 법이 규제하고 있습니다. 채권추심업의 근거가 되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26조7호는 채권추심업무를 행할 때 신용정보업자가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폭행·협박을 하거나 채무자의 채무상황을 정당한 사유 없이 관계인에게 알리는 행위, 심야방문 등은 이 조항에 의해 규제를 받고, 어길 때는 추심자가 3∼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심야에 추심자 방문을 받은 이영수씨는 S카드사에 대한 보증이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 [열린세상] 합의제식 국정운영 필요하다/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오륙도 사오정’에서 시작해 지난봄 부장 승진의 의미와 배경을 풀어내던 녀석이 전화를 받은 것은 계곡물에 담가 놨던 소주 한잔하고, 막 끓어오르기 시작한 어죽을 한 술 뜬 때였다. 잠깐 다녀가야겠다는 사장님의 긴급호출이었다. 한밤중이 돼서야 돌아온 친구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득의양양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휴가 망쳤다는 투덜거림이 오히려 명랑했고, 그래도 내가 없으니 뭔가 차질이 있는 것이 고맙고 반갑더라는 취지의 장광설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엊그제 신임 교육부장관이 내정됐다. 사실상 공석 상태가 시작된 7월21일부터 치면 거의 한달 반 만이다. 부총리직으로 격상된 2001년 1월 이후만을 보면 약 9개월(전체는 약 14개월)이었던 평균 재임기간이 참여정부 들어서는 6개월도 채 안 된다. 관료들은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들리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겁나는 상황이 아닌가? 설마 ‘백년대계’를 도모하는 그 큰 장관직과 그 누구든 장관이 있으나 없으나 별 문제가 없지는 않을 터이고, 오너가 아닌 월급쟁이들, 특히 공무원들에게 제일 민감한 부분이 ‘자리’인데 말이다. 대통령의 인사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야당과 언론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과 여당이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 모습은 안쓰럽기조차 하다. 선거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당은 국민 정서와 여론을 이유로 극구 반대하고, 청와대는 늘 적정한 인사라는 해명과 함께 장관 임명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속한다는 명분을 제시하면서 강행하는 분란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장관 임명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가? ‘원래부터 특정한 대상 또는 주체에게만 주어져 있는’이라는 국어사전적인 뜻에 따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고유권한’을 여당을 포함해 누구와도 협의할 필요도 없고, 어떤 견제도 받지 아니하는 독점권한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군주제 하에서라도 적절한 개념이 될 수 없다. 대통령 중심의 정부 형태에서 대통령 단임제는 ‘민주적 정당성과 권한 및 정치적 책임의 크기 간의 비례관계 유지’라는 민주주의 원리의 핵심 명령을 헌법 규범과 제도에 의해 담보하지 못한다. 많은 부분이 여당과 야당 간의 대립구도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등의 유동적인 정치상황에 달려 있다. 인사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결정권한은 제도적으로 확정돼 있는데, 대통령의 권력자산과 정치적 책임의 주체로서의 위상은 임기가 지남에 따라 급격하게 위축되고, 결국 단임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개인의 인격화된 책임과 역사에 대한 책임으로 변화된다. 국정운영의 공과에 대한 평가와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여당의 몫이다. 또한 선거를 통해 확보한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가 임기 중 계속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대개는 낙관적인 가정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요즘같이 집권 후반기에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극히 저조한 상황에서는 더욱 심화되고, 이 경우 여당의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다음 두 가지뿐이다. 장관 등 요직에 대한 인사권을 포함해 권력을 공유하는 일종의 합의제식 국정운영 방식을 도모하거나, 아니면 책임의 단절과 분리를 위해 공조체계를 파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이 강요되는 정국이 헌법의 예상범위 안에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현재의 정치 현실에 맞추어서 민주헌정제도의 운용방향을 고민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 국정의 안정성과 효율성만을 고려해도 전자가 더 나은 것은 물론이다. 더욱이 대통령 스스로 소위 레임덕을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여당이 장관 인사와 관련해 적극 반대의견을 개진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의 크기에 부합되는 당연한 권한지분의 행사다. 이에 대한 반박의 논거로 주장될 수 있는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은 없다. 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 [심상덕의 서울야화] (17) ‘덜덜골목’ 덕수궁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래서 냉장고, 선풍기, 에어컨을 많이 사용했을 텐데요. 그런데 이 전기와 관련해 우리 서울의 옛 지명 중에 ‘덜덜골목’이라고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덜덜골목’이 어디냐고요. 덕수궁에 있습니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남쪽 담장을 따라 난 그 덕수궁 돌담길이 바로 ‘덜덜골목’이었던 겁니다. 이 골목에 왜 ‘덜덜골목’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아십니까.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은 언제 어떻게 또다시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 몰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종은 한밤중에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소스라쳐 놀라는 그런 날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긴긴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이른 새벽, 까치소리를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종은 당시 한성판윤, 지금의 서울시장인 이채연을 불러 “자고로 모든 흉한 일들은 한밤중에 일어나는 법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가 지금 거처하고 있는 덕수궁을 한밤중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불을 밝히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100여년전인 190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덕수궁에도 ‘전기소’라는 이름의 ‘발전소’가 들어서게 됐다고 합니다. 덕수궁 발전소에 설치된 발전기는 25㎾의 직류 발전기였고, 그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덜덜덜덜∼ 덜덜덜덜∼’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은 지금의 덕수궁 돌담길을 덜덜골목이라고 불렀습니다. 덕수궁에 전기가 들어오고 난 뒤 고종은 “이 같은 경사스러운 일에 잔치를 한번 크게 벌여야 되지 않겠느냐. 외국 공사관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고관대작은 물론 외국 공사관 사람들을 전부다 초청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글쎄, 임금님을 모신 가운데 축하 잔치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전기가 꺼져버려서 암흑천지가 되어 버린 겁니다. 외국 공사관사람들 다 불러놓고 임금님을 모신 그날 잔치는 엉망이 되어버릴 수밖에요. 민간에도 한등 한등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09년. 당시만 해도 10촉광 희미한 전등 한개의 한달치 전기 사용료가 1환 60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이연실이 부른 ‘목로주점’이란 노래에 나오는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에 등장하는 30촉짜리 전등 하나의 한 달 전기 요금이 4환이었습니다. 또 50촉광은 6환. 그 당시 물가로 쌀 한되에 단돈 18전이었거든요. 그러니 일반 서민들은 감히 엄두도 못냈던 겁니다. 그 무렵 날품팔이하는 사람들 하루 일당이 30전. 쌀 두되를 살 수 없는 액수였습니다. 당시 관청이나 은행을 포함해 우리 서울의 전등 수가 8000개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귀한 전기를 덥다는 핑계로 너무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 살인 부른 아파트 소음 시비

    대구 수성경찰서는 9일 한밤중에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말다툼 끝에 이웃 주민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이모(57)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1시25분쯤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모 아파트 12층 자신의 집 현관에서 복도로 난 창문을 통해 옆집에서 들려오는 부부간 대화가 시끄럽다며 큰 소리로 욕을 했다가 이를 듣고 따지러 온 이웃 주민 황모(52)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황씨는 흉기에 맞은 뒤 바로 옆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 곧바로 숨졌으며 이씨는 황씨 가족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서 이씨는 “작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까 평소 벽을 통해서도 소음이 들리는데 한밤에 시끄러워 한마디 했더니 황씨가 두 차례나 따지러 와서 홧김에 찔렀다.”고 말했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담당판사 “술한잔 해야 잠 올것같다”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8일 한밤중에야 결정됐다. 오후에 영장실질심사를 하고 밤 9시 전후에는 발부 여부가 결정되는 보통의 사건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밤 11시45분쯤에야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이상주 부장판사실의 문이 열렸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정을 내린 지 10분이 지나서였다. 이 판사의 첫 마디는 “참담하다.”였다. 한때 영장 발부가 늦어지자 검찰 주변에서는 기각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 시작했다. 실질심사 과정에서 이 판사가 금품제공자인 김홍수씨의 진술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고, 여러 정황 증거도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발부 결정을 내린 뒤에도 이 판사는 “과연 김홍수씨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진술이 한번 바뀌었고, 공판전 증인신문도 거부했다. 김씨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본안에서도 계속 다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조씨가 돈을 받았다는 게 입증되면 대가성 여부는 제쳐두고 유죄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면서 “조씨도 나름대로 억울한 사정이 있겠지만, 법관이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심리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10시간이 넘게 김영광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민오기 전 서울서대문경찰서장, 그리고 조씨를 잇달아 신문했다. 조씨를 신문하는 데만 6시간 정도가 걸렸다. 영장이 청구된 직후부터 여론은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며 법원을 압박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조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해야 한다며 성명을 냈다. 이 판사는 “여론을 일일이 살펴보고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고백했다. 사건을 둘러싸고 악화된 여론을 무시하고 법리적 판단만으로 발부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영장이 발부되고 한숨 돌린 수사팀도 한 식구였던 검사가 구속된 탓에 밝은 표정을 짓지 못했다. 자신의 선후배들 영장을 발부한 뒤 이 판사는 “술이라도 한 잔 마셔야 잠이 올 것 같다.”고 침울하게 말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열린세상] 법을 지켜야 할 이유/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독일 유학 중에 보았던 TV방송의 ‘몰래카메라’ 얘기다. 조그마한 글씨로 당부사항을 적은 쪽지를 슈퍼마켓 출입문 한 구석에 붙여 놓고 손님들의 반응을 엿보는 것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고객 여러분께! 카트 사용 중에 충돌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에는 자동차 깜빡이를 켜는 식으로 손을 흔들어서 수신호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인 백.” 카메라에 잡힌 장면은 필자의 예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노인들을 포함해서 손님들 거의 대부분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이 유심히 쪽지를 읽고, 카트를 밀고 가면서 곧이곧대로 손을 흔들어서 좌회전, 우회전 신호를 하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박장대소했다. 제작자는 대충 이런 결과를 예상하면서 가벼운 흥밋거리로 만든 것이었겠지만, 필자에게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사점이 적지 않은 화두로 남아 있다. 아마도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의 방송프로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성냥 한 개비를 쓸 때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담뱃불을 붙인다는 ‘절약’의 범례와 함께,‘준법!’ 하면 연상될 정도로 자주 들었던 ‘도로에 보행자가 전혀 없는 한밤중에도 빨간 불이 들어오면 철저하게 정지한다’는 얘기의 무대가 독일이었다. 실제로 5년 남짓 살면서 가끔 목격한 바, 적막한 새벽녘의 외곽도로 교차로에서도 묵묵히 신호등에 따라 준법운행을 하는 모습은 전혀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또 한편, 나치 체제를 뒷받침하고, 결과적으로 유대인 학살의 만행과 ‘유색인종과 성교나 유사성교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하는 따위의 ‘총통명령’을 합법화하였던 이른바 ‘수권법’(授權法)의 현장도 대략 반세기 남짓 전의 독일땅이었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를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재연한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감독,1993)를 본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 온 다음에도 한참이나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눈물을 훔척대는 모습을 보았던 곳도 당시 독일 수도인 본이었다. 비판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정신자산에 관한 한 둘째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야만과 폭력을 용인하였던 것인지, 필자 역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상념에 빠졌던 것도 기억난다. 2005년도 ‘사회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로 20.8%가 ‘손해 볼 것 같아서’,26.6%가 ‘다른 사람도 지키지 않아서’,‘기타’가 4.5%, 나머지 48.1%는 ‘귀찮아서’라고 답하였다. 최근에 적발된 목불인견의 법조비리작태들이 잘 보여주듯이, 그 이유들은 주로 법집행의 엄정성과 공평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법문화의 후진성, 특히 냉소적이고 무비판적인 법의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항목을 비슷하게 구성하여 설문을 반대로 바꿔서 ‘자기 자신이 법을 지키는 이유’를 물으면 답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민주법치국가에서 기대되는 준법의 제일의 이유는 시민 개개인의 건실한 비판력과 사회의 자정력에 의해서 확인되고 담보되는 법의 타당성에 대한 믿음과 수긍이다. 말하자면 ‘따를 준’(遵)자 그대로 존경할 만한 받침, 즉 법을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과 합리적인 실익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대신 의논하여 결정’하는 대의(代議)입법자에 대한 신뢰와 입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필수조건임은 물론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 후에 폐기 또는 존치된 규정들을 선별하여 정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누더기가 되어 버린 ‘신문법’도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시킨 법률이었다. 장중한 대법전 속에 ‘슈퍼마켓교통법’은 없는지, 물건 잔뜩 실은 카트 밀랴, 깜빡이 수신호 하랴,‘꼭두각시준법’에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닌지 가끔 돌아 볼 일이다. 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 이번주엔 밤낮없이 폭염폭탄

    앞으로 최소 1주일간은 전국이 밤낮으로 찜통더위에 빠질 것 같다. 특히 한밤중에도 기온이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전국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은 비 소식도 없다. 당국이 폭염피해 대책까지 마련했을 만큼 맹렬한 무더위가 찾아올 테니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야겠다. 기상청은 31일 “남부지방에는 이번 주 내내 열대야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중부지방에도 이번 주 후반부터 열대야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열대야는 기온이 한밤중에도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너무 더워서 제대로 잠들기가 힘들어진다. 30일 저녁부터 31일 아침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31일 아침 최저기온은 강릉 27.7도를 비롯해 포항 26.7도, 서귀포 26.2도, 대구 25.8도, 부산 25.3도였다. 또 이날 낮 한때 경남 합천과 경북 포항, 영천의 기온이 36.2도까지 치솟는 등 남부 지방은 낮 최고기온이 대부분 30도를 웃돌았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폭염이 시작된 것은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확장하면서 우리나라를 덮는 바람에 기온이 올라가면서 습도까지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해안지역의 많은 수증기가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씨는 앞으로 최소 1주일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 이후에는 다소 기온이 떨어질 전망도 있지만 기상청도 장담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1∼6일 하루 기온분포는 서울 23∼30도, 춘천 23∼33도, 강릉 24∼33도, 대전 23∼32도, 전주 24∼33도, 광주 24∼32도, 대구 25∼35도, 부산 25∼32도, 제주 24∼31도 등이다. 소방방재청은 폭염에 따른 피해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폭염대피소 사전 지정·운영 ▲취약계층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종합대책을 마련해 추진키로 했다. 열대야를 이기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어 충분히 환기를 시키면서 바깥기온과 5도차 이내를 유지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미지근한 물로 간단히 샤워를 하는 것이 좋다. 잠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기상시간을 철저히 지켜 수면주기 생체리듬을 유지하고 낮잠은 밤시간의 수면을 방해하므로 자더라도 20∼3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숙면을 위해 수박과 같은 계절과일을 먹되 늦은 시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좋다. 지나친 당분 섭취는 신경과민이나 스트레스를 부를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 샤워는 찬물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하고 자주 스트레칭을 해야 하며, 에어컨 사용 때에는 2∼3시간 간격으로 환기를 한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로칼뉴스]경찰을 과부인줄 알고

    형제가 한밤중에 더듬다가 덜컥 과부방에 뛰어들어 엉뚱한 짓을 하려던 K(23)씨 형제가 경찰에 붙들렸다. 이들은 어느 날 밤 술에 곤드레가 되어 홀로 잠자는 J여인 방에 숨어들어 욕을 뵈려던 것이 엉뚱하게도 도경 경무과 근무 J경장 방에 잘못 침입, 다리를 만지며 수작을 걸다 잠에서 깨어난 유도 3단의 J경장에게 보기좋게 KO 됐던 것. 억세게 재수없는 이들 형제는 경찰에서 한결 뉘우치는 빛없이 『그 놈의 과부 때문에 신세 망쳤다』고 투덜투덜-. <안산(案山)> 진정인은 정신분열증 대지 1만평을 사기 당했다는 진정인이 정신 분열증 환자로 밝혀져 허위 사실로 드러나자 열심히 수사하던 D서는 맥 빠진 표정-. 대구(大邱) 태평로 李모(62) 노인은 같은 동 자기소유 대지 1만평의 등기 이전을 시내 달성동 張모 행정대서사에게 맡겼다가 사기당했다고 청와대에 진정까지 했는데 이 노인의 장남이 수사하던 D서에 나타나 아버지의 정신 분열증 진단서를 보이고 이해를 구하자 담당 형사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 <대구(大邱)> 감방서 설탕물만 며칠전 부산 D서에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된 C(28)씨는 유치장속에서 결백을 주장, 계속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경찰은 달걀, 소시지등 유치장에선 구경할 수 없는 온갖 진수성찬을 진상하고 있으나 모두 사절, 오직 설탕물만 요구하고 있다고. 설탕물만 마시는 C씨의 설명인즉 『설탕은 죄 없는 어린애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억울한(?) 누명엔 설탕물이 특효약? <안산(案山)> 수라장 이룬 2중 결혼식의 현장 내연의 처가 있는 청년이 묘령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려다 정체가 발각, 식장이 수라장이 되었다. 부산 T회사 경리과장인 金모(29)씨는 동거중인 홍(洪)모(26) 여인에게 『회사에 출근한다』고 속이고 집을 나와 엉뚱하게 예식장으로 출근(?), 결혼식을 올리려다 이같은 사고를 빚은 것. 자기 남편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별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임신 9개월의 홍(洪)여인은 「웨딩·마치」를 듣자 그만 넋을 잃었고 새신부 아버지 송(宋)모씨는 3층 계단에서 2층 계단으로 떨어져 실신. 가끔 일어나는 중혼극(重婚劇)이긴 하지만 정말 왜들 이러실까? <안산(案山)> 유방 만졌다, 아니다에 증인은 두 살짜리 전남 광주 지검 황상구(黃相九) 검사는 K서에서 송치되어온 강제 추행 피의자 정(鄭)모 (51) 씨를 조사중에 있는데-. 혐의 내용인즉 젖먹이고 있는 유부녀의 젖꼭지를 鄭씨가 만졌다는 것인데 鄭씨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반면 같은 마을 朴모 여인은 분명히 자기의 유방을 만졌다고. 양쪽의 주장이 이렇게 엇갈리고 있는 반면에 증인이라는 것은 겨우 두 살짜리 젖먹던 어린애뿐이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한다? <광주(光州)> 3년만에 차삯을 낸 청년 군복무 당시 무임 승차를 했던 청년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철도국장 앞으로 차비를 가져왔다. 경북(慶北) 영주(榮州)군 장수(長壽)면 유(劉)모(27)씨는 3년전 군복무 당시 무임 승차했던 서울-주안(朱安), 서울-수색(水色), 영주(榮州)-충기(豊基)간의 차비 6백30원을 영주 철도국장 앞으로 보내온 것.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劉씨의 차비계산이 틀려 40원을 되돌려 준 철도당무자들은 이와같은 처음 있는 일에 감사하다 못해 어리둥절한 얼굴. <영주(榮州)> 절에 살며 도둑질 경기(京畿)도 양평(楊平)경찰서는「아베크」절도단 최(崔)모(25)와 김(金)모(17 女)를 상습 절도혐의로 구속. 이들은 4개월 전부터 여주군 금사면 묘현사(寺)에서 동거생활을 시작, 여주군을 무대로 경찰 경비 전화선만을 8회에 걸쳐 끊어 팔아왔다고. 절에 살면서 부처님 힘만 믿고 한 짓 같은데 하필이면 도물(盜物)이 경찰 전화선이냐고 수사관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양평(楊平)> [선데이서울 69년 11/23 제2권 47호 통권 제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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