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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블 하이라이트

    ■레버리지 5(AXN 밤 10시 50분) 와인 양조장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던 일꾼이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회사의 변호사가 사망자의 딸을 찾아와 비밀 유지 계약서와 거액의 돈을 내놓고 돌아간다. 이상하게 여긴 딸은 그들이 아버지에게 어떤 일을 한 건지 밝혀달라며 레버리지에 부탁을 한다. ■J골프 스페셜-스코틀랜드 기행(J 골프 밤 12시) 이신 프로와 함께 ‘디 오픈 챔피언십’ 140여년의 골프 역사를 따라 스코틀랜드를 찾는다. 골퍼라면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리는 태초의 링크스 코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세인트 앤드루스는 작은 해안도시이지만, 곳곳에 골프와 관련된 장소들이 가득하다. ■캠핑크루(내셔널지오그래픽 밤 9시) 서울에서 단 30분 거리. 수도 서울과 가까운 곳에도 거대한 자연을 품은 오지가 있다. 울창한 숲과 남한강의 아름다운 비경을 품은 경기도로 떠나는 오토캠핑. 대중교통을 타고, 혹은 자전거 트레킹을 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들을 만나본다. 과연 도심 속 숨은 1인치의 오지마을에서 즐기는 오토캠핑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의 농경수리시설과 벽골제(환경TV 오전 11시 30분) 척박했던 청두평원을 하늘의 곳간으로 바꾼 중국 쓰촨성의 두장옌. 이곳을 비롯해 한국, 일본의 고대 수리시설들에서 발견된 수리기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대 수리시설 축조에 가장 많이 사용된 부엽공법이다.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서 발전해 그 기술이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는데…. ■와타나베의 건물탐방(홈스토리 밤 11시) 사이타마 현에 있는 토야씨 댁을 찾아간다. 드넓은 들판이 보이는 전원에 자리한 집에는 수많은 나무가 심겨진 정원이 있고, 거실에는 바닥을 뚫어 직접 땅에 나무와 꽃을 심어놓아 집 밖의 초록이 집 안까지 이어져 싱그럽다. 집 안 어디에서나 보이는 바깥 풍경은 탁 트인 느낌으로 집을 더 넓어 보이게 한다. ■원피스 4(애니맥스 밤 8시) 우솝은 화장실 용무가 급해서 한밤중에 일어난다. 그런데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간 우솝은 자기를 향해 웃고 있는 존재에 놀라 그만 기절하고 만다. 다음 날 루피 일행은 고잉메리호의 초기 형태로 배가 말끔히 수리되어 있는 것에 놀라고 우솝은 자신이 꿈을 꾼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 [중국통신]수도관 파손에 주민들 한밤중 대로에서 ‘샤워’

    [중국통신]수도관 파손에 주민들 한밤중 대로에서 ‘샤워’

    파손된 수도관에서 물기둥이 솟자 이틈을 타 샤워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 밤 10시 경 창사(長沙)시 푸룽(芙蓉)구 한 지역에서 수도관이 파손되면서 4m 높이의 물기둥이 치솟았다. 물기둥은 도로 주변 사방으로 퍼지며 대형 분수같은 장면을 연출했고, 이 틈을 타 주민들은 샴푸 등을 가지고 나와 한 여름 밤의 대로 샤워를 즐겼다. 한 남성은 “지금까지 이렇게 사치스러운 샤워를 한 적은 없는 것 같다”며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제주 10살女 성폭행범, 범행 뒤 해수욕장가서…

    제주 10살女 성폭행범, 범행 뒤 해수욕장가서…

    제주의 한 가정집에 몰래 들어가 혼자 잠자던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달아났던 피의자가 사건 발생 16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귀포경찰서는 지난달 25일 오전 4∼5시쯤 가정집에 침입해 가족이 없는 틈을 타 혼자 잠자고 있던 A(10)양의 목을 조른 뒤 성폭행하고 달아난 혐의로 허모(21)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은 A양이 한밤중에 갑자기 목이 졸려 범인의 인상착의를 전혀 보지 못한 상태여서 현장 주변의 거주자 탐문수사, 폐쇄회로(CC)TV와 블랙박스 분석 등을 통해 용의자 파악에 나섰다. 또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모를 채취, 주변의 동종 전과자와 일반인 등 1300여명을 대상으로 DNA 대조작업을 벌인 끝에 허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추적해왔다. 경찰은 결국 지난 10일 오후 6시 55분쯤 도내 한 해수욕장으로 물놀이간 허씨를 붙잡았다. 허씨는 경찰에 체포될 당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결과 허씨는 피해자 집으로부터 직선거리로 불과 50여m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으며, 과거 상해전과가 있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그는 사건 전날 친구들과 함께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 30분까지 술을 마신 뒤 택시를 타고 집 주변으로 돌아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범행 당시 허씨가 피임도구를 사용한 점 등을 토대로 계획적 범행 여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그는 범행 이후 제주시내 한 오피스텔에 친구와 함께 머물며 공사장 일을 해왔다. 허씨는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현장에서 자신의 DNA가 확인되면 모든 것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허씨의 당일 행적과 범행 경위 등을 더 조사한 뒤 12일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만델라 장손, 부족 지도자 자격 박탈 위기

    넬슨 만델라의 장손인 만들라 만델라(39)가 출신 부족인 템부족의 지도자 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7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간지 더타임스에 따르면 템부족의 즈웰리반지 달린뎨보 왕은 위중한 상태인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지를 둘러싸고 가족 간 법정 싸움을 초래한 장손 만들라 전통위원회 위원장(추장)을 템부족의 모든 직위에서 축출한다고 밝혔다. 만들라 위원장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숨진 자녀 3명의 유해를 2011년 다른 가족과 사전 협의 없이 한밤중에 조부모의 묘역이 있는 지역 ‘쿠누’에서 ‘음베조’로 이장했다. 이에 따라 장녀인 마카지웨 만델라(60) 등 가족 16명은 지난달 28일 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하지만 만들라 위원장은 여전히 “만델라의 장지는 남아공 문화에 따라 (장손인) 나에게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남아공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집안 다툼이 만디바(만델라 존칭)를 그늘지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음베조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 음베조에서 30㎞ 떨어진 쿠누로 옮겨 살았다. 자서전에 쿠누에 대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간직한 곳이라고 적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만들라 위원장은 남아공 국영방송을 통해 “달린뎨보 왕의 그런 언급은 터무니없다”며 “관습법에 따른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고서는 부족의 지도자 자격을 박탈할 권한이 없다”고 항변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엘리멘트리(OCN 밤 11시) 눈폭풍이 몰아치는 한밤중. 텅 빈 빌딩을 찾아온 미녀는 경비원을 무장해제시킨다. 늦은 밤 빌딩을 지키던 경비원이 살해되고, 창고에 있던 최신 휴대전화들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공교롭게도 뉴욕시 전체가 정전되어 GPS 추적마저 불가능한 상황에서 셜록은 도둑들의 목표가 휴대전화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직감한다. ■레버리지 5(AXN 밤 10시 50분) 문제아들에게 요리사로서의 직업 기회를 주겠다는 토비의 꿈은 램파드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다. 토비는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레버리지 팀에 의뢰하고 엘리엇은 자신의 스승인 토비를 위해 네이트를 설득해 사건을 맡는다. 그런데 램파드의 더 큰 문제는 정체 모를 세력들과 수상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전현지의 게임의 법칙 시즌 2(J 골프 밤 9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남자 뜀틀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최초의 체조 부문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로 핸디캐퍼의 골프 고수 여홍철 교수가 함께한다. 이번 시간에는 2005년 골프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아마추어 13승을 기록한 KPGA 표석민 프로와 히든밸리 GC 스카이코스 1번 홀, 6번 홀, 8번 홀에서 매치 플레이를 벌인다. ■나쁜 피(캐치온 밤 11시) 교환학생 자격으로 스페인으로 가게 된 인선(윤주)은 출국을 며칠 앞두고 암에 걸린 엄마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다. 자신이 강간으로 태어났으며 죽은 줄 알았던 친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깊이 상처받은 인선은 복수를 위해 아버지를 찾기로 결심한다. ■카퍼(CNTV 밤 9시 25분) 이바의 술집에서 일하는 몰리는 이바한테 펜던트를 돌려받아 코코란에게 전한다. 전당포에서 펜던트를 찾았다는 얘기를 들은 코코란은 아내의 행방을 찾기 위해 전당포로 향한다. 뜻밖에도 전당포에 펜던트를 맡긴 사람은 며칠 전 살해된 그린들 부인이었다. 사건을 해결하면 아내의 행방을 찾을 거라 믿은 코코란은 사건 해결에 뛰어든다. ■날아라 호빵맨(애니맥스 낮 12시) 무지개 끝에 보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짤랑이는 보석을 찾으러 떠난다. 한편 마을에 요괴 소년이 나타난다. 요괴 소년은 상대방의 모습으로 변신한 채 인사를 하는 요괴 나라의 예의를 갖춰 친구들에게 다가가지만 모두 깜짝 놀라 도망치고 만다. 그런 요괴 소년을 몰래 지켜보던 세균맨이 요괴 소년에게 접근한다.
  • [케이블 하이라이트]

    ■에어 에이스(내셔널지오그래픽 밤 11시) 2차 세계대전 당시 랭커스터 폭격기는 공군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를 목표물로 삼는 총력전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랭커스터 폭격기의 업적은 그늘에 가려지게 됐다. 그 당시 랭커스터 폭격기에서 운명을 함께한 크루 7인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증언과 실감나는 재연 영상을 통해 만난다. ■컨페션:고해(AXN 밤 10시 50분) 한 암살자가 한적한 성당에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보이는 암살자와 신부.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온 암살자는 용서를 받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해성사를 한다. 그러다 신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암살자는 오히려 신부의 처절한 고해성사를 듣게 된다. ■링컨:뱀파이어 헌터(캐치온 밤 11시) 어린 시절, 괴한에게 어머니를 잃은 링컨은 복수에 나서지만 오히려 생명을 위협받는다. 위기의 순간 헨리를 만나 목숨을 구한 링컨은 그를 통해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뱀파이어 헌터로 거듭난다. 정체를 숨긴 채 은밀히 미션을 수행해 오던 어느 날 뱀파이어 조직의 거대한 실체와 마주한다. ■프라이데이(FTV 밤 11시) 아웃도어와 캠핑을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는 요즘, 그들을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캠핑과 카약, 낚시의 즐거움도 화면으로 선사한다. 피서철을 맞아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에서 피싱·카약·캠핑의 진수도 보여 준다. 만리포해수욕장은 수도권에서 가까워 카야커(카약을 즐기는 사람들)들에게 바다카약의 메카 같은 곳이다. ■그림형제 2(채널CGV 밤 10시) 행크의 오랜 친구 제럴드는 고등학생 딸 칼리가 갑작스럽게 실종돼 행크를 찾아간다. 닉은 딸이 걱정돼 고통스러워하는 제럴드가 갑자기 짐승으로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행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제럴드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 한편 제럴드는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아내의 가족들이 딸을 납치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날아라 호빵맨(애니맥스 낮 12시) 해골맨은 매일 한밤중에 ‘일어나’ 하고 외치며 마을 사람들의 잠을 방해한다. 호빵맨은 마을사람들이 단잠을 잘 수 있도록 카레빵맨, 식빵맨과 함께 해골맨을 추적한다. 한편 짤랑이는 사랑을 이뤄 준다는 꽃으로 알려진 두근두근초를 찾아내고 짝사랑하는 식빵맨에게 이를 주려고 찾아간다. 그 장면을 목격한 세균맨은 식빵맨을 납치한다.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경찰모임 “축소·은폐 관련자 엄벌을” 교수단체 “사건 실상 낱낱이 밝혀야”

    여야 간 해석 논쟁이 불붙은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과 발췌본 공개와 별개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축소·은폐 수사 의혹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경찰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무궁화클럽은 26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정치적 외압과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인사위원회와 경찰정책심의위원회의 결성을 제안한다”며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축소 은폐 수사의 모든 관련자들을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또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 토론이 끝나자마자 경찰서장이 ‘국정원 직원 댓글 개입이 없다’고 발표했다”면서 “한밤중에 수사결과 발표가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고 비판했다. 교수 사회도 시국 선언에 뛰어들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한양대 교수 일동’이라고 밝힌 교수 47명은 이날 “국가 기관이 나서 선거에 개입해 조작하고 은폐했다는 것은 민주주의 근본을 파괴한 것”이라면서 “가장 큰 수혜자이자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사건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등 전국 17개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도 공동 성명을 내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관한 철저한 국정조사와 국정원 개혁,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이은주 기자의 컬처K] 봉춤·각선미춤…속살의 유혹, 뮤지션의 진짜 속살은 어디에

    가요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가요기획사의 본부장 A씨는 최근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걸그룹의 선정적인 춤 동작에 도무지 눈을 둘 곳이 없었던 것. 인기 걸그룹을 키워낸 A씨는 “대낮에 청소년과 가족들이 함께 보는 시간대에 TV에 봉춤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군무를 앞세운 K팝은 분명 미국 팝과는 특징이 다른데 자극적으로만 흐르는 경향이 아쉽다”고 말했다. 요즘 가요계는 말 그대로 ‘섹시 전쟁’이다. 날씨가 일찍 더워진 탓도 있지만 ‘충격’ 요법으로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더 크다. 여성의 섹시함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가수가 음악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퍼포먼스에만 전력을 쏟는 것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요새 가요를 듣다 보면 온통 남자를 유혹하지 못해 안달난 여자들뿐이다. 걸그룹 달샤벳은 최근 내놓은 신곡 ‘내 다리를 봐’에서 ‘진도 언제 나갈 거니/ 취해도 집에 가고/ 너 남자 맞니/ 말로만 섹시해 하지마’라는 노골적인 가사로 SBS에서 심의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마릴린 먼로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며 치마를 벗고 다리를 노출시키는 야릇한 춤동작을 곁들였다. ‘벌써 헤어지긴 싫어요/ 날 좀 더 알고 싶나요/ 그러면 들어와서 차 마실래요?/ 아침이 올 때까지 부탁할게요’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차 마실래?‘의 가사도 만만치 않다. 귀여운 안무로 야한 분위기를 중화시키려 했지만 이 그룹의 막내 멤버는 만 18세다. 짧은 치마를 입고 한밤중에 남자를 유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걸그룹들이 너도 나도 섹시 경쟁에 나선 이유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걸그룹은 보이 그룹에 비해 팬덤이 취약하고 이미지에 기대 뜬 경우가 많아 좀더 세고 자극적인 콘셉트를 찾다가 벌어진 광경이다. 인지도가 낮거나 이미지가 뚜렷하게 각인되지 않은 후발 주자들의 경쟁은 더욱 심하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한번 더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물론 이 같은 전략이 맞아떨어진 사례도 가끔 있다. 걸그룹 걸스데이는 최근 ‘기대해’라는 곡에서 멜빵을 좌우로 내리면서 벗는 ‘멜빵춤’으로 섹시 그룹으로 이미지를 전환했다. 오디션 출신 신인 가수 김예림도 속살이 비치는 속옷을 집중적으로 비추는 티저 뮤직비디오로 선정성 논란을 일으킨 와중에 신곡 ‘올라이트’가 각종 음원차트 순위 1, 2위를 다투며 단박에 떴다.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걸그룹 애프터스쿨은 봉춤을 들고 나왔다. 소속사 측은 애써 ‘폴 아트’라는 단어로 포장하지만 성인 나이트클럽에 등장하는 봉춤이 청소년들이 보는 가요 프로그램에 등장한 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방송사의 수수방관도 문제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선정적인 카메라 앵글도 문제”라면서 “미국처럼 지상파와 케이블 등 채널별, 시간대별로 노출 수위나 출연자에 차별성을 두는 등 시청층에 맞춘 방송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어떤 강력한 퍼포먼스도 ‘노래’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숱한 아이돌 가수를 제치고 상반기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한 가수 조용필은 얼마 전 인터뷰에서 “후배 가수들이 퍼포먼스의 비중을 끌어내리고 화음과 멜로디 등 음악적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롱런하는 ‘진짜 가수’를 꿈꾸는 가수와 제작자라면 ‘가왕’의 충고를 흘려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erin@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2·끝)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하)

    [명사가 걸어온 길] (12·끝)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하)

    길병원의 모태가 된 자성의원(慈聖醫院)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태어날 생명들의 성스러움’을 떠올리면서 지은 이름이다. 이길여 회장의 집무실에는 ‘가회합례 수세인천’(嘉會合禮 壽世仁泉)이라는 글귀가 내걸려 있다. ‘참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른 삶 이루게 하고 마르지 않는 생명으로 온누리 건강하게 하리로다’는 뜻이다. 55년 전 출발 당시나 지금이나 의사로서 걷는 걸음걸음에 이러한 생명존중과 박애봉사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가 의과대학에 들어간 뒤 산부인과를 택한 것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의식해서였다. 당시 임신부의 경우 의사가 남자라는 이유로 진찰을 거부하거나 아예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죽는 일이 적지 않았으며 산후조리를 소홀히 해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자들도 많았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 회장은 여성들에게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그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에 산부인과를 선택했다. “요즘에야 병원을 개원하면 한동안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홍보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하지만 그 시절 우리 병원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원을 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들이 물밀듯 찾아오는 바람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봄 여름 가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특히 함께 개업했던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대구로 내려가는 바람에 혼자서 진료를 하느라 끼니조차 거르는 날이 많았지요.” 이 무렵 시골에 있던 어머니가 인천으로 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딸에게 맞선을 보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한번도 맞선을 보지 않았다. 눈만 뜨면 환자들이 찾았고 미국 유학도 가야 하는 등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환자와 결혼했다’라고 굳게 다짐했다. 1964년 미국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미국 병원 10여곳으로부터 수련의 제의를 받았다. 그중에 뉴욕에 있는 메리 이머큘리트병원을 선택했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병원 일은 후배한테 부탁하고 그해 가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당시만 하더라도 병에 걸린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다 못해 찾는 곳이 병원이었지만 미국은 이미 예방의학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암검사, 대사 이상검사 등 병이 생기기 전에 진료를 받는 행태가 보편화돼 있었다. 아울러 체계적인 의료시스템과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친절과 열정 등이 그랬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전 5시부터 한밤중까지 인턴과정을 겪었다. 환자에 대한 정보와 체크리스트를 달달 외우느라 밤잠을 못 이룬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잠을 이기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각오로 잠과 싸우며 공부를 했다. 이듬해 인근의 퀸즈종합병원으로 옮겨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5년에 걸친 미국 생활은 고달픔도 많았지만 세상을 크고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소득이었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실행하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도 이때였다. 소아과 인턴 시절에는 ‘주사 잘 놓는 의사’로 통했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단번에 혈관을 찾아내 주사를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해주는 포경수술을 5분(다른 의사들은 20분 정도)만에 끝내 놀라게 했다. 그는 미국 유학 때 직접 환자가 돼 선진 의료시스템을 경험한 적도 있다. 어느날 난소에 혹이 생긴 걸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던 것. 이때 의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체험하게 된다. 이후 수술을 앞두고 불안해 하는 임신부의 엉덩이를 다독이며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라는 말로 환자를 위로하는 습관이 생겼다. 5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조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는데 기필코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1968년 10월 케네디공항을 출발해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 신축이었다. 자성의원 자리에 지상 9층 규모로 36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새로 짓고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미국에서 배운 선진 의료기술을 당당하게 펼쳐 보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던 것이다. 병원이 다시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들이 줄을 지어 찾아 왔다. 미국 유학을 갔다 온 여자 의사가 새로 병원을 지어 진료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구경 삼아 오는 손님들도 꽤 많았다. 개인 병원으로 인천에서 가장 컸던 이길여 산부인과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더욱 그랬다. 당시 엘리베이터는 서울 시내 일류 호텔이 아니면 보기 힘들었다. 그가 병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은 계단을 오르내리가 힘든 임신부들을 위해서였다. 그다음에는 유학시절에 접한 초음파 의료기기를 도입해 태아의 건강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임신부에게 태아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려주자 남편이나 시어머니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을 다시 개원하면서 ‘자궁암 무료 조기검진’을 실시했다. 환자는 더욱 늘어났다. 그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라는 원칙을 정했다. 병원은 항상 환자가 중심이 돼야 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병원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을 망각한 것이지요. 가장 좋은 위치에 병실이 있어야 하고 환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가장 넓고 깨끗해야 하고 모든 시설과 장비와 서류들은 환자들이 쉽게 알아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돼야 한다는 것은 지난 55년 동안 지켜온 원칙이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이길여 산부인과’가 인기를 끈 데는 여러가지 까닭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흥미롭게도 ‘미역국’이었다. 병원 식당에서는 언제나 한 솥 가득 미역국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36개 병상에서 매일 산모들이 먹어 대는 미역국의 양은 엄청났다. 밤참까지 하루 네 끼씩 미역국을 대느라 식당은 쉴 새 없이 바빴다. 겨울철에는 굴을 넣기도 하고 때로는 소고기를 섞었다. 퇴원한 산모의 남편들까지 찾아와 미역국을 얻어갈 정도로 인천에서 ‘이길여 산부인과 미역국’의 유명세는 자자했다. 이래저래 병원은 더욱 북적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회장의 일정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온종일 진료에만 매달리는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진료실 구석에 자는 날이 허다했다. “의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환자들을 진료할 때입니다. 의사에게는 세상 그 어느 것도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란 없지요.” 바쁜 와중에도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정기적으로 돌며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를 떠나기 전 섬 주민들에게 미리 날짜를 알려 영흥도나 이작도 등 큰 섬으로 모이도록 해 짧은 일정에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진료했다. 아울러 섬 아주머니들에게 여성의 몸은 어떻게 생겼으며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대비하는 요령, 여성에게 생기는 질병이나 예방법 등을 가르쳤다. 그는 진료를 할 때마다 청진기를 자신의 품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사용했다. 차가운 청진기는 가뜩이나 긴장된 환자들을 더 움츠러들게 한다는 생각에서 체온으로 청진기를 데웠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청진기’는 이후 해마다 가천의대 졸업생들에게도 직접 걸어주고 있다.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75년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올라 2년간 공부했다. ‘독성에 대한 토끼의 신장반응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일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면서 귀국 후 종합병원을 세울 생각을 하게 된다.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주면서 인생의 목적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것. 또한 자신과 같은 의사를 많이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종합대학을 인수한 뒤 첨단 시설을 갖춘 여러 기초학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1978년 전 재산을 출연해 인천 중구 인현동에서 150개 병상 규모의 새 건물을 지어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개원했다. 당시 개원식에 참석한 박승함 보건사회부 차관은 “인천길병원은 여의사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료법인화를 시도한 선도적인 병원”이라고 할 만큼 의료계에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개원 이후 인턴과 레지던트 교육기관으로, 또 조산 수습생 교육기관으로 잇따라 지정됐다. 의료법인 설립과 이를 통한 의료교육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양평길병원, 철원길병원이 생기면서 환자를 위한 의료시설을 더욱 확장해 나갔다. 2002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길병원의 원훈인 ‘박애, 봉사, 애국’의 정신을 꾸준히 펼쳐 나가고 있다. 여성전문센터, 심장센터, 치과센터, 암센터, 척추센터, 장기이식센터, 건강증진센터, 진료협력센터의 설립도 이 같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후 가천의대를 세우고 경원대와 경원전문대 등을 인수하면서 가천길병원과 함께 오늘날 가천길재단의 면모를 갖추고 21세기 글로벌시대를 향한 새로운 도약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 회장은 평소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박애, 봉사, 애국’이란 말에 손사래를 치며 촌스럽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천길재단의 정신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의 목표이며, 현재진행형인 꿈입니다. 아직 마침표를 찍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 회장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은 아이만 수십만명, 그의 병원에서 새 삶을 찾은 사람이 100만명은 족히 넘는다. 그러는 동안 박애와 봉사, 애국의 깃발을 촌스럽게 내걸고도 한 치의 실패도 없이 성공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경영의 성공과 사회 봉사라는 큰 보람의 탑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애창곡은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이다.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오늘도 떠나지 않을까 싶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뉴트리아’ 쥐로 생각해 얕보다간…공격성 주의!

    ‘뉴트리아’ 쥐로 생각해 얕보다간…공격성 주의!

    낙동강 유역 일대에서 ‘괴물쥐’로 불리며 생태를 교란하는 ‘뉴트리아’의 공격성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다. 3일 환경부가 발간한 ’생태교란 야생동식물 16종 교육자료집’에 따르면 뉴트리아는 쥐나 수달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가 40~60cm에 달한다. 야행성으로 한밤중에 주로 활동하고 무리를 지어 제방에 긴 굴을 만들고 서식한다. 야채와 과일은 물론 벼와 보리싹도 먹어치워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제방이나 둑에 굴을 뚫어 붕괴시키거나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는 동물이다. 사람에게 질병이나 기생충을 감염시키기도 한다. 환경부는 특히 “성격이 사나워 덤벼들고 물어뜯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트리아는 긴 이빨을 이용해 사람 손가락을 물어뜯을 경우 절단 위험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지에서 다소 굼뜬 행동을 하기 때문에 직접 손으로 잡으려고 다가가면 공격받는다고 생각해 반격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환경부는 “올무나 덫을 사용해 잡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자주 출현하는 곳에 울타리를 치거나 물가의 풀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한 가지 수상한 것은 있습니다. 저들이 장례를 치러주지도 않을 것인데, 어째서 시신을 거두어갔는지 그리고 원상과 차인꾼을 분별하기가 어렵지 않았을 텐데 어찌 원상들은 욕보이지 않고 차인꾼들만 죽이고 또 협박하여 소굴로 데려갔을까요. 그 내막을 짐작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신을 가차없이 버리고 갔을 터인데요.” “원상을 욕보이면, 필경 임소 전체가 들고일어나 보복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차인꾼을 둔소로 데려가면 고분고분해서 저들과 짝패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을 가졌겠지. 아니면 세작이나 척후로 써먹을 속내가 있었던지. 그리고 가근방 내왕길 지리에 밝은 사람이 필요했을 테지. 시신을 거두어간 것은 부상들이 통문을 돌려 도회를 열고, 장례를 시작으로 하여 임소의 부상들이 결속을 다지고 둔소를 소탕하려는 계기로 삼을까 걱정해서일 것이오. 그들 소굴에 책사도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이 그럴듯하군.” “아서, 그게 아닐 수도 있네. 일면식도 없는 도둑의 속내를 앉아 있던 우리가 어찌 알겠나. 함부로 예단하는 게 아닐세.”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어허, 그놈들 귀신 잡아먹고 도깨비 똥 눌 놈들이로군.” “그런데 행수님은 왜 말씀이 없습니까.” “……“ 좌중의 시선이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었던 도감 정한조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꿀 먹은 벙어리였다.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마디하라고 짓조르고 드는 것을 생트집으로만 알아서 정한조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고 고단했던 일행들은 새벽잠으로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깨어보니 정한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숨도 자지 않고 곽개천을 밖으로 조용히 불러내어 먼저 말래 도방으로 가겠다고 통기하고 한밤중에 겁도 없이 단신으로 말래로 떠난 것이었다. 야밤에 혼자서 십이령을 넘는다는 것은 여간한 간담이 아니었다. 화적은 고사하고 짐승의 밥이 되기 꼭 알맞았다. 곽개천이 동행하겠다고 하였으나 끝끝내 내치며 듣지 않았다. 도대체 이렇게 서두르는 까닭이 어디 있느냐고 아득바득 따지고 들었으나 천근 같은 입을 열지 않았다. 개호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리는 음산한 밤중에 내성을 발행한 그는 열불나게 길을 줄이기 시작했다. 끼니를 꼬박 굶은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짐승과 동행도 해가면서 이틀 만에 샛재 비석거리에 당도하였다. 불각시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화들짝 놀라 눈을 하얗게 뜨는 월천댁에게 물어보았으나 자취를 감추었다는 포병객이 찾아왔었다는 귀띔은 없었다. 당장은 실망스러웠으나, 열 일을 제쳐두고 그 위인의 행방을 쫓아야 했다. 근자에 일어난 수상쩍은 사태와 적변의 시단이 모두 궐자의 행적과 상당한 관계를 가졌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저러한 사정을 알아챌 리 없는 월천댁은 딴청을 피웠다. 봉당 쪽마루에 걸터앉아 초연히 먼산바라기를 하는 정한조에게 바싹 다가앉으며 월천댁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구월이 말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기운도 탈진해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모두 희미한 사람에게 또 무슨 넋두리를 하려고?” 월천댁은 정주간 안쪽에 있는 골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제법 침통한 표정으로, “글쎄, 도감 어른도 아시다시피 저년이 이팔방년이 내일모레 아닙니까.”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간혹 봉노 앞을 지나다니는 도감 어른 수하 중에 한 사람을 보니까. 허우대도 튼실하고 붙임성도 있어 보입디다. 성깔도 녹록지 않아 보이던데. 새앙머리한 처자 나이 이팔이라면 명치끝까지 차오른 게지요. 그래서 이 에미에게는 저 꼴같잖은 소생이 노상 끌탕이랍니다. 숫막이라는 것이 길가에 나와 앉은 하찮은 거처가 아닙니까. 삽짝도 없어 문만 벌컥 열면 바로 안방이지요. 어느 떠돌이 비렁뱅이가 한밤중에 칼 물고 들이닥쳐 저년 앙가슴 내질러 자빠뜨리고, 자던 입에 콩가루 털어넣듯 막무가내로 육허기나 채우고 튀어버릴까 해서 자다가도 문득 깨어나면 가슴이 두근거려 두 번 다시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로써 절개가 이지러지고 나면, 갈 곳은 대처의 색주가뿐이지요. 그런 오욕을 당하면 색주가에서 살꽃이나 파는 처량한 신세밖에 될 게 없습니다.”
  • [주말 인사이드] 황혼에서 새벽까지 신고 100여건… 출동·순찰·승강이 ‘하루가 짧다’

    [주말 인사이드] 황혼에서 새벽까지 신고 100여건… 출동·순찰·승강이 ‘하루가 짧다’

    민생 치안 최일선의 경찰 지구대와 파출소는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간다. 좀도둑에 폭력배, 강도까지 112 신고를 받은 순찰차들이 출동하고 술에 취해 시비가 붙은 사람들이 핏대 높여 악다구니를 부린다. 길을 물으러 오는 행인에 화장실을 쓰려는 사람까지 지구대와 파출소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악’(성폭력,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불량식품) 예방을 위해 경찰 인력을 지구대 중심으로 재배치할 방침이다. 올 1월부터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숙식을 하며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서울신문 새내기 기자 4명(신융아, 오세진, 최훈진, 한재희)이 21~22일 서대문 신촌, 영등포 중앙, 마포 홍익, 강남 역삼 등 지구대 4곳에서 현장 체험을 했다. 서울에서 가장 바쁘고 일이 많기로 이름난 곳들이다.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뒷골목과 유흥가를 누비는 경찰들의 애환과 바람을 들었다. “띠리링, 홍익 스물일곱, 146-○○번지 성추행 신고 접수, 출동 바람.” 지난 21일 밤 마포 홍익지구대의 27번 순찰차 안. 시계의 시침이 밤 12시를 가리킬 때쯤 방성준(28) 순경의 검은색 무전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112 범죄 신고가 전국에서 매우 많이 몰리는 곳 중 하나인 홍익지구대의 하루는 이날도 긴박하게 시작됐다. 방 순경과 그의 파트너인 류정안(41) 경사는 한 입도 채 먹지 못한 삼각김밥을 내려놓고 급히 순찰차의 시동을 걸었다. 5분 만에 피해 신고를 한 20대 여성의 집 앞에 도착했다. 경찰을 보자 여성은 굵은 눈물을 쏟으며 “늦은 밤 귀갓길에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두 경찰관은 피해자 진술을 듣고는 “내일 경찰서로 나와 조사받고 폐쇄회로(CC)TV 등으로 확인해 보자”고 다독인 뒤 자리를 떴다. 112 신고는 대부분 자정에서 새벽 사이에 들어온다. 유흥가가 불야성을 이루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사고가 가장 많지만 요즘은 목요일 밤에도 신고 전화가 많다. 2인 1조로 구성된 순찰팀이 6개인데 하룻밤 100건 정도 신고가 들어오니 팀당 15~20차례 출동하는 셈이다. 홍익지구대는 클럽 등이 밀집한 홍익대 앞 유흥가의 치안을 책임진다. 이 때문에 지구대에 오는 손님의 80~90%는 취객이다. 이곳의 한 경찰관은 “취객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둔감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울컥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취객을 순찰차로 경찰서까지 연행하는 일이 많다 보니 뒷좌석을 아예 투명 비닐로 꽁꽁 감싸 놓았다. 안에서 구토를 하는 취객이 많아서다. 새벽 3시쯤 지구대 안 무전기가 또 한번 울렸다. 마포 서교동의 치킨집에서 손님이 난동을 벌인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하자 거나하게 취한 한 남성이 류 경사와 방 순경에게 “네가 뭔데 나한테 망신을 줘, 꺼져”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밀쳤다. 방 순경은 취객을 달래 진정시킨 뒤 택시에 태워 보냈다. 경찰서로 연행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난폭하던 음주 폭력자들이 술이 깬 뒤 울먹이며 봐 달라고 통사정하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들도 사는 게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욕 먹어도 참지요.” 웃지 못할 오인·허위 신고도 많다. 홍익지구대 인근 신촌지구대에는 이날 밤 12시 “여성 한 명이 납치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긴급 상황으로 판단해 지구대 경찰 6명이 급히 신고지인 서대문구의 한 백화점 인근으로 출동했다. 20대 남성 신고자였다. 인근 대학에 다닌다는 그는 만취해 인사불성이었다. 경찰이 자초지종을 묻자 “인근 여대의 학생과 소개팅을 했는데 내가 취하자 어떤 사람이 나와 끌고 가 버렸다. 꽃뱀인 것 같다”고 애먼 소리를 했다. 경찰이 확인해 보니 여성은 취한 남성을 감당할 수 없어 몰래 귀가한 것이었다. 상황을 정리한 지구대 경찰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같은 서울이라도 지구대마다 접수 사건의 유형은 제각각이다. 영등포 중앙지구대 관할에는 저소득층의 비중이 다른 곳보다 높다. 이 때문에 무전취식, 소액 절도 같은 사건이 많다. 이날도 “술을 마시고 돈을 내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출동했다. 식당에서 취객 두 명이 업주, 아르바이트생과 대치하고 있었다. 경찰이 취객의 친구를 불러 계산하게 한 뒤 돌려보냈다. 심야 시간 치안 사각지대인 주택가의 순찰도 중요한 임무다. 22일 새벽 중앙지구대 소속 박충환(43) 경사는 영등포6가의 주택가에 순찰차를 세워 둔 채 날카로운 눈매로 주위를 살폈다.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주요 길목에서 순찰하는 ‘거점근무’를 하는 중이다. 이 골목에는 원룸과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다. “한밤중 골목길에 노숙인들이 배회해 무섭다”는 여성들의 신고가 끊이지 않는다. 박 경사는 “순찰차 사이렌 불빛만 켜 놓아도 성폭력, 절도 등의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확실히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은 “순찰차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불만스러워한다. 박 경사는 “솔직히 서운할 때도 있다”고 했다. 강남역 일대를 담당하는 역삼지구대 대원에게는 승차 거부 단속이 주요 업무다. 특히 시·구청 공무원들이 철수하는 오전 1시 이후 강남역 인근에 순찰차를 세워 놓고 집중적으로 계도·단속 활동을 벌인다. 그러다 출동 무전이 떨어지면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역삼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밤샘 근무 중 두 시간 정도 쉴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정신없이 출동하다 보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취객과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여명이 밝아온다. 오전 8시. 교대한 주간 근무조 대원들은 등교 시간에 맞춰 지역 내 초중고교 순찰에 집중한다. 신촌지구대 오두용(46) 경사는 이화여대 부속초등학교에 나가 등교하는 아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등하굣길 순찰에 나서다 보니 얼굴을 많이 익혔다고 했다. 학교 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스쿨폴리스(학교 전담 경찰관)가 생겼지만 지역민과 가장 밀접한 지구대 경찰들의 역할이 크다. 신촌지구대 관계자는 “‘일진’들이 어울려 노는 공원이나 콜라텍 등 유흥가에 주로 나가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면서 “우리와 친해지면서 마음을 고쳐 먹는 일진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역삼지구대는 돈이 많이 도는 강남 지역의 특성상 낮시간 핸드백 날치기 등의 예방에 신경 써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의심스럽게 이면도로를 배회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것이 지구대원의 임무다. 역삼지구대 관계자는 “은행에서 고액의 현금을 찾아야 하는데 옮기기가 불안하니 도와 달라는 부탁이 종종 접수된다”면서 “경찰이 은행으로 출동해 차량까지 안전한 이동을 돕거나 사설 경호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고 말했다. 경찰 인력을 증원하기로 하는 등 최근 지구대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현장의 경찰들은 여전히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경찰이 공무집행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시민들이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왔다. 한 50대 경찰관은 “어린 민원인이 욕설을 퍼부을 때도 많고 경찰을 화풀이 대상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때때로 마음 아프다”면서 “시민 입장에서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겠지만 질서 확립을 위해 우리에게 힘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커버스토리] 세종시 공무원 24시 그리고 애환

    [커버스토리] 세종시 공무원 24시 그리고 애환

    정부세종청사로 이전한 부처 공무원들은 세종시에서 많게는 6개월, 짧게는 2개월 반을 생활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겉으론 입주 초기보다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불편한 것에 익숙해졌을 뿐 입주 초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들 한다. 주거형태도 가족까지 몽땅 세종시로 이주한 공무원은 3분의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매일 장거리 출퇴근을 하거나, 원룸이나 아파트를 얻어 생활한다. 출퇴근자와 나홀로 둥지족들이 많다 보니 근무 형태나 여가문화 트렌드는 많이 달라졌다. 세종청사 출범 6개월, 이주 공무원들의 달라진 생활문화와 그들만의 애환을 소개한다. 세종청사 입주로 겪은 가장 큰 변화라면 이동거리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청사주변에 먹거리나 편의시설이 없다 보니 인근 도시로 장거리 이동이 불가피해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조치원이나 공주, 유성까지 가고오는 데만 40분~1시간이 걸린다. 장거리 출퇴근 공무원들은 ‘원정 점심’까지 감안 하면 하루 대여섯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는 셈이다. 원거리 출퇴근이나 원룸생활 등 생활 패턴이 달라지면서 회식이나 근무 형태도 크게 달라졌다. 서울·과천·인천·안양 등 장거리 출퇴근자들은 셔틀버스를 놓치면 하루가 완전히 꼬인다. 출근 셔틀버스는 지역에 따라 출발 시간이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서울 신도림이나 인천 등 수도권 한복판에서는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서울 목동에서 매일 출퇴근 한다는 한 사무관은 “셔틀버스 출발지인 신도림까지 나오는 데 30분이 걸린다”며 “하루 평균 5시간 넘게 버스에서 갇혀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10~20분 전부터 하던 일을 접는다. 오후 6시 30분 셔틀버스가 출발하지만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차지하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양재와 과천시 인덕원 등 일부 노선은 오후 8시와 9시에도 출발하는 차량이 있지만, 나머지 구간은 한번 떠나면 끝이다.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목 베개도 필수품이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목 베개를 꺼내 두르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현재 서울에서만 매일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KTX나 승용차 이용자를 제외하고 3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거리 출퇴근자들에게는 ‘야근’이나 ‘연장근무’란 말은 다른 나라 얘기가 됐다.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할 때는 그냥 남녀 휴게실에서 잔다. 휴게실은 부처별로 마련돼 있는데 이층침대 형태로 24명(남녀 각 12명)까지 잘 수 있다. 하지만 장거리 이용자에게 야근을 강요할 수 없어 휴게실을 이용하는 빈도는 사실상 매우 낮다. 나홀로 둥지족들도 많다. 가족이 내려오지 않은 공무원은 원룸이나 아파트를 얻어 2~3명씩 공동생활을 한다. 이런 공무원들을 지칭해 ‘세종총각’ ‘세종댁’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장거리 출퇴근자들 때문에 부서별 회식도 주로 점심으로 돌린다. 저녁에 일정을 잡았다가는 뭇매(?)를 맞게 되는 분위기다. 저녁 회식이 줄어들면서 대신 여가 활동에는 여유가 생겼다. 특히 나홀로 둥지족들은 썰렁한 집에 일찍들어가기보다 처지가 같은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즐긴다. 헬스나 자전거 타기 등으로 건강을 다지는 사람들이 많아 이른 아침과 퇴근 후 청사 체력단련실은 운동 마니아들로 항상 북적인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가장 번거롭고 심란해 하는 게 국회 출장이다. 그런데도 부처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행을 하게 하는 분위기다. 정책이나 법안을 충분히 이해시켜 각 부처가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번거로운데 자료만 보내달라”는 국회의원들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직접 올라가는 것이 원칙처럼 굳어지고 있다. 15일 출근길에 만난 경제부처의 한 과장은 “국회에 가서 협의할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가는 중”이라며 “10분 설명하기 위해 오가며 하루 일과를 다 허비하게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사회부처의 한 과장은 이틀 전 10명의 본부 과장이 줄줄이 국회에 올라가 설명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요즘 ‘취미’가 서울과 오송을 오가는 ‘KTX 예약하기’”라며 웃었다. 그는 세종시에 숙소도 마련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에서 회의가 있다 보니 서울 명동 은행회관이나 정부서울청사로 더 자주 ‘출근’한다. 그렇다고 세종청사에 들르지 않을 수도 없다. 하루만 빠져도 결재할 서류가 산더미가 된다. 얼마 전에는 세종청사로 출근했다가 오후에 서울로 올라가 회의를 하고 저녁 때 약속 때문에 세종시로 내려왔다가 다시 막차를 타고 서울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다음 날 새벽에 서울에서 있는 조찬회의에 늦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세종시에 내려온 지 이제 넉 달인데 오르락내리락하는 생활에 벌써 지쳐간다”면서 “국감 시즌이면 아예 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보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장 비용도 만만치 않다. 출장비를 담당하는 사회부처의 한 주무관은 “서울 출장이 너무 잦다 보니 연말까지 사용해야 할 출장비가 다음 달이면 바닥날 것 같다”며 “어떻게 예산을 전용해야 모자란 출장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세종시에 내려온 공무원들은 국회뿐만 아니라 행안부와 조직·인원 협의나 청와대 보고, 타 부처와의 회의 등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서울을 오르내리는 ‘셔틀근무’가 피곤하다고들 하소연한다. 특히 조직·인사와 공무원들의 처우관리를 하는 행안부가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서 ‘이래라저래라’한다며 속을 끓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국회 출장에 따른 행정 낭비를 없애기 위해 세종청사 내에 국회 분원을 설치해 스스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분원이나 서울출장소를 마련하고 화상회의 등 물리적인 공간과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변해야 한다”면서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부처 공무원들을 국회로 불러들여야 위엄이 선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사를 벗어나면 세종시는 대도시로서의 기본조건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이 의료시설이다. 세종청사 주변에서 의료시설이라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첫마을에 소아과와 내과 딱 두 곳뿐이다. 종합병원은 언감생심이다. 다른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대전이나 조치원 등 인근 도시로 나가야 한다. 한 공무원은 “얼마 전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서 치과 치료를 받은 뒤 월요일에 통증이 심해 병원에 전화했더니 세종시에는 치과가 드물다고 하더라”면서 “이곳에서는 아프면 생고생”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세종시 첫마을에 입주한 또 다른 여성 사무관은 최근 한밤중에 일어났던 일화를 소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한밤중 배를 잡고 고통을 호소해 난감했다”면서 “인근에 병원이 없어 아이를 싣고 무작정 대전시내 큰 병원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진찰 결과 급성 장염이어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여러 날 오가느라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청사에서는 이런 불편해소를 위해 청사 내 간이 진료실을 마련했다. 또 종합병원 등과 연계해 순회 진료도 정례화하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불만을 해소할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세종청사 부처 노조위원장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초 ‘세종시 이전계획 원안 고수’를 고집했는데 요즘은 잊고 있는 것 같다”면서 “불편한 점이 부각될 때마다 ‘문제 없다’고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세종시와 행안부 말만 믿고 언제까지 인내하며 생활해야 할지 의문이 든다”고 쓴소리를 했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쓸개 떼어 냈으니 쓴맛 볼 일 없겠지

    한 날, 모 대학 교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이도 비슷하고 죽도 잘 맞아 허물없이 지내는 터수였다. 모처럼 만나 커피를 나누는데 뭔가 머뭇거리는 데다 안색도 어두웠다. 이상하다 싶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속내를 털어놨다. “복통이 있는데 복통뿐 아니라 소화도 안 되고 안색도 누리끼리하게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몸속에 뭔가 변화가 있긴 있는데 암 생각이 자꾸 난다”고 털어놨다. 그의 불안이 이해가 됐다. 여기 저기 떠돌며 시간강사 하느라 마흔에야 결혼을 했고, 늦게 얻은 아이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 끝에 내려진 결론은 담낭에 염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의료진은 암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암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주치의의 의견은 복강경으로 상태를 확인하겠지만 아마 쓸개를 절제하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그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다른 일은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암 얘기를 꺼내는 건 섣부르다 싶어 입을 닫았다. 수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의료진은 담낭 부위에서 암성 징후가 확인돼 담낭과 담도를 포괄적으로 제거했으며 정확한 결론은 조직검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확인됐다. 다행히 지금까지도 이상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식사 자리에서 만난 그 친구는 예전보다 명랑했다. “쓸개가 없으니 인생에서 더는 쓴맛을 볼 일이 없어 마냥 즐겁다”며 웃었다. 큰 병을 겪으면서 세상을 사는 방법이 바뀐 것인데, 아무래도 그게 정답처럼 여겨졌다. 누구도 건강만큼은 장담하지 말랬는데 문득, 터무니없이 내 건강을 과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았다. 자꾸 되짚어 생각해도 건강에 대한 믿음이 황당하다 싶어 자꾸 가슴 한편이 졸아들던 날이었다. jeshim@seoul.co.kr
  • [미주통신] 잠자다 갑자기 땅으로 폭삭, 남성 실종

    [미주통신] 잠자다 갑자기 땅으로 폭삭, 남성 실종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 있는 한 가정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남성이 갑자기 땅 밑으로 사라진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고 미 언론들이 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제프 부시(37)로 알려진 이 남성은 지난 2일 저녁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도중 갑자기 땅에 너비 6m가량의 구멍이 생겨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밤중에 제프의 비명 소리를 들은 그의 형과 가족들이 구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제프는 땅 밑으로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다. 도착한 소방관과 구조 대원들이 제프를 구조하려고 했지만, 구멍의 깊이가 30m가 넘어 현재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으며 추가 붕괴 위험마저도 있어 가옥 근처에는 접근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 언론들은 제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나머지 일가족 4명은 다행히 붕괴를 피해 가옥 밖으로 뛰쳐나와 화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BC 방송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DB를 열다] 1964년 삼복더위에 연탄을 나르는 배달부들

    [DB를 열다] 1964년 삼복더위에 연탄을 나르는 배달부들

    연탄은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해결해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우리나라에서 석탄을 최초로 사용한 때는 명확하지 않지만 19세기 말쯤으로 추정된다. 1896년 서울에서 석탄을 판매했다는 기록이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도시 가정은 거의 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고 집집이 굴뚝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파트에도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겨울철에 연탄불을 꺼뜨리면 큰일이었다.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연탄이 다 타고 화력이 약해질 때를 짐작해 갈아 주어야 하는데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한밤중에도 잠을 설쳐가며 연탄불을 돌봐야 했다. 연탄 갈기도 쉽지 않다. 불이 남아 있는 아래의 연탄과 구멍을 잘 맞추어야 불이 위쪽 연탄으로 잘 옮겨 붙는다. 사진은 1964년 8월 4일, 삼복더위 속에서 연탄배달부들이 리어카로 연탄을 나르는 모습이다. 연탄은 김장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겨우살이 준비였다. 겨울이 다가오면 십중팔구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여름부터 일찌감치 광에 들여놓는다. 연탄값은 1964년 초에는 장당 7원 정도였고 운반비로 50전 이상을 더 받았다. 현재 연탄 한 장 값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500~600원 정도다. 생산 원가는 1000원쯤 되지만 정부 보조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배달료는 한 장에 100원쯤 더 붙는다. 배달할 곳이 2층 이상이면 배달료도 비싸진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자신이 개편한 기관 차량 탄 인수위원

    자신이 개편한 기관 차량 탄 인수위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 분과 인수위원인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인수위 활동 기간 중 자신이 개편을 주도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차량을 여러 차례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수위는 윤리규정 자체가 없다. 기업인, 교수, 공무원 등 각계각층 출신들이 ‘인수위원’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규정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4일 인수위 내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장 위원은 지난달 10일부터 열흘 가까이 외부 행사와 회의장 이동 등에 KINS 관계자인 김모 실장의 차량을 이용했다. 김 실장은 인수위 파견자 명단에 없지만 KINS 내부에서는 1월 10일부터 3월 9일까지 인수위에 파견 처리됐으며, 차량도 KINS에서 두 달간 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KINS 측은 “노후 원전의 안전성 테스트에 대한 기술자문을 위해 김 실장을 인수위에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장 위원이 KAIST 논문지도 교수이고 친분이 있어, 출퇴근 편의를 제의한 건 사실이지만 장 위원이 운동 삼아 걸어 다니겠다고 사양했다”면서 “외부 행사나 미팅, 점심식사 이동 시에 동선이 겹치거나 하면 태워 드린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사실이 교과부, 원안위, 지식경제부 등으로 전해지면서,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대통령 직속의 원안위 산하인 KINS는 인수위의 부처 개편 과정에서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이관되고, 새로운 과제를 맡는 등 큰 변화를 겪은 만큼 김 실장이 장 위원에게 차량을 제공한 것은 이를 대비한 편의제공이었다는 것이다. 유기홍(민주통합당)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간사는 “차기 정부의 기본 틀을 잡는 인수위원들이 얼마나 도덕성에 무신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인수위원들의 윤리규정을 마련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는 공직자가 관용 휴대전화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일이 드러나 사임했다. 네브래스카주 릭 쉬히(53) 부지사는 지난 4년간 아내가 아닌 여성 4명과 한밤중에 관용 휴대전화로 2300여건(약 2만 8000분)의 ‘부적절한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 2일(현지시간) 사표를 제출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국정원 직원 정치댓글 120개” 글 없다던 경찰 알고도 숨겼다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9)씨의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김씨가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글을 인터넷에 100여건 올린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김씨가 인터넷에 찬반 표시를 한 것과 개인적인 글을 올린 것 외에 대선과 관련된 글을 쓴 것은 없었다고 밝혀 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김씨가 지난해 8월 28일부터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불거진 12월 11일까지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와 ‘보배드림’에 각각 91개, 29개 등 모두 120개의 글을 게시한 것을 확인했다고 31일 발표했다. 해당 글들은 4대강 사업, 해군기지 건설 등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이 있었던 이슈를 다뤘으며 대부분 정부나 새누리당에 유리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경찰의 잇단 말바꾸기다. 대선 사흘 전인 지난해 12월 16일 경찰은 대선 후보와 관련한 김씨의 댓글 흔적이 없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한밤중에 서둘러 발표했다. 당시 경찰이 무리한 발표를 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경찰은 지난 3일에는 “김씨가 올린 글도 있지만 대선과 직접 관련된 게 아닌 사적인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 3일 중간 수사 발표 당시 이미 인터넷 검색을 통해 김씨가 올린 글의 내용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당시 대선 후보 3명의 이름과 소속 정당 명칭을 키워드로 해서 대선 관련 글 여부를 판단했으나 글에 이런 내용이 없어 발표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선 직전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만 조사하고 성급하게 수사결과를 발표한 데다 김씨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 글을 올린 것을 뒤늦게 시인하는 등 경찰 수사 배경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씨가 예민한 정치문제에 대해 특정 정당을 옹호하는 내용을 작성한 만큼 공직선거법이나 국정원법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국정원은 “김씨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비방하는 인터넷 글을 게재한 사실이 없으며 김씨가 올린 글은 인터넷상의 정상적 대북심리전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반박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기고] 새해 소망/김용희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기고] 새해 소망/김용희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중년의 남자 셋이 한겨울 홍천 성당에서 만났습니다. 전 스포츠 선수(박찬호)와 탤런트(차인표)와 스님(혜민)입니다. 눈 덮인 산장 난롯가에서 인생사 이야기로 하룻밤을 보냅니다, 화덕에는 군고구마와 떡가래를 올려놓고 세상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스님이 눈물을 흘립니다. 선수도 웁니다. 트위트하는 스님은 올라온 글들을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새벽 3시에 메신저를 올리는 힘겨운 이, 취업전선에서 불합격 통지에 이젠 무감각해져 가는 자신이 싫어지는 젊은이, 희망의 출구를 잃어가는 그런 이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얕은 위로밖에 없다면서 웁니다. 속세를 떠나올 때 노부모가 생일 밥상을 차려준 이야기를 할 때는 울지 않던 스님이, 힘겨운 이웃들 때문에 웁니다. 선수는 단칸방에서 자기를 키워주신, 단벌 운동복을 한밤중에 세탁해 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찌든 가난과 한없이 내어주는 부모님의 사랑을 추억하면서 웁니다. 눈물의 내용이 좀 다릅니다. 한 분은 자기를 위해 울고, 다른 한 분은 타인을 위해 웁니다. 우리 세속인들이야 모두 자기를 위해 웁니다. 지난 시절의 아픈 추억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때로는 현실이 퍼다 붓는 희망과 절망 때문에 웁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울어주는 타인이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 새 정부는 할 일이 많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울어내야 할 맡은 바 소명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상가 건물주는 매년 월세를 올립니다. 세입자들은 열심히 수고해서 주인 통장에 입금하기 바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해마다 9%씩 월세를 올리면 5년이면 50%가 넘습니다. 주택임차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상률 법정상한선 운운하는 세입자는 2년 만기 후 내보내면 됩니다. 주택은 부족한 데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젊은 기간제교사가 있습니다. 휴일과 연장근무는 기간제의 몫입니다. 기간제는 재계약을 위해 묵언수행해야 하지만, 정교사는 그런 힘든 것 하지 않아도 신분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의 보수는 정교사의 절반도 안 됩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직업을 가진 것은 행운아입니다. 이명박(MB) 정권의 반값등록금 공약은 학자금 대출로 미봉되었습니다. 덕분에 학교재단은 수업료를 쉽게 받았습니다만 정작 학생 본인은 큰 빚과 이자를 안고 사회에 나섰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그날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온 힘을 다해 살아내는 것, 그것만이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의무요 역할이라 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이제 희망의 등불을 내겁니다. 만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차마 떨치고 갈 수 없어서…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올해 세모에는 스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우리 모두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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