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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피플+] 매일 16km 걷는 후배 위해 차 사준 직장 동료들

    [월드피플+] 매일 16km 걷는 후배 위해 차 사준 직장 동료들

    미국 앨러배마주에 사는 데릭 테일러(19)는 매일 한밤중에 일어난다. 1년 반 남짓 전부터 얻은 일자리인 택배회사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근무 특성상 새벽 4시에 교대해줘야 한다. 병든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테일러 입장에서 이 택배회사는 더없이 소중한 일자리다. 비록 매일 10마일(16km)을 걸어 다녀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유튜브에 테일러에게 그의 직장 동료들이 보낸 선물 영상이 올라왔다. 그가 다니던 택배회사인 UPS의 동료들은 모두 형님, 누나, 이모, 삼촌처럼 그보다 나이 많은 이들이다. 그들의 눈에 매일처럼 16km를 걸어다니는 어린 테일러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을 테다. 여기에 그의 가정환경 역시 그들의 선의를 자극했다. 그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고 1100달러(약 127만원)가 걷혔다. 그리고 중고 지프차를 샀다. 영상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다. 직장 선배 동료 대표로 J.D.워드는 잠시 쉬는 시간에 테일러를 불러 '깜짝 선물 전달식'을 시작했다. "여기 힘들게 일하는 젊은 친구가 있어요. 그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줬지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테일러, 이리 나와봐")우리는 이 친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 합니다. 테일러, 넌 더이상 먼 길을 걸어다니지 않아도 돼. 네 차가 생겼으니까." 테일러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선배 동료들의 진심이 곁들여진 선물을 보고 눈물을 쏟는다. 시급 11.9달러(약 1만3730원)를 벌어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젊은 노동자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뒤 "한 사람씩 손을 붙잡고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선물은 정말 저를 변화시키는 일이 될 것 같다.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린다"고 답했다. 세상의 변화는 작은 선행, 작은 진심이 모여서 만듬을 보여준다. 영상 속 당사자들은 물론, 영상을 본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감동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역적’ 채수빈, 윤균상에 거침없는 애정..월담 후 “이제 내 오라버니”

    ‘역적’ 채수빈, 윤균상에 거침없는 애정..월담 후 “이제 내 오라버니”

    조선시대의 신여성, 송가령의 똘똘하고 능동적인 모습과 채수빈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제대로 만나 터졌다. 27일 방송된 MBC 월화특별기획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제작 후너스엔터테인먼트) 9회에서는 가령(채수빈 분)의 거침없는 활약이 그려졌다. 극 중 가령은 길동(윤균상 분)을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능동적인 여성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모개(김상중 분)에게 길동오라버니가 아버질 닮아 잘 생긴 듯 하다며 서슴없이 말하는 것은 물론 길동이 원래 힘이 셌는지 묻는 등 그녀의 관심사는 온통 길동뿐. 특히 아모개와 군밤을 불어 먹으며 입가에 검댕을 잔뜩 묻히고 되묻는 모습에선 귀여움이 한껏 두드러졌다는 반응이다. 그녀의 활약은 홍길동 사단의 은밀한 작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허태학(김준배 분)을 회유할 계획을 세운 길동을 위해 노비에 선뜻 자원하는 대담함까지 보인 것. 그의 머리맡에서 염주를 훔쳐오는 위험천만한 일임에도 그녀의 의지는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작전에 성공한 가령의 월담 또한 인상적이었다. 길동에게 폭 안긴 가령과 그녀를 든든하게 받아낸 길동. 침묵과 긴장이 흐르는 한밤중, 담벼락 아래 위치한 두 사람에게선 오묘한 기운이 감지되기도 했다. 이에 가령은 “이제, 내 오라버니 하는 거야”라는 당당한 매력 발산으로 보는 이들마저 심쿵하게 했다. 이처럼 길동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본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 안방극장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위험도 불사하는 적극적인 매력이 절로 눈길이 가게 만든다는 것. 여기에 “저는 서민연기가 너무 편해요”라며 본연의 자세로 연기에 임하고 있는 채수빈은 스스로가 송가령 역할에 푹 빠져있다는 후문이다. 그녀는 “가령이는 계급이나 예의에 제약이 적은 인물이라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며 “자신의 사람이다 싶은 이에게는 솔직하고 올곧게 다가가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아이라 매우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렇듯 당돌하면서도 귀여운 송가령 캐릭터와 채수빈의 사랑스러운 면모가 어우러져 남다른 매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길동을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송가령의 무한한 애정과 활약은 오늘(28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MBC ‘역적’ 10회에서도 이어진다. 사진=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40년 우방’ 말레이·北 외교전 격화

    ‘40년 우방’ 말레이·北 외교전 격화

    말레이, 평양 주재 대사 전격 소환 北대사 초치 ‘수사 비판’ 강력 항의 北 “DNA 요구, 국제기준 안 맞아” 말레이 총리 “경찰 수사 결과 확신” “김정남 아들 한솔, 말레이에 도착”김정남 암살 사건에 리정철(47)을 비롯해 최소 8명의 북한 국적자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말레이시아가 북한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이에 맞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고 공개 반박했다. 그러자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찰 수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는 등 1973년 수교 이후 40여년간 우호적 관계를 맺어 온 양측의 외교전이 격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20일(현지시간) “협의를 위해 평양에 있는 (말레이시아)대사를 소환했다”고 밝혔다. 또한 주재국 정부를 비난했던 강 대사를 불러들여 강력히 항의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법에 따라 북한대사관에 (김정남 암살) 문제와 관련한 진척 상황과 절차를 알렸다”며 “강 대사가 제기한 비난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남 사망은 말레이시아 영토에서 발생했고, 말레이시아 정부의 책임으로 법에 따라 조사가 투명하게 진행됐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말레이시아의 성명은 강 대사가 외교부 제1사무차장을 만나기 위해 청사에 머무르는 동안 발표됐다. 이에 강 대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관 여권 소지자 (김정남의) 신분을 당사국이 확인해 줬음에도 시신 훼손이 심해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DNA 샘플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기준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으로 유일하게 혜택을 보는 것은 한국”이라며 “당사국도 모르는 일이 정보기관을 통해 언론에서 먼저 보도되는 것은 말레이시아와 한국이 결탁한 사실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사는 “북한 법률 관계자를 파견할 테니 공동 조사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강 대사는 지난 17일 한밤중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남에 대한 부검은 기초적인 국제법과 영사법을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주 김정남 시신 부검 강행 등을 이유로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해 항의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이런 가운데 김정남의 아들 한솔(22)씨가 마카오에서 출발해 이날 저녁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알라룸푸르 하종훈 기자 artf@seoul.co.kr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北, KAL·아웅산테러처럼… 발뺌·물타기, 통일부 “피살 배후에 北정권 있다고 본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특유의 ‘발뺌 및 물타기’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와 대한항공(KAL)기 폭파 사건 때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철저히 부인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남 피살 사건 발생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지난 17일 쿠알라룸푸르 종합병원 앞에서 한밤중 돌출 기자회견을 열고 “부검 결과를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정찰총국(RGB) 소속 요원으로 추정되는 리정철이 암살 용의자로 체포되는 등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의 수사망이 좁혀지는 상황에서 부검 및 수사 결과를 미리 부인하며 선수를 친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발뺌 대응’은 대형 테러 때마다 보였던 전형적인 수법이다. 1983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아웅산 테러 사건에 대해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말레이시아 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를 운운한 것은 관련 의혹을 우리 측에 뒤집어씌우기 위한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대외 선전매체가 아닌 북한의 공식 관영매체들이 이번 사건을 직접 다룰지는 미지수다. 한편 정부는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개입돼 있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용의자 5명이 북한 국적자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리와 국제사회는 무모하고 잔학한 이번 사건을 심각한 우려와 함께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이재무의 오솔길] 설야

    [이재무의 오솔길] 설야

    눈 내리는 겨울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몸을 빠져나간 잠이 천장에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자꾸만 어깃장을 놓는 잠을 달래 보지만 요지부동이다. 창밖 사륵사륵 내리는 흰 눈, 눈꽃 화음에 귀가 젖는다. 날이 새면 지붕과 담과 가지마다 가득 열린 눈꽃 음표들을 볼 수 있으리라. 한밤중 내리는 눈은 고양이 발걸음을 닮아 소리가 없다. 밤사이 진주한 침략자처럼 마을을 점령한 눈은 세상이 만든 지도를 순식간에 지워 버릴 것이다. 이른 아침 하얀 도화지로 바뀐 흰 눈 위에 참새들은 하늘 아래 가장 깨끗한 상형문자들을 찍으리라. 하지만 이와는 달리 분, 분, 분 내리는 눈이 층, 층, 층 쌓여 갈수록 산짐승들은 가혹한 굶주림에 속수무책으로 시달려야 하리.이부자리를 빠져나와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다본다. 내리는 눈발 사이로 고향 집 뒤꼍 장광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들썩들썩 뚜껑을 열고 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들을 들여앉혀 어르느라 하얀 모자 쓴 항아리들은 튀어나온 배가 더욱 불룩해져 있다. 마당 한구석에는 갓 태어난 눈사람이 서 있다. 눈사람은 눈 내린 날 태어나 우두커니 서서 동심을 활짝 꽃피운다. 꽝꽝 얼어붙은 한밤의 매서운 칼바람에도 단벌옷으로 환하게, 꼿꼿이 서서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 준다. 눈사람은 표리가 동일한 사람이다. 눈사람은 저를 만든 이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의 마음의 심지에 작은 불씨를 지펴 놓고 홀연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력이 짧으나 누구보다 추억을 많이 남기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눈사람밖에 없다. 퍼붓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몰래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저릿해 온다. 마음으로 바다가 가득 들어차서 출렁거린다. 퍼붓는 눈발 삼만 리. 저 눈과 더불어 밤을 도와 서둘러 가야 할 곳이 있는 양 몸 안에 짐승이 들어와 까닭 없이 발바닥이 뜨거워지고 팔뚝에 피가 솟는다. 몸의 가지에 붉은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눈 때문에 나는 오래전에 끊었던 흡연 욕구에 시달린다.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 동치미 그릇을 꺼내 들고 훌훌 소리 내어 마신다. 까칠까칠한 얼굴을 마른 손으로 거푸 쓸어내린다. 창문을 열었다 닫고, 들숨 날숨을 길게 마셨다 내뿜는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갱지 한 장을 펼쳐 놓는다. 생을 반죽했던 물컹물컹한 말들 예컨대 전봇대, 우체국, 신작로, 오솔길, 철길, 하모니카 등속을 써 본다. 내 생에 지문을 남긴 사물어들이다. 봉해 놓은 서랍을 연다. 몽당연필, 부러진 양초, 향나무 한 토막, 소인 찍힌 편지봉투, 미완성 초고 시편, 쓰다 만 연애편지, 고장 난 손목시계, 촉 없는 만년필, 녹슨 못, 세금 고지서, 고인 된 선배와 함께 시골 간이역을 배경 삼아 찍은 흑백 사진, 마른 꽃가루 등속 요술 상자인 양 어제가 불쑥불쑥 민얼굴을 내밀어 온다. 험한 잠자는지 아내의 잠꼬대 소리가 요란하고 건넛방 코 밑 거뭇해진 아들 녀석은 덮어 준 이불을 걷어차며 잠이 달기만 한데 자정 너머의 시간을 새하얗게 덮으며 눈은 내리고, 내려서는 쌓이고 있다. 나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다. 마음의 국경지대를 배회하며 오래 굶주린 적막이라는 짐승 한 마리가 북북, 광목 찢듯 하늘 찢는 울음소리 낭자하고 요란하다. 나는 포효하는 짐승을 달래려 카세트를 틀어 송창식의, 대중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노래 ‘밤눈’(소설가 고 최인호 작사)을 듣는다.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가만히 눈감고 귀 기울이면/…/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리/…/눈발을 흩이고 옛 얘길 꺼내/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다/…/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세상에는 이성이나 과학으로 사유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들이 그렇다. 가령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에게 사랑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또 삶이란 무엇이고 운명이란 무엇인가? 등등의 감성과 직결된 문제들은 결코 과학이나 이성으로 사유할 수 없는 분야들이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침대에 오줌 쌌단 이유로 살해된 5살 아이

    프랑스에서 5살 아이의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최근 영국 일간지 더 썬,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어린 아이의 사체가 인공수로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 5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의 세인트 오메르 근처 에어 쉬르 라리 지역에서 벌어졌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피해 소년 야니스는 한밤중에 라 리스 운하 근처를 따라 몇 ㎞를 달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코가 부러진 상태였고,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현지 언론보도에 의하면, 부부는 집에서 0.2km 떨어진 곳에서 의식을 잃은 그를 발견한 후 구급차를 불렀다고 한다. 망연자실한 이모는 조카가 침대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새아빠에게 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친엄마(22)와 새아빠(30)는 용의자로 체포되어 야니스가 신체적 학대를 받았다는 진술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프랑스 검찰관 패트릭 를루는 "주어진 증거를 바탕으로 해석해 볼 때, 의학적인 이유가 성립되지 않았고, 소년의 죽음을 둘러싼 의심스러운 정황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침대에 실례를 한 이유로 체벌을 가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하는 한편, 아이가 학대를 당했거나 추운 날씨로 인해 목숨을 잃었는지 여부를 밝혀낼 것"이라고 전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이야기가 있는 가사, 가슴 두드리는 노래, 그래서 더 와닿는…

    이야기가 있는 가사, 가슴 두드리는 노래, 그래서 더 와닿는…

    “스스로를 봐도 잘난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이 제 노래를 좋아해 주는 것이 아직도 신기해요. 흥행이 잘되는 이미지가 부담스럽지만 ‘음원 강자’라는 말이 제 창작의 원천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음원 깡패’라는 말은 무서워요. 저는 과격한 사람은 아니거든요(웃음).”히트곡 ‘양화대교’를 비롯해 ‘꺼내 먹어요’, ‘그냥’ 등 내놓는 신곡마다 음원 차트 정상을 석권해 가요계의 ‘음원 강자’, ‘음원 깡패’라는 별명이 붙은 가수 자이언티(28·김해솔). 언더그라운드의 피처링 보컬로 시작해 오랜 무명 시절을 겪은 그는 “그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내가 하는 일로 물질적인 가치를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뭘 해도 행복했다”면서 “그런 것들이 보상을 받는 것 같아 신이 나 있는 상태인데 앞으로도 계속 설레고 싶다”며 웃었다. 1년 4개월 만에 발표한 미니앨범 ‘OO’ 역시 지난 1일 발매되자마자 타이틀곡인 ‘노래’는 물론 ‘콤플렉스’, ‘미안해’ 등의 수록곡이 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그는 솔직하고 감각적인 가사와 멜로디 라인이 잘 살아 있는 감성적인 곡으로 한국적인 솔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1일 합정동에서 만난 자이언티는 “곡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완성도”라며 말문을 열었다. “어떤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를 계산해요. 거의 본능적으로 하는 계산이죠. 좋은 아이디어, 컨디션, 장비도 중요하지만 가진 것 안에서 완성도 있게 곡을 끝내는 것이 중요해요.” 앨범 제목인 ‘OO’은 그의 상징이 된 안경을 의미한다. 또한 그와 대중 사이의 교집합을 뜻하기도 한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이전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솔직한 가사들이 눈에 띈다. ‘이 노래는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해/사람들이 가사를 못 외웠으면 해’(노래), ‘가끔 나 내가 아님 좋겠어/아무도 우리가 우리인지 모른다면‘(콤플렉스) 등의 가사에서는 유명세로 인한 행동의 제약이나 부담감이 읽힌다. “저 혼자만 알고 있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면서 마치 일기장이 알려진 것 같아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적이 많았어요. ‘양화대교’를 통해서는 제 아버지의 직업, 가정환경까지 알려졌으니까요. 노래가 안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은 재밌으라고 지은 가사예요. 물론 인기를 얻고 자유롭지 못한 것은 있지만 선글라스를 벗으면 사람들이 많이 못 알아보니까 괜찮아요(웃음).” 교회 주보를 제외하고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그는 영화를 자주 보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그의 음악관은 스토리텔링이 있는 ‘보는 음악’이다. “한 장면에 대한 스토리나 묘사 등 짤막한 장면을 담아 왔는데 앞으로는 픽션이라도 스토리텔링 자체를 강화하고 싶어요.” 사실 ‘양화대교’를 빼놓고 오늘날의 자이언티를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는 ‘전화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특히 너네 양화대교 지나갈 때’라는 가사로 자신의 심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밤중에 자고 있을 때 새벽 2시건 5시건 친구들에게 전화가 걸려 와요. ‘양화대교’는 그만큼 저를 대중적으로 알린 소중한 인생곡이지만 아직도 그 노래 이미지 안에 가둬서 보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변해 가는 제 모습도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노원, 밝아진 공동주택

    노원, 밝아진 공동주택

    서울 노원구 월계동 신도브레뉴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은 항상 어두컴컴했다. 당연히 주민들의 민원도 뒤따랐다. 현재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교체돼 한밤중에도 눈이 부시다. 노원구가 공동주택 지원사업을 통해 아파트 단지에 예산을 지원한 결과다.노원구가 오는 28일까지 ‘공동주택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공동체 활성화,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 주민화합 도모 등을 위해서다. 지원 사업비는 총 10억 6000만원으로, 신청대상은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 150가구 이상인 공동주택(중앙집중식 난방방식 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공동주택), 20가구 이상 임의관리대상 공동주택이다. 지원대상 사업은 ▲경로당의 보수 및 공부방 설치 ▲단지 내 하수도의 보수 및 준설 ▲주민안전을 위한 폐쇄회로(CC)TV 설치 및 유지 ▲층간소음 등 주민갈등 해소 등이다. 참여를 원하는 단지는 28일까지 공동주택지원과 직접 방문 신청·접수하면 된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노원구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전체 주거유형의 88%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구민 행복을 위해 안전하고 정이 넘치는 공동주택을 만드는데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트럼프 反이민 행정명령 후폭풍] 국무·법무부도 “헌법가치 위배” 반발… 혼란 휩싸인 美 사회

    [트럼프 反이민 행정명령 후폭풍] 국무·법무부도 “헌법가치 위배” 반발… 혼란 휩싸인 美 사회

    트럼프 “예고시 나쁜놈들 벌써 입국” 여론조사 ‘트럼프정책 반대’ 33%뿐 취업비자 제도도 엄격하게 손볼 듯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두고 친(親)·반(反) 트럼프 양 진영이 벼랑 끝 전술에 나서면서 미국 사회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행정명령에 반기를 든 ‘법무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데 진지해야 할 때’라면서 행정명령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앞장섰다. 또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취업비자 제한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하는 등 ‘강공’에 나섰다. 이에 ‘미국의 핵심가치와 헌법가치에 위배된다’며 국무부와 법무부 인사들까지 행정명령 반대에 나서면서 백악관과 정부부처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무슬림 단체와 인권단체뿐 아니라 워싱턴주까지 반이민 행정명령 무효소송으로 맞대응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민주당,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비민주적 행정명령’이라며 비난에 가세했다. 30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은 “이번 반이민 행정명령이 합법적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변호하는 것은 (법무부의) 책임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행정명령을 변호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밤중에 그를 곧바로 경질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국무부 소속 외교관도 반대 입장을 담은 연판장을 돌렸으며 100여명이 서명했다. 연판장 초안에는 행정명령이 비(非)미국적이며 미국 내 테러 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을 마비시킬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워싱턴주 법무장관이 반이민 행정명령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법적 조치를 공표한 연방 주는 워싱턴주가 처음이다. 또 ‘미국·이슬람 관계회의’(CAIR)는 이날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지방법원에 반이민 행정명령이 위헌이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인권단체의 소송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첫 성명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비난하고 항의시위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존 루이스 대변인은 “시민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목소리를 내는 헌법적 권리를 행사한 것은 미국의 가치가 위태로워졌음을 보여 준다”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결정과 비춰볼 때 그는 신념과 종교를 이유로 개인을 차별한다는 개념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자동차 제조사인 포드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기업, 차량 공유업체인 우버와 리프트 등 기업도 반이민 행정명령 비판에 가세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반이민 행정명령의 정당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 “만약 반이민 행정명령 발동을 사전에 예고했더라면 ‘나쁜 놈들’이 벌써 미국에 몰려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외교관의 집단 반발에 “이번 조치는 미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행정명령에 따르든지, 나가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적 여론조사 기관 라스무센 리포츠가 이날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도 트럼프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라스무센이 지난주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무슬림 7개국 출신 난민의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33%, ‘찬반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0%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취업비자도 엄격하게 손볼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취업비자 제도 개선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입안했으며 서명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트럼프, ‘反이민’ 반발 법무대행 전격 경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후폭풍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싫으면 나가라’며 행정명령에 ‘반기’를 든 법무장관 대행을 전격 경질했다. 또 취업비자도 엄격하게 제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 외교관 100여명이 행정명령 반대 연판장에 서명하고 무효 소송도 잇따르는 등 행정명령의 반대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백악관은 30일(현지시간)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이 ‘미국 시민을 지켜야 할 법적 의무를 거부’해 법무부를 배신했다”며 경질했다고 밝혔다. 인사는 예이츠 대행이 반이민 행정명령 소송에 트럼프 행정부를 대변하지 않기로 발표한 지 수시간 만인 한밤중에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이츠 대행 대신 버지니아 동부 연방 검찰청 소속 데이나 벤테이 검사를 법무장관 대행으로 임명했다. 벤테이 법무장관 대행은 “서약한 의무를 다하겠다”며 행정명령을 옹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대행에 ICE 구금·추방 부문 부국장인 토머스 호먼을 국장 대행으로 지명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통신은 반이민 관련 주요 부처 수장 2명을 교체한 데 대해 “워터게이트 사건을 촉발한 ‘토요일 밤의 학살’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예이츠 대행은 앞서 “이번 행정명령이 합법적인지 확신이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맞서 정부를 변호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와는 별도로 국무부 본부 직원부터 재외 공관 주재 외교관까지 100여명이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내용의 연판장에 서명했으며 국무부에 조만간 정식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韓 여심 훔친 日 女작가들 유쾌한 독설

    韓 여심 훔친 日 女작가들 유쾌한 독설

    앞서 살아간 일본 언니들의 유쾌한 독설이 국내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들은 책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 결혼과 비혼, 아이 있음과 없음으로 여자 인생의 명암을 가르려는 사회의 잣대를 걷어차고 “자유로워지라”고, “내 멋대로 즐겁게 살라”고 20~40대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일본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맷집 좋은 사회학자’, ‘싸움닭’ 등으로 불리는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가부장적인 사회를 통렬하게 뒤엎는 저작들로 잘 알려진 사카이 준코, 밀리언셀러 그림책 작가인 사노 요코 등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국내 출판계에서는 이들의 에세이가 활발히 출간되고 있다. 사카이 준코의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사노 요코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등이 잇달아 나왔다. 2015년에 나온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는 6만부, 뒤이어 나온 ‘죽는 게 뭐라고’, ‘자식이 뭐라고’는 1만부씩, 최근 출간된 사카이 준코의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는 한 달 새 7000부가 팔려나가는 등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출판사들이 앞다퉈 책을 펴내는 모습이다. 송현주 인터파크도서 문학담당 MD는 “일본은 고령화나 중년의 문제, 비혼, 1인 가구의 등장 등이 우리보다 앞서 진행돼 그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한 작가군과 책들이 많다”며 “국내에서는 최근 이런 현상이 이슈화되며 ‘나’에 대해 집중하고, ‘남이 아닌 나’를 위로하는 책들의 출간과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는 이런 에세이가 없는 걸까. 출판계 관계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내 에세이들과 결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에세이들은 잘나가는 여성의 성공 스토리나 특정한 태도를 강요하는 자기계발서로 흐르는 경우가 많아 친근한 느낌보다는 방어하는 느낌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우리는 어린 여성들에게 삶의 지혜나 일하는 법, 나이 먹는 법을 일러주는 교조적인 스타일이 많은데 이 작가들은 문체 스타일이 ‘아니면 말고’다. ‘곧 죽을 텐데 우울해서 뭐해’라는 식으로 유쾌하게 삶을 관조하고 이혼이나 암투병 등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도 내보이며 ‘네 멋대로 살아라’, ‘아무도 네게 뭐라고 할 수 없다’고 하니 한국 독자들에겐 신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통으로 잘 알려진 임경선 작가는 “국내 작가들은 자신을 글에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있어 글이 엄숙하고 특히 생활 에세이는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일본 저자들은 문화적으로도 스스로를 까발리는 데 심리적 저항이 별로 없어 훨씬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이 저자들은 냉소와 독설, 자기 비하도 마다하지 않지만 자신의 아픈 속내나 추레한 민낯마저도 과감히 내보인다. 저열한 편견에는 대항하지만 다양한 삶과 취향, 선택은 보듬고 존중한다.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등을 번역한 이지수 번역가는 “요코나 사카이 준코 등의 글을 보면 독설을 내뱉으면서도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통찰력과 위트,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해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했다. 이런 책들은 올해도 줄지어 나올 예정이다. 사노 요코가 좋고 싫은 취향의 문제를 에세이로 풀어놓은 ‘이것 좋아 저것 싫어’(가제)가 2월 중순에, 중년의 문제를 언급한 다나베 세이코의 에세이 ‘주부의 휴가’와 히라마쓰 요코의 미식 에세이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등이 상반기 중에 출간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태의 뇌 과학] 렘수면 행동장애

    [김태의 뇌 과학] 렘수면 행동장애

    60대 초반의 부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병원으로 들어간다. 부부의 사이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부인이 한밤중에 남편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편은 50대 중반부터 잠꼬대가 늘었다고 한다. 한밤중에 큰소리로 싸우는 듯 잠꼬대를 하는가 하면 손발로 허공을 휘젓기도 했다.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후 남편은 ‘렘수면 행동장애’로 진단을 받는다. 가상의 사례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병의 양상이다. ‘렘수면’이란 수면 중 뇌활성이 각성 상태와 비슷하게 변화하면서 안구의 빠른 움직임이 나타나는 시기를 가리킨다. 전체 수면 시간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보통 이 시기에 꿈을 꾼다. 꿈속에서 달리고 싸우고 도망가는 등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의 뇌는 이런 내용들을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움직이도록 명령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렘수면 때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에 있다. 바로 ‘렘수면 무긴장’이라는 현상이다. 렘수면이 존재하는 동물들은 모두 렘수면과 함께 근육의 긴장도가 사라져 축 늘어진 상태가 된다. 즉, 렘수면이 시작되면 뇌신경에서 어떤 운동명령이 떨어져도 그 신호가 최종 목적지인 근육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이제 독자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렘수면 무긴장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병적 증상이 바로 렘수면 행동장애인 것이다. 1986년 카를로스 솅크 박사와 마크 마호월드 박사가 최초로 렘수면 행동장애에 대한 공식적인 학술보고를 한 이래로 병의 경과와 치료에 대해 많은 보고들이 이어졌다. 프랑스 리옹 뇌과학 연구센터의 파트리스 포흐 박사팀은 중뇌덮개의 한 영역에서 ‘글루타메이트’라는 물질 분비를 억제하자 실험쥐가 렘수면 단계에서 눈을 감은 채로 음식을 찾거나 먹는 시늉을 하고 뛰거나 점프하려는 동작까지도 보였다고 보고했다. 최근 수면의학자들은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는 상당수의 환자에서 파킨슨병이나 루이체 치매 등의 신경퇴행성 질환이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 이 질환에 대한 추적관찰이 이뤄졌는데 진단 5년 뒤에 18~35%의 환자에서 신경퇴행성 질환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10년 이상의 관찰에서는 80% 이상의 환자가 신경퇴행성 질환을 경험했다. 필자가 국내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5년째는 18%로 외국에 비해 낮지만 6년째는 35%로 급격히 높아졌다. 이처럼 렘수면 행동장애는 그 자체도 위험하지만 5~10년 뒤에 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렘수면 행동장애의 증상 자체는 약물치료를 통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신경퇴행성 질환으로의 이행을 예방할 수 있는 약은 개발하지 못했다. 다만 살충제, 흡연, 허혈성 심장질환, 스테로이드 흡입제 사용 등의 외적 요인들이 신경퇴행성 질환으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렘수면행동장애는 단순히 잠꼬대가 심한 상태가 아니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중추신경계의 질병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지만 임상의학과 뇌과학이 융합해 질환 극복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 [그때의 사회면] 여배우 방성자 총격 사건

    [그때의 사회면] 여배우 방성자 총격 사건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활동한 방성자라는 배우가 있다. 1939년생이다.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김지미와 엄앵란, 그 후에는 당시의 트로이카 윤정희·문희·남정임의 벽을 넘지 못한 조연급 배우다. 방씨가 배우로서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총격 사건 때문이다. 1972년 1월 27일 자 사회면은 이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달 14일 서울 마포구 방씨 집에서 방씨가 도둑을 권총으로 쏴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유명한 여배우가 총을 발사했다는 것만으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런데 사실은 방씨가 아니라 같이 잠을 자던 공군 병사 함모씨가 총을 쏜 것이었다. 한밤중에 함씨가 총을 쏴 도둑을 쓰러뜨리자 방씨가 “당신은 도망가라. 내가 책임지고 수습하겠다”고 말했다. 동거하는 애인을 위해 살인미수죄를 뒤집어쓰려 한 방씨의 거짓말은 사건 발생 2주 만에 탄로 났고 애정행각도 세간에 알려졌다. 함씨는 큰 기업가의 아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재벌 2세였다. 방씨보다 다섯살 연하였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중퇴하고 돌아와 공군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결혼해 미국에 살던 아내와 두 아들을 둔 유부남이었다. 방씨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다 감독의 눈에 띄어 1960년 ‘애수에 젖은 토요일’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이 사건은 재벌 2세의 일탈 말고도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켰다. 권총은 예비역 육군 대위였던 함씨의 형의 것으로 방씨에게 건네진 것으로 드러났다. 함씨는 병사의 신분으로 여배우와 동거를 할 만큼 근무지를 멋대로 이탈했다. 아버지가 당시 이모 공군 준장에게 뇌물을 주고 당번병으로 근무하도록 청탁을 한 것이다. 재벌가 아들의 허술한 군복무가 도마에 오른 것은 당연했다. 이 준장은 처벌을 받고 군복을 벗었다. 방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함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항소해 벌금형으로 감형받았다. 함씨의 아버지가 준 뇌물은 작은 집 한 채 값이었는데 선고유예를 받았다. 정작 총을 쏘고 뇌물을 준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벼웠다. 방씨는 기자들에게 “그이를 사랑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또 “이 사건을 아름답게 봐주느냐, 추하게 봐주느냐 하는 것은 기자 여러분의 양심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 말 때문에 당시 “아름답게 봐 주세요”라는 말이 유행했다. 방씨는 사건 이후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참 뒤 1989년 영화 ‘잡초들의 봄’에 출연한 것이 그녀의 마지막 행적이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멈춰선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 8년 만에 전격 취소

    멈춰선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 8년 만에 전격 취소

    계열사 사장들 사무실서 대기… 기소·재판과정 경영 파행 우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한 18일 삼성그룹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서초사옥에서 열리던 삼성 사장단회의도 전격 취소됐다. 사장된 회의가 취소된 것은 8년 만에 처음이다. 이 부회장과 함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선상에 오른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인 최지성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차장인 장충기 사장은 오전 6시쯤 서초사옥에 출근해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켰다. 계열사 사장들도 대부분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심문이 시작된 이날 오전 10시부터 12시간 넘게 재계 1위인 삼성이 멈춰 섰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에 촉각을 기울이며 시급한 업무만 처리하는 ‘대기모드’에 빠져 들었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 및 재판이 진행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 같은 경영 파행상이 여러 차례 재현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부회장 구속을 시도하는 특검 대 반발하는 삼성 측의 입장도 팽팽하게 맞섰다.‘비선 실세 농단에 대한 징벌을 원하는 여론(특검) 대 피의자 방어권을 보장해야 하는 형사법리(삼성)’, ‘범죄 연루 의혹이 있는 기업 처벌을 통한 정의구현(특검) 대 정치적 혼란상이 재계로 전이되는 상황에 대한 경계(삼성)’ 등의 대립 구도로 부각되며 이 부회장에 대한 심문장 바깥에선 보혁 간 대결상이 뚜렷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기자회견에서 “정경유착 주범인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미래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글로벌 기업 경영자를 구속하려는 인민재판을 중단하라”고 맞받아쳤다.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및 공소 유지는 이번 특검 수사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특검이 뇌물액수로 규정한 430억원의 부당거래 자금, 삼성의 최순실씨 일가 지원,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 과정에서의 편법 행위를 입증하려는 특검의 공세가 거셀 것이란 얘기다. 특검의 공세에 상응할 비판 여론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삼성의 중장기 과제가 됐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올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외계로부터의 답신/강성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외계로부터의 답신/강성은

    외계로부터의 답신/강성은 어떤 날은 한밤중 세탁기에서도 멜로디가 흘러나오지 냉장고에서도 가방 속에서도 심지어 변기에서도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어떤 날에는 우주로 쏘아올린 시들이 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외계로부터의 답신 당신들이 보낸 것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이상한 날이 있다. 한껏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처럼 마음이 떠오르거나 바닥에 떨어진 빨래처럼 몸이 주저앉는 날. 어떤 날은 햇살이 긴 주걱을 들고 겨울 부뚜막에 앉아 흰 죽처럼 끓고 있는 나를 가만히 휘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랑이 찾아오고 또 떠나간 날,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끝내 살고 싶은 날들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십여 년 전 북유럽 시인들이 베가 항성을 향해 시를 쏘아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독자들이 보낸 답장이 잠든 사이 우리를 다녀가는 꿈이라고.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이 사실은 외계의 소식이라고. 우리는 시인의 말을 믿는다. 아무리 현실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꿈을 꾸고 있는 동안은 몽상가 아닌가. 알고 보면 우리가 만난 때는 모두 꿈속이지 않은가. 신용목 시인
  • [이재무의 오솔길] 애국자

    [이재무의 오솔길] 애국자

    “애국심이란 것은 어릴 적에 맛있게 먹었던 것에 대한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유종호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 말에 기대어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즐겨 먹는 먹을거리들을 두서없이 떠올려 본다. 고향 산천에서 주로 구한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다. 나는 수수, 담백한 맛의 밀개떡과 씹을수록 소소하게 단맛이 우러나는 수수팥떡과 양푼에 담긴 삶은 감자를 좋아한다. 입천장을 살짝 데운 뒤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은근, 구수한 맛의 시래깃국과 까닭 없이 울컥, 옛날이 그리워질 때면 찾게 되는, 얼큰 수제비를 좋아하고 한가하고 적적한 날 소면을 삶아서 우려 낸 멸치 국물에 갖은 양념을 한, 결연과 장수의 뜻을 지닌 가는 국수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적막한 저녁 소반 위에 놓인 들쩍지근한 무밥을 좋아하고 속풀이 해장으로 먹는 올갱이국과 되직한 된장국과 맵고 칼칼한 칼국수를 콧등에 땀이 송송 돋도록 먹는 것과 동짓날 새알 팥죽 떠먹는 것과 인절미에 곁들여 먹는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를 좋아한다. 조석으로 밥상에 번갈아 올라오는 슴슴한 맛의 나물류와 맵고 얼얼한 탕 종류와 깨끗한 가난을 떠올려 주는, 비계를 넣고 끓인 비지를 좋아하고 그리고 산성을 중화시키는 알칼리성을 함유하여 소화와 이뇨 작용의 효과가 좋은 토란국을 좋아한다. 그 밖에 나는 붕어찜을, 데친 호박잎에 싸서 먹는 것과 구운 김을 조선간장에 찍어 먹는 것과 된장을 풀어 민물 새우에 애호박을 썰어 넣고 끓인 민물 새우탕을 혀가 얼얼하도록 떠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 중에 사시사철 물리지 않고 내가 가장 즐겨 찾는 먹을거리는 시래기를 재료로 한 것들이다. 시래기로 만든 음식에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다져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기름에 볶은 시래기나물과 시래기를 적당한 길이로 썰어서 된장을 걸러 붓고 쌀을 넣어 쑨 시래기죽과 시래기에 소고기, 된장, 두부 등을 넣고 끓인 시래기찌개와 시래기에 된장을 걸러 붓고 왕멸치를 우려내 끓인 것으로 구수한 맛이 비위를 돋우는 시래깃국이 있다. 나는 시래기에서 인고의 어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늦가을 김장을 하고 나면 어머니는 무청을 새끼로 엮어 겨우내 흙벽이나 처마 끝에 매달아 놓았다. 무청은 삼동 내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꼬들꼬들 말라 간다. 그동안에 밴 습기가 영하의 날씨에 얼면 그 살얼음 속으로 달빛이나 별빛이 스며든다. 한밤중 숲 속에서 뛰쳐나온 부엉이 울음소리가 시래기 몸속을 파고들고 강둑을 타넘고 온 된바람도 깊게, 시래기 안쪽으로 박혀서는 시래기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시래기는 한겨울 덕장에 내걸린 명태나 황태, 북어들처럼 배배 꼬이면서 말라 간다. 무청이 시래기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는 신산고초를 겪으며 살다 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나는, 감히, 다소 겸연쩍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 어쩔 수 없이 애국자란 생각이 든다. 울림이 없는 추상어로 애국이니 인류애를 부르짖는 이들일수록 나날의 구체적 생활 속에서는 이웃과 타자에게 아주 인색한 경우가 많다. 저명 인사일수록 귀로 익힌 생활 현장에서의 구체어보다는 눈으로 익힌 개념어를 빌려 인간과 세계 이해에 대해 주장하거나 설파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나는 이들이 나날의 생활 속에서 이타적 선행을 베풀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하물며 애국이랴? 이미지와 실체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재능과 능력에 비해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동안 사회에 빚진 게 많다. 적수공권으로 올라와 비록 누옥일망정 거처를 마련하였고 아이가 대학 졸업을 앞두기까지 큰 과오 없이 살아왔다. 시난고난 지병을 달고 살지만 아직 옆에는 아내가 있고 날마다 치러내야 할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 이만하면 안분지족이라 할 만하다. 애국이란 거창한 구호나 추상의 나열 혹은 고담준론이나 비분강개의 주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릴 적 먹었던 음식들을 사는 동안 잊지 않고 즐겨 먹는 것, 그리고 실정법과 상식과 평균적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 양심을 지키면서 구체적 일상을 숨 가쁘도록 연명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새벽 여는 ‘여명의 소리’… 귀신 쫓는 ‘빛의 전령’

    새벽 여는 ‘여명의 소리’… 귀신 쫓는 ‘빛의 전령’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79년 10월 헌정사상 의원직 제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을 향해 던진 이 말은 유신 시대의 종언을 예고한 일성으로 오랫동안 회자됐다. 닭의 울음소리인 ‘계명성’(鷄鳴聲)은 우리 역사 속에서는 한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민간에서는 밤을 떠돌던 귀신들이 사라진다는 ‘축귀’의 신앙이 됐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상징하는 십이지 동물인 ‘닭’은 고대로부터 우리 문화의 상징적 위상을 가진 동물로 가까운 존재였다. ●경주 천마총 망자 위한 제물 달걀 발견 삼국유사에 묘사된 박혁거세와 김알지 신화에서도 닭이 등장한다.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 부인은 계룡(鷄龍)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고, 입은 닭의 부리를 닮았다고 전해진다. 금빛 찬란한 황금 궤 안에서 나온 김알지는 하얀 닭이 울어 그의 탄생을 알렸다. 신라의 국명이 한때 계림이었던 것도 신라인이 닭을 숭배했던 것과 연관돼 있다. 경주 천마총에는 수십 개의 달걀이 든 단지가 발견되었고, 여러 고분에서 닭 뼈가 발굴됐다. 가야 지산동 고분에서 발굴된 닭 뼈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망자를 위한 제물로 쓰였다. 무덤의 주인에게 전하는 내세의 식량인 동시에 부활이라는 종교적 의미도 담고 있다. 고구려 무용총 천장에는 닭이 한 쌍 그려져 있고, 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수탉을 죽여라’고 외쳤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전해진다. 고구려는 천축에서 ‘계귀국’으로 불렸다. 닭은 전통적으로 귀신을 쫓는 영험한 동물이었다. 조선 시대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새해가 되면 각 가정에서 닭이나 호랑이, 용을 그린 세화를 벽에 붙이고 액을 쫓는 풍속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보름달 꼭두새벽에 첫 닭이 열 번 이상 울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듯 정초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닭그림 그리거나 닭 피로 귀신 쫓기도 이렇듯 닭은 나쁜 정령을 쫓는 ‘빛의 전령’이었다. 민간에서 귀신을 쫓을 때 닭 그림을 그리거나 닭 피를 뿌리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닭은 새벽녘 어둠을 가르고 길게 울음을 토해내면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의 존재이기도 하다. 시계가 없던 시절, 닭의 울음소리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래서 닭이 제때 울지 않거나 울 때가 아닌데 울면 불길하다는 말도 퍼졌다. 토속 신앙에서는 닭이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고, 한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벌어지며, 해가 진 후에 울면 집이 망한다고 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입신출세의 상징이었다. 수탉의 볏은 벼슬을 상징하는 관을 쓴 모양과 같아 선비들의 서재에는 닭 그림이 많이 걸렸다. 공명의 상징인 수탉과 부의 상징인 모란을 함께 그려 부귀공명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집안의 큰 행사인 결혼식에서 닭은 반드시 초례상에 올려졌다. 신랑 신부가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을 때, 청홍 보자기로 싼 닭 앞에서 서약을 했다. 신부가 시댁에 폐백례를 드릴 때도 닭고기를 놓고 절을 했다. 일생의 가장 중요한 의례인 혼인에 닭이 등장하는 이유는 예로부터 닭을 길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고기는 우리 국민에게는 가장 대중적인 보양식이자 요리 재료였다.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5.4㎏이고,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도 254개에 달한다. 닭이 여름철 보양식이 된 데는 매년 음년 6월 20일이면 닭을 잡아먹는 제주도의 풍속이 퍼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중국 ‘본초강목’에는 ‘조선 닭이 좋다 하여 중국의 세력가들은 조선에까지 가서 닭을 구해 간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약용으로서 한반도의 닭은 인기가 있었다. 토종닭의 경우 기름이 적고, 맛과 향이 탁월하며, 기를 보하는 약효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치킨 프랜차이즈 바람 타고 ‘치맥’ 열풍 현대에는 닭튀김인 ‘치킨’이 국민적 간식이 됐다. 닭고기는 1980년대부터 식육문화의 상징으로, 치킨이라는 국제화된 이름을 얻었다. 여름철 백숙과 삼계탕에 한정된 소비가 연중 소비로 확장된 출발점은 1960년대 초에 유명세를 얻은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이는 닭고기를 삶는 요리에서 오븐 요리로 전환시켰고, 닭고기를 대표적인 겨울철 간식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닭은 튀겨지는 요리가 됐고, 1980년대 초가 되면 ‘후라이드와 양념 반’인 치킨 프랜차이즈가 본격화된다. 특히 1982년 프로야구 개막은 치킨 산업을 도약시켰다. 이른바 ‘치맥’ 열풍의 시발점이다. 이는 호프집들이 맥주 안주로 튀긴 닭들을 내놓게 된 계기가 됐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국내 치킨산업의 성공에는 닭고기가 가진 자질과 역사적·문화적 배경뿐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인의 미각이 걸었던 모든 행로가 응결되어 있는 양념치킨의 존재가 있다”고 분석했다. 양념치킨은 길거리 떡볶이 문화의 후계자 격이다. 식용유로 튀겨 닭의 무미함을 감추고, 튀김의 느끼함을 다시 고추장 양념으로 삭히고, 매운맛을 달콤한 설탕과 콘시럽으로 포장한, 그리고 그 위에 마늘을 다져 얹은 양념치킨은 식초에 절인 무로 완성된다. 우리의 양념치킨은 요리 산업과 미각이 서로 상승작용을 해온 맛의 역사가 담긴 증인이기도 하다. ●국내 치킨집 전 세계 맥도날드보다 많아 치킨 산업 연구자인 정은정씨는 국내 닭튀김 간식의 전쟁사를 “미국 프랜차이즈인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와의 싸움에서 KFC(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의 승리”(대한민국 치킨전: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2014)로 요약한다. 한국식 닭튀김의 승리 요인으로는 미국 KFC가 하지 않는 배달과 맥주를 함께 판매하는 한국 고유의 전략이 꼽힌다. 김 교수는 “전자는 식민지 시대의 냉면 배달로부터 해방 후 짜장면 배달로 이어졌던 긴 문화적 전통의 활용이었고, 후자는 치맥이라는 새로이 창조된 문화가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치킨은 자영업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국내 치킨 점포 수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은 ‘치킨 공화국’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치킨 전문점 수는 10년간 연평균 9.5%씩 급증해 3만 6000여개에 이른다. 한 해 평균 7400개의 치킨집이 새로 생기고, 5000여개가 문을 닫는다.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과잉 경쟁,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까지 한국의 치킨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눈물을 뿌리게 하는 존재다. ※도움말 주신 분: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이희훈 현대축산뉴스 발행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위급하고 도움 필요할 때 ‘107’ 누르세요

    위급하고 도움 필요할 때 ‘107’ 누르세요

    #1. 청각장애를 가진 A씨는 한밤중에 아기가 침대에서 떨어져 얼굴이 파랗게 질리도록 울음을 멈추지 않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불현듯 ‘107 손말이음센터’가 생각났고 수화통역사에게 영상통화로 상황을 설명해 119에 신고할 수 있었다. 수화통역사는 응급차가 오는 동안에도 수화를 통해 A씨와 통화했고 구급대원에게 아이 상태를 전달해 줬다. 덕분에 A씨는 아기를 데리고 무사히 응급실까지 갈 수 있었다. #2. 밤늦은 시각 청각장애인 B씨는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분실 신고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B씨는 혹시 본인의 신용카드를 다른 사람이 사용할까 초조해졌다. 그러던 중 B씨는 손말이음센터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 뒀던 것을 기억해 냈고, 수화통역사를 통해 무사히 분실 신고를 할 수 있었다. ●수화통역사가 영상통화로 문제 해결 손말이음센터가 청각·언어장애인의 입과 귀로서 비장애인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운영하는 손말이음센터는 2005년부터 올 11월까지 모두 470여만건의 수화 통역 실적을 올렸다. 청각·언어장애인이 문자나 영상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 수화통역사가 비장애인과 통화해 문제를 해결한다. 손말이음센터는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구인·구직부터 관공서 민원 상담, 배달음식 주문, 쇼핑, 가족·친구 간 전화까지도 돕는다. 이용 방법은 휴대전화에서 107 번호를 눌러 영상통화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센터 홈페이지(www.relaycall.or.kr)에 접속하면 된다. 모바일 앱을 통해서도 이용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으로 오해 마세요” 하지만 손말이음센터에 대한 홍보 부족으로 어려움도 적지 않다. 손말이음센터의 수화통역사는 “비장애인들에게 107 번호로 전화를 하면 스팸 전화나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해 바로 끊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중계 서비스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나성욱 NIA 기술지원본부 팀장은 “비장애인에게는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이 장애인에게는 몹시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시민들이 107 번호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붉은 닭볏의 기운 푸른 여명 깨우다

    붉은 닭볏의 기운 푸른 여명 깨우다

    닭볏을 쓴 龍의 형상… 무속인들 사이엔 기도발 잘 통하는 신령스러운 山 닭띠 해가 코앞이다. 새해가 가까워질수록 누구나 자신만의 결의를 다지는 의식을 준비하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해맞이 산행이다. 성찰의 자세로 된비알을 오르고 해를 품은 가슴 그대로 현실의 바다로 내려온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충남 공주의 계룡산은 닭의 해에 송구영신의 의식을 치르기 맞춤한 산이지 싶다. 용의 몸통에 닭 볏을 한 모양새라니 말이다. 국립공원 가운데 작은 축에 속하지만 그래도 천황봉 너머로 솟구쳐 오르는 해돋이는 장엄하다. 닭 볏 같은 암릉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맛도 각별하다. 계룡산은 신령스럽게 여겨지는 산이다. 무속인들에게 특히 그렇다. 신라시대엔 5악의 하나로 분류돼 제왕들의 제사 터로 쓰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얽힌 전설도 많다. 요즘엔 덜하지만, 십수년 전만 해도 계룡산에서 수도했다는 것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무속인들이 많았다. 기도발이 잘 통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요즘도 갑사 주변에선 점집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계룡산은 전체적인 형태가 닭 볏을 머리에 단 용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최고봉인 천황봉(845m)을 중심으로 연천봉과 문필봉, 삼불봉, 관음봉 등 엇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조밀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 모습이 닭 벼슬을 쓴 용을 닮았다는 것이다. 조선 개국 당시 무학 대사가 “금계포란(錦鷄抱卵)과 비룡승천(飛龍昇天)의 명당이 합쳐진 형국이니 계룡이라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던 것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천황봉과 바로 옆의 쌀개봉(830m)은 현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둘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는 삼불봉(775m)이지만, 많은 무속인들이 기도처로 삼는 곳은 관음봉(766m)이다. 관음봉은 한때 높이가 816m로 표기됐지만, 실측 자료에 따라 최근 고도 표기가 바뀌었다. 등산 코스는 대략 5개 정도로 나뉜다. 등산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건 동학사 코스다. 한데 동학사를 오를 때 보느냐, 내려올 때 보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이 뒤바뀐다. 먼저 ‘지옥 코스’. 동학사에서 은선폭포를 거쳐 관음봉, 삼불봉, 남매탑을 거쳐 다시 동학사 쪽으로 내려온다. 계룡산탐방안내소를 기준으로 8.6㎞에 이르는 코스다. 계룡산의 여러 등산로 중 가장 힘들어 ‘마(魔)의 코스’라고도 불린다. 은선폭포까지 평이한 등산로가 이어지다 관음봉 바로 밑에 형성된 애추지형(너덜바위 지대)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 여기서 관음봉까지 약 1.3㎞ 동안 인내를 시험하는 급경사길이 이어진다. 예전엔 너덜지대를 걸어서 올랐다. 최근 너덜지대 위에 목재 데크를 깔아 우회 탐방로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오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저 악명 높은 치악산의 사다리병창 구간에 견줄 만하다. 동학사 못미처 세진정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남매탑 아래 약 600m 정도의 급경사 구간을 올라야 한다. ‘천당 코스’로 표현되는 구간은 천정골 코스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로, 동학사 상가에서 천정골 쪽으로 우회전해 큰배재~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를 거쳐 동학사로 내려온다. 거리는 7.8㎞로 계룡산의 주요 볼거리를 비교적 완만한 코스를 이용해 돌아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갑사 쪽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다. 금잔디고개를 거쳐 삼불봉을 거쳐 하산하는 짧은 코스와 동학사까지 가는 긴 코스가 있다. 신원사, 상신마을 등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이번 여정에선 천정골 코스로 올랐다. 천황봉 위로 솟는 해를 보자는 뜻에서다. 물론 ‘지옥 코스’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바람도 작용했다. 동학사 상가 지역이 끝나는 곳에서 천정골 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천장이길’이 시작된다. 등산로는 평이한 편이다. 문골삼거리 지나 큰배재까지 가는 동안 몇 차례 오르막 구간이 나오지만 그리 급하지는 않다. 이 구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풍경은 남매탑이다. 청량사지 쌍탑이라고도 불린다. 오층석탑(보물 제1284호)과 칠층석탑(보물 제1285호)이 나란히 서 있다.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두 개의 탑 가운데 칠층석탑을 오라비탑, 오층석탑을 누이탑이라 부른다. 오뉘탑엔 그럴싸한 전설도 깃들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이렇다.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당승 상원 대사가 이곳에서 움막을 치고 수도할 때였다. 어느 날 그는 목에 가시가 걸린 범 한 마리를 구해 줬다. 이튿날 범은 보답으로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스님은 처녀를 정성껏 치료한 뒤 돌려보내려 했으나 하필 큰 눈이 내렸고, 둘은 꼼짝없이 한 움막에서 겨울을 나야 했다. 이듬해 봄 스님은 처녀를 고향에 데려다줬으나 그에 대한 연모의 정이 뼈까지 스민 처녀는 부부의 연을 맺자고 애원했다. 처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던 스님은 의남매를 맺자고 했고, 둘은 평생 불도를 닦다 한날한시에 입적했다. 남매탑은 계룡산을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다. 계룡 8경에는 ‘남매탑 명월’로 이름을 올렸다. 남매탑 너머로 보름달 뜨는 모습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할 때의 풍경도 이에 못지않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남매탑 명월’과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한밤중에 오르내려야 할 테니 말이다. 남매탑에서 삼불봉까지는 급한 오르막길이다. 삼불봉은 3개의 봉우리로 이뤄졌다. 그 모양새가 꼭 세 부처의 모습과 닮았다. 삼불봉에서 관음봉 방향으로는 자연성릉이 펼쳐져 있다. 직벽에 가까운 아찔한 암릉이 펼쳐진 구간이다. 그 너머로 관음봉, 쌀개봉, 천황봉이 불끈불끈 솟았다. 우리 선조들은 바로 이 장면에서 ‘닭 볏을 쓴 용’의 모습을 떠올렸던 게다. 자연성릉 구간을 계룡산 산행의 백미로 꼽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성릉 구간을 아슬아슬 지나면 곧 관음봉 초입이다. 관음봉은 쉽사리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400개에 달한다는 계단을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로 올라야 한다. 관음봉에 서면 멀리 계룡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성계가 조선 개국 초기에 새 도읍지로 정하려 했다는 신도안이 바로 여기다. ‘기도발’이 세다는 이유에서인지 1970~80년대에 무려 100여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이후 종교정화운동을 통해 계룡산 주변의 굿당과 기도터 등을 정리했지만 아직도 많은 무속인들이 계룡산에 기대 살고 있다. 관음봉에서 동학사 방향으로 내려서면 곧 너덜지대가 시작된다. 여기가 바로 계룡산 ‘마의 코스’다. 계단이 놓여졌다고는 하나 내려가는 것도 만만하지 않을 만큼 경사가 급하다. 이 구간을 거슬러 오른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급경사 구간이 끝나는 곳에 은선폭포가 있다. 계룡산의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히는 폭포지만 겨울철에 계곡수가 줄면서 형편없는 몰골이 되고 말았다. 은선폭포에서 동학사까지는 완만한 산길이다.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동학사는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이름난 절집이다. 단아하고 깔끔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 폐위 소식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는 숙모전이 경내에 있다. 글 사진 공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호남고속도로지선의 유성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가장 알기 쉽다. 이어 국립대전현충원을 지나 고개 하나 넘으면 곧 동학사 입구다. 산행의 피로는 유성온천에서 푼다. →맛집:동학사 초입에 산채정식 등을 내는 음식점들이 몰려 있다. 연잎밥을 내는 집도 몇 곳 있다. 동학사 인근 반포면의 어씨네 본가(852-7372)와 갑사 가는 길(853-1300)은 장어구이와 참게 매운탕으로 쌍벽을 이루는 집이다. 엄마의 식탁(881-8212)은 우엉밥정식과 연잎밥정식 등을 정갈하게 차려 내는 집이다. 갑사가 있는 계룡면 쪽에선 장순루(857-3498)를 들러 볼 만하다. 공주 시내의 동해원(852-3624)과 더불어 ‘매서운’ 짬뽕으로 명성을 날리는 곳이다. 국산 홍초로 맛을 낸 고추짬뽕이 인기다. →잘 곳:동학사 초입에 펜션, 모텔 등 수많은 숙박 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새벽 산행을 위해 동학사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싶다면 계룡산호텔(042-825-4020)을 권한다. 옛 호텔을 최근 리모델링해 넓고 깨끗하다.
  • [시론] 촛불은 어디로 진화해야 하는가?/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헌법·법사회학 교수

    [시론] 촛불은 어디로 진화해야 하는가?/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헌법·법사회학 교수

    두 달 가까이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응이 흥미롭다. 처음에는 민주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최순실 게이트의 기괴한 내용에 집중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여야 정치권을 압박하며 현직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성사시킨 촛불집회의 힘에 놀라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긴 한밤중에 100만명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 평화로운 축제처럼 집회를 진행하는 모습은 지금 어느 선진국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독일의 한 매체가 한국의 ‘아고라 민주주의’를 모범으로 지목했다는 최근 소식은 그래서 뜻깊다. 해외 언론의 눈에 시민들이 손에 든 촛불은 서구적 모더니티(근대화)의 출발점인 자유의 불꽃을 연상케 했을 것이다. 모든 시민을 주권자로 규정하는 이 자유의 불꽃은 시민혁명의 이념적 근거이자 도화선이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세계대전, 동서 냉전과 세계화의 폐해를 모두 겪은 오늘날에 와서는 솔직히 감격보다 피로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오죽하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상징하듯 자유의 불꽃을 외면하는 반(反)난민의 물결이 유럽을 넘어 미국에까지 제도권 정치의 주류로 올라서게 되었을까. 어쩌면 서구 언론은 한국의 촛불집회에서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구현하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바깥의 눈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촛불집회로 표출되고 있는 정치적 에너지를 어떻게 제도적 차원에 연결시켜야 할지는 지금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청와대로 향하던 촛불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처하는 국무총리 공관과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헌법재판소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촛불 시민들이 이와 같은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이와 같은 민심의 흐름을 포착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개헌을 포함한 제도 개혁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것은 이제 온전히 여야 정치권과 지식인들의 책임이다. 그러면 촛불은 어디로 진화해야 하는가. 첫째, 불합리한 권력 구조부터 손을 보아야 한다. 국민의 신임을 잃은 ‘4~5%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국정을 흔들 수 있는 대통령 선거 제도는 하루바삐 뜯어고쳐야 한다. 대통령이 궐위된 뒤 60일 내에 5년 임기의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한 헌법 규정은 1987년 신군부(전두환·노태우)와 양김(김영삼·김대중)의 정치적 노림수를 빼놓고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여느 대통령제 국가처럼 미리 뽑아 놓은 부통령이 있었다면, 하야 이후 발생할 정국 혼란을 무기로 4~5% 대통령이 끝까지 버티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무총리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국정 농단 사태를 주도하거나 방조한 청와대와 권력 감시기구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을 사설 내각으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대폭 축소하고, 대통령과 그 주변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감사원이나 국정원의 소속을 바꿀 필요도 있다. 대통령-민정수석-법무부 장관-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검찰 거버넌스’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차제에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주민 직선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청와대와 권력 감시기구가 재벌들과 연결되는 고리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서도 지방정부들이 충실하게 기능을 유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지방자치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한 안전장치라는 점을 다시금 입증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합당한 제도적 개혁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 예를 들어 헌법에 새로운 규정을 두어 주민자치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입법권과 조세권의 분권화를 통해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와 대등한 헌법기구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현재 단원제인 국회를 상원과 하원이 있는 양원제로 바꿔 지방정부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 독일이나 미국의 상원처럼 ‘지역대표형 상원’을 만들어 지방정부 대표 1명 또는 2명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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