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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교생 폭주족 15명 한밤 패싸움 1명 사망

    한밤중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공원을 질주하던 10대 15명이 집단패싸움을 벌여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 창원경찰서는 26일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에서 지난 25일 밤 11시50분쯤 집단 패싸움을 벌이고 달아난 박모군(14·G중3년) 등 중·고교생 15명을 살인과 폭력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조사결과 박군 등 10명은 이날밤 오토바이를 타고 공원을 달리던중 이곳에서 생일파티를 하던 송문관군(18·C공고2년) 등 12명이 헤드라이트를 비춘다고 나무라자 이에 격분,서로 각목과 칼 등을 휘두르며 패싸움을 벌여 송군을 칼로 찔려 숨지고 함께 있던 최모군(17·C공고 2년) 등 2명에게 중상을 입었다.
  • 기관지 천식/정규만 정규만한의원장(전문의 건강칼럼)

    ◎면역기능 저하로 폐에 담이 쌓이면 천식나타나/증상따라 선방패독탕·소청룡탕 등 꾸준히 복용 기관지 천식은 어떤 물질이나 감기,기타 자극 등에 대하여 과민하게 반응하는 병적 상태다.기관지가 좁아지므로 호흡곤란,기침,가슴에서 쌕쌕 소리가 반복해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원인은 유전적인 소인,환경적인 요인외에도 신체적인 조건으로서 비(소화기),폐(호흡기),신(비뇨·생식·내분비계)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면역기능이 저하되는데 이때 폐에 담이 쌓이게 되며 여기에 찬바람 등 찬 기운이 들어가면 천식이 나타난다.기관지가 약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이나 찬 기운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인데 내부의 문제를 더 중요시 하는 것이 한방 견해다. 증상은 호흡곤란,기침이 한밤중이나 새벽 또는 이른 아침에 심하다.몇개월이고 기침만 하는 천식도 많다.비염,축농증,태열(아토피성피부염)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천식이라고 의심할 수있는 증상으로는,찬 바람을 쐬거나 몸을 차게 하면 기침한다,뛰면 숨이 차고 기침한다,별다른 이상없이 3주 이상 열없는 기침을 한다,아이스크림등 냉음료만 먹어도 기침한다,먼지·냄새·연기에 약하다,밤에 열없이 발작적으로 호흡곤란과 기침이 있다,기침 감기에 자주 걸린다 등을 들 수 있다. 증상이 있을 때에는 우선 증상 위주로 치료한다.증상이 미약하거나 없을 때는 기관지를 강화하는 약물과 치료약물을 동시에 쓴다.면역기능을 높여 주는 체질개선요법이다. 체질이 개선되면 감기에 잘 걸리지 않고 활동력이 왕성해진다.식욕이나 소화에 지장이 없이 전반적인 몸의 상태가 좋아지면서 다른 증상까지 좋아진다. 천식 치료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의 천식은 성장,발육,학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열이 있을때 선방패독탕,청금강화탕,가래가 있을때 해표이진탕,추위탈 때 소청룡탕을,증상이 없을 때는 육미지황탕,육군자탕,옥병풍산 등을 체질과 증상에 따라 쓰면 기대 이상의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02)508­5161.
  • 고교씨름왕 노상강도 메쳐/각목 저항 3명 격투끝 잡아(조약돌)

    ○…전국 고교 씨름선수권 대회에서 6차례나 우승한 고교 씨름왕이 한밤중에 10대 강도 3명과 격투를 벌여 1명을 붙잡았다. 23일 상오 1시50분쯤 서울 성북구 길음3동 주택가 도로에서 편모군(19·성북구 하월곡동) 등 3명이 신모씨(32·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뒷머리를 둔기로 내리치고 지갑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 때 최근 진로배 전국씨름대회 고교부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씨름선수권 대회에서 6관왕을 차지한 서울 한영고 씨름부 3년 김현기군(18)과 같은 학년 친구 곽동진군(18) 등 2명이 이를 목격하고 뒤쫓아가 격투 끝에 편군을 붙잡아 길음3 파출소에 넘겼다. 경찰은 편군을 추궁한 끝에 공범 송모군(19·성북구 장위동) 등 2명을 자수시켰다. 김군은 키 189㎝에 몸무게가 100㎏인 거구로 범인들이 각목을 휘두르며 맞섰으나 가볍게 제압했다.〈강충식 기자〉
  • 서울 도심에 ‘야외목욕탕’/삼청공원 영무정 주변 새 피서지로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알몸목욕 도심 한복판에산에서 흘러내리는 자연수로 알몸 목욕을 할 수 있는 피서지가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산책로를 따라 400여m를 가면 암벽으로 둘러싸인 야외목욕탕이 나온다.비와 햇빛을 피할수 있는 철제 파라솔에는 ‘시를 읊고 춤을 추는 정자’라는 뜻의 ‘영무정’이라는 현판도 붙어 있다.이곳에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야외 ‘알몸 목욕’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름철 이곳을 찾는 시민은 하루 평균 200여명.열대야가 계속되는 요즘은 한밤중에 찾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윤대석옹(79·서울 종로구 청운동)은 “30년전 이곳으로 이사를 온 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무정을 찾는다”면서 “처음에는 알몸 목욕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막상 탕에 들어가면 어릴적 추억이 떠올라 젊어지는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삼청공원 관리사무소 김성회 소장(60)은 “삼청공원은 24시간 개방을 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야외목욕이야말로 선조들이 무더위를 즐겼던 방법”이라고 말했다.
  • 어린이 감기 알레르기/정규만 경희대 한의대교수(전문의 건강칼럼)

    ◎일년내내 감기 달고살며 편도선 자주 부을땐/내열 제거한후 면역기능 강화 체질개선 해야 “우리 애는 일년내내 감기를 달고 산다”면서 근본적인 치료차 왔다고 하는 사람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어린이가 코막힘이 잦고 콧물이 나고 걸핏하면 기침하면서 목이 잘 붓고 아데노이드로 편도선이 평소에도 커져 있다.몹시 더위를 타며 이불을 걷어차고 자며 찬 곳에서 자려고 하고 아이스크림 등 찬 것을 좋아한다.땀이 많이 나며 특히 잘 때 많이 나고 배가 자주 아프며 피부가 건조한 편이다.혀가 지도처럼 얼룩덜룩하기도 하며 얼굴빛이 창백한 경우가 많다. 천식의 3대 증상은 호흡곤란,기침,가슴에서 쌕쌕 소리가 나는 천명인데 한밤중이나 새벽 또는 이른 아침에 심하다.몇 개월이고 기침만 하는 천식도 많다.찬 음료만 먹어도 기침하고 별다른 이상 없이 3주이상 기침하거나 먼지 냄새 연기에 약하여 기침하면 우선 천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알레르기 비염의 3대 증상은 코막힘,재채기,맑은 콧물인데 오전에 증상이 심하다.70%정도는 축농증을 동반하는데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는 경우가 많다.어린이가 감기를 달고 산다,눈밑이 푸르스름하다,코가 가려워 비비거나 잘 후빈다,코피가 잘 난다,재채기를 자주 한다,코가 막힌다면 알레르기 비염을 의심해야 한다. 아토피성 피부염(태열)은 피부가 몹시 가려워 후비거나 긁는 것이 특징.별 이유없이 몸의 어떤 부위를 긁으면 우선 아토피성 피부염을 강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신경이 날카로워지며 성격이 나빠져 인격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알레르기 질환의 한방치료는 우선 나쁜 속열(내열)을 제거하는 것이다.증상이 있을 때는 증상치료를,증상이 없으면 방어기전을 강화시켜 저항력(면역기능)을 높여주는 체질 개선 요법을 한다.즉 감기나 찬 것을 이길수 있는 강인한 체질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린이 알레르기 질환은 치료가 잘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끈기를 갖고 꾸준히 치료하면 기대 이상의 좋은 치료효과를 거둘수 있다.(02)958­9167,9170
  • 보충수업 꼭 해야 하나(사설)

    방학이 시작됐으나 방학은 없다.공부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방학을 우리 중·고생들은 누리지 못한다.올 여름방학에도 보충수업이란 이름의 수업이 계속되고 있다.선풍기 조차 없는 찜통교실도 많아 요즘 더위속에서 수업을 하고 받는 학생과 교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보충수업은 지난 74년 고교평준화 정책 실시 이후 학생들간의 실력차가 커짐에 따라 학습부진학생들의 학습결손을 보충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그러나 대학입시준비교육만이 중요시되는 우리 교육풍토에서 원래 취지와는 달리 왜곡돼 몇차례 폐지와 부활이 반복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많은 논란속에서도 보충수업이 계속되고 있는것은 물론 그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학습부진학생들뿐만 아니라 과외비가 부담스러운 서민층이나 학교이외의 교육기관이 없는 농촌지역 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은 큰 도움이 되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보충수업이 타성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희망학생을 대상으로 희망과목에 한해 실시해야할 보충수업이 모든 학생들에게 주요과목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거의 일반화된 관행이다.그 결과 보충수업은 학기중에는 자율학습과 함께 학생들을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학교에 가두어놓는 역할을 하고 방학중에는 여름학기 역할을 한다.이런 상황에서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은 끼어들 틈이 없다.그러고 보면 최근의 청소년 문제는 잠자는 시간 이외는 대부분 학교에서 보내는 아이들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꼭 보충수업이 필요한 학생이 아니라면 보충수업에서 학생들을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아이들을 학교에 맡겨 놓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다른 학교도 모두 하니까 우리 학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장선생님들의 조바심에서 강제로 실시되는 보충수업은 그 본래의 취지를 훼손할 뿐더러 교사들의 근무부담을 가중시키고 우리 아이들을 시들게 한다.
  • 화가 권영우(이세기의 인물탐구:137)

    ◎‘그리는 그림’아닌 생명의 혼 터치/순백의 캠버스에 명암따라 부조 성취/‘종이의 화가’ 대부… 파리·LA서도 개인전 ‘종이의 작가’로 알려진 화가 권영우의 그림작업은 ‘흰무명을 볕에 바래어 표백하는 과정’처럼 생략과 절제가 끈질기게 중복된다.먹을 가는 동안 화상을 가다듬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흰 종이 자체에서 그는 ‘깨끗하고 고요한 담벽과 담흑색’을 캐내고 싶어한다.‘한국화’라는 전승표현의 범주에서 벗어나 화면에 구멍을 뚫거나 찢는 변칙은 종이가 지닌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추구하려는 그만의 조형수단이다. ○작품세계 생략·절제 중복 서울대 미대시절에도 동양화과에 다녔으나 나체모델이 배당된 서양화 실기실에 드나들었고 선묘 위주의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70년대이후 기하학적으로 윤곽처리된 묘사적 화풍에다 광활한 여백을 화면에 함축하는 것이 특징이다.그런 한편으로는 동양화에 있어 거의 숙명적이라고 할수 있는 종이의 섬세한 재질감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물들이는 수묵 농담의 수법에서 언제나 과묵하면서도담소한 감수성을 지킨다.이른바 백색 일색의 종이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화판에 담기는 층이나 명암에 따라 리듬의 부조를 성취시키는 것이다.물기가 아련히 스며든 여러층의 마티에르는 지루하리만큼 수많은 구멍들이 모래벌판에 찍힌 철새의 발자국이나 고공에서 바라본 비늘구름같은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보는 이의 마음에 혁혁함을 던져준다.조용한가 하면 행동적인 데가 있고 전위적인가 하면 전통을 고수하는 곡진한 그의 방법에 대해 “결국 미의 종합세계를 이루어놓고야 말았다”는 평론가 박래경의 말은 옳다.그는 실제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만들어진 흰빛의 그림’속에 순백의 적요를 흩뿌리면서 ‘거울같이 맑고 고요한 수면보다는 빗방울이 떨어져 소용돌이가 일고 물결치는 상황’으로 작품을 몰아나간다. 그의 추상화면은 작은 알들이 깨지는듯한 ‘껍데기가 깨지는 아픔’과 ‘탄생의 기미’를 창출하면서 직선과 사선과 횡선에 먹번짐과 균열과 누빔을 엇가르고 총총하게 뚫어진 화면은 온통 보석타래가 흩어진 형국이다.그렇게 인위적으로뚫린 그의 창들은 내면과 외부를 향해 저마다 쏘듯이 다른 광채를 내뿜고 있는 것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직선에서의 영롱한 물방울무늬를 얻어낸 그는 76년 파리의 권위있는 자크마솔화랑 초대전을 갖게 되었고 파리의 미술평론가 알랭 보스케는 “더없이 다양한 추상풍경화의 경이”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그때 자신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끝없는 추상의 전조를 예감하고 그는 전업작가로 남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기에 이른다.이른바 자신의 테마에 파고들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파리여정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다진 명성과 중앙대교수직을 버리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앞날이 막막한 보장 없는 모험’이 아닐수 없었다.그러나 그만의 방법과 그만의 세계를 부여잡게된 이상 그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파리전시 2년후인 78년에 도불,예술은 다만 ‘던지는 것’이며 ‘전력투구로 매달릴뿐’ 어떤 방해도 그를 막을순 없었다.연약해 보이는 체구에 말이 별로 없는 대신 고집이세고 일단 마음먹은 것은 만류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파리시내에서 25㎞ 동쪽으로 떨어진 트로시의 아틀리에에 틀어박힌지 2년만에 아트포럼 앙테나쇼날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평론가 데니스 로제로부터 “맑고 투명하고 평화로운 공기속에서 작가는 빛과 깊이의 이중감정을 실천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그 무렵 이일씨가 표현한 ‘종이의 정교한 무표정속에서 무한한 진폭을 지닌 무구한 정신성’과 ‘동양으로의 현대적 회로’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함경남도 이원에서 소사업을 하던 권태인씨의 1녀3남중 차남.그는 부친을 따라 한국인 밀집지역인 북간도 용정에서 광명중학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그가 도불을 결심하게 된것은 광명중 시절의 미술스승이던 석희만씨가 “둑을 지키는 포플러가 아닌,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이 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서울로 와서 해방 다음해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고 ‘비어있는 것이 저장되어 있는것’이라는 ‘무사무위’의 노장사상을 그림에 적용하여그만의 ‘숭려’를 체득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2년간 생활 남천 송수남은 “그의 묵시적이면서도 금욕적이고 수도자적인 자세는 누구라도 일단 외경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고 전제한다.“화선지의 흰빛에 흐르는 무구한 숨결과 그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무관심성은 요약과 절제로 일관된 것 같으나 실은 허세없는 작가의 본성이 그속에 창만해 있다”는 것이다.과연 그의 그림에서는 어둠을 가르는 여명이 새어나오고 그 순백의 새벽빛은 모든 광원의 색광들을 반사한 본질색이며 화선지가 포용하는 영험하고 신비스러운 통합적 상징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의 근작은 또다른 실마리를 추구하려는 자세다.먹과 과슈에 의한 설채의 도입,또 뚫고 찢기 위해 찰상을 가하는가 하면 예리한 칼날로써 형성된 선조는 물감과의 교호작용으로 운율의 파문을 현란하게 일으켜준다. ○독자적인 동양화추상 고수 10여년만에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도심을 피해 전원적인 경기도 용인 양지면에 정착하여 주로 한밤중에 일어나 작업에 임하고 있다.최근의 대형화면들은완고한 예술정신과 심도가 스민 발색을 존립시키고 ‘순수무결’과 ‘세련미’는 남이 넘볼수 없는 도저한 화풍으로 경도되지 않을수 없게 한다.서울대 미대 동기동창이며 동갑인 부인 박순일씨는 스승인 월전의 소개로 만난 사이.자녀는 아들만 둘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류에 물들지 않은 독자적인 동양화추상’을 지키는 그의 집념은 결국 카뮈의 요나처럼 어느날 화면에 점 하나를 찍게 될지도 모른다.이순을 넘긴 지금도 조용하고 시적인 소년의 자세를 변치않는 이 혁신적화가는 예술의 끝을 향해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면서 대양을 이루기 위한 만리심을 좀처럼 잠재울줄 모른다.〈사빈논설위원> □연보 △1926년 함남 이원 출생 △1951∼57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1956∼77년 국전출품 △1966년 개인전(서울신세계화랑) △1970∼79년 한국미술대상전 출품 △1974년 개인전(서울명동화랑) △1976년 파리 자크마솔화랑 개인전 △1977년 개인전(서울신세계화랑) △1978∼89년 프랑스 파리체류 △1980년 파리 개인전(아트포럼 앵테나쇼날화랑),아세아현대미술전 △1982년 파리(주불한국문화원) 및 서울개인전(현대화랑) △1983년 주불한국인화가전(파리) △1984년 LA개인전(삼일화랑) △1986년 서울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LA(아트코아화랑) 및 토론토 개인전(브리지스톤화랑) △1988년 조선일보현대작가초대전 △1990년 서울(호암미술관) 및 일본오타와대학초대 개인전 △1991년 선재현대미술관개관기념초대전(경주),한국현대회화유고전 △1992년 개인전(서울현대화랑) △1993년 대전 한림갤러리개관기념전 △1994년 에꼴드서울전(관훈미술관) △1996년 후소회 창립60주년기념전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중앙비엔날레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수상〉 국전문교부장관상(58·59년),국전초대작가상(74년)
  • 모선서 1.8m 이동… 모래표면 탐사/소저너 화성탐사 이틀째

    ◎물 존재 확인땐 ‘생명체 의문’ 풀릴듯 바퀴가 6개 달린 원격 화성탐사로봇 소저너는 지금까지 화성표면을 2곳 조사했다.조사결과는 8일쯤(현지시간·한국시간9일상오) 발표될 계획이다. 소저너는 이틀동안 화성표면위에서 단지 6피트(1.8m)만을 움직였다.그러나 미국항공우주국(NASA)과학자들은 소저너가 모선을 벗어나 이 정도만 이동,바위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소저너는 바퀴를 이용,화성의 먼지를 긁거나 휘저음으로서 그것의 성분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줄수 있다. 소저너는 7일(미국시간) 탐사동안 모래가 있는 지점에 멈추었다.소저너는 모래에서 탐사활동을 하는 동안 바퀴에 의해 만들어진 모양에 대한 사진들을 찍어보내 과학자들로 하여금 화성토양의 성질에 관해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또 그로부터 얻어진 지식은 미래의 탐사로봇을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저너의 모선인 패스파인더호는 화성의 다음날 기상예보를 제공한다.기온이 가장 올라갔을때인 하오에는 가벼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온도가 섭씨영하 12도로 우리나라 겨울의 추운날씨 정도이며 한밤중에는 영하76도까지 내려가는등 극심한 추위를 보인다. 과학자들은 화성에 생물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패스파인더 착륙지점 부근에서 활동한 소저너가 앞으로 여러주 동안 보내온 자료를 집중 분석할 계획이다. 만약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같이 화성표면에 안정된 상태의 물이 존재한다면 생물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과연 화성에 생물이 살았을까.그것은 큰 의문이다.해답은 화성의 풍경이나 표면을 영상으로만 연구해서는 안될 것이다.아마도 그것은 화성의 바위를 직접 지구로 가져와 지상의 연구소에서 연구·분석해야만 풀릴수 있을 것이다.NASA 계획에 따르면 그같은 일은 2005년에 이루어질 전망이다.
  • 밀입국 중국인·조선족 100여명 적발/서울·부산 등서

    ◎일부는 도망치다 건물 파손소동 불법 취업을 하려고 밀입국한 중국인과 조선족 등 100여명이 서울과 부산,인천 등지에서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22일 탁병휘씨(37·중국 복건성) 등 중국인 34명과 이들을 냉동트럭에 태워 서울까지 데려온 운전사 제춘만씨(32·부산 영동구 동삼1동 510의 9)를 검거,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21일 하오 11시40분쯤 부산 7거1626호 냉동차 컨테이너에 타고 서울 동작구 사당1동 대신고물상 부근에 도착,국내 취업 알선책을 기다리다 주민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자 달아났다가 1시간쯤 뒤에 붙잡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주택가 담장을 넘어 지붕을 타고 도망치다 건물 일부를 파손시키는 등 사당동과 봉천동 일대에서 한밤중에 소동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4∼6명은 달아났다. 조사결과 이들은 이날 밤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취업브로커를 만나기로 했으나 나타나지 않자 사당1동쪽으로 이동한 뒤 더위를 참지 못해 컨테이너 밖으로 나오다 주민에게 들킨 것으로 밝혔다. 이들은 또 『중국 출발 당시 80여명이 함께 배를 타고 왔으며 나머지 40여명도 다른 화물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고 말했다. 부산·경남본부 세관은 21일 하오 7시쯤 부산항에 도착한 한국 국적 정기화물선 조양상선소속 7천260t급 조양대련호에 숨어있던 이판춘씨(44·중국 흑룡강성 오상시) 등 조선족 40명을 적발,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겼다. 또 21일 하오 7시쯤 인천시 중구 항동 인천항 1부두에서 한중여객선 뉴골든 브릿지호를 타고 온 중국교포 28명은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강제퇴거 명령을 받자 불응,입국허가를 요구하며 항의농성을 벌였다.
  • 화가 이종상(이세기의 인물탐구:124)

    ◎학·예 두루갖춘 화단의 「선사」/수묵채화서 판화­벽화까지 장르 경계 초월/번뜩이는 직관으로 세밀·대담한 화풍 일궈 일낭은 곧잘 「용광로의 불길같은 정열」에 비유된다. 또는 한치의 빈틈없이 「하고자하는 일을 완벽하게 성취해낸 실천자」이기도 하다. 소설가 최인호는 『한국에 두 사람의 선사가 있다고 한다면 그 하나는 바둑의 조훈현이고 다른 한사람은 일랑 이종상화백』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지칠줄 모르는 탐구력과 천재성, 여기에 자존심에 비견되는 욕심마저 겸비하고 있다. 나이 26세때 국전추천작가, 36세에 심사위원을 지냈고 「한국회화」라는 명제아래 심원한 수묵담채와 변화무궁한 구성, 세밀한 필치와 단아대담한 설채로 판화 벽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광활하게 석권하고 있다. 전 국립박물관장이며 예술의 안목이 드높던 최순우씨는 「일랑은 추상이니 구상이니 하는 한계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을뿐 아니라 작품의 폭이나 타고난 화재로 보아 그대로 화가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한 말은 옳다. 이른바 수묵채색을 통합한 「현대진경」에서는 지금까지의 구투를 활짝 벗고 고압전선주나 터널, 쇠를 녹이고 달구는 노동현장을 등장시켜 박진감있는 결집을 펼치는가 하면 산수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원형상에서는 「돌기와 억제, 확산과 응축, 끊임없는 생성의 열기」로 조화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격정적으로 일구어놓는다. 평론가 오광수는 「이는 필력과 소묘력, 전통과 맥을 연결시키는 지성의 뒷받침없이는 이루어질수 없는 결과이며 견고한 아카데니즘과 다채로운 실험정신에서 구축된 것」임을 찬탄한바 있다. 그리고 「다방면에 걸쳐 일총한 재주를 보이는 탓에 그의 그림에서는 항상 섬광이 빛난다」고 덧붙인다. ○26세 국전추천 작가로 프랑스의 저명한 레스타니도 그의 「질료에 대한 묵시적 동작성은 마그마속에서 녹아내리는 근원적 생동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먹으로 그린 유려한 수묵화와 대지의 소묘, 이런 선묘를 구성해내는 격랑과도 같은 화면은 그가 회화적 질료표현의 대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관의 샘물이 마를줄 모르는 이종상」이란 인물은 「드믈게 만나지는 강인한 거인」으로서 「그를 두고 번뜩인다고 표현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외화대신 의경을 존중하는 원형상의 특징은 현란한 칠보작업에서도 거침없이 나타난다. 그때의 화면은 「중앙으로부터 꽃처럼 피어나는 구조」「마치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에너지」가 날카로운 금속성의 파장으로 사방에 흩어지는 형국이다. 굵은 붓자국이 자유로운 선영을 이루는 가운데 그가 창출한 동판유약화는 장엄한 「천지창조」의 선율이 물결치고 작품이 뿜어내는 결연한 함성에 보는이들은 압도당하고야 만다. ○지칠줄 모르는 실험정신 멜방이 달린 진바지를 입고 7백도가 넘는 불가마(로)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일랑의 모습은 62년 국전에 출품했던 바로 「작업」의 주인공이며 오늘의 그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경외심으로 응시하게 된다. 동문민의 「만권서를 읽지 않고 만리고행으로 흉중의 진탁을 씻어버리지 않으면 화가가 될수 없다」는 문구에 공감하여 그는 문기와 서권기가 충만한 「화중유시」를 구사해 내었고 화론이 출중한 것도 화단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한동안 지필묵을 둘러메고 강산만리를 돌면서 각지역의 산세나 풍광의 특징을 꿰뚫어 한때는 「지리학자」란 별명을 듣기도 했다. 역사의 내구성과 자연의 미래를 농묵으로 그린 「독도」「남산」시리즈들이 그때의 산물이다. 자연을 그릴때도 자연의 외관을 그리지 않고 자연의 내면의 정기에 파고들어 자연스러운 질서와 형태를 마음속으로 읽어낸다. 생명의 원질을 포착한 기운생동은 「정신주의 향상성」과 현실에 감추어진 정신의 실체로써 「동양의 기사상과 기운론」에 바탕을둔 최근의 「기시리즈」가 이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그의 최근의 작품은 더욱 방대하여 세로 9미터 가로 18미터의 포항문화예술회관의 무대막을 제작하는가 하면 그가 빚은 마리아조각상은 금빛의 장미장식과 함께 눈부신 화사의 극치를 과시해 보인다. 후리후리한 키에 강인한 기상이 특징인 일랑은 소탈하면서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사치를 위해서는 넥타이 하나도 사지 않지만 그림과 관계되는 것은 붓한자루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함부로 전시회를 열지 않을뿐 더러 웬만한 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구입하기란 어렵다. 그와 절친한 시인 김형영은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미시적 치밀성과 거시적 대담성」으로 요약하고 있다. 「잠잘때도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하나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 몇날 며칠을 방황하고 모색하다가도 한밤중에 갑자기 일어나 3,4백호 화면을 힘찬 윤필과 비백의 삽필로 일도양단하듯 단숨에 그려나간다.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무슨 일을 하던 기개와 열정이 넘친다는 점에서 그의 후학들도 「섬모심」을 금치못한다. ○“잠잘때도 그림 그린다” 원예학을 전공한 부친 이간재씨와 현윤옥씨 사이의 아들 형제중 차남,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고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서울대미대 입학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면서 어려운 고학생활로 대학을 졸업했다. 월전 장우성의 마지막 제자에다 산정 남정에 이은 「학예를 겸전한 화가」로 한학자 홍진표씨가 「큰 물결일수록 널리 퍼진다」는 뜻의 아호 「일낭」을 지어주었다. 이대 미대 출신인 성순득씨와의 사이에 남매, 5년전 차녀를 잃고 순명의 진리를 깨달아 가톨릭에 귀의했다. 눈코뜰새 없이 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언제나 바쁘다. 낙성대와 중계동, 벽제의 벽화연구소와 평창동 자택 등 네군데의 작업장을 돌면서 성격이 서로 다른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를 만나기란 좀체로 쉽지않다. 자신의 일에 치열하게 매달리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근원이 수화를 두고 「예술을 먹고 예술을 입고 예술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한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는 손끝이나 머리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그래서 사람들이 눈이나 머리로 보는 그림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보는, 의재필선에 다다르고 일체공성의 무위신품을 성취하는 일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보 ▲1938년 충남 예산출생 ▲61년 제10회국전 「장」특선 ▲62년 제1회 신인예술상전 최고특상·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상· 제11회 국전 무감사특선· 문교부장관상수상·최연소 국전추천작가 ▲64년 대한민국국민미술전람회 추천작가초대출품·도쿄국제미술전 초대출품 ▲67년부터 서울대 출강 ▲65­80년 국전 초대출품 ▲74년 국전초대작가·심사위원 ▲75년 미댈러스주립대초대 개인전 ▲77년 동산방화랑초대 이종상진경전 ▲78년 동국대대학원 철학과석사과정 ▲81년 미부룩클린박물관 드로잉초대전·제1회 한국현대수묵화전 추진위원 ▲83년 문공부해외공보관주관 새한국화단면전초대 출품(뉴욕 LA 런던) ▲86년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 ▲88년 현대한국회화전초대작가 준비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88서울미술대전초대작가 추진위원 ▲89년 동국대대학원서 철학박사학위·호암갤러리초대 이종상회화전 「한국화의 새도전 새벽화」 ▲90년 가나화랑초대 90,FIAC(미술견본시장) 그랑팔레 파리 ▲91년 제1회 서울국제미술제 부이사장·현대미술초대전 운영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가나화랑초대개인전 ▲93년 현대화랑주최 「기호와 상형전」및 현대미술 100년의 열정전 ▲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주최 한중미술교류전 및 파리한국현대미술제·베니스비엔날레·한국현대회화특별전,서울미술대전 운영위원장·중앙비엔날레운영위원장·이종상 회향전(대전한림갤러리)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 〈저서〉 「화실의 창을 열고」「솔바람 먹내음」
  • 범행 노출쉬운 아파트 왜 택했나/이한영 피격­안풀리는 의문점

    ◎발소리 안들린 계단도주·몸싸움도 석연찮아 이한영씨 피격사건에 대한 수사가 18일로 나흘째를 맞았지만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많다. 합동수사본부가 처음 판단한대로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정황은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범인들의 사전 모의와 준비,범행 및 도주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범행장소를 눈에 띄기 쉬운 아파트 14층의 좁은 공간으로 택한 것부터가 이상하다.이씨의 귀가 시간에 정확히 맞추지 않았다면 은닉하기에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도주로까지 생각했다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보다 한적한 곳을 노렸어야 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다. 이 때문에 범인들이 계단을 통해 달아났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고도로 훈련받은 테러전문가라면 한밤중에 계단을 통해 뛰어내려갔을 리가 만무하다.당연히 요란한 소리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경찰 조사 결과 13층부터 1층까지 26가구 주민 가운데 사건 당시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따라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는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현장에서 몸싸움까지 했다는 목격자의 진술도 의문을 남긴다.이 때문에 범인들은 면식범이며 당초 목적이 살해가 아닌 납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황용하 경찰청장은 『순간적으로 이씨를 맞닥뜨린 범인들이 살해과정에서 몸싸움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면식범은 아닌 것 같다』고 추정했다. 범인들이 특정 여성월간지 기자를 사칭,전화를 건 점도 의문이다.월간지측은 소속 직원 가운데 이씨를 전화로 찾은 사람은 없다고 해명했다.하지만 묘하게도 해당 월간지에는 동명이인 근무하고 있다.경찰의 최초 사건발생 보고서에 이씨의 직업이 여성월간지의 기자로 표기된 것을 보면 범인들도 이씨를 해당 월간지의 기자로 착각했던 것이 아니냐는 추리도 가능하다. 범인들이 이씨를 확인사살하지 않은 점도 수수께끼다.범인은 6연발 권총을 가졌으나 단 두발밖에 쏘지 않았다.그나마 한발은 이씨의 점퍼 속 솜에 파묻혔다.살해가 목적이었다면 목적을 완수했는지 확인조차하지 않고 달아났다는 얘기가 된다. 탄알이 이씨의 점퍼를 뚫지 못한 것도 아리송하다.
  • 거리 물청소(외언내언)

    요즘 서울거리의 건축공사장을 보면 비교적 꼼꼼하게 차단시설로 가리워져 행인들의 안전보호는 물론 미관상으로도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공사장의 이 가리개는 소음과 먼지를 막아주는 기능도 한다.서울이 조금씩 선진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서울시는 오는 3월부터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는 지하철구간 발생 지하수를 끌어올려 도로 물청소에 활용키로 했다.교통소통에 지장이 없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매주 한두번 을지로·종로 등 대로 268㎞를 진공흡입청소차와 고압살수차로 물청소 한다는 것이다. 건축공사장들의 차단시설이나 지하수의 물청소 활용은 모두 대기오염의 한 요소인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서울시가 「대기환경보전 조례」를 만들고 또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낸 결실의 하나다.사소한 일 같지만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행정의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새겨보자면 나름대로 큰 의미도 갖는다. 서울 상공에 떠돌다 가라앉는 먼지는 1년에 10만t가량 되는것으로 추정된다.거기에다 4∼5월 편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중국의 황사까지 가세해 눈병·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등 대기오염,먼지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하수 활용도 그렇다.지하철구간에서 자연히 솟아 아깝게 버려지는 지하수는 하루 7만여t.그중 식수로도 쓸만큼 깨끗한 4만6천여t을 끌어올려 도로청소에 쓰고 비상시 소화에도 쓰자는 것이다. 세계적 물사용량은 인구증가의 2배 속도로 늘어 21세기에는 「물전쟁」이 예상된다는 국제보고서도 있다.인도는 지난 10년 과다사용으로 지하수의 평균 수위가 30㎝나 내려갔다고 한다.우리도 수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서울시는 지하수의 공개념을 강화,지하수 관리를 철저하게 해 폐공 되메우기 등 오염방지 조치를 소홀히 할 경우 처벌 할 방침이다.물청소는 조그마한 아이디어이지만 알뜰 행정의 모범이다.교통표지판·도시계획 등 시민생활 현장에는 작지만 큰 행정의 아이디어들이 공직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김영진씨 둘째아들 해광군의 탈북기/우리가족 로정의 일기 전문:Ⅰ

    ◎“탈북=지도자 배신” 생각들어 갈등/농촌일손 가들랴 폐품 모으랴… 공부시간 몇이나/기차안서 굶주려 사람 보고 “누구때문” 울분 22일 귀순한 김영진씨 일가의 탈북기록인 김씨의 둘째아들 해광군의 「우리가족 로정의 일기」는 우리 맞춤법에 틀리거나 낯선 북한용어도 있지만 생생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살려 게재했습니다. 나는 애어린 14살 아이이지만 살길을 찾아떠나가는 노정을 기록하여 어느때에 이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며 북조선 나의 동무들이 이 글을 볼 수 있을까 손꼽아 기다리며 한자 두자 일기로 적고저 한다.내가 살던 고향 집 앞에는 들판,뒷산 옆에는 4월,5월이 되면 과수나무들이 흰색옷을 입는듯 만발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배나무들이 지켜섰습니다. 아름다운 내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을 버리고 나는 왜 떠나야 했는지,…. 그것는 배고픔에 못이겨서인지 아니면 북조선의 무상교육 무상배려가 좋은데 내가 일년에 공부하는 시간이 도대체 몇날,몇시간이 되었던가. 북조선에서는 한창 배울 나이에 공부를 배우는 시간보다 농촌자원에 동원했고 폐철모우기 폐유리모우기 폐고무 폐동 등등,모우기를 하루도 그칠날이 없으니 그런것이 어디에 있으량 하는수없이 나의 동무들은 선생님의 성화에 못이겨 공장,농장 주민의 것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그것이 도리어 나라에 좋은일 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적질을 배워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우리 학급 인원은 42명이다. 거기서 학교에 오는 동무들은 하루에 절반밖게 못온다.절반숫자의 동무들은 왜 학교에 오지 못하였던가? 그것은 참기어려운 배고픔때문이다. 나는 정말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어디로 가야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1996년3월18일 월요일 날씨 맑음 이날은 정든고향,정다운 동무들과 이별하고 3월19일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향하였다.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집을 떠나 다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침컴컴한 기차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밀고당기고 힘내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넘어질듯 하였다. ◇1996년3월20일 수요일 이날도 기차안에서 무대기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사람들이 서로 붐비면서 자기보따리를 찾는 사람,아이들이 배고파 우는소리,여성들이 신경질적으로 아우성치는 소리에 기차간은 그야말로 난장판 수라장이었다. 더욱이 내가 목격한 것은 굶주림에 시달려 숨을 방금 지울듯한 한 청년이 기차한막판에 누워 있었다. 그누구도 그사람을 동정과 위안해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끝내 그사람은 굶주림에 못이겨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처참한 참상을 보고 울분을 금할수 없었다.나는 처음으로 어린 나이에 내눈으로 직접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학교에서 공산주의 도덕교양을 받을때 웃사람을 존경하고 아래 사람을 사랑하며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교양을 받은 나로서 아직도 그참상은 나의 눈앞에 생생이 나마있다. 어째서 이 비참한 참상,한 인간의 운명을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가? 아직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과연 누구탓이며 누구 때문인가? ◇1996년 3월21일 목요일 지루함을 느끼면서 타고온 기차는어느덧 끝내 목적지 무산읍에 도착하였다. 이날은 마을이 서글퍼서 인지 하늘 그름을 뭉게뭉게 나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목적지인 외할머니네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없었고 누나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무산에서는 외할머니네 생활처지는 내고향의 생활처지와 다름이 없었다. 피곤한 나머지 나는 할머니가 들어서 오시는줄도 모르고 잠에 골아 떨어졌다. ◇1996년 3월22일 금요일 날씨(맑음) 아침 새벽에 나는 잠결에 할머니와 어머니 간에 말씀하는것을 들으니 먹을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채우며 겨우 장사를 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너희들이 또왔으니 반가움대신 근심이 된다고 걱정하는것이 였다.나는 비롯 나어린 마음이지만 또다시 마음속 충격을 받았다. ◇1996년 3월23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깨여나 보니 벌써 할머니는 장사를 나가고 없었다.나의 아버지니와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무슨 토론을 하고있었다.그때나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앞으로 우리들의 살길을 찾는 심정에서 모데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아버지어머니한테 묻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말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을 강냉이 뿌리로 만든 국수로 대충끼니를 하고 우리 온가족은 두만강 구멍을 나갔다. 두만강 기슭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니 유달리 화려한 집이 두만강 건너에 있었다. 후에 알아보니 그집은 남조선 사람들이 와서 지은집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때에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남조선 사람이 자기 나라도 아닌 중국땅에 와서 훌륭한 집을 지을수 있는가고 생각하여 나는 이사실을 알고 싶었지만 부모님한테 선듯 묻지 않았다. 이때 아버지께서 하는 말씀이 이제는 더는 북조선에서 살길이 막막하여 더는 살수없으니 너희들이 보다시피 할머니에 집도 생활이 구차하며 하루하루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아버지에게 정확한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살길은 다만 남조선에 가야만이 너희들은 공부도 마음대로 할수있고 마음놓고 배불리 먹을수도 있고 희망의 날개를 펼칠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이때 나는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고 친애하는 지도자품을 떠나자고 여기로 데리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때 나는 나의 아버지이지만은 나쁜 사람이 아닌가고 생각되어 내 생각대로 절대로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씀올리었다. 이때 나의 형님 누나는 이구동성으로 나의 말을 찬성하였다.우리 행동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먼 남쪽하늘만 쳐다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였다. 침묵을 지키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중 어머니께서는 그러면 너희들은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가? 우리는 집도없고 재산도 다 팔고 할머니를 크게 믿고 왔댔는데 보다시피 할머니네 집 신세역시 구차하여 먹을것이 없어 하루살이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우리까지 어떻게 같이 있겠는가고 하였다. 어머니 말을 듣고 우리 형님은 우리를 데리고 한쪽에 가서 말을 좀 하자고 하였다. 나의 형님은 우리보고 너희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어보는 것이였다. 이때 나와 누나는 한결같이 우리는 절대로 지도자동지품을 떠날수 없다고 말하였다. 우리 형제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의 침묵을 깨뜨리면서 하는 말씀이 너희들은 지도자 동지품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 온집안을 거처하여 먹여 살릴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아버지는 이제는 고향으로 갈래야 갈수가 없는 몸이라고 말하였다.내가 왜서인가고 물으니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몇년전부터 남조선 방송을 들으면서 남조선은 자유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15명을 조직하여 북조선정치는 불모순 정치며 남조선정치는 자유정치라는 것을 선전하던중에 아버지는 노출되어 갈 수 없는 문제라고 알기싶게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형님은 잘돼도 우리아버지 못돼도 우리아버지인데 아버지 뜻을 따르자고 말하였다. 나는 이때 생각이 많았다. 하나는 나의 아버지이고 하나는 조국의 품이었다. 이 갈림길에서 나의 심정은 아버지와 이별하고 싶지 않고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의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현실은 하나의 길만 선택하여야 했다.하지만 현실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본 선차적 문제로 생각할때 아버지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 상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아버지께서는 명령하다싶이 요구성을 높여 무조건 남조선으로 가야만이 삶의 길이라는 것을 결심하면서 너희들은 꼭 부모들의 의향대로 움직이라고 강박하는 것이었다.아버지께서 결심하신 그날 저녁 밤10시부터 중국도강준비에 들어갔다. 음력 2월6일이라 조각달은 지고 두만강 기슭옆에 캄캄한 밤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 기슭에 가깝게 접근하였다.은밀히 접근하여 새벽2시까지 정찰하면서 보호병 움직임,조명등,불바침의 시간적으로 하산하여 아버지께서 명령을 내리시었다.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모님들은 우리를 꼭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포로 우리를 위장시켜 한치 한치 두만강을 도강하기 시작했다. 끝내 새벽 3시30분에 성공하여 중국땅을 밟게 되었다. ◇1996년 3월 24일 일요일(맑음) 이날은 유달리 날씨도 쨍쨍하게 맑은 날씨였고 하늘도 우리를 도와주는듯 기분이 상쾌하게 날씨가 맑았다. 새벽4시에 중국 조과향에도착하여 산에 오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50도가량인 벼랑급한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자니 급한 벼랑에서 아차 한발 실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아슬아슬한 벼락산이었다.이때에 어린 여자의 몸으로 산을 오르는 나의 누나는 기진맥진하여 겨우 형님의 도움을 받으며 산등성이에 올라 섰을때 새벽 6시30분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아침식사 준비에 굴뚝에서 연기들이 뭉게뭉게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때 나의 정든 고향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강건너 북조선을 바라보았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사람들이 볼수없는 산에 좀더 들어가 불을 피우고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는 말에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또다시 우리 일행은 지친 발길을 돌리며 눈이 무릎까지 오는 북쪽 산으로 향했다. 1시간쯤 눈길을 걸어 나무가 우거진 깊은산에 불을 피울장소를 찾았다. 우리들은 불을 피우고 젖은옷을 말리며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물이 없어 눈을 녹이며 물을 만들어 먹었다.식사를 끝낸후 피곤에 몰려 나도 모르게 잠에 떨어져 꿈나라로 갔다. 꿈속에서 나의 동무들이 나를 보고 나라를 배반한 변절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꿈을 꾸고 있을때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는 바람에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때 나무하러온 조선족 중국부부가 올라오고 있었다.그들이 하는 말이 북조선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물어볼때 우리 온가족은 어쩔바를 몰라 몹시 당황하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자기는 나쁜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북조선 생활정황을 잘알고 있으니 우리를 동정하여 말하면서 자기 집으로 내려가자고 하였다.우리는 중국집에 들어섰을때 나는 아주 놀라며 이집은 중국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 집이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한눈에 안겨오는 것이 냉동기 텔레비전 재봉기 등 가정품들이 일제히 꾸려져 있었다. 나는 이집 주인님이 여기에서는 이밖에 고깃국을 정상적으로 먹는다고 할때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이때 어머니께서는 이것이 사실인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다시 물어보시었다. 주인은 웃으며 중국은 개방이후 발전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보다시피 좋다고,집집마다 생활형편이 모두가 이정도는 된다고 하면서 우리집은 보통 생활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중국땅을 처음 밟았을때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 부부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정말로 내가 상상도 하지못한 인상이었으며 자연적으로 중국과 조선을 대비해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중국땅에 처음와서 만난 사람은 담배농사를 지으며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을 때어 온실관리를 하고 있는 집이다. 밤11시가 되도록 주인님의 말을 들으니 정국정황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중국 낡은 옷이지만 조선옷과 바꾸어 입혀주면서 화룡현까지 갈 차비를 주어 우리일행은 버스를 타고 화룡까지 수월히 오게 되었다. ◇1996년 3월 25일 월요일 (맑음) 화룡시에 들어서니 북조선에서 볼수없는 휘황하고 유명한 시장거리,사람마다 웃음이 가득찬 거리,생기발랄하고 환희가 넘치는 얼굴들.그모든 모습들.없는것없이 차려놓은 시장과 과일류,복장류,당가루류 등등 없는 것없이 그득히 차려놓는 시장거리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펼쳐 놓은듯 하였다. ◇1996년 3월26일 화요일 (흐림) 우리일행은 노비가 떨어지며 화룡시에서부터는 도보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상오 9시30분부터 걷기 시작한것이 어찌 피곤하고 힘들던지 저녁 10시에 서성명함에 도착하였다.한밤중에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오니 잠자리가 근심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한집에 들어가 길가는 손님이니 하룻밤 쉬고 가자고 애원하고 사정하였다.첫집에서는 안되고 열집만에 애원하던중 11번째 집에서는 우리를 받아들여 밥도 주고 잠도 잘수 있게 되었다. ◇1996년 3월27일 수요일 우리일행은 도보로 걸어서 연길시내에 도착하였다. 연길시내에 들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한국사람만 만나면 도움을 받는다고 하여 한국사람을 찾았다.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려고 공동전화 하는 곳에 가니 한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북조선에서 오지 않았는가 하며 자초지종을 물으며 반갑게 대하는 것이었다.그는 북한에 오빠가 있다고 하며 북한실정을 물어 우리는 북한생활 형편을 말하며 우리는 망명자가 아니라,중국에 친척방문왔다고하였다. 박아주머니는 우리는 북조선돈 3천원을 가지고 중국돈도 바꾸어주어 90원을 생활에 보탰다. ◇1996년 3월 28일 목요일 연길시 장백공사 리화의 김래삼아저씨네 집에서 하루 묵게 되었다. 이집은 채소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집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대해주면서 하는말이 어째서 온 가정이 한창 공부시킬 나이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먼길을 떠나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흑룡강 오상현에서 빚에 시달려 빚재촉에 못견디어 살수없어 연변에 친척을 찾아온다고 말하였다. 살수없이 연변에 친척 찾아 온다고 말하였다. (이말은 로라를 처음 만났던 부부가 이렇게 알려 주었다)
  • 한밤 다세대주택 주차장 붕괴/대구 궁전빌라

    ◎차량 3대 묻혀… 주민들 긴급대피/인근 신축오피스텔 지하공사 부실영향 추정 주차장이 한밤중에 붕괴돼 차량 3대가 파손되고 주민 등 1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18일 하오 11시40분쯤 대구시 북구 복현동 415의2 정덕 궁전빌라 뒤편 주차장의 지반이 갑자기 침하됐다. 이 사고로 주차장은 길이 40m,폭 3m,깊이 23m가량 땅속으로 내려앉았으며 주차된 차량 3대가 함몰됐다. 사고가 나자 궁전빌라 주민 16가구 60여명이 한밤중에 집을 떠나 인근 여관 등으로 긴급대피했고 부근 여관 투숙객 68명은 숙박요금을 환불받고 다른 곳으로 숙소를 옮기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대책본부는 사고가 빌라 건물로부터 8m가량 떨어진 골든플라자 오피스텔의 신축공사 과정에서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중이다. 오피스텔은 지상 17층,지하 7층,연면적 4만2천㎡의 대규모 공사로서 지하공사를 하면서 옹벽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인접한 빌라의 주차장이 붕괴된 것으로 대책본부는 추정하고 있다.
  • LA 한인타운 「주민 방범대」 큰 성과

    ◎3년전 경찰·민간인 공조,범죄추방나서/우범지역 차량순회… 범죄현장 즉각 신고 각종 범죄에 시달리다못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시의 한인타운 주민들이 자체 방범조직을 가동,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최근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 경찰에 따르면 3년전 경찰의 승인을 받아 출범한 문제지역대응팀(SPART)과 코리안­아메리칸 워치팀(KAWT)은 우범지역을 돌면서 의심스러운 차량 등을 아마추어무선으로 경찰에 신고,범죄율을 크게 줄이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중 SPART는 코리아타운 중심부인 미드윌셔지역에서,KAWT는 코리아타운 동북부 우범지역에서 1주일에 두번씩 비무장으로 차량순찰을 하고 있는데 경찰은 이 지역의 절도와 마약거래·매춘·낙서행위 등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경찰과 비무장 민간인이 공조체제를 갖추고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초부터로,이들 민간인은 아무 표시가 없는 일반승용차로 순찰하기 때문에 우범자들이 피하려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범죄행위를 탐지할 수 있는 이점을 갖는다. 91년 흑인폭동의 피해자인 제이 리씨(38) 등 약 20명의 상점주와 주민들로 구성된 SPART는 마약거래장소로 악명높은 거리를 돌며 망원경으로 동정을 살피고 때로는 마약거래현장을 신고하는가 하면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한다.이들의 이같은 활동은 일부지역에서 마약범들이 자취를 감추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이 리씨는 SPART단원들은 한밤중 자동차의 배터리가 떨어져 쩔쩔매는 사람들을 위해 점프 스타트용 전선을 차안에 넣고다니는 등 방범활동외의 지역봉사활동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반달곰 살리자(외언내언)

    전국에서 밀렵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지난 20일부터 경찰이 야생조수 밀렵을 단속한 결과 65건에 116명이 적발되었다고 한다.재래식 올가미뿐 아니라 한밤중에 강력한 서치라이트를 비춰 야생동물이 멈칫하는 순간 고성능 사제총으로 사살하는 현대식 밀렵방법도 동원되고 있다.표면에 꿀을 바른 사제폭탄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다. 강력한 사제폭발물이 노리는 대상은 반달곰.가슴에 흰색의 선명한 V자 무늬를 지니고 있는 반달가슴곰은 세계적 희귀동물로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329호.지난 83년 설악산에서 암컷 한 마리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숨진 이후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었다.그러다가 13년만인 지난봄 지리산에서 눈위 발자국으로 서식이 확인되었다.천왕봉일대에 반달곰 5∼10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환경부가 공식발표한 것이 지난 4월.이때부터 무도한 밀렵꾼의 반달곰 추적이 지리산일대에서 자행되기 시작했다. 생태계의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반달곰이 설악산·지라산에서 어찌어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은 기적 같은 일이다. 「생태계의 소생」을 상징하는 이 진객을 잡기 위해 사람은 수백개의 폭탄과 수천개의 덫을 지리산에 설치해 놓았다.반달곰의 쓸개가 특히 약효가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정부에서도 반달곰보호대책에 나서 지라산의 덫·올무제거작업을 벌였고,김영삼 대통령도 반달곰 살리기에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몸에 좋다면 너구리도,오소리도 잡아먹는 한국인의 몬도가네수법.지난 25년동안 한국이 수입한 웅담은 4천135㎏,자그마치 곰 2천900여마리에 해당된다.지리산 반달곰이 밀렵꾼의 손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만일 밀렵꾼의 폭발물에 처참하게 살해된다면 우리 어린이의 동심에 큰 상처를 주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세계인의 멸시와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 어둠의 공화국(이철수 대위의 증언:4)

    ◎전기 하루 5시간 공급… 밤이면 “암흑세상”/군서 중동에 무기팔아 군수품 자체 조달/나진·선봉지역 이주하려 뇌물 제공 만연/제대준비 군인들 식량약탈·도둑질 등 행패 잇따라 ▷전력난◁ 북한의 전력사정은 북한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요즘 북한 전 지역에 「전깃불」이 공급되는 시간은 잘해야 하루 24시간중에 다섯시간 정도이다.평양도 마찬가지다.중심구역만 불이 오고 나머지는 다 「새까맣다」.야간비행을 해보면 남한은 완전 「불바다,불천지」이고 북한은 암흑세상이다.내가 살던 평안남도 온천은 김일성·김정일의 특가(별장)가 있어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온천에서 가까운 황해남도 과일군의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력사정이 가장 안좋은데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3시간 정도만 불이 들어온다.그곳 주민들은 한밤중에 일어나 일을 한다.비행사들은 과일군에 「미개도 정전군 등잔리」라는 별명을 붙였다.전깃불이 안 들어오니 텔레비전을 볼래야 볼 수도 없고 냉동기(냉장고) 등이 아예 필요도 없다. 전기공급이 안되니 공장또한 가동되지도 않는다.그래도 군수공장,강철공장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장에는 전기가 공급되지만 강철공장의 경우 전압이 낮아 「전기로」가 10개라면 그중에 3∼4개만 가동된다.심지어 전기기관차같은 것도 1시간 정도 잘 가다가 정전돼 3,4시간 연착되기 일쑤다.기차가 「가다 서다,가다 서다」한다는 뜻이다. ○TV·냉장고 쓸모없어 공장이 가동된다고 해도 본래의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가령 농기계공장이라면 농기계 대신 장사할 수 있는 물건들,즉 구멍탄 집개·자전거 등을 만들어 판다.공장 자체가 장사를 해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공장원들에게 노임도 주고 중앙당에 올리기도 한다는 말이다.그래서 북한사람들 사이에 「북한도 자본주의 다 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석유사정만 나쁜게 아니다.석유가 없으면 대체에너지인 석탄이라도 많이 캐야 하는데 이 또한 그렇지 못하다.북한 텔레비전을 보면 전기를 이용한 기계로만 석탄을 캐는데 그것은 텔레비전의 선전일 뿐이다.북한의 탄광은 일제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람이 곡괭이로 석탄을 채취한다.굴이 무너져 숱한 사람들이 죽지만 「동발목」(갱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모자라 일손을 놓고 있다.러시아가 개혁·개방을 한뒤 북한은 탄광에서 쓸 나무조차 모자란다.북한주민들 사이에 나도는 「개 팰 나무도 없다」는 말은 북한의 다급한 사정을 잘 말해준다.나무가 없어 굴을 뚫을 수도 없고,먹을게 없어 배가 고픈 노동자들은 일을 안한다.연형묵 전 총리가 90년 초 『전력난을 뚫자면 탄광이 잘돼야 한다』며 90년초 탄광에 간 일이 있다.하지만 연총리가 갱안에 들어갔는데도 탄부들은 일을 하기는 커녕 담배만 피우고 앉아있었다.탄부들은 연총리가 당황하면서 『왜 일 않는가』라고 묻자 『죽으러 갱도에 들어가는가.당신이나 한번 직접 해보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북한 군의 돈벌이◁ 경제사정이 나쁘자 중앙당은 군대도 자체 외화벌이를 해 일정액을 올려보낼 것을 독려하고 있다.인민무력부산하 「2경제위원회」에서 무기개발및 군수품조달등을 맡고 있고 「15국」은 러시아제를 토대로 개발한 각종 무기를 외국에 수출한다.자동소총,자동권총,14.5㎜ 고사총,박격포,자주포,미사일 등이 이란과 이라크,리비아,시리아,이집트,짐바브웨 등 북한의 영향권에 있는 중동·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에 팔려 나간다.무기를 팔지 않고는 1백만명이 넘는 인민군대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인민무력부는 쌀·간장·된장 외에 군복·신발·속내의 등 모든 군수품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북한군의 또다른 외화벌이수단은 금광개발이다.사금을 줍고 금을 캐는데 군인들이 동원된다.인민무력부의 연간 금 생산계획은 20t이다.각 군단별로 생산량을 배당한다.공군사령부의 배당량은 2t.실제 각 군은 금을 캐기 위해 병사들을 동원한다.「외화벌이 부대」가 따로 있지만 정식명칭은 아니다.임시적 개념의 비편제 부대인데 각 연대·중대·소대별로 1명씩 뽑아서 사단에 올려보내면 사단에서는 각 부대에서 올라오는 500∼600명정도의 병사들을 모아 금광을 개발하고 사금을 채취한다. ▷북한 군의 부패상◁ 북한 군의 식량배급 사정은 사회에 비해 괜찮은 편이다.그러나 일반 주민들이 어렵고 또 사단장·경리사관·부소대장 등 지휘관들이 층층으로 떼먹다보니 부족할 수 밖에 없다.군인들은 누구나 제대와 함께 2만원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빈털털이로 나가봐야 직업도 마땅치 않고 제대후 장가라도 가려면 군대내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 재대하려는 것이다.3원50전,5원,7원 정도의 하전사(우리의 하사관 이하) 월급으로 「제대준비」을 제대로 하려면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다.하전사들은 17세에 입대해 27살에 제대한다.장교들은 장교들대로 자식들 옷을 해 입히고 남부럽지 않게 살려고 도둑질을 한다.쌀은 제대로 준다.그러나 부식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참모부 군관들에게는 하루 700g,하전사들에게는 800g을 준다.한끼에 250g으로 밥을 하면 다 먹지 못할 만큼 많다.그런데 도처에 날치기 도둑놈들이 판을 치니,제 양대로 배급될리 없다.지난 2년 동안 조종사들은 그래도 1년치 식량을 제 규정대로 받았다. ○군서도 외화벌이 독려 북한주민들은 군대를 「공산군」이라고 부른다.공산군이라는 게 남한에서 빨갱이라는 뜻으로 말했는데 이제는 북한주민들이 그런 의미로 쓴다.군인들이 물을 마시자고 민간인 집을 찾아가면 집안에 들여놓지도 않는다.물 먹자고 민간인 집에 쑥 들어와서는 뭐 있는가 쓱 한번 보고,눈들이 어찌나 빠른지,집주인이 자기를 당해내지 못하겠다 싶으면 아무 물건이나 갖고 도망친다.자칫 붙잡으려 하면 집주인이 칼에 찔려 죽든,돌에 맞아죽든 죽기 십상이다.이러한 살인죄로 총살 당하는 군인이 많다. 군인들의 도둑질은 식량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필요할 경우 공군사령부 참모부는 각 구분대(연대 이하 대대 중대 소대등의 개념) 단위로 시멘트·철근·나무 등의 필요량을 할당한다.이 때문에 일선 부대들에선 「군대가 젖짜는 암소냐」고 불평한다.지휘관들은 할 수 없이 밑의 하전사들에게 『무조건 만들어 오라』고 시키는데 하전사들은 『맨주먹 가지고 어디가서 사오란 말이냐』고 불평하면서 낮에는 공장기업소나 살림집들을 정찰하고 밤에는 옮겨온다.도둑질이라고 안하고 「옮겨온다」고 한다. ○금 캐는데 병사 동원 과거에는 하전사들도 잘 먹어서 그런 현상이 없었는데 기름기없이 소금에 밥만 먹다보니 식량약탈과 도둑질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쌀은 주는데 기름같은 것은 적게 나오고 고추장은 생각도 못한다. 군인들의 행패는 끝이 없다.얼마 전 한달에 한번씩 나오는 총정치국 통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을 소개하면서 민간인들에게 군인들이 차를 세우라면 무조건 태워주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고속도로에서 군인들이 두패로 나뉘어 차를 세웠다.50m앞에 두,세명이 손을 들고 50m 뒤에서 30명정도가 돌멩이를 들고 뒷짐을 지고 있었다.그런데 운전수가 그대로 도망치니까 돌을 들고 있던 30명이 화물트럭 앞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차가 서자 운전수의 머리를 시동기로 때려 죽인 다음 자기들끼리 목적지까지 간 뒤 차를 벼랑에서 굴려버렸다」.이 군인들은 「노동군대」에 갔다.가면 1년간 죄수생활이다.몽둥이 주먹 노동으로 단련시킨다.말 안들으면 법보다 주먹이 먼저다. ○제대시 2만원 목표 ▷나진·선봉 개발◁ 북한은 나진·선봉만 개발하게 되면 북한에서 1개 도가 1년동안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수 있는 돈이 나온다고 말한다.1년에 40억달러에 이르는 돈이 저절로 들어온다고 선전한다. 그런데 선봉군당 조직비서(군수급)를 지낸 가까운 친척에 따르면 북한은 나진·선봉을 개발하면서 성분이 나쁜 불순분자들은 모두 추방시키고 이곳에는 주로 보위부 성원들이나 계급적 토대가 좋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있다.당 일꾼이라도 경제분야에 밝은 사람만 배치한다.나진·선봉은 아주 특별한 곳이어서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그곳에 들어가면 잘산다고 하니깐 모든 주민들은 누구나 가고싶어 한다.그러나 보위부의 검열이 있어야 가능하지,희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예를 들면 내가 그곳 주민의 아들이라면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친척들의 방문도 허용되지 않는다.평양시보다도 대우를 잘해줄 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 맞추기 위해 매달 봉급도 달러로 준다고 한다.즉 외국사람에게 북한이 아주 잘 사는 걸로 보여야 하니까 먹고 입고 쓰는데 「부러움 없도록」 생활수준을 높여준다는 말이다. ○성분 좋은 사람들 이주 때문에 몇년전부터 평양에 사는 사람들도 나진·선봉에 이사가기 위해 「작전」을 편다는 말이 나돌았다.군대에 복무중인 사람들은 미리 제대해 나진·선봉지역에 있는 탄광에라도 가려고 난리다.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해도 안한다.그곳이 연고인 사람들은 모두 귀가해서 노동자라도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만 10년동안 군사복무했으니 대학도 필요 없다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뇌물작전을 쓰는 것이다. 아무튼 선봉지구를 국제적으로 지원해줄 경우 북한체제는 승승장구할 것이다.외국의 지원이 없으면 아마 북한주민들 자체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자꾸 식량등을 지원해주니 문제다.
  • 아라파트가 변해야 한다(해외사설)

    팔레스타인인들이 2년전 제한적인 자치를 시작했을 때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은 자치정부의 수반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그가 이끄는 자치정부는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서의 폭탄테러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국경을 봉쇄함으로써 궁핍함이 더욱 심화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뭔가를 내놓아야만 할 입장이었다.그는 테러이후 이스라엘과 미국으로부터 테러조직과 싸우도록 압력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30년 점령이 끝나면서 자치가 기본적 자유를 가져다 주기를 희망했다.아라파트는 그들을 실망시켰다.수백명이 불과 몇달동안에 아무런 혐의없이 투옥됐다.2년만에 7명이 구류된 상태에서 죽었다.경찰이 심문하는동안 고문을 했기 때문이었다.아라파트에 비판적인 책들은 금지됐고 비판적인 언론인들은 검열받고 구타당했으며 투옥됐다.국가안보법정은 한밤중에 비밀리에 열려 피고들은 재판이 열리고 나서야 자신의 혐의에 관해 들었다.자치당국은 테러와 싸우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을 인용하면서권력남용을 옹호하지만 그것이 시민의 자유와 법의 통치를 위배해도 좋은 것으로 해석돼서는 안된다.아라파트는 테러를 막는다는 구실로 반정부인사를 억압하고 있다.폭탄테러후 8백명이나 되는 사람이 여전히 아무 혐의없이 강옥에 있다.이같이 혐의가 없는 사람들은 마땅히 석방돼야만 한다. 아라파트의 행동은 엘 고어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관리들이 혹시 중동평화과정이 잘못될까봐 비판없이 칭찬 일변도로 나간데도 원인이 있다.팔레스타인인들은 요즘 그들이 이스라엘에 그래왔듯이 아라파트에 대해 총파업 등으로 항의하고 있다.아라파트의 탄압은 극단주의를 낳아 오히려 평화과정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그에 대한 침묵이 더 해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아라파트는 그가 취하고 있는 정책의 파괴성을 인식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에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한다.
  • 오규원씨 산문집 「가슴이 붉은 딱새」

    ◎침묵속에 엿듣는 ‘미물들의 소리’/외딴산골 「무릉」,그곳의 사계는 ‘순수…’/삶의 추한면 지우려는 ‘시인의 자화상’ 오규원씨의 신작 산문집 「가슴이 붉은 딱새」(문학동네간)는 침묵속에서 엿들은 미물들의 소리에 대한 시인의 기록이다.산문집의 공간적 배경은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이라는 지명의 외딴 산골.때문에 「오규원 무릉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지병인 폐쇄성폐질환을 안고 3년남짓 요양하면서 오씨는 이 곳의 사계를 마치 지워지지 않을 필름을 뜨듯,그 실핏줄과 흔적까지 섬세한 펜으로 새겨놓고 있다.여기에 오씨가 직접 찍은 무릉의 원색사진들까지 곁들여졌다. 시인의 소묘를 통해 건너다보는 무릉의 풍경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청신한 기운으로 가득하다.잎담배와 옥수수따위가 자라는 들판의 강변엔 개망초와 들쑥이 손아귀 가득 흐드러지고 도라지사이에 고개를 내민 달맞이꽃이 다른 별의 향기를 전해주며 긴 꼬리 노랑할미새가 가슴이 붉은 딱새와 어울린다. 하지만 오씨는 이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그보다 삼라만상의 속으로 걸어들어가 언어가 오염시키기전 사물 본래의 순수한 소리를 끌어내려 한다.모든 것이 잠든 한밤중에 미물들의 소리가 투명해지듯 인간의 마을에서 떨어져 언어가 침묵하는 이 곳에서 시인은 어느 때보다 자연의 속삭임과 그 입김에 가까이 다가간다.풍경속으로 파고든 시인은 「풍경의 의식」이 되어 인간적인 사유가 지워진 자리를 풍경의 언어로 채운다.예리하고도 섬세한 무늬로 일렁이는 그 언어들을 통해 시인은 삶 그 자체를 더욱 두텁게 살아내려는 슬프도록 투명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화가 장욱진,세잔 등에 대한 아름답고 사적인 작가론도 실려 산문집의 향기를 더한다. 산위로 쌓이는 눈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은 줄곧 투명하고 정확한 시를 통해 삶의 추한 면모를 지우려해온 시인의 자화상처럼 읽힌다.
  • “대학생인가… 게릴라인가…”/한총련 극렬저항 “전쟁터 방불”

    ◎도심 곳곳 화염병 “아수라장”/전경 10여명에 무차별 폭행 한국 대학 총학생회연합(회장 정명기)이 주도한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마지막 날인 15일에도 연세대 안팎은 하루종일 최루가스가 자욱하고 화염병·돌이 난무했다. 캠퍼스 곳곳에는 최루탄과 화염병, 불에 탄 바리케이드의 잔해, 돌멩이, 찢어진 방석복과 헬멧·방독면 등이 널려있어 「무법천지」를 실감케 했다. 상오에 문을 열었던 학교 주변 일부 상가들은 하오에도 시위가 계속되자 모두 철시했다. 신촌 로터리 등 주변 도로는 14일에 이어 계속 통제돼 휴일인데도 교통이 큰 혼잡을 빚었다. 한밤중까지 학교안에 남아있던 학생 4천2백여명 가운데 2천여명은 이과대 건물 3·4·5층에서 농성을 벌였다. 3백여명 학생은 옥상에서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 학생은 『건물 지하 1층에 실험용 원자로가 있고 3층에는 각종 화공약품과 프로판가스관이 있어 경찰이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이과대 건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과대에 방사성 동위원소와위험물질이 많아 진입하지 않았다. 학생 1천여명은 하오 5시40분쯤 경찰이 밀려나가자 교내 백양로에 농구대를 옮겨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산발적인 시위를 하다 하오 8시쯤 흩어졌다. 하오 9시40분쯤 연대 정문에서 2백여m 떨어진 성산회관 인근에서 일부 학생들이 재집결, 기습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조명탄과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켰다. 학생들은 밤이 깊어지면서 각 대학별로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반정부구호를 제창했다. 경찰은 상오 10시10분부터 헬기로 연세대 상공을 선회하며 학생들의 자진해산을 권고하는 방송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행사를 강행하려 하자 상오 10시40분쯤 헬기 12대로 최루액을 뿌려 전열을 흐트러뜨린 뒤 전경 52개 중대 6천여명을 투입, 다연발탄과 최루탄을 쏘며 정문과 북문·동문등을 통해 동시에 들어갔다. 일부 경찰관들은 학생들에게 에워싸여 쇠파이프 등에 맞아 길에 쓰러져 무장해제를 당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괴로워하는 경찰관도 간혹 목격됐다. 경찰이나 학생 양쪽 모두 부상자가 잇따랐다. 하오 5시40분쯤 경찰이 연세대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대열 후미의 전경대원 10여명은 학생들에게 붙잡혀 발에 밟히는 등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한 경찰 간부는 굳은 얼굴로 『게릴라전이야. 전쟁과 다름없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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