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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8·끝

    ◎“철군 반대” 인터뷰로 워싱턴 “발칵”/이틀뒤 배시사령관,“본국 소환” 통보/카터,경위 설명 불구 끝내 해직 명령/“한국내 전술핵 제거땐 위험” 하원 군사소위 증언서 강조 배시사령관의 민간인 특별고문인 짐 하우스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해(77년) 5월18일 수요일 이었다.그는 1946년이래 한미 양국군의 고문역으로 서울에서 근무해온 베테랑 한국통이었다.그가 주한미군 철군관계를 취재하러온 워싱턴포스트 도쿄특파원 존 사르와 함께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르는 도쿄의 한국 망명 좌익인사들과 친하며 스나이더대사가 그에게는 어떠한 브리핑도 하지말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들은바 있어 그를 만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그러나 하우스만은 유엔사령부가 이미 존 번부사령관의 인터뷰를 허가했으며 나에게는 2사단의 역할에 관한 간단한 질문 몇가지만을 하게될 것이라며 만날 것을 간청했다. ○한국군 장성 견해 어필 결국 「20분간만」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그는 좀 야위었지만 저돌적으로 보이는 30대의 젊은이였다.몇가지 질문을 받는동안 그가 군사문제에는 별지식이 없음을 알게 됐다.마지막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찬반견해를 물었다.『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일성이 전쟁도발의 충동을 받게될 것이라는 한국군 장성들의 견해를 순수한 군사적 견지에서 동의한다』면서『그러나 일단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수행해나갈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다음날인 19일 밤10시쯤 배시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조지 브라운합참의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실린 존 사르의 기사 때문에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르에게 크게 문제될만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또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얘기했기 때문에 문제된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커터 게획 도전” 보도 자정이 막 지나서 배시사령관으로부터 또한차례 전화가 왔다.가능한한 빠른 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경위설명을 하라는 본국 정부의 소환령을 전했다.한국전쟁때 맥아더사령관이 트루만대통령에 의해 소환된 이래 대통령이 해외주둔 장성을 소환한 일은 두번째였다. 문제의 워싱턴포스트지 복사본을 구한 것은 다음날 새벽 6시였다.「위험한 결정­주한미군장성들,카터 철군계획 신랄한 비판」이라는 제목의 1면박스로 내가 카터대통령의 미군철군계획을 「실책」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돼 있었다.또 철군이 전쟁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한국군장성들의 견해가 내 견해로 나타나 있었으며 『많은 군관계자들이 카터의 철군 구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용도 있었다.더욱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대통령 발표 정책에 대해 일선 장군들이 공공연히 이견을 나타내는 이례적인 현상들이 정책수행 직전에 나타나고 있다』는 인용구였다. 다음날 도쿄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우연히 가족들과 함께 탄 짐 하우스만을 만났다.딸인듯한 젊은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던 그가 내옆에 와서 앉자 그 여자도 함께와 뒷자리에 앉았다.우리는 사르의 보도내용들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얼마후 그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을때 그녀가 옆에 앉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몇가지 질문에 답하다보니 그녀는 하우스만의 딸이 아니었다.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그녀는 어깨에서 테이프 리코더가 든 백을 내려놓으며 『멜린다 닉스,CBS기자에요』라고 답했다.나중에 온 하우스만은 그녀가 사르의 부인이라고 보충설명을 해줬다. 그녀는 「특종」을 하기 위해 도쿄에서 내렸고 나는 극성스러운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피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 안에서는 내내 브라운 합참의장에게 제출할 경위서를 작성했다.워싱턴에 도착해서 안 일이지만 이 철군계획은 이미 지난 5월5일께 최종결정됐으며 유엔사에는 이에앞서 4월말 버나드 로저스육참총장이 방한했을때 이미 통보한 것으로 돼있었다. 해럴드 브라운국방장관과 카터대통령을 만난 것은 5월21일 대통령집무실에서 였다.카터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들어왔다.『싱글로브장군,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익숙해 있소.8년동안의 해군생활에서도 그랬고 조지아주지사를 맡으면서도 그랬소』 대통령은 또 철군에 대해 합참의장과 국방장관도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합참은 철군의 3개방안을 분석하라는 지시만 받았지 철군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지시받은 것은 아니었다.합참은 결국 가장 지연된 방안을 건의하면서 그것이 미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브라운장관이 그 대목을 삭제했었다.나는 장관을 쳐다봤다.그는 창밖의 로즈 가든을 내다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또 『장군의 직속상관인 배시대장의 우려도 결정전에 충분히 참고를 했소』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배시와 상의하겠다고한 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이어서 그는 『당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않아 국방장관에게 해직을 명령했소』라고 말했다. 나는 존 사르기자와 인터뷰한 경위를 설명했다.철군계획이 확정된 사실을 모르고 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으나 일단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그를 수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한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해직 결정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단호히 거절했다.누군가가 대통령이 나를 군법회의에 회부시키든가 아니면 강등시키려했다고 한말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싱글로브소장 참모장직 해임」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장관의 말을 인용,1면 톱으로 보도했다. 25일에는 하원군사소위원회에서 증언이 있었다.방청석은 초만원이었다.나는 질의에 앞선 진술에서 ▲결코 민간의 군통치원칙을 무시하지 않았다 ▲헌법을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신문을 이용 군통수권자에게 도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점등을 강조했다.여러가지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 지상군과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이다.만일 우리가 이들 지상의 수단들을 제거해버린다면 우리의 억지력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은 오전 오후 7시간동안 진행됐고 마지막에 스트래튼위원장은 북한군의 군사적 우위와 명백한 침략의도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카터대통령의 고집스런 주한미군철수결정은 의회의 반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미 지원사령부로영전 다음날 워싱턴포스트는 역시 1면 머리기사로 「카터의 대한정책 정면 비난」이라고 스트래튼위원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백악관은 즉시 반격에 나서 브라운국방은 내셔날 프레스클럽에서 로저스육참총장이 이미 나에게 결정사실을 통보했었으며 주한미군 지휘관들도 철군에 동의했다는등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러나 나에게는 주한미군정책에 관하여 일체 함구령이 떨어져 있었다. 27일 로저스총장이 새보직을 통보했다.조지아주 맥퍼슨에 있는 미육군지원사령부 참모장이었다.참모부인원만도 2천여명에 달하는 미육군의 12개사령부중 가장 큰부대로의 영전이었다. 결국 카터대통령은 철군정책과 관련 대외적인 대통령의 권위를 확인했고 나의 영전조치로 군내부의 불만을 무마한 셈이었다. 다음해 4월27일 나는 조지아공대 ROTC생도들을 대상으로한 연설에서 카터대통령의 중성자탄 생산연기및 파나마운하정책에 대해 내견해를 밝혔다.소련의 상응조치를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중성자탄 생산의 일방중단은 군사적으로 어리석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파나마운하의 관할권 이양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같은 견해가 또 AP통신을 타고 보도됐다. 다음날 나는 국방성으로 소환됐을때 알렉산더 육군장관과 로저스 육참총장에게 사의를 밝혔다.35년간의 군생활이 이렇게 마감됐다.마침내 위험한 임무는 끝난 것이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포플러나무 잘라라”… 폴 버년작전 발동/21일 새벽 특공대 60명 돌진… 전폭기 엄호/“만행응징” 한밤 펜타곤서 작전개시 재가/김일성 “유감”표명… 9월8일 경계태세 「데프콘4」로 완화 8·18만행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첫째는 군사적 행동 없이 정전위를 통한 강력한 항의,두번째는 즉각적인 군사보복,세번째는 상징적 경고행위등이 스틸웰사령관에게 보고되었다. 스틸웰사령관은 지하벙커의 월 룸으로 곧바로 와서 참모회의를 열어 작성중인 OPLAN(작전계획)을 점검했다.우선 정전위 차석대표인 마크 푸르덴 해군소장을 불러 다음날 소집키로한 정전위원회에서 자신이 북한의 김일성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토록 지시했다.한편 즉각적 군사보복은 3차대전으로의 확대위험이 있다는 판단하에 상징적 경고행위를 채택키로 했다.그 작전은 유엔사령부의 힘을 명백히 보여주는 동시에 경고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했으므로 장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로 한정키로 했다. ○「상징적 경고」 채택 작전의 주요내용은 문제의 포플라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결국 그 나무가 미국 권위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지난 8월초 유엔군이 처음 그 나무를 베려했을때 북한군의 공갈협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군에게 약점을 보였다는 판단에서였다.따라서 증강된 무력시위와 함께 공동경비구역 안에 들어가 그 나무를 당당하게 베어버림으로써 북한측에 심리적 위축을 주자는 것이었다. 다음날인 19일 아침 본토의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미군의 방어태세를 데프콘­3로 격상시키도록 지시가 하달됐다.이는 1953년 휴전협정조인 이래 처음 내려진 조치였다.30분후 한국 국방부장관도 한국군에 비상전투태세를 명령했다.잠시후부터 SR­71초음속정찰기들이 고공으로 발진,DMZ 상공을 가로지르며 북한군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했다.또 나이키­허큘리스 장거리미사일도 적의 레이다를 향해 발사준비를 완료했다.RF­4D 정찰기와 와일드 워젤 방공억제기가 일본과 필리핀기지에서 이날 아침 발진,한반도의 오산 군산 대구기지에 도착했다.또 미아이다호의 마운틴 홈 공군기지에서는 핵을 장착한 F­111전략폭격기가 한반도를 향해 출발했다.이로써 북한과의 신경전이 개시됐다. 지상군은 미보병2사단과 한미1군단이 DMZ를 따라 전진배치를 끝냈으며 여러 구경의 재래식 포와 전술핵 미사일등이 발사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수많은 트럭이 병력을 싣고 전방으로 투입됐으며 수송헬기가 계속 전선으로 보급물자를 날랐다.이같은 움직임은 과거어느때도 볼 수없는 규모로 북한측에게 불안한 징조로 받아들여졌음이 틀림없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8월19일 밤까지 우리는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전시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전의 이름은 폴 버년(PAULBUNYAN)으로 명명됐다.작전의 목적은 공동경비구역은 물론 DMZ지역 어디서나 미군지휘하에 있는 유엔군이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 반드시 행동으로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작전내용은 포플라나무를 자르고 또 지난 65년부터 북한측이 공동경비구역내 도로상에 불법으로 설치해 놓은 2개의 차량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작전개시일은 8월21일 토요일 상오7시 정각이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군과 조우하지 않고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철수하는 일이었다. ○남침땐 핵 사용 공동경비구역내에서의 실제작업은 빅토르 비에라중령이 이끄는 한미합동으로 편성된 2개소대 60명의 특공대가 맡기로 했다. 20일 새벽 펜타곤으로 보내진 이 작전에 대한 최종 재가는 작전개시를 7시간여 남겨놓은 그날밤 23시45분에 내려졌다. 다음날 새벽까지 나는 이번 작전에 동원된 모든 예하부대 지휘관들로부터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출발선에 대기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결전의 시간을 앞두고 나는 월 룸 맨끝에 있는 빈방으로 가서 기도를 올렸다.이번 작전의 전쟁발생 가능성은 반반이었다.만일 전쟁으로 비화된다면 불과 한시간도 못돼 수십만명이 피로 물든 산과 들에서 싸우다 죽어야할 것이었다.북한군의 살인공격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부를 것이고 이 대응이 또 북한의 침공으로 이어진다면 대량살상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었다.사실 우리는 북한군이 서울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가해온다면 2차대전 이래 최초로 핵무기 사용을 요청할수 밖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상오6시48분.특공대병력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키티호크기지를 떠나 공동경비구역으로 출발했다.앞에는 미군 소령이 칸보이했다.공동경비구역의 남쪽 통로인 제2초소를 통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소령은 인접한 중립국감시위원회 막사로 갔다.그곳에는 스위스대표 클라우드 무브덴소장과 스웨덴대표 라게 베른스테드소장이 있었다.소령은 그들에게 나의 인사장을 내밀고 방금 시작될 우리의 작전을 설명하고 북측의 폴란드와 체코대표단에도 통보해주도록 요청했다.그러자 장군들은 이 계획을 사전에 자신들에게 통보하지 않은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공격은 공동경비구역 안으로 특공대트럭이 요란하게 돌진하면서 시작됐다. ○북 경비병들 당황 동시에 20대의 병력수송 헬기가 12대의 AH­1G 코브라건십의 에스콧을 받으며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엄호병력을 풀었다. 동시에 대전차 F­4팬텀기와 F­111 중거리 전략폭격기들이 발진했으며 서해쪽으로는 괌기지에서 B­52 수개편대가,또 동해상으로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서 40여대의 전폭기가 발진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특공대중 1개소대는 포플라나무를 둘러싸고 다른 1개소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쪽으로 가 북한군의 진입로를 차단했다. 북한경비병들이 놀라 자기네 진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우리 작업단은 신속하게 나무밑둥을 베어나갔고 다른 작업팀은 적들이 설치해 놓은 차량장애물 쪽으로가 그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었다.이때 수십명의 북한경비병들이 달려왔으나 몽둥이와 곡괭이등으로 무장한 건장한 60여명의 경비병이 작업단을 호위하고 있었으며 중무장된 한국군 수색대가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포진돼 있는등 엄청난 규모에 놀라는듯 했다. 10분쯤후 우리 작업단이 잘라낸 밑둥을 작게 잘라 트럭에 싣고 있을때 버스 한대와 트럭 2대 그리고 덜거덕거리는 동독제 고물 세단 한대로 편성된 북한경비대가 경비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 멈추더니 AK­47소총으로 무장한 1백50명가량의 병사들이 차에서 내려 제방주위로 포진했다.그러나 그들은 계속 지켜보기만 할뿐 이렇다할 행동은취하지 않았다. 우리 작업단이 경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철수를 시작한 것은 상오7시45분부터 였다.적의 기습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철수가 진행됐으며 모두 키티호크기지로 귀환한 것은 8시30분 이었다.유엔측 경비병들은 정위치로 돌아갔고 북한경비병들은 포플라나무로 와서 잘린 부분을 살펴보고 철거된 장애물들을 돌아봤다. 작전은 무사히 끝났으나 상오10시15분쯤 공동경비구역남쪽을 날며 작전의 마무리를 지휘하던 브래디장군의 헬기가 북한군의 자동화기 사격을 받았다. ○폭력책임 첫 시인 그러나 여섯대의 코브라헬기가 사격자세를 취하며 선회하자 그들의 사격은 멎었다.정오무렵까지 더이상의 총성이 들리지 않았으며 북한측이 정전위원회를 즉각 열자고 제의해 왔다.이 회의에서 북한군측 대표는 그들의 총사령관인 김일성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그는 8·18사건을 「유감」으로 표시했으며 남북 양측이 이같은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주장했다.이는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23년만에 북한이 부분적일 망정 DMZ내에서 폭력의 책임을 시인한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수일 동안 위성사진에 따르면 북한이 계속 방어적 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그들이 서서히 경계를 완화시키는 동안 미군은 그대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9월8일 북한이 우리들의 요구를 사실상 모두 수용했을때 합동참모본부는 경계태세를 데프콘­3에서 데프콘­4로 완화시켰으며 미드웨이호는 동해를 떠났다. 폴 버년작전은 북한의 오만하고 필사적인 공산지도자들을 힘으로 다스린 예가됐다.김일성이 마침내 물러서게된 유일한 이유는 그가 직면한 위험상태를 우리가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미군은 동남아시아에서의 퇴각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한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통일주도”… 우리외교 대전환

    ◎유엔가입 이후 방향/이 외무가 밝힌 전망/대중 수교등 탄력성 붙이는 계기/헌장정신 입각,남북 협력을 모색 『유엔가입이 우리 외교에 새로운 탄력을 불어 넣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43년 한국외교의 최대 과제로 남아 있던 유엔가입문제를 해결한 이상옥외무장관은 유엔안보이가 남북한 유엔가입 권고결의안을 채택한 다음날인 9일 하오 외무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대유엔외교방향·유엔을 통한 대북외교 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부임이후 연내유엔가입·대미외교강화 등 6대외교목표를 세우고 매진해온 이장관은 8개월만에 결실을 거두었다. 이장관은 이날 『우리의 유엔가입 신청을 안보리 이사국 전원의 찬성으로 총회에 권고하기로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며 『특히 남북한 유엔가입신청이 안보리에서 일괄 처리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유엔가입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방향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유엔외교」는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요. ▲현 단계에서 외무부는 유엔가입이후의 외교 방향을 2가지로 모으고 있습니다.첫째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신규 회원국이 되는 것을 계기로 유엔헌장 정신과 제반규정을 준수하면서 유엔이 추구하는 세계의 평화및 안정 그리고 인류공동번영을 위해 남북이 함께 기여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통해 평화적 통일이 촉진될 수 있도록 대유엔외교를 전개,남북이 진지한 대화를 갖고 실질적인 교류·협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그러나 유엔에 가입하더라도 우리외교의 근간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유엔내에서 남북간 대화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유엔주재 대표부를 통한 남북간 접촉을 감행할 복안은 없습니까. ▲지난5월말 북한이 유엔가입 의사를 밝힌 직후부터 우리는 유엔주재 대표부 외교관간 접촉을 북측에 제의했지만 그동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번 안보리의 가입권고 절차와 관련,남북대표부간 부대사및 참사관급 접촉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유엔가입후 쌍방 대사및 대표부 직원간자연스럽게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미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양국간 고위정책협의회에서 양국은 주로 무엇을 논의했으며 한반도 핵문제도 협의대상이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한미양국은 안보문제를 비롯한 주요정책문제를 그동안 수시로 협의해 왔습니다.이번 하와이 정책협의회도 양국간 정례적 협의의 일환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현재로서는 한미간 안보상황 등을 전반적으로 폭넓게 논의했다는 것 외에는 밝히기 어렵습니다. 진행중에 있는 외교교섭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게 외교상식이듯이 우방국간 주요 정책협의 내용도 진행중에 있을 경우 미리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적절한 시기에 그 내용은 공개될 것입니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한·중수교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한중수교가 영사처등 중간단계를 거칠 것인지 아니면 곧바로 수교로 이어질 것인지요. ▲한중수교가 북방외교의 주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양국수교는 꾸준히노력해야할 사항입니다.따라서 수교시한을 정해 놓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양국 국교정상화가 가능한 빨리 이뤄지는 것이 양국 이익에도 부합되고 동북아 평화·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한반도 핵정책 변화/한·미 현안 조율 안팎/북 사찰전제,쌍방협의로 구체화/“미군핵 있건 없건 「우산효과」 동일”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한미정부가 한반도핵문제를 재검토하고 있는 것은 걸프전이후 미국주도의 국제정치질서형성,북한의 핵개발 완전포기유도,남한내 미전술핵무기배치의 의미축소,남북한 유엔가입및 동북아의 새 질서태동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핵문제는 남한핵과 북한의 핵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남한핵문제는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상전술핵무기의 철수를 의미하며 북한의 핵문제는 녕변등 핵시설에 대한 국제핵사찰과 핵재처리시설의 폐기등 핵개발기도의 완전포기를 뜻한다고 할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은 미국의 입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그것은 한국내의 핵존재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NCND정책기조속에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는 한반도주변 핵보유국인 미·소·중국간에 핵전략협상을 통해 논의될 성질의 것이고 동시에 이들 주변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만의 비핵지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달말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있은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에서도 나타났듯이 걸프전이후 미국은 군사면에서 대소우위를 사실상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굳이 남한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할 정도의 고밀도 핵전략이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된 것이 핵문제변화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뿐만아니라 남한내에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아니면 육상에서 철수하는 대신 해상이나 오키나와기지를 중심으로한 미공군에 배치하더라도 미국의 한국방위에 따른 「핵우산정책」의 효과는 마찬가지라는 현실적인 전략평가도 배경의 하나가 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핵개발의사를 완전히 포기토록 하는 대북카드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미양국은 지난달 노태우­부시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저지를 위해 기본입장을 밝혔다. 즉 북한의 핵개발이 지역변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고 따라서 북은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물론 사찰에 응해야 하며 그같은 서명·사찰은 무조건적(주한미군의 핵과 불연계)이어야 한다.한미 양국은 나아가 이를 위한 「외교적 공동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특히 노­부시회담에서는 대북 핵협상은 한국이 주도한다는 점을 분명히 다짐했다. 지난 6,7일 미하와이에서 열린 한미고위정책협의회의 중점논의대상의 하나도 바로 「한국주도의 대북 핵협상」에 따른 사전조율작업이었다. 미국무부는 9일 이번 회의와 관련,『북한의 핵개발문제가 심도있게 다뤄졌으며 한미양국은 북한의 핵안전협정서명이 핵확산금지조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라는 견해에 인식을 함께 하면서 북한이 다른 문제와 결코 연계시킬 수 없는 이같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계속 경주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미국무부의 발표는 기존의 대북핵개발저지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호놀룰루회의가 미국의 한반도 핵정책에 대한 재평가기류속에 오는 27일의 평양 남북한총리회담을 앞두고 열렸고 또 오는 9월24일 노대통령이 유엔총회연설을 하게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대북핵협상과 관련한 「중요한 내부조정」을 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먼저 국제법상의 의무를 이행,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사찰을 받은후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한반도의 핵문제를 협의한다는 기본수순을 이번 회의에서 설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북한이 한반도 핵문제를 협의한다고 할때 우리의 대북협상카드는 말할 것도 없이 남한내의 미군 핵철수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 카드의 사용수순은 어디까지나 「선북한핵개발포기 후미군핵철수」가 될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핵사찰과 주한미군핵이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북한이 핵재처리시설폐기를 포함한 핵개발 능력 및 의사를 완전히 포기할 경우 주한미군의 핵도 철수될 것임을 북측에 인식시키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안전협정서명 및 핵사찰 수락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핵개발의사의 완전포기를 유도하고 있는 것은 핵무기제조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핵재처리시설의 폐기는 「서명」이나 「사찰」수락만으로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간의 핵문제협상도 결국 남북한 군축 또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병행해 이뤄질수 있을 것이다. 「선북한핵포기 후남한전술핵철수」와 관련,북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주한미군핵철수」를 알리느냐는 문제는 좀더 시간을 두고 논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적절한 시점에 「남한내에 상시 배치된 핵무기가 없음」을 공식선언하는 방안이 집중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핵문제에 대한 정책변화의 핵심은 핵배치여부와 관계없이 핵전략상 「우산효과」에 별영향이 없는 주한미군의 전술핵 카드를 최대로 활용하여 북한의 핵개발의사를 완전히 포기시키자는 것이라고 할수있다.
  • 핵협상의 주체도 남북한이다(사설)

    핵문제가 한반도의 긴장완화및 평화정착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북한이 지난달 30일 「한반도 비핵지대화」제의를 내놓아 그 실현성 여부나 제의의 진의 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앞으로 남북한간에 핵확산 방지문제가 남북한 당국자간에 논의 될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이 문제가 남북당사자간 협의의 과제가 될수 있음을 명백히 했다. 정부가 북한의 핵안전협정서명문제 등을 포함한 한반도 핵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수 있다.정부는 그러나 북한이 핵 재처리 시설을 포함해서 모든 핵물질과 핵시설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완벽한 사찰에 응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내세웠다. 북한이 국제적인 핵사찰 수용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국제적 반응을 살피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 비핵지대화 등을 제의하는 등 그들의 저의가 드러나지 않는 상태인 만큼 우리 정부의 이같은 전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우리는 한반도 핵문제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첫째 그동안 한반도 핵문제를 놓고 북한측과 논의를 유보했던 우리측이 남북문제의 기조인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정면대응 하겠다는 정책의지다. 둘째 한반도 핵 논의에 관한한 핵확산방지조약(NPT)회원국으로서 북한이 의무적으로 수락해야할 핵 사찰문제로 논의를 국한하고 주한미군 핵문제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측면이다. 특히 주한미군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측의 전통적인 핵정책,즉 「확인도 부인도 않는 정책(NCND)」이 계속되고 있고 한반도 비핵지대화 논의에 대한 공식적인 반대입장이 천명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미국무부의 솔로몬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차관보는 얼마전 『미국은 북한이 제안한 바 있는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지지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 바 있다.여기에는 주한미군이 한미 방위공약사항이고 그에 따른 전술핵문제는 그것이 한반도에 국한된 사항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의 일환이라는 미측 기본입장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나 핵문제에 있어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을 시도하려는 책략을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최근 북한은 6·25 때의 미군유해 송환 등을 내세워 빈번한 대미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그것이 한반도문제 3자회담이나 미·북한 직접협상을 노린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모두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나 마찬가지로 핵문제는 남북한간의 대화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남북관계를 정상화 하고 군축을 논의하는 것이 북한측의 진정한 의도라면 그 해결점은 주권국가로서의 한국의 권능안에서만 찾아질 것임을 평양측은 인정해야 한다.즉 협상의 주체는 남북한 양 당사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 “남북교류 부진은 북의 선별초청 때문”/10일 본회의(의정중계)

    ◎「남북 유엔협력기금」 설치할 용의는/미군 핵과 북의 핵사찰은 별개문제 ◇김중위의원(민자)=유엔가입이후 북한의 외교전략은 어떤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가.현재 정부가 구상중인 남북한 유엔대표부 협의체 산하에 「남북한유엔협력기금」을 설치,유엔이 결의하는 모든 국제적 부담금을 공동으로 부담토록 할 용의는 없는가.북한의 대일·대미관계개선노력에 우리정부는 어느정도,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밝혀라.남북한간의 민간교류를 강화키 위해 서울대학교와 평량금일성대학간의 자매결연과 대학생의 남북유학교류까지 추진할 의향은.전쟁억지력의 지렛대라 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미 조야에서 대두되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속에서 남북간의 군사력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복안은. ◇유인학의원(신민)=대소경협의 대가는 무엇이며 소련과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한반도의 비핵화지대를 위해 우리나라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사정거리 5백㎞이하의 전술핵의 전면철수를 단행할 의향은 없는가.통일비용의 산출근거는 무엇이며 1∼2년내에 통일돼도 비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대일무역 역조의 시정책과 일본문화의 침투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일제 징용 미불임금을 환불받을 방안은 무엇인가. 중국이 수교를 미루는 이유가 무엇이며 대만과의 외교관계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상회의원(민자)=북한은 이미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를 전제로 핵사찰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밝힌 바 있는데 이는 북한이 70년말부터 계속 주장해온 「한반도비핵지대화」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옳을 것이다.북한은 앞으로 2∼3년내에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에서 철수시키기만 하면 앞으로 핵개발을 완전포기할 것으로 보는가.주한미군의 연차적 감축과 핵무기철수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본노선에 입각한 조치에 불과하다고 보는데 정부의 견해는.지난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양정상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과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는 연계할 수 없는 별개의 사항으로 규정짓고 북은 무조건 핵사찰을 수락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미군의 핵무기철수는 기정사실이 아닌가. ◇정 웅의원(신민)=남북한 유엔가입에 따라 대두되는 유엔사령부 해체를 포함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복안이 있는가.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유엔가입에 대한 절차를 북한측과 긴밀히 협조하여 동시신청,단일안건으로의 처리 등을 타결지어야 한다고 보는데 장관의 견해는.장관은 신민당의 공화국연방제 통일방안의 내용을 검토한 바가 있는가.6공들어서 북한을 방문한 인사는 총3백23명인데 이중 순수한 민간인은 5명밖에 되지 않는다.이렇게 인적교류사업이 부진한 것은 정부의 무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김제태의원(민자)=남북한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정부입장은 무엇인가.근래 문제가 되고 있는 베를린개최 조국통일범민족연합회의 실체는.북한의 대일수교추진현황및 대미접근속도,미국의 태도 및 향후 전망을 말해달라.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중관계의 수교시기 및 수교이후의 전망은.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적정방위비와 이를 위한 확보대책은.소련및 중국의 대북군사원조현황과 우리정부의 대응책은. ◇정원식국무총리=정부는 국가안보·공공질서·남북관계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민간인들의 방북을 보장하기 위해 보다 전향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재야인사들의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북이 이뤄질 경우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체험,통일문제에 올바른 이해를 갖게될 것이다. 쌀·금융시장 개방문제는 지난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다각적으로 강구하고 있으며 구속자들은 지난 87년까지 모두 사면복권돼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고있지 않다.광주시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묘지공원화·위령탑건립및 관련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단체들과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천지무역과 금강산개발국제상사간에 남한의 쌀과 북한의 시멘트·석탄을 직교역하는 작업이 추진됐으나 북한이 시멘트·석탄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더러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며 연기를 요청했다.그렇다고 직교역길이 막혔다고 보진 않으며 그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일부 국내학술기관에서는 우리의 통일비용을 2천∼4천억원정도로 추정,통일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차원에서 검토된 적은 없다.독일도 통일이후 당초 예상보다 통일비용이 2∼3배 더 소요되는등 통일시점에 따라 그 비용규모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북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추정도 어렵다.정부는 앞으로 통일비용규모와 재원조달방안을 신중히 연구하겠다. 남북간 인적교류가 부진한 이유는 북한이 친북 성향의 재야인사나 단체를 선별 초청 했기 때문이다. ◇이상옥외무부장관=북한과의 유엔대표부협의체구성문제는 북한이 보다 현실적 시각에 따라 평화를 지향하도록 하는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지난 5월 정부는 유엔가입안을 동시제출하는 문제를 논의키 위해 유엔주재 남북대표부간 협의를 제안했으나 북측의 긍정적 호응이 없었다.북한이 이미 유엔가입안을 제출했고 우리는 이달말이나 8월초에 가입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과거 동서독의관례 등으로 미뤄볼 때 유엔총회나 안보리에서는 단일결의안으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원폭피해자의 치료·요양이 이뤄지도록 일본 정부와 교섭한 결과 현재 일본측이 40억엔 지원을 약속하는 등 가능한 범위내에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상연내무부장관=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현재 내무부 소관업무 1백66종을 시도에 이관했고 시 도에서는 3백82종을 시 군 구에 이관해 자율성을 확보토록 하고 있다.지방재정의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담배판매세 1조5천억원을 지방에 이관했고 내년에는 지방양여금을 1조원이상으로 확대해 재정자립에 기여토록 하겠다. ◇이종구국방부장관=1990년대 말까지는 국방연구비를 국방비 대비 5%로 확대해 첨단기술장비를 개발토록 하겠다.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NCND정책에 정부도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북한의 핵사찰문제와 스커드미사일 전환배치문제를 연계해 주한미군의 핵정책을 다루는 것은 불합리하며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와 대북군사정책을 연계시킬 수 없다. 일본의 군사력증강문제는 지역내 균형유지,전쟁억제력강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미군의 타지역이전,소련의 정책과 마찰을 빚을 우려도 있다.한일간의 군사적 협력은 제한적인 교류협력에서 탈피해 외교적 측면에서 전향적인 협력으로 강화해 나가겠다.일본의 군사력증강에 대한 목적,군사력사용 용도 등에 유의하면서 대처하겠다.우리의 원자력 발전소는 순수한 민간목적이며 주기적으로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영변발전소는 송전선이 없고 재처리시설을 건설중이며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어 군사목적임이 분명하다.남북간 군비통제 협의는 북의 주장처럼 미군철수 등을 전제로 한다면 지루한 논쟁에 불과하다.군사정보교환·군인사교류·핫라인설치·대규모 군사훈련 상호참관 등 신뢰가 조성된 뒤 성과에 따라 군비통제 협상으로 진전돼 나가야 한다.
  • “한반도내 전술핵 불필요/미 해상·해저 핵으로도 북도발 저지”

    ◎김경원 전 주미대사 【서울 연합】 전경원 전 주미대사는 15일 『한반도내에 미군의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아도 미국의 핵우산하에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사는 이날 상오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한국발전연구원(원장 안무혁)이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냉전 이후의 한국안보­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며」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가운데 『한반도 영토내에서 전술핵무기없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은 해상 또는 해저에 배치돼있는 핵무기의 기술과 정확도가 10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됐기 때문에 영토내에 핵무기를 갖다놓지 않고도 미국의 핵우산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같은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의 방위를 위해 현단계에서 영토내륙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사찰문제와 관련,『북한은 핵보유국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기 때문에 가입국의 의무사항인 핵사찰을 반드시 받아야한다』면서 『따라서 북한의 핵사찰문제와 주한미군의 핵무기보유 여부는 서로 연계될 수 없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 “남북 군축,한반도 안정에 필수적”

    ◎외교안보연 학술회의 주제발표 중계/상호 이해ㆍ신뢰 통한 평화정착이 급선무/주변 4강의 분쟁 억제체제 구축도 긴요 외교안보연구원(원장 임동원)이 주최한 「한반도 군비통제」에 관한 국제학술회의가 11일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됐다. 이번 회의는 미소를 비롯,노르웨이ㆍ스웨덴 등의 군축문제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반도 군축실현에 대한 많은 제안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이중에서도 아르바토프 소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군축실장과 존 루이스 미 스탠퍼드대 교수의 주제발표내용을 요약해 본다. ◇한반도의 화해,동북아 안보체제의 문제점과 전망(알렉세이 아르바토프 소­MEMO 군축실장) 최근 한국과 그 주변환경은 상호 모순되는 두가지 중요한 현상으로특징지울 수 있다. 첫째는 미ㆍ일ㆍ중ㆍ소 등 동북아 4강 간의 전반적인 정치관계의 긍정적 발전추세에도 불구,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고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강대국들간의 군사적 경쟁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한반도 주변정치환경의 전반적인 개선과는 상관없이한반도 내부에서는 실질적이고 잠재적인 정치ㆍ군사적 불안정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동북아의 정치환경은 ▲경제적 측면이 지역정세의 전면으로 부상했고 ▲중소는 국내문제로 인해 외교적 유연성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군사상황은 아직까지 80년대까지의 대결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것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북아의 군사적 충돌은 현재 잠재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나 극동지역에서의 군사대결규모나 강대국의 개입정도는 중유럽의 상황에 버금가는 것이다. 또 한반도의 급격한 불안초래는 4강의 신속한 분쟁개입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핵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같은 문제해결을 위해서 4강간에 동북아 신뢰 및 억제환경(NACRE)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 이 체제수립을 위한 중요현안으로는 소일 양국간 평화협정체결과 한반도문제의 해결 등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 자체내의 상황은 우려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은 전술핵무기를 보유한 미군의 주둔으로 한국이 질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가진데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한국도 북한이 방대한 군사력과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북한의 불예측성과 잠재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역시 대북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의 근본적인 정치사회문제가 미해결된 현재 상황에서 군축협정은 긴장을 완화하고 안전보장수단을 제공해 주는 효화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현재로서는 평화가 통일보다 더 중요하며 이는 군비통제협정을 통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군축을 위한 첫 단계로는 DMZ의 실질적 비무장화를 위한 보장국(미ㆍ중ㆍ소)과 중립국 조사팀의 정기사찰 등을 내용으로 한 신뢰구축조치(CBM)가 선행돼야 하고 두번째 단계에서는 군사훈련규모의 제한과 DMZ에서의 중무기(탱크 대포 헬리콥터)의 철수에 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 협상과정에서는 또 주한미군 전투부대의 철수와 국제적 감시하의 한반도 비핵지대화,북한 발전소 및 화학공장의 공개 등이 포함돼야 한다. ◇한반도 군비통제의 전망(존 루이스 미 스탠퍼드대교수)군비통제는 무기의 감축보다 위험의 감축에 초점을 맞춰 군사적 대결상태를 관리할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원래 핵 억지전략의 일부분으로 출발했다. 군비통제 협정은 군비통제 협상의 타결로 인한 상호주의 개선,군내통제 결정을 실천함으로써 전쟁의 위험 감소,협정체결 당사자간 높은 협정준수 가능성과 분명한 감시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의 전망은 현재의 정치ㆍ군사적 상황하의 새로운 요인들이 과거 40여년간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다음의 3가지 변화를 주의깊게 관찰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우선 동서대결의 급격한 완화를 비롯한 국제체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동서대결상태의 완화로 한국은 소련 및 중국과 보다 긴밀해질 수 있게 됐고 북한은 남한 및 미국과 적응할 필요성을 보다 많이 느끼게 됐다. 북한은 보다 개방적으로 변모했을 뿐 아니라 침략에 대한 반대 및 침략에 대한 집단적 대응이라는 합의가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은 범세계적 추세에 맞춰 전쟁준비에 필요한 정치ㆍ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대치상태를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둘째로 경제성장에 우선 순위를 두는 국제적 추세 등으로 인한 동맹의 쇠퇴이다. 미소 관계개선에 대한 미국민의 인식,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등은 주한미군 유지에 지속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북한의 소련 및 중국과의 동맹관계는 훨씬 더 악화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한이 군사적 갈등의 위험을 제거하고 군비증강의 부담을 경잠시켜줄 군비통제 과정의 이점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선의 정책은 군비통제 전망에 대한 최선의 예측을 하는 것이며 군비통제가 초래할 불안정과 위험,경직된 대결을 지속함으로써 초래될 비용과 불안정 사이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 「한반도 군비통제 방향」 세미나 중계

    ◎“남북한,군축앞서 신뢰구축 먼저” 남북한 군축문제는 오는 9월4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남북고위급 1차 본회담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교안보연구원(원장 임동원)은 31일 연구원 국제회의실에서 「한반도 군비통제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군축세미나를 열어 국내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날 세미나는 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안병준 연세대 교수,하영선 서울대 교수 등의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중 안교수와 하교수의 주제발표를 요약,정리한다. ◎“평양측,절차는 무시 철군만 강조” ◇북한 군축제안의 내용과 문제점(안병준 연세대교수)=북한이 지난 5월31일 발표한 군축제안은 첫째 미군철수를 전제로 남한과는 불가침선언을,미국과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일관된 목적을 추구하고 있고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에서는 단계적이며 신축성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병력감축,미군철수,불가침선언,비핵지대화 및 군사훈련 제한 등 종래의 주장 되풀이와 함께 3자회담 이전에 남북 당사자간의 회담가능성,신뢰구축,단계적 철군 및 휴전선의 비무장화 등 새로운 내용이 포함돼 있다. 셋째,이같은 군축조치에 앞서야 할 정치적 신뢰구축,자료교환과 공개를 포함한 「투명성」,기습공격을 방지하는데 필요한 전진배치의 후퇴 및 공격무기의 제한 등에 대한 항목이 결여돼 있다. 종합적으로 북한측 군축안은 결과로서의 군축을 강조하고 있으며 따라서 과정과 절차 및 순서에 대해서는 애매한 점이 많다. 북한 제안은 또한 종전에 집요하게 요구해온 같은 목적을 그대로 담고 있으나 수단은 다소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국제환경과 남한의 상황이 크게 변한데 대하여 북한도 생존과 안보를 위해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 제안은 특히 미군철수와 팀스피리트훈련 중단과 같은 동일한 목적을 일관성 있게 요구하면서도 단계적 철수와 남북 당국간의 군축협상을 명시,새롭게 신축성 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87년 11월의 제안과 비교해보면 3자회담을 고수하지 않았고 미군 철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이 달라진 면이다. 이같은 새로운 면모에도 불구하고 북한 군축안이 안고 있는 최대문제점은 군축의 목표인 안보와 안정을 도모하는데 선결되어야 할 정치적 신뢰,자료의 투명한 공개와 교환,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증명하기 위한 공격무기의 제한 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계급투쟁 대신에 상호협조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불신 대신 교류를 통해 상호신뢰 하겠다는 태도 변화가 없다는 점과 아직도 북한 당국은 남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통일전선전략을 답습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결국 북한의 군축제안에는 결과로서의 군축을 선전하는 면이 많고 과정으로서 군축을 실시하는 면은 적은 것 같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3∼4년내에 백만대군을 10만으로 줄이자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어느 항목을 우선적으로 취급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진실로 북한이 평화와 신뢰구축에 대해 성실성을 갖고 있는지는 협상을 해봐야 알 수 있다. 따라서 쌍방 당국간에 군축협상이 하루속히 성사되어 북한의 의도와 계획을 탐색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9월과 10월에 개최될 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고위급 회담의 성과 여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호 정통성 인정 뒤 교류 늘려야” ◇한반도의 현실적 군비통제방향(하영선 서울대교수)=남북한은 한반도 군비통제의 걸림돌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60년대 이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노선에 기초,주한미군의 철수를 이루는 속에서 첫째 한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남한의 혁명세력을 부추겨 변혁을 모색하며 둘째 유사시에 군사역량의 기습공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한 실질적인 군축논의는 불가능한 것으로 지적해 왔다. 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군비축소의 핵심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팀스피리트와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한국에 배치되어 있다고 추정되는 미국의 전술핵무기,그리고 주한미군을 중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적으로 남북한 군비통제의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걸림돌을 함께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남북간에 군비통제를 위한 예비회의에서 한반도의 군비통제 및 군비축소의 기본내용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기본내용에는 한국에서 강조하고 있는 정치적 신뢰구축,군사적 신뢰구축,그리고 북한이 강조하고 있는 군비감축과 주한미군 감축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바탕위에서 남북은 군비통제를 위해 정치적 신뢰구축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쌍방정부가 서로 상대방의 정통성을 인정해야 하며 인적ㆍ물적교류를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남북이 불가침선언 또는 협정을 합의하고 군비통제가 본격화 되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미소 등 이해당사국들로부터 보장 받아야 한다. 둘째 남북은 정치적 신뢰구축을 이루어 나가면서 동시에 군사적 신뢰구축을 모색해야 한다.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군사활동은 사전 통보되어야 하고 전년도에 다음해의 계획을 사전 교환하며 사전통보 없는 일정규모 이상의 군사활동은 금지돼야 한다. 또 그러한 군사훈련에는 상호 참관단의 초청을 의무화 하고 사전통보한 군사활동의 준수를 위해 쌍방의 요구시에 현장검증을 의무화 해야 한다. 셋째 기습공격이나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규제조치로서 남북이 이미 제안한 바 있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군사력의 수준과 구성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구조적 군비통제는 남북이 방어적 방어체제를 거쳐 공동안보체제를 모색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또 병력보다는 무기체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주한미군의 감축은 남북 군비감축과 연계하여 실현한다. 결국 장기적으로 북한의 새 정치 주도세력 등장과 주한미군 감축 여건의 성숙 속에서 군축의 현실화 가능성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북한,핵운반 미사일등 보유”/프랑스 국제연 보고서 지적

    ◎한반도 군비경쟁 가속… 「핵전」 가능성/대치상황 해소위해 유럽식 군축 필요 한반도는 남북한간의 군비경쟁으로 세계 분쟁지역 중 핵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곳 가운데 하나이며 한반도에서의 무력대치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대유럽 군축방식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것이라고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가 최근 한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국제문제연구기관인 IFRI는 최근 발간한 「아시아에서의 핵군축」이라는 전략군사문제 보고서에서 한반도 핵상황에 언급,이같이 강조하면서 북한에는 핵운반가능 탄도미사일외에 최근 전술핵의 위력에 맞먹는 소련제 신형 재래식 무기들이 배치된 것으로 보이며 한국내에서도 북한의 우세한 재래전력에 맞서기위해 핵무기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군사전략전문가인 티에리 베르텔로 연구원은 「한반도,한 지역분쟁의 전략적 이해」라는 제목의 한반도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핵무기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보유중인 프로그 5,7및 스쿠드B미사일 등은 유사시 소련으로부터 핵탄두를 제공받아 한국을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를텔로 연구원은 사정거리 70km의 프로그 탄도미사일은 서울은 물론 10개 사단본부와 2개 해군기지등 반경 70km이내의 예민한 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면서 나아가 사정거리 3백km인 스쿠드미사일로는 광주와 남해안지역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또 경우에 따라 유사시 소련으로부터 SS21 미사일이 이동,가세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소련이 북한에 최신예 미그29전폭기 등 신형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인도에 이어 두번째로 북한에 미그29기를 제공한 것은 북한의 맹방으로서의 신뢰도에 대한 소련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또 탄도미사일외에 재래식 무기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련의 대외협력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가스탄과 같은 전술핵에 맞먹는 위력을 갖는 신형 재래식 무기가 북한에 배치됐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폭탄 또는 탄두방식의 가스탄은 소련이 지난84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배치한바 있는데 소련은 최근 탄두형태의 가스탄을 SS21미사일 장착용으로 개발했다. 보고서는 이어 국제핵조약에 따른 철저한 현장검증등 국제적 핵기준이 한반도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당사국들의 결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북한측이 주장하고 있는 3자회담은 고르바초프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한반도의 무력대치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유럽에 대해 행했던 것과 같은 원칙들이 한반도에도 적용될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 구체적 방안으로 ▲전술핵을 비롯한 기타 공격무기를 철수시킴으로써 북한군의 전진배치를 해소하고 ▲경무장및 비무장지대를 설치함으로써 서울지역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편 ▲외군기지를 철폐하되 남한주둔 미군철수를 위해 북한내의 소련전력도 상응하는 철수조치를 취해야 할 것등을 제시했다.
  • 극동전략 구도에 중대변화/주한 미공군기지 축소의 파장/이기택

    ◎해ㆍ공군력 중심 팀스피리트전략 흔들려/북의 군사력 증강ㆍ소 기지화 정책과 모순 미국방장관 체니의 새로운 기지폐쇄정책을 보면서 유럽의 데탕트가 성큼 극동으로도 확산되어오고 있다는 느낌과 충격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나 체니국방의 국방예산 속에는 남한을 포함하는 한반도의 안전보장에 군사 전략상으로나 정치 심리적으로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1970년 이래 미국의 대한군사정책은 군사전략상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지상군의 감축」은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해ㆍ공군」으로 「남한을 지킨다」는 전략 논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으로 주한 미공군기지의 「재조정」이라는 형식으로 남한내에 수십년 동안 미공군이 주둔하던 대구ㆍ광주ㆍ수원기지를 사실상 「폐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공군의 기본구조와 골격은 유지하면서 보조기지나 지원기지들을 정리한다는 구실은 있다고 본다. 기본적인 공군의 화력에는 변화가 없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작년 미의회는 주한 미공군기지에 대한 설비예산 8천5백50만달러를 전면 삭감,80만달러만을 지출 허용함으로써 대폭 삭감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닉슨 독트린 이래 견지해온 남한으로부터의 미철군정책의 대안으로서 「해ㆍ공군으로 지킬 것」이라는 「팀스피리트」의 전략적 발상이 하루아침에 근본적으로 문제되고 있다는 임박성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남북한의 군사균형과 전쟁억지력은 첫째,전술핵을 포함하는 미 지상군과 둘째,남북한간의 공군력의 균형에서 공군의 제어가 그 요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안전과 전쟁억지력의 기본이었다. 이제 미국은 남북한간의 공군력의 균형에까지 감축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를 포함하여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은 기본적으로 공군과 해군의 균형을 갖고서 북한의 「전략적 압도」를 상쇄하여온 것이다. 특히 84년 김일성의 소련방문 이래 소련은 북한의 공군력을 대폭 강화시켜 주었다. 소련의 대북한 공군력의 강화는 미그23과 미그29를 포함하는 5∼6년 동안의 대폭적인 것이었다. 특히 소련은 84년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에 뒤이은 김정일­카피차간의 단독군사협상 이래 공군 장비의 지원과 함께 북한영공에 대한 비행을 허용받았으며 북의 공군기지 북창 황주 등을 마음대로 기착하도록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의 TU16/Badger와 TU95/Bear가 북한의 영공을 비행하면서 북한의 공군력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소련에 의한 북한의 「핵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제 미국이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한으로부터 공군력의 「조정」과 「정리」라는 이름 아래 공군력의 감축을 진행한다면 이는 확실히 미국의 대한군사전략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닉슨독트린 이래의 지상군은 감축하되 한국군이 인적인 상쇄를 하더라도 「해ㆍ공군으로 지킨다」는 한미간의 군사전략의 본질적인 변화를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간 군사관계의 군사적이며 정치적 또는 심리적인 상호협상 형식이 문제된다고 본다. 확실히 이번 주한 미공군의 기지폐쇄라는 문제는 한미간의 「충분한 협의」 후에 나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미간의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우리는 「대비」와 「대안」을 갖고서 한미군사 동맹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70년대말 철군을 전제하면서 한미간의 연합사(CFC)를 창설하였던 것이다. 연합사가 유명무실한 것이 된다. 특히 미소간의 새로운 데탕트라는 위험한 군사게임 속에서 최첨단에 위치한 남한의 미군기지를 조정한다는 것은 남북한의 군사균형을 파괴할 뿐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억지력에 동요를 주는 일이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조정해야 할 군사지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문제 이후 극동문제가 미소간에 제기될 때에도 남북한의 군사문제는 최후적인 군사협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군사적인 조건을 띠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 없는 이상 군사적인 상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은 소련과의 한반도군사협상에서 두가지 기본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로는 동유럽에서의 소련의 재래식 군사력의 우세를 나토가 인정하여 왔다면 극동에서 남북한간의 군사균형에 필수적인 조건인 남한에서의 미군의 주둔을 인정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동유럽의 재래식 소련 군사력과는 달리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인 우세가 아니라 「균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을 소련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84년 김정일­카피차간의 단독군사협상이래 군사 장비의 지원,해ㆍ공군기지의 사용 북한영내에서의 소련의 군사활동,핵기술의 지원 등에서 기인하는 대북한 정책에 눈에 보이는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는 전제라고 본다. 현실적으로 고르바초프의 정책인 외몽고로부터의 소련 기갑사단의 철수,아프가니스탄 철수 등을 감안한다면 소련의 한반도 군사정책은 거의 남한을 깔보고 있으며 또 우리가 깔보이고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한편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에 있어서도 주한미군의 본질적인 기지정책의 변화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970년초 닉슨독트린 당시 주한미군을 철수한다고 할 때에 북한의 허담은 미국의회에 「미지상군의 단계적 철수」 협의를 전제한 대미협상을 호소한 바 있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주한미군의 본질적인 철수는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북한 「안전체계」의 전면적인 재편성이 필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북한은 또하나의 새로운 북경에서의 대미협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체계와 안전체계를 한반도의 군사균형과 평화를 위주로 하는 군사 재편성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역으로 북한은 새로이 형성되는 국제환경에서 기인하는 주한미군의 철수에 대처하기 위해 북한을 보다 군사 요새화하기 시작한지 오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북진을 하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을 미군이라는 한반도의 군사적인 안정요인인 「유엔체제」는 북한의 안정체계에 있어 수십년간의 안전한 「방파제」였다는 것을 김일성 스스로가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체니의 기지폐쇄정책은 현실적인 재조정이나 정리를 위해서는 「시간」과 역시 「예산」이 필요하므로 얼마간의 시간적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시간적인 유예 속에서 미소간의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하리라 보며 동시에 특히 북한에 새로운긴장완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군사정책으로 전환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야 하리라 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84년 이래의 북한의 군사력 강화도 실제에 있어서는 미군 철수에 대비하는 군사정책이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유럽지역등과는 달리 미군의 감축이나 기지의 폐쇄라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이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극동전반에 걸친 군사적 안정과 정치적 안정에 걸치는 문제라고 본다. 또 이는 미국과 소련에 있어서도 긴요한 문제라고 본다. 특히 주역인 미국이 오랫동안 현명하게 한미군사동맹을 통해 반세기에 걸쳐 쌓아 이제 결실을 맺으려는 이 지역의 안전보장이라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끝으로 오늘의 시간단위로 변하는 새로운 국제환경에서 우리 정부나 국민도 최근 몇년간의 무감각에서 벗어나 안전보장정책에 보다 깊고 분석적인 눈을 갖고서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는 우리 민족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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