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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올림픽 南北 단일팀 구성 ‘적신호’

    분단 국가의 첫 올림픽 단일대표팀 구성과 남북 공동응원단 구성이 난관에 부닥쳤다. 지난 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제 16차 국가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에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과 박학선 신임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함께 참석했음에도 관련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단일팀 구성은 물론, 공동응원단 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지난 2월 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6·15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이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남북 관계가 급격히 경색됨에 따라 민간 교류 협력 활동에도 그 불똥이 튄 것으로 파악된다. 김 위원장은 9일 “계속 접촉을 시도하겠지만 시간적인 문제나 남북관계 현 상황 등을 고려하면 단일팀 구성논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총회에 참석한 북한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역시 “이번 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 구성은 어렵지 않겠냐.”면서 회의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KOC 고위 관계자는 “북측 박 위원장이 국제 스포츠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라 조심스러워하는 듯하다.”면서 “단일팀 구성에 있어 구기종목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서 실무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데다 IOC측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한 바 있어 극적 타결 가능성도 있다.”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지난해 남북 정상은 ‘10·4 공동선언’을 통해 부산∼서울∼평양∼신의주로 이어지는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 공동응원단을 꾸리기로 합의했다.또한 단일대표팀 구성과 관련해 한반도기를 국기로,1920년대 아리랑을 국가로 하기로 합의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원희·이관우와 옥류관 가고파”

    “조원희·이관우와 옥류관 가고파”

    “평양에서 치러졌으면 좋겠다.”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남북대결이 어디에서 개최될지를 놓고 혼선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 대표팀의 미드필더 안영학(30·수원 삼성)이 26일 남북대결 경기를 평양에서 치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안영학은 6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남북전이 개인적으로는 평양에서 치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한국 선수들이 평양에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북조선 인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평양에 몇 차례 가봤는데 워낙 경치가 좋은 곳”이라며 “팀에서 함께 뛰는 조원희 이관우 등과 냉면이 맛있는 옥류관에 함께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허정무 감독 등이 평양 김일성경기장의 인조잔디 적응에 걱정이 많은 것과 관련,“무릎에 다소 무리가 갈 수는 있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막을 내린 동아시아대회와 관련해선 “현지에서도 한국 선수들과 북한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정대세(가와사키)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다.”며 “수원 동료들도 (정)대세를 데려올 수 없겠느냐고 물어와 가와사키와 2년 계약을 맺어 데려오기 힘들다고 말해 줬다.”고 웃어 보였다. ●FIFA 홈앤드어웨이 유지 위해 북 설득 주력 한편 대한축구협회가 5일 나올 것으로 예측했던 국제축구연맹(FIFA)의 조정안은 6일 밤 11시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원재 협회 홍보부장은 “FIFA가 북한을 설득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FIFA가 북한에 매달리는(?) 것은 가급적 홈앤드어웨이 방식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FIFA는 북한이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계속 고집할 경우 쉽게 제3국 개최로 조정안을 내고, 북한이 또다시 이를 거부하면 몰수패를 선언할 수 있지만 월드컵예선 전체 일정을 매끄럽게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홈앤드어웨이 유지에 북한이 협조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FIFA의 권위와 정통성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그러나 FIFA가 무한정 기다려줄 것 같지는 않다. 한국팀의 숙소 및 훈련, 경기장 이동 등을 미리 점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응원단과 취재단 규모를 확정하고 선정하는 데에도 시간이 적잖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통일축구’ 감동 평양서 다시한번

    지난 26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공연을 가졌다.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역사적인 공연’이었다. 대단히 미국적인 ‘신세계 교향곡’은 물론 성조기가 게양되고 미국 국가까지 연주되었으니, 얼음장 밑으로 강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 개성에서 돌아오는 대한축구협회의 실무대표단은 안타깝게도 빈 손이었다.2010년 남아공월드컵 예선과 관련, 북한 관계자와 협상을 벌였지만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 거부’라는 북한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북한을 이해하려는 관점에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도 있다. 그들은 나름의 국가 체제를 형성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태극기와 애국가를 허용한 적이 없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북한은 ‘적성국가’인 미국은 불가피하게 인정하지만 남한은 ‘미수복’된 영역으로 여긴다. 북한 주민들에게 태극기가 펄럭이는 광경을 제공하고 싶지 않은 내부적 요인에다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도 현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한반도기와 아리랑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우선 이 경기는 남북 양측의 친선 경기가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다.정치적인 요소를 배제해온 FIFA의 성향으로 볼 때, 북한의 요구는 관철되기 힘들다. 국제 정세의 측면에서도 북한은 좀 더 전향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6자 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이미 남한의 ‘실체’는 북한 주민들에게 현실이 됐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 유명한 ‘광폭 정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국제 경기의 최소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경기를 진행할 경우 북한 내부의 이견들을 큰 틀에서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프랑스 국기에 충성을 맹세하는 흑인 병사의 사진을 분석하면서 말했듯이, 우연적이거나 일회적인 상징이 견고한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다. 지금 북한은 그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사례가 견고한 전례들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해 축구협회는 취재진이나 응원단의 규모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순조롭게 경기를 마친 뒤 남북의 젊은 선수들이 북한 주민들의 박수 속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을 부르는 건 북측의 ‘정치적’ 관점에서도 결코 유해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경기 종료 후 북한의 리경인과 남한의 최태욱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그런데 두 선수는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축구화까지 벗어서 바꿔 신었다. 우리는 그러한 광경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개성선 남북축구 협상 끝내 결렬

    평양에선 성조기가 펄럭이고 미국 국가가 연주되던 날, 남아공월드컵축구 3차예선 남북대결을 둘러싼 개성에서의 협상은 끝내 결렬돼 국제축구연맹(FIFA)의 중재를 불러들였다. 대한축구협회 대표단은 26일 육로를 통해 방북,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오전과 오후 세 차례나 실무협의를 계속했지만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 응원단 방북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렬됐다. 이에 따라 협회는 곧바로 FIFA에 중재를 요청하기로 했다. 북쪽은 지난 5일 1차 협의때와 마찬가지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허용할 수 없으며 한반도기와 아리랑으로 대체하자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남쪽은 FIFA의 월드컵 예선 규정을 좇아 아예 이 문제가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으며 사전조사단과 응원단, 기자단 방북 등을 논의하려고 했지만 북쪽이 한반도기와 아리랑에 집착하는 바람에 이들 안건은 입밖에 꺼내지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쪽 대표인 조중연 부회장은 “남북화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북쪽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워낙 강하게 물러서지 않아 협상이 전혀 진전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북쪽은 또 대규모 응원단의 방북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FIFA 중재가 눈앞에 다가옴에 따라 ▲제3국에서 중립경기를 개최하는 방안 ▲북한 축구에 대한 징계로 이어져 몰수 경기로 처리되는 경우 ▲북쪽이 중재를 받아들이는 경우 등의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그러나 북한이 두 차례나 거듭 ‘절대 불가’를 확인한 만큼 극적 타결 가능성은 엷은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이 한 걸음씩 양보할 수 있는 ‘제3국 개최’안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FIFA가 정치색을 배제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북한이 국제축구의 룰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며 한국의 몰수승을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월드컵축구 평양원정 26일 실무접촉 재개

    다음달 26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아공월드컵축구 3차예선 남북대결을 앞두고 26일 개성에서 실무접촉이 재개돼 태극기와 애국가 사용 등의 쟁점이 타결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26일 아침 7시30분 우리측 대표단이 육로로 방북해 개성에서 오전 10시부터 2차 실무협의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1차 협의에서 남쪽 대표단은 응원단 방북과 기자단 동행 취재, 경기장과 훈련장 시설을 점검할 조사단 파견 등을 제안했다.하지만 북쪽은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 애국가 대신 아리랑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 반면, 남쪽은 ‘경기장에 양국 국기를 걸고 선수들이 나온 시점에서 양국 국가를 연주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월드컵 예선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맞섰다. 이 문제가 풀리더라도 응원단 육로 방문, 기자단 숫자 등을 둘러싸고 대립할 수 있다. 축구협회는 북쪽이 끝까지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FIFA에 중재를 요청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최악의 시나리오로 제3국 개최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조중연 부회장은 중국 충칭에서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북쪽은 상당한 액수의 중계권이 걸린 데다 유럽 등의 관광객 모집이 이미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 실리는 물론 응원 등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업는 평양 경기를 포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로컬 룰/황성기 논설위원

    빨강·노랑·파랑의 근대적 자동 교통신호등이 도입된 것은 100년도 채 안 된다.‘진행’을 의미하는 파랑과 ’정지’의 빨강 외에 ‘주의’를 뜻하는 노랑이 추가된 것은 1920년대 초 미국 디트로이트에서였다. 세가지 색깔이 갖는 뜻은 만국 공통인 ‘제너럴 룰’이다. 하지만 운용 체계는 우측통행을 하는 한국과 죄측통행을 하는 일본이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빨강불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정지해야 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 도로에선 우회전이 가능하다. 이런 ‘로컬룰’을 잘 모르면 딱지를 떼는 것은 물론이요, 큰 사고까지 낼 수 있다. 골프도 영국왕립골프협회와 미국골프협회의 규칙인 제너럴 룰이 있지만 골프 코스 등의 특성에 따라 로컬룰을 둔다.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열린 미 LPGA투어 하나은행 코오롱 챔피언십 대회 1라운드 16홀까지 2언더파로 선두권을 달리던 박세리도 로컬룰을 착각해 더블보기를 범했다. 페어웨이가 비정상일 경우 볼을 들어 올려 닦은 뒤 칠 수 있다는 로컬룰에 따라 박세리는 수리지에 떨어진 공을 닦기 위해 집어 올렸다. 그러나 그 지역은 페어웨이가 아니라 로컬룰이 적용되지 않는 러프여서 결국 1벌타를 받았다. 여자 프로배구에서 도입한 ‘백어택 2점제’도 세계에선 통용 안되는 한국만의 로컬룰이다. 남자배구 같은 박진감과 재미를 더하기 위해 여자에겐 어려운 백어택에 1점을 얹어줬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축구대회 아시아 3차 예선의 남북대결을 놓고 북한이 로컬룰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달 26일 평양 경기에서 남측의 태극기 게양, 애국가 연주, 응원단을 모두 거부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A매치(국가대표팀 대항)에서 국가 연주, 국기 게양을 규정하고 있다. 북측은 민족 특수성을 들어 한반도기, 아리랑을 고집하고 응원도 알아서 해준다고 한다. 로컬룰이 유용할 때도 있다. 남북 화합을 위해 로컬룰을 적용한 1990년의 평양 남북 통일축구가 그 예다. 그렇지만 이번 경기는 친선이 아니다. 월드컵행 티켓이 걸린 A매치이다. 정 FIFA의 제너럴 룰을 따르지 못한다면 제3국 개최도 불가피하다.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세계가 주목할 남북 A매치의 빅이벤트를 북한이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대~한민국 안되면 평양 안간다”

    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 구호 등 정상적인 응원이 보장되지 않으면 원정 응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붉은 악마´는 13일 홈페이지(www.reddevil.or.kr)를 통해 “다음달 26일 평양에서 열리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2차전에서 정상적인 응원을 펼칠 수 없을 경우 원정 응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붉은 악마는 “우리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강력한 응원을 펼칠 수 없다는 것도 평양원정을 거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결국 국호를 외치는 것과 국가 상징을 사용하는 건 필수이지만 북한이 한반도기를 게양하고 각국 국가 대신 아리랑을 사용하자고 했기 때문에 붉은 악마의 전통이 구속된다는 입장인 것이다. 붉은 악마는 또 “이번 북한 원정에서 굳이 우리 특징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 “평양원정응원단은 일반 축구팬이나 통일 관련단체 등으로 구성하는 게 더 바람직하고 국가적으로도 더 나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5일 1차 실무 협상에서 태극기와 애국가 대신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국기와 국가로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평양 도착 盧대통령 “평화의 새역사 정착시키자”

    [2007 남북정상회담] 평양 도착 盧대통령 “평화의 새역사 정착시키자”

    사상 처음으로 남한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으로 훌쩍 넘었다. 평양까지 승용차로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반세기 넘게 대치해온 남과 북은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2일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굳게 맞잡은 손엔 7000만 겨레의 통일 염원이 응축돼 있었다. ●군사 분계선 넘자 최승철 부부장이 영접 역사는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을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건너는 것 자체가 특별했던 금단의 선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노 대통령은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 넘겠다.”며 짤막한 대국민 메시지를 남겼다.“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이며, 이 장벽 때문에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다.”고 했다. 이어 “이제 제가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지고 장벽도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걸어가자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등이 노 대통령 일행을 맞았다. 최 부부장은 노 대통령에게 “통일전선부 부부장입니다. 모셔가기 위해 나왔습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노 대통령은 밝은 얼굴로 북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눴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 여성들한테서 꽃다발을 받았다. 노 대통령 일행은 북측 CIQ를 그대로 통과해 ‘교류협력의 땅’ 개성공단 부근으로 진입했다.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뒤로한 채 노 대통령은 안암굴 터널을 통과해 왕복 4차선 160㎞에 달하는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북녘 산하를 보면서 내달렸다. 노 대통령은 오전 11시30분쯤 평양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은 후 11시42분쯤 무개차에 함께 올라 20분 동안 4·25문화회관까지 6㎞ 정도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연도에 늘어선 수십만 평양 시민들은 저마다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꽃다발을 흔들며 “만세”와 “조국통일” “환영”이라는 함성으로 노 대통령을 맞았다. 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은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평양 시내의 건물과 지리, 최근 날씨 등을 화제로 담소를 나눴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의 전용차량인 벤츠 S600은 차량 우측에 소형 태극기를, 좌측에는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기’를 함께 매달고 달렸다. 이는 노 대통령의 전용차량 방북에 이어 또 다른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또다시 파격적 영접 2일 오전 11시57분 평양 4·25문화회관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이 큰 환호성을 올리자 남북정상회담 생중계 방송을 보던 국민들은 잠시 노무현 대통령이 도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다.2000년 정상회담 때처럼 김 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영접을 나옴으로써 최고 수준의 손님맞이를 보여줬다. 김 위원장이 도착한 지 5분 뒤 노 대통령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환영식장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악수를 나눴다. 두 정상은 붉은 색 카펫을 함께 걸으며 북한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명예위병대를 사열했다. 노 대통령은 환영식에 참석한 김영일 내각 총리를 비롯한 북한 당·정·군 고위층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두 정상은 4·25 문화회관 앞 중앙단상에 나란히 올라 인민군의 분열을 받았다. 이날 환영식은 정오부터 12분가량 진행됐고, 두 정상은 환영식이 끝난 뒤 각각 자신의 차를 타고 식장을 떠났다. ●환영식장 철통 보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은 1차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막판까지 철통 보안이 지켜졌다. 공식환영식 예정 시간을 불과 한 시간여 앞두고 환영식 장소가 두 차례나 바뀌어 선발 취재진에 통보됐다. 당초 남북 실무 접촉에서 합의된 공식환영식 장소는 평양 입구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이었다. 그러나 오전 10시20분쯤 공식환영식 일정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공식환영식 취재를 위해 3대헌장 기념탑으로 이동하려던 남측 취재단 11명에게 환영식 장소가 인민문화궁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전달됐다. 북측은 남측에서 2차 선발대로 파견된 청와대 의전팀에 이 소식을 통보했고, 취재단에도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5분쯤 지나 찾아온 북측 관계자는 환영식장이 다시 4·25 문화회관 앞 광장으로 바뀌었다고 취재진에 통보했다. 이때도 북측은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남측 청와대 선발팀에만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김 위원장의 영접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점심 메뉴는 신선로와 쏘가리 간장조림 공식 환영식을 마친 노 대통령은 전용차를 타고 낮 12시21분쯤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낮 12시50분에 부인 권양숙 여사와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지나오며 본 북한의 풍광과 농업, 지하자원 개발, 경공업 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누며 점심을 함께했다. 점심 메뉴는 신선로, 쏘가리 간장즙(간장조림), 냉채, 송편 등 한식이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공식 환영만찬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 한때 김 국방위원장이 만찬장에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으나 김 위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별수행원 김책공대 시찰 정계·재계 인사 등 특별수행원 40명은 오후 4시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을 참관했다. 지난해 완공된 전자도서관은 지하 1층, 지상 5층에 1만 6500㎡ 규모로 컴퓨터 420대, 일반도서 200만권, 전자도서 1150만건이 비치돼 있어 랜선이 연결된 다른 기관에서도 컴퓨터 접속이 가능하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군사분계선을 10m 남짓 남겨두고 승용차에서 내려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에선 “여기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거죠.”라며 웃음 짓던 조금 전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역사적 순간’의 감격을 다스리기란 산전수전 다 겪은 노 대통령으로서도 감당하기 버거운 듯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 다녀올 것”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환송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노 대통령은 몸을 돌려 ‘금단의 선’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평상시 아무런 표지도 없는 군사분계선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도보 월경’을 앞두고 50㎝ 폭의 굵은 노란색으로 표시가 돼 있었다. 노 대통령이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는 듯하더니 성큼 노란 선을 넘어섰다. 노 대통령이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한 개성공단산 시계의 시침은 정확히 9시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역사적 순간은 CNN 등 외신의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타전됐다. 이날 노 대통령의 도보 월경은 전 세계에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게 정부측 평가다. ●방북길은 한국전 당시 남침·북진로 노 대통령 일행이 군사분계선을 거쳐 평양으로 가기 위해 이용한 경의선 남북연결 도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공로이자 유엔군의 북진로이기도 했던 이 길은 지뢰제거 작업 등을 거쳐 2002년 9월에 착공,2003년 10월 개통됐다. 이후 도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뿐 아니라 각종 민간교류의 물류 통로로 활용되면서, 대립의 상징물에서 화해와 협력의 소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이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면서 38선을 넘을 때도 이 육로를 이용했다. 한편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는 것을 기념해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우리측 제2통문 앞에 3.6m 높이의 표지석을 세웠다. 표면에는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2007년 10월2일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란 문구가 새겨졌다. 김정석 청와대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지어 친필로 기록했다고 전했다. ●“욕심 안 부리겠지만 몸 사리지도 않을 것”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은 출발에 앞서 청와대 본관에서 국무위원 및 청와대 수석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대국민 인사를 통해 회담에 임하는 자세와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역사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푸른 빛 넥타이에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표정도 비교적 밝았다. 권 여사는 자주색 정장을 입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역사는 단번에 열 걸음 나아가기가 어렵다. 이번에 한걸음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며 회담에 응하는 소감을 밝힌 뒤 “지금은 한걸음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고 6자회담 진전을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잘 맞춰줘야 하는 때”라며 회담의 배경을 설명했다.10여분 간의 간담회를 마친 노 대통령은 본관 앞에 준비된 연단에 올라 5분간 방북에 앞선 ‘대국민 인사’를 발표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도열해 있던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태극기와 봉황 문장 깃발이 달린 전용차에 올라 7시55분쯤 청와대를 나섰다. 이날 노 대통령은 청와대 앞 효자동 길을 지나 시청앞∼서소문∼마포∼강변북로∼자유로 코스로 방북길에 올랐다. ●시민들 차분… 보수단체 반대성명도 서울시민들은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는 노 대통령 일행을 차분한 기대 속에 환송했다. 방북단을 태운 차량 행렬이 도라산 남북 출입사무소(CIQ)로 향하는 연도에는 출근길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며 회담의 성공을 기원했고 가정이나 직장에 있는 시민들도 TV를 통해 출발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아침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중앙청사 앞 인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방북단을 환송하기 위해 ‘참여정부 평가포럼’ 회원과 시민 등 수백명이 몰렸다. 이들은 오전 7시쯤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 ‘5천만개의 마음이 당신과 함께 갑니다.’라고 적힌 노란색 현수막을 걸고 회원과 시민들에게 한반도기와 색색의 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반면 선진화국민회의 등 보수단체 소속 50여명은 이날 노 대통령 차량 행렬이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정부중앙청사 앞 네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북핵폐기 없이 평화 없다’,‘서해북방한계선 그대로 유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성명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이 국민적 합의와 진정한 화해정신에 입각해 진행되지 않고 정권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대선에서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産 로만손 시계 착용 눈길 노 대통령이 이날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했다는 손목시계도 눈길을 끌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국산 로만손 시계로 시중에서 19만 8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산 제품을 일부러 선택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귀띔했다.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착용한 것과 같은 ‘TM7238L’ 모델을 9세트 더 구입해 김정일 위원장 등 북측 회담 관계자들에게 선물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회담의 공식수행원 13명 전원은 방북 기간 왼쪽 가슴에 회담을 위해 특별 제작한 휘장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금색 테두리를 두른 무궁화 모양으로 흰색 바탕 위에 왼쪽에 태극기, 오른쪽에는 한반도기를 배치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세영기자
  •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北열차 본 80代 “추억속 기차 꿈만 같다”

    ●‘김일성수령 오르셨던 차’ 현판 이날 오전 동해선 시험운행을 앞두고 금강산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북측 기관사 노근찬씨는 열차 시험운행 소감을 묻는 남측 취재진의 잇따른 질문에도 손사래까지 치며 질문을 피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열차 탑승 직전 우리측의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역사적인 순간인데 소감이 어떠냐.”는 물음을 받고서야 “조국 분단 역사에서 잊지 못할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노씨가 운전하는 열차는 낮 12시21분 군사분계선을 통과,9분 뒤인 12시30분 남측 제진역에 도착했다. 북측 열차는 내연 기관차 1량과 발전차 1량, 객차 4량 등 모두 6량으로 ‘위대한 김일성 수령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라는 붉은 현판이 기관차 측면에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열차에서 내린 북측 탑승객들은 기자들을 향해 “반갑습니다.”“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오찬장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객차 문을 열고 나선 열차원 김혜련(28)·이혜경(28)씨는 “한민족의 핏줄은 속일 수 없다.”면서 “6·15 북남선언이 잘 지켜져 통일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김용삼 북측 철도상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날씨가 참 좋다. 통일의 좋은 징조 아니겠나.”라고 답했다. 열차내부는 노란색과 회색 의자가 단정했고 테이블마다 과일과 북한산 생수, 사이다, 콜라병이 놓여 있어 짧은 시간 남북 탑승객들끼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하게 했다.한편 열차에 탑승한 명계남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로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원칙과 상식 대표 직함으로 이날 동해선 행사에 참석한 명씨는 기자들이 ‘탑승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바다이야기 대표로 온 사람이다, 나는 바다이야기 이후 죽은 사람이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오후 3시 기적 울리며 북으로 아침부터 환영행사에 참석한 고성군 간성읍 상리마을 주민들은 반세기 만에 북한 열차를 둘러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 고성에서 살았다는 유순덕(80)할머니는 “6·25전쟁 이전에는 북한 열차를 타고 고성·제진역에서 원산을 통해 평양과 서울을 오갔다. 죽기 전에 옛날 타던 기차를 다시 보니 꿈만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북측 일행은 한식에 반주를 곁들여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이날 오후 3시 타고 온 열차편으로 다시 돌아갔다. ‘고향의 봄’과 ‘반갑습니다’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북측 일행은 기차에 올랐고 고성 명파초등학생들이 한반도기를 흔들자 손을 흔들며 아쉬워했다. 북한 기차는 오후 3시쯤 기적소리를 여러 차례 울리며 미끄러지듯 북으로 움직였고 플랫폼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다음 만남을 기약하듯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북한 언론 짤막하게 보도북한은 17일 반세기 만에 이뤄진 남북 열차운행을 극히 짤막하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북한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남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이 17일 동서해선에서 각각 있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어 “시험운행이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 남측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진행되었다.”면서 “여기에는 우리 측에서 철도상 김용삼, 내각책임참사 권호웅을 비롯한 관계부문 일꾼(간부)들이, 남측에서 건설교통부 장관 이용섭, 통일부 장관 이재정 등 관계자들이 참가하였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열차 시험운행의 역사적 의미나 평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측이 축제 분위기를 띄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경의선 동해선 공동취재단파주 한만교·고성 조한종·문산 한상우 정서린기자 mghann@seoul.co.kr
  •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한반도기 든 환영인파 “통일 철마 왔다”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한반도기 든 환영인파 “통일 철마 왔다”

    남북열차가 17일 평화와 세계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 철로에는 흥분과 기대감이 넘쳐흘렀다. ●한껏 달아오른 문산역 이날 경의선 열차의 출발지인 문산역은 화해와 교류,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열차 탑승객과 진행요원,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룬 역사는 오전 북측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부터 고적대 연주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경의선 출입사무소를 통과해 오전 10시30분쯤 문산역에 도착한 권호웅 북측 내각 책임참사를 역사 안으로 안내한 뒤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위원회 남측 상임대표와 이철 철도공사 사장 등 남측 탑승자들을 소개하며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이 다소 흥분된 어조로 “분단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은 남북이 함께 이뤄낸 위대한 승리의 역사”라고 강조하자 권 참사는 “아직까지 위대하다는 말을 붙이지는 말라.”면서도 “포부는 원대하게 갖고 소박하게 시작해 좋은 일을 많이 만들자.”고 답했다. 전날까지 비가 내리다 화창하게 갠 날씨를 소재로 이 장관이 “56년간 묵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 물청소를 세게 한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권 참사는 당시까지 비가 내리던 동해선 쪽을 의식,“금강산은 아직도 물청소를 하는 것 같다.”며 재치있게 화답하기도 했다. ●부러운 실향민과 감격한 10대들 이날 행사장을 찾은 70∼80대 실향민들은 부러움과 기대가 엇갈리는 표정이었다. 일제시대 개성까지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갔다는 이근찬(77·경기 파주시 법원리)씨는 “그때 기억이 나서 나와봤어. 언젠가 나한테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말했다. 김포 통진고 2학년에 재학중인 채여경(17)·김새봄(17)양은 ‘우리는 하나, 남북 함께 만납시다’‘북측 대표 환영해요’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를 준비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열차가 북한에 간다고 생각하니 떨린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 동영중에 다니는 이세영(14·부산 부산진구 부암동)군도 학교의 임시휴교를 맞아 역사적인 현장을 찾았다. 이군은 “직접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납북자가족 반대 목소리 이날 행사 시작 전 납북자가족모임, 피랍·탈북인권연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회원 등 40여명이 행사장 주변에서 납북자 송환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납북자 가족들은 애타게 생사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열차 운행을 하느냐.”며 항의했다. 행사장 출입이 제한된 납북자가족모임 소속 할머니들은 “어떻게 보지도 못하게 할 수 있느냐.”며 울음을 터뜨리다 바닥에 쓰러져 후송되기도 했다. ●도라산역 출입국 심사 오전 11시58분쯤 도라산역에서 기적이 울리자 역무원, 통일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관계자, 헌병, 취재진 등 300여명이 남북열차를 맞았다. 탑승객들은 자리에 앉은 채 출입국 통관 절차를 밟았다. 출입국사무소 직원과 세관직원 2명이 1개조로 4대의 객차에 올랐다. 이들은 탑승객의 얼굴과 사진을 대조하며 인원을 파악하고, 반출물품 목록을 일괄 제출받는 등 남북협의에 따라 절차를 간략히 끝냈다. 북쪽 손님과 탑승객들은 객차에서 밖을 향해 한반도기를 흔들기도 했다. 심사절차를 마친 뒤인 낮 12시10분쯤 도라산역 윤길수 역무과장이 오른손을 직각으로 들어 둘째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키며 파란색 수기를 둥그렇게 흔들자 열차는 북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관차 앞 방향 철로변에서 수백개의 풍선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윤 과장은 “감개무량하다. 역사적인 순간에 조그만 역할이나마 한 것이 감격스럽고 행복하다. 앞으로 열차가 시베리아·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탑승객 소감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감동적이고 새로운 한반도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정책의 가시적 성과다. ●장진구 학생(울산 제일중1) 개성역에 도착했을 때 북측 학생들을 보니 우리와는 너무 달랐다. 통일이 돼야 할 것 같다. ●고은 시인 가로막혔던 민족의 핏줄이 이어져 뜨거운 피가 순환하는 것이다. 이 길이 남북은 물론 대륙을 연결하는 커다란 꿈의 출발을 의미하길 바란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일제 때 민족의 수탈을 위한 철도가 이제 민족의 번영을 위한 철도가 돼간다. 통일은 이념적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 상생효과를 내야 한다. ●송기인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혈관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 철길이 이어진다는 것은 마비됐던 지체가 새롭게 회복되는 그런 기회라 생각한다. 남북이 소통한다는 것은 해방 당시의 감격과 비슷한 감격이다. 경의선·동해선 공동취재단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통일염원 담은 아리랑 열창

    통일염원 담은 아리랑 열창

    ‘근로자의 날인 1일 경남 창원시에서 남북이 하나되는 통일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민주노총·한국노총·북측 조선직업총동맹 등 남북 3개 노동단체가 참가하는 ‘5·1절 남북노동자통일대회’ 3일째인 이날 경남 창원종합운동장에서는 이번 대회의 본행사인 노동자 단합대회·통일축구경기·축하공연 등이 개최됐다. 단합 대회는 창원시민과 전국에서 모인 근로자 등 3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후 3시30분쯤부터 3개 단체 공동 사회로 시작됐다. 주최측은 행사장을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72명으로 구성된 풍물단을 선두로 한반도기 기수단, 남북 노동자 대표단 등이 ‘우리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연호하면서 운동장으로 입장하고 공동 사회자들이 동시에 개회를 선언하면서 대회장 분위기가 고조됐다.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반도기가 게양되고 6·15 공동위 남북 대표 축사, 남북 3개 노동단체 위원장 대회사 등이 이어졌다. 이어 남북 3개 노동단체 대표는 5개 항의 ‘남북(북남) 노동자 선언문’을 한문단씩 낭독하며 창원 5·1절 행사가 겨레의 가슴 속에 통일애국의 불길을 지펴 올린 뜻깊은 통일축전이었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남북 노동단체는 선언문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6·15 공동선언을 철저히 실천해 나갈 것을 결의했다. 통일운동에 민족을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평화 수호에 앞장서고 남북노동자들의 연대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다짐했다. 단합대회에 이어 오후 4시쯤부터 남북 선수들이 섞인 연대팀과 단합팀의 통일축구 경기가 축포를 신호로 전·후반 각 45분씩 열렸다. 경기내내 관중들은 크고 작은 단일기를 흔들며 파도타기 응원을 하고 “통일”을 외치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시민 김경식(56)씨는 “보기 드문 뜻있는 행사인데 홍보부족으로 많은 시민들이 나오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축구시합에 이어 오후 6시쯤부터는 본부석 맞은편 특설무대에서 축포가 터지면서 흥겨운 축하공연이 열려 남북 노동자 대표단과 관중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공연에 동참, 남북화합과 통일에 대한 마음을 되새겼다. 노동자 노래패·영산마루 타악공연·안치환 공연·민족춤패 공연·노래극단 희망새 공연·창원시립교향악단의 아리랑 연주에 이어 불꽃놀이를 끝으로 남북노동자대회 본행사는 막을 내렸다. 남북노동자대표단은 앞서 이날 오전 양산 솥발산에 있는 노동자 묘역을 참배했다. 남측에서 처음으로 열린 창원 5·1절 남북노동자통일대회에 참석한 북측 대표단 60명은 2일 오전 10시 김해공항을 통해 평양으로 돌아간다. ●서울 도심곳곳 노동절 행사 근로자의 날인 1일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의 기념행사가 서울도심 곳곳에서 열렸다. 예년과 같은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1만명(경찰추산 6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17회 5·1 노동절 기념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행사 이후 종로2가를 거쳐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잠실 종합운동장에서는 한국노총 주최로 마라톤대회가 열려 이주노동자 400여명 등 2만여명이 참가했다. 이상수 노동부장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상수 장관은 근로자들과 함께 5㎞ 구간을 완주했다. 서울 이동구·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南北 스포츠 이벤트성 교류 이제 그만

    봄비와 함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17세 이하 북한 청소년축구대표팀이 20일 입국해 제주 등에서 한 달가량 전지훈련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각별히 반가운 까닭은 지난해 ‘북핵 사태’ 이후 사실상 남북 스포츠 교류가 단절되다시피 했던 것이 이번을 계기로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북한 선수들이 서귀포 등에서 머무는 과정은 교류의 지속성 및 훈련 그 자체의 내적 성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과거의 일회적인 이벤트와는 성질을 달리한다. 남북한의 역사적인 스포츠 교류 현장, 특히 선수단 동시 입장이나 열띤 응원 등은 좀처럼 잊기 어렵고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 있다. 그럼에도 스포츠 교류는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늘 변수의 자리에 머물러 왔다. 물론 북핵 사태나 6자 회담보다 우선적인 위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남북한의 스포츠 교류가 늘 일회적인 이벤트에 머물렀던 점은 매우 아쉬운 노릇이다. 남북 관계 및 동북아 상황이 서서히 나아지고, 좀더 조건이 성숙된다면 스포츠 교류는 독자적인 맥락에서 추진돼야 한다. 또 바로 그러한 진행이 동북아 안정화에 좀더 긍정적인 영향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남북한 스포츠 교류를 책임지는 당사자들이 ‘선수단 동시 입장’이나 ‘한반도기’ 같은 상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기획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인프라 구축, 체계적인 교육, 경기력 강화를 위한 지도자 워크숍 및 전지 훈련 등이 상시적으로 이뤄질 때 비로소 남북의 스포츠 교류는 그 실질을 얻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북한 청소년 선수들의 한국 전지훈련은 기량 발전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관계 개선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게다가 북한 선수들은 한국을 비롯한 몇몇 팀과 평가전도 치를 예정인데 거창하게 ‘동북아 정세’ 운운할 것도 없이 바로 이러한 실전적 전지 훈련이야말로 남북 젊은 선수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된다. 이제는 아무리 평가전이나 친선대회라고 해도 축구는 축구, 그 자체로 박진감 있게 맞붙어야 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친선이라는 말 때문에 양 팀이 지나치게 ‘우호적으로’ 뛰는 것보다 경기를 경기답게 치를 때 관중의 함성도 더욱 커진다. 선수들의 우애도 그 뜨거운 땀방울과 함께 더욱 깊어지게 된다.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 선수들이 장기 전지 훈련을 갖는 데다 더욱이 축구라는 땀과 열정의 종목으로 예정된 한 달은 정말 봄이 온 것만 같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그날의 함성 전국에 메아리

    3·1절 기념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다채롭게 열렸다. 정부는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및 정부 주요인사, 독립유공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88주년 3·1절 기념식’을 개최했다. 평양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한 이재정 남측수석대표 등도 고려호텔 3층 극장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서울시는 이날 낮 12시 애국지사 남상은 선생의 아들 만우씨 등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로구 보신각에서 타종행사를 열고 독립만세를 각색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독립유공자유족회와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등 ‘3·1절 기념 민족공동행사조직위원회’는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제 및 탑돌이를 한 뒤 서울 도심에서 ‘문화대제전’을 열었다. 세계국학원청년단은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제주 등 전국 14개 도시 30여 곳에서 태극기로 만든 옷을 입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태극기 플래시몹’을 선보였다. 자정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버 의병’을 통해 포털 사이트에 일명 ‘애플’(애국리플) 달기 운동을 벌였다. 시민사회단체도 동참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저지 범국민본부는 보신각 앞에서 ‘3·1절 맞이 한·미FTA 반대 시민문화제’를 개최했다. 통일연대도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군국주의 일본 규탄 3·1절 88주년 기념 자주대회’를 열었다. 보수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국민행동본부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한민국 살리기 3·1국민대회’를 개최했다. 한편 보수와 진보단체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10분쯤 서울 청계천 인근에서 집회를 열던 평화통일시민연대 소속 최모(68)씨 등 2명이 집회 장소를 지나던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박모(38) 대표 등 보수단체 회원 5명에게 맞아 이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박씨 등 5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보수단체 관계자는 “집회에서 한반도기를 휘두르고 있어 태극기를 써야 한다며 승강이를 벌이다 다툼이 일었다.”고 말했다.이문영 이재훈기자 2moon0@seoul.co.kr▶관련기사 12면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남북 도하에서 손잡았다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이 ‘열사의 땅’에서 6개월 만에 재개됐다. 남북한은 30일 밤 9시(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과 문재덕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수석대표로 5명씩의 대표단을 구성, 올림픽 단일팀과 도하아시안게임 개·폐회식 공동입장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지난해 12월과 올 6월 두 차례 회담과는 달리 양측 NOC 위원장이 직접 수석대표로 나서 특히 주목된다.KOC는 이날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1일 같은 장소에서 회담을 재개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양측은 이번 대회 개·폐회식에서 선수단을 공동입장시킨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상태.‘코리아’와 국가 ‘아리랑’, 독도를 추가한 단기 ‘한반도기’는 사전에 이미 결정됐다. 공동입장 때 양측 참가인원만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사인 베이징올림픽 단일팀 구성 방안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남북한은 1,2차 회담을 통해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대원칙에는 뜻을 같이했지만 핵심 사안인 선수선발 방식과 구성 비율에 대해선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회담에 앞서 김정길 위원장은 “현재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면서 “하지만 막상 협상을 시작하면 이해가 서로 엇갈릴 수도 있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문재덕 위원장은 회담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오늘 회담 결과는 남측 위원장에게 여쭤 보세요.”라고 농담을 건넨 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은 표정을 지으며 회담장으로 들어섰다.
  • [도하아시안게임] 독도표시 한반도기 선보인다

    한반도기(남북단일기)에 독도가 정식으로 표기될 전망이다. 다음달 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릴 아시안게임에 공동으로 입장하자는 북한 제의를 정부가 22일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는 독도가 들어간 한반도기가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최근 한반도기에 독도를 표기하는 데 대한 의견을 외교통상부에 질의했고 외교부는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우리의 고유영토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단일기에 독도를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회신했다. 정부 당국자는 “독도를 새겨 넣는 데 대해 정부내 반대가 없기 때문에 북측과 협의해서 앞으로는 독도가 들어간 단일기를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공동입장에 대해 “핵실험과 상관없는 비정치적 스포츠 교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23일 남북공동입장 수용방침을 북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남북, 도하아시안게임 따로 입장

    올림픽 단일팀을 구성하기 위한 남북의 체육회담이 또 결렬됐다. 기대했던 도하아시안게임 단일팀은 무산됐다. 지난해 12월7일 1차회담 이후 6개월여 만인 29일 개성에서 만난 남북한(수석대표 박성인·손광호 남북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8시간에 가까운 마라톤회의를 벌였지만 선수 선발 방식 등에 이견을 보여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다만 양측은 공동보도문을 통해 2008베이징올림픽 단일팀 파견을 위한 3차회담을 7월 중순쯤 금강산에서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측은 그러나 “도하아시안게임에 단일팀을 구성하기에는 물리(시간)적으로 늦었다.”면서 “우리는 자체 ‘훈련공정’을 이미 마쳤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단일팀은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양측은 단일팀 국호는 ‘코리아(KOREA)’로, 단기는 독도를 포함한 한반도기로, 또 단가는 1920년대 작곡된 아리랑 등으로 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다.그러나 핵심 사안인 선수 선발 및 임원 구성에서 남측은 공개 선발전과 국제연맹 기록 등을 기준으로 대표를 선발하자고 제의한 반면 북측은 선발전 없이 5-5 동수로 구성할 것을 거듭 주장했다.임원도 남측은 선수 비율에 따라, 북측은 종목별로 1명씩을 세울 것을 각각 주장했다. 1차회담에 이어 양측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는 데 그친 남북은 추가 회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북측의 획기적인 수정안이 나오지 않는 한 금강산에서의 3차회담도 난항이 예상된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송두율칼럼] 상징의 의미

    [송두율칼럼] 상징의 의미

    뮌스터에서 강의를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기차가 하노버역에 잠깐 멎었다. 마침 한국의 월드컵축구 16강 진출이 걸려 있는 스위스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 역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여졌다. 한국과 스위스를 응원하는 그 많은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붉은 색 셔츠를 입었기 때문이다.1974년 월드컵축구도 독일에서 열렸으나 이번처럼 개최국인 독일의 국기가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를 두고 우려하는 소리도 있지만 이러한 현상을 그렇게 심각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붉은 악마’의 셔츠든, 역사적 맥락에서 종종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독일의 국기든지 간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상징(象徵)은 이를 사용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일체감을 시각적으로 직접 보여준다. 그리스어로 상징(symbolon)은 ‘결합된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나누어진 것’(diabolon)은 이의 반대개념이며 이는 또 악마(惡魔·diabolos)와도 어원(語源)을 같이하고 있다. 즉, 하나로 만드는 ‘상징’은 편을 가르고 이간질하는 ‘악마’와 대립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단 하루도 상징과의 만남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광고나 교통표지판이 아마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또 교통표지판이나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기호나 부호(符號)처럼 누구나 공통적으로 정확한 이해를 규범화한 상징도 있지만, 반대로 종교나 신화 또는 예술에서는 명확하게 해석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그 어떤 여운을 남기는 상징도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상징은 반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철학적 탐구에서도 오랫동안 배제되었으나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나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 등에 의해서 이 상징의 세계가 지니는 근원적인 의미와 사회적 기능은 다시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월드컵과 관련해서 상징이 제기하는 문제의 하나로서 필자는 최근의 한 기사를 떠올리게 된다. 어떤 맥주회사가 월드컵을 맞아 자사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푸른색의 한반도기가 부착된 선수복을 입은 축구선수 박지성을 등장시켰다.“박지성 가슴에 왜 한반도기냐.”는 보수단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광고기획사는 한반도기를 삭제해서 광고를 내보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한반도기를 둘러싼 이런 식의 논란이 물론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상징은 기본적으로 인과관계를 전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연기는 불의 상징이 아니다. 불과 연기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면 맥주광고와 푸른색의 한반도기 사이에도 인과관계가 성립하는가. 해당 맥주회사가 월드컵의 공식후원자가 아니기 때문에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한반도기를 사용했는데 이를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해서 일종의 인과관계를 설정한 잘못된 상징해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상징의 기능은 갈라진 것들을 서로 합하는 데 있지, 악마처럼 합한 것들을 가르는 데 결코 있지 않다.‘붉은 악마’들은 그의 이름과는 달리 사상이나 이념, 출신과 성별 그리고 직업, 심지어는 연령의 벽까지도 무너뜨리며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상징이 되었다. 자신과 상대방을 편가르는 그러한 악마의 표상은 이미 아니다. 애석하게도 우리 모두가 바랐던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이번에 태극전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잘 싸웠고 ‘붉은 악마’들도 그 열정을 남김없이 전세계에 보여주었다.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다음번 월드컵대회에서는 남북이 하나가 되는 상징, 푸른 한반도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들과 이들을 뜨겁게 성원하는 온 겨레의 함성을 기대해본다. 인종간의 갈등과 증오를 넘어 용서와 화해로서 다시 깨어나는 남아프리카 땅에 민족분단을 넘어 하나가 되는 상징, 푸른 한반도기가 펄럭이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마무리단계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마무리단계

    ‘단군에서 붉은악마까지’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이 거의 마무리됐다. 2일 서울신문이 단독입수한 문화관광부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및 활용계획안’에 따르면 태극기와 무궁화, 독도, 진돗개, 한우, 오일장, 잠녀(해녀), 라면,IT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부문의 유·무형 상징들이 100대 상징에 포함됐다. 부문별로 보면 민족상징에는 태극기와 무궁화 등이, 강역(彊域·강토의 구역)과 자연상징에는 독도 백두대간 금강산 소나무 진돗개 거북선 해시계 등이 들어 있다. 역사상징에는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 DMZ(비무장지대) 경주(서라벌) 서울(한양) 단군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등이, 사회와 생활상징에는 오일장 상여 소주 막걸리 온돌 IT 라면 등이 들어 있다. 선(禪) 미륵 선비 금줄 삼산할매 등 신앙 및 사고의 상징, 한글 탈춤 막사발 판소리 춘향전 등 언어와 예술상징도 선정됐다. 문화부가 추진해온 100대 문화상징 선정 사업은 우리 민족의 ‘문화 유전자’를 찾아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전통문화에 기반한 부가가치 창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것. 또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호의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이를 홍보하려는 목적도 있다. 문화부는 지난해 2월 7명의 선정위원을 위촉, 민족문화상징 발굴 연구과제 공모, 상징물 발굴과 개발 등의 작업을 해왔다. 이렇게 마련된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안을 놓고 최근 자문회의를 열어 몇가지를 교체하는 등 막바지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얼마 전 열린 자문회의에서는 한반도기와 백두산천지, 한우, 촛불시위, 고3, 무당, 노래방 등이 제외되고, 동의보감, 수원화성, 종묘와 종묘대제, 효, 한옥, 라면 등이 추가됐다. 이밖에 천연염색, 식혜, 새마을운동, 자장면 등은 추후 검토후 선정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하지만 라면의 경우 일본 원조설이 있고, 인물상징 중 여성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 등 일부 논란이 있어 추가 교체의 가능성도 있다. 문화부는 한두차례의 자문회의와 인터넷 설문조사를 거쳐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최종 확정, 이달 말쯤 이를 발표하고, 지자체나 기업, 각종 축제 등과 연계한 다양한 활용방안 사업을 공모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北동포 사로잡은 조용필 평양 단독콘서트

    北동포 사로잡은 조용필 평양 단독콘서트

    ‘국민가수’ 조용필(55)이 북녘 동포의 가슴을 울렸다. 23일 오후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펼쳐진 광복60년 SBS특별기획공연 ‘조용필 평양 2005’에서 조용필은 혼신의 열창과 최첨단 디지털 장비가 총동원된 환상적인 무대로 북한 관객 7000여명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 공연 1시간여가 지난 오후 7시쯤 ‘봉선화’가 체육관에 잔잔하게 울려퍼지자 빠른 비트음악에 익숙지 않은 탓인지 그 때까지 무덤덤하게 공연을 지켜보던 관객 중 일부가 감격에 겨운 나머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음악은 북남, 남북이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조용필의 코멘트처럼 다소 생경한 남한 가요를 접하고 당황(?)하던 관객들은 공연 말미에서 ‘꿈의 아리랑’과 ‘홀로 아리랑’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장면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북한 가곡(가요를 일컫는 말) 100여곡 중에서 공연 레퍼토리로 뽑은 ‘자장가’와 ‘험난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리’에서 서서히 분위기에 동화되기 시작한 관객들은 한반도기가 펼쳐진 가운데 ‘꿈의 아리랑’이 소개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뼉 박자’로 뜨겁게 화답했다. 특히 연신 축포가 터지고 흩날린 꽃가루가 공연장을 뒤덮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7000여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조용필은 1분여 뒤 끝곡 ‘홀로 아리랑’을 열창했다.“손 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아리랑∼ 아리랑∼”의 선율과 박수 소리는 남과 북은 한 겨레, 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웠다.‘그 겨울의 찻집’에서는 자작나무 50여그루가 뒷배경으로 등장했으며 ‘끝없는 날갯짓 하늘로’에서는 새와 궁전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조용필을 감싸면서 중앙무대를 압도했다. 이날 공연을 본 한 평양시민은 “정말 볼만했습네다. 재밌었습네다.”라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공연이 끝날 즈음 조용필은 평양 시민들을 향해 “제 음악 인생 속에서 가장 값진 하루였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렇게 하나가 되어 저의 노래를 들어준 것에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총 20여곡의 레퍼토리로 펼쳐진 ‘조용필 평양 2005’는 엔딩곡 ‘홀로 아리랑’과 따뜻한 박수갈채가 뒤섞인 가운데 ‘끝없는 날갯짓 하늘로’(조용필 작곡),‘험난한 풍파 넘어서 다시 만나리’(북한가요)’를 약속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편 이날 공연의 엔딩곡인 ‘홀로 아리랑’은 공연 직전 북측의 고위 인사가 악보를 조용필에게 손수 건네며 특별히 부탁한 것으로 밝혀졌다. 평양 김용습기자 snopp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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