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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주 친화 경영’ 가속화 기업 2제] SK, 대기업 첫 계열사 주총 분산 개최한다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주주총회를 분산 개최하기로 했다. 여러 회사가 한날한시에 주총을 열어 주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의 부작용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는 18일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들과 협의해 올해 주총을 3월 중에 분산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스스로 나서 계열사 주총을 분산 개최하겠다고 밝힌 것은 SK가 처음이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한 행사에서 “지난해 3월 24일 주총을 연 상장사가 924개로 전체의 45%에 달했다”면서 “기업들의 슈퍼 주총데이를 없애 주주 권익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SK가 맨 먼저 최 위원장의 ‘주문’을 수용하고 나선 만큼 다른 그룹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관계자는 “세계적인 투자 전문 지주회사를 지향하는 회사답게 글로벌 기준에 맞춰 사회와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차원”이라면서 “앞으로도 주주 친화 정책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공보의 비결은 인적 네트워크”

    “공보의 비결은 인적 네트워크”

    “인적 네트워크가 자산입니다. 2~3년 하다가 다른 부서로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길게 봐야 합니다.” 고병득(59) 서울 강서구 공보전산과장의 ‘공보론’이다. 고 과장은 ‘자치구 공보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1995년 민선 1기부터 공보를 시작해 민선 자치시대 공보 체계를 정립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그가 내년 말 정년을 앞두고 있다. 19일 구청에서 만난 고 과장은 “공보는 인간관계”라며 20년 넘게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은 끝에 터득한 ‘공보의 비결’을 들려줬다.●재직 중 등단 계기로 공보 맡아 공보와의 인연은 소설로 맺어졌다. 1989년 구로구 구로5동 사무소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재무과 등에서 일하면서도 중·고교 시절 품었던 소설가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틈틈이 소설을 썼다. 1996년 계간 창조문학에 출품한 단편 ‘퇴색조’(난지도에서 일주일간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며 지낸 경험담)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공무원의 소설가 등단이 언론에 화제를 모으면서 공보과로 차출됐다. 고 과장은 “당시 민선 1기가 막을 열면서 민선 구청장들은 이전 관선 구청장들과 달리 공보에 갈증을 느꼈다”며 “그래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을 공보 담당에 앉히려 했다”고 회고했다. 공보를 맡으면서 일상도 바뀌었다. 사무실을 벗어나 대외 활동이 많아졌다. 오후 내내 머리를 짜내 만든 보도자료들을 다음날 오전 수십 부 복사한 뒤 시청 기자실로 가져가 일일이 나눠줬다. 저녁에는 기자들과 만났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기자와의 만남인 셈이었다. “기자들이 단독(특종)이 있고 물 먹는 게(낙종) 있듯 보도자료 담당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안에 대해 다른 구청에서 먼저 자료를 내면 물 먹는 거죠. 똑같은 걸 다시 낼 수는 없습니다.” ●‘도심 광부 퍼포먼스’ 등 대박 행진 승부욕이 강한 그는 여러 차례 ‘단독’을 했다. 2007년 자치구별 컴퓨터, 휴대전화 등 가전제품에 내장돼 있는 금을 추출하는 사업을 했다. 일명 ‘금모으기’ 사업으로 25개 구청에서 한날한시에 각각 발대식을 했다. 보도자료 내용도 통·반장 줄 세워 하는 발대식 형식도 같았다. 이때 고 과장의 두뇌가 반짝였다. ‘도심의 광부 출현’이라는 파격적 아이디어를 끄집어냈다. “금을 캔다는 데 착안했습니다. 구청 강당에 컴퓨터, 휴대전화 등 가전제품 쌓아놓고, 발대식 참가자들에게 광부 옷을 입히고 곡괭이로 금을 캐는 퍼포먼스를 연출했죠. 25개 구청에서 똑같이 발대식을 했는데, 일간지와 방송사 기자들이 우리 구에 다 몰려왔습니다. 조건이 똑같을 땐 달라야 튑니다.” 이런 그가 서기(8급)에서 주사보(7급)를 거쳐 주사(6급·팀장)까지 승진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0년 민선 5기 때 현 노현송 강서구청장이 고 과장을 강서구로 ‘스카우트’해 오면서 제2의 전성시대로 접어들었다. 강서구가 LG를 마곡지구에 유치한 쾌거에 대해 서울시가 보도자료를 내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시간 먼저 전격적으로 강서구 보도자료를 뿌려 ‘강서구의 공(功)’을 지켜낸 일은 지금껏 ‘전설’로 회자된다. 이렇게 능력을 인정받아 드디어 30여명을 총괄하는 공보수장(과장) 자리에 오른 그는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는데 어느 날 돌이켜보니 20년이 넘었다”며 공보 노하우를 풀어놨다. ●“보도자료는 상품… 고객 관리 중요” 우선 작가, 카피라이터 같은 창의성을 주문했다. “공보는 직책별로 접근해야 합니다. 보도담당일 땐 자료를 잘 쓰는 건 기본, 기자들 눈에 확 띄는 제목을 뽑아야 합니다. 기자들 눈에 띄어야 기사화되기 때문이죠.” 성실성이 밑바탕이 된 ‘영업사원론’이 뒤따른다. “보도자료도 상품입니다. 기자들에게 팔아야 합니다. 자영업자가 단골 관리를 하듯 고객 관리를 해야 합니다. 저는 다른 출입처로 떠난 기자들과도 끈끈하게 인연을 유지했습니다. 떠난 기자들의 기사를 보면 전화나 문자로 안부 인사를 했죠. 그런데 떠난 기자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오더군요.” 고 과장은 1959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1982년 상경해 한 4년제 대학 문예창작과에 응시해 필기시험을 통과했지만 면접에 합격하지 못했다. 당시 그 학교는 작품이 아니라 돈을 보고 학생들을 뽑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면접 때 아르바이트해서 근근이 먹고산다고 했더니 담당교수 얼굴이 싹 바뀌더군요.” ●“은퇴 후 못 다한 소설가 꿈 펼칠 것” 이듬해 종로구 동숭동 한국문인협회의 문예대학에 입학했다. 1988년까지 매주 토요일 강의를 들으며 꾸준히 습작을 했다. 대당 500원을 받는 새벽 택시 세차, 아동복 세일즈 등 온갖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 갔다. 29살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변변한 직장도 없자 부모가 대성통곡했다. 3년 작정하고 절에 들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1년 만에 서울시, 의료보험공단, 연금공단 등 세 곳에 합격했다. 서울시가 제일 먼저 발령을 내 시 공무원이 됐다. 은퇴 후엔 처가 근처인 충남 홍성으로 내려가려 한다. 그의 고별사는 간결하다. “그동안 못 쓴 소설을 쓰려 해요.”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내 친구 3명은 결국 고향 송마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내 친구 3명은 결국 고향 송마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임시로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 1명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심선택 소위, 신봉순 대위)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이용화 인터뷰 일시 1997년 10월 12일 장소 인천보훈회관 대담 이용화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아들)자원입대한 이용화와 그의 친구들 임면기 인천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후 17살에 전사 문병열 인천상업중 4학년 때 자원입대 후 17살에 전사 이하수 인천해성중 4학년 때 자원입대 후 17살에 전사 이용화 김포중학교 4학년 때인 17살에 자원입대 후 12년 3개월만에 만기 제대 1947년 6월 25일 : 송마리 4명의 친구 대곶국민학교 졸업 1950년12월 21일 : 이들은 나이가 어려서 국민방위군 소집대상이 아니었지만, 인민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가기 싫어서 국민방위군을 따라 부산진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를 향해 걸어서 남하를 시작함 1951년 1월 11일 : 송마리 4명의 친구는 함께 20일간 걸어 부산진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에 입소하였으나 김포에서 부산까지 20일 동안 걸어 내려갈 때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 고생을 함 1951년 1월 24일 : 송마리 4명의 친구는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해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에서 나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하여 육군으로 자원입대함 1951년 2월 20일 : 이들 송마리 친구는 훈련소와 동래 보충대까지 함께 있었으나 대구 보충대에서 서로 헤어짐 1951년 5월 22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문병열이 1번째로 전사함 1951년 8월 12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이하수가 2번째로 전사함 1951년 9월 20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임면기가 3번째로 전사함 1963년 4월 20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이용화만 혼자 살아남아서 자원입대한 지 12년 3개월만에 명예제대함●나의 아름다운 고향 송마리 내(이용화)가 태어나 살던 김포시 대곶면 송마리 동네는 서해가 가까운 매우 아름다운 시골이었고 당시 80여 가족이 살고 있었으며 그때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4명의 동생이 있었다. ●내가 겪은 6·25와 인민군 6·25 전쟁이 일어난 일요일은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도와 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을 때인데 새벽부터 유난히 북쪽에서 ‘쾅,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그때까지도 계속 들려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튿날이 되어 학교에 갔는데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렇게 지나는 동안 어느 틈엔가 우리 동네에 인민군이 들어오고 어린 학생들까지 인민의용군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피난 생활 나는 위급함을 느끼고 급히 경기도 고양시에 계신 고모님 집으로 피신해 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두 달을 숨어 지냈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민군이 물러가자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제는 공부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군이 또 밀리게 되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또 피난을 가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1950년 12월 18일이 우리 집 막냇동생 돌날이라 돌떡을 먹는 중에 우리 부모님께서는 피난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심하시는 것이었다. ●4명의 친구 국민방위군을 따라서 남하 1950년 12월 중순경에 국민방위군 영장이 동네 청년들에게 나왔는데 1950년 12월 21일날 국민방위군들이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문병열·이하수·임면기·이용화)도 따라가기로 하고 김포에서 출발하였다. 그때 우리는 중학교 4학년으로 어려서 국민방위군 소집대상이 아니었지만, 송마리 3명 친구와 나는 인민군에 강제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함께 20일간을 걸어서 부산까지 내려갔다. ●국민방위군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하여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군대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국민방위군 50만명 중에서 9만명이 굶거나 얼어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총사령관 김유근 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부산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에 입소 송마리 동네 4명의 친구는 6·25 사변 초기에 인민군이 들어와서 어린 학생들까지 인민의용군으로 강제로 끌고 간 것을 알기 때문에 국민방위군을 따라서 남하한 것이었다. 인민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갔던 학생들은 결국 실종됐다. 최종 목적지는 부산진 국민방위군 수용소였으며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국민방위군들이 수용되어 있었던 부산지 국민방위군 수용소에서 약 2주간 있었다. 우리가 있었던 국민방위군 수용소는 범일동에서 해운대 가는 쪽에 있었다. 국민방위군은 아니었지만 국민방위군을 따라서 남하한 우리도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크나큰 배고픔과 추위의 고통을 당했었다. 고향이 또다시 북한 인민군에게 점령당해 있어서 우리 송마리 4명의 친구는 나이가 어리지만 군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정했다. ●17살에 육군 제2훈련소에서 자원입대 송마리 4명의 친구는 함께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교)로 입소하여 약 2주 동안 망가진 일본식 장총으로 열심히 훈련받았으며 사격훈련은 M1소총으로 실탄 6발을 쏘고 수류탄 투척 등으로 마지막 훈련을 마쳤다. 그런 다음 군번을 받고 정식 군인이 된 후에는 동래 보충대를 거쳐 대구 보충대로 갔다. 대구 보충대에서 우리 송마리 4명의 친구는 모두 헤어졌고 나는 당시 대구에 있던 8사단 10연대 2대대 6중대 본부에 배치되었다. 당시 대구에 있던 8사단은 강원도 횡성 전투에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병력 손실을 당하고 대구에 와서 재편성하는 중일 때 내가 배치됐던 것이었으며 그때 한 달 동안 재교육받고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전투 지역은 지리산 일대였으며 그때 2달 동안 공비토벌을 통해서 실전을 경험한 후 동부 전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이동할 때에는 화물열차에 1개 중대씩 태우고 이동하였는데 이동할 때는 주먹밥도 제대로 못 먹어 많은 고생을 하였으며, 제천을 거쳐서 진부령까지 올라가서 1주일 정도 쉬다가 다시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에서 수도사단과 교대를 했다. 그때 그곳에서 3개월간 여름 장마를 겪으면서 맡은 전투는 1031고지 전투였는데 처음 1차 공격은 야트막한 무명고지였으며, 2차 공격은 854고지이고, 3차 공격이 마지막 목표인 1031고지였다. 처음 공격 시작했을 때는 울창했던 산림이었는데 탈환하고 보니까 함포사격까지 가세하여 1031고지 정상이 7m나 낮아지고 나무가 없는 운동장으로 변하였다. ●송마리 4명의 친구 17살에 자원입대하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리면서 1950년 12월 21일 우리 동네 인천상업중학교 문병열, 인천해성중학교 이하수, 인천중학교 임면기 등 3명의 친구와 함께 나는 어리기 때문에 국민방위군은 아니었지만 국민방위군을 따라 걸어서 남하하였다. 우리 4명은 송마리, 영등포, 수원, 안성, 괴산, 문경, 의성, 영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 김해, 구포를 20일간 같이 걸어서 지나갔고 부산에서 한날한시에 함께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다. ●17살에 전사한 송마리 고향 친구 임면기 국립묘지에 누워 있는 임면기는 부모님께는 효자이고 또한 학구열이 강해 학교에서는 1등을 하는 수재였으며 인천중학교 4학년 때 같이 부산까지 내려가 자원입대하여 8사단에 배치되어 1951년 9월 20일 연기에서 전사하였다. ●17살에 전사한 송마리 고향 친구 문병열 국립묘지에 누워 있는 문병열은 정의감이 강해 남을 괴롭히는 일이 없었으며 토론을 할 때도 조정자 역할을 잘했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해내는 친구로 인천상업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하여 제5사단 35연대에 배치되어 1951년 5월 22일 전사하였다. ●17살에 전사한 송마리 고향 친구 이하수 국립묘지에 위패만 있는 이하수는 부모님이 늦은 연세에 낳은 외아들로 귀하게 자랐고 항상 명랑한 장난꾸러기로 인천해성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하여 8사단 16연대에 배치되어 1951년 8월 12일 강원도에서 전사하였다. ●강원도 백암산 전투 참전 우리 사단은 지리산 공비토벌 후 강원도 양구 쪽으로 이동해서 약 20일간 재편성을 한 다음 전투지역인 양구군 반상면 문등리 북방 백암산 전투지역으로 출동하게 되었다. 이 지역 전투를 마치고 그간의 병력 손실을 정비하기 위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재투입 되었으며 그곳에서 공비토벌 하면서 재정비하고 이듬해에 다시 854전투 지역으로 재투입되었다. 이후 막바지 휴전회담이 진행 중일 때 쌍방 간에 한 치라도 더 땅을 차지하려는 전투로 많은 병력 손실을 보게 되었다. 휴전이 된 이후에 나는 장기 군 복무를 신청해 각 부대를 전전하면서 국방의무에 충실하였다. ●3명의 친구는 결국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군 복무 연장을 신청했던 이유는 인민군 치하의 쓰라림을 같이 겪다가 1950년 12월 21일 함께 남하하여 군에 입대하였으나, 같이 자원입대한 3명의 친구인 인천상업중학교 문병열, 인천해성중학교 이하수, 인천중학교 임면기가 전사한 것 때문이었다. 나만 홀로 살아남아 고향 땅을 밟는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군에 그대로 남을 결심을 했던 것이었다. 1950년 12월 21일 날 송마리 4명의 동네 친구는 조국을 지키려고 고향을 떠나 부산진까지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여 함께 1951년 1월 10일에 입대하였으나 나 혼자만 1963년 4월 친구들이 함께 자원입대한 지 12년 3개월만에 파란 많은 군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3명의 이름 영원히 기억되길 기억해보니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4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름이지만 내 가슴 속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친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병열, 이하수, 임면기…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3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록해주려는 이경종·이규원 부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3회 계속 참전기 2회를 마치며 대곶면 송마리에서 태어나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부산진까지 20일간 걸어서 남하한 중학교 4학년이었던 동네 친구 4명이 있었다. 비록 고향 송마리 그 어디에도 전사한 3명의 중학생을 기억해주는 추모비는 없지만 먼 훗날에도 중학교 4학년 학생들의 애국심을 기억해주길 바라며 이 참전기를 기록한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씨줄날줄] 개 식용 반대 중복(中伏) 집회/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개 식용 반대 중복(中伏) 집회/최광숙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후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캐피털 힐튼 호텔에서 동포 간담회를 열었다. 이 호텔 앞에서 어울리지 않는 두 집회가 동시에 열려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재미동포들이 ‘촛불 대통령 힘내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문 대통령을 따뜻하게 맞았지만 다른 쪽에선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의 마지막 희망’ 회원들이 ‘개고기는 이제 그만’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지난 22일 중복을 맞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개고기 식용 문화를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21일(현지시간) LA총영사관 앞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이 ‘개는 음식이 아닌 가족’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한국의 개 도축 실태와 보신탕 문화를 지적하는 인쇄물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나눠 줬다. 이탈리아의 브람빌라 의원은 밀라노 시내에서 보신탕 풍습을 비난하는 ‘한국, 공포의 식사’라는 비디오를 상영하고 “한국인들이 개고기 식용을 중단하지 않으면 유럽이 평창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디 그뿐인가.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은 서울까지 진출했다. 최근 이들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쇠창살에 갇힌 개들의 모습과 함께 ‘보신탕 때문에 나는 가마솥으로’, ‘보신탕용 개 농장 1만 7000개’, ‘내 고기가 한 근에 7000원’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잇달아 열고 있다. 이들을 취재하는 외국 언론들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의 보신탕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되는 현장이다. 중복인 22일 서울 종로구 북인사마당에서는 전국의 동물보호단체연대 회원들이 개 식용 반대 집회와 함께 죽은 동물들의 위령제까지 열었다. 이들은 “한 해 도살되는 개 200만 마리 중에서 160만 마리가 복날에 도살된다”며 “한날한시에 대량으로 특정 동물을 때려잡아 먹는 악습은 정상적인 문명국가에서 취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는 안 되고 소·돼지·양·닭은 먹어도 되느냐’, ‘각 나라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인정하라’ 등의 반발도 있지만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에 이래저래 보신탕 문화는 퇴출 위기의 신세다. 요즘 반려동물을 가족 이상으로 대하는 이들이 점점 더 늘고 있으니 말이다. 애견인들은 복날이라고 외려 반려견에게 삼계탕 등 보양식을 만들어 주고 무더위를 견딜 수 있게 쿨매트까지 깔아 준다. 개·고양이 카페는 성황 중이고 이들을 위한 수제 간식 만들기도 유행이다. 탄산스파까지 받는 ‘상팔자’인 개도 있다. 양극화의 그늘이 개라고 예외는 아니다.
  • ‘옥자’ 불법유출…넷플릭스 “불법다운로드 줄일수 있다고 믿어”

    ‘옥자’ 불법유출…넷플릭스 “불법다운로드 줄일수 있다고 믿어”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기업 넷플릭스가 29일 전 세계적으로 공개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공개 첫날부터 불법유출됐다. 넷플릭스와 업계에 따르면 ‘옥자’ 영상은 이날 사용자끼리 파일을 공유하는 토렌트(Torrent) 등의 프로그램과 동영상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통해 불법적으로 유통됐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불법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대표작인 ‘하우스 오브 카드’ 등을 비롯해 다수의 콘텐츠가 이미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 등을 통해 유통된 바 있다. 넷플릭스 측은 “옥자 불법유출에 대한 고객들의 신고를 접수했다”며 “저작권 침해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권리 침해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넷플릭스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회원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한날한시에 만나볼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며 “창작자의 노력과 훌륭한 작품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자 하는 분들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소식”이라고 전했다. 넷플릭스는 “더불어, 근사한 작품들을 불법적인 방법이 아니고도 기다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을 포함해 글로벌 회원들이 저희의 콘텐츠들을 한날한시에 만나볼 수 있도록 부단히 애쓰고 있다”며 “이렇게 함으로써 불법 다운로드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이 저희의 서비스가 비교적 오랫동안 서비스된 지역에서는 확연히 불법 다운로드가 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옥자’는 개봉에 앞서 한국 3대 멀티플렉스(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극장 및 넷플릭스 플랫폼 동시 개봉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멀티플렉스 외 극장에서 상영된다. 또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의 플랫폼을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언니는 살아있다’ 오윤아, 화려했던 레이싱걸 사진 보니..‘리즈시절’

    ‘언니는 살아있다’ 오윤아, 화려했던 레이싱걸 사진 보니..‘리즈시절’

    오윤아의 레이싱걸 시절 모습이 새삼 눈길을 끌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SBS 주말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김순옥 극본, 최영훈 연출)에서 활약 중인 오윤아의 레이싱걸 시절 모습이 게재됐다. 공개된 사진에서 오윤아는 긴다리와 잘록한 허리 라인 등을 과시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윤아는 지난 2000년 레이싱 모델로 데뷔, 제1회 사이버 레이싱퀸 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170cm의 큰 키에 매끈한 S라인 몸매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 오윤아는 2004년 SBS 드라마 ‘폭풍속으로’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으며, 이후 드라마, 영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언니는 살아있다’는 한날한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 여자들의 사랑과 우정을그린 드라마다. 매주 토요일 밤 8시 45분 2회 연속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더팩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엔플라잉 ‘언니는 살아있다’ 카메오 등장 ‘FT아일랜드 이재진 지원사격’

    엔플라잉 ‘언니는 살아있다’ 카메오 등장 ‘FT아일랜드 이재진 지원사격’

    밴드 엔플라잉 SBS 주말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 카메오로 등장해 FT아일랜드 이재진과의 남다른 의리를 보여준다. ‘언니는 살아있다’는 한날한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 여자의 자립갱생기로, 여성들의 우정과 성공을 그린 워맨스 드라마다. 매회마다 펼쳐지는 김순옥 작가 특유의 흥미진진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엔플라잉은 ‘언니는 살아있다’ 3회에 카메오로 등장한다. 극중 엔플라잉은 이재진이 연기하는 재동의 친구들로 등장, 재동을 도와 하리(김주현 분)와 재일(성혁 분)의 결혼식 축하 밴드로 나선다. 특히 엔플라잉은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의 선배 아티스트인 FT아일랜드 이재진을 위해 카메오 지원 사격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훈훈함을 더한다. 엔플라잉과 이재진은 공연장이 아닌 드라마 촬영장에서도 매끄럽게 호흡을 맞추며 평소 돈독한 선후배 관계를 입증했다는 후문이다. 엔플라잉이 깜짝 출연하는 ‘언니는 살아있다’ 3회는 22일 오후 8시45분 전파를 탄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라이프 톡톡] “우리끼리 야구 가능”… 쌍쌍둥이 아빠의 ‘다이아몬드 꿈’

    [라이프 톡톡] “우리끼리 야구 가능”… 쌍쌍둥이 아빠의 ‘다이아몬드 꿈’

    “아이가 넷이라고 하면 대뜸 ‘부자신가 봐요’라는 반응부터 나옵니다. 요즘 애 키우는 일이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겠죠?”박주영(42) 금융소비자과장은 금융위원회 안에서 ‘쌍쌍둥이 아빠’로 통한다. 맞벌이를 해도 애 하나 키우기 어렵다는 요즘, 외벌이로 네 아이를 키우려 열심히 뛰는 용감한 가장이기도 하다. 첫째 시윤(11·여)과 둘째 성열이가 쌍둥이로 태어난 지 2년 만에 셋째 재윤(9)과 넷째 재민이도 한날한시 사이좋게 부부의 품으로 왔다. 세상사가 그렇듯 첨부터 계획된 건 아니었다. 교회에서 만난 아내와 2005년 결혼서약을 맺을 때만 해도 아이는 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후 연이어 쌍둥이가 나왔다. 부부 금술이 좋았던 게 죄라면 죄다. “네 명의 아이를 잘 키워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엔 부부도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이제는 늘 2배로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에 고마울 따름이다. 가장 힘든 시기는 아이가 넷이 된 초창기였다. “좀 적응할 만하니 갓난아이 2명이 또 나온 거잖아요. 주변에선 ‘4명이 한꺼번에 울면 어떻게 해요’라고 묻지만, 반대로 각자 따로 울면 참 난감한 일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밤에 1시간씩만 잠투정을 해도 부모는 꼬박 4시간을 못잡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두 쌍동이의 부모가 된 초보 아빠·엄마는 2010년 초 1년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말이 좋아서 유학이지 너무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택한 일종의 ‘육아휴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아내에게 가장 덜 미안했던 시기다. “요즘은 퇴근이 늦어 집에 가면 자는 애 얼굴만 볼 때가 많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늘 미안할 따름이죠.” 사실 다둥이어서 좋은 점도 무척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심심해할 일이 없다. 굳이 키즈카페 등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일상이 놀거리다. 놀아줄 사람도 넘친다. 물론 노는 것도 스케일이 다르다. 요즘 박씨 가족이 푹 빠져 있는 놀이는 야구다. 아버지를 포함해 5명이다 보니 융통성 있는 룰을 적용하면 편을 짜 던지고 치고 달리기가 가능하다. 아들들의 성화에 주말엔 스크린 야구장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다. 박 과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 재학 시절 행정고시(43회)에 합격했다. 공부라면 늘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지만 아이들이 본인처럼 자라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공부 외에는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전 공부만 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뭔가를 잘하고 또 즐길 줄 아는 아이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은 애 키우며 힘들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애들이 다퉈 심판 노릇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다툴 때 부모는 공평한 중재자가 돼 줘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다들 논리적이에요. 4명 이야기 듣다 보면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더라고요. 그럴 때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일이 너무 어렵더군요.” 그렇게 박 과장의 삶은 퇴근 후에도 천상 공무원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언니는 살아있다’ 장서희 “‘아내의 유혹’ 이후 9년만, 이미지 변신하고파”

    ‘언니는 살아있다’ 장서희 “‘아내의 유혹’ 이후 9년만, 이미지 변신하고파”

    배우 장서희가 ‘언니는 살아있다’를 선택한 이유를 언급했다.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 SBS 사옥에서는 SBS 새 주말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극본 김순옥, 연출 최영훈)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배우 장서희, 오윤아, 김주현, 다솜, 이지훈, 조윤우, 변정수, 손여은, 진지희가 자리했다. 과거 김순옥 작가와 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인연을 맺은 바 있는 장서희는 “‘아내의 유혹’ 이후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김순옥 작가님과는 지인으로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었다. 작품을 같이 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어 “이번에 우연치 않게 작가님이 ‘너 변신해보고 싶어 했잖아. 푼수 역할인데 같이 할래?’라고 말씀하셔서 같이 하게 됐다”며 출연 이유를 설명했다. 톱스타의 영광을 누렸던 한물 간 여배우 ‘민들레’ 역을 맡은 장서희는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그동안 강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편안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각오도 전했다. 한편, SBS 새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는 한날한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 여자의 자립갱생기로, 여성들의 우정과 성공을 그린 드라마다. 오는 15일 오후 8시 45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SBS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영화처럼…70년 해로한 부부 하루 차이로 세상떠나다

    영화처럼…70년 해로한 부부 하루 차이로 세상떠나다

    70년을 해로한 부부가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난 가슴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전해졌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지역일간지 올랜도 센티널은 세인트클라우드 솔라이스 요양원에 살던 엘머(93)와 루스 빌(89) 부부가 23시간 차이로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영화 '노트북'의 주인공들은 사고사가 아닌, 해로한 뒤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한날한시 세상을 떠났다. 영화와 같은 러브스토리를 연상시키는 이 아름다운 부부의 사연은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시절부터 이웃 마을에 살며 서로를 지켜 본 두 사람은 지난 1948년 9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슬하에 5명의 자식을 낳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오던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년 전이었다. 당시 부인 루스가 치매 판정을 받으며 지역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 것. 이후 남편은 매일 요양원을 찾으며 기억을 잃어가는 부인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이렇게 20년을 부인에게 헌신한 남편도 세월은 비껴갈 수 없었다. 지난해 암 판정을 받으면서 더이상 부인을 간호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손녀 딸인 크리스틴은 "생전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싶어했지만 조금이라도 먼저 죽고 싶다고 하셨다"면서 "그 이유는 할머니를 위해 저승가는 문을 잡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같은 바람 덕인지 남편 엘머는 지난 1일 오전 6시 10분 세상을 떠났으며 정확히 23시간 후에 부인 루스마저 편안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크리스틴은 "할아버지는 암이 악화돼 꼼짝 못하시기 전까지 할머니에게 헌신하셨다"면서 "진짜 영화같은 러브스토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쌍둥이 두 쌍·육해공 3부자·독립유공자 후손… 신임 장교 합동임관식 “충성”

    쌍둥이 두 쌍·육해공 3부자·독립유공자 후손… 신임 장교 합동임관식 “충성”

    8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장교 합동임관식’을 통해 소위 계급장을 어깨에 단 육해공군 신임 장교 5291명 가운데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도 두 쌍이나 포함돼 있다. 육군 3사관학교 52기 박만호(24)·면호(24) 소위와 육군 학군단(ROTC) 55기 양수영(24)·수민(24) 소위가 그들이다.박 소위 형제는 특히 아버지와 형에 이어 장교로 임관해 4부자 육군 장교 가족의 탄생을 알렸다. 아버지 박재기 예비역 중령은 육군 ROTC 22기, 형 박성호 육군 대위는 육사 69기 출신이다. 쌍둥이 형제는 “아버지와 형에 이어 육군의 명예를 드높이는 조국 수호의 간성이 되겠다”고 말했다. 육사 73기 강솔(25) 소위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에 걸쳐 육사 출신 장교의 길에 들어섰다. 할아버지 강경식 예비역 중령은 15기, 아버지 강철환 대령은 46기다. 해사 71기 김용현(25) 소위가 임관하면서 육해공군 3부자 가족도 탄생했다. 아버지 김경서 대령은 공사 38기 출신이고, 동생 김용인 생도는 육사 76기로 입교해 2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2년 뒤 김 생도가 임관하면 창군 이래 처음으로 3부자가 동시에 육해공군 장교로 현역 복무하는 사례가 된다. 육군 ROTC 55기인 신윤철(25) 소위는 육군 ROTC 27기인 아버지 신희현 육군 준장의 뒤를 잇는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동생 신보혜씨는 57기로 ‘3부녀 학군 장교’ 탄생을 앞두고 있다. 해사 71기 박희재(24) 소위와 3사 52기 이철홍(24) 소위는 각각 의병활동과 3·1운동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대를 이어 조국을 지키는 영광을 안게 됐다. 육군 ROTC 55기 김하늘(24) 소위는 6·25 참전 영웅의 외손녀다. 6·25전쟁 당시 통신병으로 복무했던 김 소위의 외조부는 북한군에 잡혀 포로수용소에 3년 동안 수용됐다가 탈출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신임 장교들은 각 군과 병과별 초등군사반 교육과정을 거쳐 육해공군과 해병대 일선 부대에 배치된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美 97세 쌍둥이 할머니, 낙상사고로 운명… 한날한시 태어나 한날한시 잠들다

    美 97세 쌍둥이 할머니, 낙상사고로 운명… 한날한시 태어나 한날한시 잠들다

    미국의 97세 쌍둥이 할머니들이 한날 고작 7.6m 떨어진 곳에서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로드아일랜드주에 거주하는 진 영 헤일리(오른쪽)와 마사 영 윌리엄스(왼쪽) 자매는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함께 외출해 평소 즐겨 찾아갔던 식당에서 여느 때처럼 오붓하게 식사를 한 뒤 헤일리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잇따라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당시 최저기온은 영하 21도, 체감온도는 영하 29도나 됐다.현지 경찰에 따르면 윌리엄스가 먼저 자동차로 가려고 걷다 발을 헛디뎌 쓰러졌고, 헤일리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차고로 들어가려다 이어 참변을 당했다. 이웃들은 다음날 아침에야 저체온증으로 숨을 거둔 자매의 시신을 발견했다. 윌리엄스의 딸 수전은 6일 쌍둥이 자매가 한날한시 태어나 함께 세상을 떠났으며 서로를 구하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애썼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생전의 자매는 서로가 없었더라면 살아가기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전에 따르면 두 할머니의 성격은 딴판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순수하고 고결한 성격이었고 이모는 짓궂고 유머가 넘쳤다. 하지만 둘 다 웃기를 좋아하고 함께 외식하는 것을 즐겨 주변에선 모두가 두 할머니를 알고 있었다. 수전은 “둘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서로를 완성시키는 존재였다”며 “어머니를 통해서는 모든 이를 친절하고 겸손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고 이모를 통해서는 삶의 열정에 고무됐다”고 되돌아봤다. 윌리엄스는 생애의 절반 이상을 배링턴에서 보낸 뒤 딸과 함께 이스트 프로비던스의 럼퍼드 마을에서 7년 정도 살았다. 헤일리는 60년 이상을 배링턴 수변지구에서 지냈는데 두 사람이 살던 집은 자동차로 고작 20분 거리에 불과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 이야기] 한날한시 죽자는 구두계약…끝까지 살아남은 유비는 정당한가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 이야기] 한날한시 죽자는 구두계약…끝까지 살아남은 유비는 정당한가

    드디어 군사를 일으킨 삼형제! 유비와 관우는 장비에게 서주성의 방비를 다짐받고, 황제를 사칭하는 원술을 공격하기 위해 출전한다. 하지만 장비는 여포에게 서주성을 빼앗기고 목숨으로 죗값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때 유비는 장비에게 도원결의를 되새기면서 꾸짖는다. 조조가 장료를 통해 관우의 항복을 설득할 때도 마찬가지. 이때도 역시 설득의 수단은 ‘싸우다 비참하게 죽는 것은 생사를 함께하기로 한 맹세를 지키지 않는 것’이라는 도원결의! ※원저 : 요코야마 미쓰데루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서로를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굳은 약속의 대명사로서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도원결의! 생사의 결정적인 기로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도원결의! 그중에서도 한날한시에 죽겠다는 약속! 그것만큼 비장미가 넘치는 멋진 약속이 있을까? 그런데 훗날 관우가 여몽에 의해 죽었을 때 유비와 장비는 관우를 따라 죽지 않는다. 장비가 자신의 부하인 장달과 범강에게 살해당할 때에도 유비는 죽음을 함께하지 않는다. 이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비는 동생들의 죽음에도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유비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말로만 한 맹세는 무효야” 통할까 먼저, 유비는 ‘그거 계약서 쓰고 도장 찍은 거 아니잖아. 그냥 말로만 한 거니까 무효야’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이 과연 타당할까? 한날한시에 함께 죽자는 약속은 세 사람 사이의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계약은 서면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도원결의는 천지신명께 피로써 맹세했을 뿐 문서로 남겨놓지는 않았다. 이처럼 구두(口頭)로만 이루어진 계약이 유효한 것일까? 저승에서 만난 관우와 장비가 유비에게 도원결의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따지면 유비는 말로 한 계약이라서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계약은 반드시 문서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구두로만 체결하더라도 적법한 계약으로 인정될 수 있다. 계약은 당사자 사이에서 말로 하든 서면(書面)으로 하든 자유롭게 그 형식을 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구두로만 계약을 체결했다면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입증하기가 어렵다. 상대방이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나아가 계약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항상 문서로 남겨놓는 것이 중요하다. 유비와 손권은 동맹을 맺고 적벽에서 조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손권은 당연히 형주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유비가 발 빠르게 형주를 먼저 점령한다.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의 반환을 요구한다. 유비는 ‘유장이 지배하는 촉을 차지하면 형주를 꼭 반환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한다. 그 후 유비는 유장의 항복을 받아내고 촉의 성도에 입성한다. 유비가 촉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손권은 형주의 반환을 요구한다. 하지만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한다.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결국 손권은 부하인 여몽이 관우를 죽인 후에야 형주를 차지한다. 만약 이때 유비와 손권의 ‘형주 반환 계약’을 문서로 남겨 놓았더라면 관우로서도 발뺌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유비로서는 이런 주장도 할 수 있다. ‘도원결의? 그거 어차피 서로를 존중하자는 거지, 실제로 한 명이 죽으면 나머지 두 명이 따라서 같이 죽자는 건 아니잖아? 그 정도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거 아냐?’ 민법에도 이런 생각을 규정한 조문이 있다. 바로 제107조에 ‘의사표시는 표의자(表意者)가 진의(眞意) 아님을 알고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관우와 장비도 어차피 ‘한날한시에 죽는다’는 약속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관우, 장비와 죽음을 함께하지 않은 유비를 책망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계약은 무조건 무효 유비는 ‘한날한시에 함께 죽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 한 명이 죽으면 동반자살을 하자는 건데, 그거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과연 이런 주장이 통할 수 있을까?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는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을 의미한다. 즉, 계약의 내용이 사회의 도덕과 질서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무효가 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생명을 뺏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내용의 계약은 어떠한 형태로든 인정될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빚을 갚지 못한 바사니오에게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이 계약에 따라 살 1파운드를 잘라내려고 한다. 이때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샤가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겉으로는 피를 흘리지만 않으면 1파운드의 살을 잘라가도 된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체를 처분하는 계약은 선량한 풍속에 위반되어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다는 생각이 기본에 깔려 있는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승리했지만 유일하게 공이 없는 장수가 딱 한 명 있다. 바로 관우다. 관우는 하비성을 조조에게 빼앗기면서 세 가지의 조건을 걸고 항복한다. 그중 하나는 유비의 생존이 확인되면 즉시 유비에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토마를 비롯한 많은 선물을 준다. 하지만 관우의 마음은 항상 유비에게만 있다. 관우는 유비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군의 다섯 관문을 돌파하면서 6명의 장수를 죽인다. 하지만 조조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관우로서는 조조의 은혜를 모른 채하기 어렵다. 이런 사실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제갈량은 관우를 적벽대전 출전명단에서 제외한다. 그러자 관우는“내가 조조의 목을 베지 못하면 내 목을 내놓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관우는 적벽에서 조조의 처참한 모습을 보곤 그대로 살려 보낸다. 이 경우 제갈량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장담한 관우의 목을 벨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관우가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제안한 계약은 사회질서에 위반한 계약으로 무효이기 때문이다. ●도원결의, 사리사욕 없는 약속의 징표 관우의 죽음에 유비와 장비가 도원결의에 따라 함께 자결을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유비, 관우, 장비가 법적으로 형제가 될 수는 없다. 한날한시에 함께 죽자는 결의 역시 법적으로는 무효다. 삼형제도 어쩌면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지러운 세상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큰 뜻에 서로의 마음이 일치한 것이다. 후세 사람들도 그런 뜻에 공감해 사리사욕이 없는 굳은 약속의 징표로 도원결의를 인용하는 것 아닐까? 양중진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의형제 맺은 유비·관우·장비… 법적 형제로 될 수 있나요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의형제 맺은 유비·관우·장비… 법적 형제로 될 수 있나요

    동양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삼국지’는 세상의 흥망과 성쇠, 그리고 얽히고설킨 인간 군상(群像)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음모와 지략, 배신과 협력이 뒤범벅된 군웅들의 이합집산은 우리에게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묻고 있기도 하다. 삼국지에 투영된 복잡다기의 인간사를 21세기 현시대의 법률은 어떻게 해석할까. 매주 1회씩 그 답을 풀어 본다.광무제가 후한(後漢)을 건국한 지 160년. 정권은 부패하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이런 틈을 타 장각은 후한 타도를 내걸고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후한은 난을 제압할 힘이 없어 세상은 혼돈으로 빠져든다. 이때 유비, 관우, 장비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괴롭히는 황건적을 소탕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한눈에 뜻이 맞은 그들은 누상촌의 복숭아꽃 아래에서 맹세한다. 비록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한날한시에 죽기를 기원하며 형제가 되기로 하는데, 이름하여 도원결의(桃園結義). ※ 원저 : 요코야마 미쓰데루(橫山光輝) ※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 유비, 관우, 장비는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의형제가 되기로 맹세했다. 그들은 부모가 다르고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 호형호제를 넘어 법적으로도 형제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친족이 된다면 어떤 법적인 효과가 생길까? 우선 친족이 되면 민사적으로는 상속권, 부양의무 등이 생긴다. 형사적으로도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같은 범죄라도 친족 관계라면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일부 범죄는 처벌받지 않기도 한다. 먼저 민사적인 효과에 대해 살펴본다. ●관우 유품은 1순위 양아들 관평의 몫 사람이 재산을 남기고 죽은 경우 그 재산은 누가 물려받게 될까? 민법상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의 방계 혈족이 상속인이 될 수 있다(민법 제1000조). 상속인이 여러 명 있다면 어떻게 될까? 1순위로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공동 상속인이 된다.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상속을 받는다면 다른 후순위 상속인은 상속권이 없다. 도원결의가 법적으로 유효해 형제 관계가 새로 만들어진다면 유비, 관우, 장비는 서로 상속권을 갖게 된다. 관우는 맥성에서 여몽에게 포로로 잡혀 양아들 관평과 함께 참수됐다. 유비와 장비가 형제로서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상속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1순위 상속권자인 관평이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관우에게 다른 직계존속이나 배우자가 없어야 한다. 이 경우 상속분은 얼마나 될까? 유비와 장비가 같은 순위로서 각각 2분의1이 된다. 만약 관우에게 관평 이외에 다른 아들과 부인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는 부인과 다른 아들이 1.5대1의 비율로 상속한다.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형제인 유비와 장비보다 우선해 상속권을 갖기 때문이다. 부양의무는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돌봐야 하는 의무다. 그런데 법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민법에서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경우에만 부양의무를 지우고 있다(민법 제826조, 제974조). 유비와 그의 아내인 미부인이 조조에게 신야성을 빼앗기고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이다 보니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 유비는 마지막 식량으로 주먹밥 한 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 경우 전쟁을 위해 유비가 주먹밥을 혼자 먹어도 될까? 그렇지 않다. 유비는 미부인과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면제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비가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미부인을 부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미부인은 유비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민법에서 이혼 사유 중 하나로 ‘배우자를 악의로 유기’한 경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제840조 제2호). 친족 간의 부양의무는 좀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 관우와 장비도 피난길에 올랐다. 대장인 유비도 먹을 것이 부족했는데 관우와 장비는 오죽했을까. 관우도 갖고 있는 것이라곤 주먹밥 반 덩이뿐이었는데 먹성 좋은 장비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이 경우 부양의무는 어떻게 될까? 장비가 관우에게 “형제간의 부양의무가 있으니 나누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친족 간의 부양의무는 부양해야 하는 사람에게 경제적 여력이 있을 때에만 인정된다. 그런데 관우도 장비를 부양할 처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관우가 주먹밥 반 덩이를 한입에 털어 넣어도 장비가 도원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항의할 수 없다. ●친족의 범위 ‘배우자·혈족·인척’ 구분 우리 민법은 친족을 ‘배우자, 혈족(血族), 인척(姻戚)’(민법 제767조)으로 구분한다. 그중 배우자,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이 민법상의 효력이 미치는 친족 관계다. 먼저 배우자란 혼인 신고를 마친 부부의 한쪽을 말한다. 혼인 신고를 마치지 않은 동거나 사실혼의 관계에 있는 남녀는 법적 부부도 아니고, 따라서 친족이 될 수 없다. 혈족은 자연혈족과 법정혈족으로 나뉜다. 자연혈족은 말 그대로 피로 맺어진 관계다. 출생과 같이 자연적으로 연결돼 있는 사이를 의미한다. 반면 법정혈족은 법적인 행위를 통해 혈연관계가 인정되는 사이다. 양자(養子)와 양부모(養父母) 사이가 이에 해당한다. 관우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유비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군의 다섯 관문을 돌파해 유비와 재회한다. 이때 기주에 살던 관정은 잘 곳이 없던 유비와 관우에게 방과 음식을 제공했다. 관정은 평소 관우를 존경했다. 관우에게 자신의 아들 관평을 거두어 주길 청했다. 관우는 관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관평을 기꺼이 아들로 삼았다. 관우와 관평은 입양을 통해 법정혈족이 된 것이다. 인척은 혼인으로 생긴 친척이다. 배우자의 혈족이 이에 해당한다. 유비는 손권의 여동생인 손상향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유비와 손권은 적(敵)에서 인척이 된 것이다. 그것도 법적 효과가 미치는 4촌 이내의 인척이 된 것이다. 촉나라의 군주 유비와 오나라의 군주 손권은 가깝고도 먼 인척이었던 것이다. ●민법상 형제자매 될 수 있는 규정 없어 본래의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인데, 도원결의를 통해 법적인 효과를 받는 의형제가 될 수 있을까? 민법은 법정혈족이 될 수 있는 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입양을 통해 양자와 양부모 사이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형제자매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안타깝지만 유비와 관우, 장비는 법적으로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관우는 관평을 입양해 친족 관계가 됐다. 그런데 한날한시에 죽기로 결의를 한 유비, 장비와는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상속권을 가질 수 없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의 분신과도 같은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상속받을 수 없다. 도원결의까지 한 터에 너무 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방법이 있다. 바로 유증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증은 죽음과 동시에 증여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이 경우는 친족 관계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다만 관우가 죽기 전에 미리 의사 표시를 해 놓았어야 한다. “내가 죽으면 적토마는 유비에게, 청룡언월도는 장비에게 주라”고. 양중진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양중진 부장검사 고려대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29기. 법무부 부대변인과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검사, 광주지검 공안부장, 대전지검 공주지청장을 역임했다. ■최선아 민화가 성신여대 공예과 졸업. 한국민화협회·민수회 회원이자 현 법련사 불일미술관 학예연구원. 제35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특선(2014년), 한국민화협회 제9회 전국민화공모전 특선(2016년)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진 민화가.
  • 서울·도쿄서 한날한시 “대한 독립 만세”

    국가보훈처는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 선포 98주년 기념식이 8일 서울과 일본 도쿄에서 동시에 열린다고 7일 밝혔다. 서울 기념식은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주관으로 오전 11시 서울 YMCA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과 광복회원,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같은 시간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도 재일본 한국YMCA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린다.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이 정부 대표로 참석하고, 박유철 광복회장과 이준규 주일대사, 교민 등 250여명이 함께할 예정이다. 1919년 2월 8일 최팔용, 이광수 등 조선청년독립단 소속 남녀 조선유학생 600여명은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 자극받아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자 도쿄 조선YMCA회관에서 유학생 대회를 열어 이광수가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결의문을 채택했다. 2·8 독립선언은 곧바로 국내 민족지도자와 학생들에게 알려져 3·1운동의 큰 계기가 됐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함께하는 기업 특집] 두산, 20개국 8000명 직원 한날한시 한마음 나눔

    [함께하는 기업 특집] 두산, 20개국 8000명 직원 한날한시 한마음 나눔

    두산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을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의 임직원이 같은 날 동시에 각 사업장 인근 지역사회 이웃을 돕는 ‘두산인 봉사의 날’은 두산 사회공헌 활동의 자랑이다. 2014년 10월 첫 행사 이후 두산 고유의 사회공헌 문화로 자리잡은 ‘두산인 봉사의 날’은 올해 4월 15일에도 세계 20개국에서 8000여명이 참여했다. 소외계층 청소년들이 사진을 매개로 주변을 관찰하고, 경험을 나누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인 ‘시간 여행자’도 호평을 받고 있다. ‘시간 여행자’는 지난해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국민 행복에 기여한 모범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2년 시작된 정서 함양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366명이 교육을 지원받았다.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이라는 연강 박두병 초대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78년 설립된 두산연강재단을 통해 장학금과 학술연구비, 교사 해외연수, 책 보내기 등의 다향한 교육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 붉은 닭볏의 기운 푸른 여명 깨우다

    붉은 닭볏의 기운 푸른 여명 깨우다

    닭볏을 쓴 龍의 형상… 무속인들 사이엔 기도발 잘 통하는 신령스러운 山 닭띠 해가 코앞이다. 새해가 가까워질수록 누구나 자신만의 결의를 다지는 의식을 준비하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해맞이 산행이다. 성찰의 자세로 된비알을 오르고 해를 품은 가슴 그대로 현실의 바다로 내려온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충남 공주의 계룡산은 닭의 해에 송구영신의 의식을 치르기 맞춤한 산이지 싶다. 용의 몸통에 닭 볏을 한 모양새라니 말이다. 국립공원 가운데 작은 축에 속하지만 그래도 천황봉 너머로 솟구쳐 오르는 해돋이는 장엄하다. 닭 볏 같은 암릉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맛도 각별하다. 계룡산은 신령스럽게 여겨지는 산이다. 무속인들에게 특히 그렇다. 신라시대엔 5악의 하나로 분류돼 제왕들의 제사 터로 쓰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얽힌 전설도 많다. 요즘엔 덜하지만, 십수년 전만 해도 계룡산에서 수도했다는 것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무속인들이 많았다. 기도발이 잘 통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요즘도 갑사 주변에선 점집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계룡산은 전체적인 형태가 닭 볏을 머리에 단 용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최고봉인 천황봉(845m)을 중심으로 연천봉과 문필봉, 삼불봉, 관음봉 등 엇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조밀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 모습이 닭 벼슬을 쓴 용을 닮았다는 것이다. 조선 개국 당시 무학 대사가 “금계포란(錦鷄抱卵)과 비룡승천(飛龍昇天)의 명당이 합쳐진 형국이니 계룡이라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던 것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천황봉과 바로 옆의 쌀개봉(830m)은 현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둘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는 삼불봉(775m)이지만, 많은 무속인들이 기도처로 삼는 곳은 관음봉(766m)이다. 관음봉은 한때 높이가 816m로 표기됐지만, 실측 자료에 따라 최근 고도 표기가 바뀌었다. 등산 코스는 대략 5개 정도로 나뉜다. 등산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건 동학사 코스다. 한데 동학사를 오를 때 보느냐, 내려올 때 보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이 뒤바뀐다. 먼저 ‘지옥 코스’. 동학사에서 은선폭포를 거쳐 관음봉, 삼불봉, 남매탑을 거쳐 다시 동학사 쪽으로 내려온다. 계룡산탐방안내소를 기준으로 8.6㎞에 이르는 코스다. 계룡산의 여러 등산로 중 가장 힘들어 ‘마(魔)의 코스’라고도 불린다. 은선폭포까지 평이한 등산로가 이어지다 관음봉 바로 밑에 형성된 애추지형(너덜바위 지대)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 여기서 관음봉까지 약 1.3㎞ 동안 인내를 시험하는 급경사길이 이어진다. 예전엔 너덜지대를 걸어서 올랐다. 최근 너덜지대 위에 목재 데크를 깔아 우회 탐방로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오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저 악명 높은 치악산의 사다리병창 구간에 견줄 만하다. 동학사 못미처 세진정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남매탑 아래 약 600m 정도의 급경사 구간을 올라야 한다. ‘천당 코스’로 표현되는 구간은 천정골 코스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로, 동학사 상가에서 천정골 쪽으로 우회전해 큰배재~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를 거쳐 동학사로 내려온다. 거리는 7.8㎞로 계룡산의 주요 볼거리를 비교적 완만한 코스를 이용해 돌아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갑사 쪽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다. 금잔디고개를 거쳐 삼불봉을 거쳐 하산하는 짧은 코스와 동학사까지 가는 긴 코스가 있다. 신원사, 상신마을 등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이번 여정에선 천정골 코스로 올랐다. 천황봉 위로 솟는 해를 보자는 뜻에서다. 물론 ‘지옥 코스’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바람도 작용했다. 동학사 상가 지역이 끝나는 곳에서 천정골 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천장이길’이 시작된다. 등산로는 평이한 편이다. 문골삼거리 지나 큰배재까지 가는 동안 몇 차례 오르막 구간이 나오지만 그리 급하지는 않다. 이 구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풍경은 남매탑이다. 청량사지 쌍탑이라고도 불린다. 오층석탑(보물 제1284호)과 칠층석탑(보물 제1285호)이 나란히 서 있다.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두 개의 탑 가운데 칠층석탑을 오라비탑, 오층석탑을 누이탑이라 부른다. 오뉘탑엔 그럴싸한 전설도 깃들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이렇다.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당승 상원 대사가 이곳에서 움막을 치고 수도할 때였다. 어느 날 그는 목에 가시가 걸린 범 한 마리를 구해 줬다. 이튿날 범은 보답으로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스님은 처녀를 정성껏 치료한 뒤 돌려보내려 했으나 하필 큰 눈이 내렸고, 둘은 꼼짝없이 한 움막에서 겨울을 나야 했다. 이듬해 봄 스님은 처녀를 고향에 데려다줬으나 그에 대한 연모의 정이 뼈까지 스민 처녀는 부부의 연을 맺자고 애원했다. 처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던 스님은 의남매를 맺자고 했고, 둘은 평생 불도를 닦다 한날한시에 입적했다. 남매탑은 계룡산을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다. 계룡 8경에는 ‘남매탑 명월’로 이름을 올렸다. 남매탑 너머로 보름달 뜨는 모습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할 때의 풍경도 이에 못지않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남매탑 명월’과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한밤중에 오르내려야 할 테니 말이다. 남매탑에서 삼불봉까지는 급한 오르막길이다. 삼불봉은 3개의 봉우리로 이뤄졌다. 그 모양새가 꼭 세 부처의 모습과 닮았다. 삼불봉에서 관음봉 방향으로는 자연성릉이 펼쳐져 있다. 직벽에 가까운 아찔한 암릉이 펼쳐진 구간이다. 그 너머로 관음봉, 쌀개봉, 천황봉이 불끈불끈 솟았다. 우리 선조들은 바로 이 장면에서 ‘닭 볏을 쓴 용’의 모습을 떠올렸던 게다. 자연성릉 구간을 계룡산 산행의 백미로 꼽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성릉 구간을 아슬아슬 지나면 곧 관음봉 초입이다. 관음봉은 쉽사리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400개에 달한다는 계단을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로 올라야 한다. 관음봉에 서면 멀리 계룡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성계가 조선 개국 초기에 새 도읍지로 정하려 했다는 신도안이 바로 여기다. ‘기도발’이 세다는 이유에서인지 1970~80년대에 무려 100여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이후 종교정화운동을 통해 계룡산 주변의 굿당과 기도터 등을 정리했지만 아직도 많은 무속인들이 계룡산에 기대 살고 있다. 관음봉에서 동학사 방향으로 내려서면 곧 너덜지대가 시작된다. 여기가 바로 계룡산 ‘마의 코스’다. 계단이 놓여졌다고는 하나 내려가는 것도 만만하지 않을 만큼 경사가 급하다. 이 구간을 거슬러 오른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급경사 구간이 끝나는 곳에 은선폭포가 있다. 계룡산의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히는 폭포지만 겨울철에 계곡수가 줄면서 형편없는 몰골이 되고 말았다. 은선폭포에서 동학사까지는 완만한 산길이다.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동학사는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이름난 절집이다. 단아하고 깔끔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 폐위 소식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는 숙모전이 경내에 있다. 글 사진 공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호남고속도로지선의 유성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가장 알기 쉽다. 이어 국립대전현충원을 지나 고개 하나 넘으면 곧 동학사 입구다. 산행의 피로는 유성온천에서 푼다. →맛집:동학사 초입에 산채정식 등을 내는 음식점들이 몰려 있다. 연잎밥을 내는 집도 몇 곳 있다. 동학사 인근 반포면의 어씨네 본가(852-7372)와 갑사 가는 길(853-1300)은 장어구이와 참게 매운탕으로 쌍벽을 이루는 집이다. 엄마의 식탁(881-8212)은 우엉밥정식과 연잎밥정식 등을 정갈하게 차려 내는 집이다. 갑사가 있는 계룡면 쪽에선 장순루(857-3498)를 들러 볼 만하다. 공주 시내의 동해원(852-3624)과 더불어 ‘매서운’ 짬뽕으로 명성을 날리는 곳이다. 국산 홍초로 맛을 낸 고추짬뽕이 인기다. →잘 곳:동학사 초입에 펜션, 모텔 등 수많은 숙박 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새벽 산행을 위해 동학사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싶다면 계룡산호텔(042-825-4020)을 권한다. 옛 호텔을 최근 리모델링해 넓고 깨끗하다.
  • 100만 ‘평화 촛불’… “靑 결단하라” 국민의 명령

    100만 ‘평화 촛불’… “靑 결단하라” 국민의 명령

    100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1987년 6·10항쟁 때에 버금가는 규모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효순·미선양 추모집회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지난 12일 또 다른 역사를 썼다. 역대 최대로 꼽히는 2008년 6월 10일 광우병 촛불집회에 모인 70만명(주최 측 추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100만명이 갖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 약 5167만명의 2%가 한날한시에 한곳에 모여 한목소리를 냈다. 부산, 광주, 대구, 제주 등 지방 대·소도시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답을 내놓을 때라고 이들은 말했다. ●가족·친구 손잡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 1500여개 시민·사회·노동단체로 이뤄진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2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주최 측은 100만명, 경찰은 26만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집회에는 주최 측 구성원뿐 아니라 가족, 친구 단위의 일반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오후 5시를 넘어서부터 경복궁역 삼거리 방향으로 행진이 시작됐고, 다시 돌아와 광화문광장에서 집회가 이어졌다. 일부는 경복궁역 삼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인내 대응’ 기조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30분까지 시민들과 대치하다 해산 작전에 돌입했다. 대치 과정에서 경찰 8명과 의경 4명이 다쳤고 시민 26명도 경상을 입었다. ●“퇴진 때까지… 26일 대규모 집회” 주최 측은 박 대통령이 퇴진의 뜻을 밝힐 때까지 촛불집회를 매주 이어 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14일부터 지역별로 중소 규모의 집회와 시국선언을 이어 가고 주말인 오는 19일에는 4차 촛불집회를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이어 26일 5차 촛불집회는 다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로 개최할 방침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00만명이란 숫자는 정국에 대한 민심을 확인하는 바로미터”라며 “1987년처럼 격렬한 투쟁이 아닌, 가족이 참여하는 대규모 평화적 집회는 1987년보다 더 다양하고 폭넓은 국민의 여론과 지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진보, 보수, 청년, 노인, 지역과 무관한 국민의 총의를 정치권에서 빨리 수용하지 않는다면 사회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한날한시, 20분 차로 세상 떠난 63년 해로 부부

    한날한시, 20분 차로 세상 떠난 63년 해로 부부

    한 부부의 사랑은 죽음도 갈라 놓을 수 없었다. 9일(이하 현지시간) 미 CNN등 현지언론은 63년을 해로한 부부가 20분 차이로 세상을 떠난 영화같은 사연을 보도했다.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보여준 아름다운 사연의 주인공은 사우스 다코타주(州) 플래트에 살았던 헨리 드 란지(86)와 그의 부인 자넷(87).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인 헨리는 63년 전 자넷과 결혼해 5명의 자식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이어오던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5년 전이었다. 부인 자넷이 알츠하이머로 지역 내 양로원 생활을 하게된 것. 이에 남편 헨리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양로원을 찾아 부인을 만났다. 그러나 '세월의 병'은 남편에게도 찾아왔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들 리는 "아버지가 양로원에 보내달라고 말해 어머니와 같은 방에 입실했다"면서 "한 방에 함께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보였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이별의 순간은 지난달 31일 찾아왔다. 부부의 건강 상태가 좋지않다는 양로원의 연락을 받고 자식들이 모였고 이날 오후 5시 10분 경 부인 자넷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20분 후 남편 역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들 리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자 천천히 눈을 감으셨다"면서 "그리고 5분 후 아버지 역시 어머니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죽음은 없을 것 같다. 하나님의 가호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금융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금융개혁 필요성’ 국내 금융사 CEO 20명에게 물어보니

    [금융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금융개혁 필요성’ 국내 금융사 CEO 20명에게 물어보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나 계좌이동제, 기술금융도 결국엔 ‘땅따먹기’(고객 뺏어오기)와 다를 바 없다.”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얘기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그의 발언. “정부가 ‘선진 금융’이라고 힘주어 포장한 상품들을 모든 은행들이 한날한시에 ‘땅’ 하고 내놓는다. 그런데 상품 내용이 다들 고만고만하니 대출 금리나 수수료를 깎아 주고, 예금 이자를 더 얹어 주며 고객을 한 명이라도 뺏어오려고만 한다. 이런 땅따먹기 게임에선 선진 금융기법은 없고 (정부에 보여 주기 위한) 실적 경쟁만 남게 된다.” 금융 당국은 ISA와 계좌이동제, 안심전환대출, 비대면실명확인서비스 등 새로운 금융 서비스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금융개혁 마중물’이라는 강조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금융권은 “정부가 (정책 출시에 드는) 비용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불만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올 4월 일임형 ISA를 출시하기 위해 전산을 새로 개발하고 인력 채용 및 교육에 적지 않은 비용을 들였다”며 “앞으로 수익은 얼마나 될지 투입 비용을 모두 건질 수 있을지 계산조차 어려운데 은행들이 적자를 보면서까지 고객 가치를 계속 실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CEO는 “정권이 바뀌면 도루묵이 될지도 모르는 일에 선뜻 큰 비용을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 현장에서 ‘유효기간 1년 반(박근혜 정권 남은 임기)짜리 정책과 상품’이라며 반발해도 자신 있게 ‘믿고 따라오라’고 설득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금융개혁이 추진력을 얻으려면 역대 정권에서부터 되풀이되어 온 민(民)과 관(官) 사이의 불신을 걷어내야 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CEO들 새 정책·서비스 ‘투자보다 비용’ 인식 특히 정책 지속성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정부 때 강조했던 ‘녹색금융’은 현 정권 들어 ‘기술금융’으로 자리바꿈됐다. 조선업 구조조정 실패로 뭇매를 맞고 있는 산업은행은 정권에 따라 정책금융공사를 떼었다(2009년 이명박 정부) 붙였다(2015년 박근혜 정부) 하며 2500억원만 날렸다. 한 카드사 임원은 “당국은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정권 교체 때마다) 그렇게 단명한 상품을 수도 없이 봐 와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런 ‘학습효과’ 탓에 CEO들에게 새 정책이나 새 서비스는 ‘투자’보다 ‘비용’으로 더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CEO들이 금융개혁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신문 설문조사에 응한 국내 금융사(은행·증권·보험·카드 등) CEO 20명은 ‘국내 금융산업 선진화에 기여했다고 생각되는 서비스’로 현 정권이 도입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51.34%)를 가장 많이 꼽았다. A증권사 임원은 “비대면 실명 확인은 점포와 실명거래 위주의 기존 영업 관행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뒤는 ‘계좌이동제’(20%)가 차지했지만 ‘비대면 실명확인’ 응답과의 격차가 컸다. ‘간편결제’(14.28%), ‘ISA’(8.57%), ‘인터넷전문은행’(5.71%) 등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보였다. 금융 당국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서는 CEO들 모두 100% 찬성 입장을 보였다. ‘발전적인 경쟁 문화가 자리 잡으면 서비스나 실적 개선에 도움 될 것’(75%)이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대못 규제 철폐·해외진출 활성화 반드시 필요” B은행장은 “전 산업을 통틀어 호봉제가 적용되고 있는 유일한 업종이 은행업”이라며 “오히려 정부가 성과주의를 도입하라고 얘기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당연히 추진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은 노조 반발을 의식해 섣불리 성과연봉제 카드를 협상 테이블 위에 꺼내 놓지 못했을 뿐이라는 고백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권 보신주의를 뿌리뽑고 성과주의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며 ‘거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다만 금융권이 생각하는 금융개혁의 선(先)과 후(後)는 금융 당국과 온도차가 있었다. CEO들은 ‘절절포’를 가장 많이 외친다. 절절포는 임 위원장이 NH농협금융 회장 시절 범금융인 대토론회에서 ‘규제 완화는 절대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발언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금융 당국은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그동안 1064건의 법령 규제 중 211건을 개선했다. 그림자 규제는 700건 중 43건으로 줄었다. CEO들은 ‘반드시 필요한 금융개혁’을 묻는 질문에 ‘대못 규제 철폐 내지 완화’(20.83%), ‘해외진출 활성화’(20.83%)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뒤는 ‘금융 노사관계 개혁’(16.67%), ‘낙하산 및 관치금융 차단’(12.5%) 및 ‘고객 중심의 금융서비스 제공’(12.5%) 등이 차지했다. C은행 임원은 “축구장에서 왼발 슛을 잘 날리는 선수가 있고 어시스트에 능한 선수가 있는 것처럼 은행마다 특성과 장기가 다 다른데 이런 기량을 자유롭게 펼칠 여건이 잘 안 된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비대면 실명확인→계좌이동제→ISA→사잇돌대출(중금리대출) 등 금융 당국이 정해 놓은 타임스케줄에 따라 모든 금융사들이 허겁지겁 따라가기 바쁘다는 것이다. ●MB정부 이후 끊임없이 금융감독 체계 개편 제기 D은행 부행장도 “2014년 금융 당국과 은행들이 모인 기술금융 태스크포스(TF)에서 기술금융 부작용을 언급했던 한 금융사 임원은 이후 회의에선 아예 발언권조차 얻지 못했다”며 “이런 상명하복식 분위기에서 어떻게 금융사가 자유롭게 당국과 소통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겠느냐”고 털어놓았다. 여전히 금융 당국이 ‘심판’ 대신 ‘코치’ 역할을 하려 한다는 볼멘소리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대한 주장이 끊임없이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 교수는 “지금의 금융개혁에는 금융사와 소비자에 대한 부분은 있지만 정작 금융 당국 개혁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다”며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을 분리한 이후 부작용과 비효율성이 적지 않은 만큼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금융산업의 특성상 금융 당국 스스로 심판과 코치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반론도 있다.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 교수는 “2011년 미국 월가 시위 이후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금융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고 소비자 보호와 관련한 민감한 사태가 터졌을 땐 여론재판이 극심하다”며 “이런 풍토에선 금융 당국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고 자꾸 코치 역할을 하려는 유혹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고 강변했다. 실제 2014년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그해 초 터진 카드 고객 정보 1억건 유출 사건 책임을 지고 중도 해임됐다.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 명예교수는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선 관료들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유혹은 (연임이 쉽지 않은) 금융사 CEO들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금융사의 유전자(DNA)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 맡겨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이해 당사자인 금융사 경영진 및 주요 주주의 개혁 의지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며 “(금융사들은) 정부 때문에 개혁이 안 된다고 책임을 떠넘기지만 금융사의 의지 부족도 개혁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경영자들 관치금융에 오랫동안 순치’ 지적도 특히 글로벌 금융사로의 도약 과정에서는 정부 지원 못지않게 금융사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 CEO 중에 글로벌 DNA가 부족한 사람이 적지 않다”며 “선진 금융 경험이 많은 유능한 인재를 CEO로 과감하게 영입하고 글로벌 인재를 키워 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부 승계를 통해 CEO를 배출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며 “금융권 경영자들이 관치금융에 너무 오랫동안 순치돼 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설문에 참여해 주신 분(가나다순)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 박종복 SC제일은행장,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유구현 우리카드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이경섭 농협은행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이병찬 신한생명 사장, 이원태 수협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조웅기 미래에셋증권 사장,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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