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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리 인선 만만디… ‘박근혜 정부’ 정상 출범 발목 잡을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선을 위한 장고(長考)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 처리 일정 등을 감안하면 총리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박 당선인은 여전히 뜸을 들이고 있다. 박 당선인 측 관계자는 5일 “인선 문제에 관해선 정확히 언제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당초 이번 주초에는 총리 후보자나 청와대 비서진 인선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국회 동의 절차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한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에는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한다”고 돼 있다. 때문에 심사 또는 청문 기간을 최대 20일로 잡았을 때, 여야가 합의한 대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려면 6일쯤에는 후보 지명 등이 끝나야 한다. 박 당선인도 이날 경북지역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선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조만간 하겠다. 조만간 해야 하지 않겠나. 곧 하겠다”라고 말해 인선이 마무리 단계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용준 낙마’의 학습효과로 인해 정부 각 부처에 인사검증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는 등 사전검증을 강화하면서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2의 낙마사태를 막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력 후보군에 대해 강도 높은 검증을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북한 핵실험 등 안보 문제가 긴급한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박 당선인이 전적으로 인선에만 신경 쓸 수 없게 됐다는 점도 장고가 이어지는 이유로 꼽힌다. 일부에서 총리 후보자 발표가 설 연휴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청문회법상 20일은 최대한의 시간으로 큰 문제가 없는 인사의 경우 총리 후보자는 10일 정도, 장관 후보자들은 7일이면 인사청문을 마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계산법에 따르면 인선 마감시한이 설 연휴 뒤인 15일까지 늦춰질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민주통합당 등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 심의 등 난제가 맞물려 있어 순항을 기대하긴 힘든 실정이다. 때문에 오는 25일 ‘박근혜 정부’의 정상 출범이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5년 전인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가 정부 출범 뒤로 미뤄졌다.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첫 국무회의는 노무현 정부의 한덕수 총리가 주재하는 등 ‘한 지붕 두 가족’의 모습이 연출됐다. 김대중 정부 때는 더 심했다. 김대중 정부는 2월에 출범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김종필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8월에야 국회를 통과해 국무위원 제청도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총리가 해야 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고위 공직자 검증기준 그때 그때 달라지는 ‘원칙의 박근혜’

    고위 공직자 검증기준 그때 그때 달라지는 ‘원칙의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박 당선인은 31일 새누리당 소속 경남지역 의원들과 오찬을 하며 “그 시대의 관행들도 있었는데 40년 전의 일도 요즘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 같다. 하마평에만 올라도 (언론이) 검증에 들어가 거꾸로 가족과 본인한테 피해가 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날에도 “인사청문회에서 죄인 취급하듯이 몰아붙이면 누가 후보자가 되려 하겠느냐. 청문회라는 것이 일할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조금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말했다고 한다. 김 전 후보자도 최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밝힌 사퇴 발표문에서 언론 검증의 문제점을 주장했고, 윤 대변인도 김 전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 보도에 대해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가 아니라고,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사청문회와 여론 검증이 후보자 본인과 가족의 신상을 털어 창피를 주는 무대로 변질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 전 후보자의 두 아들이 어린 나이에 부동산 투기로 큰 재산을 갖게 됐고, 체중 미달과 통풍 등 석연찮은 이유로 군 면제를 받았다면 이에 대한 의혹 제기가 국민 시각에선 합당하다는 견해가 더 많다. 알 권리 차원에서도 당연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후보자는 전임 정권 때부터 낙마 원인의 ‘단골 메뉴’였던 부동산 투기와 병역 기피, 논문 표절, 위장 전입 중 두 가지에 해당됐다. 오히려 사전에 이를 알고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 인사권자의 판단과 ‘그 시절엔 다 그랬지’라고 생각한 김 전 후보자의 의식이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당선인도 수차례 ‘국민의 눈높이’ 인사를 강조했다. 그가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점으로 꼽은 것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으로 상징되는 인사 실패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임명 철회 9명, 조기 경질 1명, 인사청문회 무산 6명, 청문경과보고서 불채택 3명 등 총 19명이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8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사와 관련, “어떤 분이 일을 제일 잘할 수 있을까. 이 분은 국민 눈높이에서 어떨까 생각하면서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인선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난 도덕성 논란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 걸리고 그러잖나. 국민이 볼 때 아마 저만 한 인품과 경력이면 좋다, 이런 공감대는 (형성)돼야 하지 않겠나. (밀어붙이면) 절대 안 된다.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랬던 박 당선인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 전 후보자 사태로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에 부정적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철통 보안을 위해 공식적인 ‘검증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으면서 역으로 인사청문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해 8월 기자간담회 발언과 배치되는 태도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도 이날 라디오에서 “(박 당선인이) 시야를 넓히면 도덕적으로 존경받고 능력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면서 “주변에서만 사람을 찾다 보니 본인도 망신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특별사면 강행] 비리 측근들 ‘보은 사면’ 무리수… 신·구 권력 갈등 골 깊어질 듯

    [특별사면 강행] 비리 측근들 ‘보은 사면’ 무리수… 신·구 권력 갈등 골 깊어질 듯

    임기를 26일 남겨 둔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여론의 반대를 무시하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최측근들이 포함된 특별사면을 강행하면서 신·구 권력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특사가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아니라 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강조했지만, 박 당선인 측은 “이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직설적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특사에 대해서는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 지적과 함께 최악의 측근 봐주기 특사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만큼 이 대통령은 국민적인 비난에 휩싸이며 정치적 입지도 급격히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권 인수인계를 앞두고 박 당선인과의 불편한 관계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퇴임을 앞둔 이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특사에서 최 전 위원장을 비롯해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측근을 대거 포함시킴으로써 국민의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특별사면하는 등 역대 대통령도 임기 말 비리에 연루된 측근을 풀어 주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측근 중의 측근’을, 그것도 장관급의 ‘거물’을 대거 포함시킨 것은 유례가 없었다. 최 전 위원장, 박 전 의장 등은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인 ‘6인회’ 멤버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의 30억원 당비 대납 논란에 빠질 만큼 막역한 친구 사이다. 결국 임기 말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마지막엔 ‘사적 관계’를 우선시해 ‘보은’이라는 무리수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번 사면도 그 원칙에 입각해서 실시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의장과 김 전 수석이 연루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2008년 7월)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2008년 광복절 특사를 단행하면서 “임기 중 발생하는 부정·비리에 대해서는 공직자와 기업인을 불문하고 단호히 처리할 것”이라고 밝힌 점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대통령이 이날 사면안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강만수 산은 금융지주 회장, 김인규 전 KBS사장, 안경률 전 의원 등에게 무더기로 국민훈장을 수여키로 한 것도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또 다른 ‘측근 챙기기’라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때문에 여야도 모두 한목소리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은 “권력형 범죄를 저지르고도 형기를 마치지 않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특별사면한 것은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측근은 권력의 특혜하에 법을 어기고 대통령은 권력의 특사로 법치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 아니냐”며 “조선시대 임금도 이런 무도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힐난했다. 김성수 기자 sskim@seoul.co.kr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대통령취임식 총감독에 ‘명성황후 연출’ 윤호진

    대통령취임식 총감독에 ‘명성황후 연출’ 윤호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제18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는 2월 25일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부위원장과 위원 6명을 선임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김진선 취임준비위원장은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공식기자회견장 브리핑에서 “위원회는 실무형 최소 규모, 즉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8명으로 구성해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취임준비위 부위원장에는 박 당선인이 옛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 유정복 의원이 선임됐다. 위원에는 안효대 의원과 임종훈 인수위 행정실장, 강지용 제주대 산업운용경제학과 교수(전 제주 하이테크산업진흥원장), 윤호진 전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교수, 박명성 신시뮤지컬 컴퍼니 대표, 손혜림 경기도 문화의전당 사장이 선임됐다. 이 중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과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을 지낸 윤 전 교수는 취임식 행사의 총감독으로 임명됐다. 윤 전 교수는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 연출하기도 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무명’ 유민봉 비밀병기 관측… 변호사 출신 이혜진도 깜짝인사

    ‘무명’ 유민봉 비밀병기 관측… 변호사 출신 이혜진도 깜짝인사

    4일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3선 강원지사와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김 위원장은 오는 2월 25일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의 준비 작업을 총괄하게 된다.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인수위원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1998년 제32대 강원도지사 당선 이후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세 차례 강원도지사를 연임했다. 재임 중 동계 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체제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활동해왔다. 김 위원장은 1946년 강원 동해 출신으로, 북평고와 동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제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공직에 입문해 강원도 기획담당관 및 영월군수, 강릉시장, 경기도 부천시장, 강원도 행정부지사, 강원도지사 등을 거쳤다. 외교국방통일 분과 간사에 임명된 김장수 전 의원은 노무현 정권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내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18대)을 지낸 국방 정책 분야 전문가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국방안보 분야 공약을 성안했다. 야전 주요 지휘관과 정책부서의 작전·전략 분야의 핵심보직을 거쳤다. 그는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박 당선인의 외교안보 공약을 최대한 정책으로 발전시키겠다”며 “외교, 국방, 통일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로 임명된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는 친박 진영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인물로 통한다.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정책 조언도 하지 않았고 새누리당의 대선 캠프에서도 활동하지 않았다. 현재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 중인 행정학자로 리더십 분야를 전공했다. 정부의 공기업경영평가위원회에 참여했지만 뚜렷한 정치성향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박 당선인의 행정 정부 개혁의지를 실천할 ‘비밀병기’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유 교수는 앞으로 전체 인수위 9개 분과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혜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간사는 언론에 깜짝 인사로 알려졌지만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부산시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박 당선인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이후 눈에 띄는 사회활동도 없었고 중앙 정치 무대에서 비교적 활동을 자제해 왔다는 평이다. 부산지역에서 줄곧 변호사와 교수로 활동해 온 법조인이자 교육자로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18기)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로 개업했다. 개업 초기 이혼 등 가족관련 사건을 주로 다뤄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2006년 3월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임용돼 현재 민사소송법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3일 일부 언론에 인수위원으로 거명됐지만 이날 최종 포함됐다. 언론에 미리 알려질 경우 즉시 임명을 철회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다른,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커버스토리-1983 과천 vs 2013 세종] 행정 비효율성 ‘불만’ 주거·의료시설 ‘불편’ 초등학교 교실 ‘부족’

    ‘정부세종청사 시대’가 열렸다. 수도권 집중현상을 막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해 2002년 대선 공약으로 등장한 지 10년 만이다. 하지만 주거시설과 편의시설, 초등학교 교실 부족으로 입주민의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교실 부족은 수요예측이 빗나간 탓이다. 가장 큰 문제는 행정의 비효율성. 특히 국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수시로 서울을 오가느라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물리적인 부처 이전은 이뤄졌지만 행정 형태는 여전히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에 부합하는 ‘행정 콘텐츠’가 도입되지 않은 탓이다. 행정 전문가들과 공무원들은 행정 콘텐츠가 바뀌지 않는 한 고위직 공무원들의 자리 비우기로 인한 행정공백 사태는 과천청사 때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과천청사에서는 외부 회의 참석에 한나절이 걸리지만 세종청사에서는 하루를 허비하고도 다음 날 출근이 빠듯하다. 자리를 비우는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국회를 핑계댄다. 주요 정책 결정이 이뤄지기까지 국회와 수없이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 여의도의 국회를 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한 공무원은 “지금처럼 공무원들이 우르르 국회에 몰려가야 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행정 비효율, 낭비는 불 보듯 뻔하다”며 “국회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이 떼 지어 국회를 방문하는 이유로 ▲국회의원의 권위의식 ▲대면보고 관행 ▲소신없는 공무원 행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화나 서면보고로 가능한 업무도 직접 자료를 갖고 들어와 보고하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공무원은 “서면 제출이나 전화로 업무를 처리할 경우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것이냐’는 호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의도를 방문한다”고 말했다. 별것 아닌 것도 대면보고를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수준 낮은 질문도 공무원들을 국회로 출근토록 만드는 원인이다. 한 공무원은 “국가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 지엽적인 문제까지 들고 나와 장차관을 호통치는 바람에 해당 실·국 사무관 이상 간부들이 모두 국회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소신 없는 정치 공무원의 ‘눈도장 찍기’ 관행도 문제다. 국회의원에게 밉보이면 국정감사를 비롯, 예·결산 때 질타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유력 의원들이 부처 공무원의 승진·보직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어 국회 방문을 고집하는 공무원도 있다. 행정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 의사결정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김권집 충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의사결정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청와대·국회 눈치를 살피거나 사전 내락받는 행정 관행에서 벗어나 장차관이 업무를 확실히 파악하고, 부처별 책임을 강화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세종시에 ‘국회 분원(分院)’을 설치하는 방안도 대안이다. 박수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할 수는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도 행정 비효율을 막자는 취지이다. 박 의원은 “세종시에서도 국회 상임위 등 일부 회의 개최를 가능하게 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주거 부족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분양한 대부분의 아파트가 입주하는 내년 말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종합병원, 대형 쇼핑몰 등도 2~3년 안에 들어설 예정이다. 의료시설 부족 문제는 충남대병원이 2016년까지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지을 경우 급한 불이 꺼진다. 병원 설립에 따른 행정 지원이 필요하다. 교실 부족 문제는 아파트 입주 시기에 맞춰 단지 주변에 학교를 짓되 수요를 정확히 예측, 교실 수를 조정해야 풀린다. 대중교통체계 정비를 위해서는 인접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요구된다. 생활권이 대전, 조치원, 천안 등과 연계됐기 때문에 이들 지역을 잇는 서민 교통수단 확충이 필요하다. 도시정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세종시로 이전하는 대학, 민간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행정적 지원을 해줄 필요도 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취임식에 대통합·민생 의미 담겠다”

    김진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4일 “취임식은 검소하게 치르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당선인이 지향하는 국민대통합, 민생대통령 정부의 의미를 잘 담을 수 있는 취임식을 준비하겠다”면서 “새정부가 잘 출범할 수 있도록 주어진 범위 내에서 취임식을 준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선인의 뜻과 여러분의(국민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운영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을 하게 될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이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위원회 위원장 직도 함께 맡고 있어 임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상관없다. (취임준비위원장은) 새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까지 두 달간 잠깐 도와드리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위원회 관련 업무도 병행하면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준비위원장에 선임된 이유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저의 여러가지 행정 경험이라든지, 선출직 도지사로서의 경력이라든지, 그런 점들을 고려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는 “처음 도지사에 출마할 때 박 당선인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에 진출해 정치를 시작한 시기가 비슷해 그때부터 알고 지냈다”며 박 당선인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정부, 위안부 해결 노력 미흡’ 헌재결정 반대… 野 “헌법 정신 훼손”

    ‘정부, 위안부 해결 노력 미흡’ 헌재결정 반대… 野 “헌법 정신 훼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대구·경북(TK) 출신으로 4기 재판관 가운데서도 보수적 색채가 가장 짙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지방법원장이던 2006년 한나라당의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에 발탁돼 지난해까지 헌재 4기 재판관으로 재직했다. 서울가정법원장,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추진위원, 헌재 3대 헌법연구부장 등도 역임했다. 보수 성향의 정통 법관 출신으로 민·형사법뿐 아니라 공정거래, 지적재산권, 조세 분야의 식견도 두루 갖췄다. 이 후보자가 지명됨에 따라 ‘5기 헌재’에서 보수 흐름이 강화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양성 퇴색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 후보자는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과 차기 정부의 이념적 성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초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이 후보자 지명에 앞서 박 당선인 측과도 상의해 동의를 얻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헌재의 다양성 문제와 관련해 재판관 9명 가운데 이정미(고려대 법대), 김창종(경북대 법대), 안창호(서울대 사회대) 재판관을 빼면 3분의2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서울대만 따지면 9명 중 7명이다. 또 검찰 출신인 박한철 재판관은 대검 공안부장, 안창호 재판관은 대검 공안기획관을 거친 공안 분야 출신인 탓에 재야 법조계의 비난을 샀던 터다. 이 후보자는 재판관 재임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냈다. 당시 재판관 8명 가운데 6명이 한정 위헌 의견을 밝혔으나 이 후보자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선거운동에 준할 정도의 영향력 있는 표현 행위가 가능해질 경우 후보자 간 조직 동원력, 경제력에 따른 불균형이 발생할 소지도 충분하다”며 반대 의견을 고수했다. 반면 2005년 서울고법 특별부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신효순·심미선양 가족이 검찰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검찰이 보유한 미군 수사 기록 대부분을 공개하라고 판결해 진보 계열 시민단체의 환영을 받은 적도 있다. 이언주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이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헌법의 기본 정신을 훼손한 인사”로 규정,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는 보수 편향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정체불명의 인사”라면서 ▲2011년 3월 ‘친일 재산 환수는 헌법에 부합한다’는 헌재 결정 당시 일부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제시한 점, ▲같은 해 8월 헌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반대 의견을 낸 점을 사례로 들며 비판했다. 청와대는 조만간 국회에 이 후보자에 대한 헌법재판관 겸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민주당의 지명 철회 요구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김성수 기자 sskim@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공직 파워우먼] (17) 환경부

    [공직 파워우먼] (17) 환경부

    환경부 본부와 소속기관 직원들 가운데 여성(기능·계약직 포함)의 비율은 33%(1941명 중 648명)를 차지해 여성 파워를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고위공무원인 여성 국장은 2명에 불과하다. 이필재 국장과 박미자 새만금지방환경청장이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국토해양부 4대강 추진본부에 파견 됐다가 복귀한 이필재 국장이 맏언니 격이다. 이 국장은 행시 29회로 환경부 최초(사무관·과장·국장)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녔다. 국립환경인력개발원장, 환경보건정책관 등을 거쳤다. 본부 송재용 환경정책실장과 최흥진 자원순환국장이 동기들이다. 직원들은 “이 국장의 성격이 시원시원한 데다 네트워킹에 강하고, 꼼수를 용납하지 않는 강한 리더십과 실력을 겸비해 남자들보다 강한 면모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다음으로는 박미자 새만금지방환경청장을 꼽을 수 있다. 박 청장은 지난해 8월 초 승진 발령되면서, 환경부 역사상 최초 여성 지방환경청장으로 등극했다. 박 청장은 행시 35회로 자원순환정책과장, 환경보건정책과장 등 환경부 주요 보직을 거쳤다. 본부 박광석 대변인과 동기이고 보건복지부 양성일 연금정책관(국장)이 동기이자 남편이다. 쾌활한 성격에 직원들을 아끼고 배려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환경부 본부와 소속기관까지 과장급 여성 공직자는 총 12명이다. 이 가운데 고시· 비고시를 통틀어 연륜으로 이지윤 환경보건정책과장(부이사관)이 가장 고참인데 ‘화학물질통’으로 불린다. 전공인 화학과 출신답게 2008년 화학물질관리 과장을 맡아 최장수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1월부터 환경보건정책관실의 주무 과장을 맡고 있다. 구미 불화수소산 누출 사고 수습 때문에 누구보다 정신없이 보낸 사람 가운데 하나다. 정은해 지구환경과장은 본부 국제 업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아직 싱글인 정 과장은 ‘언제 결혼할 거냐’는 동료들의 짓궂은 질문에 ‘아직 때가 안 됐다’며 느긋한 웃음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다음으로 환경부 여성 파워 중에는 유호 수생태보전과장, 조은희 화학물질과장, 정선화 자연자원과장이 고참으로 분류된다. 모두 화학물질 부서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을 가졌고, 환경부의 차세대 여성파워 계보를 잇는 인물들이다. 유 과장은 국제사무관 특채로, 조·정 과장은 기술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정선화 과장은 환경부 공무원노동조합이 선정하는 ‘닮고 싶은 간부 공무원’으로도 뽑혔다. 친화력이 좋아 간부들이 서로 욕심을 내는 과장 중 하나다. 세 과장 모두 업무 능력과 추진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성지원 규제개혁법무담당관, 서인원(행복청 파견), 김효정 뉴미디어홍보팀장도 파워우먼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김은경·김지영·양한나·김호은 과장도 주목받는 인물들이다. 김효정·김은경 과장은 톡톡 튀는 스타일과 특유의 입담으로 조직 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김효정 과장은 각종 업무 협상에서 실력과 엄살로 상대를 제압, ‘공직의 여우’로도 불린다. 이 밖에 무보직 서기관 중에는 정책총괄과 홍경진, 지구환경담당관실의 최민지 서기관이 두각을 나타낸다. 홍 서기관은 일본에서 교수로 재임하다가 2004년 사무관으로 특채됐다,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전문성으로 무장한 인재 중 하나이다.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전문가 100인에게 물어본 새해 경제] 경제 수장감으로 김종인·이한구·김광두 순 꼽아

    [전문가 100인에게 물어본 새해 경제] 경제 수장감으로 김종인·이한구·김광두 순 꼽아

    경제민주화, 위기 극복, 화합. 31일 전문가들이 새 정부 경제수장 적임자로 김종인(73)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꼽으면서 들었던 키워드다. 누가 경제수장이 되든 꼭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민감한 질문이라 100명 중 42명만 답했지만, 응답자의 23.8%(10명)가 김 전 위원장을 추천했다. 경제부총리 부활에 대해서는 찬성이 많았다. 68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15명에 그쳤다. 김 전 위원장을 추천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공약 1번이 경제민주화였고 김 전 위원장이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새 정부 초기에 김 전 위원장이 직접 경제민주화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후반부에 추진됐던 의료보험제도가 김 전 위원장의 손을 거쳤다는 점,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점 등 과거 경력도 반영됐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노영훈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혁신적 마인드”를 강점으로 꼽았다. 김 전 위원장은 총리 등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다음으로 이한구(68)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1.9%(5명)를 차지했다. 이 대표는 행정고시 7회 출신으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이재과장과 대우경제연구소장,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등을 거친 ‘친박계 대표 경제통’이다.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있어 경제 사안에 밝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광두(66) 서강대 명예교수를 경제수장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9.5%(4명)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박 당선인을 도와 온 ‘5인 공부모임’ 출신으로 당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를 만들었다. 이어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세워 원장을 맡고 있다. 시장주의를 강조하는 정통 ‘서강학파’의 좌장이며, 선대위에서 힘찬경제단장을 맡았다. 강태영 포스코경영연구소장은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인물로 시장정책에 소신이 있다”고 평가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도 “경제학에 풍부한 지식을 갖췄고 새 정부 기조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58·경북 경산) 새누리당 의원도 3명으로부터 적임자 평가를 받았다. 그 밖에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각 2명), 강만수·윤증현 전 재정부 장관(각 1명) 등 전·현직 장관들도 거론됐다. 정책추진의 연속성 등이 이유였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경제·산업부 종합 ■ 설문에 참여해 주신 분 (가나다순) ●강만수 KDB금융그룹 회장 ●강태영 포스코경영연구소장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 ●김경배 금융투자협회 이사 ●김규복 생보협회장 ●김 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극수 무역협회 기획실장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성수 코트라 글로벌기업협력실장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지환 하나대투증권 센터장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홍인 현대그룹 상무 ●노영훈 조세연 선임연구위원 ●문재우 손보협회장 ●문홍성 ㈜두산 전략지원실장 ●민병덕 국민은행장 ●민왕일 현대백화점 재경담당 상무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박상규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박상협 코트라 해외투자지원단장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 ●박연채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종갑 대한상의 조사2본부장 ●박찬영 신세계 경영기획실 상무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 ●변양규 한경연 거시정책연구실장 ●서동면 삼성그룹 상무 ●서민우 KT 상무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송형근 무역협회 미래산업실장 ●송홍선 자본시장연 펀드연금실장 ●신광철 롯데미래전략센터 이사 ●신동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승관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신창목 삼성연 수석연구원 ●양갑수 중기중앙회 국제통상실장 ●안홍진 효성 전무 ●여은주 GS그룹 전무 ●오석태 SC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오성진 현대증권 센터장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오혁종 코트라 정보기획실장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사설] 친박, 당선인에게 대탕평의 길 터줘라

    5년 전 17대 대선이 끝나고 벌어진 신 권력실세들의 군무(群舞)를 우리는 기억한다.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라는 인사들은 핵심 권력을 쥐기 위해 치열한 내부 암투를 벌였다. 그들 주변엔 새 정부에서 한 자리 차지해 보려는 자들로 차고 넘쳤다. 10년 전 16대 대선 직후엔 어떠했던가.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그야말로 점령군을 연상하게 했다. 민주계를 비롯해 집권당 내에서조차 ‘친노’가 아니면 설 자리가 없었다. ‘비노’ ‘반노’ 세력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리고 이런 권력 암투와 배척은 집권 기간 내내 인사 잡음과 국정 난맥으로 이어졌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은 물론 그들 자신에게 되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곁엔 충성도나 결집력에 있어서 과거 ‘친노’나 ‘친이’ 세력을 능가할 만한 ‘친박’ 세력이 있다. 5년 전 18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한나라당 공천 파동으로 상당수가 풍찬노숙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나, 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박 당선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끝내 오늘의 그를 만들어냈다. 지난 시절 특정 계파가 수장의 금력과 공천권에 의해 좌우됐던 것과 달리 이들은 박 당선인의 정치 철학과 국정 이념을 충성의 디딤돌로 삼았다는 점에서 과거 계파와는 분명 차원을 달리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의 시험무대는 지금부터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과 차기 정부 인선 작업을 벌이게 될 향후 두 달간 친박 인사들의 거취와 행동거지가 어떠한가에 차기 정부의 성패가 갈린다. 박 당선인은 그제 대국민 인사를 통해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대탕평 인사를 펴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마땅한 일이다. 박 당선인은 더 이상 특정 계파의 수장이 아니라 5000만 대한민국의 리더다. 나라의 인재를 모아 쓰는 데 네 편과 내 편, 지역과 세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김무성 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에 이어 이학재 후보 비서실장이 차기 정부에서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친박은 아니지만 “역할이 끝났다.”며 짐을 싼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과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위원장도 있다. 이 대열이 늘어나기 바란다. 박 당선인이 마음 놓고 대탕평의 장정에 나설 수 있도록 활짝 길을 터줘야 한다. 실세들의 암투는 물론 ‘실세’라는 말 자체가 이젠 사라져야 한다.
  • 조카 사랑 각별… 여동생과는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 후 소원

    조카 사랑 각별… 여동생과는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 후 소원

    박근혜 당선자는 독신이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 사이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박 당선자는 어머니를 1974년 8월 15일 저격범 문세광의 손에, 아버지를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잃는 비운을 겪었다. 여동생 근령(58)씨와 남동생 지만(54)씨, 이들과 결혼한 신동욱(44) 전 백석문화대 교수, 서향희(38) 변호사가 당선자와 가장 가까운 피붙이 및 배우자다. 지만씨 부부 외아들로 초등학교 1학년인 세현(7)군은 당선자의 유일한 친조카다. 박 당선자는 각종 인터뷰에서 “단란한 가족을 보면 저 가족의 행복을 지켜드리고 싶다.”고 말해 왔다. 비운의 가족사를 겪으면서 평범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내외는 당선자 남매를 엄격하게 훈육했다. 어린 시절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특권의식이 몸에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박 당선자는 1999년 쓴 ‘나의 어머니 육영수’에서 어머니에 대해 “부드러운 성품이셨지만 훈육방식은 엄했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당선자가 성심여중 때 우연히 관용차량을 타고 등교했던 날 따로 불러 꾸짖을 정도였다고 한다. ●친·외가 대식구… 정·관·재계 ‘화려’ 지만씨는 16살 때 어머니를, 육군사관학교 3학년인 21살 때 아버지를 총탄에 잃고 방황을 거듭했다.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이후 31살 때인 19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이후 2002년까지 다섯 차례나 구속됐다. 그러나 고 박태준 전 총리의 도움으로 삼양산업(현 (주)EG) 부사장으로 취직한 이후 안정을 찾게 된다. 2004년 16살 연하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했다. 서씨는 전북 익산 출신으로 부산 중앙여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박 당선자는 지만씨 부부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동생이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니 지나온 날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서향희는) 동생과 아주 잘 어울리는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라고 썼다. 그의 조카 사랑은 유별나다. 2005년 9월 서향희씨가 세현군을 낳자 “우리 가문의 귀한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문에 귀한 선물을 안겨준 올케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고….”라고 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당선자는 조카 소식을 듣고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던 도중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가 최고회의 중간에 나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07년 잃고 싶지 않은 세가지로 ‘조카 세현이’를 꼽았다. 최근 한 여성지 인터뷰에선 조카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태어나서 저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면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면 케이크가 없어도 허공에 대고 후후 하면서 촛불을 끄는 척하기도 한다.”고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케에 대한 박 당선자의 애정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동생인 근령씨와는 몇 차례 갈등을 겪은 뒤 소원한 사이다. 경기여고,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근령씨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언니의 개인비서를 자청해 활동하다 10·26을 맞았다. 198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90년 귀국한 근령씨는 언니로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3남매 간에 운영권을 놓고 18년여간 지리한 다툼이 이어진 끝에 자매 사이는 틀어졌다. 근령씨는 현재 한국재난구호 총재,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 세계바둑표준화협회 이사장 등의 직함을 갖고 있다. 올해 4·11 총선 때 무소속으로 어머니 고향인 충북 보은·옥천·영동에서 출마했지만 곧 사퇴했다. 지만씨 부부는 몇 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저축은행 비리로 수감 중인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의 개인 친분, 서 변호사가 이 회사 법률고문을 맡았던 전력 등이 그것이다. 서 변호사는 결혼 이후 활동 반경을 크게 넓혀 왔다. 씨엔에이치(CNH) 감사, 케이엠에이씨(KMAC) 사외이사,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공제조합 운영위원, 코오롱 법률고문 등 각종 사외이사, 법률고문 경력이 화려하다. 2009년 4월엔 대전고검장을 지낸 이건개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주원을 설립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지난해 주원에서 탈퇴해 법무법인 새빛을 설립, 공동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 이후 별다른 경력이 없던 서 변호사의 약진은 박 당선자의 후광 효과라는 말도 나왔다. 서 변호사는 2007년 뉴욕과 바하마를 다녀온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고 2009년엔 하루 81홀을 도는 철인골프대회에 출전해 화제를 뿌렸다. 이런 그에 대한 언론 관심도 지대하다. 서 변호사가 지난 7월 세현군 영어연수 차 홍콩으로 출국한 것을 두고 박 당선자의 사전 가족관리라는 세간의 평도 나왔다. 근령씨와 2008년 10월 결혼한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는 14살 연하이다. 두 사람 모두 재혼이다. 근령씨는 1982년 풍산그룹 창업자의 아들과 결혼했다 6개월 만에 이혼한 바 있다. 신 교수는 부산 성도고, 경상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영화 수입 일을 하다 호서대 벤처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5년 말 한나라당 디지털정당 위원장에 응모, 한나라당 전국위원이 돼 정계에 입문했다. 2008년 총선 때 서울 중랑을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떨어졌다. 신 교수는 지난해 8월 박 당선자와 지만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이다. 박 당선자는 직계가족은 단출하나 친인척들은 친·외가 양쪽으로 화려하다. 정·관계는 물론 사돈관계를 통해 연결된 기업인과 재벌가 인물들이 많다. 정치권에선 박 당선자의 사촌오빠이자 4선을 지낸 박재홍 전 의원, 외삼촌인 5선 육인수 전 의원,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한승수 전 총재가 있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 2인자로 김대중 정부 때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씨 남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조카사위다. 한 전 총리는 육영수 여사 언니인 인순씨 딸 홍소자씨와 결혼했다. 박 당선자에게도 한 전 총리는 사촌형부가 된다. 한 전 총리의 사위가 고 김진재 전 국회의원 아들인 김세연 국회의원이다. 박 당선자의 이모인 육인순씨는 전 혜원학교 이사장을 지냈고 남편 홍순일씨 사이에 3남 5녀를 뒀다. 딸 소자씨는 대한적십자사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딸 은표씨와 재희씨는 정치인과 결혼했다. 은표씨는 재무부국장, 농수산부 장관 등을 지낸 장덕진 전 의원과, 막내 재희씨는 기업인이자 11대 국회의원이었던 윤석민 전 의원과 결혼했다. 윤 전 의원의 경우 자신이 운영하던 기업(서주산업) 명의로 불법 융통어음을 발행해 32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김희철·허동수 회장 등 ‘사돈 인연’ 박 당선자의 막내이모 육예수씨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조태호씨와 결혼했다. 선거운동 때 박 당선자 지원유세에도 나섰던 가수 은지원씨는 5촌 조카로 박 전 대통령 누나인 귀희씨 손자다. 재계 쪽으로는 친가 사돈관계를 통해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등이 연결되어 있다. 박 후보 친사촌인 박설자씨가 벽산그룹 김인득 창업주 둘째 아들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과 결혼했다. 김 회장 형인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은 허동수 GS 칼텍스 회장 누나 허영자씨와 결혼해 먼 관계이기는 하나 허 회장과 박 당선자는 사돈지간이다. 친인척이 많다 보니 이에 얽힌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다. 박 당선자 사촌인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친박연합’을 만든 뒤 3500만원을 받고 시의원 공천을 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지난해 9월엔 박 후보의 5촌 조카인 박용수씨가 또 다른 5촌인 박용철씨를 채무 등의 이유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첫 여성대통령 시대] 친박계 전·현의원 주축…정책라인이 ‘싱크탱크’

    [첫 여성대통령 시대] 친박계 전·현의원 주축…정책라인이 ‘싱크탱크’

    이번 대선에서는 ‘주연’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못지 않게 ‘조연’ 역할을 한 측근 인사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중앙선거대책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선거 기구에서 위원장과 본부장, 단장, 위원 등의 공식 직함을 받은 인사만 줄잡아 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박 당선자와 다양한 연결고리를 맺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였다. 성공 신화를 쓴 ‘박근혜 사람들’을 들여다봤다. 김무성 본부장 등 ‘10인 회의’멤버 주목 ●‘액션 탱크’, 전·현직 의원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서병수 당무조정본부장, 유정복 직능본부장, 홍문종 조직본부장, 변추석 홍보본부장, 안종범 정책메시지단장, 이정현 공보단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이학재 비서실장, 이상일 대변인 등 10명은 선거기간 내내 매일 아침 머리를 맞댔다. 비공개로 진행된 ‘10인 회의’에서 그날 그날의 선거 전략이 나왔다. 대선 승리를 이끈 ‘기관차’ 역할을 한 셈이다. 특히 김 본부장은 지난 10월 당내에서 불거진 ‘친박(친박근혜)계 퇴진’ 논란에 대한 박 당선자의 돌파구였다. 김 본부장은 선거 사령탑을 맡은 뒤 안형환·조해진·박선규·정옥임 대변인과 권영진·백성운 전 의원 등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을 대거 캠프에 합류시켰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박 당선자와 관계가 소원해졌던 김 본부장의 복귀에는 박 당선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최경환 전 비서실장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본부장과 비슷한 길을 걸은 ‘친박 구주류’로는 진영 국민행복추진위 부위원장을 꼽을 수 있다. 친박계 내부 갈등으로 한때 ‘탈박(탈박근혜)’을 선언했던 진 부위원장은 컴백 후 캠프에서 ‘정책 조율사’ 역할을 했다. 이렇듯 박 당선자를 도운 주축 세력은 친박계 전·현직 의원들이다. 상당수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멤버들로, 사람을 쉽게 바꾸지 않는 박 당선자의 용인술이 반영돼 있다. 이주영 특보단장과 김학송 유세단장, 윤상현 수행단장, 박대출 수행부단장, 조윤선 대변인 등은 박 당선자를 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김태환·서상기·유기준·한선교·김재원·이진복·조원진·서용교 의원 등도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된다. 당의 간판인 황우여 대표와 ‘원내 사령탑’인 이한구 원내대표, 이혜훈·정우택 최고위원 등도 박 당선자를 측면 지원했다. 다만 경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홍사덕 전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되면서 2선으로 후퇴했다. 강석훈·안종범·이종훈 의원 ‘3인방’ ●‘싱크 탱크’, 정책 브레인 박 당선자가 공약을 중시한 만큼 정책 라인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강석훈·안종범 의원은 박 당선자의 핵심 정책통이다. 이들은 진 부위원장과 함께 박 당선자가 공약을 발표하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 응했다. 강·안 의원은 이종훈 의원과 더불어 원내에서 ‘경제 브레인 3인방’으로도 꼽힌다. 이들은 모두 교수 출신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안 의원은 또 2007년 대선 경선 당시부터 박 당선자를 도와온 ‘5인 공부모임’ 출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와 최외출 영남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김영세 연세대 교수가 포함됐다. 박 당선자의 기획조정특보인 최 교수는 ‘조용한 조력자’로 통한다. 겉으로 드러난 행보는 없었지만, 박 당선자의 의중을 캠프에 전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인사들과 박 당선자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도 했다. 실제 박 당선자가 지난 9월 소설가 이외수를 만났을 때 이를 사전 조율한 인물이 최 교수였다. 김 명예교수는 박 당선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국가미래연구원도 이끌었고, 연구원 소속 250여명의 학자들과 함께 박 후보의 대선 공약 밑그림을 짠 것으로 전해졌다.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도 연구원 소속이다. 이 밖에 윤병세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외교·안보,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복지, 박명성 명지대 교수는 문화, 곽병선 전 한국교육개발연구원장은 교육,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정부개혁 등의 분야에서 각각 핵심 참모로 꼽힌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박 후보의 역사 인식 등과 관련해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자 이미지 변신에 기폭제 역할 ●‘새로운 피’, 영입 인사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그룹은 외부 영입 인사들이다. 박 당선자의 이미지 변신을 이끌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인재 영입은 지난해 12월 박 당선자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후 가속도를 냈다. 특히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 등은 당내 인사와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당선자는 1987년 개헌 때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한 김 위원장을 끌어들여 경제민주화 논의를 주도했고, 2003년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한 안 위원장을 영입해 쇄신 의지를 보여줬다. 대표적 여성 기업인인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공동선대위원장, 민주당 출신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 등도 비중 있는 영입 인사들이다. 이 중 김성주 위원장은 적극적인 유세와 언론 접촉 등으로 대선에서 적잖은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추석 홍보본부장과 조동원 홍보부본부장도 박 후보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조 부본부장은 올해 초 당명 개정 등을 주도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포스터를 제작했던 변 본부장은 ‘박근혜가 바꾸네’ 등의 선거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신뢰 높아… 신동철 부소장 ‘맏형’ ●‘궂은일 전담’, 보좌·지원 그룹 실무 보좌진 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보안을 중시하는 박 당선자는 입이 무겁고 성실한 보좌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보좌관은 박 당선자가 정치권에 입문한 1998년 이후 줄곧 근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박 당선자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만큼 이들에 대한 박 당선자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실무 그룹의 맏형 격이다. 여연에서 여론조사를 총괄했다. 백기승 공보위원도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이른바 ‘마포팀’을 이끌며 박 후보에 대한 홍보 업무를 전담해 왔다. 조인근 메시지팀장, 장경상 전략기획팀장, 이창근 일정기획팀장, 장성철 공보상황팀장, 음종환 공보기획팀장 등 박 당선자의 선거 운동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보좌 인력들은 역할에 비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름 없는 조력자들’이다. 박 당선자 주변에는 외곽 지원 부대도 있다. 박 당선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바탕으로 의원들 못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KBS 보도본부장 출신의 김병호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병기 여연 고문, 이성헌·김호연·김선동·손범규·허원제 전 의원, 전광삼 공보위원 등도 박 당선자를 물밑 지원했다. 공개활동 자제… 정치적 무게감 커 ●‘캠프의 중심추’, 원로 그룹 원로 인사들의 경우 공개적인 활동은 자제한 편이나, 정치적 무게감은 상당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계기로 박 후보를 돕는 ‘7인회’도 이러한 원로 그룹에 속한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김기춘·김용갑·김용환·최병렬 당 상임고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현경대 전 의원 등이다. 이번 대선이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로 흐르면서 캠프 외곽에서 박 후보를 지원하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김진홍 전 뉴라이트 상임의장,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등이 지원 사격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파격 선거전략·박근혜 후광 ‘효과’

    지난 4·11 총선에서 낙선했던 홍준표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재기에 성공했다. 개표 결과 홍준표 새누리당 경남지사 후보는 야권 단일 후보로 맞대결을 벌인 창원 지역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무소속 권영길 후보를 예상대로 여유 있게 이겼다. 그동안 서울신문 여론조사를 비롯한 각종 판세분석에서 홍준표 당선자는 선거기간 내내 권 후보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당선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다. 홍 당선자는 당선 확정과 동시에 제35대 경남도지사로 직무를 시작한다. 홍 당선자는 20일 오전 9시 경남도청으로 처음 출근해 약식으로 취임식을 한 뒤 업무보고를 받는 등 본격적인 도지사 업무를 시작한다. 이에 따라 5개월 넘게 공백이었던 경남 도정이 홍준표 도지사 체제로 정상화된다. 홍 당선자는 경남지사 보궐선거 3개월여를 앞둔 지난 9월 경남 지역 민심탐방을 시작으로 선거에 뛰어들어 당 경선을 통과한 뒤 경남지사에 당선되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번 경남지사 보궐선거는 김 전 지사의 중도사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등으로 애초부터 새누리당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홍 당선자는 경남 창녕이 고향이지만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경남을 떠난 뒤 서울을 비롯한 외지에서 거주해 경남 지역에는 뚜렷한 기반이 없다. 지역 기반이 약한 홍 당선자에게는 대선과 동시에 도지사 보궐선거가 실시된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경남 지역은 여전히 친새누리당 정서가 우세한 가운데 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가 도지사 투표에서도 새누리당 후보 지지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선거전문가 등은 홍 당선자의 파격적인 선거전략도 당선에 한몫한 것으로 평가한다. 도청 이전과 같은 대형 이슈로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선거 판세를 흔드는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야권 단일의 무소속 후보로 홍 당선자에게 맞섰던 권 후보는 야권 내부 갈등과 이견으로 야권 후보 최종 단일화가 늦어진 점과 늦은 선거 출마 등이 패인으로 지적됐다. 권 후보는 고심 끝에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14일에야 뒤늦게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소속 후보로 조직도 열세인 상황에서 경남 전역을 대상으로 밑바닥을 훑는 선거운동을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투표를 6일 앞둔 13일 통합진보당 이병하 후보가 도지사 후보를 사퇴함에 따라 야권 최종 단일화의 모양새는 만들어졌다. 그러나 단일화가 늦게 이루어진 데다 내부 이견 등으로 단일화 결속력도 느슨해 범야권 지지층이 결집하고 조직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게 지역 정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헌정 사상 첫 부녀대통령… 34년만에 청와대 재입성

    헌정 사상 첫 부녀대통령… 34년만에 청와대 재입성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남은 생을 모두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넘어야 할 산이 아무리 험난하고 가파르다 할지라도 쉽게 주저앉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박근혜 당선자가 1997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의 마음가짐을 자서전에 남긴 내용이다. 이러한 각오를 시험이라도 하듯 박 당선자의 15년 정치여정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정치를 시작하기 이전의 40여년 삶만큼 파고가 높았다. 박 당선자의 측근들은 그에 대해 “진일보하는 정치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정치 여정의 전체를 놓고 보면 한 단계씩 발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박 당선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국가 부도 위기, 대량 실업사태와 생활고에 대한 기사를 접하며 박 당선자는 “가슴 밑바닥까지 분노가 일었다.”고 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피땀을 흘린 결과로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데 대한 허탈함과 위기감이었다. 그는 1997년 12월 10일 대선을 8일 앞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1996년 총선 직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서 경북 구미에 출마할 것을 제의했으나 정치에 별 뜻이 없다며 거절했다. ●“국민과 아픔 함께” 국회 본회의장 첫 발언 당선자는 이어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90%가 넘는 상황에서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여당 국민회의 엄삼탁 후보와 맞붙어야 했다. 이른바 ‘달성대첩’이다. 조직과 자금이 없었던 박 당선자는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며 유권자들과 만났다. 그는 “어느 후보보다 가난한 선거를 치르고 있었지만 내게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큰 차이로 이겨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나라가 어려운 때 정치에 입문하게 되어 더욱 어깨가 무겁다. 앞으로 깨끗하고 바른 정치,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정치가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본회의장 발언대에 처음 선 박 당선자는 이렇게 밝혔다. 2000년 총선을 통해 16대 국회의원이 된 뒤 박 당선자는 전당대회 부총재 경선에 도전장을 냈다. 여성 몫 부총재 자리를 당연직으로 얻을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경선을 통해 2위로 부총재에 당선된 뒤 박 당선자는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정당의 구조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치시스템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당내 분란을 일으키고 종종 왕따가 됐고 비주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박 당선자는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상향식 공천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이끌다가 같은 해 11월 한나라당이 자신의 개혁안을 받아들이자 합당했다. 한국미래연합 창당을 준비하던 2002년 5월 박 당선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두 번째 대권 도전에 실패한 뒤 한나라당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 탄핵역풍 등으로 위기에 놓였다. 박 당선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가 됐다. 이 자리에서 박 당선자는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다.”면서 “저는 부모님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당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호소했다. ●대표때 정당 사상 첫 ‘대국민 약속 실천 백서’ 발간 침몰 위기의 한나라당 선장이 된 박 당선자는 우선 당사에서 나와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열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으로 개혁의 참모습을 보여 드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명동성당, 조계사, 영락교회 등 종교계를 다니며 사죄의 뜻을 보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비관적인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얻었다. 이후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둥지를 튼 뒤에도 천안의 연수원을 사회에 환원했고, 비리 등의 혐의로 당원권이 정지된 당원, 중진의원들을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박 당선자는 또 원내 정당, 정책 정당, 디지털 정당을 목표로 내세워 실천했다. 당 대표가 의원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함께 토론을 하도록 의원총회 형식을 바꿨고 정책이나 민원 관련 내용을 꼼꼼히 메모한 뒤 모두 실현에 옮겨 정당 사상 처음으로 ‘대국민 약속실천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당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스스로도 미니홈피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소통을 활발히 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그동안 당 대표가 휘둘렀던 공천권을 시·도당에 돌려보냈다. “박근혜 실험정치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당선자가 2년 3개월 동안 대표직에 있으면서 네 번의 보궐선거를 비롯한 모든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당 대표 임기를 모두 채운 유일한 대표였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당 대표 때부터 생겼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열흘 남짓 앞두고 5월 20일 박 당선자는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위해 신촌사거리를 찾았다가 피습을 당했다. 죽음의 문턱에 갔던 박 당선자는 “남은 인생은 하늘이 내게 주신 덤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남았기에 거둬 갈 수 있었던 생명을 남겨 둔 것”이라고 말했다. 병상에서 눈을 뜨자마자 “대전은요?”라며 당시 지방선거의 판세를 걱정했다는 일화도 유명하고,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박 당선자는 2006년 6월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 17대 대선 경선을 준비했다. 그는 이임식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보내 주신 사랑을 큰 빚으로 생각하고 평생 갚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도 모든 유세현장에서 했던 이 말은 박 당선자 스스로도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이며 다짐”이라고 했다. ●17대 땐 MB에 당내 경선 져 대권 재도전 2007년 이명박 대통령과의 경선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한나라당 내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의 계파가 나뉘고 갈등이 심화됐다. BBK를 비롯해 이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을 친박 진영에서 대거 제기하고 친이계가 이에 맞서면서 본선을 능가하는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박 당선자는 2007년 8월 경선에서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는 모두 승리했지만 국민여론조사의 벽에 부딪혀 석패했다. 흰색 상의를 입은 박 당선자가 담담한 목소리로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힌 연설은 ‘아름다운 승복’으로 여겨져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박 당선자는 4선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총선 공천을 두고 친이계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친박계 인사들이 공천에 대거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친박연대를 창당했다. 이후 복당 문제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박 당선자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후 몇몇 정책에 대해 박 당선자가 이 대통령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우며 당내 계파 갈등은 4년 내내 골이 깊었다. 박 당선자는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최대한 드러나지 않은 행보를 하고 입장 밝히기를 꺼렸지만 박 당선자는 내내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고 야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지녔다. 박 당선자는 2009년 4월 이상득 전 의원의 정치개입 논란이 일자 “이번 사건은 정치의 수치”라고 했고 같은 해 7월 미디어법 논란 당시 “(여당)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며 수정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9년 이후 이 대통령이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박 당선자는 세종시 수정안이 평소 정치 신념인 원칙과 신뢰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청와대와 ‘강도’라는 비유까지 써가며 거침없이 설전을 주고받았고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에는 직접 발언대에 서서 반대토론에 나섰다. 18대 국회에서 유일한 경우였고 결국 세종시 수정안은 무산됐다. 박 당선자는 2010년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하는 등 비공식적인 활동을 하며 대선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이 또다시 큰 위기에 닥쳤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불거지면서 민심을 잃고 추락했다. 또 한 번 박 당선자에게 구원 요청이 쇄도했다. 박 당선자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 쇄신을 진두지휘했다.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과감히 삭제하고 경제민주화의 가치를 넣었다. “국민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 결과 100석 안팎에 그칠 것이라던 지난 4·11 총선에서 152석을 획득하며 제1당을 유지하며 박 당선자의 위력이 또 한번 발휘됐다. 8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박 당선자는 “이번 대선이 저의 마지막 정치 여정”이라며 국회의원직까지 내던지고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2월 19일 박 당선자의 15년 정치 여정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새 기록을 남기며 새롭게 시작됐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역대 대선 막판 돌출사건은

    선거 막판에 터져 민심을 뒤흔들었던 돌출 사건은 대선 때마다 일종의 ‘법칙’처럼 어김없이 재연됐다. 이번에도 같은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대선 때는 선거를 사흘 앞두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BBK 동영상’이 공개돼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이 후보가 2000년 광운대 강연에서 BBK 투자 자문 회사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발언한 내용이 담긴 동영상이 12월 16일에 공개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에 재수사를 지시했고 이 후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BBK특검법’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은 ‘BBK 동영상’을 무기 삼아 남은 화력을 집중했지만 이 후보의 당선을 막진 못했다. 2002년 대선 하루 전날인 12월 18일 밤에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합의했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선거운동 마감을 1시간 30분 남겨두고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메가톤급 충격으로 대선 판이 휘청거렸다. 노 후보는 유세 일정을 중단하고 정 후보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찾았지만 문전 박대당했다. 그러나 위기를 느낀 야권 성향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지지 철회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1997년 대선 12일 전인 12월 6일에는 안기부(현 국정원)가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앞으로 보냈다는 편지를 공개했다. 북한의 고위층이 김 후보의 대선 승리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닷새 뒤엔 재미 사업가 윤홍준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후보가 북한 김정일에게서 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풍의 영향은 미미했다. 김 후보는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2년 대선 직전에는 ‘초원복집’ 사건과 ‘이선실 간첩 사건’이 불거지면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당선됐다. 정부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김영삼 후보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히려 역풍이 불어 보수층이 결집했다. 1987년 대선 전날인 12월 15일에는 칼(KAL)기 폭파 사건의 용의자 김현희씨가 김포공항을 통해 서울로 압송됐고 유권자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하면서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文, 큰 정책 조정능력 의문” “朴, 줄푸세 = 경제민주화 주장 황당”

    “文, 큰 정책 조정능력 의문” “朴, 줄푸세 = 경제민주화 주장 황당”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진영은 TV 토론을 연결고리로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박 후보 측은 ‘노무현 정부 실정론’을 거론하며 문 후보에 대한 우회 공세에 초점을 맞췄다. ●새누리, 文검증 공세 중단 박선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문 후보가 전날 TV 토론에서 천성산 터널과 새만금 사업 등을 노무현 정부 시절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사례로 꼽은 점을 거론하며 “정부의 조정 능력 실패로 갈등에 이른 사례”라면서 “후보 단일화 규칙조차 합의하지 못한 그분들이 더 큰 정책을 어떻게 조정하겠느냐.”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또 2002년 불법 대선 자금 문제를 언급하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당사와 연수원을 매각해 820억원의 불법 대선 자금을 갚았다.”면서 “그러나 민주당은 113억원의 불법 대선 자금을 한 푼도 갚지 않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다만 새누리당은 문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는 중단했다. 이는 전날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문 후보 측은 TV 토론 당시 박 후보의 발언과 태도 등을 문제 삼았다. 이인영 공동선대본부장은 선대본부장단 회의에서 “박 후보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와 경제민주화는 같다’고 한 발언은 깜짝 놀랄 만한 시대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박용진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같다는 주장은 단군이래 최대 황당한 주장 중 하나”라고 거들었다. 박 후보의 ‘간병비’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박 후보는 토론에서 문 후보에게 “건강보험에 간병비를 포함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러나 이는 박 후보의 공약에도 포함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본인 공약에 들어가 있는 내용인 줄도 모른다.”면서 “문 후보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말했다. 복지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한 박 후보의 ‘지하경제 활성화’ 발언에 대해서도 “지하경제를 근절해서 재원 대책을 마련해야지.”라며 날을 세웠다. TV 토론에서 언급된 박 후보의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지원 공약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이용섭 공감1본부장은 “암과 심혈관계 질환 등 4대 질환자는 고액 의료비 환자의 15%에 불과해 나머지 85%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朴 ‘아이패드 커닝’ 의혹 설전 한편 양측은 박 후보의 ‘아이패드 커닝’ 의혹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김현미 민주당 소통2본부장은 “박 후보가 TV 토론장에 아이패드를 넣은 붉은색 가방을 가지고 들어가 아이패드로 자료를 봤다.”며 “이는 선관위의 토론 규칙을 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박 후보로부터 아이패드를 갖고 토론회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명백한 허위 사실 유포”라고 반박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安 “기득권 내려놓겠다” 차기정부 내각 불참 선언

    安 “기득권 내려놓겠다” 차기정부 내각 불참 선언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10일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에서 ‘차기 정부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호남을 단일화 협상 개시 등 주요 정치적 메시지를 발표하는 무대로 삼았던 안 전 후보가 기득권 포기라는 정치적 입장을 공표한 셈이다. 안 전 후보는 광주 서구 광천동 유스퀘어와 전주 전북대 실내체육관 앞에서 잇따라 시민들과 만나 “다음 정부에서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전날 발표한 ‘대통합 내각’ 구상을 새누리당이 ‘권력 나눠 먹기’라고 비판한 데 대해 ‘백의종군’의 진정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광주, 전주의 안 전 후보 지원 유세에는 한파에도 각각 2000여명의 시민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안 전 후보는 “문재인 후보께서 새 정치를 위한 국민과의 약속을 하셨다. 그 약속을 꼭 지키시리라 믿고 아무 조건 없이 도와드리기로 했다.”며 “새 정치는 정치 개혁과 경제 개혁이 필수적이며 정치 개혁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2월 19일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소중한 날”이라며 투표 참여를 적극 호소했다. 안 전 후보 측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권력 거래를 하지 않고 오직 새 정치를 위해 문 후보를 돕겠다는 뜻을 다시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던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등 일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인사들이 이날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문 후보 측은 1990년 3당 합당 이전 야권 민주 세력과의 결합이자 현 보수 세력과의 통합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김 상임의장을 비롯해 문정수 전 부산시장,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이신범·박희구 전 의원은 오전 서울 중구의 음식점 달개비에서 문 후보와 회동을 하고 지지 의사를 전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통합특보를 지낸 김 상임의장은 “역사가 결코 거꾸로 되돌아가선 안 된다는 믿음에서 번민과 고민 끝에 15년 전 제 손으로 창당했던 지금의 새누리당을 떠난다.”고 밝혔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광주·전주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YS계 김덕룡, 10일 문재인 지지 선언

    YS계 김덕룡, 10일 문재인 지지 선언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핵심 인사인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이 10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지지선언을 한다. 옛 한나라당을 포함해 새누리당 출신 주요 인사 가운데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는 것은 처음이다. 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9일 영등포당사 브리핑에서 “문 후보가 내일 오전 10시 김덕룡 민화협 상임의장 등 구 통일민주당계 주요 인사들과 회동한다.”고 밝혔다. 김 상임의장은 문정수 전 부산시장 등 YS계 인사들과 함께 문 후보 지지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김 상임의장은 내리 5선을 지냈다. 상도동계에서 드문 호남 출신인 김 상임의장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매진한 ‘6인회’ 멤버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을 지냈다. 한편 광주가 지역구인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대선 첫 TV토론] 2002년 유권자 60% “TV토론, 투표에 영향”

    대선에서 TV토론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전문가들은 TV토론이 짧은 시간에 많은 유권자에게 후보의 장점과 상대 후보의 약점을 보일 기회라며 대선의 주요 변수라고 얘기한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경우에는 부동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역대 TV토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정 TV토론회가 공식 도입된 것은 1997년 15대 대선부터다. 당시 이회창·김대중·이인제 등 세 후보가 공식·비공식으로 54차례의 TV토론을 벌였다. 당시 최대 수혜자는 김 후보였다. 달변이었던 김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보였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TV토론에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보는 단독 토론회 이후 지지율이 4.7% 포인트 올랐지만 합동토론회에서는 지지율이 0.7~3.0%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김 후보는 TV토론을 통해 ‘반DJ 정서’를 누그러뜨렸고 이는 대선 승리에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TV토론은 대선 정국을 달궜다. 노무현·이회창·권영길 후보가 27차례의 토론회를 했다. 노 후보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TV토론에서는 정 후보에게 밀렸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며 공세적 태도를 보였던 단일화 TV토론과 달리 안정감을 보이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후보도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방송 직후 여론조사에서 최대 10% 포인트까지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2007년 17대 대선의 TV토론은 앞선 두 번과 달리 혹평을 받았다. ‘이명박 대세론’으로 TV토론 영향력도 미미했다. TV토론회의 공식 시청률은 역대 최저인 21.7%였다. 1997년(53.2%)과 2002년(34.2%) 시청률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토론회에 참여하는 후보 수가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다. 이전까지는 당선 가능성이 큰 순서대로 3명의 후보만 참여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국회 의석수 5석 이상의 정당 후보, 직전 총선 득표율 3% 이상을 기록한 정당 후보, 후보 등록 마감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가 모두 참석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때문에 이명박·정동영 두 후보와 함께 이회창·문국현·권영길·이인제 후보 등 6명이 TV토론에 참석했다. 참여하는 후보가 늘어난 데다 정견 발표 뒤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싸움을 벌여 정책토론은 사라지고 네거티브만 남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TV토론에서는 가장 잘했다는 정 후보가 사상 최대의 표 차로 패하는 등 TV토론이 변수로 작용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TV토론의 영향력이 줄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올 대선 구도와 비슷한 2002년 대선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TV토론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에 유권자의 6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TV토론은 지지자들이 지지 근거를 확인하고 부동층이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 대결이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TV토론의 희소가치가 더 높다.”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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