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의 입영전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잊혀진다.’는 말은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말이 아닐까. 특히 신체 건장한 일부 남성 연예인들이 갖은 병명을 들이대며 군대라는 곳에 제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그렇다.2년이란 공백은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는 이들에게 너무도 긴 세월이다.
그러나 군대는 결코 ‘무덤’이 아니었다.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마치고 오히려 연예계를 씩씩하게 행보하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또 다른 차원에서 거론되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차인표, 서경석, 이휘재, 홍경민, 이훈 등등. 이들은 모두 인기라는 달콤함을 맛볼 무렵 군입대라는 ‘입에 쓴 약’을 달게 받아 먹은 스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TV연예정보프로그램들을 통해 몇몇 스타들의 군생활이 중계되다시피 해 잊혀지기는커녕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전기를 맞기도 했다.
차인표가 그런 경우. 늦깎이로 데뷔해 트렌디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는 후속작 대신 군대를 선택했다. 그가 상대적으로 고령(?)이라는 점과 연인 신애라가 있었기에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은 그의 군생활은 이미지를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만약 인기에 연연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천태산’(MBC ‘영웅시대’)이란 인물을 맡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경석도 연착륙한 케이스. 방송으로 돌아오자마자 MBC ‘타임머신’ MC 자리를 꿰찼다. 결혼 직후 입대한 탤런트 이훈도 현재 MBC와 KBS를 오가며 입담을 뽐내고 있다. 새달 말 제대를 앞두고 있는 가수 홍경민은 민감한 시기에 방송에 복귀하는 터라 더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가 오히려 그의 컴백에 ‘윤활유’가 된 셈. 그의 성실한 병역의무 이행은 특히 남성팬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군대는 앞을 길게 내다본 사람들에겐 영광이요, 근시안을 가진 이들에겐 뼈에 사무친 후회와 한탄으로 남았다. 새달 군입대를 통보받은 송승헌, 한재석, 장혁 등은 드라마 출연 무산으로 ‘민폐’를 끼쳤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이미지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중고’를 자초했다.
가수 유승준도 ‘패가망신’을 스스로 부른 대표적인 경우. 군입대를 약속해 놓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 병역기피 의혹으로 한국 입국 자체가 금지됐다.
결혼과 출산이 더이상 여배우들의 멍에가 아니듯 군대가 남자 연예인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일 수 없다. 최근 병역 파동을 계기로 군입대가 이미지 유지 또는 쇄신을 위한 또 하나의 홍보수단으로 자리잡아가는 느낌이다. 원빈, 이동건 등 톱스타들이 앞다투어 군입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제대뒤 뜬 스타 윤영준
두려웠다. 일찍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을 통해 아역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공룡 선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얼굴도 알렸는데….26개월이란 공백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공백을 메우는 데는 두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아픔도 컸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절친한 친구(이정재)가 그 기간동안 일약 스타로 떠올라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을 그저 내무반에 앉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다. 그 잊혀짐의 시간들이 오히려 연기자로서 한단계 도약하는 데 둘도 없는 약이 됐으니….
연기자 윤영준(29)처럼 요즘 회자되고 있는 연기자들의 병역문제가 가슴에 와닿는 배우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최근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극중 한기주(박신양)의 비서로, 앞서 ‘태양의 남쪽’에서는 나이트클럽 사장 용태(명로진)의 부하로 나오는 등 ‘의리의 사나이’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세를 몰아 얼마 전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 ‘그림자놀이’에서 주인공을 꿰찼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섭외도 줄을 이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실 저도 군 입대를 비켜가기 위해 별 짓을 다했어요. 하지만 결국 연기자를 믿는 시청자에게 서운함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인기는 언제라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그는 ‘당시 군대를 면제 받고 연기생활을 계속 해왔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을 하면,‘아역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에 짓눌린 채 더 큰 고민의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단다.
중1때 아역배우로 데뷔한 그는 20살이 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연기자 윤영준’을 기억해 주는 이가 없었다. 이후 5년여 동안을 ‘일반인 윤영준’으로 지내야 했다.“제 스스로 최면을 걸었죠.‘이건 나의 옛 이미지를 씻고 새로운 차원의 연기자로 도약하기 위한 일종의 ’전화위복의 시간들’이라고요.” 그의 판단은 옳았고, 이후 아역 출신 연기자로서 흔치 않은 ‘대기만성형’ 성인 연기자로 우뚝 섰다.
올해로 연기 데뷔 17년째인 그는 나름대로의 연기철학을 가지고 있다.“연기는 바로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기자의 경험이 드라마 캐릭터에 녹아들 때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거든요.”
자신만의 연기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가령 26세의 남자 역할을 맡으면,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제가 태어나서 26살까지의 경험들을 작문하듯 정리하죠. 그리고 ‘드라마는 그 26살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연기톤을 잡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대사, 행동 하나 하나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죠.”
그는 팬들의 사랑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에서는 현재 980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LONG RUN 배우 윤영준’이란 그의 팬카페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군입대 당시부터 지금까지 저를 잊지 않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죠. 연기자는 팬들과 함께 커나간다는 것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