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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1만원·1000원권 22일 발행

    새 1만원·1000원권 22일 발행

    작아지고 화사해진 새 돈 1만원권과 1000원권이 오는 22일 선보인다. 지난해 1월 나온 새 5000원권까지 포함하면 1983년 이후 24년만에 지폐가 다 바뀌게 된다. 새 돈은 앞면의 인물초상인 세종대왕(1만원권)과 퇴계 이황(1000원권)을 제외하고 크기·배경도안·색깔·위폐방지책 등 전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크기는 1만원권이 가로 15㎜ 세로 8㎜,1000원권이 가로 13㎜ 세로 8㎜ 줄었다. 그러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현금자동출금기(CD) 교체비율이 75%에 머물러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신권 발행을 앞두고 새 돈에 대한 궁금증 10가지를 풀어본다. (1) 인물초상화 신·구폐가 똑같나? 초상화를 자세히 보면 확실히 다르다. 새 1000원권의 이황은 광대뼈를 대폭 깎아내고 눈꼬리도 살짝 내리는 등 상당한 ‘성형수술’을 거쳐 ‘꼬장꼬장한 유학자’에서 순한 할아버지 스타일로 바뀌었다.1만원권의 세종대왕도 턱수염을 좀 넓히고 눈꼬리를 짧게 줄였다. 둘 다 시선은 정면응시로 처리해 기존의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압적인 분위기를 바꿨다. 한국은행은 “원래 초상화를 기초로 작가가 새로 조각했기 때문에 조금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2) 새 돈의 위조방지책은 몇가지? 22가지다. 몇가지 소개하면 우선 1만원권 초상화의 왼쪽에 있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홀로그램이다. 둘째, 왼쪽 옷자락 옆의 긴 무늬 안에 ‘WON’자가 숨어 있다. 셋째, 액면가 숫자는 빛에 따라 변한다. 넷째,1만원에는 완전히 숨은 은선이,1000원은 부분적으로 숨은 은선이 있다. 다섯째, 그림 없는 왼쪽을 빛에 비추면 숨어 있는 초상화와 액면가 숫자가 세로로 나타난다. (3) 새 돈으로 숨은 그림찾기를? 10배율 이상의 돋보기로 ‘숨은 그림 찾기’를 할 수 있다.1만원권의 세종대왕 흰색 옷깃에 한글창제 당시의 28자모가 미세문자로 조각돼 있다. 지폐의 앞뒷면에 ‘BANK OF KOREA’ 또는 액면가 숫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미세문자는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이 불가능하다. (4) 지폐는 종이로 만들었나? 중세의 지폐는 글자 그대로 종이로 만들었다. 근·현대에 와 면화가 섞이기 시작했다. 한은 화폐박물관에 따르면 1983년부터는 ‘순면 100%’를 원료로 사용했다. 따라서 엄밀하게 지폐는 ‘면폐’로 바꿔 불러야 한다. (5) 신권의 두 가지 과학 기구는 국보 몇호? 1만원권 뒷면에는 천체관측기구 ‘혼천의’가 들어간다. 국보 230호다. 뒷면 바탕은 고구려 때부터 전해온 천문도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때 제작된 별자리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다. 국보 228호. 구권 1만원권에는 국보 229호인 물시계(자격루)가 들어 있었다. 국보 중에 과학과 관련된 것은 단 3개인데,3개 모두 화폐에 사용됐거나 사용된 것이다. (6) 시중 화제인 ‘10원,100원 동전 모으기’ 돈이 될까? 결론부터, 안 된다. 수집상에게 가치있는 동전은 ‘미사’라고 전혀 사용하지 않은 동전을 말한다. 지문도 없고, 산화조차 일어나지 않도록 보관한 것이어야 한다. 최근 한은 발권국에 하루에 100통씩 전화가 오기도 한다.“해당 동전을 가지고 있는데 얼마주고 사겠느냐.”는 질문이다. 한은은 “10원짜리 동전은 10원에 바꿔준다.”고 답한다. (7) 일반인이 구할 수 있는 새 돈의 번호는? 101번부터다.1∼100번은 곧장 한은 화폐박물관에 전시된다.101∼10000번까지도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경매를 하기 때문이다. 다만 10001번부터는 22일 오전 9시30분에 한은 본점 창구에서 액면가로 교환된다. 신권 발행일에는 사람들이 신권을 교환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 첫날 교환하는 장수는 1인당 액면가에 따라 각각 100장씩으로 제한된다.16개 지역본부도 신권을 교환한다. (8) 새 돈이 나오면 옛날 지폐를 모아야 할까? 동전은 발행연도 때문에 ‘미사’가 가치가 있다. 지폐는 발행연도가 없기 때문에 발행번호를 중심으로 수집한다. 우리나라는 단순히 앞번호를 선호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특별한 발행번호가 각광받는다. 자신의 생년월일이라든지,‘1234321’나 ‘888888’ 등과 같은 특이한 넘버들의 구성을 말한다. (9) 한은 총재나 조폐공사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지폐 번호를 고를 수 있나? 고를 수 없다. 만약 고른다면 ‘특권’을 행사한 대가로 옷벗고 사표써야 하기 때문이다. (10) 지폐에 들어 있는 그림 두 점은 누구 작품? 1만원권의 앞면 배경은 ‘일월오봉도’로 조선시대 임금의 상징물이다. 글자 그대로 해와 달,5개의 봉우리가 그려졌는데, 화가미상이다.1000원권의 뒷면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다.1000원의 앞면 기와집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 내 ‘명륜당’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인 되면 시각장애인 돕는 일 할래요”

    “컴퓨터가 좋아요. 한국 사람이 되면 더 열심히 배워서 저같은 시각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할래요.” 중국 동포 이진니(24·여)씨는 17일 치른 귀화 필기시험에서 90점을 맞았다.60점을 넘으면 합격인데, 최상위권에 들었다. 이씨 덕분에 귀화시험에 처음 도입된 점자 필기시험은 산뜻한 출발을 하게 됐다. 법무부는 이씨와 같은 시각 장애인 외에도 청각 장애인과 지체 장애인 등 다른 장애인 귀화 신청자도 시험을 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씨가 199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어머니 정명희(50)씨를 따라 입국한 것은 2005년 10월.10여년간 어머니와 떨어져 중국에서 시각 장애인 학교를 다닌 그에게 한국 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한국시각장애인 복지관 기숙사로 보냈다. 이씨는 중국에서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세살 때 병치레를 한 뒤 시력을 잃어 어슴프레 빛만 보일 정도다. 그나마 언제 실명이 될지 몰라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걷는 연습도 한다. “중국에서는 중학교 과정까지밖에 못다녔어요. 한국에서 공부도 하고, 컴퓨터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훈련도 재밌어요.” 재활훈련과 컴퓨터 외에도 이씨는 점자공부, 한국 역사 공부를 하며 어느새 어머니의 바람대로 강하고 똘똘한 아가씨가 돼 있었다. 귀화해 한국인이 되는 방법도 이씨 스스로 찾았다. 귀화신청을 한 뒤 법무부 국적난민과에 연락해 시각 장애인이라고 밝히며, 시험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법무부가 한국시각장애인협회 도움을 얻어 점자로 시험을 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넉달 동안 한국 역사를 배우고 답안지를 깨끗이 쓰는 법도 배웠어요. 한글을 만든 왕이 ‘새종대왕’인지 ‘세종대왕’인지 익히느라 힘들었어요.” 이씨는 “그래도 시험 덕분에 점자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웃었다. 낙천적인 성격의 이씨는 한국에 온 뒤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장래희망도 안마사에서 사회 복지사로 바꾸었다. “귀화시험 준비를 하면서 ‘내가 살 나라에 대해 모르는게 많구나.’라고 생각했어요.‘남대문’이 뭔지,‘이순신’이 누군지 몰랐던 게 부끄러워요. 시험에 합격했어도 더 공부해야겠어요.”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바로크 오페라 진수 맛본다

    바로크 오페라 진수 맛본다

    ‘바로크 시대의 재현’을 표방하는 캐나다의 오페라 아틀리에가 새달 두번째 한국을 찾는다. 프랑스 작곡가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1643∼1704)의 38분짜리 ‘악테옹’과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1659∼1695)의 61분짜리 ‘디도와 에네아스’를 한데 묶어 무대에 올린다. 2003년 첫 내한에서는 모차르트(1756∼1791)의 ‘돈조바니’를 선보였으니, 이번에는 시대를 상당히 거슬러 올라가 본령인 바로크 시대 한복판으로 진입하는 셈이다. 두 작품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루고 있다. 바로크 예술은 그리스·로마 시대를 이상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는 르네상스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바로크 오페라의 표준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다. ‘악테옹’과 ‘디도와 에네아스’는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도 좀처럼 공연되지 않지만 주인공과 줄거리가 크게 낯설지는 않다. 프랑스식 표현인 악테옹은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악타이온으로 불린다. 뛰어난 사냥꾼이지만, 순결의 상징인 아르테미스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다 벌을 받아 사슴으로 변하고 결국 자신의 사냥개에 물려 죽는다는 내용이다. 에네아스도 보통 아이네아스로 표기된다. 사랑과 아름다움과 풍요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에네아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에 머물며 디도 여왕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에네아스가 로마로 떠나야 하자 디도 여왕은 자결하고 만다는 비극적인 줄거리를 담고 있다. 바로크 오페라는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고전·낭만주의 오페라와는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 고전·낭만주의 오페라가 음악에 치중하는데 반해 음악·춤·연기·대사·미술·의상 등 무대 위의 모든 요소가 골고루 중요하다. 관람객들에게도 고전·낭만 오페라를 볼 때와는 다른 자세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작은 음량과 성량으로 미묘한 음악적 색채를 표현하고, 무대도 화려하기보다는 우아하고 조촐한 만큼 고음악에 대한 집중력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2003년 오페라 아틀리에의 ‘돈조바니’를 본 관람객들이 작품에 몰입하기보다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페라 아틀리에는 1985년 연출가 마셜 핀코스키와 안무가 재닛 징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설립했다.17∼18세기 작품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당시 모습에 가깝게 재현하는 오페라 분야 원전 연주의 세계적인 리더이다. 공연은 2월8일부터 10일까지 오후 7시30분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지휘는 토론토 체임버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폴리스, 원전악기로 이루어진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국립합창단이 참여한다.‘악테옹’은 프랑스어,‘디도와 에네아스’는 영어로 공연되며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3만∼11만원.(02)580-13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진특집] 첫마음, 첫걸음

    [사진특집] 첫마음, 첫걸음

    사진특집_ 첫마음, 첫걸음 사진_ 한영희 취재, 글_ 이만근, 강성봉, 정순화 기자 저 조그만 빛을 보기 위해 지구는 열네 시간의 산고를 견디었다. 인왕산 오전 6시 54분. 우수경 씨(27세)는 열 달 뱃속에 품었던 작은 생명체를 안아 든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머리맡 초음파 사진 속에서 꼬물거리던 ‘콩이(태명)’는 설탕 한 봉지만 한 무게로 예정보다 열흘 일찍 세상에 나왔다. 그녀도 여자에서 엄마로 새로 태어났다. 주둥이 모양이 제각각인 이유는, 저마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1,200℃ 고열에서 한 번 더 굽고 나면 유약의 농도에 따라 다른 빛을 품게 된다. 남양주 도자골 달뫼. “공연을 보다가 엉덩이가 간질간질하다고 친구들과 떠들면 될까요?” “안 돼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고 과자를 먹으면 될까요?” “안 돼요~!” “갑자기 불이 꺼질 때가 있어요. 깜깜해지면 박수를 치는 거예요.” “네!” 처음 연극을 보러 나온 성신유치원 장난꾸러기들은 대답도 잘한다. “여러분, 토끼랑 거북이가 경주를 하면 누가 이길까요?” “다람쥐가 이겨요!” 열다섯 군데 회사에 원서를 넣었고, 악명 높은 1인 1시간 압박 면접을 통해 선발된 두산중공업 신입사원 정호영 씨(25세)의 입사 포부. “회사의 부품이 되기보다는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첫 출근은 2007년 1월 2일이다.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나가는 손님을 보면 흐뭇해요.”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차린 소담국수집 정기홍(46세), 최영민(43세) 부부는 먼지가 앉기 무섭게 새로 들인 테이블을 닦는다. 손님이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짜 사장이지만 최고의 국수집을 만들겠다는 꿈은 누구보다 야무지다. 마자렐로주부학교 한글반 열다섯 명 할머니들이 ‘한글 떼기’에 한창이다. 나이 육십에 가나다라를 배우기 시작한 이영수 할머니(62세)는 이제 버스 정류장 이름을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손자가 넷인데, 나중에 편지 쓸라고!” 매일 보는 받아쓰기 시험이 어렵지만 할머니는 오늘도 아침 등굣길이 즐겁다. “오랜 수험 생활 마치고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아쉽지만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저 때문에 애쓰셨던 부모님 건강하셨으면 좋겠고요. 새로 시작하는 대학 생활에 재미난 일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좀 이르긴 하지만 건실하고 능력 있는 신랑도 만나게 해주세요.” 2007년 한성여고를 졸업하는 열아홉 혜미의 기도.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희망에 살짝 닿은 겨울 햇살이 어느 때보다 눈부신 가운데, 내일도 오늘처럼 포근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월간<샘터>2007.1
  • 고종·순종실록 완역 인터넷으로 본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통치기록이 완역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유영렬)는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열람할 수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서비스에 고종·순종실록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국사편찬위는 2005년 12월부터 조선왕조실록의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sillok.history.go.kr)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일제때 편찬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빠져 있었다. 왜곡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고종·순종실록은 국보뿐 아니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빠져 있다. 국사편찬위는 “두 실록은 조선시대의 엄격한 실록 편찬규례에 맞게 편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의 왜곡이 심해 실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두 실록과 나머지 실록의 위상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황제의 실록이 조선왕조 마지막 순간의 통치자료인 만큼 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는 고종·순종실록은 한문 320만자에 달하는 분량이다.원문에는 없는 17종의 문장 기호를 추가했으며 기존 조선왕조실록과 동일한 문체로 수정한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너무나 격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너무나 격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지난달 19일부터 한달여간 운좋은 광주 시민들은 구동체육관 근처에서 소시지 핫바를 사먹는 로미오를 만났을 수도 있다. 광주에서 매일 12시간이 넘는 연습을 끝낸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이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다. 공연을 앞두고 허름한 운동복에 운동화를 차려입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구동체육관 연습현장에서 만났다. 호텔과 체육관만을 오가는 고된 연습을 프랑스 배우와 스태프들은 컵라면과 줄담배로 이겨내고 있었다. 로미오를 연기하는 다미앙 사르그(26)는 이미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페뷔스, 그랭그와르 역할로 한국에 얼굴을 알린 바 있다.19살 때부터 로미오로 살아온 사르그는 노래 실력이나 외적으로도 완벽한 로미오다. 스스로 “귀도 못생겼고, 몸도 왜소하다.”고 말하지만, 줄리엣과의 침실장면에서는 탄탄한 상반신 근육을 드러낸다. 군무를 추는 남성 무용수들의 체격이 워낙 훌륭해 로미오가 겸손해할 법도 하다. 팔뚝에는 아랍어로 ‘열정’을, 배꼽 밑에는 한자로 ‘友愛(우애)’를 새긴 사르그는 이번 공연이 끝나면 어깨에 한글로 ‘로미오’란 문신을 할 예정이란다.‘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했던 엘렌 세가라(32)가 6살 차이가 나는 연상 애인이다. 전화와 메신저로 광주와 파리란 사랑의 거리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이 에스텔(23)은 라코스테, 베네통 등 여러 광고의 모델로 활약한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도전적인 줄리엣의 현신(現身)이다. 사르그에 비해 무대 이력은 다소 짧지만, 여러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어 연기력은 뒤지지 않는다.‘로미오 앤 줄리엣’의 스태프들은 만난 지 한달이 조금 넘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습기간 동안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2007년 한국을 시작으로 타이완, 중국, 일본 및 유럽을 도는 세계공연을 하게 된다. 고향과 가족을 떠난 이들에게 두 주연배우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사였다. 2001년 파리 초연 이후 그동안의 유럽 공연에 비해 안무가 훨씬 강력해졌다. 현대무용, 애크러배틱, 기계체조, 브레이크 댄스에 이효리의 시계태엽춤까지 볼 수 있는 안무는 ‘저러다 배우가 다치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 만큼 격정적이다. 고전의 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논쟁거리이자 즐거움이기도 하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사랑은 그간 어떤 연극이나 영화에서보다 힘있고 애절하다. 광주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영문으로 등기 낼 수 있다

    대법원이 기업편의 위주의 제도 정비에 적극 나섰다. 대법원은 14일 로마자(알파벳)상업·법인등기 제도를 허용하고 동산·채권 담보등기제도를 신설하는 등 편리한 기업활동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현행 상업·법인 등기부는 기업 상호나 등기이사 이름이 한글이나 한자로만 표기돼 있다.예를 들어 주식회사 ‘에이비씨’가 국내외에서 ‘ABC’라는 상호를 사용하고 외국인 등기이사가 있더라도 로마자로 표기된 상호·이름은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 지침에는 로마자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내년 4월부터는 상업·법인 등기에 로마자 표기가 가능하도록 전산시스템을 마련키로 했다.다만 로마자 사용은 상업·법인등기에 한정되며 부동산등기를 비롯한 다른 등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겨울철 인기메뉴 만두전골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겨울철 인기메뉴 만두전골

    추운 겨울날의 인기 식단으로 김치 넣은 만둣국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평안도나 황해도, 강원도 출신 사람들은 설날에도 떡국보다 만둣국을 해먹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명절 무렵이면 가족들이 다 모여 만두를 만들어놓고 겨울 내내 만둣국을 끓여 먹곤 한다. 만두는 원래 중국 음식으로 한나라 때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시대에 들어왔다. 가장 오래된 한글 음식책인 음식디미방(1670년경)에서는 메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반죽하고 삶은 무와 다진 꿩고기를 볶아서 소를 넣고 빚어 새옹에 삶아 내었다고 써있다. 우리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소를 넣은 것을 만두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교자라고 하고,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지금의 호빵처럼 껍질을 두껍게 만든 것을 만두라고 한다. 특히 고기나 팥 소가 들어간 것은 포자라고 하고 소를 넣지 않은 것을 만두라고 한다. 만두는 껍질의 재료나 모양, 삶는 방법에 따라 종류가 많다. 밀만두, 메밀만두, 어만두, 동아만두, 처녑만두 등으로 나뉘고, 빚은 모양에 따라 사각진 것은 편수(片水), 해삼모양은 규아상, 골무처럼 작게 빚은 골무만두, 석류 모양을 딴 석류만두, 큼직하게 빚은 대만두, 작게 빚은 소만두 그리고 껍질 없이 소를 밀가루에 굴려서 만든 굴림만두 등이 있다. 알려져 있는 대로, 만두는 추운 북한 지역에서 더욱 발달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두는 평양식과 개성식. 평양식은 두부를 기본으로 숙주나물·부추·파·돼지고기를 소로 넣은 것으로 어른 주먹만하게 크다. 만둣국은 양지머리와 사태를 삶아서 그 국물에 만두를 말아낸다. 개성 만두는 한 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앙증맞다. 두부나 김치를 적게 넣는 대신 야채를 많이 넣어 퍽퍽하지 않고 깔끔하다. 만두는 겉껍질은 밀가루나 메밀가루로, 속은 야채와 고기, 두부 등으로 만들기 때문에 음식 하나에 탄수화물과 단백질, 섬유질, 비타민 및 무기질 등이 듬뿍 들어가 있는 영양식이다. 따뜻한 계절에 비해 좀 더 높은 칼로리와 지방이 필요한 겨울에 체력 유지를 위해 즐겨 먹을 만한 음식이고, 이런 이유로 추운 지방에서 자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만두를 좋아하지만, 필자 주변에 만두를 좋아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 사실 만두는 음식의 한 종류이면서 워낙 다양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즐겨 먹는다. 필자도 제대로 된 만두집 만두부터, 중국식 만두, 시장 한편 조그만 분식집에서 파는 만두까지 만두라면 다 좋아한다.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뒤 대우빌딩 지하에 위치한 ‘평안도만두집’은 평양식 만두를 표방하는 곳이다. 이미 꽤 알려진 곳이지만, 막상 가보면 생각보다 작은 식당 규모에 놀라게 된다. 여의도에서 11년을 해오다 2년 전에 현재 장소로 이전했다. 이곳에서의 추천메뉴는 만두전골인데, 특이하게 만두 외에 힘줄(스지), 생선전, 녹두전, 배추, 대파, 버섯, 쑥갓 등을 전골냄비에 가지런히 넣고, 양지를 4시간 동안 푹 고아 맑게 우려낸 육수를 부어 끓여낸다. 이곳의 만두전골은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담백하면서도 시원하고 깊은 맛이 있는데, 재료를 모두 싱싱하고 좋은 것으로 넉넉히 쓰는데다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만두는 두부, 돼지고기, 숙주, 파에 잘 익은 김치 씻은 것을 넣어 큼직하게 만든다. 두꺼운 만두피로 만든 큼지막한 만두를 쪼개서 양념간장을 살짝 뿌려 먹으면 그 고소하면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13년을 만두만 만들다 보니, 가장 맛있는 만두소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의 배합 비율을 맞추게 되는 것이 이곳의 노하우라고 한다. 접시만두 5000원, 빈대떡 5000원, 보쌈 2만원, 만두전골 2만원, 김치말이국수 4000원. 전화 02-723-6592.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요일 휴무. 여성전문병원 ‘한송이 W클리닉´ 원장
  • 신문읽기 ‘평생소원’ 이루다

    신문읽기 ‘평생소원’ 이루다

    “받아쓰세요.‘베짱이는 후회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뚝뚝’은 소리가 세니까 쌍디귿이죠.” 1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평생학습센터 한글교실 중급반. 심인복(42) 강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받아쓰기 문제를 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31명이 숨소리도 죽이고 연필을 굴린다. 진지함이 교실을 달군다. “자 이제, 책의 문제를 따라 읽고 답을 적어봐요.‘베짱이가 무엇을 뉘우쳤나요.’” 저마다 손을 번쩍 들고 답을 얘기한다.“배가 고픈 거요.”“노래만 부른 거요.”“일하지 않은 거요.”어르신의 천진함이 교실에 퍼진다. ●우리는 지금 문맹탈출 중 배움의 기회를 놓쳐 반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어르신 120명이 문맹(文盲) 탈출 중이다. 관악구 평생학습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 초·중·고급반에서다. 남학생은 3명뿐이고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연령은 5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일주일에 2차례씩 등교해 한글과 기초산수, 생활영어·한문을 배운다. 고급반인 이명희(67) 할머니는 “내 이름을 내가 쓸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구구단을 외우고 계산기 사용법을 배우는데 얼마나 신기한지. 요즘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평생학습센터는 2004년 9월 한글교실을 열었다. 지역 주민 1만명이 초등학교 미졸업자로 조사돼 문맹 탈출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수강생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두렵다고, 창피하다고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주민 1만명이 문맹 그래서 복지관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글을 쓸 줄 모르는 성인을 발견하면 한글교실로 이끌었다. 평생학습센터 문예교육담당 오윤나씨는 “문맹을 고백하고 배우기 시작하면 한글교육의 80%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희 할머니도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처음 한글교실을 찾았다.“겁나서 배우지 않으려고 했지. 며느리가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워줘서…. 처음 글씨를 쓰려고 하는데 얼마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지.” 그러나 용기만 내면 어르신들은 몇 개월 만에 한글을 술술 쓰고 읽었다.“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생결단’을 낼 각오로 공부하세요. 자연스레 실력이 쑥쑥 자랍니다.”심 강사의 설명이다. 한글교실 초급반에선 단어와 문장을, 중급반에선 띄어쓰기와 받침을, 고급반에선 문법을 가르친다. 최근에 관악구의 지원을 받아 성인을 위한 초·중·고교 한글교재도 발간했다.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림, 예문, 노랫말로 꾸몄다. 이순재(68)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내 손으로 은행 돈을 찾고…. 평생 소원을 다 이뤘다.”면서 “다른 까막눈들도 나처럼 용기를 내서 새 인생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서울시교육청 ‘통합논술 교실’ 지상중계](1)논술의 기초와 표현

    [서울시교육청 ‘통합논술 교실’ 지상중계](1)논술의 기초와 표현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통합논술 교실을 시범운영하기로 하고, 지난 5일 서울 행당중학교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서울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교사들로 구성된 ‘서울 논술교육 지원단’이 만든 통합논술 지도 프로그램이다. 고등학교 2학년 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번 강의는 다음달 14일까지 매주 2∼3차례에 걸쳐 공개수업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울신문이 매주 한 차례 이 강의를 지상중계한다. ☞ 서울시 교육청 통합논술강의 녹취록·논술교재(1회) 바로가기 논술은 논(논리)+술(서술), 설득하는 서술이다. 논술은 이치에 맞게 합리적으로 근거를 들어 서술하는 글이다. 두번째 정의는 문제해결의 글쓰기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냥 해결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논술이다. 예를 들어 ‘남북은 한마음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썼다면 해결책이 될까. 통일하려면 구체적인 실천 사례나 대안이 나와야 한다.‘통일´ 하면 나오는 문제가 비용 아닌가. 우리도 통일하면 비용이 든다. 이런 사례를 들어야 한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소득자에게 통일비용을 받아서 활용하자고 한다면 논거를 드는 것이 된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는 차후의 문제다. 통합논술은 네 가지를 반영한다. 사고력을 측정하고, 과정을 중시하며, 영역 전이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생을 중시한다. 사고력은 비판적·창의적인 사고를 하는가를 본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은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논술 문제를 보면 가, 나, 다 등 제시문을 세분화해 요약하라, 설명하라, 비교하라, 이런 것을 묻는다. 이는 논증력과 표현력을 바탕으로 독해력을 측정하겠다는 것이다. 영역 전이적이라는 말은 한 교과가 다른 교과를 넘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논술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통합’돼 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한다. 이를 고차원적 사고라고도 한다. 19세기 외국인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 생각나나. 우린 이거 (수업시간에)배우고 끝났다. 그게 아니다. 여기에는 외국인의 선입관이라든가 편견, 우월 같은 것이 보인다. 홍순학의 ‘연행가’를 보면서 문화상대주의나 문화사대주의를 떠올릴 수도 있다. 여러분은 수업 시간에 어떤 지문이 무엇과 연관되는가를 꼭 고민하고 그에 대해 나름대로 논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확대발전시키는 것이 통합논술이다. 마지막으로 자기주도적인 학생이라고 했는데, 창조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학생은 어디에서나 좋아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표현법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하겠다. 우선 시험논술의 독자는 정해져 있다. 읽는 사람이 교수다. 공부를 할 만큼 한 지식인이다. 아는 척 하면 안된다.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구어적인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둘째, 논술 분량은 주어진 분량의 ±10% 정도가 적당하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말은 다 써라. 단, 문장을 강렬하게 써야 한다. 주저리 주저리 쓰면 안된다. 분량이 넘친다는 것은 위에서 다 쓰고 아래에서 요약정리하면서 중복된 단락이 많았다는 증거다. 중복 빼고 나면 정해진 분량을 못 채웠다는 얘기다. 셋째, 글씨는 정자체로 써야 한다. 글씨가 이상해서 교수가 못 알아봤다고 하자. 그런데 맨 마지막에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썼다. 그럼 교수가 그 옆에 이렇게 쓴다.‘일 년 더 공부하기 바란다.’ 주어와 술어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수동태 문장이나 번역투 문장도 피해야 한다. 형용사나 문학적인 표현도 피해야 한다. 조사의 ‘∼의,∼적’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이다.’와 ‘∼입니다.’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서 쓰고,‘∼할 것이다,∼것이다.’는 ‘∼이다.’로 바꿔 쓰는 것이 좋다. 시제도 일관되게 사용해야 한다. 이게 중요한데, 숫자의 표현이다. 숫자는 상대방에게 사실감을 줄 수 있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쓴다고 설득할 수 있다. 문제는 채점할 때 교수가 알아보니 숫자가 틀렸다면 이 글은 다 거짓이 된다. 그래서 숫자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크린쿼터의 경우 ‘4분의1은 찬성했고,4분의3은 반대했다.’, 이런 식으로 써라. 여기에 출처까지 밝혀주면 금상첨화다.‘대단히 많다.’는 식의 애매한 숫자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다. 단, ‘거의’라는 표현은 99%에 해당할 때 쓰기 때문에 가끔 사용해도 무방하다. 진부한 어휘나 표현도 피해야 할 것이다.‘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거 좋은 표현인데 하도 많이 써서 진부한 표현이 돼 버렸다.‘방가, 열공’ 등 자기만의 언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한자나 영어는 가능하면 한글로 고쳐 쓴다. 사자성어의 한자가 생각이 안 나 한 자를 비워두고 썼다면 교수는 모르고 쓴 거라고 생각한다. 아예 한글로 써라. 글이 주관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단정적인 말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생각된다.’는 표현은 정확성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단 ‘생각한다.’는 표현은 써도 좋다. 왜? 내가 주장하면 되니까. 똑같은 단어로 끝나는 문장을 둘 이상 계속해서는 안된다. 이것도 알아둬야 한다. 중계식 문장은 가능한 한 피해라.‘지금까지 ∼에 대해 서술했고, 앞으로 ∼에 대해 얘기하겠다.’는 식이다. 이렇게 안 써도 채점자들은 다 안다. 이것도 중요한데, 긴 설명이 필요할 때는 속담이나 명구, 사자성어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결론으로 쓸 때 가장 잘 써 먹을 수 있다. 결론에는 요약과 정리가 들어가는데, 예를 들어 공무원의 부정부패에 대한 글을 쓴다고 치자.‘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관은 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얘기했다.’는 인용구를 넣었다. 이게 글 내용을 다 요약하는 문장이다. 하나만 봐도 앞으로 무슨 얘기를 할지 요약이 되는 문장, 글이 돋보이고 독창적인 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아무튼, 여담이지만,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좌우지간’ 등의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글이 어긋나고 있음을 스스로 알려주는 꼴이다.‘잘 부탁한다. 읽어줘서 고맙다.’ 등의 표현은 절대 금기다. 쉼표를 어디서 찍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많다. 쉼표에도 목적이 있다. 쉬었다 읽으면 문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곳에 찍으면 된다. 일인칭 대명사는 피해야 한다. 논술은 수필이 아니다. 단, ‘우리’라는 표현은 가능하다. 여러분들이 써 놓은 글이 있다면 이런 표현법을 지키고 있나 체크해 봐라. 정리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2회는 ‘서론과 본론 쓰기’에 대한 강의가 이어집니다. ●강의 교재와 녹취록은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논술 공부와 지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특별하區 ☆나區] ‘어학교육특화’ 서대문 자치센터

    서대문구에서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바뀐 것은 지난 2001년의 일이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강좌를 제공하는 공간이 된 지 6년째다. 다른 자치구에도 주민자치센터가 활성화돼 있지만 서대문구의 수준은 그 어느 곳보다 높다고 자부한다. 특히 어학쪽에 빛을 발한다. 홍제2동 주민자치센터의 일본어 교실에서는 지난해 12월 일본어능력시험(JLPT) 합격자를 13명 배출했다. 이 시험이 일본정부가 공인하는 유일한 시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격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2001년부터 합격생이 나오기 시작해 지난해 11명까지, 합격자가 60명에 이른다. 대다수가 40∼50대 주부들이다. 합격자 중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응이 가능할 정도의 높은 수준인 1등급도 있다. 명실공히 일본어 메카로서 당당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북아현1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외국인 한글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사는 결혼이민자, 외국인 근로자가 대상이다. 좋은 우리말을 바르고 편하게 쓸 수 있게 돕는 것이니만큼 무료로 진행한다. 수강생 15명 중에는 우리나라 어르신도 세 분 있다. 말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읽고 쓰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다. 오는 2월1일부터 3월30일까지 외국어 강좌로 중국어반(초·중급)과 영어교실 1개반을 더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31일까지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서대문구의 주민자치센터에서 다양하게 개설한 어학교실에는 매 분기마다 300여명, 지금까지 6000여명이 거쳐갔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좋은 강의를 발굴해 주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그런 주민자치센터가 되느냐, 아니면 높은 수준의 주민자치센터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 잘 활용하는 주민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이정은 홍제2동 주민자치센터
  • 이달말 퇴임 어울림누리 산파역 고양문화재단 이상만 총감독

    이달말 퇴임 어울림누리 산파역 고양문화재단 이상만 총감독

    이상만(72) 고양문화재단 총감독이 3년 임기를 마치고 이달말 퇴임한다. 그는 고양시 원당과 화정 사이에 있는 대형문화체육공간인 어울림누리를 본궤도에 올려놓았고, 오는 5월 일산신도시에서 문을 여는 초대형 문화공간 아람누리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했다. 감회를 묻자 이 총감독은 어울림누리와 이웃한 아파트단지 얘기를 먼저 꺼냈다.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신원당마을은 얼마 전 주민들 스스로 어울림마을로 이름을 바꾸었고, 길 건너 달빛마을도 일부가 달빛어울림마을로 이름을 고쳤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울림누리가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 들었고, 어울림누리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음악평론가로 문화정책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어울림누리를 운영한 2년반 동안 질적으로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공연문화·전시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일관된 의욕을 갖고 추진했다.”고 돌아봤다. 부임 초기엔 지역 인사들과 의견차이도 적지 않았다. 문화공간의 이름을 짓는 일에서부터 그랬다. 그의 한글이름 짓기는 이제 성공궤도에 접어들어 고양시 주민들은 어울림누리와 아람누리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지만, 당초 이름은 덕양문화체육센터와 일산문화센터였다. 큰이름 뿐만이 아니다. 어울림누리의 대극장은 어울림극장, 소극장은 별모래극장이다. 별무리경기장, 꽃우물수영장, 실내스케이트장인 성사얼음마루도 있다. ●문화공간 한글이름 짓기 큰 반향 아람누리도 오페라 전용 한메아람극장을 비롯해 한메바람피리음악당, 새라새극장, 노루목야외극장 등으로 이름지었다. 좌석도 R석,S석,A석,B석으로 구분하는 데서 벗어나 으뜸자리, 좋은자리, 편한자리, 고른자리, 가장자리로 이름붙였다.‘이상만식 자리구분법’은 문화공간 사이에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다. 극장 운영에서도 소신은 적용됐다. 외국 공연단체에는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해 줄 것을 당당히 주문했다. 베를린 심포니에도 윤이상 작품의 연주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유명 연주자에게 “서울보다 먼저 고양에서 공연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기도 했다. 연주자를 선정하거나 직원을 채용할 때는 지역색을 배격했지만,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은 최대한 되살리려 노력했다. 과거 은평, 서대문, 마포, 용산, 성동, 동대문, 성북, 강북, 광진구의 대부분이 고양에 속했으며, 을지로6가에 있던 고양군청이 현재의 고양시청 자리로 옮긴 것이 그리 오래지도 않은 1961년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앞장선 것도 ‘서울의 모태’인 고양에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높이겠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명예로운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아람누리는 여전히 적지않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듯했다. ●어울림누리^아람누리는 고양시민 자부심 “아람누리는 극장 전체 좌석수로 예술의전당보다 불과 500석이 적고, 부지는 오히려 넓습니다. 이런 규모의 공연장을 무엇으로 채우고, 어떻게 관람객을 끌어들이느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갱이(콘텐츠)가 있으면 수요는 창출되기 마련이지요.” ●베를린 심포니에 ‘윤이상 작품´ 연주 당당히 요구 이 총감독은 세종문화회관의 예를 들었다. 그는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당시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위원 겸 개관예술제 사무국장을 맡았던 ‘공연장 개관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의 공연 인구는 5만명 남짓으로 추산될 뿐이어서 걱정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내용을 담아놓으니 100일 동안 열린 개관예술제엔 154회 공연에 모두 27만명의 관객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울림누리와 아람누리를 계획하고 추진한 신동영·황교선 전 시장과 강현석 현 시장을 두고 “참으로 배포가 큰 사나이들”이라면서 “이런 규모의 문화공간이 지역에 세워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아람누리가 지역 문화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지혜를 추적하는 한국 문예부흥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상업주의에 잠겨, 그의 표현대로 ‘공연물 도매상’의 역할에 그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학의 ‘레퍼토리 시어터’는 인구 10만명에 불과한 뉴헤이븐의 작은 대학 극장이지만, 미국의 극장문화를 주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람누리의 300석짜리 실험무대 새라새극장도 우리나라 연극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총감독은 퇴임한 뒤, 먼 곳에서라도 아람누리 개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올 상반기 일정은 비워놓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도의적으로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을부터는 2009년 제주에서 열리는 델픽(Delphic·문화올림픽)의 준비 작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 유일의 델픽 국제상임위원이다. 고양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반달/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동양화는 낙관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의 아호뿐 아니다. 다양한 글귀가 담긴다. 그의 철학이나 정신의 깊이를 읽는 좋은 단초가 된다. 찬찬히 음미할수록 맛이 더 난다. 크기가 작아도 상관없다. 돋보기를 대면, 작가의 숨은 기운이 성큼 다가온다. 지난해 고궁박물관이 ‘조선왕조 인장전’을 가진 뒤 책을 냈다. 정조·헌종·고종 등 역대 군왕과 강세황·정약용·김정희·대원군 등의 글, 그림 그리고 낙관이 한자리에 모였다. 비운의 헌종이 다시 조명됐다. 후기 세도정치의 그늘에 가려 23세에 요절했지만, 그림과 글의 경지는 상당했다고 한다. 그의 호 ‘元軒’(원헌) 낙관은 군왕의 기개보다는 단아한 문인의 향이 진하다. 월북 화가 이석호의 낙관이 재미있다. 그의 작품전이 지금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호박 참새 포도 등을 소재로 한 향토색 짙은 채색 수묵화들이다. 낙관은 반달 모양이다. 그 안엔 한글 ‘내고향’이 담겼다. 북한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은 그지만, 향수는 떨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향과 가족을 향한 그의 마음이 반달만큼 아련하게 다가온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미술사 용어 쉬운 말로 바뀐다

    미술사 용어 쉬운 말로 바뀐다

    박물관에서 ‘청자투각용두식필가(靑磁透刻龍頭飾筆架)’같은 안내카드를 읽으며 당혹감을 느꼈던 관람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쉽게 이해하라고 적어넣었겠지만,‘청자용머리 장식 붓꽂이’라는 뜻을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용어 개선 작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용산 박물관 시대를 앞두고 2004년부터 추진한 미술사 분야의 용어 개선 작업이 지난해 말 마무리됐다. 개선안을 담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용어-미술사’도 8일 발간됐다. 용어 개선작업은 ▲중학생 수준의 관람객도 이해할 수 있는, 한글 위주 전시 용어의 정립과 ▲혼동되어 사용되던 전시 용어의 정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병용되거나 혼용되던 명칭은 고문헌을 검토하고 최근까지의 연구 성과를 고려하여 하나로 정리했다. 윤두서의 ‘진단타려도’나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나귀에서 떨어지는 진단 선생’과 ‘끝없이 펼쳐진 강산’으로 풀어쓰고 한자를 뒤에 써넣었다. 반면 ‘몽유도원도’처럼 처음부터 제목이 붙여졌거나 고유명사처럼 친숙해진 것은 한자이름을 앞세우고 ‘꿈 속에 여행한 복사꽃 마을’처럼 한글로 풀어쓴 제목을 뒤에 붙여넣었다. ‘영산회상도’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는 ‘나무위에 앉은 한 쌍의 까치’,‘모견도’는 ‘어미개와 강아지’,‘진두대주(津頭待舟)’는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는 광경’이다. 청화백자를 일컬을 때 혼용되던 ‘靑畵·靑花·靑華´는 조선시대 국내산 청화백자를 가리키던 ‘靑畵’로,‘鐘´과 ‘鍾´이 혼용되던 범종은 성덕대왕 신종의 명문 등의 사료에 근거해 ‘鍾’으로 통일했다. 붉은색으로 장식된 백자를 가리키는 진사는 진사(辰砂)라는 안료가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화(銅畵)로 정리했다. 탱화(幀畵)라는 이름을 쓰지 않도록 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탱(幀)은 18세기 이후 불화의 화기에 제목과 함께 쓰고 있으나, 발음이 ‘탱’인지, 명확한 근거가 없어 당분간 탱 대신 도(圖)를 붙이도록 했다. 신중탱은 신중도, 감로탱은 감로도, 산신탱은 산신도, 시왕탱(十王幀)은 시왕도 등이다. 한편 금석문을 먹물로 찍어내어 판독을 쉽게 하는 탁본(拓本)은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일반화된 용어이다. 하지만 탁본은 조선 후기에 주로 쓰이고 탑본(本)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표기하고 있는 만큼 탑본을 활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이 만든 용어개선안을 바탕으로 8차례 열린 자문회의에는 정양모·안휘준 전 현직 문화재위원장을 비롯해 김리나·한정희 홍익대 교수,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조선미 성균관대·이태호 명지대·정우택 동국대·박영규 용인대·이주형 서울대·최공호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등이 참여했다. 작업을 주도한 중앙박물관 김영원 미술부장은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검토하고 고민하고 토론했지만, 학자들이 선호하는 용어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가 너무나 달라 간격을 좁히는 일은 힘겨운 일이었다.”면서 “용어 개선 작업으로 더욱 선명해진 것은 이번에 정리한 것보다 몇 배로 검토, 정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라고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기고] 올케와 며느리,그리고 도련님,아가씨의 호칭/최기호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한글학회 이사

    한국여성민우회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여성비하 호칭을 바꾸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족 관계에서 쓰이는 여러 호칭 속에 불평등하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다. 민우회는 이미 말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온전하지 못한 의미를 주는 ‘편부모’ 대신 ‘한부모’로 바꿔 쓰자고 제안하여 부모가 다 있지 않은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일도 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번 여성비하 호칭 바꾸기는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올케, 며느리, 아가씨, 도련님, 형님 등의 어휘 선정 문제이다. 잘못된 주장이나 가설을 그대로 믿고 맹종하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셈이 된다. 특히 어원은 객관적이고 문헌의 고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학설이 되는 것이다. 호사가나 전문가가 아닌 재야 필자들이 억측으로 내놓는 수많은 주장을 가려 쓸 줄 알아야 한다. 민우회에서 ‘올케’의 어원은 ‘오라비의 겨집’에서 유래한 비칭으로 ‘오라비의 계집’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올케의 어원은 ‘두시언해’ 등에 나타나는 오라비(오빠)에 겨집(아내)이 합쳐져서 ‘오랍겨집’이 되었고, 그것이 축약되어 ‘올케(올겨집)’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올케는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보통의 말이며 ‘겨집´ 또한 여성을 비하하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옛날에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을 ‘겨집’이라고 지칭했다. 이것이 의미변화를 일으켜서 ‘계집’이 되었다.‘마누라’라는 말도 옛날에는 임금이나 상전에게 붙이던 아주 높임말이었는데 점점 변하여 지금은 아내를 낮춰 부르는 말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며느리’는 기생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니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했다. 며느리는 며늘/미늘/마늘+아이의 구조에서 어원을 주장하는 이가 천소영이다. 그러나 며늘/미늘/마늘이 기생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옛 기록이 없다.‘며느리’의 ‘리’를 ‘아이’로 해석하는 것도 근거가 없는 틀린 해석이다. 그리고 며느리를 메(진지, 밥)+나르(다)+이로 분석한 이가 백문식이다. 그는 며느리를 제사 때 음식(제삿밥+메) 나르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이것도 아무런 증거 자료가 없다. 틀린 어원설을 가지고 여성비칭을 설명하려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헌자료인 ‘왜어류해’에는 ‘며 리’가 보이고,‘훈몽자회’에는 ‘며느리’가 보이며,‘가곡원류’에는 ‘며 ’이 보이고,‘청구영언’에는 ‘며늘아기’가 보인다. 이들 자료에서는 여성 비하호칭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 민우회는 또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아가씨’와 ‘도련님’을 문제삼고 있다. 과거에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극존칭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극존칭에 문제는 있지만 현재는 극존칭을 거의 쓰지 않으며 여기에 여성 비하의 의미는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호칭어와 지칭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기 아내를 부를 때 ‘여보’라고 하면 호칭어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내 집사람’이라고 말하면 지칭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호칭어에서 역사성을 알아야 이해할 수가 있다. 서양은 수렵사회이고 수평사회이며 부부중심사회로 직접호칭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며 수직사회이고 부모자녀 중심사회로 간접호칭이 발달하였다. 서양은 대통령이나 아버지에게도 ‘너(you)’라고 부를 수 있고,‘부시’라고 직접 이름을 부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대통령이나 아버지 이름을 직접 부를 수도 없고 ‘너’라고 직접 호칭했다가는 난리가 나는 것이다. 최기호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한글학회 이사
  • [Seoul In] 초·중·고급 한글교재 출판

    관악구(구청장 김효겸) 글을 모르는 구민을 위한 한글교재를 만들었다. 한글교재는 초·중·고급 등 3개 과정으로 나눠 실생활에서 쉽게 만나는 내용과 그림, 예문을 많이 수록했다. 매일 2시간씩 평생학습센터에서 강좌를 열고 수강생을 수시로 모집한다. 개설된 강좌는 한글 초·중·고급 과정, 기초생활산수, 기초생활영어, 한문 등이다. 기획예산과 880-3789.
  • 국내 最古 금속활자 발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됐다. 중앙박물관은 조선 세조 7년(1461) 불경인 능엄경을 한글로 옮긴 ‘능엄경언해’를 간행할 때 사용한 을해자(乙亥字)일 가능성이 큰 금속활자 30여개를 찾아냈다고 4일 밝혔다. 금속활자는 여러 차례 사용해 마모되면, 녹인 뒤 새로운 활자를 주조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임진왜란 이전 활자는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재정 역사부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1403년)나 세종시대의 갑인자(1434년)는 실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을해자로 확실시되는 이번 유물을 제외하면 이전 금속활자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려시대 것이라고 전해지는 한문 활자 2점이 남북한에 한 점씩 전하고 있으나, 출토지가 확실치 않고 수량이 워낙 적어 실제로 인쇄에 사용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중앙박물관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왕실 등에서 주조한 것으로 보이는 수십만점의 금속활자를 소장하고 있다. 대부분 한자이며, 한글은 현재까지 모두 752점이 확인됐다. 을해자는 ‘능엄한글자’로도 불린다. 이 활자는 1481년 ‘두시언해’ 초간본,1482년 ‘금강경삼가해’를 찍을 때도 사용됐다. 을해자는 선조 초에 크게 보충주조(補鑄)가 이루어져 1573년 인쇄한 ‘내훈언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1588년 경서국역본 출판에 쓰인 ‘경서한글자’도 을해자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따라서 을해자라도 1461년 무렵에 만든 것인지,1573년 보주했을 때 만든 것인지, 경서국역본을 만들 때 주조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금속활자 ‘힝’과 ‘횡’ 등에서는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면서 종성에 덧붙이는 음가없는 ‘ㅇ’이 보인다. 음가없는 ‘ㅇ’은 조선 전기에만 사용된 데다,‘힝’과 ‘횡’ 등은 다른 활자와 성분에서도 뚜렷이 다른 점을 보여 ‘능엄경언해’를 찍을 때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반총장 “사형은 각국 법따라 결정”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본부 직원들의 환호와 환영 속에 2일(현지시간) 첫 공식업무를 마쳤다. 반 총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 뉴욕 맨해튼의 유엔본부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한국인 사무총장 시대를 맞은 유엔 직원들은 반 총장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처럼 유엔 내에 대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달라며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반 총장은 2층 안전보장이사회 앞 기자회견장에서 첫 출근의 소감과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반 총장은 특히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역할을 묻는 질문에 “사무총장으로서 6자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관련 국가 및 유엔 안보리 회원국과 밀접하게 이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의 처형 문제에 관한 질문에는 “후세인은 이라크인에 대한 흉악한 범죄의 책임이 있고 우리는 이같은 범죄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사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반 총장의 발언은 사형에 반대한다고 밝혀온 유엔의 기존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이 때문에 이날 미셸 몽타스 신임 유엔 대변인의 정오 브리핑에서 기자들은 사형제에 관한 유엔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지를 집중 질의하는 등 논란이 됐다.daw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문득, 멈춰 서서 이야기 하다- monologue Quartet/김정용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병원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등장, 잠시 휠체어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사람: (동시에)저기……. 짧은 암전. 명일: 그녀를 처음 본 건 두정: 치악산이었습니다. 신흥: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신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신흥: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명일: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해질무렵이었는데, 지금도 기억나요. 두정: 그날 따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명일: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들이 뭐라하건 전 그때 운명을 느꼈습니다. 두정: 이렇게 될 운명이라 그랬던 걸까요? 신흥: 앞이 깜깜하더군요 신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 모습만 보이는 거 있잖아요. 신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수습해야 할지, 그때만 생각하면……. 두정: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 일은. 명일: 그날이 제 생애에서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난 날입니다. 신내: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죠? 신흥: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어떻게 마누라 얼굴을 봐야 할지, 술이라도 먹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술은 입에도 못 대고……. 두정: 술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산행하는 날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내려와서 마시면 모를까. 명일: 시간 되시면 저랑 술 한 잔 하실래요? 명일 주변이 밝아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명일: 이 말이, 제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어요,‘술 한 잔 하실래요?’ 참 바보 같았죠, 머릿속에 별별 말이 다 떠돌았는데, 막상 나온 말이 그거였어요,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런데 그녀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한잔만요?’(미소) 그렇게 시작 했어요. 우리들. 정말 행복했어요, 너무 행복해서 불안할 정도로,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일만 계속 생기면 왠지 불안해지고 그러는 거. 육상 경기복 차림의 신내 등장. 얕은 숨으로 몸을 푼다. 명일: 하지만 그런 불안도 그녀의 미소 앞에선 힘을 잃고 말았죠.(신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우린 언제나 함께였어요, 몸이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마음만은 늘 붙어 있었죠. 신내: 그만해, 더는 못 들어주겠다. 그래서 대학 떨어지면 누구 탓하려고?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많이 놀랐어요, 원래 말씀을 거침없이 하시는 편이시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리라곤 생각지 못했거든요, 제가 원하는 일에 반대 한번 안 하셨던 분인데, 아빠도 제가 고3이 되는 게 스트레스가 되셨나봐요, 사실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상하면서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으실 생각조차 안 하세요 명일: 그런 우리를 하늘이 시샘했는지 신내: 그만해 명일: 불안함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신내: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어요. 명일: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신내: 낼 모레가 마지막 시합이에요. 오빠가 와 줄까요?(호루라기 소리) 예, 가요! 암튼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급하게 달려 나간다.) 명일: 다 제 잘못이에요, 급하게 달려 나가는 연수를 잡았어야 했는데, 연수가 제 눈앞에서 붕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나뒹굴었어요,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그렇게 몇 바퀴를 굴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더군요. 명일: 수술실 앞에서 내내 기도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두정: 멀리서 누군가 절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눈을 떴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하얀 천장, 그보다 더 하얀 형광등뿐이었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명일: 잠깐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저 세수좀 하고 올게요. 죄송합니다.(나간다.) 두정: 이제 에베레스트는커녕 문턱하나 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고, 설령 잘못 되더라도 열심히 재활하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제 몸은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저는 걷지 못할 겁니다. 이제 에베레스트는 제게 있어 그림엽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산일 뿐입니다. 신흥: (통화하며 등장)아니라니까 그러네, 왜 내 말을 못 믿어, 다 잘 될 테니까 너무 걱정마……, 나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끝나지 않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깟 일로 안 무너져……, 여보 나 믿지? 그래 내가 알아서 잘할게, 그리고 내 전화 말고는 다른 전화는 절대 받지마……, 알아, 알아 당분간 친정에 가 있어, 애들은……, 그래, 너무 걱정마.(끊는다.) 두정: 너무 걱정마, 모두들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인간이란 동물은 원래,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대한 법이니까요. 이렇게 되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관대함이란 게 무관심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요,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시죠? 그것도 다 여러분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입니다.(사이)저도 며칠 전까진 여러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절망이란 놈은 순식간에 저를 이곳에 앉혀 놓고는 두 다리를 옭아맸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신흥: “너무 걱정 마”,“걱정하지 마세요.” 도대체 이 말을 몇 사람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길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걱정 말라고 당부하는 꿈을 꿀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웃긴 건, 그 어느 누구도 저에게 이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저인데도 말이죠. 가해자 취급만 당했어요, 물론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저 잘못 했어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딱 까놓고 말해서, 저만 좋자고 프로젝트 진행시킨 겁니까! 다 같이 잘되자고 한 일인데, 일이 틀어지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로 돌변하더군요, 같이 진행한 동료들까지도 말이죠,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두정: 다 필요 없습니다. 신흥: 다 필요 없어요. 신내: (등장)꽃이 필요할 거예요, 그쵸? 신흥: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두정: 전……, 이곳에서 탈출할 생각입니다. 신흥: (약병을 꺼낸다)저만 없어지면 됩니다. 두정: 제가 없어지면 모두들 걱정하는 척하다가 금세 잊어버릴 겁니다. 다리병신 하나쯤 없어졌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신내: 아니야, 그건 아니야.(두정 나간다.) 여자가 먼저 꽃을 주는 건 좀 그렇겠죠? 신흥: (병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이게 왜 이래. 신내: 어떡하지? 신흥: 어떡하지? 신내: 오빠가 와주긴 할까요? 신흥: 깨버릴까? 신내: 용기내서 말하긴 했는데 대답을 못 들었거든요 신흥: 용기가 깨질 때 유리 파편이 섞이면 먹기 힘들 텐데.(열심히 뚜껑을 돌린다.) 신내: 다시 한 번 말해 볼까요? 이상한 애로 보이면 어쩌죠?(사이) 안 되겠어요. 신흥: 안 되겠어. 수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신내: 무슨 수를 써야지……. 명일, 나가는 신흥과 교차되며 들어온다. 신내: 아하! 다시 말하기는 그러니까, 편지가 좋겠어요. 그렇죠? 좋은 생각이죠? 마지막 시합에 오빠가 와주면 더 힘내서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쓰는 거예요. 역시 솔직한 게 좋겠죠? 그래, 그래야겠어요. 명일: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신내: 편지 명일: 편지 얘기는 아직 안 하지 않았나요? 신내: 우선 펜하고 종이가 필요하겠죠? 명일: 적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듣기만 하시면 안 될까요?(신내,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신내, 나간다.) 그럼 얘기가 나왔으니 편지 얘기를 할게요.(잠시 머뭇거리다) 사귀기로 한 날부터,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연애편지를 쓴 건 아니고요, 일기 쓰듯이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나 써서 메일로 보냈어요.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요, 단 하루도.(웃음)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어느날 술을 잔뜩 마셔서 떡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차 싶은 거예요, 하루도 빼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늦었지만 변명이라도 해볼 양으로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았죠, 그리고 메일을 쓰려고 로그인을 했는데 수신 확인 창이 뜨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하고 봤더니, 글쎄 제가 전날 밤에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무슨 말을 썼는지 궁금해서 메일을 열어 봤는데(피식거린다.) 그게, 영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고 그런 거 있잖아요.fhufhㅈ뎌???ㄷew 이런 거 (웃는다.) 더 웃긴 건, 제목이 뭐였는지 아세요? fhi롤fwqo어ㅈㅇ……. 명일, 말을 잊지 못하고 정신없이 웃는다. 무대 뒤에서 두정과 신흥의 절규가 들려온다. 명일: (무안해 하며)죄송합니다. 신흥, 두정 서로 반대편에서 등장 신흥, 두정: 이럴 순 없어 두정: 병원 정문도 못가서 잡혀버리다니. 신흥: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신흥, 두정: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내가 아무리 이런 꼴이 됐어도 두정: 병원문턱 하나 신흥: 병뚜껑 하나 신흥, 두정: 내 맘대로 두정: 넘지, 신흥: 열지-못하다니, 왜 하필 이런 일이 나한테 닥친 거야, 왜 하필이면 나냐구, 내가 뭘 잘못했게! 내가 바라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명일: 다시 시작하죠. 두정: 그만하자, 그만해,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내 꼴만 더 우스워지지. 두정, 신흥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신흥: (병을 내밀며) 저……, 이것 좀. 명일: 네? 두정: 뭘 봐! 휠체어 탄 사람 처음 봐! 명일: 네. 신흥: 죄송합니다. 이것 좀 열어 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병을 건넨다.) 두정: 씨발.(술병을 꺼내 마개를 따려한다.) 이건 왜 이렇게 안 열려 신흥: 잘 안 열리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명일: 무리라뇨, 전 괜찮아요.(사이) 알겠습니다. 내일 오면 되는 거죠? 같은 시간에 두정: (술병을 집어던진다) 젠장, 젠장, 젠장! 신흥: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사이) 안 열리면 할 수 없죠 뭐(병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아련한 음악 다시 흐른다. 명일, 천천히 무대를 돌고. 신흥 뚜껑을 열기 위해 애쓰며 퇴장, 두정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퇴장, 신내 편지를 들고 등장, 음악이 끝나면 명일과 신내 각자 자리를 잡는다. 신내: 편지 다 썼어요, 들어 볼래요?(편지를 꺼내 읽는다.) 오빠 명일: 연수야, 야! 신연수 신내: 잘 지내고 계세요? 명일: 난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신내: 전 무지무지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며칠 전에 오빠에게 했던 말 기억나세요? 명일: 기억난다. 너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신내: 죄송해요, 갑작스럽게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쳐 버려서, 놀라셨죠? 명일: 아니야. 네가 미안할 건 없어, 붙잡아 주지 못한 내가 미안하지. 신내: 그래서 말인데요. 오빠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제 얘기를 못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편지를 써요. 저, 내일모레 있을 시, 도 대항 육상 대회에 시 대표로 나가게 됐어요, 아마도 제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요, 아빠가 육상을 못하게 하시거든요. 마지막 경기를 오빠가 꼭 보러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힘이 불끈 불끈 날거 같아요 어쩌면 한국 신기록을 세울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아빠도 더는 반대 못하시겠죠.-제발 그렇게 됐으면-, 자라나는 한국 육상 꿈나무의 앞길을 열어 주세요, 네 오빠! 우리가 대기하는 곳이 3번 게이트 쪽이거든요, 그쪽 스탠드 앞쪽에 계시면 제가 오빠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꼭 와주셔야 해요, 오빠가 오지 않으면 저는 실망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꼴찌를 할지도 몰라요, 꼭 와야해요, 꼭 꼭 꼭. 명일: 가고 싶어, 그곳에…….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들려온다, 신내 재빨리 편지를 감춘다. 명일: 저 소리 들려? 우는 소리가 괴상하니까 분명 생긴 것도 이상한 새일 거라고, 확인해 보고 싶다고 몇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었잖아. 결국 확인도 못해보고…….(목이 멘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걸어서 등장. 두정: (버럭)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이 있어 없어!(신내 얼른 뛰어 나간다.) 그런 정신 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야, 응!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 정말 실망이다. 네놈만은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같은 녀석은 에베레스트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어! 명일: 미안, 그때 널 잡았어야만 했는데. 두정: 에베레스트는 고결한 자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약해 빠지고 결점투성이인 인간에게는 절대로 그 하얀 살결을 허락하지 않아! 명일: 그렇지 않아, 다 내 탓이야. 두정: 그깟 집안일 때문에 술에 절어 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네가 말했던 꿈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사이) 그래, 나 이해 못한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지? 얼빠진 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어떤 인간인 줄 알아? 바로 너 같이 환경 탓, 상황 탓 하는 것들이야.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야. 별것도 아닌 일에 주저앉아 버리는 너 같은 놈은 필요없어!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무슨 염치로 훈련장에 나타난 거야, 나타나길. 다른 팀원들이 너 보면 사기 떨어지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명일: 제발 나타나줘,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내 앞에 나타나줘. 암전. 빛 속에 홀로 있는 신흥 신흥: (반쯤 줄어든 약병을 들고 허탈하게 웃으며)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겨우겨우 열어가지고 스무알을 넘게 먹었는데……, 뭐? 고통 없이 갈 수 있다고? 나쁜 새끼들.(꺽꺽댄다.) 이딴 걸 20만원씩이나 주고 산 내가 미친놈이지.(전화 벨이 울린다, 병을 내려놓고 전화를 확인하고는 배터리를 빼버린다.) 미안해 여보. 날 용서하지 마.(사이) 한심하죠? 저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습니다. 하기야 태어날 때부터 한심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다보니까,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한심해지는 거지.(사이) 돌아가신 저희 아부지께서 술만 드시면 어린 저를 붙잡고 늘상 하시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두정: (빛 속에서 등장)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어.(사라진다) 신흥: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알겠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아부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넌 어른이 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동물이 바로 어른이란 동물이다.” 백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사이) 그나저나 이제 어떡해야 하죠? 수습할 수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빌어먹을 죽지도 못하고, 어떡해야 하죠? 신내: (빛 속에서 등장) 그럴 땐 초콜릿을 먹으면 돼요, 그것도 아주 진한 다크 초콜릿, 아무리 우울해도 한두 조각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한두 번 혼난 것도 아니고 뭐. 괜찮아요. 초콜릿 하나면 땡이에요.(사라진다.) 신흥: 그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닙니다. 근데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예? 그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제가 아픈건 딱 질색이라. 명일: (목소리) 연수야, 연수야 신흥: 쉿! 지금 누가 제 이름 부르지 않았나요? 설마 놈들이 여기까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제발 좀 도와주세요, 잡히기라도 하는 날엔……,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명일: (목소리)아! 꿈이었구나. 신흥: 윽!(배를 움켜쥔다.) 아 배야, 갑자기 왜 이러지? 뭐 먹은 것도 없는데. 화장실, 화장실……, 크 아퍼, 먹은 거라곤 이것뿐인데,(무언가 떠올라.) 약! 이 약! 개새끼들.(배를 부여잡고 달려 나간다.) 빛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약병. 빛이 점점 번져 공간을 환하게 만든다. 밝아지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신내. 신내: 이 시간이면 항상 이곳을 지나가는데 (두정 등장) 어! 태령 오빠! 두정: (신내의 맞은편에 앉는다.) 왜 불러낸 거야? 신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드릴 게 있어요. 두정: 뭔데 신내: (편지를 건네며) 이거 두정: (받으며) 이게 뭔데? 신내: 나중에 읽어 보세요(얼굴이 붉어진다.) 두정: (읽은 후) 각서……, 야! 지금 너 장난하냐? 신내: 아니에요, 안 빨개요 두정: 이딴 종이 쪼가리를 어떻게 믿어? 신흥 한손에 휴지를 들고 등장, 처절한 소리를 지르며 부리나케 테이블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신내: 전엔 죄송했어요, 제 말만 하고 멋대로 가버려서. 두정: 죄송하다면 다야? 신내: 예, 그치만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요. 두정: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신내: 오빠. 두정: 이제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더 이상 난 네 대장이 아니다 신내: 호, 혹시……, 여, 여자친구……, 있으세요. 두정: (단호하게) 없어, 추호도. 난 한번 결정한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꾸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널 죽도록 패주고 싶지만 옛정이 있어 참는다. 신내: 다행이다.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요. 두정: 더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훈련중이었거든, 네놈이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그 훈련 말이다. 신내: 그러세요, 예, 가보세요, 편지 꼭 읽어 보시고요, 두정: 두 번 다시 널 만나는 일이 없길 바란다.(각서를 구겨 테이블에 던진다.) 신내: 저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신내 꾸벅 인사하고는 떠나는 오빠(두정)의 뒷모습을 눈으로 는다. 두정 나간다. 신내는 오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신흥 허겁지겁 등장, 숨을 곳을 찾는다. 급하게 숨을 곳을 찾고는 몸을 숨긴다. 신흥: (숨을 몰아쉬며)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마주칠 건 뭐야, 그나마 나오는 길에 마주쳤기에 망정이지 들어가는 길에 마주치기라도 했어봐. 아유아유 죽겠네.(두정이 버렸던 병을 발견) 뭐야? 새거잖아.(너무나 쉽게 병을 열고는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제자리에 놓는다.) 햐 시원하다.(허탈하게 웃으며) 안좋은 일만 생기는 것 만은 아니구나.(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제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아부지 말처럼 어른이 돼버려서 이렇게 된 걸까요? 가장 더럽고……, 후후후.(사이) 네? 어른이 되기 전에요? 글쎄요, 어른이 되기 전이라……. 그러고 보니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그땐 뭐, 다들 그렇겠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랬는데, 샐러리맨 따위가 될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때의 저한테 미안한 생각까지 드네요,(사이) 그럼요, 뭐였냐면요……, 막상 말하려니까 쑥스럽네요, 웃지 마세요, 가수예요, 가수 (웃음) 웃기죠? 가수를 꿈꾸던 청년 도망자 되다! (웃음 소리속에 점점 슬픔이 담긴다.) 명일: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 꿈이었어, 꿈. 연수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연수야.(컴퓨터를 켠다, 윈도 시작음악) 언제까지 너한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언제 와서 이 편지 읽어 줄래,(창 뜨는 소리, 몹시 놀란다.) 어, 어! 신흥: 아, 아! (배를 움켜쥐고) 또야? (뛰어 나간다.) 명일: (흥분) 틀림없어요. 그녀가 읽은 거예요. 그녀가 읽은 거라고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메일을 읽어요, 안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게 아니었던 거예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짧은 사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신흥: (등장) 지독한 놈들, 왜 화장실 앞에서 죽치고 있는 거야, 아, 미치겠네.(반대쪽으로 달려 나간다.) 명일: 봤죠, 네 봤어요, 근데 제가 본건 사고 나서 실려 가는 것까지였어요, 죽은 연수를 본 건 아니잖아요. 장례식요? 어……, 그건……, 아 그래그래, 필요했던 거예요 장례식이, 연수는 큰 사고를 당했어요, 죽지는 않았겠지만 몸이 성치는 않을 거예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영화나 소설 보면 죽은 걸로 하고 숨어서 지내는 거, 그래 그거야, 그거.(짧은 사이) 비약요? 그건 선생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어요, 연수가 살아있어요! 제 우울증 따위는 한방에 끝났다고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수를 데려가지 않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요 살아 있기만 하다면요, 신흥: (퀭한 얼굴로 등장) 살았다……. 두정: (목소리) 야! 야! 신흥: (소리 나는 쪽을 보며) 젠장! (도망친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낮은 목소리로) 거기 서! 뭐 나한테 속이는 거 있지? 틀림없어,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뭐야? 사실대로 말해봐. 뭐야 대체? 명일: 예? 두정: 뭐라고 했어 지금? 다시 한 번 말해봐. 명일: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지금은 연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짧은 사이) 선생님! 왜 자꾸 그러세요? 선생님은 연수가 살아 있는 게 싫으세요? 비밀 번호를 아는 사람은 연수밖에 없어요, 그런 건 철저한 애였어요, 수신확인이 됐다는 건 연수가 열어 봤단 소리예요. 다른 가능성은 없어요. 두정: 그래 알았어, 너희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이해한다. 알았어, 알았어,(짧은 침묵) 잘 가라, 참 그리고 앞으론 문병 같은 거 오지마라, 훈련에만 전념해, 나 들어간다. 명일: 안녕히 계세요. 연수를 찾아봐야겠어요.(나간다.) 두정: (가다 멈춰서) 개자식들! 신흥: (온 몸엔 상처, 옷은 쥐어뜯겨 엉망인 채로 등장) 개새끼들! 두정: 의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가 이렇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 자식을 끌어들여? 신흥: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패냐 두정: 씨발, 씨발 씨발,(거친 웃음) 신흥: 아, 진짜 아프다, 돈 몇 푼에 아주 사람을 죽이려고 환장을 했구먼, 도망치지 않았으면 골로 갈 뻔했네.(어이없다는 듯이 웃다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씨발 새끼들, 아부지, 여보, 나 아퍼.(울음소리 점점 커진다.) 두정: 그만해, 그만해!(울먹인다.) 두정과 신흥의 울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신내 허겁지겁 들어온다. 신내: 뭐하는 거예요 대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얼른 일어나요 (두정, 신흥 울음을 그친다.) 자 초콜릿 (두정과 신흥 앞에다 놓는다.) 이거 먹으면 힘나거든요, 씹어 먹지 말고 천천히 녹여 먹어요.(사이) 자 가요, 가서 멋지게 1등하고 돌아오면 되잖아요. 그럼 분명 코치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얼른 일어나세요. 시간 다 됐어요. 우리 몸도 풀겸, 경기장까지 뛰어 가요! 오케이.(나간다.) 두정, 신흥 꾸역꾸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흥은 두정의 자리로, 두정은 신흥의 자리로 간다. 둘은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초콜릿을 발견하고 집어든다. 신흥: 아깐 음료수 이번엔 초콜릿? 두정, 신흥: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초콜릿을 본다.) 뭐야? 둘,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는다. 마법같은 음악 잠깐. 알 수 없는 미소가 둘의 얼굴에 감돈다. 두정, 신흥: 그래, 힘내자, 신흥: 약을 스무 알씩이나 먹고, 그렇게 맞았는데도 안 죽었는대. 두정: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던 거야, 발버둥 쳐 봤자지. 두정, 신흥: 뭔가 길이 있을 거야. 두정: 그렇지? 신흥: 그렇지. 둘, 서로 반대편으로 퇴장, 신내 다른 곳으로 들어온다. 신내: 자! 우리 파이팅하는 거예요! 코치님도 병원에서 틀림없이 우릴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몸을 풀며 두리번거린다.) 아직 안 왔어요, 조금 있으면 시작인데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죠? (관중석으로 손을 흔들며 웃는다.) 엄마, 아빠 여기, 여기.(사이) 차가 막히나?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래, 그래. 오빤 틀림없이 올 거야. 자! 힘내자 연신내. 멋지게 달려서 일등 하는거야, 알았지? (더욱 열심히 몸을 푼다.) 명일 등장. 신내: 어! 오빠! (명일에게) 여기에요, 여기.(환하게 웃으며 인사) 오빠가 왔어요, 오빠가 왔다고요. 좋았어, 아자아자! 명일: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친구들은 모를 테고,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나? 그래, 일단 아이피 추적부터 해보자, 좋았어, 아자아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소리: 여자 800미터 예선전 참가자들은 본부석 쪽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오빠 쪽을 향해) 꼭 일등 할게요! (나간다.) 두정 등장, 휠체어를 세우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 재활운동을 시작한다. 각자의 일에 열심인 두 사람. 명일: 안 되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두정: 헛 둘, 헛 둘. 한참을 하다 지친 둘. 명일: 아,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야? 두정: (숨을 몰아쉬며) 두고 봐 꼭 해내고 말 테니까. 기다려라 에베레스트, 내 네놈을 꼭 밟아주고 말 테다. 소리: 딩동댕동.601호 특실 환자분 면회객이 와 있습니다. 속히 병실로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명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어디서 공사하나?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집중을. 두정: 면회? 누구지? (휠체어에 오른 후 퇴장.) 명일: 도저히 안되겠다. 누구 컴퓨터 잘하는 사람 없나? 아 그렇지! (휴대전화를 꺼내 건다.) 여보세요? 문정이냐? 응, 나 명일인데·…….(통화하며 나간다.) 나가는 명일과 교차하며 신내 등장.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을 턴다. 소리: 여자 800미터 세번째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선수들은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신내 앞으로 나와 몸을 푼 다음 놓여 있는 병을 들고 마시고는 (두정이 버렸던 병) 출발선에 선다. 소리: 차렷, 준비. 소리2: 거기 서 개새끼야! 소리: (총소리) 탕 출발과 동시에 터지는 응원과 환호성 속에서. 슬로 모션으로 출발하는 신내.“안 서면 죽어!” 소리를 등지고 신흥 슬로로 뛰면서 등장. 신내와 신흥 같은 방향으로 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두 사람. 신흥이 점점 신내를 따라잡아 이윽고 나란히 뛰게 된다. 신흥이 신내를 앞서가려는 찰나. 신흥의 발이 꼬여 중심을 잃고, 그런 신흥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넘어지는 신내. 신흥은 얼른 추스르고 멀리 달아난다. 엎어진 채 그대로 있는 신내에게 빛이 모아진다. 빛은 점점 작아진다. 암전. 다시 서서히 밝아지면 신내의 자리에 서서 홀로 빛을 받고 있는 신흥 신흥: 하하하, 꼴좋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한번은 잡혀도 두 번은 안 잡힌다! 이래 봬도 왕년에 한달리기 한 사람이야 왜 그러셔.(사이) 그나저나 이제 뭘 어떡해야 하지? 집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길거리에서 전전긍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약만 안 샀더라도 좀 더 나았을 텐데 (뒤적거려 지갑을 꺼낸다.) 육 만원. 육 만원이라, 이걸 갖고 뭐해……, 인생 허무하다, 나이 서른여덟에 가족 버리고 수중에 딸랑 육 만원 들고서 고민하는 꼴이라니……, 아니다, 아니다. 돈 한푼 없는 것 보다 낫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육 만원으로 새출발하는 거야! 까짓 인생 대역전이 별거야, 나라고 뭐 육 만원의 신화 만들지 말라는 법 있어? (절규한다.) 젠장, 근데 뭘 하냐구! 세 개의 빛이 동시에 들어온다. 빛 속에 나란히 있는 명일, 신내, 두정, 신흥. 명일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고, 신내, 입 주변이 피에로처럼 초콜릿이 범벅인 채로 무지막지 멍하게 앉아 있다. 두정은 한 곳을 응시한 채 얼어있다. 지하철 환승 멜로디가 경쾌하게 울린다. 소리: 이번 역은 전동차를 갈아타실 수 있는 환승역입니다. 다른 전동차를 이용하실 손님께서는 빠뜨리신 물건이 없나 잘 살펴보시고 다른 열차로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넷. 각자의 자리를 떠나 각기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로 이동한다. 두정과 신흥 쪽의 빛이 어두워진다. 명일: 틀림없다니까요, 증거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돼요, 제가 보낸 메일이 수신 확인이 되어 있었다고요, 왜 그게 증거가 안 되는 건데요, 비밀번호는 연수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사이) 그러니까 한번만 조사해달라는 거예요, 저기요, 무슨 얘긴 줄 알겠는데요, 사망신고가 됐다고 해서 꼭 죽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사이) 말이면 답니까! 제가 미친놈으로 보입니까? 당신들 시민의 요청을 거절하는거 그거 직무 유기야 알아? 민중의 지팡이라며? 친절봉사라며! 이따위로 일할 거야! (사이) 제발요,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조사해 주세요. 연수는 살아 있어요, 죽은 사람 살리는 셈치고 아니, 정말로 죽은 사람 살릴 수 있는 일이니까 한번만 도와주세요? 네? 한번만요. 신내: 안 돼! 안 돼! 아무리 초콜릿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흐느낀다.) 마지막 시합이었는데, 다시는 달릴 수 없는데……, 오빠가 보고 있었어,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끝이야, 전부 끝장나버렸어. 명일: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신내: 코치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입원하실 정도로 열심이셨는데. 명일: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신내: 이젠 뭘 어떡해야 하지? 모두들 나한테 손가락질할 거야, 부모님도 친구들도 오빠도 모두들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 내가 전부 망쳐버린 거야. 어떡해. 멀리서 신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손에 낡은 기타를 들고 등장하는 신흥 미친 듯 웃으며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신흥: 하하하, 이거야 이거! (기타를 튜닝하며 흥얼댄다.) “나는야 돈 한푼 없이 기는 도망자라네 하지만 나에겐 낡은 기타와 노래가 있어 둥기둥가.”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육 만원으로 어떻게 새 삶을 시작할까 고민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더군요, 이럴 때 의지할 마땅한 친구도 없는 내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갈 곳은 없고 배는 고프고, 그러고 있자니 일단 배라도 채우고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눈에 띄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뎅을 집어 들었습니다. 터진 입술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는데,(웃음) 오백원짜리 오뎅이 그렇게 맛있는 거예요, 사실 길거리에 서서 쩝쩝거리며 먹는 사람들을 보면 손가락질 했었는데……, 아! 이래서들 먹는 거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막 세 개째 꼬치를 집어드는데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어요, 포장마차 앞에 있는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였어요, 렛잇비였는데, 너무 유명해서 촌스럽게까지 느껴졌던 그 노래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길거리 오뎅과 렛잇비, 저한테는 그냥 그저그런 뻔한 것들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뭐 암튼, 오뎅을 질겅거리며 노래를 들었어요. 렛잇비가 그대로 두라는 뜻이라면서요? 어렸을 때는 왜 그대로 두라는 건지 이해를 못했었는데, 그 순간에 아! 그런 거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그래서 그길로 곧장 중고 악기상으로 달려가 이놈을 장만했습니다. 지금 제 수중에 있는 거라곤 이 녀석과 단돈 삼천원이 전부입니다. 기타와 삼천원이라 뭔가 고독하기도 하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20년 만에 만들 노래의 제목.“기타와 삼천 원” 하하하, 놀라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이런 완벽한 제목을 만들어 내다니, 제목부터 뭔가 확 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명일: 뭐라고요?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세요. 신흥: 기타와 삼천원 명일: 설마……. 신내, 신흥 쪽을 바라보다 ‘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뛰쳐나간다. 신흥: (신내가 나간 방향에 대고) 놀라시긴……, 노래가 완성되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열배는 더 놀라실 겁니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사이) 흥신소요?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일 때문에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둘러 이사를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는 거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흥: 일단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노래로 시작할 겁니다. 장소는 뭐, 찾아봐야죠, 설마 서울 하늘아래 제가 노래할 만한 곳이 없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가숩니다. 불행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어릴적 꿈을 이룬 멋진 사람이 된 거죠. 하하하. 자! 그럼 저를 기다리는 무대를 찾으러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흥, 큰 소리로 웃으며 퇴장, 명일 쪽지와 주소들을 확인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두정 휠체어를 타고 등장. 두정: (놀람을 감추며) 웬일이냐? 명일: 여기가 16-28번지 맞죠? 두정: 용케도 올 생각을 했구나. 명일: (떨리는 목소리로) 연수네 집 맞죠? 두정: 다 알고 온 거 아니야? 그런 건 왜 물어. 명일: 저는 연수 남자친구 명일이라고 합니다. 두정: 팀을 맡게 됐다고, 축하한다. 명일: 힘드시겠지만 저도 어렵게 마음먹고 온 것이니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두정: 너하고 할 얘기 없으니까 그만 가봐. 명일: 그 심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두정: 사실대로 말하지, 네 얼굴 두번 다시 안 봤으면 좋겠다. 명일: 잘 알겠습니다. 오늘 이후 찾아뵙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십시오. 두정: 꼴 좋다고 웃고 싶겠지, 웃고 싶으면 웃어. 명일: 연수……, 연수 살아있죠? 네? 두정: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명일: 사실대로 얘기해 주십시오. 사고 이후에도 매일같이 연수에게 메일을 보냈었는데 며칠전 그 메일이 모두 수신 확인이 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 하실 때 도망치듯 떠났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연수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두정: 상상력이 풍부하구먼. 그따위 소리는 집어치워, 보시다시피 난 글러먹었어. 명일: 그렇다면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연수 찾는 걸 포기하지 못합니다. 두정: 내가 그런 소리를 했던가? 그래 그런 말을 했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상황 탓, 환경 탓 하는 게 아니야, 현실이 그렇다는 거지. 네 놈이 그런 말을 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더 이상 널 마주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조심해서 가라.(나가려 한다.) 명일: 거짓말……, 거짓말이죠? 그럴 리 없어, 저를 포기하게 하려고 하는 얘기죠? 그렇죠? 두정: (멈춰서서 혼잣말로) 고결한 자만이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다·……, 고결한 자라…….(쓴웃음) 에베레스트.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나간다.) 명일: (절망적으로) 잘 알겠습니다, 폐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나가려다 멈춰서서) 연수야……, 너 정말 없는 거야? 명일이 나가자마자, 박수 소리와 함께 현란한 조명이 무대를 훑는다. 무대 중앙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선글라스를 쓴 신흥이 기타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서 있다. 신흥: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 들려드릴 곡은 지금의 저를 있게한 바로 그 노래입니다.20년 전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가수의 꿈을 가득 품고 며칠 밤을 새우며 코피를 쏟아가면서 만든 노래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좋은 노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해간다는 얘기가 있죠, 그게 바로 이 곡을 두고 한 얘기란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자 그럼 눈을 감고 제 목소리에 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은 “빌어먹을 인생.” 신흥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단조롭고 유치한 느낌의 멜로디. 신흥: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뭔지 몰라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산다는 건 무엇일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 각각의 빛을 받으며 세 사람 나타난다. 약통을 들고 있는 명일, 휠체어 위의 두정, 경기 중에 쓰러져 있는 신내. 신흥: 그것이 뭔지 몰라도 신내: 이건 아니야, 명일, 두정: 이건 아니야 신흥: 목적도 모른 채 공부를 하고, 의지와 상관없이 순위가 매겨지고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모두: 이건 아니야. 간주. 두정 굳은 표정으로 한곳만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명일: 전부 제 착각이었습니다. 여동생이 혹시나 하고 비밀번호를 쳤는데 열렸대요, 계정을 없앤다고 그러더군요, 그렇다고 앞으로는 메일 보내지 말라고……, 근데 비밀번호가 뭐였는지 아세요? ‘엠, 와이, 유, 엔, 지, 아이, 엘’이었대요. 명일, 제 이름이었어요.(허탈하게 웃는다.) 연수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약병을 바라본다.) 신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어떡하지, 일어날 수가 없어, 오빠, 엄마, 아빠, 코치님……. 일어나 달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모두들 저만 바라보고 있겠죠, 고개를 들 수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신흥: 이른 아침, 아니 그건 해도 안 뜬 새벽이야. 흔들어 깨우며 하시는 말씀, 얼른 일어나, 얼른 일어나. 늦은 밤에, 아니 그건 달도 지는 새벽이야 지친 나에게 하시는 말씀, 공부 하다 자, 공부 하다 자, 조금만 더 자고 싶어요 제발. 잠도 못 자가며 난 무얼 하는 걸까. 누구의 인생인데, 내 삶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간주. 명일 결심한 듯 약을 꺼내 털어 넣는다. 신내는 여전히 그대로 엎드린 채다. 등이 들썩거린다. 두정,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걸고 수건을 감은 숟가락을 꺼내 입에 문다. 명일 쓰러진다. 두정, 있는 힘껏 일어나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온힘을 다해 일어나려 한다. 신흥: 귓가에 맴도는 어머니 말씀.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일어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신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일어나려고 애쓰는 두정 신흥: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명일 갑자기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다. 명일: 아 배야! 눈물을 흘리며 일어난 신내, 이를 앙다물고 슬로로 뛰기 시작한다, 두정 간신히 몸을 지탱해 휠체어에 오른다. 신흥을 제외한 나머지 빛이 사라진다. 신흥: 인생이란 그런 거야 이유는 없어, 모두들 다 그렇게 살아 일어나, 일어나. 얼른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가 빌어먹을! 일어나, 어서 일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기쁨에 차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는다.) 여, 여보……. 무대 밝아진다. 신흥 머뭇거리는 사이 신내 천천히 등장한다. 신내: 오빠 신흥: 여, 여보 신내: 어쩐 일이세요? 신흥: 당신이 어떻게 여길……. 신내: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할말 있었는데. 신흥: 그러니까……, 그게 신내: 아무 말 마세요, 부탁이에요, 제가 얘기할 테니 듣기만 하세요. 신흥: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신내: 사실 저 오빠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아니에요. 신흥: 그게 무슨 소리야? 신내: 말 그대로예요, 이젠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신흥: 여보, 그러지 마, 제발, 응? 내가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신내: 고마워요, 진작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저 꼴찌해서 이런 거 아니에요. 정말 오빠에 대한 마음이 식어 버려서 그런 거예요. 신흥: 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죽는다는 소리는 말아줘, 부탁이야. 신내: 그러지 마세요, 오빠답지 않아요. 신흥: 난 이미 끝난 놈이지만, 당신하고 우리 창신이 수진이는 아니잖아. 남편, 아버지 잘못 만난 죄밖에 없잖아, 여보, 그러니까 그런 소리 두번 다시 하지마. 신내: 괜찮아요? (사이) 저요? 보세요 전 아무렇지 않아요. 신흥: 많이 생각해 봤는데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신내: 그래요, 그렇게 해요. 신흥: 이혼하면 놈들도 더는 못 괴롭힐 거야, 자리잡히는 대로 연락할게,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생활비랑 애들 교육비는 최대한 노력해 볼게. 어떻게든 아빠 노릇은 하도록 할게. 미안해 여보. 신내: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오빠도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 안녕.(자리를 옮긴다.) 신흥: 놈들이 위치추적을 해서 전화기 못쓰니까, 내가 연락할게. 신내: 오빠도 제가 좋대요, 우습죠? 기껏 마음 정리했는데 고백을 받다니……, 조금만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요,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도…….(사이) 저 끝까지 달렸어요,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목소리를 따라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 이후엔 아무 생각도 안나요, 어떻게 결승점을 통과 했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정신이 들고 보니까 제 방에 덩그러니 앉아 초콜릿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 눈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 있고, 입 주변은 초콜릿이 번져서 피에로처럼 되어 있더라고요,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깔깔대고 웃어버렸어요, 한참을 그렇게 웃고 있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레이스를 마쳐!” 눈을 감고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들어 봤어요, 자세히 들어 보니까 제 목소리더라고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면 처음엔 자기 목소린 줄 모르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거였어요, 조금 익숙해지니까 알겠더라고요, 제 목소리인지. 신흥: 그랬어? 그거 다행이네. 알았어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고.(사이) 내 걱정은 하지마, 당신하고 애들이 힘들지 나야 뭐……. 그만 가봐, 수일내로 전화할게, 조심해서 들어가고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든다.) 여보! (사이) 아, 아니야. 애들한테 안부 전해줘.(사이. 혼잣말로) 잘 살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평소에 안해 버릇해서 힘드네. 신내: 근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는 이미 끝나버렸는데, 레이스를 마치라니,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흥: 자! 이젠 나의 무대를 찾아가 볼까,(기타에게) 가자 로시난테, 갈 길이 멀다. 서두르지 않으면 날이 저문다고.(나간다.) 신내: 800미터 경기는 트랙을 2바퀴 도는 거예요, 작전도 중요하긴 하지만 페이스 조절과 순간의 판단력이 그 어떤 종목보다 중요해요,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려도 안 되고 페이스 조절한다고 천천히 출발해도 안 되죠, 작전대로 달리다가도 상황에 따라 작전을 포기하고 감으로 스퍼트하는 경우도 많고요. 생각해 봤어요,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달려온 것보다 달려야 할 트랙이 더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알람이네요. 저 이제 그만 가봐야 해요,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나간다.) 텅 빈 무대. 멀리서 전동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로 들려온다. 소리는 멈추지 않고 무대를 가로지른 후 점점 멀어져 간다. 두정 훈련복 차림으로 빈 휠체어를 끌고 등장한다. 휠체어를 세우고 한두 걸음 떨어져 선다. 두정: (휠체어에 대고) 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위로해 주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잔인하게 들려도 할 수 없어. 다 네 잘못이야, 한 번 더 점검했어야지, 한 번 더 살폈어야지. 그 정신 상태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면 너 때문에 동료들 모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어, 너 이렇게 된 거,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목숨과 다리를 바꿨다고 생각해, 어찌 보면 이렇게 된 거 너한테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하는 얘기니까 귀담아 듣는 게 좋아, 휠체어 생활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괜히 재활한다고 힘 낭비하지 말고 그 다리에 적응하는 편이 나을 거다. 나같이 바른 말을 하는 선배를 만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이제 가봐야겠다, 돌아가서 합숙 준비를 해야 하거든, 들어가서 한 숨 자는 게 어때? (휠체어를 밀고 나간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두정이 나간 반대편에서 피골이 상접한 명일이 다리 힘이 풀린 채로 등장 명일: 이렇게, 이렇게 죽는 건가……. 정말 특이한 약이야. 고통스럽냐고 물었을 때 왜 그런 웃음을 지었는지 이해가 돼.(힘없는 웃음) 왜 죽으려고 했는지, 죽기로 결심한 내가 원망스러워지다니……, 아픈 배를 감싸고 변기 위에 앉아 있자니 살려달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다 알게 됐어요, 연수를 잃었을 때보다 변기 위에서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눈물은 줄줄 흐르고 웃음은 멈추지 않고, 아래도 멈추지 않고 (힘없는 웃음) 제가 연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배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 아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 명일: 저 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까요? (고개를 숙인다.) 서로 다른 곳에서 나오는 신흥, 신내, 휠체어 탄 두정. 각자 자리를 잡고 선다. 네 사람: 요 며칠 정말 힘들었어요. 세상에서 버려져, 혼자 어딘가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나한테 달려든 것 같은 느낌,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 같았죠. 두정, 신흥: 왜 하필 나야? 명일, 신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네 사람: 속으로 원망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 봤습니다. 근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당연한 얘기죠, 고민하고 소리 질러서 일이 해결 된다면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신흥: (큰 목소리로) 가수가 되기로요! 두정, 명일: (바로 이어) 받아들이기로요 신내: (이어서) 다시 달리기로요. 네 사람: 많이 겁나고 솔직히 자신 없기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일어나야죠, 신흥: (노래한다)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네 사람: 변하는 건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두정: 저, 결국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휠체어를 뒤로 돌리자 자동차 번호판 모양의 판에 ‘에베레스트’라고 쓰여 있다.) 썰렁했나요? 지하철이 들어온다고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이 다가오는 소리, 멈추는 소리, 문 여는 소리. 모두 한발씩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다시. 따사로운 봄볕, 아련한 음악. 그리고……. 명일, 고개를 숙인 채 힘없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신내, 힘찬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두정,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어디론가 간다. 신흥, 기타를 정성껏 보듬으며 어디론가 간다, 다시 명일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신흥, 신내, 두정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사람. 모두들 잠시 망설이다. 각자 어딘가를 향해 이야기한다. 네 사람: (동시에) 저기……. 암전. 어둠 속에서 신흥의 목소리 신흥: (목소리) 드디어 완성했습니다.‘빌어먹을 인생’을 이을 평생의 역작.‘기타와 삼천원’ 조명을 받으며 멋지게 등장한 신흥. 노래한다. 신흥: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가수를 꿈꾸는 소년이 살았다네 매일 밤 꿈속에서 노래하던 소년은 매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네 그러나 어느 샌가 소년은 노래하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 가수를 꿈꿨던 남자가 살고 있다네 꿈을 잊은 채로 살아가던 남자는 하루가 너무나 힘들었다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노래하던 꿈을 떠올렸다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네 아, 가진 건 사랑스런 기타와 단 돈 삼천 원뿐이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네, 아, 가진 걸 모두 잃어 남은 것 하나 없어 불행하지만 나에겐 기타와 삼천원 있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세상에 내 것이 하나 없어도, 노래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기타와 삼천원 있어 너무 행복하다네. 너무 행복하다네. 박수 소리에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던 신흥, 키스를 날리며 퇴장한다. 무대 한쪽에서 연수, 차분한 걸음으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태령, 꽃다발을 들고 환한 얼굴로 등장, 어디론가 걸어간다. 약장수, 전화기를 들고 등장, 상대가 받지 않는지 계속 버튼을 눌러대다가 퇴장한다. 다시 연수가 등장했다 사라진다. 다음엔 약장수, 태령,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각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세사람. 연수: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약장수: 종로 5가입니다. 태령: 어찌 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연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약장수: 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고객이죠. 혹시 필요하신가요? 태령: 네, 그녀를 사랑했거든요. 연수: 사랑했어요, 그래서 많이 미안했고요, 혼자 남겨두고 떠나서 약장수: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태령: 그녀는 떠났지만 전 아직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연수: 이제 떠날 거예요, 명일씨를 놓아주려고요,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거예요. 약장수: 그 약을 먹게 되면 죽을 각오로 살게 되죠, 태령: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열심히 달리는 신내를 뒤에서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하고요 연수: 뒤에서 지켜본다는 거 그리 쉽지 많은 않더라고요, 많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약장수: 그것이 문제죠, 부작용이 너무 심해요, 설사가 장난 아니거든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 하하하. 세 사람 모두 정지. 두정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무대 중앙에 휠체어를 놓고 나간다. 휠체어 홀로 빛을 받는다. 휠체어: 전 에베레스틉니다. 제 주인님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전 어디를 가나 주인님과 함께 하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나 할까요.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주인님이 제게 이름을 붙여주고 난 뒤로 가끔이긴 하지만 웃는 모습을 보이시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제 이름이 좋습니다.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휠체어: 지하철이 왔네요, 못다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죠, 저는 지금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거든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암전. ■ 등장인물 명일(25세, 대학생) 신내(18세, 고등학생, 육상부) 두정(32세, 산악인) 신흥(38세, 샐러리맨)
  • 사씨남정기 아이 눈높이로 읽는다

    ‘사씨남정기’는 조선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 인현왕후의 폐출에 반대해 귀양을 가 쓴 소설이다. 제목에도 나타나 있듯, 사씨 부인이 첩 교씨의 간계에 휘말려 남쪽으로 가기까지의 기록이다. 당시 양반들은 소설을 허구로 치부해 멀리했지만 서포는 소설이야말로 따분한 역사서와 달리 독자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장르로 여겨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사씨남정기’에는 삼종지도, 출가외인 등 유교적 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구절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주로 주인공 사씨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서포는 이 소설을 통해 유교적 가부장제 이념을 절대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17세기 한글소설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우리 고전임에 틀림없지만 어린이들의 읽을거리로도 과연 적합할까. 창비에서 펴낸 ‘사씨남정기’(하성란 글, 이수진 그림)는 무엇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뒀다. 책은 인물의 성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극적인 구절을 고쳤고,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어려운 고사도 줄였다. 모든 고통을 말없이 참아내는 인고의 여인 사씨. 요즘 감각으로 그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거꾸로 이 시대가 바라는 진정한 여성상,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나눔의 정신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듯하다. 창비의 ‘재미있다! 우리 고전’ 시리즈 가운데 하나.9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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