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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에 제2 아이폰 붐?···CES 최우수 모토로라 ´아트릭스´ 출시

    KT에 제2 아이폰 붐?···CES 최우수 모토로라 ´아트릭스´ 출시

     KT가 ‘CES(미국소비자가전박람회) 2011’에서 최우수 스마트폰으로 선정된 모토로라의 ‘아트릭스’를 국내시장에 내놓는다.  KT는 3일 ‘아트릭스’(ATRIX, MB-861)를 HD멀티미디어 독(Dock)과 함께 패키지로 출시한다고 밝혔다. 출고가는 HD멀티미디어독(15만원 상당)을 포함해 80만원대다.  아트릭스는 1GHz 듀얼코어 CPU, 1GB DDR2메모리가 탑재돼 PC와 다름없는 처리능력을 가졌다. 다양한 형태의 독(Dock)을 통해 무한대의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고 KT는 설명했다. 아트릭스를 랩독(lap dock)에 꽂으면 노트북처럼, HD멀티미디어독에 꽂으면 TV나 PC모니터에 연결돼 음악이나 사진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아트릭스는 콘텐츠나 개인정보가 유실되지 않도록 비밀번호 입력이 아닌 ‘지문인식’ 기능을 갖췄다. 스마트폰으로서는 유일하게 5GHz 와이파이 수신 칩을 내장하고 있어 기존 와이파이 대비 최대 8배 빠른 프리미엄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  아트릭스의 배터리 용량은 1930mAh로 기존 스마트폰 대비 20%가량 향상됐다. 보다 선명한 qHD(540X960)급의 고품질 4인치 대화면, 500만 화소 카메라와 LED플래시, 16GB내장메모리, 외장메모리 확장기능도 갖췄다.  KT는 구글과 협력, 안드로이드마켓에 ‘올레마켓 추천’ 앱 코너를 만들어 ‘아트릭스’와 같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고객이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을 더욱 쉽게 찾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올레마켓 추천’에서는 ‘유클라우드’ ‘트위터’ ‘구글한글 키보드’ 등 스마트폰 이용에 필수적인 앱뿐 아니라 ‘올레콕콕’ ‘서울버스’ ‘윙스푼맛집’과 같은 국내 고객의 이용패턴에 적합한 앱을 추천해 지속적으로 보강할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조목조목 짚어 본 통일 이후 ‘통합’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치사에서 평화통일 3단계와 통일세 구상을 주요 대북 메시지로 제시한 이후 각계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터져나왔다. 또 얼마 전 ‘후계자’ 김정은의 급부상으로 촉발된 북한의 정정 불안 때문에 통일이 목전에라도 다가온 듯 철저한 준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활발하게 전개된 논의에 비해 통일 이전의 ‘통합’이나 이후의 구체적인 전개 방식 등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관념적 시각에서 통일 문제를 보거나, 정치·경제 중심의 좁은 잣대로만 논의가 전개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통일 이후 통일을 생각한다’(박명림 외 6명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통일의 준비 과정과 통일 이후 발생될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고 있다. 책은 남북통일이 ‘결론’이 아닌 통일 문제의 ‘시작’이란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정치·경제는 물론 교육과 언어,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통일 이전과 통일, 그리고 그 이후를 대비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는 “통일이 온전했던 이전으로의 ‘회귀’가 아닌 60여년간 독자적으로 생존해 온 두개의 한국을 단일국가로 새롭게 ‘건설’하는 과정”이라며 “남북이 ‘통합’에 대한 준비 없이 제도통일 과정에 돌입하면 극단적인 사회재분열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한의 경제 통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독일 등 외국의 경험을 원용해 살펴보고, 통일을 위해 필요한 비용과 구체적인 조달 방법 등에 대한 방안을 찾는다. 독일이 동·서독 간 화폐 교환비율을 1대1로 상정한 결과와 통일 이후 발생한 소유권 분쟁, 동독의 시장경제체제 전환 과정 등을 우리의 상황과 등치시켜 비교·검토한다. 임홍빈 서울대 명예교수는 남한의 ‘한글맞춤법’과 북한의 ‘조선어규범집’ 등 두 체제의 어문 규정을 통해 분단 이후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 과정과 남북 언어의 현황을 점검한다. 아울러 통일 한국에서는 남한을 기준으로 어문 규정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김재용 원광대 국문학과 교수는 먼저 북한 문학계의 현실을 이해한 뒤, 이를 바탕으로 남북 문학 교류를 전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도 남북 음악계의 이질성이 향후 ‘문화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북한의 1-4-6-4의 기간학제와 남한의 6-3-3-4 기간학제 등 교육체계의 이질성도 문제다. 이종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남과 북이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교육이 당성, 혁명성, 계급성을 구비한 사회주의식의 인재양성에서 벗어나 보편적 전인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만 75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영화 첫 주연 송새벽 “이런 날도 오네요”

    영화 첫 주연 송새벽 “이런 날도 오네요”

    요즘 충무로에 이보다 더 극적인 배우가 있을까. 영화 데뷔 2년, 단 네 작품 출연 만에 주연을 거머쥔 송새벽(32) 얘기다. 첫 주연작 ‘위험한 상견례’는 31일 정식 개봉 전에 유료 시사회만으로 1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주말 예매율도 1위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유료시사 10만명 넘어 →조연으로 나왔던 영화 ‘방자전’ 이후 몰라보게 세련돼졌다. 연예인 티도 제법 나고. -그동안 맡았던 영화 속 캐릭터 때문에 그렇지, 나도 알고 보면 세련된 남자다. 하하. 농담이다. 오늘 인터뷰한다고 차려입어서 그런 거다. →데뷔하자 마자 각종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휩쓸고, CF 출연까지 ‘초고속 승진’이 따로 없다. 인기를 실감하나. -아니다. 혼자 또는 여자친구(연극배우 하지혜)와 길거리를 다녀도 아무도 못 알아 본다. 며칠 전 여자 두분이 저를 유심히 쳐다보길래 이제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나 했더니 “송새벽 닮았다.”고 수군거리며 지나가 버렸다. 지난해 갑자기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고, 짧은 시간에 상도 많이 주셔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처음 주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아,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연극에서 주연은 맡아 봤지만, 상업영화 주연은 처음이다 보니 흥행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재밌게 촬영했는데, 막상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니 예민해지더라. →‘위험한 상견례’는 송새벽을 위한 맞춤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본인의 장기인 코미디 장르인 데다 주인공 현준이 전라도 사투리에 다소 어눌한 말투를 구사한다. -그런가. 나는 오히려 사투리가 가장 신경쓰였다. 현준은 광주(광역시)가 고향이지만 나는 전북 군산 출신이다. 전북은 말이 좀 느린 편이고, 전남엔 전라도 특유의 억양이 있다. 두 가지가 섞일까봐 걱정이 좀 됐다. 전남 출신의 연기자 선배들과 대본을 보면서 사투리를 따로 연습했다. →전작과의 차별화가 신경쓰였을 것 같은데. -이전 영화들과 이야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연기 차별화에 대한 강박관념은 없었다. 일단 그동안 변태에 찌질남, 여자를 배신하는 역할만 맡다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캐릭터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극 중 현준은 나이트클럽 후계자이지만, 경상도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순정만화 작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라도 남자의 센 이미지를 좀 유하게(부드럽게) 표현해 보고자 애썼다. →영화는 지역감정의 골이 깊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전라도 총각 현준과 경상도 처녀 다홍(이시영)의 좌충우돌 결혼기를 다루고 있다. 지역감정에 대한 생각은. -80년대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라 개인적으로 지역감정을 경험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극 중 현준과 다홍의 아버지처럼 고향 때문에 결혼을 반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감정은 예민한 부분인데, 영화가 이것을 유하게 풀어낸 느낌이 좋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가벼운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눈물이 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에서…. -양가 어른들이 오랜 세월 지역감정으로 인한 상처와 설움으로 괴로워하다가 나중에 오해를 깨닫고 화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가 피해자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더라. ●천연덕스러운 코미디 10년 연극 내공 덕 →무심한 듯 천연덕스럽게 남을 웃기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10년 넘게 연극에서 쌓은 내공 덕분인가. -순발력과 인물 분석 등 내 연기의 모든 것은 연극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대본 읽기 연습할 때 사람들이 많이 웃는 편이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너무 빵 터지니까 뭘 잘못했나 싶어 “제가 실수했나요?”하고 물어본 적도 있다. 다행히 재밌어서 웃었다고 하더라. →실제 성격도 유머러스한가. 아니면 설정인가. -아이돌 스타도 아니고 무슨 설정을 하겠나.(웃음) 그냥 평범한 편이다. 크게 활달하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다.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다만 (연기) 역할을 분석할 때는 이 인물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집중하고, 캐릭터에 대해 연민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캐릭터가 코미디 쪽으로 굳어지는 데 대한 부담감은 없나. -그동안 출연한 작품이 코미디에 가까운 장르일 뿐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때문에 연기도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많은 분들이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 ‘방자전’의 변학도 모습을 재미있게 기억해 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나는 한번도 코미디를 염두에 두고 연기해 본 적 없다. 말 그대로 역할과 상황에 충실했을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니까 계획을 짠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예전에 일이 들어오지 않아 무대나 조명, 엑스트라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물론 나중엔 다 연기 공부가 됐지만…. 그래서 이쪽 일이 불안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니까 작품이 들어올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 →좀 상투적 질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연륜에 비례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지금은 33점이지만 내년엔 34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아, 내가 생각해도 멋있는 말 같다. 빵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송새벽. 디지털 세대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죽 ‘촌놈 성향’으로 살아가고 싶단다. 동틀녘 밝아오는 새벽이라는 독특한 한글 이름처럼 그의 영화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숫자로 본 판결문

    우리 법원이 한 해 선고하는 판결은 몇 건일까? 소요되는 판결문 용지는 얼마나 될까? 한 해 선고되는 판결 건수는 대법원도 정확한 통계를 파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판결문 작성관리시스템’에 등록된 현황을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한 해 시스템에 등록된 판결문은 총 97만 3053건으로 100만건에 육박했다.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면 전국 법원에서 하루 평균 3846건의 판결을 쏟아낸 셈이다. 소요되는 판결문 용지 양도 엄청나다. 지난해 전국 법원은 총 5000상자(상자당 2500장)의 판결문 용지를 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1250만장이 소요된 것이다. 판결문 용지는 위·변조를 막기 위해 특수 처리돼 있지만, 가격은 비싸지 않다. 한 상자 가격은 2만 6400원으로, 용지 1장당 10원을 약간 웃돈다. 흔히 쓰이는 A4 용지와 비슷한 수준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제 규모가 커지다 보니 웬만한 책보다 두꺼운 판결문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대법원은 2008년 8월부터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으로 등록된 판결문의 페이지를 세고 있는데, 가장 분량이 많은 사건은 2008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가 다단계 사기사건 피고인인 이모(52)씨에게 내린 판결이다. 이씨는 상품을 사주면 고율의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속여 상품 구입비 150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기소돼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요지를 설명한 본문은 38쪽에 불과했지만, 범죄 사실과 피해자 등을 기록한 별지가 1636쪽에 달했다. 본문이 가장 길었던 판결문은 2008년 1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가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변양호(56) 전 재정경제부 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었다. 이 판결문은 본문 422쪽과 별지 597쪽 등 총 1019쪽에 달한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열린세상] FTA, 번역오류 논쟁을 넘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FTA, 번역오류 논쟁을 넘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번역 오류 문제가 불거져 우리 FTA 정책 일정 전반이 차질을 빚고 있다. 한·EU FTA에 대한 비준을 상반기에 완료하고, 한·미 FTA 비준 모드로 전환해야 할 바쁜 시기에 번역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초 문제의 발단은 정부의 부주의 탓이다. 서명, 확정된 국문본에 원산지 기준의 숫자(number)가 잘못 기재되어 있고, ‘초과’로 할 것을 ‘이하’로 번역해 놓는 등 명백한 오류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외교기능인 영사업무에 대한 경시 풍토로 인해 호된 국민적 질타를 받고 뒤늦게 영사 기능을 대폭 강화했던 외교부로서는 또 기본적 업무인 조약문 번역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질타 받는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가 최근 맺고 있는 FTA는 영문본과 더불어 국문본이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한 데 있다. 특히 한·EU FTA는 23개 언어로 서명되었는데, 각 언어본이 모두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영문 번역의 실수 여부를 떠나, 한번 서명된 국문본은 독립적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자칫하면 당사국이 의도한 바가 왜곡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번역 오류 문제가 발생한 뒤 정부는 대국민 의견수렴 창구를 개설하고, 민간기관에 번역 감수를 의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조약 번역 문제와 같은 전문 이슈에 대해 대국민 의견 제시 홈피를 개설한 것은 유례가 없다. 민간기관에 번역 감수를 의뢰하는 것은 책임을 민간기관에 넘기는 데는 효과적이나, 우리 현실상 통상조약에 대한 최고의 전문성과 실무경험은 정부부문에 있음을 고려할 때 난센스다. 한글본에 대한 의견수렴 및 감수절차가 끝난 뒤 다른 언어(불어·독어·이태리어·스페인어·폴란드어·몰타어 등 21개 언어) 각각에 대해서도 의견수렴과 감수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면, 정부가 어떻게 답변할지 묻고 싶다. 시민단체가 불어·스페인어 등의 전문가를 동원해 협정문 오류를 연쇄적으로 지적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 언어가 상이한 국가 간 협정을 맺을 때 완전무결한 번역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해 협정 문안을 협상하게 된다. 국제협상에서 영어가 기본 문안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EU, 한·미 FTA는 물론 우리가 맺은 모든 FTA가 영어를 사용하여 입장조율이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국의 협상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하는 문안은 영문본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해당 조약 자체에 영문본·타 언어본이 상충할 때 영문본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명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칠레, 싱가포르 등과 우리가 체결한 초기 FTA에도 이러한 원칙이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가 협상문안에 대한 한글 번역본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고, 한글본이 적어도 영문과 동일한 효력을 지녀야 함을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약 적용에 있어서의 영문본 우선원칙이 친미주의나 한글 경시 풍조와 연결되는 것인 양 오해한 데서 비롯된 촌극이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이런 주장을 수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한·미 FTA에 영문본 우선원칙을 규정하지 않았고, 그런 태도가 한·EU FTA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정부가 한·EU FTA의 23개 언어에 대한 번역 오류를 끝까지 검토할 책임을 스스로 떠안은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기왕 시작했으니, 시한을 정해 문안을 검토한 후 명백한 번역 오류가 발견되면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오류가 아닌 사항은 의역과 직역 문제 등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시간을 무한정 소비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한·EU, 한·미 간 추가 문서 합의를 통해 영문본 우선원칙을 규정해 넣음으로써 문제를 일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한·EU FTA 번역 문제를 물고 늘어짐으로써 한·미 FTA 비준과정을 내년으로 넘겨 국내 선거일정과 접목시켜 좌초시키려는 전략 구사를 중지해야 한다. 이미 무수한 소모적 논쟁을 통해 미국과의 FTA가 바람직하다는 국민적 합의는 형성되었다. 더 이상의 지연은 국가 전체의 기회비용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117세 종이 판결문 “이제 온라인서 만나요”

    117세 종이 판결문 “이제 온라인서 만나요”

    글씨 크기 12포인트, 줄 간격 250% 양식으로 작성되는 법원의 판결문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 형태는 한낱 종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거둘 수도 있고 국가의 정책을 바꾸기도 한다. 법관들은 ‘혹 비뚤어지게 서명되지는 않을까.’ ‘인주가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특수 처리된 판결문 전용지에 날인과 간인을 한다. 역사의 기록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은 5월 전자소송제도가 민사소송에까지 전면 확대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법관들은 이제 전자파일로 판결문을 작성하고, 공인인증서로 전자 날인을 하게 된다. 소송 당사자도 온라인을 통해 판결문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후 판결문 변천사를 판결문의 ‘가상의 입’을 통해 들어 봤다. 나의 생일은 1895년 5월 4일입니다. 고등재판소가 갑오개혁 이후 공포된 ‘재판소구성법’에 따라 처음으로 저를 만들었습니다. 충청도 청풍읍의 평민 황거복 등이 “동학당(東學黨)에 들어가 ‘안녕’을 해쳤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소는 범죄 증명이 명확히 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이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비율은 2.2%(2009년 기준)에 불과한데, 저의 첫 모습이 바로 무죄 판결이었습니다. 민사사건에서 가장 오래된 저의 모습은 한성재판소가 1895년 10월 18일 선고한 사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때의 저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는 내용의 주문과 판결 이유 등은 담고 있지만, 원고와 피고의 주장은 따로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한지에 세로로 붓글씨를 써서 저를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한자였고, 조사만 한글을 썼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어로 작성됐습니다. 광복을 맞은 후에도 저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판사로부터 판결 초고를 받은 서기가 뒷면에 먹지를 대고 베껴 당사자에게 보낼 정본을 만들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판사는 서기가 내용까지 써 준 판결문에 서명날인만 한다.”는 오해가 일반인 사이에 퍼졌습니다. 1946년 4월에 타자기를 이용한 방법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타자기도, 타자를 칠 사람도 부족해 많이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1962년 1월 1일 저는 큰 ‘변신’을 하게 됩니다.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형식이 바뀌게 됐죠. 또 한자 사용을 금지하고, 한글만 쓰도록 했습니다. 우리 글로 저를 만들자는 ‘당연한’ 조치인데도, 엄청난 반발이 일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8가지 이유를 들어 ‘불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법령이 국·한문 혼용이고, 법률 술어는 한자여서 한글로 풀어쓸 수 없다. 법원 문서는 내용이 복잡한데 한글로만 작성하면 의미가 와전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의 이름이 있죠? 저는 사건번호가 이름입니다. ‘2011도 OOOO’ 등과 같은 번호가 저를 구분하죠. 대법원이 1964년 ‘판결서 양식 예시’를 제정, 제게 사건번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했습니다. 판결 주문과 이유 등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1992년부터는 컴퓨터로 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글꼴은 신명조, 글자 크기는 12포인트, 줄 간격은 250%가 공식 양식으로 정해졌습니다. 컴퓨터의 보급으로 인해 원본은 판사가 직접 작성하게 됐고, 제가 사전에 유출될 염려도 사라졌죠. 어떤 판사들은 제게 표를 넣기도 하고,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손해배상액을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부터는 저를 전산시스템에 등록하는 게 의무화됐습니다. 제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보니 저를 범죄에 악용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부동산소유권 이전 등기를 명령하는 저를 위조해 담보로 제출하고 돈을 빌리는 사기범이 나타났습니다. 위조된 저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났습니다. 이에 법원은 2006년 8월부터 저에게 바코드를 부착하고, 복사방지마크를 표시했습니다. 2008년부터는 법원 엠블럼이 들어간 특수용지로만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 용지는 장당 10원 남짓하지만, 복사하거나 스캔할 경우 엠블럼을 보이지 않게 합니다. 100살이 넘는 제가 가장 많이 받았던 비판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어식 표현을 쓴 경우가 많았고, 문장이 지나치게 길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이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저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 문장에 평균 394.1자의 글자가 사용됐습니다. 문장당 글자가 50자 정도일 때 가장 읽기 쉽다는 게 국어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차임(월세)’ ‘복멸하고(뒤집어엎고)’ ‘형해화되고(있으나 마나 하게 되고)’ ‘설시하다(설명하다)’ 등의 표현은 일반인들이 저를 피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법원도서관 등이 중심이 돼 이 같은 표현을 순화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종이로 된 저는 오는 5월부터 점차 사라집니다. 전자소송제도가 민사소송까지 확대되고, 전자소송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종이가 아닌 온라인으로 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종이로 된 저는 영원히 없어질지 모릅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마지막 명령이다”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마지막 명령이다”

    1년전 천안함 실종 수병들에게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라고 명령한 글이 전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화제가 됐었다. 26일 천안함 폭침 1주기를 맞아 당시 우리의 심금을 울린 이 글을 다시 싣는다. 46명의 수병과 이들을 구하려다 숨진 고 한주호 준위 등 47명 전사자의 명복을 빈다.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命令)이다.” 지난해 3월29일 동아대 의과대학 교수 김덕규씨는 해군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772는 천안함의 고유 식별번호다. 그는 실종된 천안함 승조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그들의 생환을 간절히 염원했다. ”디젤 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귀대하라.”고 적었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한글자 한글자 가슴을 후벼판다. 정말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개인 블로그 등에 퍼날랐다. 비록 물리적인 힘은 없는 글일지라도 해저 수십미터 깊은 바다에, 그리고 아직은 아무 대답없는 하늘에 이 글이 닿길 간절히 바란다. ●다음은 글의 전문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 772 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漆黑)의 어두움도 서해(西海)의 그 어떤 급류(急流)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作戰地域)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 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 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歸隊)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浮上)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 갈 때 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戰線)의 초계(哨戒)는 이제 전우(戰友)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命令)이다. 대한민국을 보우(保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救援)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大韓)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海底)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가족맘 서비스’ 저소득층 찾아 돕는다

    ‘가족맘 서비스’ 저소득층 찾아 돕는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다 보니 삶의 희망이 생겼어요.” ‘가족맘 복지서비스’를 받은 권장가(60)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동대문구 청량리동 주민센터에서 지난 1월 말부터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떠올리고 나서다. 권씨는 혼자 몸으로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다. 1994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권씨는 글을 몰라 병원에 갈 때마다 헤매는 설움을 겪었다. 그런데 가족맘 복지서비스를 위해 방문한 사회복지 담당이 이런 어려움을 듣고 동대문복지관 한글교육 프로그램에 권씨를 등록시켜 문맹 탈출을 도왔다. 가족맘 서비스는 복지서비스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가구에 필요한 혜택을 연결해 주는 맞춤형 사업이다. 알코올중독자에겐 정신보건센터를 연결해 주고, 쌀도 없이 힘겹게 사는 노인에겐 푸드마켓을 이용하도록 돕는, 찾아가는 서비스이다. 특히 전국 최초로 기초생활수급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카드를 만들어 관심을 끈다. 단순하고 형식적인 복지 대상자 전수조사에서 탈피, 수혜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현재 동주민센터 복지행정업무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라는 전산 시스템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복잡하고 방대해 수급자 개개인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보를 알기 힘들다. 이에 따라 주민센터는 저소득가구 90여곳을 일일이 방문 상담해 수급자의 건강 상태, 주거 환경, 급여 관리 상태, 집 약도와 사진까지 덧붙인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본설 동장은 “사회복지 담당이 바뀌어도 쉽게 수급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620여 가구의 카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씨줄날줄] 청부 해커/박대출 논설위원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 나쁜 소비자를 일컫는다. 고의로 상품의 하자를 문제삼는다. 보상금을 노리기도 한다. 생산자에겐 무서운 존재다. 자칫하면 치명적인 피해가 따른다. 지난해 쥐식빵 파문은 여기서 진화한 사건이다. 빵가게 주인이 소비자처럼 위장했다. 이웃 빵가게의 식빵에 쥐를 넣어 거짓 고발했다. 경쟁업체에 타격을 주려는 잔꾀였다. 소비자 주권을 범죄 수단으로 악용했다. 자작극은 블랙 컨슈머의 변형이다. 블랙 해커(black hacker). 이를테면 나쁜 해커다. 갖가지 사이버 폭력을 일삼는다. 남의 컴퓨터를 침입하는 존재다. 인터넷 시스템을 파괴한다. 악의(惡意)를 담고 있다. 크래커(cracker)로도 불린다. 화이트 해커(white hacker), 즉 착한 해커와 대비된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용병으로 운용된다. 이를 글로벌 기업화한 회사가 있다. 블랙 워터(black water). 미국의 용병 회사다. 이를테면 전쟁 청부회사다.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무대는 국경을 초월한다. 사이버 범죄가 지능화되고 있다.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가 요즘엔 골칫거리다. 정부기관, 기업체, 개인 PC 등을 무차별 공격한다. 네트워크 공격 가운데 3분의1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요즘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생겼다. 디도스 공격을 당하면 경쟁업체부터 의심한다고 한다. 디도스 공격은 주로 중국발(發)이다. 청부 해커들이 그 일을 맡는다. 한글로 운영되는 중국 사이트들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해커를 구하는 광고를 버젓이 올린다. 디도스 공격용 등 용도를 적시하기도 한다. 청부 바이러스 제작도 등장했다. 사이버 범죄는 끝 모르게 진화 중이다. 아이템베이의 디도스 사건을 보자. 2008~2009년 게임업계를 뒤흔들었다. 피해액은 무려 14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에야 전말이 드러났다. 경쟁사 사주를 받은 중국 지린성 해커들의 소행이라고 한다. ‘블랙’의 종합판이다. 블랙 해커를 동원했으니 청부 범죄다. 경쟁업체를 위협했으니 블랙 컨슈머의 변형이다. 블랙 워터처럼 국경을 넘나든다. 사이버 블랙 마켓(black market). 블랙들이 날뛰는 공간이다. 개인 정보를 불법 거래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대형화하고 조직화하는 추세다. 오프라인 범죄까지 가세하고 있다. 두 경계가 무너지면 더 위험하다. ‘크라임 웨어’, 즉 범죄 소프트웨어는 더 다양해진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사이버 인터폴이 필요하다. 국제 공조를 서둘러야 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소멸위기 제주어 스마트폰서 부활

    제주어(語)가 지난 1월 유네스코에 ‘소멸 위기의 언어’로 등록된 가운데 최근 스마트폰으로 제주어를 배울 수 있는 무료 애플리케이션(앱)이 속속 개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IT업체인 위즈넷은 최근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의 감수를 받아 ‘제주어사전’ 앱을 출시했다. 제주어 단어와 속담, 제주어 인사말 등 제주어의 기초적인 표현부터 제주어 문학, 관광객들을 위한 간단한 대화 표현까지 다양한 내용을 두루 담고 있다. 이 사전은 기존 웹 폰트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중세 어휘들을 제주도민의 발음과 표기법으로 풀어내 지난해 제6회 한글 문화상품 및 아이디어 공모대회에서 아이디어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대신욕해드림’이라는 앱으로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매진앤쇼’가 최근 새롭게 선보인 ‘제주어’ 앱도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어의 단어와 재미있는 일상 표현 150여 가지를 제주도민의 발음으로 들려주는 한편 ‘남녀의 다툼편’, ‘형제의 다툼편’ 등 상황극을 제주어로 풀어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컴맹 할아버지, IT 강사 됐네

    “할아버지들이 모두 컴맹이라는 편견을 버려!” 침침한 눈 탓에 돋보기 안경을 썼다.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지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붙인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속도도 둔하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할아버지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름 이 바닥에서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정보기술(IT) 고수들이다. 바로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전문강사 양성반’의 노인 수강생들 얘기다. 이 프로그램은 구의 ‘2011년 노인일자리사업’ 가운데 하나다. 하루 2시간씩 주 다섯차례, 두달에 걸친 교육이 끝나면 지역 경로당에 파견돼 컴퓨터 강사로 활동한다. 월 20만원의 강사료를 받으며 제2의 취업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특히 ‘노인 강사진’은 수강생과 나이대도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눈높이’ 교육도 가능하단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이호준(73) 할아버지는 14일 “돈을 버는 것보다 직접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내가 아는 걸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게 뜻깊다.”며 웃었다. 사업을 위탁·운영하는 대한노인회마포구지회가 지난달 희망자를 모집한 결과 55명이 응모했다. 이 가운데 컴퓨터 활용정도와 강사경험 등을 고려해 1차 서류전형에서 교육생 48명을 선발했다. 한글과 엑셀, 인터넷기초 등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방법을 교육하며 희망자에 한해 개인블로그와 UCC(사용자 직접제작 콘텐츠) 제작, 사진편집 등도 알려준다. 구는 이번 사업에 구비 2142만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6120만원(시비 2142만원, 국비 1836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3153-8855.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최치원 유적지 성역화 추진 부산해운대구, 광장 등 정비

    신라말 대학자였던 해운(海雲)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에 대한 성역화가 추진된다. 부산 해운대구는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동백섬에 있는 최치원 선생 유적지를 성역화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최치원 선생은 해운대의 빼어난 해안 절경에 매료돼 동백섬 바위에 자신의 호 ‘해운’을 새겨 해운대라는 지명을 탄생시켰다. 동백섬 정상에는 최치원 선생의 기념비와 동상, 선생의 유품 등이 전시된 기념관이 있다. 해운대구는 성역화 사업 추진을 위해 유적지의 실질적인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등대광장의 진입로를 정비하는 한편, 동상 주변에 높이 자라 경관을 해치는 나무들을 가꾸고 청소인력을 상주시켜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또 한글 안내문을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적은 안내문으로 교체하고 문화해설사 2명을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배치해 국내외 관광객들을 안내하기로 했다. 해운대구는 최치원 선생 유적지가 성역화되면 국내외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 유학시절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격문 한 장으로 난을 평정해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다. 구는 유적지 성역화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일제시대 문서·판결문 2014년까지 한글 번역

    국가기록원은 2014년까지 일제강점기 주요 문서와 판결문, 건축도면을 모두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편찬한다고 3일 밝혔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약 2만 4000건의 독립운동 관련 일본어 판결문을 모두 번역하고 독립운동가들의 본적·주소, 죄명 등에 대한 검색 기능도 보완해 나라기록포털을 통해 서비스할 계획이다. 또 일제문서인 임정편과 광무편, 행형편, 미곡·산금편을 연차적으로 마무리해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 정책 연구에 필요한 조선총독부 문서 1만 4000권 전부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윤증현 장관 3·1절 맞아 전직원에 편지

    윤증현 장관 3·1절 맞아 전직원에 편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휴일인 1일 전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난달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출장 당시에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지 2주 만이다. 그는 지난 편지에서 복지 논쟁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이번에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세계 경제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웠고 우리 대내외 환경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어 정부의 정책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며 “역풍에 돛을 펴야 하기 때문에 불과 2주 만에 또 편지를 띄워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고 주문하는 이유”라고 운을 뗐다. 이어 기본에 충실한 자세와 위험(리스크)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업무 태도를 강하게 주문했다. 윤 장관은 “최근 작은 실수를 방치해 큰 문제가 되는 사례를 보면서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많고 업무가 과중한 우리 부처 성격상 혹여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를 눈감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없는지 반성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고서 한장을 만들어도 신중함과 꼼꼼함을 발휘해야 잘 여물고 반듯한 골격을 갖춘 보고서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 협정문 오류, 윤 장관의 ‘글로벌 코리아 2011’ 오찬사에 명기된 ‘유입자본에 대해 조건부 금융거래세 부과’를 둘러싼 해프닝 등을 언급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금융거래세는 대외경제국이 참고용으로 배포한 자료에 있던 내용으로, 투기자본에 대한 토빈세가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내용을 모르고 있던 국제금융국이 뒤늦게 사실을 알고 급거 진화에 나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윤 장관은 또 “중동의 정정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 보듯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은 이제 없으며 지구촌의 모든 변화가 실시간으로 ‘발등의 불이 되고 글로벌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나와 통일] (1) 김명섭 연세대 통일연구소장

    [나와 통일] (1) 김명섭 연세대 통일연구소장

    한반도의 통일을 가져오는 힘은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국민의 가슴속에서 나온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남북한의 정권은 통일보다 분단상황 관리에 치중해 왔다. 유엔 등 국제사회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도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현상유지에 주력했다. 그런 상황에서 남북 분단은 고착화돼 왔고, 통일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은 낮아져 갔다. 국민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서울신문은 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나와 통일’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국민 각자의 주관적 시각에서 통일을 얘기해 보는 소통의 마당이 되길 기대한다. 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듣고 부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민주’라는 개사곡과 함께 친숙한 노래였다. 2011년의 시점에서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힘차게 부를 수 있을까? 더 이상 ‘우리’라는 막연한 이타심에 호소하는 통일이 아니라 서로의 이기심을 인정한 통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소원으로서의 통일과 너의 소원으로서의 통일을 보다 명확히 하고 서로의 교집합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확실한 통일의 길일지도 모른다. 약 30년간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 통일은 나의 중요한 학문적 관심사였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정치외교학의 길로 나를 인도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1907년 남강 이승훈 선생이 평안도 정주에 세운 학교였다. 서울로 이주한 학교의 운동장에 서서 씨알 함석헌 동창회장의 강연을 들었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정신을 배우고, 나중에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된 고당의 제자 최용건이 김일성의 편에 섰던 일화도 들으면서 통일의 꿈을 키웠다. 대학에서 통일에 대한 설익은 열정을 학문적으로 승화시키면서 분단구조화 과정과 6·25전쟁의 상관관계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썼고, 국가들 간의 통일을 이루어 가고 있던 유럽의 현장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코리아의 문명적·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관심을 키웠으며, 냉전사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문명론적 관점에서 코리아의 분단과 통일을 다룬 논문들을 발표했다. 나에게 통일은 무엇보다 내가 속한 언어공동체에 대한 지정학적 관심이다. 물론 하나의 언어공동체가 반드시 하나의 정치공동체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독일어권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통일을 말하면 나치잔당 취급을 받기 쉽고, 영어를 쓰는 영국과 미국이 통일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에서 사용되는 ‘민주’나 ‘평화’와 같은 단어들이 한국에서 사용되는 ‘민주’나 ‘평화’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공동체는 소중하다. 나는 말과 글을 통해 존재한다. 내가 말하고, 글을 쓰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로고스적 존재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만주’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낮아지고 ‘중국 동북지방’ 또는 ‘둥베이지방’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글공동체에 대한 시공간적 인식이 희미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것은 나를 구성하고 있는 기억의 일부, 어쩌면 나 자신의 일부가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코리아의 평화 통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헌법적 의무인 동시에 나의 존재론적 관심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으면서 “마누라만 빼고 모두 바꿔야 산다.”는 경영자의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손절매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코리아가 지정학적 종심이 얕은 이유로 자기 표준만을 고집하면 망하고, 부단히 세계적 문명 표준을 따라잡아야 하겠지만,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상실한다면 경제적 성공과 행복의 주체도 모호해질 수 있다. 나의 소원으로서의 통일은 세 개의 북한(북한주민, 북한정권, 북한국가)을 분리해 접근하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이다. 코리아의 최저치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이산가족들에 대한 관심,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상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의 손에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는 원조를 제공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코리아의 독립, 광복, 분단,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에 관한 진실의 씨앗들을 심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한 이후에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서의 북한과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이(統二 혹은 統異)를 위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 [독자의 소리] 초교 신입생 노인에게 박수를/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장진숙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 대상 학력인정 양원초등학교는 늦은 나이에 배움을 삶의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며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배움터이다. 대부분 50~80대로 평균연령이 65세인 늦깎이 초등학생들은 6학년 과정을 4년에 걸쳐 이수하고 있다. 졸업하면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학력을 인정받는다. 3일 제7회 입학식이 마포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9개 학급에서 342명이 입학식을 갖는 것이다. 입학생 중에는 최고령 학생인 김순실(82)씨도 있고, 경기도 양평에서 배움의 한을 달래기 위해 왕복 5시간을 달려오는 정혜자(69)씨도 있다.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최달윤(70)씨도 주인공이다. 만학도들은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가슴 웅크린 채 살아왔다.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해 당황하며 울기도 많이 울고, 기가 죽어서 살아왔던 숱한 사연을 안고 있다. 신입생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장진숙
  • “우리 이름은 마헬리 羅·스밀라 金”

    “우리 이름은 마헬리 羅·스밀라 金”

    움푹 파인 눈과 두꺼운 쌍꺼풀. 영락없는 마야인의 모습이었다. 그 사이로 흑단 같은 머릿결과 동그란 콧볼이 보였다.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양이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아 온 이들은 멕시코 한인 이민자 4세대인 마헬리 나(22)씨와 스밀라 김(20)씨. 106년 전 막막한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간 이민자의 후손 중 처음으로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애니깽의 후예’들이다. ●“한국 동경” 한국대학에 입학 멕시코를 떠나 조상의 나라 한국을 찾아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두사람을 28일 만났다. 나씨는 인천대 무역학과 입학이 결정돼 2일 입학식에 참석하고 꿈에 그리던 한국 대학생이 된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입학, 전공 공부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까지 거쳐 올라가야 비로소 만나는 한국인의 혈통이기에 겉모습에서 단번에 한국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했다. 그러나 떠듬떠듬 한국말을 이어가는 그녀들의 말투, 할머니의 아버지를 그리며 한국을 상상했다는 소회 속에서 그들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동족 의식과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났다. ●10년 전까지 ‘꼬레아노’ 차별 멕시코에서의 나씨와 김씨의 형편은 조금 달랐다. 한인 후손 3세인 김씨의 아버지는 2남 1녀 자녀들에게 항상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메리다에서 사탕공장을 운영하고 장사를 했던 김씨의 할머니는 1905년 당시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로 넘어온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손자들에게 종종 하셨다. 김씨의 증조부는 멕시코에 도착해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함께 배를 타고 온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 문화를 자주 접했다는 김씨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증조부와 외증조부가 한국분이셨고 집에서도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인터넷 통해 한국 문화 접해 인터넷을 통해 본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를 동경하면서 김씨는 스스로 “한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전해 들었던 한국을 직접 접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면 나씨에게 한국은 생소한 나라다. 벽돌을 나르는 막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 나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조상인 한국인에 대해 좀체 말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인 후예들을 바라보는 멕시코 현지인들의 차별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라는 게 나씨의 해석이다. 최근에는 좀 나아졌으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멕시코인들은 한인 후예들을 ‘꼬레아노’라고 부르며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했다. 한국인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800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레판 마을에 모여 살면서 차별을 피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일구려 한 결과였다. 레판 마을에서 태어난 나씨는 한인 후손들과 어울리며 살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런 나씨에게 한국을 알게 해 준 것이 1999년 레판 마을에 세워진 무지개학교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김무선(73)씨가 세운 무지개학교는 멕시코에 남겨진 애니깽의 후예에게 한글과 태권도, 아리랑 등의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다. 180여명의 한인 후예가 공부하고 있는 레판 마을 무지개학교에서 나씨는 가장 두각을 보인 학생이었다. 김무선 교장은 “마헬리 나는 전교생 중 학업 성적이 가장 뛰어났다.”면서 “이런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한 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봉사하는 것이 한인 후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해 유학을 주선했다.”고 말했다. 나씨와 김씨의 한국행이 결정된 뒤 남은 가장 큰 문제는 학비였다. 멕시코에서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어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나씨와 김씨가 멕시코에서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지켜본 김 교장은 그들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애니깽의 후예 중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는 사례였기에 이번에 좌절하면 어렵사리 이어진 한인 후손과 한국의 인연이 또다시 기약 없이 끊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멕시코와 한국을 오가면서 발품을 판 결과 나씨는 기업은행으로부터, 김씨는 삼성꿈재단의 도움을 받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두 학생의 한국행이 성사됐지만 김 교장의 근심은 끝나지 않았다. 나씨와 김씨의 한국 유학을 지켜본 뒤 한국으로 유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어서다. 그들의 꿈이 기특하지만 지원해 줄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나 도움 없이는 힘든 상황이다. 김 교장은 “한두명일 때는 일일이 장학재단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할 수 있었지만, 멕시코 무지개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20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지원해 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각지에서 모여드는 한인 후예를 교육시키기 위해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제3의 무지개학교를 짓고 싶다는 계획도 당장은 버겁다. 김 교장은 “100년이 넘도록 잊혀 온 애니깽의 후예들이 한 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한국을 기억하고 돌아오려 하는 만큼 정부와 국민들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카탄 무지개학교 후원 계좌: 016-064779-01-011(기업은행 김무선)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돌아온 애니깽 후손들] 1905년 1033명 첫발… 후손들 ‘경계인 삶’

    [돌아온 애니깽 후손들] 1905년 1033명 첫발… 후손들 ‘경계인 삶’

    1905년 4월 4일, 한국인 이민자 1033명을 태운 영국 화물선 일포드호는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다. 당시 영국·멕시코 이중 국적의 이민 브로커 마이어스는 일본 인력송출회사와 협의해 멕시코 유카탄 주 애니깽 농장주협회의 대리인 자격으로 서울·인천 등 전국에서 이민 노동자를 모집했다. 배에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가진 장정 702명과 임신부를 포함한 부녀자 135명, 아무것도 모른 채 배를 구경한다며 덥석 올라탄 아이들 196명이 함께했다. 계층도 다양했다. 200여명의 퇴역 군인과 농부·무당·거지에 양반까지 포함됐다. ‘서유견문’을 쓴 개화파 유길준의 삼촌 유진태도 이민 1세대 중 한명이었다. ‘높은 보수의 4년 계약 이민’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몰려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몇년만 고생하면 큰돈을 벌어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배에 올랐다. ●농장 흩어져 노예 같은 생활 그러나 한달이 넘는 긴 항해 끝에 5월 15일 도착한 멕시코의 실상은 한국에서 들었던 것과 딴판이었다. 유카탄 반도 프로그레소 항에 도착한 이들은 곧 주도인 메리다 외곽의 25개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노예 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신산의 고통 속에 4년의 계약 기간이 끝났으나 일제에 강점된 조국은 그들이 그리던 곳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귀국을 포기한 한인들은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멕시코 전역에 흩어져 처절한 밑바닥 생활을 해야 했다. 1920년대 초에는 쿠바로 흘러들어 간 사람들도 있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1세대들은 조국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승무학교와 한글학교를 세워 멕시코 땅에서 태어난 후손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 줬다. 그 즈음 미국에 설립된 독립단체 국민회의의 영향으로 국민회 유카탄 지부가 설립되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유카탄을 직접 찾아 1년 가까이 체류하며 흥사단을 조직해 1만여 달러나 되는 거액의 독립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이 이민 3세대까지 유지됐지만 4~5세대에 이르러서는 그마저 점차 희석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한국인인지 멕시코인인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한인 4~5세대들은 현지인들의 차별 속에서 지금도 레판 마을과 메리다 등 멕시코 전역에 흩어져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 ●후손 대부분 사탕장사·막일 생계 1세대의 이민 이후 한 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유길준의 육촌 손녀 노라 유씨가 지난 2006년 한인 후손 최초로 연방상원 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극소수 성공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탕 장사와 막일을 하거나 쥐꼬리만 한 연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삶 속에는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의 고통이 지워지지 않는 혈흔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나사 풀린 행태에 국회 뿔났다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은 국정원 직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다고 믿고 있지만, 국정원은 “확인도 부인도 해줄 수 없다.”고 버틴다. 수십조원의 경제효과가 예상된다며 한·EU FTA 비준안을 빨리 처리해 달라던 외교통상부는 잘못 번역된 비준 동의안을 버젓이 국회에 제출했다. 여당에서조차 “국회를 무시하는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EU FTA협정문 誤字 보고하는 사람 없자…“정부 버르장머리 고칠 것” 한글본 고쳐 다시 제출키로 정부는 번역 오류가 발견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문의 한글본을 고쳐서 국회에 다시 제출하기로 했다. 남경필(한나라당)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2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24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만나 영문본과 다르게 적힌 한글본을 고치기로 합의했다.”면서 “정부가 오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 예정대로 다음 달 3일 상임위에 한·EU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EU와 완구·왁스류에서 외국 재료가 50% 이하이면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어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비준 동의안을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본(正本)인 영문본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를 완구류 40%, 왁스류 20%로 각각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정부는 오류를 고치지 않고 비준 동의 절차를 강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정치권 등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지자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정부의 이런 나사 풀린 행태를 질타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이런 큰일이 벌어졌는데도 아직까지 누구도 보고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정부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대해 반드시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 놓겠다.”고 강조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당 5역 회의에서 “협정문의 오자를 그대로 둔 채 국회에 비준을 요구한 외교통상부의 행태는 나사가 빠진 짓의 전형”이라면서 “대통령은 권력 누수가 없다지만, 곳곳에서 힘 빠지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印尼특사단 사건 국익 위해 말할 수 없다”에…“무능한 국정원 필요없어” 정보위 간담회 20분만에 ‘끝’ 25일 오전 8시 여의도의 한 중식당. 국가정보원 김숙 1차장, 민병환 2차장, 김남수 3차장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 12명 전원이 모였다. 국정원 직원들이 저지른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비공개로 정보위원들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 국정원장 사퇴까지 거론되는 초유의 사건이지만 조찬을 겸한 회의는 20분 만에 끝났다. 국정원 내부 투쟁설, 여권 권력 투쟁설, 정보기관 간 알력설 등이 불거진 상태이지만 국정원 간부들은 “국익을 위해 어느 것도 말할 수 없다. 인내를 갖고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의원들이 폭발했다. “국익은 당신들이 다 망쳐 놓고 무슨 국익 운운하느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우리를 모욕하는 것이냐.”라고 화를 냈다. 정두언 최고위원도 “차라리 죄송하다고 말하라. 창피하다.”라고 일갈했다. 국익을 고려해 비판을 자제하겠다던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일도 못하고 뒤처리도 못하는 무능한 국정원은 필요 없다.”면서 “국정원 원장과 3차장은 해임돼야 하고, 형사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인도네시아와 무슨 거래를 하지 않았나 싶다. 권력기관 간 갈등이 아니라 더 큰 몸통 갈등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회를 무시하는 정부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면서 “국회를 ‘통법부’ 정도로 인식하고, 국회를 무시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청와대와 정부에 팽배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창구·강주리기자 window2@seoul.co.kr
  • 대전현충원 안장묘 국내 최다

    대전현충원의 안장 묘가 서울 동작동 서울현충원을 추월했다. 1982년 첫 안장 후 29년 만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지난 20일까지 유성구 갑동 매장묘역에 5만 4778위가 안장돼 서울현충원의 5만 4443위를 넘어섰다고 21일 밝혔다. 1956년부터 안장을 시작한 서울현충원이 1985년 만장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장을 중단한 것도 이런 결과를 낳았다. 대전현충원은 지금도 1만 500위의 매장묘 여분이 남아 있다. 이곳은 나들이객도 많아 지난해 방문객이 220만명으로 서울 217만명을 앞질렀다. 서울현충원은 전체 143만㎡ 중 묘역이 24%인 35만㎡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현충원에는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글학자 주시경,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한 조만식, 시인 이은상 등이 안장돼 있다. 대전은 국가원수로 최규하 전 대통령만 안장돼 있지만 마라토너 손기정, 아동문학가 윤석중, 민족영화 ‘아리랑’ 제작자 나운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등도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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