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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날 세종 숨결 ‘한울길’ 걸을까

    한글날 세종 숨결 ‘한울길’ 걸을까

    566돌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의 업적을 살필 수 있는 종로구 ‘세종한울길’이 주목받고 있다. 8일 종로구에 따르면 9일 한글날을 맞아 청소년들에게 세종대왕의 업적을 알릴 수 있는 ‘세종한울길’에 대한 방문 신청과 문의가 부쩍 늘었다. 세종한울길의 ‘한’은 크고 바르다는 의미이며 ‘울’은 우리의 터전을 뜻하는 고유어다. 따라서 세종한울길은 세종대왕의 숨결이 살아있는 우리의 터전이라는 뜻이 된다. 코스는 ▲세종벨트 통합 티켓팅 인포센터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광장 세종 이야기 홍보관 ▲세종대왕 생가터 ▲경복궁 ▲맹사성 집터(북촌 동양문화박물관) ▲관상감 관천대로 구성돼 있다. 우선 30여개 문화 예술 기관의 연합체인 ‘세종벨트 인포센터’ 입구에는 ‘세종대왕 체험관’이 마련돼 있어 무료로 세종대왕의 예복을 입어 볼 수 있다. 광화문광장 중앙에 우뚝 선 ‘세종대왕 동상’은 2009년 10월 9일 한글날에 세워졌다. 총높이 9.5m로 동상 앞에는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가 설치돼 있다. 세종대왕 동상 지하에 자리한 광화문광장 ‘세종 이야기’ 홍보관은 세종대왕의 일생과 업적을 전시물과 설명을 통해 알아보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세종대왕 동상에서 통인동 사거리까지 약 18분 정도 걸어가면 ‘세종대왕 나신 곳’을 표시하는 작은 비석이 나온다. 세종대왕은 1397년 지금의 통인동 119번지에서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대왕 생가터에서 약 15분 정도 걸으면 경복궁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18분가량 걸으면 세종대왕의 스승이자 청백리로 잘 알려진 정승 ‘맹사성’의 집터에 도착한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북촌동양문화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맹사성 집터에서 도보로 17분쯤 가면 세종대왕 16년(1434년)에 설치된 ‘관상감 관천대’(천문관측대)를 만날 수 있다. 관상감 관천대는 우리나라 천문학의 역사와 천문학 기기의 발전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주시경 ‘말모이 원고’-‘조선말큰사전 원고’ 문화재 된다

    주시경 ‘말모이 원고’-‘조선말큰사전 원고’ 문화재 된다

    한글학자 주시경이 1911년 무렵에 붓글씨로 쓴 ‘말모이 원고’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인 ‘조선말큰사전 원고’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국한회어’(國漢會語), ‘국어문법(國語文法) 원고’, ‘국문연구안’(國文硏究案), ‘국문정리’(國文正理), ‘전보장정’(電報章程) 등 한글 유물 7점을 566돌 한글날을 맞아 문화재로 각각 등록 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말모이 원고’는 주시경이 중심이 돼 한글사전을 편찬할 목적으로 특별히 제작한 240자 원고지에 붓글씨로 쓴 글이다. 출판되지는 못했지만, 국어사전 역사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조선말큰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1921년 12월 창립)가 사전 편찬을 위해 1929~1942년 작성한 역시 원고 뭉치다. 조선어 사용이 금지된 상태에서 민족의식을 고양했다는 죄목으로 조선총독부가 한글학자들을 탄압·투옥한 ‘조선어학회 사건’(1942~1943)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됐다가 1945년 해방 후 9월 8일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됐다. 1947년 한글학회가 간행한 ‘조선말큰사전’ 두 권의 바탕이 됐다. 1895년 편찬된 대역사전인 ‘국한회어’도 문화재로 등록된다. 19세기 말 음운론은 물론 어휘사와 국어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국어문법 원고’는 1910년 박문서관에서 발행한 ‘국어문법’(國語文法·1910년 출간)의 주시경 친필 원고다. 국문법 연구의 효시로 순한글 표기를 시도했다. ‘한글맞춤법통일안’의 기본 이론을 세운 책이다. ‘국문연구안’은 1907년 건립된 한글 연구 국가기관인 국문연구소 연구원(주시경·이능화·지석영·어윤적·송기용 등)의 국문 연구 관련 문제에 대한 논설과 의견서를 집대성한 국문연구 결과 보고서 등사본이다. 우리 문자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연구서로, 오늘날의 문자체계와 맞춤법의 원리를 그대로 담아 국어사적 의미가 특히 크다. 이봉운이 쓴 ‘국문정리’(國文正理)는 1897년 목판본으로 간행한 순한글 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문법서다. 국문 존중을 강조하고, 문자 학습에 힘써 개화함으로써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민생을 튼튼하게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전보장정’(電報章程)은 1888년 우리나라에서 제정한 최초의 전신규정(電信規程)을 담은 문헌이다. 32개 항의 조문과 전신부호, 요금 등을 규정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한글의 기계화가 이루어진 결과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안테나] 충북 사업名 외래어 남발 ‘한글날이 운다’

    [안테나] 충북 사업名 외래어 남발 ‘한글날이 운다’

    2010년 한글문화연대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돼 상까지 받은 충북도가 최근 들어 또다시 외래어를 남발해 눈살. 도는 최근 지식경제부에 ‘에어로폴리스’ ‘바이오밸리’ ‘에코폴리스’ 등의 이름으로 신규 사업을 신청. 에어로폴리스는 청주공항 인근에 항공정비업체가 밀집된 단지를 만들려는 것으로, 그동안 항공정비복합단지로 부르다가 경제자유구역을 신청하면서 갑자기 사업명을 영어식으로 변경. 또 도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사업 명칭도 ‘솔라밸리 마스터 플랜 및 솔라 그린시티’로 명명. 한글문화연대 관계자는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된 이후 또다시 정책과 추진 사업 명칭 등에 외래어를 남발하면 우리말 해침꾼으로 선정될 수도 있다.”고 경고.
  • [9일 566돌 한글날…생활속 우리글 사랑 주역들] “한글은 디자인 창작 보물창고” 한글 미학 알리는 서일대 ‘벤처硏’

    [9일 566돌 한글날…생활속 우리글 사랑 주역들] “한글은 디자인 창작 보물창고” 한글 미학 알리는 서일대 ‘벤처硏’

    “우리글 자음과 모음은 서로 단단하게 결속합니다. 이것이 한글을 각종 디자인에 쉽고 아름답게 적용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는 서일대 한글벤처연구회 회원 정상현(19·산업디자인과 1학년)씨의 말이다. 566돌 한글날을 이틀 앞둔 7일 산업디자인과 실습실에서 만난 한글벤처연구회원들은 한결같이 “한글은 디자인 창작의 보고”라고 예찬했다. 같은 과의 박세아(19)씨는 “한글은 초성과 중성, 종성으로 이뤄져 있어 자음과 모음 사이의 간격와 비례를 통해 디자인적으로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면서 “A, B, C 같은 알파벳은 이런 활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글을 유아·아동을 위한 캐릭터 디자인으로 개발하는 데 관심이 많다는 원혜란(19)씨는 호랑이·소·양·개 등 동물의 글자와 동물의 특징을 연결한 캐릭터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있다. 이들을 지도하는 백승정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한글은 1만 1172자의 생성이 가능하고, 한글이 지닌 수평선·수직선·사선에 네모·세모·동그라미 등을 크기와 방향성·기울기 등과 연결시켜 변형하면 무한대의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체 개발 수준을 뛰어넘어 한글의 조형적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들은 특히 각종 제품 디자인에서 한글의 장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빵’이란 글자를 활용해 토스터를 디자인하고, ‘만남’이란 단어를 이용해 버스정류장 벤치를 디자인하는 등 우리 생활 속의 다양한 제품과 공공영역에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정씨는 “한글은 조형적으로 어떤 형태로 바꾸어도 어색함이 없다.”면서 “특히 ‘받침’이 있기 때문에 실제 건축 등의 디자인에 활용할 때 안정감을 준다.”고 평가했다. 정씨는 서울, 부산 등 각 지명을 버스정류장 디자인에 활용해 한글문화상품 공모전에서 버금상을 받기도 했다. 글 사진 안석기자 ccto@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우리말 겨루기(KBS1 밤 7시 30분) 올해로 566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우리글, 우리말에 대한 참 의미를 되새기고 바른 말을 살펴볼 기회를 가져본다. 비속어 사용 등 언어파괴의 한 가운데서 바른 말길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데 앞장서온 ‘우리말 동아리’ 학생들이 함께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있는 내용으로 우리말과 맞춤법, 사자성어 등을 다양하게 조명해 본다. ●울랄라 부부(KBS2 밤 9시 55분) 정신이 돌아온 여옥과 수남은 본인들의 처지에 기가 막힌다.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스님을 찾아가고 별의별 쇼를 다 해 보지만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생활하게 되는 두 사람.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옥은 호텔로, 호텔리어 수남은 그렇게 한심해 마지않던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어 버리고 만다. ●마의(MBC 밤 10시 25분) 광현과 영달은 왈패들과 명환의 수하 강정두로부터 도망친다. 그러던 중 광현은 영달이 계집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효종은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내용을 보고받은 뒤 도준의 무고함을 널리 밝히고, 그 가문의 모든 것을 신원하여 회복할 것을 명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석구는 12년 전 자신이 본 살인사건의 진실을 증언하려 한다. ●월화드라마 신의(SBS 밤 9시 55분) 필사의 함정에 빠지게 된 최영을 살리기 위해 다급해진 은수는 덕흥군(박윤재)과 계약을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최영은 분노하며 달려와 은수에게 자기 옆에 있어주면 안 되는지 묻는다. 공민왕은 최영에게 궁을 탈취할 작전을 명하고, 덕흥은 기철과 손을 잡고 현고촌을 기습할 계획을 세운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11월의 세렝게티 초원에 우기가 시작되면 중부 지역에는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그리고 누, 얼룩말, 가젤처럼 무리 지어 사는 초식동물들이 신선한 풀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온다. 지상에서 가장 큰 대형 무리들이 몰려드는 이때가 사자나 치타, 표범, 검은등자칼 같은 포식자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데…. ●경찰 25시(OBS 밤 11시 5분) 늦은 밤, 부천 경찰서 지능팀에 한 여자의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성매매를 하는 성노동자. 빌린 돈을 다 갚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다 변제되지 않았다며 계속되는 성매매 독촉에 지쳐 신고했다고 털어놓았다. 불법 대부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성매매 알선까지 하고 있는 업자들. 과연 돈과 성매매의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 [9일 566돌 한글날…생활속 우리글 사랑 주역들] “옛 서민 편지체 예술로…민(民) 글자체 개발” 가훈 써주기 22년 이정호씨

    [9일 566돌 한글날…생활속 우리글 사랑 주역들] “옛 서민 편지체 예술로…민(民) 글자체 개발” 가훈 써주기 22년 이정호씨

    이정호 도봉서예협회 회장은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서울 도봉구와 함께 구민들에게 한글 가훈 써주기를 해준다. 1990년 쌍문동으로 터전을 옮기고 나서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22년째. 이 행사를 거르지 않는 것은 서예를 통해 한글의 멋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서예가로 살아온 그는 국전 대상을 받기도 한 유명 서예가인 구당 여원구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다. “경기 양평문화원에서 일하면서 근무를 마치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저녁에 서예를 배우는 생활을 1년 반 정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인사동에 작업실을 열고 본격적으로 사사했지요.” 돌에 글씨를 새기는 전각에도 조예가 깊은 이 회장은 그동안 도봉구청장과 도봉구의회 의장 관인, 서울시의회 의장이 사용하는 관인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관인에 사용한 글씨체가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복원한 ‘훈민정음체’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 서체는 가로쓰기나 세로쓰기 모두 시작과 끝을 반원 모양으로 시작한다.”면서 “흔히 한글 서예에서 많이 쓰는 궁서체가 여성적인 서체라면 훈민정음체는 남성미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엔 다른 작가들과 함께 ‘민’(民) 글씨체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서민들이 쓰던 한글 편지 형식을 예술로 승화하자는 취지이다. 자유분방하고 크기 변화가 뚜렷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쌍문동으로 이사 온 뒤 지금껏 서예학원과 구 문화학교 등에서 서예와 전각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가르친 전각반 수강생 20명은 1년에 걸친 준비 끝에 특별한 행사를 오는 15일 도봉구민회관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바로 도봉산 계곡 바위에 옛 선비들이 새긴 암각을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음미할 수 있는 ‘문화재와 전각의 만남’ 전시회다. 이 회장은 “글씨를 종이와 돌에 새겨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다문화 자녀 12만명… 한글 공부 ‘좁은문’

    다문화가정 출신 자녀가 12만명에 이르지만 정작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언어지도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문화가정 출신 어린이의 상당수가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지만 도움의 손길은 멀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신문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2012년 전국다문화센터 사업배치인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204곳에 배치된 언어지도사는 총 201명이었다. 올해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출신 학생 수는 4만 6954명. 이 중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초등학생은 3만 3792명에 이른다. 지도사 1명이 담당하는 초등학생만 약 168명이라는 계산이다. 언어지도사 부족은 일자리가 많아 사람이 몰리는 수도권이 더 열악하다. 경기도는 언어지도사 27명이 다문화가정 학생 7602명을 맡아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282명을 기록했다. 이어 인천 228명, 서울 209명, 전남 179명, 부산 178명, 제주 175명, 충북 162명 순이었다.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가 100명을 넘지 않는 곳은 경남(99명)이 유일했다. 서울 광진구, 인천 동구, 광주 남구, 울산 중구, 경기 김포시·포천시·의왕시·연천군, 강원 태백시 등 언어지도사가 아예 없는 시·군·구도 31곳이나 됐다.차윤경 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은 “다문화 가정 자녀 38%가 언어발달 지연이나 장애를 겪고 있다는 보건복지부 조사를 고려할 때 보다 많은 아이들이 지원받을수 있도록 지도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유커 뿔났다] (중) 그들이 말하는 한국관광

    [유커 뿔났다] (중) 그들이 말하는 한국관광

    지난 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중국대사관 영사부에 중국인 관광객 28명이 성난 표정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한 여행사를 통해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단체여행객이었다. 이들은 “호텔에서 4박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가이드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사우나로 안내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1시 30분쯤 청주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수속을 마친 뒤 호텔로 가서 짐을 풀리라 생각했지만,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공항 인근의 한 사우나였다. 가이드는 항의하는 관광객들에게 “나는 모르는 일이고 여행사에서 사우나로 안내하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여행사는 부랴부랴 경기 파주의 한 호텔을 예약했지만 관광객들은 이마저도 거절했다. 서울을 둘러보기에 이동시간이 너무 긴 탓이었다. 중국의 여행사와 함께 이번 여행상품을 진행한 국내 여행사는 “청주공항 인근의 숙박시설은 예약이 꽉 찼고 일정상 숙박시설에서 묵기는 무리였다.”면서 “사우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중국 여행사 측과 협의됐으나 손님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 여행사 측에서 관광객들에게 배상을 해주기로 결론이 났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이 묵을 만한 저렴한 숙소가 부족해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중국인 유커(遊客·관광객)들은 아직까지는 여행사를 통해 단체여행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불편은 숙박 문제다. 추석과 국경절이 이어진 연휴 기간에 유커들은 대규모로 한국을 찾지만, 이들을 수용할 만한 저렴한 숙박시설이 서울에는 부족하다. 이영일 (사)한중문화협회 총재는 “서울시내에는 숙박시설이 조기에 예약이 끝나 의정부, 양주, 수원 등 경기도에 있는 모텔까지 유커들이 들어차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서 본 남산타워의 야경과 동대문 야간 쇼핑 등은 유커들에게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유커들은 인천이나 수원 등 경기지역의 비즈니스급 호텔에서 숙박을 하지만, 정작 이들이 주로 관광하는 곳은 서울 시내나 판문점 등 경기 북부 지역”이라면서 “이동 거리나 일정에 대해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천편일률적인 여행코스에 지루함을 표출하는 유커들도 있다. 경복궁, 청계천을 1시간 이내에 훑어보고 명동이나 동대문, 면세점에서 쇼핑하는 식의 전형적인 코스가 유커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다. 장지에(45)는 “4박 5일 일정동안 면세점, 인삼매장, 화장품 등 쇼핑 코스가 하루 최소 1~2시간인데, 나이가 많을수록 쇼핑에 대한 흥미는 떨어진다.”면서 “한국 드라마에서 본 궁궐이나 민속촌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데 그런 여행상품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커들의 이 같은 불만에 대해 국내 여행업 종사자들은 정반대 시각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유커들이 부담하는 여행 경비만큼 숙박시설 등에 대한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서울시내에 숙박시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가를 찾다 보니 외곽으로 빠지는 것”이라면서 “저가상품으로 오는 유커들은 용인 수원은 물론 송탄, 오산, 평택에 숙소를 잡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편 젊은 층을 중심으로 늘고 있는 자유여행에서도 유커들의 불만은 엿보인다. 틀에 박힌 관광코스에서 탈피해 드라마 명소 방문, 대학가 탐방 등 주제를 정해 여행을 하고 서울 시내의 게스트하우스 등 저렴한 숙소에 묵는 이들은 자신들의 블로그를 통해 한국 여행의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여행가이드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외국관광객을 상대로 한 지나친 상술과 불편한 언어소통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콜밴의 불법 영업이다. 지난달 29일에는 한 콜밴 기사가 승객을 가장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에게 명동에서 이촌동까지 11만 5000원을 요구했다 경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리진옌(27·여)은 “공항에서 내리니 콜밴 기사들이 호객을 했다.”면서 “인터넷에서 한국의 택시를 구분하는 방법을 참고해서 속지 않았지만, 잘 모르는 외국인은 쉽게 바가지 요금을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어소통도 마찬가지다. 명동, 인사동 등에서는 중국어 관광안내원이 활동하고, 유명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도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들이 배치돼 있지만 일본어 서비스에 비해서는 아직까지 부족한 편이다.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다양한 곳을 가보고 싶어도 영어 소통조차 어렵다고 유커들은 토로한다. 왕리웨이(30·여)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타고 서울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정거장 노선도에 한글로만 쓰여 있어 불편했다.”고 말했다. 김소라·배경헌기자 sora@seoul.co.kr
  • [뉴스 WHO] 우익 아베의 한류팬 부인 아키에 ‘부창부수(夫唱婦隨)’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열렬한 한류 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와의 결별인 셈이다. 한국,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강경 대응 입장을 밝히고, 집단적 자위권과 군대 보유를 위해 헌법 9조의 개정을 추진하는 아베 총재의 우익성향을 한류 팬인 아키에 여사가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아키에 여사는 일본 주간지 ‘여성자신’ 최근호(10월 16일자) 인터뷰에서 “최근 한류 드라마는 시청하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한류를 좋아하게 돼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혀 (공부를) 안 한다.”고 말했다. 아키에 여사는 한류 드라마 전문 채널인 KNTV에 가입, 한국 드라마를 즐겨 봤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된 지금은 시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인 남편 아베 총재의 한국에 대한 입장이 영향을 끼쳤느냐는 질문에 아키에 여사는 “그렇다. 한국에도 친한 친구가 있는데 곤란하게 됐다.”며 복잡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7일 진행됐다. 아키에 여사는 2004년 9월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남편의 한국 방문에 동행해 드라마 ‘겨울연가’에 출연한 가수 겸 탤런트 박용하를 만난 뒤 한류에 더욱 빠져들었다. 틈틈이 익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으며, 박용하의 사인이 적힌 앨범을 선물 받기도 했다. 또 ‘욘사마’ 배용준이 도쿄를 찾을 때면 그와 만나려고 일부러 같은 호텔에 묵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등 풍부한 감수성도 그가 열성 한류 팬이 된 밑바탕으로 보인다. 1990년대 남편의 고향인 시모노세키에서 FM방송국 DJ로 활동하면서 솔직한 화법으로 주부들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DJ를 그만둘 때 “남편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좀 더 할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아키’라는 애칭으로 아베 총재 지지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그는 활달한 성격으로 주위를 들뜨게 하는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하다. 유명 제과회사인 모리나가 창업자 집안 출신인 아키에 여사는 정치인 남편의 적극적인 내조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술이 약한 남편을 위해 대신 건배를 하는 애주가로도 유명한 그는 매일 남편을 위해 인삼 주스를 손수 만들어 주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종교플러스]

    이기흥 중앙신도회장 13일 공식취임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13일 오후 2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제24, 25대 회장 이·취임식을 연다. 이·취임식은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치사와 포교원장 지원 스님의 격려사, 중앙지도법사 추대, 자비나눔 전달식 순서로 진행된다. 이기흥 신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중앙신도회 운영 방침과 주요 사업계획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신도회는 이날 나눔문화 행사로 독거 노인 등 지역 이웃들을 위한 ‘자비의 쌀 모음행사’와 교정 시설에 교양 도서를 전달하는 ‘희망도서 모음 행사’를 펼친다. 가톨릭작곡가협회 13일 음악회 한국가톨릭작곡가협회(한가작협)는 13일 오후 8시 서울 삼성동 성당에서 ‘둘이 하나, 주님 안에’ 음악회를 연다. 지난 6월 마장동 성당 하상바오로성가대와 협연한 이후 두 번째 공연으로 회중용 성가부터 영성체 후 묵상곡, 연주회용 작품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선사한다. 1700년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비발디의 ‘글로리아’도 연주돼 18세기와 21세기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진흥문화, 기독교역사문화관 개관 ㈜진흥문화는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를 정리한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서울 신설동 진흥빌딩 4층)을 최근 개관했다. 역사문화관에는 최초의 한글 성경인 누가복음(1882년)·마가복음(1884년) 영인본을 비롯해 서상륜·서경조 형제의 주기도문(天)·사도신경(地)·십계명(人) 공예품(1887년) 등이 소장돼 있다. 1900년 한국 최초 성화 캘린더와 천로역정 한글 영인본, 쿰란 동굴 항아리 등도 전시된다. 한편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은 소그룹 모임을 위한 세미나실을 무료로 대관한다. (02)2230-5113.
  • “오늘·9일 꼭 태극기를” 동작구, 민원실부터 게양 운동

    “오늘·9일 꼭 태극기를” 동작구, 민원실부터 게양 운동

    서울 동작구는 개천절(3일)과 한글날(9일) 등 국경일과 기념일이 많은 10월을 맞아 ‘구청 민원실부터 태극기 달기 운동’을 진행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구가 솔선수범해 주민들의 태극기 게양 의지를 확산시키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민원실을 찾는 주민이 자연스럽게 태극기를 접함으로써 애정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구는 이달을 ‘가족과 함께하는 나라 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의 달’로 정하고 통·반장과 아파트 관리 직원을 통해 주민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초중고교에도 안내문을 발송해 학생들이 가정에서 태극기를 달도록 유도했다. 이 밖에 구 홈페이지에는 태극기 달기 참여 팝업 광고를 게재하고 구 청사 전광판과 출퇴근길의 왕래가 잦은 지역 내 지하철역 8곳에 태극기 게양 포스터를 설치했다. 새마을운동 동작구지회 등 42개 민간 사회단체도 태극기가 없는 저소득 가정, 경로당, 임대아파트 등에 태극기 1500여개를 전달하는 등 태극기 게양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구는 현충원로에 태극기 달기 시범거리 400m를 조성해 태극기를 연중 게양하고 있으며 노량진로 등 8개 주요 간선도로에도 이달부터 1700여개 태극기 가로기를 게양한다. 문충실 구청장은 “동작구는 국립서울현충원과 사육신묘가 있는 충효의 고장이다. 태극기 사랑을 통해 나라 사랑에도 앞장서는 지자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1일 TV 하이라이트]

    ●헬로우 고스트(KBS1 밤 1시 15분) 죽는 게 소원인 외로운 남자 상만(차태현)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은 변태귀신, 꼴초귀신, 울보귀신, 초딩귀신까지. 소원을 들어달라는 귀신과 그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게 된 상만. 결국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사이 예상치 못했던 생애 최고의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데…. ●월화드라마 울랄라 부부(KBS2 밤 9시 55분) 1919년 경성. 독립군 투사 주환은 일본인 게이샤 사유리의 도움을 받아 거사를 도모한다. 일본총독에게 날아가는 수류탄. 총독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친다. 사유리는 첩자로 활동한 것이 발각되어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한편 2012년 서울. 주환과 사유리는 결혼 12년차 수남과 여옥이 되어 있었는데…. ●한가위특집 매직쇼크 1부(MBC 오전 11시) 세계가 인정한 우리나라 최고의 마술사 최현우. 그리고 중국 CCTV 시청률 96%의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중국의 국민마술사 류천이 초능력과도 같은 초마술을 신의 손이란 주제로 선보인다. 세계 최고의 마술사 최현우와 류천이 마술의 금기를 깨는 미션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글의 법칙 W(SBS 오후 6시) 남태평양 말레쿨라섬에서 정글을 체험하고 돌아온 5명의 여성 전사들. 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정글이기에 화려한 모습은 간데없고 그녀들의 평소 모습이 가감없이 공개됐다. 그중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 한고은은 한 끼도 먹지 못하고, 15시간 동안 정글을 헤매게 되자 흙묻은 맨손으로 자몽을 뜯어먹는 원시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지구의 심장, 아마존 정글로 들어가는 관문 레티시아. 비 오는 레티시아의 새벽시장은 진기한 아마존의 물고기들이 모이는 곳이다. 새벽 장을 보러 나온 부족민들로 분주한 거리. 하지만 원래 밀림 지역이었던 이곳은 개발의 물결에 밀려나 더 이상 아마존 정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알던 아마존은 과연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쑤어쓰다이, 캄보디아(OBS 오후 5시 35분) 경기도 화성시의 청소년들이 캄보디아 오지 수상마을 깜풍쁠록의 낡은 한글학교를 찾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국적의 아이들과 부러진 책상을 고치고, 낡은 난간과 색바랜 교실벽을 화사하게 칠하는 등 낡은 마을학교를 새롭게 탄생시킨다. 프로그램에서는 12일간의 봉사활동 중 펼쳐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박영효vs유길준(상)

    [선택! 역사를 갈랐다] 박영효vs유길준(상)

    박영효(1861~1939·왼쪽)와 유길준(1856~1914·오른쪽). 두 사람은 19세기 말 조선을 대표하는 개화파였다. 두 사람은 모두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이루어진 갑오개혁을 주도한 핵심적 인물이었으며 이미 갑오개혁 이전에 구체적이며 명확한 개혁안을 담은 ‘상소문’과 ‘서유견문’을 각각 집필했다. 당시 조선 내의 권력 지형에서 개화관료들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갑오개혁 기간 내내 협력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대립했다. 왜 그들은 협력이 아닌 대립을 선택한 것이었을까? 1883년 보빙사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남아 유학생활을 하던 유길준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후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유길준이 포도대장이던 한규설의 집과 민영익의 별장에서 유폐생활을 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민영익이 유길준을 청과 조선의 보수 세력으로부터 보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유길준은 당시 왕실의 비밀창구로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한규설의 숨은 자문역이었다. 그는 이 기간에 주로 집필에 전념하여 1889년에 ‘서유견문’을 탈고, 한규설을 통해 고종에게 제출하기도 하였고 몇몇 외교문서를 대신 작성해 주기도 했다. 이후 유길준은 1894년 6월 당시 민씨 척족을 대표하던 민영준에 의해 ‘일본당’을 대표하여 외아문의 주사로 발탁됐다. 민영준은 일본당을 등용하여 일본 측과의 관계를 개선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유길준은 일본 공사관 측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한편, 공식적으로는 외아문의 주사로서 일본의 개혁 요구와 속방론 철폐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는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공사관 측에서는 그가 일부러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 했다고 파악했다. ●군국기무처를 주도한 유길준 1894년 7월 23일 일본은 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을 불법 점령, 정부를 전복시켰으며 군국기무처를 수립했다. 이때부터 유길준은 갑오개혁의 핵심 브레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파격적으로 군국기무처 의원으로 발탁된 그는 총리대신 김홍집을 직속으로 보좌하면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본 측에서는 당시 유길준이 군국기무처를 실질적으로 주도해 간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찡그린 얼굴, 냉소적인 말, 기염 높은 논의, 대담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내정의 신법’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군국기무처가 진행한 개혁안은 190개에 달했다. 대외적으로는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취했다. 일본의 군사교관을 초빙하는 한편 일본의 화폐 유통권을 허가하고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동학 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를 초기에는 일정 정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농민군이 2차 봉기의 움직임을 보이자 10월 중순부터는 무력탄압에 들어가게 됐다. 그 밖에도 궁내부를 설치하여 왕실과 정부를 분리시켜 왕권을 약화시켰으며 의정부에 권한을 집중시켰다. 사실 이 모두를 유길준이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시 군국기무처 내에 유길준만큼 근대국가를 직접 체험했거나 체계적인 저술을 남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를 개혁의 중심인물이 되게 했을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 유길준은 이때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과 함께 대원군 세력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유길준은 10월 일본에 파견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일본인 고문관과 군사교관의 파견 및 차관 제공을 요청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무쓰 무네미쓰 외상을 만나 ‘세 가지 수치(三恥論)’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스스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일본의 강요에 의해 개혁이 진행됨으로써 조선 국민, 세계 만국 그리고 후대에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을 보전하고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박영효의 귀환 갑신정변 실패 후 박영효는 10년간 일본 망명생활을 하다가 1894년 8월 23일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일본은 박영효를 귀국시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대원군 세력과 개화관료 세력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길 의도를 갖고 있었다. 박영효는 개화세력의 대표인물이면서 부마라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 왕실과도 일정한 소통이 가능했고, 망명 중 대원군과도 수차례 접촉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박영효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상소를 올린 후 고종을 알현하여 자신에게 개혁의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원로 대신들이 반대 상소를 올리고 미국과 러시아 공사관이 일본 공사관 측에 항의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단 제물포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보호국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메이지 유신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노우에 가오루를 공사로 파견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노우에는 10월 27일 부임하자마자 대원군 세력을 정계에서 축출하고 조선 왕실의 고문관 또는 ‘외신’(外臣)으로까지 불리며 왕실과 손을 잡았다. 이와 함께 박영효의 기용을 요청했고 결국 12월 17일 김홍집-박영효 연립정부가 출범하게 됐다. 이때 박영효는 내무대신에 임명됐다. 박영효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의 조선 정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박영효는 이 시기 개혁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추구한 것은 동학 농민군에 대한 확고한 진압과 일본을 모델로 한 개혁의 추진이었다. 박영효는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자의 처형에 결정적으로 관여했다. 그리고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확고하게 하려고 종속관계의 상징물을 파괴하고 태극기를 사용하며 공문서에 한글을 사용하게 했고 독립기념일을 제정했다. 그는 이때 내무대신 직권으로 ‘자주독립을 방해하는 자를 역적으로 처벌하는 건’을 ‘내무대신령’ 1호를 통해 발표했다. 또한, 그는 지방제도 개편에 심혈을 기울여,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와 331개의 군으로 개편했다. 아울러 경무청관제를 발표하여 무장경찰을 육성하고 상비군을 육성하려 했다. 그런데 박영효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일본 측의 기대와는 달리 김홍집을 ‘줏대 없는 소인배’라며 내각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총리대신이 될 생각으로 권력투쟁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효는 자신의 세력을 지방관은 물론, 군부와 경찰의 요직에 임명했다. 더욱이 일본의 통제에서 벗어나 일본의 보호국화 정책에 맞서 일정하게 조선의 국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결국, 박영효는 김홍집을 5월 17일에 총리대신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총리대신의 자리는 박정양에게 돌아갔다. 다만, 박영효는 내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그들은 왜 대립하였을까? 박영효와 유길준. 어찌 보면 함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해 보일 법한 이들은 실제로는 처음부터 첨예하게 대립했다. 윤치호의 당시 일기에 보면, 유길준은 철저하게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과 함께 세력을 형성하여 박영효와 전면적인 대립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그 사상적 이유는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에서 찾을 수 있다. 유길준은 ‘개화의 등급’에서 김옥균, 박영효 등을 ‘허명의 개화’를 주장하는 자들로 비판하면서 ‘실상개화’를 제시한다. 그는 허명개화를 “사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서도 남이 잘된 모습을 보면 부러워서 혹은 두려워서 덮어놓고 시행하자고 주장하여 비용은 많이 들이면서 실용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아무런 분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다 좋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외국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 있는데 이들을 개화당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개화하는 데 있어서 폐해는 지나친 것이 모자란 자보다 더욱 심하다고 말하면서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개화의 병신”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둘 사이의 정치적 차이도 존재했다. 유길준은 민영익과 동문수학한 사이였고 그를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데려가 미국에 유학까지 시켜 준 사람 또한 민영익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민영익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유길준 자신이 갑신정변 후 미국에서 보낸 편지 안에서도 그는 “그들이 군왕에게 충성하고 국가에 진실할 때에는 내 친구들이었으나 그들은 역적이고 나라에 큰 해를 끼쳤기 때문에 이제는 나의 큰 원수”라고 써서 보냄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유길준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1894년 박영효가 다시 등장했을 때 그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길준이 박영효 세력을 ‘개화의 병신’으로 비판한 부분은 1889년에는 없던 내용으로 6년 뒤인 1895년 출간 당시에 새로 써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유길준은 박영효가 개혁을 주도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개혁관료들의 결집이 절실하던 시절에 치열하게 대립함으로써 결국 모두 몰락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 安은 누구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 安은 누구

    지난해 9월 50%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5% 지지율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 국민 감동 정치 스타로 떠오른 뒤 불과 1년 만에 유력 대선 주자가 된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저서 등을 통해 4·11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지 못해 대선판에 나오게 됐다는 듯한 발언을 해 왔다. 실제 안 후보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으로 상징되는 낡은 기성 정치에 분노한 국민들의 여망과 부름에 따라 정치판으로 이끌려 나왔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정치적 역할이 주어졌다고 소명론을 편다. 그러나 안 후보는 절묘한 타이밍 정치 등 프로 정치인 못지않은 내공과 결단력도 보여 줬다. 안 후보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남보다 한 살 빨리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익혔다. 성적은 중위권이었고,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중학교 때 상위권으로 오르더니 고3 때 이과 1등을 한 뒤에 1980년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노력형 수재다. 고교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도 자기 일을 하는 진중한 스타일이었다. 친화력도 있었다. 노력파로 외유내강형”이라고 회상했다. 동생 상욱씨도 매우 예의 바르고 차분해 집안에 ‘차분함의 DNA’가 있는 것 같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그는 자신의 컴퓨터에 감염된 세계 최초 컴퓨터 바이러스를 분석, ‘백신’이라는 이름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해 명성을 얻었다. V3 최초 버전인 V1이다. 단국대 의대 전임 강사 및 최연소 의예과 학장 등을 하다 의사 가운을 벗고 컴퓨터공학도의 길로 들어섰다. 1995년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 벤처 신화의 상징이 됐다. IT 강국 대한민국 건설에 일조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를 사임한 뒤 KAIST 석좌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학자로 변신했다. 그는 기업가로 나설 때나 교수로 변신할 때, 그리고 정치인으로 변신할 때 늘 1년여의 깊은 고민 끝에 결단했다. 안 후보는 결단 뒤엔 무서운 추진력과 집요함으로 그 분야 최고에 올랐다. 안 후보는 의외로 정치권과 인연이 길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제의했었고, 참여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를 한 적도 있다.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출마 제의 등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지난해 8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사퇴하자 당시 한나라당을 비판하며 정치 바람을 탔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열린세상]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열린세상]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머지않아 다음 달이 되면 언론 매체들은 앞다투어 한글 찬양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영어, 프랑스어와는 달리 한글은 쉽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언어다. 한글 읽기를 깨치는 데는 하루면 족하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며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 마치 도돌이표를 붙이기라도 한 듯 해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물론 한글은 과학적으로 대단히 우수하다. 해외의 저명 언어학자들도 한글의 과학성에 토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과학적이고 편리하다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글은 일본의 ‘가나’(假名)보다 600년, 영어의 원형인 로마 글자(알파벳)보다 무려 2000년 뒤에 ‘발명’된 최신형 글자이기 때문이다. 신형 컴퓨터가 구형 컴퓨터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당연한 일을 찬양하는 건 공허하고 진부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과학성 예찬이 식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과학성’이 뛰어나면 ‘경쟁력’도 우수한 걸까? 일본 교토산업대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대학원 시험 때 지도교수가 그의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줄 정도였고 평생 외국도 못 나가 여권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던 그는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어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가 가능했음을 뜻한다. 과연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글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성취가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글의 콘텐츠가 턱없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스카와 교수가 입증했듯이 일본어로는 그것이 가능하다. 1980년대 VTR 시장에서, 앞선 기술력의 베타(β) 방식이 풍부한 콘텐츠의 VHS 방식에 밀려 도태된 역사적 사실이 떠오른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1930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 문학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하곤 했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에서 차단된 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국운(國運)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질타했다. 그렇다,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도 문제는 결국 ‘번역’이다. 뛰어난 과학성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콘텐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원스럽게 뚫린 8차선 고속도로에 어쩌다 한 대씩 자동차가 달리는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세종이 만든 최고 성능의 도로(한글)에, 우리는 수많은 자동차(콘텐츠)를 채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조상(세종) 자랑, 과학성 타령에 바쁜 나머지 이 시대에 마땅히 할 일을 하지 못한 게으르고 못난 후손이 아닐까? 최신형 고성능 DSLR 카메라(한글)를 들고 거들먹거리면서 근사한 사진 한 장 찍을 줄 모르는 풋내기 사진사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낡아빠진 필름카메라(가나)로 멋진 작품을 뽑아내는 노련한 사진가의 모습이다. ‘번역 왕국’ 일본의 현주소다.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과제는 정부 주도의 번역 사업을 통해 한글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일이다. 한시바삐 정부 내에 ‘번역청’을 설립해야겠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 직후 정부 내에 ‘번역국’을 따로 두고 단기간에 수만 종의 서양 고전들을 번역했다. 그들이 19세기 말에 번역한 서양 고전 가운데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만일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 조상 자랑, 과학성 타령이나 하고 있는 우리의 게으름을 엄히 꾸짖을 것만 같다. 당장 대대적인 번역 사업에 착수하라고 호통칠 것만 같다. 세종이 최고의 문자 한글을 발명했다면, 우리는 그 한글에 최고의 콘텐츠를 채워 후손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역사의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종에겐 세종의 할 일이 있었고, 우리에겐 우리의 할 일이 있다. 이걸 못한다면 우리는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 “‘차칸남자’는 한글 파괴… 표현 자유와 별개”

    “‘차칸남자’는 한글 파괴… 표현 자유와 별개”

    “굳이 소송까지 했냐고요? 한글이 무너져 가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대로(65)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결연해 보였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한글학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KBS 2TV에 방영 중인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의 제목이 한글 파괴에 해당한다며 지난 13일 서울 남부지법에 명칭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1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에 착수했고, 이 대표를 만난 지 하루 만인 18일 KBS는 드라마의 제목을 ‘착한남자’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18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라면서 “이 기회에 우리의 말과 글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초대 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한글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국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장, 한글문화원 고문, 국어단체연합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한글 지키기의 역사가 이 대표에게는 자신의 삶이 남긴 발자취와도 같다. 일제 치하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우리 말을 되살려 낸 것이라 그의 노력은 더욱 값지다. 그런 그에게 ‘차칸남자’와 같은 한글 파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글을 넘어 한글학자와 한글운동가들이 걸어온 길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제작진과 젊은 시청자들이 영화 ‘말아톤’을 예로 들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공영방송이 언어 사용에 있어 지켜야 할 가치가 표현의 자유에 앞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드라마의 제목이 제작지원사 ‘치킨마루’와 비슷한 점을 지적하며 “돈만 내면 한글을 멋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한글에 대한 책임과 자부심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외국어와 외래어의 사용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무감각하게 한글을 파괴하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10년 넘게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도, ‘네티즌’ 대신 ‘누리꾼’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도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에서다. 이 대표는 18일에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한글날의 공휴일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대표의 한글 사랑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한글 운동에 뛰어들던 이 대표는 내처 이택로(李澤魯)라는 한자 이름을 순우리말인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대로, 우리말을 이대로 지키자는 결기로 읽힌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남의 대리시험 때문에 장원급제 날린 사연

    남의 대리시험 때문에 장원급제 날린 사연

    “과거를 이틀 동안 무사히 다 본 후에 선비들이 남을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 있다고 말해 (합격자) 방을 내지 않고 그 과거를 파장(罷場)한 뒤 다시 회시(會試)를 보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시 보는 날을) 8일로 정하였다가 또 16일로 연기했는데 그날에나 반드시 볼지(시험이 치러질지), (이후로) 머물기가 민망합니다.” 조선 숙종 때 경북 예천의 선비 이동표(李東標·1644~1700)가 1677년(숙종 3) 2월 과거 시험을 본 뒤 순천 김씨인 어머니에게 한글로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다른 응시자의 부정 행위로 초시와 회시가 모두 취소되자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해 편지를 쓴 것이다. 비교적 담담한 편지 내용과 달리 이동표는 당시 회시에서 장원급제를 해 놓고도 다른 응시자의 부정 행위로 초시와 회시 합격이 모두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회시는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2차로 치르던 시험이다. 10여명이 부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자 숙종은 대신들과 격론을 벌인 끝에 시험을 취소하는 파방(罷榜)을 결정했다. 이는 숙종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당시 부정 행위자들은 차서(借書·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지 글씨만 대필해 주는 일)와 차술(借述·다른 사람이 응시자의 답안 내용을 작성해 주는 일)로 시험 답안을 조작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어문생활사연구소는 19일 ‘제8회 조선시대 한글 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이동표의 한글 편지를 소개한다. 한중연 이래호 연구원은 “편지에 자신의 감정을 크게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동표가 같은 해(1677년) 8월과 10월에 다시 실시된 초시와 회시에 응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장원 후 불합격 처리된 그때의 충격이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력 있던 선비’였던 이동표는 6년 뒤인 1683년에야 과거에 응시해 향시 2등으로 회시에서 다시 장원급제 했다. 한중연 전경목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이 중요했던 만큼 과거에서 부정 행위가 빈번했고 과거가 취소되는 일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명문대 진학률은 점점 늘고 있는데… 11월 토지임대기간 끝나 市에 반환해야”

    “명문대 진학률은 점점 늘고 있는데… 11월 토지임대기간 끝나 市에 반환해야”

    개교 40년 된 서울의 평생교육시설학교 성지중·고가 위태롭다. 서울시에서 토지를 임대받아 사용하고 있는 강서구 방화동 교정은 오는 11월이면 임대 기간이 끝나 시에 반환해야 한다. 일반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과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른들의 마지막 배움터가 자칫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이 학교 김한태(78) 교장은 “한때 문제아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로 인식돼 주위 시선이 곱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1만 37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해마다 대학 진학률이 50~60%를 넘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권도형군이 서울대에 합격한 것을 비롯해 연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평택시을), 박순자 전 국회의원, 조길형 영등포구청장, 성백진 서울시의회 부의장, 가수 이정현, FT아일랜드의 이홍기, 트로트 가수 배일호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이재영 의원·가수 이홍기 등 이 학교 출신 성지중·고는 1972년 4월 김 교장이 영등포 영중초교 가건물에서 시작한 ‘영등포청소년직업학교’가 모태다. 김 교장은 “당시 영등포역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무작정 상경해 구두닦이, 신문팔이, 껌팔이를 하는 청소년이 많았다.”고 밝혔다. 당시 화물 용달업을 시작한 김 교장은 조수들이 간판 글을 읽지 못하자 한글을 배우면 운전을 배워 물건 배달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주차장에 흑판을 가져다 놓고 한글과 간단한 수학을 가르쳤다.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자 청소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당시 고려대 학생이었던 서울 송곡여고 이상준 교장이 김 교장의 야학을 도왔다. “장마철이면 찢어진 천막 사이로 차가운 빗물이 학생들 머리 위로 세차게 떨어졌지만 배우고자 하는 근로 청소년들의 눈망울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개교 40년 된 평생교육시설학교 이후 강서구 화곡동 교남회관 지하 강당을 빌려 강서청소년직업학교로 교명을 바꿨고 1981년 10월 지금의 강서구 화곡동 본관으로 다시 확장 이전했다. 1986년과 1989년 학력인정학교로 지정돼 일반 학교처럼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고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게 되면서 더욱 발전했다. 학생들을 더 이상 수용할 공간이 없고 건물이 낡자 2009년 4월 방화동의 서울시 시유지를 임대받아 지금의 방화동 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학교의 현재와 미래가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평생교육시설학교는 대부분 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육 당국으로부터 교사 인건비와 시설비 등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로부터 빌려 사용 중인 방화동 캠퍼스의 토지 임대료는 매월 3000만원에 달한다. 그나마 올 11월 23일로 예정된 임대 기간이 끝나면 토지를 반납해야 한다. 김 교장은 “화곡동 본관 건물 재건축 허가를 받았으나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로 120억원의 공사비를 마련하지 못해 착공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면서 “화곡동 본관도 비좁아 방화동 캠퍼스를 서울시에 반납할 경우 신입생 모집을 크게 줄이고 교사의 절반은 어쩔 수 없이 내보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거 영등포 야간 천막학교 시절 배우고자 하는 청소년은 모두 받아들여 가르쳐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며 “본관 증개축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서울시 및 시교육청과 지혜를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美신혼부부 ‘강남스타일’ 완벽 패러디 동영상 인기

    美신혼부부 ‘강남스타일’ 완벽 패러디 동영상 인기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동양인 부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강남스타일’ 패러디 뮤직비디오를 찍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혼부부인 스테파니 응우엔과 제레미 우에노 커플은 결혼 기념으로 유튜브에서 1억5000만 건의 클릭수를 기록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완벽하게 따라했다. 원본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관광버스와 주차장, 길거리 씬 등을 지인들을 동원해 촬영했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이어가는 ‘말춤’도 완벽하게 따라해 눈길을 끌었다. 패러디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한 사람들은 모두 신랑신부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구들이며, 특히 남자 목욕탕 장면을 패러디한 부분에서는 출연자들이 상의를 벗는 등 ‘완벽한 모방’을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신부 역시 친구들과 드레스를 맞춰 입거나 짧은 상의를 입고 댄서를 자청한 친구들과 완벽한 재연에 힘썼고, 신랑은 ‘오빤 강남스타일’ 한글 가사를 따라하는 등의 노력으로 실제 싸이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데 성공했다. 이 패러디 영상을 소개한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강남스타일’ 노래제목이 뜻하는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한편, 한국의 래퍼 싸이와 그의 곡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韓流 열풍] 2002 한·일 월드컵때 첫 상륙… 인터넷·SNS 타고 급속도 확산

    [韓流 열풍] 2002 한·일 월드컵때 첫 상륙… 인터넷·SNS 타고 급속도 확산

    지난 7일(한국시간) 멕시코시티에서 2500여 마니아팬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한국 가수로는 첫 단독 공연을 마친 김준수는 중남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남미의 문화적 요충지로 각광받는 멕시코에 한류가 상륙한 것은 한·일 월드컵 축구가 열린 2002년. 축구를 좋아하는 멕시코인들은 그해 10월 TV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별은 내가슴에’를 관심 있게 지켜봤고 주인공 안재욱은 순식간에 유명인이 됐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관심은 영화와 K팝으로 번져 나갔다. 지난 4월 주멕시코한국문화원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의 한류 스타 팬클럽은 총 76개, 회원수는 5만 5000명에 이른다. ●남미 ‘K팝 열풍’ 왜? 멕시코 등 중남미에서의 한류는 인터넷의 발달로 유튜브 등을 통해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이 콘텐츠를 접하게 되면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멕시코에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교포 임모씨는 “K팝은 2000년도에 그룹 신화 팬클럽에서 시작돼 2005~2006년 동방신기가 K팝 열풍의 도화선이 됐다.”면서 “이후 슈퍼주니어, SS501, 빅뱅 등 K팝 가수의 팬층이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멕시코에 10~20대가 좋아할 만한 아이돌 스타가 없다는 것도 K팝 열풍이 커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다. 카르멘 로페스(25)는 “K팝 가수들의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젊은층 감성에 어필한 것 같다.”면서 “멕시코에는 혼성그룹만 있고 섹시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K팝 가수들은 잘생긴 데다 귀엽고 카리스마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남교 멕시코 한국문화원장은 “K팝은 멕시코 음악과 많이 다르지만, 세련되고 멋있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면서 “지난 8월 K팝 월드 페스티벌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른 참가자가 있을 정도로 한국 음악의 유행에 민감해 문화원에서도 한글 강좌에 이어 이달부터 K팝 가요 교실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멕시코의 유력 민영 방송사인 아스테카의 프로듀서인 알렉스는 “멕시코에서 미국팝이 지배적이지만 K팝은 새로운 시장의 출현이며 미국팝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테크닉의 진보가 눈에 띈다.”면서 “K팝의 경쟁력은 독특한 에너지와 끊임없는 창조성이며 미국 스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친근함과 매번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하는 모습은 K팝이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내다봤다. ●마니아층이지만 결속력 강해 멕시코에서 한류는 아직은 마니아층에 국한돼 있지만 이들은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한류팬들은 멕시코 내 한국 음식점에 모여 K팝을 접하거나 한국 문화원을 방문하고 인터넷을 통해 결속을 다진다. JYJ의 팬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알레한드라 아레사노(19)는 “가입자수는 4000명으로 회원은 13~27살이 많고 1주일에 한번씩 모여 JYJ의 멤버가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문화원 한국어 강좌를 듣는다.”면서 “라디오에서 K팝을 들을 수 없어 유튜브를 통하거나 직수입한 K팝 가수들의 앨범을 듣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남미 현지에서 K팝 관련 콘텐츠의 유통이 부재한 가운데, 일부 한류 팬들은 멕시코 내 전자제품 체인점에서 틀어주는 K팝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K팝을 접하는 경우도 많다. ‘대장금’,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등 한국 드라마는 물론 영화 ‘해운대’ 등 번역된 한국 영상물 DVD가 성행할 정도로 영상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높다. 멕시코의 한 방송 관계자는 “중남미 사람들의 기질이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결속력이 강해 소통이 잘 되는 편이다. 중남미의 한 나라에서 유행되면 삽시간에 전 대륙으로 번지는데 K팝의 인기도 그렇게 급속도로 퍼진 듯하다.”고 분석했다. ●K팝 저변확대 방안 마련해야 그렇다면 이제 불 붙기 시작한 중남미의 K팝을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김준수의 월드투어를 기획한 씨제스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중남미의 K팝 관객 규모가 적고 한 도시에서 한번만 열리는 경우가 많아 위험 부담이 크다.”면서 “마니아층을 넘어 K팝의 저변 확대를 위한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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