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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직 9급-서울시 7·9급 필기시험 마무리 이렇게

    지방직 9급-서울시 7·9급 필기시험 마무리 이렇게

    지난달 9일 치러진 국가직 9급 시험에 이어 다음달 18일에는 서울시를 제외한 부산, 대구, 인천, 경기 등 16개 시도에서 지방직 9급 시험이 일제히 실시된다. 서울시 7·9급 시험은 1주일 뒤인 다음달 25일에 시행된다. 올해 지방직에 응시하는 인원은 1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인사혁신처는 25일 국가직 9급 필기시험 합격자를 확정, 발표했지만 대부분의 공시생은 국가직 9급 필기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지방직 9급에도 응시하기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할 전망이다. 다가오는 지방직 9급 시험과 서울시 7·9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을 위해 박문각, 공단기 등 학원의 도움을 받아 주의사항 및 마무리 학습 전략을 알아봤다. 지난해 지방직 9급 공무원시험 출제경향을 보면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 문제는 대체로 무난했다. 특히 국어 과목에서는 수험생들이 부담스러워하는 한자어 표기 문제도 평이한 수준이었다. 2014년에 비해 문학 문제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반면, 한글 맞춤법 등 어문규정과 최근 추가된 표준어는 출제되지 않았다. 영어도 적절한 내용 및 연결사를 빈칸에 넣는 문제가 강세였으나 난이도는 평이했다. 지난해 지방직 9급 시험 과목 중에서 가장 쉽게 출제된 과목은 한국사였다. 경주 역사유적 지구에 대해 상세히 묻는 문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제가 변별력이 크게 없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지방직 9급 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선택과목인 행정법총론이었다. 기출문제를 벗어난 지문과 세세한 암기를 요하는 조문 문제의 비중이 높았다. 행정조사기본법, 개인정보보호법, 정보공개법 등에서 기존에 출제되지 않던 지문들이 나왔다. 지방직 시험은 기본적으로 국가직 시험과 마찬가지로 인사처가 출제하기 때문에 비슷한 출제 경향을 보인다. 지난해의 경우 지방직 시험이 국가직 시험보다 평이했다. 실제 문제도 국가직보다 지방직 문제가 더 쉽게 출제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국가직 9급 시험에서는 필수과목인 국어, 한국사와 선택과목인 행정학이 많은 수험생을 당혹스럽게 했다. 기출 범위를 벗어난 문제들이 출제된 탓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 유형이라 하더라도, 기출 문제를 정확히 분석했다면 충분히 과목별 80점 이상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학원 강사들의 분석이다. 지난달 국가직 9급 시험에 비춰볼 때 다가오는 지방직 9급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비슷한 유형의 모의고사를 통해 실전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지방직 시험뿐 아니라 국가직, 경찰, 소방, 사회복지, 서울시 등 모든 공무원시험 기출문제를 총망라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반복해 온 학습 패턴과 스케줄을 유지하며 실수를 최소화하는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 또 최근 10년간 출제된 기출문제를 통해 실전 감각을 익혀야 한다. 이번 지방직 9급 시험에서 관건은 필수과목이다. 2013년 시험과목이 개편된 이후 공무원시험 결과를 분석해 볼 때 조정점수가 적용되는 선택과목보다는 원점수가 표기되는 국어, 영어, 한국사 점수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100분 안에 총 5과목, 100문항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난해한 문제가 있을 때는 시간배분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행정법과 행정학은 1분이 넘지 않도록 하되, 표나 그래프 해석이 필요한 사회, 수학 등은 사실상 1분 이상 할애하는 것으로 보고 시간배분을 하도록 해야 한다. 역대 지방직 시험에서 난도가 높았던 과목은 해마다 달랐다. 2011년에는 국어, 2012년에는 한국사, 2013년에는 사회, 2014년에는 국어와 사회, 지난해에는 행정법이 수험생들이 느끼기에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한편 서울시 7·9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은 서울시 시험의 특징을 숙지해야 한다. 서울시 공무원 공채 시험 문제가 공개된 것은 2013년으로 얼마 되지 않았다. 2012년까지 서울시 기출문제는 수험생들의 기억에 의존해 복원됐기 때문에 다소 정확성이 떨어지는 분석이긴 하지만, 지엽적이거나 출제의도를 알기 어려운 문제가 다수였다는 게 중론이다. 다행히 2013년부터 시험문제와 정답이 공개되면서 출제되는 문제 유형들이 보다 명확해졌다. 난도는 2014년부터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7급 국어에서 예상 외의 논점이 출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시험문제를 공개해 온 국가직 시험은 문제유형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아직 서울시 시험의 난이도는 출제 유형과 마찬가지로 고정되지 않았으므로 열린 마음으로 시험에 임해야 한다. 기본서의 내용과 자신이 작성한 서브노트를 통해 중요 이론들을 재점검하는 학습이 필요하다. 한 번씩 눈으로 읽어 가면서 과거에 보았던 내용들을 다시 연상시키는 학습으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목별 기출문제에 익숙해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서울시 9급 공채 시험의 면접은 10월 17~28일 치러지며 최종 합격자 발표는 11월 16일로 예정돼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에 이장우 교수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에 이장우 교수

    전자부품연구원은 이장우(59)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를 제5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신임 이사장은 한글과컴퓨터 이사회 의장, 창조경제연구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문화산업포럼 공동대표, 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돼지우리’ 아이 방은 이제 그만! 장난감 줄여도 잘 놀 수 있어요

    “방이 이게 뭐니! 돼지우리도 아니고!” 거실에서 노는 두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애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방을 치우지 않아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씩씩거리며 장난감을 큰 통에 넣고 “왜 너희가 놀았던 장난감을 아빠가 치워야 하니?”라면서 쏘아붙입니다. “정리 안 한 장난감은 모두 버릴 거야”라는 협박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애들에게 장난감을 많이 사줬습니다. 아이의 지능 발달을 위해 개월 수에 맞는 장난감을 사주려 각종 육아 홈페이지를 뒤지며 공부도 했습니다. 배를 누르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해마 인형과 흔들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동물 세트 등을 해외 직구로 사들였습니다. 3년 전쯤 전에는 독일 아마존에서 아이 키만 한 부엌놀이 세트를 샀다가 아내한테 등짝을 맞은 뒤 상자도 뜯지 않고 다음날 중고로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주로 아이들 책을 많이 삽니다. 두 애가 아직 한글을 다 떼기도 전에 이미 저희 집 책장에는 자연관찰 책을 비롯해 세계명작동화 그림책, 창작동화 이야기책이 빼곡히 꽂혔습니다. 각종 외국어 공부 책을 전집으로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장난감과 책은 결국 저와 제 아내에게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고서 어질러 놓으면 저는 뒤치다꺼리를 하며 짜증을 냈습니다. 장난감만 갖고 놀고 치우지 않는 애들이 얄밉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산 수많은 동화책은 아내가 다른 일로 바빠지면서 먼지가 쌓여갑니다. 같이 책을 읽으며 애들 공부를 시키고자 했는데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일전에 물건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사는 이들을 뜻하는 ‘미니멀리스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일본의 어느 미니멀리스트 가족이 출연했는데 그 집에는 장난감이 아예 없었습니다. 대신 아빠는 딸과 함께 ‘상상놀이’라는 것을 하고 놉니다. 마치 물건이 있는 것처럼 상상하며 노는 방법입니다. 예컨대 “비행기가 날아간다. 슈웅~”이라면서 아빠와 딸은 비행기를 타듯 즐겁게 놀았습니다. 아빠는 “장난감이 없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늘었다”고 했습니다. 그걸 보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쓰지 않는 물건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안 쓰는 물건을 중고로 팔려고 해도 저렴한 가격에 팔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그 물건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해 카메라를 3대 갖고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카메라는 처치 곤란이 됐습니다. 옷장에 있는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근과 잦은 회식으로 배가 나왔지만 예전 날렵했을 무렵 샀던 옷이 옷장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잘 쓰는 2개의 시계 외에 3개가 더 있는데 이 시계는 건전지가 다 닳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많은 물건이 우릴 과연 행복하게 해주는가 고민합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항상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 티셔츠만 입고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는 회색 티셔츠만 입습니다. 매일 옷을 고르고 유행을 좇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쌓여 있는 장난감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한 ‘미니멀 라이프’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장난감을 줄이고 아이와 직접 몸을 부딪히며 노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다짐합니다. gjkim@seoul.co.kr
  • ‘나의 소녀시대’ 왕대륙, 박신혜에 돌직구 고백 “그녀는 나의 첫사랑”

    ‘나의 소녀시대’ 왕대륙, 박신혜에 돌직구 고백 “그녀는 나의 첫사랑”

    ‘나의 소녀시대’로 인기몰이 중인 대만 배우 왕대륙이 박신혜에 대한 호감을 공개적으로 표현해 눈길을 끌고 있다. 23일 왕대륙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라는 글과 함께 박신혜의 사진을 게재했다. 특히 해당 글을 한글로 적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왕대륙은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나의 소녀시대’(감독 프랭키 첸)에 출연한 대만 배우. 지난 12일 정식 개봉한 ‘나의 소녀시대’는 개봉 11일차인 지난 22일 누적관객수 18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대만 영화 최고 흥행 신기록을 경신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러시아권 수십만 한류 팬 이끄는 ‘언니들’

    러시아권 수십만 한류 팬 이끄는 ‘언니들’

    팬 4명 의기투합해 2013년 창간 1회 1000부 판매·사이트 회원 10만 “감정 솔직 한국 문화, 러 인기 끌어” 방탄소년단과 블락비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의 근황과 한국 영화·드라마에 대한 설명, 최신 유행 패션과 요리법 소개까지…. 내용만 보면 우리 10대들이 즐겨볼 만한 하이틴 잡지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기사가 온통 낯선 키릴문자(러시아나 몽골 등에서 쓰이는 글자)로 쓰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발행되는 한류잡지 ‘언니’(ONNI) 얘기다. 이 잡지를 만드는 고를로바 베로니카 니콜라예브나(22·여·우크라이나)와 코토바 폴리나 이고레브나(18·여·러시아)는 “한 권에 200루블(약 3600원)인데 2개월에 한 번 나올 때마다 1000부 정도씩 팔린다”면서 “한류 콘텐츠가 그만큼 러시아권에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잡지를 만든 건 3년 전 일이었다. 니콜라예브나는 “2011년 아이돌 그룹 ‘샤이니’가 커버댄스 페스티벌의 특별공연차 모스크바에 왔는데 역동적 군무가 너무 멋있어 케이팝(한국 가요) 팬이 됐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한류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러시아 사이트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니콜라예브나는 케이팝 마니아인 이고레브나 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젊은이 4명과 2013년 의기투합해 ‘언니’ 첫 권을 펴냈고 한류 정보를 소개하는 사이트인 ‘언니월드’(http://onniworld.com)도 만들었다. 이고레브나는 “케이팝 팬 중 13~25세 여성이 많은데 이들이 모두 자매 같은 관계라고 생각해 잡지 이름을 ‘언니’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나 기업 등으로부터 따로 지원받지는 않고 잡지 판매 수익으로 다시 잡지를 찍어내는 식으로 운영한다. 니콜라예브나는 “아이돌 그룹 블락비, 유키스와 배우 이종석 등은 러시아에 왔을 때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전음악과 발레 등 클래식 문화의 성지인 러시아에서도 한류의 인기는 생각보다 높다. ‘언니’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 수는 모두 10만명이고 회원 가입 없이 사이트에서 글을 읽는 사람까지 합치면 50만명쯤 된다고 한다. 이고레브나는 “한국 사람들은 러시아인처럼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흥이 넘치는데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에 이런 특징이 묻어난다”면서 “이 덕에 러시아에서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케이팝에 반한 러시아 청년층은 우리나라를 더 잘 알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친한파가 된다는 게 두 사람의 설명이다. 모스크바관광대 선후배 사이인 니콜라예브나와 이고레브나는 “한국에서 케이팝이 24시간 흐르는 카페를 문 여는 것이 꿈”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모스크바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지난 17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마지막 위안부 이수단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가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 할머니의 슬픈 사연에는 당시 일본군의 잔학함 뿐 아니라 조선의 악습과 무능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22일 중국 내 최대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은 이 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을 상세히 전했다.  1921년 평양 부근 농촌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살되던 해 남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듬해 남편과 딸이 병으로 잇따라 숨을 거두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진 할머니는 시댁에서 나와 친정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부친은 새로 맞은 첩에게 빠져 조강지처를 내친 상태. 슬펴할 겨를도 없이 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19살때 어머니마저 큰 병에 걸려 급하게 치료비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중국 하얼빈에서 일할 공장 노동자를 모집한다’며 여종업원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다. 이 할머니는 이들의 말만 믿고 선뜻 어머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하얼빈에 따라 나섰다.  하지만 할머니가 간 곳은 공장이 아닌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와 함께 끌려온 여성은 7~8명 정도였으며, 가장 어린 처녀는 13살 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 시집도 안 간 처녀들이어서 이들은 자기가 온 곳이 어디인지 알고는 결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안돼 다시 잡혀와 죽도록 매를 맞길 여러번. 이들은 “누구든 도망칠 생각을 아예 말라”고 윽박지르며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이 할머니는 21살 때 중국과 러시아와 접경지역인 헤이룽장성 둥닝셴(東寧縣)에 있는 일본 관동군 위안소로 옮겨졌다. 당시 이곳에는 13만명의 관동군이 주둔하고 있어 수천명의 위안부가 필요한 상황. 할머니는 이곳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비참한 생활을 했고 함께 간 위안부들이 병과 폭행에 시달려 죽어가는 것을 보며 혼자 가슴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 패망 무렵 이곳에서 사변이 일어나 혼란해진 틈을 타 이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이제 할머니는 어두운 과거를 끝내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에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군에게 버림받았고 남북한 정부도 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할머니도 둥닝셴에 남아 중국인 남성을 만나 다시 결혼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두 번째 남편은 그가 위안부 출신인 것을 불쾌해하며 수시로 모욕하고 때렸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모든 것을 참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려 했지만 강도가 더해가는 폭력에 위안부 출신이라는 비관,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등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치매증세까지 보였다.  80년대 초 헤이룽장성 정부는 할머니를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 양로원에 보냈다. 할머니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강변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회한을 달래곤 했다고. 말년에는 인형을 끔찍히 좋아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두 아기인형에 ‘량량(亮亮)’과 ‘뉴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를 돌봐온 양아들 고지상씨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지 못한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해 왔으며 연세가 많아질수록 인형들을 더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조선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 돼 우리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민족에 대한 정체성만은 확고했다고 한다.  2007년 하얼빈시 조선족 예술관에서 할머니에게 한복을 선물하자 감격이 북받쳐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죽을 때 이 한복을 입혀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평양에 사는 남동생에게 연락이 와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했고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도 모셔가려 했지만 할머니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평양에는 친척이 없고 그저 배다른 남동생만 한 명 있을 뿐이다. 조선말을 잊어버려 남한이나 북한 어딜 가더라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클 것 같다. 이곳(둥닝셴)에선 모두 나에게 잘 대해주니까 죽을 때까지 여기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사연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집’ 원장 혜진(惠眞) 스님이 1998년 이곳에 들러 이 할머니를 포함해 당시 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일 이 할머니는 생전 유언대로 한복을 입은 채 화장돼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중·한우호공원에 안치됐다.  이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고 주심양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미국 록밴드의 한국 사랑? 원리퍼블릭 신곡 뮤비 보니

    미국 록밴드의 한국 사랑? 원리퍼블릭 신곡 뮤비 보니

    한국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 같지만, 미국 록밴드의 신곡 뮤직비디오다. 미국 인기 모던 록밴드 원리퍼블릭(OneRepublic)은 새 싱글 ‘웨어에버 아이 고’(Wherever I Go)의 뮤직비디오를 17일(현지시간) 공개했다.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시작부터 한국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동대문 전경을 배경으로 ‘원리퍼블릭’이라는 큼지막한 한글이 뮤직비디오의 시작을 알린데 이어 ‘Wherever I Go’라는 영문 제목 위에도 ‘어디를 가든’이라는 한글이 붙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무실에는 ‘언제나 청결한 사무실을 유지합시다’, ‘지각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뮤직비디오 중간 중간에는 꼬꼬면과 자갈치 등 한국 기업의 가공 식품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한 여성이 어설픈 발음으로 “저기, 안 내려요?”라는 한국어 대사까지 내뱉는다. ‘웨어에버 아이 고’ 뮤직비디오는 한국계 영화감독 조셉 칸(한국이름 안준희)이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뮤직비디오 주연 역시 미국 드라마 ‘썬즈 오브 아나키’에 출연했던 한국 혼혈 배우 케네스 최가 맡았다. 한편 원리퍼블릭은 지금까지 총 3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2013년 발매한 ‘네이티브(Native)’의 수록곡 ‘카운팅 스타스(Counting Stars)’는 현재까지 국내 음원 차트에 자리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영상=OneRepublic - Wherever I Go (Official Video)/유튜브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세계 시인선 새 출간

    세계 시인선 새 출간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김경주 시인) 1973년 민음사가 첫선을 보인 세계시인선은 시인과 독자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살찌웠다.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고 김현 평론가에게 건넨 제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당시만 해도 해외 문학 책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게 대부분이었다. 박 회장은 “번역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원문과 한글 번역을 나란히 배치해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보자”고 김 평론가를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1973년 12월 고은 시인이 번역한 이백과 두보의 작품집 ‘당시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4권이 탄생했다. 시집들은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서 움튼 민음사가 국내 대표 문학 출판사로 자라나는 양분이 됐다. 19일 창립 50년을 맞은 민음사가 일체의 기념행사 없이 세계시인선만을 새로 펴내기로 한 데는 이런 역사가 있다. 지난해 현암사의 70주년, 지난 2월 창비의 50주년 행사에 견주면 다소 초라하다. 민음사는 “지금의 민음사를 있게 만든 세계시인선 재단장을 통해 더욱 기본에 충실하고 또 한 번의 반 세기를 준비하는 출판사로 기반을 튼튼히 다지겠다”고 밝혔다. 새 시인선의 목표는 100권 출간이다. 1973년 시작 때 세운 계획이지만 당시에는 80권 완간에 그쳤고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다시 펴냈을 때도 63권에 그쳤기 때문이다. 내년에만 50권을 낼 계획이다. 이번에 출간된 1차분 15권 가운데 새로 펴낸 시집은 9권이다. 서양의 대표적 비극 정전인 ‘욥의 노래’, 라틴 문학의 고전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 ‘소박함의 지혜’, 김수영의 ‘꽃잎’, 백석의 ‘사슴’,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 등이다. 소설가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찰스 부코스키, 극작가로만 알려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도 펴내며 그들 안의 시심(詩心)도 느낄 수 있게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50돌 맞은 민음사...재단장한 세계시인선으로 독자 영혼 살찌운다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김경주 시인)  1973년 민음사가 첫선을 보인 세계시인선은 시인과 독자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살찌웠다.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고 김현 평론가에게 건넨 제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당시만 해도 해외 문학 책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게 대부분이었다. 박 회장은 “번역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원문과 한글 번역을 나란히 배치해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보자”고 김 평론가를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1973년 12월 고은 시인이 번역한 이백과 두보의 작품집 ‘당시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4권이 탄생했다. 이 시집들은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서 움튼 민음사가 국내 대표 문학 출판사로 자라나는 양분이 됐다.  19일 창립 50년을 맞은 민음사가 일체의 기념행사 없이 세계시인선만을 새로 펴내기로 한 데는 이런 역사가 있다. 지난해 현암사의 70주년, 지난 2월 창비의 50주년 행사에 견주면 다소 초라하다. 민음사는 “지금의 민음사를 있게 만든 세계시인선 재단장을 통해 더욱 기본에 충실하고 또 한 번의 반 세기를 준비하는 출판사로 기반을 튼튼히 다지겠다”고 밝혔다.  새 시인선의 목표는 100권 출간이다. 1973년 시작 때 세운 계획이지만 당시에는 80권 완간에 그쳤고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다시 펴냈을 때도 63권에 그쳤기 때문이다. 내년에만 50권을 낼 계획이다. 이번에 출간된 1차분 15권 가운데 새로 펴낸 시집은 9권이다. 대표적 비극 정전인 ‘욥의 노래’, 라틴 문학의 고전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 ‘소박함의 지혜’, 김수영의 ‘꽃잎’, 백석의 ‘사슴’,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 등이다. 소설가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찰스 부코스키, 극작가로만 알려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도 펴내며 그들 안의 시심(詩心)도 느낄 수 있게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번역을 할수록 내 글이 건강해졌다… 18년 만에 나의 소설을 쓰려 한다 충북 증평군 내성리에 자리한 ‘21세기 문학관’에 도착한 것은 지난 10일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였다. 하늘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을 한 그가 녹색 철문 뒤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18년 만에 재개한 소설 창작을 위해 얼마 전 제주도 집을 떠나온 그는 이곳을 ‘자발적 유배지’라고 불렀다. 점심 겸 해서 낮술 잔을 기울였다. 적당히 술기운이 올랐지만, 그의 유장한 말투는 빨라지지 않았고 간결한 문장들은 장황해지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멈추는 때가 잦았는데 적확한 단어나 표현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기자 양반이나 나나 즐겁게 술 마실 만큼만 건강하게 살면 되는 거요.” 김석희(64)는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1979년 3월 어느 날 한참을 못 보고 지냈던 친구가 찾아왔다. 국사학과에 다니던 이종범이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됐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갑자기 어쩐 일일까.’ 전공은 달랐지만, 중간에 연결고리가 되는 친구들 덕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학교에서 잘리고 나서 작은 출판사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내가 불문과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김석희가 프랑스책 최고로 잘 읽는다고 하더라.” 다짜고짜 프랑스 고전을 하나 골라서 번역을 해 달라고 했다. “명색이 출판사이니 책을 좀 내야 하는데,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자니 번역료 줄 능력이 안 된다. 너한테는 술 한잔 사주면 되지?” 황당했지만, 학교에서 잘리고 뭐라도 해 보겠다는 그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안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곰곰 생각하다가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를 번역해 주었다. 나는 불어를 말하고 듣는 것에는 약했지만, 독해와 번역에 나름 강점이 있었다. 번역료는 정말 술 한잔이었다. 1980년 이종범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서 출판사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책도 절판이 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참, 이종범은 현재 조선대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번역한 작품은 1982년 6개월 동안 작업한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1981년 메릴 스트립과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동명 영화가 개봉되면서 갑자기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책은 1997년과 2002년에 다시 번역을 했는데, 내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게 된 첫 작품이 됐다. -1952년 제주시 무근성(삼도2동)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경제사정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 소년에게 사방에 둘러쳐진 바다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갑갑함이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재수를 위해 서울로 와서 육십을 바라보는 2009년 4월에 다시 고향에 정착했다. 40년의 타향살이 끝에 그 바다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나는 변덕을 부렸지만, 바다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듬어준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 가르쳐 주신 서예로 초등학교 때 웬만한 상들은 휩쓸었는데, 나한테 약간의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졸업 무렵에 알게 됐다. 제주일고 입학을 앞두고 도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문예작품 공모전에 산문을 출품했다.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장원을 차지했다. 이 일로 입학을 하자마자 3학년 형들에 의해 반강제로 ‘향원’이라는 문학서클에 들게 됐다. 2학년 때는 동국대 문예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제주도립도서관은 제2의 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뮈의 ‘이방인’을 이곳에서 읽었다. 모두 살인자인 두 책의 주인공이 꿈속에 뒤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큰 바다를 누비며 글을 쓰는 ‘마도로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국립해양대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6·25 때 서울 영등포에서 납북된 숙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있어 입학이 불허됐다. ‘마도로스 소설가’의 꿈은 그냥 ‘소설가’로 수정됐다. -1972년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갔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다. 어떤 친구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갔고, 어떤 친구들은 술집으로 가 통음을 했다. 어떤 친구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내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발산하기 위해 내가 택한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쓰듯 글만 썼다. -수업에 들어간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붕구(1922~1991) 교수님의 수업은 늘 감동 그 자체였다. 보들레르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 직접 한시를 써서 읊으시다가 그걸 서양의 역사와 철학으로 이끌고 가셨다. 그러다가는 동양 인문학의 심오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셨는데,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처음의 보들레르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넓고 깊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울림 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79년 2월 졸업과 동시에 국문과에 학사편입을 했다. 소설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문학을 좀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등단을 향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됐고, 그 과정은 1987년 12월 26일에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세상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담은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당선되고 나서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이다. 당시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1시간에 걸쳐 그와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또렷하다. 그날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한겨울 골목길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상한 책만 번역한 줄 안다. 하지만, 내 손을 거친 책들 중에는 일본 잡지의 부록과 같은 것들도 상당수 있다. 번역은 그 자체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사영어사 출판부에 다니던 친구가 맡겨 준 연애소설 ‘할리퀸문고’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한 달에 한 권씩 15개월을 번역했는데,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외국말을 입으로 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눈으로 읽는 능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불어야 전공이니까 자연히 접할 기회가 많았고 영어는 틈틈이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 실력을 키웠다. 일본어는 학사편입한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연구를 위해 일본 문헌을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독학을 했다. -1979년 학사편입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7년까지의 시간들은 이제 와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탈락에 마음엔 칼바람이 불었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제주의 어르신들은 나를 ‘백수’로 생각했다. “백날 써 봐야 안되는 소설, 그만 좀 하고 다른 일 찾아봐라. 서울대를, 그것도 과를 2개(불문과, 국문과)씩이나 나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다. ‘아버지의 감귤밭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을까,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촌형을 찾아갈까.’ 고민은 계속됐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가 되지 않았다. 안되면 안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한 번역은 계속해야 했다. 번역한 책에는 ‘김한경’이라는 필명을 썼다. 나와 아내, 아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땄다. 내 본명은 내 최초의 소설의 표지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1987년 재일교포 작가인 김석범의 ‘화산도’를 번역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5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이호철 대표가 “6월 항쟁을 계기로 4·3 사건을 다룬 책도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테니 미리 준비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 제5권은 이 대표가 번역을 했고 내게는 1권부터 4권까지 번역을 맡겼다. 일본어를 번역하며 곳곳에 제주 사투리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제주 출신 번역가가 필요했다. 제주 출신인 내가 4·3 사건 관련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김한경’이 아닌 ‘김석희’를 역자 이름으로 썼다. 이 일을 계기로 번역료가 크게 올라갔다. 그다음 맡은 일은 2년 6개월에 걸친 영국 브리태니커 사전 한국판 번역이었다. 매월 200자 원고지 1000장씩을 넘겼다. 아내의 가계부에 단비가 내렸다. -1994년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두꺼운 책 3권을 들고 번역가 정도영·오정환 선생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책들을 읽어보고 번역해 출판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책의 지은이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였다. 정도영 선생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오정환 선생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당시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 제3권(나중에 총 15권으로 완결)까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세 명 중 가장 젊은 내가 맡았다. 2주 정도의 검토 끝에 우리 모두 ‘OK’ 사인을 냈다. 그때부터 2009년까지 12년에 걸쳐 번역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귀납적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제1권 전체를 할애해 ‘국가 크기도, 문화도, 경제도 1위가 아닌 로마가 어떻게 패권(覇權)을 쥐었는지 궁금해 이 책을 쓴다’는 의문을 던지는 게 특별해 보였다. 투박하지만 힘 있는 문체도 흥미를 끌었다. 책은 번역 출간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고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내가 저들만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거장들의 작품과는 차이가 많은데, 이걸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나.” 힘들게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10여년이 흐른 1998년, 내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큰 선택을 했다. 그해 가을 중편 소설을 하나 냈는데 불현듯 소설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안되는 걸 들고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다. ‘나를 애먹이지 말자’고 했다. 소설을 중단했다. -2011년엔 ‘모비딕’을 출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번역이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정규 대학교육 없이 선원으로 살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단정하게 완성된 문장이 아니었고, 단축형 비문이 많았다. 간혹 셰익스피어를 따라하는 도치문은 번역으로 그 느낌을 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번역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단어도 이유 없이 배열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대학 은사인 이휘영(1919~1986년) 교수님을 존경한다. 그는 1960년대에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홍수’를 번역했다. 독해가 번역의 초벌작업이라면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휘력과 문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신 분이다. -나는 ‘888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번역한다. 일은 주로 밤에 한다. 아직 번역하고 싶은 책들이 많다. 특히 판타지의 고전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해리 포터’를 어린이들이 먼저 즐기게 됐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의 세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심오하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다섯 살 손자를 위한 번역에도 욕심이 난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1998년 절필했던 소설 창작이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잡은 소설이다. 수많은 번역의 경험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많은 책을 번역하면서 내 글도 건강해졌다. 그저 예쁘게 다듬기만 한 미문,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젊은 날 나의 명함에는 ‘소설가·번역가’가 동시에 적혀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픈 열망이었다. 정작 등단한 후 소설을 접고는 ‘번역가·소설가’라고 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시 앞에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번역가 김석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통한다. 영어와 불어, 일어로 된 해외 작가들의 소설을 한글로 재탄생시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쥘 베른 걸작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번역을 ‘장미 가시덤불에서 춤추는 것과 같은 고통 속의 쾌락’이라고 표현한다.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 18년 만에 자신의 소설 창작을 재개했다. ▲1952년 제주 제주시 출생 ▲제주제일중·고 ▲서울대 불문과·국문과 ,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 ‘이상의 날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1997년) ●주요 작품 ‘화산도’(김석범) ‘아돌프’(뱅자맹 콩스탕) ‘여자란 무엇인가’(비올라 클라인)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에펠 탑의 검은 고양이’(아라이 만) ‘즉흥시인’(안데르센) ‘시간 박물관’(움베르토 에코 외) ‘인물 삼국지’(이나미 리쓰코) ‘빙벽’(이노우에 야스시) ‘칸의 제국’( 조너선 스펜스) ‘죽음을 삼킨 땅’(조르제 아마두)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스)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문명 속의 불안’(지그문트 프로이트) ‘살아 있는 역사’(힐러리 로댐 클린턴) ‘모비 딕’(허먼 멜빌)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황학동 벼룩시장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황학동 벼룩시장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다. 실은 이 문구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테오도르 로스케(Theodore Roethke.1908~1963)’의 시구다. 꽃할배 열풍이 불기 전에도 그 곳에는 ‘늙음’이 있었다. 모름지기 벼룩시장을 말하고자 한다. '황학동 벼룩시장(Flea Market)'이다. ● 황학동 벼룩시장 1장 1절 - 가라사대 태초에 골동품이 있어라. 일요일 아침이 적당하다. 지하철 6호선 신당역 11번 출구로 나와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 뒤쪽 골목으로 돌면 1970년대 서울 뒷골목이 영화 세트장처럼 펼쳐진다. 실제 황학동 벼룩시장이라고 하면, 황학동 주방거리 옆 골목만을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동묘(東廟) 옆 구제시장과 신설동역 9번 출구앞 서울 풍물시장을 통칭해서 이 세 곳을 그냥 ‘벼룩시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땅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편하다. 숭신초등학교와 동묘,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와 신설동역 9번 출구. 수많은 골목을 돌고 돌다 보면 제각각 까닭을 숨긴 물건들의 사연들이, 지나는 걸음마다, 발끝 마디마디 채인다. 그러다 보면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어느새 쪼그리고 앉아 그 사연을 어루만진다. 감정이입이다. 물건만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이보다 더한 곡절이 있다. 우선 황학동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원래 조선시대 성저십리(城底十里)의 취락지구였던 이곳에 황학(黃鶴)이 자주 날아왔다 해서 황학동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선시대 후반기, 즉 18세기 이후 뚝섬과 왕십리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이 곳에 시장이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황학동이라는 이름은 1911년 일본 총독부에 의해 경성부 두모면 황학동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6.25 동란 이후, 점유주가 불분명한 청계천변에 거주하던 피난민을 중심으로 미군 군수물자와 전쟁 통에 흘러들어오는 각종 내력 가득한 골동품들을 취급하는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의 시장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때는, 1983년 6월 장안평에 고 미술품 집단상가가 조성되면서였다. 많은 점포들이 그곳으로 옮겨감에 따라 청계천을 중심으로 하나, 둘 자연스럽게 외지 상인들이 모여 들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된다. 뜬금없이 2004년 초 동대문축구장으로 축구선수들 모으듯이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이라는 축구팀 같은 노점상 모임이 결성(?)된다. 그 후, 또 다시 노점상들은 ‘이적(?)’이 되는 데, 현재의 동대문구 신설동(옛 숭인여중 부지)에 서울풍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노점 894개소를 2008년 4월 26일개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 가게에 입주하지 않은 수많은 원래의 벼룩시장의 상인들과 비디오테이프 영상물 판매 노점상들이 영도교를 건너게 된다. 원래부터 가게가 삼삼 오오 모여 있던 동묘와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 주변에 터를 다시금 다지기 시작했다. 바로 현재 점포수 1000여개에 달하는 거대한 벼룩시장 지구가 형성되게 된 까닭이다. 취급하는 상품은 골동품을 비롯, 의류, 중고가구, 가전제품, 시계, 보석, 피아노, 카메라및 각종 기계, 공구류 및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한 때 명칭도 불분명해서 황학동 중고품시장, 만물시장, 벼룩시장 또는 도깨비시장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퉁'치게 되었다. 덧붙여 황학동 벼룩시장의 면적을 살펴보면 약 37,000㎡(약 1만 1000평)이며, 동서방향이 150m 정도 되고, 남북방향이 250m 정도 되는 얼추 정사각형의 정방형 모양을 하고 있다. 서쪽으로흥인동, 동쪽으로 왕십리, 남쪽으로 신당동, 그리고 청계천로 맞은편 북쪽으로는 종로구 숭인동과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4대문의동쪽 관문인 흥인지문 (동대문)과는 직선거리로 약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지리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아주 훌륭한 셈이다. ● 골동품NO, 빈티지YES! ? 그러나… ‘동묘 스타일’이라고 해서 2013년 방송인 지드래곤과 정형돈이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개그맨 김숙, 윤정수마저 방송에 소개한 뒤로 지금 황학동 벼룩시장은 꽃할배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이태원이나 홍대의 젊은 벼룩시장과는 사뭇 풍광이 다르다, 아니 다르시다. 그만큼 세월의 손길이 물건 켠켠마다 묻어 있는 늙은 곳이다. 이곳에서 1980년대 물건들은 거의 신제품 코너에 앉아 있다. 적어도 6.25동란 때 사이렌소리 한 번은 들은 흔적이 묻어 있어야 좌판 앞줄에 앉을 수가 있다. 그러하니 내공이 튼튼 탄탄하다 못해 눈물겹다. 모든 물건들이 연대기순으로 다 그러하다. 제각각 비밀스러운 전 주인의 사연 하나는 덤으로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1000원짜리 구제옷으로 보푸라기 가득한 늙은 옷이었지만, 한때는 백화점 쇼윈도우 앞줄에 앉아 먼지 한 톨 떨어질 틈 없이 보살핌 받던 ‘패션’들이 동묘 구제시장 골목마다 줄줄이 걸려 있다. 옷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 그러하다. 저마다 'made in 옛날'이다. 이빨 하나는 빠져 삐그덕거리는 맛이 있어줘야 이 골목에서는 대접받는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늙는다는 것이, 늙어간다는 것이, 늙었다는 것이 큰 불편이 되지 않는 거리이다. 항상 시뻘건 애나멜 네오사인톤으로 번쩍이는 서울 도심이 이 골목에서는 전부 파스텔톤으로 채색된다. 모든 것이 희미하다. 희미해서 물건의 모서리마다 모지라져 둥글둥글하다. 세월이 만든 넉넉함처럼 마음도, 물건도, 다 둥글어진다. 바로 일요일 아침 황학동, 신설동, 동묘 주변의 광경이다. 벼룩시장 입구를 돌면 만날 수 있는 시계 골목, 우선 놀라고 본다. 왜냐하면, 진품 롤렉스와 피아제가 조촐한 유리 상자 안에 있다. 분명 정품이다. 순간, 만만히 보았던 이 거리가 실상은 가벼운 만 원짜리 몇 장으로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빈티지이다. '썩어도 롤렉스'다. 가격이 210만원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서울 풍물시장에 접어들면 에디슨이 만들었다고 끝끝내 우기면 믿을 듯한 나팔꽃 축음기, 지금은 상표명도 가물한 골드스타 흑백TV, 10원짜리 동전을 한 손 가득 쥔 채 연인과 밀어 실어 나르던 그 시절의 공중전화기, 공병우 선생이 만들었다 자부심 가득한 세벌식 한글 타자기가 오가는 손님의 손길을 잡아챈다. 한 때는 박수 무당들 손에 쥐어져 생사업보를 달래주던 방울칼, 유통기한 겨우(?) 석 달 밖에 지나지 않은 허쉬 초콜렛, 1986년 아시안게임 임춘애 금메달 획득 기념 삼성 Kappa 시계 등등 그 면면들 역시 화려하고 무궁하고 애잔하다. 비록 지금은 만원짜리 중국산 효도 라디오 뒷전으로 자리 밀려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모 있어 이렇듯 인력사무소 봉고 기다리듯이 동묘 주변 한 자리 차지함도 대견하다. 인생사도 매 한 가지. 늙음은 이야기를 지니어 간다는 것이다. 슬픈 일은 아니다. 갖은 사연 제각각 숨긴 골동품,구제옷,전자제품 들이 골목마다 그득그득하다. 아마도 물건들이 품은 내력을 다 글자로 적자면 원고지 높이가 에베레스트는 고작 발목 언저리에서 발돋움할지 모른다. 원고지 길이 지구 600바퀴를 돌아야 할 듯하다.진짜다. 황학동 벼룩시장(Flea Market)은 인생이다. 나이든 삶이다. 그리고 생의 지혜다. 누구든 골목 골목 발길 내딛을 때마다 몸속으로 잊었던 예전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그 시간을 따라가다보면 골목은 늘 앞으로만 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에서 샛길로 빠지는 맛도 있음을 가르쳐 준다. 사잇길로 빠져도 다시 큰 길과 합쳐지는, 사잇길에도 삶은 건강히 자리잡고 있다. 산다는 것이란 그런 것이다. 어영차 다시 새로운 길로 나선다. 길거리 한 구석 홍동백서 따르듯 자리잡은 옛 물건들 바라보면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고작 한 두 해 전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간들이 우스운 듯, 황학동이 뿜는 시간은 늙음이 젊음보다 활기차다. 황학동의 학은 흰 색이 아니라 누런 색이 맞다. 백학동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황학동은 이름도 시간을 따라 석양녘으로 누렇게 물든다.어울린다. <황학동 벼룩시장에 대한 여행 20문답> -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2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한 번은! 서울의 대표적인 벼룩시장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기 때문에 동선을 미리 생각하고 가자. 2. 누구와 함께 가면 좋을까요? - 나이가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정말 좋다. 20세미만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나이에 비례하여 여행 재미가 있다. 연인들도 좋다. 삶에 지친 직장인들도 주말에 휘휘 길 거닐며 콧바람 불어 넣길 강추함! 3. 교통편은 어때요? - 대단히 편리하다. - (황학동 벼룩시장) 지하철 6호선 신당역 11번 출입구.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가 오른편에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 뒤쪽 골목이다. 142, 163, 2013번 버스 이용 성동공업고등학교 하차. - (동묘구제시장)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에서 내려 3번 출구. - (서울풍물시장) 지하철은 신설동역 1호선 6 번출구, 신설동역 2호선 9번, 10번 출구에서 100m이내 / 버스는 하정로 : 303,370,721,2112, 2219,2221,2230,9403 청계천로 : 2230,300,2013 4.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요 ? - 서울풍물시장 정문 공영주차장 이용 가능 / 이용료 : 10분에 300원 / ※ 서울풍물시장 방문 확인 시 1시간30분 면제. 물론 시장 인근이기 때문에 주차시설이 불편하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낫다. 5.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어때요? - 유명할만하다. 그러나 세련된 도심이나 수려한 자연 풍광이 주는 감동으로 만든 유명세는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자연스레 생긴 입소문이다. 6. 직원이나 주변 상인들의 여행객 응대 수준은 어떤가요? - 40년 노점 흥정의 관록을 지닌 상인들. 섣부르게 가격을 깎으려다가 핀잔 맞기 일쑤이다. 주인 동의없이 사진 함부로 찍다가 평생을 넘어 내세까지 얻어먹을 욕은 다 먹게 된다. 그러했다. 7. 여행지가 지니고 있는 전문성은 어떠한가요?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하나요? 조심할 것이 있나요? - 그냥 시장이다. 굳이 공부를 하고 갈 필요는 없이 시간만 넉넉히 가지고 가면 된다. 소매치기 관련 사건은 꾸준히 있으니 참고할 것! 8. 전체 여행 경비는? - 대개는 현금 거래를 하니 만원짜리와 천원짜리를 넉넉히 가져가면 좋다. 충동 구매를 하는 것도 괜찮다. 이런 맛의 거리이다. 9. 가장 감탄하는 점은 어떤 것인가요? - 생각보다 훨씬 벼룩시장이 크다는 사실. 동묘에서 황학동까지 일요일은 별천지가 열린다. 주머니가 얇은 자취생이나 학생, 알뜰한 신혼부부, 패션 아방가르드를 꿈꾸는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 특색있는 가게를 꾸미려는 카페 창업자에게는 보물 창고이다. 시간이 훌쩍 지난다. 10. 아쉬운 점이 있다면? - 구획정리가 좀 되면 좋을 듯. 벼룩시장의 범주에 넣지 않아야 할 업종(?)들이 있어서 단속이 필요함. 11. 운영진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 주차단속, 구획정리,동선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필요합니다. 12. 홈페이지 주소는? - 서울 풍물 시장 http://pungmul.seoul.go.kr/ 13.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체험활동은? - 수입식품코너. 가격이 정말 저렴하다. 14. 여행을 비추하고픈 사람과 이유는? - 지저분한 거리 자체를 싫어하는 몇몇 마나님들. 생활의 냄새가 너무 강한 곳이다. 15. 먹거리 정보와 식당 정보는? - 애당초에 맛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곳으로 승부를 거는 동네다. 시장 특유 주전부리, 국수 등 가벼운 먹거리는 괜찮다. 굳이 맛집을 찾으라면 늦은 시각 황학동 포장마차의 곱창을 추천하다. 가장 황학동다운 음식이자 마장동 바로 옆동네여서 곱창의 맛도 서울 내에서도 훌륭한 편에 속한다. 혹여 낮술로 인해 불콰해지더라도 흉이 되지 않는 곳이다. 16. 어떤 코스를 도는 것이 좋을까요? 추천코스는? - 동묘 구제시장→서울 풍물시장→황학동 벼룩시장 17. 도움되는 사이트? - 청계천의 옛 풍경이 가득 있다. 감동적이다. http://blog.naver.com/ohyh45/220650436712 18. 서울에 다른 벼룩시장도 있나요? - 규모면에서는 황학동이 압도적이지만, 젊은 감각은 아니다. 아래 벼룩시장도 적극 추천한다. - http://www.flea1004.com/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 - http://www.seocho.go.kr/site/fm/index.jsp 서초토요벼룩시장 - http://www.freemarket.or.kr/ 홍대 프리 마켓 - http://mapotourism.blog.me/220081215182 마포희망시장 - http://dailyprojectsseoul.blogspot.com/search/label/Sunday%20Flea%20Market 선데이프리마켓 19. 숙소정보는? - 서울 도심 여행이어서 지하철 연결되는 곳은 어디든지. 20. 총평 및 당부사항 - 황학동 벼룩시장은 분명 프랑스의 “생투앙 벼룩시장”, 영국의 “포토벨로 마켓”, 뉴욕의 "브루클린 벼룩시장"처럼 한 도시의 관광명소가 되기에는 무언가의 불편함은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다. 남대문이나 인사동과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훌륭한 조각상과 한국의 대표적인 하회탈 옆에는 의류수거함에서 갓 꺼내온 옷 뭉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도 하다. 분명히 벼룩시장의 상품이 아니라 물건더미인 것이다. 어느 정도의 구획정리와 경계가 이루어 진다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경제 브리핑] 신한, 국내 첫 최우수 혁신은행

    신한은행이 국내 은행 최초로 글로벌파이낸스지가 주관하는 ‘2016년 외국환부문 대한민국 최우수 혁신은행’에 선정됐다고 16일 밝혔다. 신한은행은 지난해부터 선보이고 있는 모바일 전문은행 써니뱅크의 ‘스피드업 누구나 환전서비스’, 10개 외국 통화로 충전이 가능한 ‘신한글로벌멀티카드’ 등 외국환 부문에서 차별성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 [기고] 국회 디지털 증거 논의 환영한다/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고] 국회 디지털 증거 논의 환영한다/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간고사 시즌이 끝났다. 중간고사라고 하면 교수들도 아주 편하지는 않다. 특히 시험감독 들어가 있는 두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그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한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문제지는 워드프로세서로 쳐서 인쇄하면서 답안지는 예나 지금이나 볼펜으로 종이에 써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단 한 페이지도 손글씨를 쓴 적이 없다. 손글씨는 서명할 때나 급히 메모를 할 때, 서류 양식에 이름과 주소를 적을 때만 썼다. 그런데도 거의 매일 글씨는 썼는데, 손글씨 대신 컴퓨터를 이용해 이른바 ‘전자문서’를 생산한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범죄자들도 손글씨보다는 전자문서를 더 많이 생산한다. 이메일을 주고받고, 한글 파일을 만든다. 물론 범죄의 특성상 손글씨가 아예 빠질 수는 없다. 가령 휴지나 메모지에 급히 적은 글씨 등도 남아 있기는 할 것이다. 재판을 하면 모든 것들이 다 증거로 올라온다. 전자문서도 있고, 손글씨도 있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무슨 ‘진술’이 오갔나 확인한다. 뇌물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지, 마약을 사고판 적이 있는지, 성매매를 한 적이 있는지 등등. 범죄 혐의를 밝히는 데 다 요긴하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도 그렇고 프랑스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만 아주 특별한 게 하나 있다. 전자문서든 손글씨든 직접 쓴 사람이 나와서 ‘그건 제가 쓴 게 맞습니다’라고 법정에서 확인을 해 주어야 그 문서가 비로소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필체의 동일성을 필적 감정사가 확인해 주어도 결론은 같다. 작성자가 자기가 쓴 게 맞다고 인정해야만 된다. 전자문서도 그렇다. 헤더 정보, 로그 기록, 액세스 및 수정 기록, MAC 주소, IP 추적, 파일속성 정보 분석 등 다양한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통해 해당 파일 작성자, 파일 위·변작 여부를 다 확인했어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 전자문서의 작성자가 나와서 ‘제가 입력한 게 맞네요’라고 해야만 증거가 된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피고인이든 누구든 자신의 문서를 부정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313조 때문이다. 그 조문에 따르면 작성자가 ‘성립의 진정’, 다시 말해 자신이 작성한 것이 맞다는 점을 인정해야 증거가 된다. 현재 국회에서 이 조문의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늦기는 했지만 지극히 올바른 방향이다. 그 사람 필체가 맞는지 철저하게 확인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일단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무턱대고 자기 문서를 부정하는 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된다. 문명국 어디에도 그런 증거법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이번 중간고사에서도 누군가에게는 C학점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C를 맞은 학생이 ‘자필’ 답안지를 가져와서 ‘이건 제가 쓴 게 아닙니다’라고 하면 C를 줘서는 안 되는 것일까. 어떤 학생의 컴퓨터에서 작성됐다는 점이 모든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입증됐는데 ‘이건 제가 입력한 게 아닙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줄 알고 넘어가야 하는가. 우리 증거법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인 1954년에 제정된 형사소송법 제313조의 문제다. 이제는 진짜로 고칠 때가 됐다.
  • “애국가도 1호 안돼” 상징성 논란 우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기존대로 유지하기로 한 데 대해 정부 관계자는 16일 “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라 지방의회 등 여러 단체에서 건의를 숱하게 받는 데다, 업무 관계상 두루 부처와 관련됐기 때문에 문의를 많이 받지만 어떤 행사에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를 다루는 규정을 관리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적인 의전을 총괄하는 행자부 관계자도 “지금까지 관례상 부르던 곡들을 따르고 있을 뿐이지, 지정하는 절차를 밟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기 어렵다는 보훈처의 입장 재확인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3·1절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5대 국경일, 46개 정부기념일, 30개 개별 법률에 규정된 기념일에 정부에서 기념곡을 지정한 전례를 찾을 수 없고 애국가도 국가 기념곡으로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할 경우 ‘국가 기념곡 제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원래 창작 땐 ‘님을 위한…’이었다가 최근 맞춤법 규정에 따라 바뀌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칼칼한 3 쿠션 지배자… 슴슴한 매력 만둣국男

    칼칼한 3 쿠션 지배자… 슴슴한 매력 만둣국男

    당구붐을 일으키는 데 필요하다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달려오는 ‘친구’, 세계 랭킹 1위지만 소박한 펜션에 묵어도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이모” “형님” 소리를 뉘앙스까지 살려 늘어놓는다. 우리말로 숫자를 끝도 없이 셀 수 있으며 손전화에 한글 자판을 깔아 놓을 정도로 열심이고 만둣국에 생선회까지 우리 음식을 가리지도 않는다. 제주도를 왜 이제야 찾았는지 모르겠다고 자책하며 섭지코지를 대단한 명소로 손꼽았다. 1. “이모! 형님” 한국 사람 다 됐네… 15번쯤 먹어본 만둣국이 최고 지난달 28일 입국해 서울은 물론 부산과 천안, 인천 등 당구클럽을 돌며 동호인들과 만나고 제주에서의 일주일 휴가까지 알뜰히 즐긴 ‘스리쿠션 황제’ 토브욘 블롬달(54·스웨덴)을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만둣국집에서 만났다. 한국 방문만 20회를 넘겨 정확한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는 그는 15차례 정도 먹어 본 만둣국 중에서 가장 소금기 없이 슴슴한 만둣국이었다며 배시시 웃었다. 3주 가까이,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소감부터 묻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당구 선수로 활동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 그렇다고 했다. 23년째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처 바크낭에서 거주하며 매년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해외 투어를 다니느라 안 다녀 본 나라가 거의 없는 그가 어떻게 이렇게 한국 사랑에 빠져들게 됐을까. 2. 서울 부산 천안 찍고, 제주까지… 한국 팬 사랑 고스란히 느껴져 한국의 당구 동호인들이 자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가 온전히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팬을 떠올려 보라니까 잠시 머뭇거리더니 지난 8일 KIA와 넥센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고척스카이돔을 찾았을 때 중계사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집에서 중계를 본 팬이 한달음에 달려와 사인해 달라고 한 일을 떠올리며 흔감해했다. 제주에서는 버스로 이동하는 블롬달 일행을 뒤늦게 알아보고 승용차로 10㎞나 추격전을 벌여 사인을 받아 간 이도 있었다. 이날 기자와 만나기 전 들른 커피숍에서 인사를 나눴다는 한 팬은 뒤늦게 종이를 구해 만둣국집으로 찾아와 사인을 받고 사진 촬영까지 함께 했다. 아버지 레나드 블롬달(77)이 당구 선수로 활동하며 클럽을 운영한 덕에 열한 살 때부터 당구를 시작해 열여덟 살이던 1983년 프로로 데뷔, 1988년부터 30년 가까이 최정상급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프레드리크 쿠드롱(벨기에)과 함께 4대 천왕으로 통하고 있지만 경륜이나 인품으로나 가히 이들보다 한 길 위라는 평가다. 80살인 지금도 가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레이몽 클루망(벨기에)을 대체하는, 1인자의 지위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3. 30년 군림… 기량 껶였다지만 연륜 따라 경기 운영 무르익어 2000년대 들어 예전 같지 않다는 평을 들었지만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왔다. 블롬달은 “나이가 들면서 타점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시력도 떨어지지만 당구는 경기 운영의 묘미를 살려 극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운동 중 하나”라면서 “한편으로는 4년 전 큐대를 바꾸면서 스쿼트를 없앨 수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공을 돌렸다. 스쿼트란 빠른 스트로크로 공에 회전을 걸었을 때 회전 반대 방향으로 공이 밀려 들어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게 없어진다는 건 그만큼 플레이어의 의도대로 공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7년 정도 블롬달과 가까이 지내며 초청 이벤트를 주관한 당구 전문 인터넷방송 코줌코리아의 오성규(44) 대표는 공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기가 당구라고 단언했다. 블롬달 같은 최정상급 선수는 지름 61.5㎜의 공을 32개의 ‘두께’로 세분해 공을 노려 칠 수 있다. 젊었을 때 힘으로 스트로크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약간 구부러진 것 같다고 떠 보자 “하프마라톤으로 체력을 키우고 있다. 아무래도 힘은 떨어지지만 당구는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슬기롭게 극복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 중 하나”라고 답했다. 일본 NHK배를 제패하던 1987년 애버리지가 1.5였는데 지금은 1.85~1.89다. 골프로 치면 5오버파를 치던 이가 5언더파를 치는 상황으로, 그만큼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말하면서도 지존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4. 유럽인은 즐기는 게 목적이나 한국인은 목표 명확하고 분석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당구 인구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PC방이 문을 닫는 대신 당구장이 곳곳에 문을 열고 있다. 이런 변화를 체감하는지 물었다. 블롬달은 “물론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벨기에에서도 붐이 다시 일고 있고 스페인과 터키, 콜롬비아와 멕시코, 베트남에서도 많은 당구클럽과 동호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과 한국의 차이를 꼽아 달라고 하자 “유럽인들은 그저 즐기는 반면 한국인들은 누구처럼 되겠다는 목표를 뚜렷이 갖고 분석하고 토론하는 것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5. 강동궁·조재호 ‘두려운 존재’… 유명 달리한 이상천 기억나네 주목하는 한국 당구인을 꼽아 달라고 하자 강동궁과 조재호, 최성원, 허정한, 그리고 신예 김행직까지 다섯을 망설임 없이 꼽았다. 외교적 수사인지 “모두 두려운 존재”라고 했다. 오 대표는 강동궁과 조재호는 테크닉에서, 최성원은 게임 운영과 승부욕에서 남다르다고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4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생 리’ 이상천을 기억하느냐고 하자 반가움과 숙연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대회를 마치면 밥 먹는 자리에서도 각자 일어나 당구 발전 방안을 발표하도록 하는 등 매사에 열심이었다”고 돌아봤다. 6. 오래 활동하는 게 꿈이냐고? 난 그저 내 직업을 사랑할 뿐! 클루망처럼 오랫동안 당구를 즐기는 게 궁극의 목표냐고 물었다. 블롬달은 “그건 아니고, 내 직업을 사랑할 뿐”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었고 나란히 대회에도 나섰던 그는 유일한 롤모델로 아버지를 떠올렸지만 두 아들 야닉(20)과 헨드릭(15)에게 당구의 길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했다. “야닉에게 넌지시 얘기한 적이 있는데 똑부러지게 거절당했다. 그는 지금 연극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모든 건 아이들의 선택에 달렸다”고 답했다. 한국 당구의 발전 방안을 조언해 달라고 주문하자 “내 능력 범위를 벗어난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다만 “동호인들이 진정으로 당구를 즐겨 줬으면 좋겠다. 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존재”란 겸손한 답이 이어졌다. 만둣국 식사와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 내내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던 그가 갑자기 예민해졌다. 누군가의 맥주잔이 앞에 놓인 채로 카메라 플래시가 계속 터지자 “팬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실망할 것”이라고 했다. 천생 프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제주어 아래아(·) 사전 표기 하나요 안 하나요

    “예외 없이 ‘ㅏ’나 ‘ㅗ’ 대체해야” “현지서 사용… 온전히 표기를” 올해 10월 한글날에 맞춰 구축되는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우리말샘) 사업과 관련해 제주어인 ‘아래아’(·) 표기 여부를 둘러싼 학계의 찬반양론으로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한국어 정책을 총괄하는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 사업은 2010년 발주돼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10월 첫선을 보이는 것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 중이다. 모든 한국어 자료를 사전으로 집대성해 대규모 언어 지식 콘텐츠로 구축·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위키백과처럼 사용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 콘텐츠를 등록하는 참여형 사전으로 제작된다. 기존의 표준국어대사전보다 규모를 크게 확대해 100만개 이상의 어휘가 담길 예정이다. 문제는 제주어에만 남아 있는 아래아 표기를 놓고 국립국어원이 아래아를 모음 ‘ㅏ’나 ‘ㅗ’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학계가 양분됐다. 아래아 채택을 반대하는 측은 아래아 외에도 방언을 원음에 맞게 표기할 경우 기존 24자모 이외의 자모가 필요한데 이를 모두 허용하는 건 형평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존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채택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반면 아래아 채택을 찬성하는 측은 제주 방언의 경우 아래아를 쓰지 않고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데다 전 세계인에게 한글을 알리는 개방형 사전을 편찬하는 만큼 이번에는 제주어 아래아가 온전히 표기돼야 한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문순덕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15일 “제주 아래아는 모음으로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발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만약 이번 개방형 한국어 대사전에도 표기가 되지 않으면 아래아 모음은 역사적으로 멸종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 연구원은 “제주도는 제주말을 살리겠다고 실제 발음되는 아래아를 문자로 다 표기하려고 노력하는데 국립기관인 국립국어원이 이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포털 검색업체인 다음카카오 측은 기술적으로 아래아 표기 권한만 설정되면 5000여개의 단어를 검색에 노출시키는 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네이버는 아직 뚜렷한 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제주 아래아 표기를 놓고 자문회의도 여러 차례 개최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데 우리말샘 사업 시한인 10월까지는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24자모에 없는 방언의 표기를 어떤 식으로 할지 사회적 합의가 없어 더욱 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설현 지민 논란 비교 ‘안중근 기념관’ 후원 개념 여배우 누구?

    설현 지민 논란 비교 ‘안중근 기념관’ 후원 개념 여배우 누구?

    역사 의식 논란에 휩싸인 AOA 설현과 지민이 13일 개인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들을 향한 질타는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여배우의 과거 ‘개념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해당 여배우는 최근 종영한 KBS ‘태양의 후예’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 ‘송혜교’다. 송혜교는 지난 2013년 안중근 의사 의거일인 10월26일을 맞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에 한글 안내서를 후원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송혜교는 “아무리 중국 내에 있는 우리 역사 유적지라고 하지만 아직도 한글 안내서가 없어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라며 “이런 작은 일 하나가 국내외 관람객 유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송혜교는 서경덕 교수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을 기념해 중국에 위치한 임시정부청사에 한글 안내서를 제공하는가 하면, 안중근 기념관 외에도 상해 윤봉길 기념관 등 전 세계에 위치한 독립운동 유적지와 미국 내의 뉴욕 현대 미술관 등에도 한글 안내서 및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힘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4월 송혜교는 전범기업으로 알려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로부터 중국에 방송될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았지만, 미쓰비시의 만행을 언급하며 광고 모델 제의를 거절해 또 한번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씨줄날줄] 행정편의주의/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행정편의주의/강동형 논설위원

    공무원시험 합격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다. 그런데 공무원이 되기만 하면 무사안일과 철밥통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많다. “전형적인 공무원이다”는 말에는 ‘착하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없다는 비판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큰 잘못만 저지르지 않으면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들은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한 손에는 자를 들고 다른 손에 규정집을 들고 있으면 되는 일이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일을 방해하고 민원인을 괴롭히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직자로서 사명감이 넘치기까지 한다. 자신도 모르게 행정편의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행정 관청에서 시민이나 민원인의 입장에서 제도와 규칙을 바꾸고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면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행정 관청이 공무원의 입장에서 편리한 쪽을 선택하면 민원인은 불편해진다. 이러한 행정 행위를 행정편의주의라고 한다. 행정편의주의는 ‘재량권 축소’라는 의미와도 연결돼 있다. 행정편의주의를 극복하려면 우선 공무원들이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또한 재량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무엇보다 청렴해야 한다. 따라서 부지런하고 청렴한 공무원은 그렇지 못한 공무원에 비해 더 많은 재량권을 갖게 되며 신바람 나는 행정을 펼칠 수 있다. 행정편의주의에 따른 일 처리로 문제가 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버들 류(柳)의 호적상 한글 표기를 ‘유’로 해야 한다는 대법원 예규 때문에 소송까지 갔던 성씨 표기 논쟁은 결국 모두 허용하는 것으로 결정났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해야 했다. 민원인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유가족들을 또다시 슬픔에 빠뜨린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세월호 참사로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의 집에 병무청이 보낸 입영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아직 사망신고를 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지만 누군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도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측에서 희생된 학생 전원을 제적 처리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학교 측은 이들을 모두 제적 처리하면서 유가족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경기도교육청과 정치권이 나서 희생자들의 학적을 되돌리기는 했지만 유가족들이 이미 받은 상처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게 됐다. 그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단원고의 이번 사례는 공직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자 자화상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그리스도교 고전·불교 경전 한글로 쉽게… 깨달음 주다

    그리스도교 고전·불교 경전 한글로 쉽게… 깨달음 주다

    어렵기로 소문난 그리스도교 고전과 불교 경전이 나란히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주교황청 대사(2003~2007년)를 지낸 성염 전 서강대 교수가 펴낸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과 조계종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의 화엄경 번역본이 그것이다. 화엄경과 그리스도교 최고 고전인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을 각각 종교계의 소문난 실력자들이 우리말로 알기 쉽게 풀어냈다. ‘고백록’은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대표 사상가이자 철학자, 성인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43세에 남긴 일종의 자서전. 인간론·시간관·성경해석론을 응축해 아우구스티누스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그리스도교 고전이다. 심미적 문체로 이름이 높아 루소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고백록’과 함께 세계 3대 고백록으로 꼽히기도 한다. 성 전 교수의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라틴어 원문을 중역을 거치지 않고 한국어로 직접 옮긴 첫 번역본이다. 국내에선 10여종이 영어·스페인어판을 토대로 번역됐지만 라틴어 원전을 옮기기는 처음이다. 성 전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1986년 로마 교황립 살레시안대에서 라틴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한국외대,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핵심 사상을 담은 ‘삼위일체론’, ‘신국론’과 ‘그리스도교 교양’, ‘참된 종교’ 등을 번역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500년 전 인물이지만 여전히 현대적 의미가 크다”는 성 전 교수는 지금도 유효한 ‘고백록’의 의미를 ‘진리에의 열정’이라고 못박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를 번역하는 자체가 의미 있고 원문 번역의 시대적 필요성 때문에 착수했단다. 성 전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1500년 전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라고 발언할 만큼 사회 교리의 토대를 마련했다”면서 “‘인간이란 그 자체가 실로 위대한 심연’이라며 고백록을 시작한 그는 인간이란 사랑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며, 개인이든 인류 집단이든 사회적 사랑을 하면 구원받고 사사로운 사랑으로는 멸망한다는 경고는 철학적 탐구를 통해야 가능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아직도 읽히는 이유이지요.” 부처의 불가사의한 깨달음 경지를 기술한 화엄경은 불교 경전의 최고봉으로도 불린다. 내용이 깊고 어려운 데다 분량도 방대하다. 그래서 불가에선 ‘화엄경은 쉬운데 화엄학은 어렵다’는 말이 전해진다. 대해 스님은 이번에 한역(漢譯) 화엄경 80권본을 우리말로 완역해 전 60권으로 출간했다. 누구나 읽기 쉽도록 여백을 충분히 두고 경전 내용을 단락별로 나눠 편집한 게 특징이다. 화엄경 완역은 탄허·월운·무비 스님이 작업했지만 모두 절판됐다. 화엄경은 우주의 삼라만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생겨나는 일이 없이 서로의 원인이 되어 상호 의존적이며 일체가 곧 하나인 관계임을 알려 준다. 그래서 대해 스님은 그 화엄경을 ‘인간사용설명서’라면서 “인간 본질에 대한 설명서인 화엄경을 읽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처음에 돈을 모으기 어려워도 조금씩 모으다 보면 쌓이듯이 화엄경도 반복해 읽다 보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귀띔한다. 특히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인간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찾아들어간 사라지지 않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현상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현상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전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글 전용, 기본권 침해” “한자 사교육 조장”

    한글만을 우리 고유문자로 규정한 국어기본법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2005년 국어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11년 만이다. 헌재는 12일 국어기본법 제3조 등을 대상으로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을 가졌다. 2012년 10월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학부모, 대학교수 등 333명이 “한자를 한국어 표기 문자에서 제외한 현행법은 어문 생활을 누릴 권리와 한자 문화를 누리고 교육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국어기본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공용어인 한국어’를 ‘국어’로, ‘한글’을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 고유의 문자’로 규정하고 있다. 또 제14조는 공공기관에서 작성하는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제18조는 교과서 역시 한글 전용 규정에 맞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헌을 주장한 청구인 측 대리인으로 나온 김문희 전 헌법재판관은 “한자를 한글과 공용 언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말의 어의(語義)의 폭이 줄어든다”면서 “한자 사용을 제한하면 표현의 자유까지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인으로 나온 한수웅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글 전용은 국민의 언어능력과 사고능력을 저하시키고 학문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합헌 입장인 정부 측 대리인 박성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국어기본법은 국어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법률로, 한자를 배척하거나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다”며 “초·중·고에서 한자를 재량으로 교육하거나 선택과목으로 교육하고 있어 국민은 언제든 일상생활에서 자유롭게 한자를 쓸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는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할 경우 조기 사교육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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