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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철 ‘아세안가면 해피조선’ 발언 논란에 사과

    김현철 ‘아세안가면 해피조선’ 발언 논란에 사과

    김현철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은퇴하면 산에 가거나 SNS에 댓글 다는 대신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는 자신의 발언이 중장년층 비하 논란을 일으키자 잘못된 표현이라며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신남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표현으로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 저의 발언으로 마음이 상하신 모든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이에 앞서 보낸 메시지에서는 자신의 발언을 두고 “5060 세대를 무시하는 발언이 결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 위원장은 “신남방지역에 진출한 박항서 감독의 성공 사례를 설명하고 5060 세대인 박 감독처럼 신남방지역에서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말한 것”이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5060 세대를 두고 “한국에서 SNS에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박 감독도 베트남에서 새 감독이 필요하다고 해 (베트남에) 가서 인생 이모작 대박을 터뜨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또 “여기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라”며 “여기(아세안) 보면 ‘해피조선’”이라고도 했다. 이어 “국문과(전공 학생들) 취직 안 되지 않느냐”며 “그런 학생들 왕창 뽑아서 태국·인도네시아에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하기에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내 고용 지표 등이 부진한 상황에서 무조건 외국으로 나가라고 하는 것은 청장년층이 맞닥뜨린 현실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국문과 학생’을 언급한 대목과 관련해서는 “현재 신남방지역의 한류 열풍으로 해당 지역의 10∼20대들이 대한민국을 동경의 나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젊은이들도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자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라며 “기업들도 아세안의 우호적 분위기를 활용해 아세안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김현철 “청년들 ‘헬조선’ 말고 아세안 가라…은퇴 후 산에만 다니지 말고”

    김현철 “청년들 ‘헬조선’ 말고 아세안 가라…은퇴 후 산에만 다니지 말고”

    金 신남방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조찬 간담회서“文정부 반기업정부 아냐…신남방은 친기업 정책”김현철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8일 “신남방정책은 우리 기업들이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친기업적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조찬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신남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도만 해도 중국은 연평균 성장률이 6%대이지만, 인도는 7∼8% 성장한다”며 “인도는 전 세계에서 G2(주요 2개국)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과 중국 시장의 문제점이 있다”며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나 미국 제일주의 등 때문에 굉장히 어려웠고, 중국은 사드 보복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선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초계기 문제나 역사문제로 일본에 대한 수출시장이 줄어, 일본 수출시장이 베트남보다 못 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들 시장이 어려우면 또 다른 시장을 생각해야 한다. 그게 신남방정책이고, 지금도 너무 좋은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왜 식당들은 국내에서만 경쟁하려고 하느냐. 아세안으로 나가야 한다”면서 “백종원의 프랜차이즈도 아세안에 여러 군데 진출해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퇴하시고 산에만 가시는데 이런 데(아세안 지역)를 많이 가야 한다”면서 “박항서 감독도 베트남에서 새 감독이 필요하다고 해 가서, 인생 이모작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라고 밝혔다.또 한류 열풍을 언급하며 “국문과(를 전공한 학생들) 취직 안 되지 않느냐. 그런 학생들 왕창 뽑아서 태국·인도네시아에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면서 “여기 앉아서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여기(아세안)를 보면 ‘해피 조선’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위원장은 “우리 농민들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딸기·배 이런 게 아세안에 많이 팔리고 있는데, 농산물 수입을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우리가 갈 테니 김정은 위원장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에) 초대하라’라고까지 했다”면서 “아세안이 이렇게 우리에게 호의적이다. 이런 기회를 살려 신남방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우리 대통령이 북한만 챙기고 경제는 안 챙긴다고들 한다”면서 “(하지만)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순방할 때 경제를 제일 많이 챙기는 사람이 누구냐. 인도네시아에서 삼성전자가 샤오미와 시장점유율 갖고 대립할 때 제일 먼저 달려간 사람이 누구냐. 문재인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세안에서) 세일즈하는 사람이 대통령이고 우리 정부”라며 “제가 청와대 경제 보좌관이 되고 나서 저를 아는 분들은 절대 (문재인 정부를) 반(反)기업 정부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3·1독립선언, 현대적 관점서도 탁월한 동아시아 평화선언문”

    [색다른 인터뷰] “3·1독립선언, 현대적 관점서도 탁월한 동아시아 평화선언문”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일본은 과거보다 더 높고 두터운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성난 얼굴로 응시하고 있다. ‘피해’와 ‘가해’라는 역사의 대척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방향과 관점이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두 나라 사이의 어두운 과거를 정리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추구한다는 당위론적 명제는 갈등과 대립 속에 좀체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일 연구에 오랜 시간 천착해 온 도노무라 마사루(53) 도쿄대 교수(한국학연구센터장)를 지난 24일 도쿄 메구로구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나 100년 전 한국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의미와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위한 제언을 들어 봤다. 도노무라 교수는 지난해 국내 번역된 책 ‘조선인 강제연행’을 비롯해 활발한 저술활동을 펴고 있다.→오랫동안 일제강점기 한반도 연구를 해 오셨는데, 3·1 독립운동의 의미를 요약한다면. -3·1 독립선언은 현대적 관점에서 봐도 탁월한 내용이 담긴 동아시아 평화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동양의 전통이 아닌데도,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누르며 그 평화적 전통을 깨고 있음을 지적했다. 일본의 지배하에서는 조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에 독립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3·1 독립선언서를 제대로 읽어 본 일본인은 거의 없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3·1 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이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특히 강조했는데. -독립선언서는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독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들 스스로 자립의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었다. 관련해서 일본이 한국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본의 통치로 조선이 발전하고 있다는 일본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시 일본은 철도와 도로가 놓이고 근대적인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농업생산이 늘었음을 통계적으로 보이며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독립선언서는 그것이 조선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3·1 독립운동을 보는 일본 내 분위기는 어땠나. -일본 언론에서는 ‘천도교라는 미신을 믿는 불온한 사람들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한국의 대중을 선동해 만세를 외친 사건’ 정도로 보도했다. 일본은 “천황(일왕) 아래에서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평등하다”고 선전했지만, 그렇다면 왜 조선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3·1 운동은 일본에서 어떻게 기억돼 왔나. -식민통치 기간 중에도 3·1 운동을 기념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당국의 거센 탄압 속에서도 지속됐다. 특히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계급투쟁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마다 3월 1일을 전후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전단지 배포나 집회 개최 등을 시도했다. 일본 경찰들은 이것이 또 다른 민중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경계했고,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이에 대한 탄압이 한층 강화돼 거의 대부분 공공장소에서 3·1 운동을 기념하는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에는 어땠는가. -전쟁이 끝나면서 3·1 운동을 기념하는 움직임이 되살아났다. 1947~48년 신문을 보면 재일 조선인들이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진보진영에는 3·1 운동을 세계혁명을 위한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전후로 과거 한국 식민지배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된 일본인이 늘면서 3·1 운동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일본사회의 분위기는 어땠나. -일본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일본인들은 타국에 대한 식민지배에 찬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을 소중히 여기고 국민들의 생활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1894년 청·일 전쟁 이후 제국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1930년대 이후가 되면 대다수 일본 국민들이 침략전쟁을 적극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침략에 대해 반대했던 사람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국을 침략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이 아니며, 소국주의와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식민지배에 반대한 정치인과 언론인도 있었다. 물론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 주장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라는 한계는 있었다. 패전 후 조선에 대한 불평등한 지배 관계를 깨닫고 이를 반성하며 속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일본인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식민자(植民者) 2세’로 불리는 한반도 출생자로 유명 소설가였던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이조잔영’과 같이 식민시대 조선의 아픔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에서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분위기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던 때는 물론이고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총리 등 시절만 해도 과거사와 관련해 반성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자민당 소장파가 세력을 얻은 후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역사수정주의 책들이 많이 나온 가운데, 1990년대 말 이후 보수우파의 현실참여 활동이 부쩍 늘어난 것 등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주된 이슈는 일제 징용 노동자에 대한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다. 강제동원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징용’이라는 말은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전시노무동원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조선인 노무동원의 피해는 매우 광범위하다. 직접 노동을 했던 당사자만이 아니다. 동원됐던 사람의 가족들, 강제동원을 피해 산골에 은신하느라 인간답게 못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다. 특히 미쓰비시니 신일철이니 장소와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재판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인 경우다. 당시 조선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해 일본어는 물론이고 한글조차 못 배운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홋카이도에 있었는지, 규슈에 있었는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강제노동을 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재판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피해까지 다 고려해 구제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한·일 관계 미래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일본에는 정치인이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3·1 운동 100주년 기념을 통해 일본에 대한 반감과 반일 행동이 강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3·1 운동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응원하고 한국인들 스스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벌인 독립운동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중년 이후 세대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오랫동안 군사독재가 지배했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사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미래 한·일 관계에 희망을 주는 부분이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도노무라 교수는 누구 1966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와세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와세다대 사회과학연구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등을 거쳐 2007년부터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일본근대사.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사학적 연구’(2010년 국내번역), ‘식민지 시기에 있어서 재일조선인의 문화활동’ 등이 있다.
  • [황규관의 고동소리] “살미 그대를 쏘길지라도”

    [황규관의 고동소리] “살미 그대를 쏘길지라도”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1월 18일에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 시사회에 다녀왔다. ‘칠곡 가시나’들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할머니 일곱 분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그런데 감독은 왜 칠곡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삶을 카메라를 담은 것일까? 그것은 그곳의 할머니들이 시를 쓰기 때문이다. 칠곡군에서는 ‘인문학 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관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해 교육을 다년간 해 왔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그림도 그리고, 연극도 하고, 시도 썼다. 그리고 그 성과를 ‘시가 뭐고?’와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 머’라는 시집으로 묶어 냈다. 나는 이 시집들의 편집자로서 연을 맺게 됐는데, 감독은 창비 팟캐스트 ‘김사인의 시시한다방’에 소개된 손점춘 할머니의 시를 듣고 연락을 줬고, 나는 감독을 칠곡군에 연결시켜 줬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 작업은 해를 두 번 넘기고 반년의 편집 작업을 거쳐 드디어 작품이 돼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자의였든 아니면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었든 감독은 약목면 복성2리 할머니들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영화의 밀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따분하리라는 선입관을 뒤흔들어 놓는 것은 단연 할머니들이 한글 공부를 하면서 쓴 시가 중간중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도시인들에게는 드문 할머니들의 우정이 칠곡의 자연과 어울려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박월선의 할머니의 ‘사랑’이란 시는 이렇다. “사랑이라카이/부끄럽다/내 사랑도/모르고 사라따/절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이 시를 처음 읽을 때 알 수 없는 설렘이 웃으면서 물결 지어 왔던 것은 마지막 구절에 배어 있는 수줍음 때문이었다. 박월선 할머니는 영화에서 이 시를 낭송하고 난 다음 시에서 다 하지 못한 말을 웃으며 한 줄 더 넣었다. “왜 안 해 봤겠노!” 나는 어쩐지 박월선 할머니가 이 이상 말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이 영화에서 할머니들에게 가려졌지만, 인상적인 인물은 복성2리 배움학교 교사인 주석희다. 나는 그가 등장하자마자 요즘 말로 ‘빵’ 하고 터져 버렸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와 어우러진 그의 개성 있는 외모는 하나의 캐릭터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주석희는 특유의 하이톤으로 할머니들의 엄한(?) 선생 노릇을 하기도 하고, 개구진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살가운 딸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복성2리 할머니 일곱 분과 교사인 주석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금껏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칠곡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그녀들의 삶이 서로를 함축하면서 말이다. 시집에서도 일부 드러나지만, 할머니들의 내면에는 미처 펼쳐 놓지 못한 강물 같은 서사가 웅크리고 있다. 극영화 형식도 아니고 또 노인들을 대상화하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작가나 PD가 개입하지 않기에 할머니들의 서사는 그들의 웃음과 울음 사이에서 깨진 사금파리처럼 빛난다. 그것이 보는 내내 아프게도 했고 웃게도 했다. 등장인물 중 박금분 할머니는 가장 활달하고 가장 울음이 많은데, 나는 박금분 할머니의 이 웃음과 울음이 같은 모태를 가졌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박금분 할머니는 푸시킨의 시를 필사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시대에 대해 너무 많은 언어를 발화하고 필요 이상의 정념을 재생산하는 시간을 사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여태껏 자신의 삶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반대로는 우리가 가진 언어가 과연 역사와 삶을 얼마나 진실하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특정한 시대적 상황과 국면을 맞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절망하고 희망을 과장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걸까. 자유의 이름으로 표현의 소비는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지만, 내면은 텅 비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계속 맴돌았다. 그런 나를, 아니 당신의 삶을 위로하려는 듯 강금연, 곽두조 할머니와 저수지 둑에서 나물을 캐던 박금분 할머니는 푸시킨의 시를 읊조리며 화면 저편에 있는 당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살미 그대를 쏘길지라도….”
  • 파이어아이 “中 해커, 아래아한글 취약점 분석.. 첨부 이메일 해킹 가능성”

    파이어아이 “中 해커, 아래아한글 취약점 분석.. 첨부 이메일 해킹 가능성”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사이버 공격 급감 재난 시 공격 자제 ‘암묵적 규칙‘ 최근 사라져 “2020 도쿄올림픽… 日, 中 해커 공격 대상”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 간 교류·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북한 대신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의 사이버 보안 취약점을 파고들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이 한국의 사이버 보안 허점을 분석한 징후도 포착됐다. 파이어아이는 2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보안 예측 보고서 ‘보안전망:2019 우리가 마주한 미래‘에서 공개하면서 이같이 경고했다. 파이어아이는 글로벌 인텔리전트 기반 보안업체로 이 회사의 솔루션을 전 세계 67개국에 걸쳐 포브스 선정 2000대 기업 중의 50%를 포함한 7300개 기업에서 사용 중이다. 전수홍 파이어아이 코리아 지사장은 “파이어아이 인텔리전스 그룹은 최근 중국 사이버 공격 세력이 아래아한글 취약점을 분석한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한국 정부의 공식 워드프로세서인 아래아한글의 취약점을 파악한 해킹 그룹은 아래아한글 문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통해 침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다른 워드프로세서를 함께 쓴다면 중국 등지에서의 해킹 시도비용이 증가하고 해킹 성공확률은 낮아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내에서 주로 쓰는 아래아한글의 보안성 연구 직원은 20명 정도이지만, 글로벌 기업인 MS 워드의 보안성 연구 직원은 약 500명이 넘는다고 전 지사장은 설명했다. 국가적 재난이 벌어지거나 사회적 혼란이 커질 때 사이버 공격을 자제하던 해커들 간 ‘암묵적인 규칙’이 깨지면서 앞으로 해킹 위협은 커질 것이라고 파이어아이는 전망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사이버 공격이 급감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양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지사장은 “2016년부터 중국 사이버 스파이 조직의 재구성이 진행된 결과 스파이 활동이 활발히 재개되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확산된 화웨이와 샤오미 등의 폐쇄회로(CC)TV와 드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모바일 악성코드를 사용한 사이버 공격자 등장, 해킹 능력에 두각을 드러낼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여전히 보안에 취약한 지점이 있는 클라우드 등이 향후 사이버 보안의 주요 위협 요인이 될 전망이다. 파이어아이는 또 해킹이 사이버 속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고, 글로벌 외교 및 국제적 행사와 밀접하게 연계된다고 지적했다. 악성코드 등 미국에서 감지된 중국 사이버 스파이의 활동 징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사이버안보협약을 맺은 2015년 9월을 기해 주춤하다 미국 대선, 도널드 트럼프 정권 출범 등의 정치적 이벤트가 이어지며 다시 활발해졌다. 비슷한 맥락에서 파이어아이는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주목했다. 전 지사장은 “중국 입장에서 태평양 쪽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막는 벽인 일본이 사이버 공격 대상”이라면서 “일본 기업과 조직을 표적으로 삼는 위협 활동이 올해 내내 증가하고 내년 도쿄 올림픽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예비 초등생, 40분 책상에 앉기·준비물 챙기기 연습부터 시작해요

    예비 초등생, 40분 책상에 앉기·준비물 챙기기 연습부터 시작해요

    학습 성취도보다 바른 습관 형성이 중요 연필 쥐기·앉는 자세·독서 습관 지도를 한글 자주 보여줘 익숙하게 만들어주고 숫자는 1~100 셀 수 있게 기초 잡아줘야한 달여 뒤면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들의 ‘학습 진도’는 천차만별이다. 두 자릿수 덧셈과 뺄셈, 심지어 한자와 영어까지 공부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글조차 떼지 못한 아이도 있다. 혼자서 책을 10권 이상 읽는 아이가 있는 한편 활동량이 넘쳐 책상 앞에서 10분 이상 집중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내 자녀가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 진도가 뒤처졌다는 생각에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학습 진도보다 학습 습관이 중요한 시기다. 학교 공부에 재미를 느끼도록 기본적인 습관을 미리 잡아 주면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자신감을 갖고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은 한글을 전혀 모른다는 전제하에 학교에서 연필 잡기부터 시작해 자음과 모음, 받침 등을 차근차근 배운다. 아이가 한글을 전혀 쓰지 못한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여전히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을 반드시 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해 3월 아이스크림에듀에서 전국 초등학생 학부모 9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 학습 정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1.8%는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23.3%는 “반드시 떼야 한다”고 응답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가정에서 한글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평소에 한글을 자주 보여 줘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공룡, 자동차 등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한글로 써 주면서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가 이미 한글에 익숙하다면 받아쓰기를 통해 쓰기 능력을 키워 줄 수 있다. 숫자는 기초를 잡아 줄 필요가 있다. 초등 1학년은 1에서 100까지 수를 셀 수 있어야 한다. “1=일=하나”라는 등식을 이해하고 숫자를 순서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지도해 주면 좋다. 숫자 5를 2와 3으로 가르고, 1과 3을 4로 모으는 등 ‘수 가르기·모으기’를 연습시키면 입학 후 연산 학습에 도움이 된다. 최형순 아이스크림에듀 초등학습연구소장은 “학습 습관이 바르게 잡혀 있지 않은 아이는 수업 시간에 적응하기 어려워하고 이는 성적 저하로 이어진다”면서 학습 성취도보다 학습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학교 수업 시간인 40분 동안 책상 앞에 앉아있기, 연필을 바르게 쥐고 쓰기, 준비물 스스로 챙기기 등 기본적인 습관을 잡아주는 게 한글 떼기 같은 학습 진도보다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40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힘든 일이다. 지금껏 방바닥 위에 상을 펴고 공부해 왔다면 편안한 의자와 책상을 마련해 차분히 앉아 있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양한 활동을 연이어 하면서 40분을 채우고, 활동 개수를 줄여 나가며 한 가지 활동을 40분 동안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본다. 척추측만증 예방을 위해 바르게 앉는 연습도 필요하다. 엉덩이가 의자 끝까지 들어가도록 깊숙이 당겨 앉은 후 허리와 어깨를 펴고 앉도록 한다. 아직 소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연필을 쥐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직접 연필을 바르게 잡는 모습을 보여 주며 함께 글쓰기나 선 긋기, 색칠하기 등을 연습하면 도움이 된다. 글쓰기를 연습할 때는 연필심이 무른 연필을 골라 아이들의 손목에 가는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 초등학교 생활 내내 반복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과는 바로 수업 준비물 챙기기다. 자신의 물건을 챙기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 오늘의 시간표에 해당하는 책과 공책, 학용품 등을 꺼내는 데에서부터 허둥지둥하게 된다. 자기 물건을 챙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자기 방 스스로 정리하기, 자기 물건에 직접 이름 적기, 물건 사용 후 제자리에 갖다 두기 등의 습관을 가정에서 미리 들일 수 있다. 입학한 뒤에는 잠자기 전 책가방을 미리 싸 두도록 지도한다. 독서는 언어 및 사고 능력과 직결된다. 하지만 독서 습관은 어려서부터 길러 주지 않으면 커서도 습관을 들이기 힘들다. 책에서 멀어진 아이라면 ‘하루 30분 독서하기’ 같은 꾸준한 독서 활동을 통해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좋다. 이 시기에 가장 좋은 책은 교과서에 실린 책이다. ‘라면 맛있게 먹는 법’(권오삼 글·윤지회 그림, 문학동네 펴냄), ‘숨바꼭질 ㄱㄴㄷ’(김재영 글·그림, 현북스 펴냄) 등 초등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양질의 도서를 미리 읽어 보며 교과서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키워 주도록 한다. 책을 읽은 뒤 아이가 자신의 감상을 스스로 표현하는 간단한 독후 활동을 진행하면 아이의 사고력을 길러 주는 데 도움이 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초3 이전 영어 학습은 흥미 주는 정도면 충분”

    “초3 이전 영어 학습은 흥미 주는 정도면 충분”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영어 허용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학부모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금지됐던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 재허용은 다음달까지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공교육정상화촉진·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의 통과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일부 학부모들은 이미 초등 1, 2 방과후 영어가 계속 허용되지 않을 때 다닐 영어학원을 찾아다니고 있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영어 수업이 시작되는 초3 이전에 선행학습은 꼭 필요할까. 서울신문은 지난해 3월 인터뷰했던 국내 대표적인 ‘영어 조기 교육 무용론자’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를 다시 만났다. 이 교수는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 허용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아이가 원한다면 먼저 (선행학습을)시켜도 되지만 늦게 시작한다고 해서 무조건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 허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일부 학부모들은 (방과후 영어에 특화된) 사립초를 보내야 할지, 일반초에 입학시켜 학원에 보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영어 선행학습을 시킨다고 아이가 영어를 잘한다는 보장이 없고, 반대로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초3 이전에 영어를 가르친다면 아이가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유튜브의 영어 콘텐츠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 영어를 배우거나 배우고 싶어 하도록 자연스럽게 영어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립초에서 초등 방과후 영어에 원어민 교사가 수업 전체를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업을 실시하는 등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영어는 늦게 시작하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여전하다.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직접 영어를 소통 언어로 사용하기 어려운 비영어권 국가다. 이런 환경에서는 얼마나 영어를 빨리 시작하는냐보다 얼마나 집중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느냐에 따라 영어 실력이 갈린다. 그런 측면에서 사립초나 영어학원의 원어민 교사 수업은 장단이 있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일 수 있지만 학생들끼리 서로 (성적 등에)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부담을 느낀다면 이는 영어에 흥미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도 먼저 시작하면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10년 전 EBS와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등 입학 전 영어 학습을 한 아이와 하지 않은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스페인의 한 연구에서는 영어 실력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실력 측정 직전 얼마나 영어 공부를 했는지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영어를 먼저 시작한다고 해서 실력이 더 늘어난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 아니다. →방과후 영어 허용 여부를 두고 고민이 많은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조기 영어 교육 혹은 사교육의 목적이 대부분 입시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영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읽기’다. 그런 측면에서 어릴 때 글을 읽는 습관이 잡혀 있지 않다면 영어를 아무리 먼저 시작해도 효과가 낮다. 우선 모국어인 한글로 된 책을 통해 읽기 습관을 길러주고 다음 단계로 영어 읽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마포 “글씨에 지역색을 입혀라”

    마포 “글씨에 지역색을 입혀라”

    홍대 등 디자인 특화 지역에 어울리게 일자리·소상공인 지원·브랜드 강화 도모“서울 마포 지역 특유의 서체 개발을 통해 지역 청년 취업과 경력 관리를 지원하는 한편 개발된 서체를 마포 소상공인에게 무료로 배포해 지역 경제 활성화도 함께 꾀하겠습니다.” 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은 지난 21일 상암동 매봉산로 마포창업복지관에서 구가 공개 모집한 청년 디자이너 10여명과 함께 ‘마포구 서체 디자이너 양성 및 제작 프로젝트 발대식’을 갖고 이같이 강조했다. 구는 앞서 지난해 12월 프로젝트 참여 전문가와 매니저, 청년 디자이너 12명을 선발해 기본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까지 인당 각 1종의 마포구 특유의 글씨를 개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외부 용역을 거치지 않고 지역 특색을 담은 서체를 개발하고 나선 것은 마포구가 전국 최초이다. 마포 서체 개발 프로젝트는 유 구청장의 선거 공약 사항 중 하나이다. 유 구청장은 마포구에 홍대와 합정을 중심으로 디자인, 출판 분야로 발달된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가 있고, 서체전문회사와 한글타이포그라피 학교 등이 있어 서체 개발을 배우려는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이들의 취업과 경력 관리를 위해 이 같은 프로젝트를 고안했다.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에게 전문적인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다양한 서체를 개발토록 한 뒤, 이를 마포 지역 소상공인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청년 취업, 소상공인 지원, 그리고 마포 지역 브랜드 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서체 개발에 참여하는 청년 디자이너들은 커리어 코칭 등을 통해 향후 관련 분야 진출에 도움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구는 원활한 프로젝트 진행과 수준 높은 서체 제작을 위해 관련 전공 교수와 전문 디자이너, 마포디자인출판협동조합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함께 운영할 방침이다. 지역 특성의 수요 조사와 연구, 디자인 작업 등을 통해 마포형 서체를 개발하고, 개발된 서체는 웹사이트에 공개해 소상공인이 무료로 쓰게 된다. 유 마포구청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마포 특유의 한글, 알파벳, 그리고 아라비아 숫자의 글씨체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내고 계속 발전해 한자 개발도 목표로 삼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도둑은 토요일 새벽을 노린다…1월 범죄 많은 이유는

    도둑은 토요일 새벽을 노린다…1월 범죄 많은 이유는

    도둑은 토요일 새벽 주로 노려 지난해 빈집털이 범죄는 토요일, 특히 자정∼오전 6시 새벽 시간대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침입 경로는 창문이었다. 민간 보안 기업인 에스원의 범죄예방연구소는 지난해 에스원 시스템경비 서비스를 이용하는 90만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이 분석에 따르면 빈집털이는 1∼2월(20%)과 7∼8월(19%)에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1∼2월은 신년과 설을 맞아 현금 보유가 많을 때이고 연휴를 활용한 해외여행 등으로 집을 비우는 가구들이 늘어나는 기간이다. 7∼8월도 휴가철로 장기간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다. 다만 2017년에는 봄나들이 철인 3∼5월에도 이런 침입범죄가 집중됐던 반면 지난해에는 월별로 고르게 분산된 게 특징이다. 지난해에는 매월 징검다리 휴가, 대체공휴일 등으로 휴가가 나뉘어 침입범죄 역시 분산된 것으로 에스원은 분석했다. 침입범죄 발생일은 토요일이 17%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월요일(16%), 일요일(15%), 화요일(15%) 순으로 집계됐다. 최근 주말을 활용한 여가활동으로 토요일에도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평일인 월·화요일에 범죄 발생이 높은 이유는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한글날, 성탄절 등 징검다리 휴일이 대부분 월·화요일에 집중되면서 발생한 결과로 해석된다. 침입 발생시간은 자정부터 오전 6시 사이에 78%가 몰려 있었다. 특히 인적이 드문 심야인 오전 3시 발생 사건이 전체의 22%를 차지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귀화자 65명에 국적증서 수여…‘국민선서 의무화’ 개정 첫 시행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제1회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가한 귀화 허가자 65명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 앞에서 일제히 오른손을 들고 국민선서를 했다. 국적 허가를 받은 사람은 국민선서를 하고 귀화증서를 받아야만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개정 국적법이 처음 적용된 행사였다. 이전에는 귀화 또는 국적 회복 허가를 받으면 우편으로 ‘허가 통지서’만 받았지만, 국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국민선서 의무화’ 조항이 삽입됐다. 이날 모인 65명은 서울에 주소를 둔 귀화 허가자들로 중국 출신이 33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어 베트남 17명, 필리핀 5명, 러시아 3명 순이었다. 벨라루스에서도 1명 귀화했다. 벨라루스 출신 귀화자 카베트스카야 율리야씨는 “너무 뜻깊고 자랑스러운 날”이라며 “학생이자 운동선수로서 더욱 성실히 생활하는 모범 시민으로 성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하 영상을 통해 “우리 정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꿈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독립 결의, 흰 천에 빼곡히 들어차다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독립 결의, 흰 천에 빼곡히 들어차다

    “완전독립(完全獨立)을 위하야(여) 노력(努力)하자” “삼천만민족(三千萬民族)에 기둥이 되자” “조국(祖國)을 爲(위)하야(여) 피를 흘리자” “피흘림 없는 독립은 값없는 독립이란 것을 자각하자!” “우리는 한국(韓)의 억게(어깨)가 데(되)자” “열열(熱熱)한 혁명(革命)의 투사가 되어라”.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와 태극 문양이 새겨진 흰색 천에 빼곡이 적힌 문구들. 한자와 한글이 뒤섞여 단숨에 읽어내리기는 힘들지만 태극기 가운데 아랫 부분에 “굿(굳)세게 싸우자”라는 한글 문구만 보더라도 이 태극기에 담긴 의미가 가볍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1940년 중국 충칭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의 군대인 한국광복군 대원 70여명이 직접 적은 문구가 새겨진 이 태극기는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9호)다. 가로 87.8㎝, 세로 61.8㎝ 면직물에 독립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꽉 채워 넣었다. 이 태극기는 광복군 제3지대 제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일명 문수열)이 1945년 2월경 광복군 동료 이정수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1946년 1월 문웅명이 다른 부대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동료 대원들이 태극기 여백에 대원들의 결의를 담은 글귀와 서명을 적어넣었다. 조국의 완전한 독립에 대한 염원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단단한 필체에서 엿보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과정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가 사용됐다. 이 태극기를 제작하고 글귀를 적은 인물들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당시 태극기 제작기법과 형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또 다른 태극기 유물 중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태극기 목판’(등록문화재 제385호)도 역사적 가치가 남다르다.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해서 사용됐다고 알려진 가로 32㎝, 세로 30㎝ 정사각형 형태의 인쇄용 판목이다. 6.5㎝의 두께의 원목에 4괘와 태극 문양을 칼로 새겼다. 태극기 형태와 사용 흔적 등을 살펴볼 때 1920년 전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쇄기술을 이용하기 쉽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극기를 제작하는 시도 자체는 매우 위험했을 터다.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데 사용된 이 목판은 3·1운동 당시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쳤던 한민족의 의지를 보듬고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JYP 신인 걸그룹 ITZY(있지) 첫선… 유나·신류진·이채령·리아·황예지 5인조

    JYP 신인 걸그룹 ITZY(있지) 첫선… 유나·신류진·이채령·리아·황예지 5인조

    JYP엔터테인먼트가 트와이스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걸그룹 ITZY가 처음 공개됐다. JYP는 21일 0시 ITZY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프롤로그 필름 : ITZY? ITZY!’라는 제목의 1분 10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는 ITZY 멤버 5명의 모습이 소개됐다. 영상에 등장한 멤버는 순서대로 유나, 류진, 채령, 리아, 예지 순이었다. 이 중 신류진은 JTBC ‘믹스나인’에 출연해 1위를 차지하며 실력파임을 증명했던 멤버다. 이채령은 SBS ‘K팝스타 시즌3’, 엠넷 ‘식스틴’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바 있고 아이즈원 이채연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황예지는 SBS ‘더 팬’에 출연해 가창력을 보여준 바 있다.앞서 JYP 차기 걸그룹의 그룹명이 ITZY라는 소문이 돌면서 어떻게 읽게 될지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서는 ‘있지? 있지!’라는 한글 발음이 소개됐고 해시태그에도 ‘#ITZY’와 함께 ‘#있지’가 붙었다. ITZY의 첫 티저 영상은 공개 6시간도 안 돼 조회수 80만건을 넘는 등 전 세계 케이팝 팬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JYP 신인 걸그룹 ITZY는 다음달 중순 데뷔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황사손’ 이원이 말하는 고종 승하 100주년“올해가 고종광무태황제 승하 100주년입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고종 황제의 붕어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황사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오전 6시30분쯤 일제에 의해 독살되셨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마다 이날 정오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 가서 제향을 봉행합니다. 고종 황제가 당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는데, 나라를 잘 못 이끌었다는 오해를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이 잘 못된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21일 정오 고종 왕릉인 남양주서 ‘홍릉제향’ 봉행 그를 만나면 무엇부터 질문할까 고민했다. ‘군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황위 계승자 제1순위로서의 삶’을 먼저 물어볼까하다 ‘고종 사망 100주년의 소회’를 물었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황실의 적통을 잇는 후손) 이원(57·본명 이상협)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겸하고 있다.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의 이구 황태손이 타계한 이후 3년상을 치르고 그의 계자(系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어땠나요. -> 고종이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은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든 겁니다.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식혜·커피를 드시고 30여분만에 시해되셨습니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황제는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사후에 보니 혀와 치아가 타 없어지고, 30cm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으며,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살됐다는 확실한 증거 기록입니다. “고종, 21일 아침 6시 한약·커피·식혜 마시고 승하심한 경륜 후…혀·치아 타 없어져 독살 시해 증거고종 시해 이유…항일독립 망명정부 차단하려고”- 고종 승하에 백성들은 왜 ‘만세(萬歲)’라고 외쳤을까. -> 만세가 요즘이야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고, 죽음이란 단어를 꺼렸습니다.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의 수장이었던 황제가 억울하게 독살당하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킨 것입니다. 고종의 항일 투쟁의 뜻을 기리는 백성들이 인산일(因山日·왕과 왕가의 장례일)인 3월 3일에 앞서 자발적으로 모여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인산일에 맞추려다 국장날 소요는 예가 아니다고 미루고, 전날인 3월2일은 일요일이어서 하루 늦췄다고 합니다. 결국 1일로 날짜가 맞추진 것이 3·1독립만세운동입니다. - 고종의 독립운동 가운데 일반인이 잘 모를 법한 이야기는. ☞ 고종 황제는 1897년 황제국을 선포한 것도 지금보면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1894년 갑오개혁때 공식적인 국문 즉 ‘나랏글’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근대 문명의 초석이 된 겁니다. 한글을 이용한 잡지와 신문 발간도 적극 권장했지요.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도 출간도 가능했던 겁니다. 또 일본보다 2년 빠른 1884년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와 협약해 창덕궁에 전기등소를 설치하고 종로에 전차를 도입했습니다. 종로를 아시아에서 가장 번쩍이며 화려한 명소로 탈바꿈시키셨던거죠. 친일역적 매국노들이 고종 황제를 철저히 암군(暗君·어리석고 아둔한 군주)으로 묘사했지만 최근 학자들에 의해 개명군주(開明君主)로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종, 한글 공식 나랏글 선포…개명군주 역할 많아대한광복군정부 수장…항일 구국 독립운동 구심점- 대한광복군정부에 대해 설명하면. ☞ 고종 황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황위에서 강제로 퇴위되셨습니다만 1914년 이상설(1871~1917)을 중심으로 설립된 첫 망명 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의 수장이 되어 항일구국 운동을 지원하셨습니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으로, 다시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됩니다. 간접적인 독립활동에 한계를 느끼신 황제는 이상설과 이회영(1867~1932)의 계획 아래 중국에 망명해 항일구국 독립투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려 하셨습니다. 이런 망명 계획을 첩보로 입수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민병석·송병준·이완용·윤덕영·한상학이 고종의 망명을 차단하려고 암살을 한 겁니다. -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에서 황사손의 역할은. ☞ 가장 대표적인 직무는 종묘대제·사직대제·환구대제(대한제국 황실 선포 및 국태민안 기원 제사)·조경단대제(조선왕실 시조 즉 전주이씨 시조묘 제사) 그리고 연중 66회의 왕릉제향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연간 70번 거행되는 제사에서 왕과 왕비 신위에 술잔을 처음으로 올리는 제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왕실 초헌관은 조선시대 때부터 국왕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만 이구 황태손 저하를 이어 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황실의 그 유구한 역사·문화적인 유산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제국황실이 그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공화국이 된 나라에서 황제 계승자라는 직위는 다른 분들에겐 사실 설명하도 이해를 잘 못하는, 그래서 외로운 면이 있습니다. “황사손 역할, 연중 70회 대제·제향 초헌관 맡아유구한 역사 계승…대한민국 정통성 뒷받침 자부”- 황실 최고령인 이해경씨 환국은. ☞ 제게는 고모님이 되시는 해경 황녀님은 1930년 태어나셨서 올해 구순이 됩니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왕자이신 의친왕(1877~1955)의 5녀입니다. 조선왕실 법도로 보면 의친왕의 공주가 되고, 대한제국 황실 법도로 보면 황녀가 됩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학 사서로 조선의 기록을 많이 발굴해 내셨습니다. 1996년 정년퇴직하신 이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뉴욕의 한인사회 주요 행사에 참석하시며 교민들에게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들었습니다. 뉴욕에서는 황녀라는 호칭보다 ‘한국 공주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독립한 조국이 있는데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더 늦기 전에 환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국시 친모이신 의친왕비가 생활하셨던 안동별궁이나 사동궁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황실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구 황태손 저하와 영친왕비, 그리고 덕혜옹주께서 기거하셨던 창덕궁 낙선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황사손으로 보람을 느꼈던 일은. ☞ 2017년과 작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관계자들과 오하이오주에 사는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 후손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소개되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계자들은 저를 ‘His Imperial Highness’(저하)로 경칭해 놀랐습니다. 또 알렌 박사의 고향에선 ‘한국의 황태자가 온다’는 소문에 알렌 박사의 증조카 며느리의 집에 동네사람들이 저를 만나려 몰려왔습니다. 그들도 저를 ‘Your Highness’로 높여 불러주었습니다. 한 이웃은 오찬 음식점까지 자신의 자녀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주면서 “오늘 한국의 황태자를 알현하는 것은 저희 가족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서의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고 또한 큰 위로도 받았습니다. 황사손에 대한 마땅한 영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해외왕실교류수석위원이신 김영관 박사는 제1위 황위 계승자이니 영어로 ‘The Crown Prince His Imperial Highness’(황태자 저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현재 영어로는 그렇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알렌 후손들로부터 환수된 문화재는 서울시에 기증하였습니다. “황실 최고령 이해경 황녀, 늦기 전에 환국해야사직대제·환구대제·왕릉제향 유네스코 등록 추진”-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 올해는 특히 국민을 섬기며 대한민국의 문화 융성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이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즉, 민주공화정에서도 종묘에 모셔진 역대 왕과 왕비의 직계손이 제향에 초헌관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뿌리와 원형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직대제와 환구대제 그리고 왕릉제향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올해도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뉴욕한인축제나 에딘버러축제에서 어가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이나 어가행렬은 단순한 제례의식의 절차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역사·종교·문화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우리의 역사문화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알렉 박사의 후손들을 올해 직접 방문해 작년에 환수하지 못한 나머지 유물 환수와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런 여정을 영상으로 남길까합니다. 그는 황사손이라고 하지만 궁궐이 아니라 서울 성북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황사손이 되기 전에는 그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상문고와 뉴욕공과대(NYIT)를 마치고 미국 케이블사 홈박스오피스(HBO)의 PD로 일하다 1990년 귀국했다. 금강기획을 거쳐 현대방송 PD, 현대홈쇼핑 디지털방송본부장으로 있다가 황사손으로 선정됐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했는데, 미련이 많겠다’고 하자 그는 “하늘의 부름이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총리, 한글단체와 ‘말모이’ 관람…일 질문에 “침묵도 반응”

    이낙연 국무총리는 17일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활동을 다룬 영화 ‘말모이’ 를 관람했다. 이 총리의 영화 관람은 이날 저녁 서울 용산 CGV에서 한글단체 우리말가꿈이 회원 18명과 함께 이뤄졌다. 이 총리는 최근 일제강제 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기에 어떤 발언을 할 지 관심이 쏠렸지만 말을 아꼈다. 이 총리는 영화 관람 전 ‘한일 관계가 심각하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며 “침묵도 반응이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영화가 끝난 뒤에는 상영관 옆 별도의 공간에서 맥주를 마시며 단체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 영화에 대해 “역사적 사실 몇 가지를 얽어놓고 나머지는 픽션으로 꾸몄는데 극도의 갈등이나 긴장이 있지는 않아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며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또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 위원회가 한자가 잔뜩 들어가서 어려운 기미독립선언서를 쉬운 말로 바꾼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며 “이 내용이 학회로부터 일단 동의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안도감과 우월감, 그 어디쯤 옌볜 풍경

    안도감과 우월감, 그 어디쯤 옌볜 풍경

    지난해 10월 출장길에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들렀다. 한글과 한자가 뒤섞인 거리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 사는 동포들에게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중국 땅에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에 관한 동질감과 이질감. 신간 ‘두만강변 사람들’은 옌볜 풍경을 찍은 사진집이다. 엄상빈 사진가는 2001년 첫 방문 이후 2004년까지 수차례 훈춘시와 옌지시 등을 방문하며 시장과 농촌마을, 조선족 학교를 사진에 담았다. 한글과 한자가 뒤섞인 간판이 있는 거리 풍경을 비롯해 불로 그슬린 개고기가 놓인 아침시장, 마오쩌둥 동상이 있는 학교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 그리고 강변 너머 보이는 북녘땅. 여기에 지난해 10월 방문해 찍은 사진 몇 컷을 함께 붙였다. 20년 전 흑백 사진과 지난해 찍은 컬러 사진은 시간이 멈춘 듯한 옌볜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사진집을 보며 문득 묘한 감정이 든다. 애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부유하게 살아가는 데 따른 안도감이나 우월감, 그것도 아니면 동정심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쯤 이런 기분을 떨쳐버리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안양시, 침체에 빠진 지역음식점 역량강화 나선다.

    안양시, 침체에 빠진 지역음식점 역량강화 나선다.

    새해 들어 최저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자영업자는 역대 최악의 체감경기를 맞이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는 침체한 외식업계 활성화를 위해 지역 음식점 역량강화에 나선다고 17일 밝혔다. 현재 안양지역에는 음식·제과점, 커피숍 등 7200여개 음식업소가 영업하고 있다. 시는 올해 음식 업주 30명에게 외식업 경영자과정 위탁 교육을 한다. 경영이 어려운 음식점 20곳을 방문해 1 대 1 맞춤형 경영자문도 실시할 예정이다. 9월에는 외식 업주와 음식업 창업예정자를 대상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한 특강을 연다. 모두 외식업자의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이다. 이와 함께 화장실 등 음식점 환경을 개선과 운영을 위한 시설개선자금을 저금리 융자를 지원한다. 삼막마을 맛거리촌·지역 명소인 안양예술공원 활성화 사업과 연계해 맛집 발굴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동시에 시 대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맛집 알리기에도 나선다. 지난해 말 이 지역 음식업소를 소개하는 한글·영문판 안양 맛집 안내지도 2만 부를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또 외식업소의 안양사랑상품권 가맹점 지정을 장려하고 시 주관 행사에서 시상금으로 상품권을 지급할 방침이다. 지난해에 이어 시는 시·구청을 비롯 산하기관 구내식당 휴무일을 지속해서 월 2회를 늘리고, 점심때 식당가, 전통시장, 상가에 대한 주차단속을 완화한다. 한편 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도가 지정한 경기으뜸맛집, 모범음식점, 삼막맛거리촌, 비산골음식문화특화거리, 예술공원음식문화특화거리, 신촌동음식문화특화거리, 동편마을카페거리 등 음식점이 밀집된 특화거리에 대한 홍보를 적극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한글 글씨는 단아했다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한글 글씨는 단아했다

    조선 제23대 왕 순조(재위 1800~1834)의 셋째 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의 단아한 글씨체가 돋보이는 한글 책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1월 미국 개인 소장자에게 매입해 국내로 들여온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 68점을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공개했다. 순조와 순원왕후(1789~1857) 사이에서 태어난 덕온공주는 1837년 양반가 자제 윤의선(1823~1887)과 혼례를 올렸지만 결혼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윤의선은 덕온공주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어 윤용구(1853~1939)를 양자로 들였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국립한글박물관이 협력해 환수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덕온공주와 양자 윤용구, 손녀 윤백영(1888~1986) 등 왕실 후손이 3대에 걸쳐 작성한 한글 책과 편지, 서예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특히 눈길을 모으는 것은 덕온공주가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손수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와 ‘규훈’(閨訓)이다. ‘자경전기’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지은 전각인 ‘자경전’의 유래 등을 적은 글이다. 순조가 효의왕후(정조의 비)의 명을 받들어 1808년 한문으로 지은 것인데, 이 원문을 덕온공주의 어머니 순원왕후가 딸에게 명하여 토를 달아 한글로 풀어 쓰게 한 뒤 이어 우리말 번역문을 적게 했다.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혜경궁홍씨로부터 덕온공주까지) 조선 왕조 4대에 걸쳐 효를 실천한 것을 보여 주는 유물이자 서예가로서의 덕원공주의 역량을 보여 주는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규훈’은 여성이 지켜야 할 덕목이나 예절 등을 기록한 수신서 성격의 책으로 덕온공주가 한글 번역문을 궁체로 적었다. 환수 자료에는 왕실에서 작성한 한글 편지와 왕실 여성들을 위한 한글 역사서도 다수 포함돼 있다.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쓴 편지 역시 덕온공주의 글씨만큼 정갈함이 돋보인다. 윤의선이 감기와 기침을 심하게 앓아 걱정하고 있고, 덕온공주가 궁에 들어와 든든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또 신정왕후(익종의 비)가 1874년 윤용구의 첫째 부인 광산김씨에게 보낸 편지는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로 꼽히는 궁중 여성 서기 이씨가 대필한 것으로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1874년 2월 8일 명성왕후가 원자(순종)를 출산한 기쁨의 마음을 담았다. 국어학자인 이종덕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순원왕후와 딸인 덕온공주의 글씨를 비교할 때 글씨의 인상, 획의 흐름 등이 흡사하다”면서 “현재 사용하는 궁체가 이들의 글씨를 본떠서 발전시킨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숙달되고 유려한 전문가적인 궁체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덕온공주의 아들인 윤용구의 딸에 대한 사랑이 엿보이는 한글 역사서도 있다. 1899년 당시 12세이던 딸 백영을 위해 중국 역사에서 모범적이었던 여성 30명의 행적을 적은 ‘여사초략’(女史抄略)이다. 한문으로 적은 부분에 붉은 색으로 하나하나 토를 달아 놓고 그 뒤에 한글로 번역한 것인데 당시 왕실 집안에서 어떤 식으로 교육을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윤백영이 1934년에 환소군의 전기를 궁체로 쓴 ‘환소군전’(桓少君傳)도 눈에 띈다. 빼어난 서화가였던 아버지 윤용구의 자질을 물려받은 윤백영은 한글 궁체 서예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명필이다. 전통적인 한글 궁체가 현대적인 예술 작품으로 연결되는 과도기에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들 외계 물체 이름으로 보존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들 외계 물체 이름으로 보존

    지난 9일 개봉해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넘겨 화제가 된 영화가 있습니다. ‘말모이’입니다. 한국어 말살을 획책하는 일제 탄압에 맞서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허구의 요소가 많지만 영화에 나온 것처럼 자칫 사라질 뻔했던 한글과 방언들이 주시경 선생이나 최현배 선생 같은 한글 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살아남게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언어는 약 7000여개에 이르지만 세계 인구 97%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중 4%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6%의 언어는 세계 인구의 3%만 쓰는 소수 언어입니다. 사용하는 사람이 줄고 계승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언어들입니다. 우리 제주도 방언 역시 세대 간 전승 없이 노인층만 주로 사용하고 있어 소멸될 가능성이 높은 토착 언어로 분류돼 있는 상황입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천문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새로 발견된 외계물체들에 소수 언어로 이름을 붙여 언어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지난 11일자에 소개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2017년 10월 19일 하와이대 연구진이 판스타스1 망원경으로 포착한 정체불명의 외계물체에서 시작됐습니다. 얼음이나 암석으로 구성된 소행성이나 혜성과는 다르고 표면에 유기물의 흔적까지 발견된 이 물체는 외계 문명에서 보내온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먼 우주에서 날아와 태양계를 지나쳐간 ‘성간(星間) 물체’라고 밝혀졌지만 정확한 정체와 어디서부터 날아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천문학계는 하와이대에서 처음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하와이어로 ‘먼 곳에서 온 메신저’라는 의미의 ‘오무아무아’(Oumuamua 1I/2017 U1)라고 이름 붙였습니다.이를 계기로 하와이의 천문 및 과학문화 교육단체는 지난 7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천문학회에서 외계물체에 하와이어를 붙이는 ‘아후아헤이노아’(A Hua He Inoa) 프로젝트를 공개했습니다. 아후아헤이노아는 하와이 원주민들이 사람이나 물체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입니다. 천체 이름을 승인해주는 국제천문연맹(IAU)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본토에서 3700㎞ 떨어져 있고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하와이도 고유한 언어가 있지만 영어에 밀려 하와이주 전체 인구의 0.1%만이 사용하고 있어 소멸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고 공해 없는 맑은 하늘이라는 천혜의 조건 덕분에 천문대와 다양한 천체 관측기구들이 있는 만큼 아후아헤이노아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높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대(UCSF) 천문학자 아파나 벤카테슨 교수는 “이름은 단순히 뭔가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 프로젝트는 신세대 과학자들에게 인류 공동유산인 언어의 소중함과 필요성에 대해 가르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소수 언어와 토착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유엔이 지정한 ‘국제 원주민 언어의 해’(IYIL2019)입니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말하는 이의 생각과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소수 언어, 토착 언어 보존은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문화 전수·계승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과학이 이같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문사회와 과학의 ‘융합연구’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edmondy@seoul.co.kr
  • 공짜 공공 이모티콘 알고 보니 ‘혈세 먹는 하마’였다

    공짜 공공 이모티콘 알고 보니 ‘혈세 먹는 하마’였다

    55개 기관서 4년 동안 80회 이상 제공 16억 ‘줄줄’… 1회 제작비 최대 3630만원 복지부·질병관리본부·교육부 1억 지출 “예쁘지 않아서 잘 안 쓴다” 실효성 의문최근 카카오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모티콘을 만들어 나눠 주는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무료를 앞세우고 있지만 수천만원대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효과도 크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15일 서울신문이 각 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에 따르면 2015~2018년 4년 동안 적어도 55개 기관에서 80회 이상 이모티콘을 무료로 배포했다. 퀴즈를 풀거나 이벤트에 참여하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관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구독하면 이모티콘을 주는 식이다. 그렇다면 ‘무료 이모티콘’은 정말 공짜일까. 전 공공기관 전문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유행처럼 이모티콘 제작 열풍이 일고 있다”면서 “SNS에 내는 배포 비용 외에 기존 캐릭터를 활용할 경우 지불하는 저작권 비용이나 자체 캐릭터를 만드는 비용 등 전체 비용은 수천만원대”라고 밝혔다. 네이버나 텔레그램을 통해 이모티콘을 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용층이 넓은 카카오를 쓴다. 판매용이 아닌 기업이나 기관이 만드는 브랜드 이모티콘 사업에서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아 별도 담당자까지 둘 정도다. 카카오에 따르면 브랜드 이모티콘은 개당 배포 비용이 400~1400원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최소 구매금액이 1000만원이어서 적어도 1만~2만개를 배포한다. 디자인 업체에 따로 내는 제작비는 회당 최소 200만원에서 최대 3630만원에 달한다. 정보공개 청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적어도 16억 6185만원의 예산이 이모티콘 제작과 배포에 투입됐다. 이 중 절반이 넘는 9억 7599만원이 지난 한 해 동안 쓰였다. 1억원 이상 쓴 기관은 보건복지부(1억 3564만원), 질병관리본부(1억 450만원, 제작비 제외)와 교육부(1억 763만원) 등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9930만원을 썼다. 이모티콘에 얼마를 썼는지조차 모르는 기관도 적지 않아 실제 투입된 예산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는 정보공개를 요구하자 “이모티콘을 제작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2016년 8월에 여가부가 만든 이모티콘을 제시하자 1620만원을 썼다고 정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15년과 2016년에 적어도 2차례 만들었지만 “해당 사항 없다”고 답했다. 2017년 3월 이모티콘을 배포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재단에 해당 사업을 했던 직원이 퇴사해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2015년 제작 사실이 확인됐지만 “모든 부서가 회신을 하지 않았다”며 정보가 없다고 처리했다. 적잖은 세금이 들더라도 효과가 크면 장려할 만하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모티콘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한 번 받고 예쁘지 않아서 잘 쓰지 않는다”, “친구를 추가해 이모티콘만 받았다가 도로 친구에서 삭제했다” 등의 반응이다. 이 때문에 SNS로 정책이나 행사를 홍보하려던 기관은 구독자수(플러스 친구수)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이모티콘을 만들게 된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재난 관련 정보를 카카오로 제공하겠다는 지자체나 기관도 있지만 모든 주민이 카카오를 쓰는 것도 아닌 데다 이미 문자로 재난 등은 폭넓게 알릴 수 있어 카카오 계정 자체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이모티콘 디자인이 기획 의도와 상충되거나 오히려 홍보하려는 정책에 반감만 키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종시는 지난해 10월 한글날에 세종대왕 얼굴을 딴 ‘내가 이러라고 한글을 만들었나’라는 이모티콘을 내놨다. 그런데 말풍선에 담긴 문구에 세로쓰기를 적용하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도록 잘못 썼다. 이모티콘을 받은 A씨는 “세로쓰기 방향이 틀려 이모티콘을 받고 황당했다”면서 “한때 다운로드가 멈췄기에 디자인을 수정할 줄 알았는데 디자인은 그대로였다”고 지적했다. 2015년 고용노동부는 이모티콘으로 임금피크제 등을 홍보하려다 구설에 올랐다. 당초 10만개를 배포하려 했지만 6만 5000명이 받는 데 그쳤다. 물론 카카오톡으로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도움을 주는 기관들도 있다. 우편 도착 정보를 알려주는 우체국은 이날 기준 730만명이 친구로 등록돼 있다. 여러 질환에 대한 예방법 등을 알리는 질병관리본부도 15만 2000여명이 구독 중이다. 카카오톡은 문자 발송 비용의 절반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이모티콘으로 공공기관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해 친근함과 인지도를 높이는 것 외에도 SNS 자체 활용도를 높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는 신용보증기금(2월), 경기 안양(상반기), 경기 광주(하반기) 등의 기관이 카카오 이모티콘을 배포할 계획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이낙연 총리 17일 ‘말모이’ 관람…한일관계 메시지 나올까

    이낙연 총리 17일 ‘말모이’ 관람…한일관계 메시지 나올까

    이낙연 국무총리가 오는 17일 영화 ‘말모이’를 보러간다고 총리실이 15일 밝혔다. 한글 보존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우리말가꿈이’ 회원들과 동반 관람이다. 말모이는 우리말이 금지된 1940년대 일제 강점기에 한글을 지키려고 노력한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총리실 관계자는 “3.1 독립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영화라고 판단해 관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공식일정으로 영화 3편을 봤다. 2017년 8월에는 페이스북 친구들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를 봤다. 지난해 1월에는 6월 항쟁을 그린 ‘1987’을 관람했다. 이어 지난해 6월 에르신 에르친 주한 터키대사와 함께 터키 영화 ‘아일라’를 봤다. 이 총리는 최근 한일관계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만큼 영화 관람과 더불어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이 총리는 작년 10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정부 입장문을 발표하고서 최근까지 한일관계 메시지를 지속해서 냈다. 지난 1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한일 양국이 역사의 부채는 그것대로 해결해 가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12일에는 3·1운동 지도자 손병희 선생 묘소를 참배한 뒤 “일본은 과거 앞에 겸허하고, 한국은 미래 앞에 겸허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재직 시절 도쿄 특파원을 지내는 등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지일파로 꼽힌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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