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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부봉사모임 ‘문화를 나누는 사람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옷로비사건때 남자들은 여자들을 싸잡아 손가락질했다.할 일이 없으니까 모여 밥 먹고 ‘나훈아 쇼’보고 쇼핑이나 몰려 다니다가 저꼴 난 것 아니냐고. 그러나 밥먹고 공연보러 다니다 자원봉사단체를 만드는 여자들도 있다.사단법인 ‘문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문나사’는 98년 2월 ‘이렇게 좋은 연주회며 연극을 우리끼리만 보기는 너무 아까워’ 만들어진 주부자원봉사모임.이 모임의 주부들은 매달 한차례 빈민지역 어린이들을 찾아다니며 문화의 향기를 함께 나눈다. 지난 24일 오후5시 동부이촌동 온누리교회 신관4층 강당에서는 ‘문나사’정기공연이 한창이다.이날은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관악구 난곡동 어린이100여 명이 초대됐다. 첫 번째 순서는 어린이 전문극단 ‘사다리’의 ‘무엇이 될까’공연.신나는 노래,율동과 함께 플라스틱 막대기와 고리로 연신 만들어내는 온갖 물건들의 형태에 아이들은 홀린듯 눈을 뗄줄 모른다. 그 다음 순서는 신세대 국악인 김용우의 ‘쉽게 배워보는 우리 민요’. 요즘아이들 최고의 꿈은 백댄서라는데 웬 국악? 아니나 다를까 한복입은 아저씨가 장구까지 들고 나타나자 아이들은 금세 심드렁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가 ‘보도듣도 못한’ 춤사위로 어깨를 덩실거리며 흥겨운 가락을먼저 뽑자 아이들은 이내 자세를 고쳐앉는다.“남생아 남생아 촐래촐래가 잘 논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신바람이 난다. 강당 뒤켠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문나사’ 회원들은 모두들 흐뭇한 표정이다.바로 이 순간 이 맛 때문에 출연진들을 섭외하러 뛰어 다니고 조명과 음향을 손수 준비하느라 힘이 들어도 고된 줄을 모른다. 모임을 처음 만든 윤화자 대표(60)는 진작부터 자원봉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그러나 26살때 ‘직장을 갖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해 정신없이 3남매를 키워놓고 숨을 돌리고 보니 40대 중반. 본격적으로 해볼만한 일을 찾았다.호스피스도 했지만 6개월간 돌보던 암환자가 세상을 뜨니 너무 허무했다.차라리 어린 새싹들을 돌보는 것이 더 보람있겠다 싶었다.그러다가 평소 마음이 맞는 주부 20여명을 모았다.300여 명의 후원자중엔 남편 민병국(변호사·62)씨도 합류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남을 돕는다지만 사실 기쁨을 얻는 쪽은 우리들이예요.나처럼 평범한 주부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줄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창립회원이자 전 YTN아나운서를 지낸 김순영씨의 말이다. ‘문나사’회원들이 공연봉사자를 모시는 방법은 한마디로 ‘무대포식’.소리꾼 김용우씨만 해도 우연히 라디오프로(현재 EBS 낮12시 ‘우리가락 노래가락’진행)를 듣고 그에게 무작정 찾아가 출연약속을 받아냈다.성악가 박인수교수,가수 이동원씨도 모두 이런 식으로 섭외했다.고맙게도 제의를 받은거의 모든 이들이 흔쾌히 응해줬다. “칼릴 지브란 시에 이런 귀절이 있더라구요.‘내가 어떤 이의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면 그에게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오늘도 ‘문나사’회원들은 이 시귀를 새기며 그늘진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가슴에 문화라는 한그루 나무를 심어가고 있다. 허윤주기자
  • EBS 한여름 ‘생명의 눈’ 제작 구슬땀

    지난 14일 강원도 강릉시 이웃의 깊은 산골.백두대간의 줄기에서 멀지 않은 참나무군락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그들은 나무 한그루에 카메라를 대고 오전 내내 떠날 줄 모른다.나무를 찍나 했더니 나무에 붙은 장수풍뎅이를 화면에 담고 있는 것이었다.EBS ‘과학의 눈’(가제) 가운데 생물영역인 ‘생명의 눈’(가제)의 제작 현장이다. ‘과학의 눈’은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으로2001년 3월부터 총 80회에 걸쳐 방송될 예정이다.분야는 물리,화학,지구과학,생물 등 모두 4개다.올해부터 EBS에서 ‘사전 제작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1년 먼저 제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눈’의 한 부분인 ‘생명의 눈’은 주로 일상생활에서 친근하게접할 수 있는 생물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만들고 있다.동·식물의 생태(生態)를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교육용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일이라 시간과 노력이 더욱 많이 든다. 이날 제작팀에게 포착된 장수풍뎅이는 4∼5년 전만 해도 멸종이 우려되는희귀 곤충이었다.특히 장수풍뎅이의 생태를 담은 필름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제작팀은 장수풍뎅이의 움직임을 초긴장속에 지켜본다.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이다.드라마와 달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없고 언제 날아가 버릴 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한 번 놓치면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한동안 잠든 듯이 참나무에 붙어있던 장수풍뎅이가 나무 아래 쪽으로 서서히 내려가자 이효종PD의 움직임이 빨라진다.서영호 촬영감독은 가능한 가까운 거리에서 밀접 촬영하기 위해 자체 제작한 5㎜렌즈 크레인 카메라를 들고 숨을 죽인 채 따라간다.급경사 면에서 미끄러져 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하지만 카메라는 놓지 않는다. 이PD는 장수풍뎅이 촬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그동안 찍어둔 필름을 공개했다.청개구리가 멋쟁이나비를 잡아먹는 장면,남방계열의 거미가 교미 중인 모기를 포획하는 장면,거품벌레가 집을 짓는 장면 등이 펼쳐진다.희귀곤충 무궁화하늘소의 모습도 언뜻 지나간다. ‘생명의 눈’은 ‘곤충의 결혼식’,‘내 친구 잉꼬부부’,‘동물의 얼굴’,‘꽃의 비밀을 풀자’ 등 주제별로 모두 40회에 걸쳐 방송될 예정이다. 장택동기자
  • 부천시, 기업체에 찬조금 요구 말썽

    경기도 부천시가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면서 관내 기업체들에 잇따라 찬조금을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5일 부천지역 기업체들에 따르면 시는 13일부터 열리는 제4회 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를 위해 13억2,000만원의 예산지원과 별도로 관내 업체들에 협조문을 보내 1,000만∼1억5,000만원의 찬조금 협찬을 요구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에도 제3회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관내에서 대규모 공사를 시공중인 D건설업체로부터 1억5,000만원,시 금고인 농협과 P반도체에서 5,000만원씩 8개 업체로부터 모두 3억8,000만원의 찬조금을 거둬들였다. 시는 이 결과 지난해 10억원의 예산지원과 1억800만원의 영화상영관 수익금을 포함해 모두 16억9,000여만원으로 행사를 치러 이중 3억여원을 남겼다.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영화제 행사 협찬 명목으로 1억원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5,000만원을 지원했다”면서 “이런저런 행사 때마다 손을 벌려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달 원미구 도당동에서 장미축제를 열면서 500만원의예산이배정돼 있는데도 S도시가스 등 관내 업체들에게서 후원금 명목으로 1,000여만원을 거뒀다. 지난 4월에는 새천년 기념식수 사업을 하면서 시민참여가 저조하자 관급공사업체 등에 한그루당 1,000여만원이 넘는 나무를 협찬받았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 국비지원 중단 등 재정난으로 영화제 개최에 차질이 예상된다”며 “기업체를 대상으로 찬조금 지원을 요청할 수 밖에 없는실정”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자랑스런 공무원] 대구 남구청 李東春계장

    삭막한 도심 속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대구 남구청 이동춘(李東春·49·임업 6급) 녹지계장은 ‘녹색의 마술사’로 통한다. 이씨의 손이 가는 곳마다 모두 자연이 되살아나는 녹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남구의 중심로인 중앙대로 분리대에 농촌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풍년거리’를 조성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도로 분리대에 옥수수,수수,해바라기 등 농작물을 심어 아스팔트뿐인 삭막한 거리를 자연이 숨쉬는 거리로 바꾸어 놓았다. 자동차로만 가득했던 아스팔트 도로가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노인들에게 옛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명물거리로 바뀐 것이다.지난해 가을에는 주민들과 함께 옥수수,수수 등도 수확,겨울에 앞산의 야생조수 먹이로 사용하게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남구지역 주요도로 가로등에 걸린 꽃바구니도 이씨의 작품이다.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을 담은 바구니 260개를 도로변 가로등에 내걸어 운전자들과 보행자들에게 산뜻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동네 골목 버려진 자투리땅도 이씨의 손만 가면 아름다운소공원으로 변해버린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대명 9동 청록타운 뒤편 공터를 아름다운 소공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청소차 8대분의 쓰레기를 치우고 여기서 나온 돌을 이용해 멋진 돌탑을 세웠고 동네 어귀에서 나뒹굴고 있는 폐타이어를 수집,주변담장을 꾸몄다. 이씨의 노력에 주민들도 화답,너도나도 나무 한그루씩을 기증했다.지금은 400여그루의 나무가 숨쉬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씨는 숲가꾸기 공공근로사업으로 발생한 부산물 처리를 고민하던 중 직접 파쇄기를 구입,나무가지 등을 잘게 부셔 조경수 월동자재 및 비료로 재활용하기도 했다. 보·차도 진출입 차량으로 인한 가로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직접 철재 가로수 보호대를 고안,대구지역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씨는 모범가장으로도 소문나 있다. 일찍 홀로된 노모(74세)를 극진히 모셔 주위사람들로부터 타고난 효자라는소리를 듣는다.여동생 4명도 모두 출가시켰다. 이씨는 “앞으로도 회색빛의 삭막한 도시거리를 자연이 살아 숨쉬는 녹색거리로 바꾸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오동도 동백 붉은 꽃길따라 봄이 ‘성큼’

    아직도 겨울바람이 차지만 은근히 봄이 기다려지는 때다.봄을 찾아 떠난 곳은 여수 오동도.매년 이맘때면 붉은색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고 관광객들이앞다퉈 봄향기 맡으러 찾는 곳이다.오동도는 여수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거리에 있다.시내에서도 가까워 상춘객들의 발길이 끓이질 않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기점이자 종점인 오동도에는 3만 7,000여평에 4,000여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한다.그 이름은 멀리서 바라보면 생김새가 오동잎처럼보여서였다고도 하고,옛날에는 오동나무가 숲을 이루어 그렇게 불렀다고도한다.충무공 이순신이 부임한 뒤 대나무를 심게 해 대나무가 무성해지자 ‘대섬’으로도 불렀다.지금은 동백과 대나무를 비롯해 190여종의 다양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그중 오동나무는 단 한그루 있는데 이는 상징적으로 심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섬 모양이 원래 ‘C’자를 반대로 엎어놓은 것 같았으나 방파제와 연결하는도로를 만들면서 바다를 매립,만이 메워져 둥글게 변했다고 한다.육지에서 700m 남짓 떨어졌지만 오래전에 방파제로 연결돼육지의 한부분으로 여겨질정도다. 동백나무 숲사이로 산책로가 모세혈관처럼 이어져 있었다.바다쪽은 바람이차서 꽃망울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반면 숲에서는 제법 봄기운이 느껴졌다. 활짝 핀 꽃도 발견했다.그러나 꽃을 발견한 기쁨도 잠시.벌써 사람의 손을탄듯 키가 닿을만한 가지 끝에는 꺾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줬다. 오동도 관리사무소에서는 “얼마전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한차례 추위가몰아치면서 꽃이 많이 떨어졌다”며 “3월15일 전후면 활짝 필 것”이라고예상했다.또 동백의 참맛을 감상하려면 산책로만 걷지 말고 바닷가로 내려가보라고 조언한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흔히 보는 동백인‘삼다화’종류와는 달랐다.꽃잎이 5∼7장이고 두꺼웠다.잎사귀는 크고 진초록에 윤기가 났다.그러나 밑둥에서부터가지가 갈라져 자라 수령이 많은 나무라도 나무 둘레가 크지는 않았다. 흔히 꽃잎이 흩날리며 시들어가는 게 꽃의 생리겠지만 동백꽃은 꽃이 가장아름답게 피었다고 생각될 즈음에 마치 목이 부러지기라도 하듯 송이째 ‘뚝’떨어진다.그래서 동백의 꽃말이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한다’‘신중하고허세부리지 않는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보고 “마치 비정한 칼끝에 목이 베어져나가는 것만 같다”고 표현하는이들도 있으나 꽃말처럼 정열과 절개를 나타내는 부분처럼 느껴졌다. 동백숲사이 산책로를 걸으면서 동백꽃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거나 꽃말을 되새겨보는 것도 자기 성찰의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가는 길 ◈서울서 여수까지는 440㎞.만만치 않은 거리다. ◆기차 서울역에서 종착역인 여수까지는 전라선 새마을호(하루 3회)와 무궁화호(9회)가 운행된다.5시간40분 걸린다.여수역에 내려서는 걸어가면 된다◆비행기 서울서 여수까지 하루 12편 있다.여수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면 여수역까지 간다. ◆버스 고속버스는 강남고속터미널에서 40분 간격으로 다니며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여수터미널에서 오동도까지 걸어서 15분정도 거리다.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순천IC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여수로 들어간다. ◈ 음식점 ◈여수특산물인 서대 회를 맛보려면 40년동안 서대 회만 취급해 온 삼학집(0662-662-0261)이 있다.막걸리를 1년이상 발효해 만든 식초를 사용해 감칠 맛이난다. 장어요리가 먹고 싶다면 칠공주장어구이(0662-663-1580)집을,여수 앞바다에서 잡히는 노래미를 먹으려면 노래미식당(0662-662-3782)을 찾아가면된다.남산동 풍물거리시장에서 회를 값싸게 먹을 수 있다. ◈ 주변 가볼만한 곳 ◈◆향일암 해돋이를 볼 수 있는데다 만개한 동백꽃도 즐길 만하다.향일암으로 가려면 터미널이나 역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1시간 간격으로 다니며 소요시간은 40분가량.택시요금은 1만8,000∼2만원 정도. ◆사도의 ‘모세의 기적’ 사도에서는 여수판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음력 2월15일(올해는 3월20일)은 일년중 물이 제일 많이 빠지며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 갈라짐’현상이 나타나 7개 섬이 ‘ㄷ’자로 연결되는 장관을 연출한다. ◆서정시장 여수시내 교동에 있다. 매 4·9일 5일장이 서 시골정취를 느낄수 있다. ◆거문도와 백도 여수항에서 거문도로 가는 배편은 오전·오후 두차례 있으며 1시간40분 걸린다.백도는 39개 무인도로 이뤄져 있으며 명승지로 지정돼섬에 오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백도를 둘러보려면 거문도에서 배를 갈아타야 하며 3시간이 걸린다. 여수 강선임기자 sunnyk@
  • [리뷰] 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신생극단 산울림이 임영웅 연출로 독일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국내 초연한 건 지난 69년이었다.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극단 산울림과 임영웅 그리고 ‘고도…’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그동안 산울림의 ‘고도…’는 국내 연극계는 물론이고 89년 프랑스 아비뇽연극제,90년 아일랜드 더블린연극제를 비롯해 수차례의 해외 공연에서도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그 ‘고도…’가 산울림 창단 30주년 기념공연 겸 서울연극제 특별초청작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산울림의 공연으로는 열네번째,임영웅에게는 열한번째 연출이다.지난 12일 관객들과 함께 객석에서 첫 공연을 지켜본 임씨의 얼굴은 어느때보다 밝아보였다.“매번 최선의 배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공연의 앙상블은 그 이상의 것”이라고 자부한 연출자로서의 직감이 어긋나지않았음을 무대에서 확인한 때문일까. 97년 공연이후 2년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 안석환,한명구,정재진,김명국 등 4명의 중견배우는 한층 원숙하고 조화로운 연기로 극을 안정감있게 끌어갔다. 앙상한 나무 아래서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내와 그들곁을 지나치는 또다른 두 남자의 얘기를 2시간20분동안 지루하지않게 들을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흡인력있는 연기 덕분이었다. 안석환은 유연한 몸짓과 독특한 말투로 응석받이 에스트라공을 몸에 맞춘듯자연스럽게 형상화했다.이미 한번의 블라디미르와 두번의 럭키역을 해낸 한명구는 이번 무대에서 코믹하면서도 비극적인 블라디미르의 내면을 깊이있게표출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포악하지만 어딘가 비장미가 숨어있는 듯한 포조역의 김명국,딱 한번의 대사를 높낮이없이 속사포처럼 마구 쏘아대는럭키역의 정재진도 흠잡기 어려운 연기를 보여줬다. 오래 곰삭은 술은 혀끝이 아니라 오감으로 음미하듯 30년 무르익은 산울림의 ‘고도…’에서도 그같은 정직한 연륜이 묻어난다.한그루의 나무조차 배경이 아니라 배역으로서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무대였다.17일까지,문예회관 대극장(02)760-4800이순녀기자
  • [외언내언] 이런 市의원

    바른 정치에 대해 묻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孔子)가 대답하기를 ”임금이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워야 한다”고 했다.결코 낯설지 않은 말이다.군신(君臣)이 저마다 제 몫을 하고 제할일 하는 데 정치가 바로 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이런 정치라면 두말할 것없이 나라가 잘 되고 백성이 편안해질 것같다.공자가 옛날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를 산 사람이지만 그 말뜻은 지금에도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새삼스럽게 바른 정치에 관한 공자의 말을 꺼낸 것은 정읍(井邑)의 한 시(市)의원때문이다.그가 중앙의 정치엘리트는 아니지만 공자 말씀을 적용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을 것같다.제몫을 다해야 하는 것은 중앙정치엘리트들만의의무는 아니다.어디에 있든 직위와 직책이 무엇이든 제몫의 소임을 다 하는사람이 많아야 총체적으로 정치가 잘 되고 나라와 민생이 편안해질 수 있다. 바로 정읍의 강모의원같은 사람이 그 귀감이 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강의원은 제몫을 다하는 주민의 대표이며 지역지도자다.그가 남다르고 귀감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기 직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철두철미함과 용의주도함,현장을 뛰는 성실성때문이다.그는 갑오동학혁명 유적지의 나무 한그루 잉어 한마리에 관한 일까지를 파악하고 있으면서 이에관해 서릿발같이 집행부를 추궁했다.유적지 기념탑으로 오르는 계단에 심은10여 그루의 조경수가 죽은 이유를 캐물은 것이 그 중 하나다.추궁끝에 그는 이 나무들이 뿌리에 비닐이 감겨진채 심어져 죽게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책임자와 관련 공무원들의 명단을 의회에 보고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의 충실성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은 잉어에 관한 추궁이다.그는 유적지 연못에 넣은 잉어들이 잘 자라느냐고 물었다.사실 연못에 있던 잉어들은 낚시꾼들 때문에 한마리도 남아있지 않고 황소개구리들만 들끓고 있다는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집행부 공무원은 잉어들이 잘 자라고 있다고 엉뚱한 대답을 함으로써 무사안일을 드러냈다.강의원은 또한 유적지 경내에 고장난 가로등이 몇개인지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행정책임자들의 무사안일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직권행사가 아닐 수 없다.강의원의 경우에서 우리는 초창기에 말도 많던 지방의회의 존재이유를 발견하게된다.동시에 우리 행정이 무사안일과 탁상행정에서 못벗어나고 있으며 구태의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어떻든 여기서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제몫을 다함으로써 의회는 의회다워야 하고 집행부는 집행부다워야겠다는 것이다.공자와 강의원이 이에관해 가르치고 있다.
  • ‘꿈’ 담긴 묘목 나눠주기 4년째

    “자연 환경은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나무를 심는 것은 우리가 훼손한 자연에 대한 당연한 의무입니다.” 식목일을 앞두고 묘목 나눠주기 행사를 4년째 펼쳐온 푸른공간만들기연합회(회장 鄭元鎬).이 단체는 올해도 서울 강동구 상일동 동방원예종묘 나무전시장에서 시민들에게 1∼2년생 어린 나무를 선물하고 있다.동방원예종묘는 鄭회장이 운영하는 나무 농원이다. 지난달 18일부터 시작한 나무나눠주기 행사에서는 3,500여명에게 1만7,000여 그루의 묘목을 줬다.산수유와 목련·무궁화·살구나무·소나무 등 5그루를 한묶음씩 정성스럽게 묶어서 선물한다.식목일까지 4만5,000여 그루를 나눠줄 예정이다. 회원들은 씨를 뿌려 묘목을 키웠다.한그루 값은 500∼1,000원.4년동안 무료로 나눠준 1∼2년생 묘목은 15만그루.나무값만 억대에 가깝다. 회원들은 나무를 나눠주며 “공해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를 가꾸는 것”이라면서 환경 보호에 앞장서 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나무 나눠주기 행사는 96년 ‘한국 112 무선봉사단’ 회원 40여명이 뜻을모아 시작했다.이후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200명을 넘어섰다.회원들은 상업·회사원·택시기사 등 대부분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회원 吳載德씨(47·사진관 운영)는 “그동안 환경운동이 공해감시나 환경파괴 저지 등에 치우친 감이 있다”면서 “진정한 환경운동은 나무심기”라고강조했다. 나무를 받은 유치원 교사 沈永信씨(35·서울 동대문구 장안동)는 “어린 나무를 유치원 앞뜰에 심어 큰 나무가 될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가꾸겠다”고말했다.부모와 함께 나무나눠주기 행사장을 찾은 金基泰군(10·서울 은석초등학교)도 “나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환경보호의 중요성도 알게 됐다”며 좋아했다.(02)428-6222.
  • 자크 브로스 著 ‘나무의 신화’ 번역 출간

    ◎나무는 우주적 명상의 기반/나무는 신이 지상으로 내려오고/죽은자들이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또한 삶의 원천이자 기원의 대상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나무에 정한수를 떠놓고 치성을 들이는 어머니,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은 선조들… 나무는 우리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삶의 원천이자 정서적 고향이고 기원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관계는 비단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듯 하다.프랑스의 수목학자이자 문필가인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이학사,주향은 옮김)에서 수목학과 인류학,어원학을 지렛대로 나무에 얽힌 신화를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바로 우주목(宇宙木)이다.하늘과 땅과 지하 등 세 세계를 연결해주는 이 나무는 신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죽은 자들이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통로이자 신이 현존하는 존재 자체이기도 했다.우주목은 북유럽에서는 물푸레나무로,북아시아에서는 전나무로,시베리아 지방에서는 자작나무로,인도에서는 거꾸로선 아슈밧타 나무로 나타난다.중국인들에겐 똑바로 세운 나무인 ‘키엔­모우’(建木)로 대변된다.다른 문명과의 접촉이 없었는데도 이러한 신화가 발생한 것은 우주목 신화가 보편적임을 말해준다. 식물의 생명은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다.인간은 여기에서 재생,젊음,건강,불멸성과 같은 다른 의미들을 해독한다.인간은 보호자요 양분의 제공자인 나무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주의 기원을 알게 된다.나무는 이제 인간의 조상이자 인간의 기원 자체가 된 것이다. 봄날 나무를 마주하고 꿈꾸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나무는 우주적 명상의 기반이 된다.하늘과 지하라는 두 심연이 마주치는 나무 줄기에 몸을 기대면 인간은 나무와 하나가 된다.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득도를 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라는 말을 통해 나무들은 살아 있고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그러나 신성한 나무와 성림(聖林)은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파괴된다.독단적이고 비관용적인 유일신이 널리 퍼지면서 신화는 미신으로 전락하고 만다.저자는 한때 자연 속에 모든 기호가 함축돼 있었다고 말한다.즉 자연 그 자체가 내적인 힘에 의해 하나의 의미를 상징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자연이 그 힘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자연을 파괴했고 그 결과 응징을 받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 책이 나무에 얽힌 우주관을 전해주고 있지만 읽기가 그렇게 녹록 하지만은 않다.옮긴이도 후기에서 “저자가 신화에 대한 지식을 독자들이 알고 있다고 가정,이야기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어 이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하듯이 동서양을 넘나드는 나무신화를 좇기 위해선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 쉽고 재치있는 해설 ‘방송 경제 전도사’/성신여대 강석훈 교수

    ◎“일부 지도층 IMF 위력 실감 못해 안타까워” “IMF 한파는 비껴갈 수 없는 우리 경제의 숙명적인 터널이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최근 모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경제이론을 알기 쉽게 해설,시청자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34·경제학과)의 IMF경제학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모경제일간지에 IMF 구제금융 등 우리의 경제위기를 날카롭게 지적한 기고를 한 뒤 이름이 알려져 방송에 데뷔하게 됐다. 초보자 답지 않게 재치와 유머가 뛰어나 이 프로정착에 기여했다. 훤칠한 키에 깔끔한 외모,해박한 지식 덕분에 그는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결혼반지와 신분증을 항상 지니고 다닐 정도다. 강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계량경제학 화폐금융론’을 전공,4년만인 27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박사과정 2년차때에는 1년차들의 강의를 맡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강의평가가 5점 만점에 4.98점이 됐다.귀국한 뒤에는 기업 경제연구소에서 이론과 실물을 공부했다. 강교수는“처음에는 경제이론을 내놓아도 나이가 적은 탓인지 주위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아 머리결을 뒤로 빗어 넘겼고 감색 양복만 입고 다녔다”면서 “어느 사회에서나 앞뒤가 막힌 권위는 버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교수는 “일부 사회지도층이 지금보다 더 큰 고통으로 닥칠 IMF라는 공룡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사회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경제란 개체의 특성이나 가치관을 존중할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면서 “생활속의 경제논리란 나무 한그루가 아닌 숲을 보는 지혜로 매사를 조목조목 따져보는 태도에서 키워진다”고 강조했다.
  • 김대중 대통령 취임­미리 본 취임식

    ◎남북 합수·합토로 통일기원 기념식수/민족 웅비 그린 파노라마 영상에 “다시 뛰자”/식후 어가행렬·동래학춤 등 퍼레이드 장관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이 25일 상오10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거행된다. ▷식전행사(상오 8시30분∼10시)◁ 초청인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식장에 몰려든다.초청인사는 4만여명.지위의 높낮음에 따라 자리가 구분돼 있지 않아 취임식을 잘 보려면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단상 초청인사가 자리에 앉으면서 식전행사가 시작된다.서울시향이 ‘DOC와 함께 춤을’‘젊은 그대’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성주풀이’‘선뱃노래’ 등의 전통음악을 들려준다.그룹 코리아나의 취임축하 공연에 이어 다듬이 소리,광복의 환희,88 올림픽개최의 순간 등을 편집한 파노라마 영상 ‘민족의 터전’이 상영된다. 코라손 아퀴노 전 필리핀대통령,폰 바이체커 전 독일대통령,마이클 잭슨,나카소네 전 일본수상,사마란치IOC위원장 등 세계 유명인사들도 단상에 자리한다.북타악 주자 30명이 북을 연주하고 무용‘도약을 향한 맥박’이 참석자들의 흥을 돋운다.이어 식전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합수·합수제가 열린다.16개 시·도와 이북 5도의 흙과 물을 함께 섞어 겨레의 화합을 기원하는 순간이다. ▷취임식(10시∼11시) 김새대통령은 국립묘지 참배(상오 8시35분)와 청와대 도착 및 훈장수여(9시20분)에 이어 청와대를 떠나 상오 10시 취임식장에 도착한다.김신임대통령은 참석자들의 우뢰같은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다.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15대’를 상징하는 1천500마리의 비둘기가 하늘을 힘차게 비상한다.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가수 조수미씨가 ‘오,동방의 아침나라’를 열창한다.이 곡은 겨레의 노래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곡. 김새대통령은 국난극복,지역차별철폐,남녀평등,민족화합,안보의 중요성,인권보장 등의 메시지를 담은 취임사를 22분동안 낭독한다. ▷식후행사(11시∼12시) 김새대통령은 단상에서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환송한뒤 떠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단 아래로 나란히 내려와 김이임대통령을 환송한다.김새대통령은 이어 국회의사당 앞마당 국기게양대 뒷편에서 12년생 소나무 한그루를 기념으로 식수한다.식전행사에서 만들어진 합수·합토가 여기서 뿌려진다. 이어 김새대통령이 중앙통로를 따라 행진하면 군장성단은 새로운 군 통수권자에게 거수경례를 한다.김새대통령이 국회의사당 바깥에서 기다리던 국민화합대행진에 합류하면 각 시·도에서 올라온 퍼레이드가 여의도를 꽃피운다.1천9백여명의 퍼레이드단은 서울시의 어가행렬,부산 동래학춤,울산의 처용무,경남의 통영 승전무,충북의 평화의 꽃,인천의 은율탈춤,경기의 남사당패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마포대교까지의 퍼레이드가 끝나면 김새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와 정식으로 집무를 시작한다. ◎여야 표정/2여 자축… 한나라 “야 실감나게/거야선 소야될까 우려속 취임식 참석 “알아서” 김대중 새 대통령의 취임을 하루 앞둔 24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당으로의 마지막 날을 ‘기쁨과 부담’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냈다.반면 한나라당은 취임식을 하루앞두고 야당을 실감하는 표정이었다. 국민회의는 이날 조세형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간부간담회는 당비 납부를 의무화하는 당헌개정안이 상정됐다.앞으로 집권여당의 살림은 당원들의 ‘헌금’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인 동시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표현이었다. 조대행은 “오늘이 마지막 간부회의인가”라며 잠시 감회에 젖는 듯했지만 IMF위기 속에서 집권여당을 기념하는 행사도,당원들에 대해 감사의 표시도 못하는 점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만들기에 앞장섰던 동교동 측근들도 “평생 소원이 이뤄졌다”고 기뻐하면서도 내심 ‘이별’의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자민련은 JP총리 인준이라는 ‘발등의 불’ 때문에 여당으로의 변신을 즐길 겨를이 없었다.야당으로서 마지막 당무회의도 7분만에 종결하고 소속의원들을 한나라당 의원설득을 위해 현장으로 급파시켰다. 이에반해 한나라당은 15대 대통령 취임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정권교체를 실감하는 분위기.특히 고난의 연속인 앞으로의 야당생활에 대해서도 우려가 교차하는 표정이며,김대중 새 대통령측이 여소야대 정국 탈피를 위해 의원빼가기를 본격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그러나 당지도부는 의원들의 취임식 참석문제는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해외 반응/“한국 정치·경제 대변혁 돌입”/각국,남북관계 진전 점치며 우호지속 희망 대선때부터 이례적 관심을 가져왔던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각국·유럽 등 각국정부와 언론들은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은 한국이 정치 경제 등 여러방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반응들을 보였다.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1면에 김대통령의 칼라사진과 함께 장문의 소개 기사를 게재한 데 이어 뉴스위크도 최근호에 김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싣고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리는 그는 추방자에서 대통령으로의 놀라운 대장정을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또 미 평화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인 스캇 스나이더는 24일 워싱턴포스트에 ‘오늘 김대중 당선자의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정착 노력은 지난 수십년간보다 훨씬 전도가 밝아 보인다’며 희망섞인 보도를 했다. 유럽의 경우 한국이 현재 경제위기에 처해있으나 김대통령은 경제개혁에 대한 신선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한반도 최대현안인 남북관계 있어서도 전임대통령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새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중국은 특히 김대통령의 취임으로 한중 선린우호협력관계가 유지,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통해 제시한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의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선언구상을 면밀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권이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 출범하게 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 행정에 ‘그린 마인드’ 접목을/이정일 광주서구청장(공직자의소리)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나라처럼 급속하게 도시개발이 진행된 나라는 없을 것이다.이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들이 무분별하게 팽창해 삭막함마저 느끼게 한다. 앞으로 1백년 또는 1천년 후 우리 후손들은 어디에서 숨을 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인지 저으기 걱정스럽다. 우리 광주서구는 지금 구시가지와 신도심이 맞물려 새로운 도시의 틀을 형성해가고 있다.서남해안시대의 거점도시인 광주의 외부에서 접근하는 모든 동선이 집·분산되는 교통요충지다. 그런만큼 인구 집중이 불가피하다.이제부터라도 환경을 최우선시하는 도시계획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우리구는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도시가꾸기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상무신도심 및 금호·풍암택지의 아파트와 신축건물은 색채 및 그래픽을 심의해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도심에 자리해 오염이 심화되고 있는 운천저수지와 풍암제·전평제 등은 그대로 살려 자연탐방코스로 개발중이다. 이미 주변 산에는 산책로를 만들어 시민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매년 철따라 도심에 꽃길을 조성하고 있다.노거수나 바위 하나도 손대지 않고 도시개발을 시행하는 한편,도심을 가로지르는 광주천 살리기 운동도 꾸준히 펴야 한다. 우리구는 이를 위해 녹지확보와 보호수 지정을 서두르고 있다.건축물과 함께 녹지·꽃나무 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환경 보전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환경친화적 사업들은 자치단체의 힘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건축·설계 관계자와 주민의 환경의식 등이 조화를 이뤄야 성공한다. 주민들도 자신의 집앞에 조그만 화단을 가꿔나가고 건축가들은 환경친화적 공간 활용에 힘써주길 기대한다. 선진외국처럼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도시를 하루아침에 만들기는 어렵다.한그루의 나무도 소중하게 가꾸고 심어나가면 언젠가는 전원속의 도심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그린 토피아’는 주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이를 위해 모든 행정수행 과정에 환경적 마인드를 접목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 수필가 전숙희(이세기의 인물탐구:154)

    ◎새벽 집필로 하루를 여는 ‘문단의 거목’/반세기 걸쳐 한국문학 세계화 앞장선 ‘여걸’/문학관·여고­전문대 설립한 육영사업가 겉으로 나타난 활약상만으로 전숙희 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장은 대단한 여걸이요 당당한 남성적 위풍을 지닌 것으로 짐작될 수 있다.과연 지난 반세기동안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세계화,한국의 문화운동에 앞장서온 거목답게 그는 지금도 만모의 기색이 없는 예용의 풍모를 지킨다.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끓이고 음악을 듣고 맑게 열려있는 시선으로 글을 써야만 ‘살아있는 보람을 느끼며’ ‘독자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나의 실존을 확인하기 위해’ 한줄이라도 읽고 써야만 비로소 하루일과를 시작한다.그의 글은 청량한 운율을 지니거나 번뜩이는 기지,감각의 범람은 찾아볼수 없다.가족과 친구를 사랑하는 여성적이고 화사한 내용과 그가평생을 몸담았던 한국펜클럽에 대한 발전모색을 곡진하게 이루어내고 있다.그런중에도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불화가 불식된 휴머니즘을 그려내는 것이 그의 글의 특징이다. ○54년첫 수필집 펴내 그는 해방후 지식사회에서 우리 여성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독립해왔는가를 몸소 실천한 귀감일 수도 있다.이른바 신교육세대로서 이화여전시절에는 작가 이태준,시인 김상용에게 시와 소설론을 배웠고 졸업후엔 연세대 출신인 의사 강순구 박사를 만나 결혼,부군이 함북 무산의 철도병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깊은 산속마을에서 서울에 두고온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던 평범한 주부이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운명은 월남후 해방과 더불어 반전되어 경북 안강에 정착하면서 포항의 미군정청 책임관의 비서관,상경후 신문기자로 활약했으며 54년 첫번째 수필집 ‘탕자의 변’을 출판하자 그의 이름앞에 ‘수필가’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사람이 한평생 한권의 책을 써낸다는건 얼마나 값진 일인가’.수필가의 길로 정진하기로 결심했으나 수필은 해박한 지식과 사색과 철학없이는 어려운 장르임을 깨닫고 ‘수필에 가장 가까운 글을 성취하기 위해 마음에 감동이 넘칠때마다 샘물을 길어올리듯’ 문학에 접근해 나갔다. 그는 자라난 환경부터가 특별히 남다르다.부친 전주부 목사는 어느날 부흥회에 다녀오는 길에 5녀1남등 여덟식구가 살던 서울 종로의 계동집을 하루아침에 교회에 헌납하는 바람에 어머니 계성옥 여사가 ‘저 어린자식들을 길거리에다 버리란 말이냐’고 망연자실하던 모습이 가슴의 오랜 멍으로 남아 그때의 충격이 문학의 모태가 되었다고 말한다. ○문학지 ‘동서문학’ 창간 본래는 함남 원산출신이지만 일찍이 집안이 서울로 이전하여 해운업을 하던 조부 덕분에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과정을 마쳤고 결혼후엔 문학을 이해해준 부군이 문학활동을 할 수 있게 물심으로 지원해주었다.문인으로서의 위치가 확보되자 이번엔 ‘문학은 소수의 선택된 자만의 특권이 아니라 1만명이 평등하게 누릴수 있는 인격적 수단’임을 천명하여 그는 순수문학지 ‘동서문학’ 창간을 서두르게 되었다.그때도 ‘한권의 좋은 문학잡지에서 한페이지의 좋은 글을 읽는다면 그사람은 배부를 것’이라는 신앙심이 그에게 책을 낼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다.이 책은 나의 고지식한 집념이요,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내가 문화로부터 받은 은혜를 문화애호가들에게 되돌려준다’는 헌신 봉사와 휴머니즘이 지난 27년간 잡지를 이끌어온 힘이 되고있다. 그의 성품은 기운이 맑고 깨끗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누리며 살아왔다고 할수 있다.방대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는 선배들에게 극진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자상하게 돌보고 어루만진다.문단에서는 소설가 강신재,시인 김남조씨와 절친하고 정·재계를 비롯한 여러 각층과의 교분을 트고 있다.자녀는 2남2녀(장남 영국씨는 전자공학박사,차남 영진씨는 구조역학박사고 장녀 은엽씨는 조각가,차녀 은영씨도 화가).평소에는 그가 설립한 계원예고와 전문대인 계원조형예술학교가 있는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으로 출근하고 1주일에 두번 중구 장충동의 동서문학 편집실에 나온다. 지난 11월,계원 캠퍼스에 ‘동서문학관’을 개관했을때 문학평론가 이어령씨(이대 석좌교수)는 ‘우리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구슬들이 꿰지지 못한채로 그냥 뒹굴고 있는가.그러나 이번 전숙희 선생님이 튼튼한 실이 되어 한국문학의 구슬들을 꿰어놓으시니 여기 한국에서 처음으로 문학관이 열리게됐다’고 축사를 보냈다.이 문학관에는 그가 전생애 동안 일념으로 모아온 희귀장서와 초판본의 시집,문인들의 육필과 서예 도예품 등 국제펜클럽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다.어렵고 가난하고 서러운 시대를 살아온 문인들이 오랜유랑끝에 천년의 사리탑처럼 머물곳을 찾게된 셈이다. ○국제 펜클럽 종신부회장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직함중에서도 한국펜클럽의 1세대인 모윤숙에 이어 83년 회장에 피선된 이래 국제펜클럽 종신부회장에 선임된것과 동서문학발간,계원학원 설립,이번 동서문학관은 그만의 지대한 업적으로 평가된다.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좋아서,하고싶어서 자청한 일이었고 그때마다 재력이 뒤따라주었다.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 기쁨에 도취될 수 있었음을 신에게 감사하기를 잊지 않는다.‘그대신 주부노릇 부모노릇 등 오상의 도리를 지키지 못했으나’ 공인으로서의 삶을 후회해 본적은 없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많지만자신은 아직 ‘작은 대추나무만도 못하다’는 그는 지금도 ‘목마른 이들에게 샘이 되고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는 한그루 튼실한 나무’가 되고싶은 것이 소원이다.제펜이라는 지적 무대를 통해 우리 문학과 문화를 세계에 알려왔고 세계적인 시인 작가와 교류하면서 비풍이나 격랑이 없이 그는 자신의 주변에 문화의 힘을 임립시킨 것이다.지칠줄 모르는 정열과 샘솟는 활력으로 만사에 책임지는‘전숙희’라는 이름은 우리 문화사에 금박으로 기록되어도 손색이 없는 푸른 거목에 틀림없다. □연보 ▲1919년 함남 원산 출생 ▲1939년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1954년 첫번째 수필집 ‘탕자의 변’출간(연구사) ▲1955년 아시아재단파견 미국체류중 컬럼비아대학 비교문학과 특강 ▲1960년 국제펜클럽 한국대표 ▲1970년 월간 ‘동서문학’대표 ▲1976년 한국여류문학인회회장 ▲1977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위원 ▲1979년 계원예술고 재단이사장 ▲1983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회장 ▲1985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 ▲1988년 국제펜 서울대회개최 ▲1989년 예술원 정회원 ▲1991년 국제펜클럽 종신부회장,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장 ▲1992년 계원조형예술학교설립,문화부 도서관발전위원회 위원 ▲1993년 모파상100주기추모행사참가 현재­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명예회장,계원학원재단이사장,동서문학대표 ‘이국의 정서’(56년) ‘여수상 인디라 간디’(63년)‘밀실의 문을 열고’(69년) ‘삶은 즐거워라(72년) ‘영혼의 뜨락에 내리는 비’(81년)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87년) ‘전숙희의 소련기행에세이’(90년) ‘펜이야기’(92년)‘해는 날마다 새롭다’(94년) ‘문학 그 영원한 기쁨’(95년) 등 17권 대한민국문학상(89년) 대한민국 예술원상(94년) 독일연방공화국 문화훈장서훈(95년)
  • 제4회 전국 초등학교 어린이 환경글짓기대회 대상작

    환경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이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그들의 맑고 고운 눈으로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세심한 것까지 관찰,세상살이에 찌든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9일 저녁 폐막된 서울신문사 주최 제4회 전국 초등학교 어린이 환경글짓기대회 수상작품들을 보며 쉽게 그것을 알 수 있다.이번대회에서 환경부장관상과 내무부장관상,교육부장관상 등 대상을 받은 세 어린이의 작품을 소개한다. ▷환경부장관상◁ ◎돌아오지 않는 우리집 제비­김지혜/“제비야! 농약 안묻은 벌레 잡아줄게 돌아오렴” 언제부턴가 우리 집에는 세군데의 제비집이 있었다.지지배배 지지배배 예쁘게 울었지만 마당에 제비가 똥을 흘리고 다닐때는 지저분했다.그래서 제비집 밑에 받침대를 받쳐 주니 마당의 지저분한 것도 없어지고 아기제비도 마당에 떨어지지 않았다.이렇게 제비는 받침대의 고마움을 알고 엄마 제비와 아기 제비는 잘 자라서 강남으로 돌아갔다. 어느덧 봄날이 살며시 다가왔다.그런데 강남갔던 우리 집 제비는 봄이 가고,여름이 가고,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았다.언젠가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다.아나운서 아저씨가 그 많던 제비가 그 공기맑던 시골에도 몇마리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고…….바로 자기들의 먹이인 벌레들을 먹고 죽은 것이었다.농약먹고 죽은 곤충들을 맛있게 먹어서 자기들 자신까지 죽은 것이라고 아나운서 아저씨도 흥분해서 말하였다.불쌍한 제비들,불쌍한 제비들…….우리 집 제비도 이래서 돌아오지 않았을까?…….다른 집 제비는 벌써 강남으로 돌아갔는데 우리 집 제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우리 집 제비는 어떻게 하면 돌아올수 있을까? 우리들이 제비 집을 깨끗이 청소하면 돌아올까? 아니면 맛있는 먹이를 주면 돌아올까?나는 너무 궁금하여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로 많단다.함부로 쓰레기 버리지 않기,샴푸로 머리 감지 않기,학교에서 실시하는 급식 안 남기기 등등이지.” 내가 지금 실천하고 있는 일이었다.휴지도 함부로 안 버리고,학교 급식도 남기지 않아 급식소에서 음식 남기지 않는 어린이에게 주는 재활용 비누도받아 오고 있다.그런데 제비에게 미안한 것은 샴푸를 조금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신 이야기는 제비를 살릴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환경을 살릴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 낙동강 하구언에 있는 을숙도에 가 보았다.생활 매립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가 잘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도 기꺼이 동참했다.그리고 작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낙동강 물은 우리 부산의 생명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낙동강 물이 맑아야 농작물도 잘 자라고 농부 아저씨들도 농약을 뿌리지 않게 될 것이다. 모두가 노력하여 모든 환경이 깨끗해지면 우리집 제비도 돌아올 것이다.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한번 더 희망을 가져본다. “제비야,우리집 제비야.내년에 꼭 돌아온다면 내가 직접 농약 묻지 않은 벌레를 잡아 줄게.” ▷내무부장관상◁ ◎산성비­박차미/“빗속 흙탕물 튀기며 마음껏 노는 세상 왔으면…” 엄마는 내게 항상 비맞고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신다.왜냐하면 중국에서 오염된 물질이 이동해와 강원도에도 산성비가 내리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나는 비맞으며 흙탕물 튀기는 것이 재미있기만 한데 너 대머리 되고 싶니 라든가 몸에 안좋은 산성비를 계속 맞으면 건강에 안좋다고 하신다.하지만 난 비에도 산성과 알칼리성이 있나 뭐 하면서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방과후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께서 봉숭아를 여러개 심어 놓으셨다.화분마다 날짜와 번호가 붙어 있었다.나는 붕숭아물을 들여 주시려고 화분을 가져다 놓으셨구나 하며 그냥 지나쳤었다.그런데 우리 가족이 모이는 저녁에 엄마가 말씀하셨다.저 봉숭아는 꽃을 피우려는 것이 아니고 실험을 할 것이라고 하셨다.내가 하도 개구지게 비맞고 다녀서 비맞지 말라고 말려도 들은 체도 안하기에 산성비가 왜 나쁜지 직접 보여 주겠다고 하셨다.어머니께서는 환경을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곳에 난 실험을 해 보일테니 언니와 내게도 일지를 꼭 적도록 당부하셨다. 우선 봉숭아에 줄 물은 플라스틱 병 세개를 준비하였다.그리고 병 한개에는 4분의 1컵 정도의 식초를 넣고 다른 한병에는 5분의 4정도의 식초를 넣었으며 나머지 한병은 수돗물을 담았다. 병에 번호를 매겨 1번은 적은양의 산,2번은 많은 양의 산,3번은 수돗물이라 이름표를 붙였다.세개의 화초를 환경이 똑같도록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놓아두었으며 물병과 마찬가지로 화분에도 번호를 매겨두어 구분하기 쉽게 해놓았다.처음 며칠은 물을 조금씩 주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거의 변화가 없는듯 보였다.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1번과 2번의 물을 준 봉숭아는 기운이 없어 보이더니 시들기 시작했다.1번 약산성 물을 준 화초는 잎사귀가 시들어 갔고 2번의 많은 양의 산을 준 봉숭아는 완전히 시들어 버렸다.물론 우리들의 실험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보다 효과를 빨리 보기 위해 많은 양의 식초를 썼지만 계속 내리는 산성비를 맞는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도 나올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산성비는 쉽게 말해 자동차 배기가스와 석탄 석유를 태울때 나오는 가스 등이 비구름속으로 들어가 비나 눈이 되어 내릴때 산성을 띤다고 한다. 그리고 산성비는 삼림 피해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이 마시는 물을 오염시키고 동식물,채소,과일등의 생장발육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물도 먹을수 없고,곡식도 재배할 수 없고,고기떼는 다 죽고 정말 이런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만화영화속 황폐화된 지구,그 모습이 아닐까? 나는 이런 환경을 만들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엄마와 의논해 보았고,산성비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것부터 실천하기로 하였다.학용품 아끼기,자동차 덜 타기,더운물 아끼기,냉장고 문 자주 열지 않기,TV코드 빼기 등등.기름,수돗물,공책,식료품등 공장을 거쳐 나오는 것들은 모두 산성비를 만들수 있는 유해가스나 물질을 배출하므로 모든 물건을 아껴 써야겠다.지금 들녘에는 벼 베는 농부들의 타작소리가 들려온다. 푸른 산과 맑은 물,황금벌판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부모님과 오래도록 살고싶기에 계속 우리들의 환경을 생각하며 산성비 줄이기에 노력할 것이다. ▷교육부장관상◁ ◎우리들의 미래를 위하여­용홍기/“작은나무 한그루 가꾸는 일이 자연사랑 시작” “야,캠프다.” 지난 여름방학때 우주소년단 캠프로 미국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저는 미국의 발달된 문명과 높은 건물,넓은 도로 과학기술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여행을 끝내고 나서 보니 인상깊었던 것중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그것은 바로 그 발달된 선진국의 도심속에서도 울창한 숲과 공원이 있는 것이었습니다.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서울에는 그런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는 숲과 큰 공원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또 나무는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저는 미국에서 본 몇 아름쯤 돼보이는 나무들이 부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도시에서 나무나 숲,공원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그중에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합니다.이렇게 도시속에 있는 공원은 하는 일이 많습니다.실제로 동네에서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놀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그런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공원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또 나무들이 많으면 공기와 지하수도 맑아집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OECD에 가입하여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되었습니다.그리하여 서울은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고 부산은 국제적인 항구도시가 되었습니다.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환경은 그리 자랑스러운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우리나라도 하루빨리 환경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어릴 적부터 작은 나무 하나라도 가꾸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을 살리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그중 하나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던 여의도광장을 잔디와 나무들이 울창한 푸른 여의도 시민공원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그 푸른 여의도 시민공원이 완성되면 우리 서울이 회색빛이 감도는 그늘에서 녹색빛이 감도는 푸르른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할 것입니다.그때쯤 되면 저도 어느 정도 성장하였을 것입니다.그리고 여의도 시민공원에서 제 자식들과 함께 뛰놀고 있을 것입니다.제 자식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우리나라가 가장 아름답고 살기좋은 나라라고 말입니다.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 환경을 잘 가꾸고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 환경보존의 이웃사랑 지름길/성백진 중랑구의회 의원(발언대)

    지난 70년 중랑구 면목 7동에 정착,낮선 서울생활을 시작했다.구두 수선공,서울시 기능직직원,청과물 가게 운영 등 이런 저런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오다 86년 어이없는 화재사고를 당했다. 아들 둘을 잃고 재산을 모두 날리고 나니 의욕마저 잃었다.그러나 이웃들의 도움으로 뜻하지 않은 장의업에 뛰어들었고 열심히 일하다보니 마음과 생활의 안정도 되찾았다. 이때부터 도와준 분들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마을을 돌며 방역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물론 93년과 95년 두차례 소독약에 중독되어 졸도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집안 식구들이 적극 만류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어김없이 이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벌써 10년째에 이른다. 나무심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91년 면목중학교 앞뜰에 처음으로 등나무 12그루를 심었는데 이 나무들이 잘자라 멋진 아치가 됐다.모양이 얼마나 멋진지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고 즐겁다.특히 학생들이 등나무 그늘밑에서 자연학습 등 수업을 받는 것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학교 주변에 은행,대추,무궁화,장미,단풍,라일락 등 여러 나무를 차례로 심었다. 또 용마산이 등산객들이 버린 갖가지 쓰레기로 더럽혀지는 것을 보다 못해 틈만 나면 산에 올라 오물들을 치웠다.이 일도 벌써 7년째나 된다.그리고 등산로 주변에 대추,산벚나무,코스모스와 해바라기를 심어 나갔다. 해바라기는 오존발생의 주범인 이산화질소를 대량 흡수,공기를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해 특히 많이 심었다. 이웃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자연의 소중함과 횐경보전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큰 소득이라고 자부한다.주민들 모두가 이제부터라도 나무 한그루씩을 심어 나갔으면 싶다.면목동이 서울에서 으뜸가는 아름다운 마을이 될 때까지.
  • 남산의 새명물 야외극장 선다/특수소재 천막지붕에 무대·객석 마련

    ◎설치미술가 최은재씨 작품… 내년 완공 남산속에 위치한 국립극장에 멋들어진 야외극장이 들어선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국립극장이 구상하는 이 야외극장은 현재의 야외 마당에 비와 눈을 가리는 천막지붕 및 무대와 객석을 설치하는 것.그렇지만 남산이 풍치지구인 점을 감안해 보통천막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응용설치미술 개념의 예술작품으로 설치,남산속의 새 명물로 삼겠다는게 국립극장측의 설명이다. 이 천막지붕은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최재은씨가 4개월 구상끝에 완성한 작품 ‘팔라디움(보호의 막)’.직경 40m,높이 13m의 철골천막식으로 전체 모양은 네개의 꽃잎을 세겹으로 포개놓은 형태.8개의 강철기둥이 이를 떠받쳐 지탱한다. 천막은 투광력 50%의 특수소재를 사용,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색상은 비교적 화사하고 포근한 톤으로 꾸밀 계획이다. 또 정방형으로 꾸며질 무대는 음향상태를 감안해 지표보다 1m 낮게 설치하며 무대 중앙에는 꿈을 지닌 ‘생명’을 상징하는 5m 높이의 느티나무 한그루를 세운다.최대 수용인원 1천명인 객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배치한다.총공사비는 약 40억원. 극장측은 올 하반기에 야외극장의 개축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어서 늦어도 내년이 가기 전에 남산속에서 빗줄기를 바라보며 각종 문화예술 공연을 음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길륭 극장장은 “날이 갈수록 크게 활성화하고 있는 야외공연은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관람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지만 눈이나 비로 취소될 때가 많아 이같은 계획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이왕이면 남산 일대의 새로운 명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기능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설치미술개념에 접근하게 됐다”고 야외극장 추진배경을 설명했다. 작가 최씨는 “한국의 푸른 하늘을 떠올릴수 있고 보는 이들에게 꿈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 사자의 대사(외언내언)

    유령이 출몰하는 곳은 어디나 음산하다.흐트러진 기왓장 사이로 잡초가 무성한 패가나 오랜 풍상에 퇴락한 고성같은 곳이 유령의 집이다. 유령이 엮어 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비극적이다.영국의 여류작가 에밀리 브론티가 그린 「폭풍의 언덕」에는 분명히 오래 오래 히스클리프의 유령이 맴돌았을 것이다.어렸을적 받은 학대에 대한 처절했던 생전의 복수로도 모자라 히스클리프의 유령은 「폭풍의 언덕」을 차마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유령이야기는 비극적이라기보다 차라리 희극적이다.권오기 통일원 부총리가 10일 전국의 기초단체장들을 대상으로 한 국정설명회에서 전한 북한 이야기는 참으로 해괴하다. 북한은 김일성이 세상을 떠난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외국에 내보내는 대사들의 신임장을 김일성이름으로 발부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기이한 일에 당황한 나라들이 잇따라 항의하자 이제는 김일성이름 밑에 이종옥,박성철같은 부주석의 이름을 부서해 신임장을 내고 있다.그러나 부서후에도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는 신임장 제정을 거절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고. 대사들의 신임장을 김일성이름으로 내는 사연이 또한 재미있다.김일성은 죽지않고 영생 불멸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라고.김일성은 지금도 살아있으며 실제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해주려는 것이라고 한다.따라서 그의 아들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김일성이 죽은후에도 계속 김일성배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달도록 하고 있는것과 같은 맥락. 10일자 신문들은 북한 혜산시 민둥산의 다락밭 풍경도 보여주고 있다.나무 한그루 없는 산에 누더기처럼 다닥다닥 만들어놓은 다락밭에서 무엇이 자랄수 있을것인지 알수가 없다. 이런 일들은 폐쇄사회의 병폐가 얼마나 무서운지,1인 지배체제의 종말이 어디까지 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 기행문학 거장 서하객의 강음(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8)

    ◎기인의 거룻배 드나들던 선착장엔 물이끼만/험산심곡 떠돌며 쓴 「서하객유기」 실록문학의 백미/황산자락 전쟁유물에 처절한 비명소리 들리는듯 세상에는 닮은 꼴도 많다.나라의 넓이나 지역의 대소를 막론하고 남북의 대치가 아니면 동서의 갈등이 있다.땅덩이가 클수록 그 예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에는 양자강을 두고 강남과 강북의 차가 현저하다.같은 강소임에도 남북의 차별은 심했다.소남사람은 소북사람을 깔보며 소북사람은 소남사람을 매끄럽다 흉을 본다. 소남사람들은 자기들이 중국에서 제일 잘 산다고 뽐을 낸다.그도 그럴것이 최근의 소득조사에서 중국 최부의 농촌으로 강소의 강음과 무석이 올랐는데 그 모두가 강남이다.그중에도 강음의 화서촌은 그 소득이 전국 최고,「강남제일촌」으로 불리는데 세대당 1년 저축고가 인민폐로 10만원대(한화 1백만원상당)라고 한다. 무석에서 정북으로 한시간쯤 달렸을때 오랜만에 산이 보였다.강음박물관을 돌아보고 바로 뒷산을 올랐다.황산이란다.황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서산,동쪽에 마안산,동남쪽에아산….모두가 양자강 남쪽 기슭에 물막이로 선 야산들.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오나라의 강토를 지키는 요새로서 그동안 태평천국,신해혁명,국공전쟁 등 근대사에 승패를 가름하던 격전지였다.지금도 황산의 정상에는 철근 콘크리트 9층의 망강루가 우뚝 솟았고,망강루 북녘 기슭에는 일찌기 아편전쟁때 영국함대를 노리던 포대가 남아있고,남쪽 산자락에는 국공전쟁때 홍군이 전공을 올린 기념으로 「해방군도강기념비」가 오벨리스크모양의 높다란 첨탑으로 서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필자는 망강루를 올랐다.굽이치는 양자강이 망강루를 허리삼아 휘감았다.포대 서원으로 강북의 정강을 잇는 장강대교의 공사가 한창인데 휘 한바퀴 돌아보는 안막에는 누런 황금 벌.과연 옥토 낙원으로 김이 무럭무럭한 느낌이었다.불현듯 아까 강음박물관에서 보았던 대상의 하얀 이빨,그 화석이 생각났다.2만∼3만년전의 그 화석이 글쎄 여기서 멀지않은 저쪽 청양땅에서 출토되었다니 이 땅의 속살은 얼마나 까맣게 익었을까? 나그네는 서둘러 강음을 떠났다.강음에서 다시 무석으로 돌아가는 길가 마진이란 마을이 가고 싶어서였다.겨우 20분쯤 달렸을때,왼쪽 노변에 아닌게 아니라 커다란 안내판이 우람하게 서있다. 「서하객고향­마진」이라고. 또 한번 필자의 본병이 도진 것이다.그것은 좋아했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그 병 말이다.그 사람,서하객(1587∼1641)은 필자보다 몇곱절 역마살을 타고난데다 여행기는 물론 암석·고산·하천·화산등의 자연관찰을 통한 지리학 연구에 세상이 놀랄만큼 공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굉조,호가 하객이다.바로 마진고을 침당하옆에 있는 남양지라는 작은 부락에서 태어났다. 중국문학사에서 유기의 지위는 대단했다.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다.선비가 여행기를 통해 정치·사회를 관찰하는가 하면 자연지리를 기록함으로써 자기의 포부를 펴거나 우주의 섭리를 터득했다.그래서 시인 묵객치고 유기 한편 남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는 평생을 두고 벼슬길에 기웃거리지 않았다.스물두살때부터 시작해서 쉰다섯살,그가 죽을 때까지 꼭 34년동안,그는 단 한개의 지팡이와 한장의 이불을 메고 강소·절강·안휘·산동은 물론 멀리 섬서·호남·광동·광서·귀주,운남 등 16개성,더구나 험산심곡을 헤맨 산새요,원숭이요,물고기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는 분명,기인이었다.가만 앉아있어도 먹고 살 걱정이 없을만큼 넉넉한 살림임에도 그 따뜻한 집과 어진 아내를 마다한 채 한닢 거룻배를 타고 물길 닿는대로 강남과 영남을 떠돌더니 기암과 괴석에다 화산과 지진이 불시로 천지를 폭발하고 천지를 갈라버리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서남지역의 험산준령을 밟았다. 우리나라 김정호 비슷하게 탐험적 떠돌이였던 그는 40여만자의 「서하객유기」를 남겼는데 아깝게도 원저는 2백만자가 훨씬 넘는 대작이었다.일기체로 기록된 그 유기는 인간의 극한을 그린 실록문학으로서 최고봉임은 물론 암석학·지질학·지도학의 기초를 닦은 과학서로도 그 의의는 파격적이다.특히 그는 유기에서 석회암의 침식현상인 캐스트(cast)를 발견했고,양자강의 원류를 곤륜산 남쪽인 금사강으로 단정한 것은 모두 지리학적인 발견으로 학술사에 기록된다. 무엇보다 그의 유기는 생동한 묘사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들 수 있다.광서·운남등지에 산재한 동굴이나 동굴속의 종유석,그 핍진한 소묘는 문학가의 상상과 과학자의 투시를 융합 성공한 것이다. 그는 동굴속의 종유석을 이렇게 기록했다. 「정측홀도수일엽,평기반공,외여당문,주적대,상하빙허,각수십장,권서현철,박제선시,엽간분개공대,야안지결지(여유일기이에서) (천장에서 갑자기 커다란 잎새 한장 거꾸로 달랑거렸다.반공에 달린 시렁이 밖으로는 문과 기둥을 마주 본 채 위 아래로 각각 수십길을 서로 기대더니 엷은 매미의 날개처럼 그렇게 널찍히 매달려 있고,잎새 사이마다 커다랗게 뚫린 구멍은 마치 동그란 눈동자같았다.) 남양지는 들녘 복판에 있는 작은 부락.서하객의 고택은 물론 최근에 복구한 것이지만 기품이 당당했다.입 구자 네모꼴 가택이 200평은 족히 넘을 법한 민가.그는 여기서 낳고 여기서 성장했다.그의 34년에 걸친 탐험의 베이스 캠프도 바로 여기였다.그 탐험의 떠돌이는 갔지만 그의 손때가 묻고 그의 족적이 찍힌 두가지가 필자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하나는 그집 뜨락에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는 한그루 나한송과 또 하나는 그 집 대문밖 동쪽 100여m쯤 침당하옆으로 지금도 고색 창연하게 남아있는 선착장과 진솔 단출한 공수식 돌다리였다.하객이 평생토록 타고 다녔던 거룻배,그 배가 정박하고 출항하던 곳이 지금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희한했다. 그 두가지는 그 집 대문 서쪽 100여m쯤에 대궐처럼 높은 까만 기와 담장에 에워싸인 그의 무덤,「명 고사하객서공지묘」라는 묘갈에 큼직한 봉분,계화의 향기로 전중 단아한 묘역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다.
  • 파키스탄 탁티바이(세계 문화유산 순례:23)

    ◎가파른 바위산 벼랑끝 성채같은 가람이… 간다라(Gandhara)는 아주 일찍 역사에 등장했다.아키메네스왕조때(BC559∼330년) 페르시아의 속주로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다.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페샤와르현에 해당하는 지역이 옛 간다라 땅이다.역사속에 명멸한 정복자들의 말발굽 소리가 그칠날 없이 이어진 지역이기도 했다.그래도 간다라에서는 불교와 불교미술이 오랫동안 꽃피었다. ○대평원 한복판 우뚝/망망대해 등대인듯 그 간다라에는 불교유적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대표적 유적의 하나가 탁티바이(Takht-i-Bahi)다.가람유적인 탁티바이는 페샤와르현 마르단에 있다.페샤와르시에서 탁티바이까지는 꽤 멀었다.난마처럼 얽힌 카불강과 스와트강줄기를 몇차례 건너서 간다라 첫 수도 차르사다를 지나쳤다.논스톱으로 두시간을 좀 넘게 달렸을까,대평원 한복판에 우뚝한 산자락 하나가 불쑥 시야로 들어왔다. 탁티바이산이다.산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 같았다.오랜 세월을 두고 탁발로 유랑한 당시 구도승들에게 산은 실제 등대 노릇을 했을것이다.풀 한포기도 눈에 띄지않는 바위너설의 악산인데,가람은 매달린듯 벼랑에 붙어있다.아래서 저만큼 올려다 본 가람 탁티바이는 성채 그것이었다.그많은 정복자들의 난리를 피해서 부러 가파른 바위산을 택했으리라.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가람 입구에 다다랐을때 기다리던 경비원이 거수경례로 맞아주었다.긴 치마자락처럼 정강이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고유의상 카미즈 차림의 경비원은 허리에 넓은 가죽벨트를 맸다.벨트에 권총을 매달지 않았을 뿐,어떤 제복같은 느낌이 와닿았다.유적 경비원을 따라 여러개의 수투파(불탑)가 있는 뜰을 지나서,경내에 단 한그루 밖에 없는 보리수나무 그늘에서 우선 한숨을 돌렸다. 탁티바이 가람유적은 기원전(BC)100년쯤부터 터를 잡아나갔다.그리고 나서 기원후(AD)6세기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가람을 조성하는 동안도 파괴와 건설이 거듭되었다.탁티바이산은 산자체가 돌산이다.그래서 가람의 모든 건조물은 산에 널린 운모편암을 자재로 축조했다.가람은 층서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블럭을 가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간다라 불교유적지 성한불상 하나없어 유적의 단면은 대체로 요꼴을 이루었다.그런 단면을 기반으로 불교의 기본 건축물인 수투파와 불당,승원을 지었다.수투파는 네모꼴 기단위에 탑 몸체를 쌓아올리는 형식이었는데,애석하게도 기단만 남아있다.승원의 경우에는 가운데 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둘레에 승방을 가지런히 배치했다.이같은 승원축조양식은 간다라지방에서 처음 나타나 인도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가람 입구를 들어서면 수투파 기단들이 늘어선 좁은 뜰이 나왔다.요꼴 단면에서 보이는 오목한 부분이 바로 뜰이다.그 뜰이 시작되는 오른쪽(북쪽)으로 불상을 봉안했던 닫집(감실)들이 바싹 다가왔다.모두 12개나 되는 닫집을 지나쳤지만,불상 한 두어 구가 겨우 눈에 띄었다.그나마 머리가 아니면 팔이 떨어져 나간 불상 뿐이다.가람 어디에서도 몸이 성한 불상을 만나지 못했다. 간다라 불교유적은 일찍 파괴되었다.당나라 승려 현장의 구도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보면 7세기 전반의 건태국,즉 간다라 이야기가 나온다.현장은 이책에다 「승가람은 1천여군데에 있으나,모두 부서진채 방치되었다」고 적었다.동서 1천리,남북 800리의 간다라를 여행하면서 적었다는 현장의 기록에서 탁티바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식민제국 박트리아의 왕 맨안더(재위 BC155∼130년)의 후광을 업고,또 쿠산왕조의 카니쉬칸(재위 AD78∼128년)을 후원자로 전성기를 맞았던 탁티바이.겨우 600여년을 가람답게 지켰다.지금 탁티바이는 적막했다.탁티바이는 「바위속의 샘」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유적 경비원에게 청해서 얻어마신 양재기 물맛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정복자 말발굽에 파괴­건설 600년 이 가람의 대탑 메인 수투파는 입구에서 곧바로 만난 뜰 왼쪽(남쪽)에 있었다.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 가장자리에다 여러 칸의 닫집을 ㄷ자꼴로 앉혔다.닫집의 지붕은 독특했다.네모꼴 지붕을 돌로 올리면서 모서리를 차츰 죄어가는 방식으로 둥글게 쌓았다.그리고 지붕 한가운데에 원심의 구조물을 도드라지게 덧쌓았다.역시 이들 닫집안에서도 불상이 보이지 않았다. 승려들이 머물렀던 승원은 이 가람 북쪽 블럭에 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을 내려와 입구 뜰을 건너서 계단을 올랐다.마당 중간을 비워두고 ㅁ자형으로 빙 둘러지은 승방들이 촘촘히 박혀있다.경전을 외는 소리가 두런두런 했을 승방은 지붕조차 없다.지난 먼 옛날 불교를 그토록 보호했던 왕조 모두가 역사속에 묻혔으니,누가 중창을 하랴.지금 유네스코(UNESCO)가 나서 더 허물어지지 않게 보살피고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불교가 존재않는 불교의 유적지 구도승들의 고행현장은 정오가 가까운 한낮에 찾았다.가람 입구에서 시작한 뜰을 거쳐 서쪽 마당끝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을때 어두컴컴한 터널이 나왔다.돌을 맞조려 쌓은 천정이 아치꼴을 이룬 터널은 꽤 길었다.터널 오른쪽으로 작은 방들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다.인공의 토굴이었던 것이다. 토굴의 환경은 감방보다 열악했다.승려들이 고행과 명상으로 은둔했을 토굴에는 박쥐떼만 득시글거렸다.세월이 무상했다.생겨나고 없어지는 생멸에 집착하지 않은 탓일까,파키스탄에서 불교가 사라진지는 오래다.제대로 된 불상 하나를 만나지 못하고 탁티바이를 돌아서야 했던 까닭도 불교가 존재하지 않는 불교유적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숙박은 페샤와르서/국내선 하루 2∼4편 운항 탁티바이는 페샤와르에서 80㎞ 거리다.페샤와르에서 택시를 타면 90∼100달러가 든다.페샤와르를 거점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숙박은 페샤와르에서 하는 것이 좋다.숙박시설은 딘스호텔,펄콘티넨털호텔 등이 있다. 교통편은 라왈핀디나 라호르에서 오는 파키스탄 국내항공이 하루 2∼4편 정도 운항한다.그리고 이슬라마바드에서 육로를 택할 경우 4시간이 걸린다.페샤와르는 실크로드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라서 아랍풍의 문물관광도 즐길수 있다.인더스 가이드(92­42­872975)같은 여행사 안내도 고려할만한 일이다.
  • 소나무 거리(외언내언)

    남산위의 저 소나무/철갑을 두른듯/….애국가 가사의 한구절.소나무는 애국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래동화·민요·속담 등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그림에도 빠져서는 안되는 단골소재.예부터 소나무는 우리민족의 정서에 가장 친숙한 나무였다. 나무껍질은 검붉고 비늘모양,잎은 바늘형상으로 한반도와 중국·일본등지에 분포되어 있다.한그루씩만 보면 모양새가 그리 아름답지 않고 열매인 솔방울도 별 쓸모가 없다.경제적으로는 효용가치가 적은편.한옥의 건축재로 주로 쓰이고 있지만 옛날에는 땔감으로 많이 사용했다.그러나 보릿고개로 상징되던 참담했던 가난의 시절,소나무껍질을 벗겨 굶주린배를 달래던 일을 오늘의 할아버지·할머니세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옛날에는 산마다 소나무가 울창 했었다.산만이 아니라 큰마을 어귀에는 소나무숲이 있었고 이곳은 마을 사람의 운치있는 쉼터였다.애국가 가사에 나타나듯 서울의 남산도 소나무숲이 자랑거리였다.그러나 남산의 소나무는 외래종인 아카시아의 강인한 번식력과공해에 밀려 날로 줄어들고 있다.전체삼림면적 68만여평 가운데 소나무숲은 13만여평으로 겨우 20%를 차지하고 있다.이에 비해 아카시아숲은 소나무숲의 2배나 되는 25만여평에 달한다. 서울시 종로구청은 「사라져 가는 소나무숲을 되 살리자」는 운동의 하나로 성균관대입구에서 대학로까지 150m 구간의 보도양쪽에 소나무 50여그루를 심어 「소나무거리」를 조성키로 했다.오는 3월 심어질 가로수 소나무는 5년이상 가꾸고 다듬은 우량품종.어쨌든 반가운 일이다.거리뿐 아니라 도시의 공원이나 집뜰에 소나무를 심어 우리의 전통적인 조경문화로 정착시키는 것도 좋을듯 싶다. 실제로 본사 사옥을 비롯해 서울도심에 있는 몇몇 빌딩주변에는 소나무가 심어져있어 독특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소나무거리가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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