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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들 협박해 찍은 성착취물… 年 5000억원 챙긴 포르노 재벌

    소녀들 협박해 찍은 성착취물… 年 5000억원 챙긴 포르노 재벌

    지난달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로 다시금 주목받은 세계 최대 불법 영상 사이트 ‘폰허브’(Pornhub)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불법 성착취 영상의 심각한 유통 실태를 조명한 보도 이후 폰허브는 일부 영상을 삭제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이번엔 피해 여성 40명이 폰허브의 모회사 마인드기크(Mindgeek)를 상대로 4000만 달러(약 441억원) 이상의 소송을 제기했다. 성착취 영상을 통해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다. 서울신문은 마인드기크 고소장을 직접 분석해 어떤 혐의인지 살펴봤다. ●구글·아마존 등 이어 방문자 8번째로 많아 2007년 개설된 폰허브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인기 있는 포르노그래피 사이트다. 웹 분석 사이트 시밀러웹에 따르면 2019년 폰허브 전체 방문 횟수는 약 420억회, 하루 평균 1억 1500만회에 달했다. 2019년 미국에선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 이어 여덟 번째로 많이 방문한 웹사이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인증받지 않고도 영상을 올릴 수 있고, 다운로드도 자유로워 연간 1000만개 이상이 유통됐다. 한국 이용자 수도 적지 않다. 불법 사이트라 직접 접속은 불가능하지만, 우회 통로로 이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 ‘n번방’ 사건이 알려졌을 때도 피해자들의 영상이 폰허브에서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였다. 앞서 NYT는 실제 피해 여성들의 인터뷰를 통해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불법 성착취 영상이 폰허브에서 얼마나 규제 없이 유통되는지 짚었다. 누구나 쉽게 영상을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플랫폼 내 자체 모니터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탓에 여성의 동의 없이 촬영된 영상은 전 세계를 떠돌았다. 실태가 알려지자 비자와 마스터 등 대형 카드사는 부랴부랴 폰허브 내 결제 서비스를 영구 중단한다고 밝혔고, 폰허브는 “유해 콘텐츠 확산을 막겠다”며 전체의 75%에 달하는 비인증 영상을 삭제했다. 문제는 폰허브 사이트 한 곳만 바뀌는 걸로는 들불처럼 번지는 온라인상 피해를 막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폰허브 모회사 마인드기크는 현재 100개 이상의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포르노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독점하는 셈이다. 지난달 15일 여성 40명이 마인드기크를 상대로 인당 최소 1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영상 안 찍으면 집에 못 간다” 협박 이들의 소송을 상세히 살펴보기 전에 걸스두폰(Girls Do Porn)이라는 업체부터 알아야 한다. 걸스두폰은 2007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마이클 프랫과 매슈 울프, 안드레 가르시아 등이 운영한 일종의 성매매 기업이다. 이들은 ‘아마추어 옆집 소녀’를 콘셉트로 내세우며 “18~22세의 소녀들이 처음으로 이 비디오에서 성관계를 한다”는 식으로 수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상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변호인단은 43쪽에 달하는 고소장을 통해 이들의 범죄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악랄하게 이뤄졌는지 나열하고 있다. 고소장에 따르면 걸스두폰은 온라인에서 단순 모델 광고인 것처럼 해 수백 명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모집했다. 포르노라는 걸 안 뒤 여성들이 주저하면 온라인에 영상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북미가 아닌 호주나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판매되는 개인 소장용 DVD 영상이라고 꼬드겼는데, 프랫과 울프가 뉴질랜드 악센트가 있어 피해자들은 이 말에 속아 넘어갔다. 심지어 이들은 돈을 주고 가짜 모델까지 고용해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등 치밀하게 범행했다. 영상 유출을 우려하면 가짜 모델이 자신의 경험인 척 온라인에는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고 답변하게 한 것이다. 계약서를 쓸 때는 강요와 협박이 이어졌다. 촬영 현장에서 계약서를 주고 다 읽어 보기도 전에 서명하라고 했고, 촬영 중 여성이 특정 성행위를 거부하면 돈을 주지 않거나 집에 보내 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긴장을 풀어 준다는 명목으로 미성년자에게도 술이나 마약을 권하기도 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9년부터 10년간 이들이 이 같은 범행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1700만 달러(약 184억원) 이상이다.이들의 범죄는 이미 법원에서도 일부 판결이 났다. 2016년부터 피해 여성들을 중심으로 소송이 시작됐고, 2019년 10월 프랫과 울프, 가르시아 3명은 강제, 사기 및 강압에 의한 성매매와 인신매매 등으로 형사 기소됐다. 울프와 가르시아는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고, 프랫은 멕시코로 탈출해 지명 수배 명단에 올랐다. 샌디에이고 고등법원은 지난해 1월 울프 등이 피해 여성 22명에게 13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민사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폰허브 폐쇄 청원에 210만명 동참 변호인단은 이런 피해 사실과 함께 어떻게 마인드기크가 걸스두폰의 범죄를 묵인하고, 나아가 이를 이용했는지 상세히 적었다. 마인드기크는 2011년부터 걸스두폰과 계약을 맺고 판매, 마케팅, 영상 유통 등을 관리했다. 그런데 고소장에 따르면 마인드기크는 이르면 2009년, 늦어도 2016년부터 걸스두폰이 사기, 강요, 협박 등을 통해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한 걸 알고 있었다. 변호인단은 “걸스두폰의 피해자들은 마인드기크에 사기 등에 관한 상세한 불만 사항을 보내 영상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면서 마인드기크가 걸스두폰의 혐의를 알고 있었지만 영상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익 창출에 썼다고 주장했다. 마인드기크는 2019년 10월 걸스두폰 관계자들이 체포돼 법정으로 넘겨지자 그제야 영상을 삭제했다. 피해자들은 마인드기크의 조치가 너무 늦다며 “영상 삭제 시점에 걸스두폰은 이미 없는 회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성착취 영상 산업의 독재자 격인 거대 회사가 이 같은 불법 영상 유통을 방관하고 사이트를 운영하며 벌어들인 수익은 2015년 한 해에만 4억 6000만 달러(약 4976억원)가 넘는다. 특히 마인드기크를 대상으로 이 같은 대규모 소송을 하는 건 처음이라 바이스 등은 “앞으로 불법 영상 유통 과정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라고 보도하며 성산업 전반에 경종을 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간 음란물 산업은 여성의 ‘동의’하에 촬영됐다는 명목으로 거의 처벌되지 않았다. NYT에 따르면 연방 당국은 10년 이상 음란물 제작자에 대해 심각한 기소를 제기하지 않았다. 2008년 폴 F 리틀이 수차례의 성착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징역 3년 10개월에 불과했다. 온라인 권익 단체인 사이버 시민권 이니셔티브의 회장인 매리 앤 프랭크 마이애미대 교수는 “음란물 업계의 많은 여성이 그동안 유사한 강압과 불만을 얘기했지만,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포르노 관련 다큐멘터리를 공동 제작하기도 한 그는 걸스두폰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법원 판결에 대해 “(영상 촬영 과정에선) 엄청나게 많은 사기와 강압이 벌어진다”며 “앞으로 수사기관 등에서 이런 사례에 대해 조사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시민단체 등에서도 마인드기크와 폰허브 사이트 폐쇄를 놓고 계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제 성착취 반대 단체인 트래피킹허브가 대표적이다. “폰허브를 폐쇄하고 운영자들에게 인신매매 방조 책임을 묻자”는 국제 청원에 올해 1월 기준 210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한국 여성들 역시 다수 참여했다. 트래피킹허브 설립자인 라일라 미켈웨이트는 “이윤을 위해 강간, 학대, 인신매매당하는 데서 개인을 보호하는 건 ‘검열’이 아닌 필수적인 인권 보호”라며 “폰허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입을 닫지 않겠다”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소녀들 협박해 찍은 성착취물… 年 5000억원 챙긴 포르노 재벌

    소녀들 협박해 찍은 성착취물… 年 5000억원 챙긴 포르노 재벌

    지난달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로 다시금 주목받은 세계 최대 불법 영상 사이트 ‘폰허브’(Pornhub)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불법 성착취 영상의 심각한 유통 실태를 조명한 보도 이후 폰허브는 일부 영상을 삭제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이번엔 피해 여성 40명이 폰허브의 모회사 마인드기크(Mindgeek)를 상대로 4000만 달러(약 441억원) 이상의 소송을 제기했다. 성착취 영상을 통해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다. 서울신문은 마인드기크 고소장을 직접 분석해 어떤 혐의인지 살펴봤다.●구글·아마존 등 이어 방문자 8번째로 많아 2007년 개설된 폰허브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인기 있는 포르노그래피 사이트다. 웹 분석 사이트 시밀러웹에 따르면 2019년 폰허브 전체 방문 횟수는 약 420억회, 하루 평균 1억 1500만회에 달했다. 2019년 미국에선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 이어 여덟 번째로 많이 방문한 웹사이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인증받지 않고도 영상을 올릴 수 있고, 다운로드도 자유로워 연간 1000만개 이상이 유통됐다. 한국 이용자 수도 적지 않다. 불법 사이트라 직접 접속은 불가능하지만, 우회 통로로 이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 ‘n번방’ 사건이 알려졌을 때도 피해자들의 영상이 폰허브에서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였다. 앞서 NYT는 실제 피해 여성들의 인터뷰를 통해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불법 성착취 영상이 폰허브에서 얼마나 규제 없이 유통되는지 짚었다. 누구나 쉽게 영상을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플랫폼 내 자체 모니터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탓에 여성의 동의 없이 촬영된 영상은 전 세계를 떠돌았다. 실태가 알려지자 비자와 마스터 등 대형 카드사는 부랴부랴 폰허브 내 결제 서비스를 영구 중단한다고 밝혔고, 폰허브는 “유해 콘텐츠 확산을 막겠다”며 전체의 75%에 달하는 비인증 영상을 삭제했다. 문제는 폰허브 사이트 한 곳만 바뀌는 걸로는 들불처럼 번지는 온라인상 피해를 막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폰허브 모회사 마인드기크는 현재 100개 이상의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포르노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독점하는 셈이다. 지난달 15일 여성 40명이 마인드기크를 상대로 인당 최소 1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영상 안 찍으면 집에 못 간다” 협박 이들의 소송을 상세히 살펴보기 전에 걸스두폰(Girls Do Porn)이라는 업체부터 알아야 한다. 걸스두폰은 2007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마이클 프랫과 매슈 울프, 안드레 가르시아 등이 운영한 일종의 성매매 기업이다. 이들은 ‘아마추어 옆집 소녀’를 콘셉트로 내세우며 “18~22세의 소녀들이 처음으로 이 비디오에서 성관계를 한다”는 식으로 수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상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변호인단은 43쪽에 달하는 고소장을 통해 이들의 범죄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악랄하게 이뤄졌는지 나열하고 있다. 고소장에 따르면 걸스두폰은 온라인에서 단순 모델 광고인 것처럼 해 수백 명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모집했다. 포르노라는 걸 안 뒤 여성들이 주저하면 온라인에 영상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북미가 아닌 호주나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판매되는 개인 소장용 DVD 영상이라고 꼬드겼는데, 프랫과 울프가 뉴질랜드 악센트가 있어 피해자들은 이 말에 속아 넘어갔다. 심지어 이들은 돈을 주고 가짜 모델까지 고용해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등 치밀하게 범행했다. 영상 유출을 우려하면 가짜 모델이 자신의 경험인 척 온라인에는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고 답변하게 한 것이다. 계약서를 쓸 때는 강요와 협박이 이어졌다. 촬영 현장에서 계약서를 주고 다 읽어 보기도 전에 서명하라고 했고, 촬영 중 여성이 특정 성행위를 거부하면 돈을 주지 않거나 집에 보내 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긴장을 풀어 준다는 명목으로 미성년자에게도 술이나 마약을 권하기도 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9년부터 10년간 이들이 이 같은 범행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1700만 달러(약 184억원) 이상이다. 이들의 범죄는 이미 법원에서도 일부 판결이 났다. 2016년부터 피해 여성들을 중심으로 소송이 시작됐고, 2019년 10월 프랫과 울프, 가르시아 3명은 강제, 사기 및 강압에 의한 성매매와 인신매매 등으로 형사 기소됐다. 울프와 가르시아는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고, 프랫은 멕시코로 탈출해 지명 수배 명단에 올랐다. 샌디에이고 고등법원은 지난해 1월 울프 등이 피해 여성 22명에게 13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민사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폰허브 폐쇄 청원에 210만명 동참 변호인단은 이런 피해 사실과 함께 어떻게 마인드기크가 걸스두폰의 범죄를 묵인하고, 나아가 이를 이용했는지 상세히 적었다. 마인드기크는 2011년부터 걸스두폰과 계약을 맺고 판매, 마케팅, 영상 유통 등을 관리했다. 그런데 고소장에 따르면 마인드기크는 이르면 2009년, 늦어도 2016년부터 걸스두폰이 사기, 강요, 협박 등을 통해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한 걸 알고 있었다. 변호인단은 “걸스두폰의 피해자들은 마인드기크에 사기 등에 관한 상세한 불만 사항을 보내 영상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면서 마인드기크가 걸스두폰의 혐의를 알고 있었지만 영상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익 창출에 썼다고 주장했다. 마인드기크는 2019년 10월 걸스두폰 관계자들이 체포돼 법정으로 넘겨지자 그제야 영상을 삭제했다. 피해자들은 마인드기크의 조치가 너무 늦다며 “영상 삭제 시점에 걸스두폰은 이미 없는 회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성착취 영상 산업의 독재자 격인 거대 회사가 이 같은 불법 영상 유통을 방관하고 사이트를 운영하며 벌어들인 수익은 2015년 한 해에만 4억 6000만 달러(약 4976억원)가 넘는다. 특히 마인드기크를 대상으로 이 같은 대규모 소송을 하는 건 처음이라 바이스 등은 “앞으로 불법 영상 유통 과정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라고 보도하며 성산업 전반에 경종을 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간 음란물 산업은 여성의 ‘동의’하에 촬영됐다는 명목으로 거의 처벌되지 않았다. NYT에 따르면 연방 당국은 10년 이상 음란물 제작자에 대해 심각한 기소를 제기하지 않았다. 2008년 폴 F 리틀이 수차례의 성착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징역 3년 10개월에 불과했다. 온라인 권익 단체인 사이버 시민권 이니셔티브의 회장인 매리 앤 프랭크 마이애미대 교수는 “음란물 업계의 많은 여성이 그동안 유사한 강압과 불만을 얘기했지만,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포르노 관련 다큐멘터리를 공동 제작하기도 한 그는 걸스두폰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법원 판결에 대해 “(영상 촬영 과정에선) 엄청나게 많은 사기와 강압이 벌어진다”며 “앞으로 수사기관 등에서 이런 사례에 대해 조사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에서도 마인드기크와 폰허브 사이트 폐쇄를 놓고 계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제 성착취 반대 단체인 트래피킹허브가 대표적이다. “폰허브를 폐쇄하고 운영자들에게 인신매매 방조 책임을 묻자”는 국제 청원에 올해 1월 기준 210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한국 여성들 역시 다수 참여했다. 트래피킹허브 설립자인 라일라 미켈웨이트는 “이윤을 위해 강간, 학대, 인신매매당하는 데서 개인을 보호하는 건 ‘검열’이 아닌 필수적인 인권 보호”라며 “폰허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입을 닫지 않겠다”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핵심은] 악에서 구하려다 악에 빠진 디지털교도소

    [핵심은] 악에서 구하려다 악에 빠진 디지털교도소

    8평짜리 방에 갇혀 군만두만 15년째. 할 수 있는 건 오직 TV 보는 일뿐입니다. 남자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로 사설 감옥에 갇혔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의 이야기입니다. 오대수가 뱉은 말로 누나를 잃게 된 이우진은 사적 복수를 택합니다. 법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거니와 충분한 응징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죠. 영화 같은 일은 현실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사설 감옥 대신 강력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로 실현됐습니다. 이 디지털교도소를 운영해온 30대 남자가 지난 22일 베트남에서 검거됐습니다. 사적 처벌 논란부터 사이트 폐쇄에 이르기까지, 이번 주엔 디지털교도소 사건의 핵심을 짚어보겠습니다.■ 핵심 ① 엉뚱한 사람까지 몰아넣은 디지털교도소 ‘지인을 능욕하기 위해 합성된 음란물을 배포했다’ 디지털교도소에 얼굴 사진을 비롯한 학교와 전공,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가 낱낱이 올라왔던 한 대학생의 죄목입니다. 악플과 협박 전화에 시달리던 그는 지난 5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대학생은 신상이 알려진 직후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이 해킹당한 것 같다면서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사진과 전화번호, 이름은 맞지만, 그 외의 모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교수도 피해자가 됐습니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n번방 자료(성 착취물)를 구하려 했다’며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포토샵으로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교수도 학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가 하면 강의를 중단하라는 압박까지 들어왔습니다. 격투기 선수 출신인 김도윤씨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됐고, 한 시민은 여성들을 납치해 살해한 ‘엽기토끼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렸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이들 모두 오인당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단정하고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지난 22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검거됐습니다. 운영자는 지난해 2월 캄보디아로 출국해 베트남에서 거주하고 있던 30대 남성으로 밝혀졌습니다.■ 핵심 ② 성범죄자에 대한 미온적 처벌이 근본 원인 디지털교도소의 탄생 배경에는 성범죄자에 관대한 처벌이 있습니다. 사법부의 심판으로는 부족하니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겁니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24)씨가 “미국 송환만은 막아달라”고 호소한 것 기억하시나요. 손씨는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특수 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에서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를 운영하며 유료회원 4000여명에게 수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받고 아동음란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불과 징역 1년 6개월. 만약 미국이 요청한 대로 범죄인 인도가 됐다면 자금세탁 혐의만으로 최소 징역 10년에서 최대 20년까지 받았을 겁니다. 이마저도 이중 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일부 혐의만 적용된 것이고요. 이를 알기에 손씨도 한국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고, 손씨 아버지도 아들을 직접 고소하면서까지 미국 송환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손씨만 이렇게 빠져나간 게 아닙니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박사방’, ‘n번방’ 운영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강화된 양형 기준을 감안하더라도 죄의 무게에 비해선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핵심 ③ 불법성 심각해 결국 사이트 접속 차단 디지털교도소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고, 그에 따른 제재도 이뤄지긴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논란이 된 게시물만 차단했습니다. 사이트 자체를 폐쇄해버리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였죠. 그런데 이제는 사이트 접속도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는 24일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호해야 하지만, 현행 사법체계를 부정·악용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접속 차단을 결정했습니다. 디지털교도소로 이중처벌이 행해지고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제재는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방심위의 원칙입니다. 전체 게시물 중 불법 정보가 70%에 이를 때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합니다. 불법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만 보는 건 아닙니다. 해당 사이트의 제작 의도도 따집니다. 혐오표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일베’나 ‘워마드’ 같은 사이트가 차단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도 제작 의도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베는 인기 게시물을 공유하는 사이트이고, 워마드는 여성인권신장 목적으로 만들어져 폐쇄할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디지털교도소도 접속 차단을 보류했던 겁니다. 이달 14일 방심위는 디지털교도소 게시물 중 불법 소지가 있는 17건을 차단하기로 하고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이행되지 않자 결국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다고 보고 차단을 결정했습니다. 디지털교도소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명제가 뚜렷이 드러난 사례입니다. 사적 처벌이라는 수단을 쓰려 했던 출발점부터 잘못됐습니다. 다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성범죄에 합당한 처벌은 어느 정도인가, 의구심이 들지 않도록 국가도 나서야겠죠.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토요일 아침, 한 주간 가장 뜨거웠던 이슈의 핵심을 짚어드립니다.
  • 박사도 갓갓도, n번방에서 감방으로… 법정최고형까지

    박사도 갓갓도, n번방에서 감방으로… 법정최고형까지

    23일 텔레그램 내에서 일명 ‘박사방’을 만들어 성착취 영상을 제작·판매·유포한 조주빈(25)이 검거된 지 100일이 된다. 그저 소수의 일로 치부되던 디지털 성범죄는 지난 3월 16일 조씨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피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수사력을 집중하면서 공범들을 추적했고, 관련 성범죄자들을 소탕했다. 특히 지난달 11일 경찰이 ‘n번방’의 시초격이자 핵심 인물 가운데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았던 닉네임 ‘갓갓’ 문형욱(24)을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마치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21일 확인한 결과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성착취 사건들을 막기 위해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어떤 최후를 맞는지 끝까지 지켜보며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판사님, 죄송해요”…무늬만 반성 ‘박사’ 조씨를 비롯한 텔레그램 성범죄 핵심 인물들은 재판부에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어떻게든 형량을 줄여 보기 위해서다. 조씨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한 달 동안 매일 반성문을 제출했다. 지난달 1일부터 제출한 반성문은 21일 기준 총 29건이다. 조씨가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나서면서 피해자에 대한 사죄에는 침묵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 11일 열린 조씨의 첫 공판기일에서 조씨 측 변호인은 강제추행, 강요 및 강요미수 등 일부 혐의에 대해 부인하기도 했다. 조씨의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25일이다. 공범들도 마찬가지다. 조씨의 ‘오프남’으로 알려진 공범 한모(26)씨는 56일간 반성문 64건을 제출했다. 오프남이란 제작자의 제안·지시를 받고 실제 성폭행에 가담한 사람을 의미한다. 거제시청 공무원이었던 공범 천모(29)씨는 21일 기준 반성문을 11차례 제출했다. 천씨는 지난 4월 10일 공무원 징계 중 가장 수위가 높은 파면 처분을 받았다. 조씨와 함께 재판을 받는 공범 ‘태평양’ 이모(16)군과 공익요원 강모(24)씨는 각각 5건, 3건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시민들은 이들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적극적으로 제출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를 추진한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과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는 온라인 법률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박사 조씨 등 15명에 대해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21일 기준 조씨에 대한 탄원서를 낸 사람은 3만 9553명이다. 조씨의 공범 ‘부따’ 강훈(19)에 대해서는 1만 5608명, 조씨의 공범이자 군인 ‘이기야’ 이원호(19)에 대해서는 1만 3636명, 문씨에 대해서는 1만 1629명이 각각 엄벌을 처해 달라며 탄원서를 작성했다. 조씨의 공범들은 잇따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강씨는 지난달 27일 신상공개 처분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냈다. 천씨는 외국에는 영상 촬영에 합의한 경우 처벌을 배제하는 규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한 모든 경우를 처벌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20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형량 과하다” 항소… 죄책감 못 느껴 n번방 사건 주범들은 하나둘씩 선고를 받고 있다. ‘제2n번방’을 운영하면서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를 받은 ‘로리대장태범’ 배모(19)군과 ‘슬픈고양이’ 류모(20)씨 등이 그 시작이다.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실질적으로 내려진 첫 판결이라 볼 수 있다. 배군과 류씨, 또 다른 공범 ‘서머스비’ 김모(20)씨는 지난 5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 전 과정을 주도한 배군에게 소년법상 유기 징역형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류씨와 김씨에게는 각각 징역 7년과 8년을 선고했다. 과거와 달리 법원은 이들에 대해 중형을 선고했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르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즐긴 이들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들은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배군과 류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김씨는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 제작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n번방 이후 내려진 실질적 첫 판결은 2라운드를 맞게 됐다. 한편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기 이전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었던 주범들은 조용히 사건을 끝내기 어려워졌다. 문씨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진 ‘켈리’ 신모(32)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1년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n번방 사건이 불거지자 항소를 취소했다. 신씨 사건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1년형이 확정된 채 끝나 ‘꼼수 항소 취하’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강 수사를 마친 검찰이 이달 4일 신씨를 추가 기소하면서 신씨는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n번방으로 이어지는 링크를 공유하는 ‘고담방’ 운영자 ‘와치맨’ 전모(38)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던 검찰은 n번방 공론화 이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받자 부랴부랴 변론 재개를 신청해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n번방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n번방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총 594건에 연루된 664명이 검거되고 86명은 구속됐다. 경찰은 이 가운데 16건 258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나머지에 대한 수사는 이어 가는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까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운영하면서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를 계속 수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검거된 피의자의 70% 이상은 10대·20대였다. 피의자 664명 가운데 10대는 221명(33%), 20대는 274명(41%)으로 드러났다. 30대 117명, 40대 38명, 50대 이상이 14명 등이다. 피해자도 마찬가지로 10대·20대가 많았다. 신분이 특정된 피해자 482명 중 10대가 301명(62%), 20대가 124명(26%)이었고 차례대로 30대 39명, 40대 12명, 50대 이상 6명 등으로 나타났다. 박사, 갓갓만큼 유명세를 떨쳤지만, 아직 꼬리가 잡히지 않은 운영자들도 주목해야 한다. ‘완장방’을 운영한 닉네임 ‘체스터’, ‘똥집튀김네방’ 운영자 닉네임 ‘똥집튀김’, ‘한국인잡담방’ 운영자 닉네임 ‘강호동’이 대표적이다. 아직 경찰이 검거한 인원 중 체스터, 똥집튀김 등이 포함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체스터가 운영했던 완장방은 조씨의 박사방이 파생됐던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검거 전 조씨와 문씨 등이 “나는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듯이 당당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모두에게 공개된 SNS 계정에서도 성착취 범죄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트위터 일부 계정에는 “노예녀 분양합니다”라며 성착취를 종용하거나 스스로를 성착취하는 여성의 영상이 버젓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이날에도 해당 계정은 지난달 31일부터 매일 2개씩 성착취 영상을 올리고 있지만 3주가 지나도록 계정이 정지되지 않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처럼 공론화가 되면 주범들이 처벌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비밀대화방 등 성착취 범죄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라면서 “조주빈은 검거됐지만 이용자 1만 5000명에서 2만명가량은 플랫폼을 옮겨다니면서 성착취물을 사고팔고 있어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잠입수사 등을 허용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사회적인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박사도 갓갓도, n번방에서 감방으로… 법정최고형까지

    박사도 갓갓도, n번방에서 감방으로… 법정최고형까지

    23일 텔레그램 내에서 일명 ‘박사방’을 만들어 성착취 영상을 제작·판매·유포한 조주빈(25)이 검거된 지 100일이 된다. 그저 소수의 일로 치부되던 디지털 성범죄는 지난 3월 16일 조씨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피해의 심각성이 보통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수사력을 집중하면서 공범들을 추적했고, 관련 성범죄자들을 소탕했다. 특히 지난달 11일 경찰이 ‘n번방’의 시초격이자 핵심 인물 가운데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았던 닉네임 ‘갓갓’ 문형욱(24)을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마치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21일 확인한 결과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성착취 사건들을 막기 위해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어떤 최후를 맞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판사님, 죄송해요”… 무늬만 반성 ‘박사’ 조씨를 비롯한 텔레그램 성범죄 핵심 인물들은 재판부에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어떻게든 형량을 줄여 보기 위해서다. 조씨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한 달 동안 매일 반성문을 제출했다. 지난달 1일부터 제출한 반성문은 21일 기준 총 29건이다. 조씨가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나서면서 피해자에 대한 사죄에는 침묵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 11일 열린 조씨의 첫 공판기일에서 조씨 측 변호인은 강제추행, 강요 및 강요미수 등 일부 혐의에 대해 부인하기도 했다. 조씨의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25일이다. 공범들도 마찬가지다. 조씨의 ‘오프남’으로 알려진 공범 한모(26)씨는 56일간 반성문 64건을 제출했다. 오프남이란 제작자의 제안·지시를 받고 실제 성폭행에 가담한 사람을 의미한다. 거제시청 공무원이었던 공범 천모(29)씨는 21일 기준 반성문을 11차례 제출했다. 천씨는 지난 4월 10일 공무원 징계 중 가장 수위가 높은 파면 처분을 받았다. 조씨와 함께 재판을 받는 공범 ‘태평양’ 이모(16)군과 공익요원 강모(24)씨는 각각 5건, 3건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시민들은 이들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적극적으로 제출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를 추진한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과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는 온라인 법률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박사 조씨 등 15명에 대해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21일 기준 조씨에 대한 탄원서를 낸 사람은 3만 9553명이다. 조씨의 공범 ‘부따’ 강훈(19)에 대해서는 1만 5608명, 조씨의 공범이자 군인 ‘이기야’ 이원호(19)에 대해서는 1만 3636명, 문씨에 대해서는 1만 1629명이 각각 엄벌을 처해 달라며 탄원서를 작성했다. 조씨의 공범들은 잇따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강씨는 지난달 27일 신상공개 처분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냈다. 천씨는 외국에는 영상 촬영에 합의한 경우 처벌을 배제하는 규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한 모든 경우를 처벌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20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형량 과하다” 항소… 죄책감 못 느껴 n번방 사건 주범들은 하나둘씩 선고를 받고 있다. ‘제2n번방’을 운영하면서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를 받은 ‘로리대장태범’ 배모(19)군과 ‘슬픈고양이’ 류모(20)씨 등이 그 시작이다.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실질적으로 내려진 첫 판결이라 볼 수 있다. 배군과 류씨, 또 다른 공범 ‘서머스비’ 김모(20)씨는 지난 5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 전 과정을 주도한 배군에게 소년법상 유기 징역형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류씨와 김씨에게는 각각 징역 7년과 8년을 선고했다. 과거와 달리 법원은 이들에 대해 중형을 선고했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르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즐긴 이들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들은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배군과 류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김씨는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 제작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n번방 이후 내려진 실질적 첫 판결은 2라운드를 맞게 됐다. 한편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기 이전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었던 주범들은 조용히 사건을 끝내기 어려워졌다. 문씨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진 ‘켈리’ 신모(32)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1년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n번방 사건이 불거지자 항소를 취소했다. 신씨 사건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1년형이 확정된 채 끝나 ‘꼼수 항소 취하’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강 수사를 마친 검찰이 이달 4일 신씨를 추가 기소하면서 신씨는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n번방으로 이어지는 링크를 공유하는 ‘고담방’ 운영자 ‘와치맨’ 전모(38)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던 검찰은 n번방 공론화 이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받자 부랴부랴 변론 재개를 신청해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n번방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n번방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총 594건에 연루된 664명이 검거되고 86명은 구속됐다. 경찰은 이 가운데 16건 258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나머지에 대한 수사는 이어 가는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까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운영하면서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를 계속 수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검거된 피의자의 70% 이상은 10대·20대였다. 피의자 664명 가운데 10대는 221명(33%), 20대는 274명(41%)으로 드러났다. 30대 117명, 40대 38명, 50대 이상이 14명 등이다. 피해자도 마찬가지로 10대·20대가 많았다. 신분이 특정된 피해자 482명 중 10대가 301명(62%), 20대가 124명(26%)이었고 차례대로 30대 39명, 40대 12명, 50대 이상 6명 등으로 나타났다. 조씨가 운영한 박사방 유료회원 2명은 지난 3일 처음으로 범죄단체가입죄 혐의를 적용받아 검찰에 송치됐지만 신상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의 신상공개 여부는 추후 다른 유료회원 등 ‘관전자’들의 신상공개를 가늠할 수 있어 주목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의 신상공개가 범죄 예방에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유료회원 신상공개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3월 조씨 검거 직후 “n번방, 박사방 등 성착취 영상 관전자도 모두 신상공개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또 다른 n번방 연루자가 신상공개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갓갓 문씨의 공범으로 드러난 20대 남성 A씨를 두고 신상공개를 고심 중이다. A씨는 문씨와 함께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n번방 성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아직까지 박사방이 아닌 n번방과 관련해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문씨가 유일하다. 박사, 갓갓만큼 유명세를 떨쳤지만, 아직 꼬리가 잡히지 않은 운영자들도 주목해야 한다. ‘완장방’을 운영한 닉네임 ‘체스터’, ‘똥집튀김네방’ 운영자 닉네임 ‘똥집튀김’, ‘한국인잡담방’ 운영자 닉네임 ‘강호동’이 대표적이다. 아직 경찰이 검거한 인원 중 체스터, 똥집튀김 등이 포함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체스터가 운영했던 완장방은 조씨의 박사방이 파생됐던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검거 전 조씨와 문씨 등이 “나는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듯이 당당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이 잡히지 않은 것을 보며 제2, 제3의 성착취 공간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n번방 사건을 잊지 않고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핵심은] ‘웰컴투비디오’ 손정우가 한국에서 버티는 이유

    [핵심은] ‘웰컴투비디오’ 손정우가 한국에서 버티는 이유

    “한국에서 재판받을 수 있다면 어떤 중형이라도 달게 받고 싶습니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가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게 해달라며 재판부에 이같이 호소했습니다. 손씨는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특수 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에서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를 운영하며 유료회원 4000여명에게 수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받고 아동음란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습니다. 그는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돼 지난 4월 이미 복역을 마쳤습니다. 이대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출소 직전 미국에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습니다. 손씨는 기어코 한국에 남으려고 버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핵심 ① ‘셀프 고소’는 추가 처벌 피하려는 술수 미국 연방대배심은 2018년 손씨를 아동 음란물 배포 등 6개 죄명·9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다만 손씨는 한국에서 이미 음란물 배포와 관련해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의해 범죄인 인도와 관련해서는 돈세탁 혐의만 적용됐습니다. 미국의 인도 요청으로 손씨가 다시 구속되자, 아버지는 곧바로 구속적부심을 신청했습니다. 구속적부심은 구속이 타당한지 다시 판단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재판부는 손씨의 경우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기각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들 손씨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로 가상화폐 계좌를 개설하고 여기에 범죄수익을 은닉했다. 할머니의 병원비를 범죄 수익으로 지급해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 아버지가 아들을 고소하는 사실상 ‘셀프 고소’인 셈인데 그 속셈은 명확합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기소 여부를 결정해 손씨가 국내에서 관련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범죄인 인도법 제7조 인도 거절 사유 중 ‘인도범죄에 관하여 대한민국 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이거나 재판이 확정된 경우’에 해당됩니다. 즉, 손씨가 국내에서 재판을 받게 해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도록 하는 고육지책인 것이죠. 아버지는 손씨의 미국행만은 막아 달라고 읍소하는 탄원서도 썼습니다. 다음은 손씨의 아버지가 지난 5월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식생활이 다르고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성범죄인을 마구 다루는 교소소 생활을 하게 되는 미국으로 송환된다면 본인이나 가족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중략) 몇 개의 기소만 소급해도 100년 이상인데 어떻게 사지에 보낼 수 있겠느냐” 그뿐만이 아닙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아들이 강도나 살인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 않냐’는 청원 글을 올렸다가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 핵심 ② 미국에서는 돈세탁만으로도 최소 10년 한국의 미온적 처벌과 달리 미국은 성 착취물을 유통하면 엄벌에 처합니다. 손씨는 자금 세탁 혐의만으로도 최소 징역 10년에서 최대 20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중형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말한 건 어떤 처벌을 받아도 한국에 남는 게 더 이득이라는 뜻입니다. 손씨 측은 지난 16일 열린 범죄인 인도 심사 두 번째 심문에서 “(검찰이) 기소만 하면 범죄 행위에 대해 한국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 국내 법원에서 재판 중인 경우, 인도를 거절할 수 있는 점을 노린 것입니다. 또 미국에서 추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도 보증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손씨 측은 “국내에서 처벌받은 혐의(아동음란물 혐의 등)에 대해 다시 처벌받지 않는다는 보증이 실제로 없기 때문에 (보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자금 세탁마저도 ‘무죄’라고 주장했습니다. 손씨는 다른 사람의 계좌로 범죄수익금을 주고받고, 도박사이트에 돈을 넣었다 빼는 방식으로 세탁했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이 같은 정황이 밝혀졌는데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방증이라는 겁니다. 결국 재판부는 “변호인이 오늘 법정에 와서야 무죄 주장을 해서 그 부분은 오늘 당장 심리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결정을 미뤘습니다. 손씨의 심문 기일은 다음 달 6일 최종 결정됩니다.■ 핵심 ③ 한국은 디지털 성범죄에 관대한 나라니까 손씨가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하면서 유통한 아동 성 착취물은 3000여개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생후 6개월 된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영상도 있었습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성인 음란물은 올리지 말라’고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아동 성 착취물만 취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손씨의 범죄는 한국과 미국, 영국 등 32개국 수사기관이 공조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끝에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사이트 이용자 중 한국인은 무려 223명이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두려움 없이 성 착취물을 유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최근 미성년자 포함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됐죠. 지금까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무기징역 내지 징역 5년 이상이라는 법정형만 정해져 있었습니다. 양형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데다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또 손씨처럼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겪고 돌봐야 할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감형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양형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처벌 기준이 더 강화될 전망입니다. 지난 5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초안을 마련했습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 착취물을 제작한 이에게 최대 13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오는 12월 의결될 예정입니다. 법률만 재정비한다고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인식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자기만족을 위해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것이냐” –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 지난 3월 ‘디지털 성 착취 방지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관한 법사위 회의 때 나온 발언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단순한 호기심 또는 놀이 정도로 치부합니다. 손씨가 간절히 남기를 원하는 대한민국.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성범죄자에게 얼마나 관대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토요일 아침, 한 주간 가장 뜨거웠던 이슈의 핵심을 짚어드립니다.
  • 200만 청원에도… ‘박사방’ 유료회원 마스크 못 벗겼다

    200만 청원에도… ‘박사방’ 유료회원 마스크 못 벗겼다

    “범죄 예방 효과 의문”… 신상공개는 불발법원, 또 다른 유료회원 구속영장 기각“범죄집단 가입 등 일부 혐의 다툼 여지”향후 수사서 다른 회원 공개 여부 달려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 동영상을 촬영·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에서 처음으로 범죄단체가입죄를 적용받은 유료회원 2명의 신상공개가 불발됐다. 경찰은 이들의 범죄 가담 정도가 크다면서도 신상공개로 인한 실익은 크지 않다고 봤다.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단은 3일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및 범죄단체가입 혐의를 적용해 박사방 유료회원 임모씨와 장모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지난달 25일 구속된 두 사람은 이날 오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호송차에 올랐다. 주범인 ‘박사’ 조주빈(25·이하 구속 기소)이나 공범 ‘부따’ 강훈(19)이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을 드러내고 취재진 앞에 섰던 것과 대조적이다. 경찰이 임씨와 장씨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신중히 검토했으나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도 신상공개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된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행한 이슈페이퍼에서 “텔레그램에 가입해 돈을 주고 성착취물을 소지한 자들에 대한 신상공개는 신중할 필요가 있고, 공개 가능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임씨와 장씨는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과 경찰이 범죄단체가입죄를 처음 적용할 만큼 범죄 가담 정도가 큰 피의자여서 신상공개 여부가 주목됐었다. 앞서 지난 3월 박사 조씨가 검거된 직후 “박사방, n번방 관전자도 모두 신상공개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돼 200만명이 넘는 사람의 동의를 받았다. 이와 관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4월 1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책임이 중한 가담자에 대해서는 신상을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민갑룡 경찰청장도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국민 여망에 어긋나지 않게 (유료회원을 포함한) 불법행위자를 엄정 사법 처리하고 신상공개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경찰은 향후 수사에서 다른 유료회원의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의 경우 신상을 공개할 때 범죄 예방 효과가 다른 강력 범죄에 비해 크다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사방을 운영·관리한 혐의를 받는 부따 강군은 다니던 대학으로부터 재입학이 불가능한 퇴학 명령을 받았다. 박사방의 또 다른 유료회원으로 피해자를 유인해 성착취물 제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남모(29)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은 “범죄집단 가입 등 일부 혐의 사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텔레그램 ‘박사방’ 유료회원은 왜 신상공개 피했나

    텔레그램 ‘박사방’ 유료회원은 왜 신상공개 피했나

    검찰 송치된 ‘박사방’ 유료회원들, 신상공개는 안 돼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 동영상을 촬영·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에서 처음으로 범죄단체가입죄를 적용받은 유료회원 2명의 신상공개가 불발됐다. 경찰은 이들의 범죄 가담 정도가 크다면서도 신상공개로 인한 실익이 크지 않다고 봤다. 마스크·모자로 얼굴 가린 ‘박사방’ 유료회원들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단은 3일 박사방 유료회원 임모씨와 장모씨에게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및 범죄단체가입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지난 25일 구속된 두 사람은 이날 오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호송차에 올랐다. 주범인 ‘박사’ 조주빈(25·이하 구속기소)이나 공범 ‘부따’ 강훈(19)이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을 드러내고 취재진 앞에 섰던 것과 대조적이다. 경찰이 임씨와 장씨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경찰 관계자는 “신중히 검토했으나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상공개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된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행한 이슈페이퍼에서 “텔레그램에 가입해 돈을 주고 성착취물을 소지한 자들에 대한 신상공개는 신중할 필요가 있고, 공개 가능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 “디지털 성범죄에선 예방 효과 커··· 향후 유료회원 신상공개 가능성 있어” 그럼에도 임씨와 장씨는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과 경찰이 범죄단체 가입죄를 처음 적용할 만큼 범죄 가담 정도가 큰 피의자여서 신상공개 여부가 주목됐었다. 앞서 지난 3월 박사 조씨가 검거된 직후 “박사방, n번방 관전자도 모두 신상공개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돼 200만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이와 관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4월 1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책임이 중한 가담자에 대해서는 신상을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민갑룡 경찰청장도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국민 여망에 어긋나지 않게 (유료회원을 포함한) 불법행위자를 엄정 사법처리하고 신상공개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경찰은 향후 수사에서 다른 유료회원의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의 경우, 신상을 공개할 때 범죄 예방 효과가 다른 강력 범죄에 비해 크다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부따’ 강훈은 대학서 제적 한편 박사방을 운영·관리한 혐의를 받는 부따 강씨는 재학 중이던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강군은 학교 측으로부터 재입학이 불가능한 퇴학 명령을 받았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네이버·카카오 성착취물 차단 의무화…역차별·실효성 논란

    네이버·카카오 성착취물 차단 의무화…역차별·실효성 논란

    국회가 20일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키면서 이제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는 성 착취물을 포함한 불법 음란물을 차단해야 할 법적 의무가 생겼다. ‘n번방 방지법’은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 성 범죄물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반한 인터넷 사업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네이버·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는 유통되는 불법 음란물을 인지할 경우, 책임자가 이를 즉시 삭제하고 관련 접속을 차단해야 한다. 개정안은 최근 미성년자 등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해 사회적 공분을 산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상 성 착취물을 신속히 단속해 2차 피해를 막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특히 ‘n번방 사건’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벌어진 만큼 개정안을 해외 인터넷 사업자에게도 적용하기 위해 국내에 대리인을 두도록 하는 등 역외 규정도 추가했다.그러나 인터넷 사업자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민생경제연구소,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는 정부와 국회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n번방 방지법’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해당 법이 민간 사업자에 사적 검열 등 과도한 의무를 부과해 피해를 입힌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개인 간 사적 대화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공개 통신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헌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온라인상에 공개된 콘텐츠에 대해서만 부과하는 의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n번방 방지법’이 국내 업체를 역차별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사업자에 대한 역외 규정을 두었지만, 막상 적용하긴 힘들 것으로 봤다. 하지만 정부는 불법 행위를 방조할 수는 없는 만큼 이번 법 시행을 계기로 향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상혁 위원장은 “해외 사업자에 대한 실효성이 적은 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한 것이고,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수능 본다’며 잠적한 갓갓… 수사 혼선 주려 여러 대화명 쓴 듯

    ‘수능 본다’며 잠적한 갓갓… 수사 혼선 주려 여러 대화명 쓴 듯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송강호가 카메라를 향해 묻는다. 대한민국 대표 미제 사건으로 꼽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에게 던진 말이었다. 지난해 자칫 완전범죄로 묻힐 뻔한 화성 사건의 진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을 잊지 않고 추적하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33년 만에 이춘재의 가면을 벗길 수 있었다. 흔히 ‘완전범죄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흉악범이 죗값을 치르는 건 아니다.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본모습을 숨긴 채 사는 범인이 당신 곁에 있다. 그놈이 가장 바라는 건 영원히 잊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또렷이 기억해야 한다. 그놈을 잡기 위해.●“n번방은 단지 재미있는 노예게임이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아동과 여성들의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의 주범 ‘갓갓’(이하 대화명)은 자신의 범죄를 이렇게 표현했다. 5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n번방 대화록에 따르면 갓갓은 여성의 약점을 잡아 성착취 영상을 만들고 유포하는 일련의 과정을 스트레스 해소나 일탈 행위쯤으로 정의하며 정당화했다. 지난해 2월 텔레그램에 1번부터 8번까지 번호가 붙은 채팅방 8개가 생겼다. 채팅방에는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널브러져 있는 여성의 영상, 여성이 개처럼 짖거나 칼과 바늘로 자신을 학대하는 모습 등 잔혹한 성착취 영상이 올라왔다. 1~8번 방의 이용자들은 영상 속 여성을 ‘노예’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민낯을 드러낸 이 사건은 숫자가 붙어 있던 방의 이름을 따 ‘n번방 사건’이라 불린다. n번방은 ‘와치맨’이 만든 ‘고담방’, ‘박사’ 조주빈(25·구속)이 운영한 ‘박사방’ 등 수많은 파생방을 만들며 곰팡이처럼 퍼져 나갔다. 이들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많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파생방의 운영자들과 공범은 경찰에 잇따라 검거되고 있지만, 아직 이 사건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n번방 개설자, ‘갓갓’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추악한 범죄 수법 만든 ‘갓갓’은 누구인가 갓갓은 피해자 신상 정보를 알아낸 다음 이를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찍고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주요 범행 대상은 트위터에서 ‘일탈계’, ‘살색계’를 운영하는 여성들이었다. 일탈계와 살색계는 자신의 얼굴과 정보를 가린 채 신체 노출 사진 등을 올리는 계정이다. 갓갓은 피해자들에게 해킹 링크를 보내거나 경찰을 사칭해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방법으로 신상 정보를 알아냈다. 갓갓은 피해자들의 개인 정보를 손에 쥔 후 “지인과 가족에게 알리겠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성착취 영상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피해자의 이름과 학교 등 개인 정보와 함께 n번방에 공유됐다. 문화상품권 표면의 스크래치를 긁으면 나오는 핀(PIN)번호만 있으면 온라인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갓갓은 1만원어치 상품권의 핀번호를 보낸 사람에게 n번방 입장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수익도 올렸다. 갓갓은 ‘뀨릅’이란 대화명으로 n번방을 홍보하기도 했다. 갓갓의 정체를 추정할 단서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가 텔레그램에 남긴 대화를 참고해 어렴풋이 추측만 할 뿐이다. 갓갓은 지난해 9월쯤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며 돌연 잠적했다. 한때 n번방에 참여했던 제보자 A씨는 “n번방이 지난해 8월까지 입장 가능했다가 9월쯤부터 전부 폐쇄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갓갓이 범행 당시 고등학교 3학년, 또는 재수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일부러 수능을 언급해 정체를 숨기고 수사에 혼란을 주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박사 조씨도 수사망을 피하려 중년 남성인 척하거나 ‘김윤기’라는 거짓 이름을 사용한 바 있다. n번방 공범자들 사이에선 갓갓의 거주지가 경기 안성이라는 추측이 돈다. n번방에 성착취물 등 9000여건을 유포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9월 구속된 와치맨 전모(38)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갓갓의 트위터 계정을 추적한 결과를 올리면서 “트위터에 남아 있는 정보를 조합해 보면 갓갓은 경기 안성에 산다”고 주장했다. 갓갓의 뒤는 현재 경북지방경찰청이 쫓고 있다. 사이버 범죄의 범행장소가 온라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피의자의 주거지는 전담 수사기관 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다. 경북청은 갓갓이 사용한 컴퓨터의 IP 주소를 특정해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갓갓이 입장료로 받은 문화상품권은 결제 내역 등 추적이 어렵다고 알려졌지만 경찰은 “수사기법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박사 조씨를 따르는 ‘부따’, ‘사마귀’, ‘이기야’ 등 공범이 있었던 것처럼 갓갓에게도 ‘코태’와 ‘반지’라는 대화명을 쓰는 공범이 둘 있었다. 코태는 갓갓과 함께 피해자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하거나 피해자를 직접 만나 성폭행하는 등 행동대장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일부 텔레그램 이용자들은 코태와 갓갓이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두 사람이 범행을 같이하면서도 현장에 동시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는 이유다. 갓갓이 수사망을 피하려고 여러 대화명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난 절대 안 잡혀”… 완전범죄 자신한 그놈 와치맨 전씨가 블로그에 남긴 갓갓과의 텔레그램 대화 기록에 따르면 갓갓은 경찰을 조롱하고 완전범죄를 자신했다. 전씨가 지난해 7월쯤 n번방의 운영 방식과 갓갓 등 n번방 운영자들의 잔혹한 성착취 영상 제작·유포 방식을 그대로 묘사해 올리자 갓갓이 먼저 전씨에게 접근했다. 갓갓과 대화를 나눈 전씨는 그 내용을 블로그에 인터뷰 형식으로 남겼다. 대화를 살펴보면 갓갓은 “트위터, 페이스북, 라인, 카카오톡, 텔레그램 모두 한국 경찰에서 수사 불가능하다”며 자신은 체포될 리 없다고 확신했다. 갓갓은 자신이 이미 경찰에 검거됐다는 소문이 돌자 “경찰도 (n번방 사건) 해결 못 하는 것 인지하고 모방범죄 안 일어나게 잡혔다고 소문만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갓갓은 경찰의 수사를 비웃었다. 갓갓은 n번방 이용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경찰 조사를 받고도 풀려난 사실을 언급하며 “경찰이 (그 사람의) 휴대전화 검사도 안 하고 ‘몰랐다’고 하니까 2번 정도 출석해 조사받았는데 (검찰에) 기소도 안 됐다”며 수사당국을 조롱했다. 갓갓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n번방 이용자가 “합의하에 사진과 영상을 받았다”고 말하니 신고가 반려됐다는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n번방 사건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고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하자 잠적했던 갓갓은 다시 나타났다. 복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갓갓은 지난 1월 돌연 조씨가 운영하는 박사방에 등장해 16살이라 적힌 성착취 사진을 올리고 “언론 보도를 보고 왔다”고 말했다. 갓갓은 박사 조씨를 두고 ‘제자’라 부르며 “네 수법은 다 알려져 의미가 없다”고 도발했다. 이 자리에서 갓갓은 자신의 목적은 “노예게임과 재미”라 말하고 조씨는 “여자는 돈벌이”라 맞받아치면서 서로 자신의 범죄가 더 우월하다고 설전을 벌였다. ●그놈 후예 ‘켈리’ ‘와치맨’ 솜방망이 처벌 논란 갓갓의 n번방이 인기를 끌자 텔레그램에는 수많은 파생방이 생겼다. 파생방은 성착취 영상뿐 아니라 지인, 연예인과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불법촬영 영상 등이 피해자의 신상 정보와 함께 공유되는 성범죄의 온상이 됐다. 5일 기준 경찰이 붙잡은 성착취 영상 제작·유포한 피의자는 모두 140명이다. 이 중 23명이 구속됐다. 140명 중 29명은 대화방 운영자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최소 103명이다. 성착취 영상을 본격적으로 사업화해 가상화폐 등으로 수익을 올린 박사 조씨는 지난달 17일 경찰에 검거돼 같은 달 25일 검찰로 송치됐다. 갓갓의 n번방을 물려받은 것으로 드러난 ‘켈리’ 신모(32)씨는 춘천지법에서, n번방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고담방을 운영한 와치맨 전씨는 수원지법에서 각각 2심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켈리의 항소를 포기하고 와치맨에게 3년6개월형을 구형한 검찰은 n번방 사건 공론화 이후 비난을 의식한 듯 두 사건 모두 변론재개를 신청했다. 추가 조사를 통해 더 엄한 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성착취 영상 공유방을 운영한 미성년자 ‘로리대장태범’ 배모(18)군, ‘태평양’ 이모(16)군도 재판에 넘겨졌다. 갓갓과 일부 운영자를 검거한다고 n번방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갓갓과 갓갓이 만든 영상을 죄의식 없이 즐겼던 일부 이용자들은 누군가의 절망을 ‘재미있는 게임’이라 부르며 사이버 세상을 전전하고 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수배범 검거에 결정적인 제보를 하신 분에게 신고포상금이 지급됩니다. 전화번호 112 또는 모바일앱 ‘스마트 국민제보’, 서울신문 이메일 police@seoul.co.kr로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수능보고 온다며 사라진 n번방 창시자 ‘갓갓’을 잡아라

    수능보고 온다며 사라진 n번방 창시자 ‘갓갓’을 잡아라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송강호가 카메라를 향해 묻는다. 대한민국 대표 미제 사건으로 꼽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에게 던진 말이었다. 지난해 자칫 완전범죄로 묻힐 뻔한 화성 사건의 진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을 잊지 않고 추적하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33년 만에 이춘재의 가면을 벗길 수 있었다. 흔히 ‘완전범죄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흉악범이 죗값을 치르는 건 아니다.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본모습을 숨긴 채 사는 범인이 당신 곁에 있다. 그놈이 가장 바라는 건 영원히 잊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또렷이 기억해야 한다. 그놈을 잡기 위해.“n번방은 단지 재미있는 노예게임이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아동과 여성들의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의 주범 ‘갓갓’(이하 대화명)은 자신의 범죄를 이렇게 표현했다. 5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n번방 대화록에 따르면 갓갓은 여성의 약점을 잡아 성착취 영상을 만들고 유포하는 일련의 과정을 스트레스 해소나 일탈 행위쯤으로 정의하며 정당화했다. 지난해 2월 텔레그램에 1번부터 8번까지 번호가 붙은 채팅방 8개가 생겼다. 채팅방에는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널브러져 있는 여성의 영상, 여성이 개처럼 짖거나 칼과 바늘로 자신을 학대하는 모습 등 잔혹한 성착취 영상이 올라왔다. 1~8번 방의 이용자들은 영상 속 여성을 ‘노예’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각 방에는 300명에서 700명 사이의 이용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민낯을 드러낸 이 사건은 숫자가 붙어 있던 방의 이름을 따 ‘n번방 사건’이라 불린다. n번방은 ‘와치맨’이 만든 ‘고담방’, ‘박사’ 조주빈(25·구속)이 운영한 ‘박사방’ 등 수많은 파생방을 만들며 곰팡이처럼 퍼져 나갔다. 이들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많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파생방의 운영자들과 공범은 경찰에 잇따라 검거되고 있지만, 아직 이 사건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n번방 개설자, ‘갓갓’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수능 보고 온다”며 사라져…‘갓갓’은 누구인가 갓갓은 피해자 신상 정보를 알아낸 다음 이를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찍고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주요 범행 대상은 트위터에서 ‘일탈계’, ‘살색계’를 운영하는 여성들이었다. 일탈계와 살색계는 자신의 얼굴과 정보를 가린 채 신체 노출 사진 등을 올리는 계정이다. 갓갓은 피해자들에게 해킹 링크를 보내거나 경찰을 사칭해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방법으로 신상 정보를 알아냈다. 갓갓은 피해자들의 개인 정보를 손에 쥔 후 “일탈계를 운영했단 사실을 지인과 가족에게 알리겠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성착취 영상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피해자의 이름과 학교 등 개인 정보와 함께 n번방에 공유됐다. 문화상품권 표면의 스크래치를 긁으면 나오는 핀(PIN)번호만 있으면 온라인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갓갓은 1만원어치 상품권의 핀번호를 보낸 사람에게 n번방 입장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수익도 올렸다. 갓갓은 ‘뀨릅’이란 대화명으로 n번방을 홍보하기도 했다.갓갓의 정체를 추정할 단서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가 텔레그램에 남긴 대화를 참고해 어렴풋이 추측만 할 뿐이다. 갓갓은 지난해 9월쯤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며 돌연 잠적했다. 한때 n번방에 참여했던 제보자 A씨는 “n번방이 지난해 8월까지 입장 가능했다가 9월쯤부터 전부 폐쇄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갓갓이 범행 당시 고등학교 3학년, 또는 재수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일부러 수능을 언급해 정체를 숨기고 수사에 혼란을 주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박사 조씨도 수사망을 피하려 중년 남성인 척하거나 ‘김윤기’라는 거짓 이름을 사용한 바 있다. n번방 공범자들 사이에선 갓갓의 거주지가 경기 안성이라는 추측이 돈다. n번방에 성착취물 등 9000여건을 유포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9월 구속된 와치맨 전모(38)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갓갓의 트위터 계정을 추적한 결과를 올리면서 “트위터에 남아 있는 정보를 조합해 보면 갓갓은 경기 안성에 산다”고 주장했다. 갓갓의 뒤는 현재 경북지방경찰청이 쫓고 있다. 사이버 범죄의 범행장소가 온라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피의자의 주거지는 전담 수사기관 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다. 경북청은 갓갓이 사용한 컴퓨터의 IP 주소를 특정해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갓갓이 입장료로 받은 문화상품권은 결제 내역 등 추적이 어렵다고 알려졌지만 경찰은 “수사기법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박사 조씨를 따르는 ‘부따’, ‘사마귀’, ‘이기야’ 등 공범이 있었던 것처럼 갓갓에게도 ‘코태’와 ‘반지’라는 대화명을 쓰는 공범이 둘 있었다. 코태는 갓갓과 함께 피해자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하거나 피해자를 직접 만나 성폭행하는 등 행동대장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반지는 n번방 범죄의 흔적이 경찰에 걸리지 않도록 사이버 관리자 구실을 했다. 코태는 평소에 “갓갓은 내 친구”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텔레그램 이용자들은 코태와 갓갓이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두 사람이 범행을 같이하면서도 현장에 동시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는 이유다. 갓갓이 수사망을 피하려고 여러 대화명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나는 절대 안 잡혀”…완전범죄 자신한 그놈 와치맨 전씨가 블로그에 남긴 갓갓과의 텔레그램 대화 기록에 따르면 갓갓은 경찰을 조롱하고 완전범죄를 자신했다. 전씨가 지난해 7월쯤 n번방의 운영 방식과 갓갓 등 n번방 운영자들의 잔혹한 성착취 영상 제작·유포 방식을 그대로 묘사해 올리자 갓갓이 먼저 전씨에게 접근했다. 갓갓과 대화를 나눈 전씨는 그 내용을 블로그에 인터뷰 형식으로 남겼다. 대화를 살펴보면 갓갓은 “트위터, 페이스북, 라인, 카카오톡, 텔레그램 모두 한국 경찰에서 수사 불가능하다”며 자신은 체포될 리 없다고 확신했다. 갓갓은 자신이 이미 경찰에 검거됐다는 소문이 돌자 “경찰도 (n번방 사건) 해결 못 하는 것 인지하고 모방범죄 안 일어나게 잡혔다고 소문만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갓갓은 경찰의 수사를 비웃었다. 갓갓은 n번방 이용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경찰 조사를 받고도 풀려난 사실을 언급하며 “경찰이 (그 사람의) 휴대전화 검사도 안 하고 ‘몰랐다’고 하니까 2번 정도 출석해 조사받았는데 (검찰에) 기소도 안 됐다”며 수사당국을 조롱했다. 갓갓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n번방 이용자가 “합의하에 사진과 영상을 받았다”고 말하니 신고가 반려됐다는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n번방 사건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고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하자 잠적했던 갓갓은 다시 나타났다. 복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갓갓은 지난 1월 돌연 조씨가 운영하는 박사방에 등장해 16살이라 적힌 성착취 사진을 올리고 “언론 보도를 보고 왔다”고 말했다. 갓갓은 박사 조씨를 두고 ‘제자’라 부르며 “네 수법은 다 알려져 의미가 없다”고 도발했다. 이 자리에서 갓갓은 자신의 목적은 “노예게임과 재미”라 말하고 조씨는 “여자는 돈벌이”라 맞받아치면서 서로 자신의 범죄가 더 우월하다고 설전을 벌였다.n번방의 후예는 어떻게 됐나 갓갓의 n번방이 인기를 끌자 텔레그램에는 수많은 파생방이 생겼다. 파생방은 성착취 영상뿐 아니라 지인, 연예인과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불법촬영 영상 등이 피해자의 신상 정보와 함께 공유되는 성범죄의 온상이 됐다. 5일 기준 경찰이 붙잡은 성착취 영상 제작·유포한 피의자는 모두 140명이다. 이 중 23명이 구속됐다. 140명 중 29명은 대화방 운영자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최소 103명이다. 성착취 영상을 본격적으로 사업화해 가상화폐 등으로 수익을 올린 박사 조씨는 지난달 17일 경찰에 검거돼 같은 달 25일 검찰로 송치됐다. 갓갓의 n번방을 물려받은 것으로 드러난 ‘켈리’ 신모(32)씨는 춘천지법에서, n번방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고담방을 운영한 와치맨 전씨는 수원지법에서 각각 2심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켈리의 항소를 포기하고 와치맨에게 3년6개월형을 구형한 검찰은 n번방 사건 공론화 이후 비난을 의식한 듯 두 사건 모두 변론재개를 신청했다. 추가 조사를 통해 더 엄한 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성착취 영상 공유방을 운영한 미성년자 ‘로리대장태범’ 배모(18)군, ‘태평양’ 이모(16)군도 재판에 넘겨졌다. 갓갓과 일부 운영자를 검거한다고 n번방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박사방 이용자 닉네임을 1만 5000개(중복 제외)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보자 A씨는 텔레그램 내 불법 성착취 영상 이용자가 약 3만명 정도라고 추정했다. 여성단체들은 중복 계정을 포함해서 26만명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갓갓과 갓갓이 만든 영상을 죄의식 없이 즐겼던 일부 이용자들은 누군가의 절망을 ‘재미있는 게임’이라 부르며 사이버 세상을 전전하고 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수배범 검거에 결정적인 제보를 하신 분에게 신고포상금이 지급됩니다. 전화번호 112 또는 모바일앱 ‘스마트 국민제보’, 서울신문 이메일 police@seoul.co.kr로 제보할 수 있습니다.
  •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 “강력한 처벌 제도화 필요”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 “강력한 처벌 제도화 필요”

    아동·청소년 착취 등 죄질 악랄해져도 처벌 미약… 중형 선고 법안 마련해야텔레그램을 악용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착취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이 잡혔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았다. 조씨의 범행은 온라인 속 활동 무대만 바뀌었을 뿐 수법도 범죄의 행태도 그대로 반복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과거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죄자는 일망타진되는 듯했다. 하지만 점점 음지로 스며든 디지털 성범죄는 더 악랄하고 집요하게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었다.1999년 등장한 소라넷이 원조격이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등이 무더기로 유포됐는데 이용자 계정만 100만개에 달했다. 주범 격인 송모씨는 징역 4년형을 받았고 소라넷은 폐쇄됐지만 얼마 후 에이브이스누프(AVSNOOP)라는 유사 사이트가 생겼다. 회원비에 따라 등급이 부여됐고, 접근할 수 있는 음란물의 종류도 달라졌다. 경찰 추적을 피하려 문화상품권이나 가상화폐로 거래가 이뤄졌다. 회원은 121만여 명에 달했고, 아동·청소년 음란물 등 46만여 건이 유통됐다. 그러나 운영자 안모씨가 받은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벌금형 외 특별한 전과가 없고, 회원들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게시하지 못하도록 금지어를 설정한 점을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그사이 디지털 성범죄는 다크웹이나 텔레그램처럼 보안성이 더 강화된 곳으로 옮겨 갔다. 수법 역시 교묘해졌다. 시청이나 파일 공유를 넘어 ‘박사방’에 이르러서는 아동과 청소년을 직접 노예화하고, 음란물을 제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조씨가 검거된 지금도 디지털 성범죄는 더욱 보안성이 강화된 메신저인 디스코드나 위커, 와이어 등으로 이사했을 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로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술의 발달로 피해자들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고, 유포도 더 쉬워졌지만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형되는 등 처벌이 미약하다”면서 “타인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성욕이 발현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온라인 기반 성착취물을 처벌하는 법은 물론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제대로 된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고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는 n번방 사건 피해자들이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을 할 경우 3주 내에 심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통상 주민등록번호 변경은 최소 3개월이 소요된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 “강력처벌 제도화를”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 “강력처벌 제도화를”

    아동·청소년 착취 등 죄질 더 악랄해져도 처벌 미약… 중형 선고하게 법안 마련해야 텔레그램을 악용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착취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이 잡혔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았다. 조씨의 범행은 온라인 속 활동 무대만 바뀌었을 뿐 수법도 범죄의 행태도 그대로 반복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과거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죄자는 일망타진되는 듯했다. 하지만 점점 음지로 스며든 디지털 성범죄는 더 악랄하고 집요하게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었다.  1999년 등장한 소라넷이 원조격이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등이 무더기로 유포됐는데 이용자 계정만 100만개에 달했다. 주범 격인 송모씨는 징역 4년형을 받았고 소라넷은 폐쇄됐지만 얼마 후 에이브이스누프(AVSNOOP)라는 유사 사이트가 생겼다. 회원비에 따라 등급이 부여됐고, 접근할 수 있는 음란물의 종류도 달라졌다. 경찰 추적을 피하려 문화상품권이나 가상화폐로 거래가 이뤄졌다. 회원은 121만여 명에 달했고, 아동·청소년 음란물 등 46만여 건이 유통됐다. 그러나 운영자 안모씨가 받은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벌금형 외 특별한 전과가 없고, 회원들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게시하지 못하도록 금지어를 설정한 점을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그사이 디지털 성범죄는 다크웹이나 텔레그램처럼 보안성이 더 강화된 곳으로 옮겨 갔다. 수법 역시 교묘해졌다. 시청이나 파일 공유를 넘어 ‘박사방’에 이르러서는 아동과 청소년을 직접 노예화하고, 음란물을 제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조씨가 검거된 지금도 디지털 성범죄는 더욱 보안성이 강화된 메신저인 디스코드나 위커, 와이어 등으로 이사했을 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로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술의 발달로 피해자들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고, 유포도 더 쉬워졌지만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형되는 등 처벌이 미약하다”면서 “타인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성욕이 발현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온라인 기반 성착취물을 처벌하는 법은 물론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제대로 된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고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는 n번방 사건 피해자들이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을 할 경우 3주 내에 심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통상 주민등록번호 변경은 최소 3개월이 소요된다. 위원회는 최근 유사사건 2건에 대해 각각 3주와 7주 만에 주민등록번호 변경 심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여성단체 “‘n번방’ 관전자도 모두 처벌해야…반인륜적 범죄”

    여성단체 “‘n번방’ 관전자도 모두 처벌해야…반인륜적 범죄”

    여성단체들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25일 성명서를 내 “텔레그램 ‘n번방’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가학행위는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며, 잔혹한 범죄이자 인권유린행위”라며 “‘운영자 검거’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결과지만 더욱 강력한 수사로 범죄에 가담한 전원을 신속하게 검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n번방’에서 여성들을 성착취·학대하는 현장을 지켜본 관전자들도 모두 처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의회는 “‘n번방 운영자 조주빈’에 대한 신상 공개를 지지하며, 이들 범죄에 대해 경찰, 검찰, 법원은 강력하고 엄중하게 법집행을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특별법을 신속히 제정하고, 디지털 범죄에 대한 국제 공조수사 대책을 철저하게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한국YWCA연합회도 전날 성명을 통해 “계속해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유희를 위한 도구로 여기며 사고파는 ‘강간문화’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착취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살인 범죄’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종식하고자 하는 수사당국의 강력한 의지, 국회의 조속한 법 제·개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텔레그램 n번방’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합회는 ▲ 디지털 성착취물 생산·배포자 철저 수사·신상 공개 ▲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 제·개정, ▲ 정부 내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 보건 위주 성교육 넘는 ‘성평등 교육’ 의무화 등을 촉구했다. 한편 성착취물을 유포해온 텔레그램 ‘n번방’의 창시자 ‘갓갓(닉네임)’은 현재 경찰이 추적 중이다. ‘박사방’의 ‘박사’ 조주빈은 2018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아동성착취물 등을 제작해 돈을 받고 유포한 혐의 등으로 25일 송치됐다. 조주빈에게는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아동음란물제작) 및 강제추행·협박·강요·사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개인정보 제공),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 혐의가 적용됐다. 현재까지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74명, 미성년자는 이 중 16명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고통 묵과할 수 없어…” 여성변호사 111명, n번방 피해자 법률지원

    “고통 묵과할 수 없어…” 여성변호사 111명, n번방 피해자 법률지원

    “성범죄 대한민국 땅에 발붙이지 못하는 게…”국회에 디지털성범죄처벌법 제정 촉구도 한국여성변호사회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과 아동·청소년에 대한 법률지원에 나선다고 25일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윤석희)는 25일 “소위 ‘n번방’이라는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여성과 아동·청소년에 대한 법률지원에 나선다”고 전했다. 전날까지 법률지원 의사를 밝힌 여성 변호사는 111명이다. 여변은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의 수만 16명의 아동·청소년을 포함해 74명 이상에 이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이들의 고통을 묵과할 수 없으며, 더 이상의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법률지원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사건을 통해 다양해지는 디지털 범죄와 현행 법제 간의 괴리를 다시금 확인했다. 지금이라도 발의된 입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과 디지털성범죄 처벌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디지털성범죄처벌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여변의 조사 결과 20대 국회 회기 중 발의된 175건의 디지털성범죄처벌법 개정안 중 n번방에 대한 처벌 및 피해자보호법안 발의는 전무하며, 지난 23일이 돼서야 성인 대상 불법 촬영물 소지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발의됐다. 여변은 “그동안 국회와 정부가 국민들의 분노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번 n번방 성범죄에 가담한 공범들에 대한 신상공개 등을 통해 이러한 성범죄가 다시는 대한민국 땅에 발붙이지 못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성,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음란물 제작, 유통 범죄가 뿌리 뽑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찍은 뒤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은 이날 검찰에 송치됐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왜 범죄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가…신상공개제도의 허와 실

    왜 범죄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가…신상공개제도의 허와 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의 얼굴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문화방송(MBC) 시사프로그램 ‘실화탐사대’는 지난 24일 방송에서 조두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사건이 발생한 2008년 당시에는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없었다. ‘인권보호수사준칙’에 따라 피의자가 취재진 앞에 설 때 마스크와 모자, 옷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게 허용됐다. 2010년부터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게 바뀌었다. 제8조 2항이 개정되면서 ▲범행 수단이 잔혹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위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닐 것을 전제했다. 8살 여자아이를 끌고 가 잔혹한 방식으로 성폭행한 조두순은 조건에 모두 부합한다. 다만 범행 시점이 앞선 탓에 이를 적용하지 못했다. 대신 출소 후에는 조두순도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2020년 12월 13일 형기가 만료되면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통해 조두순의 신상과 거주지가 5년간 공개된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우편물로도 관련 내용을 고지한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 범죄자가 허위로 거주지를 작성하고, 실제로는 다른 곳에 살아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얼굴을 공개해도 범죄자가 겉모습을 바꾸면 그만이므로 범죄를 제지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은 한국보다 먼저 신상공개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은 1996년 제정된 ‘메건법’(Megan’s Law)이 대표적이다. 아동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신상정보등록을 의무적으로 하고, 얼굴과 주소 등을 시민에게 알리도록 한다. 영국은 ‘1997년 성범죄자법’(Sex Offender Act of 1997)에 의거해 성범죄자는 출소 후 2주 이내 관할 경찰서에 이름과 주소를 등록하도록 한다. 그러나 신상공개제도의 재범 억제 효과는 크지 않다. 1995년 도나 슈램(Donna D. Schram)과 셰릴 밀로이(Cheryl D. Milloy)는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 재범률을 조사했다. 결과를 살펴보면 신상을 공개한 집단의 재범률이 19%, 그렇지 않은 집단의 재범률은 22%로 유사했다. 이는 메건법 시행 후 실시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2010년 리처드 튜크스버리(Richard Tewksbury)와 웨슬리 제닝스(Wesley G. Jennings)는 신상공개제도 도입 전후 차이를 재범 유형별로 세분화해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성범죄자의 재범률이 12%에 불과한 데다 신상 공개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만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국내에서 그 한계를 보완하고자 마련한 게 이른바 ‘조두순법’(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것)이다.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범에 대해 1대1 보호관찰을 하도록 하고, 재범 가능성이 보일 경우 전자발찌 부착 기간을 늘리는 게 골자다. 지난 4월 16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조두순은 7년 동안 전자발찌를 부착해야 한다. 역시 맹점은 있다. 이수정 교수는 “조두순법이 현재로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면서도 “범인이 채팅앱을 통해 미성년자를 꾀어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불러들일 수 있고, 1대1로 관리를 하기엔 현재 보호관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문제 제기했다. 현재 보호관찰관 한 명이 담당하는 범죄자 수는 19명꼴이다. 수시로 경보가 울리는 상황에서 1대1 관찰은 도저히 불가능한 셈이다. 부족한 예산도 넘어야 할 산이다. 조두순법을 발의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필요한 만큼 예산을 늘리도록 법무부에 계속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거주지 내에서 온라인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에 대해선 “음란물을 다운로드하거나 불법적인 앱을 이용하는 정황을 추적·감시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시행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보완할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신상을 언론에 공개하더라도 범죄예방 같은 본질을 공론화하지 못한다. 지난 19일 발생한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가 공개됐을 때도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언론은 그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경찰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날에는 대다수 언론이 그의 표정과 말투, 차림새에 주목했다. 반면 근본적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보도는 드물었다. 이러한 보도는 범죄자 개인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데서 그친다. 한 명의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들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범죄자 개인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잠깐의 분노를 해소할 뿐이다. 조두순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보다 ‘조두순법’ 같은 법적·제도적 시스템에 대한 공론화가 더 필요한 이유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한국 매년 아동음란물 사이트 50개 수사 의뢰“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한국 매년 아동음란물 사이트 50개 수사 의뢰“

    “매주 한 건 꼴로 한국 경찰이 글로벌 공조 수사를 의뢰합니다. 그런 아동음란물 사이트 수 만 연간 50여건에 달합니다. 지금은 몰래카메라나 불법 음란물에 더 주목하지만 아동음란물 역시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대로라면 한국도 아동음란물의 주요 생산기지가 될 겁니다.” 돈 브룩센 미국 국토안보국수사국(HSI) 한국지부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동음란물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일부의 문제라는 걸 꼭 전제로 해달라”면서도 “한국은 이미 위험 수위에 와 있다”고 경고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HSI을 중심으로 걸쳐 글로벌 공조 수사를 시작했다. 국제테러부터 전략물자 불법 수출입, 돈세탁, 밀입국 및 인신매매, 아동음란물 등 400여가지 범죄를 수사한다. 전 세계 67개국에 지부를 운영으로 한국지부도 2003년 문을 열었다. 한국 수사기관과 공조해 ▲유병헌 전 세모그룹 회장 ‘금고지기’ 김혜경씨 국내 송환(2014년) ▲전두환 전 대통령 미국 자산 환수(2014년) ▲문정황후어보 국내 환수(2017년) 등의 성과를 냈다. 브룩센 지부장이 한국 아동음란물의 심각성을 느낀 건 지난해 ‘다크넷’(Darknet) 아동음란물 사이트 운영자를 적발하면서부터다. 과거 미국 해군이 보안용으로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다크넷은 전용 브라우저를 통해야만 접속할 수 있어 IP 추적이 힘들다. 이 때문에 범죄자들에겐 인신매매, 아동 성매매, 청부살인까지 범죄 거래의 암시장으로 악용된다. 브룩센 지부장은 미국 본부로부터 다크넷 아동음란물 사이트 운영자가 한국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한국 경찰과 공조해 충남 당진에서 운영자 손모(23)씨를 체포했다. “당시 손씨 서버에서 압수한 아동음란물은 고화질 영화 3000편 분량인 10테라바이트(TB)에 달했습니다. 미국 아동음란물 수사 중 역대 최대 규모였어요.” 세계 최대 아동음란물 사이트 운영자가 한국인이었던 사실은 국제적으로 회자됐다. 손씨 사이트에서 영상을 다운받은 글로벌 회원이 4000여명에 달했고, 한국인도 200여명이 붙잡혔다. 미국도 다운받은 이용자를 추적해 180여명을 검거했으며, 독일과 영국 등에서도 수사가 진행됐다.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에서 아동음란물은 제작이나 유통은 물론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중대 범죄다. 브룩센 지부장은 “한국 경찰이 우리에게 의뢰하는 아동음란물 국제공조 수사 건수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하면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몸캠’으로 미성년자의 성적 이미지를 확보하거나 제작하는 사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경고했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이미 주요 아동음란물 생산국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 인터넷감시재단(IWF)이 지난 2012년 각국의 온라인 아동음란물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2.2%)은 미국(50%)·러시아(14.9%)·일본(11.7%)·스페인(8.8%)·태국(3.6%)에 이어 6번째 야동 생산국으로 집계됐다. 브룩센 지부장은 마약만큼 처벌이 강화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동음란물을 소지하면 예외 없이 감옥에 간다는 걸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동음란물 소지자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약하다. 미국은 5~20년의 징역형, 영국도 26주~3년의 구금형에 처한다. “자신의 자녀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아동음란물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인지가 더 와 닿을 겁니다. 아이들은 방어능력이 없어요. 모두 어른의 책임이라는 이야깁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여고생 영상 구해요” 1분 만에 업데이트…거리낌없이 하루 수십 차례 공유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여고생 영상 구해요” 1분 만에 업데이트…거리낌없이 하루 수십 차례 공유

    “이 영상 풀버전 찾아주시면 지인능욕(지인 사진에 음란물을 합성하는 것) 20장 해드릴게용.”지난 연말 233명이 모인 텔레그램 속 한 비밀 채팅방. 회원 한 명이 미리보기 사진 한 장을 올리며 원본 영상을 구했다.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맺는 사진이다. 1분 만에 ‘저 있어요’란 답과 함께 동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 남성이 찍은 것으로 이미 내려받은 사람이 있었다. 고맙다는 답장이 이어졌다. 그렇게 여학생은 233명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200~300여명 집단 성폭행과 같은 영상 공유 집단 성폭행과 다름없는 행위지만 이 방에선 일상이다. 서울신문이 최근 두 달간 각각 200~300여명이 모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비밀 채팅방 10여곳에 잠입해 살펴본 대화 내용은 그대로 옮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비실명이란 무기를 등에 업고 대화자들은 하루 수백 차례씩 아무 거리낌도, 부끄러움도 없이 아동과 미성년자 음란물을 서로 공유했다.아이디 ‘수O’은 길게는 46초, 길게는 11분 46초짜리인 영상 14개를 한꺼번에 올려 다른 회원의 박수를 받았다. ‘AkaOOOOO’은 한 여중생 사진 15장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올렸다. 이를 본 다른 회원들은 “중딩 때가 제일 OO한데”라며 품평하듯 음담패설을 이어 갔다. 10여분 후 한 회원이 “구글링으로 휴대전화 번호를 찾았다”며 여학생의 연락처를 공유했다. 그들의 대화 속에 여학생은 이미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이O’이란 아이디가 “로리(아동음란물) 여기 올리는 건 위험하겠죠?”라고 묻자 ‘전혀’, ‘보고싶당 로리’ 등의 응원글이 달린다. 이에 기세가 오른 ‘이O’은 “교환 ㄱ(가능). 동영상, 사진으로만 8기가바이트 있다”고 자랑했다. 아이디 ‘11OO’은 직접 찍은 걸로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복 차림의 어린 여학생이 치마를 입고 지하철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치마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든 카메라 렌즈는 여학생의 얼굴도 고스란히 담아 냈다. ●주기적으로 채팅방 폐쇄·커뮤니티 유지 일부 운영자는 주기적으로 방을 폭파(폐쇄)하고 새로운 방을 만드는 방식으로 그들만의 비밀 커뮤니티를 유지했다. ‘늑O’은 자신이 만든 또 다른 음란 비밀 채팅방 주소를 선전하며 돌아다녔다. 최근에는 국내 수사가 미치기 힘든 해외 SNS 음란물 수요가 있다는 판단에 기존 업자들도 몰리는 모습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지난해 경찰에 고발한 135개 불법 성인사이트 전체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발견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국산 몰카·야동 4건 중 1건 중고생 찍었다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국산 몰카·야동 4건 중 1건 중고생 찍었다

    ‘디지털 성폭력’ 650건 중 178건 해당 미성년자 교복 전신 도촬 행위 급증 한편당 평균 2만여회 폭발적 ‘광클’국산 몰래카메라나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 4건 중 1건은 미성년자가 출연하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이다. 속칭 ‘신작’은 등장과 동시에 평균 1만~2만 회에 달하는 폭발적인 클릭이 몰린다. 아동·청소년 음란물 생산국 세계 6위인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7일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형사정책연구원(형사연)의 ‘온라인 성폭력 범죄의 변화에 따른 처벌 및 규제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9~10월 인터넷에 유포된 디지털 성폭력 촬영물 650건 중 178건(27.4%)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추정됐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건 222건(34.2%)이었고, 나머지 250건(38.5%)은 부분 촬영 등으로 피해자 연령 식별이 불가능했다. 형사연은 얼굴이나 신체 발달 상황, 교복 등 복장 상태 등을 기반으로 피해자의 나이대 등을 추정했다고 밝혔다. 미성년자 촬영물 가운데 94건(52.8%)이 동영상이었다. 이 중 81건(86.2%)은 몰래 찍힌 것이었고, 자신이 직접 찍은 것도 8건(8.5%) 있었다. 이 8건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로 보인다. 그루밍 성폭력은 범인이 피해자로부터 신뢰를 얻고서 ‘나체 셀카’를 찍게 하는 등 성적 가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자가 주로 당한다. 이 밖에 영상통화가 녹화된 게 3건 있었고, 1건은 성폭행당하는 장면이 촬영됐다. 학교에서 찍힌 영상도 19건이나 됐다. 장다혜 형사연 연구원은 “최근 몰카 범죄의 특징 중 하나는 성적인 신체 부위보다는 미성년자의 교복 전신을 촬영하는 행위가 더 많다는 점”이라면서 “흔히 ‘여고생 몰카’로 불리는 교복 착용 촬영물이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는 걸 보여 준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건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온라인에서 ‘광적인’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여성단체 ‘디지털성범죄아웃’으로부터 입수한 ‘성인사이트 아동음란물 실태조사’를 보면 현재 폐쇄된 불법 성인사이트 ‘멘베OO’ 게시판엔 65개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확인됐는데, 해당 영상들은 나흘간 총 156만 4800회의 클릭을 받았다. 영상 한 편당 평균 2만 4074회나 ‘시청’된 것이다. 역시 현재 폐쇄된 ‘이OO’에서도 91개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총 138만 7561회 클릭됐다. 개당 평균 1만 5248회다. 한국은 이미 주요 아동·청소년 음란물 생산국 중 하나로 손가락질받는다. 영국 인터넷감시재단(IWF)이 2012년 각국의 온라인 아동·청소년 음란물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2.2%)은 미국(50%)·러시아(14.9%)·일본(11.7%)·스페인(8.8%)·태국(3.6%)에 이어 6번째에 자리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괴물’이 된 소년들…소년법 개정·폐지가 해결책일까

    ‘괴물’이 된 소년들…소년법 개정·폐지가 해결책일까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지난달 온몸이 피칠갑인 채로 무릎 꿇은 소녀의 모습이 공개됐다. 이 사진으로 부산에서 여중생 4명이 또래를 1시간 넘게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곧이어 유사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충남 아산에선 여중생들이 동급생을 모텔에 감금하고 무차별 폭행했다. 강릉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해변과 자취방을 오가며 피해자를 집단 폭행했다. 그뿐만 아니다. 사건이 공론화된 후에도 가해자들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 소년법의 목적은 처벌 아닌 교화 올해 3월 발생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10대들이었다. 이 사건은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지난달 22일 범인 김모(17)양과 박모(18)양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주범 김양은 8세 여자아이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한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살인을 공모한 박양은 무기징역에 처했다. 김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형량을 받은 이유는 만 17세로 소년법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소년법은 처벌 목적보다는 교화를 위해 제정됐다. 그렇기에 현행 소년법은 19세 미만 소년의 경우 성인과 달리 처벌을 감경해주는 조항이 있다. 소년법 제59조에 의하면 사형 또는 무기형에 준하는 범죄를 저질러도 15년형 이상 선고할 수 없다. 또한 살인과 강간, 특수강도 등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도 범행 당시 18세 미만이었다면 법정 최고형을 20년으로 제한한다. 특히 만 10~14세 ‘촉법소년’은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분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다. 이에 한 시민은 지난달 청와대 홈페이지에 소년법 폐지를 청원했다. 청소년이라도 중죄를 지었다면 성인과 같은 수준으로 엄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다. 40만여 명에 이르는 시민이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소년범죄가 그 잔혹성으로 시민들의 공분을 샀고, 악화된 여론이 청원에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법 개정보다는 예방과 교화에 더 초점을 맞춰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 아이들이 죄의 무게를 깨닫도록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년법상의 미온적 처벌이 더욱 끔찍한 사건을 불러일으킨다”면서 소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이 죄를 지어도 경미한 처벌을 받거나 훈방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를 깨닫지 못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그 예다. 피해자가 한차례 폭행당한 직후 경찰에 고소하자 가해자들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2차 폭행을 감행했다.표 의원은 “검사의 조건부 기소유예가 남용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소년법 제49조에 따라 검사는 피의자가 적절한 선도·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경미한 처벌을 지켜보면서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을 거란 인식이 존재하므로 이러한 부조리를 해소하는 게 먼저”라고 표 의원은 덧붙였다. 일본은 지난 2000년 형사 책임 연령을 기존 16세에서 14세로 낮췄다. 또한, 16세 이상 청소년이 살인을 저지를 경우 형사재판에 넘길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미국 역시 18세 미만은 소년법 적용을 받지만, 강간과 살인 등 강력범죄는 예외다. 대신 교화와 갱생을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소년범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 표 의원 역시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실효성 있는 교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교도소는 학교가 아니다 아이들의 범죄 동기는 어른과 다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소년범죄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환경적 결핍’과 ‘나쁜 자극’이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가 음란물이나 폭력적 콘텐츠를 자주 접할수록 범죄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소년원 아이들 대부분 결손가정이란 점을 주목하면서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 범인들은 드물게 유복한 집안이었지만, 이들도 부모들이 평소 관심을 기울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교도소는 학교가 아니기에 갱생이 불가능하다”면서 소년법을 개정·폐지하는 것은 반대했다. 다만 “적절한 교육을 통해 조기에 교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자들은 사건 당시 이미 보호관찰 대상이었다. 이 교수는 “그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관찰을 받아 반성하고 갱생할 수 있었다면 2차 폭행이 일어났겠냐”고 반문했다. 이어서 담당 인력이 부족한 보호관찰 시스템의 문제를 먼저 보완할 것을 제안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계적 추세로도 소년범은 성인범과 다르게 취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 협약을 따르고 있다. 미국은 미성년자에게도 사형 선고가 가능했으나 2005년 연방대법원이 이를 위헌이라고 선언하면서 금지됐다. 금 의원은 “미성년자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면 투표권을 비롯한 다른 영역에서도 동등한 권리를 줘야 한다”면서 형평성 문제도 거론했다. ● 손가락질 거두고 함께 고민할 때 천종호 부산가정지법 부장판사는 “소년법 논란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지만, 실상 소년법 개정으로 학교 밖 폭력을 해결할 순 없다”는 맹점을 들었다. 그보다는 “학교 밖 폭력이 가정의 해체, 공동체 붕괴 같은 ‘관계의 문제’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얻지 못하는 위안을 또래 집단에서 대신 얻는다. 그러나 비행 청소년들이 모인 또래 집단에 들어가 더욱 심각한 일탈에 빠져들 뿐이다.창원지방법원은 2010년 창원시 진해구에 ‘청소년회복센터’를 만들었다. 일종의 사법형 그룹홈이다. 법정에서 보호처분 받은 아이들을 돌보며 밥상머리 교육을 실천하는 곳이다. 민간이 운영하고 법원이 운영비를 지원한다. 사법형 그룹홈은 ‘회복적 사법’의 일환이다. 회복적 사법은 처벌과 격리보다 치유와 회복에 더 중점을 두는 법이다.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소년범들을 맡아 교육한 후로 창원지법 관할 소년범 재범률은 전국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천 판사는 “우리 사회는 나쁜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질만 했지, 그 아이들을 바로 세우는 방법은 고민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2011년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도 학교폭력을 해결하고자 엄벌주의에 입각한 방안들을 쏟아냈다. 2017년에 이른 지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토록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까지 어른들의 책임은 정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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