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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이 된 춤사위 종이 위에 옮기다

    전설이 된 춤사위 종이 위에 옮기다

    조선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 /김명수 지음/서해문집/320쪽/2만원 음악에 악보가 있듯이 춤에는 무보가 있다. 중국 송대의 ‘덕수궁 무보’, 일본의 ‘분카쿠와 노오’, 조선의 궁중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와 종묘제례 중 ‘시용무보’가 동북아 3국의 대표적인 전통 무보로 남아 있다. 그러나 춤이라는 것이 몸으로 써가는 역사인 탓에 남아 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조선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은 전통 한국춤의 원형을 몸에 지니고 있었던 운학 이동안(1906~1995)의 태평무와 기본무를 기록한 무보집이다. 이동안이 구음으로 장구 장단에 맞춰 발과 팔 드는 법을 가르쳤던 제자가 자신의 이름을 딴 ‘김명수식 춤 표기법’으로 기록했다. 32년 전인 1983년 채보한 무보를 바탕으로 1장단 6획으로 구획하고 행간마다 정간보와 구음, 서양악보, 춤사위 사진, 춤길방향, 발디딤, 팔놀림으로 나눠 표기하고 있다. 저자는 발레로 시작해 현대무용을 전공했지만 우리 춤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춤과 장단을 배우고, 전승이 끊긴 이동안 춤의 유산을 온전하게 기록하기에 이른다. 이동안은 경기 세습예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보고 듣는 것이 전통예능이었고 혹독한 수업을 받으며 자랐다. 조선시대 예술인 총괄기관인 화성 재인청(才人廳)의 도대방(都大房)이었던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 아버지는 열세 살 아들에게 도대방 자리를 물려준다. 소년 도대방이 된 이동안은 남사당패를 따라 가출했던 1920년 광무대의 흥행사인 박승필에게 발탁돼 20세기 초반을 풍미한 전설의 춤꿈 김인호를 만나 30여종의 각종 기예와 춤, 장단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발탈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예능보유자였지만 그는 전통무용의 대가였다. 이동안이 보유한 화성 재인청 춤은 기민성과 역동성, 여유와 여백이 함께하는 전통 남성무용의 표본이다. 춤의 흐름이 도도하고 춤사위 하나하나가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그의 태평무와 살풀이는 맺고 끊는 동작이 분명하고 이를 풀어내는 유연함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이었다고 전해진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양 딴스, 그 발칙한 시작

    서양 딴스, 그 발칙한 시작

    “…요사이에 무도대회를 여는 자들은 어디서 되지 못한 ‘항가리안 딴스’나 ‘러시안 컨츄리 딴스’나 ‘스페인 딴스’의 저급한 무도와 또는 보기에도 구역질 나는 소위 사교딴스를 하여….”(매일신보 1924년 11월 20일자) 일제강점기 망국의 설움이 채 가시기도 전, 몰려다니면서 해괴망측한 서양춤을 추는 젊은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궁중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권번의 검무, 승무, 춘향무, 살풀이춤 정도의 민속춤, 조선춤이어야 춤 대접을 받던 세상이었다. 서양춤이 대중적으로 퍼진 것은 1921년 4월 블라디보스톡 청년학생음악단이 찾아오면서부터다. 원산을 시작으로 한 달 남짓 동안 경성(서울), 평양, 황주 등지로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보헤미안 폴카’, ‘서반아무’, ‘코사크춤’ 등은 그간 듣도 보도 못한 몸짓이었다. 문화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고 흥겹기 그지없는 장면들이었다. 특히 러시아 카자크족의 전통춤으로 앉아서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추는 코사크춤을 추던, 당시 20대 초반의 러시아 원동대학생 박시몬(본명 박세면)은 요즘 여느 아이돌을 뛰어넘는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매번 피날레 공연은 박시몬의 몫이었다. 순회하는 공연장마다 마지막을 장식하며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박시몬은 순회공연 뒤에도 고국에 남아 1923년 경성 안국동에 무도학원을 열었다. 박시몬이 서양춤 대중화의 씨앗을 뿌렸다면, 조택원(1907~1976)은 그 씨앗에서 싹을 틔워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조택원은 휘문고보 학생 시절 박시몬으로터 코사크춤을 배웠고 젊은 시절 서울의 댄스홀을 휩쓸었다. 보성고보(현 고려대)를 졸업해 얌전하게 회사원으로 지내다 1927년 한국을 찾은 일본의 근대무용가 이시이 바쿠(1887~1962)의 춤을 보고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바쿠로부터 체계적으로 춤을 배웠다. 이렇게 일본, 프랑스를 거쳐 돌아온 ‘남자 최승희’ 조택원은 모던댄스를 토착화, 한국화시킨 1세대 춤꾼이 됐다. 춤이 예술이 되고,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는 꽤 됐지만 체계적인 연구성과를 담아내지 못했다. ‘한국춤통사’(보고사 펴냄)는 우리 춤 장르 전반을 다루면서 그간 무용사 연구의 성과를 망라한 사실상 첫 춤 역사서다. 파편적이고 특정 시기에 머물렀던 지금까지의 춤 역사서와 달리 선사시대부터 시작해 부족국가시대, 삼국시대, 발해춤까지 포함시킨 남북국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그리고 정서의 결을 약간 달리하는 북한춤까지 아울렀다. 역할을 분담해 공동집필한 춤연구자 5인(김채현·김영희·이종숙·김채원·조경아)은 근대춤의 기점을 1902년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로 잡았다. 그간 연구자들이 근대춤의 기점을 블라디보스톡청년학생음악단 내한공연(1921), 이시이 바쿠 내한공연(1926), 최승희의 ‘세레나데’ 공연(1927), 배구자의 ‘아리랑’ 공연(1928) 등으로 각기 달리 봤던 것과 다른 접근이다. 소춘대유희가 외부의 자극이나 단순한 표현 양식의 변화가 아닌 내부 스스로 깨달음에 의한 근대춤의 시원으로서 등장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 2층 객석을 갖춘 실내 극장(협률사) 무대에 섰고 공연 내용도 서양 문물에 대한 자기식 흡수였다. 또한 예술산업적 측면에서 상업적 흥행을 전제로 입장료를 받고 극장 공연을 유통시켰고, 관객의 반응에 맞춰 춤의 내용에 변화를 주는 등 대중적 교감을 이뤘다. 김영희 춤비평가는 서문을 통해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논의해서 한국춤의 사록이 모여졌지만 무속춤, 불교의식무 등 여전히 한국춤 역사에 있어 해결하지 못한 한계점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아직 성글고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막중하고도 시급한 과제였기에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무용학계, 공연예술계, 나아가 한국학계 연구자들의 질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9팀 9색’ 창작 춤 향연

    ‘9팀 9색’ 창작 춤 향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한국 춤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전통 춤을 바탕으로 안무한 창작 춤 경연대회를 펼친다. 다음달 2~10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리는 한국 무용인들의 대축제 ‘제29회 한국무용제전’에서다. 이번 제전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아리랑 아홉 고개’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국내 무용단체 9개 팀이 각각 아리랑을 주제로 9가지 색깔의 작품을 선보인다.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춤협회 백현순 이사장은 “아리랑 고개를 한 고개 한 고개 넘을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를 광복 70주년의 기쁨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경연 첫 주자는 리을 무용단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내면적 갈등을 그린 ‘바라기Ⅳ-웃음에 관한 천착’을 들고 나온다. 성재형 SSUM 무용단의 ‘그립고 그리운 아리랑’, 박덕상타무천 예술단의 ‘세한도’, 김용철 섶 무용단의 ‘콜링’(Calling), 백정희무동단의 ‘와락’, 임학선 댄스위의 ‘마녀사냥’, 김남용무용단의 ‘진달래꽃’, 김기화무용단의 ‘독도며느리’, 윤덕경무용단의 ‘싸이클’이 뒤를 잇는다. 공연 뒤 전문평가단과 관객평가단의 심사를 통해 최우수작품과 우수작품을 선정한다. 수상 단체는 상금과 함께 해외 무용페스티벌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개·폐막 공연은 지난해 제전에서 수상한 무용단과 해외 초청 단체들이 꾸민다. 2일 개막공연엔 지난해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윤수미 무용단의 ‘나비잠Ⅱ’, 인도네시아 댄스 래보래토리의 ‘레공 케라톤’, 말레이시아 아스와라 댄스 컴퍼니의 ‘멩가답 리밥’ 등이 무대에 오른다. 10일 폐막 공연엔 지난해 우수상을 받은 김미숙 하나무용단의 ‘아름답거나 혹은 슬픈’, 창무회(안무 김지영)의 ‘살-아리’, 위안부 사건을 소재로 한 중국 동북청년무용단의 ‘안전구역’ 등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백 이사장은 “우리 춤은 한국인의 정신을 담고 있다”며 “케이팝 등 한류 문화가 세계 속에 각광받고 있는 요즘 한국 춤은 새로운 한류 바람을 일으킬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어떤 무용수길래? ‘한국 신무용의 개척자’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어떤 무용수길래? ‘한국 신무용의 개척자’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무용가 최승희의 승무 사진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회장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이자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의 손자 이시이 노보루에게서 승무 사진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공개된 사진 속 최승희는 흰 저고리와 장삼을 걸치고, 머리에는 흰 고깔을 쓴 채 춤사위를 펼치고 있다. 성기숙 교수는 이 사진에 대해 “전통 승무의 형식미가 살아있으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전통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최승희는 1930년대 중반 일본을 방문한 ‘근대 전통춤의 아버지’ 한성준에게서 승무를 비롯한 전통춤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서양 춤과 한국 춤을 결합한 신무용을 만들어냈다.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소식에 네티즌들은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대단하다”,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신무용 만드신 분이구나”,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예술은 길다”,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멋있다”,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멋진 분”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춤자료관 연낙재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뉴스팀 chkim@seoul.co.kr
  •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머리에는 흰 고깔을 쓴 채..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머리에는 흰 고깔을 쓴 채..

    ‘최승희 승무 사진 공개’ 무용가 최승희의 승무 사진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회장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이자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의 손자 이시이 노보루에게서 승무 사진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무용 총예술감독 윤덕경 서원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무용 총예술감독 윤덕경 서원대 교수

    태초의 언어는 ‘몸짓’이었다. 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은 몸으로도 말을 한다. 때로는 귀로 듣는 말보다 진하고, 때로는 노래보다 더 감동스럽다. 허공을 향하는 무한한 몸짓은 구슬프기도 하고 감동의 예술로 승화된다. 그 모습은 영원한 잔영으로 가슴을 붙들어 매게 한다. 작품 하나를 잠시 감상해 본다. ‘열 두발 상모 흥에 취해 돌고 잦은 가락 속에 서로는 어깨를 들썩이고 어느새 판은 하늘 별 구름 달 벗삼네/지난 밤 꿈자리 뒤숭숭해 벌떡 일어나 달빛 고요한 곳에 물받아 올려 몸을 씻는다/고통은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은 다시 이어지고 어이 할까 어이 하리~/생은 여전하고 나와 너 오늘처럼 여전하기를 펄럭이는 대지가 그저 바람을 닮기를, 그 바람을 타고 여전히 말 달리기를~’ 무용 ‘어~엄마 웃으섯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철용(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이사장) 전 국회의원의 원작 대본을 새롭게 각색했다. 이 작품은 오는 10월 21일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소외된 정신지체 장애자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그런 자녀를 둔 어머니의 심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장애자들이 가장 소외된 문화장르인 ‘춤’으로 형상화됐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서로의 가슴과 머리를 맞대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용이다. 윤덕경(60) 서원대 교수는 1997년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이 작품을 의욕적으로 처음 무대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장애인의 얘기를 춤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후 60여회 공연하면서 사회에 적잖은 이슈를 던져왔고 대표적 장애인 소재의 창작무용으로 꾸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문화공연의 일환으로 올려질 ‘어~엄마 웃으섯다’는 새로운 안무와 각색을 통해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의 아픔을 사랑과 주변 공동체의 힘으로 확장했다. 스토리텔링의 극적 전개의 이미지도 새롭게 보여줄 예정이다. 아울러 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문자답의 형식을 새로 추가했다. 총예술감독을 맡은 윤 교수가 안무도 하고 직접 출연한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연습실에서 윤 교수를 만났다. 그는 올해로 춤인생 40년을 맞이한다. 그 세월 동안 인간을 주제로 인간이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매김하고 인간 삶의 여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용들을 주로 다뤄 왔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올바른 만남을 밖에서 관조하듯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고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춤동작, 춤의 언어로 치열하게 토해냈다. 1982년 서독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 공연을 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 때 ‘떠나가는 배’의 안무를 맡아 국내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전문 무용단이 부재했던 1989년 ‘윤덕경무용단’을 창단해 현재까지 체계적인 한국 창작무용의 표현법을 꾸준히 연구해 오고 있다. ‘어~엄마 웃으섯다’를 무대에 올리게 된 배경부터 물었다. ‘~웃으섯다’는 더듬거리는 장애인의 발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 “이철용 선생님을 1995년에 처음 만났을 때 장애인을 소재로 한 대본을 써줄 테니 무대에 올려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장애인 자식을 둔 아픔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고민을 하다가 시각장애인을 만나 여러 가지 불편한 경험을 들었고 대학로에서 종로5가까지 휠체어를 직접 타고 가면서 자신을 얻었지요.” 1996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시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첫 작품 ‘우리 함께 춤을 추어요’를 대학로 아르코극장 무대에 올렸다. 객석이 텅텅 비면 어쩌나 걱정을 했으나 예상과 달리 많은 관객들이 찾아왔다. 대성황이었다. 내친김에 ‘어~엄마 웃으섯다’를 이듬해 무대에 올리면서 지금까지 60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을 하게 됐다. 2000년 독일국제무용예술제에 초청받았으며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일환으로 워싱턴 케네디센터, 노스캐롤라이나와 뉴욕 공연에서 성공리에 공연을 하면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어~엄마 웃으섯다’는 씻김굿과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이다. 어머니의 이미지를 한국 정서에 부합해 부모의 아픔을 춤으로 표현하고 결국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서 함께 극복해 나간다는 내용으로 장애인에게 무관심한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러한 작업을 위해 수화를 배우고 장애인 자식을 둔 어머니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체험을 통해 그들의 감정 표현에 충실해 왔다. 특히 2010년에 ‘하얀 선인장’을 통해 국내 무용작품 사상 보기 드물게 신체 장애인 무용수를 직접 무대에 등장시켜 주목을 끌었고 이런 인연으로 장애인 제자까지 생겼다. 이에 대해 무용평론가 김경애씨는 “신체 장애인들이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안무자는 의욕을 갖고 멀티미디어를 동원해 입체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기량 있는 전문 무용수들의 춤과 감동을 주는 장애자들의 참여 노력, 그리고 시각적인 연출력으로 상생의 효과를 잘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때 윤 교수는 주위를 수소문해 장애1급부터 5급 척추장애, 뇌병변장애 등 8명의 장애인들과 호흡을 함께했다. 휠체어 5대가 무대 위에 굴러다니며 음악에 맞추고 흩어지는 춤사위를 연출한 것도 윤 교수만의 독특한 연출 기법이었다. 이렇듯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장애인을 위한 무용에 집중한다. 원래 그는 첫 창작작품 ‘연에 불타올라’(1983년)를 시작으로 한국 여인을 생각나게 하는 ‘가리마’(1986년), ‘사라진 울타리’(1987년), ‘빈산’(1989년), ‘밤의 소리’(1991년), ‘보이지 않는 문’(1992년) 등을 발표하면서 인간에 대한 인식과 확인, 인간과 자연에 역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그의 춤인생 전반부는 자연의 섭리를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내면의 갈등이나 이념을 표현했으며 중반 이후에 들어서 장애인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춤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의욕이 강해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 누구나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사회적인 인식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작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1996년부터 장애인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사막 한가운데 있는 선인장 같은 장애인들은 하얀 가시로 제 살에 상처를 내며 분노와 절망으로 몸을 방어하며 살아가거든요.” 그의 이 같은 호소와 노력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장애인예술과까지 생겨났고 음지에 있던 장애인들을 양지로 나오게 했다. 그가 대극장 무대 위주로 공연을 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서울시내 3개 고등학교를 찾아가 직접 장애아들을 지도해 오고 있다. 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신념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단법인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부이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무용공연,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가 함께하는 융·복합공연 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무용과 인연이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하굣길에 우연히 장구 소리를 듣고 그곳을 찾았더니 동네 무용학원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장구를 치고 있는 광경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이때부터 자주 무용학원에 들러 장구 치는 모습을 보게 됐고 아버지한테 무용학원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춤이냐,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반대했다. 이를 본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학원비를 주고 무용학원에 다니게 했다.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춤을 추고 장구를 배우는 일이 신났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때까지 무용을 배웠고 이화여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그때서야 반대하던 아버지도 무용가가 되는 것을 허락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용 공부를 하게 됐던 것이다. 대학 때는 무용가 김매자씨를 지도교수로 삼았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는 건국대에서 받았으며 고 한영숙 선생과 강선영 선생에게 한국춤을 별도로 배웠다. 현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로 지정받아 한국 전통무용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창무회’ 대표를 맡아 창작춤 발전에 많은 노력를 하기도 했다. 장애인 무용 외에도 1년에 한 번씩 창작춤 발표회를 갖는다. 오는 10월 1일에는 용산아트홀에서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가 함께하는 융·복합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윤 교수만의 춤의 미학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윤덕경 교수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덕여고를 나온 뒤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 한영숙과 강선영 선생한테 한국 전통춤을 배웠다. 이화여대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창무회’ 대표를 맡아 창작춤 발전에 많은 노력을 했다. 1989년 ‘윤덕경무용단’을 창단해 현재까지 체계적인 한국 창작무용의 표현법을 연구해 오고 있다. 주요 국외 공연으로는 독일과 미국의 뉴욕, 워싱턴, 하와이, 캘리포니아, 홍콩 등지의 예술제에 참가했으며 헝가리 세계무용제를 비롯해 멕시코·독일·캐나다 국제무용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예술공연제, 중국 선전 등의 공연에도 참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 안무를 맡아 서울올림픽 문화기장을 받았으며, 장애인에 관한 문화예술 활동과 복지 증진에 기여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서원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단법인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 사단법인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로 지정받아 한국 전통무용의 맥을 잇고 있다.
  • ‘전통무악 거장’ 한성준의 춤 최고의 춤꾼들이 재조명

    ‘전통무악 거장’ 한성준의 춤 최고의 춤꾼들이 재조명

    8세에 북채를 잡고 17세에 명고수로 이름을 날린 소년. 우리 전통춤의 패러다임을 바꿔 신무용의 선구자가 된 춤꾼.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1874~1941)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들이다. 올해 탄생 140주년을 맞은 그의 예술세계를 우리 시대 최고의 춤꾼들이 무대 위에 되살린다.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가 ‘위대한 유산, 한성준의 춤’이라는 주제로 여는 다채로운 공연(오는 12~1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학술심포지엄(13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차례로 열린다. 충남 홍성의 세습무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춤과 장단, 줄타기를 익힌 그는 당시 경성방송의 최다 출연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세워 사라져 가는 조선춤의 보존·계승에 앞장섰다. 그가 창안한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학춤 등은 오늘날에도 최고의 전통춤으로 꼽힌다. 12일 개막 공연부터 13일 ‘위대한 유산, 명작명무’, 14일 ‘우리 춤의 맥·혼·몸짓’ 등의 공연에는 이애주, 김매자, 정승희, 채상묵, 백현순 등 인간문화재급 명무들부터 탄탄한 중견무용가들까지 두루 참여한다. 특히 ‘역사 속 한성준과 대화’라는 이색적인 형식으로 꾸며지는 개막 공연은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고, 판소리 명창 안숙선이 출연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원로무용가 김문숙이 패널로 참가해 출연자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과 예술혼을 반추한다. (02)741-2808.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부고] 무용 평론시대 개척 조동화씨

    [부고] 무용 평론시대 개척 조동화씨

    국내 무용계에 본격 평론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1세대 무용평론가 조동화씨가 24일 오전 6시쯤 서울 종로구 충신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2세. 192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해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고인은 동아일보 기자, 충북대 교수 등을 지냈다. 그는 1960년대 무용평론가로 신문에 춤 평론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동아무용콩쿠르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76년에는 월간 ‘춤’을 창간해 춤의 기록적 가치를 주창하며 무용평론가 배출에 앞장섰다. 한국춤평론가회를 결성해 한국춤 평단을 조성하는 등 춤의 지성화, 사회적 위상 강화에도 헌신했다. 이런 공로로 한국출판문화대상과 중앙문화대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상애 여사와 아들 유현(세명대 교수)씨, 딸 유미·유진씨와 사위 박태식(대한성공회 신부)·며느리 조은경(월간 춤 편집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26일 오전 7시, 장지는 일산 기독교 공원묘지다. (02)743-7784.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대지의 선물(존 세이무어 글, 샐리 세이무어 그림, 조동섭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환경운동가인 저자가 1953년부터 가족과 자급자족한 생활을 유쾌하게 그린 에세이. 2011년 책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둘째 딸이 저자의 죽음과 출간 이후 달라진 가족의 삶을 보태 다시 냈다. 256쪽. 1만 3800원. 샤워실의 바보들(안근모 지음, 어바웃어북 펴냄) ‘완전고용’을 기대하며 온수 꼭지를 틀다가 뜨거운 물(인플레이션)에 놀라 냉수꼭지를 돌리다가 찬물(경기 침체·실업)에 화들짝하는 ‘경제 바보들’은 어떻게 경제를 말아먹었을까. 322쪽. 1만 6000원. 한국춤이 알고 싶다(유인화 지음, 동아시아 펴냄) 의상과 소품, 출연자의 신체 조건 등 한국춤의 모든 궁금증을 다양한 사진과 자료를 섞어 상세하게 풀었다. 312쪽. 2만 2000원. 아름다운 교회길(전정희 글, 곽경근 사진, 홍성사 펴냄) 전국 각지의 아름다운 교회 20곳을 찾아 세월을 담고 사연을 풀어 냈다. 일간지의 대중문화 선임기자인 저자들이 각각 글로, 사진으로 다양하게 소개한다. 312쪽. 1만 6000원. 두근두근 해외여행(임소정 지음, 꿈의지도 펴냄) 일간지 여행담당 기자가 월급쟁이로 바쁘게 살면서도 10년 동안 26개국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노하우와 테마별 버킷리스트, 알짜 여행지, 알뜰한 항공편 예매법 등을 챙겼다. 404쪽. 1만 6000원.
  • [문화단신]

    한국무용제전 29일 개막 한국춤협회가 주관하는 제28회 한국무용제전 ‘글로벌 아트춤 축제’가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한국의 창작춤 문화를 주도해 온 한국무용제전은 올해도 인도, 필리핀 무용단 등 국내외 13개 무용단의 기량 높은 신작들을 선보인다. 백현순(한국체육대 교수) 한국춤협회 회장은 “아시아 국가들의 전문 무용단이 서로의 문화적 가치를 소통함으로써 우리 창작춤의 성장과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축제의 의의를 설명했다. 3만~5만원. (02)410-6888. 김희성 파이프오르간 리사이틀 ‘2014 파이프오르간페스티벌’의 첫 번째 공연인 ‘김희성 파이프오르간 리사이틀’이 다음 달 19일 이화여대 김영의홀에서 열린다. 파이프오르간을 재즈, 영상, 춤 등 다양한 장르에 접목시키며 오르간의 가능성을 확대해 온 김희성 이화여대 교수는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을 맞아 바흐의 코랄 소곡집 가운데 수난 코랄 ‘오 사람아, 너희의 죄를 슬퍼할지니’와 뒤프레의 ‘수난 교향곡’ 등을 연주한다.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 나지 하킴은 오는 9월 2~3일 자작곡으로 꾸민 리사이틀을 열고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1만~5만원. (02)780-5054. 국악방송 봄철 프로그램 개편 국악방송(FM)이 전통음악을 심화 편성하고 우수 창작국악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봄철 프로그램을 개편했다고 24일 밝혔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진행하는 ‘창악집성’(일요일 오후 2시)과 작곡가 김중현이 맡은 ‘국악의 발견’(일요일 밤 9시)이 신설됐다. 하응백은 자신의 저서인 ‘창악집성’에 수록한 우리 음악 노랫말에 담긴 멋과 맛을 전한다. ‘국악의 발견’은 창작국악을 집중적으로 들려주는 시간으로 꾸민다. ‘국악산책’(월~토 오전 9시)은 국악인 유은선이 새로운 진행자가 됐고, ‘꿈꾸는 아리랑’(월~토 오후 4시)에서는 작곡가 함현상이 새로운 아리랑지기로 자리했다. 함현상은 국악영화 ‘두레소리’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국악작곡가다. 또 ‘솔바람 물소리’(매일 오전 5시)에서는 정확히 PD가 깊이 있는 해설과 음악을 전한다. 국악방송의 지역별 주파수는 홈페이지(www.gugakf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위안부·상주 동학교당·김천흥 전통예술… 기록물 6885점 영구보존 지정

    위안부·상주 동학교당·김천흥 전통예술… 기록물 6885점 영구보존 지정

    국가기록원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과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 심소 김천흥의 전통예술 관련 기록물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새로 지정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번에 새롭게 지정된 국가지정기록물은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이 갖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3060점,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 289종 1425점, 사단법인 한국춤문화자료원이 소장한 심소 김천흥 전통예술 기록물 2400점이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에는 고(故)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끌려감’, ‘못다 핀 꽃’ 등과 피해증언 구술기록, 심리검사, 기자회견·집회 영상자료, 유품 등이 있다.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은 영남과 강원지역에서 활동한 남접(南接) 계열 상주 동학교에서 1890년부터 1950년 전후까지 포교하면서 생산한 전적, 판목, 복식, 교기, 의기 등이다. 근대 종교문화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종교탄압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조선의 마지막 무동(舞童)’으로 불린 전통예술가 김천흥의 기록물에는 대본과 프로그램, 의상 등이 포함됐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전통춤의 멋과 흥 창작춤과 교감하다

    전통춤의 멋과 흥 창작춤과 교감하다

    우리 춤의 전통과 현재의 진화를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춤의 제전이 열린다. 오는 13~20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소극장에서 펼쳐질 제28회 ‘한국무용제전 소극장 춤 페스티벌’이다. 사단법인 한국춤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축제는 중견 전통 춤꾼들의 견고한 기량과 젊은 춤꾼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두루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축제의 서두인 13~14일에는 전통춤 공연이, 16·18·20일에는 창작춤 공연이 차례로 열려 다채로운 몸짓을 선보인다. 13일 정진욱 경남대 교수는 여자의 전신이 예리한 눈으로 돼 있음을 뜻하는 산조춤(몸의 눈)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한 여인의 정서를 인생, 우주를 꿰뚫어보는 눈빛에 비유하며 여인의 희로애락을 산조의 가락에 실어 보낸다. 같은 날 박덕상은 구름 위를 노닐듯 가뿐한 발 디딤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는 소고춤을 무대 위에 뿌린다. 14일 최영란 목원대 교수는 흰 명주수건을 양손에 들고 추는 양손살풀이로, 우아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춤사위를 풀어낸다. 16일 박영애 안무가는 전남 신안군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장례문화이자 서남해 지역 남사당과 관련된 토착 민속 연희 ‘밤달애’를 세련된 감각으로 재탄생시킨다. 18일 윤수미 댄스 컴퍼니 단원인 서은지는 동트는 새벽, 더 나은 세상에 닿으려는 여인의 간절한 이야기와 학연화대합설무의 상징인 학을 결합한 창작 무용 ‘라의 눈’(태양의 눈)을 펼친다. 20일 젊은 무용수들의 모임인 ‘움직임 연구회 수(秀)’에서 활동하는 안덕기 안무가는 강강술래의 집단 형태와 주술적, 유희적 의미를 모티프로 따온 창작춤 ‘하쿠나마타타’로 관객과 교감한다. 백현순 한국춤협회 회장(한국체육대 교수)은 “40~50대 전통 춤꾼들이 우리 춤 고유의 멋과 흥을 느끼게 한다면 젊은 안무가들은 각자 개성 있는 빛깔로 엮은 창작춤의 재미를 일깨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2만원. (02)410-6888.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국 신무용 100년 역사 한눈에

    한국 신무용 100년 역사 한눈에

    100년 역사를 만들어가는 한국 신무용의 흐름을 한눈에 보는 ‘춤의 귀환-아름다운 발자취, 신무용가들을 위한 헌정무대’가 9~1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한국공연예술센터와 근현대춤연구소가 주최한 이 공연은 한국춤을 무대화한 시점부터 예술화에 이르는 과정을 일군 무용가들의 예술세계를 만나는 시간이다. 헌정무대에는 박지홍(1889~1961), 이동안(1906~1995), 조택원(1907~1976), 최승희(1911~1969) 등 신무용 시대를 연 예술가부터 박금슬(1922~1983), 송범(1926~2007), 김진걸(1926~20 08), 김백봉(86), 김문숙(오른쪽·85), 최현(왼쪽·1929~2002), 황무봉(1930~1995), 한순옥(81)까지 폭넓게 재조명한다. 9일 공연에는 김문숙류 ‘대궐’(최정임 전 정동극장장), 송범류 ‘황혼’(이지선 발림무용단 대표), 김백봉류 ‘부채춤’(안병주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은방초류 ‘살풀이’(서영님 서울예술고 교장) 등을 올린다. 10일에는 최승희류 ‘옥적곡’(최정임 전 극장장), 최현류 ‘비상’(전순희 서경대 무용과 교수), 김진걸류 ‘내 마음의 흐름’(유정숙 효산무용단 예술감독), 박금슬류 ‘바라승무’(김승일 중앙대 무용과 교수) 등을 선보인다. 조택원류 ‘가사호접’(김충한 정동극장 예술감독)과 한순옥류 ‘검무’(양승미 태평무보존회 부회장), 이동안류 ‘신칼대신무’(김영희 전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박지홍류 ‘달구벌 덧배기춤’(백현순 한국체대 무용과 교수), 황무봉류 ‘산조’(한명옥 국립국악원 예술감독)는 9일과 10일 모두 만날 수 있다. 이 공연에서는 각각의 작품을 손글씨전문가 강병인이 개성을 담은 캘리그라피로 재해석한다. 캘리그라피 작품은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2만~10만원. (02)3668-0007.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올여름 에든버러는 한국 미디어아트의 놀이터

    올여름 에든버러는 한국 미디어아트의 놀이터

    오는 8월 9일부터 9월 1일까지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2013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든버러 축제)에 한국 현대예술을 대표하는 백남준아트센터, 와이맵(YMAP), 미디어아트 작가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초청됐다. 29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주한영국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에든버러 축제 예술감독 조너선 밀스는 “올해 축제의 주제로 삼은 ‘예술과 기술’(Art and Technology)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을 선정했다”면서 “40여개 국가에서 온 예술가 3000여명이 참여하는 국제 교류의 장에서 이들 세 작품은 한국 현대예술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대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7년 시작된 에든버러 축제는 연극, 오페라, 무용, 시각예술, 설치예술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세계 대표 예술축제로 꼽힌다. 밀스 예술감독은 “시각과 사고의 폭을 세계로 돌려 서로 이해하는 축제를 만들고자 한다”면서 “한국 단체가 서구 먼 곳에 있는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장이 되는 동시에 베토벤, 레오나르도 다빈치, 리처드 버턴(미국 배우) 등 몇십년 전, 길게는 몇백년 전의 예술가와 현재 예술가들이 어떤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지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남준아트센터는 8월 9일부터 10월 19일까지 에든버러대 탤벗라이스갤러리 등에서 ‘백남준의 주파수로:스코틀랜드 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열리는 백남준의 개인전이자 독일에서 가졌던 첫 개인전(1953, 독일 부퍼탈)의 50주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는 ‘글로벌 그루브’(1974), ‘비디오 코뮨’(1970) 등 백남준아트센터의 소장품 70여점으로 꾸민다. 8월 20~21일 킹스시어터에서는 와이맵의 ‘마담 프리덤’을 올린다. 와이맵은 ‘봄의 제전’(2009),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1) 등 다양한 미디어 퍼포먼스를 보여준 공연단체. 김효진 안무가는 이번 작품에 한국춤과 정비석 작가의 소설 ‘자유부인’(1954)을 영화화한 한형모 감독의 동명영화(1957), 1960년대 TV 프로그램을 접목했다. 김 교수는 이번 축제 동안 에든버러 중심지 어셔홀 광장과 페스티벌 극장에 대규모 ‘미디어 스킨’을 설치해 새로운 공공예술로서 미디어아트도 구현한다. “예술이 어떻게 생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작업의 목적”이라는 김 교수는 “이번 작품을 에든버러에서 경험하는 한 여름밤의 꿈 같은 느낌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봄을 훔친 몸짓

    봄을 훔친 몸짓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할 강렬한 무용 축제가 나란히 개막을 앞두고 있다. 즉흥적인 발상과 즉각적인 몸짓으로 풀어내는 즉흥 춤으로 무장한 제13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오는 7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가 주최하는 즉흥춤축제에는 미국, 프랑스, 핀란드 등 10개국에서 온 예술가 150여명이 참가한다. 주요 공연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는 국제 협업 시리즈다. 9일 미국·프랑스·한국의 안무가, 무용수, 작곡가, 배우, 비디오 아티스트가 함께한 다국적 협업그룹 ING가 크로스오버 즉흥 작품 ‘조율’을 선보인다. 10일에는 핀란드의 피푸센터와 한국 트러스트 무용단,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이 모여 서커스와 결합한 즉흥공연을 올린다. 11일 마지막 협업무대는 프랑스와 한국 예술가들이 3개월간 준비한 공연이 장식한다. 동물의 움직임과 춤의 결합을 시도했다. 12일에는 아티스트 8명이 연이어 공연을 펼치는 100분 릴레이 즉흥을 펼친다. 클레어 필몬, 로레타 리빙스톤, 에마뉘엘 그리벳, 최문애, 댄스씨어터 까두 등이 참여한다. 이 밖에 관객과 함께하는 즉흥 공연, 해외 즉흥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등도 준비돼 있다. 1만~2만원. (02)3674-2210. 9일부터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한국현대춤작가12인전’이 시작된다. 1987년부터 이어진 이 축제는 한국무용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세대별 무용가 12명을 초청해 그들의 춤 세계를 감상하는 자리이다. 9~10일에는 2012 한국춤비평가상 베스트 작품상과 춤평론가상 춤연기상을 받은 차진엽의 ‘시팅 인 씨’를 비롯해 이주희의 ‘아이 엠 모어’, 예효승의 ‘카오스모스; 혼돈 속의 질서’, 이영일의 ‘샤콘느’를 올린다. 11~12일 공연에서는 차세대 무용인을 양성하는 무용 지도자들의 경합이 볼거리다. 두 남자의 기다림을 그린 ‘기다려요’(강경모 국민대 교수), 발레와 클래식을 조화한 ‘그랑 파 드 콰트르’(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아버지의 노래를 다룬 ‘몫’(김승일 중앙대 교수), 한 남자의 꿈을 담은 ‘거위와 나, 그리고 늙은 꿈’(김남식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으로 구성했다. 13~14일에는 김은희의 ‘반(半)’, 전미숙의 ‘사라집니다(Disappeared)’, 조윤라의 ‘왈츠 넘버 6(글루미 데이)’, 정혜진 ‘당신은 누구시길래’로 꾸민다. 3만원. (02)2220-1338.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우리 문화유산이 춤무대 오른다

    우리 문화유산이 춤무대 오른다

    국내 유일의 한국창작춤축제인 ‘한국무용제전’이 오는 13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27회째를 맞이한 한국무용제전은 올해 주제를 지난해와 같은 ‘세계 속의 한국문화유산을 춤추다’로 정하고, 종묘제례악부터 아리랑까지 우리 문화유산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준비했다. 축제를 준비한 한국춤협회의 백현순(한국체육대 무용과 교수) 회장은 “우리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지만 그런 뒤에는 관심이 사그라지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난해의 연장선에서 주제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 참여한 안무가들이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 신작들로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13일 개막 축하공연은 문화유산의 원형과 창작이 어우러지는 공연으로 꾸며진다. 김영숙 정재연구회 예술감독이 진행하는 종묘제례악보존회의 ‘종묘제례악’, 법현 스님(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의 ‘영산재’, 국립국악원의 ‘강강술래’, 최정임 정동극장장의 ‘동백꽃 아리랑’, 윤덕경 서원대 교수가 강릉단오제를 바탕으로 안무한 ‘해가 뜨는 날’, 박재희 청주대 교수의 한영숙류 ‘태평무’,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의 ‘소고춤’이 펼쳐진다. 15일 공연에서는 채향순 중앙대 교수가 안무하고, 조주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연출한 ‘사당각시’가 오른다. 핍박 속에서도 처절한 예술혼을 피워낸 남사당패의 여정과 사랑을 그렸다. 정선혜 한예종 교수가 강강술래와 설화를 접목한 ‘문지기 문지기 문열어라~’, 최병규 서울예술단 지도위원이 안무한 ‘아리랑 수월래’가 이어진다. 17일에는 박시종 청주대 교수가 영산재 나비춤을 처연한 몸짓으로 표현한 ‘나비꽃 한 쌍’을 비롯해 김용복 얼몬무용단 예술감독이 판소리 춘향가를 몸의 언어로 변형한 ‘춘향’, 춤·전라북도 이경호 무용단이 ‘태조의 꿈’을 선보인다. 20일에는 김남용 한성대 무용과 교수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김은희무용단의 김은희 대표가 안무한 ‘처용’, 백정희 한국무용과학회장이 제주칠머리당굿에서 낯선 움직임을 끌어낸 ‘바람아래’를 펼친다. 2만~3만원. (02)410-6888.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명무 한성준·명창 심정순 부활

    명무 한성준·명창 심정순 부활

    한성준(1874~1941)은 100여종에 이르는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한국춤의 새로운 공연미학을 정립했다. 10대에 춤과 농악, 줄타기 등을 익히고, 이동백·김창환 등 명창들의 북장단을 도맡으면서 당대 최고의 명고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1938년에는 근대 전통춤 교육의 산실인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해 후진을 양성했으며, 신무용가 최승희, 조택원에게 전통춤을 전수했다. 일제강점기에 그가 지켜낸 우리 춤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숨쉬고 있다. 춤전문자료관 연낙재는 한국춤문화시리즈 ‘내포제 전통춤의 재발견’을 준비하고, 첫 번째 시간으로 민속무용가 한성준을 재조명한다. 14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헌정기념관에서 학술세미나 ‘한성준 춤의 문화유산적 가치와 현대적 계승방안’을 열고, 19일에는 충남 홍성에서 한성준의 영향을 받은 후대 무용가가 공연을 연다.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승무, 정재만 숙명여대 교수의 살풀이춤, 이흥구의 춘앵전, 조흥동의 한량무, 김매자의 산조춤으로 구성했다. 28일 서산문화원에서 열리는 두 번째 시간에는 명창 심정순(1873~1937)을 집중조명한다. 전통적인 가야금 명인이자 판소리 명창으로 널리 알려진 심정순은 경기·충청의 소리인 중고제의 마지막 계승자이다. 대를 이어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큰아들 심재덕은 각종 우리 악기에 능통해 이화여대에서 국악을 가르쳤고, 가수 심수봉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심정순의 딸 심화영은 충남무형문화재 제27호로 승무의 대가이다. 이날 학술세미나와 함께 펼치는 공연에서는 이애주·이현자·정재만·조흥동의 춤사위에 이어 심화영의 손녀 이애리가 승무를 선보인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한류정책을 바꿔라] 대중문화는 돈벌이로, 순수예술은 찬밥… ‘K컬처’로 융합하라

    [한류정책을 바꿔라] 대중문화는 돈벌이로, 순수예술은 찬밥… ‘K컬처’로 융합하라

    #1. “그냥 지금껏 걸어온 길을 정리하는 책을 내거나 내 논문을 쓰는 게 낫겠어요.” 최근 만난 한 한국무용가는 이렇게 털어놨다. 지금까지 다양한 무용작품을 만들고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면서 “한국춤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의 예술기금지원사업 심사에서는 떨어졌다. “내가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 무용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누가 알아준다고.” #2. 한 공영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의 리허설 현장. 유명 아이돌 가수의 소속사 홍보담당자는 일본 팬 50여명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수들이 메이크업, 의상을 갖추지 않고 진행하는 리허설은 보통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소속사가 항의했지만 방송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팬들 말로는 여행사가 방송사와 손잡고 패키지 상품으로 팔았대요. K팝 스타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돈벌이에 이용된 거죠.”(소속사 관계자) 한류가 3.0에서 4.0버전으로 진화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류의 중심인 K팝 가수들은 이용만 당한다고 아우성이다. 순수예술 쪽 사람들도 마찬가지. 한류를 일궈낸 토대인데도 한류의 과실에서 외면당한다고 섭섭해한다. K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류 현실을 진단하고 한류가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우리 문화, 우리 것을 아우르는 K컬처로 발전해 갈 수 있을지 진단했다. 한류의 성지인 일본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는 한류 초상권 침해의 온상지다. 한류 스타들의 얼굴을 무단으로 도용한 각종 상품들이 쏟아지지만 대책은 전무하다. 심지어 최근 한국의 어느 지상파 방송사는 이곳에서 직접 구즈(연예인과 관련된 상품) 판매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방송사 횡포에 업계 관계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프로그램 제작을 빙자해 각종 한류 콘서트를 연다. 방송사는 거액의 입장료 수익을 챙기지만 출연 가수들은 단독 해외 공연이나 국내 행사와 비교해 5분의1, 10분의1 수준의 출연료밖에 받지 못한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일부 방송사가 콘서트를 주최한다고 출연을 요구해 스케줄을 잡아놨는데 표가 팔리지 않아 취소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한류 콘서트가 많아지면서 일본에서는 못 믿겠다, 식상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도 높다. 한 아이돌 그룹 소속사 대표는 “관공서와 함께 일을 하면 행사의 본질과 다르게 마치 자신들이 주최하는 것인 양 포장하는 경우가 많아 일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최근 프랑스의 한 힙합댄스그룹이 내한 공연을 했다. 때마침 한국 공연차 서울에 온 프랑스 안무가 얀 루르는 “프랑스에서는 순식간에 매진돼서 보지 못하는 이들의 공연을 한국에선 객석에 여유가 있어 볼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프랑스에선 그만큼 무용의 인기가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안애순 예술감독은 “세계 유수의 무용단에서 한국인 무용수가 한두 명씩 활동할 만큼 우리 무용수의 기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데도 국내에서는 무용을 발전시켜야 할 장르라고 보지 않아 투자도 적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시 정부의 외면이 아쉽다고 털어놓는다. 중국이나 일본에선 잠재력 있는 연주자들을 적극 지원한다.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열어 경력 관리를 해주고 국제 콩쿠르에도 기업 지원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자국 참가자가 입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중국, 일본 출신 연주자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이 지휘자는 “클래식이나 발레를 고급 문화로 치켜세우면서도 해외에서 어렵게 활동하는 예술인들을 외면하는 현실은 무척 서글프다.”고 말했다. 한류 현상이 K팝이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데 대해서는 전통문화, 순수예술을 가리지 않고 대체로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류가 더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악, 클래식, 무용, 연극 등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SM엔터테인먼트 김영민 대표는 “음악, 드라마, 패션, 관광 등 문화의 모든 부분을 ‘K컬처’라는 카테고리로 융합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전략적인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내놓은 ‘대한민국 콘텐츠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을 보면 변화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올해 예산 544억원 중 120억원이 창작뮤지컬 등 대중문화에 몰려 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공연 창작과 공동 제작에 배당된 2억원 미만이 고작이다. “순수예술을 한류의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 첨단과학의 발판이 기초과학이듯 문화 강대국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순수예술을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를 비롯한 우리 문화 예술가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최여경·이은주기자 kid@seoul.co.kr
  • ‘이열치열’ 뜨거운 춤의 향연

    ‘이열치열’ 뜨거운 춤의 향연

    유독 무용 공연이 많은 여름이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는 한국 발레의 현주소와 미래를 만나는 ‘제2회 대한민국 발레 축제’가 한창이고, 서울 대학로예술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역량 있는 안무가들이 만든 현대무용 작품들이 관객을 맞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최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올린 신작 ‘호시탐탐’도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현대무용과 발레 풍년 속에서 주목할 만한 한국무용 공연도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새달 1일 ‘정재만의 서울춤 열두거리’ 새달 1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승무(중요무형문화재 27호) 예능보유자인 정재만(64) 숙명여대 교수가 ‘정재만의 서울춤 열두거리’를 올린다. 정 교수는 한국춤의 대가 한영숙(1920~1990) 선생을 사사하고 벽사(碧史)라는 호를 물려받아 춤을 계승하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예술이 국민에게 더 큰 관심을 받고 전승되면서 진정한 한류로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정 교수는 이번 공연에서 무용수 80여명과 한류의 본령을 보여줄 예정이다. 무인의 기상이 느껴지는 훈령무, 고고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학춤·선비춤·산조춤, 엄숙함이 흐르는 살풀이·한풀이·승무, 극과 극의 대비가 이루어지는 광대무와 태평무 등 12가지 춤이다. 2만~5만원. (02)516-1540. ●국내 21개 무용단 ‘춤으로의 여행’ 국내 21개 무용단이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서울 명륜동 성균소극장에서 올리는 무용축제 ‘춤으로의 여행 2012’는 7월부터 ‘한국전통 춤의 창’을 주제로 공연한다. 놀이패 한두레의 전통연희작품 ‘바람결’(7월 13~15일)을 시작으로, 서울교방춤을 이어가는 성애순의 ‘백년의 바람’(7월 20~22일), 20대 전통춤 무용수로 구성된 청어람 무용단의 ‘젊은 춤꾼들’(7월 27~29일), 김백봉 명인의 신무용을 보여주는 춤·이음무용단의 ‘해설이 있는 김백봉의 춤이야기’(8월 3~5일), 전통춤을 재창조한 판 댄스 컴퍼니의 ‘아날로그와 디지털’(8월 10~12일), 퍼포머그룹 박덕상 타무천예술단의 ‘한 여름밤의 ’(8월 17~19일)을 준비했다. (02)747-503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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