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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 저항운동 품바, 세계적 길거리 예술 만들 것”

    “비폭력 저항운동 품바, 세계적 길거리 예술 만들 것”

    품바 연극화한 ‘김시라 선생’ 정신 연구 탄생 40주년 맞아 무안서 법인 선포식 “선생 뜻 기리기 위해 국제적 축제 열 것”“품바는 가장 낮은 ‘거지’ 신분으로 권력자들에게 맞선 비폭력 저항운동이었습니다.” 품바를 1인 연극으로 체계화한 김시라(본명 김천동, 1946~2001) 정신을 연구 계승하기 위한 품바문화재단설립추진위원장인 이수찬(71) 민주평화노인회 전국장애위원회 총회장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김시라 품바’를 세계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남 무안에서 김시라 선생에 의해 탄생한 품바는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품바는 거지들의 각설이 타령 후렴귀에 사용하는 일종의 장단 구실을 하는 의성어로 전해 왔다. 품바가 생활어로 우리 사회에 정착한 것은 선생이 40년 전 초연한 연극 ‘품바’가 6년여간 전국 순회공연하면서부터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김시라 선생은 1978년 지역예술단체인 ‘인의예술회’를 만든 시인이자, 극작가 겸 연출가다. 1인 연극 ‘품바’의 대중화를 만들고 선도하는 데 앞장섰다. 이듬해 무안 일로읍 마을회관에서 초연된 품바는 1998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4000회 기념공연을 여는 등 지난해까지 최장 1인 공연과 6500회 공연 등 국내 최대 관객 동원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수록되기도 했다. 민초들의 한과 울분이 서린 창극 품바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전국을 떠돌다 일로읍 천사촌에 정착한 거지 대장 천장근의 밑바닥 삶을 줄거리로 한다. “당시 선생의 품바가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 왔던 것은 독재정권 시절 걸인의 푸념과 넋두리에 인권·노사문제·인간성·민족애 등이 모두 녹아 담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품바를 세계적 길거리 문화예술로 끌어올린 김시라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재단 설립 후 세계화를 위해 최영철 서울시 오라토리오 감독을 중심으로 무안에서 ‘국제 품바 축제’를 열 계획이다. 지난 2월 김시라 선생의 고향이자, 품바 발상지인 무안에서 법인 설립 선포식을 가졌다. 선포식에는 김시라 선생의 자녀인 주리(배우)씨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인사 50여명이 참석해 40주년을 맞은 품바의 체계적인 전승·발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미 무안에는 1862㎡ 부지에 ‘무안 각설이 품바 전승관’(김시라 품바 기념관)이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 위원장은 “세계 각국의 집시문화와 향토문화가 담긴 작품이나 단체들을 초청해 국제페스티벌을 준비할 계획”이라며 “김시라 품바는 정신과 사상, 철학이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홀트아동복지회, ‘책가방을 메고 싶은 아이, 스레이놋’ 캠페인

    홀트아동복지회, ‘책가방을 메고 싶은 아이, 스레이놋’ 캠페인

    우리나라는 교육기본법에서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정해두었으며, 내년부터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에 가방을 메고 등교를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지만 학교로 가지 못하는 스레이놋에게는 등교가 소원이다. 캄보디아 프놈펜 내 철거민 정착촌에 살고 있는 스레이놋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일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동네 아이들의 보호자이자 친구가 되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스레이놋과 같은 아이들은 상당히 많다. UNICEF의 ‘세계아동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11세 아동 중 약 6100만명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5~17세 아동 약 1억 6800만명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한다. 또한 18세 이전에 결혼을 하거나 발육 부진을 겪는 아이들도 상당하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새 캠페인 ‘책가방을 메고 싶은 아이, 스레이놋’을 통해 이렇게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11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몽골과 탄자니아, 네팔의 아이들을 돕고 있는 홀트아동복지회는 ‘아동에게는 가정보호가 우선’이라는 신념 아래 다양한 아이들을 도왔다. 이번 캠페인 역시 교육비 지원과 교육 환경 개선, 교육 프로그램 실시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작곡가 김형석은 캠페인을 응원하기 위해 재능기부를 통해 직접 스레이놋 소개 영상에 삽입된 음악과 내레이션을 담당하며 뜻을 함께 했다. 김호현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은 “지금도 캄보디아에는 수많은 스레이놋이 있다. 이 아이들이 내일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여러분이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정기 후원을 통해 아이들이 배움으로 꿈을 꿀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책가방을 메고 싶은 아이, 스레이놋’ 캠페인은 홀트아동복지회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홈페이지에서는 스레이놋에게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다. 한편 홀트아동복지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에 전쟁과 가난으로 부모를 잃은 아동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는 입양사업을 통해 설립되었다. 오늘날에는 입양복지와 아동, 청소년, 미혼한부모, 장애인, 저소득가정, 다문화가정 등 소외된 이웃에게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전쟁 때 경찰들이 확실하게 중공군 저지”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중공군이 격돌한 장진호 전투에서 우리나라 경찰부대인 ‘화랑부대’가 활약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은 오는 6일 현충일을 앞두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화랑부대의 활약상을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6·25전쟁 초기인 1950년 11~12월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미국 해병 로버트 태플릿 중령은 2002년 발간한 자신의 수기 ‘다크호스 식스’에서 “화랑부대는 상대 공격의 예봉을 잡았고 기관총 대원들의 영웅적인 희생은 대대 지휘본부 지역으로 진격하던 중공군을 확실하게 저지했다”고 서술했다. 미국 해병 마틴 러스의 저서 ‘브레이크 아웃’(2004년)에서도 장진호 전투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책에서 “전초에는 미 해병에 의해 훈련된, 군기가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경찰 기관총 부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진호 전투에 경찰부대가 참전한 사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화랑부대원들의 활약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는 게 경찰청의 설명이다. 당시 미 해병의 통역장교였던 변호사 이종연(91)씨는 지난 4월 경찰청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한국 경찰은 장진호 서쪽 유담리에서 전투를 했다”며 “경찰관들이 전투 전문인 해병과 함께 싸우면서 주공격을 맡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6·25전쟁 당시 경찰은 1만 5000여명이 유엔군에 배속돼 활동했다. 특히 미군에게 특별훈련을 받고 별도로 편제된 경찰관들은 ‘화랑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경찰청이 1957년 작성된 ‘유엔 종군기장 수여대상자 조사명부’ 등을 통해 확인한 장진호 전투 참전 경찰관은 모두 18명이다. 전체적으로는 40여명이 참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육군 35사단 참전용사 아들에게 훈장

    육군 35사단은 한국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고(故) 황인석 옹을 대신해 그의 아들인 황성배(62)씨에게 무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고 3일 밝혔다. 고인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2년 입대해 5사단 포병으로 근무하며, 강원 양구 도솔산 전투와 피의 능선 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쳤다. 이후 전투에서 총상을 입어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다 1955년 8월 상병으로 제대했다고 사단은 전했다. 35사단은 이날 전북 완주군에 사는 황 옹의 유족을 부대로 초청해 훈장을 수여하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고인과 유족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했다. 황씨는 “늦게나마 아버지의 훈장을 받게 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가까운 시일에 묘소를 찾아 아버지께 훈장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석종건 육군 35사단장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은 조국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우리 장병도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조국 수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육군은 한국전쟁 당시 전공을 세웠지만 급박한 전황으로 누락된 수훈자를 찾아 훈장을 대신 수여하는 ‘6·25전쟁 참전자에 대한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국민 30% ‘잠복 결핵 감염자’… 2주 이상 기침 땐 의심해보세요

    국민 30% ‘잠복 결핵 감염자’… 2주 이상 기침 땐 의심해보세요

    결핵 환자 돕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크리스마스실’이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것처럼, 못 먹고 못살던 시대의 전유물로 여겼던 결핵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 한국 1위, 사망률 1위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결핵은 현재 진행 중인 질병이다. 매일 전국에서 72명의 결핵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매일 5명이 사망한다. 보건당국은 결핵 발병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으로 잠복결핵자 치료에 주목하고 있다.결핵 환자가 기침할 때 공기 중으로 배출된 결핵균이 다른 사람의 폐로 들어가더라도 면역력이 강하면 균을 억제할 수 있다. 잠복결핵은 우리 몸의 면역력에 밀린 결핵균이 몸 안에서 잠을 자는 상태를 말한다. 최재철 중앙대병원 호흡기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2일 “결핵균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대식세포가 결핵균을 잡아먹는데, 결핵균은 좀 독특한 특징이 있어 잡아먹히고도 대식세포 안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 몸에 있는 면역세포들이 결핵균 주위로 몰려들어 살아 있는 결핵균이 더는 퍼지지 않도록 일종의 감옥을 만드는데, 이런 상태를 잠복결핵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결핵균에 감염됐지만 결핵으로 발병하지 않은 잠복결핵 감염자가 국내에 1500만명가량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인구의 30%는 몸 안에 결핵균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잠복결핵 감염 상태에서는 결핵균이 외부로 배출되지 않아 결핵을 전파시키지 않고 증상도 없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균이 증식하면 증상이 생기고 전염력도 강한 활동성 결핵이 된다. 일반적으로 결핵균에 감염되면 2년 이내 5% 정도가 결핵으로 발병하고, 그 이후 평생에 걸쳐 5% 정도 더 발병해 잠복결핵자의 약 10% 정도가 결핵환자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자, 면역기능저하자는 더 잘 발병할 수 있다. 따라서 결핵을 예방하려면 증상과 전염력이 없는 잠복결핵자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잠복결핵 감염을 치료하지 않은 사람은 치료자보다 결핵 발병 위험이 7배 높다. 하지만 실제로 치료받는 잠복결핵 감염자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일단 결핵이 발병하면 본인도 고통스러울뿐더러 자신과 접촉한 이들 중 30%를 감염시킬 수 있다. 가족과 직장 동료를 비롯해 결핵 환자와 접촉한 10명 중 3명은 잠복결핵자 또는 결핵 환자가 되는 것이다. 잠복결핵을 치료할 때 가장 필요한 건 감염자의 의지다. 몸이 멀쩡하니 치료를 결심하기도, 치료를 지속하기도 쉽지 않다. 치료를 시작한 잠복결핵자 중 76.9%만 치료를 완료한다. 10명 중 4명은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그만두지만, 의료진의 치료에 협조하지 않거나(23.5%), 아예 연락을 끊어버리는 사례(14.6%)도 있다. 박지원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잠복결핵 감염으로 진단되면 노인 등 결핵 발병 고위험군, 집단시설 종사자 등 발병 때 파급 효과가 큰 대상자에게 예방적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한다”면서 “약제에 따라 3~9개월간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예방적 약물 복용으로 활동성 결핵 발병 가능성을 의미 있게 낮추려면 약물 복용을 끝까지 완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복결핵을 치료한다고 결핵 발병을 100%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잠복결핵 감염 치료를 완료하면 결핵으로 발병하는 것을 60~90%가량 예방할 수 있다. 잠복결핵은 대개 검진으로 발견된다. 보건당국은 산후조리원,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 아동복지시설, 의료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잠복결핵 감염 여부를 검진하고 있다. 2020년부터 전국 의료기관 어디에서나 무료로 잠복결핵 감염 치료를 받을 수 있다.일단 잠복결핵이 활동성 결핵으로 발병하면 호흡 곤란,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객혈, 무력감과 피곤함, 미열·오한 등의 발열 증상이 나타난다. 감기나 폐렴, 폐암, 기관지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호흡기 관련 질환과 증상이 비슷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진단받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기침이다. 2주 이상, 특히 밤에 심한 기침을 하고 열이 나면 결핵을 의심해볼 수 있다. 병이 악화돼 폐가 심하게 손상되면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어려워진다. 결핵균은 폐에서만 발병하는 게 아니므로 발병 부위에 따라 증상이 다를 수 있다. 가령 신장 결핵이면 피가 섞인 소변을 볼 수 있고, 배뇨곤란·잦은 요의·통증 등 방광염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척추 결핵은 허리 통증이 심하고, 결핵성 뇌막염이면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증상만 가지고 결핵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결핵균 감염 여부를 판단할 때는 ‘투베르쿨린’이란 용액을 주사해 부어오른 정도를 측정하는 피부반응 검사를 한다. 폐결핵은 흉부 엑스선(XRay) 검사로 찾는다.현재 우리나라 결핵 환자는 2018년 기준 3만 3796명이다. 매년 2만~3만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결핵 환자가 유독 많은 이유는 한국전쟁 때문이다. 전쟁 전후 결핵이 많이 발병하고, 피란 생활을 하면서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됐다.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공부하고 군대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결핵균이 더 많이 전파됐고, 이렇게 감염된 이들이 면역력이 약해지는 노년기에 들어 발병해 2차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2018년 새로 발생한 결핵 환자의 45.5%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잠복결핵과 마찬가지로 활동성 결핵도 꾸준히 치료해야 완치될 수 있다. 결핵 치료를 시작해 2주 정도 약을 복용하면 전염력이 거의 사라진다. 그러나 결핵균은 증식 속도가 매우 느려 최소 6개월 약을 복용해야 한다. 복용을 중단하면 아직 죽지 않은 결핵균이 다시 증식해 재발할 위험이 크다. 또 기존 결핵약에 내성이 생겨 약이 잘 듣지 않는 ‘다제내성결핵’으로 악화할 수 있다. 다제내성결핵 치료 기간은 2년이며 부작용이 많아 매우 힘들고 치료 성공률도 50~60%에 불과하다. 심태선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결핵을 완치하려면 먼저 약제 처방이 적절해야 하고, 규칙적인 복용, 충분한 (약의) 용량, 일정기간 투약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치료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결핵은 흔히 ‘불주사’로 불리는 결핵예방접종(BCG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BCG 예방접종을 하면 결핵균에 감염되더라도 폐결핵 발병 위험이 20%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효과가 10년 이상 지속되지는 않는다. 감염성 질환인 만큼 기침 예절을 철저히 지키는 것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일단 2주 이상 기침을 계속하면 결핵 가능성을 의심하고 인근 병원을 방문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결핵이 의심되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공장소는 피해야 하며, 결핵 환자의 가족과 주변인 또한 접촉자는 검진을 받는 게 좋다. 간혹 결핵 환자와 밥을 먹는 것조차 꺼리는 일도 있는데, 결핵은 결핵환자가 사용하는 수건, 식기류 등 생필품이나 음식 등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결핵 환자와 함께 음식을 먹거나 악수를 하는 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장선 박성진 국장이 말하는 ‘서원의 가치’“우리 한국이 서원(書院)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 신청을 했다는 소식에 중국이 많이 아쉬워해요. 서원의 시발지인 중국이 유학 내지 성리학의 종주국을 마치 빼앗긴 것처럼 못내 애석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고, 성리학적 전통이 한국화되어 정착한 독특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서원 9곳이 한꺼번에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재되게 된 것은 우리가 서구문화를 좇으며 소홀히 한 그 가치를 서구인들이 알아보며 깜짝 놀라 합니다. 서원이 변질되면서 훼철이라는 역사의 철퇴를 맞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민족의 혼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입니다.”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서 열리는 총회서 확정朴사무국장, 9년간 무보수로 서원 세계화에 앞장덕수궁 수문장교대식 첫 고증 재연한 문화전문가 지난달14일 한국의 서원이 이코모스에 의해 등재 권고를 통지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서원 등재를 위해 9년 동안 ‘무보수’로 일한 이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소문 끝에 서원에 세계화에 앞장선 박성진(60)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국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 28일 그를 찾아가면서 혹시 갓 쓰고 도포를 입는 사람이 아닐까 했는데 캐주얼 차림이었다. 박 사무국장은 1994년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낸 우리 문화 전문가다.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 맞느냐’고 확인하니 그는 수줍은 듯 “먹고 살만합니다. 그 대신, 비상근으로 일하지요.”라며 살짝 웃는다.이코모스 심사평가서에는 대한민국이 등재 신청한 9곳 서원 모두를 등재(Inscribe)할 것을 권고했다. 등재되는 서원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안향)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퇴계 이황)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서애 류성룡)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회재 이언적)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한훤당 김굉필)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일두 정여창)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하서 김인후)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고운 최치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사계 김장생)이다. 이들 서원은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동안 이코모스의 권고가 거부된 적이 없어 이들 서원은 등재를 예약한 상태다. 이로서 한국은 모두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서원 유네스코 등재에 中 종주국 뺏긴듯 아쉬워해서구인들, 500년 전통 사립 엘리트 교육 명맥 경탄우린 서원 가치 폄훼… 세계인 탁월한 보편 가치 인정” - 실사왔던 이코모스, 반응이 어땠나. “작은 나라 한국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엘리트 양성 사립학교 시설이 있을 수 있었나 하고 놀라워합니다. 조선시대에 서원이 900여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서원에 배향된 선현들에게 끊이지 않고 약 500년간 제향을 어떻게 이어올 수 있었는지에도 경탄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어요. 전국에 서원과 사당이 그처럼 많은 것에도 놀라워하고 있고요. 결국 수많은 외침 속에 민족의 생존을 위해 헌신한 학자나 순절한 충신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전쟁이 나도 지역 유림이 위패를 생명처럼 모시고 피란 갔다가 온 일화들이 많습니다. 근 현대화에 밀려 우리가 서원의 가치를 폄훼했지만 세계인들이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왜 9곳?… 국가사적 기준에 역사성·완전성 고려조광조·율곡 이이·남명 조식·황희 정승 서원 빠져‘우린 왜 뺏느냐’ 항의도 …다른 선양 기회있을 것”- 왜 하필 이 9곳 서원인가. “현재 남한에만 672개의 서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원군에 의해 훼철된 서원이 다시 복원된 것이지요. 훼철을 피한 서원 23곳 가운데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한 국가사적이면서 역사성과 완전성 등을 고려해 선택된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 때 피폭 여부도 고려되었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을 제향하는 산청의 덕천서원이나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시는 파주 자운서원, 조광조 선생을 기리는 용인 심곡서원,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상주 옥동서원이 포함됐더라면 하는 바람이 많습니다. 또 이들 서원으로부터 ‘우리도 같이 신청하지 않고 왜 뺏느냐’는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전체가 인정받은 것이니만큼 다음에 다른 방안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있는 정몽주를 제향하는 숭양서원, 율곡을 기리는 황해도 소현서원도 같이 남북이 힘을 합쳐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서원에 대원군에 의해 적폐로 지목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설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향교가 공공 교육기관이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 파폐(罷弊)되면서 그 역할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를 대신한 것이 서원입니다. 사액서원이 되어야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지원받습니다. 국왕으로부터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받은 것이죠.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서원당 10~20명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 무료였어요. 그런 만큼 재정이 취약했지요. 사액서원이 되지 않으면 서원 설립자 혹은 그 문중에서 운영비를 모두 조달하였습니다. 서원이 그 설립 정신을 잃고, 당쟁이나 붕당 정치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식 전수와 인격 도야 기관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그런 점을 높이 샀기에 대원군 시절에도 서원이 살아남았습니다.” “서원, 교육 공간 넘어 천인합일 추구한 수양처영남은 산자락… 전라·충청은 들판 시작점 위치서원, 영남에 많은 이유?… 벼슬길 막힌 학풍 탓호남엔 유학보다 의리 실천한 ‘충절 서원’ 많아”- 서원, 지역별 차이가 있나. “서원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천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한 수양처입니다. 건축물 배치는 전당후묘(前堂後廟·앞에는 교육강당, 뒤에는 사당 설치), 전저후고(前低後高·앞이 낮고 뒤가 높음) 질서를 따르지만 서원마다 독창성도 있지요. 풍광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지만 지역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상도 서원이 대체로 산자락에 있다면 전락도·충청도 서원은 대개 산자락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합니다. 영남쪽 서원이 많은 게 아니냐고 하는데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것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낸 서원을 선정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원이 영남 쪽에 많은 것은 조선시대의 지역별 학풍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남 쪽 학자들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거나 빨리 그만두고 낙향해 후진 양성을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인조반정(1623년) 이후 관직 진출이 막힌 남인들이 벼슬을 못하자 신분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차선책으로 유학자를 배출하는 것이었지요. 영남 양반에겐 현실적 이해가 걸린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반면 호남엔 유학을 연구하는 서원(77곳)보다 이를 실천하는 사우(108곳)가 더 많았습니다. 의리의 실천에 중점을 두면서 충절인의 비율이 높은 것이 호남 쪽 특징입니다. 그래서 영남은 도학서원, 호남은 충절서원이 많다고들 합니다.” - 서원이 다른 나라에도 있나. “서원은 우리나라와 중국 뿐만 아니라 유사한 유산으로 일본과 베트남에도 있었습니다. 유학 문화권에 있는 것이지요. 중국은 관료시험 등과 같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통일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공부하는 과목도 정부 정책에 따라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서원에 가보면 과거시험 합격자의 명단을 새긴 제명비(題名碑)가 좍 늘어서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서원에 들어올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서원은 지방의 지식인 집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성리학을 학습하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선 중국과는 달리 오직 지역 단위의 선현에 제향을 지냈습니다. 일본의 경우 설립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커리큘럼도 서원마다 달랐습니다. 의학과 산학도 가르쳤습니다. 이게 사숙(私塾)입니다. 일본 근대화에 큰 힘을 보탰지만 한국의 서원은 지방 지식인의 구심점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주희가 중건한 중국 장시성 여산(廬山)의 백록동서원은 서원 자체가 아니라 세계자연유산의 일부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서원은 청나라 시대에 관학화되고,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그 맥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 한국으로부터 오히려 배워가고 있는 실정입니다.”박성진 사무국장은 고급스러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재현하며 관광상품화하자는 차원에서 1995년 문화행사 전문기업인 예문관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정조대왕릉 행차, 고종과 명성황후 가례 재연, 고종 황제 즉위식 재연, 과거시험 재현 등을 해마다 하고 있다. 영주선비촌과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운현궁, 남산한옥마을 등을 위탁운영하기도 했다. 10년을 투자해 강원도 영월에 단종의 유적 발굴과 기념관도 만들었다. 또 거의 10년간 준비해 고향인 경북 문경에 박열 의사와 가네코후미코 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2016년 철회 때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 낙망中日 서원과 차이 보강해 재도전… 1년반 심사中, 관료 교육… 과거 급제자인 ‘제명비’ 늘어서日, 의학·산학도 가르친 사숙… 근대화 힘보태韓, 서원서 과거준비 못해… 제향 전통 中과 유사”- 유네스코 등재신청을 철회한 적도 있다던데. “3년 전인 2016년 4월 이코모스의 반려 의견에 따라 자진 철회한 적이 있습니다. 연속유산으로서의 논리 등 준비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단순한 지식전수 기관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인성을 도야하는 천인합일적 경관과 한국 성리학 정신의 독특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의 기대가 엄청 컸는데, 크게 낙담하셨죠.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유산구역의 재조정,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 등을 보완해서 1년 반 동안 이코모스의 심사를 받았습니다. 재도전한 끝에 따낸 것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생각합니다.” - 어떻게 서원과 인연을 맺었나.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성균관 기획실장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 유행하던 사물놀이와 농악차원보다 더 고급스러운 궁중문화를 선보이고자 문화전문법인인 ‘예문관’을 설립해 운영해왔습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냈습니다. 성균관 유교교육원 교수, 유교방송본부장도 지냈습니다. 한국서원연합회 상임이사로 일하던 2010년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님께서 ‘우리의 교육전통인 서원 전통을 너무 모른다’며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서원은 한국의 교육전통이고, 교육은 우리 민족의 지적 자산이라는 것이죠. 작년에 등재된 산사 7곳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양 차원으로 추진했던 것이지요.” - 서원하면 엄숙, 근엄이 연상된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없나. “서원의 학교 기능은 제도 자체가 바뀌어서 이제는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향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원마다 소속된 유림이 1년 두 번 향사를, 한 달에 두 번 제향을 올리는 전통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교나 성균관에서도 이런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제향 행사 한 번에 유림 40여명이 참여합니다. 경주의 옥산서원이나 장성의 필암서원 같은 곳은 지역 유림이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강학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 교육 기능 멈춰… 향사·제향 전통 계속정좌수련, 도인술, 선비체험 등 ‘서원스테이’도청소년에 친근하게 다가설 활성화 방안 고민서원의 오늘날 의미?… 타협과 조화 더욱 요구치열한 공론, 올곧은 선비정신은 되새길 기회”- 서원 활성화 방안은.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만 안동 도산서원은 ‘서원스테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간 20만명이 찾고 있습니다. 주로 교사와 공무원, 학생들이 1박2일, 또는 3박4일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영주 소수서원은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면서 4만명 이상이 교육에 참가하고 있고요. 선현들이 했던 수양방식 따라 정좌 수련과 일종의 신체단련인 도인술도 합니다. 이외에도 비석에 아무 글도 새기지 않은 ‘백비’가 있는 장성의 필암서원도 2만명 이상이 찾습니다.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청렴교육이 됩니다. 그리고 유네스코 등재는 아니지만 일부 서원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등재 추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사실, 문화재청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해당 지자체가 하게 돼 있습니다. 이번엔 서원이 있는 광역 및 기초 14곳이 균등하게 예산을 출연했습니다. 이 예산은 신청서 쓰고, 사례조사 하고, 연구비 지원하는데 소요됐습니다. 서원 9곳, 작년 산사 7곳 이렇게 하니 유네스코 등록이 쉽게 되는 줄 아는데 절대 그게 아닙니다. 그리고 해당 국가는 1년에 한 건 밖에 신청 못 합니다. 저 큰 서울시가 한양도성, 몽촌토성, 성균관 등을 신청하려 하지만 국내 경쟁도 뚫지 못하고 있지요. 올해 세계유산 등재 후보 목록은 총 38건이지만 이중 19건만 이코모스 등재 권고를 받았습니다. 절차 하나하나가 다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오래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변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도덕은커녕 가치관마저 극도로 혼란해합니다. 쏟아지는 정보와 가짜 뉴스 속에 우리 사회 구성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국민이 계층으로, 이념으로 사분오열되고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타협과 조화가 더욱 요구됩니다. 진지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 공론을 도출한 서원을 역할을 한번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치열한 논쟁을 통한 공론의 장, 공익을 위해 과감하게 결단하거나 자신을 희생했던 올곧은 선비 양심, 교육입국이 살길이라고 가르치던 서원의 역할은 앞으로도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국가 위기,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할 것인가

    국가 위기,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할 것인가

    대변동/재러드 다이아몬드 지음/강주헌 옮김/김영사/600쪽/2만 4800원‘위기’를 뜻하는 영단어 ‘crisis’는 그리스어 명사 ‘krisis’와 동사 ‘krino’에서 파생했다. ‘구분하다’, ‘결정하다’, 그리고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풀어 보자면 위기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조건이 확연히 구분되는 때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과 역시 확연히 달라진다는 뜻일 터다.●‘총, 균, 쇠’ 저자의 6년 만의 신간 위기의 초점을 국가로 맞춰 보자. 국가의 위기는 왜 발생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어떤 변화를 부를까. 신간 ‘대변동’은 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에 관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 UCLA 지리학과 교수의 대답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총, 균, 쇠’ 이후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탐사한 그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저자는 7개 국가의 위기의 역사를 풀어간다. 7개 국가는 핀란드, 일본,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칠레, 독일이다. 일본을 제외하고 그가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직접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국가들이다. 국가의 위기를 진단하고 비교하고자 저자는 심리치료사들이 쓰는 12개 위기 진단법을 수정해 사용한다. 국민적 합의, 책임 수용, 울타리 세우기, 다른 국가의 지원, 다른 국가 위기 해결 사례, 국가 정체성, 자기 평가, 역사적인 국가 위기, 실패 대처법, 유연한 대응 능력, 국가의 핵심 가치, 지정학적 제약의 해방이다.●美·日·獨 등 7개 국가의 위기 분석 저자는 이 틀로 7개 국가의 위기를 분석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핀다. 예컨대 핀란드는 1939년 소련 공격 전까지 위협을 심각하게 논의하지 않았지만, 침공 이후 국민적 합의를 이끌었다. 정직한 자기평가를 거쳐 ‘생존을 위해서라면 소련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점이 눈에 띈다. 급기야 민주주의 원칙을 과감하게 포기하면서까지 소련과 실용적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는 유연한 대응이 작용한 결과였다. 칠레와 인도네시아는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맞닥뜨리면서 위기에 빠졌다. 국가가 위기 상황이라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정치적 분열은 심화했고, 결국 군사 쿠데타로 이어졌다. 위기의 책임을 수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독일과 일본은 큰 피해를 봤다. 그러나 독일은 나치의 범죄를 인정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1968년 서독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로 세대교체에 성공하고 이어 1970년 총리인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 꿇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며 과거의 짐을 벗었다. 전쟁을 일으키고도 피해자 논리만 내세운 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아 주변국의 원성을 사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경우 저자는 정치적 양극화 현상에 따른 민주주의 와해가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지난 20년 사이 정치적 타협에 실패해 연방 정부의 셧다운을 초래하거나 필리버스터를 강행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잦아졌다. 여기에 양극화 현상이 확대되면서, 세계적인 강대국 미국의 위기도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외부적 요인으로 갑작스레 격변을 맞은 핀란드와 일본, 내부적 갈등으로 위기에 처한 칠레와 인도네시아, 점진적으로 확대된 위기에 시달린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비교한 뒤, 이어 세계로 눈을 돌려 국가 간 불평등, 환경 자원의 부족, 기후변화, 핵전쟁, 인구 변동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개인의 경우에 그렇듯이 국가도 타성과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위기 때 국가도 타성·저항 극복해야” 책을 읽으면 결국 우리나라에 시선이 자연스레 갈 수밖에 없다. 일본에 강제 병합되고, 이어 남과 북이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독재 정치와 민주화 성취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위기, 선택, 변화의 경험이 풍부하다. 국가의 위기를 살피는 비교 연구가 드문 데다가, 이를 꿰뚫어낸 저자의 통찰력이 빛난다는 점, 지루하지 않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볼 때 책의 가치는 아주 높다. 저자가 “출간 후 서너 주 동안 읽힌 다음 폐기해도 상관없는 책이 아니라, 앞으로도 수십년 동안 꾸준히 인쇄되기를 기대하며 쓴 책”이라고 서문에서 자신 있게 밝힌 것처럼 서가에 꽂아두고 천천히, 깊이 읽어볼 만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49개국 288편 영화와 함께 판타스틱한 부천

    부천에 판타스틱한 여름이 찾아온다. 새달 27일부터 7월 7일까지 11일간 부천 일대에서 열리는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새로운 문법과 독창적 스타일로 무장한 전 세계 장르 영화가 관객들을 찾는다. 49개국 288편(장편 170편, 단편 118편)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번 영화제는 사랑·환상·모험을 주제로 한 SF 작품에 주목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SF 영화의 역사적 걸작으로 꼽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를 테마로 개막식을 열고,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책임질 가상현실(VR) 전시 등도 영화제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개막작은 멕시코 출신의 에드가 니토 감독이 연출한 ‘기름도둑’이다. 지하 파이프라인에 구멍을 뚫어 석유를 훔치는 기름도둑이 기승하는 중부 멕시코에서 한 소년이 겪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고명성 감독의 ‘남산 시인 살인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 명동의 한 다방을 배경으로 살인 사건에 휘말린 10여명의 용의자와 수사관의 심리 대결을 다룬 추리극이다. 이 외에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 ‘한국영화 판타스틱 열정: 미지의 영화, 광기의 장르’에서는 한국 최초 좀비 영화 ‘괴시’를 비롯해 토종 괴수물 ‘우주괴인 왕마귀’ 등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장르영화 12편을 공개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지붕 밑 익선동 한옥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시간을 잊고 멈춰 있다

    지붕 밑 익선동 한옥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시간을 잊고 멈춰 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5회 서울의 영화1(이형표 감독의 서울의 지붕 밑)’ 편이 지난 25일 종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종로3가역 14번 출구 서울극장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극장을 출발, 피맛길을 거쳐 한의원 가업을 7대째 잇는 춘원당 한방박물관을 방문했다. 이어진 유진식당~허리우드극장~낙원떡집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미래유산 코스다. 운현궁을 지나 떡박물관 10층 ‘지붕 위’에 올라 ‘지붕 밑’ 익선동 한옥 기와 지붕을 내려다봤다. 익선동 골목길을 돌고 돌아 호텔로 변한 ‘서울 3대 요정’ 오진암 터를 만났다. 인파로 넘치는 익선동 골목에는 1920~30년대 경성시절 모던보이, 모던걸 차림의 청춘들이 활보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영화 속 서울거리를 열성적으로 재현해줬다. 투어가 끝난 뒤 설문에 응한 참가자들은 “서울에 살면서도 모르던 것을 알게 돼 보람 있었다”, “무심히 지나쳤던 종로거리에 이런 사연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등의 소감을 남겼다.●1000평에 건물 90채… 쪽방 780개에 740명 살기도 1960년대 서울은 영화도시였다. 영화 속 서울은 산업화시대 도시공간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영화는 조선시대 한양이나, 일제강점기 경성, 한국전쟁의 폐허가 아닌 근대 산업화 시기 서울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산업화가 곧 도시화였으며, 영화는 문명세계의 첨병이었다. 주인공들은 한옥과 양옥, 한의학과 양의학이 공생하는 도시의 지붕 밑을 어슬렁거렸다. 좁은 골목을 오가는 카메라의 뷰파인더에는 새것에 대한 찬미와 낙오된 부적응자의 절망이 담겼다. 종로3가에서 을지로를 지나 충무로로 이어지는 길은 1980년대까지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스카라, 국도극장, 명보극장, 대한극장 등이 밀집된 한국 영화산업의 메카였다. 이 시기 영화는 도시와 군중을 관찰하는 만보객(漫步客)의 역할을 해냈다. 영화를 통한 서울읽기가 가능한 까닭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옥 기와, 탑골공원, 시내 교차로, 도심의 높은 빌딩 등 서울의 상징물이 등장한다. 특히 한옥과 양옥이 마주 보는 골목 풍경은 전통 생활 방식과 서구적 과학 문명이 어우러지고 충돌하는 현장을 예고한다. “서울의 지붕 위에 아침 해가 솟으면 오늘도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겨누고 사는 이 골목 안에 서울의 희한한 꿈과 사랑과 웃음과 눈물이 살아서 숨결 짓는다”는 내레이션은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1961년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지붕 밑’은 1956년 작 ‘서울의 휴일’이 ‘로마의 휴일’(1955년 작)의 제목을 모방한 것처럼 ‘파리의 지붕 밑’(1930년 작)에서 제목을 딴 복제품처럼 보인다. 두 작품 모두 선망의 도시 로마와 파리의 낭만을 서울에다 옮겨놓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조흔파 원작 ‘골목 안 사람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초호화 출연진을 자랑한다. ‘마부’의 김승호와 성격배우 허장강, 합죽이 김희갑이 동고동락하는 골목 안 ‘세 영감’으로 출연했다. 김승호의 부인은 한은진, 딸은 최은희, 딸을 사랑하는 최 박사는 김진규, 아들은 신영균, 아들과 결혼하는 점례는 도금봉, 점례의 어머니 황정순, 골목 안 전파사 주인 구봉서, 떠오르는 ‘신성’ 신성일까지 깜짝 출연했다. 이형표 감독은 해박한 영화이론과 영어 실력 그리고 다큐멘터리로 다져진 실력파였다. 1961년 신상옥 감독 연출 ‘성춘향’의 촬영감독을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과정은 영화에 어떻게 투영됐을까. 영화는 서울이라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삶을 대폿집, 실비집, 선술집에서 보여준다. 또 주인공들이 식당에 들어갔을 때 메뉴에는 돼지갈비 50환, 빈대떡 100환, 냄비우동 100환이라고 적혀 있다. 만둣국, 순댓국, 떡국과 함께 벽에 ‘양조장 술’이라는 광고 문안도 붙어 있었다. 초동교회 옆 돈의동 쪽방촌은 1960년대 영화의 세트장처럼 시간의 흐름을 잊고 멈춰 있다. 10여년 전 자료에 1000평 부지에 골목, 교회, 가게를 포함한 90여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니 집 한 채가 10평이 안 된다. 방 1개를 나눠서 1평짜리 방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쪽방 780개에 740여명이 거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본래 이곳은 땔감과 숯을 팔던 시탄(柴炭)시장이었다가 1930년대 폐쇄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종삼’이라고 불리는 윤락가였다.●익선동 삼국·조선의 역사 지층 간직… 문화도 다층적 1968년 서울시가 ‘나비작전’을 펼쳐 사창가를 철폐하기 전까지 종로 3, 4가를 중심으로 하는 봉익동, 훈정동 일대는 2000여명에 이르는 윤락녀와 150여명의 포주, 200여명의 삐끼(호객꾼)들의 터전이었다. 당시 종삼에는 15~20평 정도의 단층 짜리 낡은 한옥이 300여채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지금은 금·은 세공과 판매 점포 300여개에서 일하는 사람만 1500여명에 이르는 서울 최대의 금·은 세공, 판매 단지다. 이날 투어단이 찾은 익선동은 역사적 다층성, 사회적 다층성, 문화적 다층성이 혼재된 공간이다. 서울은 다양한 층위(層位)를 가진 역사도시이고, 오래된 도시는 다층적이기 마련이다. 기원전의 도시 서울에는 삼국시대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역사지층이 드문드문하고, 조선의 지층과 유구, 유적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지층과 1960년대 이후 산업화시대 때 생성된 지층 또한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사회적 다층성과 문화적 다층성, 생태적 다층성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기억하는 다층성의 요소이다. 한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굽이치며 정겨운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익선동 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익선동은 정확하게 ‘익선동 166번지’ 누동궁 터이다. 조선 제25대 철종이 태어나 14살 때 강화도로 쫓겨 가기 전까지 산 곳이다. 등극 이후에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사당을 짓고, 형 영평군이 살면서 제사를 지내도록 지어준 집이다. 2500여평에 이르는 이 궁의 익랑(대문 좌우에 붙은 행랑)이 특이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익랑골’, ‘익랑동’, ‘익동’이라고 불렀다. 익선동이라는 지명은 동네 이름인 익동의 ‘익’에 이 지역을 관할하는 정선방의 ‘선’을 넣어서 만든 지명이다. 바로 옆 낙원동 58번지 종로세무서는 옛 대빈궁 터였다. 경종의 생모 장희빈의 사당이 칠궁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경성측후소와 요정 천향원을 거쳐 원불교 종로교당과 종로세무서로 변신했다.●익선동 한옥 정세권 작품… 서울 最古 100년 한옥마을 누동궁 터는 영평군의 4대손으로 일제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해승이 소유하다가 한국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 정세권에게 팔렸다. 정세권은 오늘의 북촌과 서촌, 창신동, 왕십리, 충정로, 휘경동에 남아 있는 도시형 한옥을 지은 사람이다. 익선동에는 1883년부터 3개월간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지내면서 종로의 도로를 점령하고 있던 가가(假家)를 철거하는 등 서울 개조를 꾀한 개화파 박영효의 영향이 남아 있다. 박영효는 선 도로확보 후 필지 분할, 일정한 폭으로 곧게 뻗은 도로를 계획했으며, 대지경계선에 맞춰진 주택배치와 방 2칸, 부엌 1칸, 마루 1칸을 기본으로 행랑채가 덧붙여진 개량 집짓기를 추진했다. 익선동 한옥은 북촌보다 먼저 지어졌다. 100년을 버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30평 미만의 필지들 중 53.8%가 정세권 소유의 필지였고, 여기에 지은 한옥 64채 중 정세권이 지은 한옥이 절반이 넘는다. 정세권이 없었더라면 서울은 한옥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한 볼썽사나운 도시가 됐을지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6회 서울의 소설1(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1일(토) 오전 10시 6호선 광흥창역 1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정우성 “우리도 한때 난민…받았던 도움 돌려줄 때”

    정우성 “우리도 한때 난민…받았던 도움 돌려줄 때”

    “난민 반대 일정 부분 이해…혐오 목적은 가슴 아파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사회적 공감 포기 못해로힝야 난민 처참…아시아 국가들 리더십 발휘해야”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씨가 “우리도 6·25 전쟁(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때 실향민이고 난민이던 때가 있었다”면서 전 세계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정우성씨는 28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의 아픔을 겪었고, 그 가운데 유엔이나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정학적으로 1000번 넘게 침략당한 나라였고,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지만 역사가 반복됐을 때 다른 나라에서 당연히 대한민국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지금 우리의 시민의식과 국가 의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우성씨는 “‘우리’라고 하면 우리나라로 한정시킬 수 있지만, ‘우리’라는 말은 인류 공동체로도 넓힐 수도 있다”면서 “난민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며 공존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정우성씨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신청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을 때에도 난민을 돕자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 이 때문에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측으로부터 비판과 악성 댓글을 받기도 했다. 정우성씨는 “엄마나 청년으로서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를 존중한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거부감도 있을 것”이라면서 난민을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는 조직적으로 혐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런 점은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한 부담감과 관련해서는 “배우는 직업이며, 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이라면서 “배우라서 사회적 공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에 직접 만나고 온 로힝야 난민들과 관련해서는 “다른 난민들은 언젠가 내 땅에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지만, 로힝야 난민들은 이런 희망도 없어 보였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처참하고 불행한 난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은 2017년 8월 미얀마 리카인주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피해 이웃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대부분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영국의 식민지화와 태평양전쟁, 그리고 미얀마 국내 정치 문제들을 겪으며 미얀마의 다른 민족들과 갈등이 깊어졌다. 미얀마의 현 체제 하에서 주류에서 밀려난 로힝야족은 폭력 사태가 벌어진 뒤 방글라데시로 피했는데, 현재 이들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의 쿠투팔롱 난민촌은 70만명이 넘는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다. 정우성씨는 “모든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교육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서 “로힝야 난민 아이들은 사실상 교육이라는 희망의 끈이 끊긴 상태여서 로힝야 난민들도 이 부분을 가장 걱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로힝야 난민들이 방글라데시 지역 주민들과 상생하며 잘 지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금 상태가 이어질 순 없다”면서 “대한민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우리 모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프랭크 래무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정우성씨가 친선대사로 일하며 한국인들을 설득해 많은 이들이 난민을 이해하게 되고 지지자로 변했다”면서 “기구 내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지금 같은 역할을 계속해서 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월드피플+] 백발 성성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66년 만에 사각모 쓰다

    [월드피플+] 백발 성성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66년 만에 사각모 쓰다

    미국은 지금이 졸업식 시즌이다. 한 억만장자는 수백억에 달하는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발표했고, 한 소녀는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10년 전 주한미군으로 파병을 떠났던 아빠와 상봉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흑인 여성 졸업생이 나오기도 했다. 수많은 사연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 졸업식 풍경 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 두 명의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발런티어고등학교 졸업식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명이 사각모를 쓰고 나타났다. CNN 등 미국 매체는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66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애초 같은 테네시주 사이언스힐고등학교에 다니던 빌 윌리엄 아놀드 크래독(85)은 그가 16살이던 1953년 공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공군에서 8년 가까이 복무하며 검정고시로 졸업장을 땄지만 졸업식을 치르지 못한 것은 내내 한이 됐다. 제대로 학교에 다녔다면 1953년쯤 친구들과 함께 졸업가운을 입었겠지만 그는 66년이 지나서야 손자뻘의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졸업했다.이날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졸업장을 받은 크래독은 졸업생들에게 “받을 수 있는 모든 교육은 다 받고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라.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또 “우리(참전용사들은)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전쟁에 뛰어 들었다. 어떤 이는 목숨을 잃는 희생을 치렀다”면서 “참전용사들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겼다.플로리다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전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조 페리콘(95) 역시 같은 날 모교인 힐즈버러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가장 먼저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3년 2월, 페리콘은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군대에 징집됐다.  3년간 유럽에서 복무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끝내 사각모는 쓰지 못했다. 페리콘은 “학교에서 졸업장은 보내줬지만 졸업식은 치르지 못해 아쉬웠다”고 밝혔다. 그의 손자 토머스 팔레르모 판사는 구십이 넘은 조부의 한을 풀어주고자 학교 측과 협의해 이번 졸업식에 할아버지를 참석시켰다. 오렌지색 졸업가운과 사각모를 쓴 페리콘은 이날 졸업식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올랐다. 그가 76년 만에 정식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수여받는 순간 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나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상주는 수천명 시민…6·25 美참전용사 마지막은 따뜻했네

    상주는 수천명 시민…6·25 美참전용사 마지막은 따뜻했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90대 6·25전쟁 참전용사 장례식에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수천명의 시민이 몰려 화제다. 26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전날 열린 6·25전쟁 참전용사 헤즈키아 퍼킨스(90)의 장례식에 유족 대신 시민 수천명이 몰렸다. 건강상 문제로 유족들이 참석하지 못한 퍼킨스의 장례식에 그와 인연이 없는 시민들이 장례식 상주 역할을 한 것이다. 퍼킨스의 장례식에 많은 시민이 모인 이유는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 때문이었다. 신시내티의 스프링 그로브 묘지 측이 장례식 전날인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퍼킨스는 20년 넘게 장례식을 준비하고 비용도 미리 냈지만 현재 그의 가족은 모두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미군을 위해 싸워온 한 남자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참여해달라”고 호소했다. 묘지 담당자인 스킵 펠프스는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5일 스프링 그로브 묘지에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고인을 만난 적도 없는 수천명의 낯선 얼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읽고 미시시피에서 달려온 커플을 포함해 수백 마일을 운전해 달려온 이들도 있었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켄터키주 육군부대 ‘포트녹스’ 소속 군인들이 성조기를 접어 전달하는 국기 의식을 진행했고, 군악대의 나팔과 백파이프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연주, 오토바이를 선두로 수백대의 추모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스프링 그로브 묘지 측은 이후 성명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역사회가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과학기술인재, 연구개발 장교로 복무한다…과학기술전문사관 후보생 장교 임관식

    과학기술인재, 연구개발 장교로 복무한다…과학기술전문사관 후보생 장교 임관식

    우수 과학기술인재가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연구개발장교로 복무할 수 있는 과학기술전문사관 후보생 장교임관식이 24일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방부는 이날 ‘제3기 과학기술전문사관 후보생’ 21명이 임관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전문사관은 이스라엘 엘리트 과학기술 전문장교 육성 프로그램인 ‘탈피오트’를 벤치마킹해 우수 과학기술인력이 군복무로 인해 경력단절되는 것을 막고 국방기술 개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에서 2014년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날 임관한 과학기술전문사관 제3기 후보생은 2016년에 전국 4년제 대학 이공계 학사과정생 중에 선발되었으며 2년 동안 대학에서 전공지식 외에 국방과학기술교육, ADD 현장실습 등 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대학 졸업 후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장교로 기본소양을 키우는 8주 양성교육을 받게 된다. 이번에 임관된 과기 장교들은 ADD내 연구원 직무교육 6주를 이수한 다음 연구현장에 투입된다. 이들은 전공분야에 따라 배치된 후 3년 동안 ADD에서 연구장교로 복무하게 된다. 과기전문사관 후보생으로 선발되면 대학 재학 중에는 등록금 전액과 전문역량 개발비로 연간 500만원이 지급되고 전역 후에는 국방과학기술 기반 대학원 진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방위산업체 취업이나 창업이 지원된다. 이날 임관식에서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수상한 이형근(22, 카이스트 졸업) 소위는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할아버지, 육군공병 장교였던 아버지, 현재 해군장교로 복무중인 형의 영향을 받아 과기장교에 지원했던 것”이라며 “도전적 자세로 연구해 이스라엘 탈피오트를 뛰어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과학기술전문사관이 되겠다”고 밝혔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한화 ‘승진후보자과정’ 세계 80여개국에 소개

    한화 ‘승진후보자과정’ 세계 80여개국에 소개

    한화그룹이 인적자원개발협회가 주관하는 세계 최대 인적자원 콘퍼런스 ‘ATD 2019 ICE’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소개했다고 23일 밝혔다. ‘ATD 2019 ICE’는 지난 19일부터 22일(현지시간)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렸으며, 전 세계 80여개국 인재육성 담당자 1만여명이 참석했다. 보통 일반 기업에서는 과거의 성과, 현재의 역량, 근속 기간 등을 바탕으로 승진을 결정한다. 하지만 한화그룹의 ‘승진후보자과정’은 다수 평가자가 여러 과제를 토대로 개인의 역량을 종합 평가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직원의 리더십 역량과 경영지식, 태도를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측정해 올바른 중간관리자를 양성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버나드 샴포 한화디펜스 부사장은 기조연설에서 “맥아더 장군의 리더십이 한국전쟁의 운명을 바꿔 놓았듯 올바른 리더의 육성이 기업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2만여 미군을 지휘한 경험을 비춰 볼 때 한화그룹의 리더십 프로그램은 부족한 역량을 스스로 확인하고 개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군사정권서 추방 명령받던 佛신부 “빈국 돕는 우리나라, 한국이 좋다”

    군사정권서 추방 명령받던 佛신부 “빈국 돕는 우리나라, 한국이 좋다”

    “한국전쟁 직후에 외국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이제 다른 나라를 도와주고, 세계인들이 와서 같이 사는 나라가 됐잖아요. 저 헛수고한 거 아니죠. 이제 됐다 싶어요.” 한국에서 보낸 65년을 회상하던 르네 뒤퐁(90) 주교는 무릎을 탁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지난 20일 법무부가 주최한 ‘12주년 세계인의 날’ 시상식 현장에서 대통령 표창인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한 뒤퐁 주교를 만났다. 그는 1954년 프랑스에서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뒤 한국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농어민·여성 교육과 한센병 환자 의료 지원 등에 힘써 왔다. 능수능란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주교에게는 이제 프랑스 이름보다 한국에서 얻은 ‘두봉’(杜峰)이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두봉 주교는 “한국인 신부가 ‘뒤퐁’ 발음이 어렵다며 발음이 비슷한 ‘두봉’에 ‘산에서 노래 부르는 두견새’라는 의미를 더해 지어 줬다”고 설명했다. 두봉 주교는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안동교구장을 역임하며 ‘안동의 촛불’, ‘한국 가톨릭의 기둥’으로 불렸다. 그는 “무엇이든지 필요한 곳이 있으면 힘닿는 대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젠 한국이 외국과 외국인을 도와주는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만큼 외국과 외국인에게 많이 주고, 그들을 포용하는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9년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으로 박정희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은 적도 있다. 당시 경북 영양군 농민 오원춘씨가 농협에서 제공한 감자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며 항의한 뒤 보상받은 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정부가 오씨를 강제 연행했다. 가톨릭교회가 강하게 항의하자 정부는 두봉 주교가 일을 꾸몄다며 추방 명령을 내린 것이다. 10·26 사태로 실제 추방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두봉 주교는 “정부와 맞서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외국인 선교사가 국내 정치 문제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의 마지막 소망은 한국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두봉 주교는 한국이나 한국인을 말할 때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라고 이야기했다. 안동교구장에서 은퇴한 뒤 경북 의성군 봉양면 문화마을에서 살고 있는 두봉 주교는 “내 고향은 프랑스 오를레앙이 아닌 경북”이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비록 외국인 얼굴이고 한국어 발음도 완벽하지 않아서 100퍼센트 한국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스스로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워싱턴에 한국전쟁 용사 ‘추모의 벽’ 추진…향군 “목표 5배 성금” 서울신문에 감사패

    워싱턴에 한국전쟁 용사 ‘추모의 벽’ 추진…향군 “목표 5배 성금” 서울신문에 감사패

    서울신문사가 미국 내 한국전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 성금 모금 운동을 지원한 공로로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배상기 향군 사무총장은 22일 서울신문 본사를 방문해 고광헌 서울신문 사장에게 김진호 향군회장 명의의 감사패를 전달하고 “추모의 벽 성금 모금 운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성공적으로 마감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셔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고 사장은 “실제 건립 때도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향군은 지난해 10월 15일부터 지난달까지 약 5억 2000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본래 목표였던 1억원의 5배가 넘는 금액이다. 김 회장이 개인적으로 1000만원을 기탁했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한기 합참의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이 동참했다. 이상용씨, 신수지씨 등 향군상조회 홍보대사와 월남전참전자회, 대한항공, 삼성물산 등도 힘을 보탰다. 서울신문 독자 등 일반 시민들도 성금을 냈다. 향군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추가로 모금 운동에 나선다. 김 회장은 오는 7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66주년 정전협정 기념식에 참석해 추모의 벽 건립을 추진하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재단(KWVMF)에 그간 모은 성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추모의 벽은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 내에 둘레 50m, 높이 2.2m의 유리벽을 설치하고 6·25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전사자의 이름을 새기는 사업이다. 이곳에 기릴 대상은 3만 6000명의 전사자와 카투사 8000여명이다. 총예상사업비는 약 280억원이다. 현재는 한국전에 참전한 국가 이름, 사망자·부상자·실종자 수를 새긴 조형물만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삼각산과 쌍문동’ 편이 지난 18일 쌍문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쌍문역 3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남정현 가옥에서 ‘분지’의 작가 남정현(87)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참가자들이 미래유산의 현장이자 작가의 집필 모습을 직접 둘러볼 수 있도록 집안까지 개방했다. 2016년 방영 당시 20%대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 쌍문시장과 감포면옥을 기웃거리면서 식지 않는 드라마의 여운을 느꼈다. 함석헌기념관에서 반독재 민주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곱새겼다. 기념관은 선생이 만년에 6년간 살던 집을 개조한 서울미래유산이다.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을 증명하는 둘리뮤지엄을 거쳐 덕성여대에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덕성여대 캠퍼스에는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자연과학대, 예술대, 중앙도서관이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삼각산을 품은 3채의 붉은 벽돌 건물이 눈부셨다. 서울도시문화지도사 김은선 해설사가 쌍문동의 어제와 오늘을 열정적으로 들려줬다.오늘의 북서울을 이루는 도봉구와 강북구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포함된 성저십리(성 밖 십리) 지역이며, 노원구와 중랑구 일부는 경기 양주에 속했다. 도봉구 쌍문동은 경기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였다. 노해면은 일제강점기 노원과 해등촌을 합쳐 만든 의미 없는 합성 지명이다. 쌍문동이라는 지명은 효자 계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두 개의 효자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지역 내 효문중·고교도 효자마을이라는 지역정체성을 강조하려고 지었다. 2007년 쌍문동이라는 지명이 촌스럽다고 하여 효문동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고 한다. 쌍문동은 서울과 강원도~함경도 동북지방을 잇는 길목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한양과 전국을 연결하는 10개의 큰 길이 있었다. 한양~의주 간 1070리길이 의주1대로라면 한양~경흥 간 2110리길은 경흥2대로였다. 이 길을 통해 함경도의 북어와 땔감과 약재가 유입됐고, 함흥차사와 김종서의 여진정벌군이 오갔다.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주요 간선도로의 경유지와 거리, 경유 지역을 정리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중 정리고(程里考)에 따르면 경흥대로는 동대문에서 15리 떨어진 수유현과 32리길 누원을 지나 금화현~금성현~영흥부~함흥부~북청부~길주목~회령부~경원부~경흥을 거쳐 최북단 서수라까지 장장 2190리길이 이어졌다.동북방을 오가는 길의 한양 쪽 마지막 쉼터는 안암동 보제원이었고 다음 쉼터인 누원점(다락원)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북서울 일대에 역이나 여관은 없었다. 관원이나 상인은 보제원이나 다락원에서 서울을 들고나는 마지막 여정을 챙겼다. 북서울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기보다 물품과 봉수(熢燧)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조선 후기 누원점에는 난전 단속을 피하려는 서울상인들이 진을 친 동북방 제일 큰 시장이 열렸다. 정조6년(1782년) “어상이 왕래하는 요충지 누원점의 매점매석이 심해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재의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 도봉산역이 누원점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창포원과 평화문화진지(대전차방호벽), 다락원체육공원, 서울YMCA다락원캠프장 등이 옛 영화를 말해 준다. 북서울 일대는 고려 남경(南京)의 후보지였다. 고려 숙종(1101년) 때 오늘의 서울지역에 남경을 설치하려고 후보지를 물색한 결과 노원, 해촌, 용산, 북촌 일대가 꼽혔다. 고려사에 “노원역, 해촌, 용산 등에 나아가서 산수를 살펴봤으나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은 산형과 수세가 옛 문서와 부합되니…도성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상계주공아파트가 들어선 노원은 마들평야라고 불리던 노원역 일대이고, 해촌은 창동 일대이며, 면악의 남쪽은 경복궁 뒤 청와대 지역이다. 조선의 도읍지는 고려 남경 터를 계승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북서울에는 경흥대로 노선을 흡수한 경원선 등 세 갈래의 철도궤도가 부설됐다. 1910년 착공, 1914년에 개통된 경원선은 용산역을 출발해 왕십리~청량리~창동~의정부를 거쳐 원산까지 223㎞를 달렸다. 경춘선과 금강산철도도 건설됐다. 기차역이 생긴 창동은 서울교외 관광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봄에는 우이동 벚꽃놀이, 가을에는 도봉산 망월사 단풍놀이가 유행하면서 우이동 관앵(觀櫻)열차와 망월사 하이킹열차가 각각 운행했다. 경성역에서 창동역까지 50분 거리여서 한적한 시골동네에 관광 인파가 북적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서울 너른 들에는 전재민과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한 난민수용소, 이주정착촌, 저소득층 임시거주지가 집중 조성됐다. 1970~80년대 들어 도봉지구와 창동지구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고 상계·중계·창동지구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숲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인구가 폭증하면서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구한 데 이어 1988년 노원구, 1995년 강북구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은 1967년 도심개발 당시 철거민들의 집단이주 정착지 흔적이다. 1985~1987년 세상을 놀라게 한 상계동 철거민 투쟁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무허가주택 세입자들이 재개발사업자와 건설사, 가옥주인 조합원들과 충돌한 도시빈민 투쟁사로 기록됐다. 삼각산은 서울의 뼈대를 이루는 조상산(祖上山)이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를 이루는 ‘세 개의 신령한 뿔’이 삼각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산을 북한산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까지 멀쩡하던 지명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가 ‘북한산 유적조사보고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면서 지명이 변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3년 영문도 모르는 정부가 삼각산을 포함한 서울 북쪽지역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게 결정타였다.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지칭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삼각산은 산의 이름이지만, 북한산은 산의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옛 지명 한양(漢陽)은 7세기 신라 때부터 이 지역의 지명인 한산(漢山)이라는 땅의 남쪽, 한강(漢江)이라는 강의 북쪽에 있는 양지바른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를 풍수지리학에서는 ‘산남수북지’(山南水北地)라고 풀이한다. 북한산이란 한산의 북쪽 지역을 이르고, 남한산이란 한산의 남쪽 지역을 이른다. 산 이름 삼각산을 제쳐 두고 지역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의 영험함과 정기의 상실을 초래한다.삼각산 깊고 너른 품에 안긴 쌍문동은 효자마을이라는 정체성에,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과 ‘응답하라 1988’ 드라마로 명성을 얻었다. 1983년 쌍문동에 살던 김수정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둘리는 쌍문동을 넘어 도봉구의 마스코트가 됐다. 지역의 대표 캐릭터답게 둘리뮤지엄, 둘리스토리공원, 둘리미니어처공원이 건립됐다. 거리와 역, 버스정류장, 담벼락엔 온통 둘리 그림과 조형물로 채워졌다. 우이천변엔 둘리가 발견된 곳 표지판도 세워졌다. 도봉구는 2011년 만화주인공 고길동씨와 둘리를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다. 2015년 11월 6일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시리즈의 3번째 후속작 ‘응답하라 1988’은 조용한 동네 쌍문동을 다시 화제의 전면으로 불러냈다. “너무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동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정겨운 이름 때문에 드라마 무대로 쌍문동을 캐스팅했다”고 담당PD는 말했다. 만약 2007년 효문동으로 동명을 바꿨더라면 드라마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세 개의 뿔’ 삼각산의 기운이 쌍문동의 뒤를 받치는 듯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文 “한미, 미사일 절제된 대응… 北 도발 막아 대화 모멘텀 유지”

    文 “한미, 미사일 절제된 대응… 北 도발 막아 대화 모멘텀 유지”

    “北 단도 미사일 공조 아주 빛나” 강조 일각서 ‘文 탄도 미사일 발사 인식’ 추측 靑 “文 단거리 미사일 잘못 말해” 해명 軍 “한미 당국간 정밀 분석중” 선긋기 文 “에이브럼스 부친, 한국과 인연 깊어” 에이브럼스, 한국어로 “대통령님 감사”문재인 대통령은 21일 한미 군 지휘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최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미 대화 기조가 깨지지 않은 것은 한미 양국의 절제된 대응과 공조 덕분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긴밀한 공조·협의 속에 한목소리로 차분하고 절제된 목소리를 냄으로써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 한 대화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면서 “한미 동맹의 공고함과 양국의 긴밀한 공조는 최근 북한의 ‘단도 미사일’을 포함한 발사체의 발사에 대한 대응에서도 아주 빛이 났다. 긴밀한 공조를 해준 양군 지휘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우리 군과 주한미군 핵심 지휘부를 청와대로 함께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부임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육참총장을 역임한 부친이 한국전쟁 때 복무까지 하신 한국과 인연이 매우 깊은 분”이라며 “그런 분이 한미 동맹의 한 축을 맡아 주고 계신 것은 우리에겐 아주 큰 행운이다. 아주 든든하다”고 격려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우리(한미)는 함께할수록 더 강력해진다고 생각한다. 여러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한미 동맹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는 한국어로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이날 문 대통령이 ‘단도 미사일’이라고 언급했다가 행사 후 청와대가 이를 ‘단거리 미사일’로 정정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청와대가 정정하긴 했지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 ‘북한 발사체=탄도 미사일’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지금까지 군 당국은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에 대해 ‘단거리 미사일 추정 발사체’라는 초기 분석 외에는 구체적인 분석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군 당국이 지난 4일과 9일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를 탄도 미사일로 분석을 마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가 탄도 미사일인지, 일반 미사일인지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탄도 미사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아직 단거리 탄도 미사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대북제재가 부과되지 않았지만 탄도 미사일로 규정된다면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 협상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현장 취재기자의 녹취록엔 문 대통령이 ‘단도 미사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확인해 보니 ‘단거리 미사일’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 대변인이 문 대통령에게 ‘단도 미사일’의 정확한 뜻을 직접 물었고, 문 대통령은 “제가 그랬나요. 단거리 미사일이죠”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도 “현재 한미 정보당국 간 공조하에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의 세부 제원 및 탄종에 대한 정밀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이주열 “계획 없다”고 못박은 ‘리디노미네이션’이 뭐야

    이주열 “계획 없다”고 못박은 ‘리디노미네이션’이 뭐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지난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논의에 불을 붙인지 두 달 만에 의견을 달리한 건데요. 잊을만하면 언급되는 리디노미네이션이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다시’를 뜻하는 ‘리’(re)와 ‘화폐 체계’를 뜻하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화폐 체계를 다시 한다는 뜻인데요. 모든 화폐의 원래 가치는 그대로 두고 숫자를 동일한 비율로 낮추는 식이죠. 예컨대 1000대1로 낮추면 1000원짜리가 1원이 되지만 1원의 가치는 원래대로 1000원인 겁니다. 돈에 붙는 ‘동그라미’(O)가 줄어들어 표기가 훨씬 간단해지겠죠. 예를 들어 5000원짜리 짜장면을 5원으로 표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왜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할까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우선 국제화입니다. 미국의 1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가량인데요. 이러면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와 100달러를 환전했는데 십만 단위가 찍힌 지폐를 받으면 원화 가치가 낮아 보입니다. 각국의 최저 화폐단위와 비교해봐도 1달러에 해당하는 숫자는 원화가 큰 편입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의 경우 미국 1달러에 해당하는 1파운드와 1유로는 동전이거든요. 미국 달러화 대비 환율이 네 자릿수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만일 리디노미네이션이 되면 “우리도 글로벌 화폐야”라고 말 할 수 있는 겁니다. 두 번째는 수십년 사이에 크게 성장한 우리나라 경제 규모입니다. 우리나라 화폐단위는 1962년 정해진 뒤 50여 년간 변화가 없는데요. 1962년 24억 달러에 불과했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조 7000억 달러 수준으로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경제규모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물가도 당시보다 크게 올랐는데요. 브라보콘만 봐도 1980년대 5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500원으로 물가가 크게 상승했잖아요. 화폐단위만 50여 년간 그대로 인 겁니다. 이미 민간에서는 1만 원 짜리 음식값을 10.0이라고 표시하고 있는데 말이죠.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현실을 못따라 가는 화폐단위를 바꾸겠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거래의 효율성, 지하경제의 양성화 차원에서도 논의가 이뤄져 왔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과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물가가 올라갈 게 걱정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걱정인 시기”라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저물가 상황을 고려하면 일시적인 물가 상승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또 박 전 총재는 “비용 부담이 아니라 일자리와 투자 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은 무조건 남는 사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서울신문 유튜브 ‘서울살롱’에 출연해 “지금 화폐개혁을 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며 안하는 게 좋다. 한다면 여론수렴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화폐제작 비용 외에 은행의 모든 현금자동인출기(ATM) 등 각종 장비를 교체해야 하는 비용도 감수해야죠. 수조원의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화폐단위 자체를 낮추면 가격이 낮은 서민 물가가 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1000원이 1원이 되면 800~900원짜리 물건은 0.8원, 0.9원이 아니라 1원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과 1962년 두 번의 화폐개혁이 있었습니다. 1953년은 한국전쟁 직후로 거액의 군사비 지출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였죠. 100환이 1원으로 바뀌는 100대1의 화폐단위 변경이었습니다. 1962년은 경제개발계획에 들어가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0환을 1원으로 바꾼 10대1 변경이었는데요. 두 번 모두 긴급명령 형태로 발표됐습니다. 이렇다보니 대통령 직권으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 퍼져나가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려면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를 규정한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리디노미네이션의 현실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리디노미네이션은) 사회적 충격도 큰 사안이고 국민적인 공감대와 사전 연구도 굉장히 필요한 사안”이라며 “정부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요. 이 총재도 반복해서 “계획이 없다”고 말했으니까요. 일단은 수면 아래로 논의가 가라앉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또 논의가 진행될텐데요. 그때는 국민들에게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설명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면 합니다. 더 많은 영상은 서울신문 유튜브 ‘서울살롱’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문 대통령 “北발사체, 절제된 대응 빛났다…한미동맹 굳건”

    문 대통령 “北발사체, 절제된 대응 빛났다…한미동맹 굳건”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북한 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한미 양국은 긴밀한 공조·협의 속에 한목소리로 차분하고 절제된 목소리를 내 북한이 추가 도발하지 않는 한 대화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 군 지휘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한미동맹의 공고함과 양국의 긴밀한 공조는 최근 북한의 ‘단도 미사일’을 포함한 발사체의 발사에 대한 대응에서도 아주 빛이 났다고 생각한다”며 “긴밀한 공조를 해준 양군 지휘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단도 미사일’은 ‘단거리 미사일’을 잘못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오찬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문 대통령의) ‘단도 미사일’ 발언은 확인해 보니 ‘단거리 미사일’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정정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한국군과 주한미군 사령탑을 포함해 한미 군 지휘부만 청와대로 함께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한미동맹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 평화·안정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미동맹의 힘으로 한반도 평화가 구축되더라도 동북아 전체의 평화·안정을 위한 한미동맹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런 면에서 한미동맹은 결코 한시적 동맹이 아닌 계속해서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해 가야 할 영원한 동맹이라고 생각한다”며 “한미 양국의 위대한 동맹을 위해 끝까지 함께 가자”고 역설했다. 이어 “공고한 한미동맹과 철통같은 연합방위 태세를 토대로 그 힘 위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이라는 평화프로세스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GP(감시초소) 시범 철수, DMZ(비무장지대)에서의 유해 공동발굴, JSA(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같은 남북 군사합의를 이행하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를 계속해서 취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대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하노이에서의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상황에서도 대화 모멘텀이 유지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개인적인 신뢰와 함께 달라진 한반도 정세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는 양군 최고 지휘부를 한 자리에 모셔 매우 기쁘고 반갑다”며 “양군 지휘부 진용이 새롭게 짜인 계기에 한미동맹과 강한 안보를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 노고를 치하하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작년 11월 부임한 이래 한미동맹은 더욱 굳건해졌고, 연합방위 태세가 더욱 철통같아졌다”며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부친이 미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고, 3형제가 모두 장성 출신인 군인 명문 가족 출신이다. 미 육군에서는 최고의 장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부친께서는 한국전쟁 때 한국에서 복무까지 하신 한국과 인연이 매우 깊은 그런 분”이라며 “그런 분이 한미동맹의 한 축을 맡아주고 계신 것은 우리에겐 아주 큰 행운이다. 아주 든든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우리(한미)는 함께 할수록 더 강력해진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한미 동맹의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또 “주한미군을 대표해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어 무한한 자긍심을 느낀다”며 “한미동맹의 일원으로 헌신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했다. 오찬에는 한국 측에서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한기 합참의장,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서욱 육군참모총장, 심승섭 해군참모총장, 원인철 공군참모총장,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이 참석했다. 주한미군에서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 케네스 윌즈바흐 부사령관, 제임스 루크먼 기획참모부장, 토니 번파인 특수전사령관, 패트릭 도나호 미8군 작전부사령관 등이 함께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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