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한국전쟁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검찰총장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4대 그룹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송파구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응급처치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75
  • 북한,대일 수교보다 대미 관계계선 우선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은 미국과의 국회의원교류를 공식 제안하고 외교관계도 일본보다 우선해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해말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스미스 상원의원과 북한담당 국무부관리에게 이같은 방침을 전하고 일본 중국 러시아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표명했다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11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북한은 한국전쟁때 행방불명된 미군문제를 협의하기위해 평양을 방문한 미대표단에게 당시 포로문제는 중국군이 담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밝히고 그러나 미·북한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군문제의 해결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유골 유품 기록등의 발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이신문은 전했다. 미대표단은 강석주외교부 부부장,양형섭 최고인민회의장등 북한 고위관리들과 회담했으며 북한은 이들에게 일·북한국교정상화교섭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 6·25당시 소군동향/러,비밀서류 곧 공개

    【모스크바 AP 연합】 러시아 국방부는 10일 한국전쟁(1950∼1953년)중 소련군의 동향과 관련한 비밀서류들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를 인용,그같이 보도했으나 공개 시기를 밝히지는 않았다. 러시아국방부는 또 소련이 2차대전 초기에 레닌그라드거주 핀란드인들과 독일인들을 「간첩」혐의로 추방한데 관한 비밀서류도 공개할 예정이다.
  • “클린턴 남북한 정상회담주선을”/미 해군대 올슨교수 기고문서 제의

    ◎탈냉전시대 미의 적극역할 중요/한반도통일비용 일이 지불해야 미국의 영향력있는 신문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7일자 여론란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해군대학원의 에드워드 올슨교수가 쓴 『미국은 한반도통일을 준비해야한다』는 기고문을 게재했다.아시아관계전문가인 올슨교수는 이 글에서 『클린턴 새 행정부는 한반도의 남북통일을 적극 촉진해야하며 남북정상회담을 미국의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가질수있도록 주선해야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기고문의 요지를 간추려본다. 클린턴 차기대통령이 준비해야할 외교정책가운데는 통일한국에 대한 전망과 남북한통일을 위해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것인가가 포함돼야한다.클린턴행정부는 아마도 한반도통일문제를 우선과제의 하나로 삼을 것이다. 한국문제는 냉전의 산물이며 냉전체제가 종식된 지금까지 분단으로 남아있는 것은 비정상적이다.남북한도 이미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가고있지만 상호간의 불신이 깊어 화해의 절차와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시키지 못하고있다. 한국통일에 대한 미국의선택은 본질적으로 두가지밖에 없다.하나는 수동적인 방관자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적극적인 조언자가 되는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통일에 관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을수있다. 우선 중동평화회담(이스라엘­이집트정상의 캠프데이드회담)의 선례를 빌려 미국의 대통령이 남북지도자간의 캠프데이비드회담을 추진할수있을 것이다.만약 이러한 접근방법이 워싱턴의 입맛에 다소 맛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격상을 통해 남북한간의 접촉망을 확대하여 적극적인 기여를 할수있을 것이다. 통일문제가 점차 현실화되어 갈수록 미국은 남북한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할때까지 도와주어야한다.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남북한의 통일비용까지 담보하지는 않을 것이며 또 그럴수도 없을 것이다.다만 미국이 한국전쟁이후 기왕의 방위부담을 짊어져왔기 때문에 통일후도 안전보장을 계속 유지해주도록 기대는 할수있을 것이다.일본은 한국통일비용의 상당부분을 분담할수있을 것이며 그렇게 해야할 도덕적 의무도있다고 본다. 미국은 남북한통일이후에도 정책적인 준비를 해야한다.예를 들어 통일한국이 아시아의 세력균형에 어떻게 적응할것이며 미국의 대일­대중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 등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한다. 한국의 통일은 클린턴행정부시절이 되거나 될수있는 향후 4∼8년안에 이뤄질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새 행정부는 최소한 한국문제에 대한 긴급대책과 계획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한다.「변화」를 구호로 내걸고 있는 클린턴행정부는 한국통일문제를 잘 처리할수 있도록 이에 대한 창조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해야 할것이다.
  • 한국전쟁중 행방불명/미군관련 비자료 공개/러시아 국방부

    【모스크바 AP 연합】 러시아 국방부는 구소련 영공에서 스파이활동중 격추돼 사망했거나 억류된 미군 조종사들과 한국전쟁중 행방불명된 미군병사들과 격추된 소련 조종사들에 관한 비밀문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고 러시아관리들이 24일 말했다. 전쟁포로와 실종미군(MIA) 조사를 위한 미-러시아공동위원회의 세르게이 오시포프 대변인은 위원회가 러시아국방부로부터 이 문서들을 인계받아 지난 주 조사에 착수했다고 확인했다. 오시프로대변인은 이 문서들이 흥미있는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통해 구소련 영토내에서 아직 살아있는 미군포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실종미군 성과땐 대북한 관계개선”/미 국무관리

    【도쿄=이창순특파원】 미국은 미국무성관리의 최초 방북과 관련,한국전쟁중 행방불명된 미군문제에 큰 진전이 있으면 거기에 대응하는 대북한관계개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20일 미정부관리의 말을 인용,워싱턴발로 보도했다. 미국은 또 북한이 남북총리회담과 핵사찰교섭에 전향적인 대응을 보일 경우 새로운 관계개선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이신문이 전했다. 미정부당국자는 국무성의 믿 퀴노네스 한국담당 부책임자의 방북은 『어디까지나 인도적 방문』이라고 지적하고 『국무성은 당초 그의 방북에 반대했으나 봅 스미스상원의원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글버거 국무장관이 결단했다』고 밝혔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이때문에 키노네스차장은 행방불명된 미군문제이외에는 일체 북한관리와 대화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이신문이 전했다.
  • 출판 행림출판사 이갑섭사장(92문화계 주역:6)

    ◎뛰어난 기획력으로 베스트셀러 양산/럭금 구자경회장 자서전 35만부 판매/일 여우 누드집 발행,“외설앞장” 비난도 『구자경 럭키금성그룹회장의 자서전 「오직 이길밖에 없다」가 종로·교보등 대형서점이 뽑은 올해 최고베스트셀러가 된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같은 기간동안 나온 동종의 재벌자서전과는 달리 독자들에 어필하는 내용의 탄탄함에 출판사나름의 노하우가 접목되어 탄생한 것이지요』 「오직…」을 35만부나 팔아 올해의 최고베스셀러출판사에 오른 행림출판사 이갑섭사장(42).그는 92년 출판계의 스포트라이트와 비판을 한몸에 받은 출판경력 16년째의 중견출판인이다. 그에게 쏟아진 찬사가 「오직…」처럼매년 베스트셀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 활동력과 한걸음 앞서가는 뛰어난 기획력 때문이었다면 일본의 인기여배우 미야자와리에의 누드집「산타페」출판으로 인한 지탄의 목소리도 만만찮았다.청소년들의 정서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영리만 앞세웠다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이 그것이다. 『행림만큼 자주 출판가의 화제거리가 된 출판사도 드물겁니다.지금까지 발간한 5백여종의 대부분이 돈이 많이 벌리는 대중소설류였지요.하지만 이 책들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한국구전설화」(전14권),「한국의 탈과탈춤」「한국인의 놀이와 제의」같은 좋은 책을 만들어 내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실제 그는 지난79년에 발간,물경 3백60만부를 팔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김홍신의 「인간시장」이후 「흔들릴때마다 한잔」(박양호),「물의 나라」「불의 나라」(박범신)등으로 이어진 상업소설로 기반을 다져 왔다.그러나 요즘은 원고료 2억9천만원,제작비 1억원이란 거금을 들여 「한국전쟁사」(전6권),「한국의 역대 전쟁」등 7권짜리 가치있는 책을 만드는 작업에 정열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도 「책의 해」를 앞둔 시점에서 올해 우리 출판계는 많은 내부진통과 외부의 시련을 겪었습니다.「즐거운 사라」와 「리에의 누드집」으로 대표되는 외설시비는 내부진통의 하나였죠.또 개방압력에 대비한 출판유통의 현대화같은 작업은 출판문화발전을 위한 큰진전이었다고 봅니다』그는 80년대말 한때 행림출판사,평민사등2개 출판사와 「월간주니어」 「마드모아젤」「비디오패밀리」등 3개 잡지를 운영하는등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다.그러나 지금은 행림과 월간주니어로 축소경영중이다.이사장일가는 7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의학전문출판사 행림서원을 모친이,학술사회과학전문출판사인 평민사는 누이동생이 운영하는 출판패밀리를 이루고 있다.
  •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논평)

    ◎핵분열 연쇄반응 실험성공 50돌에/과기의 최대목표는 자연과의 조화/원자력 이용에 대한 공개논의·불안해소 절실 『이탈리아출신 조종사가 새로운 세계에 착륙하였습니다』 1942년12월2일 시카고대학교 금속연구사업 책임자 아서 컴프톤(Compton)박사는 하버드대학교 총장 제임스 코난트(Conant)박사에게 감격에 찬 목소리로 보고하였다.이는 시카고대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CP­1의 성공적인 실험을 알리는 암호문이었다.CP­1 원자로는 핵분열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가를 실증하기 위하여 설계 제작되었으며 핵분열연쇄반응이 가능하다는 것은 바로 원자력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역사적인 실험의 성공으로 원자력시대는 개막되었던 것이다. ○세계발전량의 17% 이탈리아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Fermi)의 지휘아래 이루어진 이 실험에는 49명의 학자들이 중성자 계측기의 빨라져가는 신호음에 긴장하면서 무거운 침묵속에 움직이고 있었다.캐나다 출신의 젊은 과학자 월터 진(Walter Zinn)이 페르미의 지시에 따라 조심스럽게 중성자의 수가 늘어가도록 제어봉을 빼냈다.잠시 후 중성자계측기는 연속적인 신호음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킴으로서 끊임없는 연쇄반응의 성공을 알리는 것이었다. 시카고대학에서 페르미의 성공이 있은 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원자력 발전에 의한 첫번째 전등이 켜진 것은 한국전쟁이 한참인 1951년12월20일에 EBR­1이라는 아이다호주에 위치한 원자력연구소 실험로에서였다.이때의 실험 책임자는 페르미의 오른팔로 시카고 실험을 수행한 월터 진박사이다.이후 5년내에 본격적인 원자력발전소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전세계로 번져나가 우리나라도 이제는 거의 전력의 절반을 원자력에 의존하게 되었다.이제 전세계에는 4백20개가 넘는 원자력발전소가 운전가동되고 있으며 여기서 발전되는 전기는 전세계 발전량의 17%를 넘어서고 있다.원자력은 에너지원으로서 절대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고 프랑스와 벨기에 같은 나라는 총 전력의 75%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에너지 소비가 증가되고 화석연료에 의한 환경오염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화되며 산성비로 말미암아 지구 생태계가 직접적인 손실을 받게 되자 깨끗한 에너지로서 원자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월16일부터 일주일간 시카고에서는 전세계 원자력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페르미의 CP­1 실험성공 50주년을 기리는 기념학술대회를 열고 원자력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점검해 보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원자력의 발견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으며 진리를 찾아 주야로 골몰하였던 과학기술자들의 귀중한 창조물이었다.질량과 에너지의 동등성을 증명한 아인슈타인(Einstein),원자핵의 구조를 규명한 러더포드(Rutherford),핵분열현상을 처음으로 관측한 한(Hahn)과 스트라스만(Strassman),연쇄반응의 가능성을 처음 예측한 질라드(Szilard)등은 모두 원자력의 발견과 개발에 없어서는 안될 공헌을 한 것이다.이들의 공헌은 현대과학 기술문명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원자력의 활용부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선배과학자들의 질책이 있었다.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고,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의 활용이 절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행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는 국민적 이해증진을 위한 노력의 부족,안전규제의 비현실적인 관료성,폐기물 처리시설 미비 등 행정책임자들의 현실을 무시한 안이한 자세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우리가 맞이할 정치지도자는 원자력의 이용에 관한 공개적 논의와 책임있는 행정을 펼 수 있어서 국민들을 근거없는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개발된 원자력 안전기술의 철저한 적용과 완벽한 방사능 폐기물 처리시설을 실질적으로 확보하여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학으로서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과학기술자의 도덕적 책임감에 대한 반성이다.지금까지 원자력의 안전성은 메커니즘의 신뢰성을 강조함으로써 일반 시민의 정서적 문제를 수리적으로만 해결하는데 집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다행히 앞으로의 원자력 기술개발 경향은 자연현상을 따르는 피동 안전원리(Passive Safety Concept)에 입각함으로써 일반 국민에게 보다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기술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문명 미래 달려 과학기술은 인간의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여 활동범위를 확대시켜 주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하여 자연 그 자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대자연과의 조화가 현대과학 기술문명이 추구하는 최대의 목표가 되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그동안의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배워왔기 때문이다.일방적인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활용이 아니라 신기술의 활용이 자연과 조화되도록 더욱 개선하고 적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원자력은 현대과학 기술의 총아로서 이의 활용이 적극적으로 활성화된다면 장기적으로 현대문명의 영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원자력은 아직도 초창기에 있다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원자력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나라는 21세기 에너지개발의 선진국이 되리라는 결론도 이번 학술대회에서의 엄두에 두어야 할 결론이라 하겠다.
  • 제3세대 과학기술자 양성하자/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논평)

    ◎교육의 1세대·연구의 2세대 이을 개척세대 절실 지난 10월말 우리나라 과학계의 선구자이신 이태규박사께서 돌아가셨다.고인은 한국인으로는 이학박사 제1호이셨으며 해방후 국립서울대학교의 문리대학장을 역임하시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신 한국과학계의 큰 스승이셨던 분이다.미국에서 오랜 연구활동을 마치고 귀국하신 선생님께서는 지난 20년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명예교수 또는 석좌교수로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후배학자들을 지도하셨고,그 자신도 끝까지 연구활동을 하심으로써 참다운 학자의 일생을 걸으셨던 것이다.모든 분들과 함께 다시 한번 이박사님의 명복을 빌면서 고인의 뜻을 이어 과학 한국의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본다. 모름지기 한나라의 과학기술계가 영(영)에서부터 시작하여 국제적으로 평가받을만한 우수한 성과를 이룩해 내기 위해서는 3세대가 걸린다고 한다.제1세대는 과학기술을 처음으로 접하고 그 중요성을 체득하여 교육 및 연구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세대이며,제2세대는 정규교육을 받고 다양한 과학기술정부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참여하게 된다.이러한 단계를 거쳐 스스로의 연구능력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획기적인 업적으로 세계의 과학기술계를 선도하는 위치를 확보하는 것은 제3세대의 과학기술자들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를 살펴보자. ○광복때 1백명 불과 해방직후 우리나라는 대학교육을 받은 과학기술자들이 1백명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며,우리 스스로 대학을 운영하게 되었을 때 교육을 담당할 자격있는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운 과학기술의 불모지였었다.제1세대 과학기술자들은 해외유학을 통하여 정규 대학 및 대학원 교육을 받을수 있었다.이들은 한국전쟁과 60년대를 거치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조성,교육 및 연구프로그램의 개발,교육기관의 설립 등 과학기술계의 기반마련을 위해 피눈물나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70년대부터 양성되기 시작한 제2세대 과학기술자들은 제1세대가 개척해 놓은 길위에서 우리의 과학기술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하게 되었다.국내의 연구성과가 국제학술지에 발표되기 시작하였으며 국제학술대회가 빈번히 개최됨으로써 한국의 과학기술능력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경제성장의 주춧돌이 될 과학기술 연구기관의 구성작업도 구체화되었다. ○연구기관 본격 구성 1966년에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1971년에 문을 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등은 제2세대 과학기술자들의 연구활동의 본거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과학기술자들을 양성하는 교육연구기관의 역할도 맡았던 것이다.짧은 시간에 많은 출연기관의 성장과 함께 일반 대학들의 건실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 내려는 각 분야의 활동들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현재까지도 과학기술의 내실있는 발전과 국제적 위상강화를 위한 제2세대 과학기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제3세대 과학기술자들을 고대하고 있다.제3세대 과학기술자들은 세계수준을 따라가는 것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적인 연구자세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내고 뛰어난 연구성과를 도출해 냄으로서 지구촌의 과학기술을 선도해야 한다.제3세대의 과학기술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과학기술계는 선진화되는 것이다.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들도 모두 결정되었다.한국은 아직도 단 한사람의 노벨상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한데 비해 미국의 하버드대학교가 일개 대학으로서 3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분발을 촉구하는 것이다.한국인으로서 해외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과학자들은 많지만 우리는 국내과학기술계가 성장하여 하루바삐 제3세대 과학기술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길 갈망하는 것이다. ○후배 가능성 살려야 고인이 되신 이태규박사께서는 제1세대 과학자로서 정열적으로 활동하셨으며 유종의 미를 거두셨다.제2세대 과학기술자들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자기들의 할일에 힘쓸 뿐 아니라 후배들을 위한 노력도 꾸준하여야 하겠다.그리하여 멀지않아 제3세대의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뻗어나와 이나라의 앞날을 밝게 해 주기를 고대하여마지 않는 것이다.한나라의 과학기술은 얼마만큼 능력있는 과학기술자들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은가!
  • 한·러 유대·경협의 발전적 확대(사설)

    한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차원의 관계로 들어섰다.19일 가진 양국정상회담과 같은날 양국정상이 서명한 기본관계조약의 내용들은 향후의 관계를 모든 분야에서 발전적으로 급진전 시킬수 있는 굳건한 약속으로 평가된다. 또한 양국 관계장관들이 체결한 이중과세방지협정등 6개협정은 그동안 양국관계를 주춤케했던 장애요인을 제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특히 양국정상이 북한의 핵개발저지에 공동으로 노력키로 합의한점,옐친대통령이 한국전쟁과 KAL기사건에 대해 사과한점등은 주목할만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북한핵」에 대한 양국정상간의 합의는 「북한핵」문제해결에 새로운 돌파구로서 러시아측의 노력에 기대가 모아진다. 이러한 성과가 가능할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경협확대에 대한 러시아측의 기대에서다.1백20명의 대규모 러시아경제인단이 내한한것과 옐친대통령이 스스로 우리경제단체장들의 초청오찬에 참석한점등은 경협에 대한 러시아측의 관심도를 나타내고 있다.옐친대통령 자신도 경제단체장초청연설에서 『방한은 정치적인 관계뿐아니라 새로운 경제유대를 맺기위한것』이라고 말했다. 양국경제관계는 한때 급템포로 진전되었으나 대소차관에 대한 이자지급불능,러시아측의 수용태세미비등으로 주춤한 상태에 있다.러시아측은 이번 옐친 방한을 경협증진의 활력소로 활용키위해 연체이자의 지급과 함께 6개협력협정을 체결,우리기업의 대러진출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는데 노력해왔다. 지금 러시아 정정은 혼미한 상태에 있다.정치적으로 러시아최고회의와 옐친대통령과의 갈등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고 경제사정 또한 대단히 어렵다.이럴때 러시아의 중요한 경협파트너로서 상호발전방향의 경협증진은 의미있는 일이 될것이다.양국경협에서 크게 기대되는 것은 과학기술및 러시아 군수산업의 민수화참여,자원개발등이다.러시아의 응용및 기초과학분야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의 이용이 미미한 상태이며 군수산업의 민수화과정도 여의치 못하다.여기에 우리의 자본과 생산경험은 좋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막대한 투자문제와 자연적 조건이 문제이긴 하나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시베리아의 에너지및 삼림자원도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양국 협력관계는 옐친 방한을 계기로 활기를 띨것은 틀림없다.이러한 전기가 상호발전에 기여할수 있기위해서는 양국 경제인간의 확고한 신뢰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서로의 약속위반이나 사태의 돌출로 관계가 냉온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단기적 이해관계보다는 장기발전의 틀에서 협력관계진전이 바람직하다.
  • 옐친대통령 국회연설

    한국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로서 전통적으로 적대시한 적이 없었지만 오랜 세월동안 지극히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왔다.이제 오랜 대립의 시대는 지나갔고 한국과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러시아국민은 러시아 공산주의의 교묘한 통치때문에 인격에 대한 횡포,자유에 대한 우롱을 겪었다.러시아가 공산주의병에 걸렸으며 교묘하게 남은 상처는 조만간 빠르게 완치될 것이다. 그 결실을 거두려는 우리소망은 간절하다.시장경제,성공적인 민주주의,인간의 존엄성,자유와 평화,이것이 우리정치개혁의 목적이다.개혁자가 정치·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고 만국간의 평화를 유지못한다면 우리는 되돌아 갈길이 없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민주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 한국국민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오늘 노태우대통령과 최초로 기본관계조약을 맺었는데 이제 한국은 러시아의 주도적인 파트너로 등장했다. 본인은 호혜적인 33개의 가능한 프로젝트를 제시했다.한국의 민간기업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시베리아 천연개발에 협조하고 있고 러시아의 과학기술과 결부시키는 사업을 하고있다. 우리는 이 모든 부분에 한국에 최혜국대우를 할 것이다.문화·스포츠교류·의원들의 친선교류 등 날이 갈수록 교류의 문이 열리고 있다.양쪽에서 같이 걸어가면 더욱 빨리 목표로 갈 수 있다. 지구차원에서 생활을 안전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국제모순의 해결수단으로 쓰이는 전쟁을 구축해나가겠다. 아·태지역의 역내 균열을 막고 건설을 위해 다자간 교섭기구 마련이 지체없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군사적 긴장 저지와 아·태지역의 분쟁방지를 위한 센터의 설치도 필요하다.러시아는 군사배치 등 군사기밀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 한국을 방문해보니 분단되어 있는 비극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건설적인 남북통일은 시대의 지상명령이다.한반도 통일을 위한 외적인 장애는 모두 무너졌다.이제 남·북 양국의 수중에 달려있다.나는 남북상호 핵사찰이 전개되길 바란다.한반도의 통일은 러시아 극동 국경근처의 상황을 안정시킬 것이다. KAL기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한국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앞으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것이다.소련의 범죄적인 체제는 92년8월 완전히 무너졌다.범죄적인 결정을 내리게 될 사람은 이제는 아무도 없다.KAL기폭파사건의 모든 진상을 끝까지 밝히기 위해 다자간 국제진상조사단 구성을 제의한다.러시아는 모든 문서를 공개하겠으며 비극의 전말을 철저히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전쟁은 소련의 잘못으로 일어났지만 이제 그 진상을 밝혀야 한다.러시아는 당시의 엄청난 죽음에 대해 아픔을 같이한다.우리는 스탈린 정책의 논리를 거부하며 한국전쟁은 냉전시대의 하나의 아픔이었다.우리는 이런 정책을 규탄한다.연말까지 KGB문서·구공산당중앙위서류들을 공개할 용의가 있다. 1919년 한국 독립선언서는 마음으로서 감동을 주는 문서이다.민족의 자율·민족의 자유·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시대를 움직이는 논리이다.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정부는 한민족의 동질성과 독립성을 확인하고 있다.한민족의 고결한 이상은 다가오는 세계에서도 우호속에서 튼튼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차세대의 발전에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풍요로운 경협을 이 땅에서 바라고 있다. 이번 방문이 한·러시아간 우호친선의 튼튼한 토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자자손손이 행복하고 편안한 세대로 살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방한때 군사협력 논의”/옐친 회견/기본조약·가스관합작 서명 계획

    ◎“북에 핵시설·무기 제공않겠다/KAL기 블랙박스 인도 용의”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14일 한국특파원과의 회견에서 『오는 18일 방한시 양국 기본관계조약 체결외에 양국간 군사협력부문에 대해 별도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옐친대통령은 기본관계조약 내용에는 군사분야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이 분야에 대해 협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는 18일 방한을 앞두고 이날 하오1시(한국시간 하오7시) 크렘린궁에서 가진 회견에서 옐친대통령은 또한 북한에 대해 추가 공격용 무기공급·경제원조를 일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옐친대통령은 『남북한이 핵문제를 조기해결토록 북한에 대한 원자력발전소 설비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북한과 이념적 유대는 이미 단절됐지만 평등원칙 위에 경제·무역관계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AL기 사건의 진상규명이 미흡하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진상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한국측이 지난번 전달받은 테이프 해독자료를 원본과 비교할 수 있도록 블랙박스 테이프 자체를 방한시 한국측에 전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옐친대통령은 또한 양국 관계증진을 위해 한국전쟁 관련자료도 당중앙위원회·국가안전위원회의 문서자료실 등에서 발견되는대로 한국측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을 모은 경제협력부문에 대해 옐친대통령은 북한을 경유,한국으로 연결되는 야쿠트가스관 건설계획이 양국간에 추진중이며 방한중 관련계획들이 서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옐친대통령은 또 나홋카 부근에 대규모 공업단지 조성도 계획돼 있다고 말하고 한국정부가 이의 조기실현을 위해 추가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아태지역안보에 대해 옐친대통령은 최근의 한중관계증진이 이 지역 안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아태지역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정세에 관해 옐친은 생산감퇴 등 불안요인이 상존하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겨 조만간 개혁정책이 본 궤도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CIS체제도 군사안보협력과 화폐·루블지역 협정이 체결되는 등 협력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6·25때 미 포로 8백명/구소·중국에 압송됐다”

    ◎미 퇴역장교 증언 【워싱턴 로이터 연합】 지난 50년대초 한국전쟁 당시 적어도 8백여명의 미군 포로들이 구소련이나 중국으로 이송됐으며 그당시 실종 미군들이 아직 러시아에 살아있을는지 모른다고 전 미대통령 보좌관이 10일 주장했다. 아이젠하워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역임한 필립 코소 퇴역중령(77)은 이날 미군포로 및 실종자 문제를 다루는 미상원특별위원회에서의 증언을 통해 한국전 당시 8백∼9백명의 미군포로들이 북한에서 구소련으로 압송된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그 숫자는 1천2백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0)

    ◎김형직의 사망신화:1/“일경에 연행도중 탈출하다 동상” 미화/“공산당 싫어해 피살” 무사단원이 증언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은 1925년 5월 이후에 백두산 서남쪽인 장백현 팔도구에서 백두산 북쪽인 무송에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무송은 백산무사단과 광정단의 발생지였고 26년에는 한때 정의부의 총지부가 있었다. 그러나 김형직은 1926년 6월5일에 32세로 갑자기 사망한다. ○26년 갑자기 사망 김일성은 이 사망의 원인을 1917∼18년 평양감옥에 투옥된 김형직이 병약하였던 것과 24년말 팔도구 내안인 평북 후창군 포평에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후창경찰서로 호송되는 도중 연포리의 주막집에서 탈출할때 입은 동상이 악화되었다는데 돌리고 있다.사인은 직접적으로는 연포리에서 얻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일찍이 이 주장에 대한 반박논문을 쓴 일이 있었다.그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①24년말 김형직을 연행한 경관은 아키시마(추도)와 또 한명의 조선인 경관이라고 주장하는데 68년에 발간된 「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은 도보로,72년에 발간된백봉의 「인류해방의 구성 김일성원수」는 호송차로 김형직을 연행했다고 주장을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탈출을 성공시킨 인물 황씨는 술병을 들고 그들을 뒤쫓아 연포리 주막에서 순사 2명을 취하게 하였다.그 틈을 타서 김형직은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씨가 호송차를 어떻게 술병을 들고 뒤쫓았는지의 설명이 불가능하다.68년 전기를 72년 전기가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은 이 일화가 창작의 하나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된다.물론 그후의 전기들에서는 두 경관은 다시 「걸어가게」되었다. ②연포리라는 곳은 한반도에서도 가장 추운 중강진 근처의 산간부락으로 영하3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다.24년말이면 12월이 되는데 이런 혹한에서 탈출하여 산마루까지 올라가면 「심한 동상」으로 끝나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③연포리는 인가가 드문 중간고지이지만 후창과 포평에는 경관들이 아주 많았다.가령 두 경관이 김형직을 놓치더라도 그후의 그들의 경계망을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52년 전기엔 없어 이상인데 필자는 여기에 1960년초까지발간된 김일성의 전기들에는 이러한 「일화」가 없었다.그의 만주행은 김형직이 김일성을 「데리고」만주로 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따라서 이 「일화」는 1960년에 있었던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 이후 김일성의 「만주단독행신화」를 우상화하기 위하여 꾸며진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필자의 논문은 87년에 발간된 김일성평전에 실렸다.그런데 김일성은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에서 필자의 견해를 다시 논박하는 듯한 장대한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그 내용인즉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의 초가을,김일성은 무임소상이었던 한글학자 이극로를 평안북도에 파견하였는데 그는 김형직이 탈출한 연포리의 주막을 들렀다는 것이다.그 주막은 당시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이극로에게 김형직 탈출의 이야기를 한 인물은 한국전쟁보다 훨씬 이전인 1930년 그가 신간회대표단에 망라되어 길림에 갔는데 이때 만난 황백하였다는 것이다.황백하는 길림소년회에 김일성과 같이 있었던 황귀간의 아버지이다. 이런 말을 늘어놓은 김일성은 이극로가 「혁명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며 무척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말 자체가 역시 날조라고 보고 있다.김일성이 50년 초가을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52년 전기에는 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가 문제로 되기 때문이다. 이극로는 82년에 죽었는데 김일성은 그가 죽어서 10년된 후에 이런 말을 끄집어 내고 있다. ○우상화위해 창작 이번 회고록은 김형직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두세번 「심한 동상」을 입히고 도중에서 마적때에까지 털리게 하고 있다.김형직이 중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되도록 새로 만든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진상은 아래의 증언에 있는 것이다. 「나는 형직 등과 같이 독립운동단체의 하나인 백산무토단에 관계하고 있었다.단장은 김호라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모두가 순전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런데 이 무렵에 공산당운동이 성하게 되었다.그렇게 되자 자연히 독립운동진영에 금이 가서 분열하였다.한방의사였던 김형직은 독립군에는 약을 주고 치료하여 주었는데 공산당은 냉대하였다. 그러한 형직을 반동분자라 하여 공산당원들이 어느날 밤 습격·살해하였다. 김성주(김일성의 본 이름)는 자기 부친이 누구에게 죽었는지도 모르면서 지금 공산당운동에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증언을 한 이도일은 1930년대 일제의 주주로 전락하여 김일성 토벌에 동원된 인물이다.그러나 그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도 구출하여 김형직의 아들이라고 갖은 배려를 다 돌려준 인물이기도 하다.또 그가 말하는 당시의 소란한 세상도 필자의 연구와 일치한다. 김형직은 건강한 몸으로 있었지만 테러리즘에 희생되어 급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①「4인의 김일성」이명영저 일본 성갑서방간 242면 ②「세기와 더불어1」109면 이하 ③「4인의 김일성」242면
  • 한국전때 일군 1만명 파병/러 군사전문가,“경제발전 호기로 활용”

    한국전쟁기간중 일본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약1만명 규모의 병력을 극비리에 한반도에 파견,참전한 사실이 있다고 러시아의 군사문제전문가가 12일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 직속 군사연구소 선임연구원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는 일본의 한국전쟁참가는 당시 소련극동군 총사령부가 제반 정보를 통해 분석한 자료에 의해 확인됐으며 그 자신도 직접 관여한 일인포로에 대한 심문에서도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소련군 정보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남한이 공산화될 경우 일본의 존립도 위태로운 것이며 따라서 군사적지원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당시 준군사조직인 경찰예비대(자위대전신)와 함정을 한반도에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같은 결정배경에는 한국전쟁참가를 계기로 군사조직을 부활하고 전후피폐한 경제를 발전시킬 호기로 삼기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에 점차적으로 파견한 총 병력규모는 육상병력인 경찰예비대소속의 약8천명을 비롯,함정46척과 약1천5백명의 해상병력등 9천5백명 이상이었으며 이들은 미군에 대한 군수지원외에 실제전투에도 참가했다고 코로트코프박사는 말했다. 특히 일본이 동원한 46척의 함정과 관련,코로트코프박사는 정보수집책임자로 모든 함장의 이름과 가족상황등 상세한 자료를 수집,목록을 작성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

    ◎전기마다 다른 “증조부 애국투쟁”/“셔먼호 막으려 강을 가로질러 밧줄 맸다”/「조선전사」까지 언급 안하다 최근에 “창작”/생생하게 본듯 기술… 「혁명적 가정」 선전 「김일성이 자신의 가계를 우상화하기 위해 우리 역사 자체를 날조·왜곡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신당지기로 밝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종전보다 한술 더 떠 허황된 역사를 꾸몄다는 사실이다.김일성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의 묘를 봐주는 신당지기였으나 나라와 향토를 열렬히 사랑하는 분이었다.미제침략선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두루섬에 정박하고 있을 때 증조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집집에 있는 밧줄을 다 모아 강건너 곤유섬과 만경봉 사이에 겹겹이 건너 지르고 돌을 굴리면서 해적선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셔먼호가 양각도 밑에까지 기어들어 대포와 총을 쏘아대면서 주민들을 살해하고 재물들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줄달음으로 평양성에 들어갔다.그때 성안사람들은 관군과 함께 나뭇단을 가득 실은 마상이 여러척을 연결시켜 불을 지르고 셔먼호쪽으로 띄워내려보내며 배도 해적들도 모조리 수장해버리었는데 증조할아버지도 여기서 한몫 단단히 하였다고 한다」 김일성은 이렇게 금방 보고 온 것 같은 임장감이 넘치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만경대 앞의 곤유섬을 지나 또 그 앞의 두루섬에 정박했을 때 김응우가 촌사람과 함께 곤유섬과 만경봉 사이에 밧줄을 건너 지르는 일을 했다는 말은 분량이 방대하기로 유명한 조선전사에도 단 한마디 언급이 없다.거기에는 이런 서술이 있을 뿐이다. 「해적선이 대동강에 기어든 이래 그의 동태를 경각성 있게 주시하시던 김응우선생님…」 ○12년후 영웅으로 주시란 지켜 본다는 말인데 해적선이 올라 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김응우가 봉우리와 섬 사이에 밧줄을 치는 영웅으로 둔갑하기 위해서는 이 조선전사가 발간된 후 다시 12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던것이다. 셔먼호가 칩입한 것은 김일성이 이러한 말을 한 1992년부터 계산하면 무려 1백26년이나 되는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그가 태어나기 42년 전의 이야기이기도 하는데 그의 할아버지조차 이 사건이 있었을 때 태어났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증조 김응우는 1878년에 31세로 죽었다.셔먼호사건 당시 그는 19세였는데 가령 조부가 그 이전에 태어났더라도 다섯살을 넘지 못할 연령일 것이다.금방 보고 온 것 같은 김일성의 말은 조부,부친을 제쳐두고 도대체 누구에게 들었겠는가.김일성의 「혁명적가정」이란 그 창시자부터 이 모양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민들은 이러한 날조를 날조라고 분석비판할 권리가 없다.그들은 「김일성혁명력사 연구실」에 가서 혁명전통학습의 일환으로 학습강사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그 강의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가정은 100여년간에 걸쳐 대를 이어 오면서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워온 위대한 혁명적 가정이다」 화제를 김일성의 가계로 돌리겠다. 그의 증조부 김응우는 이상과 같은 「혁명적가정」의 시조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의 최대 관광지인 김일성의 「만경대 고향집」에 살기 시작한 시조이기도 하다. 평양 중성리에 살고 있었던 김응우는 1860년대에 평양 지주 이평택의 묘지기가 되어 만경대에 왔는데 「만경대 고향집」이란 이평택의 상당집이 중심이 되어 증설된 초가집이다. 김응우는 윗대와 같이 계속 독자를 두었다.그러나 김응우의 아들 김보현은 이보익과 결혼하여 6남매를 낳았다.3형제는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과 그 동생 김형록·김형권이고 3자매는 이번 회고록에서 그 이름이 처음 공식적으로 밝혀진 김구일녀·김형실·김형복이다.김보현과 이보익은 만경대의 평범한 농민으로서 해방후까지 살았다. ○만경대집의 시조 김형직의 3형제중 만경대에 남은 것은 차남인 김형록 뿐이었다.회고록에 의하면 그의 처 이름은 현양신인데 이명영교수는 현양심으로 표기하고 있다.이교수에 의하면 이들 부부 사이에는 영주·원주·창실·원실 기타 2명 합계 6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 성원들 중 북한에서 「혁명가」라고 선전하고 있는 인물은 김보현의 3남인 김형권과 김형록의 차남인 김원주 2명이다. 김형권은 모종의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에 대한 객관적인 활동경력이 입수되지 않고 있다.그는 만주에서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이 딸의 이름은 회고록에서 영실이라고 밝혀져 있다.해방후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지만 한국전쟁 때 폭사했다 한다. 김원주는 해방전 강선제강소의 소년공이었고 역시 모종의 사회운동을 한 모양이다.그는 57년에 병사하였다 한다. 이외에 김일성의 동생 김철주가 있는데 그는 본문에서 다시 연구할 것이다. 이상을 보면 김일성의 소위 「혁명적가정」이란 증조 김응우와 부친 김형직을 빼면 그리 대단한 인물을 배출하지는 않았다. 「조선전사13」 1980년 발행 76면 같은책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 선생」1984년 발행 7면 「김일성원수 혁명력사 학습제강」(상급반용) 1982년 조총련 중앙발행 15면 「4인의 김일성」이명영저 일본 성갑서점발행 235면 「세기와 더불어」92면 「력사사전」참조
  • “노 대통령 방중,냉전잔재 씻어냈다”

    ◎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 보도/북경지원 통한 북한핵 해결 희망적/경제협력 등 강화로 통일여건 굳혀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30일 노태우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한중양국이 지난 40년 이상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등 냉전체제의 잔재를 종식시키는 한편 앞으로 더욱 활발한 양국관계를 펼쳐나갈수 있게 됐다고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이신문의 보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경에서 한중정상회담이 열림으로써 냉전의 잔재를 해소할 수 있는 전망이 한결 밝아졌다. 노태우 한국대통령은 이번 역사적인 중국방문을 통해 북한이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는 핵개발계획을 공개하도록 북한을 설득하겠다는 합의를 중국관리들로부터 얻어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이번 정상회담으로 지난 한국전쟁때 서로 적대관계에 있던 한중양국이지만 앞으로 경제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할수 있게 됐다. 노대통령의 방중으로 한국은 한국의 4번째 무역파트너로 부상한 중국과의 투자와 무역을 확대시켜온 지난 4년간의 노력에 마무리를 보게 됐으며 경쟁국인 북한의 최대지원국이었던 중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북한의 김일성을 지원했으며 그이후에도 북한에 강력한 외교적 지원과 막대한 지원을 제공해 왔었다. 그러나 노태우대통령은 취임이래 북한의 우방들과 하나둘씩 관계를 맺기 시작,분단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켜 나가는 한편 궁극적인 재통일을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은 지난달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이번 노대통령의 중국방문의 바탕을 마련했다.이에 앞서 한국은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집중지원해온 소련과 동구각국들과도 관계를 맺었다. 지난달 28일 한중양국이 한반도에서의 핵무기제거를 촉구한데 이어 노대통령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도움으로 북한의 비밀핵개발계획이 해결될 것이란 큰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의혹이 해소돼야 한다는 우리의 희망에 중국도 동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동맹국들은 북한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완전한 국제사찰을 수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경제침체에 직면해 있는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서방측에의 완전한 개방을 거부하고 있으며 통일이 된뒤 한국에 예속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은 한국이나 일본등의 대북한 지원은 결국 북한의 핵계획 개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북한의 핵개발의혹이 남아 있는 것은 남북한관계에 있어서의 주요장애가 될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큰 문제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북한이 이같은 우려와 불안을 불식시킬수 있다면 미일뿐 아니라 한국도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제공할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중국은 지난 몇년동안 북한에 대해 한국과 타협하도록 종용해 왔으며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에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촉구해 왔다.미국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핵개발 계획을 추진해 왔으며 이제 핵무기의 완성단계에 거의 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89년 천안문광장에서의 대학살사건으로 국제적으로 고립상태에 놓여있던 중국은 그뒤 이웃국가들과의 관계개선과 함께한때 스스로 크게 기여했던 냉전체제의 종식을 위해 노력했다. 노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계획을 공개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보다는 설득을 할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중국의 한 분석가는 중국은 북한이 검증절차에 동참하도록 압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외교부의 오건민대변인은 지난 29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기꺼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관측통들은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데 대해 중국지도자들간에 의견의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예컨대 보수파인 양상곤국가주석은 지난 28일 노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케 하려는 희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고립화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지만 중국은 일본에 대해 북한에의 태도를 완화하고 경제유대를 확대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구소련과의 무역관계 상실로 큰 타격을 받아 허덕이고 있는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의 투자와 무역관계 확대에 큰 의욕을 보이고 있다.
  • 노 대통령 방중 각국언론 반향

    ◎아시아 신질서 창조의 이정표/NYT지/상호보완 경제협력의 시금석/일본경제 ▷프랑스◁ 프랑스의 유력지 르 몽드는 29일 노태우대통령의 중국방문을 「노태우대통령,북경과의 화해를 다지다」라는 제목으로 외신면에 크게 보도했다. 북경특파원이 보낸 이 기사에서 르 몽드는 『한국전쟁을 종식시켰으나 한반도에 냉전시대를 연 휴전협정(1953년7월27일 판문점에서 조인)의 40주년을 조금 앞두고 한국의 국가원수의 북경방문이 성사된 것을 중국 언론들은 아낌없이 찬양했다』고 중국측의 표정을 전했다. ▷미국◁ 노태우대통령의 중국방문에 대해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는 28일 『이 방문은 북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이정표로 널리 간주되고 있다』고 북경발로 보도했다. 타임스는 한국과 중국간에 지난달 이뤄진 외교관계 정상화가 서방강대국의 중재·지도아래 이뤄져온 냉전체제하의 거의 모든 다른 국제질서 재편과는 달리 아시아인들 스스로의 손에 의해 성취됐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일본◁ 한국과 중국이 28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경제협력확대에 합의함에 따라 한중민간경제교류가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언론들이 29일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중국의 노동력과 자원을 겨냥한 한국기업의 대중진출은 한중수교와 양국정상회담에 따른 중국측의 투자촉진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는 것은 아시아지역의 새로운 「상호보완경제협력」의 시금석으로 아시아경제권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고 이 신문이 강조했다.
  • 미,대북 직통전화 개설 검토/상호사찰 등 4개조건 수용 전제

    ◎일 마이니치지 보도 【도쿄=이창순특파원】 미국은 남북한 상호핵사찰실시 등 일련의 조건이 충족되면 북한과의 직통전화 개설등을 포함한 양국 관계개선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20일 미정부소식통을 인용,워싱턴발로 보도했다. 미국의 관계개선책은 ▲직통전화개설▲북한외교관의 미국여행제한 대폭완화▲미크레디트카드의 북한내사용허가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미국은 그러나 이같은 관계개선책이 실현되려면 먼저 ▲남북한 상호핵사찰 실시 ▲북한의 중동지역등의 미사일 수출중지 ▲한국전쟁에서 행방불명된 미군의 유골반환 ▲인권존중등의 조건이 실행되어야한다고 밝혔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미소식통에 의하면 미국은 북한이 이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면 관계개선을 단행한다는 방침을 직간접적으로 북한에 전달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미·북한간 직통전화개설에 관해서는 미전화전신공사(AT&T)가 이미 기술적 검토를 끝내 언제라도 실현될수 있으며 더욱이 가까운 장래에 AT&T사 관계자가 미민간단체의 북한방문단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양국간에는 현재 전화회선이 없지만 위성을 사용하면 직통전화가 가능해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없다고 미소식통이 밝혔다. 미국은 또 비자,아메리카익스프레스등 크레디트카드가 북한에서도 사용될수 있도록 하는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 “KAL기 격추사건/러시아 진실 밝혀야”/김대중대표

    ◎러 국무장관,옐친 방한때 새 자료 공개 【모스크바=유민특파원】 러시아 공화국을 방문중인 민주당의 김대중대표는 7일 하오(현지시각)크렘린궁으로 부르불리스대통령궁 국무장관을 방문,러시아정부가 KAL기 격추사건의 진상과 한국전쟁에서의 역할을 밝힐것을 촉구했다. 옐친정부의 실력자인 부르불리스장관은 이에대해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얻은 것이 있다며 『옐친대통령의 방한때 구체적 내용을 밝힐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배석했던 손세일의원이 전했다.
  • 한·중 우호시대에 부쳐/전득주(특별기고)

    ◎「2개의 한국」 고착화 경계해야 한국과 중국외무장관이 1992년8월24일 북경에서 수교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한중관계는 정상화되었다. 여기에서 한중수교에 따라 변화될 동북아 정세는 대략 중·대만관계와 남북한 관계 등 분단국들의 문제와 동북아 지역차원에서 취급되어질 것이다. 우선 한중수교는 중국과 대만의 소위 「할슈타인 원칙」의 고수때문에 한국과 대만은 단교를 감수해야 했고 이로 인해 한·대만간의 경제적 협력과 교류는 급강하하여 단기적으로 우리경제에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중국은 한국과 북한이라는 두개의 정부를 이제 동시에 승인함으로써 두 개의 국가를 한반도에 인정한데 이어 한국은 대만과 중국사이에 중국을 유일합법정부로 인정함으로써 중국과 한국사이의 수교는 이 부분에서 비형평성을 노출했다. 만약 중국이 북한과 사전협의를 거쳐 한중수교를 했다면 북한은 국내외 정치적으로 그렇게 커다란 충격없이 사전 시나리오대로 중국의 힘을 빌려 미일과의 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리고 미일이 북한을 승인함으로써이룩될 한반도에 「두 개의 한국」이라는 현상유지가 보장된다면 이는 독일통일방식인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는 북한이 바로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4대 강국(미·중·일·러)의 이에 대한 보장하에 북한은 오히려 이러한 「두 개의 한국」과 남북한의 조심스러운 점진적 접근과 개방을 위한 북한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며 남북한 동시에 핵사찰을 허락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한중수교는 북한에 치명적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북한당국은 단기적으로 그의 정치체제를 더욱 폐쇄화시키고 남북한 최고위급 회담에서도 더욱 경직성을 나타낼 것이므로 남북한 화해,군축 및 교류협력이나 이산가족상봉의 실현등의 가능성이 당분간 희박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좌시하지 않고 북한을 그들의 우방 또는 안보적 완충지대로 계속 유지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여하튼 한중수교는 「두개의 한국」을 단중기적으로 고착시킬 공산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희망과 걱정의 교차속에서 탄생된 한중수교는 탈이데올로기,탈냉전 그리고 탈동맹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지역질서형성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일본은 그동안 한국전쟁과 월남전쟁등 냉전구조하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아 세계 제1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평화유지활동(PKO)에의 참여를 앞장세워 자위대를 해외로 파병시킬 정도로 정치·군사적 대국까지도 노리고 있다.다시 말해서 일본은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되는 틈을 타서 이곳에서 동북아질서의 관리권을 미국으로부터 이양받기를 원하고 있다.이러한 상황하에서 한중수교는 중국이 일본의 경쟁자로 부상시켜줄 수 있는 가능성과 계기를 마련케 되었다. 장기적으로 한중수교는 정치 경제 군사적 집단협력체의 결성을 가능케 할 것이다.이는 유럽공동체(FC)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동북아 안보협력회의,또는 동북아국가간의 새로운 경제협력체를 태동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 이 지역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미국혹은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 양대강국 사이의 균형자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패권주의 세력의 출현을 사전예방하고 견제해야할 것이다.뿐만 아니라 한국은 주변 4대강국이 한번도 통일을 방해하거나 원치않는 조건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그들과의 외교관계를 잘 설정,운영하는 것이 우리외교의 핵심일 것이다. 북한이 국제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고 미일과의 관계를 개선하게 된다면 한국의 정치외교는 더욱 복잡다양한 성격을 띠게 되고 어려워져서 아마 우리의 통일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때문에 필자는 한마리의 아침 장닭으로 아직도 깨어날줄 모르는 우리 정치인에게 하루속히 일어나 사방을 주의깊게 살펴볼 것을 감히 외치고자 한다. ◇숭실대 교수,독일 뮌헨대(정치학박사)한국미래연구학회회장 남북민간학술교류추진협 사무총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