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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러 공동선언,2년전 기본조약과의 차이

    ◎“동반관계 진입”… 형식·내용 모두 큰 진전/러,「선언」은 미·일과만 발표 “열강대접”/북핵 우리입장 전폭지지 예상밖 성과 김영삼대통령과 옐친러시아대통령이 1일 모스크바에서 발표한 「한국과 러시아 공동선언」은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모두 두나라가 지난 92년11월 체결한 기본조약 보다 월등히 성숙된 것이다. 형식으로 볼때 기본조약은 두나라가 공식관계를 갖기 시작했다는 정도를 의미한다.바꾸어 말하면 적대관계의 해소라고 풀이된다.우리와 일본,우리와 러시아등 오랫동안 국교가 단절되었거나 전쟁을 치른 나라가 화해하면서 체결하는 것이 기본조약이다.따라서 그 안에 우호선린을 다지는 내용이 있더라도 낮은 수준일 수 밖에 없다.이에 비해 「공동선언」은 조약이나 협정에 담기 어려운 정치적 합의를 밝힐 때 사용한다.그만큼 긴밀한 나라들끼리 이용되는 형식이다. 「공동선언」은 「공동성명」「공동발표문」보다도 한단계 격이 높다고 볼수 있다.특히 러시아측에서 보면 「공동선언」은 현 시점에서 상대국에 줄수 있는 최상의 우호조치이다.러시아가 최근 공동선언을 함께 발표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 뿐이다.우리를 미국이나 일본과 비견되는 국가로 「대접」했다는 해석도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다.92년 옐친대통령의 서울방문에서는 한국과 러시아 두나라가 기본조약의 체결과 함께 「공동성명」의 형식으로 정치적 합의를 발표했었다. 내용에서도 이번 공동선언은 알차다고 평가된다.러시아는 가끔 돌출행동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기도 하지만 마음만 맞으면 「화끈하게」 표현해준다.공동선언 8항의 북한핵문제 부분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북한이 절대 핵을 가지지 않아야 된다는 점에 있어 우리와 똑같은 보조를 취할 것임을 천명했다.92년 공동성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13항의 청와대와 크렘린 사이의 핫라인 설치도 매우 의미있는 대목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일방파기의 부당성 지적,유엔에서의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러시아의 APEC가입 지원등도 92년 공동선언에 없던 진일보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실질적 합의도 중요하지만 이번 공동선언은 두나라 관계에 대한 좌표설정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공동선언은 두나라의 관계를 「건설적이고 상호보완적인 동반자」라고 규정했다. 90년9월 수교이후 92년의 기본조약과 공동성명을 거치면서 두나라의 협력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관계발전의 초기단계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번 공동선언은 그 초기단계를 지나 두나라의 관계가 한·미,한·일 수준의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선언 바로 그것이다. ◎한·러시아 공동선언 전문 ①대한민국 김영삼대통령과 러시아연방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옐친대통령은 1994년6월1일부터 3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국제정세 전반과 양국 관계의 현황및 전망에 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하였다. 양국 대통령은 한·러 양국간의 관계가 1992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러시아 연방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을 바탕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착실히 발전해온데 대해 만족을 표명하고 양국관계가 자유민주주의,법의 지배,인권존중및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로 접어들었음을 선언하였다. ②양국 대통령은 개혁을 통해서 국가의 발전과 번영이 보장될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과정에 대해 상호의견을 교환하였다.양국대통령은 러시아 정치·경제개혁의 성공이 전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동북아및 아태지역에서의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으며 김영삼대통령은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과정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협력을 옐친대통령에게 재확인하였다. ③양국 대통령은 반목과 대립으로 특정지어졌던 국제정치체제가 종식되고 화해와 개방,그리고 국제안보및 안정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극복함에 있어 협력과 동반을 추구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되고 있음에 만족을 표명하고 향후 범세계적인 문제해결을 위하여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국 대통령은 특히 전세계적으로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음을 환영하며 세계인권선언의 원칙과 양국이 가입한 인권에 관한 국제협정의 원칙을 준수하고 이를 증진시키기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하였으며 인권에 관한 활동에서 양국간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④양국대통령은 국제연합 활동의 적응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시급한 국제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연합의 개입을 강화하기 위하여 취해진 제반조치들에 만족을 표명하였다.양국대통령은 국제정치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국제연합의 평화조성과 인도적 외교활동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의견을 같이 하였다. 옐친대통령은 독립국가연합 지역내에서의 분쟁상태 해결및 러시아의 개혁 진전과 관련한 러시아와 국제연합의 협력 필요성을 설명하였으며 김영삼대통령은 이에 이해를 표명하였다.김영삼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보다 능동적으로 국제연합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1996∼97 임기의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에 입후보할 것임을 천명하였으며 옐친대통령은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하기로 약속하였다. ⑤양국대통령은 아태지역의 역동적인 발전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아태지역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상호 노력하기로 하였다. 양국대통령은 금년 7월 방콕에서 개최되는 안보관련 제1차 아세안지역포럼이 모든 참가국들의 공동노력을 통하여 아태지역의 안보·상호신뢰및 호혜적인 협력구조의 형성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김영삼대통령은 아태지역 협력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의도를 환영하였으며 러시아의 아태경제협력체(APEC) 가입문제가 동 경제협력체 회의에서 논의되는 경우 대한민국은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하였다. ⑥양국 대통령은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양자및 다자간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안정과 번영을 확보하기 위하여 역내 국가들간의 안보문제에 관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동북아지역 안보대화 문제에 관하여 한·러 양국간에 협의채널을 유지하기로 합의하였다. ⑦한반도정세 토의과정에서 양국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평화구축 및 안보와 안정을 위하여 남북대화의 지속이 필요 불가결함을 강조하고 한반도의 통일은 당사자간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옐친대통령은 남북한간의 상호신뢰 회복,경제·문화및 사회교류를 촉진할 수있는 대화의 진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1991년12월13일 남북한간에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이행이 보장되어야 함을 재확인하였다.양국대통령은 남북한간 체결된 상기 합의서에 따라 남북한간에 새로운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현 정전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⑧양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생산하려는 어떠한 기도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뿐 아니라 동북아지역,나아가 세계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태롭게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이를 위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이행이 긴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의 당사국으로서 동 조약의 의무를 엄격히,그리고 지속적으로 이행하여야 하며 국제원자력기구와 체결한 안전조치협정에 따라 사찰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옐친대통령은 러시아가 관련국가들과 함께 한반도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임을 확인하였다.김영삼대통령은 「한반도의 안보및 비핵지위에 관한 다자회의」 소집에 관한 러시아의 제의를 평가,유의하였다. ⑨김영삼대통령은 옐친대통령의 주도에 의해 러시아거주 한인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대한항공기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문서가 공개된데 이어 한국전쟁의 진상을 밝히는 문서사본을 한국측에 인도함으로써 불행했던 양국간의 과거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러시아정부의 노력을 환영하였다. ⑩양국대통령은 과학기술·에너지·어업·건설등의 분야에서 양국간의 실질적인 협력이 증진되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착실히 마련되고 있음에 만족을 표명하였으며 특히 환경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⑪양국대통령은 러시아의 첨단 기초과학기술과 한국의 응용및 산업기술을 상호 연관시켜 발전시키고 러시아가 보유하는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공동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한국과 러시아 극동지역간의 직접적인 접촉 증대를 장려하기로 하였다.양국 대통령은 최근 양국간의 교역이 크게 증대하고 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명하고 양국간의 교역과 투자를 증대시키기 위한 운송·세관·산업표준등 분야에서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양국정부가 노력할 것을 합의하였다. ⑫양국 대통령은 양국간의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정상간의 대화를 포함하여 총리,의회지도자,정부각료등의 여러 수준에서의 정치대화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문화·학술·관광 등의 분야에서도 교류를 적극 장려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⑬양국 대통령은 정상간의 긴밀한 대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청와대와 크렘린간에 직통전화(Hot Line)를 설치키로 합의하였다.
  • 전쟁기념관/6·25전장 재현…산 교육장으로/10일개관…미리 가보면

    ◎「한국전쟁실」 등 6개 전시실 볼만/전쟁영웅 초상·전투모형도 전시 『나가자.나를 따르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옛 육군본부 터 3만5천여평에 자리잡은 전쟁기념관 4층 전쟁체험실. 20여평 남짓한 이 체험실에는 조명이 꺼진 어둠속에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적군인 북한군,중국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4분30초동안 재연된다. 6·25당시 평양부근의 전선을 본떠 만든 이 체험관 속에 들어온 관중들은 귀청을 울리는 총성과 포성,코를 찌르는 화약냄새,부상병의 비명소리등으로 실전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지상 4층·지하 2층규모의 기념관 내부의 각 전시실마다 모두 7천8백35졈의 전쟁기념물과 전쟁기록화,조형물,드라마등을 갖춘 전쟁기념관이 6·25발발 44주년을 앞두고 오는 10일 정식 개관한다. 이 기념관은 88년 특별입법된 전쟁기념사업회법에 따라 1천10억원을 투입,90년9월 착공된지 만 2년9개월만에 공사를 완료,선열들의 호국혼을 국민들에게 보여준다. 이 전쟁기념관은 한반도의 전쟁역사를 한눈에 조감하고 순국선열의애국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모든 전시실마다 전쟁관련 자료와 전시물들이 입체적,역동적으로 전시한 것이 특징. 이 기념관은 우리나라의 군사유물을 비롯,세계각국의 무기·장비·복식·기치·문서·그림등을 주제별로 호국추모실,전쟁역사실,한국전쟁실,해외파병실,국군발전실,대형장비실등 6개 전시실에 나눠 전시해놓고 있다. 전쟁역사실에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민족이 외침에 대항해 싸운 대외항쟁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살수대첩과 한산대첩 전투상황을 모형인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안시성전투 행주대첩 청산리전투를 담은 기록화도 곁들여놓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는 6·25전쟁을 재현한 한국전쟁실은 이 기념관의 핵심. 전시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 전시실은 전쟁발발의 배경·남침과정·반격·중공군 개입·전선교착·휴전의 순으로 관련자료등을 배열해놓고 있다. 특히 6·25초기의 남북한 무기를 실물로 비교전시,전투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민간인들의 고통스런 생활상까지 담고 있다.전선의 아들이 부모에게 보낸 편지나 전장에 나서는 남편에게 준 부적,피난살이에 사용한 생활용품등도 전시하고 있다. 실전을 느끼도록 하는 전쟁체험실도 이 전시실의 일부이다. 기념관 안에 있는 대형장비실과 외부에 있는 옥외전시장에는 북한이 6·25당시 앞세운 T­34전차등 남북한 무기와 B­52미전략폭격기를 포함한 각종 항공기·전차·포·차량등 1백10여점이 전시돼있다. 또 삼국시대부터 월남전에 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영웅 1백32명을 선정,이들의 초상화,사진등을 기념관 양쪽 회랑과 전시실에 전시했다. 이 기념관은 개관이후 시민들에게 독립기념관이나 중앙박물관과 비슷한 수준의 입장료를 받는다. 전쟁기념 사업회(회장 이병형)측은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물리치고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기념관이 전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의 산교육장이자 시민들이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6·25남침 러시아의 증언(사설)

    러시아 최대 국영TV방송인 오스탄키노방송이 최근 한국전쟁의 내막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한국전쟁과 관련한 극비자료와 기록필름을 공개하고 북한의 남침 내막을 소상히 보도했다고 한다.이 자료들은 러시아에선 처음 공개된 것으로 극비리에 추진된 남침전쟁 준비과정에서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자간의 구체적 협의 내용과 소련군의 역할및 중국군의 참전경위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날 방송 진행자로 나온 옐친대통령의 전군사보좌관이며 한국전쟁연구 권위자인 드미트리 볼코고노프장군은 스탈린 개인문서고등에 보관된 극비전쟁자료를 직접 들고나와 『한국전쟁은 스탈린이 무력통일을 희망하는 김일성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필요한 모든 군사장비를 제공키로 약속하는 한편 모택동과도 긴밀히 협의한 뒤 북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6·25는 그들 3인이 합작해서 일으킨 범죄적 도발행위였음이 명확해진 것이다.「6·25는 북의 남침」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와 소련 인사들의 증언등을 통해 이미 오래전에 증명됐었다.그럼에도 북한은 시종일관 「남한의 북침전쟁」이라며 허위선전에 열을 올려왔다.뿐만아니라 구공산권 국가들은 물론 상당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조차 북한의 날조된 「북침설」에 동조해 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그들의 교과서나 백과사전에 아직도「북침설」로 기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국내 일부 학자와 대학생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이다.「진보」라는 미명아래 북한의 날조된 「북침설」에 동조하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 분단전후의 냉전과 열전의 책임이 북에는 없고 남에만 있으며 그 책임이 중·소에는 없고 미국에만 있다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논리에 매달리고 있기도 하다.북한의 종주국이었으며 전쟁을 허락하고 지원한 러시아 역사기록의 진실을 보고도 북침운운의 그런 논리에 매달릴 것인지 묻고싶다. 북한도 이제는 더이상 날조된 「북침설」을 주장하는 억지는 쓰지말아야 할 것이다.그런 생떼는 이제 더 이상통하지 않게되었다.북침설로 민족과 세계를 우롱해온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비밀자료들은 옐친대통령이 새달 러시아를 방문하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그동안 가려져 있던 역사적 진실들이 한층 더 명확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스스로 가해자측인 러시아 대통령이면서 세계사를 바로 잡을 수 있게 비밀자료들을 넘겨주려는 옐친대통령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 한­베트남의 과거사/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베트남을 방문하고 있는 한승주외무부장관은 20일 레 둑 안 베트남주석을 예방한 자리에서 한국군의 베트남전쟁참전 사실을 「과거의 상처」로 떠올렸다.아울러 이 상처는 두나라의 공동노력으로 치유,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접한 외무부관계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같다.「상처」 자체보다는 「공동치유노력」에 더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서로에게 난 똑같은 상처일뿐 한쪽이 일방적으로 낸 상처는 아니라는 생각이다.그래서 한장관의 언급을 지난 64년 이뤄진 과거사실에 대한 단순한 적시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지난 92년12월 수교때 이상옥전장관이 「두나라사이에는 과거 불행한 일이 있었다」면서 호치민의 묘소를 참배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또 지난해 방한한 베트남수상과 외무부장관이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예도 들었다. 우리의 참전이 꼭 사과를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냉전시대에 두나라 다 약소국으로서 한쪽은 독립,다른 한쪽은 지역안보및 경제개발이라는 절박한 현실에따라 치른 대가이므로 「일본의 과거사」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풀이들이다. 정부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데는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게 사실이다.또 나름대로 고민도 있어 보인다. 광의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도 베트남전쟁의 피해자다.갖가지 후유증에 시달리며 잊혀져 가는 역전의 용사들,그 2세들로 이어진 아픔….아직도 우리사회의 한 부분으로 엄연히 남아 있는 피해상이다. 정부로서는 당연히 이들을 의식해야 하고 이런 일은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가 위로해야 하는 아픔이기도 하다. 굳이 「머나먼 쏭바강」이나 「무기의 그늘」같은 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이제 웬만한 사람이면 베트남전쟁의 역사성과 그 상흔을 잘 알고 있다.성격은 다르지만 역사적으론 우리도 「한국전쟁」이라는 비슷한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한장관의 발언을 굳이 「유감표명이 아니다」라고 애써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적절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꼭 사과해야 할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먼저 나서서 「진실한 위로」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떨까.그것이베트남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문민」이라는 새정부의 성격및 신외교의 지향점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 6·25남침 모택동이 최종승인/러 비밀문서 공개

    ◎“미군개입땐 중공군 즉각투입” 약속/김일성,개전 한달전 모만나 작접계획 보고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북한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키기 불과 1개월전인 1950년5월13일부터 나흘간 북경을 극비리에 방문,모택동에게 3단계로 된 작전계획을 상세히 보고해 최종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이 러시아외무부 비밀외교문서를 통해 처음 밝혀졌다. 이 비밀문서에 따르면 특히 모택동은 김일성과의 비밀회담에서 『미군개입시 중공군을 한국전에 즉각 투입시키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드러나 그동안 정설로 여겨져온 『스탈린이 모택동을 설득,중공군의 한국전개입을 유도했다』는 설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모택동의 요구로 극비리에 진행된 이 회담에서 모는 김일성에게 『소련은 미군과 38도선 분계선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소련군의 직접개입은 어리석은 짓이다.그러나 중국은 그런 협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지원할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모택동은 『중국이 대만을 완전히 점령한 뒤에 전쟁을 시작하면 보다 충분한 지원을 할수 있을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당장 전쟁을 시작하더라도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쟁개시를 적극 부추긴 것으로 드러났다.이와함께 모택동은 무기·탄약 지원과 중국·북한 국경지역으로 중공군을 추가파견할 것을 김일성에게 제의한 것으로 이 문서는 밝히고 있다. 러시아외무부 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이 비밀문서는 당시 모스크바의 소련외무성과 평양의 소련대사관 사이에 숨가쁘게 오간 전문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전후 40여년만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 전문들은 49년1월부터 전쟁초기인 50년10월 사이 스탈린,김일성,모택동 3인간의 직접대화 및 협의내용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그동안 논란이 돼온 한국전쟁발발 책임소재의 규명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러 비밀문서로 본 1950년 4∼6월 상황

    ◎모,“중·북 국경에 병력 추가배치”/5월15일/38선종심 10∼15㎞ 인민군배치 개시/6월12일/김일성,소에 “25일 전면전 불가피”/6월22일 한국전쟁 발발과 관련한 구소련의 비밀외교문서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50년4월10일=평양발.평양주재 이그나체프 소련임시대리대사가 본부에 보고한 내용.북경주재 북한대사 이주은이 모택동을 면담,김일성의 북경방문 요청을 전달했음.모는 이주은에게 『김일성이 만약 한국통일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면 이 회담은 비밀회담이 돼야한다.계획이 없다면 공식회담으로 하자』고 언급.모는 이어 『만약 제3차대전이 시작된다면 조선도 참여를 피할수 없을 것이다.북조선도 그에 대비한 병력준비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스탈린면담 후속 ◇50년4월25일=모스크바발 전문.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모스크바회담에서 스탈린은 49년 3월 김일성과 회담시 남한에 대해 방어적인 무력대응만 하라고 했던 입장을 바꿔 『국제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통일을 시작하겠다는 제의에 동의한다』고 밝혔다.그러나 만약 중국지도자들의 의견이 부정적이면 이 문제는 다시 토의한다고 첨언했다. ○미 두려울것 없다 ◇50년5월12일=평양발.슈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 김일성·박헌영과의 면담내용 보고.김일성은 면담에서 북경주재 북한대사의 발언을 인용,『모택동이 「한국통일은 오직 무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설명.김일성은 이어서 『모택동이 「미국이 한국과 같은 작은 영토 때문에 3차세계대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미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김은 또 5월 13일 모택동을 만나기 위해 북경을 방문할 계획임을 밝히고 ①남한 무력통일의사 전달 ②북조선과 중국간 조속한 시일내 무역협정체결문제 ③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스탈린과의 회담내용 보고등 방문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김일성은 또 인민군총사령관에게 6월 남한공격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다고 슈티코프대사에게 설명. ◇50년5월13일=김일성과 박헌영 북경에 도착.14일 모택동은 노신 주중국 소련대사를 면담,스탈린과 김일성간 모스크바회담내용을 보고받음.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남북한 상황에 대한 북한지도자들의 인식에 동의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최종결정은 필리포프동지(스탈린)의 의견을 들은 후에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개입 여부 질문 ◇50년5월15일=모택동은 김일성,박헌영과 상세한 의견교환.김일성은 이 자리에서 ①병력준비 및 집중 ②대남 평화통일 제의 ③남한이 이 평화통일제안 거부시 군사행동 시작등 3단계 통일추진계획을 설명.모택동은 이 계획을 승인한 뒤 몇가지 질문을 했다.우선 일본의 개입가능성을 물었다.김은 일본개입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고 대신 미국이 2만∼3만명의 군대를 파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모는 미군이 참전한다면 중국이 병력을 동원,북한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모택동은 소련은 미국과 38도선 분계선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소련군이 직접 군사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강조.하지만 중국은 그런 협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지원할수 있다고 말했다. 모는 북한이 무기·탄약지원을 필요로하는지 묻고 중국·북한국경지역으로 병력을 추가배치하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김일성은 소련의 무기·탄약지원약속을 이미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모의 제의를 거절. ○“공격시기 6월말” ◇50년5월16일=김일성,박헌영 평양으로 귀환.김은 슈티코프 소련대사와 만나 4월 모스크바회담에서 합의한 무기·기술지원 대부분이 평양에 도착했다고 말함.김은 새로 창설한 사단을 방문하고 창설작업이 6월말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슈티코프대사에게 설명.소련군사고문단 바실리예프장군이 인민군총사령관과 함께 김일성에게 공격최종계획 보고.김이 이를 승인.김은 공격시기를 6월말로 잡고 이를 미루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했다.그는 더이상 미루면 전쟁준비에 관한 정보가 남한에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고 둘째로 7월부터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슈티코프대사는 김일성을 면담한 뒤 바실리예프장군,포스트니코프장군과 잇따라 만나 6월공격이 좋다고 동의했다. ○3단계 작전수립 ◇50년6월16일=평양발.슈티코프대사는 인민군총사령관이 준비한 최종공격작전계획 본부에 보고.이 작전계획은 3단계로 나뉘어 있고 작전기간은 1개월.6월 12일 38도선을 따라 10∼15㎞지역에 걸쳐 인민군의 배치가 시작됨.각급지휘관 회의가 열리고 작전명령이 하달됨. ◇50년6월16일=북조선인민대의원회의 최고회의 남한의회에 평화통일 제의. ○국지전계획 폐기 ◇50년6월22일=슈티코프대사는 김일성과의 면담내용을 본부에 보고.김은 면담에서 남한이 인민군의 공격계획을 사전 입수,준비태세에 들어갔다고 주장.김은 그렇기 때문에 6월 25일 전전선에 걸쳐 군사행동을 개시하는 게 좋겠다고 설명.김은 옹진반도를 목표로 한 「국지전 계획」은 폐기한다고 말함. ◇50년6월22일=모스크바발.『통신보안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코드를 사용한 서신,전문교환을 일체 중단하라는 명령이 하달됨.
  • 러 외교아카데미/바자노프 부원장 특별기고

    ◎러시아 한반도정책 달라지고 있다/옐친 개혁 실패로 보수입김 거세져/영향력 확대 노려 남북에 균형 접근/한·러 경협 기대 퇴색 등 변화의 조짐 곳곳에 러시아 외교의 기본노선이 최근들어 눈에 띄게 변모하고 있다.물론 이런 변화는 외교분야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이 변화의 실체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3년전인 1991년 러시아의 대외정책 기조를 한번 되새겨보자.당시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소련방을 해체시킨 러시아의 민주 지도자들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몽땅 서방쪽으로 돌렸다.서방은 이데올로기의 주요 동맹세력이 됐을뿐 아니라 러시아 현대화의 모델이요 구세주로 인식됐다.국제사회에서 떳떳한 문명국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싶은 나머지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그의 동맹세력들을 기꺼이 뒤따를 태세가 돼있었다. 이와함께 이들 민주 지도자들은 소위 패배한 공산정권의 유산을 미련없이 벗어던지려고 애썼다.이념,정치,군사,경제적으로 과거 소련과 동맹관계를 맺었던 나라들과의 유대를 하나하나 청산해나갔다.반면 소련의 적이었던 나라들에 대해서는 과거 소련의 행적에 대해 기꺼이 양보와 사과를 하며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였다.특히 이들은 한국과도 긴밀한 유대를 갖기 위해 애썼다.남북한관계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고 한국전쟁에서 스탈린이 한 역할을 비난했다.1983년 사할린상공에서 대한항공기를 격추시킨 행위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 ○대국화외교 지향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이런 외교적 자세는 이제 점차 과거사가 돼가고 있다.여기에는 국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요인이 영향을 끼쳤다.우선 국내적 요인으로 옐친대통령이 추구해온 「쇼크 요법식」경제개혁의 실패를 들 수 있다.이로인해 민주 인사들은 국가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났고 대신 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의 외교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이 보수세력들에게 서방은 우방이 아니라 적의 개념으로 남아 있다.이들이 생각하기에 서방은 러시아의 위대성을 실현하려는데 장애세력일 뿐이다.외부적 요인으로는 러시아 주변 나라들이 겪는 사태 및 전반적인국제정세가 이런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구소련 연방내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박해」를 받고 있고 서방은 당초 약속과 달리 러시아에 대규모 원조도 보내주지 않았다. 3년전만해도 러시아 민주 지도자들은 유엔의 깃발아래 전세계가 한나라가 되는 소위 「세계 정부」의 탄생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무력은 구시대의 쓸모없는 유산으로 치부됐다.그러나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러시아의 외교정책은 점차 더 전통적이고 더 강대국 지향적이며 덜 민주적으로 변하고 있다.그리고 이 변화의 징조가 한반도 정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북 내정간섭 불원 한반도정책과 관련,러시아의 첫째 관심은 뭐니뭐니해도 안보와 관련된 문제이다.한반도는 지금도 냉전이 그대로 지속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게 러시아 지도자들의 인식이다.만약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러시아를 비롯,동아시아 전역으로 그 불똥이 번진다고 믿는다.이런 인식하에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은 위험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코너로 모는 것은 이보다 더 위험하다는 인식을 이들은 갖고 있다.옐친대통령의 한 보좌관도 내게 「러시아와 세계의 안정을 위해 북한을 핵문제로 너무 몰지 않는게 유익하다』고 말했다.이와함께 많은 러시아 지도자들은 김일성 정권의 급격한 붕괴는 한반도뿐 아니라 주변안보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이같은 이유를 들어 이들은 핵문제를 포함,북한의 내부사정에 국제사회가 너무 개입하지 말 것과 북한에서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변화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안보관의 변화는 한반도에 있어 남북한 대화를 지지하는 것을 포함,균형있는 접근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경제적인 요인도 정책결정의 중요한 요인이다.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러시아는 아태지역국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의 차관,투자,교역에 러시아는 큰 관심을 갖고 있다.그러나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해 가졌던 초기의 기대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러시아국민들은 옐친대통령의 방한때 체결됐던 24개의 경제관련 협정들이 아직 이행되지않고 있다고 불평한다.차관상환 기간의 유예요청도 거절당했을 뿐 아니라 한국기업들은 러시아진출에 너무 소극적이고 이미 약속한 투자계획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이에 비해 북한에 대한 경제적 평가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특히 북한과 인접한 극동지역에서는 바터무역과 값싼 노동력을 구하는 데 북한이 유리한 파트너가 된다고 믿고 있다.무기를 팔기에도 북한은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투자인색에 불만 러시아의 대국지향 욕심도 한반도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요인중 하나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해 다시 영향력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물론 여기에는 과거 국제무대에서 철저히 소련을 지지했던 「잃어버린 동맹국」북한에 대한 향수도 작용하고 있다.러시아의회의 한 대의원은 얼마 전 내게 『우리가 과거 북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돈을 들였나.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이 대의원은 북한은 한때 극동지역에서 소련의 유일한 군사 교두보였는데이 교두보가 필요한 시기가 다시 도래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자성시기 지났다” 대부분의 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들은 반미,독자외교를 추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북한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한다.이들이 믿기에 북한은 세계무대에서 미국에 반기를 드는 것만으로도 효용가치가 매우 높은 우방이다.러시아내에 점증하는 민족주의 감정도 한반도정책에 변화를 몰고 오는 주요인이다.이 민족주의 감정으로 인해 러시아외교에서 이제 양보와 자성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러시아가 대한항공격추사건에 대해 더 이상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옐친대통령의 보좌관들중에는 한국전쟁에 대해 러시아가 더이상 사과와 책임을 느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이와함께 김일성 독재체제에 대해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혐오감」도 점차 가벼워져가고 있다.보수성향의 많은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겪고 있는 혼란·무질서와 비교,북한의 법과 질서」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결론은 자명하다.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은 점점 더 남북한 균형정책쪽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물론 지리노프스키나 보수파,민족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을 경우에는 북한쪽으로 더 편향될 것이다.그러면 3년전이 아니라 그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물론 이같은 시나리오가 쉽게 현실화될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분명 3년전과는 다른 변화의 조짐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예브게니 바자노프 약력 ▲49세 ▲역사학과박사 ▲모스크바 국제관계대 졸업 ▲주북경대사관 정치참사관(81년) ▲주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73년) ▲외교아카데미 부원장(91년부터 현재)
  • 러 대사관터 어디 잡을까/김 대통령 방러 앞두고 관심 고조

    ◎「옛 배재고땅」 희망… 개발제한 묶여 난항/구공관 정동땅 1천2백만불보상 접근 우리나라와 러시아 사이의 주요 외교현안인 옛 러시아공사관 땅문제 해결 방식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두나라가 모두 오는 6월초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나라는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때도 시베리아 벌목노동자 귀순절차와 함께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될 만큼 빠른 속도로 접점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조속히 해결한다는 원칙 아래 두나라가 요구사항을 모두 털어놓았을 뿐 아직은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그만큼 두나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미묘한 사안이다. 문제의 땅은 서울 정동의 옛 러시아공사관 부지 6천2백여평.옛 소련이 우리나라에서 총영사관을 철수한 것은 지난 46년.그 뒤 한국전쟁등을 거치면서 두나라의 국교가 단절돼 이 공관은 외교공관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고 정부는 지난 70년 건설부령에 의거,이 토지를 수용해 버렸다. 그러다 지난90년 9월 다시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구소련측은 옛 공관부지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그 때는 이미 시민공원으로 바뀐 상태.반환을 할래야 할 땅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그러나 우리도 당장 모스크바에 대사관을 지을 부지가 필요했다. 결국 두나라는 서로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공관부지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다만 러시아측은 한국이 정동땅을 반환할 수 없다면 이를 보상금으로 지불해 줄 것을 요구했다.이러한 요구는 공관부지에 그럴듯한 대사관을 지으려면 러시아의 재정 형편상 자금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가 보상을 요구한 기준연도는 수용당시인 70년 시가로 약 4천5백만달러(3백60억원)에 이른다.또 서로 교환할 공관부지도 미국 일본 중국처럼 서울의 중심부,이른바 4대문 안에 주기를 원했다. 협상과정에서 러시아측은 지난 1880년 제정 러시아때 서울 공관을 창설할 당시 웨베르공사의 부지매입에 관한 계약서를 제시하는 기민성을 보이기도 했다.공산혁명등 격변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문서를 이제껏 보관해 온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서울 구기동,양재동,포이동 일대 2천4백평 규모의 부지를 대안으로 러시아측에 제의했다.러시아측은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엔 구기동 부지에 무게를 싣는듯 했다는 게 정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러시아측은 갑자기 지난 87년 토지개발공사가 코오롱으로부터 사들인 2천4백평의 배재고 부지를 요구하고 나왔다.일부 언론에 「배재고 땅이 팔리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그러나 이 토지는 5층짜리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돼 있는등 개발제한에 묶여있어 러시아측의 기대와는 맞지않아 아직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만 문제의 수용 보상금 규모는 4천5백만달러에서 1천2백만달러로 의견을 접근시켜 가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 주체사상 교과서에 안싣기로/역사용어 개편

    ◎「대구항쟁」 철회,「대구사건」으로/여순반란사건→여순사건/「6·25」「4·3」은 원래대로/5·16혁명→5·16쿠데타 지난달 18일 발표된 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용어개편 준거안 가운데 물의를 빚은 「대구항쟁」이 「대구사건」으로 바뀌고 김일성주체사상을 싣기로 했던 방침이 백지화된다. 특히 교육부는 내달에 준거안이 제출되는대로 문제가 된 내용을 심의하기 위해 준거안을 특별히 1종교과서편찬심의위원회에 넘겨 정밀검토할 방침이다.22일 교육부에 따르면 오는 96년도부터 중·고교에서 사용될 국사교과서의 준거안을 마련중인 연구위원회(위원장 이존희서울시립대교수)는 지난 21일 서울대에서 모임을 갖고 준거안 발표이후 쟁점이 돼온 일부 근·현대사 역사용어및 내용을 이같이 바꾸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참석자는 『이번 준거안에서는 「대구항쟁」으로 표기하자고 제기된 「대구폭동」(현행교과서)을 「대구사건」이나 「대구사태」로 하고 「여수·순천반란사건」(현행교과서)은 「여수·순천사건」으로 하되 내용상 사건의 성격을 서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당초 북한역사와 관련, 김일성주체사상을 싣기로 한 준거안을 철회키로 했다. 이 관계자는 이밖에 제주도 「4·3사건」은 현행대로 표기하고 「6·25전쟁」도 준거안의 「한국전쟁」으로 표기하자는 주장과 달리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4·19의거」는 준거안을 따라 관련법이 올 정기국회를 통과할 경우 「4·19혁명」또는 「4월혁명」으로 고치고 「5·16군사혁명」은 「쿠데타」나 「군사정변」으로 고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12·12」와 「10·26」은 현행대로 내용을 서술하면서 「사태」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한편 이같은 근·현대사 용어의 의견조정외에도 고려시대의 향·소·부곡을 천민계층이 아니라 양인(양인)계급의 집단거주지로 정정키로 했다. 이같은 의견조정과 심의절차에 따라 당초 오는 6월말까지 확정키로 한 국사교과서의 개편안 마련은 2개월정도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 당민방위부장 김익현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

    【내외】 북한은 15일 김일성의 82회생일을 맞아 당민방위부장 김익현을 대장에서 차수(차솔)로 승진시켰다. 항일빨치산 1세대인 김익현은 한국전쟁 기간중 인민군 제2사단 제1연대장(51.1)을 시발로,제4군단장(72.2),부총참모장(중장,75.3),인민무력부 부부장(상장,77.3)을 거쳐 지난 91년 11월 대장으로 승진했었다 북한군 계급구조에서 차수는 원수와 대장사이의 계급으로 왕별 1개로 표시하고 있는데 현재 북한군의 차수는 모두 9명으로 늘어났다.
  • “「북벌목공 문제」인권차원서 접근을”/박갑동씨 「최근북한정세」강연

    ◎“안보리 핵개입땐 북한 붕괴/김정일이 핵사찰 반대 주도” 전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75·일본 도쿄거주)는 15일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하려고 했으나 김정일이 반대해 결국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직 북한 고위인사들과 함께 반북한단체인 「조선 민주통일 구국전선」을 결성,상임의장으로 활동중인 박씨는 성균관대 이명영교수(정치학)의 초청으로 내한,이날 하오6시 서울 YMCA회관에서 최근의 북한정세와 「구국전선」의 활동에 관해 강연회를 가졌다. 박씨는 「김일성 테러규탄및 북한동포 인권회복 모임」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개방이 어려운 만큼 이제 통일문제보다 북한 동포의 인권과 생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체포된 북한간첩 이복헌이 나와 구국전선 간부들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북한측으로부터 암살기도와 협박전화,감시를 계속 당해와 본명을 쓰며 활동한 적이 없다』고 폭로했다. 그래서 박씨는 북한정권의 타도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국민들의 반공의식이 해이해진 것같아 걱정』이라는 그는 『김일성 부자가 있는한 북한에 대한 허황된 인식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의 북한동향과 관련,『북한은 세계적으로 고립돼 있고 사회적으로도 민생이 도탄에 빠진 위기상황에 있어 김일성을 추종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고 조총련도 가족이 북한에 있는 경우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탈퇴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또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인은 같은 동포이므로 다른 귀순자를 받아주듯 인도적차원에서 정부에서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개방이 앞당겨지려면 외부에서 많은 활동을 해야한다는 뜻에서 구국전선을 발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특히 박씨는 『최근의 핵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중재에 나서면 북한은 결국 무너질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 해외에 망명정부를 세우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중앙고보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박씨는 재학중 공산주의에 빠져 해방후 남로당 지하총책을 지내다 한국전쟁중 월북,북한 문화선전성 유럽부장을 지냈다. 박씨는 그뒤 북한의 남로당 숙청때 체포돼 박헌영과 같이 총살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북한을 탈출,중국·홍콩을 거쳐 57년 일본으로 망명해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소연방이 와해된 직후인 92년 모스크바에서 결성된 「구국전선」은 박씨와 주소련 전북한대사 이상조씨,전노동당 평양시당위원장 서휘씨,전강동정치학원장 박병율씨등과 이들의 가족등 3백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 비핵화지지… 북제재는 반대/오학겸 중부주석 일문일답

    ◎「6·25북침」 중국교과서 수정 검토 중국 정치협상회의의 오학겸부주석은 13일 『중국은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끝까지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우리나라에 온 그는 이날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줄곧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강조했다.그러나 핵문제와 달리 한국과 중국 두나라의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상호보완성을 강조하며 기대를 표시했다. ­우리정부와 북한핵문제를 논의했는지. ▲11일 김영삼대통령과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길 희망하고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중국의 뜻을 전했다.문제의 해결을 위해 압력이나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중국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정부로부터의 요청은. ▲김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나아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기여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다.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전했다.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기술하고 있는 중국교과서와 이에 대한 전직 외교책임자로서의 견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되리라 확신한다.돌아가면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수정할 것이 있으면 수정하겠다. ­북한의 핵개발 정도는.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우리에겐 이에 대한 아무런 자료도 없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도 불구,북한의 자세 변화가 없다면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데. ▲우리의 주장은 계속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노력이 중요하다.그러나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예측할수 없다. ­중국과 북한의 막후 접촉은. ▲중국과 조선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그러나 중국이 무슨 말을 하면 북한이 들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중국과 조선은 서로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탈출자들의 중국 생활은. ▲잘 모른다.혹시 있더라도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중국은 땅이 큰나라이므로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 북 태도변화 유도 강·온 양면작전/“전쟁불사”페리발언 배경과 요지

    ◎앞으로 몇달 도발 대비… 선제공격은 안해/북 유엔조치 반발땐 주한미군 증파 필요 윌리엄 페리미국방장관의 대북 초강성발언은 미국의 북한핵문제해결을 위한 강온양면작전의 일환으로 봐야할 것 같다.페리장관이 워싱턴 포스트지 편집진과의 회견에서 『한반도에서 또한번 전쟁을 치르더라도 북한핵개발을 저지할 것』이라고 한 발언은 대단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북한핵문제 해결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2의 한국전 불사』는 미국의 국내외적 다목적용 카드라고 할수 있다. 첫째는 유엔안보리에서의 마지못한 「의장성명」채택등 온건입장과 균형을 이룰수 있도록 강경자세를 분명히 해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볼수 있다.둘째,순수군사적 측면에서 북한핵문제의 해법을 찾는다면 전쟁불사 방법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감없이 공표한 것으로도 볼수 있다. 셋째,미행정부 일각및 의회의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강성기류를 국방장관이 그대로 표출시킨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최종경고카드인 셈이다. 어쨌든 한국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이른바 「서울불바다」위협에 이어 나온 「또 한번의 한국전쟁불사」언급은 한반도의 참화를 예고하는 불길한 조짐이 아닐수 없다. 다음은 31일자 워싱턴 포스트지가 보도한 페리장관 회견기사 주요대목이다. 『페리장관은 한반도에서 또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그 대가로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이 상당량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임박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도 한반도에서 잠재적 분쟁가능성에 대비,일련의 군사적 조치들을 명령했으며 향후 수개월동안 전쟁의 위험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할수 있는 일들을 수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페리장관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생각은 갖고 있지않으나 북한이 유엔조치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으며,그럴 경우 주한미군의 증파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의 준비태세와 관련,현재 항공기부품및 정비요원들을 주한미군및 주일미군에 배치중이며,북한의 대포공격에 대응할수 있는 무기들을 신속투입할 수 있는 조치와 함께 패트리어트미사일의 제2진을 한국에 추가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한 준비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취하는 정책들과 대안들이 북한을 도발하는 일부의 위험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북한이 핵개발을 통해 2∼3년후 지역의 강력한 위협요인이 되는 것을 용인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 위협을 지금 직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클린턴행정부가 북한핵개발의 저지를 위한 3단계 전략을 수행중이라면서 ▲북한이 한미양국을 외교적으로 이간시키는 것을 막는 것 ▲한미지상군이 북한의 어떠한 침략도 저지하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것 ▲북한이 남침할 경우 하루안에 압도적 공군력이 배치될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 「오태석 연극인생 30년」 총정리/예술의 전당,「오태석 연극제」

    「한국적 연극문법」찾기에 골몰해온 중견극작가겸 연출가 오태석씨(54·극단 목화레퍼토리 대표)의 연극인생 30년을 조명하는 「오태석연극제」(1일∼7월30일)가 넉달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예술의 전당이 국내 창작극 발전을 위해 기획한 「오늘의 작가」시리즈 첫무대로 마련된 이 연극제는 우리 연극계에서는 처음으로 단일작가의 대표작을 집중 탐구하는 개인연극제 형식을 띠고있어 한층 관심을 모은다.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무대에 오르게될 작품은 91년 제15회 서울연극제 대상수상작인「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를 비롯,「아프리카」「자전거」「비닐하우스」「도라지」등 5편.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작가 특유의 토속적이고도 정감어린 연극세계를 압축해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어서 그동안 평가가 엇갈려온 오태석 연극의 실체를 규명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될것으로 보인다. 연극제의 서막을 장식할「심청이…」(1∼21일)는 고전속의 심청과 용왕을 90년대의 부패하고 불합리한 상황속에 대입,비인간화된 현대사회를우화적으로 풍자한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도 1순위로 꼽는 대표작이다. 「아프리카」(26일∼5월15일)는 오랜 유랑을 거친 오씨가 「오태석사단」의 막을 내리고 84년 극단「목화」를 창단하면서 무대에 올린 첫작품.병아리감별사 출신인 주인공이 낯선 이국땅에서 겪게되는 정신적 시련을 통해 오늘날 한국인의 정체성찾기를 시도한다.또 전형적인 「오태석풍」연극으로 평가되는 「자전거」(5월21일∼6월10일)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린 사실주의극이며 「비닐하우스」(6월15일∼7월5일)는 강요된 이데올로기의 파괴성을 섬뜩하게 묘사한 작품. 이번 연극제에는 오씨외에 이상춘(「아프리카」)·김철리(「자전거」)·이윤택씨(「비닐하우스」)등이 객원연출자로 참여,원작에 대한 색다른 해석도 기대된다.
  • 전 주한미대사 릴리 미월스트리트지 기고

    ◎“북 도발땐 응징” 미 입장 분명히 해야/“단호한 대응만이 전쟁위협 제거”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대사는 29일 미월스트리트 저널 기고에서 『미국은 북한의 무력도발시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반도에서 전쟁위험도 막고 외교협상도 효과를 거둘수 있다』고 강조했다.릴리 전대사의 기고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기 위해 취할 가장 중요한 조치는 어떤 무력도발도 궁극적으론 파멸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이같은 메시지는 최고위 레벨에서 전달되고 이를 실행할 정부기관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아시아의 일부 미우방들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단호한 발언과 구체적 움직임을 우려하겠지만 다른방법이 없다. 역사적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부분적 이유는 모호한 미국의 행동에 있었다.48년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한뒤 당시 애치슨 국무장관은 50년1월 한반도가 미국의 방위선내에 있는지 여부에 대해 모호한 발언을 했다.이같은 오판의 결과 수백만명이 희생됐다. 반면 미국이 확실한 태도로 무력위협을 가했을때는 북한이 고개를 숙였다.68년 북한이 프에블로호 승무원을 11개월간의 억류끝에 석방한것과 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미국의 B­52 폭격기가 비무장지대 상공에 나타나자 북한이 놀란 나머지 화해자세로 나온 것이 그 예다. 91년 11월에는 당시 리처드 체니 미국방장관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 북한은 남북한 화합과 비핵화합의에 조인했다.클린턴정부의 목표는 북한으로 하여금 무력의존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김일성이 처음에 강력히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또한 서방과 북한 모두에게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한다고 말했다.중국은 북한에 대해 경제적 압력을 행사할 지렛대를 갖고 있음을 비공식적으로 시인했다.중국은 대북한 송금을 차단할수 있는 일본의 역할과 미국의 군사적 억지력,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사찰수용 요구와 함께 한반도에서의 유혈전쟁을 막는데 충분한 힘이 될것이다.
  • 중·고교과서에 북주체사상 기술

    ◎「5·16」·「12·12」쿠데타로 표기/96년부터… 「6·25」는 한국전쟁으로/국사연구위 개편 시안/4·19의거→혁명,대구폭동→항쟁/여순 반란사건→여수·순천사건/8·15는 광복·해방용어 병용케 96학년도 중·고교 국사교과서에서부터 북한의 김일성주석 사상을 체계화한 주체사상을 설명하는 내용이 새로 실린다. 논쟁을 빚어온 근·현대사의 역사용어도 시대에 맞게 고쳐진다. 「국사교육 내용전개 준거안 연구위원회」(위원장 이존희서울시립대교수)는 18일 서울시립대에서 국사교과서 개편방안에 관한 세미나를 갖고 이같은 개편시안을 발표했다. 시안은 앞으로 교육부 심의위원회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오는 6월까지 확정된다. 새 교과서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주체사상의 기본틀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며,수령유일체제와 김정일 후계체제의 성격을 이해하도록 새로 기술할 예정이다.또 1967년경을 전후한 주체체제로의 이행이 이뤄지는 국내외적인 여건과 주체사상과 예술·역사학·학문과의 상호관계도 기술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87년 6월 민주항쟁이후 북한에 대한 이해가 크게 늘어난 점과 남북한간의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을 서술하기로 했다. 연구위원회는 또 8·15광복을 전후해 일부 민족지도자들이 일제말 황국신민화운동과 침략전쟁에 협력했었음을 간략히 기술하지만 가급적 구체적인 이름의 언급은 삼가하기로 했다. 71년 대선과 총선속에서 민주화운동이 있었으나 박정희정권은 철권강압으로 영구집권을 계획하여 국헌이 파괴된채 유신독재체제가 이루어졌음이 처음 기술된다.박대통령의 경제업적도 종전과 같이 기술,균형을 맞추기로했다. 역사용어의 경우 5·16군사혁명과 5·17사태를 모두 쿠데타로 고치며,대통령이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한 12·12사태도 쿠데타로 고쳐진다. 4·19의거는 외국의 사례와 같이 날짜를 쓰지않고 4월혁명으로,6·25전쟁은 한국전쟁으로 표기한다. 또 동학농민운동은 동학농민전쟁으로 ,8·15는 광복으로 쓰되 내용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해방이란 용어도 병용하기로 했다. 여순반란사건은 주민반란으로 오해하는 것을 막기위해 여수·순천사건으로,대구폭동은 대구항쟁,광주민주화운동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 “미,대만의 6·25참전 거부”

    ◎비밀정보보고서/장개석군대 불신의 결과 【워싱턴 로이터 연합】 미정보당국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북한군과 싸우겠다는 대만 국민당의 참전제의에 대해 국민당군의 사기문제등을 이유로 거부했음이 17일 비밀해제된 한 서류에서 밝혀졌다. 1950년 12월 27일자의 종합 분석보고서에서 미정보당국은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기 위한 미주도의 유엔군에 3만3천명의 최정예 병력을 파병하겠다는 장개석 정권의 제의를 별도로 언급,『국민당 군대는 광범위한 장기 훈련을 받았으나 무능한 지도부와 열악한 생활조건으로 인해 사기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대만의 국민당 병력의 대부분이 중국 본토의 열대지역 출신이어서 보다 추운 기후의 한국전투에 파병되기 위해서는 「훈련과 일부 장비교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어 국민당군이 우수한 지도부아래서는 임무를 비교적 잘 수행할수 있지만 유엔군 사령관의 직접적 전술통제를 벗어나는 지역에서 독자적 작전이 허용될 경우 공산당의 선전에 영향을 받아 상당수의 탈주자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는 미CIA(중앙정보국)의 기원에 대한 심포지엄과 관련해 비밀이 해제된 냉전시대 서류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전 당시 미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만은 회고록에서 자신은 『가능한한 많은 유엔 회원국들이 한국전에 참전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장개석 정권의 참전제의에 대해 처음에 이를 수락하자는 쪽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 전쟁기념관 6월에 문연다/서울 용산에…개관 앞두고 마무리단장 한창

    ◎디오라마·영상시설 갖춰 입체적 전시/군사유물,6·25 무기 등 7만여점 확보 서울 용산의 옛 육군본부 자리에 국내 최초로 건립되는 전쟁기념관이 오는 6월 개관을 앞두고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88년 특별입법된 전쟁기념사업회법에 따라 90년 9월 착공한 이 기념관은 지난해 12월까지 건축공사를 완공하고 현재 6개 전시실 가운데 4개실의 전시품 비치등 내부단장을 마무리했다.나머지 2개 전시실도 오는 4월까지 전시품을 모두 제자리에 진열한뒤 전 전시관의 시험가동을 시작한다. 기념관은 대지 3만5천평 위에 연건평 2만5천평의 지하 2층,지상 4층의 현대식 건물로 전시실과 전우회관·간이식당·지하주차장·수장고·사무실 등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졌다.6천1백59평에 이르는 전시실은 호국추모실·전쟁역사실·한국전쟁실·대형 장비실과 아직 완공되지않은 해외파병실·국군발전실 등 6개실과 비행기·탱크 등을 전시한 옥외 전시실로 되어있다. 전시실에는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조상들의 군사유물과 한국전쟁 참전 16개국등 각국의무기와 장비·복식·군기·문서 등 7만8천35점이 전시되며 현재 83%를 확보했다. 이 기념관의 특징은 정적이고 폐쇄적인 지금까지의 전시방식에서 탈피,생생한 체험적 전시가 될 수 있도록 디오라마와 영상시설을 많이 설치,입체적인 전시가 되도록 한 점이다. 우선 전시실을 들어서자마자 설치된 호국추모실은 호국의 의지를 담은 서울대 미대 한운성교수의 천장화와 동양화가 박정규씨의 「단장의 산하」,통일을 상징하는 윤동구씨 등의 작품 「빛과 물」이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이어 전쟁역사실에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민족이 외침에 맞서 싸웠던 주요 대외항쟁과 각종 무기·장비·복식·기치·군사제도 등을 문헌자료와 조각·그림·사진 등으로 전시했다.특히 살수대첩과 한산대첩·귀주대첩·처인성전투·매소성전투·진주대첩·행주대첩 등의 전투상황은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했으며 안시성전투와 청산리전투 등은 기록화에 담아 선보이고 있다.이와함께 성곽과 봉수대·거북선·조선시대의 범선과 병선,대한제국의 신식군대 훈련모습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했으며 서구열강의 당시 군사력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안겨준 6·25전쟁의 발발배경과 남침·반격·중공군 개입·전선교착·휴전 등으로 구분해 6·25를 객관적인 사실로 보여준다.전선에서의 장병들의 전투상황은 물론 후방 국민들의 전시생활 모습을 디오라마로 재현해 보여준다.특히 전후세대들을 위해 「전쟁체험실」을 설치,전쟁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해외파병실은 우리 국군의 파병배경과 의의 그리고 월남에서의 활동상을,국군발전실은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창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의 발전과정을 각각 실물·사진·그래픽·모형 등으로 소개한다. 강의용전시본부장은 『우리 민족은 전쟁의 영향을 그 어느 민족 보다 많이 받았으면서도 아직 전쟁박물관 하나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제 번듯한 기념관을 갖게돼 다행』이라면서 『국민에게 전쟁의 교훈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산교육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반전영화(외언내언)

    딸의 생일에 실직을 당하고 말다툼과 교통체증등 악운을 겪은 주인공(디펜스)이 전화를 걸기위해 한국인상점에 들어간다.전화 걸 잔돈을 바꾸려면 물건을 사야한다는 주인의 말에 시비가 일어난다.주인공은 상점주인을 구타하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상점을 때려부수는 난동을 부린다.지난해 3월 미전역에서 상영되었던 영화 「폴링 다운」(Falling Down·감독 조엘 슈미커)의 도입부분이다. 이 난동장면에서 주인공은 한국인을 멸시하고 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한국전쟁때 도와주었건만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민족』『영어도 못하면서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라며 교포나 우리민족 전체를 모독하는 발언들을 한다. 아무리 영화의 한 대목이라 하지만 타국인 타민족의 자존심을 이유없이 짓밟는,인종차별적 편견을 그렇게 드러내도 되는 것인가.LA에서 시사회가 있은뒤 교포들은 이 영화에 대해 격렬한 항의와 분노를 표시했었다.미국의 언론에서도 『사회적으로 무책임할 뿐만아니라 인종차별적이며 선동적인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다. 개봉때부터이래저래 말썽과 파문을 일으켰던 이 영화는 그렇다고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갖춘것도 아니다.황당무계한 「만화같은 영화」일 뿐이다.그 문제 영화의 국내상영이 12일부터 시작된다고 한다.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의 직배에 의한 것이다. 국내개봉을 앞두고 YMCA산하 기구들이 상영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제작사측은 한국인의 국민감정을 고려,국내상영필름에서는 한국인을 모욕하고 비하하는 장면과 대사를 대폭 삭제,연막을 치고있다. 그러나 삭제안된 원작품이 이미 세계각국에서 상영된 뒤다.한국인의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왜곡시켜 놓고는 우리에겐 문제의 대목을 제외한 영화를 보라는 것이다. 얄팍한 미국식 상술이다.누구를 바보 취급까지 하려는가.YMCA측은 『그렇다면 삭제 부분을 그대로 상영,한국관객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옳은 말이다.
  • 한인비하 미영화 「폴링다운」 12일 개봉 앞두고 반발 확산

    ◎잭배영화 안보기운동 전개 한국인을 비하한 미국영화 「폴링다운」(한국명 추락)의 국내상영을 둘러싼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 YMCA 산하 영상문화위원회,시청자운동본부,건전비디오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7일 『워너 브러더스사의 직배영화 「폴링다운」의 국내상영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전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워너사가 직배하는 모든 영화에 대해 관람거부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워너측은 아직까지 오는 12일 개봉한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의 문제장면은 대략 다음과 같다. 실직이라는 비참함과 짜증나는 LA의 교통체증에 시달린 한 사내(마이클 더글러스분)가 집에서 기다리는 부인과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한인 슈퍼마켓에 들어간다.30센트의 동전이 필요한 그는 1달러를 내고 평소 65센트로 알고 있는 사이다 한병을 고르지만 주인은 75센트를 받는다.그는 분노하기 시작하고 「한국전쟁 때 도와주었건만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민족」,「영어도 못하면서돈만 밝히는 민족」이라며 무차별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개봉되자 미국내 한인단체와 아시아단체·LA한국문화원등이 크게 반발했음은 물론이다.워너 브러더스사의 계열사인 타임지에서조차 『주인공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인종·사회적인 편견으로 묘사했다』고 비평했었다. YMCA측이 특히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는 이 영화를 삭제없이 상영,한국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전파하면서 한국에서만 문제의 장면을 삭제했다는 점이다.이는 한마디로 한국민을 우롱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의 처사라는 것이다.YMCA측이 이날 『만약 국내상영을 강행하려면 삭제한 부분까지 그대로 상영,국내 관객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러한 뜻에서 이다. YMCA측은 이같은 문제가 「폴링다운」으로만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전국에 극장체인을 갖고 있는 직배사들로서는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와 자본의 힘을 앞세워 얼마든지 한국민등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과 백인우월주의를 전파하는 영화를 제작·배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YMCA측은 이런 유의 영화에 대해서는 피케팅등의 관람거부운동을 지속적으로 펴 『한국민을 모욕하는 영화의 국내상영을 저지함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영화제작까지 막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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