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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토지개혁 소련군이 배후조정”

    ◎서울신문 입수 미 문서 「북조선 주둔 소련군사령관 명령서」등 통해 밝혀져/초기 북한정권 「소련군의 하부기관」 입증/“조선인민위 자율적인 조치” 주장은 허구 해방 이후 초창기 북한정권의 성격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다.서울신문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 보존관리국(NARA)에서 찾아낸 이들 문서는 「북조선주둔 소련군사령관의 명령서」와 「북조선농림국 임시조치시정요강」.소련이 일찍부터 북한 토지개혁에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소련사령관 치스차코프와 참모부장 벤코프스키 명의로 19 46년 1월2일에 작성된 「소련군 사령관의 명령서」는 우선 각종 토지사용자의 소유면적 조사를 2월15일 이전에 끝내도록 지시했다.여기서 소련군은 조사대상을 농민,소작농,지주등 계급적으로 분류하고 조사목적을 「토지사용에 대한 성질결정」으로 밝혀 토지개혁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이 문서는 또 조사가 제때 수행되게 경찰동원을 명령한 흔적도 남겼다.모두 3개 항목으로 된 「소련군사령관의 명령서」는 토지개혁이 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자율적 주도아래 짧은 기간내에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허구였음을 증명했다.지금까지 북한당국과 국내 일부 학자들은 일련의 개혁조치를 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주체적으로 추진했다는 주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이 문서는 객관적 평가기준을 제시한 사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북조선농림국 임시조치 시정요강」에도 소련군의 영향력이 전적으로 나타나 문서 서두에 「소련군 명령에 의해 시정요강을 포고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해방원년인 1945년 12월에 작성한 이 문서에서도 농수산업에 대한 시정을 밝히면서 친일파와 반동분자를 분류해 놓았다.또 건국성납토지라는 낱말이 보여 위협을 느낀 지주들이 토지를 내놓았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발신자는 농림국장 이순근으로 되어있는데 그는 1900년 경남 함안 출신으로 해방전 연희전문 교수를 지낸 인물로 알려졌다. 북한은 결국 19 46년 3월8일 「토지개혁법령에 관한 세칙」을 만들어 몰수대상 토지를 결정하고 농민군중을 선동,지주들을 고립시켰다.그리고 3월5일 제정한 「북조선 토지개혁법령」등에 따라 66만 농가에 1백6만6천㏊의 농지를 분배했다.한 농가에 평균 0.15㏊(4백50평)씩 돌아갔다.남한보다 먼저 실시한 토지개혁을 위대한 업적으로 선전했지만 북한은 지금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있다. 이들 문서는 1950년 10월 한국전쟁 당시 평양을 점령한 미군이 대량 입수한 이른바 노획문서의 일부.이 자료를 검토한 농지개혁 연구학자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석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초기의 토지개혁정책 입안과정이나 배경을 처음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면서 『북한 임시인민위원회가 소련군 사령부의 하부기관임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 일 기초단체장 99% 무소속 “탈정당화”

    ◎「지방자치제 1백년」어제와 오늘/지자체 이익 최우선… 「정책 대결」지양/“정당 개입은 혼란만 초래”/전전 교훈 일본의 지방자치제는 1백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현행 자치제는 48년에 제정된 헌법과 함께 전면 실시돼 온 것이다. 일본의 기초자치단체는 시·정·촌이 해당되며 이들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은 모두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일본의 공직선거법은 모든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참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있다.또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사이에 특별한 차별을 두고 있지도 않다.따라서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도 있고 정당의 추천,지지,공인을 얻어 선거에 임할 수도 있다. ○55년 이후 가속화 이처럼 정당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탈정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게 일본 기초자치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정당소속 후보는 중앙선거보다는 광역의 경우가 훨씬 적으며 기초자치의 경우에는 광역보다도 「탈정당화」의 경향이 더욱 뚜렷해서 무소속후보들이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탈정당화는 지난 55년 자민당 결성으로 보수1당 장기집권체제가 구축되면서부터 가속화됐다.그 배경으로는 2차대전이전의 지자제 실시시기에 보수정당들의 개입으로 극심한 부패와 혼란을 겪은 바도 있었고,한국전쟁 이후 성장과 개발의 시대를 맞아 각 지방자치체들이 일치단결해 지방의 개발이익을 도모하는 일에 열중하게 된 점 등을 들 수 있다.이에 따라 지방차원에서 정당간 경쟁,정책의 대결은 사실상 배제됐다. 무소속 의원은 55년 도·도·부·현통일지방선거에서 32.8%를 차지했으며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선거에서는 무려 94.4%를 기록했다.무소속 단체장의 경우는 광역이 85.6%,기초가 98.3%나 됐다. ○혁신계 한때 득세 하지만 부의 편재 등 성장에 따른 부작용과 복지에 대한 주민들의 희망등이 표출되고 중앙에서 미·일안보조약 반대투쟁이 치열해지면서 60년대 중반부터는 사회당계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이 늘어나게 됐다.그 결과 사회당계열의 단체장이 행정권을 장악한 「혁신자치체」가 등장하고 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정당간의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게 됐다.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같이 혁신 단체장·의원이 많이 배출됐으나 이 시기에도 기초자치단체는 여전히 무소속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혁신자치단체는 주민복지와 환경을 정비한 공로를 남겼다.그러나 7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오일쇼크로 저성장시기에 들어서면서 재정적인 문제를 낳고 자민당이 혁신자치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중도 정당과 연합추천전략을 편 결과 혁신계 진출은 줄어들게 됐다.혁신계는 퇴조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복지 환경분야에서 혁신계의 정책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 ○일부선 비판론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탈정당화 현상이 조금씩이나마 허물어지고 있다.지난 91년 무소속 비율은 도·도·부·현의원이 15.9%,시·정·촌 의원이 74.8%로 낮아졌다.다만 단체장의 경우 「당선제일주의」의 지방정치인들이 각 정당의 연합추천·지지를 받으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어 지사는 1백%,기초는 99.2%가 여전히 무소속 당선자들이다.일부에서는 지방자치제의 탈정당화,탈정치화에 대해 ▲정당과 정책이 배제된채 이권에 의해 중앙과 지방이 연결됨으로써 부패정치를 낳기 쉽고 ▲무소속의원등이 많아 장기적인 책임행정의 구현이 어렵게 된다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하지만 일본의 지방자치,특히 기초자치단체들은 정당참여보다는 탈정당화의 전통을 고수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 아·아 정상 13명과 개발경험 환담(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저마다 면담 신청해와 만찬합석 낙착/국가위상 반영… 정상외교 새장 열어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WSSD)에 참석하기 위해 10일(이하 현지시간)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한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저녁 13개국 정상들을 초청,만찬을 베풀었다. 이는 김대통령의 코펜하겐 체재기간이 2박3일에 불과해 면담을 희망해 온 각국 정상을 개별적으로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김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가 다자간 회의에 참석한 다수의 정상을 한자리에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한차원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반영함과 함께 정상외교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기 넘친 2시간 ▷13개국 정상 초청만찬◁ ○…네팔의 아디카리 총리와 중앙아프리카의 파타세 대통령 등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정상들이 초청된 가운데 코펜하겐의 사스 스칸디나비아호텔에서 열린 이날 만찬은 하오 7시부터 9시까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 김대통령은 만찬 시작 10분전 호텔에 도착,접견장인 2층「아이슬란드 룸」입구에서 속속 도착하는 정상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한 뒤 접견장으로 안내. 특히 페루의 후지모리대통령과 보츠와나의 마시레대통령등 취임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정상들에게는 『또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인사. 김대통령은 이어 정상들과 칵테일을 들며 30분 남짓 국제정세등 상호관심사에 관해 환담을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고 옆방인 「덴마크 룸」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시작. 김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꼭 만나자고 하였으나 여건이 닿지 못했던 우방 지도자 여러분을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시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이어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한 대한민국은 곧 이어 전쟁의 참화를 겪었으며 이에 따른 극심한 빈곤과 실업을 경험했으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따뜻한 도움을 바탕으로 피땀어린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산업화와 사회개발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우리의 개발경험을 소개. 김대통령은 『오늘 이자리에 모인 정상들은 비록 여러면에서 서로 다른 여건에 처해 있지만 더불어 잘 사는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손잡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 만찬을 끝낸 김대통령은 다시 「아이슬란드 룸」으로 자리를 옮겨 정상들과 후식을 들며 잠시 환담을 나눈 뒤 작별인사를 나누며 일일이 배웅.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만찬에 대해 『다수의 정상을 한꺼번에 초청한 정상외교활동은 지금까지 미국등 강대국들만이 해온 것』이라고 상기시키고 『우리가 처음 시도했음에도 불구,1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층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 특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 한반도 주변 「4각 외교」의 틀을 넘어 새로운 외교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는 게 현지 외교가의 일반적 시각. ▷코펜하겐 도착◁ ○…김대통령은 2박3일동안의 영국방문을 마치고 이날 상오 특별기편으로 런던근교 히드로공항을 출발,코펜하겐의 카스트룹국제공항에 안착. ○유엔의전관이 영접 히드로공항에서 김대통령 내외는 왕실대표로 나온 트럼핑턴 남작(여)의 안내로 귀빈실로 이동,영국왕실및 정부대표들과 환담을 나누며 『방문기간동안 배려를 아끼지 않은 영국국민과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 김대통령 내외는 이어 노창희 주영대사의 안내로 한인회장 등 우리측 환송인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해리스 주한대사 등 영국측 환송인사들과 악수를 나눈 뒤 트랩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특별기에 탑승한 김대통령은 2시간만에 카스트룹 공항에 도착,덴마크 고위관리및 유엔의전관의 영접을 받으며 2박3일동안의 공식방문 일정을 시작. 한편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하오 코펜하겐의 탁아소를 방문. ▷영국총리만찬◁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9일 저녁(현지시간·한국시간 10일 상오) 메이저 영국총리가 총리관저에서 베푼 공식만찬에 참석한 것을 끝으로 영국 방문일정을 마감. ○관례따라 취재 불허 김 대통령은 만찬이 끝난 뒤 숙소에서 공식수행원들로부터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 대비한 보고를 받고 회의자료등을 검토. 김 대통령은 만찬에서 『한국전쟁 때 용맹한 영국 용사들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상기시키고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 대한 친밀감에 따라 우리 국민은 영국을 가장 중요한 우방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강조. 영국측은 이날 만찬에서 오랜 관례를 이유로 사진기자들의 촬영을 잠시 허용한 대신 취재는 사절. ○전통민화 1점 기증 ▷손여사 대영박물관관람◁ ○…대통령 부인 손여사는 9일 하오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관람. 손여사는 박물관측 관계자가 앞으로 설치될 한국관에 전시할 관음도 불경 병풍 고려청자 신라시대 귀걸이를 보여주며 개관계획을 설명하자 『두나라 관계가 더욱 발전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인사. 손여사는 대영박물관의 한국어안내책자를 살펴본 뒤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전통 민화 1점을 기증하고 기념촬영.
  • 외규장각도서 반환의 매듭 풀었다/김 대통령 미테랑 「문화협력」

    ◎불,“이견 해소방안 한국에 제시” 다짐/「맞대여 문서목록」 합의땐 한달내 타결될듯 김영삼 대통령이 3일 프랑수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반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을 받아내 답보상태였던 협상에 청신호가 켜졌다.미테랑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이 양국간 실무자들 사이의 협상 난항으로 지연되고 있는데 대해 『이견을 해소하는 방안들을 검토해 한국측에 제시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는 것이다. 임기를 마무리해가는 78세의 미테랑 대통령이지만 이날의 약속에는 성의가 담겨있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프랑스측은 지난 93년 9월 고문서 반환을 약속했지만 그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고문서 반환은 이뤄지지 않았다.한 당국자는 『미테랑 대통령이 처음에 자국법을 잘 모르고 무기한 대여등의 용어를 썼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프랑스측은 외규장각 문서를 대여하는 대신 같은 가치의 한국 고문서를 대여하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 실무자들의 협상에서는 「반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대여」나 「기탁」이라는 용어가 대신하고 있다.더 쉽게 말하면 「교환」이라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이것이 프랑스측이 주장하는 「등가등량」의 원칙이다. 프랑스는 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고문서 2백96권을 대여하는 조건으로 같은 시대인 1600년대와 1800년대 사이의 한국 고문서대여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정부는 지난해말 국립도서관 소장 경서류·개인문집·범류관례 서적등 3백37권을 제시했으나 프랑스측은 학문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했다.정부는 지난 1월에 다시 5백54권의 목록을 보냈다. 프랑스측은 역시 불만족을 표시했다.프랑스측에서 직접 원하는 목록을 제시해오기도 했다.그런 방식에는 우리정부가 찬성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의 실무진에게 어떤 타협안을 제시할 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만은 긍정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안이 나올 것같은 분위기라는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한국측이 제시한 문서목록을 받아들이라는 권고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한국이 맞대여할 문서목록만 확정되면 1개월 이내에 상호 대여절차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 소르본대 학위수여 수락연설 요지/「문명의 창조적 융합」 이루자 나는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역사의 진보에 대한 프랑스의 위대한 공헌을 되새기게 됩니다.프랑스가 현대사에 미친 영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1789년 파리에서 시작된 민주시민혁명은 지난 2백년동안 전세계로 확산되어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야말로 내자신 평생을 바쳐 추구해 온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이 민주화와 산업화에 모두 성공을 거두어 세계에 주목받는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참으로 긴 고난의 여정이 있었습니다.바로 1백년전 열강의 각축으로 빚어진 한국의 비극은 식민지배,국토분단,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매우 가혹한 것이었습니다.그러나 빈곤과 전쟁의위협속에서도 한국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나는 조국의 민주화에 대한 꿈을 안고 정치에 투신했습니다.그로부터 40년 나와 나의 동지들은 무서운 탄압속에서도 피눈물나는 민주화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1968년 5월 이 대학을 중심으로 울려 퍼진 「자유」의 목소리는 우리에게도 큰 힘을 주었습니다.나는 정의로운 길로 나가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대도무문」의 정신으로 어떤 난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오랜 투쟁끝에 우리는 마침내 정통성있는 민주정부를 세웠습니다.그리고 성숙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대내적인 민주개혁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세계화」정책을 펴나가고 있습니다.「세계화」를 통해 국제협력을 증진시키고 인류공통의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한국은 미래의 새로운 세계를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동아시아는 세계경제의 3대 중심축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으며 한국은 바로 그 한가운데위치하고 있습니다.장차 통일한국은 인구 8천만에 GNP 1조달러 규모의 세계 10대국가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며 기술대국입니다.프랑스는 유럽통합은 물론,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에 중심적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한국의 협력증진은 유럽연합과 아·태경제협력체(APEC)를 잇는 연결고리가 될 것입니다.프랑스와 한국은 21세기 지구촌을 살기 좋은 공동체로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한·불 양국은 어느 서구학자의 우려처럼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창조적 융합」을 구현하는 모범적인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21세기는 과학의 합리성이 동양의 지혜를 통해 진정한 의미를 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과학이 기술발전에 기여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인도하는 지혜가 되게 하는 것이 21세기 지성계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지성의 본산,소르본이 동양의 사상과 문화에 좀더 가까워짐으로써 보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선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지금 6천명이 넘는 한국 학생이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이 소르본대학에도 1백50여명이 와 있습니다.매년 15만명의 양국 국민이 서로를 방문하고 있습니다.이와 같은 인적교류는 두나라간의 이해증진과 협력확대를 위한 소중한 자산입니다.나라안에서 문화를 창조하는데 대학이 선구적 역할을 하듯이 나라간의 문화협력에 있어서도 대학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르본대학이 한국의 대학들과 교류를 더욱 강화하고 한국학생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 것을 기대합니다. 저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의 주인공인 빅토르 위고는 『도덕과 정치와 문학분야에서 소리나는 메아리(echosonore)가 되라』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나도 양국의 학술교류와 문화협력이 활성화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 남북대화 전망/하버드대 에버스타트 연구원(해외기고)

    ◎“KEDO본부 서울두면 대화물꼬 트인다”/한국형경수로 건설땐 이야기 오갈것/북,상호교류 반대… 「남 고립화」 획책여전 한반도의 두 정부는 단속적이나마 20년이 넘게 직접대화를 해 왔다.남한 여론은 남북대화에 매우 호의적이며 전보다 더 공식화된 토의 분위기 속에서 북한과 접촉하려는 김영삼정부의 노력을 확실하게 지지하고 있다. 남북대화에 대한 일반 국민의 긍정적인 태도는 당연한 것이다.일상생활에서도 불신관계에 있는 경쟁자 사이의 직접 논의가 불필요한 오해를 배제하고,예견치 못한 상호이익 부분을 확인하며,때로 화해의 길까지 열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19 90년대초의 남북대화는 바로바로 중단되고는 했지만 양측 사이의 긴장을 감소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널리 인식되었다.더욱이 남북대화 재개를 전제조건으로 규정한 지난해 10월 워싱턴­평양간의 (핵문제)기본합의서 서명으로 북한에는 대한민국과의 직접적인 외교적 행위를 회복하도록 법적 구속까지 지워져 있는 듯이 보인다. 남북대화의 가능성에 골몰하다 보면 세련된지식인들과 외교관들조차도 자칫 과도한 희망에 빠지게 된다.그러나 한반도 문제에 깊은 동정심을 지닌 한국 관계 관측통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한국 친구들에게 한마디 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선량한 한국 국민은 북한 체제에 대한 확고한 평가 아래 남북대화에 대한 희망을 자제해야 한다.그 체제의 본질과 목표,지도집단과 동일시되는 체제의 생존에 대한 위기감 등을 숙고한다면,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과 참된「대화」를 할 수 있는 폭이란 실로 매우 한정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북한 체제를 측량하기란 물론 쉽지 않다.북한은 오늘 날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체제다.그 체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지식은 분명히 제한돼 있다.예를 들어 외국의 관측통들은 평양의 가장 핵심적인 지도집단 구성원들의 이름조차도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 ○북체제 측량 어려워 그렇다 하더라도,우리는 명백한 것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왜냐 하면 그 명백한 것이 북한문제를 다루는 데에 아주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우리는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라는 것을 안다.확실히 이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는,북한 특유의 변용이 가해지기는 했지만,모든 고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사회에 대한 무제한의 경찰 통제,계획 경제,군비강화의 충동,당 주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등. 게다가 북한이 한반도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고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평양의 어떤 근거 숫자나 관청 조직도 그러한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남한은 통일된 사회주의 국가의 행정관할 아래 당연히 놓여야 할 것으로 돼 있다. 마지막으로,연속성이라는 요소가 북한 정부(지도인물이 종신집권하기는 하지만)의 구조와 정책에서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남한과의 접촉에 대한 오늘 날의 북한 태도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해석은 저마다 다르다.내가 볼 때,북한은 과거 수십년간 국제정세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동안 한가지 기본 전략으로 일관해 왔다.그 전략의 최대 목표는 북한 주도 아래 남한과 재통일하는 것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하다.이 목표는 19 50년 한국전쟁첫째 주 동안 거의 달성될 뻔했다.최소 목표는 북한 체제와 지도집단의 생존이다. ○적화통일 전략 불변 북한의 통치 집단이 이 최소 목표를 협상 의제로 내놓을 까닭이 없다.평양의 지배자는 최대 목표 또한 협상 불가 항목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북한이 한반도 나머지 부분에 대한 통치권 주장을 포기하는 것은 북한 자체의 합법성 논리에 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따라서,어떤 명분이든 서울과의 관계수립은 평양의 지배 기반을 위협할 것이다. 북한의 지도층이 서울과의 관계가 수립되면 북한 체제가 직접적으로 불안정하게 될 것으로 보리라는 것은 멀리 내다보지 않아도 알 일이다.북한의 그러한 관점은 고위층의 발언에서도 볼 수 있다.지난해 11월 김정일은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에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심기 위해 사상적 문화적 침투를 계속 획책하고 있다.우리는 간부들의 교양 과업과 사상적 투쟁으로 이러한 일탈행위를 뿌리뽑아야 한다』 그들은 관광,교육 교류,가족 방문,상업적 프로젝트,또는 인적 접촉과 관련될 만한 어떠한 남북 상호 교류도 환영하지 않는다. 교류가 실현 가능한데도 북한이 남한과의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북한 외교정책은 남한 정부를 비합법적인 위조품이며 미국의 꼭두각시가 조종하는 무대라고 하는 주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북한 체제에 대한 상황이 19 90년대에 변하기는 했지만 이 유별난 관점은 불변이다. ○남과의 접촉 안반겨 우리는 최근의 북한­미국 핵문제 합의가 남북대화 재개를 명시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평양과 워싱턴과의 합의일 뿐,협상 과정에서 남한의 공식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더구나 이 복잡하고 포괄적인 합의서가 서명되고 나서 이를 북한이 남한을 고립시키고 우롱하는 수단으로 쓰려고 꾀하는 징조를 벌써 보게 되었다.예를 들면,바로 지난주 북한은 올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면 핵합의를 무효화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다(이 훈련은 북한의 재래식 도발 위협에 대응키 위한 것이지핵위협에 대응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 불투명하다.그렇다 하더라도,북한이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한,남한과 진지한 대화를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가정할 수 있다.워싱턴·도쿄·모스크바·서울의 정부들이 다 함께 유약하고 일관성이 없게 되면,북한은 남북대화 압력이 끝났거나 적어도 끝나간다고 결론 내릴 것이다. 어떻게 남북대화를 진지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가장 적절한 한가지 제안이 있다.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 본부를 서울에 둔다고 발표하는 것이다.KEDO를 서울에 두면 북한의 행동폭을 줄여 남한에 대해 되풀이해 써먹은 술책을 못 쓰도록 하게 할 것이다.특히,북한 경수로 건설이 한국의 지도 아래 놓이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이야기를 나눌 것이 많아질 것이다. □약력 미국기업연구소(AEI)연구원 하버드대학 인구·개발연구센터 연구원 저서=「공산주의의 빈곤」 「북한의 인구」 「한국의 통일접근」(출간예정)
  •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북한부분 요지

    ◎북/개인별 충성도 평가… 교육·의료 차별/「6·25월남」가족 「적대분자」 분류 감시/“해방투쟁에 방해” 반체제인사 처형 미국 국무부는 1일 하오(한국시간 2일 상오)세계 각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음은 북한인권보고서의 요지. ◇총론 북한은 김일성사후에 김정일이 그의 아버지의 직책을 승계하지 않았지만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고용,교육,의료,상품구매,노동당 입당등에 이르기까지 각 개인별 보안점수에 따라 이용하거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를 확립해 왔으나 최근 수년간 이같은 충성성분제도가 다소 이완된 것으로 보여진다. ▲정치적 자유=정치범,반체제인사,망명자,기타(반김정일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군장교들도 있다는 보도가 있음)인사들이 즉결처형되고 있다.형법 52조는 「민족해방투쟁을 방해하는 제국주의자들과의 공모」등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실종=국제사면위원회의 93,94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인 시바타씨와 그의 부인 신성숙씨 가족을 포함한 상당수가 지난 65년 간첩혐의로 「보호소」로 간 이후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일본언론들은 적어도 20가족이 북송되었거나 납치되어 강제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도해 왔으나 북한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사면위의 보고서에 의하면 김명세씨는 지난 92년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이래로 부인과 자녀들 어느 누구로부터도 단 한마디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고문,잔학행위=최근의 상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지난 80년대에는 강제수용소를 탈출하려던 사람들에 대해 처형·굶기기 등이 예사로 행해졌으며 어떤 감옥소에선 3년동안 단 한벌의 옷가지가 지급되었다. ▲체포,구금,강제수용=망명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는 약 15만명의 정치범과 그 가족들이 변경의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신뢰할만한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에는 12개의 강제수용소가 있으며 전직 고관들도 수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면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현재 정치적 반대자 58명을 구금하고 있으며 이중 몇사람은 30년이상 감옥에 있다고 한다. ▲사생활 간섭=북한당국은 연령별·직업별 사상교육을 시켜오고 있으며 김일성이 죽은 뒤에도 김부자에 대한 숭배와 교조주의적 주체교육은 계속되고 있다.과거 한국전쟁시 남한으로 피난간 가족이 있는 월남가족은 아직도 「적대분자」로 분류되고 있으며 망명자 조갑제에 의하면 정치적 「불순분자」는 북한인구의 20∼30%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선택=김정일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노동당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북한언론들은 투표자의 99%가 노동당이 승인한 후보를 1백% 지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 한국전 재발땐 미 부담 1천억달러/러 주한사령관

    ◎북핵 통제돼도 재래무력 위력 여전 【워싱턴=이경형특파원】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은 26일 한국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1백여만명이 희생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한국에서 지상전이 벌어지면 그 파장은 수조달러에 달하고 미국의 투입 비용도 1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럭 사령관은 이날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북한핵 청문회에서 『핵문제는 통제될 것 같으나 북한의 대규모 재래식 무력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은 지도체제에 약간의 문제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평가하고 『중국·러시아로부터의 원조중단,경제악화 등으로 북한 기계화부대의 전투력은 향후 수년에 걸쳐 하강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그는 이어 한·미연합군의 방위력은 10을 기준으로 할 때 8·5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 미국민의 선택/시대상황 도전할 인물뽑았다(신 지도자론:2)

    ◎50년대/“2차대전 영웅” 아이젠하워 지지/60년대/“뉴프런티어” 내세운 케네디 등장/80년대/「확실한 보수주의자」 레이건 선호/90년대/“경제부흥의 적임자” 클린턴에 투표/내년11월 「새 세기 뉴리더」 선택에 관심 한 시대상황은 그 시대에 적합한 지도자를 낳는다.이같은 지도자의 선택은 미국민의 투표에 의해 어김없이 실현되어왔다. 다만 선거당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선거결과는 항상 역사의 필연이 어떤 것인지를 입증해주었다. 2차세계대전 후 반세기에 걸친 미국민의 지도자선택은 급변해온 시대상황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느냐가 국가발전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생생한 교훈으로 기록되고 있다. 2차대전의 전쟁영웅,아이제하워 대통령의 등장이 그러했고 뉴 프론티어의 깃발을 들고 혜성같이 나타난 케네디 대통령의 부상이 또 그러했다.월남전의 반전불길이 미국의 대학가를 휩쓸던 60년대 종반 외교의 천재,닉슨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나 냉전의 심화속에 강력한 미국을 내건 레이건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시대의 상황이 거기에 적합한 인물을 원했기 때문이다. 6·25사변,한국전쟁이 치열한 공방전을 겪으면서 지리하게 계속되던 1952년11월 제34대 미국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는 민주당의 오들리 스티븐슨 후보를 4백42 대 89표(선거인단기준)로 물리치고 압승했다. 2차대전당시 유럽의 연합군사령관으로 독일을 패배케 한 아이젠하워 원수가 이같이 전국을 석권하게 된 배경은 공산주의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어가는 가운데 이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는 미국민의 기대가 그의 지지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지 5년도 채 못돼 또다시 새로운 적,공산주의와 아시아에서 유혈대결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국민은 더이상 전쟁을 오래 끌지 않고 종전을 실현하면서도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61년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제35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미국민과 세계를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미국시민 여러분,국가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주십시오.세계시민 여러분,미국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우리 함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봅시다』 케네디가 약관 43세의 무명의 상원의원에서 대통령으로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그의 취임사에서도 일부 시사받을 수 있듯이 바깥으로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양극체제에서 미국의 역할을 새로 재정립하고 안으로는 경제발전속에 두드러지는 빈곤층의 문제, 흑인을 중심으로 한 민권운동의 확산에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케네디 후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시절 8년동안 부통령으로 재직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를 비록 매우 근소한 차이(총투표 6천8백만표중 12만표 차이)로 이겼지만 그가 내건 뉴 프론티어정신과 그의 신선한 지도력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미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다. 케네디의 지도력은 이상과 현실이 혼재하면서도 『독재와 빈곤과 질병,그리고 전쟁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하겠다』는 목표의 명료성으로 인해 신뢰할 수 있는 헌신적인 지도자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60년대 후반 미국은 월남전의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안으로는 반전무드가 확산되면서 국민의 여론은 양분되고 사회전체가 혼란의 와중에 놓이게 되었다. 68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63년11월 비명에 간 케네디를 이은 린든 존슨 대통령의 사회보장제의 확립을 겨냥한 「위대한 사회」건설이 이상에 치우쳤고 월남전의 고전과 함께 68년1월 북한이 미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는데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이었던 존슨행정부의 국제사회에서의 권위실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민은 월남전에서의 미군철수,공산주의 국가군과의 협상을 원했고 이에 따라 외교전략가로 평가를 받아온 닉슨을 지도자로 선택한 것이다. 80년대 들어 확실한 보수주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에너지위기등 경제침체와 함께 이란의 미국인질석방실패등 나약한 미국으로 치부된 카터행정부의 불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92년11월 선거에서 현직인 조지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된 것은 포스트 냉전체제를 이끌 지도자로는 「변화에 적합한 새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미국민의 정서에 힘입은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미국경제의 침체가 계속됨에 따라 신지도력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급상승했다.이에따라 92년초 예비선거때만 하더라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거의 확실시되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시행정부의 국정수행능력에 대한 회의는 높아졌다. 이와 함께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행정부간의 정치적 교착상태는 미국민으로부터 「워싱턴정가」에 대한 거부감을 낳았고 때마침 드러난 의원들의 수표불법남발사건은 「워싱턴의 현직정치인」에 대한 반발감을 증폭시켰다. 클린턴의 등장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민주·공화 양당에 대한 거부감이 소위 무소속의 「페로변수」로 나타남으로써 출범이후 계속 지지기반의 취약성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내년 11월 미국의선거는 21세기를 여는 미국의 새로운 지도력을 요구하는 시대상황을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한가지 분명한 것은 시대상황이 빠르게 변하면 그에 따르는 지도력도 빨리 변해야만 국가가 후퇴하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 합의이행 첫발… 효과보다 “상징”/미의 대북제재 완화 발표문/전문

    94년 10월 21일 합의된 미·북한 기본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해 우리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완화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다.이같은 최초의 조치들은 ▲핵계획및 시설을 동결하고 ▲동결을 확인하는데 미국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협력하고 ▲폐연료봉의 안전한 보관을 보장한다는 북한의 결정에 대한 응답에서 나온 것이다. 추가적인 대북한 경제조치들의 완화는 핵문제와 여타 우려 분야에 대한 추가적인 진전에 좌우될 것이다. 1.통신및 정보=북한과 미국간에 전화 통신 연결에 관련된 거래 허용,개인적인 여행과 관련한 크레디트 카드 사용및 여타 여행 관련 거래 허용,언론인들의 지국 개설 허용. 2.재정거래=미국에서 시발되거나 종결되지 않는 거래를 결제하기 위해 미은행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북한에 허용한다.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K) 정부의 물권이 아닌 동결 자산에 대한 봉쇄를 해제한다. 3.여타 무역=미제철업소에서 내화 물질로 사용되는 북한으로부터의 마그네사이트 수입을 허용한다.북한과 중국은 세계시장에서천연 마그네시아및 마그네사이트의 주요 공급원이다. 4.기본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한 여타조치=워싱턴과 평양에 앞으로 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하는 것과 관련된 거래를 허용한다.북한 경수로 사업에의 미국회사 참여,대체에너지 공급,폐연료봉 해체 등 미·북한 기본합의문에 규정된 사업에 대해서는 적용 법규에 맞춰 케이스별로 검토한다. ◎미의 대북경제제재 일지 ▲50년 6월28일=대북 금수조치 발효 ▲ 〃 12월17일=미국내 북한자산 동결 ▲51년 9월1일=최혜국(MFN)수혜대상에서 제외 ▲55년 8월26일=무기금수 조치발효 ▲61년 9월4일=대공산권에 적용하는 국제지원 일체중지 대상에 포함 ▲62년 8월1일=미국의 대외지원 금지대상에 포함 ▲75년 1월3일=무역특혜(GSP)적용대상에서 제외 ▲86년 10월15일=미국 수출입은행의 차관보험 및 보증대상에서 제외 ▲88년 1월20일=대북 금수,국제지원금리,무기금수 강화 ▲89년 1월3일=자산동결 일부 완화,학술·스포츠·문화등 비정치분야의 양측간 교류 일부 허용 ▲ 〃 2월2일=자산동결 추가완화,국가안보에 영향이 없는 정보관련자료 및 반출허용 ▲ 〃 4월24일=금수 일부완화,인도적 목적의 교역에 한해 선별허용 ▲92년 3월6일=군수물자 거래금지 대상에 포함 ▲93년 7월16일=미국무부,대북한 민항여행 위험 경고발효 ▲94년 8월11일=미상원 대북한 재정지원을 금지하는 대외활동세출예산법 수정안 만장일치로 통과 ◎미의 대북제재 완화 의미/「마그네사이트 수입 허용」 미이익 반영/관계개선­남북대화 연계 “대북 메시지” 클린턴 미행정부가 21일 발표한 대북한 경제제재완화조치는 「최소한의 합의이행」으로 평가되나 한국전쟁 이후 40여년만에 처음으로 경제관계 개통의 시발점이 된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완화조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가하고 있는 각종 제재나 규제의 1%에 불과할 것이라는 미국관리의 설명에서도 알수 있듯이 미국정부는 매우 신중한 자세로 임했던 것이다.작년 10월 제네바합의후 90일만의 시한을 하루 앞두고 발표한 이번 조치는 ▲미·북한간의 직통전화허용 ▲미여행자의 크레디트 카드사용허용 ▲언론지사 설치허용 ▲미국은행을 경유하는 북한과 제3국과의 금융거래허용 ▲일부 동결자산해제 ▲북한의 마그네사이트 직수입허용 ▲연락사무소설치,경수로 건설,대체에너지등 기타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거래는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마그네사이트를 제외하고 미­북한간의 직거래무역은 물론 직접투자 등도 아직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는 아직도 북한과는 정상거래나 통상을 할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다만 용광로 내벽의 내구재등 제철과정에 사용되는 마그네시아,마그네사이트의 직수입을 허용한 것은 이 자원의 생산국이 중국과 북한 두나라 뿐인데다 중국이 공급독점을 악용,엄청나게 수출세금을 부과하는 등으로 인해 미국의 철강업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진정과 함께 이의 직수입은 북한의 외화벌이에도 좋고 동시에 미국의 철강업계도 좋아하게 된다는 점을 높이 산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발표중 언론사 사무소의 개설허용은 어디까지나 상호주의를 적용,북한이 미국언론의 현지 취재활동을얼마나 보장해주느냐에 따라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미국무성 관계자는 평양에 미국언론의 지국이 생길 경우 북한측이 이들 언론지사에 적용할 예상활동범위는 현행 외교관의 활동영역에 준하는 자격을 줄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거래도 미·북한 은행과의 직접거래는 아직 허용되지 않으며 다만 북한측이 제3국과 거래를 할때 미국은행을 활용할수 있도록 한것이다. 북한내 여행자에 대한 1일 경비제한은 현행 2백달러에서 완전히 철폐되었고 크레디트 카드도 사용할수 있게 되었으나 우선 크레디트회사가 북한내 점포들과 일일이 상업계약을 체결해야만 실질적인 거래가 이뤄질수 있다. 미국이 이번에 「최소한의 완화조치」를 취한 이유는 남북한간의 정치적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한 미·북한관계도 급속하게 진전시킬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수 있다.공화당이 이끌고있는 미의회가 남북한관계의 진전이 없이는 대북한규제의 완화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신중한 조치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미·북한의 합의문을 북한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는지를 봐가면서 상응한 조치를 취해나간다는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적시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무부 당국은 추가적인 완화조치는 핵합의이행의 정도와 함께 미사일 수출,테러리즘,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남한위협등 「다른 관심분야」에 있어 진전의 정도를 감안,취할 것이라고 설명하고있는 점등으로 미루어 볼때 미·북한간의 완전한 경제관계는 정식외교관계가 맺어질 때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미,대북제재 일부 해제/45년만에… 추가완화는 남북대화 연계

    ◎연락소 운영 금융거래 허용/미국내 북한자산 동결해제/제3국 거래에 미 은행 이용/평양∼워싱텅 직접통화 허용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정부는 20일하오(한국시간 21일상오)제네바 북핵합의에따라 북한에 대한 정보 통신제재 완화와 동결자산 해제,부분적인 금융활동 허용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4개항의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발표했다. 클린턴행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않는 완화조치이지만 지난 50년 한국전쟁이후 45년만에 처음으로 북·미간 경제교류의 시발점을 만들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무부는 이날 공식 발표문을 통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일부 해제키로 했다고 선언,앞으로 북·미간에 직접전화통신이 연결되고 미국시민들의 북한내 크레디트 카드사용이 가능하게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북한은 제3국과의 거래에 미국금융기관을 이용하고 연간 5백만∼1천만달러에 이르는 철강원자재의 하나인 마그네사이트를 미국에 직접 수출할수 있게 되었다. 또 미국회사들은 40억달러가 소요될 북한의 경수로 전환사업에 참여할수 있으며 양측이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운영하는데 따른 금융거래도 할수있게 되었다. 미행정부는 미은행들이 관련법에 의해 잡고있는 1천1백만달러 상당의 북한자산의 동결을 해제하고 양국 언론사가 상대국에 사무실을 개설할수 있도록 했다. 미국무부 당국은 대북제재의 추가완화조치는 남북대화등 합의사항의 이행정도와 함께 미사일수출,테러리즘,재래식 군사력의 위협등 관심분야의 진전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밝히고 추가완화는 북한이 핵합의를 완전이행토록 압력을 가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외교수단이 될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무부의 연락사무소개설 전문가팀은 평양주재 연락사무소의 부지·건물등을 물색하기 위해 이달말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며 이번 조치에 따라 건물의 신축·개축등을 위해 필요한 송금등 금융거래를 할수 있게 된다. ◎“「일부해제」 유감”/북 외교관 【워싱턴 연합】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한 고위 외교관은 20일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규제 완화 조치에 대해 규제조치 완화가 단계적이라는 점에 서운함을 비치면서 북한은 이미 열흘 전에 미국에 대한 경제규제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풀었다』고 강조했다. ◎북­미 합의사항 이행/북한개방 도움기대/외무부 논평 정부는 21일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 조치를 발표한데 대해 『제네바 북·미 합의에 따라 미국이 3개월 이내에 취해야할 조치로서 북한의 핵활동 동결 등 의미 이행에 맞취진 초보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날 장기호 외무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한미 양국은 이번 조치와 관련,전반적인 북­미합의의 이행확보라는 차원에서 신중한 검토를 진행해왔으며 완화조치의 범위와 시기를 선정하는데 사전에 긴밀한 혐의를 했다』고 말하고 『이번 조치가 북한의 개방과 성실한 북·미합의 이행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 고시합격·하위공무원 1만명해외연수/일반행정분야 부처별 업무보고내용

    ◎언론계에 증면 과당경쟁 자제 촉구/공직자 4만6천명 추가 재산등록/임정요인 묘소 국립묘지 이장 추진/「경찰 통제선제」 도입… 폭력시위 엄단 ▷총무처◁ ▲공직의 세계화 역량 확충=고위직에 대해 특별연찬회,중·하위직에 대해 특별연수 등 전 공직자를 대상으로 1,2월중 세계화 특별연수를 실시한다.통상·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훈련 대상을 1천명 이상으로 확대하고 지역도 미국·일본 중심에서 중국·러시아·중남미 등으로 다변화,지역전문가를 양성한다.훈련기관도 학교위주에서 국제기구와 외국정부로 전환한다.하위직 1만명과 고등고시 합격자에게 해외연수를 실시한다.각급 교육원과 직장에 외국어과정과 외국어교실을 설치,운영한다.국내외 학위와 자격증 소지자에게 공직문호를 개방,민간경력을 공직경력으로 인정하고 계약제등 외부전문가 활용제도를 확대한다.국제전문가 육성을 위해 매년 3백명 선의 국제업무 특별과정을 신설하고 국제전문직위 5백여개를 지정하며 우수근무자에게 전문직위 수당과 외국어수당을 지급한다. ▲행정 생산성 향상=과단위 이하 조직의 개편권을 각 부처에 위임하고 지역적·집행적 사무를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한다.민간 자율성과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규제를 과감하게 폐지하고 규제에 대한 사전심사를 강화한다.각급 교육원에 사무개선과정을 설치하고 선진외국과 민간의 새로운 사무관리방법을 보급한다.올해 개인용 컴퓨터를 2명에 1대꼴로 보급하고 일상업무 6백여종에 대한 전산화를 추진한다. ▲공직사회 활성화=개인별 업무목표를 사전에 설정,실적을 평가한 뒤 승진·보직·보수등에 활용한다.5급승진을 시험위주에서 업무실적 평가결과를 반영하는 심사승진제도로 운영한다.97년까지 국영기업 수준으로 보수를 높이고 무주택공무원 해소를 위한 주택지원 4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공무원연금제도를 개선한다.재산등록 범위를 지난해 3만4천명에서 8만명으로 확대하고 장기근속자와 우수근무자를 위한 특별휴가제와 효친휴가제도를 검토한다. ▷공보처◁ ▲세계화지표 집중홍보=각 사회 분야에서 현재 수준과 선진국 수준을 비교한 「세계화 잣대」를 제시,단계별로 세계 7대 강국 도달을 위한 실천목표를 설정한다.세계화 추진의 수단별 전략으로 인적자원,법·제도,집행·운영,의식·관행 등 4개 세계화 추진수단을 체계화해 집중 홍보하고 이를 위해 세계화홍보위원회를 구성,범국민적 교육실천운동으로 확산시킨다. ▲뉴미디어시대 본격 전개=올해안에 CA­TV 32개 채널이 개막되고 연말까지 1백50만가구 가입이 예상된다.방송통신대학 채널등을 추가 신설하고 중소도시에도 종합유선방송국 운영을 점차 확대허가한다. 미국등에 교포위성방송망을 구축한다.미주지역의 20여개 모든 교포방송국을 대상으로 위성방송 송출및 수신체제를 구축한다.중국·러시아의 교포방송국에도 방송영상물을 적극 공급한다.미주권,유럽권,아시아권의 외국 위성채널을 빌려 위성방송 코리아채널을 개설함으로써 국내방송의 해외진출을 추진한다.일부 아시아국가들과 민간기업으로 구성되는 단일 컨소시엄을 형성,위성방송 아시아 채널을 개설해 각국 뉴스,문물소개,드라마 등을 편성·방송한다.96년 하반기부터 위성방송 개시를 위해 올해 위성방송관계법을 개정하고 방송주체를 선정한다. ▲언론의 세계화정책 지원=ABC제도 도입·정착을 지원하고,지면과당 경쟁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언론계 자제를 촉구하면서 신문계의 공동결의등 자율조치 필요성을 주지한다.언론연구기관의 기능을 대폭 보강,언론의 국제경쟁력지표를 연구·제시하도록하고 언론인의 국내외 장·단기 연수를 확대한다. ▲국내외 홍보 강화=지방자치 기획홍보전담반을 구성,범정부 차원의 공명선거 계도를 위한 종합홍보를 시행하고 사이비언론의 공명선거 저해사례를 엄단한다.물가·노사·환경·교육·교통·시장개방및 규제완화,정보화및 과학기술·에너지·지방자치·통일 등 국정홍보 10대 과제를 선정해 기획홍보를 추진한다.위기관리 홍보체제를 구축,대형재해 현상에 홍보팀을 파견해 프레스센터를 운영하는 등 효과적 관리홍보를 추진한다. ▷정무1◁ ▲세계화추진을 위한 정당체질 개선=중견의원의 당운영 적극 참여 도모등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당운영질서를 모색한다.중앙당과 지구당의 효율적인 운영방안을 강구,민주적 당운영체제를 확립한다.전문지식을 갖춘 외부인사에 문호를 적극 개방,정치의 선진화를 모색한다.일정기간 당원으로 의무를 다한 당원에 의한 지구당위원장 선출을 통해 대의정치를 활성화하고 정통성을 확립한다.당의 정책개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당 산하에 전문적인 정책연구기관을 설립한다. ▲행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국정협조 강화=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의 효과적인 운영을 통해 주요 정책에 대한 당정간 협의를 내실화 한다.야당에 주요 정책에 대한 국정설명회를 수시 개최하고 야당의 건설적 정책 대안을 국가정책에 적극 수용한다.부동산실명제의 7월 시행을 위해 다음 임시국회에서 여야합의로 관련법 통과를 위해 노력한다.국회의원선거구 조정을 위한 선거법 개정과 국회법상의 상임위원회 조정을 추진한다. ▲공명선거를 통한 정치개혁 정착=법에 어긋나는 선거운동을 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당이 자체적으로 제재하는 등 여당이 주도적으로 불법선거를 척결한다.능력과 덕망있는 사람을 지방선거후보자로 선정,유능한 인사들이 지역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선거후 지방화시대의 「지역단위 당정협조체제모델」을 검토한다. ▷법제처◁ ▲세계화추진을 위한 법적기반 조성=민간자율과 능력발휘를 저해하는 불합리한 법령을 정비하고 각종 규제완화와 병행,행정의 서비스 기능을 보강함으로써 정부조직개편의 효과를 극대화 한다.WTO협정등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법령과 국가간 인력및 물자교류를 제한하는 법령을 정비및 개선한다.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환경·보건위생등 민생 취약분야의 법제를 보강한다.법제처 법제관으로 「경쟁력강화입법지원반」을 확대 개편,세계화추진위원회등 관련 기구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세계화 입법을 지원한다. ▲법제조사및 해외홍보강화=각급 연구기관및 외국기관과 협력체제를 강화,법령 정보를 상호교환하고 주요 선진국의 최신입법자료를 조사·수집해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에 제공한다.주요국의 비관세 무역장벽등 통상제도,보조금제도,투자제도와 그린라운드,기술라운드등 국제통상 관련제도를 조사·연구해 무역마찰에 대비한다.외국법령 종합정보센터를 설치,선진 각국의 법령을 신속히 수집하고 소장하지 못한 러시아등 주요 국가의 법령집을 추가로 수집해 민간에 제공한다.통상·무역관련 법령 1백70여개를 연차적으로 영역,국제정보통신망을 통해 홍보를 펼친다. ▲지방화,남북협력 활성화에 대비한 법적 지원 강화=시·군등 일선 공무원에게 지방자치법과 자치입법 실무를 중심으로 법률교육을 실시한다.자치법규 제·개정때 필요한 입법자료와 법률적 의견을 제공하고 시·군등 일선기관에 출장을 통해 자치입법활동을 지원한다.북한의 대외경제·무역과 중국 베트남의 개방관련 법제를 조사·연구해 경제교류에 활용한다. ▷보훈처◁ ▲광복 50주년 계기 민족정기 선양사업=독립유공자 1천여명 건국훈장 포상 계획과 함께 국내 곳곳에 흩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 묘소 33위중 유족과 협의,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우선 유족이 이장을 희망한 7인에 대해서는 올해중 먼저 이장한다. 국외 독립유공자 및 외국인 독립유공자 관련행사로 광복절을 전후해 중국·러시아·미국 등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3백명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외국인 독립유공자 38명의 후손을 국내로 초청,광복절 경축행사에 참석시킨다.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국외에서 순국하신 윤현진선생등 선열유해 8위를 광복절에 즈음해 합동봉환하고 해외 순국선열들의 미확인 묘소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각 지역에 있는 독립유공자 묘소 2백10기를 국립묘지로 옮겨 안장한다. ▲국가유공자의 영예로운 생활보장과 예우기풍 진작=국가유공자의 노령화 추세에 따라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노후복지 종합계획」을 더욱 활성화하며 이의 일환으로 중부권·동해안·서해안·제주지역 등 4곳에 5백실 규모의 휴양시설 건립을 연차적으로 추진한다. 또 보훈병원의료진으로 하여금 벽·오지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및 재활용사촌에 사는 상이용사 가정을 한주일에 2차례씩 방문,순회진료를 실시하게 한다. ▲제대군인 지원 및 참전군인 명예선양사업 실시=한국전쟁에 참전한 미 참전용사를 위한 기념탑을 워싱턴에 세우고 개막행사를 지원하는 한편 제대군인2백여명에게 직장을 적극 알선한다.
  • 새롭게 출발 합시다/김창화 연극 평론가(굄돌)

    을해년의 새 날이 밝았다.겨울 가뭄에 시달리던 땅 위에 축복의 서설도 내렸다.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슴 마다 새롬새롬 기대와 희망이 솟아나듯 마른 가지위에 탐스런 눈송이가 얹혔다. 1995년은 해방된지 5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1945년 8월 광복의 기쁨이 온 누리에 넘쳤으나 지난 50년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해방과 독립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민족의 분단과 한국전쟁의 상처는 이 땅의 모든 희망을 잠재웠고 4강의 틈새에 끼어 기적적인 회생을 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정부는 1995년을 세계화 원년으로 삼았다.세계화는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 국제사회의 냉엄한 무한 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됐음을 의미하며,아울러 민족 내부의 갈등과 모순을 뛰어 넘어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힘찬 도약의 외침이기도 하다. 해방의 깃발아래 뭉쳤던 그 뜨거운 가슴들이 이제 세계화의 힘찬 함성을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나 빈 주먹으로 시작했던 50년 전.아무런 대안도 준비도 없었던 그날의 혼돈을우린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은 일본이 폐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일본은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새로운 출발은 그들을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뿌린 죄의 씨를 거두어 들이고 민족의 건강한 뿌리를 내리기 위함이다.미래를 지배하는 민족만이 쓰라인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우린 배웠기 때문에 그래서 세계화를 향한 우리의 출발은 세계와 함께 존재하기위한 우리 민족의 당연한 자리매김을 위한 것이다.
  • 세계질서의 중추역 꿈꾼다(일본 「21세기 야망」:1)

    ◎돈·기술·정보·인재… “일본은 있다”/하이테크산업에 전력투구… 초일류 유지/군사·정치 대국화로 줄달음/“슈퍼파워 재팬” 냉정한 직시로 「불행한 역사」 반복 막아야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계기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일본은 패전 50주년이 되는 19 95년을 맞아 과거청산을 「선언」하고 유엔상임이사국 진입을 적극화하는등 경제 뿐만아니라 정치·군사면에서도 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다.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변화하는 일본과 그들의 21세기 위상을 조망해본다. 일본의 1995년을 여는 아침해는 그동안 움츠렀던 전후 반세기의 역사를 거부한다.경제적 「슈퍼 파워」 일본은 패전후 50년동안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이제는 과거 침략사의 굴레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며 국제정치무대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한 일본의 하루는 해가 후지산 너머로 진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빅토리아여왕의 영국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이다.일본의 첨단기업과 연구소의 하루를 마감하는 불이 꺼지기전에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는 일본 공장과 연구소의 불이 켜진다.지구촌 곳곳의 일본공장에서 세계시장을 압도하는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일본의 엔화는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패전의 참담한 잿더미속에서 경제신화를 창조한 일본.그러한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며 일본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일본이란 말처럼 우리에게 착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도 드물다.가까우면서도 그러나 결코 가깝지않은 나라.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보려해도 가슴속 감정이 앞서는 나라.그러나 미국·유럽과 함께 21세기 세계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일본의 변화하는 21세기 위상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일본이 「세기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배경은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실현이라는 전략적 선택의 성공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전후 일본정치의 틀을 만든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국가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성장에 집중투자하는 국가정책을 채택했다.일본은 미국의 전략적 우산아래 매년 국민총생산(GNP)의 1% 미만만을 방위비에 지출하며 경제분야 투자에 집중했다. 일본 경제성장의 결정적 도약의 계기는 잘 알려진대로 한국전쟁이었다.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당시 중국·소련등 공산주의세력의 팽창을 막는 방패국가로 일본의 경제건설을 적극 지원했다.미국은 이에앞서 일본군대의 광적인 팽창주의 야심과 그들을 지원했던 재벌의 유착관계가 아시아침략의 원인이었다고 판단하고 일본의 민주화란 이름아래 이들의 해체를 단행했다.재벌해체 이면에는 사실 일본경제체제를 파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반공·보수주의로 급선회 일본을 아시아 반공국가 지원을 위한 군수기지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경제지원 정책으로 전환했다. 일본의 경제발전은 그러나 미국의 지원과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적절한 전략적 선택 때문만은 아니다.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정치적 안정과 관·민협동체제 아래 정말로 열심히 일한 일본의 근면한 손과 과학적 두뇌의 기술인맥이다.그들은 선진기술을적극 받아들이고 미국과 유럽이 지적오만에 빠져있을 때 밤을 밝히며 우수한 상품을 개발·생산해냈다. 일본은 또 미국이나 유럽이 「개인의 현재를 위한 소비」를 즐길 때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저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맺다.전후 일본은 산업시설이 파괴됐을 뿐만 아니라 자본부족도 극심했다.그러나 국내 저축률이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아지며 많은 돈을 저축했다.미군을 상대로 돈을 벌었던 게이샤(일본기생)들조차도 미군에게서 받은 달러를 암시장이 아니라 은행으로 갖고 갔다고 한다.일본정부는 저축된 자금을 우선순위가 높은 산업발전에 집중 투자했다.지금은 자본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미래를 예비하는데 있어서 저축 뿐만이 아니라 인재를 아끼는데도 탁월했다.일본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과 전쟁의 패배라는 참담함속에서도 폐허가 된 국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우수한 인재들을 전쟁의 죽음으로부터 보호했다.그 방패막이 역을 맡았던 것이 일본해군의 단기 장교제도다.일본은 「단기 현역해군주계과사관」이라는 제도로 우수한 인재들을 온존시켰다.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육군 쫄병으로 징병되어 전장에서 이름없는 병사로 죽어가서는 안된다.그것은 일본의 손실이다.인재를 남겨놓지않으면 일본은 멸망한다』.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단기 해군장교로 임관했던 3천여명의 인재들은 전후 관료·기업·경제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며 오늘의 일본을 만드는데 크게 공헌했다. 인재를 아끼는 것은 일본의 기업관에서도 잘나타난다.일본은 인간이 제공하는 노동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않는다.인간을 교육을 통해 부가가치가 더욱 높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가치창조자」로 보고 있다.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기업관을 배경으로 일본기업은 특히 역경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했다.일본기업은 70년대 1·2차 석유위기를 맞자 에너지 절약형 산업구조로 바꾸고 하이테크화를 서둘러 경쟁력을 강화했다. 1985년 9월 22일.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선진 5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가 열렸다.그 결과는 엔고의 가속화를 알리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로 나타났다.플라자 합의 직전의 환율은 1달러당 2백40엔이었다.그러나 89년초에는 1달러에 1백20엔으로 엔의 가치가 두배나 올랐다.일본경제를 이끌어온 자동차·전자등 수출기업들은 한때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그러나 일본기업들은 경영의 합리화·하이테크화에 박차를 가하며 엔고를 극복 국제경쟁력을 더욱 높였다.그러한 노력은 지금 더욱 강도를 높이고 있다.플라자 합의는 전후 40여년간 세계경제에 군림해온 「막강한 미국」의 종언을 의미한다. 일본 첨단기업들은 80년대 기술의 스승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했다.컴퓨터계의 거인 IBM까지도 일본전기(NEC)·히타치·도시바·후지쓰등 일본 첨단기업들의 도전으로 경영위기를 맞았다.세계의 거리에는 도요타·닛산·혼다등 일본자동차가 질주하고 있다.소니가 미국의 혼이라고 하는 콜롬비아영화사를 구입하고 미쓰비시가 록펠러빌딩을 사들인 것을 비롯,일본기업들은 엔고를 활용,「세계의 부동산」을 사들였다.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기술의 광인」들도 세계 일류를지향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땀을 흘려왔다.일본은 더욱이 미국의 「정보 슈퍼하이웨이」 구상에 대응,정보분야 투자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통계지표(93년)로 더욱 분명해진다.무역흑자 1천4백억달러,해외순자산 7천억달러,1인당 국내총생산(GDP)3만3천7백64달러,외환보유고 9백90억달러,차관공여 2천4백10억달러,그 앞에는 모두 세계 최고라는 접두어가 붙는다.일본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경제의 거의 15%를 차지하고 있다.일본의 93년 GDP는 4조2천75억달러로 미국(6조2천8백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1950년 일본의 GNP는 미국의 20분의 1에 지나지않았었다.그러나 지금은 거의 3분의 2수준이며 2000년대는 미국과 비슷해질 전망이다. 「강대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그의 새로운 저서 「21세기 준비」에서 「일본은 기술에 의해 주도될 미래 변화에 가장 준비가 잘돼 있는 나라」라고 지적했다.미래학자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볼때 과거의 지중해 시대에서 현재의 대서양시대를 지나 앞으로는 태평양시대가될 것으로 전망하며 일본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국가권력문제의 권위자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과거 4반세기에 걸쳐 세계경제에서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일본의 몫이 두배로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얼마전까지만해도 국제질서와 세계경제 게임룰을 만들었다.그러나 지금은 세계 제일의 무역적자국과 채무국이 되며 국가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일본에서 빌려오지않으면 안되는 처지로 전락했다.미국만이 국제룰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으며 일본도 경제게임룰을 만드는 강대국이 됐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앞으로의 세계는 국경없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냉전의 이데올로기 전쟁시대가 끝나고 국경없는 경제전쟁시대가 도래하며 일본이 쌓은 부의 축적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발족에 따른 자유무역의 확대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볼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고서는 예측한다.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은 일본이 경제대국으로만 안주하지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사실이다.경제력에 걸맞는 정치·군사적 영향력도 행사하겠다는 것이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이다. 일본의 그러한 변화를 우리는 냉정한 눈으로 보고 있는가.우리는 일본의 실체를 감정적 판단으로 덮는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일본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기에 지나지 않는다.일본은 역사속에 존재하며 강대국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일본의 그러한 변화를 바로 보고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광복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뜻깊게 하는 참다운 역사인식일 것이다.
  • “검증 거친 객관적 사관정립 급선무”(새로 쓰는 한국현대사:1)

    ◎발제 정담/사료 발굴·생존자 증언 채록 서둘러야/미·러에 흩어진 「6·25문서」 정사 필수/정치적 시각 배제,종합분석 시도할때/「유례없는 고속성장」 긍정적 측면 부각하는 것도 필요 □참석자 김용호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서울대 정치과및 동 대학원 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 박사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서울대 정치과및 동 대학원 졸 미국 피츠버그대 정치학 박사 서울대교수·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이종은 국민대교수 서울대 정치과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켄트주립대 정치학 박사 올해는 광복 50주년이 되는 해다.그 반세기는 현실적으로 우리와 함께 해 온 당대사로서의 현대사에 해당한다.그럼에도 우리 현대사는 더러 왜곡 기술되는 오류를 범해왔다.이른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에 입각한 양극화 시각에서 비롯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그래서 서울신문은 새해부터 현대사의 객관적 정립을 위한 장기 시리즈 「새로 쓰는 현대사」를 연재키로 했다.이에 앞서 전문학자들이 참여한 정담을 통해 오늘날 현대사연구의 동향과 문제점을 짚어 보고 올바른 역사인식의 지평을 여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김학준이사장=우리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최근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특히 1980년대 이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해방이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많은 업적이 나왔습니다.그런데 80년대 이후에는 좌파적 시각이 주류인 것처럼 등장했어요.이것 때문에 해방 이후 역사서술에 왜곡된 부분이 많았고 오해된 부분도 많았습니다.이제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생각입니다.먼저 한국현대사에 관한 서술 동향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김용호교수=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진 배경에는 탈 냉전의 국제적 변화와 국내적으로는 민주화에 따라 과거와 다른 여러가지 시각과 이론의 분석틀이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를 일별하면 아직도 총론적 연구가 많고 각론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건이나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깊은 연구는부진합니다.그리고 김이사장의 지적처럼 이제까지 현대사에 대한 분석틀이 너무 객관적이지 못했어요.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은 정치이념이나 시각에 맞추어 역사적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으로 정확성을 기해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종은교수=흔히 좌파적 시각은 수정주의적,우파적 시각은 전통주의적이라고 말합니다.그런데 역사적 사실을 전통주의적 시각이나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만 볼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떠한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검증하는 사회과학적 방법이 있는 만큼 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 진다면 그것을 구태여 어떤 시각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보다 사실을 사실로 보는 역사인식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이사장=저로서는 무엇보다 해방뒤 역사적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 인식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사료지요.사료에 입각해 역사적인 사실을 인식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그 것이 과학적인 접근의 출발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입니다.그런 점에서 볼 때 그동안 사료 발굴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를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사실 우리 학문 풍토에서 보면 분석을 제시하기에 앞서 주장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이런 점에서 서울신문의 이번 특집이 사료발굴의 중요성을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교수=한국현대사와 관련된 자료발굴에 있어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격동기에 활약한 많은 분들의 기억을 하루 빨리 담아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지금 이 시기에 그분들의 기억을 담아두지 않으면 고령인 만큼 유실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교수=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록을 잘 남기지 않지요.그런 점에서도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은 중요합니다. ▲김교수=사료는 체계적으로 발굴되고 보존·정리되어야 합니다.정부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이같은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외국에 흩어진 많은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해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또 사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이 개인적으로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만큼 서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김이사장=해방 이후 좌파적 시각은 북한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한 정권이고 남한은 외세의 앞잡이들인 만큼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이라고 설명해 왔지요.그러나 최근 그런 사관이 자연스럽게 극복되고 있습니다.새로운 사료가 발굴된 결과 입니다.1991년 소련이 해체되는 것을 전후해 옛소련에서는 북한정권이 어떻게 성립되고 김일성이 어떻게 권좌에 올랐으며 북한정권이 어떤 길을 밟아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었습니다.이런 자료를 종합하면 결국 북한은 소련의 위성국가로 출발했고 김일성은 소련점령군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들이 드러났지요.이렇게 되니까 과거 북한이 민족사적인 정통성을 계승한 정권이라는 식의 해석은 설 땅을 잃어버렸습니다.자연히 왜곡된 시각이 교정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이렇게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의 발굴과 정확한 진상의 파악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됩니다.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자료는 어디에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김교수=미국에는 6·25 때 노획한 문서들이 연방문서처에 있습니다.북한의 정권수립 과정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이지요.또 트루먼기념도서관과 맥아더장군기념도서관·케네디기념도서관·존슨기념도서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러시아의 경우 외교부문서처와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문서처·러시아국방부문서처·KGB문서처 등 네곳은 꼭 찾아보아야 합니다.중국에도 특히 북경대학에 한국전쟁 관련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이사장=이제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 연구의 한계점은 무엇이고 제기되는 문제는 또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김교수=현대사 연구에 있어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만 너무 강조되었다는 점이지요.예를 들어 그동안 민주화 노력 과정에서 정치체제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국내외의 지지를 확보하려 한 것 등이 이유가 되겠지요.그러나 앞으로는 긍정적인 측면도 객관적으로 균형있게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너무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 성숙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교수=그렇습니다.서구에서 2백년에 걸쳐 이룬 부국강병과 민주화를 우리가 따라잡았다고 하기는 곤란하지만 그래도 불과 40∼50년만에 어느 정도 이룬 셈입니다.그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 때문에 우리 역사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지요.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 만큼 성장한 나라도,우리 만큼 민주화된 나라도 없다는 인식이 옳은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그런데 그 왜곡이라는 문제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왜곡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보면 있을만한 이야기지요.왜곡된 시각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올만한 이유는 다 있었습니다.좌경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친일 매판자본가들의 존재는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지요.또 산업화하고 부국강병하는 과정에서 소외계층이 생기고 계층간에 격차감이 생긴 결과 그같은 시각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그것을 호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오히려 그 이유를 세심히 분석해 앞날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김이사장=좋은 지적이었습니다.그러면 건국 이후 우리 역사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저는 발전론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진상에 가깝지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지난날 부정 일면으로 매도하는 분석이 많았고 그 결과 우리 국민이 걸어왔던 길이 전면적으로 매도되는 측면이 없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발전론의 시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로서 우리 만큼 빨리 이같은 발전을 이룩한 나라도 드뭅니다.우리가 이런 것을 긍정하는 측면에서 지난 50년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교수=그렇습니다.우리의 지난 50년간과 서구의 민주주의 발전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나 합니다.우리와 1945년 같이 출발한 남미나 필리핀 인도 대만 같은 나라들과 비교함으로써 현재 우리의 위치를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역대 정권이 자기 정권을 정당화 시키는 방편으로 선임정권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연속성보다는 단절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긍정적이고 균형된 시각이 필요합니다.
  • 95한반도 주변 정세 전망/전문가 대담

    ◎전환기 동북아 “새질서 진통”/서울­평양관계 “제자리 걸음”/북­미합의 이행여부가 평화공존 관건/북,한국고립 노려 대미 「추파외교」 가속/「정상회담」 빠르면 하반기 성사 가능성/WTO출범 여파… 경제·안보환경 급변/주한미군 철수 쟁점화 가능성 대비를/중·러 불안 고려 일본과 급속한 군사교류는 “시기상조” 1995년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김일성사망이후 북한에 새로운 체제가 출범하고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국제기구의 활동이 본격화 되는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역동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는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따라 국제경제의 환경이 변화하고,핵확산금지조약(NPT) 연장등과 관련한 국제안보 환경의 변화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박수길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과 강성학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좌담을 통해 95년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와 우리 외교의 진로를 점검해 본다. ▲박수길원장=95년 국제정세는 일단 불확실성의 지속이라는 특성을 나타낼 것 같습니다.냉전체제가 붕괴한뒤 세계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을 예측했습니다.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95년에도 전환기적인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입니다.이는 세계정세를 주도해가는 주요국의 리더십 결여와도 관계가 있습니다.특히 미국이 국내문제에 전념해서 신세계질서 창출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결여된 전략적 무기력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확대등 지역주의의 확산과,유엔의 기구개편을 통한 역할 증대등과 같은 현상도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분쟁은 늘듯 ▲강성학교수=미래에 관해 얘기를 하는것만큼 모험적인 일은 없을 겁니다.새 국제질서가 아직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말하자면 청사진이 없다는 것입니다.나폴레옹전쟁이후엔 세력균형이란 것이 있었고 1차대전이후엔 국제연맹,2차대전이후에는 국제연합이란 것이 있어 어느정도 미래예측이 가능했었습니다.그러나 91년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소위「신세계질서」라는 국제질서를 꺼내봤지만 현재의 국제정세는 확실한 비전없이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적어도 95년까지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아 군사단극체제가 계속될 것입니다.이에 따라 국제체제는 안정을 유지할 것입니다.이 안정체제 아래서는 과거의 냉전체제에서도 그랬듯 한편으로 자유세계의 결속을 강화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많은 대립과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됩니다.95년에도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소규모 지역분쟁이 다반사로 표출될 것입니다.현재는 미국의 초강대국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동의 문제에 대해 미국이 책임회피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셈입니다.아무래도 국내정치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고 비용을 요구하는 일에 대해 선뜻 나서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박원장=세계적인 현안(GLOBAL AGENDA)의 해결에 초점을 맞춰보면 좀더 밝은 면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가 무기한,또는 상당기간 연장될 것으로 전망됩니다.화학무기협정(CWC)도 발효될 가능성이 크고요.또 내년에는 유엔이 50주년을 맞아 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되고,이는 결국 국제 분쟁에 대한 유엔의 대처능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세계무역기구의 출범도 국가간 상호의존성및 협력의 증대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겠죠.물론 종교·민족·인종 분쟁이 지속될 가능성은 여전합니다.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평화지향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강교수=최근의 유엔을 보면 2차대전후 마치 루스벨트의 꿈이 현실로 돼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올해 95년에는 유엔 50주년을 맞아 개편논의도 활성화될 것이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문제나 한국의 비상임이사국 진출문제등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그러나 유엔기구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수단이어서 많은 한계를 노출시킬 것입니다.지금까지 유엔평화유지군 활동등을 보면 유엔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상당 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있습니다.많은 나라들이 유엔의 역할확대의 필요성을인지하면서도 실제로 성공을 뒷받침하는 재정문제등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저는 95년에 유엔이 국제적 갈등을 얼마나 해소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한·미관계 재정립 ▲박원장=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유엔은 보스니아 사태라든지,소말리아 내전에서 한계가 드러난 셈이죠.그러나 유엔이 없으면 인류가 기댈 수 있는 국제기구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또 현재 추진중인 평화유지상비군이 출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결국 유엔을 이끌어 가는 나라의 정치적 의지와 관계되는 일입니다. ▲강교수=지난 89년 예일대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앞으로의 세계가 상호의존시대 아래 글로벌 마켓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미 예언한 바 있습니다.이를 입증이나 하듯 WTO가 출범했습니다.여기서 성공하면 몫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고 실패하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커지는 셈입니다.지금까지 지역협력기구가 있었지만 전세계를 활동무대로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 될 것이며 그만큼 우리는 무한경쟁속에서 살게 됐다고나 할까요.미국과 한국은 지금까지의혈맹관계에서 하나의 비즈니스파트너로 될 가능성이 큽니다.미국에 대한 새인식이 요구된다고나 할까요.미국은 「동북아지역속에서의 한국」보다는 「전체속에서의 한반도」를 조망할 것입니다.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군사적 개념에서 본다면 미국의 역할이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따라서 95년에는 주한미군철수문제라든가 유엔사령부의 해체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도 있을 것같아요. ▲박원장=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령부 해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최근 조지프 나이 미국 국방차관보가 제출한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미군의 전진배치를 계속 유지하고,다자안보대화를 추구하며,핵확산을 방지하고,동아시아에서 계속적으로 균형유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부시 대통령 당시의 3단계 감축 계획을 모두 바꿔놓은 것이죠.동북아 정세는 이중적 측면이 있습니다.전체적으로 보면 평화무드로 가고 있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이죠.다행히 북·미합의가 실천되는 단계에 들어갔는데 북한이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한반도에도 평화공존 체제구축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강교수=주한미군철수문제가 본격 논의 될 수 있다는 것은 곧 철수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한·미 동맹관계를 보면 두나라사이에 경직되고 관료화돼있는 숙제들을 풀어야할 부분들이 많습니다.그러나 최근 제네바의 북·미합의 이후 미군의 계속주둔은 과연 필요한 것인가의 문제가 미국내는 물론 주변관계국들사이에 터져 나올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미군은 모두 떠날 것이다』라는 하나의 가정위에서 모든 안보전략을 새로 세울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미국이 다자간 안보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없이도 안정과 평화상태가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박원장=동북아 정세를 점쳐보려면 미국의 대 동북아 정책에 유의해야 합니다.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동북아에서 안보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됩니다.이와 함께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클린턴 대통령이 93년 신태평양 공동체의 구성을 제안한 바와 같이 경제적 측면도 강조하고 있습니다.APEC등이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 수단인 셈이죠.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역시 안보공약의 확인에 중점이 주어지고 있습니다.공화당이 의회선거에서 승리한뒤 이러한 측면이 더욱 강화됐죠.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패권주의를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입니다. ○4강과 협력강화 ▲강교수=김일성사후 북한은 폭풍전야처럼 매우 조용합니다.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북한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하지만 남한과의 관계개선은 95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같습니다.왜냐하면 북한은 근본적으로 남한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 두려움이 계속 커진다고 봤을 때 북한이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리라고 보여지지 않아요.남한과는 계속 거리를 두면서도 일본과 미국에는 「추파」를 던질 상황도 쉽게 예견되지요.특히 김정일의 리더십을 보면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비전을 제시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조용한 상황이라는 것은 내부에서 김정일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없다는 뜻일 겁니다.대외적으로보다는 대내적인 혼란에 시달릴 수 있는 여러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박원장=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만 이루어지면 일본은 저절로 따라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한국은 아예 제쳐두려고 하지요.그러니 95년에도 남북대화가 활발하게 재개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다만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가 들어가자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곤란합니다.그것이 북한이 가진 딜레마죠.한국에 대한 고립정책을 취하지만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아닙니까.때문에 내년 후반기에 대화가 재개되면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겠습니다. ▲강교수=북한이 1차로 원하는 것은 핵무장이지 경수로의 지원은 아닌것같아요.경수로지원을 통한 이번의 핵해결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때문입니다.그들로 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요.따라서 북한은 절대로 핵문제해결에 있어 수세적인 입장을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오히려 더욱 큰 소리칠 가능성이 있으며 경수로해결을 위한 남한과의 대화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북한이 진실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한 경수로지원등으로 그들을 국제사회에 끌어낸다는 것은 서방의 자의적인 판단일수 있습니다. ▲박원장=한국의 안보는 스스로가 갖는 군사력과 미국의 안보공약이 가장 기본적인 요체입니다.좀더 나아가면 동북아 6개국을 중심으로한 안보대화를 통해 한반도 주변의 환경을 좀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다.만일 4강에 대해 차등외교를 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미국을 업고 4강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우리의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죠.역사적으로 근세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4번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한국전쟁을 제외하면 청·일,러·일,중·일전쟁등 3번의 전쟁에 일본이 관련돼 있습니다.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 속에 일본과도 미래지향적으로 경제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중국은 이붕 총리가 방한한 이후에는 안보면에서의 협력조짐도 있습니다.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은 남북한 가운데 우리쪽이 더 실리가 많다고 보는 것이죠.러시아도 국교정상화이래 한국으로부터의 대접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습니다.북·미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의 참여가 미흡한데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큰 테두리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우리 경수로를 두고 러시아 것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하지만 러시아는 4강의 다른 나라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강교수=한·일협정 이후 다소 예외적인 경우는 있었지만 한·일관계는 정부가 민간부문보다 앞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다고 보입니다.그러나 일본이 지금까지 보인 것은 대북지원을 통해 한반도분단이라는 현상유지정책을 취해왔다고 보여집니다.일본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며 일본과의 급속한 군사교류등도 서둘러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사고 탈피를 ▲박원장=끝으로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세계화의 문제를 한번 짚어봐야 하겠습니다.김영삼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의출범에 맞춰 세계화를 주창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생존전략으로 삼아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96년이면 우리가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기구(OECD)에도 가입하지만 우리 국민의 의식개혁이 가장 중요합니다.냉전시대를 지배하던 과거의 사고방식과 패러다임으로부터 탈피하여 세계를 활동무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강교수=동감입니다.세계화의 추진은 당연한 추세입니다.어떤 의미에서는 의도적으로라도 추진해야할 과제라고 여겨집니다.그러나 세계화를 추진하다 자칫 우리 자아를 상실할 우려도 있습니다.상대적으로 약소국가인 우리가 앞장서다 보면 틀림없이 스스로를 상실할 부분이 많지요.따라서 세계화의 추진만큼 우리의 주권강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남·북간의 경쟁은 끝난게 아니라 계속되고 있습니다.단지 그 경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뿐입니다.이 유리한 위치를 강화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새로운 안보전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북한이 「불장난」을 하지않도록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이러한 바탕위에서 세계화의 추진이 의미가 있을 겁니다.
  • 남·북긴장 완화돼야 북해체 당겨진다/브레진스키박사의 예진

    ◎미 지도력 약화… 세계질서 불확실성 여전/북경·평양서 권력다툼땐 「아·태시대」 도래 지연/경제블록화 가속… 동아경협체 등장 시간문제/보스니아내전 등 냉전유산 다음세기까지 문제로 □대담=이경형워싱턴특파원 1995년의 세계도 여전히 불확실성의 시대에 놓여 있다.석학이자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박사에게 새해의 국제정세와 한반도 장래에 대한 전망을 들어본다.브레진스키 박사는 현재 존스 홉킨스대 폴니체 국제정치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전략문제연구소(CSIS)고문직도 맡고 있다.지미 카터대통령 시절인 지난 77∼81년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하면서 미·중국 국교수립에 크게 공헌했으며 50년대는 미하버드대 교수로,60년초부터 89년까지 30년간은 컴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했었다. ­90년대 초반부가 탈냉전이 시작한 시대였다면 90년대 후반부는 냉전시대의 유산이 사라져가는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시대의 조류속에서 95년 한해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1995년은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보스니아 문제,구소련지역에서는 러시아의 입지와 그들의 야망,극동지역에서는 등소평이후 중국의 권력승계 물론 북한체제의 안정 여부와 그들의 진로 문제도 모두 미해결의 사안들입니다. ­다음 세기에도 냉전유산이 지속 될 것으로 보신다는 뜻입니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아마 다음 세기에도 계속 될 것입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분쟁보다는 인종적·종교적 상이성에서 오는 지역분쟁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이같은 경향은 금세기말까지도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십니까. ▲산업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던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은 더이상 현대적 의미가 없으며 그런 시대는 거의 끝났다고 믿습니다.이러한 혁명들은 모든 사회문제들이 인간의 본성이나 역사성에 관한 교조주의적 가설에 따라 해결된다고 보는 소위 「강압적인 유토피아」 사회로 나가는경향이 있었습니다.이같은 이데올로기적인 도식은 더이상 성립될 수 없습니다.그러나 종교적 감성에 의해 촉진되는 인종적·종교적 분쟁은 훨씬 뿌리가 더 깊고 특히 언어나 문화,역사에서 연유되는 국민의 심정적 정체성과도 많이 연관되어 있습니다.이같은 분쟁은 아마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오늘날은 과거에 세계를 이끌었던 진정한 의미의 초강대국이 없다고 생각됩니다.미국이 계속 세계의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까. ▲최근까지 초강대국은 미국과 소련 뿐이었고 이 둘중에서 이제 미국만 초강대국으로 존재합니다.미국이 과거에 비해 일관성이 부족하고 전략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미국은 분명히 세계의 지도국이고 또 지도국으로서 중심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예를 들어 미국은 핵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지만 과거처럼 목표가 분명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지도력을 구사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미국의 이같은 변화는 지도자 개인의 속성에서도 일부 연유하나 현재 대통령의 외교보좌팀도 그렇게 강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외교적으로도 전략적인 초점이 없는 것같습니다.클린턴 대통령도 외교문제보다는 미국내 문제 우선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유엔 평화역할 한계 ­보스니아 사태에서 보듯이 유엔이 국제사회에서 평화유지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봅니까. ▲유엔이 평화유지자로서 역할이 점차 사라진다는 명제는 잘못된 도식입니다.언제 유엔이 진정한 평하유지자였던 때가 있었습니까.그렇지 않습니다.유엔이 한국전쟁에서 싸웠을 때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주도 아래 싸웠습니다.우리가 유엔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평화유지자로서의 기능을 더욱 발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캄보디아가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유엔은 주요국가들이 이해를 달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이에 해당하는 예가 바로 보스니아 문제로 미국과 러시아간에만 견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프랑스와도 의견이 다르지 않습니까.이러한 상황 아래서는 유엔이 효과적인 평화유지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새해부터 새로운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출범합니다.이러한 신국제무역질서가 통상을 촉진하고 국제사회를 통합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봅니까.또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나 유럽공동체(EU) 등 지역경제협력체가 세계를 지역경제세력으로 분할하지는 않을까요. ▲WTO가 자유무역을 증진시키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 속도는 느릴 것으로 봅니다.무역장벽을 제거하는데는 앞으로도 수년이 걸릴 것입니다.이러한 장벽 가운데 법률처럼 명시적이고 공식적인 사항은 빠르게 제거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들중에 특정국가의 문화나 고유한 관행,전통에 뿌리박고 있는 비공식적이고 간접적인 장벽은 쉽게 제거될 수 없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WTO가 정착되면 무역자유화는 분명히 촉진될 것입니다.그리고 경제의 블록화는 세계무역의 자유화를 위한 필수적 과정의 하나라고 봅니다.지역적 협력에 바탕을 둘 때 범세계적인 협력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EU는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도 지역적 경제협력체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그리고 NAFTA도 AFTA(미주자유무역지대)로 확대되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 지역경제협력체도 외부에 대해 개방적일 때만 세계자유무역 신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급진적 경제성장에 힘입어 무기경쟁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특히 중국과 일본의 군사대국 가능성이 없지 않은 가운데 앞으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문제를 어떻게 봅니까. ○자유무역 촉진될듯 ▲극동지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나 열강들간의 경쟁도 심한 지역입니다.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주요한 열강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과 한국으로 하여금 안보문제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할 것입니다.이러한 틀에서 볼 때 주한미군의 유지는 지역안정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만약 미군이 철수한다면 아시아 열강들간의 세력경쟁 움직임은 크게 촉진될 것이며 다른 아시아국가들의 안보도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안보협력 강화해야 ­동아시아지역에서도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안보협력기구의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까. ▲유럽과 동아시아는 서로 여건이 다르다고 봅니다.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통합된 군사조직을 갖고 있지요.그리고 약간 느슨한 기구이지만 CSCE도 있지요.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안보기구는 아닙니다.만장일치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정치적·군사적으로 일정한 방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동아시아의 현 상황에 비추어 기껏해야 유럽안보협력회의 같은 기구가 형성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그것이 실질적인 안보협력체제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그리고 이는 열강들의 패권정치에는 효과적인 억제책이 될 수 없습니다.지역안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안보 문제에 관해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들끼리 즉 미국과 일본·중국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여타 국가들간의 더욱 긴밀한 안보협력을 증진시켜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그같은 안보협력이 이뤄진다 해도 오늘날 유럽과 같은 안보기구를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국과 아세안국가들을 포함한 동아시아지역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의 하나로 되고 있습니다.21세기는 동아시아·태평양의 시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무엇보다 경제기적으로 불리는 아시아의 성장에 관한 얘기는 많은 부분이 공허한 신화라고 생각합니다.아시아는 경제수준이 매우 낮은데서부터 출발했고 자본과 값싼 노동을 효과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고도의 성장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도 선진산업국가들의 과거 개발단계와 비교하면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닙니다.일본에서도 침체가 나타나듯이 한국도 아마 과거보다도 훨씬 많은 성장의 어려움을 맞을 것입니다.지금까지 보호속에 누려왔던 특수한 지위는 이제 더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중국의 경우 지금과 같은 성장을 지속한다면 오는 2020년까지는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만 국내에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한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또 동아시아에 중요한 안보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 지역의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동아시아가 현재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것이며 21세기가 동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가설은 변수를 무시한 독단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한반도 문제로 질문을 옮겨 보겠습니다.미국과 북한간의 핵합의가 남북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봅니까. ◎국제사회 멀지않아 핵위협 직면/독·베트남과 달리 점진적 흡수통일 가능할것 ▲한반도의 안정화에 기여할 것입니다.남북한 관계의 안정은 궁극적인 한반도 재통일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고 봅니다.북한체제는 이미 실패했습니다.그 체제는 또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위협을 느낄 경우 이를 방어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요.역설적이긴 하지만 보다 긴장이 완화되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종국적으로 통일을 촉진하는 북한의 해체를 앞당길 것입니다.남북한의 통일은 동서냉전에 의해 분단된 다른 두 지역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단계로 이뤄질 수 있을것입니다.베트남의 경우는 어느 일방의 군사적 승리에 의해 통일이 달성되었고 독일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한 정치·경제적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통일이 성취되었습니다.한국의 경우 제 3의 방법인 남한의 북한에 대한 우호와 협력에 의해 점진적 흡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개선 전망을 어떻게 보며 새해에는 정식외교관계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까. ▲1∼2년 사이에 외교관계 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만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북한간의 합의가 북한의 약속위반이나 미의회의 클린턴행정부에 대한 합의이행 유보 강요나 아니면 한국이나 일본이 경수로 제공에 따른 재정부담을 떠맡지 않으려 하는 등의 이유로 이행이 지연되지만 않는다면 미국과 북한간의 외교관계는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답변과 관련하여 새해부터 공화당이 장악하게 되는 미국의회가 북미 합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공화당으로부터 북미 합의에 대한 일부 반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나 합의 전부를 거부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그 합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해석이나 합의를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달성되었을 때 동북아의 세력 균형은 어떻게 될 것으로 봅니까. ▲무엇보다 통일한국이 핵을 보유하고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만약 핵보유국이라면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저해할 것이며 일본의 핵무장을 고무시킬 것입니다.둘째는 등소평 이후 중국의 권력승계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또 중국이 국제적인 체제에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으로 봅니다.그러므로 여기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개재되어 있다고 봅니다.적어도 중국의 권력경쟁에 있어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보다 확고한 민족주의적 대국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될 것으로 봅니다.이같은 경향은 이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같은 요소가 중국내부의 권력이양 과정으로 국한되고 이 과정의 갈등이 외부로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위험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따라서 한반도의 재통일이나 중국의 권력승계나 이를 싸고 발생할 수 있는 권력투쟁은 이 지역에 불확실성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는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요.핵기술 획득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국가들은 결국 핵보유국이 되리라고 봅니까. ▲핵확산을 전면 중지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완화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일부 국가들은 적어도 핵무기의 잠재능력을 보유할 것으로 보며 현재보다는 더많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할 것으로 봅니다.여러가지 가능성으로 볼 때 장래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핵무장한 지역 세력국가들간의 핵무기 분쟁이 어떤 형태로든 있을 것으로 봅니다.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국제사회는 실질적인 핵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94년은 세계난민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르완다를 비롯,곳곳에 5천5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유엔이나 국제사회는 더이상 내전이나 이같은 난민 발생에 대처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유엔이 캄보디아에선 잘 대처했으며 소말리아나 르완다에서도 합리적으로 대처했거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약 지역적 내전의 참화에 강대국간의 이해가 대립되어 있을 때는 유엔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유엔이 거기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 북,「평화협정」 체결 희망/미에 사과요구… 「송환협상」 진전없어

    【뉴욕 연합】 북한은 미군헬기 조종사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중인 토머스 허바드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에게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한국을 배제시킨 가운데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서울주재 미국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29일 보도했다. 한 미국관리는 북한이 미국에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북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희생시킬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허바드 부차관보에게 북한군부는 미군헬기가 첩보활동을 했으며 결코 방향을 잃고 월북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사과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북한을 방문한 미국 관리로서는 최고위급인 허바드 부차관보는 28일 북한 외교부관리들과 2시간반동안 회담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억류중인 보비 홀 준위도 만나지 못했다고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이 관리들은 북한이 아직홀 준위를 석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그러나 북한이 초기단계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타협의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조종사 즉각석방”/클린턴 거듭 촉구 【워싱턴·런던 로이터 UPI 연합】 북·미간 미군 헬기 조종사 송환협상이 별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28일 조종사의 즉각 송환을 거듭 촉구했다. 클린턴은 『홀 준위의 즉각 석방을 바라고 있고 그를 억류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점을 북한에 밝혀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토머스 허바드 미국무부 부차관보가 현재 평양에서 북한측과 협상을 진행중임을 들어 이 문제에 관한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홀 준위 처리 문제와 북·미 합의 이행을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변하길 거부했다. ◎“영공침범 자백” 북한은 29일 미군헬기 사건과 관련,생존조종사 보비 홀 준위가 썼다는 「자백서」를 발표하고 홀 준위가 북한땅을 불법 침입한 사실을 인정한 뒤 용서를 애원했다고 주장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 「자백서」는 홀 준위가 지난 25일 작성한 것으로 북한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홀 준위는 자백서에서 헬기가 격추되던 지난 17일 「감시정찰 비행업무」를 수행했으며 이에 앞서 11월초 한국에 파견된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정찰비행을 했었다고 말한 것으로 중앙통신은 전했다.
  • 미,50년대 북·중에 원폭 투하계획/합참본부 한국전 극비문서 공개

    ◎중국의 대북원조 종식시키려 단행 검토 미국이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54년 북한과 중국·만주일대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에 관한 극비문서사본이 한 대학 연구소에 의해 공개됐다.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 최영희·사학과)는 27일 이 연구소 객원교수인 방선주박사(워싱턴 거주)가 지난달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지시로 비밀해제된 한국전 관련 극비문서중 하나인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의 중국 공산당의 침략예측 보고서」(Possible CHICOM Aggression in Koreaand Indochina) 사본을 보내왔다며 이날 전문을 공개했다. 미 합동참모본부가 54년 4월17일 작성한 이 극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종결됐음에도 불구,중국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군사원조등 미국에 대항하는 적대행위를 계속할 경우 만주와 북한내 군사시설물에 대한 원폭투하를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한반도 일원에서 중국의 전쟁수행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공중폭격을 단행해야 한다』면서 『미지상군의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재래식무기 및 원자폭탄을 투하,적군을 일시에 섬멸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중국에 대한 공중폭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의 공산화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중국내 목표물에 대한 신중한 선별폭격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와함께 중국해안과 연안 도서들을 봉쇄하는 한편 중국본토 상륙을 위해 대만의 국민당 군대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계획은 미합참본부 「합동전략계획위원회」(JointStrategic Plans Committee)가 54년 4월16일 내부회의를 거쳐 작성한 것으로 각 예하부대는 이 계획에 따라 필요한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림대 이삼성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은 실제로 54년 5월 베트남 서북부 「디엔비엔푸」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열세에 몰리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월맹군 진지에 원폭을 투하하려 했으나 NATO회원국과 아시아국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며 『중국 원폭투하계획도 미아이젠하워 정부의 공산진영에 대한 「대량보복전략」(Massive Retaliation)의 일환으로 보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미국은 실제로 지난 58년 한국에 「제4미사일 사령부」(The Fourth US Missile Command)를 설치,이곳에 전술핵무기인 「어네스트 존」을 배치한 바 있다』고 밝히고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50년대 중·후반기 미국의 대한반도 핵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정전위 중대표 어제 완전철수

    【내외】 지난 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주둔해 왔던 군사정전위원회 중국군대표단이 15일 완전 철수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군정위 중국군 대표단은 이날 낮 북한군 대장 이종산과 평양시 행정경제위원회 부위원장 신한방,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표인 중장 이찬복을 비롯한 북한측 관계자들과 북한주재 중국대사 교종회등의 환송을 받으며 평양역을 떠나 중국으로 철수했다고 중앙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 베제크리크 천불동/허세욱(서역 문화기행:4)

    ◎화염산기슭 석굴 83개… 6세기 불교유적/위구르족 왕가 사원… 당시 생활상 벽화로 남겨/서유기의 무대… 삼장법사­손오공 등 3제자의 조각상 곳곳에 투루판은 그 동서를 관통하는 국도 312번에 놓여있다.그것은 신강의 최서단인 이닝(이령)에서 황하와 황해가 만나는 최동단의 상하이(상해)까지 장장 5천㎞,어쩌면 미국의 동서를 횡단하는 80번 하이웨이에 상당하다. 투루판에서 312번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40㎞쯤 달렸을 때,갑자기 그 왼편으로 빨간 바위산을 만나는데 그 형상은 얼핏 한국전쟁당시 철의 삼각지,아이스크림고지를 방불케하는 타원형으로 마치 험상궂도록 쪼글쪼글한 노인의 얼굴 혹은,여름날 여인의 풍덩한 주름 치마같았다.한 포기의 폴도 없이 세로의 주름살은 차라리 빨간 폭포가 쏟아지는 형상이었다. 그것이 바로 화염산의 남쪽 기슭이었다.그 맹렬한 화염의 섭곡을 보자 놀랍고 반가웠다.그 명성을 들은지 너무 오래라서 그렇다.당나라의 고승 현장(602∼664)의 「대당서역기」를 비롯,당나라의 유명한 변새시인 잠참(715∼770)이 이곳에서 벼슬하는 동안 썼던 경화산」,「화산운가송별」등의 명작,그리고 중국4대기서로 꼽히는 오승은(1500?∼1582?)의 「서유기」등에서 익히 화염산,그 「팔백리에 걸친 불길」을 들어 왔었다. ○홍산에 풀한포기 안나 화염산은 「홍산」혹은 「화산」으로 불렸다.그보다 위구르말로는 「쿠즈로다고」즉 홍산이란 뜻이다.그것은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넓고 낮은 동서 1백20㎞,남북 60㎞의 투루판분지에 동서 98㎞의 길이에 남북 9㎞의 폭으로 가장 높은 곳이라야 8백32m,평균 높이는 고작 5백m다.하지만 해발 이하의 분지라서 그 높이는 상당했다.연간 강우량이 겨우 16㎜의 초건조지역에 평균 기온이 섭씨38도 최고 기온이 49도나 된다.그래서 암석표면의 온도는 무려 80도를 넘는다.거기다 지층에 매장된 무진장의 석탄과 석탄에서 배출되는 가스로부터 폭발 연소도 적지 않다고 하니 「서유기」에 묘사한 대로 「화두 불길이 천길의 높이」란 형용도 결코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니었다. 필자가 화염산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은 지금부터 1천2백45년전인 기원749년,이곳에 당도했던 잠참의 「화산을 지나며」란 시에 잘 나타났다. 「화산금시견, 돌올포창동. 적염소로운, 염기증색공. 불지음양탄, 하독연차중? 아래엄동시, 산하다염풍. 인마주한류, 열지조화공」 (처음 만난 화염산은, 포창 동녘에 우뚝하여라. 화염은 오랑캐의 구름을 불지르고, 증기는 변방의 하늘을 찜질한다. 음양의 숯이, 어찌 여기서만 훨훨 타오르는가? 엄동설한에도 산밑엔 삼복의 열풍이. 사람도 말도 땀을 뻘뻘 흘리거늘, 누가 알랴? 자연의 조화를) 화염산 섭곡이 끝나는 승금구에서 312번 국도를 작별하고 좌회전하자 이윽고 빨간협곡이 열리면서 차는 화염산 북록을 휘돌았다.그 협곡의 정면에 보이는 둥근 모자모양의 홍산이 피라미드의 형세로 성큼 다가섰다.그것이 화염산의 주봉이었는데 주봉은 충격적 이라기보다 다소곳한 곡선으로 다만 풀 한 포기 없을 뿐 여느 동리앞을 지키는 안산의 크기였다.거기서 삼장의 길이 막히고 손오공이 파초의 부채로 재주를 부렸다는 곳이다. ○아래쪽 설수도 흘러 그 주봉아래로 기원6세기 고창왕국씨때부터 9세기까지 3세기에 걸쳐 위구르족들 왕가의 사원으로 건설한 석굴의 촌락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있고 천불동아래로는 파란 설수가 콸콸 흐르는 목두구.그리고 천불동 입구 편편한 산기슭엔 최근 「서주천성원」이라는 작은 전시장을 개설 해 놓았다.그 안에는 「서유기」의 주연으로 삼장법사를 비롯,손오공·저팔계등을 조소한 외로도 「팔십일난」을 도해한 동굴,동굴밖 언덕위로는 잠참의 입상과 그의 대표작인 「화산운가송별」을 새긴 시비가 있었다.그 시비에 새겨진 첫 절은 이러했다. 「화산돌올적정구, 화산오월화운후. 수운만산응미개, 비조천리불감래」 화산이 우뚝 적정 어귀에 섰거늘, 오월이라 불꽃 구름 뭉게 뭉게. 불꽃 구름 엉긴 채 풀리지 않거늘, 천리길 나는 새도 얼씬할 수 없네) 필자가 찾은 때는 다행히 쾌청한 9월중순 이어서 인지 불꽃구름커녕 흰구름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 진하디 진한 쪽빛 하늘 뿐이었다.그 쪽빛에 적갈의 산빛,골짜기와 석굴,길가에 굴러가는 돌멩이조차 일색으로 빨갰다. 그런데 그토록 숨 막힌 빨간 모랫벌과협곡에도 서원의 의지는 굴을 파고 예술의 꽃을 피웠었다.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그것이다. 화염산 주봉 동쪽 기슭엔 광장이 닦여 있었다.그 왼편엔 「서유기」의 일사삼도의 조상을 세웠는데 초입의 서주천성원에서 보았던 그것보다 규모가 큰데다 훨씬 정교하고 생동감이 있었다.그 바른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황갈색의 가파른 벼랑이 무르토크강(목두구))을 굽어 보고 있었다.과연 「베제크리크」란 지명이 「산 허리」라는 위구르말을 딸만했다. 기록상으로 석굴의 수는 83개라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50여개이며 그중 벽화를 소유했던 것이 40여개요 벽화의 총면적은 1천2백㎡라고.그것들은 열차의 창을 방불케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었고,그 내부는 대체로 석굴의 길이 20m에 5m의 폭과 5m의 높이의 장방형,거기다 천장은 동그란 궁륭식이라 쿠차의 키질,돈황의 막고굴에 비해 훨씬 넓고 시원했다. ○일부 벽화 손실 아쉬워 기원6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금 위구르족의 조선인 고창왕국씨들의 왕가 사원을 비롯,당시 불가의 승려·신도들의 승방,고승을 기리는은굴,혹은 그들이 좌선하던 비가라굴로 쓰였었다.당대의 문헌인 「서주도경」에 고창지역 불교의 승지로 소개한 「영융굴사」가 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인 것이다. 여기 벽화는 비록 석가모니 전생의 사적을 선양하는 본생고사를 비롯,서원도·경변도·공양상·인연고사등 불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왕공 귀족과 공양 신도들의 복식·가옥·거마·기악등을 통해 당시 불교를 신앙하던 회골사람들의 생생한 생활과 문화를 볼수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했다. 특히 33호 석굴의 「왕자거애도」에 그려진 여러나라 왕자의 각기 다른 모습과 표정은 마치 오늘날 정상들의 모임을 발불케했고,39호 석굴의 커다란 공양 보살의 풍윤한 얼굴과 굵직한 청화의 무늬,그리고 31호 석굴의 설법도에 그려진 보살의 성장과 복식등은 생생한 역사와 문화가 묻혀 있음을 직감케 했다. 그러나 20호 석굴과 27호 석굴에서 만난 복사물의 대체와 훼손된 잔화를 대하면서 허탈과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특히 20호 석굴의 서원도,회골국왕과 왕후의 형상은 10세기 당시 회골국 복식을 알수있는 증거임에도 절취된 채 지금 영인된 사진만 걸려 있음은 27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필자가 참관한 9호,37호등 석굴에서도 불상의 눈이 뭉개지거나 벽면을 도려낸 칼날의 선이 남아 여기 저기서 수난의 흔적은 완연했다. 베제크리크의 수난은 크게 두번 있었다.13세기말,몽골의 말굽 아래 처음 망가졌고,그를 전후해서 이슬람교가 흥성하면서 불교의 석굴은 쇠락을 거듭하였다.또 한번은 금세기초인 1902년,독일의 그륀베델과 로코크 등이 네차례나 답사를 빙자한 예술품의 절취가 있었다. 그 속에는 20호,27호 석굴의 것 말고도 회골귀족과 몽골인들의 복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공양도」와 회골문자가 들어 있는 「본생고사도」등이 절취당한 것은 통석할 일이다.더구나 그중 베를린 박물관으로 납치되었던 벽화 일부가 2차대전의 전화에 소실되었다니 서역의 찬란했던 회골문화의 운명도 꽤나 기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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