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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사 「백두대간」 대표(’97 젊은 문화주역:4)

    ◎예술영화 붐 일으킨 사장­감독/자작 시나리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로 연출 데뷔/미 UCLA서 이론·연출 공부… 기반 탄탄/“영화작업은 세상살이 발견해가는 과정” 영화사 백두대간의 대표 이광모씨(36)는 널리 알려진 영화인은 아니다.그러나 현재 상영중인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국식 정원살인사건」을 비롯,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등 예술영화 17편을 수입해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시네마텍에 올린 장본인이라면 어떤 인물인지 짐작은 갈 것이다. 그가 올해 감독으로 데뷔하기로 해 한국영화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까닭은,미국 UCLA대학원에서 이론과 연출을 공부하고 귀국한 이후 다른 젊은 영화인들과는 달리 영화계 손짓에 쉽게 응하지 않았기 때문.기획중심으로 상업영화를 만드는 국내 제작관행에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따라서 영화계는 이대표가 그동안 주장한 새 작품세계·새 제작방식을 정작 어떻게 구현할지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 그는 자작 시나리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으로 첫 연출에 나선다.이 시나리오는 지난 95년 미국의 제7회 하틀리 메릴 국제시나리오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두 가족의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다는 내용이다. 이대표는 『영화를 만드는 작업자체가 스스로와,인간·세상살이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므로 이 작품에서도 삶은 무엇인지,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주제로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구체적으로는 「생존한다는 자체가 힘겨운 전쟁의 와중에서 어른들은 타락하고,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부모를 증오·경멸하지만 결국 그것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임을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인생 자체가 어려우므로 이를 견뎌내려면 서로 보듬고 포용하며 살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제작방식도 관심거리이다.그는 『영화란 처음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부터 제작준비·촬영·편집·사운드믹싱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이 서로 다른 층위를 갖는 다층적 창작행위』라고 규정한다.가령 시나리오가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궁극적인 「영화적 상상력」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따라서 각 과정에 내재한 특수성을 최대한 끌어내야 좋은 영화가 된다고 강조한다.이러한 방식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정통방식이며,자신은 정통대로 한다는 생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시나리오를 다시 손보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밖에 제작부와 스태브진을 구성하느라 바쁘다.촬영은 5월 초에 들어가 넉달정도 진행할 계획이다.대기업에서 돈을 대지만 제작에 간섭하지는 못하리라고 자신한다.사전에 ▲제작시간을 충분히 주고 ▲캐스팅에 일체 관여않기로 약속이 돼있기 때문이다.다만 작은 걱정이 있다면 지난해 그에게 교수직을 준 학교(중앙대 연극영화과)일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영화는 다른 영상매체와는 달리 분명한 예술』이라고 확언하는 이대표는 『진지하고,현실을 섬세하게 반영하며,관객에게 힘있게 전달되는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 해외유출 문화재 6만4천782점/문화유산 지정·관리 실태

    ◎국가지정 2,661건·50년동안 1,500여건 발굴/문화재 보호법 등 관련 법령·제도 보완 시급 우리는 민족문화 역사를 흔히 5천년으로 잡는다.대륙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중국과는 크게 구별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이웃 섬나라 일본과 비교해서는 다분히 선진적이다.동양문화권에 속하면서도 독창적 경지를 개척한 것이 우리 문화이다.그 문화의 우수성은 「한국미술오천년전」과 같은 문화재 해외전시 등을 통해 입증했다.또 지난 95년 우리 문화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으로 전통문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정부가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데는 이같은 맥락의 배경이 깔렸다.우리나라의 민족문화유산 보존과 보호에 따른 제도적 근거는 1962년 제정 이후 8차례 개정을 거친 문화재보호법에 두고 있다.이 법에 따라 국가가 지정한 각종 문화재는 2천661건에 이른다.국가지정 문화재 가운데는 국보 288,보물 1천244,사적 393,사적 및 명승 6,명승 7,천연기념물 384,무형문화재 107,민속자료 232건이 각각 포함되었다. 이들 국가지정 문화재는 민족이 오랜 세월을 두고 남긴 귀중한 문화유산이다.그러나 수많은 외침에서 잃어버린 문화유산 또한 만만치 않다.중세 몽골의 침입이나 근세 임진왜란·병자호란은 덮어 두더라도 근대 열강의 침략기에 잃어버린 문화유산만도 엄청나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해외유출문화재는 일본 등 17개국에서 자그마치 6만4천782점이 조사되었다.이 가운데 약탈 흔적이 뚜렷한 것만도 1천507점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까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기 이전까지 문화재보호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더구나 정부수립 이후 곧바로 일어난 한국전쟁은 문화재 망실을 더욱 부추겼다.그래서 광복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혼란기를 통해 미국과 유럽으로 상당량의 문화재가 빠져나갔다.이 무렵 구미쪽에는 새로운 한국문화재 컬렉터들이 생겨났다.일제 침략기 일본인 컬렉터들과 성격이 다른 컬렉터들의 수집품이었지만 돌아올 길은 없다. 우리 문화유산은 지상 건조물과 이른바 동산문화재로 호칭하는 유물말고 매장문화재가 따로 있다.땅속에 묻힌 문화유산을 일컫는 매장문화재는 발굴에 의해 빛을 보는 속성을 지녔다.문화재보호법에는 매장문화재 발굴에 대한 규정이 들어 있다.그러나 첫 발굴은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기 이전 1946년 우리나라 학자들 손에 이루어졌다.국립중앙박물관의 경주 신라고분 호우총 발굴이 그 효시다.그로부터 50년동안 약 900여건의 유적이 우리 손으로 발굴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논리에 밀려 문화재가 늘 훼손된다는데 있다.문화재보호법과 그 시행령,환경영향평가제와 같은 문화재관련 법령과 제도가 보강돼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짚고 넘어갈 문제다.개발에 따른 공사시행 이전에 문화재 매장여부를 가리는 사전조사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또 전국적인 지표조사를 통해 매장문화재 부존을 미리 진단,문화재지도를 제작·활용하는 문제도 검토돼야 한다. 어떻든 「문화유산의 해」는 문화재보호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원년이 돼야 할 것이다.그래서 문화재를 보존·보호할 수 있는 내실적 사업을 차근차근 추진하길 기대해본다.
  • 새해는 신축적 대북정책을/이서환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시론)

    다사다난했던 병자년 한해가 저물고 정축년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해가 바뀐다고 해서 춥던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지거나 세상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바탕으로 한 인위적인 시간의 구분을 통해 지나간 일을 반성도 하고 앞날에 대한 새로운 각오도 다지게 된다.반복되는 자연현상을 기초로 한 시간구분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사전대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아마도 인간들만이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이러한 특권에 따라 병자년의 마지막날에 새해의 국제정치를 전망해 보자면,마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정축년의 국제정세는 기본적으로 예년과 같이 대부분의 국가들이 뚜렷한 전략적 목표의식이나 방향감을 결여한 가운데 대체로 국내문제에 매달리고 자국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대외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른바 탈냉전 특유의 현상유지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한마디로 세계 어느 곳에서건 여러가지 돌출적인 사태의 발생가능성은 매우 많지만 이를 정형화된틀로서 해결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가시화는 아직도 요원한 느낌이다. ○돌출사태 발생가능성 한반도의 사정은 어떠한가? 한반도도 국제정치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으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최근의 변화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첫째,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반도 주변 냉전구조는 범세계적인 동서 냉전의 종식으로 한·중 및 한·러간 국교수립 등을 통해 지난 수년간 서서히 와해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없다.물론 한반도 내부의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전쟁 이후의 군사적 대결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으며 북한은 여전히 한국은 철저히 기피한채 미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에 집착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한국기피 정책은 한·미관계의 분열을 노리는 공세적인 의도도 있겠지만 잠수함 사건의 사과에서도 나타났듯이 과거에 비해 그들의 체제 취약성을 반영한 수세적인 성격이 강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둘째,한반도 문제는 냉전종식에 따른 주변 4강의 대한반도 정책조정과 북한의 한국기피정책과 맞물려 점차 국제화,다자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북한 핵문제,식량문제 등은 이미 세계의 주목을 요하는 현안으로 부각되어 국제적 차원에서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으며 체제 붕괴가능성 및 북한의 연착륙 유도 등과 같은 북한자체의 문제도 점차 국제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상황은 국제문제 셋째,최근 체제붕괴론의 부각 등 북한의 정치적·경제적 위기 상황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대북정책 목표도 북한의 군사적·이념적 위협을 억제하고 차단하는 비교적 단순한 차원을 넘어 북한의 개방·개혁 및 변화의 유도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그 결과 한국의 대북정책은 점차 정치·외교·경제·군사·사회문제를 망라하는 복합적이고 종합·포괄적인 성격으로 변모해야 하는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주변환경 변화의 추세는 한반도 문제를 다룸에 있어 과거에 비해 우리의 선택과 책임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증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정축년 새해에는 기존의 우리 입장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상황변화를 감안한 보다 신축적이고 적극적인 대북정책 시행의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축적이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에 흔들림없이 대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의 불확실한 장래를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한반도 안정 및 통일을 위해 경제교류 및 협력을 확대해나가는 2중적 접근방법의 실천일 것이다. ○대북접촉 점차 확대를 해가 바뀌기 전에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이 마무리 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다자화·복합화되는 추세속에서 남북대결은 그 구조적 성격상 어떤 단편적인 문제의 해결 또는 사안에 대한 획기적인 제안을 통해 국면을 일거에 반전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우리는 이러한 점을 인식,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정축년 새해에도 대북한 접촉을 점진적으로 확대해가야 한다.거듭 강조하거니와 대북접촉이나 지원은 당장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축적되고 적절한 시기가 올 경우 북한의 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 「21세기 동북아와 대국관계」/원명 북경대 교수(해외논단)

    ◎동북아지역 충돌가능성 여전/경제·기술협력이 긴장해소 긍정역할 냉전이후 동북아지역의 국제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나.북경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인 원명 교수는 중국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소장 양성서)가 발행하는 외교문제 전문계간지 「국제문제연구」 96년도 제4기에 미·중·일 동북아 3대 강국 관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 관계를 전망·분석했다.원교수는 이 글에서 경제·기술등의 지구촌화,지구 일체화 흐름은 국제적 갈등해소에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냉전종식후 동북아에서 국제관계 조정국면은 여전히 마찰과 충돌 가능성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다음은 이 논문의 요약. 냉전종식후 주요국가들의 관계도 새로운 조정기를 맞고 있다.이 과정은 다음 세기초까지 이어질 것이다.19세기말부터 이 지역은 강대국들의 이익충돌과 흥정의 장소였다.20세기의 충돌형식은 한 나라가 흥하면 다른 나라는 쇄락하는 제로섬 게임과 같은 것이었다.20세기의 동북아의 국제관계는 유럽의 강권주의 정치에 의해 좌우되고 결정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이같은 과거의 관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냉전종식과 전지구의 일체화 추세는 동북아지역에 충격을 주고 있다. ○냉전후 주요국간 마찰 여전 역사적으로 볼때 이 지역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우선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열강의 각축장이 됐으며 주요국가가 영국과 러시아에서 미국과 일본으로 대치되는 등 주도국이 부단히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또 유럽국가들의 강권주의 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게임의 규칙」이 이 지역 국제관계에 일반화된 점도 그렇다.자위 수단이나 동맹국을 찾지 못했던 중국의 근세기의 위치도 특징이다. 동북아의 지난 몇세기는 패권쟁탈을 위해 합작보다 충돌이 지배하는 시대였다.이 세기의 동북아 최후열전은 한국전쟁이었다.2차세계대전 종식을 맞아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의 동북아관계 구상은 미국·중국·옛 소련등 세나라를 협력의 축으로 하는 것이었다.2차대전 직후에도 미국은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희망했다.그러나 공산정권이 수립되는등 중국 국내사정이 급변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동북아 주요국가 관계에 일본이 끼어들어 4강체제를 이루게 됐다. 상호의존적 경제관계의 심화와 전지구적 일체화는 기존 국제관계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상품·노동·자본의 국제적 흐름과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 혁명 등은 국제적 합작과 의존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환경보호 및 오염처리문제도 역시 그렇다.이러한 추세는 충돌보다는 협조를 가능케하는 요인들이다.그러나 역사의 관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주요국가 관계에서 마찰과 충돌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있다.아직도 냉전이후 주요 국가간 관계조정이 끝나지 않고 여진을 남기고 있다. ○상호 공존방안 모색해야 냉전종식후 국제관계에서 주요 국가들은 다자간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그러나 아직 쌍무관계가 주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미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아태지역 안전정책의 관건으로 본다.특히 올해초 개정한 「미·일 안보 신조약」은 중국에 대한 견제 및 억제 요소를 두드러지게 담고 있다.반면 경제부문에서 두나라는 자동차분규로 인한 갈등등 균열이 커지고 있고 미국내 반일감정도 높아지고 있다.중·일관계는 냉전이후에도 안정된 관계발전을 이뤄왔다.두나라 경제 보완성도 이같은 관계를 더욱 뒷받침한다.그러나 일본정치지도자의 최근 과거사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과 공개적 발언은 대일 불신을 높이고 있다.우경화 경향등 일본국내의 변화는 두나라관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중·미관계는 70년대 밀월,80년대 안정을 거쳐 지난 80년대말부터 마찰을 겪으며 냉각돼 왔다.특히 95년도는 최악의 시기였다.두나라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대만문제다.두나라는 금세기에 두차례 상호 필요성을 절감했다.제3자에 대한 전략적 연합이 그것이었다.첫번째 제3자는 일본이었고 두번째는 소련이었다.이제 냉전종식으로 제3자의 개념이 모호하게 됐다.이제 두나라는 전지구적 안정과 지역안보,평화발전을 위해 「상호 필요성」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위협론을 강조하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중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미국과의 대외관계 및 의존도를 높일 것이며 신국제질서에서 국제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한승주 전 한국의 외무장관과 같은 의견들도 있다.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안정은 서구적 모델과는 다른 시스템의 번영 가능성과 정치·경제·기술방면에서의 다원화를 상징한다.동북아지역 변화의 내부동인은 지역경제의 급속한 성장이다.앞으로 5∼10년동안 동북아의 주요국가들은 계속적으로 관계 재정립의 기간을 갖게 될 것이다.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국제관계의 새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정리=이석우 북경특파원〉
  • 최고인민회의 2년반째 “유명무실”

    ◎형식상 최고입법기관… 올해도 소집안해/김일성 사망이후 「비상체제」해제 안돼/김정일 공식승계 시점에 정상화 될듯 북한이 올해도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채 해를 넘길 것 같다. 통일원당국자는 최근 『지금까지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올해도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헌법상 입법권을 행사하는 최고주권기관으로 단순비교로는 우리의 국회와 유사하다. 최고인민회의는 인구 3만명에 1명의 비율로 선출되는 임기 5년의 대의원(현 9기는 687명)으로 구성되며 상설회의와 예산위원회·법제위원회 등 5개 위원회를 두고 있다. 북한 사회주의헌법 제6장 91조에 규정된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은 ▲헌법 및 법령의 채택수정 ▲주석의 선거 ▲주석의 제의에 의한 부주석·중앙위원회서기장 및 위원·정무원총리 등의 선거 및 소환 ▲인민경제발전계획의 승인 ▲국가예산의 승인 등 20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최고인민회의 회의는 정기회의와 임시회의를 가지며 정기회의는 1년에 1∼2회 개최되고,임시회의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할때,또는 대의원 전원의 3분의 1이상의 요청이 있을때 소집된다.그러나 최고인민회의는 우리의 국회와 같이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국가정책을 공식화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이는 회의가 3∼4일정도의 회기에 그치고 있으며 북한정권수립후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상정된 안건이 부결된 사례가 없다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의 의결정족수는 법령의 경우 대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대의원 과반수 찬성이다.헌법의 경우는 대의원 전원의 3분의 2이상을 규정하고 있다.표결은 언제나 거수로 해 무기명투표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그리고 회기가 워낙 짧아 거의 모든 실질적 활동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상설회의는 최고인민회의의 상무기관으로 ▲최고인민회의 휴회중 제기된 법안의 심의수정결정 ▲최고인민회의 소집 및 대의원선거 ▲현행법령의 해석 등을 주요업무로 한다.상설회의는 의장 1명,부의장 2명,사무장 1명,의원 11명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돼 있다.상설회의 의장·부의장은 최고인민회의 의장·부의장이 겸하는데 9기 최고인민회의의장은 양형섭이며 부의장은 지난 9월 여연구의 사망으로 현재 백인준 1명뿐이다. 대의원선거는 헌법상 일반·평등·직접·비밀투표에 의하도록 돼 있다.그러나 단일후보에 대한 찬반투표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선거라고 보기가 어렵다.또 비상상황으로 대의원선출이 연기될 경우 임기 역시 자동연장된다. 북한은 매년 3∼5월,11∼12월에 1∼2회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수정 및 국가예산승인 등 국정전반에 대해 심의 또는 추인을 해왔으나 지난 94년7월 김일성사망이후 2년반동안 한번도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열린 최고인민회의는 94년4월에 열린 9기7차회의였다.지금까지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를 열지 못했던 것은 한국전쟁 당시 즉 50년부터 53년까지의 비상사태 때뿐이었다. 북한전문가들은 최고인민회의 개최가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과 관련,현재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운영체제가 아닌위기관리비상체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전문가들은 최고인민회의에서 국가주석을 선출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는 시기는 김정일의 공식권력승계시기가 임박해서거나 또는 권력승계를 공식화하는 시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탈북 김경호씨 일가족 첫 나들이

    ◎가는 곳 마다 환대… 「따뜻한 서울」 실감/소감 묻는 보도진에 “좋다… 황홀하다”/“북 TV선 판자촌 인민들과 보았는데”/어린이들 장난감·놀이시설에 넋잃어 북한을 탈출,홍콩을 통해 지난 9일 서울에 도착한 김경호씨(62) 일가족 일행 17명이 입국 5일만인 14일 처음 서울 시내 나들이를 했다. 김씨 일행은 이날 상오10시부터 하오3시까지 서울 남산타워와 롯데백화점,남대문시장 등 시내 3곳을 차례로 돌아봤으며 가는 곳마다 시민들에 둘러싸여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버스 한대에 동승,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첫 나들이코스인 남산타워에 나타난 김씨 일행은 기다리던 보도진들이 소감을 묻자 한결같이 『좋다,황홀하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김씨는 남산타워 전망대 11층에서 자신이 태어나 한국전쟁까지 유년시절을 보낸 이태원을 바라보며 『너무 많이 변했어.저게 이태원이냐』라고 묻기도 했다. 김씨를 비롯,처음에는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였던 일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표정들이 환해졌으며 특히 어린이들은 장난감과 놀이시설에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다. 김씨의 차녀 명실씨(35)는 전망대앞에 펼쳐진 빌딩숲과 자동차의 행렬을 바라보며 『북한에 있을때 서울에는 판잣집만 있다고 들었고 텔레비전에서도 판자촌에 사는 인민들의 모습만 보았는데…』라며 놀라워했다. 남산구경을 끝낸 이들은 이어 중구 남산동의 한식집 「연정」에서 등심과 된장찌개로 점심식사를 한 뒤 롯데백화점 본점과 남대문시장을 방문했다. 김씨의 셋째사위 박수철씨는 점심식사중 『당국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구경도 못한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더구나 겨울철에 푸르고 싱싱한 남새(야채)를 먹는다는 것은 북한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임신 8개월째인 김씨의 넷째딸 명순씨도 롯데백화점을 돌아본 뒤 『북한에서는 생전 구경도 못하던 물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은 남한이 이런 줄은 꿈에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남대문시장은 때마침 토요일 하오를 맞아 쇼핑객들과 상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시민들은 휠체어를 탄 김씨를 금방 알아보고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박수를 치며 『남한에 잘 왔습니다.축하합니다』라고 열렬히 환대했다. 나들이가 끝날 무렵 김씨의 차남 성철씨(26)는 『북한에서 듣던 것과 너무 달라 놀랐지만 이제야 사선을 넘어왔다는 안도감이 든다』며 매우 만족해 했다.
  • “보안법 개정안 지지”/한국전 참전군인연맹

    한국전쟁참전군인연맹(회장 임부택)은 5일 성명을 내고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 재향군인회 세미나/이춘근·최창규 박사 주제발표

    ◎“6·25는 자유수호전쟁”/헌법전문에 명문화해야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는 3일 하오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범국민 호국정신선양 세미나」를 갖고 6·25전쟁의 호칭통일과 6·25 자유수호의 호국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춘근 박사(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는 「한국 국방사에 나타난 호국정신의 발전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6·25전쟁은 북한 및 국제공산주의라는 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에 「6·25자유수호전쟁」으로 지칭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최창규 박사(국가상징자문위원장)도 자유수호와 호국정신의 민족사적 정통성」이라는 주제발표에서 『3·1정신과 4·19정신이 헌법전문에 명시되었듯이 6·25자유수호 전쟁의 호국정신도 헌법전문에 마땅히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려본다. ◇이춘근 박사=한국전쟁의 의미는 우선 호국전쟁이었으며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정통성을 보유한 국가를 수호하는 전쟁이었다.과거의전쟁이 외적의 침입에 대항,국가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한국전쟁은 외적(소련·중공)의 지원을 받은 내부 반란자(북한정권)에 의한 대한민국 절멸의도에 대항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한국전쟁은 민족사에 나타난 전쟁들처럼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다.이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이 아직 이 나라 사회의 원로로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셋째로 한국전쟁은 인구의 10%가량 사상자를 냈을 만큼 근대 이후의 세계 7대 전쟁이었으며 민족간 싸움을 일으켰던 집단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일깨우는 경험을 남겼다. 이같은 한국전쟁의 교훈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6·25사변 또는 동란,외국인의 시각에서 가치중립적인 한국전쟁에 대한 호칭통일이 필요하다.한국적인 관점에서 보아 한국전쟁은 「자유수호전쟁」이 된다.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사멸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이 호국되었고 민족사의 정통성이 수호된 전쟁이기 때문이다.6·25자유수호전쟁은 북한이 말하는 민족해방전쟁에 대비하여 한국전쟁을 지칭하기기에 적합한 이름이다. ◇최창규 박사=4강이라는 오늘의 이중 양극의 세계사 속에서 그 세계성을 안고 한국사 안에서 치른 의전이 곧 6·25전쟁이었다.분단이라는 932번째 국난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사적 핵으로 볼 수 있다.세계성으로는 국난이었고 대내적으로는 국란이었다.따라서 그 의미와 좌표가 민족사적으로 정립될 때 민족사의 정통성과 법통성은 새로운 기반을 얻게 된다.그것이 바로 자유수호전쟁으로서 6·25의 호국정신이 갖는 민족사적 정통성의 기반이다. 6·25전쟁같은 동족상잔 앞에 자유수호가 승리해야만 이 민족사 위에는 의병도 살아나고 정통성도 함께 살아난다.그 민족사적 실질의 현장이 바로 대한민국의 법통성을 국시로 밝히고 있는 헌법전문의 명문화이다.우리의 헌법전문 속에 당당히 6·25 자유수호전쟁의 호국정신이 3·1운동이나 4·19정신 처럼 국시의 내용으로 명시되어야만 한다.
  • 인터넷·CD롬·백과사전 등 외국출판물/“한국관련 정보 오류많다”

    ◎데이콤·서울시,정보검색대회 결과/총527건중 「동해·국토」 일 영토표기 331건 최다/「한국전 발발 48년」오기 지적 김상준씨 대상에 인터넷·백과사전·CD롬 등 전세계 공식적인 문헌 및 자료에 나와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정보 가운데 동해를 일본해로,또는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하는 등의 지리적 오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데이콤과 서울시가 최근 실시한 인터넷과 CD롬,백과사전등 전세계 공식 출판물이나 자료중 한국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는 정보를 찾아 내는 「한국 바로찾기」의 정보검색 결과다. 이번 정보검색대회에 접수된 총 527건의 지적사항 가운데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거나 독도를 일본영토 또는 일본과의 영토분쟁지역으로 표기한 지리적 오류가 331건으로 가장 많았다. 또 우리나라 독립일을 1948년으로 표기하는 등의 역사적 오류가 85건,태권도는 가라데를 모방한 무술이라는 등의 문화적 오류가 33건으로 집계됐다.이와함께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로 표기하는 등 표기오류가 22건,태극기에 관한 오류가 17건,기타 39건이 접수됐다. 한편 데이콤과 서울시는 이같은 응모작에 대한 심사작업을 벌여 대상에 월드애틀라스 백과사전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1945년부터 기술하고 한국전쟁 발발연도를 48년으로 표기한 사실을 지적해 낸 김상준씨를 선정하는 등 모두 33명의 입상작을 뽑았다.
  • 대한국제법학회 세미나… 주제발표

    ◎“북한은 생존 국군포로 송환해야”/북한주민 대거 탈북 대비,관련법 정비를 대한적십자사(총재 강영훈)와 대한국제법학회(회장 홍성화)는 22일 하오 서울 남산동 적십자사 본사에서 국제인도법세미나를 개최했다.다음은 육군사관학교 민경길 교수와 한림대 박기갑 교수의 주제발표 요지이다. ◇미송환 국군포로의 송환(민경길 육군사관학교교수)=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측이 밝힌 우리측 포로수가 7만5천명(한국군 6만5천명,유엔군 1만명)이고,유엔군측이 집계한 실종자수는 9만9천5백명(한국군 8만8천명,유엔군 1만1천5백명)이다.북한측은 1만2천785명만 송환했다.포로의 일부는 현재 북한의 어느곳에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우리측이 미귀환 국군포로 송환을 북측에 요구할 경우 북한측은 민간인 억류자로 분류,석방한 3만7천명과 반공포로로 석방한 2만7천명 문제를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전쟁법규 미준수 등으로 포로의 자격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한국전쟁 참가전투원과 간첩이라도 억류국의 법령에 따라 형기를 종료한 경우에는 포로로서 모든 권리를 회복하게 되며 송환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특히 형기를 종료한 이후 자의에 의해 전향해 현지 국적을 취득한 경우나 원소속지로의 복귀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전시법규뿐만 아니라 인권의 국제적 보호에 대한 국제법규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미귀환 국군포로 송환문제는 전시국제법 기본원칙인 인도주의와 상호주의원칙에 의해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생존자확인 및 자유의사에 따른 거주지 선택」에 중점을 두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북한 탈출주민의 법적지위(박기갑 한림대교수)=북한 탈출주민은 대한민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연구보고서에 다르면 면접자의 43%가 현지생활 적응에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따라서 이들의 법적지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내법적 내지 정책적인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북한탈출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특징은 북한탈출주민의 사회적 신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또 이 법안은 탈출자가 한국사회에 적응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직업교육을 강화시키고 있다.그렇지만 이 법령 역시 대규모 탈출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따라서 있을 수도 있는 예외적 대량유입사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입법정비가 필요하다.아울러 개별 탈출주민을 대우함에 있어서 대한민국국민으로서 저소득층에 머물고 있는 일종의 빈민계층과의 형평성 고려가 요구된다. 북한탈출주민은 더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며 우리 입장에서 볼때는 일상생활화 될 정도이다.북한탈출주민의 법적지위 및 보호는 현행법률을 계속 정비하고 통일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 연대 동서문화연 국제학술회의… 미 마빈 다이몰리 주제발표

    ◎“미국인들 재미한인 이방인으로 인식”/주거지 고립·「부자」 등 고정관념에 범죄표적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역사인식과 평화」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가 15일 연세대 알렌관에서 개막됐다.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주최하고 공보처 해외공보관과 한국언론회관이 후원한 이 학술회의는 16일에는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로 자리를 옮겨 열릴 예정.마빈 다이몰리 전 미국 하원의원이 16일 발표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미국의 이미지」를 요약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까지 한국을 아는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한국인 역시 미국에 유학온 학자들을 제외하면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를 못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뒤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한국인들은 대규모로 미국으로 이주했다.그러나 당시 한국인들은 준법적이었고 종교적이었으며,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지도 않았고 미국정치인들을 위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차츰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혁명이 일어났다.한국인들은 조그만 사업들을 시작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60∼70년대 도시폭동이 일어나며 유태인들은 상점을 한국인들에게 팔기 시작했다.한국인들의 불안정한 생활은 좋지않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로스앤젤스에서는 거친 손님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뉴욕의 빈민가에서는 한국상점들이 흑인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로드니 킹 사건」이 터지고 연속적으로 폭동이 일어났다.대략 1천6백개의 한국인 상점이 불에 타거나 피해를 보았다.지금까지도 이들의 상당수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자력갱생했던 한국인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재생을 위해 그들의 정부에게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러는 동안 한국에서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출현하고 있었다.이제 미국의 한인 2세들은 한국을 새로운 기회의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미국의 한국인들은 한국과 자신들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여정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진정한 문제는한국의 미래와 미국에게 투영되는 한국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모두 강한 국민들이다.그러나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갖고 있는 이러한 존경심과는 별도로 개발 초기 캘리포니아에 들어왔던 중국인이나 일본인 만큼 한국인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한인들은 거주지역의 고립 등으로 이방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립주의는 또 「모든 한국인들이 부자」라는 고정관념을 유발했다.한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또 화려한 몸치장과 비싼 자동차에서부터 연유한다.결국 이러한 인상들은 한국인들이 범죄의 좋은 목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전후에 출생한 새로운 한국인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그들은 젊고,미래정신을 가지고 있으며,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다.그들이 다소 주춤했던 한국의 후퇴적 양상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데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 가족과 종교·노동과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가치는 확산되어 갈 것이다.
  • 비 라모스대통령 친서전달차 내한/수비크만 관리위 고든 총재

    ◎“한­비는 아태무역 자유화의 두 주역”/광통신망 등 24일 APEC 준비 완벽/수비크는 아주관문… 한국 투자확대를/국가경제 부흥위해 차기대권 나설수도 오는 24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개최지인 필리핀 수비크만의 행정총책임자인 리처드 고든 수비크만관리위원회 총재가 지난 13일 방한,서울에 머무르고 있다.고든 총재는 지난 92년 필리핀 주둔 미해군이 철수한뒤 군사시설밖에 없던 황량한 군사항 수비크만을 인계받아 4년만에 자국 제1의 자유무역항으로 변모시켜 APEC정상회담까지 열릴수 있도록 준비해오면서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인물.이번 방한시 피델 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의 친서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한 그는 14일 서울신문과 특별인터뷰를 갖고 수비크만건설과 APEC정상회담 준비상황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APEC정상회담 준비는 잘 돼가는지. ▲오늘이라도 회의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잘 됐다고 본다.그동안 수비크만이 APEC회담장소로 지정된후 세계 18개국 정상들이 묵을 숙박시설과 회담장소,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용한 관광시설의 정리등에 온힘을 쏟아왔다.새로 컨벤션센터가 세워졌고 마닐라와 수비크만을 잇는 고속도로가 새로 연결됐다.아울러 이번에 건설된 신공항은 정상들을 영접하기에 충분할 만큼 훌륭히 지어졌으며 앞으로 수비크만에서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용량과 시설을 갖췄다. ­APEC 정상회담에 맞춰 문을 연 컨벤션센터는 각종 첨단시설들이 갖춰져 필리핀내에서 화제가 되고있다고 들었다.자랑할만한 시설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회의진행을 위한 모든 시설이 컴퓨터로 작동된다.특히 이번 회담을 위해서 기존의 통신연결망 외에 새로 광통신망을 추가,각국의 정상들이 활동하는데는 물론 전세계의 언론인들이 취재·송고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도록 했다. ­APEC와 관련,보고르선언에서는 완전자유무역 개시일정이 선진국은 2010년,개발도상국은 2020년으로 확정돼 앞으로 단계적 자유화 조치등을 둘러싸고 선진국들의 개방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데.▲필리핀은 근본적으로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이며 자유무역주의 만이 필리핀이 선진대열에 설수 있는 기회이자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또 자유무역만이 앞으로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수비크만이 추구하는 바도 역시 규제가 없는 자유무역이다.수비크만 자체가 자유무역주의를 상징하고 있다.지금 수비크만에는 세계 20개국에서 온 210개의 기업이 아무 제약없이 활동하고 있다.필리핀에서 기업들에는 보통 35%의 세금이 물려지나 이곳에서는 단 5%의 세금만이 적용된다. ­이번 APEC회담에 맞춰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이 필리핀을 공식방문,라모스대통령과 회담키로 돼 있는데 어떤 점이 중점논의될 것으로 보는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말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한국과 필리핀은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대를 파견한 혈맹 관계이다.그리고 그뒤에도 두나라는 한번도 외교적으로 마찰을 겪은 적이 없다.그런 점에서 볼때 이번 두 정상은 현재까지의 두나라 우의를 바탕으로 아태지역내에 무역·투자 자유화 실행의 주역으로서 양국의 입지를 제고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비크만이 92년 미군으로부터 인계된뒤 단 4년만에 210개가 넘는 외국기업이 들어와 투자를 하게된 것은 당초 기대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이곳은 처음 미군이 철수하면서 침체되고 낙후된 항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었다.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날로 발전하고 있다.현재 이곳에는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기업이 마부하이 필리핀위성(2억7천만달러)을 비롯,5개사가 넘는등 모두 16억달러 이상 투자됐다.한국의 수비크만 투자액은 36만달러에 불과하다. ­수비크만을 앞으로 아시아의 관문으로 키운다는 말을 들었다.어떤 지정학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인가. ▲수비크만이 자유무역항으로 개발되고 국제공항이 본격 가동되면 미국·중남미를 비롯,태평양연안국들이 모두 이곳을 통해 서남아,동남아는 물론 동북아의 주요 도시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예를들어 블라디보스토크나 도쿄·북경·서울·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국의 주요 도시들이 이곳에서 항공기로 4시간 거리안에 있어 아시아 거점도시로서 그 어느 곳 보다도 유리하다.또 이곳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성실하고 값이 싼 고급인력이 많이 있다.이같은 요소는 기업들이 입지를 선택하는데 사회간접자본 이외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수비크만 개발과 이번 APEC회담 준비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컸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다.APEC 준비 뿐만 아니라 지난 92년 미군으로부터 기지를 인수받았을 때부터 8천명에 달하는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한푼의 돈도 받지 않고 맨손으로 잔디를 가꾸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아 오늘의 아름다운 수비크만을 가꾸었다.또 외국에서 많은 보수를 받고 일하던 필리핀 고급인력들이 수비크만의 발전을 위해 달려와 함께 일해줬다.지금 이들 가운데에서는 수비크만에 입주한 외국기업에 취업,고수입을 얻는 사람이 많다. ­무엇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이렇게 자발적으로 헌신케 만들었는가. ▲그들은 오직 필리핀의 발전을 위해 힘든 일을 마다않는 사람들이다.따라서 우리는 이들의 위대한 마음에보답하고자 APEC정상회담 이틀째인 25일 각국 정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념동상을 제막할 계획이다. ­고든 총재는 수비크만의 성공적인 부활을 이끈 인물로 이미 필리핀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명인이 되었고 일부에서는 앞으로 차기 필리핀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이란 예측도 하고 있는데. ▲언제나 인터뷰를 할 때면 그같은 질문을 받는다.수비크만의 책임자가 필리핀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단적으로 말해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차기 대통령후보로 나서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다만 나는 수비크만을 관리하면서 필리핀의 경제성장에 힘을 쏟아왔고 경제활성화가 필리핀에 어느 것 못지 않게 중요하므로 차기 대통령후보가 그같은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때 나는 나설 것이다.
  • 「한국전 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법」 제정을/심재기(발언대)

    최근 강릉 앞바다로 침투한 무장공비사건은 우리의 안보의식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됐다. 6·25가 종전상태로 지속돼온지 46년.이 사건은 그동안 남북이 대치양상으로 치달아왔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잠수함 침투지역인 안인진리는 6·25때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하기 1시간전인 상오 3시에 북한 549부대가 최초로 남침을 감행한 지점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 그동안 북한은 아전인수식 통일의 미몽에서 우리의 안마당을 제집 드나들 듯 해왔으며 우리의 젊은이들은 편향된 좌경의 늪으로 빠져들고만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력의 우위가 사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현대전의 승패는 군의 화력등 물리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결집력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이는 월남·걸프전 등에서 증명됐었다. 우리는 6·25 당시 1백만명이란 민간인들이 조국을 수호하고자 귀중한 목숨을 잃은 비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혹자는 전화를 피해 짐을 꾸리기에 급급했고 혹자는 하루아침에 북한 완장을 차기도 했지만 1백만 민간인 희생자들은군번없는 용사로,학도병으로 적들과 싸우면서 산화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회」는 민간 희생자들의 유족을 중심으로 이들의 애국혼을 계승하고 국민에게는 호국정신을 선양해 오고 있다.선열들의 위패 하나 모실 곳 없고 유복자·미망인 등 유족은 해마다 현충일이면 울려퍼지는 「군·경·공무원만을 위한」 진혼나팔 소리가 가슴에 비수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호소하는 것은 이들 영혼과 유족에 대한 보상이나 국가차원의 수혜가 아니다.단 한가지 유족들이 한곳에서 영령을 진혼하고 국민에게는 이들의 희생이 살아있는 사표(사표)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가신님들의 참뜻을 구현하고자 이번 정기국회에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자기념사업사회법안」을 상정,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법안의 내용은 ▲기념사업회의 법인화 ▲기념관,안보박물관 및 위령탑 건립 ▲민간항쟁 자료의 수집·보존·관리 ▲남침현장 일대의 안보교육장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의 중차대한 의미를 깊이 헤아려 우리의요구가 수용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 한­러 본격 군사동반시대 구축/군사협력 양해각서 체결 안팎

    ◎92년 「군사교류 각서」보다 한단계 격상/러 정부,공비침투 계기 대북관계 재고 김동진 국방장관의 러시아 방문과 한·러 군사협력 양해각서 체결은 5년 역사에 불과한 한·러 군사관계를 본격화 한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북한 잠수함 도발사건으로 한반도 군사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러 군사 우호를 돈독히 하고 군사분야의 장기협력을 추구,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지역의 안정과 평화유지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게다가 김장관의 방문은 러시아내 정치적 보수화 경향으로 과거로 회귀조짐을 보이고 있는 북한·러시아 관계에 대해 러시아가 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우리측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북·러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 수정과 관련한 우리의 입장을 러시아 군부에 충분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시대에서 우리와 진영을 달리했던 구 소련이 해체되고 91년 서울과 모스크바에 양국 무관부를 개설하면서 군사관계 첫걸음을 내딛은 양국은 국방장관의 상호방문,해군함정의 교환방문 등으로 군사교류에 활기를 띠었다. 김동진 국방장관의 러시아 방문도 지난해 그라초프 러시아국방장관의 방한에 이은 답방차원이다.이양호 전장관때 계획된 러시아 방문은 김장관 취임 직후라는 점,국가안보위 서기였던 레베위 해임 등으로 불안해진 러시아 정정을 이유로 한때 취소가 검토됐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한반도 안보에 갖는 중요성을 감안,방문일정만 이틀 줄였을 뿐 예정대로 방문을 추진했다. 이번에 체결된 군사협력 양해각서는 92년 러시아 국방장관 방한때 체결된 「93∼94 한·러 군사교류 양해각서」보다 한단계 발전된 양국 군사협력 실행을 위한 일반적 포괄적 내용을 규정한 군사협력 각서다.예를 들어 군사요원,부대간 훈련,교육,통신,수로측량,군사전문가 및 과학자의 교환협력 방안이 들어있다.이같은 협력분야에 대해 군 수뇌부 및 실무자의 방문과 군부대 및 교육기관에 교육 및 견학을 위한 군인파견,훈련·학술회의 세미나 초청 연수 정보 및 문서교환 등 구체적인 시행방법도 담고 있다. ◎한­러 군사협력양해각서 내용 4일 상오(현지시간) 김동진 국방장관과 로디오노프 러시아 국방장관간에 교환된 한·러 군사협력 양해각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문:우호관계 증진,군사분야 장기협력 추구 ▲목적: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 추구,양국의 군사협력 실현 ▲협력분야:군요원과 부대훈련,제공 무기장비 운용 배치 정비,수리요원 교육,군역사­군사학­군사과학연구,군사통신­수로­기상­지형학­군의학,군사전문가 및 과학자 교환 ▲협력방법:군수뇌부 공식,실무 방문,군부대 및 교육기관에 교육 및 견학을 위한 군인파견,훈련·학술회의 세미나 초청 및 연수,정보 및 문서교환 ▲협력절차:분야별 합의서 작성 서명후 시행,매년 10월15일까지 차기 연도 공동시행계획 마련 ▲분쟁해결:당사자간 협의 및 협상 ▲보안:상호 정보 보호,동의없이 제3자에 제공 금지 ▲효력발생:서명일 발효,5년기간 유효,자동연장
  • 김정일과 북한의 운명/재미 북한전문가 서대숙 박사 지적

    ◎정치개편·지도사상·경제문제·외교혁신·군사개편/5대과제 해결에 달렸다/「우리식 사회주의」로는 더이상 생존 어려워/군 감축하고 경제문제는 정무원에 맡겨야 이른바 「수령의 나라」 북한에는 지금 수령이 없다.「어버이 수령」 김일성이 죽은 후 아들 김정일이 대를 이었지만 그는 그냥 지도자일 뿐 수령은 아니다.과거 김일성이 갖고 있던 당총비서·국가주석 자리는 2년5개월째 비어 있다.북한은 지금 명실상부한 수령­최고지도자가 없는 가운데 통치되고 있는 「이상한 나라」다. 북한의 수령과 지도자문제와 관련,미 하와이대학의 서대숙 교수는 최근 펴낸 일어판저서 「김일성과 김정일­혁명신화와 주체사상」에서 『수령이란 「인정하는 칭호」이지 「임명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전제,『북한에 있어서 수령은 김일성이지 김정일이 아니다.그 수령이 최고지도자를 의미한다면,김정일이 현재 어떻든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별문제될 것은 없다.그러나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김정일이 과거의 김일성처럼 수령이 된다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교수는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북한의 지도자가 되려면 북한에 먼저 법치체제가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북한에서 이른바 김정일시대가 열리려면 선거가 실시되고 헌법과 당규약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김정일의 입장은 생부인 김일성 치세때와는 다르다.그도 이미 50대중반에 들어섰고 장래 장기집권을 한다 해도 20여년남짓일 것이어서 그에게는 김일성에게 주어졌던 만큼의 시간도 없다.따라서 현재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는 김정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한두개가 아니다.그런 과제를 해결하여 자신이 「지도자」임을 정치와 정책으로 입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는다면 김정일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서교수의 논리다. 이 대목에서 서교수가 지적하는 김정일의 첫번째 과제는 정치개편이다.김정일은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다』라며 인민과 정부의 관계를 충성심과 인덕정치로 비유했다.김정일은 이상주의자가 아닌 실천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셰계에서 사회주의,그것도 「우리식 사회주의」에 귀기울일 사람은 없다.그리고 김정일을 둘러싼 지도세력도 구세대로부터 신세대로 바뀌고 있다.또한 군부통치에도 한계가 있다.따라서 앞으로 당·정·군 조직체계와의 관계를 여하히 개편,정립시키는가가 제일의 과제가 될 것이다. 김정일의 두번째 과제는 이른바 지도사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주체사상은 김일성 사후에도 아직은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는 사상이다.그러나 그 사상의 유용도는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김일성이 주체를 내세운 것은 동서냉전과 한국전쟁,그리고 중·소분쟁 등에 기인했었다.오늘날 사회주의진영은 붕괴했고 소련도 사라졌다.이런 상황에서,더욱이 과거의 자주성이나 우리식 사회주의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21세기엔 맞지 않는다.김정일은 이런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김정일은 국제정세와 북한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일방적으로 인민의 사랑이나 충성을 구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을 내세울 게 아니라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세워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세번째로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김일성 사망전후의 북한경제에 관해서는 누구의 설명도 필요없다.세상이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지난 95년의 수해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김정일은 과거의 김일성식 경제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북한의 경제난은「재래식」 방식으로는 회복될 수 없다.군과 병사를 동원하고 200일전투니 속도전 같은 인해전술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경제침체가 해결되지는 않는다.우선 경제발전의 목표부터 바꿔야 한다.의식주해결은 물론 외국자본유치,첨단기술의 습득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제정책의 체계도 문제다.김일성시대에는 당의 주도로 경제가 이끌어져왔다.그러나 경제는 정부(정무원)가 주도해야 한다.경제문제를 경제문제로 해결하는데 있어 경제를 잘 모르는 당간부에게 경제를 맡겨서는 안된다.경제는 철저하게 정무원의 경제관료에게 맡겨 시행하고 책임도 지워야 한다. 북한주민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자본주의로부터 피해를 받아왔다는 선입관을 지닌 채 자주성을 강조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길러왔다.그러나 21세기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의식주해결과 자주성만을 강조하다 국제사회의 구제대상이 되어서는 집권은 물론 나라 자체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김정일의 네번째 과제는 외교의 혁신이다.김일성은 조선노동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북한외교의 3대정책을 자주·친선·평화로 내세웠다.이 3대정책의 명목에는 별문제가 없다.그러나 그것만으로 다양한 외교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그것만으로는,또 제3세계 외교만으로는 세계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발전하는 자본주의국가와 외교를 할 수가 없다. 연대는 이제 21세기에 들어서 있다.21세기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수립될 것이다.사정이 이러한데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자신의 우월성이나 자주성을 소리 높여 외친들 북한의 경제발전이 이뤄질 수는 없으며 국제관계개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아무리 주장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김정일의 다섯번째 과제는 군사문제다.북한군은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보장했다.그리고 북한군은 김일성 사후로부터 김정일이 당과 정권기관의 직위를 차지할 때까지 북한의 질서와 국방,주민의 치안을 담당했다.북한의 군부에는 두개의 큰 사명이 있다.순수한 의미에서의 국방의 역할과 국내 정치체제유지가 그것이다.그러나 군의 국내적 역할 즉 정치체제유지역할은 김정일의 지도체제가 확립된 다음엔 점차 감소돼야 할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시대와는 다른 안보체제를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안보환경이 변했고 동서대결도 끝났다.북한이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할 때 지금 군의 규모는 너무 방대하다.인민군을 경제건설에 동원하지 않으려면 상당수의 군인을 제대시켜야 한다. 북한경제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군사비임은 주지된 바다.21세기 김정일시대에는 북한과 같은 작은 나라에 핵무기는 필요없다.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해서 한국과 미국·일본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만들어 경제원조를 하고 있다.북한은 핵의혹을 풀고 군사문제는 군사문제로서,경제문제는 경제문제로서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북한은 지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김정일과 새로운 세대 지도층이 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분명치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이상의 다섯가지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왜.김정일과 북한의 명운이 5대과제의 해결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서울신문 창간51돌기념 제2회 국제포럼:Ⅰ

    ◎제1주제/북한의 위기상황­어디까지 왔나/「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 서울신문은 창간 51주년을 맞아 「제2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을 18일 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주최한다.『「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에는 한·미·중·일·러의 세계적 석학과 전문가 20명이 참가,북한현실에 대한 분석·평가와 함께 4자회담 등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정착방안등을 깊이있게 토론한다.주제발표 논문 9편의 내용을 간추린다. ◎위기의 북한­정밀 진단/김학준 단국대 이사장/김정일 정권의 북 경제는 파탄상태/식량위기 극복 못하면 5∼10년내 붕괴 몇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북한의 장래에 연관돼있다.우선 김정일의 권력은 안정되어 있는가의 물음과 관련해 기본적인 문제가 김정일의 건강이다.김정일의 건강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다.그렇다고 권력자로 집무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김일성 사후 2년3개월이 넘은 오늘날까지 총비서와 주석직 들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해서 최고권력자로서의 지위에 이상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김정일은 20년 넘게 후계자로 체계적으로 키워졌고 북한주민들은 그가 김일성의 후계자임을 믿어의심찮기 때문에 김일성사후 곧바로 수령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김정일정권은 권력상황에서만 접근한다면 안정돼 있다.그러나 국제 외교 경제 사회 등 여러 부문,특히 경제에서 커다란 어려움들의 늪에 빠져있다.여러가지 경제지표들을 놓고 말할때 북한경제는 확실히 파탄상태이다.더구나 이러한 어려움들은 김정일정권이 출범한 시점을 앞뒤해 더욱 불거졌다.수해가 그 대표적 보기이다.작금년에 북한은 그 스스로의 표현으로 『1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엄청나게 큰 수해』를 겪어야 했다.식량위기가 곧바로 뒤따랐음은 물론이다.그많은 심각한 어려움들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일성을 더 신성하게 만들고 그의 카리스마를 빌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이러한 계산에서 북한에서는 이른바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경제적 파탄,특히 식량위기는 사회적 기강을 이완시키고 있다.탈북자들의 증언들은 예외없이 정부와 당관리의 부패,뇌물의 주고 받음,일반주민들의 생산의욕 저하,통행증제도의 사실상 무효화,범죄의 증가,심지어는 매춘 등을 전하고 있다.북한의 경제적 위기상황은 북한이 붕괴로 가고 있느냐는 물음을 제기시켜 왔다.흔히 「북한 붕괴」라고 말하지만,그것은 김정일정권의 붕괴,사회주의체제의 붕괴,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붕괴라는 세 수준에서 나눠보는 것이 타당하다.이에는 상반되는 분석이 나온다.첫째는 국가의 소멸은 커녕 정권의 붕괴조차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이다.둘째는 사회적 불안정이 이미 시작된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식량위기가 극복되지 않으면 결국 군부쿠데타나 대중반란이 일어나 앞으로 5∼10년안에 최소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이다. 김일성이 죽은뒤의 북한은 확실히 「체제 병리의 징후들」을 점점 더 많이 보여주어 왔다.김정일정권은 이것을 극복해낼 것인가.전문가들은,제한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개방과 개혁조치를 취해 나가고 또 중국으로 하여금 김정일정권이붕괴하지 않도록 석유와 석탄 및 식량을 포함한 경제원조를 계속해서 베풀도록 유도해 나가며 미국 및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는 경우,가난과 식량위기에 익숙해 있으며 통제에 쉽게 복종하는 북한인민들은 결코 집단적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본다.군부쿠데타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러한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 김정일 정권은 마침내 「내부폭발」을 겪게되리라는 견해도 유력하다.그리고 김정일정권의 붕괴는 종국적으로 북한이라는 국가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까지 전망한다.그때가 한반도로서는 매우 위험할 것이다.김정일과 그의 교조주의적 추종자들이,그 개연성이 높지는 않지만,삼손 방식의 선택을 걷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위기의 북한­분석과 평가/프르지스터프 미 해리티지재단 아시아 연구소장/북­미 관계개선때 북한 「연착륙」 가능/남북 직접대화는 미측이 뒷받침해야 최근 자료들은 북한의 기근 사망자가 95년 12월에 283명,96년 1월에 337명,2월에 195명,3월에 60명이라고 밝혔다.96년초 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과 한국관리들은 북한이 식량난에 시달리면 그렇지 않을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우려했다』며 『분석가들은 평양이 한국전쟁이후 그 어느때보다 무력침략에 호소할 가능성이 높은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뉴욕타임즈 사설은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이 「폭력을 수반한 정치적 소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당시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은 『문제는 북한이 과연 붕괴할것이냐가 아니라 내부붕괴냐,외부폭발이냐 같이 어떤 식으로 언제 붕괴하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다.그러나 북한정권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이와관련,일부 정책결정자들은 소프트랜딩이라는 장미빛 시나리오를 전망하면서 북핵합의를 하나의 신뢰구축방안으로 간주한다.그러나 이 소프트랜딩이 북한의 점차 악화되는 경제난,불안정,약화,절망감으로 인해 위협받고있다는 것이 최근의 주장이다.전 국가안보위원회 아시아특별보좌관 스탠리 로스씨는 『한·미 양국이 북한경제를 최소한이나마 살려서 이 붕괴를 가능한한 오래 연기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레이니대사는 아시아 소사이어티 연설에서 『경제지원과 함께 억지전략에서 벗어나 신뢰구축과 적극적인 협력을 유인하는 쪽으로 나가야한다』고 역설했다.이런 노력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현재의 노선보다 「나은 대안」이 있다는 것을 믿도록 설득시킬수 있다.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미국과 가까워지면 『살아남고 번영할수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노력해야한다.그러면 북한도 소프트랜딩의 길로 갈수 있을 것이다.식량난이 북한정권을 오히려 강화시켰다는 추론도 있다.북한정권의 성격상 북한지도부가 이 식량난을,충성스런 지지자들에게 보상을 주고 대신 정치적 충성도가 의심스러운 주민들을 벌하고 굶기는 도구로 이용할 가능성을 간과할수 없다.스탈린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공포의 기근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난 4월 2+2회담 (4자회담)제의후 이는 미 행정부의 대한반도정책의 중심의제가 됐다.사실상 북한은 2+2 제의를 지렛대로 이용해 수백만t의 곡물지원을 요구했다.이 제의의 취지설명에 참석하는 대가를 바란것이다.미 행정부는 이 대가를제쳐두고라도 단순히 이 제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한반도의 안정과 안보라는 긴박한 이슈들을 제기하지 못했다.사실 이 제의는 미국에게도 제약요인이다.현재 한국에는 미국에 대해 높은 의혹과 불신이 일고있다.이는 상당부분 미행정부가 보인 행태탓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열쇠는 남북간의 직접대화이다.2+2제의 이전에 이 대화의 틀은 이미 마련돼있다.91년 남북한 정치협상에서 북한은 한국과의 직접,고위급 대화에 동의한바 있다.북핵합의에 서명하면서도 북한은 남북직접대화를 약속했다.하지만 진짜 문제,즉 북한이 한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할 의사가 있느냐는 문제는 외교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북한과 한반도의 장래에 있어 주요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채 남아있다.북핵합의와 2+2회담,그 어느것도 문제해결의 열쇠가 아니다.이 문제들은 차기 미행정부에도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이제는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넓히기 위한 보다 거시적인 전략을 개발할 때이다. ◎김정일 위기관리 가능한가/서대숙 미 하와이대 교수/김정일 위기극복 지도력 검증단계/북 주민,문제해결 능력 불신땐 위기상황 북한문제에 대해 우리들이 심각하게 우려하는 이유는 과거의 어려움을 해결했던 지도자 김일성이 죽어 더이상 위기극복을 위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그의 후계자 김정일은 현재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라는 사실이다.북한은 지금 정말로 위기에 빠져있다.그러나 그 위기를 북한의 붕괴와 연계시키는 것은 잘못이다.북한문제는 복잡하지만 그 문제들은 김정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김정일은 오히려 그의 아버지로부터 어려운 상황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이 죽었을때 북한의 4가지 주요 장기적인 문제점들이 지적됐다.첫번째 문제는 외교였다.북한은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실패를 비난하며 북한식 사회주의를 정당화했으나 새로운 국제 정치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새 우방을 찾는데 실패했다.두번째는 아직도 완결되지않은 정치적 후계와 관련된 국내문제다.김일성의갑작스런 죽음은 국가수반이 아니라 군최고사령관이 2년이상 북한을 통치하는 불안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세번째 문제는 경제난이다.북한경제는 80년대 제3차 7개년 경제계획 중반부터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95년의 홍수는 북한경제의 심각한 실상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는 계기였을 뿐이며 경제적 어려움은 거의 10여년동안 계속돼왔다.네번째 문제는 가장 심각한 것으로 군과 안보에 관한 문제다.북한의 안보는 소련과 중국에 크게 의존했다.그러나 두나라는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그리고 소련은 무너졌으며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관계에 분주하다.북한의 핵개발계획은 북한이 한국의 재래식무기 현대화에 더이상 경쟁할수 없음을 나타냈다.이 4가지 문제점들은 김정일과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중요하다.그들이 이 4가지 문제중 어느 하나라도 해결하는데 실패하면 북한체제는 생존과도 직결되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질것이다. 북한의 문제는 김정일과 새로운 세대 지도자들이 김일성과 원로세대 지도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장기적 문제들이다.북한의 문제는 김정일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며 북한 주민들은 새 지도자들에게 문제해결의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그것은 북한 주민들이 언제까지나 순종적일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김정일과 새 지도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민들이 확신할 경우 북한체제는 아마 위기상황으로 빠질 것이다.그렇다고 북한체제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만약 김정일이 실각하면 다른 지도자들이 부상하여 북한체제를 유지·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북한 체제가 붕괴되려면 반공산주의,반김일성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번 세기내에 북한에서 그러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북한은 지금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김정일과 새로운 세대 지도자들이 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수 있을지 없을지는 분명치 않지만 현재의 어려움을 관리할 능력은 갖고 있다고 할수있다.북한주민들은 새 지도부에 난국을 극복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이다.그러나 새로운 지도자들이 문제를 야기한 원로세대들을 비하하지 않고 그들의 업적을 찬미하는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추구하려하면 그 과업은 더욱 어려울지도 모른다.북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아마 김정일에게 「고난의 행군」이 될 것이다.
  • 서울신문 창간51돌기념 제2회 국제포럼:Ⅱ­1

    ◎제2주제/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모색/「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미국의 입장/더글러스 팔 미 아태정책센터이사장/잠수함침투사건으로 북 군부 입지 약화/도발협박 과잉반응 금물… 4자회담 유도해야 북한은 지금 실패한 체제에 대한 구원의 열망을 안은채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 구사하며 미국과 일본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그러나 두가지중 북한이 주로 구사하는 수단은 협박이다.최근의 잠수함 좌초로 결말된 사건이 한국에 대해 도박을 시도하고 목적을 달성할 수단을 얻기위한 것인지 여부를 말하기는 곤란하다.그러나 미국과 그밖의 나라들에 경고를 발하기 위해 북한이 꾀할 새로운 소동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북한이 취하는 거친 책략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가.우리는 우선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워싱턴시각에서 볼때 되도록이면 안보동맹으로서의 재통일된 한국을 추구한다.둘째 우리는 한국의 재통일이 가능한 한 평화적으로 이뤄지기를 갈망한다.평화를 깨뜨리려는 위협은 한국의 의도에 따른 재통일을막으면서 미국과 일본·한국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데 있어서 북한의 가장 강력한 카드로 활용돼왔다.세번째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치러야 할 부담을 고려,가장 값싸고 적정한 비용으로 재통일을 성취하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미·북 회담 등)쌍무협정과 관련된 협상은 아마도 한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누그러뜨린다는 점에서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그러나 북한이 그렇게 하려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 없다.따라서 가장 주된 위험은 동북아시아의 안보구조가 개선되지 않은채,그리고 상충되는 주장들과 상호 의심에 의해 도전받는 상황에서의 미국과 북한이 화해하는 일이다.분명히 말하건대 쌍무적인 접근이 워싱턴과 평양이 아닌 서울과 평양사이에 존재한다면 그같은 상황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관리들은 개인적으로 4자회담이 북한에 남북한 군축문제를 다룰 대화의 길을 터주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에 확실한 경제적 이익을 주어야한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그 목적은 당장 실현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긴장의 잠재적 가능성뿐 아니라 불가피한 재통일의 충격및 비용을 줄여줄 것이다.만약 4자회담이 합의의 기초를 이루는데 성공하게 되면 지역안보이익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아시아의 뜨거운 지역에서도 가장 뜨거운 문제들이 식혀질 것이다.북한의 붕괴위험이 줄어들고 난민의 유입,한국의 심각한 경제적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4자회담의 틀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4자회담은 그 자체로서는 완벽하지 못한 탓에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6자회담으로 가는 중요한 중간역으로 간주돼야 한다. 최근의 잠수함사건은 역설적으로 북한이 4자회담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민간지도자가 군부보다 한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평양은 또 스파이사건 등으로 한·미가 갈등을 빚고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그러나 4자회담이 빠르고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북한은 한국의 역할을 감소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정책입안자들은 협박과도발로 불안을 조성하려는 북한에 과잉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우리가 모든 카드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카드를 쥐고 있다는 점을 올바로 인식하는 가운데 북한이 2+2나 2+4회담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북한이 회담에 참여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소득 없는 회담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협력을 얻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러시아의 입장/블라디미르 루킨 러시아 하원 외무위원장/한반도문제해결 최상의 방법은 「2+4」/남북대화 양측 대응할때 유관국 협조로 성립 한국통일문제는 한국민 자신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분명한 것은 통일문제가 국제적 양상도 가진다는 것이다.냉전종식이후에는 한반도상의 대결이나 공개적분쟁에 이익을 얻을 국가는 없다.한국문제는 사실상 2차대전 종식이후 유일하게 해결되지 않은 전후처리문제로 남아있다.유엔도 안보리도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73년 유엔총회 28차회기는 남북한 공동성명(72.74)에 명시된 통일원칙을 환영했다.75년 30차회기는 한국정전협정의 항구적 평화로의 전환 및 자주평화적 통일촉진조건조성을 위한 결의안을 승인했다.이는 「유엔사령부」해체,모든 외국군(유엔군)철수,정전협정의 평화조약으로의 전환등을 검토하고 있다.중요한 사실은 이 결의안이 사회주의국가 및 일련의 개발도상국가(43개국)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한·미간의 「상호방위조약」은 53년 10월에 조인됐다.61년 7월 소련·북한간 우호·협력및 상호원조조약이 조인됐다.95년 여름 러·북한 쌍무협상에서 러시아측은 이 조약의 효력을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5년간의 정례적 연장기간은 96년 9월 만료됐다.이상은 한국문제 처리의 대외적 양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보여준다.서울측과 평양측은 상당히 다른 통일문제해결 주창을 제시해왔다.북한도,남한도 (자기측이)패배하여 각각의 정치제도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는 양보조치를 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남북대화는 양측이 대등하다고 느낄때,또한 한반도 유관국들이 협조할때 성립되고 발전한다.그것을 국제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필수적이다.96년 4월 남북한협정의 보장자는 미국과 중국이라고전제하는 2+2공식이 작성됐다.이 4자회담안은 미국과 양자평화를 체결하자는 평양측 요구의 대안으로서 제의됐다.그 주창자는 북핵을 둘러싼 논쟁이후의 서울이었다.서울측은 안보대화에 관한 평양측 입장에 4자협상이라는 미국과의 공동안을 대치시킨 것이다. 그러나 4자회담안은 이 지역에 있어서의 러시아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본다.우선 모스크바를 남북한 내부합의를 해결하거나 보장하는 수도들의 테두리밖에 세우고 있다.러시아의 정치적 소외는 궁극적으로 주요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다.둘째로 4자회담이 실현될 경우 만약 북한이 협상참가국은 물론 불참가국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도 술수를 전개하면서 특권을 부여받은 지역열강과 모욕당한 열강간의 충돌을 책동한다면 중국 또한 러시아와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것이다.셋째로 러시아의 퇴조와 평양측의 전진이 동시에 이루어질 경우 위험을 내포한 상황­모스크바의 친북한세력의 활성화를 자극하고 (물론 주로 좌익이지만)구활동분자를 이용,러의 참여없이 형성되는 제세력간의 배분을 바꾸려는 희망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우리는 한반도문제의 종합적 해결을 위한 최상의 방법은 6개국 즉 러·미·중·일본 및 남북한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라고 본다.6자회담 소집전에 미·일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회의에선 지역강대국과의 관계(미·북,일·북)를 정상화하는 방법도 논의될 수 있다.의회간의 교류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러시아하원은 한국국회와 함께 동북아시아,주로 한국정세의 안정화 문제에 관한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 소집을 주창할 준비가 되어있다.물론 그것이 6개국 정부수뇌급 회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입장/정태환 경남대 극동문제연 소장/4자회담 한반도평화해결 포괄적 방안/정전체제 준수·한­미서 회담 주도 역할을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에 대해 남북한은 서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한국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남북한 평화협정체결을 원한다.한국정부의 입장으로서 정전협정의 실질적 당사자는 남북한이기 때문이다.북한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북·미간에만협상해야 하며 한국이 이 과정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그리고 유엔사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있어 협상당사자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러하다.한국은 오랫동안 남북이 직접 당사자로서 평화체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주요한 협상자로서 남북한 당사자원칙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반면 북한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북·미간에만 협상해야 하며 한국이 이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북한의 주장은 한국은 1953년 정전협정의 서명자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4자회담의 제의는 정책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첫째,그동안 한국정부는 북·미관계개선을 남북대화와 연계시켜 왔다.그러나 4자회담의 제의에는 북·미관계개선을 위한 북·미협상을 4자회담과 별도로 허용하는데 이는 한국정부가 연계전략을 철회한다는 정책전환을 의미한다.둘째,4자회담이 성사되면 평화체제구축문제에 대해 4자가 한자리에 모여 토의할 의제와 회담형식을 결정할 것이다.이럴 경우 한국정부는 회담을 통해 북한의 의제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목소리를 확보할 수 있다.셋째,4자회담은 북한에 대해 「최고의 이익」이 될 수 있다.예를 들면 4자회담을 통해 4강의 교차승인이 완성되고 북한의 생존이 국제적으로 보장받고 남북대화로 관계개선을 통한 대북 경제적 지원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으며 남북한 군축실현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넷째,4자회담은 한반도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방안」을 만들 수 있는 협상의 장이 될 수 있다. 4자회담은 한반도 평화·안정 및 통일을 위한 수단임에는 틀림없지만 4자회담 그 자체가 곧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그렇다면 4자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첫째,새로운 평화체제구축까지 4자는 현정전체제를 준수해야 한다.둘째,남북한은 「당사자원칙」과 관련하여 타협하고 양보해야 한다.셋째,한국정부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북정책을 계속 추진해나갈필요가 있다.넷째,유엔과 중국이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남북한이 함께 수용할 수 있는 평화방안을 창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4강과 남북한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남북이 진실로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다면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 평화체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4자회담은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우수한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따라서 한·미 양정부는 빠른 시일내로 북한과 중국에게 4자회담에서 논의할 의제를 제의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4자평화협정방안만이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그러므로 이 방안이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이론적 틀로서 4자간 많은 협의와 토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정착은 남북한 양국의 기본적인 이해일 뿐만 아니라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현세계에서의 역사적인 추세와도 일치하는 것이다.냉전체제가 끝남에 따라 43년전에 체결된 정전체제를 새로운 평화체제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국민이야말로 바로 한반도의 주인이다.한반도에서의 문제는 바로 이들 남북한 양쪽의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국제사회가 한반도에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우호적인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미국은 한국과 여전히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94년 제네바에서 핵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이후 꾸준히 다양한 차원에서의 접촉과 대화를 계속해온 결과 상호 대표부 개설문제와 한국전쟁 당시 실종미군의 유해수색과 같은 문제에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몇가지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역시 결국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북·일관계는 최근 눈애 띄게 개선됐다.북·일 교역량은 연간 5억9천만달라에 달해 일본은 북한의 주요교역상대국으로 떠올랐다. 중국 역시 한반도와 바로 붙어 있는 이웃이다.중국은 항상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깊은 배려를 해왔는데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국의 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중국은 한반도에 한국과 북한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있다.중국과 북한은 오랜 역사를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중국은 한국과도 최근 몇년간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왔다.중국은 평화적 통일달성이라는 남북한인의 열망을 존중하며 그것이 다름아닌 남북한인 스스로에 의해 이뤄져야 함을 지지한다.한반도에 대해 중국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서로간의 화해와 접근,그리고 평화와 안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의 독립적인 평화외교정첵에서 비롯된 것이다.중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준식민지로서 고초를 겪었고 그런 만큼 지나치게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서야 되찾은 독립과 주권을 더욱 귀중히 여기고 있다.중국은 다른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고 있다.또한 중국은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되기 위한 국제환경조성에 노력해야만 한다.중국은 진심으로 모든 나라,특히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와 선린우호관계를 희망하고 있다.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는 서로간의 주권과 영토존중,상호불가침,서로의 내정문제에 대한 상호불간섭,평등과 호혜,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만 한다고 중국은 언제나 믿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남북한과 중국·미국을 포함하는 한국과 미국의 4자회담 제의에 대해서도 중국은 북한이 이 제의를 여전히 검토중에 있으며 미국에 대해 이 제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중국정부는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평화구조가 자리잡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모든 이해 당사국이 그러한 평화구조의 형태에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휴전협정의 서명국가로서 중국은 기꺼이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조구축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다.이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분별있는 것이라고 본다. ◎ 지난 94년 10월 24일 발표된 미·북한 기본합의문(제네바합의)의 가장 큰 특징은 3개의 단계(최초의 6개월,약 5년후,2003년)를 거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일시 동결」로부터 「완전 포기」로 전환된다는 것이다.흑연감속형원자로와 관련시설의 활동은 6개월 이내에 동결하고 과거의 의혹을 해명(특별사찰)하는데 약 5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물론 제네바합의가 원활하게 이행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5∼10년후의 북한정세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만 폭력적인 사태를 피하고 핵무기 개발의 최종적인 로드맵(roadmap)을 마련한 의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10년의 시간에 걸친 북한의 「살아남기」실험에 대해 단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한·미·일은 북한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게됐다. 4자회담에는 북한으로서도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가능성을 포함하여 몇가지 이점이 있다.그러나 이제까지의 그들 기본방침(「새로운 평화체제」)에서 볼때 4자회담 제의는 당연히 즉각 거절해야 할것이었다.그러나 4자회담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 북한은 아직까지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는다.4자회담의 내용에 대해 미국에 설명을 요구하며 몇차례 회합을 가졌을 뿐이다. 북한의 앞날에는 두가지 장애물이 놓여있다.첫번재 장애물은,대외관계를 개선하고 외부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파탄상태에 놓인 경제를 재건하는데 이를 이용하기위해 「기본적인 합의의 틀」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문제이다.두번째 장애물은 북한이 중국모델을 본딴 개혁·개방을 도입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데 있다.이 장애물 극복여부에 따라 북한의 장래는 세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할 수 있다.북한이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실패한다면 김정일의 위신은 떨어지고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고립되며 심각한 경제·식량난으로 위기로 치닫게 될것이다.이것이 첫번째 시나리오이다.이때 북한이 외부에 대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개혁·개방의 경우,정책을 들러싼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치열한 투쟁은 결국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최고지도자와 정치체제,그리고 국가라는 삼위일체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좋고 싫음에 관계없이 한국은 북한을 흡수 통일할 것이다.이것이 두번째 시나리오다.만일 북한이 두번째장애물(중국식 개혁·개방)을 극복하고 「살아남기」실험에서 성공한다면 남북한은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10년이상 공존할 수 있다.이것이 세번째 시나리오이다.이 가운데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북한의 향후 행동에 달려있다. 특히 북한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은 두번째 단계에서 개혁과 개방을 이루는 것이다.이같은 일이 성곡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따라서 우리는 이 두번째 단계에서 1)경제교류를 통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계속 촉진해 나가는 한편 2)북한의 갑작스런 내부붕괴에 대처하는 방안을 동시에 준비하는 완전히 상반된 정책들을 마련해야만 한다.특히 북한붕괴나 이에따른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의 경우 통일비용 등과 관련해 일본의 역할은 적지 않을것이다.북·일관계가 정상화됐다고 했을때,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일본으로부터 북한에 이전될 대규모의 자본과 기술은 북한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남북한간의 공존이 이뤄지는 것을 촉진할 것이다. ◎ 한반도 평화는 역내안보와 안정에 결정적으로중요하다.한국정부는 민족화해와 평화공존을 협의하기 위한 대화에 노력해왔으나 북한은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고있다.대화부재에 더하여 북한은 지난 40년동안 비록 불안정하나마 한반도 평화유지에 유용했던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겠다고 위협해 온 바 있다.놀랍게도 지난 9월 북한군의 잠수함 1척이 남한 해안에 좌초된채,26명의 무장군인이 우리 해안을 침투했다.이는 정전협정에 대한 분명하고 중대한 위반일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매우 심각한 군사적 도발행위인 것이다. 4자회담은 남북한간 신뢰구축을 통해서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데 있다.4자회담에서는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에 책임있는 직접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반면,현 정전협정 형성에 관여한 미국과 중국은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한반도에서의 견실한 평화를 마련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이다.만약 북한이 4자회담에 동의한다면 현 정전협정의 새로운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신뢰구축및 긴장완화 조치등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광범위한 문제들이 깊이있게 논의될 수 있다. 남북한간에 지속되고 있는 상호불신과 적대감에 비추어,문제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남북한 두당사자의 노력만으로는 쉽게 마련될 수 없다.그런 맥락에서 한국전쟁과 정전협정에 관여한 미국과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특히 북한문제에 관한 한·미간의 정책협조는 북한핵개발계획의 방지와 최근 인도적 차원의 식량원조 제공을 통해서 한반도 안전과 안정유지에 크게 성공했다.중국의 역할도 4자회담 성사에 중요하다.중국은 한반도 평화구축에 있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것이다.일본과 러시아는 4자회담에 포함되지 않았다.4자회담 제안은 남북한의 직접당사자와 정전협정에 관여돼있는 나라의 최소한의 수로 진행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행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일본과 러시아는 4자회담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나 추진중인 동북아안보대화(NEASED)를 통해서 한반도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한은 자유의사에 의한 평화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상호간의 합의를 추구함으로써 한반도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잠수함을 통한 북한공비들의 남한 침투는 한반도 상황의 어떠한 개선도 의미있는 남북한간의 대화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남북한은 1991년 남북한기본합의서를 통해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노력할 것임을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이 약속은 가장 빠른 시일내에 이행돼야 한다.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촉진하기위해 한국정부는 작년에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15만t의 쌀을 제공했다.또한 국제기구의 호소에 따라 3백만달러 상당의 유아용 배합분말 및 분유를 제공하는등 지원을 계속했다. 미·북한 관계와 경수로 사업에 어떠한 진전이 이루어 지더라도 남북한간의 평화공존 없이는 한반도 정세는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북한이 미·북 합의서에서 남한과의 대화재개를 약속했지만 남북한간의 대화는 여전히 중단돼 있다.우리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인 요소인 남북한간의 대화가 재개되도록 돕는데 역점을 두기를 기대한다.
  • 서울신문 창간51돌기념 제2회 국제포럼:Ⅱ­2

    ◎제2주제/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모색/중국의 입장/하도생 인민외교학회 부회장/북 지도부 4자회담에 미련 많아/「항구적 평화체제」 구체내용 설명 필요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정착은 남북한 양국의 기본적인 이해일 뿐만 아니라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현세계에서의 역사적인 추세와도 일치하는 것이다.냉전체제가 끝남에 따라 43년전에 체결된 정전체제를 새로운 평화체제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국민이야말로 바로 한반도의 주인이다.한반도에서의 문제는 바로 이들 남북한 양쪽의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국제사회가 한반도에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우호적인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미국은 한국과 여전히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94년 제네바에서 핵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이후 꾸준히 다양한 차원에서의 접촉과 대화를 계속해온 결과 상호 대표부 개설문제와 한국전쟁당시 실종미군의 유해수색과 같은 문제에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몇가지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역시 결국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북·일관계는 최근 눈애 띄게 개선됐다.북·일 교역량은 연간 5억9천만달라에 달해 일본은 북한의 주요교역상대국으로 떠올랐다. 중국 역시 한반도와 바로 붙어 있는 이웃이다.중국은 항상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깊은 배려를 해왔는데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국의 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중국은 한반도에 한국과 북한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있다.중국과 북한은 오랜 역사를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중국은 한국과도 최근 몇년간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왔다.중국은 평화적 통일달성이라는 남북한인의 열망을 존중하며 그것이 다름아닌 남북한인 스스로에 의해 이뤄져야 함을 지지한다.한반도에 대해 중국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서로간의 화해와 접근,그리고 평화와 안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의 독립적인 평화외교정첵에서비롯된 것이다.중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준식민지로서 고초를 겪었고 그런 만큼 지나치게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서야 되찾은 독립과 주권을 더욱 귀중히 여기고 있다.중국은 다른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고 있다.또한 중국은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되기 위한 국제환경조성에 노력해야만 한다.중국은 진심으로 모든 나라,특히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와 선린우호관계를 희망하고 있다.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는 서로간의 주권과 영토존중,상호불가침,서로의 내정문제에 대한 상호불간섭,평등과 호혜,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만 한다고 중국은 언제나 믿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남북한과 중국·미국을 포함하는 한국과 미국의 4자회담 제의에 대해서도 중국은 북한이 이 제의를 여전히 검토중에 있으며 미국에 대해 이 제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중국정부는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평화구조가 자리잡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모든 이해 당사국이 그러한 평화구조의 형태에 의견의 일치를 보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휴전협정의 서명국가로서 중국은 기꺼이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조구축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다.이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분별있는 것이라고 본다. ◎일본의 입장/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북·일 관계정상화 남북공존 촉진/붕괴·흡수통일 경우 일 비용관련 큰 역할 지난 94년 10월 24일 발표된 미·북한 기본합의문(제네바합의)의 가장 큰 특징은 3개의 단계(최초의 6개월,약 5년후,2003년)를 거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일시 동결」로부터 「완전 포기」로 전환된다는 것이다.흑연감속형원자로와 관련시설의 활동은 6개월 이내에 동결하고 과거의 의혹을 해명(특별사찰)하는데 약 5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물론 제네바합의가 원활하게 이행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5∼10년후의 북한정세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만 폭력적인 사태를 피하고 핵무기 개발의 최종적인 로드맵(roadmap)을 마련한 의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10년의 시간에 걸친 북한의 「살아남기」실험에 대해 단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한·미·일은 북한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게됐다. 4자회담에는 북한으로서도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가능성을 포함하여 몇가지 이점이 있다.그러나 이제까지의 그들 기본방침(「새로운 평화체제」)에서 볼때 4자회담 제의는 당연히 즉각 거절해야 할것이었다.그러나 4자회담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 북한은 아직까지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는다.4자회담의 내용에 대해 미국에 설명을 요구하며 몇차례 회합을 가졌을 뿐이다. 북한의 앞날에는 두가지 장애물이 놓여있다.첫번재 장애물은,대외관계를 개선하고 외부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파탄상태에 놓인 경제를 재건하는데 이를 이용하기위해 「기본적인 합의의 틀」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문제이다.두번째 장애물은 북한이 중국모델을 본딴 개혁·개방을 도입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데 있다.이 장애물 극복여부에 따라 북한의 장래는 세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할 수 있다.북한이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실패한다면 김정일의 위신은 떨어지고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고립되며 심각한 경제·식량난으로 위기로 치닫게 될것이다.이것이 첫번째 시나리오이다.이때 북한이 외부에 대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개혁·개방의 경우,정책을 들러싼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치열한 투쟁은 결국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최고지도자와 정치체제,그리고 국가라는 삼위일체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좋고 싫음에 관계없이 한국은 북한을 흡수 통일할 것이다.이것이 두번째 시나리오다.만일 북한이 두번째 장애물(중국식 개혁·개방)을 극복하고 「살아남기」실험에서 성공한다면 남북한은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10년이상 공존할 수 있다.이것이 세번째 시나리오이다.이 가운데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북한의 향후 행동에 달려있다. 특히 북한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은 두번째 단계에서 개혁과 개방을 이루는 것이다.이같은 일이 성곡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따라서 우리는 이 두번째 단계에서 1)경제교류를 통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계속 촉진해 나가는 한편 2)북한의 갑작스런 내부붕괴에 대처하는 방안을 동시에 준비하는 완전히 상반된 정책들을 마련해야만 한다.특히 북한붕괴나 이에따른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의 경우 통일비용 등과 관련해 일본의 역할은 적지 않을것이다.북·일관계가 정상화됐다고 했을때,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일본으로부터 북한에 이전될 대규모의 자본과 기술은 북한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남북한간의 공존이 이뤄지는 것을 촉진할 것이다. ◎한국의 선택/정태익 외무부 기획관리실장/진정한 대화 재개만이 공존 열쇠/남북 상호불신 여전… 미·중 지원 맞물려야 한반도 평화는 역내안보와 안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한국정부는 민족화해와 평화공존을 협의하기 위한 대화에 노력해왔으나 북한은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고있다.대화부재에 더하여 북한은 지난 40년동안 비록 불안정하나마 한반도 평화유지에 유용했던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겠다고 위협해 온 바 있다.놀랍게도 지난 9월 북한군의 잠수함 1척이 남한 해안에 좌초된채,26명의 무장군인이 우리 해안을 침투했다.이는 정전협정에 대한분명하고 중대한 위반일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매우 심각한 군사적 도발행위인 것이다. 4자회담은 남북한간 신뢰구축을 통해서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데 있다.4자회담에서는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에 책임있는 직접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반면,현 정전협정 형성에 관여한 미국과 중국은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한반도에서의 견실한 평화를 마련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이다.만약 북한이 4자회담에 동의한다면 현 정전협정의 새로운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신뢰구축및 긴장완화 조치등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광범위한 문제들이 깊이있게 논의될 수 있다. 남북한간에 지속되고 있는 상호불신과 적대감에 비추어,문제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남북한 두당사자의 노력만으로는 쉽게 마련될 수 없다.그런 맥락에서 한국전쟁과 정전협정에 관여한 미국과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특히 북한문제에 관한 한·미간의 정책협조는 북한핵개발계획의 방지와 최근인도적 차원의 식량원조 제공을 통해서 한반도 안전과 안정유지에 크게 성공했다.중국의 역할도 4자회담 성사에 중요하다.중국은 한반도 평화구축에 있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것이다.일본과 러시아는 4자회담에 포함되지 않았다.4자회담 제안은 남북한의 직접당사자와 정전협정에 관여돼있는 나라의 최소한의 수로 진행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행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일본과 러시아는 4자회담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나 추진중인 동북아안보대화(NEASED)를 통해서 한반도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한은 자유의사에 의한 평화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상호간의 합의를 추구함으로써 한반도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잠수함을 통한 북한공비들의 남한 침투는 한반도 상황의 어떠한 개선도 의미있는 남북한간의 대화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남북한은 1991년 남북한기본합의서를 통해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노력할 것임을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이 약속은 가장 빠른 시일내에 이행돼야 한다.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촉진하기위해 한국정부는 작년에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15만t의 쌀을 제공했다.또한 국제기구의 호소에 따라 3백만달러 상당의 유아용 배합분말 및 분유를 제공하는등 지원을 계속했다. 미·북한 관계와 경수로 사업에 어떠한 진전이 이루어 지더라도 남북한간의 평화공존 없이는 한반도 정세는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북한이 미·북 합의서에서 남한과의 대화재개를 약속했지만 남북한간의 대화는 여전히 중단돼 있다.우리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인 요소인 남북한간의 대화가 재개되도록 돕는데 역점을 두기를 기대한다.
  • “서울대 국내 학문발전 큰기여”/「서울대인 의식조사」

    ◎“독점적 지위로 하회 역기능도”/“한총련 사태 친북·폭력성이 문제” 서울대 교수들과 학생들은 대체로 서울대가 학문발전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독점적 지위」로 우리사회에 많은 폐해를 끼쳤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서울대 「대학신문」은 14일 개교 50돌을 맞아 교수 121명,대학원생 225명,학부생 738명 등 모두 1천84명을 대상으로 「서울대인의 의식조사」를 조사(복수 응답)한 결과,교수의 78.5%,대학원생 55.1%,학부생의 44.2%가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신분 상승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는 교수의 19%,대학원생 29.3%,학부생의 32.9%가 찬성했다. 반면 대학원생의 31%,학부생의 33%는 「서울대가 독점적 지위로 사회에 많은 폐해를 끼쳤다」고 지적했고 대학원생의 25.3%,학부생의 32.9%는 「입시과열 등을 부추겨 중등교육을 왜곡시켰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울대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교수의 76.7%,대학원생 52%,학부생 47.5%가 찬성했다. 「한총련」사태와 관련,교수의 55.5%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지만 학생들의 친북성과 폭력성이 더 큰 문제」라고 응답했다.그러나 대학원생의 52.3%,학부생의 59.3%는 「정부의 강경진압과 언론 이데올로기 공세에 문제가 있다」고 시각차를 보였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대부분 한국전쟁을 꼽았다.〈이지운 기자〉
  • 미 대선후보 토론/한반도 관련 내용

    ◎클린턴·보브 돌/「한반도 시각」 큰차이/핵개발계획 봉쇄… 대북정책 성공적­클린턴/핵폭탄 6개 제조능력… 지원 끊어야­보브 돌 미 대통령선거를 한달 앞두고 6일 벌어진 후보자 대토론에서 민주·공화 양당 대통령후보의 대한반도 정책과 시각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주목된다.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유화론 내지 설득론을 표명한데 반해 공화당의 보브 돌 후보는 대북강경론 내지 대결론을 주장하며 북한 핵문제에 대한 기존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이번 제1차 토론에서 한반도 정책과 관련,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돌 후보가 단호한 어조로 대북강경론을 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돌 후보는 『한국전쟁 당시 5만3천명의 미군이 희생됐다』면서 『그러한 북한에 대해 어떤 혜택도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며 북한핵의 동결을 대가로 한 일체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그는 특히 『북한은 현재 6개의 핵폭탄을 제조하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폐쇄사회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우리는 아무런 감시도 못하고 있는데 우리는 인센티브를 주어왔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의 「위험한 불장난」을 막기 위한 그간의 대북정책기조는 옳았다고 옹호했다.그는 전세계 미군배치에 관한 정책을 설명하는 가운데 북한의 핵위협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성공」이라고 묘사했다. 즉 제네바 협정에 입각,북한의 핵개발계획을 동결하는 대신 한·일 양국과 협조해 북한에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하면서 미·북 관계를 개선,북한을 개방된 국제사회로 이끌어내는 정책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다. 이처럼 양당 대통령후보의 대북정책이 전혀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큰 편차를 나타냄에 따라 향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오는 11월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나윤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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