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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국방부장 방한 안팎

    츠하오톈(遲浩田) 중국 국방부장의 방한은 지난해 8월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의 방중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이뤄졌지만 한국전쟁이후 지난 반세기동안 서로 총부리를 겨눈 교전 상대국의 군 최고 책임자가 처음으로 우리나라를찾았다는 점에서 군사·정치적 의미가 깊다. 츠 부장은 지금까지 북한을 3번 방문했지만 국방부장 자격으로 방북한 적은없었다. ◆방한 안팎=츠 부장은 예정보다 2시간25분 늦은 오후 1시45분 도착했다.국방부는 환영의장행사를 20일로 연기하는 등 방한 첫째날 일정을 긴급 조정했다. 일행은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잠시 여장을 푼 뒤 오후 4시 청와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방문했다. ◆방한단의 면면=방한단에는 츠 부장의 부인 지앙칭핑(姜靑萍) 여사를 비롯수에이밍타이(隋明太·중장)제2포병 정치위원,쩡션시아(鄭申俠·중장) 공군참모장,짱원칭(臧文淸·중장) 북경군구 부사령원,왕지엔민(王建民·소장) 심양군구 참모장,루오빈(羅斌·소장) 국방부 외사주임,왕위청(王玉成·소장)해군 부참모장 등 중국군 핵심 장성 15명이 포함돼있다. 특히 루오빈 국방부 외사주임은 이번 방한을 성사시킨 지한파로 중국 군부의 실세로 알려져있다.중국의 최정예부대인 북경군구 및 심양군구의 제2인자인 부사령원과 참모장이 방한단에 참가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츠하오텐은 누구=정치,군사부문에 능통한 인민해방군 공식서열 2위의 실력자.신중한 성격에 뛰어난 실무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있다.7년째 국방부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공식직함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국무위원 겸국방부장. 산둥(山東)성 자오위안(招遠) 출신으로 15살때인 1944년 팔로군의 소년 통신병으로 입대,항일전쟁에 참가했다.6·25전쟁 당시 하급장교로서 3년간 참전했다.덩샤오핑(鄧小平)의 총애를 받아 92년 국방부장,95년 당 중앙군사위부주석을 맡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광장] 보다 성숙한 韓·中관계를 위하여

    새천년 경진년을 맞는 중국은 전통적으로 숭상하는 용의 상서로움으로 21세기 초강대국이 되기 위한 희망에 부풀어 있다.지난 5,000년에 이르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1990년대 만큼 한국이 중국에 대접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부마국 내지는 변방의 오랑캐 취급을 받아 문명이 뒤떨어진 국가로 낙인찍혀있던 조선반도임을 생각할 때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국을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의미로 새겨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19일 중국의 츠 하오톈 국방부장이 조성태 국방부장관의 공식초청으로 한국에 온다.지난해 조장관의 방중에 대한 답방형식이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중국 국방부장의 이번 방한은 처음 이루어진 것으로,한·중 양국의 군사협력관계를 한차원 높인다는 뜻에서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국민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포용정책은 굳건한 국방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비로소 성공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할 때,양국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반대,대량살상무기 확산금지 등의 현안에 공감대를 이루어 한반도에서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국방장관이 방한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마치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 한국에 전격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되고 ‘대미’를 장식하게 되어 북한에 압박감을 주게 될 것이라는 인식은 곤란하다.주지하는 대로 중국과 유일한 혈맹관계를 내세우며 북한은 당·정·군 고위관계자들간의 상호방문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다. 츠 부장은 국방부장 자격으로 방북한 경우는 없으나 정부사절단(단장 후진타오)의 일원으로 조선전쟁승리탑 및 기념관 건립시(1993년 7월23일) 북한을 방문하였다.지난해 6월에는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중국방문시에 수행한 인민무력상 김일철 차수 등 북한의 군부인사들과 환담을 나누는 등 상호간 동맹관계를 다져왔다. 츠 부장은 남·북한 군사외교에 균형을 잡아 동일한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소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그의 이번 방한으로 한·중관계에서 가장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는 군사분야에 대한 협력이진일보할수 있게 되었다.특히 한국전쟁 참전경험으로 전쟁의 참상을 누구보다도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그가 중국군의 대 남북한 군사부문에 있어서 ‘균형외교’를 지향하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츠 부장 일행의 방한을 마치 중국이 북한의 굴레를 벗어나 남한 입장의 옹호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 중시 정책’을 채택한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 안이한 판단이다.무엇보다도 중국은 21세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우려되는 미국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 유지를 견제하기 위해 신질서 재편에서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남·북한 등거리외교를 통해 동북아 군사력 균형에 기여하고 한반도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 자신들의 영향력 확보를위한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제 한·중 군사외교가 강화됨으로써 양국은 더욱 성숙한 ‘21세기 동반자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한국은 지난 5일 새해 첫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중국에 ‘정직한 중개자 역할’을 요청하면서,중국이 등거리외교에 머물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인 대북한 설득외교를 펼쳐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지나친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보다는 이번 츠 하오톈 국방부장의 방한을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 위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6·25의 폐허 속에서 오늘날의 부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 한국은 중국보다한발 앞서가는 경제발전정책 덕택으로 중국에게서 과거와 다른 대접을 받고있다.본래 ‘펑요우(朋友)’였던 중국은 한때 이념적 적대관계를 유지하던적군이었으나 이제 다시 ‘라오펑요우(老朋友)’로서의 의미를 깊이 새길수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지고 있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 日警이 독립운동가 공적 증언

    항일운동을 펼치고도 관련자료가 없어 독립유공 포상에서 제외된 독립운동가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일제 형사의 ‘증언’을 받아내,뒤늦게 훈장을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 당시 동료들의 증언으로 포상받은 사례는 더러 있었으나 일경이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확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제 말기인 1942년 5월 비밀결사조직 ‘친우회’를 결성,네차례에 걸쳐 부산시내에 반일전단을 살포한 이광우(李光雨·75·부산시 동구 좌천동)씨는 44년 6월 부산지법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단기 1년,장기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복역 중 해방을 맞아 출옥했다. 이씨는 이에 따라 지난 89년 정부에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냈으나 관련판결문이 첨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사보류 조치를 받았다. 이후 이씨는 김천형무소와 정부기록보존소 등에서 자료를 수소문했으나 한국전쟁 등으로 자료가 소실됐다는 답변만을 들었다. 이씨는 이어 당시 자신을 검거한 일경 하판락(河判洛·88·부산거주)씨가해방 후 반민특위에 검거됐을 때 자신과 관련된 언급을 했었고 자신 역시 하씨의 죄상을 밝히는 증언을 했던 기록 등을 근거자료로 제출하기로 했으나당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하씨는 일제 때 경남도경 고등과 외사주임으로 독립운동가를 조사했었다. 한편 지난 11일 하씨는 기자와 단독인터뷰에서 “일경으로 있을 때 이광우씨 건을 취급했었다”면서 “필요하면 추가로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국가보훈처측은 “당사자의 증언인데다 관련 문건이 뒷받침돼 자료가치가 충분하다”며 이씨의 공적을 새로 심사할 뜻을 밝혔다. 하씨는 해방 후 목재수입상 등을 경영하면서 비교적 여유있게 살아왔다. 정운현기자 jwh59@ *친일경찰 하판락씨 인터뷰 일제 때 경남도경 고등과 외사주임으로 독립운동가를 뒤┌榕年? 하판락씨는 “일제 경찰간부를 지낸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며 그동안 숨겨온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언제 경찰에 들어갔나. 진주고보(3회)를 마치고 진양군청 고원(雇員)으로 근무하던중 1936년 경찰에 투신했다. ◆일경 시절 주요 담당업무는. 경남도경 소속 수상경찰서,고등과 외사계에서 적색분자·외사범 검거를 담당하며 해방때까지 근무했으며 최종계급은 경부보였다. ◆1943년 ‘친우회 불온전단사건’과 관련,주동자 이광우씨를 검거한 것을기억하는가. 부하인 김소복과 함께 그 사건을 다뤘었다. ◆반민특위에 체포된 경위와 재판결과는. 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울 마포형무소에 구금됐다.서울에서 3회,부산에서 1회 등 모두 4차 공판을 거쳐 최종 무혐의로 풀려났다. 부산 정운현기자
  • [대한광장] 진실의 시간

    지난 역사를 농경사회,산업사회로 크게 대별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지식 정보화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이 대세인 듯 하다.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말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우선 신문의 면수만 봐도 그렇다.두툼한 책자에 버금가는 정보가 쉼없이 실리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매일매일 전달되고 있다.인테넷 공간에는 간단한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한없는 정보가 국가간은 물론 대륙을 넘어 넘나들고 있다.뿐이랴 이제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즉각즉각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러한 사이버 시대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공간개념을 전면적으로수정할 것을 요구한다.혼자만의 공간,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사라졌다.어느 누구도 골방에 갇혀 있을 시간이 없다.부르면 즉각 답해야 한다.머뭇거릴 시간도 없다.보이지 않던 공간을 활용하는 순간 보이던 공간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공간은 남아 있다.바로 우리의 현대사다.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의 정치범 1,800명을 포함 대전 대구 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 처형된 사실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6.25관련 비밀문서에서 확인되었다고 한다.이들 비밀문서는 제주 4·3사태를 추적해온 한 재미동포가 미국정부에 요청하여 지난해 12월 16일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목숨이 왔다갔다한 사실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의한 창고에서 수십년간씩이나 냉동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허탈에 이르게 한다.얼마전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서 보듯 터무니없이 희생당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희생당한 사실을 쉬쉬하면서 40∼50년을 지내와야 했던 통한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통한의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의 규명이다.또한 규명된 진실에 걸맞는 명예의 회복일 것이다.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정보의 허망함에 한기를 느낀다. 정보의 총량은 엄청나게 많아졌고 그것의 소통방법은 그야말로 최첨단이건만 그러한 정보의 대부분이 갇혀있는 정보의 한 줄에 비해 결코 값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가 진정 어디인지 아득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문제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의 확인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그것이 무엇이든 한번에 알 수 있다면 그것을 숙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건만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다.죽은줄 알고 묻으려 했던 아이가 숨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리는 비 속에서 통곡하던 소설‘밤길’의 끝부분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국내 규정에 따라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이루었던 진실이 마른 시냇물 흐르듯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형국이다.그러면서도 우리는 마치 필요한정보는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 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진실의 시간은 늘 미래이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이 현재가 언젠가 밝혀질 진실에 의해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현재가 없다는 말에다름 아니다.우리는 현재로부터 영원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또한 소외되어 있는 시간 동안의 억울함과 분노,치욕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몫일 따름이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진정한 정보는 진실이 담겨 있는 역사다.니체는 한책에서 ‘사람들이 이미 사랑할 수 없는 곳 그곳을 통과해야 하노라’라는말을 한 적이 있다.나는 이 대단한 정보지식의 사회가 미루어진 진실 혹은유보된 진실의 세계를 관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참정보 사회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형철 숭의여대교수·문학평론가
  • “한국군 베트남戰 부끄러운 역사 고백을”

    지난해 9월말부터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은 다름아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수백명의 양민을 대량학살한 ‘노근리 사건’이었다.그러나 이 사실은 국내 언론이 아닌 미국의 AP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공론화됐다는 점에서큰 아쉬움을 남겼다.이에 따라 한국언론이 ‘외신 사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게 일었다. 미국이 ‘가해자’임을 과감하게 밝힌 AP통신에게 진 ‘빚’을 갚으려는 것일까.모든 언론의 관심이 희망찬 21세기와 새천년으로 쏠리고 있는 지금,일부 언론이 20세기의 ‘부끄러운 역사’를 밝혀내기 위한 외로운 작업에 나섰다.‘노근리’의 양민학살과 같은 사건이 30여년전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면을 통해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다. 보도의 발단은 지난해 5월 ‘한겨레21’ 256호에 실린 구수정(34) 베트남통신원의 기사 ‘아!몸서리쳐지는 한국군’으로부터 시작됐다. 5페이지 분량의 이 기사는 베트남 전범조사위의 한국군 만행 기록에 주로 바탕을 두었다. 이어 구 통신원은 과거 한국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베트남을 종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수집했고,같은해 9월 ‘한겨레21’ 273호에 12페이지짜리 특집기사를 실었다.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의 이기사는 국내 언론이 최초로 보도한 한국군의 양민학살 기록이다.때마침 10월,베트남의 시사주간지 ‘일요 투오이쩨’는 베트남 언론 최초로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를 제기했고,이어 여러 매체에서 구 통신원의 기사를 소개했다. ‘한겨레 21’은 한발 나아가 280호부터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자’라는 주제 아래 ‘베트남전 양민학살 피해자가족 돕기운동’에 나섰다.이 잡지의 편집장은 성금모금 캠페인을 벌이는 배경과 관련,“우리의 비극에 햇빛을 들이대길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치부에 햇빛을 비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금운동은 292호까지 벌써 13회째 이어지고 있다.성금액도 일주일에 300∼400만원씩 꾸준히 모여 모두 5,000만원을 넘어섰다.베트남관련 기사 및 캠페인을 맡고 있는 고경태(33) 기자는 “앞으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진상규명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밝혀져야 할 ‘역사의 진실’ 앞에서 다른 언론의 동참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창간한 오연호(36) 전 월간 ‘말’지 기자도 월간 ‘말’ 1월호와 ‘오마이뉴스’ 창간준비호에서 35년만에 입을 연베트남 참전 청룡부대 전투소대장들의 증언을 생생히 담았다. 오 기자의 심층보도가 전해지자 KBS ‘추적60분’팀이 현장취재에 들어갔고,곧 ‘오마이뉴스’에서는 기사를 영문번역해 베트남에 알릴 계획이다.오 기자는 “과거의 ‘가해’역사를 솔직히 반성해야 ‘노근리 사건’에 대한 배상 요구도 떳떳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中 국방부장 첫 방한 의미

    츠하오톈(遲浩田) 국방부장의 방한은 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관계 정상화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한국전쟁의 교전국으로서 가장 껄끄러웠던 군사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상징하는 동시에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의 ‘기폭제’로서의 의의를 지닌 탓이다. 더욱이 북한의 유일한 ‘혈맹’인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한·중 군사외교 강화는 한반도 평화구축에 더욱 탄력성을 부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츠 국방부장의 이번 방한은 지난해 8월 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 방중의 답방 형식을 띤 것이다.이번 상호 방문의 성사로 포용정책의 기조 위에서 추진했던 미·일·중·러 한반도 주변 4강과의 국방장관 회담 연례화가 완결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이다.정부 당국자는 “정치·경제분야의 활발한 교류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가 군사·외교 부문으로 확대되면서 4강외교의 절정을이뤘다”고 밝혔다. 오는 20일 예정된 한·중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한반도 긴장 완화,대량 살상무기 확산방지,북한 미사일 재발사 저지 등을 협의하고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중국 군부의 적극적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조 장관 방중시 중국측에 제의한 각군 총참모장 등 군장성 및함정의 교환 방문,공동해상구조 훈련,육·해·공군 대학 교환 교육,군사연구기관간 정기교류 등에서 상당한 진전이 예상된다. 한·중 군사외교 강화는 ‘21세기 동반자 관계’를 한층 성숙케 하는 의의도 갖는다.지난 5일 새해 첫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정직한 중개자 역할’을 중국측에 요청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중국의 남북한 등거리 외교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북 외교노력을 촉구한 것이다.그만큼 한·중 외교 관계가 정상화됐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국제적 현실을 절감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비유됐던 북·중 관계의 한계를 드러낸 동시에 미·일 관계개선을 통한 고립탈피와 모험적 군사·외교노선의 위축 등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美, 노근리진상 철저규명 약속

    미국측 노근리사건 대책단장인 루이스 칼데라 육군성 장관과 미측 자문위원단은 10일 충북 영동군 노근리 현장 등을 방문,현지 주민들로부터 한국전쟁당시 학살 피해에 대한 증언을 듣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미측 방문단은 이날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사건 대책위’ 정구학(鄭求學·60) 총무 등으로부터 미군의 항공폭격 및 기관총 사격 등 학살피해 상황등을 듣고 현장인 쌍굴터널 등에 남아 있는 탄흔 등을 조사했다. 칼데라 장관은 이어 영동군청 회의실에서 대책위 관계자 등과 면담을 갖고“미국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그러나 당시 미 육군과 공군의 작전기록 검토와 참고인들의 증언청취 등조사활동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측 방문단에는 크레긴 인사·준비태세 담당 부차관,헨리 인력차관보,애커먼 감찰감 등 미 육군성 고위 간부 및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매클로스키 전하원의원,메이 하버드대 교수 등이 포함돼 있다.한편 한·미 양국 ‘노근리사건’ 대책단 및민간자문위원단은 11일 정부중앙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진상규명을 위한 협조방안을 논의한다.양국 대책단은 회의 후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공조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시론] 평화 정착을 위한 제언

    새 천년의 새날이 밝아왔다.우선 모든 이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축원하고 싶다.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월은 흘러가게 되어 있고,미래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사람들은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도 하고,종말론적인 암울한 시대를 예상하기도 한다.그런데 역사가 진보한다는 역사철학 사상과 이에 회의적인 비관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인류의 역사에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도 이제까지 거듭 제기되어 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실존적 삶에서 끊임없이 묻게 되는 문제다. 어쨌든 새날을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어차피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의 몫이기 때문이다.길게는 20세기,짧게는 1999년도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내란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아직도 전쟁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구 유고지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코소보전쟁,러시아의 체첸 침공 등은 이러한 반인간적 사태의몇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세계에는 계층·세대·민족·지역·종교 사이에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 잠정적인 평화만 있을 뿐 폭력과 전쟁의 가능성은 휴화산처럼 남아 있다.뿐만 아니라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추세 가운데 국가간에무한경쟁이 강요되어 경제적 선진국과 후진국의 틈새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형국이다.6·25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한반도는 이제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이 시대에 우리가 염원해야 할것은 물론 세계평화이기도 하지만,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인 것이다. 최근 남북한 사이에 예술·체육 분야의 교류가 있게 된 것은 이러한 과제나 소망을 점진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첫걸음이다. 앞으로도 정부와 시민단체는 동포애에 기초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진지한 대화와 화합의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가 평화는 아니다.평화는 정의·질서·조화의 요소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상태이고,그 내실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의 보장이다.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며,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은 도덕적 요청이다.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경제위기로 인한 난국을 상당히 벗어난 것처럼 홍보하지만 국민들의 체감은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우리 주위에는 직장을 잃고 헤매는 실업자,노숙자와 그 가족들,병고와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결식 아동과 한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에속하는 시민들이 적지않다.정부는 불우한 이웃을 개인의 인정과 자비심에 맡기거나 시민단체와 종교단체의 자선활동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정책을 확대하여 그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의 확립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며,사회의 평화를 이룩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불의한 구석이많이 남아 있다.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재벌의 부정과 비리는 정직하게 근근이 살아가는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을 허탈에 빠지게 하고 분노케한다.정부는 사정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정의구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민 각자의 양심에 의한 결단과 행동이다. 남을 악용하고 지배하려는 폭력적인 인간관계는 청산되어야 한다.이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바치는 일이 평화를 실현하는 것임을 가슴에 되새기며 이웃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다.이렇게 할 때 새 천년에는 더욱 나은 인간관계와 국제관계가 형성될 것이며 개인의 마음의 평화와 함께 세계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박종대 서강대교수 철학
  • 대학생탐사대·70代노병 울릉도서 뜻깊은 만남

    “독도는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온 우리 땅입니다.독도를 지켜내는 것은 주변 강대국들로부터의 주권수호이며,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새 천년을 사흘 앞둔 29일 경상북도 울릉도에서는 뜻깊은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평생을 독도 지키기에 몸바쳐온 ‘독도 의용수비대’ 동기회장 김병렬(金秉烈·70)씨와 대학생 독도지키기 모임인 ‘새 천년 독도 탐사단’ 대학생들의만남이었다. 의용수비대는 지난 53년 일본의 독도 침범 당시 울릉도 출신 전역군인 33명이 모여 일본의 침입을 격퇴시킨 장본인들이다. 김씨는 “당시 일본이 한국전쟁이 끝나고 혼란한 틈을 타 독도에 ‘일본령’이라는 표지를 세워 울릉도 출신 군인들이 독도에 들어가 3년동안 독도를지켰다”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은 순수 민간인들이었지만 독도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씨는 최근 일본 시마네(島根)현 주민들이 독도로 호적을 옮긴 것에 대해“일본의 말도 안되는 억지”라고 일축하고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영토에호적을 옮기는 것은 ‘귀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천년 독도 주권선언과 독도 탐사를 위해 울릉도에 온 15개 대학 80여명의 학생들은 “독도를 위해 몸바쳐 싸운 의용수비대와 안용복씨 등의 독도사랑 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어대 동아리 ‘독도문제연구소’ 백승선(白承璇·20·여·인도어학과 2년)씨는 “일본의 억지 주장으로 분쟁구역이 된 독도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찾았다”면서 “7박8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독도 지키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4대째 울릉도에 살면서 독도지키기에 앞장서 온 ‘푸른 울릉·독도가꾸기모임’ 회장 이예균(李銳均·59)씨는 “우리가 아끼고 가꾸어온 독도가 일본의 정치적인 야욕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독도 수역을 양국 중간관리 수역으로 규정한 잘못된 한·일어업협정은 폐기되거나 개정돼야 한다”고주장했다. 38년을 독도에 거주했던 김성도(金成道·60)씨는 “독도는 내가 22살때 첫인연을 맺은 뒤 혼자서라도 독도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온 우리땅”이라면서 “지금은 접안시설이 없어 들어갈 수 없지만 시설이 갖춰지면다시 독도에 들어가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독도 경비대장 윤종도경위(24)는 “최근 일본측의 망언이 나온 뒤 24시간철통경비를 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동쪽 끝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30여명의 대원들과 똘똘 뭉쳐 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 조현석기자 hyun68@
  • “美공군 6·25 피란행렬 공습”

    미 공군이 한국 전쟁중 피란행렬에 공습을 감행한 사실이 최근 비밀 해제된문건에서 확인됐다. AP통신은 28일 미 메릴랜드주 칼리지 파크 소재 국립문서보관소와 앨라배마주 미공군역사연구소에서 비밀해제된 한국전쟁중 미 공군 작전후 보고서에미 공군기들이 민간인 피란행렬에 지속적으로 공습과 기총소사를 감행,많은사상자를 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50년 7∼8월에 작성된 작전후 보고서의 경우 “유성 남쪽 강 근처에서 많은 군인을 발견,기총소사를 했으나 짐도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피란민 일 가능성이 높았다”고 적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보고서에서 밝힌 ‘유성’이 대전 부근의 유성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당시 AP통신 종군 기자는 “51년 1월 말쯤 용인근처에서 많은 시체가 발견됐는데 정보장교는 중공군 때문에 이들이 죽었다고 설명했으나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정보장교는 얼버무렸다”며 이들이 민간인일 가능성이 높다고증언했다고 AP는 설명했다. AP측은 당시 공습에 참여한 주일 미 공군기들은 연료부족으로 공습이나 폭탄 투하 후 곧바로 귀환했기 때문에 정확한 공습지점이나 인명피해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희준기자 pn
  • 죽산 조봉암 정치역정 고찰서 나와

    우리 사학계에서 미개척지대로 지칭되고 있는 영역이 시대사 연구이다.서양의 역사연구나 기록이 정치사 중심에서 시대사,생활사로 다양화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역사연구는 주로 왕조사·정치사·사건사 등에 치우친 감이 없지않다. 한국 사학계에서 최초로 현대사(해방이후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51) 교수는 최근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를 펴냈다(역사비평사펴냄).이 책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법살(法殺)된 이후 정치학계,역사학계 모두에서 연구가 미진했던 진보정치인 죽산 조봉암(曺奉岩)의 정치역정을 1950년대라는 시대사와 맞물려 연구한 것으로 금년 6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죽산 조봉암전집’과 함께 조봉암 연구의 쌍벽으로 평가할만 한 책이다. 상권은 이승만 정권의 극우 반공체제가 구축되던 시점에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정면으로 맞서 평화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반공’ 일색의 한국땅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인 조봉암’의 정치역정을 통해 당시대를재조명하고 있다. 해방과 남북한의 정권수립에 뒤이은 6·25전쟁으로 시작된 1950년대는 1910년대,일제말기 만큼이나 암울한 시기였다.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는 극에달해 있었으며 사회는 총체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그러나 이 시기에그같은 현상을 거부하면서 혁신·진보세력이 태동하였는데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조봉암이었다. 조봉암이 내건 평화통일론은 겉모습은 미국·유엔의 입장과 같은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북진통일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냉전·극우반공체제에 남북간의 긴장과 적대의식을 해소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이승만 정권하의 반공이데올로기는 체제유지·강화를 위한 것이었는데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조봉암을 두고 ‘역풍(逆風)의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조봉암과 진보당이 공산주의도,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주창했던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의 계획화·국유화를 중심으로 전개하였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진보세력이 이같은 노선을 취한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고 있다. ‘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이란 부제가 붙은 하권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1950년대에 자행된 양민학살문제와 부역자 처리 등 전후 처리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다.특히 부역자 처리문제 등은 박원순 변호사 등 몇 사람의 연구성과가 있을 뿐 거의 공백지대로 남겨진 분야여서 이번 저자의 문제제기는학계의 신선한 자극으로 평가할만 하다. 양민학살문제의 경우 97년 ‘거창양민학살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최근 국회에서 ‘제주4·3사건특별법’이 추가로 제정된데다 지난 9월 ‘노근리사건’이 사회문제로 제기돼 학계의 연구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 전역에서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은 그동안 일부사건을 제외하고는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저자는 “제주4·3학살,거창양민학살 등을 제외하면 그외의 주민집단학살과 부역자 진상파악은 초보적 단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우리의 학살문제에 대해서 당국과 국민들이 침묵하는 것은이해할 수없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개혁·민생법안 처리 물건너가나

    정기국회 폐회일(18일)을 사흘 앞둔 15일 개혁·민생법안 처리를 놓고 여권에 비상이 걸렸다. 국회는 16·17·18일 본회의에서 상임위 등에 계류중인 550여개 법안 가운데 70여개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그러나 주요 개혁·민생 법안들을 놓고여야가 대립,회기내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처리가능한 법안도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상임위 및 본회의 처리가 무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의원들의 지역구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의석을지키는 의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민회의는 소속의원 전원의 본회의 참석을 독려하고나섰다.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총무는 이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개혁 법안 처리를 위해 의원들의 출석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특별 지시를 했다”면서 16대 총선의 공천기준이 ‘원내 활동’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이어 “출석이 부진한 의원은 총선출마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놓았다. 여권이 민생·개혁법안을 하나라도 더 처리하려고 애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계류중인 법안을 이번 회기내에 처리하지 못할 경우 15대 국회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정기국회가 끝난 뒤 또는 내년에 임시국회를 소집할 수 있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누적된 법안 처리는 사실상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상당수 개혁법안 처리가 무산될 경우 국민들에게 정부·여당의 개혁 의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걱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여권은 가능한 모든 개혁·민생 법안을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반드시 처리해야 할 주요 개혁·민생법은 방송법,인권법,반부패기본법,민주화운동 보상법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예우에 관한 법,영화진흥법,제조물책임법,제주 4·3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청소년 보호를 위한 특별법,지방인재 지역균등 등용 촉진법,주민투표법,영재교육진흥법,변호사법,전략산업 구조개편에 관한 법 등을 꼽을 수 있다.이 법안들 중 5년 전부터 법개정을 추진해 온 방송법과 제조업자의 고의 과실 여부에 관계없이 피해보상을해주도록 한 ‘제조물 책임법’은대표적인 개혁·민생법안들로 본회의 처리전망이 밝은 편이다. 문제는 회기내 처리가 불투명한 법안들이다.인권법·반부패기본법 등이 대표적이다.여야가 법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국가보안법도,전력산업구조개편에 관한법도 마찬가지다. 여권은 이 개혁·민생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그러나 ‘선거법 합의처리’라는 대명제 때문에 다른 법안의 강행처리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강동형기자 yunbin@ - 집단피해 구제법 마련 의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민회의가 준비중인 ‘국가권력의 불법행위로 인한 집단피해자 구제 관련 법안’은 ‘과거 청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한 보상 또는 배상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이같은 사안에 대해 매번 특별법을 제정,보상·배상을 하기보다는 하나의 법 체계속에서 종합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앞으로 생길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보상·배상의기준을 마련하자는 뜻도 있다. 당은 정책위에 법안 준비를 위한 정책기획단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입법준비에 착수할 계획이다.구체적인 구제대상과 기준 등은 피해자,전문가와 함께공청회를 열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뒤 마련할 방침이다. 법안은 사회 각계 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회 설치를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아 구제 여부를 판정하고,기존 법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배상·보상액도 결정하게 될 전망이다. 당장 이 법안에 포함될 구제대상은 80년대 강제 해직된 예비군중대장들이거론되고 있다.이들에 대해서는 퇴직보상금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청교육 피해자,해직 언론인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도 이뤄질 전망이다.이들에 대한 보상·배상 등은 현재 특별법으로 발의돼 국회에 제출됐으나계류중이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고 새 법에 포함시킬 계획이다.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교사들 문제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근리사건 등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군이나 국군에 피해를 본 사람들도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그러나 상당수 피해자들이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구제대상 포함 여부는 불투명하다.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법 개정안이나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보상등에 관한 법률안은 이미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만큼 이번 정기국회에서 그대로 처리될 전망이다.대신 이 개별법들을 하나로 합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지운기자 jj@
  • [대한광장] 美·日은 對北수교 적극 나서야

    “많은 미국인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들이 상식적인 행동 궤도를 벗어난 데다 의심 많고 편집광적이며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거래할 수 있는가.” 최근 있었던 미국 공영방송 PBS대담 중의 한 질문이다. “사실 북한 지도자들은 완고하다.그러나 결코 상식적인 궤도를 벗어나거나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아니다.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매우 논리적이며이론적이다.단지 우리는 그들의 이론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그래서 그들을 비논리적인 사람들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북한 고위층과 누구보다도 직접적으로 깊은 대화를 한 바 있는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대답이다. 페리는 누구인가.그는 건의서 작성기간중 국무부·국방부·백악관·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북한관계 전문가,한·일 양국의 책임자들과 심도 있는협의를 가진 사람이다.그뿐 아니다.그는 높은 지성의 학자이며,1994년 6월북의 ‘핵무기 의혹’ 해결의 군사적 제재 목적으로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위기가 있을 당시 대북 군사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방장관이었다.그런 그가 솔직히 시인하는 말이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행동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북의 행동은 결코 상식을 벗어난 것이 아니고,주어진 환경과 상황속의합리적인 행동방식이었다는 뜻이다.그는 또 “북한이 미사일 개발계획을 필요로 하는 여러가지 이유중 주된 이유는 국가안보·억지력이다.그 억지 대상은 바로 미국이다.북은 우리 미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페리가 북의 핵의혹과 미사일개발 정책을 분석하고 건의한 결론이 북의 국가안보 보장이며 북과 국교정상화다.적대적 대치·견제관계를 탈피해 유화·협력관계로의 일대 전환이다.이는 한국 정부가 주장해온 한반도에서 냉전체제 해체 구상의 실현이다.그러나 공화당 다수의 미 의회는 북의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하며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 홍수와 가뭄,기아와 고립 등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동양의 한 작은 나라가 국제사회의 품격 있는 일원으로역할할 수 있도록 미국은 페리 조정관의 건의를 수용 실천,초강대국에 요구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이것이 미국이 기치 높이 주창하고 있는 인도주의이며 기독교 정신이다. 이 당연한 시대적 변혁의 정책구도에서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이 시작된다.북이 당면한 최 주요과제가 국가의 안전보장이며 식량난을 포함한 경제적난국의 해결이다.전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찾을 수 있고,후자는 일본과의 관계정상화에서 얻을 수 있다. 1978년 8월 일본은 중국과 수교했다.1979년 1월의 중·미 수교보다 5개월앞섰다.전쟁 가해국으로 순서상 미국보다 먼저 사과와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의 자세는 평가받고 있다. 1990년 9월 가네마루 신(金丸信)전부총리의 자민·사회 양당과 조선노동당3당은 공동대표 선언으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전후(1945년 이후)의 적대적 행위와 보상’의 인정으로 일본 내에서 선언이문제됐고 정부간 회담은 8차회담 2년간의 난항 끝에 결렬된다.북측이 도저히받아들일 수없는 소위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전제사항으로 제기했기때문이다.비록 실력자 가네마루 부총리의 의지와 성의가 있었으나 보수·우익·관료들의 집요한 반대와 여론의 구사를 극복할 수 없었다.한국도 ‘조화와 병행 원칙’으로 제동을 걸었다. 일본은 100여년 전의 엄연한 역사적 침략사실과 진부(眞否)에 상호 입장 차이가 많은 ‘납치의혹’을 혼돈시키려는 일부 여론에 오도·좌우돼서는 안될것이다. 세계가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유럽연합(EU)·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 경제적·정치적으로 블록화돼 가는 시대조류에,일본은 그 기반이구미에 있기보다 아시아에 있다는 확실한 인식으로 20세기 불미한 과거를 청산하고 북·일 수교를 이룩해 새롭고 깨끗하고 덕(德) 있는 21세기 일본의위상을 확립하기를 기대한다. [孫 章 來 前말레이시아 대사]
  • “21세기엔 정보통신업 가장 각광”

    정보통신 관련업종 상한가 행진,환경관련 업종은 중기보유 유망,통일사업 관련 기업은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할 것. 네티즌을 통해 21세기 주식시장 전망을 그려본다면 이와 같을듯 하다.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KBS 제2라디오가 9월 한달간 네티즌 4,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뉴 밀레니엄 의식조사 결과 21세기 유망직종 1위는 정보통신 관련업,새천년에 가장 우려되는 일은 환경재앙,통일 예상시기는 10년이후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각광받을 직업으로는 정보통신 26.2%에 이어 컴퓨터 관련직종 20.2%,인터넷 관련 13.0%로 컴퓨터·정보통신 분야가 60%를 휩쓸어 단연 21세기 신종전문직으로 떠올랐다. 환경관련(5.3%)과 기존 전문직업(3.0%)등이 뒤를 이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정보통신은 새천년에 가장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 1위(68.2%)를 차지했으며 환경(16.0%)문화(10.0%)등이 뒤를 이었다. 새천년 한국의 도약을 위해 달라져야 할 분야로는 정치가 68.1%로 압도적 수위에 올랐다.하지만 새천년에 가장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 항목에서 정치의 변화를 기대한 이는 1.6%에 그쳐 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뿌리깊은 불신을 보여줬다.통일예상 시기를 묻는 질문에는 10년후(40.9%)10년내(30.1%)가 대부분이었으며 거의 불가능하다는 응답도 21.3%나 나왔다. 가장 우려되는 일 항목에서는 환경오염이 25.8%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 세계전쟁 8.7%,Y2K 6.0%,핵전쟁 4.5%,북한과의 전쟁 4.1% 순이었다.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으로는 1∼2차 세계대전 17.9%,한국전쟁과 남북분단 9.7%,IMF 8.6%,컴퓨터 발명·발달 6.2% 이외에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사고라는 응답도 6.1%나 나왔다. 21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인물로는 빌 게이츠 11.2%,김대중 10.0%,모르겠다 7.1%,정보통신에 능한 사람 6.1% 순이었다. 이번 네티즌 대상 밀레니엄 의식조사 결과는 오는 31일 오후2시부터 21시간생방송으로 진행될 KBS 제2라디오 밀레니엄 대기획 ‘다함께 희망의 새천년을’시간을 통해 방송된다. 손정숙기자 jssohn@
  • [기고] 東亞평화와 인권을 향하여

    한반도 전역이 한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을 때 따뜻한 남국의 섬 오키나와에서는 평화와 인권의 ‘난장판’이 질펀하게 벌어졌다.참가자의 암구호는 ‘미·일의 냉전정책과 동아시아의 평화·인권’.한국,타이완,일본 등 각지에서 320명 이상이 모여 11월26일부터 29일까지 열기가 이어졌다. 휴양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키나와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다.바로 미군 기지의 존재이다.섬 전체 면적은 일본 국토의 0.4%에 지나지 않으나,기지를 포함한 미군 전용시설의 75%가 집중돼 있다.미군 기지의 철폐를 둘러싸고 줄기찬 운동이 전개된 것은 물론이다.이번 제3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국제 학술대회가 오키나와에서 열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참고로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회의’는 지난 1997년 2월 제1회타이완 대회를 기점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로 돛을 올렸다. 참가자는 물론 발표자까지 자비부담을 원칙으로 하며,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는 것에서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조금은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제2회대회는 작년 8월 제주도에서 열렸다.‘4·3사건’이 국제 무대에 올려진 것은 그 때가 아마 처음일 것이다. 한국 일행 64명(단장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이 오키나와에 도착한 것은 25일.다음날 오전 옛 류큐 왕궁이 있던 슈리성과 박물관을 둘러보고,곧바로대회장소인 사시키로 향했다.27일은 오키나와 전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 9만4,000여명의 전사자에 비해 민간인이 15만명이나 죽어갔다는 사실이 오키나와 전투의 본질을 얘기해 준다.급기야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집단자결을 강요했다.부모가 자식을 죽여야 했던 처절한 비극이 섬 곳곳에서 벌어졌다. 섬에서 아비규환은 섬 남단의 마부니에 있는 ‘평화의 주춧돌’이 겨우 이름만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참극은 식민지 조선 백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군의 스파이로 몰려 학살당한 한 조선인 가족명단의 마지막은 ‘제5자(第五子)’였다.젖먹이까지 죽인 것이다.한편 그 옆 한국인 희생자 기념비에는일본군 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박정희의 이름이 버젓이 박혀 있었다.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오후는 오키나와의 현재의 비극,미군 기지 문제.최근에 외신에 가끔 거론되는 후텐마 기지의 이전 후보지인 헤노코에서 현지 주민들과의 연대 집회가있었다.‘인어’로 오인되기도 하는 세계적인 희귀 동물 듀우공의 서식지를매립하고 동아시아 평화의 ‘수호자’ 미군은 비행장을 건설하려고 한다는것이다.기지로 인해 황폐화되는 것은 듀우공과 자연만이 아니다.그 속에 살아가야 할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28,29일 이틀은 본격적인 심포지엄이 4개 세션으로 나눠 열렸다.주제는 ‘동아시아의 냉전을 넘어서’와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구조와 일본’,‘냉전하 동아시아 민중의 수난과 투쟁’이 1,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고,3국에서 20편의 발표가 이루어졌다.국가폭력과 관련한 여성문제도 대회의 중요한 이슈중의 하나다.여담이지만 그 점에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가장 ‘짭짤한’ 성과를 올렸다.오키나와의 관련 단체와 굳건한 동맹을 맺었으며,모금도 성공적이었으니까. 심포지엄의 총괄이 끝나고 각국의 성명서와 공동성명서가 채택되었다.참가자들의 마음은 푸근하게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향한 발걸음이 착착 그 무게를 더해간다는 것을느낀 것은 물론이다.4회 대회는 내년 5월에 광주에서 열린다.광주민주화항쟁20주년과 한국전쟁 50주년의 의미를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의 실현에 비추어서. [하종문 한신대교수·일본학]
  • 국군포로 한가족 6명 탈북 귀환

    북한에서 46년동안 억류됐던 국군포로의 일가족 6명이 북한을 탈출,제3국을통해 귀환했다. 국가정보원은 국군포로 박홍길씨(72세)와 처 등 6명이 귀환해와 탈북 경위와 북한에서의 생활 등을 조사중이라고 22일 밝혔다. 박씨는 아내와 차녀(35세),아들(32세),며느리(28세),손자(7세) 등과 함께북한을 탈출,제3국에 머물다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50년 한국전쟁때 국군에 입대,참전했다가 53년 2월 포로가 돼 함북 온성탄광에서 채탄부로 살아왔다. 국방부에선 박씨를 전사자로 처리,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기고] IMF위기 완전극복 아직 가야할 길 멀다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던 지난 70년대나 80년대에도 성장률이 10%선을 넘어서면 매우 높은 성장률이라 생각했었다.우리경제가 이제는 과열 상태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외환위기가 터져 나라가 무너질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지 2년도 채 안돼 우리 실물경제가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정말 좋아진 것인가? 더 좁게 이야기해서 우리 국민들의 평균적인 소득이 IMF 위기가 극복되었다 할 정도가된 것인가? 대답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경제성장률을 가지고 실물경제가 호황이라거나,또는 IMF 위기를 벗어났다고 판단할 정도로 경제가 좋아졌다는 주장을 한다면 이는 수준(level)과 비율(rate)을 혼동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올해의 연간 성장률이 9.0%라 하더라도 97년에 비해 98∼99년 2년동안의 우리 경제는 연평균 1.3% 성장한 것에 불과하다.97년 우리 국민 1인당 소득을100으로 할 때,99년 1인당 소득은 실질 원화 기준으로 100.7(예상성장률 9%가정),달러화 기준으로는 90.2(1인당 8,575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시장에서의 실질구매력은 기껏 0.7% 증가했고 세계시장에서 우리 국민한사람의 평균적인 구매력은 97년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다.올해 예상되는달러화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94년 수준(8,467달러)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우리 경제가 지금 심각한 불황국면에 빠져있다거나 앞날이 암담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금년의 높은 성장률에 현혹되어 지금의 실물경제 움직임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높은 경제성장률의 의미는 IMF의 충격에서 비롯된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불황에서 실물경제가 벗어나는 회복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아직 우리 경제의 많은 부분에서 불황의 그늘이 가시지 않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불황의 골이 매우 깊었기 때문에 그만큼 회복의 길도 멀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가 금년에 기대이상의 고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경기 회복,엔고,반도체 경기 호황 등 대외경제여건이 우리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전개된데 힘입은 바가 크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대외여건은 언제 또 뒤바뀔지 모른다. 우리경제가 IMF 위기로 야기된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경제 회복세를 지속시켜야 한다.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 [金柱亨 LG경제연구원 상무]
  • 한국戰 참전 미국인 금동불상 1점 반환

    문화관광부는 18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 찰스 F.슈미트씨가 보관해오다 최근 한국에 반환한 고려 말∼조선 초 추정 금동관음보살좌상 1구를 공개했다.높이 33㎝,가로폭 21㎝ 크기의 이 불상은 슈미트씨가 참전 중38선 부근 한 사찰에서 북한군 수중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한국 스님들로부터 잘 보관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넘겨받은 것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에게반환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영기자 kjykjy@
  • 항일애국 숭고한 넋 추모/ 오늘 60돌 순국선열의 날

    11월17일은 올해로 제정된 지 60년째를 맞는 ‘순국선열의 날’이다.일제하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애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임시정부가 1939년 11월21일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31차 정기회의에서 제정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문서’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이청천·차이석등 6명의 의원이 ‘순국선열기념일’을 제정하자고 제안,원안대로 통과된 것으로 나와 있다.다만 순국선열들을 일일이 기념하는 것은 번거로우니 1년 중 하루를 잡아 공동으로 기념키로 의견을 모으고 11월17일로 정했다. 기념일을 11월17일로 정한 것은 “우리나라가 망한 것은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이나 합방 발표는 그 형해(形骸)만 남았던 국가의 종국을 고하였을 뿐이요,실은 을사년(1905년) 보호5조약으로 이미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 것이니실질적 망국조약이 늑결(勒結)된 11월17일을 순국선열기념일로 정하는 것이마땅하다”는 의정원 문서에 따른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유족회나 정부 관련 부처 주관으로 기념식과 추모제전을 거행해왔으며 지난 60년에는 윤보선 대통령이,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했다.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래 올해는 국가원수로는 38년 만에 행사에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다.이날기념식에는 김 대통령을 비롯,3부요인·유족 등 각계 인사들이 대거 기념식에 참석,전국민 차원의 기념행사가 될 전망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노근리사건 신속·철저 조사”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방부는 13일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빠른 시간내에 철저히 조사될 것이라고 밝혔다. 찰스 크레이긴 미 국방부 규정담당 부차관 등 고위관리들은 이날 국방부를방문한 정은용(76·鄭殷溶)씨 등 노근리 피해자 4명을 면담한 뒤 이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노근리 사건 조사를 담당한 마이클 애커먼 감찰감도 함께 배석한 이 자리에서 정씨등 피해자들과 한시간 가량 면담을 가진 국방부 관리들은 “진상조사를 철저하게 진행한 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사실을 공개할 것”이라고말했다. 이들은 또 생존자들에게 미국을 방문,가해자들과 함께 자리해 화해의 모습을 보여준데 대해 경의를 표하고,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할 것임을 재다짐했다.크레이긴 부차관은 “한국전쟁동안 발생한 한미양국 국민들의 희생에 대한 의무로서 노근리사건을 신속하게 규명하도록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워싱턴을 방문한 정씨등 피해자들은 12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시의생생한 피해사실에 대해 증언했으며 “조속한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달래줄 것”을 미국측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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