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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볼만한 문화유적 11곳

    단풍의 계절,온 산을 불태울 듯 맹렬한 가을산과 함께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문화유적 답사 11곳을 한국관광공사 추천으로 소개한다. ◆한계사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국립공원 장수대 지구에 위치한 옛 절터로 통일신라시대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되고 현재는 보물로 지정된 두 기의 석탑만 남아있다.장수대 풍광과 낙엽이 절경이다.인제군청 문화관광과(033)460-2366◆고성 건봉사 신라 법흥왕 때 세워진 사찰로 한국 4대 사찰에 들 정도로 큰 절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됐다가 근래 복원됐다.금강산이바라보인다.민통선 지역에 속해있지만 일반인도 들어갈 수 있다.고성군청(033)680-3545◆서운산 석남사와 청룡사 안성시 남쪽 서운산(547m) 정상에 토성인서운산성이 있고 산성 남쪽에 고려시대 고찰 청룡사가,동쪽에는 석남사가 있다.안성시청(031)670-1060◆소백산 죽령옛길 한강과 낙동강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 죽령.삼국의 각축장이기도 했던 이곳에 영주시에서 옛 자취를 되살리는 차원에서 가족 단위 역사탐방 산책로를 조성했다.영주시청(054)639-6062◆칠보산 각연사 속리산 국립공원 북동쪽 끝자락.칠보산(778m)과 덕가산(858m) 사이 그윽한 골짜기에 위치해 조용한 단풍감상을 즐기기에 그만이다.신라 법흥왕때 세워진 각연사의 수많은 문화재도 자랑거리다.괴산군청(043)830-3223◆천안 광덕사 천안시와 아산시 경계에 있는 광덕산(699m) 아래에 위치한 광덕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절.입구에 우뚝 서있는 호두전래사적비가 유명하며 대웅전 앞에 400년된 호도나무가 볼만하다.천안시청(041)550-2031◆천태산 영국사 충북 영동의 양산팔경 중 제1경으로 바위 암릉으로유명한 천태산(715m)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다.계곡의 기암과 울창한숲의 경치가 빼어나며 천태종 사찰로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영동군청(043)740-3225◆입암산성 삼국시대 때 축조돼 고려와 조선에 걸쳐 개·보수된 산성으로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해있으며 전북과 전남의 경계를 이룬다.가을철 정상의 억새와 북쪽에서 내려다보는 호남평야의 드넓은 들녘,그리고 남쪽으로 남창계곡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장성군청(061)350-5226◆영광 불갑사 백제 침류왕 때 세워진 사찰로 불갑산(516m) 단풍이특히 아름답다.경내 숱한 문화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이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영광군청(061)350-5226◆남해 용문사 육지와 연결되면서 섬아닌 섬이 되어버린 남해군에는섬답지 않게 높은 산들이 많다.남해 제1고봉 망운산(785m)이 있고,국립공원인 남해 금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호젓하고 빼어난아름다움으로 인해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호구산(560m)이 있다. ◆천왕사와 어승생악 한라산 국립공원 북서쪽 구구곡에 자리한 절로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이 절경이다.구구곡 위 봉우리인 어승생악(1,169)에 오르면 제주산록의 선연한 가을을 목격할 수 있다. 임병선기자 bsnim@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9)샌프란시스코·LA

    ◆ 美洲 독립운동 거점 샌프란시스코·LA. 샌프란시스코는 미주지역 조국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한인들이 ‘상항(桑港)’이라고 부른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에는 구한말 이래 하와이군도의 노동이민을 비롯,많은 한인들이 찾아들어 자리를 잡거나 로스앤젤레스 등 각 지방으로 진출하는 ‘거점’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민족운동사상 첫번째 ‘의열투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페리부두에서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두 의사가 대한제국정부의 외교고문의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한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현장이다. 이 지역 최초의 한인단체 ‘상항친목회’가 1903년 9월 페리부두 인근의 스트리트 차이나타운에서 발족한 것을 시작으로 미주 한인사회최초의 민족운동기관으로 발전한 공립협회(公立協會)가 1905년 4월차이나타운 왼쪽 퍼스픽 스트리트 938번지의 회관에서 출발했다.공립협회는 기관지 ‘공립신보(公立新報)’에 이어 ‘신한민보(新韓民報)’를 발행하면서 국권회복운동을 벌였다. 두 의사의 의거직후인1909년 2월 미주본토의 공립협회와 하와이의합성협회 등 모든 한인단체를 통합,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창립하고 페리 스트리트 232번지에 중앙총회본부를 두고 기관지로 국내외 항일민족언론을 주도한 ‘신한민보’를 발행했다.영문명으로 ‘The New Korea’라고 표기한 ‘신한민보’는 1914년까지 5년동안 232번지 건물에서 발행하다가 1937년 로스앤젤레스 제퍼슨거리에 중앙회관을 건립,그곳에서 한국전쟁때까지 40년여년동안 한번도 결간없이 발행하면서 민족해방과 통일이념을 구현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한인국민회 중앙회관과 ‘신한민보’의 발행처로 사용되었던 페리스트리트 232번지 건물은 도시계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북가주 광복회장 이하전(독립유공자)옹과 중립화 통일운동에 열정을 보이는 최봉윤옹,이정순 한인회장등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자 애쓰고 있다. 장인환·전명운 두 의사가 일제의 한국침략 앞잡이로 활동한 미국인 스트븐스를 총살·응징한 것은 1908년 3월24일 상오 9시 10분이다. 스티븐스가 페리 정거장에 도착하여 승용차에서 내려 페리빌딩으로들어서려는 순간,대기중이던 전명운이 먼저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불발이었다.뒤이어 전 의사가 스티븐스의 얼굴을 총두(銃頭)로갈기는 순간 장 의사가 권총 3발을 발사,일본의 주구는 쓰러졌다가이틀뒤 절명했다.두 의사가 우연스럽게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거사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장 의사는 1909년 1급 살인혐의로 구속돼 25년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19년 국민회의 가석방 청원서가 수락되어 석방되었다.석방후독립운동에 헌신하던 그는 1930년 생활과 병고 등으로 향년 54세로이곳에서 자살하였다.전 의사는 사건발생 97일만에 구속되어 재판을받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전 의사는 석방이후 미국에서 불우한 삶을 보내다가 1947년 63세로 세상을 떴다.두분 다 불우한 여생을 마친것이다. 샌프란시스코한인사회는 지난 3월23일 의거92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지난해 이어 두번째인 이 행사는 의거장소인 페리부두가 현장여건상 개최가 어려워 한인회관에서 열었다.지난해는 ‘한미수교1백주년기념조각’이 있는 자스틴 허만광장에서 거행되었다.한인 지도자들은 이곳에 두 의사의 동상을 세우고자 성금을 모으고 본국의 지원을 바라고 있다.현재 페리부두의 육중한 3층짜리 페리빌딩은 역사기념물로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두 한인의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1896년에 건립된 지역 대표적 건물인 까닭이다. 초기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온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안창호·이대위 등이 친목회를 조직하고 가정예배를 드리기시작해 1907년 캘리포니아거리에 있는 3층 주택을 임대해 예배를 보는등 시련끝에 1994년 쥬다거리에 교회건물을 구입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98년에 현재 건물을 신축하여 감리교회당과 역사자료실 부설로 운영하고 있다.현 건물은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이곳한인들의 믿음과 각종 독립운동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선생의 발자취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곳곳에 남아있다.특히 로스앤젤레스 제퍼슨 거리 1938번지 대한인국민회 중앙회관앞 거리는 로스앤젤레스시가 1994년2월 ‘도산 안창호광장’으로 이름지을 만큼 도산의 업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도산은 190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LA를 오가면서 항일민족운동을 주도했다.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을 중심으로 미국은 물론 멕시코·원동지방의 시베리아,만주등지에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를조직할만큼 광범위한 조직을 만들어 항일구국투쟁을 벌였다.흥사단의 단소(團所)인 중앙회관은 LA 벙커 힐에 있던 것을 얼마후 피게로아스트리트 106번지의 2층 목조건물로,1932년에는 남(南)카타리나 거리 3421번지의 땅을 구입해 2층 유선양옥을 지어 옮긴 것이 오늘에 이른다. 미주 독립운동의 정신적 산실인 대한인국민회중앙회관은 1936년 LA 36 스트리트에 있었으나 얼마후 제퍼슨거리 1368번지로 옮겼다.대한인국민회 회관은 퇴색한 단층건물이 철책담으로 둘러싸여 제퍼스 큰길과 만나고 현관 벽 위에 ‘대한인국민총회’라는 현판이 선명하게 부각되어있다.LA 연합장로교회 소유인 이 건물은 지금도 매년 3·1절과 광복절에는 교포들이 모여 기념예배를 본다. 한인회 간부들은 한인회와 정부가 합동으로 교회로 부터 건물을 구입,보수하여 민족운동박물관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LA 한국문화원 최규학영사와 현지언론 피플뉴스 발행인 민병용씨 등 많은 사람이 민족운동박물관건립운동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1937년부터 1946년까지 도산가족이 살았던 남가주대학 구내 도산 사가(私家)는 당시 건물(1937년)그대로 보존돼 있다.현재 ‘The Ahn Family Residence’라고 쓰인 동판표지물이 설치돼 있다.올해 3·1절행사때 한국을 방문한 셋째딸 안수산 여사가 노구를 이끌고 방문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도산의 많은 유물은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하나같이 조국 독립운동의 얼이 배인 것들이다.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김삼웅주필 kimsu@
  • 국내영화 9편 영국서 상영

    [런던 연합] 런던영화제와 이에 앞선 문화관광부의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한국영화제 행사로 런던에서 한국영화가 잇따라 상영될 예정이다. 한국전쟁 기념 영화제는 오는 10월 16일부터 30일까지 국립영화관등에서 열리며 ‘아름다운 시절’ ‘오발탄’ ‘돌아오지 않는 해병’‘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그 섬에 가고 싶다’ 등 5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된다. 또 오는 11월 1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제44회 런던영화제에서도 ‘박하사탕’‘반칙왕’‘주유소 습격사건’‘오! 수정’등 4편이 상영된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런던에서의 한국영화제는 당초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기획됐으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참전용사 등 한국을 기억하는 영국인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우주과학자 황보 한 박사 6·25체험 離散소설 펴내

    우주과학자 황보 한(皇甫 漢,한국통신 위성운용단장) 박사가 과학자로서의 직관과 자신의 인생경험 및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바탕으로소설 ‘별들의 만남’을 출간했다. 황보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위성 무궁화위성 1호에서부터 3호에 이르기까지 발사의 실무사령탑을 맡았던 우리나라 위성산업의 선구자.‘별들의 만남’은 어릴 때 겪은 한국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남북 분단시대에 이별의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산가족의 한많은삶을 그리고 있다. 특히 우주과학자로서 소설속에서 최근 북한에서 대포동 로켓이 발사한 광명성1호의 실체를 분석,궤도를 벗어난 인공위성임이 확실하다는 점도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보이스사 간행,345쪽. 김태균기자 windsea@
  • 경의선 비무장지대 첫 생태조사

    한국전쟁 뒤 50여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비무장지대 생태계에 관한 본격 조사가 실시된다. 정부는 경의선 철도 복구 및 남북 연결도로 공사가 비무장지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오는 25일부터 3일 동안 현지 조사를 실시한다고 22일 밝혔다. 비무장지대 생태계 조사는 지난 97년 12월∼2000년 2월 서울대 조경학과 김귀곤(金貴坤) 교수가 유엔개발계획(UNDP)의 조사책임자 자격으로 경의선 철도 및 남북 연결도로가 지나는 비무장지대 내 경기도파주시 군내면과 근처의 진동면 등을 조사한 적이 있지만,정부의 공식 조사가 실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교수 등 학계 전문가 및 녹색연합 관계자로 구성된 11명의 조사단은 통일대교∼경기도 장단 5.5㎞의 도로공사 구간,문산∼장단 12.4㎞의 경의선 복구 구간의 경관,지형·지질,동·식물 서식실태 등을조사한다. 문호영기자 alibaba@
  • [외언내언] 敬老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77세 노인에게 꾸중을 들은 중3학생(15)이 노인을 따라 전철에서 내린 뒤,뒤쫓아가 승강장 계단에서밀어뜨린 사건이 최근 있었다. 등을 차인 노인은 10여m 아래로 굴러떨어져 뇌출혈을 일으켰고 불행히도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철부지소년이 욱하는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라고는 하나 참으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미덕인 경로(敬老)사상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아픔을 느낀다. 충효(忠孝)와 더불어 경로사상은 우리가 오래 가꾸어온 가치관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같은 가치들을 이제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폐습인양 홀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그 밑바닥에는 충효 등의 기성 가치체계가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악용돼 왔다는 불신이 깔려 있는 듯이 보인다.그러한 생각을 무조건 틀렸다고만 하기는 어렵다.멀리 조선시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1960∼1970년대 통치자는 ‘충’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 대한 충성으로 교묘히 변질시킨 바 있다.‘효’가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몫을 한다는 점도확실하다. 그렇더라도 ‘충’과 ‘효’의 본질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21세기 어느 문명사회건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의 효도를 주요 덕목으로 삼지 않는 곳이 있단 말인가.차이가 있다면 이를 구현하는 방식과 가치의 우선순위 정도일 것이다.‘경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마침 지난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였다는 사실은 ‘노인 존중’이 전 문명의 공동관심사임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다만 이시점에서 고려할 사항은 “나이 많은 분이니 ‘무조건’공경하고 따르자”는 식의 주장이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왜 노인을‘우대’해야 하는지 기본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노인은 우선 어린이·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자다.신체·정신적 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력도 대부분 갖추지 못했다.따라서 약자인 노인을 부축하고 보호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의무다.경로 대상인 이 시대 노인들의 삶도 되짚어 보자.올해 만65세(1935년생)가 넘는 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절에 태어나 소년·청년기에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었다.경제성장기에는 베트남의 정글에서,중동의 열사(熱砂)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사회적 부를 축적했고 민주화를 뒷받침했다.한마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형성한 선배일꾼들이다.그들은 젊은 세대에게서 존경받고 보상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그러므로 우리는 ‘해묵은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때문에 노인을 우대해야 한다.그리고 그것은 장래 우리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오늘의 눈] 국방부 홀대받은 광복군의 날

    17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한국광복군을 창군한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14일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우전)는 세종문화회관에서창군 60주년 기념식과 ‘한국광복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제로 학술행사를 가졌다.이날은 추석연휴 뒷날인데다 비가 오는데도 관계인사와 시민들이 기념식장을 가득 메웠다.행사장에는 안춘생 전 독립기념관장,윤경빈 광복회장,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따님인 지복영 여사 등 광복군 출신인사들을 비롯해 독립운동가,학계인사,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임시정부가 1940년 9월17일 충칭(重慶)에서 창설한 한국광복군은 의병·독립군의 정신을 계승한 군대로 조국이 해방되는 순간까지 항일활동을 했다.해방후 미군정은 지금의 국방부장관격인 통위부장에 광복군 출신을 임명하기 위해 상하이에 특사를 파견하기도 했는데 이는 미 군정이 건군을 준비하면서 정신만큼은 광복군에 두고자 했음을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국군은 임정의 광복군이 아닌,미군정 시대의 국방경비대를 ‘뿌리’로 인식하고 있다.육군사관학교 역시 연원을 미군정이 설립한 군사영어학교에 두고 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있다.이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우리 국군의 올바른 ‘뿌리찾기’라고 할 수 없다. ‘국군의 날’이 10월 1일인 것도 지적할만하다.알려진대로 10월 1일은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과 연합군이 38선을 돌파한 날이다.엄밀히 따지면 이 날은 ‘9·28 서울수복일’과 함께 ‘10·1 38선 돌파일’ 정도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지금의 국군의 날은 냉전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이 날 기념식에 이어 열린 학술행사에서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은 “임시정부의 국군인 광복군이 창군된 9월17일을 국군의 날로 고쳐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국대 한시준 교수도 “국군의 날 재조정은 우리 군의 정통성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복군 창군 60주년 기념행사는 군의 입장에서 보면 큰 잔치라고 할 수있다.그러나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방부의 최고위자는 이종규 차관보였다.장관이나 차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행사를 준비한 광복군동지회 김우전 회장은 “국방부장관실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장관의참석과 축사를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우리 군의 역사적 정통성 문제를 다시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 하겠다. 정 운 현 특집기획팀 차장 jwh59@
  • ‘한국전 양민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 출범

    한국전쟁 전후 군·경 등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피학살 실태와 희생자 보상문제 등을 다룰 전국 규모의 기구가 처음으로 결성됐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준비위원회’는 7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범국민위원회를 출범했다.유족은 물론 연구자·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이 범국민위원회는 주요사업으로 ▲피해실태 조사연구 ▲통합특별법 제정 ▲국가인권위원회 구성 ▲대국민홍보사업 등을 확정하였다. 이날 창립대회에서 상임대표에는 강정구 동국대교수·채의진 문경유족회장 등 3명이,공동대표에는 이해동 목사·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이장희 외국어대 교수·문규현 신부 등 23명이 선출됐다.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박형규 목사·고은 시인 등은 고문으로 위촉됐다. 사무처장에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정책기획실장에는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이 뽑혔다.창립대회가 끝난뒤 참석자들은 차를 타고여의도까지 이동,국회 주변에서 상여·만장 등을 앞세우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정운현기자 jwh59@
  • 57~58년 정부 기록사진집 3권 발간

    국정홍보처는 5일 지난 57,58년 사회 전반의 모습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3권’을 펴냈다.사진집에는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사회기반시설 복구·건설 현장,산업 일선과 판자촌등 시가지 표정,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국내외 행사 참석 모습등 당시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426장의 흑백사진이 실려있다.국정홍보처는 1,000부를 발간해 중앙 및 지방행정기관,국·공립도서관,박물관,대학 등에 배포하는한편 일반인에게도 판매할 방침이다.
  • [김삼웅 칼럼] ‘민주’ 없고 ‘나라’ 없는 정당행태

    집권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린 날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은 청와대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는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열어 투자보장협정과 경의선복원,경협을 위한 제도적장치 마련 등을 논의했다.남북화해와 남남대결의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이 한반도에서 동시에 벌어진 것이다. 6·25한국전쟁이 한창인 1952년 7월 피란수도 부산에서는 이승만의권력연장을 위한 정치파동이 일어났다. 발췌 개헌파동이다.1592년 임진왜란으로 군신(君臣)이 의주로 피란을 가서도 동인과 서인들은 왜란의 책임을 물어 상대방 탄핵에 열을 올렸다.와중에서 유성룡은 이항복의 비호로 겨우 살아남아서 전란을 총지휘하게 되었다. 정치가 국난극복과 민생보호가 아닌 자신들의 권력싸움,이해다툼의방편이었음을 말해준다.지난 2년 동안 IMF환란 극복과정에서 우리 정치가 보인 행태도 임진왜란과 6·25전란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화한 한 외국인은 한국인을 ‘독 속의 게’에 비유했다.독 속에게를 한 마리만 넣어두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는데여러 마리를 넣어놓으면 서로 올라가는 놈의 발목을 잡기 때문에 결국 한 마리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참으로 부끄러운 일면을 지적했다.상생과화합을 내세우면서도 공생보다 독생,밖(外)보다 안(內)에서 싸우길좋아한다. 9월1일 평양에서 끝난 2차 장관급회담의 성과로 이산가족 서신교환,군사긴장 완화 및 군 직통전화 개설을 위한 군 당국자회담,쌀 차관공여,3차 장관급 제주회담,임진강 수해방지공동추진,경협제도화 등 전방위 남북교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러한 남북한간 긴장완화로 한반도를 둘러싼 4강간에 영향력 유지를 위한 미묘한 신경전이 활발해지고 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궁극적으로는 통일로 이어질 남북간 화해는 환영받을일이지만 동시에 이해 관계자들을 매우 동요시켜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문제를 재검토하게 하고 중국·일본·러시아간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싼 경쟁관계에 다시 불을 붙이게 될 것”이라 내다 봤다. 한반도 주변의 움직임이 이렇다.국가(민족)의 미래를 내다보고 걱정하는 정치인(정당)이라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관계를 뒷받침하기위해 주변 4강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국회(또는 정당)에 4강과친선협회 등을 강화하여 정부의 입지를 도와야 할 것이다.이때의 ‘정부’는 정권이 아닌 국가와 동의어이다. 의원외교라면 너도나도 미국으로만 몰려가 관광인지 외교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일정을 보내다가 귀국하는 한심한 행태는 시정돼야 한다.미국 외교도 중요하지만 못지 않게 중국·러시아·일본과의 외교적 뒷받침도 남북화해-통일로 가는 길목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2차대전후 오스트리아 정치지도자들은 네 토막으로 쪼개진 나라를 초당파적인 외교력으로 신탁통치를 종식시키고 통일국가를 수립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친미파·친중파·친일파·친러파로 나뉘어 국익외교에 나서야 한다.그래야 4강에 둘러싸인 반도국가가 안전과 통일을 기약할 수 있다.한말 매국노들처럼 그들의 앞잡이가 되란 말이 아니다. 대미외교를 강화하되 다른 3강과의 관계도 소흘히 해서는 안된다는주장이다.그런 역할은 정부의 외교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회가 담당해야 한다.다른 나라들도 다 그렇게 한다.외교문제가 너무 ‘벅차’다면 내정이라도 성실하게 챙겨야 할 것 아닌가. 폭우와 태풍으로 수많은 이재민이 가족과 재산을 잃고,중국산 농수산물 파동으로 국민이 불안에 떨고,몇달째 계속되는 의사들의 집단파업으로 의료기능이 마비되고,산불피해·구제역·저소득층 보호를위한 추경 등 산적한 현안이 오로지 정치문제로 발목이 잡혀있다.여름 임시국회에 이어 정기국회까지 파행을 거듭하더니 야당은 장외투쟁을 벌인다. 민주당에 ‘민주’ 없고 한나라당에 ‘나라’ 없다는 세간의 지탄을면하려면 민주당은 날치기 등 비민주적 행태를 버리고,한나라당은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대권욕에만 빠져있는 당노선을 바꾸어야 한다.386세대 등 정치개혁을 내걸고 당선된 개혁성향 의원들이 앞장서 정기국회부터 정상화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무노동무임금’원칙이라도지켜라. 김삼웅 주필
  • 집중취재/ DMZ지뢰 실태와 제거 대책

    통일로 가는 열차 경의선의 복원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 복병은 비무장지대(DMZ)의 지뢰밭이다.DMZ는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지뢰로 ‘중무장’한 죽음의 땅이기 때문이다.도처에 지뢰가 깔려 있다. ▲정부의 지뢰제거 종합대책 국방부는 지난 24일 비무장지대 임진강북단∼장단역 사이 4.1km 구간을 포함한 50만㎡에 3,000여명의 공병부대를 투입해 지뢰제거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지뢰제거에 대한 통제와 지원은 선영제(宣映濟)육군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육군본부의 모든 참모가 위원이 되는 ‘경의선 복구 육군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육군 1군단 산하 중(重)야전공병여단등 8개 대대가 구간별로 지뢰제거 임무를 맡는다. 지뢰제거의 첫 폭발음은 남북이 공동으로 경의선 복원의 첫삽을 뜨는 오는 15일에 울릴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비무장지대가 얼어붙기 전인 올 12월 이전에 ‘지뢰 청소’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매설지뢰의 위치와 숫자 ‘숨겨진 살인자’ 지뢰의 매설 위치와 정확한 개수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국방부가 지난해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서 민간인통제선 북방과 비무장지대 안에 모두 105만발의 지뢰가 묻혀있다고 밝힌것이 전부다.후방지역에도 주요 기지 경계용으로 대인지뢰 7만5,000발이 매설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당국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묻혀있는 지뢰는 모두 112만5,000여발인 셈이다. 경의선 복원구간에는 10만발 가량이 묻혀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반도 전체의 지뢰 매설지역은 2억9,670만평으로 서울 여의도면적의 334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뢰 언제 누가 묻었나 한반도에서 지뢰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등장했다. 전방지역에 매설된 지뢰의 90% 이상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비무장지대 안에 뿌리다시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3년 휴전협정체결 직전,중공군의 남하를 막을 목적으로 비무장지대 전역에 대규모 지뢰띠를 조성했다.당시 유엔군은 지뢰지도를 한국군에 전달하지 않았다.군당국은 이 지역을 ‘미확인지뢰지대’로 분류,철조망을 쳐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후 군당국은 61년 쿠바사태,78년 판문점도끼만행사건,88년 서울올림픽 등 긴장시기를 전후해 엄청난 숫자의 지뢰를 추가 매설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전쟁 이후 방어목적으로 매설한 지뢰의 경우 설계도와 지도를 갖고있으나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뢰제거 6단계 작전 국방부는 경의선 복원구간에 묻혀있는 각종지뢰제거를 위해 모두 6단계의 구체적인 지뢰제거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1,2단계로 15m 길이의 PVC 파이프 안에 38kg의 다이너마이트와 뇌관을 장착한 ‘간이급조 파괴통’을 제작,지뢰밭으로 밀어넣어 50년동안 우거진 수목과 겉으로 드러난 대인지뢰를 폭발시킨다. 3단계는 폭발되지 않은 대인지뢰를 찾아내기 위해 고압 살수차를 동원,물대포를 쏘아 미처 폭발되지 않은 지뢰를 지상으로 끄집어낸다. 드러난 지뢰는 철제상자로 운반돼 군 폭발물처리반이 해체시킨다. 4단계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발목지뢰의 경우 육안으로 잘 식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강철판으로 무장한 개조 굴착기를 지뢰밭으로 들여보내 땅을 갈아엎는다.5단계는 지뢰제거용으로 특별개조한 불도저로 50cm 이상 깊게 파묻힌 지뢰를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휴대용탐지기와 지뢰덧신,보호헬멧,방탄복,방풍안경 등으로 완전무장한 지뢰탐지병을 들여 보내 최종점검한다. 국방부는 그러나 재래식 장비를 이용한 이같은 방법으로는 연말까지제거작업을 완료하기 어렵고 투입병력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통로개척용 지뢰파괴장비인 미국제 ‘미클릭’을 비 롯 첨단장비의 투입 및 도입을 검토 중이다. ▲제거비용은 얼마나 들까 정부는 경의선 철도복원 및 8차선 도로 노반조성,지뢰제거 예산은 남북경제협력기금에서 충당할 방침이다.국방부도 지뢰제거에 예산이 얼마나 들지 아직 계산해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지뢰 1발을 해체하는 데 드는 비용이 300∼1,000달러이므로 최소 3억달러에서 11억달러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방부는 순수 군병력과 군 장비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같은계산법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노주석기자 joo@. *한반도 지뢰 종류와 제거장비. 한반도에는 어떤지뢰가 묻혀있으며 이들 지뢰를 ‘청소’하는 제거장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뢰의 종류] 비무장지대에 묻혀있는 대인지뢰는 M3,M4,M16,부비트랩 등이 있다.대전차지뢰는 M15가 대표적이다. 폭풍을 일으키며 터지는 폭파형태와 발목을 자르는 특성 때문에 ‘폭풍지뢰’‘발목지뢰’라고도 불리는 M14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금속탐지기에 걸리지 않고 크기가 작아 쉽게 은폐된다.좁은 공간에 많이 매설할 수 있다.발목만 잘리도록 소량의 장약을 넣은 것으로 적군을 사살하기 보다는 부상시켜 후송 및 치료에 따른 소모를 노린다. M16은 위력이나 정교함에서 대표적인 대인지뢰로 꼽힌다.주장약 및파열체가 0.6∼2.4m 높이로 떠올라 터지면서 파편을 183m까지 날리기때문에 살상효과가 크다.퓨즈가 작동하는 최소 압력은 3.6∼9kg이다. M15 대전차지뢰는 전차,장갑차,자주포 등 전투차량을 파괴하거나 손상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재래식 대전차지뢰의 대표작이다.폭발을 일으키면서 차륜 및 궤도를 무력화시킨다. [지뢰 파쇄장비] 지뢰제거장비는 ▲쟁기형 ▲도리깨형 ▲롤러형 등농촌의 전통적인 경작장비를 변형시킨 장비와 폭파용 로켓운반장비로대별할 수 있다. 이중 미클릭(MICLIC)은 통로개척용 로켓.한번에 폭 6∼12m,길이 100m 지역의 지뢰를 청소한다.우리 군도 보유하고 있지만 1발을 쏘는데4,000만원이나 들어 너무 비싼 점과 산악 및 구릉지역이 많은 비무장지대의 특성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스라엘제 포민즈2(POMINS)도유사하며 한발당 1,500만원을 호가한다. 수목과 지뢰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는 장비로는 독일제 ‘리노’와‘마인 브레커’가 있다.특히 리노는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무인지뢰장비로 매설된 흙을 파서 수거한 내부에서 폭파시키기 때문에 안전성이 높다.8시간에 1만5,000㎡의 면적을 제거할 수 있으며 대전차지뢰에도 견딘다.한대당 20억원선.마인 브레커는 농촌에서 사용하는 도리깨처럼 생긴 기구로 땅을 내리쳐 지뢰를 폭파시킨다.국산 K-200장갑차를 개조한 전투장갑불도저와 운전석 앞면에 강철을 댄 개조형 굴삭기 등이 있다. [기타 제품] 적외선이나 레이더를 이용한 공중탐지시스템의 개발이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실용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최근 국내 한 업체는 지뢰보호용 안전전투화를 개발,특허출원중이다.소가죽에 탄소섬유 원단과 고탄성 라텍스,폴리우레탄 등을 소재로했으며 발목부문에 깁스형 방탄탄소섬유를 장치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연구팀은 후각이 뛰어난 개의 코구조를 가진 지뢰탐지용 로봇개의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최병호(49) 박사는 양성자를 이용,땅속에 매설된플라스틱지뢰를 전문적으로 탐지해내는 지뢰자동제거 장비를 개발했다. 노주석기자. *61개국에 1억1,000만개 묻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최근 유엔 및 미국 국무부의 자료를 인용,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상 64개국에 모두 1억1,000만개 이상의 대인지뢰가 묻혀있다고 보고했다. ICRC는 더 이상 지뢰가 매설되지 않는다는 전제아래 이들 대인지뢰를 제거하는데 1,100년이 걸리고 330억달러의 천문학적인 경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지뢰가 터져 해마다 2만6,000여명의 발목이 잘려져 나가는 등 불구자가속출하고 있다.피해자의 80%이상이 민간인이라는 사실도 경악스럽다. 문제는 분쟁지역을 중심으로 지뢰 1개가 제거될 때마다 20개가 새롭게 매설되고 있다는 점.99년 한해동안 전세계적으로 10만개가 해체됐지만 200만개가 새로 설치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지뢰수출국은 미국.국제시장에서의 대인지뢰 판매가격은 개당 15∼30달러선이지만 제거에 드는 비용은 300∼1,000달러선이다.매설지뢰수와 맞먹는 수의 각종 지뢰가 재고로 군수창고에 쌓여있다. ICRC의 보고서 등에 따르면 ▲이집트 2,300만개 ▲이란 1,600만개▲앙골라 1,500만개 ▲아프가니스탄·이라크·캄보디아 각 1,000만개 ▲베트남 350만개의 지뢰가 묻혀있는 것으로 추산된다.ICRC는 한반도의 경우 수량 미상으로 보고했다.6.25전쟁중에 미군 등 유엔군에의해 무차별적으로 뿌려져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풀이된다. 국제사회는 ‘숨겨진 살인자’ 지뢰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전세계에 걸쳐 1,200여개에 달하는 지뢰금지운동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 3월부터 대인지뢰의 생산과 사용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대인지뢰의 사용금지 및 폐기 등에 관한 협약(오타와협약)이 발효됐다. 당시 이 협약에 서명한 나라는 133개국이며 현재 국회비준을 마친나라도 65개국에 이른다. 우리 정부도 올해안에 대인지뢰의 사용을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비인도적 재래식 무기금지협약’(CCW)에 가입키로 했으나 오타와협약에는 2006년 쯤에야 가입할 방침이어서 국제사회로부터 임시미봉책에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국내에서는 지난 97년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가 발족,오타와협정 조기가입운동을 펴고 있으며 이 회의에는 27개 민간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노주석기자.
  • 새 내각에 듣는다/ 李瑾榮위원장의 금융감독관

    이근영(李瑾榮) 금감위원장의 금융감독관은 ‘시장친화적’이고 ‘수요자 중심적’인 금융감독이다.얼핏 보면 매우 원론적인 얘기로 들리지만 그러나 그 원론이 잘 지켜지지 않아온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이위원장 취임 이후 조직개편 및 각종 제도와 관행 개선을지시받은 금감위와 금감원 간부들은 위원장의 속내가 뭔지 제대로 파악이 안된다며 안절부절못했다. 특히 금감원의 검사부문에서는 시장친화적인 감독·검사방침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도 감지됐었다. 그러나 이위원장의 원론적 감독철학은 취임 보름을 넘기면서 안팎으로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한마디로 ‘시장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필요로 하고,받기를 희망하는 감독·검사’라고 할 수있다. 우선,금감위·금감원에서 추진중인 금융감독규정 정비 및 규제개혁방안은 9월말까지 작업을 끝내고 1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위원장은 특히 검사와 관련,외국처럼 피검기관으로부터 ‘검사수수료를 낼 가치가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선진화시킨다는 것이 기본방침이다.또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일정을 소상히 담은 청사진도 연내에마련하기로 했다.기업 구조조정의 범위,대상,방법을 미리 소상하게밝혀 공정성 시비를 없애고 해당 금융기관과 기업들에게 사전대비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증권·투신·생명보험업계 사장단과의 잇단 모임에서도 시장자율론은 그대로 전파되고 있다.검사·감독 방향과 관련,적발과 처벌위주의검사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자율적인 경영풍토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도 시장논리에 따라 과감히 혁파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24일 증권사 사장단과의 오찬 모임에서 이위원장은 증권사 난립과 관련한 업계의 인·허가 제한 건의를 받고 “진입장벽을만드는 것은 시장자율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무한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것으로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생보사 상장문제도 마찬가지다.계약자와 주주간에 상장이득 분배를둘러싼 이해가 걸려 있는 문제인데다 법상 계약자들에게 자산재평가적립금을 줄 근거가 없다며 그동안의 논의를 전면 보류,재검토시켰다. 그러나 계약자들의 자산형성 기여도에 상응하는 이익의 환원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는 상충되는 것이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박현갑기자. *이근영위원장은 누구. 이근영(李瑾榮) 위원장은 충남 보령출신으로 31세때에 행시 재경직에 합격,공직생활이 나이에 비해 늦은 편이다.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었다.대학 3년때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했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6남매중 둘째인 이위원장은 한국전쟁때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를 여의었다.어려운 형편에서 꿋꿋하게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어머니조차순(趙次順·84)여사는 전몰군경유가족협회로부터 장한 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공직진출은 늦었으나 그는 성실과 일에 대한 열정으로 능력을 인정받는다. 이헌재(李憲宰),강봉균(康奉均) 등 쟁쟁한 고시동기에 비해 사무관·서기관 승진은 더 빨랐다.이위원장은 3년간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내며 안무혁(安武赫)·성용욱(成鎔旭)·서영택(徐榮澤)씨 등 3명의청장을 모셨다. 국세청의 인사관행상 조사국장 자리는 ‘청장이 바뀌면 함께 바뀌는자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드문 일이다. 국세청 조사국장에서 곧바로 재무부 세제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고교(대전고) 1년 후배인 이규성(李揆成) 당시 재무장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이 무렵부터 그는 ‘차기 국세청장감’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홍재형(洪在馨)재무장관 시절인 지난 94년 3월 장관의 인사부담을덜어주고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자청해 한투사장을 맡기도했다. 박현갑기자
  • 북송 비전향장기수 면면

    북한으로 다음달 2일 송환될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은 짧게는 13년길게는 44년까지 국내에서 형을 산 출소자들이다. 대부분 한국전쟁 전후에 빨치산 등으로 활동하거나 이후 간첩으로남파됐다가 검거된 뒤 형을 살면서도 ‘사상 전향’을 거부해온 사람들이다. 빨치산 출신이 17명이며 나머지 46명은 50년대부터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돼 복역했다.이재용씨만은 67년 납북돼 간첩교육을 받은 뒤남파된 ‘납북어부’출신의 남파간첩이란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다. 1911년생인 류한욱,이종씨가 89살로 최고령이고 80대 15명,70대 33명 등으로 인생의 황혼길에서 인도적 차원의 고향송환을 기다려왔다. 체포시기별로는 한국전쟁시기에 검거된 사람은 김인서씨 등 18명이고 60년대 23명,70년대 1명 등이다. 세계인권기구들이 송환을 요구해온 김선명씨는 51년 10월 검거된 뒤44년동안 복역한 세계 최장기수중의 한사람이다. 송환자 가운데 47명만이 북측에 가족이 있다.반면 신인영씨는 93세된 노모 및 형제 자매들이 있다.이경구씨는 부인을,양정호씨는 형제 자매들을 두고 북송을택했다.출생지별로는 이남출신이 43명으로 이북출신 20명보다 많았다. 이석우기자 swlee@
  • 두 이산 할머니 訪北 남편통해 혈육답신 받아

    “누님의 편지를 받고 눈물이 앞을 가려 처음에는 제대로 읽지도 못했습니다” 지난 15일 방북하는 남편을 통해 북에 사는 동생들에게 편지를 보냈던 김옥성씨(77·경기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는 18일 동생 흥규씨(63)의 답신을 귀환한 남편으로부터 건네받고 눈물지었다. 한국전쟁중 고향인 개성의 친정 식구들을 뒤로 한채 남편을 따라 남으로 내려온 김씨는 “50년만에 편지로나마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동생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동생 흥규씨는 편지에서 “50년만에 매부를 만나고 누님이 건강한몸으로 살아 계신다는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고모부님께서 98세라는데 100세 잔칫날 저도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봅니다.다음번 상봉때까지 건강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유의 다리에서 송악산을 볼때마다 새가 되어 고향으로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두고온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밴 서신을 15일 방북하는 남편에게 전했었다. 한편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민정숙씨(73)도 18일 귀환한 남편 이재경씨(80)가 가져온 북의 딸 경애씨(80)의 그리움이 사무친 편지를 받았다. 지난 16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통곡했던 경애씨는 마주할수 없는 아쉬움을 편지에 절절이 담아 주변 사람들을 더욱 숙연케 했다.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어머니에게 전합니다.저의 생각에는 아버님과 꼭 같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긴 세월 저 때문에 마음 고생이많으셨지요.(중략)어머니,저의 편지 받아보시고 이제는 시름을 놓으세요.오늘은 아버지를 만나지만 내일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고 싶습니다.상봉의 그 날을 그리며 부디 몸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민씨는 15일 북으로 딸을 만나러 가는 남편 손에 “어쩔 수 없이 딸을 두고 피난오게 된 것을 용서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들려 보냈었다. 성남 윤상돈·부천 김학준기자 yoonsang@
  • 남북이산상봉/ 북한 문화계인사의 바람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계기로 남북 문화교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정부도 분단 50년의 간극(間隙)을 좁히기 위해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어서 조만간 첫 ‘물꼬’를 틀 것 같다.이번 방문단에 끼여 남쪽에 온국어학자 류렬,노력영웅 시인 오영재,화가 정창모,공훈배우 리래성씨의 바람과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국어학자 류렬씨. 각각 남북한 국어운동의 상징으로 통하는 한글학회 허웅 이사장과북측 방문단의 류렬씨가 50년만에 만났다.두 원로 국어학자는 17일오후 7시 서울 남산 햐얏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단 환송회 자리에서 만나 남북 국어학계의 학자 및 학술교류를 논의했다. 각각 부산,경남 출신인 허 이사장과 류렬씨는 1918년생,올해 82세동갑내기인 데다 일제 식민치하를 거쳐 6·25가 발발하기 전까지 일제가 말살한 국어 보급에 헌신적인 활동을 했다.해방 직후 류씨는 부산에서 강습소를 개설해 국어 보급에 주력했고,허 이사장은 주로 서울에서 활동을 했으며 1947년쯤을 기점으로 이들 둘의 주 활동 무대는 공교롭게도 정반대가됐다. 허 이사장이 이후 활동 근거지를 부산으로 옮긴 반면 류씨는 서울로옮겼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월북했다.허 이사장은 “강습소나 한글학회 강연 등지에서 잠깐 잠깐 류렬 선생과 인사를 나누곤 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류씨는 이날 외증손녀에게 이름을 선물했다.딸 인자씨(60·부산 연제구 연산4동)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온 류씨는 그동안 두차례 상봉하면서 딸이 지난 4일 손녀를 얻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름을 지어주겠노라고 약속,‘임여울’이라고 외증손녀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인민화가 정창모씨. ‘한강의 저녁 노을을 그리고 싶어’ 북쪽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17일 오전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1603호실에서 남쪽의 여동생 춘희(60),남희씨(53),매제 김병태씨(72)를 다시 만나 “서울의 경치 중 제일은 역시 한강인 것 같다”며 “나는 정서적인 그림을 주로 그리는데 한강의 저녁 노을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북쪽에 있으면서도 판문점 가까이 와서 그림을 많이 그렸고,특히 600리 분계선이 드리워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도 자주 찾았다”면서 “분계선 근처 옛 집터를 그린 그림도 평양국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고 소개했다. 정씨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외조부 이광열 화백을 떠올리며 “국화를 그리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평양미술대에서 그림 공부할 때 그 분 생각을 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춘희씨는 “오빠가 자신의 호 ‘효산’은 할아버지의 호 ‘효원(曉園)’의 효(曉)에 산(山)자를 붙인 것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력영웅시인 오영재씨. 북한의 ‘계관시인’ 겸 ‘노력영웅시인’ 오영재(吳映在·64)씨가자신의 어린 시절과 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어머니(곽앵순씨)에 대한 그리움 등을 적은 글이 17일 공개됐다.오 시인은 이번 서울 방문에서 이전에 쓴 시를 공개하고 직접 다시 시를 쓰기도 했다. 남북 시 교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6·25 전쟁 중에도틈틈이 시를 썼다는 오씨는 “군 제대 뒤 평양시 서성구역 건설현장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일하다 틈틈이 시를 지어 동료들로부터 ‘노동자 시인’으로 불리다 조선작가동맹에 발탁됐다”면서 “조선작가동맹은 나를 작가학원에 입학시켜 전문 시인으로 양성했다”고 시인이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 오씨는 지난 89년 3월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 작가회의에 북측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그의 글과 ‘아,나의 어머니’라는 연시(連詩)는 남한의 출판사 ‘살림터’가 지난 93년 펴낸 북한의 우수단편선집 ‘쇠찌르레기’에도 부록으로 실려 있다. ◆공훈배우 리래성씨. “남쪽에서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북측 상봉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찾은 ‘공훈 배우’ 리래성씨(68)는 17일 오전 개별상봉장인 워커힐 호텔을 찾은 여동생 아나운서 이지연씨(52)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리씨는 “북에서는 추운 겨울에 여름 장면을 찍기가 어렵고 남에서는여름에 겨울 장면을 찍기가 어려우니 서로 상반되는 계절 장면을 촬영할 때 서로 오가며 찍으면 좋을 것”이라면서 “2∼3년 안에 다시남에 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오빠의 위로에 이씨가 “그런 희망이 든다”고 하자 리씨는 “희망이아니다.그건 확신이다”면서 이씨를 다독거렸다. 리씨는 동생이 걱정되는 듯 “6·15선언에서 앞으로 쉽게 가깝게 할수 있는 것부터 교류한다고 한 만큼 문화교류가 빨리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몇 년 전 영화 ‘민비’를 찍으려다가 그만뒀는데 기왕이면 남북 배우들이 함께 통일된 경복궁에서 찍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특별취재단
  • MBC’이산,두여자 이야기’상봉의 날 희비 엇갈린 두 할머니

    50년만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심정은 어떨까.간절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막상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TV에서 다른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을 지켜보는 이산가족의 심정은 또 어떨까. MBC는 18일 ‘이산,두 여자 이야기’(밤10시5분)에서 각각 아들과남편을 잃고,생이별의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두 할머니의 최근 행적을 따라간다.지난달 16일 발표된 북측 이산가족방문 후보명단을 보면서 시작된 가슴 떨리는 기다림,그리고 만남,마지막으로 기약없는헤어짐까지를 빼곡히 담았다. 이덕만 할머니(87)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큰아들을 잃었다. 큰 아들이 태어난 그 집에서 50년간 떠나지 않고 기다려온 이덕만 할머니는 위암 말기의 환자다.병원에서 혈액주사를 맞으면서 숨지기 전에 큰아들 얼굴 보기만을 기다려왔다. 유순이 할머니(71)는 한국전쟁 당시 결혼 6개월만에 남편이 의용군으로 떠났다.당시 임신 3개월이었다.이산가족방문 후보명단에서 남편이 찾는 가족 중에 자신의 이름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기뻤다.시댁인청주에내려가 남편에게 보여줄 가족사진을 찍는 등 하염없이 만날날만을 기다렸다.지난 8일 최종명단이 발표되던 날 이덕만 할머니는아들 안순환의 이름을 확인했지만 유순이 할머니는 남편 김중현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좁은 집에 할머니의 일상을 찍으러온 제작진으로 북적대는 가운데 TV화면을 아들과 함께 보던 유순이 할머니는 ‘오래 사시면 만나 보실수 있을 거예요’라고 제작진이 건넨 위로의 말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취재진이 모두 철수한 뒤 할머니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허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덕만 할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아들 안순환씨를 지난 15일 코엑스에서 만나 품에 앉았다.상봉 마지막 날인 18일은 아들의 생일날.50년만에 생일상을 차려줄 마음에 들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사설] 지금은 실컷 울 때다

    남북으로 헤어진 지 50년 만에 이뤄지는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의감격을 국내 신문들은 “서울도 울고 평양도 울었다”고 묘사했다.하나같이 1면 통단 제목으로….이산가족이 아니라도 이 기막힌 상봉 장면을 지켜 본 국민들이면 누군들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한반도를온통 눈물의 바다로 만들고 있는 2000년의 8월을 뭉뚱그려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그것은 ‘눈물’이라는 단 한마디일 것이다.‘감격의 눈물’일 수도 ‘통한의 눈물’일 수도 있다.핵심은 눈물에 있다. 전세계 주요 외신들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긴급 또는 주요뉴스로 다루고 있다.프랑스의 한 TV는 헤어진 가족들이 50년 만에야 만나는 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한국의 분단 과정과 6·25전쟁,그리고 그 이후 지속돼 오고 있는 분단의 역사를 설명했다고 한다.게다가 저명한어느 석학은 “통일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충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잘 안다.통일이 감성적으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난한 과업이라는 사실 말이다.그럼에도 지금 당장은 민족성원 모두가 실컷 울 때다.그리고 내일이면 너무도 짧은 만남 끝에 또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이 억장 무너지는 현실 앞에 다시 눈물바다가 예고돼 있는 마당이다.일단 실컷 울자.그리고 나서 무엇이 오늘우리가 이렇게 울도록 만들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1945년 제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외세가 우리민족에게 분단을 강요한 것은사실이다.하지만 그같은 외세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것은 우리민족의 과오가 아닌지.해방공간에서 민족분단을 자초했거나 이를 받아들인 세대들을 비판하기 앞서,분단 속에 살아온 우리 스스로도 냉전적 사고에 안주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같은 반성을 통해 뒤늦게나마 민족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된다. 외신들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이산가족들이 한국전쟁 이후 50년이라는 분단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한반도에 화해의 새 시대가 열렸다”,“이번 사건은 아시아 전체에 엄청난의미를 갖는다”라며 저마다 논평을 하고 있다.그냥 해보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다.이제야말로 남과 북이 분단 극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가까스로 움트기 시작한 화해의 싹을 키워냄으로써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그 기초 위에서 통일로 가는 멀고도 어려운 길에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자.오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통해 한층 강고해진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 [외언내언] 일본의 二重플레이

    여의도 63빌딩 특별전시관에서는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피카소와게르니카’전이 열리고 있다.게르니카는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다.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될 작품소재를 궁리하고 있던피카소에게 나치 독일이 고국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전율했다.그는 분노를화폭에 옮기기 시작해 3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걸작 ‘게르니카’다.그런데 피카소가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이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일단의 게슈타포가 들이닥쳤다.그들은 ‘게르니카’ 밑그림들을 보더니 ‘이것은 당신이 그린 것이오?’라고 물었다.이에 피카소는 ‘아니오 당신들이그린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15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들이 보여준 눈물의 드라마는 세계를 울렸다.전세계 매스컴은 이를 경쟁적으로 전했고 장삿속에 강한 일본 언론들도 이 ‘좋은 볼거리’를 열심히 취재했다.그러나 어느 매스컴에도 비극의 단초,이 백성의 가슴에 한(恨)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보도는 없었다.프랑스 어느 TV가 심층보도를 하긴 했지만 그것도 겨우 6.25와 분단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의 20세기 100년은 피와 눈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그렇다면 우리민족을 20세기 내내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누구일까.일본 하타 스토무(羽田孜) 전총리가 그 원죄는 일본에 있다고 자백했다.14일 스위스에서 열린 도덕재무장 국제회의에서 “불행한 상황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은 2차대전 이전과그 기간 중 일본의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실토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직 총리가 해외에서 사과발언을 한 바로 그날 일본의 현직 각료들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식으로 참배를 했다.그런가 하면 아키히토(明仁)일왕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참석한 전몰 추도식에서 ‘천황의 성전’을 찬양하는 기미가요가 제창되고 아키타현에는 일제침략을 찬미하는 ‘대동아성전비’가 세워졌다.이 얼마나 얄미운 이중 플레이인가. 우리들에게는 망언 시리즈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 도지사가 “공인도 신앙의 자유는 있다”고 주장했다지만 연이은 망언과 최근 교과서 역사왜곡 등을 보면 그들은 지금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다행히 ‘평화 유족회’ 등시민단체에서 항의시위가 있었다고 하나 일본에서 이들의 외침은 아직은 모기소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 남북이산상봉/ 남측 최고령 조원호할머니

    “아이구,종필아…”“어디갔다 이제왔어…” “어머니.그래도 어머니가 이 자식을 보려고 여지껏 살아 계셨구나…” 북측 서울 방문단을 맞은 남측 가족 가운데 최 고령자인 조원호(100·충남 아산군 탕정면)할머니는 10여년전부터 심한 치매를 앓고 있다.그러나 모정(母情)은 치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조 할머니는 50여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둘째 아들을 종필씨(69)를 알아보고 이름을불렀다. 막내딸 종혜씨(56)가 “엄마,이 분이 누구야.종필이 오빠야”라고말하자 조할머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아이구 종필아…”하고 말문을 열었다.그리고 반세기만에 잡은 아들의 손을 놓으려하지 않았다. 조할머니는 상봉 직전까지도 아들을 만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테이블에 놓인 음식만 오물거려 주변을 안타깝게 했었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데다 치매를 앓고 있는 탓인지 “어디 살아.서울 사니”,“나이가 몇이야”라고 물어 가족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종필씨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끓고 통곡했다.이어 “내가 저기서(북에서) 아들 딸 다섯이나 뒀어요.이미 다 장성했어요”라며 오열했다. 동생 종덕씨(63)는 “한국전쟁 당시 대전 공립중학교 2학년에 다니다의용군으로 전쟁터에 나간 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형이 살아있어 너무 너무 고맙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종필씨는 가족들에게 “김일성대학에서 민족고전을 전공한 뒤 ‘이조실록’편찬작업에 참여하는 등 사회과학원에 연구원으로 일해 왔다”고 그간의 소식을 전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85년 이산상봉때도 북한측 숙소로 이용…쉐라톤 워커힐호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이 묵는 쉐라톤 워커힐호텔은 공교롭게도 한국전쟁과 인연이 닿아 있다. 지난 63년 준공된 이 호텔은 한국전쟁 당시 미 8군사령관 겸 유엔군총사령관이었던 월톤 워커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워커 장군은 1950년 낙동강전선 방어에 중추적 역할을 한 명장으로 같은해 12월23일 북진 도중 서울 도봉구 창동 부근에서 지프가 전복되는 바람에 전사한 인물. 전쟁이 끝난 뒤 지금의 워커힐호텔이 위치한 광장동 일대 강변은 미군들의 휴양지로 애용됐고 호텔이 들어선 뒤 지난 87년에는 산책로에워커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85년 이산가족 상봉시 북측 방문단 숙소로 이용됐던 워커힐호텔은지난해 통일농구 경기때도 북한 농구팀이 묵는 등 남북 교류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지난 91년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장소로 선정됐을 때는 북측의 심기를 고려해 이름을 바꿀까도 검토했었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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