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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행정 배우고 싶어요” 문화 이어 행정한류도 급속 확산

    “한국 행정 배우고 싶어요” 문화 이어 행정한류도 급속 확산

    문화 한류 열풍 못지않게 행정 한류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3일 스리랑카 지방공무원단이 한국의 선진 행정을 배우기 위해 입국한 데 이어 14일 콜롬비아 정부 대표단도 우리 정부를 찾았다. 또 국립환경인력개발원은 세계 각국의 환경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책 연수도 실시한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앙헬리노 가르손 콜롬비아 부통령을 만나 양국 간 우호협력관계 발전 및 공공행정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면담은 지난 2월 맹 장관이 콜롬비아를 방문해 가르손 부통령과 가진 회의의 후속 조치다. 가르손 부통령은 유엔 평가에서 2회 연속 1위를 차지한 전자정부와 SOS 국민안심서비스, 새마을운동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이 분야에 대한 향후 협력 확대 의지를 보였다. 맹 장관은 가르손 부통령에게 “중남미 지역 중 유일한 한국전쟁 참전국인 콜롬비아의 도움과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공 사례를 적극 공유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행안부 지방행정연수원은 15일 스리랑카 지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스리랑카 지방행정역량강화 과정’ 입교식을 갖고 26일까지 교육을 진행한다. 연수 참여자는 모두 20명으로, 교육은 스리랑카의 수요를 반영해 일선 지방행정 역량 강화와 스리랑카 농촌발전에 초점을 맞춰 정책현장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한국 농촌발전 전략 및 새마을 운동, 정부조직과 인적자원 관리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행안부와 이천시청 등을 방문해 한국의 지방행정을 배우게 된다. 환경인력개발원도 15일부터 25일까지 아시아·동유럽·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 환경 분야 20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국내 환경 보건정책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과정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예멘, 우즈베키스탄, 불가리아, 탄자니아 등 16개 나라 20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녹색 환경보건’을 주제로 한국의 정책과 현황, 석면안전관리 대책, 한국의 화학사고 대응정책 등 6과목과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된다. 유진상·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무연고 호국영령에게 꽃 한송이를…

    무연고 호국영령에게 꽃 한송이를…

    ‘충효의 고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서울 동작구가 다음 달 6일 제57회 현충일을 앞두고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한사람 한송이 헌화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꽃을 구매해 국립서울현충원의 무연고 묘지에 드리는 것으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려는 취지다.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의 상당수가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자로, 세월이 많이 흘러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무연고 묘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는 오는 22일까지 개인은 물론 단체나 기업체, 어린이집, 학교 등을 대상으로 헌화용 꽃 한송이(1000원) 구매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구 자치행정과에 기탁서를 제출한 뒤 현충원 한사람 한송이 헌화운동 계좌(우리은행 1006-401-228314)에 입금하면 된다. 구는 헌화용 꽃을 구매한 개인이나 단체에 헌화 확인증을 제공한다. 구 자치행정과(820-9116)나 현충원(826-6234)에 문의하면 상세한 사항을 안내받을 수 있다. 구는 24일 오전 10시~낮 12시 현충원 현충문 앞에서 사회단체와 주민, 어린이집 아동 등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사람 한송이 헌화운동 시작을 알리는 공식 참배 행사도 갖는다. 참석자들은 현충탑 헌화와 참배 행사를 갖고 의장대 시범을 관람할 수 있다. 아울러 묘역 헌화와 무연고 묘지 주변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묘비를 닦는 정화활동도 펼친다. 문충실 구청장은 “나라사랑과 가족사랑을 다짐하고 충효의 고장 주민으로서 애향심을 키우는 뜻깊은 자리에 가족·이웃·단체·친구끼리 많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③ 1970~80년대 만화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③ 1970~80년대 만화를 말하다

    1970년대 우리 만화는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검열과 ‘신촌 대통령’ 합동문화사의 독점, 유해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등이 만화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혹한 속에서도 봄을 부르는 싹은 움을 틔우고 있었다. 주간지와 신문 연재 등 새로운 돌파구의 기반이 마련됐고,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만화문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고 있었다. 결국 1980년대 들어 어린이·성인·순정 만화 잡지들이 봇물을 이루며 한국만화는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1970년대에도 검열이 심했다. 부분수정, 전면수정, 폐기만 있었는데 무사통과는 거의 없었다. 작가들은 만화를 잘 그리는 것보다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연구하기에 바빴다. 합동문화사 체제도 작가들을 옥죄었다. 인기 작가가 마음에 안 들면 이름이 비슷한 작가를 만들어 엇비슷한 작품을 그리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창작 분량을 강제로 할당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만들어 낸 유령 작가의 작품을 대신 그려야 하는 괴상한 착취 구조도 있었다.”(김형배) ●만화에 가해진 군사정권의 분서갱유 사회적으로 만화가 푸대접을 받는 상황은 1970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이·청소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만화는 항상 일등으로 몰매를 맞았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남산이나 동대문운동장에서 불량만화를 모아 태우는 행사가 열렸다. 만화계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은 1972년 1월 말 일어난 ‘불량만화 파동’이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사고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군사정권과 언론은 “어린이가 만화에서 본 내용을 흉내내다 숨졌다.”며 엉뚱한 곳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특별단속이 시작됐고 경찰은 곳곳의 만화방을 급습해 수만권의 만화책을 폐기처분했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포했다. “교육계 전반이 만화에 적의(敵意)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모든 문제가 만화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하지만 현재 30~40대인 내 올드팬 가운데 어렸을 때 만화를 읽어서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김형배) ●새로운 만화의 통로, 잡지 1960년대 만화방 중심의 문화는 1970년대 들어 큰 변화를 맞는다. 바로 만화잡지의 확산이었다. 이 시기 어린이 잡지에 실린 만화들은 이전과 달리 호흡이 길어졌다. 1960년대 중후반에 창간된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이 그 중심이었다. 컬러 지면을 도입하고 만화 분량을 대폭 늘린 것이다. 특히 어깨동무는 1972년 사상 처음 별책부록으로 ‘도깨비 감투’(신문수)를 끼워줬다. 본지에 연재하던 만화가 7쪽 안팎이었지만 도깨비 감투는 60쪽이나 됐다. 어린이 잡지의 약진은 서점용 단행본 만화문고 등장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새소년을 발행하던 어문각의 ‘클로버 문고’다. 1972년부터 약 12년 동안 429권이 나오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가운데 389권이 만화였다. ●한국만화의 어두운 과거, 표절 클로버 문고는 다른 한편으로, 일본만화 표절이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문고의 첫 작품인 ‘유리의 성’(정영숙)과 최고 히트작인 ‘바벨 2세’(김동명) 등 상당수가 일본작품을 베낀 것이었다. 사실 일본만화 표절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밀림의 왕자’(서봉재)를 첫 표절 사례로 본다. 1951년 나왔던 일본 작품 ‘소년 케냐’를 그대로 옮긴 작품이다. 이후에도 일본만화 표절 및 복제 작품이 인기를 끄는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벨 2세의 인기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바벨 3세’를 그려야 했던 김형배 화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만화 표절 문제에서 기성 작가 대부분이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만화를 창작품이 아닌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등 만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결과다. 출판업자들은 돈벌이에 급급해 작가들에게 베끼기를 강요했고, 작가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다. 만화가와 우리 사회 모두 피해자다.” ●1970년대의 수확, 성인만화 잡지 문화의 발달은 성인만화 시대를 열어젖혔다. 1968년 성인 주간지 ‘선데이서울’과 1970년 국내 첫 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가 창간됐다. 197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이 매체들은 성인만화 시대를 연 쌍두마차다. 일간스포츠의 경우 1972년 ‘임꺽정’, ‘수호지’ 등 고우영의 극화를 싣기 시작하며 그해 2만부에 불과했던 발행부수가 1975년 30만부로 늘어났다. 선데이서울은 1974년 박수동의 ‘고인돌’을 게재하며 성인만화 인기에 불을 댕겼다. 선데이서울의 성공으로 각종 주간지가 나오게 되는데 강철수가 ‘주간여성’에 ‘청춘의 낙서’를 연재하며 성인만화 붐을 거들었다. 신문이나 잡지도 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어린이 만화나 만화방용 만화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누릴 수 있어 성인만화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성인만화들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과정에서는 대대적으로 수정, 삭제 조치를 당해야 했다. ●한국만화 르네상스의 상징, 보물섬 1982년 10월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어린이 만화 월간지 ‘보물섬’이 창간된 것이다. 오로지 만화만 실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만화 잡지였다.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뒀다.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등 수많은 인기 작가들이 작품을 연재했다. 그런데 보물섬을 발간한 곳이 육영재단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육영재단은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가 설립했다. 보물섬이 창간되던 해 박근혜(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만화에 암흑기를 드리운 대통령의 딸이 우리 만화 르네상스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후 1985년 ‘만화광장’, 1987년 ‘주간만화’, 1988년 ‘만화세계’와 ‘매주만화’가 나오는 등 1980년대 중반 이후 성인만화 잡지가 잇따라 창간되며 만화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영세한 졸속 저질 만화 잡지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1988년 ‘아이큐 점프’, 1991년 ‘소년 챔프’ 등 일본식 체계를 그대로 이식한 잡지가 잇따르며 우리 만화잡지는 다시 변화를 맞게 된다. 1970년대에 어린이 잡지의 강세에 힘입어 명랑만화가 도드라졌다면, 1980년대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장편극화가 큰 흐름을 형성한다. 순정만화도 다시 도약기를 맞는다. 김동화, 한승원, 황미나 등이 먼저 지평을 넓혔다. 이어 장편 서사 멜로물을 앞세운 김혜린, 강경옥, 김진, 신일숙 등이 걸작들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1988년 11월 순정만화 월간지 ‘르네상스’가 창간되며 순정만화의 꽃은 활짝 만개한다. “1980년대 들어 만화가가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할 매체가 훨씬 다양해지며 우리 만화가 정점을 이뤘다. 어린이 잡지와 스포츠 신문 등이 큰 역할을 했다.”(김형배)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이 기사는 김형배(65) 화백 인터뷰를 바탕으로 최열 ‘한국 만화의 역사’,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박기준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박인하·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를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 [열린세상] 은퇴자여 책을 읽으라/장은수 민음사 대표

    [열린세상] 은퇴자여 책을 읽으라/장은수 민음사 대표

    사람들 대부분은 조영무(趙英茂)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했던 일을 이야기해 주면 누구나 ‘아, 그 사람!’ 하고 떠올린다. 그 이미지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방원의 명을 받고 선죽교에 잠복했다가 정몽주를 철퇴로 내리친 사람인 까닭이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는 이방원의 편에서 다시 무력행사에 앞장섬으로써 자기 얼굴에 피를 묻혔다. 이 때문에 그 이름에는 인간백정 이미지가 덧씌워져 회자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조영무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가 있다.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그려진 말년의 조영무 초상이다. 제2차 왕자의 난 이후 실권을 장악한 이방원은 사병 혁파에 힘쓴다. 위화도 회군 이래, 피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무법천지의 시간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각자 수십, 수백의 부하를 거느렸던 권세가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조영무 역시 무기를 거두러 온 관리들을 구타해 쫓아버리는 등 강하게 항의했다. 그 결과, 그는 미래 권력인 이방원의 최측근에서 급전직하해 모든 것을 잃고 지방으로 쓸쓸히 유배당한다. 드라마에 따르면, 이때 조영무의 두 번째 인생이 열린다. 유배 직후, 일자무식 행동대장이었던 그는 갑자기 책의 세계로 빠져든다. 허탈에 빠져 술로 분과 한을 달래는 다른 무장들과 달리, 그는 우연히 곁에 놓였던 책을 읽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어 나간다. 평생 싸움터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피 말리는 긴장의 세월을 보낸 무사 조영무는 유배지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어린아이처럼 신통방통한 표정으로 책을 읽으며 선비로 변해 간다. 조영무의 새로운 삶은 곧 조정에 전해지고, 이방원은 다시 그를 불러들여 우정승에 임명하는 등 총애를 거두지 않는다. 이 일화에서 중요한 것은 조영무가 인생의 나락에서 끝내 일어나 영화를 누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생의 모든 전투가 끝나고 인생 끝자락에 들어선 순간, 한쪽으로 치우쳤던 삶을 온전히 만들어 주고 일상 곳곳에 숨어 있던 재미와 풍요를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와 그를 통한 성찰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 박성민에 따르면, 1930년대생들은 ‘위대한 세대’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을 불굴의 리더십으로 이끌어 강한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또 그 뒤를 이은 베이비붐 세대는 어쩌면 ‘더 위대한 세대’이다. 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라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겪어 나가면서도 역사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삶을 불살랐다. 그러나 역사상의 건국 세대가 흔히 그러했듯이, 이 두 세대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생존을 위한 격렬한 전쟁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이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정의를 위한 불법과 탈법에 관대한,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시대감각을 은연중 갖고 있다. 표절을 저지르고도 관행이라고 항변하는 문대성씨나 당권 장악을 위해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았던 통합진보당의 행태나 상속세를 몰래 포탈하면서 이를 세테크라고 우기는 재벌들의 모습은 어쩌면 같은 의식구조가 배태한 샴쌍둥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에 대한 시대적 거부와 함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다. 아마 우리 삶의 규칙이 본격적으로 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 조선 초기 많은 공신들이 그러했듯이, 인생을 걸고 많은 것을 이룩했기에 이들의 노년은 더 공허해지기 쉽다. 사회적 삶을 유지하려는 열망 때문에 맹목에 빠지기도 쉽다. 현역 때 그토록 많은 사업의 고비를 넘겨왔던 이들이 은퇴 후에는 사소한 일에도 어이없이 넘어지는 것은 아마 이 탓일 것이다. 조영무의 일화는 내면의 힘을 깨닫고 뇌의 주름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시작해서는 안됨을 가르쳐준다. 독서를 통해 자기를 속 깊게 하고 오감의 능력을 회복한 후에야 비로소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고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전에 가장 먼저 챙길 일은 재테크 계획이 아니라 독서 계획이다. 책을 통해 자기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그것이 아마도 ‘더 위대한 세대’가 끝까지 위대한 세대로 남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 한·일, 백악관 홈피서 ‘동해 표기’ 전쟁

    한·일, 백악관 홈피서 ‘동해 표기’ 전쟁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동해’와 ‘일본해’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22일 미주 한인 교포들이 버지니아한인회(회장 홍일송) 주도로 백악관 홈페이지의 온라인 청원 코너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서 ‘미국 교과서 동해 표기로 바로잡기’ 서명운동을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청원서는 ‘동해-우리 교과서 안의 잘못된 역사’라는 제목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은 끔찍한 군사적 팽창주의를 통해 1928년에 ‘동해’(원래 이름)를 ‘일본해’로 바꿨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 청원서가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뒤 보름 만인 지난 5일 한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서명자가 2만 5000명을 넘어섰다. 규정상 온라인 청원이 올라온 뒤 한달 안에 서명자가 2만 5000명을 넘으면 백악관은 그로부터 한달 안에 청원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거나 공청회를 열어야 하며, 정책적 타당성이 있으면 관계부처로 사안을 넘기게 된다. 이에 따라 한인회 측은 ‘일본해’가 공식 명칭으로 돼 있는 미국 교과서를 ‘동해’로 바꿀 수 있는 희망이 열렸다며 고무됐다. ●日 “한국, 미군 철수 요구” 왜곡 그런데 지난 13일부터 이 청원 코너에 ‘일본해-우리는 아이들에게 정확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데, 왜 바꿔야 하나’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고 사흘 만인 17일 오전 3시(현지시간) 현재 벌써 1736명이 서명한 것으로 뒤늦게 한인사회에 알려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 청원서는 “1928년에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로 바꿨다는 한국인들의 주장과 반대로 일본해는 원래부터 줄곧 일본해였다. 우리 어린이들은 진정한 역사를 계속해서 배울 권리가 있다.”고 적시, 누가 봐도 동해 청원에 대한 반박성 청원임을 알 수 있다. 이 청원은 미시간주 거주 ‘나리히라’라는 사람이 올린 것으로 돼 있으며, 서명자들 이름은 대부분 일본식이었다. 이에 따라 재미 일본교포나 일본 본토 거주 일본인들이 한인들의 동해 이름 찾기 운동에 위기감을 느끼고 조직적인 반격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해 청원은 “남한 사람들은 북한 공산주의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한국전쟁에서 피 흘린 미국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지금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왜곡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인회 “21일까지 서명 동참을” 동해와 일본해 청원이 둘 다 2만 5000명을 넘을 경우 두 청원에 대해 합동으로 백악관에서 공청회가 열려 난상토론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7일 오전 3시 현재 동해 청원 서명자는 2만 7619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인회 측은 서명 마감일인 오는 21일까지 최대한 많은 숫자가 서명을 해 최종적으로 일본해 서명자 숫자를 웃돌아야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고 동포들의 막판 서명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서명은 백악관 웹사이트(http://wh.gov/Ryk)에 접속해 이름과 이메일주소만 입력하면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누구나 가능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나윤권 콘서트-메모리 온 더 스트리트 21~22일 서울 연세로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감미롭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가수 나윤권이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여는 콘서트. 7만 7000~8만 8000원. 1544-1555. ●2012 ‘성시경의 축가’ 콘서트 5월 26~27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가수 성시경이 5월의 야외 공연장에서 ‘결혼 피로연’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펼치는 콘서트. 7만 7000~12만 1000원. 1544-1555. [연극·뮤지컬] ●연극 ‘햄릿’ 5월 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작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이다. ‘3인극’과 ‘극중 극’ 형식을 사용하면서 새로운 햄릿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죽음이 숙부의 타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햄릿이 택한 복수의 방법은 ‘복수의 리허설’이다. 3만 5000~5만원. 070-4143-6443.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 21일부터 6월 24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지난해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창작 뮤지컬의 돌풍으로 떠올랐던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의 재공연. 혼자 살고 있는 한 할머니에게 또 다른 할머니가 찾아와 자신의 집이라고 우기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4만원.(02)2278-5741. [클래식] ●나비부인 19~21일 오후 7시 30분, 22일 오후 4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08년 창단한 무악오페라단이 세 번째 작품으로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올린다. 드라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궁’ ‘장난스런 키스’의 황인뢰 감독이 처음 오페라 연출에 도전한다. 유럽에서 50회 이상 쵸쵸상(나비부인) 역을 소화한 소프라노 강경해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에서 활동하는 테너 박기천(핑커톤)이 출연한다. 4만~25만원. (02)569-0678. ●드뷔시 스페셜2-파스칼 드부아용 19일 오후 8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금호아트홀이 마련한 드뷔시 스페셜의 두 번째 무대는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인 드부아용 베를린 국립음대 교수가 맡는다. 2만~3만원. (02)6303-1977. [미술·전시] ●정태사 개인전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낙원동 갤러리엠. 전국을 유랑하며 화폭에 담은 실경산수화를 선보인다. 화구 가방을 메고 가면서 산으로 들로 나다니면서 좋은 경치가 있으면 담백하고 절제된 붓질로 그려낸 작품들이라 실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02)735-9500. ●현대 구상화 작가 3인전-박성환·김상유·황용엽 22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한국적인 소재를 실존주의적이면서도 해학적인 터치로 그려냈던 세 작가의 유작들을 만나 보는 자리다. 한국전쟁 시기 한국인들의 생활 모습, 그리고 지식인들이 꿈꿨던 세계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02)2287-3591.
  • “배틀쉽 속편엔 이병헌 캐스팅하고 싶어”

    “배틀쉽 속편엔 이병헌 캐스팅하고 싶어”

    “‘배틀쉽’ 속편에는 한국 배우 이병헌을 캐스팅하고 싶네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배틀쉽’ 홍보차 방한한 피터 버그 감독이 한국과의 인연과 한국 배우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5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배틀쉽’의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피터 버그 감독은 “아버지가 미국 해병대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늘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면서 “개인적으로 중독에 가까운 김치 애호가다. 한국에 와서 24시간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버그 “난 중독에 가까운 김치 애호가” ‘배틀쉽’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와 전 세계 다국적 연합군함과의 전면전을 다룬 SF 블록버스터 영화로 동명의 전투 보드 게임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에는 2차 대전 종전 조인식이 열렸던 미주리 호에서 미국과 일본이 함께 외계인에 대항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터 버그 감독은 “영화 사전 조사 과정에서 진주만을 갔는데 항구에 미국과 일본의 군함이 나란히 정박돼 있는 모습을 봤다.”면서 “2차 대전 당시 적이었던 두 나라가 끈끈한 우방이 된 것이 감동적인 변화라고 생각해 아이디어를 얻었고 영화를 통해 용서의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속편 제작 기회가 온다면 해군 장교 역에 이병헌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했다. ●키치 “다니엘 헤니와 친해요” ‘배틀쉽’의 주인공인 하퍼 역은 최근 개봉한 ‘존카터:바숨 전쟁의 서막’의 주연을 맡기도 한 할리우드의 핫 스타 테일러 키치가 열연했다. 키치는 “극중 하퍼는 처음에 실패를 두려워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회피하지만 형 때문에 해군에 입대한 뒤 지휘관이 되면서 자기 안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두 편의 블록버스터에 연이어 출연한 그는 “배우로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특별한 장면을 찍었을 때 100% 감독을 신뢰했으며 9월에 다른 영화 한 편을 더 찍기로 했다.”고 말했다. 함께 작업을 한 경험이 있는 다니엘 헤니와 친분이 있다는 그는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한국영화 명작리스트를 받았는데 아직은 영화를 챙겨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를 듣던 피터 버그 감독은 “한국 영화 ‘올드보이’를 좋아하며 키치에게 꼭 보여 주고 싶다. 격투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고 그의 취향과도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팝스타 리한나와 리암 니슨 등이 출연한 ‘배틀쉽’은 오는 11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한반도 분단체제, 강대국 이해관계 속 고착화”

    “한반도 분단체제, 강대국 이해관계 속 고착화”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 등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우호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후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냉전이 해소됐는데, 왜 남한과 북한은 가다 서다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등 변덕스러운 것일까. 왜 북한은 광명성 3호 발사 강행처럼 남한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군사적 도발을 일삼는가. 미국이나 중국은 과연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관심이 있는가. 이 같은 궁금증을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분단의 히스테리’(창비 펴냄)를 통해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홍 교수는 1999년 미국 정부가 공개한 외교관계 문서를 분석해 1970년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사를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1960년대 냉전의 절정기, 남북 간 군사적 위기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1968년 1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김신조 등 북한의 특수부대 요원 31명이 침투, 남한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같은 해 2월엔 미국의 선박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돼 원산항으로 끌려갔다. 이에 박 대통령은 대북 보복을 주장했고, 같은 달 존슨 미국 대통령은 밴스를 특사로 보내 이를 무마해야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울진·삼척지구에 100명이 넘는 북한 무장간첩이 남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한반도 지역에 군사력을 급속히 증가시켰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함이 원산 바다에 나타났고, F105 1개 비행대, F102 2개 비행대, 최신예 전투기 F4D 팬텀기 4개 비행대가 남한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제2의 한국전쟁이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북한은 푸에블로호 위기를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국가적 실체를 승인받으려고 노력했다고 홍 교수는 말한다. 위기를 고조시켜야 협상이 시작된다는 북·미 관계의 ‘이상한 공식’은 이때부터 출현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든지, 남북통합이 되든지 하는 한반도 분단의 근본적 해결이나 개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한반도 긴장이 격화되거나, 이 긴장 상태가 이어져 한국전쟁 때처럼 격돌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대국은 1970년대 이래로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개입은 축소하면서, 영향력 자체는 유지하려는 모순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또 분단의 유지와 책임을 남북한으로 축소시켜, 국제적인 분단이 아니라 한반도 내부의 분단으로 국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이렇게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남북한 문제로 축소시키면서, 분단체제가 더 완숙해졌다는 것이다. 휴전이라는 애매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또한 군사적 위기와 적대적 대치 국면, 그리고 현상 유지 사이를 빈번하게 오가며 요동치게 됐다. 아울러 남한이나 북한의 정부 모두 분단체제의 변덕스러움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한반도 주민들의 삶은 계속 불안하고, 자결권도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에 도달하게 됐다. 문제는 완숙하긴 하되 여전히 변덕스럽고 유동적인 분단체제가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에게는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1972년 남한의 유신체제의 선언 등도 그 하나일 수 있겠다. 홍 교수는 “부자가 만들어낸 사회적 불평등이 범죄를 발생시키지만 그 범죄는 주로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에게 나타나듯이, 한반도 분단체제는 강대국이 조성한 모순과 갈등이 약소국에서 증폭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런 모순구조를 이유로, 남북의 정치권력들은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이야말로 ‘식민성’(coloniality)으로의 귀결이자 표상이라는 것이다. 지구화로 세계인들이 세계무역기구나 세계은행, 유엔 등 국제기구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도,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정책적 오류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도 비판했다. 미국이 세계은행 후보로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한 것에 대해 한국인들이 환호하고 있지만, 홍 교수의 지적을 차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분단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흔히 평화를 전제로 한 분단의 해소나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홍 교수는 평화와 분단해소를 향한 노력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과거에 한민족이었으니 하나의 국가로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60년 넘게 다른 체제, 다른 사상에서 살아온 두 국가의 국민들에게 쉽지 않은 주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청계천 재복원 논란… 최협 前교수 ‘판자촌 일기’로 본 한국 재개발 정책

    청계천 재복원 논란… 최협 前교수 ‘판자촌 일기’로 본 한국 재개발 정책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3일 ‘청계천 재복원’을 선언했다. 박 시장은 이날 ‘청계천시민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청계천을 역사적이고 생태적인 공간으로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최대업적으로 평가되는 현재의 청계천 복원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환경론자들은 청계천을 ‘거대한 인공어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천을 덮어 놓았던 것을 2003년 7월부터 제거해 2005년 9월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청계천에 매일 상당한 수준의 유지비를 쏟아부어야 하고, 시멘트로 범벅됐다는 게 이유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도심 환경개선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는다. 청계천이 복원된 이후 수많은 시민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들고, 주변 직장인들에게는 회색 빌딩 숲에서 그나마 산책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 재복원이 시작된다면 박 시장의 선언대로 역사성과 생태성을 찾는 청계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부, 슬럼가로 보고 복개공사” 최협 전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가 쓴 ‘판자촌 일기’(눈빛출판사 펴냄)는 청계천의 역사성과 생태성을 복원하는 길에 한 가지 좌표를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한국 민중의 생활사를 기록한다는 취지로 제작된 이 책은 20대 인류학과 대학원생의 눈으로 1960년대 청계천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 놓았다. 하버드 대학 인류학자 빈센트 S 브란트 박사의 프로젝트에 현장조교로 참여한 당시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생 최협은 1969년 서울 마장동 청계천변 판자촌에서 4~6월 거주하며 인터뷰와 관찰을 통해 판자촌 거주자들의 생활상을 세세히 기록했다. 청계천 판자촌은 한국전쟁 직후, 즉 1950년대 초에 피란민과 월남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작됐다. 최 전 교수는 “정부관료나 공무원, 개발업자, 교통전문가, 건설업자들은 청계천의 판자촌을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대표적인 슬럼가로 보고, 이곳의 거주자들과 함께 서울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인식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윗사람들의 관심은 1958년 광교를 중심으로 폭 16~54m의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청계천 판자촌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청계천 복개 공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1969년에는 광교 쪽에 살던 판자촌 주민들도 마장동 쪽으로 이주해야만 했으니, 더 복작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거주민들 봉천동·성남 등으로 쫓겨나 1960년대의 청계천 판자촌 거주자들은 대체로 농촌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서울로 이주한 농민들이었다. 배운 것도, 기술도 없던 농촌이주민들이 서울에서 엉터리 지붕이라도 이고 살 수 있는 곳은 이곳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1977년 답십리까지 청계천 복개공사가 완료되면서 판자촌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다. 청계천 둑방에 살던 사람들은 재개발과 도시정비에 떠밀려 봉천동, 상계동, 성남 등으로 흩어지거나, 강제 이주당했다. 청계천 복개가 완료된 1977년 소설가 윤흥길이 발표한 연작소설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는 광주대단지(성남)로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불순분자에 의한 광주대단지 폭동’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지만, 그들은 강제 이주당한 곳의 생활기반과 교통대책을 요구했던 것이다. ‘아홉 켤레~’의 주인공 권씨의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1950년대 말부터 진행된 청계천과 도시정비는 사회적 문제였던 셈이다. ●청계천 역사·생태성 복원 가능할까 최 전 교수는 “청계천 둑방에 살던 가족이나 그들의 이웃들은 삶의 터전이 사라진 것이고, 그곳의 막걸릿집과 구멍가게 등은 번듯한 초고층 유리건물과 비교할 때 보잘것없지만 문화적, 역사적으로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교수는 “파리나 뉴욕에 가도 뒷골목이 있고, 그 뒷골목들이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밀어내듯이 재개발하는 것들은 아쉽다.”고 말했다. 박현수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 단장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과거와 그 자취를 말살하는 것은 반달리즘 못지않다.”고 지적한다. 선거공약 등으로 현재 수백 개의 재개발과 뉴타운 정책이 남발된 서울에서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다. 박 시장이 청계천 재복원을 선언했지만, 북악산과 옥인동(구 옥류동)을 지나서 도심으로 흘러들어 청계천으로 모이는, 조선시대 청계천으로의 복원은 800만명이 사는 복잡한 서울의 규모를 볼 때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의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1960~1970년대 청계천 판자촌의 삶을 비루하고 절망적인 가난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농촌에서 이주해 서울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 이들에게 청계천 판자촌은 희망이자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곤여만국전도 62년만에 복원… 봉선사 품으로

    곤여만국전도 62년만에 복원… 봉선사 품으로

    1950년 한국전쟁 때 화재로 소실됐던 조선 숙종 어람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복원돼 62년 만에 원래 소장처인 경기 남양주 봉선사로 돌아갔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봉선사 정수 주지 스님 등 불교계·학계 인사들은 27일 봉선사에서 곤여만국전도 기증식을 열었다. 1602년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가 명나라 북경에서 목판으로 찍어 펴낸 서양식 세계지도다. 경·위도선 표시와 함께 5대주 850개 지명과 각지의 민족, 산물이 지리적으로 서술됐다. 1603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이광정과 권희에 의해 처음 조선에 소개됐다. 이후 1708년(숙종 34년) 조선 왕실에서 당대 최고의 궁중화원 등을 동원해 8월 초고본, 9월 어람본을 펴냈다. 초고본(보물 849호)은 서울대에 소장돼 있으나 상당 부분 훼손됐다. 타원으로 표현된 지도는 세계를 사각형으로 인식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중국 중심 세계관의 틀을 깨고 서양학문 및 천주교에 관심을 쏟는 계기로 작용했다. 도와 실학박물관은 어람본 복원을 위해 지난해 5월 ‘프로젝트 연구팀’을 구성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돼 있는 1931년 어람본 사진을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과 한국·중국·일본·미국 등에 소장된 목판본 조사를 거쳐 닳은 글씨와 채색을 오롯이 되살렸다. 세조의 능침사찰인 봉선사 소장 왕실유물 회복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학박물관 관계자는 “중국이 아닌 세계 속의 조선에 눈을 뜨게 한 유물로, 세계와 문명을 향한 관심과 정보의 수준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핵안보정상회의 첫날]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 한국어로 동맹·핵안보 강조

    [핵안보정상회의 첫날]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 한국어로 동맹·핵안보 강조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6일 한국외대에서 가진 특강에서 어눌한 이 두 마디의 한국말로 한·미 동맹의 굳건함과 핵안보를 위한 국제협력을 한껏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대 미네르바 대강당에서 가진 특강에서 “따뜻하게 환영해 줘서 고맙다. 여러분의 영어 실력이 내 한국어 실력보다 나을 것”이라며 직접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강연의 대부분을 핵안보의 중요성과 한·미 동맹 강조에 할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3년 전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고, 결국 2년 전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핵안보 정상회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천 파운드의 핵물질이 제거됐다.”면서 “이번 회의에서 각국이 앞으로 (핵 감축 등에 관한) 더 많은 구체적인 약속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미 간 대화 국면 속에서도 최근 로켓 발사를 준비해 서방을 긴장시키고 있는 북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에 어떠한 적대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으며, 양국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있다.”면서도 “더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보상하지 않을 것이며, 선택은 전적으로 북한에 달렸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강연 도중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 등을 내세워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냈다. 첫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인 성 김 대사와 최근 세계은행 총재로 자신이 지명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언급하며 미국 내 한인들의 활약을 높이 평가했다. 또 비무장지대에서 복무 중인 한·미 양국 군인과 46명의 천안함 희생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국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톡과 미투데이를 거론하며 “이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한류 열풍에 휩싸이게 됐다.”고 말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예상보다 많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유머 감각도 여전했다. “혹시 가명으로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지지자인 것처럼 글을 남긴 적이 있느냐.”는 SNS 질문에 “나는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혹시 우리 딸들이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강연 말미에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계’나 ‘하나 된 한국’이라는 비전이 빨리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그로 말미암아 한·미 동맹이 한층 강화될 것이며, 어떤 시련이든 우리는 함께할 것이고 같이 갈 것”이라고 말한 뒤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고 외치며 30여분간의 강연을 마쳤다. 강연 후에는 즉석 질의응답 대신 단상에서 내려와 청중들과 악수를 하며 친밀감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에 서명하라.”고 외쳐 장내가 잠깐 소란해지기도 했다. 이날 강연에는 700명의 한국외대생을 비롯해 교직원과 초청인사 등 1200여명이 참석했다. 일부 학생들은 단상 옆에 마련된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 5시부터 나와 기다리기도 했다. 프랑스어과 1학년 심재권(19)씨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러시아 및 전 세계 여러 국가를 아우르며 협력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변화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산정호수 김일성별장 원형 복원

    산정호수 김일성별장 원형 복원

    경기 포천시가 산정호숫가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주변을 재정비한다. 포천시는 19일 “7년여 전 산정호수 제방 끝 지점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 터 주변을 정비하면서 수변 전망대와 정자 등을 설치했으나 역사적 고증을 거쳐 원형을 최대한 다시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접한 건물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주변을 추가로 정비하고 전문가 고증을 거쳐 김일성 별장 관련 자료를 수집해 이야깃거리가 있는 관광명소로 만들 예정이다. 소요사업비 6억 6000만원 전액은 시비로 마련할 방침이다. 산정호숫가에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증빙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시는 “별장이 주거 형태로 지어진 건물은 아닐 것으로 추정하고 2006년쯤 수변 전망대와 정자를 신축했으나 최근 산정호수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면서 별장 원형 복원도 함께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산정호수는 1925년 축조된 인공저수지이며 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 북쪽에 해당돼 북한 땅이었다. 산정호숫가에서 태어나 현재 식당을 운영 중인 이성범(57)씨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였던 김일성 장군이 군사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며칠 묵어갔고, 한국전쟁 직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다녀간 후 ‘김일성 별장’으로 더 잘 알려졌으나 1978년 국민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산정호수’로 불리게 됐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아직 두 김일성이 같은 사람인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박진식 시 문화관광과장은 “김일성 별장지는 과거 산정호수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 직원들이 숙소로 사용해 오던 곳을 여러 차례 수선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다.”면서 “역사적 고증을 거쳐 최대한 원형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기고] 미래 한국전장에서 고려할 요소들/김정익 한국국방연구원 현역연구위원

    [기고] 미래 한국전장에서 고려할 요소들/김정익 한국국방연구원 현역연구위원

    1930년대 연합군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리델하트였다. 당시 영국 정부의 군사정책 자문관으로서 방어전의 우위를 강조한 그는 영국정부와 연합군의 전쟁준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조기 함락의 책임을 져야 했다. 일반적으로 공격을 하려면 그 전력이 방어전력보다 배 이상 우위여야 한다. 리델하트는 독일군이 연합군보다 배 이상 우위의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의 공격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연합군의 지상전력은 방어에 충분하며, 추가적인 지상전력 증강은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국방예산이 부족하던 영국 정부는 리델하트의 건의에 따라 지상군 증원을 등한시한 결과 독일군이 침공했을 때 프랑스의 조기 함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은 전체 전력에서 프랑스군을 압도하지 못했지만, 주공격 지역에선 병력의 집중으로 프랑스군을 압도했다. 그 결과 프랑스 방어선은 쉽게 돌파되었을 뿐 아니라 파리까지 조기에 점령당했다. 최근 수년간 한국군 전력증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논리는 전력지수에 의한 전력비교다. 2차대전 전의 분위기와 같이, 위협국가와의 전체 전력지수를 비교하는 이 논리는 주공격 지역에 대한 전력 집중을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걸프전 이후 공군력의 활약을 본 일부 전문가들은 미래의 한국전쟁도 공군력에 의한 정밀타격만으로 지상군의 접촉 없이 전쟁을 종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한 전쟁은 어쩌면 모든 군인의 로망일지 모르지만, 한반도에서의 미래전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는 중동과 같은 사막지역이 아니어서 공군력의 역할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적은 고정표적이 아닌 공격하는 이동표적이며, 아군과의 전선 종심이 짧아 충분히 타격하기엔 부족하다. 다시 말하면 공군의 결정적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제한적이다. 전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한 안정화 작전처럼 해·공군의 역할이 미미할 뿐 아니라 주 교전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미래의 한국전장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한국 지상군은 전체 전력지수에서도 열세이면서 전선의 간격을 허용할 수 없어서 균등 배치할 수밖에 없다. 우선 방어부터 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적이 집중하는 지역에서는 전력비율의 큰 열세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한국 지상군은 적 전력의 집결을 조기에 파악하고 이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 예비대나 유휴전력을 타지역으로 신속히 기동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 지상전에서는 병력의 절대적인 수도 중요한 요소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방개혁이 지향하는 ‘육군 38만여명’은 전력의 대폭 증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대양해군’ ‘항공 우주군’의 구호 속에 한국 육군은 여전히 어려움을 안고 있다. 지상 작전의 실패는 공군과 해군력으로 만회할 수 없으며, 수도권 방어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한국군에 중요한 화두는 전력지수의 비교가 아니라 전략 및 전력 집중의 능력이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대양과 우주는 매력 있지만,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내실을 탄탄히 다진 후에 고려할 일이다.
  • “질병치료·연구에 써주세요”

    “질병치료·연구에 써주세요”

    평생 후학 양성에 힘써온 전직 교장이 질병 치료와 의학 연구를 위해 써 달라며 전 재산을 서울대병원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3일 별세한 이순길(90·여)씨가 자신의 전 재산인 약 5억원을 병원에 기부했다고 26일 밝혔다. 192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와 함께 월남했다. 47년간 교육자로 헌신한 이씨는 1988년 서울 삼광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에서 물러났다. 생전에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관리를 받은 고인은 2005년에도 5000만원을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 2008년에는 자신이 사망한 뒤 남은 재산을 모두 병원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23일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재산을 모두 병원 측에 기부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결혼도 안 하고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사셨던 고인이 건강관리를 도와준 병원에 각별한 고마움을 느껴 기부를 결심한 것”이라면서 “고인의 유지에 따라 기부금을 질병 치료와 의학 연구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박원순시장 “한강 다리 역사 체험의 장으로”

    박원순시장 “한강 다리 역사 체험의 장으로”

    21일 해빙기 안전점검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강대교에서 “한국전쟁 당시 튄 파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인 한강 다리를 차량만 다니게 할 게 아니라 시드니의 하버브리지처럼 시민이 직접 걸어다니며 만져보고 재미와 관심을 느낄 수 있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교통사고가 집중된 내부순환로 홍제천고가교 연희램프에 대해 시 관계자들은 가로등과 진입램프를 설치하고 차선 바깥에 요철처리를 하는 등 시설보완공사를 다음달 30일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박 시장에게 보고했다. 박 시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도 있지만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암공동구를 방문한 박 시장은 초기투자비에도 불구하고 일단 설치하고 나면 상당한 효용성을 갖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예산부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공동구 같은 시설을 많이 설치하는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도시가 확장되면서 사전에 공동구 같은 시설을 계획하고 설치하지 못한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덧붙였다. 공동구는 도시 미관과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지하에 전기나 통신, 가스, 수도 등을 공동 수용할 수 있는 일종의 터널을 만들어 통합 관리하는 구조물을 말한다. 공동구는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지만 한번 설치하고 나면 시하 매설물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땅을 파고 공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을 덜수 있다. 한편 이날 안전점검 도중 강용석 의원이 제기하는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은 박 시장은 떳떳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박 시장은 병무청이 보유한 MRI(자기공명영상진단)도 아들의 것이 아닐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병무청이 다 확인을 했는데 그럴 리 있겠느냐.”고 일축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검찰이 위기다. 국가의 중추적 법집행 기관으로서 신뢰의 위기는 국가적 문제다. 공정한 법집행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국민적 신뢰 회복의 지름길이다. 위기의 검찰에는 개혁이 절대적이다. 검찰 개혁 하면 효당 엄상섭이 생각난다. 효당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법조계, 특히 검찰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대쪽 검사’ 김익진과 함께 한국 검찰의 두 기둥으로 꼽힌다. 효당은 검사와 정치인을 지내면서 오늘의 형법과 형사소송법, 검찰의 뼈대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효당은 1907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32세 때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일제강점기에 검사를 지냈다. 광복을 맞아 일제시대에 검사를 지낸 다른 7명과 함께 사직했다. “검사생활, 이것이야말로 왜정 압력하에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시던 애국지사들에 대하여는 지금도 면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정하에서 검사를 지냈다는 것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굴절했고 왜제 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오히려 모자랄 것입니다.” 그가 단행본 ‘권력과 자유’에서 밝힌 친일 반성문은 가장 통절한 반성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지조 없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불통’으로 변했다. 재야에 있던 그를 미군정은 검사로 발령냈다. 신생국의 검사로서 법령을 정비하다 1949년 9월 검찰을 떠났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민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한국전쟁의 피란길에서 세 아들을 잃었다. 1960년 5월 3일 효당은 헌법기초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다 뇌내출혈로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당은 대한민국 건국시대에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의 중심에 섰다. 제정 헌법 정신에 맞게 형사재판의 민주화와 형사소송의 정치도구화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효당은 이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현재의 검찰조직 큰 얼개인 검찰청법을 마련했다. 검찰청법을 입안할 때 그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검찰의 ‘독립과 견제’였다. 검사의 신분보장과 법무부 장관의 개별 사건에 관한 지휘권 배제를 주장해 관철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고등검찰청 폐지론이다. 범죄수사에서 기민성을 발휘하고, 수사 및 형사정책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명령계통의 간명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등검찰청 같은 중간단계는 필요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검찰이 법원에 대응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60여년이 흐른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독창적이다. 여기에 그쳤다면 효당은 검사의 관점과 이익을 대변한 인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검찰에 대한 외부의 견제장치 도입을 제안한 점이다. 물론 사법경찰의 검찰전속화가 전제돼 있다. 효당은 검찰의 ‘권력 강대화와 독선의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검찰위원회를 설치, 검찰권을 감시하자고 강조했다. 검찰위원회는 외부인을 포함해 10~11명으로 구성된다. 그의 의견이 다소 설익은 느낌이지만 외부 통제를 과감히 도입해 검찰의 강대화와 독선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이전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시민의 참여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책임성을 강화시키자는 요즘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그의 발상이 아직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검찰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최근 검찰은 법원과 경찰의 협공을 받는 형국이다. 스스로 개혁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법률가인 검사는 수사전문가도 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과 전략을 갖고 수사를 전문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거악과 맞서는 ‘고독한 전사’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참다운 공익의 대표자로 거듭나야 한다. 효당이 제안했던 검찰위원회의 참뜻이다. 검찰은 효당처럼 과거 잘못을 절절하게 반성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는 개혁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실기하면 중수부가 아니라 대검찰청 자체가 존폐 문제에 내몰릴 수 있다. chuli@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코이카(KOICA)의 꿈(MBC 일요일 오전 9시 25분) 60년 우정의 땅 에티오피아를 찾아간다. 60년 전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우정의 나라 에티오피아에서의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와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빈민촌 한국 마을, 그곳에서 펼쳐지는 풋살 경기장 건축 프로젝트를 공개한다. ●2012 겨울방학특집 과학콘서트(KBS1 토요일 오후 4시 10분)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똑똑한 로봇들이 총출동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하는 얼굴로봇 ‘메로’와 ‘페로’,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휴머노이드 로봇 ‘키보’,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정찰 및 위험물 제거에 투입됐던 위험 작업용 로봇 ‘롭헤즈’까지. 한국의 지능 로봇들을 만나 본다. ●오작교 형제들(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태필은 창식에게 태희와 자은이 꼭 헤어져야 하는 거냐며 두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이에 창식은 그런 태필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호통친다. 한편 자은의 졸업 사진을 미리 찍기 위해 만난 태희와 자은. 수트를 차려입고 나간 태희는 자은에게 넥타이를 매달라고 부탁한다. ●출발! 모닝와이드(SBS 토요일 오전 6시) 개그맨 노우진은 파란색 트레이닝복에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달인의 곁을 지키던 ‘달인의 수제자’다. 포기하고 싶은 시간도 있었다. 긴 무명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건 바로 달인 김병만이라는데…. 16년간 서로의 힘이 돼 주며 개그맨의 꿈을 키워 왔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아모레미오(KBS2 일요일 밤 11시 25분) 해창은 민우를 만나러 간 수영을 뒤쫓아 간다. 민우는 자신에게 미래의 존재를 숨긴 해창과 수영에게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지만 수영은 차갑게 과거의 진실을 얘기한다. 한편 1988년 출소한 해창은 어렵게 수영을 찾아간다. 그리고 혼자 어린 미래를 키우고 있는 수영의 모습에 눈물을 쏟아낸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버려진 땅’, ‘시체의 숲’이라 불리는 인도 비하르의 둥게스와리. 누구도 접촉하기를 꺼리는 불가촉천민. 수천년 전부터 계속된 계급적 차별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지고 사는 이들에게 대변화가 시작된다. 한국의 승려 ‘법륜’과 불가촉천민의 만남을 통해 이들이 벌이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메콩강 4900㎞ 물길을 가다(OBS 토·일요일 밤 9시 15분) 중국을 중심으로 미얀마, 라오스 등 메콩강 유역 6개국의 자연 경관을 소개한다. 7부에서는 메콩강 유역 어민들의 삶의 모습과 곤경에 처해 있는 어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일요일 밤 8부에서는 앙코르와트의 위대한 건축 등을 살펴본다.
  • 국수 면발 속 숨어있는 역사와 문화

    국수 면발 속 숨어있는 역사와 문화

    영원한 맞수인 함흥과 평양냉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은 부산 밀면과 일본 모리오카 냉면, 양반 음식에서 대표 서민 음식으로 변한 잔치국수까지. 면(麵) 요리에 얽힌 숨은 사연과 장인들, 맛의 지형도를 밝히는 8부작 음식다큐멘터리 ‘제면(製麵)명가’가 28일부터 매주 토요일 밤 10시 푸드 라이프스타일 채널 올’리브에서 방송된다. 채널만 돌리면 발에 차이는 맛집 탐방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맛과 비법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에 얽힌 역사와 문화적 배경까지 버무려 내는 음식문화 소개서를 만들겠다는 게 제작진의 포부다. 자칭 미식가인 배우 김성수와 외식업계 경향을 주도해 온 ‘미다스의 손’ 노희영 CJ그룹 브랜드전략 담당 고문, 윤정진 셰프가 전국을 돌며 면 요리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김성수는 누구나 공감할 한국의 맛을 전하고, 윤정진 셰프는 여행지에서 얻은 요리 비법에 본인만의 비법을 더해 새로운 요리법을 소개한다. 노희영 고문은 우리나라 국수의 고유한 특징, 외국의 면 요리와 다른 점 등을 짚어낸다. 28일 방송되는 첫회에서는 귀한 국수인 잔치국수가 서민 음식이 되기까지 국수 한 그릇에 담긴 변천사를 밝힌다. 지금은 잔치국수가 싼 재료에 만들기도 간편하고 푸짐해서 서민음식으로 통하지만, 고려시대만 해도 밀가루가 귀한 탓에 혼례 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었다. 안동의 의성김씨 마을인 김방걸 종가에서는 아직도 옛 국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닭육수에 햇밀을 빻아 만든 유두절(음력 6월 15일) 절기 음식인 유두국수가 그것. 국수가 푸짐한 서민 음식이 된 배경에는 한국전쟁이 있다. 미국에서 값싼 밀가루가 구호 물자로 들어오면서 부산 구포에는 대규모 제면소가 들어서면서 국수는 친서민 음식으로 변모했다. 신종수 올’리브 팀장은 “한 지역을 대표하는 국수에는 그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 지리적 환경,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서 “역사와 문화를 이어가는 우리의 전통 국수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동화사 금괴 발굴허가 보류 탈북자 김씨 “대응방안 마련”

    대구 동화사에 금괴가 묻혀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발굴허가 작업이 보류됐다. 문화재위원회는 19일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건축분과위원회를 열고 탈북자 김모(41)씨가 신청한 동화사 금괴 현상변경(발굴)에 대해 심의를 벌여 부결시켰다. 위원회는 “제시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굴착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신력 있는 탐사기관에서 금괴가 매장됐다는 자료를 제시할 경우 재심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동화사 경내는 문화재보호구역인 데다 발굴 대상인 곳은 보물 1563호인 대웅전 기단 주변이어서 문화재청의 허가가 없으면 현상변경을 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 탈북자 김씨는 “부결돼 유감이다. 문화재 보호에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검토한 뒤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탈북한 김씨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 출신 양아버지(83)가 ‘한국전쟁 당시 북으로 피란할 때 재산을 처분해 금괴 40㎏(시가 24억원 상당)을 동화사 대웅전 뒤뜰에 묻었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변호사·탐지 전문가와 함께 탐지 작업을 벌여 금속 반응을 확인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뉴차이나 시진핑 시대 사람들] (4)조직의 귀재 리위안차오

    [뉴차이나 시진핑 시대 사람들] (4)조직의 귀재 리위안차오

    현재 공산당 서열 18위의 정치국 위원인 리위안차오(李源潮·62) 당 중앙조직부장이 올가을 제18차 전대에서 서열 6위의 국가부주석이나 선전을 관장하는 서열 5위의 상무위원에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선전과 조직 업무에 달통했기 때문이다. 리 부장은 중국 권력의 3대 파벌인 ‘퇀파이’(團派), ‘태자당’, ‘상하이방’에 모두 포함된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에서 7년간 중책을 역임하면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신뢰를 쌓았다. 상하이에서 성장했고, 상하이에서 출세한 상하이방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리간청(李干成) 전 상하이시 부시장이다. 아버지 역시 공청단 허난성 서기를 지냈다. 출세에 도움이 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문화대혁명 때 다른 ‘지식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집단농장으로 상산하향(上山下鄕), 4년간 중노동을 했다. 공농병 청강생으로 상하이사범대 수학과에 들어가 1년반 과정으로 속성 졸업한 뒤에는 수학교사로 근무했다. ●공청단서 중책… 후 주석 신뢰 얻어 대학입시 재개와 함께 명문 상하이 푸단(復旦)대 수학과에 다시 입학하면서 비로소 출세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아버지는 문혁 종료와 함께 완전히 복권돼 상하이시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을 맡고 있었다. ●‘주특기’ 선전 관장 상무위원 가능성 대학 졸업 후 학교와 상하이시 공청단을 관할하던 리 부장은 얼마 안 있어 공청단 중앙으로 추천돼 중앙서기처 서기에 보임됐다. 이때 후 주석은 상무서기를 맡고 있었고, 리 부장보다 5살 아래인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는 후보서기에 임명됐다. ‘공청단 쐉리(雙李·두 명의 리 서기)’는 후 주석의 영도 아래 공청단 중앙에서의 생활을 시작해 친밀한 동지관계를 이어갔다. 승승장구하던 리 부장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공청단 중앙에서 잘나가던 그는 1990년 말 공산당 중앙대외선전소조 국장으로 사실상 좌천됐고, 3년 후에야 국무원 신문판공실 부주임으로 차관급 위치에 올랐다. 한참 후배인 리 부총리는 이미 장관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꿰찬 뒤였다. 10년 가까이 당과 정부에서 선전 업무를 관장하던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 간청 끝에 지방 당무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방 근무는 중국 지도자들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고향인 장쑤성에서 부서기를 시작으로 당서기까지 7년간 실무를 가다듬었다. 일각에선 이때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 후 주석의 후광으로 2007년 제17차 전대 때 정치국 위원에 올랐다는 악평도 나온다. ●경제학 석사·법학박사 취득 베이징대 경제학과에서 석사 학위, 중앙당교에서 과학사회주의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푸단대 재학시절 기숙사 불이 꺼지는 밤 11시 이후 교정 가로등 밑에서 독학으로 익힌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고, 이례적으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수 경력도 갖고 있다. 출생 당시 중국 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직후여서 아버지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을 반대하고 북한을 지원)의 ‘위안차오’(援朝)로 이름을 지었다가 같은 발음의 현재 이름으로 개명했다는 설도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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