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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므로 통신] “현수막, 북한 말고 북측으로 고쳐라” 한때 소동

    북한의 국가 명칭을 두고 한때 소동이 일었다. 플래카드에 적힌 ‘북한’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훈련을 위해 인천환경관리공단 승기사업소 축구장을 찾은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남자 축구대표팀은 바로 훈련을 시작하지 않고 입구에 내걸린 “환영! 북한 선수단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라고 쓴 플래카드를 수정하거나 제거해 달라고 요구했다. ‘북한’을 ‘북측’으로 고치거나 아니면 아예 치워 달라는 것이었다. 북한 대표팀 관계자는 “좋은 마음으로 왔는데…”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북한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북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국제대회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가 북한이라는 말을 쓰면 “북한이라는 나라는 없다”며 답변을 거부하기 일쑤다. 훈련장 측은 물리적으로 급하게 문구를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플래카드를 철거했다. 훈련장 관계자는 “북한의 인천아시안게임 출전이 확정된 후 환영의 뜻으로 특별히 마련한 현수막이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북측이 ‘북한’이라는 말을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의 북쪽 미수복 지역이라는 의미로 보고 반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한반도를 일제강점기 전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시절로 되돌려야 한다는 뜻에서 ‘조선’을 선호한다는 관측도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시론] 이순신, 김영옥, 그리고 리더십/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소수민족학 교수

    [시론] 이순신, 김영옥, 그리고 리더십/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소수민족학 교수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의 모든 기록들을 경신하는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영웅이 없고 강한 리더십을 갈구하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명량에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순신의 리더십은 최전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지휘하는 희생정신과 힘없고 가난한 백성을 보살피는 인간애다. 한국 사회의 현주소는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으며 양극화가 심해진 분열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한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영화 속 이순신의 리더십을 보면서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인 김영옥 장군을 떠올리게 됐다. 재미 한국계 2세인 김영옥은 일제의 조선 침탈 시기에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전념했고 김영옥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 김영옥은 미군에 입대해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로 구성된 100대대의 지휘관으로서 유럽 전선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 영웅으로 퇴역한다. 퇴역 후 김영옥은 적지 않은 연금과 사업가로 성공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미군에 자원 입대했다. 미국에서 편히 살 수 있었음에도 조국을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해 싸우다가 그는 장애인이 됐다. 이런 그의 헌신과 애국심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헌신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2011년 미국의 유명 포털 사이트인 msn.com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영웅 16명을 선정했을 때 조지 워싱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과 함께 김영옥이 포함됐을 만큼 그의 리더십은 미국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리더십은 일본계 미국인들마저 추앙하고 칭송할 정도다. 김영옥은 자유, 평등,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물론, 다른 인종을 위해 피를 흘렸다. 그는 퇴역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을 바쳤다. 결국 이순신과 김영옥은 탁월한 지략과 용기 그리고 부하들을 아끼며 솔선수범함으로써 불패의 신화를 남겼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애가 충만한 리더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현재 한국의 정치인과 지도층이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의 현주소는 암담하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병역면제, 전관예우, 논문표절 등의 의혹이 단골로 제기되면서 지도층의 도덕성 부재와 부패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당시의 관행”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리더로서의 올바른 모습을 전혀 보여주고 못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미국 정치의 유명 가문인 케네디가(家)는 네 명의 아들이 모두 미군에 입대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다. 특히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형인 조 케네디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영국의 윌리엄과 해리 왕자도 공군에 자원입대했으며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최전방에 자원해 파병되기도 했다. 현시대 한국 지도층이 보여주는 암울한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이순신과 김영옥 등 불세출의 영웅들이 보여주고 있는 헌신적 리더십은 침체되고 분열된 한국 사회에 희망과 용기를 던져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기주의와 책임회피 그리고 병역회피가 만연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한국 사회에 이순신과 김영옥 같은 리더들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본래 DNA가 결코 이기적이지 않고 희망적이다는 사례일 수 있다. 이 같은 긍정적 DNA를 본받고 양성해서 앞으로 더 많은 이순신, 더 많은 김영옥을 배출하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의무라 하겠다.
  • “중견 5개국 경제분야 등 단합된 외교력 보일 것”

    “중견 5개국 경제분야 등 단합된 외교력 보일 것”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 주도로 중견 5개국 대사 모임이 발족했다. 미국이 포함되지 않은 외교 협의체가 워싱턴에서 만들어진 것은 이례적으로, 중견국들의 단합된 외교력이 얼마나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8일(현지시간)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동아시아연구소와 연세대가 워싱턴 SAIS 회의실에서 공동주최한 ‘한·터키 관계 및 중견국 외교’ 콘퍼런스에 참석한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는 오찬 연설 전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 등 4개국의 워싱턴 주재 대사들과 최근 준비 모임을 갖고 중견 5개국 대사 모임을 발족했다”며 “한국 주도로 만든 만큼 한국 측이 간사를 맡아 1년간 활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서 발족한 중견 5개국 대사 모임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5개국 외교장관들이 출범한 ‘믹타’(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 등 중견 5개국) 협의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후속 조치로 이뤄졌다. 안 대사는 “믹타 의장국은 지난해 멕시코에 이어 올해 한국이 맡게 됐다”며 “이달 하순 유엔총회에서 5개국 외교장관들이 다시 만나 믹타 협의체의 역할과 리더십을 담은 ‘비전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게이 툰세르 주미 터키대사관 차석대표는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며 개인적인 인연을 소개한 뒤 “터키와 한국은 다양한 협력을 강화해 왔으며, 중견 5개국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경제 협력은 물론 시리아·이라크·우크라이나 등 터키 인근 지역이 겪고 있는 국제적 도전에 더 많은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가장 빨리 늙고 교육비에 찌들고… 우울한 한국

    가장 빨리 늙고 교육비에 찌들고… 우울한 한국

    ■65세 이상 고령인구 증가 속도 OECD 중 최고 출산율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늙어 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산업연구원이 OECD 34개 회원국의 인구구조를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중은 12.2%로 30위에 머물렀지만 증가 속도는 1위를 기록했다. 각국의 고령인구 비중을 1970년을 1로 설정하고 2013년까지 몇 배로 증가했는지 비교했을 때 한국이 4.0배로 가장 높았다. OECD 평균 1.6배와 비교해 봤을 때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일본이 3.6배로 2위를 차지했고 핀란드(2.1배), 포르투갈·이탈리아(2.0배), 체코·캐나다·스페인(1.9배)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나이순으로 볼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은 2010년 37.9세로 1970년 19.0세보다 18.9세 늘어나 고령인구 비중 상위 10개국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다음은 일본으로 같은 기간 28.9세에서 44.7세로 15.8세 증가했다. 한국의 유소년 인구 비중(2013년 기준 0~14세)은 14.7%로 26위를 차지했다. 이는 1위인 멕시코(28.4%)의 절반 수준이자 OECD 평균 17.4%를 밑도는 것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73.1%로 OECD 평균 66.6%를 웃돌며 1위에 올랐다. 이 결과는 1950년 한국전쟁과 1970년 베트남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생산가능인구에 여전히 편입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학부모 부담 공교육비 비율 OECD 평균의 3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공교육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OECD는 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4년 OECD 교육지표’를 발표했다. 이번 결과는 OECD가 2012년 기준 세계 주요 44개국(회원국 34개국 포함)의 다양한 교육지표(재정통계는 2011년 기준)를 크게 4개 항목으로 나눠 비교 분석해 나왔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담 공교육비 비율은 4.9%로 OECD 평균(5.3%)보다 0.4% 포인트 낮고, 민간 부담 공교육비 비율은 2.8%로 OECD 평균(0.9%)의 3배가 넘었다. 민간 부담 공교육비 비율은 2001년부터 14년 연속 1위다. 공교육비 총액 중 정부 부담 비율은 62.8%로 OECD 평균 83.9%에 한참 못 미쳤다. 반면 유치원, 초·중·고교, 대학교 교육비의 민간 부담 비율은 37.2%로 OECD 평균의 2배를 상회했다. 공교육비의 민간 부담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고, 가계 부담이 크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인 사교육비까지 포함시키면 다른 나라와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높은 교육열을 반영하듯 25∼34세 청년층의 고등학교 이수율(98%)과 전문대학 이상 고등교육 이수율(66%)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특히 고교 이수율은 2001년부터 줄곧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연령대의 OECD 평균 고교 이수율은 82%, 고등교육 이수율은 39%에 그쳤다. 남녀 고용률 격차도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다. 우리나라 남성의 학력별 고용률은 고졸 84%, 전문대졸 91%, 대학교·대학원졸 90%였다. OECD 평균은 각각 80%, 86%, 89%였다. 특히 여성은 고졸 57%, 전문대졸 60%, 대학교·대학원졸이 62%에 그쳐 OECD 평균(각각 65%, 76%, 80%)과 비교하면 아직까지 고용 현장에서 남녀차별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줬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교육비의 정부부담 비율은 OECD가 2005년 대비 0.4% 포인트 감소했지만, 한국은 3.9% 포인트 증가했다”면서 “2011년 시행된 유아 무상보육(5세 누리과정)과 국가장학금이 반영돼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이 크게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현대사의 ‘진행형 아픔’ 알려… 관심 낮아 걱정”

    “현대사의 ‘진행형 아픔’ 알려… 관심 낮아 걱정”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인 현대사의 아픔을 알리려 했는데, 의외로 관심이 낮아 걱정이에요.” 개인과 공동체에 얽힌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뤄온 설치미술 작가 임민욱(46)씨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대형 퍼포먼스를 벌여 주목받고 있다. 작품 제목은 ‘내비게이션 아이디’. 지난 4일 6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광주비엔날레의 오프닝 행사에서 경북 경산과 경남 진주에서 60여년 전 목숨을 잃은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담은 컨테이너를 동원해 화제가 됐던 퍼포먼스다. 당시 놓인 컨테이너 2개는 광주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장 앞 광장에서 계속 전시되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은 지금도 억압받는 공동체로 남아 있어요. 진실과화해위원회가 발굴하다가 활동 종료로 방치되거나 유족이 발굴한 유해들을 모았습니다.” 보도연맹 관련자와 인민군 부역자로 지목받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유골이다. 작가는 “세월호 사건 못지 않게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하기 위해 앰뷸런스, 소방헬기를 등장시켰다”면서 “권력에 희생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치유하자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작가는 제6회 광주비엔날레상(2006년), 제7회 에르메스미술상(2007년), 제1회 미디어아트 코리아상(2010년) 등을 수상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무인기의 시대가 오고 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무인기의 시대가 오고 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즈음 TV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공중에서 보여주는 지상의 아름다운 모습이 부쩍 많이 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모두 다 방송용 무인기 덕택이다. 지상에서는 접근이 어려워 진귀한 모습을 보기 어려운 장면도 방송 프로듀서도 손쉽게 조작해 방송용무인기를 공중으로 띄워 카메라로 촬영하다 보니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과거보다 훨씬 뛰어난 지구의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됐다. 마치 거미처럼 발이 많이 달린 멀티콥터(multi-copter)에 카메라가 달려 있기 때문에 공중으로 날려 리모컨으로 지상의 구석구석을 촬영하니 화면의 품격이 아주 높다. 방송용 무인기 시장은 중국이 70% 넘게 잡고 있어 한국이 따라붙으려 해도 가격이 싸고 성능이 비교적 좋은 중국 시장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중국제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방송분야에서 무인기의 역할이 이미 대중화된 지 오래라는 말이다. 무인기의 역할은 방송분야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의 탐지나 해난사고로 실종선이나 실종자의 수색에도 활용도가 매우 커 무인기는 항공산업의 블루 오션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군사적으로도 무인기는 이미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과의 전쟁을 치를 때도 무인 정찰 폭격기 프레데터로 조종사의 인명 희생 없이 목표물을 폭파시키고 한국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들여올 정도로 무인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성능 좋은 카메라, 레이더 시스템 그리고 인공위성의 발달로 송수신이 가능해졌고 전자산업의 덕분이라 하겠다. 미국은 무인기 시대를 예고하는 정점에 항공모함 이착륙 무인 폭격기 X47B의 실전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2012년 11월 26일 미국은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기념해 건조한 트루먼 핵항모에 역사상 처음으로 스텔스무인정찰폭격기 X47을 탑재해 시험 비행에 들어갔는데, 비행체가 갑판 위에 내려진 순간 5000명에 달하는 승무원들이 무인폭격기 항공모함 이착륙 시험비행을 트루먼호가 맡게 되었다고 환호하는 모습이 외신을 타고 목도됐다. 통상적으로 항공모함에 탑재되는 F18 전투기보다 큰 X47B는 2000파운드급 유도탄 2발을 장착하고 항속거리는 3000킬로에 이를 정도로 무인기가 발달하고 있다. 한국도 송골매 무인정찰기를 비롯해 차기 무인기를 한국우주항공과 대한항공, 그리고 항공우주연구원이 여러 종류의 무인기를 개발해 배치할 계획으로 무인기는 국가안보측면에서도 대단히 유용하다. 우선 체공시간이 길어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감시 정찰 시간이 안정적으로 길어져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면밀히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다. 한국도 구입하는 글로벌 호크 무인정찰기도 체공시간이 무려 하루 반나절이나 되니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정찰임무에 적격이라 고가 장비임에도 불구하고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항공산업에서 유인기는 기술적으로 재정적 측면에서 선진국을 따라가기 어렵지만 무인기는 선도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크게 열려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이 착목할 수 있는 가능성 가운데 가장 큰 무인기 시장의 선도기술은 틸트로터(Tilt-Roter)기술인데 세계 두 번째 개발이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틸트로터 기술은 일본의 미군기지에 미국이 배치하기 시작했고 일본도 도입하기로 한 오스프레이 수송기를 보면 이해가 쉽다. 헬리콥터와 수송기를 한데 묶어 놓은 듯한 수직이착륙기인데 기존의 헬기보다 수송 중량은 3배 이고 속도는 시속 600㎞로 속도가 느린 헬기의 문제를 해결했다. 틸트로터 기술을 군용과 민간용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면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유리하고 민간용으로 수출할 길도 열려 있어 개발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인다. 과거를 뒤돌아 보면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의 전환기에 선도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 휴대전화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조선과 자동차 산업도 선도적 지혜와 결단이 있어 먹거리 산업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선진국이 되는 길목에 있는 항공산업 육성이라는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유인기뿐만 아니라 무인기도 역점을 둬야 미래의 성장동력산업으로 잘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 언론재단-관훈클럽 해외언론인 연수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김병호)과 관훈클럽(총무 이용식)은 3일부터 다음달 말까지 2개월 동안 해외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진행한다고 1일 밝혔다. 한국전쟁 참전국·지원국과 개발도상국 등 10개국 기자들이 참가한다. 프로그램은 한국의 언론·정치·경제 등에 대한 강의, 청와대 등 주요 기관 방문 등으로 구성됐다.
  • [지금&여기] 상처와 ‘집단기억’/오상도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상처와 ‘집단기억’/오상도 문화부 기자

    누군가 이야기했다. 참혹한 전쟁을 갈무리한 ‘종전’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아도 전쟁 발발을 기념하는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고. 그런데 우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전쟁 발발 64주년 기념식을 치렀다. 매운 김장김치에 길들여진 독한 민족이라 그럴까. 아니면 종전보다 휴전이란 불완전함을 택한 우리의 특수성 탓일까. 개인적으론 이도 저도 아니라고 본다. 멍에에 쓸려 생긴 아물지 않는 상처 탓이 아닌가 싶다. 같은 겨레끼리 싸우고 죽였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전쟁이 진한 상처, 아니 흉터를 남겼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우리에게 역사적 상처는 비단 한국전쟁뿐만이 아니다. 나치 독일과 달리 이웃 일본은 여태껏 침략과 지배,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남긴 상흔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자발적 상처 치유 활동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군 위안부 문제다. 일본 정부는 그렇다 치고 왜 일본인들은 상식적인 생각의 틀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최근 한국을 찾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금 일본의 청·장년층은 일본이 단지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전쟁이 남긴 상처에 대해선 알고 싶어 하지도, 알려 들지도 않는다”고 고백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브바슈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집단기억’에서 찾으려 했다. 한 민족이나 한 사회집단이 공통으로 겪은 역사적 경험은 그것을 직접 체험한 개개인의 생애를 넘어 집단적으로 보존되고 기억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정체성 확립 과정은 배타성 형성과 동일시된다고 한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집단학살을 경험한 유대인은 이 같은 집단기억을 구심점으로 강력한 내부적 통합을 이뤘고,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한 인류 차원의 역사적 집단기억으로 확장했다. 반면 일본 제국주의는 한민족을 우직한 황국신민으로 개조하는 데 바빴으나, 정작 패전 후에는 과거의 집단기억에 대한 스스로의 치유 시간을 갖는 데 실패했다. 미국과 옛 소련 간 냉전체제를 교묘히 이용해 ‘영혼 없는 경제적 동물’로 몸집을 불리는 데만 전력한 탓이다. 최근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죄지은 형제들을 남김없이 용서하라”고 진언했다. 잠재된 역사 미화의 본능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본의 대다수 국민들을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그들의 집단기억을 되돌리는 해법은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중국 군사안보 전문가 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중국 군사안보 전문가 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너는 너대로 싸우고, 나는 나대로 싸운다.’ 중국의 싸움 방식이다. 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여전히 잘 모르는 게 중국이다. 우선 면적으로 치면 세계 4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인구는 세계 1위,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2위, 1인당 국민소득은 87위이다. 그렇다면 군사력은? 안보전략은? 궁금해지는 게 점점 많아진다. 지리적으로 우리의 이웃이면서도 한국전쟁 때는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기도 했다. 중국은 경제력으로나 군사력으로나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 이제는 중국을 제대로 그리고 분명하게 알아야 할 때라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자 일본은 ‘분쟁도서 탈환’을 명목으로 자위대에 공격적 기능을 강화했다. 베트남, 일본, 필리핀 등 해양 영유권 분쟁의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은 국력이 커짐에 따라 주변국들에 주권과 영토 보전은 물론 국익을 증대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최근 국립타이완대 정치학과 중국대륙 및 양안관계 교육연구센터는 황병무(75) 국방대 명예교수의 ‘중국안보해석서’를 발간했다. 신중국군사론(1992년, 세종문화상 수상)의 내용과 각종 영문 논문, 신문 기고문 등을 분석하고 2회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책을 펴냈다. 국내학자 가운데 이런 식으로 국제정치 서적을 발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중국의 안보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오고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방대 교수와 안보문제연구소장, 한국 국제정치학회 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장, 대통령 국방발전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황 교수를 만났다. 먼저 국립타이완대에서 최근 발간한 책인 ‘중국안보해석서’의 내용을 물었다. “중국 특색의 군사학 학문체계의 정립을 위한 시도 외에 중국안보정책 결정의 몇 가지 영향 요소와 당군 관계, 내우외환의 연동적 위협관을 다룬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당에 의한 군의 통제로 정치안정을 유지하는 것과 또 정치 리더십 분열 시 당내에서 누가 군을 통제하느냐는 여전히 문제라는 내용 등입니다.” →중국 안보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엇인가요. -“미국이 민주와 자유를 추구하는 반면 중국은 평등과 공정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국가이익을 위해 동중국해, 남중국해, 아프리카 등 전 세계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보정책의 핵심은 이러한 이익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에서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중국은 아시아문제는 아시아가 해결하기를 원합니다. 중국은 군사력의 기본은 경제이고 안보의 토대 또한 경제라는 인식하에 관련 정책을 펴나가고 있지요. 이 같은 바탕에서 요즘 들어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입장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그동안 베트남과 일본, 필리핀 등과 해양분쟁을 겪어 왔습니다. 어떤 식으로 그런 분쟁을 해결하려고 하는지요. -“냉전기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인도, 구소련, 베트남 등과 무력분쟁에 들어갈 때 외교 경로를 통해 평화적 해결을 시도한 뒤 군사행동을 취했습니다. 탈냉전기 중국은 강압외교의 목표와 수단이 유연해지고 있습니다. 2010년 9월 센카쿠 부근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의 충돌로 중국 어민이 억류됐을 때 외교적 해결이 어렵게 되자 중국이 희토류 광물 수출을 중단하는 무역제재를 통해 중국 어민을 석방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지요.” 한국전쟁 이후 중국은 주로 국지전 형식을 전개해 왔으며 영토분쟁이 생기면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 재빨리 응징은 하겠지만 정치적으로 영토 자체를 얻는 것은 자제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맹주를 위해 계속 노력은 하되 영토 자체를 점령하게 되면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중 친미 체제로 돌아서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중국 중심의 안보협의체를 만드는 데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남중국해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 부근에서 필리핀 어민의 어로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 어업지도선이 필리핀 해경과 대치할 때 필리핀은 미국과 해상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중국은 함정과 항공기를 동원해 무력시위를 감행했고 필리핀이 제안한 국제해양법 중재안을 거부했지요. 또 중국은 주중 필리핀 대사를 불러 필리핀의 긴장 조성 행위에 대응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동시에 중국인의 필리핀 여행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필리핀 수입 과일류에 대한 검역을 대폭 강화하는 등 경제제재를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에 대한 군사행동은 하지 않았지요. 베트남과 해양분쟁이 생길 때도 해·공군력을 동원해 베트남을 압박할 수 있었지만 사태를 진정시키며 외교경로에 의한 해결을 모색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어떤 정치철학을 갖고 있는지요. -“지난번 시 주석이 방한했을 때 수행했던 150명의 사절단 대부분이 경제 관련 인사들입니다. 그만큼 경제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경제는 정치와 안보를 뒷받침하는 튼튼한 토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선경후정(先經後政), 경제가 항상 먼저이고 정치는 그 다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요.”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요. -“중국의 해·공군은 일본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지지만 양적으로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의 동향을 탐지하는 정보능력이라든가 잠수함과 비행기간의 정보지휘 연동체제 등은 중국이 약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국전쟁 이후 전면전을 치른 경험이 없습니다. 빨리 선제공격하고 빠지는 국지전 전법을 구사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너는 너대로 싸우고 나는 나대로 싸운다’는 방식입니다.” →가끔 훈련 중인 중국 인민해방군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현재 중국 군부의 위상은 어떠하며 정치에 어느 정도 관여하는지요. -“인민해방군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자긍심이 크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당의 군대로 전문화됐습니다. 중국 상무위원 7명 중 해방군 출신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인민해방군은 일종의 압력단체가 됐습니다. 후생이나 복지예산이 줄어들면 다시 올려 달라고 압력을 넣기도 합니다. 요즘 젊은 장교들은 다시 국가의 군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철저하게 당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조직으로 굳어졌지요.” →우리나라는 미국과 연합훈련을 통해 한·미 동맹을 과시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동맹관계인 북한과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가끔 합동훈련을 하는데 북한과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과 굳이 훈련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또 북한이 군사적으로 중국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도 않습니다. 북한 또한 핵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중국과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렇다면 북한에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사태의 정도에 따라 개입 여부를 결정하겠지요. 또한 미국과 한국이 서둘러 개입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모색할 것입니다. 중국 정치인이나 중국 인민들의 핏속에는 침략적인 유전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군사력을 앞세워 국익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토적으로 침략을 받을 경우 응징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지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황 교수에게 군사안보 전문가가 된 까닭을 물었다. “글쎄요. 제가 6월 25일생인데 그 6·25라는 숫자가 운명적으로 저를 따라다녔다고 할까요(웃음). 또 제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군대에 가려고 할 때 육사에서 교관요원을 처음으로 뽑았어요. 1966년부터 3년간 근무하면서 ‘게릴라’ 등 육사 부교재를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안보전문가의 길로 가게 됐지요.” 선임기자 km@seoul.co.kr ■황병무는 1939년 6월 25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를 나왔으며 서울대 외교학과,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육군사관학교에서 정치학 교관을 지냈다. 이후 국방대 교수, 안보문제연구소 소장, 한국 국제정치학회 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장, 대통령 국방발전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방대 명예교수와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중국 군사론’, ‘전쟁과 평화의 이해’, ‘한국 안보의 영역, 쟁점, 정책’, ‘국방개혁과 안보외교’, ‘국방정책의 이론과 실제’(공저) 등이 있다. 세종문화상(국방·안보 분야), 보국훈장 천수장 등을 받았다.
  • [단독 인터뷰] “한국군 국방통제 능력 충분…전작권 전환 재연기 불필요”

    [단독 인터뷰] “한국군 국방통제 능력 충분…전작권 전환 재연기 불필요”

    “한·미 간에 2015년 말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를 다시 미룰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의 군사력이 전작권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고, 북한의 핵 위협은 핵우산 등 핵억지력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국방 당국이 전작권 전환 재연기 협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권위 있는 군사·핵 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가드 군축비확산센터 이사장은 23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전작권 전환 재연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MD)체계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가드 이사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육군 중장 출신 국방 전문가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30여년간 국방부 및 군에서 활동한 뒤 국방대학교 총장, 몬터레이국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한·미가 전작권 전환 재연기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며 오는 10월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그 결과를 발표한다. 일각에선 현행 2015년 12월 전환에서 2020년 이후로 연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군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로서 전작권 전환 재연기 추진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군은 자국의 국방 통제권을 책임지고 맡을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작권 전환 등 통제권에 대한 어떠한 변화가 미국의 한국 방위 지원 약속을 약화시키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도 효율적으로 싸웠다. 한국군의 전문성과 기량에 100% 확신과 신뢰감을 갖고 있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 추진 배경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거론된다.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평가는. -북한은 미사일과 핵 개발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일각에서 북한이 머지않아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4차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 위협을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추진할 이유로 보지 않는다. 북한 핵의 위협 때문이라면 전작권 전환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다. 미국은 한국을 위해 핵우산 등을 통한 핵억지력을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확장된 핵억지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자국 MD의 핵심인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검토하는 등 한국의 자국 MD 편입을 원하는 분위기다. MD 편입과 전작권 전환 관련 빅딜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한 의견은. -한국은 현재 자국 상황에 맞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스스로 선호하는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선택이 전작권 전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거론되는 사드 배치 추진과 전작권 전환이 연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 문제가 주한 미군 주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는데. -미국은 전작권이 전환돼도 한동안 현재 규모 또는 비슷한 수준으로 주한 미군을 유지해야 한다. 미 당국은 국방비 감축 등에도 불구하고 주한 미군 철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는 등 유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주한 미군 주둔이야말로 북한의 적대적 상황 개선 등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기한으로 진행돼야 한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한국전쟁 격전지 금강서 유해 20여구 발견

    전북 익산시 망성면 금강변에서 한국전쟁 당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20여구의 유해가 추가로 발굴됐다. 20일 익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8일 유해의 뼛조각이 발견된 현장에서 갯벌 속에 흩어진 20여구에 달하는 유해를 추가로 발굴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발견 현장 주변에서 유해들이 여러 군데 흩어진 채 발견됐다”며 “육안으로는 20구 정도로 보이는데 정확히 몇 구인지는 정밀 감식을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유해들과 함께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AK소총의 탄두와 탄피도 발견됐다. 또 검정 고무신과 오래된 의복 등 1950년대 것으로 보이는 유류물도 함께 발견됐다. 유해가 발견된 지역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0년 7월 17일 북한군이 강경을 점령하면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는 한국군의 전사 기록은 없었지만 남하하는 북한군을 경찰 700여명이 맞서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이 전투에서는 강경 경찰서장을 비롯해 67명의 경찰관이 전사했다. 실제 이날 유류물 중에서는 경찰 허리띠가 발견되기도 했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이 유해들은 한국전쟁 당시 숨진 경찰과 민간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석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은 “강경을 점령한 북한군이 군산을 점령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치면서 무력 저항을 한 경찰과 민간인을 강둑에서 사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후 발굴은 경찰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유해발굴감식단은 전문성 있는 업무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IBK유엔젤보이스, 월드비전 선명회합창단과 자선공연

    IBK유엔젤보이스, 월드비전 선명회합창단과 자선공연

    클래식계의 아이돌 IBK유엔젤보이스가 월드비전 선명회합창단과 함께 오는 8월 21일 강동구 성내동 오륜교회에서 자선공연을 개최한다. 매 공연마다 큰 호응을 얻으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IBK유엔젤보이스’가 이번에는 대중적인 지지도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IBK유엔젤보이스’는 팝핀, 국악, 재즈, 팝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공연을 펼쳐 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월드비전 선명회 합창단과 함께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NGO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 선교사가 창립했다. 월드비전이 1960년 창단한 월드비전 선명회합창단도 이러한 세계평화를 위해 사랑과 희망 그리고 나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월드비전 합창단은 1978년 영국 BBC 주최 세계합창경연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합창단으로 성장했으며, 소프라노 홍혜경, 카운터테너 이동규 등 세계적인 음악인을 배출한 바 있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합창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영상과 함께하는 공연, 퍼포먼스와 연출력을 겸비한 공연을 만들면서 고통 받는 지구촌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번 음악회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된 행사로, 재단법인 유엔젤보이스가 주최/주관하며 IBK기업은행이 후원한다. 진행을 맡은 개그맨 윤형빈과 KBS의 가애란 아나운서, 그리고 모든 출연진이 재능나눔형태로 공연에 참여해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될 전망이다. 재단법인 유엔젤보이스 박지향 이사장은 “IBK유엔젤보이스는 2010년부터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크고 작은 부름에 응답하며 재능나눔으로 공연해 왔다”며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자선공연을 개최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고난 속에 꽃핀 인간과 호랑이의 우정

    [이 주일의 어린이 책] 고난 속에 꽃핀 인간과 호랑이의 우정

    왕대 휴전선을 넘다, 백두산 으뜸 호랑이 왕대/김탁환 지음/조위라 그림/살림어린이/각 148쪽/각 9500원 ‘인간이 만든 경계선, 동물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이런 물음을 품고 출발한 김탁환 작가의 호랑이 왕대 이야기가 완간됐다. 일본의 말살 정책으로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를 부활시킨 역사 생태 동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2011)가 2권 ‘왕대 휴전선을 넘다’, 3권 ‘백두산 으뜸 호랑이 왕대’로 3년 만에 매듭을 지었다. 창경궁에 동물원이 있던 시절, 보조 사육사와 아기 동물로 만난 재윤과 왕대. 1권에서 동물원의 맹수를 죽이라는 일본의 명령에도 왕대를 살려준 재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왕대와 ‘운명의 만남’을 거듭한다. 2권에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한반도의 허리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38선이 결정되기 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북한군과 남한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금강산이 주 무대다. 왕대가 한솔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기 호랑이들을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한 재윤이 돌보면서 둘은 두 번째로 재회한다. 3권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백두산으로 향한 왕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불곰, 표범 등 다른 맹수들을 물리치고 백두산 으뜸 호랑이로 군림하지만 밀렵꾼들의 총이 그를 위협한다. 한편 사육사의 꿈을 이룬 재윤은 백두산 호랑이를 조사하기 위해 찾은 중국에서 왕대 딸 압록의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다시 왕대와 마주한다. ‘불멸의 이순신’ ‘방각본 살인사건’ 등 이미 어른들의 역사소설로 정평이 난 작가는 사라진 호랑이를 되살려 낡은 얘기가 되고 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비운의 근현대사를 어린이들에게 실감 나게 들려준다. 왕대와 재윤의 뭉클한 교감은 아픈 역사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성장했음을, 그래서 더 과거를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작가는 “지금도 많은 동식물들이 휴전선 근처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며 “휴전선을 인간의 관점이 아닌 동물과 식물의 관점에서 한번쯤 바라보고 고민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초등 고학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美 한국전쟁포로협회 역사속으로

    美 한국전쟁포로협회 역사속으로

    1976년 미국 내 6·25전쟁 포로 출신들이 설립한 ‘한국전쟁포로협회’가 3일(현지시간) 공식 해산했다. 협회는 이날 켄터키주 루이빌의 한 호텔에서 전쟁 포로 출신 95명과 가족 등 4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단식을 열고 38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윌리엄 노우드 회장은 “계속 모임을 갖고 싶지만 회원 대다수가 고령화돼 더 이상 활동할 여력이 없다”며 해단을 선언했다. 협회는 6·25전쟁 당시 2년 6개월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던 노우드 회장 주도로 설립됐다. 지옥과 같았던 북한 수용소 생활을 함께한 동지들을 위로하면서, 귀환하지 못하고 숨진 동지들의 넋을 기리고 그 가족들을 돕자는 취지였다. 협회는 한때 회원 수가 1200명에 달했지만 해단식에는 95명만 왔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85세에 달한다. 회원은 38선 전투와 장진호 전투, 홍성 대학살, 평양 북쪽 운산 전투 등에서 체포된 미군들로, 기나긴 북송 과정을 거쳐 압록강 유역 중공군 포로수용소 6곳과 북한군이 관리하는 수용소에 분리 수용됐다. 참전용사 기록 활동을 하는 한국전쟁유업재단 한종우 이사장은 이날 40명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들은 수용소까지 가는 과정이 지옥과 같았고, 수용소 생활 역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며 “포탄 파편이 등에 박혀 피를 흘리다가 추위로 얼어붙어 피조차 흘리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협회는 해산했지만 회원들은 내년부터 비공식적 후손 모임을 갖기로 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한국 중편소설 르네상스 다시 한번

    한국 중편소설 르네상스 다시 한번

    염상섭의 ‘만세전’(1922),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 윤흥길의 ‘장마’(1973), 이청준의 ‘이어도’(1974)…. 모두 우리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중편소설들이다. 사회와 역사를 고민하는 장편과 찰나의 미학을 추구하는 단편의 특징을 절충한 중편소설(원고지 300장 안팎)은 문학사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줬다. 특히 국내에서는 근대문학 초기뿐 아니라 한국전쟁이 끝나고 산업화가 싹튼 1970년대 주요 작가들이 쏟아 낸 중편이 문단을 살찌웠다. 김동식(인하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중편소설은 1930년대 신문 연재가 유일한 게재 방법이었던 장편의 대중성과 통속성을 배제하면서 단일한 사건과 인물, 이미지에 집중하는 단편소설의 예술성을 아우른 형식”이라며 “작가들이 사회 변화 속에서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실험을 모색할 때 분출됐다”고 짚었다. 이처럼 ‘중편소설의 르네상스’를 부활시키는 동시에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젊은 독자들의 짧은 호흡에 발맞추는 시리즈가 이달 새로 선보인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30~40대 젊은 작가들을 선정해 내년 8월까지 매월 한 편씩 원고지 300~400장 분량의 중편소설을 펴내는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다. 젊은 독자들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듯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소설 시리즈라는 점을 부각한 기획이다. 배명훈, 김혜나, 김이설, 이기호, 안보윤, 정세랑, 윤이형, 서유미, 강태식, 최민경, 황현진, 이영훈, 최진영 등 13명의 문인들로 진용이 짜였다. 첫 작품은 SF소설에서 특유의 장기를 부려 온 소설가 배명훈의 ‘가마틀 스타일’. 인간성을 갖게 된 전투 로봇 가마틀이 진정한 자아와 운명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노을을 좋아하고 행성이 되는 꿈을 꾸는 가마틀. 그는 미친 과학자 미야지마 상이 인류를 공격하기 위해 설계한 540대의 로봇 가운데 하나다. 가마틀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자 불안해진 인류가 로봇을 추적하며 벌이는 갈등과 반전의 서사가 작가의 순정하고 섬세한 문학적 묘사를 타고 흐른다. 출판사 측은 “등단과 비등단, 순문학과 장르문학 등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작가를 발굴할 예정”이라며 “작품이 나올 때마다 웹툰, 포토 에세이, 북사운드 트랙, 북트레일러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웹카페를 통해 20~30대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넓혀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6·25참전 해외영웅들 한시도 안 잊어”

    “6·25참전 해외영웅들 한시도 안 잊어”

    한국전쟁 정전 61주년(27일)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에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들이 열렸다. 한·미 정부는 이날 오전 알링턴 국립묘지 원형극장에서 한국전 정전 61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안호영 주미대사와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 데이비드 핼비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 래리 키나드 참전용사협회장과 참전용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헌화를 시작으로 연방우정국의 ‘한국전 명예훈장 우표’ 헌정식 등이 열렸다. 오후에는 알링턴 셰라톤호텔로 자리를 옮겨 오찬을 겸한 기념행사가 이어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신경수 국방무관이 대독한 기념 축사에서 “어떤 이는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나라에 와서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한·미 동맹의 뿌리가 돼 지금도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알링턴 하야트호텔에서는 한국전쟁유업재단(이사장 한종우 시러큐스대 교수)이 개최한 참전용사 후손 청년봉사단 행사가 열렸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 13개국에서 온 후손 70여명이 참전용사 10여명과 만나 이들의 경험을 기록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특히 조지아주 고교 역사교사 2명을 초청, 미 고교 역사교과서의 한국전쟁 기술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한국전쟁 관련 내용이 소홀히 취급됐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청원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한 이사장은 “미 고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국전쟁 관련 부분은 베트남전쟁에 비해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고작 한두 문단으로 처리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행사를 후원한 국가보훈처 최완근 차장은 “여러분의 할아버지는 여러분의 나이에 전쟁의 공포와 추위를 겪으면서도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고 격려했다. 낙동강 전투에서 한·미 합동작전을 이끌었던 백선엽 장군 딸 백남희씨도 행사에 참석, “할아버지의 활동을 돌이켜 보려는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주말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EBS 일요일 밤 11시) 국외입양으로 고통스러운 이방인의 삶을 살던 한 여인의 일대기. 수잔 브링크라 불리던 신윤숙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고향을 떠나 부산에 정착한 부모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인쇄소 직공이던 아버지가 강에서 수영 중 심장마비로 익사하면서부터다. 가난을 못 이긴 어머니는 막내인 유숙을 입양시키기에 이른다. 1966년 네 살짜리 소녀는 이유도 모른 채 스웨덴 항구 도시 노르쉐핑에 도착한다. 그때부터 유숙의 힘겨운 삶이 시작됐다. 양모의 차별과 가혹한 매질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버티며 18세가 되자 독립을 결심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가던 어느 날 우연히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기획한 해외 입양아 특집 프로에 출연하면서 친모를 찾게 되는데…. ■독립영화관-단편야화(KBS1 토요일 밤 1시 5분) 현실을 향해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4편을 담았다. <최종면접> 취업준비생인 미스터 백은 햇빛에 약한 병에 걸려 있다. 병을 앓고 있음에도 그는 취업에 열심이다. <한복자> 추석 연휴 첫날 폭우로 도로가 마비된다.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울을 가기 위한 노력을 펼친다. <밀청> 남편과 사별한 뒤 미연에게는 무료하고 답답한 생활이 이어진다. 그런데 윗집 소음이 자꾸만 그녀의 신경을 건드린다. 어느샌가 그들의 생활을 몰래 엿듣기 시작하는 미연.
  •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로 꼽힌다.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치료’의 자리에 ‘진단’의 가치를 새롭게 이식하는가 하면, 대졸 고학력자가 홍수를 이루는 한국 사회에다 유럽의 융성을 이끌었던 전문직업인 제도인 ‘마이스터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땀을 쏟고 있다. 단순하게 마이스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목청만 높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마이스터 육성프로그램을 도입해 미래형 인재를 키우고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 의식이 강해 ‘대학은 나와야 사람 노릇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우리의 묵은 의식에 과감하게 혁신의 메스를 들이대는 사람. 바로 한국로슈진단(주) 안은억 대표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의 개인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스위스로 떠난 소년  그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궁핍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던 1978년에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 시절에 ‘돈으로 다리를 놓는’ 귀족성 조기유학이 아니라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장학재단이 빈곤국의 고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유학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후 이미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는 우리 4남매를 부천의 한 보육원에 맡겼다. 여섯살 나던 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라 막막하기만 했다”면서 “그런 가운데 먹여주고, 공부까지 시켜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의 삶은 이렇게 반전을 이뤘다.  안은억 대표의 아버지는 해방공간을 살았던 여느 지식인들처럼 열렬한 좌파였다. 좌파에 대한 해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좌파 경향은 독립운동사에서도 나타나듯 현실 속 지식인의 뇌리 속에 박힌 뿌리 깊은 항일의식의 발현이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의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좌파적 성향에 빠져들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작은 아버지는 국군으로 싸우다 전사했으니, 불행한 역사가 만든 슬픈 가족사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비극이었다. ■비극적 역사가 투영된 가족사  그러나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훈이 그랬듯 그도 인민군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종전 후에 그런 사실이 밝혀져 옥살이를 해야 했다. 연좌의 악폐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그런 사상범이 겪을 수밖에 없는 ‘배제’와 ‘억압’의 굴레를 견디지 못해 술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어머니를 만나 누이 셋 등 4남매를 두었으나 어머니는 안 대표가 여섯 살 나던 해에 돌아가셨고, 현실에 절망해 술에 빠져 사는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을 돌볼 여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여덟살 나던 해에 보육원에 맡겨져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야 했고, 그의 스위스행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는 “그 때 내가 스위스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마 동네 불량배쯤 되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혈혈단신 스위스로 향한 그가 정착한 곳은 취리히에서 북동쪽으로 10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샹트 갈렌(St.Gallen)이라는 도시였다. 섬유산업으로 기반을 닦아 스위스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였다.  스위스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와 만났다. 물론 페스탈로치 장학생들이 모두 순탄하게 자신의 삶을 열어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 프로그램으로 유학길에 오른 50여명 중 더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고, 더러는 마약에 빠져 스스로를 무너뜨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신산의 역경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생의 초반을 산 그에게 스위스는 기회의 땅이었다. ■한 세대의 종언 그리고 또다른 시작  그에게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재회는 삶의 이유였으나, 비운의 역사에 온몸으로 맞섰던 아버지는 그가 스위스로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누나들은 어린 동생에게 이런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고,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여덟 살 때에야 뒤늦게 아버지의 운명을 알았다. 그로서는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희망의 축 하나가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이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가난한 나라, 불행한 아이’로 살면서도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 하나로 버틴 그에게 비록 힘에 부치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곧 희망의 소실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버지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아버지와의 이별을 안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귀국했다. 그러나 그런 귀국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좌절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고등학교와 상트 갈렌대를 마쳤으며,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딴 뒤 스위스 회사의 한국지사에 지원해 마침내 금의환향 길에 올랐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학연과 지연이 지배하는 고국에서, 가족이라고는 세 누이 뿐이고, 지연은 이미 의미가 없었으며, 학연조차 없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능력 뿐이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힘을 기른 그는 2009년 로슈진단에 터를 닦아 생명과학 분야 본부장을 거친 뒤 2012년 드디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면서 “그래서 몸담은 조직에서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의 유일한 빽그라운드는 내 회사의 직원들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가 겪은 성공 체험을 한국에 이식하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하게 소통 지향적이고, 상향식이다. 그것이 조직의 힘이라고 믿고 거기에서 새로운 발상과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그가 한국의 변혁을 기대하며 주창한 것이 바로 ‘마이스터 시스템’이었다. 의료 진단 분야에서 진단기기를 보급하는 회사의 목표와 함께 추구하는 그의 마이스터 정신은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착을 시작했고, 그런 이상의 현실화를 목도하면서 그는 고국에서 색다르지만 의미 있는 씨앗 하나를 발아시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안은억 대표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다. 마이스터 정신의 실천자 자격으로였다. 그가 로슈진단의 수장이 된 이래 경영 측면에서의 성과가 눈부신 것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마이스터 정신을 보급하면서 얻는 보람도 컸다. “학력 과잉의 한국사회에서 국가적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 마이스터 정신에 있다”는 믿음을 그는 지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아시아 최초로 조직검사용 첨단 샘플트렉킹 시스템인 ‘밴티지’를 설치해 병리 진단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그로서는 경영상의 수익이라는 기업적 지향과 다른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는 일에 스스로를 던진 셈이다. ■가장 자유롭고 가장 엄격하게  로슈는 현재 연간 매출액이 70조에 이르며, 특히 진단과 바이오의약 분야에서 공고하게 세계 1위를 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매출 규모가 1700억원을 넘어서 진단 분야에서 단연 톱의 자리에 올라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 1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역시 신뢰 기반을 존중한다. 그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민군의 아들로 태어나 먼 이국에서 고아로 살아야 했으며, 그래서 고국이 더없이 값지고 귀한 그에게 역사는 그를 살아 숨쉬게 하는 자양분이며, 현실은 반드시 바꾸고 바뤄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에도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주시하며, 앞으로도 그런 지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런 그의 진정성은 그를 만나봐야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만나지 않아도 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투철한 ‘열린 사람’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그의 정신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자수 수집 40년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김문이 만난사람] 자수 수집 40년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보자기와 보따리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보자기는 물건을 싸고 다닐 수 있는 네모난 천이다. 보따리는 그 물건을 싼 뭉치이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다른 나라에 비해 보자기 문화가 발달했으며 보자기에는 깨알 같은 정성과 땀이 담겨 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옛날의 어머니들은 한밤중에 다듬이질을 하다가 소리 없이 조용히 바느질을 하곤 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요긴하게 쓸 보자기가 뚝딱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에 자수를 얘기해본다. 사전적으로 풀어보면 직물, 편물, 망, 피혁, 종이류 등의 표면에 실, 끈 종류, 천 조각, 피혁 등으로 누비고 붙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자수를 ‘실로 그리는 회화’라고 표현한다. ‘한국자수박물관’은 국내 대표적인 전통 자수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허동화(88)·박영숙(82) 부부가 공동관장이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시작된 이 박물관은 을지로를 거쳐 1991년 강남구 논현동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부부가 40년 동안 꾸준히 수집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다 보니 보자기, 자수, 다듬잇돌, 발, 화문석, 침장, 의상과 장신구 등 3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게 됐다. 그중 자수사계분경도(보물 제653호)와 수가사(보물 제564호)는 보물로 지정됐고 왕비보(중요민속자료 제43호), 다라니주머니(중요민속자료 제42호)와 대향낭(중요민속자료 제41호) 등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다. 이곳에 소장된 자수와 보자기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이 전시됐다. 1978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벨기에,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 60여차례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외국인에게 한국 섬유예술의 우수성을 알려 왔다. 최근에는 터키와 일본 교토에서 보자기 전시를 가졌다. 지난 17일 논현동에 자리한 박물관에서 허 관장 부부를 만났다. 허 관장은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었다. 나이가 88세였지만 아름다운 보자기 예술에 심취해서인지 동안이었고 낯빛은 밝아 보였다. 박물관장치고는 허 관장의 이력이 의외다. 육사 9기 출신으로 동국대 법정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쟁 참전공훈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56년 소령으로 예편한 후 한국전력에서 감사를 지냈다. 처음에는 도자기 수집이 취미였을 뿐 자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치과의사인 부인 박씨와 함께 자수 수집가로 변했다. 박씨는 남편보다 일찍 자수에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초반이었죠. 도자기를 보러 인사동에 갔는데 미국인이 화조(花鳥)로 수놓인 병풍을 헐값에 사가더라구요.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저 아름다운 물건이 제값도 못 받고 해외로 반출된다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병풍과 자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부인이 삼각지에서 치과병원을 차리자 옆에서 손님을 끌 요량으로 이색박물관인 자수박물관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반공방첩을 중요시했던 터라 자수하면(?) 돈을 3000만원이나 벌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자수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혹시 간첩이 오면 자수라도 시킬 생각이었죠(웃음).” 이후 곳곳에서 자수를 가진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찾아왔다. 값어치가 없는 자수라도 사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수집품이 점점 많아졌다.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자기에 물건을 싸고 왔습니다. 작은 천조각을 이어 만든 호남권의 조각보, 여러 색실로 무늬를 놓은 강원권의 자수보,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경기권의 모시보 등 귀중한 것들이 많았어요. 보자기는 한국과 일본, 터키에만 있는데 조각보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물건이 쌓여가던 어느 날, 박물관에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찾아왔다. 최 관장은 전시된 자수들을 보고 “사라져 가던 우리의 자수와 보자기가 여기에 다 보존돼 있다”며 감탄했다. 이를 계기로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 초대전을 갖는다. 무려 3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리에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듬해 도쿄에서 한국문화원이 개관할 때도 자수와 보자기를 전시했다. 해외 전시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동안 해외 전시를 통해 700만여명의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한국의 보자기를 보여줬습니다. 외국 문화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비구상 회화’의 아름다움이라고 극찬하더군요. 왜냐하면 100여년 전 것도 있었고 천지인의 철학이 담긴 것들도 있었으니까요. 독일 린덴 국립민속학 박물관장인 피터 틸레는 그의 저서에서 ‘색채 구성이 뛰어난 한국 조각보는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20세기 추상화 거장들이 한국 보자기를 본 적이 있을까’라고 썼을 정도였지요.” 독일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초청이 계속 이어졌다. 1999년 프랑스 니스 동양박물관은 한국 보자기로 개관전을 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박물관 개관전에서 한국의 자수와 보자기를 초청해 전시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됐다.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 박물관 전시는 주최 측의 요청으로 3개월 더 연장되기도 했다. 허 관장은 그동안 해외 전시의 성과해 대해 거듭 강조한다. 약 250억원의 전시비용이 투입됐으며 전통 규방문화의 국가브랜드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우수한 섬유예술의 독창성을 소개하고 교민들에게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해외관람객은 100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만 있는 조각보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현대 추상미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우며 쓰임새 또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여인들의 미적 감각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여성의 삶과 철학이 오롯이 깃든 표현방법들은 세계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수 수집뿐만 아니라 지난 20여년간 보자기 1000여점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아울러 다듬잇돌 700여개를 수집해 기네스북에 오른 기록도 가지고 있다. 허 관장은 인터뷰를 하면서 옆에 앉은 부인 자랑을 자주 했다. 부인 박씨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미국 그레이스 국제신학대학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을지병원 치과 과장을 거쳤다. 둘은 같은 황해도 출신으로 월남 후 서울에서 만나 결혼했다. 내년이면 같이 산 지 60주년을 맞는다. 박씨는 어릴 때부터 조각보를 만들 정도로 관심이 많았으며 결혼 후에는 이런 부인의 영향으로 허 관장도 자수와 보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의 잊혀 있거나 내버리다시피한 것들이었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여인들의 한 맺힌 사연들이 숨어 있음 직한 한 점 한 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같이 수집을 하게 됐다. 경제적인 문제는 주로 박씨가 치과를 운영하면서 해결했다. 이에 대해 허 관장은 “부부가 같이하다 보니 세계 제일의 자수 수집 가정이 됐다”며 웃는다. 또한 “해외 전시 때마다 한복과 장신구 등을 해당 박물관에 기증했으며 문화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국민모란훈장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허 관장은 1970년 자수에 대한 학술적 뒷받침을 위해 처음으로 전통자수 연구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자수사 연구, 조선시대 표장제도 연구, 궁중보자기 연구 등 수십편에 달하는 연구논문을 저술했다. 1979년에는 한국일보가 제정한 한국출판문화 저작상을, 2003년에는 김세중기념사업회가 시상하는 한국미술저작상(‘이렇게 좋은 자수’) 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여성문화의 세계화를 이룩한 공로로 5·16민족 학예상을 받았다. 허 관장은 자수뿐만 아니라 1990년대 중반부터 버려진 농기구와 어구, 가재도구 등을 수집해 오면서 오브제와 콜라주 작업으로 환경친화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하남국제환경박람회, 대전한림미술관, 갤러리 시우터, 경기도 박물관 등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일본 메구로 미술관과 추계예술대, 아주대 등의 박물관에는 그가 기증한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허 관장 부부는 지금도 수집활동을 하면서 계속 보완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자수민속박물관을 지으면 모두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허동화 관장은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50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57년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 한국전력공사에서 감사를 지냈다. 1974년 한국자수연구소 소장으로 있다가 1976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자수박물관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한국사립박물관장협회 회장(1976년), 방송심의위원(1981년), TV·영화검열심의위원(1981년), 한국기네스협회 부총재(1992년)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자수(1978년), 한국의 고자수(1982년), 옛보자기(1988년),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박물관 이야기(1997년), 우리가 알아야 할 규방문화(1997년), 이렇게 좋은 자수(2001년), 이렇게 소중한 보자기 역사(2004년), 이렇게 예쁜 보자기(2004년), 규방문화의 세계 여행(2008년) 등이 있다. 올해의 육사인상(2003년),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2003년), 한국미술 저작상(2003년), 우수 박물관 표창(2006,2007년) 등을 수상했다.
  • [부고] 한국전쟁 참전한 美 영화배우 제임스 가너

    미국 영화배우 제임스 가너가 1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6세.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가너가 브렌트우드에 있는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AP통신 등에 20일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자연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뇌졸중으로 수술받은 적이 있다. 그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TV 서부극 시리즈 ‘매버릭’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이후 TV와 스크린에서 활동하며 거칠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1977년 ‘록퍼드 파일스’로 에미상을 수상하고 1985년 ‘머피의 로맨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005년 2월에는 제11회 미국 영화배우조합(SAG)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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