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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렌치와 코리안의 만남…‘봄, 프랑스와인 전주한식을 탐하다’

    프렌치와 코리안의 만남…‘봄, 프랑스와인 전주한식을 탐하다’

    한식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각종 나물을 넣은 뒤 밥, 고추장, 달걀프라이, 참기름과 함께 비벼 먹는 비빔밥을 비롯해 발효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김치까지 한국적인 매력을 가진 음식들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이러한 가운데 지난 11일 전주대 대학본관에 위치한 국제한식조리학교에서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봄, 프랑스와인 전주한식을 탐하다’라는 주제로 특별한 행사가 개최됐다. 이 행사에서 런던 노부(NOBU) 수셰프(Sous Chef) 출신이자 와인소믈리에인 장 폴 보레즈는 와인 5종을 선정, 각 와인의 특징과 이와 어울리는 메뉴에 대해 소개했다. 또한 G20 정상회담 영부인 오찬 총괄 및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한식조리장을 역임한 이재옥 교수와 조리기능장인 신미경 교수가 이 와인들과 어울리는 한식 메뉴를 준비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프랑스 와인 5종과 한식 10종을 페어링해 눈길을 끌었다. 꿀, 배, 시트러스 향이 느껴지는 ‘라르펜 데 보동’에는 오이선, 두부선, 생선전을 매칭했으며, 짙은 농도가 특징인 ‘레페루쉬’에는 전복과 해삼, 자연산송이, 동충하초를 고아낸 진귀보양탕을 매칭했다. 단맛과 신맛이 조화로운 ‘꼬또 드 레이용’에는 유자주머니와 율란/생란을, 보랏빛이 도는 ‘클로 데 랑그르’는 한우 등심구이와 구운채소를, 잘 익은 흰 과일과 시트러스 향이 나는 ‘부브레 섹’에는 메로 생선구이와 영양부추무침을 곁들였다. 장 폴 보레즈 소믈리에는 “이번 와인 행사를 통해 전주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며 “와인과 한식의 훌륭한 궁합처럼 앞으로도 양국의 전통적인 음식이 잘 어우러지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이영은 원광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이번 국제한식조리학교가 선보인 한식은 전통을 기반으로 프랑스 와인과도 어울리는 새로운 한식”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식문화를 새롭게 이끌어 갈 한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6일부터 열린 ‘전주 프랑스 위크’에는 ‘봄, 프랑스와인 전주한식을 탐하다’ 외에도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12일과 13일에는 각각CMBV(베르사유바로크음악센터) 내한공연과 프랑스 동화여행 및 프랑스 감성교육 강연 등이 진행됐으며, 개막일부터 펼쳐진 ‘사진으로 보는 UN 한국전쟁 프랑스 대대’ 사진전과 ‘한-불 자수교류전’이 여명카메라박물관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들 찾아 1만 5000㎞…위대한 호주인 모정

    55년 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의 행적을 찾아 호주에서 부산까지 홀로 1만 5000㎞의 먼 길을 찾았던 한 호주 어머니의 여행 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저자는 호주의 주요 일간지인 시드니모닝헤럴드와 디 오스트레일리안, 공영 ABC 방송 등을 거친 30년 경력의 언론인 루이스 에번스로, 그는 2년이 넘는 집필 작업 끝에 ‘부산으로 가는 길’이라는 논픽션을 펴냈다고 브리즈번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책은 에번스의 할머니인 델마 힐리가 1961년 부산을 방문하면서 쓴 여행 일기를 바탕으로 편지와 생존 가족들의 증언 등으로 구성됐다. 힐리는 당시 56살이었으며, 부산 방문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이었다. 호주 동부 브리즈번에 살던 힐리는 1951년 아들 빈센트의 전사 소식을 알리는 전보 한 통을 받았다. 힐리는 아들의 시신은 물론 유품도 받지 못해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그녀는 비보를 듣고 삶을 포기할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곧 생각을 바꿔 아들의 행적을 찾아 부산을 방문하기로 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10년 만에 한국으로 갈 여비를 모은 힐리는 마침내 한국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에번스는 책에서 할머니 힐리가 한국을 방문해서 원했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니가 그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이라며 “그는 더 만족스럽고, 더 마음 편하게 호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아버지 정약용의 자녀·가족 사랑을 마주하다

    아버지 정약용의 자녀·가족 사랑을 마주하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 4일부터 선보인 특별전 ‘하피첩(霞?帖), 부모의 향기로운 은택’이다. ‘정약용 필적 하피첩’(보물 1683-2호·이하 하피첩)은 민속박물관이 지난해 9월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 당초 정약용의 후손들이 갖고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분실된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2004년 경기도 수원의 폐지 줍는 할머니 손수레에서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하피첩’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모가 돼 함께 자녀를 키우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원래 네 첩이었는데 지금은 세 첩만 전해지고 있다. 박물관은 보존처리를 위해 하피첩 두 첩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을’(乙)과 ‘정’(丁), 두 글자를 발견해 하피첩이 갑을병정(甲乙丙丁) 순서로 제작됐음을 확인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나머지 한 첩은 보존 상태가 양호해 해체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세 첩 중 저술 시기가 가장 빠르고 본문 전체가 비단으로 제작돼 있는 점으로 미뤄 순서상 ‘갑’(甲)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부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선 정약용과 홍혜완 부부의 결혼과 사랑을, ‘자녀에게 남기는 부모의 마음’에선 가족 곁을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저술된 ‘하피첩’의 숨은 이야기를, ‘자손에게 전해진 하피의 먹 향기’에선 서첩에 담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했던 자손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엔 딸에게 화목을 기원하며 선물한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다산초당 풍경을 묘사한 ‘다산사경첩’(茶山四景帖·보물 1683-1호) 등 정약용 관련 유물 30여점도 감상할 수 있다. 천 관장은 “이번 전시는 하피첩에 담긴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자리”라며 “다산은 자녀들이 효제(孝悌)를 바로 세우고, 자아를 확립한 후 학문을 익히기를 바랐다. ‘하피첩’에 담긴 정신적 유산은 물질적 가르침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 더욱 소중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3일까지 이어진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옛것과 현대가 함께 숨 쉬네, 울산 너른 품에서

    옛것과 현대가 함께 숨 쉬네, 울산 너른 품에서

    울산 하면 각종 공업단지와 조선소 등의 산업 시설을 퍼뜩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울산 쪽만 보면 그렇다. 한데 울산시의 70%를 차지하는 울주는 조금 다르다. 예부터 이어져 오던 독 짓는 방식을 여태 고수하는 옹기마을이 있고, 비구니 스님들의 오래된 도량에선 청아한 풍경 소리가 울려 나온다. 반구대 암각화 등 그보다 더 오래된 선인들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말쑥한 현대와 푸석거리는 옛것이 함께 숨을 쉰다고 할까. ‘숨을 쉬는 그릇’ 옹기. 우리의 독특한 음식 저장 용기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이야 김치냉장고 등 현대 기술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몇 가지 불편함만 해결된다면 사실 냉장고 대신 선택하고 싶은 것이 옹기다. 표면의 구멍을 통해 ‘숨을 쉬는’ 옹기 특유의 장점은 현대 기술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옹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얼추 보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물레와 흙을 다루는 옹기장이의 정교한 손기술이 필수적이다. 표면을 다듬는 것에만 ‘아씨부채질’과 ‘두번부채질’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후 전통 가마에서 1200도가 넘는 뜨거운 불에 9일 밤낮을 구운 뒤 4일 동안 식힌다. 요즘엔 고온의 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굽는 과정이 예전보다 꽤 단축됐다. 바로 이 과정에서 옹기의 생명이라 할 공기구멍, 이른바 ‘기공’이 표면에 만들어진다. 깨끗한 공기는 들여보내고, 빗물 등의 침투는 막는다. 김치 등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불순물이나 소금쩍(소금기가 허옇게 엉긴 것) 등은 숨구멍을 통해 옹기 밖으로 배출시킨다. 어디 최첨단 원단으로 만든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이 이만 할까. 우리 선조들은 이미 1000년 전에 이 같은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외고산 옹기마을이 처음 형성된 건 50여년 전이다. 1950년대 후반 경북 영덕에서 옹기공장을 운영하던 고 허덕만 장인이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으로 옮겨 오면서 옹기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운도 따랐다. 이웃한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옹기 수요가 급증했다. 원료 확보가 쉽고 유통은 원활했으니 마을이 불길처럼 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후 외고산 옹기마을은 한국 옹기시장의 50%를 책임지는 최대 공급처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왜 하필 울주였을까. 허덕만 장인의 제자인 배영화 장인은 “따뜻한 기온과 옹기의 재료가 되는 흙, 땔감으로 쓸 나무가 풍족한 것” 등을 요인으로 꼽았다. 옹기는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흙반죽으로 모양을 만들 때 기온이 영상 3도 아래로 내려가면 형태가 깨진다. 서울 경기 등 겨울이 길고 혹독한 곳에선 겨우내 작업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울주는 다르다. 겨울에도 영하권으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다. 게다가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옹기 제작의 원료인 흙이나 땔감으로 쓸 나무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사실 오래전엔 ‘옹기마을’이란 것이 없었다. 땔나무와 흙이 소진되면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그게 옹기장이들의 숙명이었다. 이젠 달라졌다. ‘명성’을 좇아 흙과 땔감이 몰려드니 말이다. 요즘도 7명의 외고산 옹기장인들은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든다. 숙련된 이라도 오랜 시간 땀을 쏟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그 과정을 옹기마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옹기부터 작은 장식용 옹기까지, 그야말로 옹기의 모든 것과 마주할 수 있다. 그 덕에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독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을 뒤엔 옹기박물관이 들어섰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옹기 등 전국의 재래식 옹기와 세계 각국의 옹기를 만날 수 있다. 8일까지 마을 곳곳에서 ‘울산옹기축제’도 열린다. 옹기 제작 과정에 참여하거나 직접 옹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체험 위주로 진행된다. 울주까지 와서 간월재(900m)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간월재는 이른바 ‘영남알프스’의 하나다.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8m)의 능선이 내려와 만난 자리다. 원래 억새 명소로 명자깨나 날리는 곳인데, 진달래 피는 봄 풍경도 제법 빼어나다. 특히 기온차가 큰 간절기엔 구름이 파도치듯 언양 읍내를 휘감아 도는 장관과 종종 마주할 수 있다. 간월재는 우리나라에도 빙하기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 빙하기였던 신생대 홍적세(12만 5000년 전) 동안 간월산과 신불산을 덮고 있던 빙하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거대한 돌들과 함께 산 아래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V’자 형태의 급경사의 계곡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빙하와 함께 내려온 큰 바위들은 미아석(표이석), 이른바 ‘집 잃은 돌’을 남긴다. 신불산과 간월산에서 작천정에 이르는 동안 유난히 자갈더미와 미아석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간월재 아래로 내려오면 곧 석남사다. 비구니 도량으로 이름 높은 절집이다. 일주문에서 절집까지는 숲길이 펼쳐져 있다. 숲은 깊다. 굴참나무, 소나무 등 노거수들이 우거졌다. 거리는 700m 정도. 늙은 나무들 사이를 자박자박 걷다보면 산소 알갱이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든다. 대웅전 앞의 3층 석탑이 웅장하다. 임진왜란 때 무너진 대석탑 자리에 1973년 스리랑카에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 오면서 개축한 것이다. 강선당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도가 나온다. 예서 가람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지산을 짓쳐올라가는 신록과 절집 지붕의 진회색 기와들이 그럴싸하게 어우러진다. 이제 바다를 둘러볼 차례다. 방어진항 끝자락의 슬도(瑟島)를 찾아간다. 모래가 굳은 사암으로 형성된 작은 섬이다. 원래 무인도였으나 최근 도로가 놓이면서 뭍이 됐다. 슬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섬 주변 바위마다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데, 이 위로 파도가 칠 때면 촤르륵 촤르륵~ 거문고 뜯는 소리가 난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이를 슬도명파(瑟島鳴波)라 부른다. 슬도는 최근까지도 옛 풍경이 많이 남아 있던 곳이다. 거대 도시의 외곽 치고 뜻밖에 소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투박한 돌을 쌓아 만든 예전 방파제며, 슬도 뒤편 성끝마을 언덕 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그랬다. 마을 앞바다는 현대미포조선소의 거대한 선박들로 막혀 있지만, 되레 그 탓에 더 안온한 느낌을 받곤 했다. 도로가 놓인 뒤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조형물이 들어서고, 낡은 집들은 깔끔한 건물로 빠르게 대체되는 중이다. 깔끔하고 번듯해졌지만, 그게 나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낚시를 즐기는 이라면 낚싯대 한 대 챙겨 가시길. 방파제 뒤에 놓인 데크 위에서 바람 한 점 맞지 않고 편안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울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52) → 가는 길: 울주와 울산으로 나눠 돌아보는 게 효율적이다. 울주 쪽 간월재는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 나들목으로 나와 울산 방면 24번 국도로 갈아탄 뒤 금곡교차로에서 우회전, 아불삼거리에서 우회전, 이어 배내사거리에서 좌회전해 파래소 유스호스텔 앞까지 가면 된다. 석남사와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 등을 돌아보는 것으로 동선을 짠다. 석남사 264-8900. 외고산옹기마을은 부산울산고속도로 청량나들목으로 나와 14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간월재와 서생포왜성, 간절곶 등의 명소를 함께 돌아본다. 울산옹기박물관 229-7961. 슬도와 방어진, 대왕암공원, 장생포고래박물관 등은 울산 동쪽에 있다. → 맛집:간월재가 있는 언양은 불고기로 이름났다. 언양 읍내 외곽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다만 유명한 만큼 지갑 털릴 각오는 해야 한다. 공중파 방송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는 한 식당의 경우 3인분 이상만 팔기도 한다. 울산 쪽도 비슷하다. 국내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지역이어선지 음식값이 녹록지 않다. 슬도의 한 식당의 경우 회와 각종 코스 요리를 포함해 1인 3만 5000원이다. 2인 이상만 판매하니 7만원이 기본인 셈이다. → 잘 곳: 석남사, 등억리 온천단지 등에 깔끔한 숙소가 많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 여행객은 간월재 입구의 펜션을 찾는 게 좋겠다. 주중 5만~7만원 선이다.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국경·도로·전쟁터… 역사 품은 임진강 천혜 요새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국경·도로·전쟁터… 역사 품은 임진강 천혜 요새

    서울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가려면 자유로에서 통일대교를 건너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상식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남북교류도 이 루트를 따라 이루어졌다. 하지만 임진강 하류 남북교통로는 조선왕조가 한양에 도읍한 이후에나 일반화된 것이다. 하류는 강폭이 넓어 배로 건너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의주대로의 임진강 도하지점은 통일대교 상류의 임진나루였다. ●물줄기 급격히 좁아져… 배 안 타고 건너 고려시대에는 임진나루에서도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호로탄(瓠蘆灘) 혹은 호로하(河)에서 강을 건넜다. 강 북쪽은 경기 연천군 장남면, 강 남쪽은 경기 파주시 적성면이다. 호리병 모양의 강줄기를 뜻하는 호로하는 표주박 모양의 물줄기를 의미하는 표하(瓢河)로도 불리웠다. 임진강이 호리병이나 표주박처럼 급격히 좁아지는 곳이다. 임진강에서 장마철이 아니라면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최하류에 해당한다. ●고려 때 개성-서울 잇는 핵심 도로 이 길은 고려시대 수도 개경에서 오늘날의 서울인 남경을 포함한 남부 지역을 잇는 핵심 간선도로였다. 장남과 적성은 지금 한적하기만한 농촌 소도시지만 고려시대에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 핵심요지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옛 양주관아터가 의정부에서 동두천에 이르는 국도가 아닌 덕정에서 적성으로 연결되는 350호 지방도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주관아가 있던 곳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남북 간선도로의 중심축에 자리잡은 요충지였다. ●고구려~신라 임진강 국경 군사요새 이렇듯 남북을 손쉽게 이어주는 교통로가 지나니 고구려, 신라, 백제가 대치하고 있던 삼국시대 호로하의 군사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고구려는 475년 한성백제를 공주로 쫓아내면서 한강 일대와 임진강 일대를 모두 차지했다. 하지만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 때 한강에서 밀려나면서 임진강은 두 나라의 국경이 됐다. 호로고루는 호로하가 눈앞에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 북안에 고구려가 당시 구축한 군사요새라고 할 수 있다. 고루(古壘)란 옛 성을 뜻한다. ●한국전쟁 땐 북한군 건넌 호로하 호로고루의 임진강 건너편에는 칠중성(七重城)이 있다. ‘당나라의 유인궤가 병사들을 이끌고 호로하를 끊은 뒤 신라의 칠중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처음에는 고구려가 쌓았지만 신라의 군사기지가 됐다. 일대는 ‘삼국사기’에도 여러 차례 전투 기사가 등장할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주력 전차부대가 장단을 우회하여 임진강을 건넌 곳도 호로하 일대였다. 호로하의 군사적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다. 호로고루는 임진강과 임진강에 합류하는 작은 하천이 만들어낸 삼각 지형의 한쪽에 성벽을 쌓은 평지성이다. 임진강 쪽에는 높이 20m의 기둥이 겹쳐 있는 주상절리가 이어져 자연 방어선을 형성한다. 성의 전체 둘레는 401m에 이른다. 발굴조사 결과 자연지형을 따라 목책을 구축하고 시간이 흐른 뒤 대규모 토목공사로 성 내부를 평탄하게 조성하고 동쪽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외부 침입이 쉽지 않은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천혜의 요새다. ●삼국시대 ‘미니 고구려 박물관’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를 비롯해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남한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기와가 나왔다. 깃털이나 비늘 문양이 있는 치미 조각과 착고 기와가 출토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용마루 양끝을 장식하는 치미와 일종의 보조기와인 착고는 위계가 높은 건물의 존재를 증명한다. 입 부분 직경이 55㎝로, 묶을 수 있도록 3열의 구멍을 일정한 간격으로 뚫은 고구려 타악기가 출토된 것도 흥미롭다. 임진강 일대는 남한에서 고구려 군사유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지역이다. 그동안 남한에서 확인된 고구려 성곽은 70곳에 이르는데, 18곳이 임진강 주변에 몰려 있다. 호로고루, 은대리성, 당포성은 상당 부분 복원도 이루어졌다. 호로고루에는 지난주 ‘연천 호로고루 홍보관’이 문을 열었다. 북한에서 만들었다는 광개토왕비 복제품도 홍보관 앞에 세웠다. 아쉬운 대로 임진강 지역의 삼국시대 역사를 담은 작은 고구려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이슈&이슈]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 나선 대구시

    [이슈&이슈]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 나선 대구시

    “국립 한국문학관은 반드시 대구에 와야 합니다.” 대구시와 지역 문학계가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한국문학관은 우리 문학과 문학인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하는 박물관이다. 2019년까지 국비 446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상반기 공모, 건립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1일 대구시에 따르면 한국문학관 건립은 사업의 규모를 떠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게 문학계의 시각이다. 국가 차원에서 근현대 문학 100년 역사를 집대성하고, 이를 통합관리하는 전초 기지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창작의 요람으로서의 역할도 병행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문학관이 건립되면 한국문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산실이 된다. 대구시와 지역 문학계가 3가지 이유를 들어 한국문학관의 대구 유치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다. 먼저 대구는 문학의 발생지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인정받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산실이 대구 인근인 경주의 금오산이다. 또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도 경북 군위의 인각사에서였다.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항일저항 문인들이 나고 활동한 곳이 대구이기도 하다. 전국 최초로 죽순시인구락부가 1945년 10월 대구에 설립됐다. ‘아동’, ‘죽순’, ‘새싹’ 등 잡지가 1946년 4~6월 잇따라 대구에서 창간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이상화 시비가 1948년 3월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졌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종군문학이 대구에서 꽃피웠다. 박목월·박두진·조지훈 등의 문인들이 이때 대구에서 활동했다. 이상화와 고월 이장희의 이름을 딴 상고예술학원이 1952년 대구 남산동 교남학교(옛 대륜중·고)에 문을 열었다. 최초의 전문예술교육기관인 이 학원에는 조지훈·구상·김동리·김동진·이은상·이효상·정비석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활동했다. 두 번째는 문화시설의 분산배치이다. 국내 문화시설의 4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등 편중현상이 심하다. 대구는 서울을 제외하면 문인이 가장 많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국립문화시설이 없는 실정이다. 문화시설 기반은 대구의 경우 17개 광역시·도 중 13위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다 훌륭한 입지가 마련되어 있고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의 근거로 제시된다. 대구시는 현재 두류공원 일대에 문학관을 건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곳에 한국문학관이 들어서면 대구문화예술회관, 코오롱야외음악당, CT공연플렉스파크, 출판산업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관광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인근에 대구 예술의전당 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곳 이외에도 대구 북구 산격동 옛 경북도청 부지 등이 한국문학관이 들어설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구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2시간 이내, 전국 어느 곳에서 출발하더라도 3,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도시다. ●문학관 연계 ‘민족시인 거리’ 추진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권영진 대구시장까지 한국문학관 유치 대열에 합류했다. 권 시장은 지난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대구방문 때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에게 한국문학관 대구 건립을 건의했다. 권 시장은 또 한국문학관이 유치되면 기존 중구 향촌동에 있는 대구문학관과 이상화 고택, 이육사 고택 등으로 이어지는 ‘민족시인거리’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거리가 조성되면 사이사이에 대구가 배출한 문인들을 알리는 다양한 시설도 구비한다는 방침이다. 대구 문인들도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에 힘을 모으고 있다. 대구문인협회는 지난 3월 말부터 2·28기념공원 등 도심에서 국립문학관 대구 유치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서명에 참여한 사람이 수만명에 이를 정도로 시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달 1일에는 지역문인, 예술인, 교수, 언론인, 정치인 등으로 ‘국립 한국문학관 대구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는 국회의원 출마자를 대상으로 선거공약 채택을 건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는 한국문학관이 대구에 유치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선거 기간 중 발표하기도 했다. ●유치위 출범·포럼 열고 당위성 알려 지난달 21일에는 대구문학관에서 대구유치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과 신상철 전 대구시교육감이 맡았다. 상임위원장은 장호병 대구문인협회장, 류형우 대구예술인총연합회장, 김주한 경북문인협회장, 이병국 경북예술인총연합회회장이, 대외협력위원장에는 이상규 경북대 교수가 각각 선임됐다. 추진위 전체 인원은 1200여명이고, 고문단·자문단이 100명씩 포함됐다. 추진위는 출범식에서 대구유치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서 “대구는 고대문학은 물론 근현대문학의 산실 중 한 곳이다”면서 “국토균형발전과 문화균형 면에서 대구에 반드시 한국문학관이 건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상희 전 장관은 “근현대 문학사는 역사적으로나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대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이 우수한 대구가 한국문학관 건립의 최적지”라고 밝혔다. 다음날인 22일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를 위한 포럼이 개최됐다. 김용락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박사 등이 토론 및 발제자로 나섰다. 포럼에서 발제자들은 대구가 한국문학의 발원지이자 근현대문학의 요람임을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강조했다. 또 후보지 선정에 타 지역민들의 접근 용이성과 국가균형발전 차원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추진위 집행부들은 조만간 문체부를 방문한다. 장관 등을 만나 대구 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북을 비롯한 영호남지역 문화단체들과의 연대를 강화, 적극적인 협조도 구하기로 했다. 진광식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장은 “한국문학관이 대구에 건립된다면 한국문학제와 세계문학제 등 국가차원의 사업 지원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러한 점에서 한국문학관 대구 유치가 단순히 한 도시를 위한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문학사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인천상륙작전 처음 알린 美 종군여기자

    인천상륙작전 처음 알린 美 종군여기자

    보훈처, 5월의 6·25전쟁 영웅 선정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18일, 남하하던 북한군에 밀려 퇴각을 거듭하던 국군은 가까스로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미 부산 등을 제외하고 국토의 90% 이상을 점령당한 상태였다. 경남 통영까지 점령한 북한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우회해 거제도를 점령하려 하자 국군은 급히 상륙작전계획을 수립했다. 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이다. 해병 1대대는 기습상륙을 감행해 이틀 만에 북한군 100여명을 사살하고 통영을 완전 탈환했다. 6·25전쟁 종군기자로 활약하던 미국 뉴욕헤럴드트리뷴의 마거릿 히긴스(1920~1966)는 이 작전 현장을 직접 취재해 우리 해병대의 승리를 전 세계에 알렸다. 당시 그녀는 본사에 타전한 기사에 해병대의 용맹함을 묘사하며 “그들은 심지어는 악마(귀신)도 때려잡을지 모른다(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라고 썼다. 지금까지 우리 해병대를 대표하는 별명인 ‘귀신 잡는 해병’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국가보훈처는 29일 히긴스 기자를 5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히긴스는 6·25전쟁 당시 도쿄 특파원 신분으로 전쟁 발발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서울로 온 그녀는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자 피란민들 틈에 섞여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고 이후 6개월간 전선을 누비며 수많은 기사를 송고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의 현장을 세계에 알린 것도 그녀였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녀는 종군기자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을 써서 여기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미 전역을 돌며 “한국을 도와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다. 히긴스는 45세에 요절해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며 우리 정부는 2010년 그녀에게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 열려…한규호 서울신문 기자 등 18명 희생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 열려…한규호 서울신문 기자 등 18명 희생

    제39회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이 27일 오전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 주관으로 경기 파주시 문산읍 봉서리 통일공원 내 종군기자 추념비 앞에서 열렸다. 이날 정 회장은 추도사에서 “한국전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숨까지 바친 숭고한 기자 정신을 되새기며 그들이 보여준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오늘날 후배 언론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김영준 경기북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해 한영섭 6·25종군기자동우회장, 이형균 기자협회 고문 등 원로 언론인들과 국방부, 파주시 관계관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 상황을 보도하다 희생된 국내외 기자는 모두 18명(미국 10, 영국 4, 프랑스 2, 필리핀 1, 한국 1)이었다. 한국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한규호 서울신문 기자가 순직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센터였던 문산역의 ‘평화열차’가 내려다보이는 유서 깊은 취재 현장에 세워진 이 추념비는 1977년 전국 기자들의 성금과 사회 각계 지원금으로 건립됐다. 파주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원불교 “대동화합의 길로 함께 가자”

    원불교 “대동화합의 길로 함께 가자”

    6·25전쟁 피해자 유족 등 수천명 참석 원불교는 2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일제강점기·한국전쟁·산업화·민주화·재난재해 희생 영령을 위한 대국민 특별 천도재를 열었다. 원불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천도재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한국 사회의 상처와 갈등을 씻어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번 천도재에는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야스쿠니무단합사철폐소송 원고단 등 천도 대상자 유가족 100여명과 원불교 신자 등 수천명이 참석했다. 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은 천도재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먼저 떠나가신 영령들의 아픔과 고통, 견디어냄 그리고 헌신으로 현재의 삶을 살고 있다”며 “천도재를 기연으로 우리 모두 대동화합의 길로 동행하여, 대한민국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을 이루고 감사와 은혜 가득한 낙원 세계를 이뤄 가자”고 당부했다. 원불교는 이번 천도재를 통해 모은 재비 전부를 천도 대상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다. 한편 원불교는 이날부터 다음달 1일까지를 개교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해 천도재와 국제학술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100주년 기념대회는 1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6·25전쟁 용사들 위해 카메라 들었어요”

    “6·25전쟁 용사들 위해 카메라 들었어요”

    “해외에서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는 게 가슴이 아팠어요. 참혹한 전쟁의 상처를 혼자 감내해 왔던 이분들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게 됐습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의 영정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진작가 김승우(28)씨는 2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쟁 그 자체도 끔찍하지만, 평생을 전쟁이 끝난 뒤의 트라우마와 외롭게 싸워 왔을 그분들에게 힘을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대에서 사진을 공부하다 군 입대를 위해 귀국한 김씨는 2011년 소속 부대 6·25 행사 때 참전용사 19명의 영정 사진을 찍는 일을 맡았다. 이때의 경험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계기가 돼줬다. 이후 졸업을 위해 미국에 돌아간 김씨는 수소문 끝에 미국인 참전용사 살바토레 스캘라토를 만날 수 있었다. 미국은 땅이 워낙 넓은 데다 한국전 참전용사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고령이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제가 만난 참전용사 중 가장 젊은 분이 84세셨어요. 이분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느껴지니까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조두영 다큐멘터리 감독과 손잡고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에 프로젝트를 알리고 있다. 덕분에 입소문을 타고 현재까지 모두 8명의 사진을 추가로 찍을 수 있었다. 다음달 초까지 11명이 촬영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펀딩 결과에 따라 갤러리 전시도 계획 중”이라며 “최대한 많은 참전용사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이 개인의 삶에 남긴 아픔을 국내에서 시작해 언젠가는 전 세계로 알리는 것이 꿈입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중국에 ‘90세 촌관’

    중국에 ‘90세 촌관’

    중국의 90대 노인이 한 시골마을에서 촌관(村官·말단행정조직인 촌의 관리)으로 선출됐다. 지린시 가오신구 난산다오촌 주민들은 최근 열린 촌위원회 선거에서 리춘여우(李春友)씨를 촌위 부주임으로 선출했다고 인터넷매체 망이신문이 25일 전했다. 망이신문은 “리 부주임이 중국에서 최고령 촌관”이라며 퇴임 후 36년 만에 현역에 복귀하는 셈이라고 소개했다. 1926년생인 리 부주임은 최근 1600여 주민이 참가한 투표에서 861표를 얻어 740표에 그친 전임 부주임 출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1949년 중국이 건립되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제대 후 1963~1980년 지린시 융지현 허완쯔촌 촌장 등을 지내다 정년퇴임했다. 그가 고령임에도 출마한 것은 마을 간부들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 리씨는 유세에서 “마을 빚이 300만 위안(약 5억 3000만원)에 이르는 등 재정 상황이 불투명하고 부정이 심하다. 마을의 부패를 타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주민들은 “부패한 간부들 때문에 몇 년 새 마을 재정과 행정이 엉망이 됐다”면서 “리씨가 명망 있고 정의감을 가진 인물인 만큼 우리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감을 표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195억 기부 물품 횡령” 네파, 서경덕 교수 고소

    “195억 기부 물품 횡령” 네파, 서경덕 교수 고소

    서경덕(42) 성신여대 교수 등 재단법인 ‘대한국인’ 관계자 3명이 기부 물품을 빼돌린 혐의로 아웃도어 업체 네파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네파가 대한국인 이사장 서 교수 등을 횡령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조사2부(부장 정희원)에 배당했다고 25일 밝혔다. 네파는 의류 유통업체 P사 관계자 2명도 장물취득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네파 측은 고소장을 통해 “195억원 상당의 의류·신발 등 아웃도어 용품을 한국전쟁 외국인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올 3월 대한국인에 기부했지만 서 교수 등이 물품을 P사에 팔아넘겼다”고 주장했다. 대한국인은 지난해 11월 국가정책 홍보를 목표로 국가보훈처 산하에 설립된 재단이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네파로부터 재단이 아웃도어 용품을 기부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단과 네파가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며 “참전용사에게 보내고 남은 용품을 판매한 것은 P사와의 합의에 따른 것으로 안다. 판매 수익도 딴 데 쓰이지 않고 재단 통장에 그대로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네파 측 주장을 반박했다. 서 교수는 미국 주요 신문에 독도 관련 광고를 게재해 일본의 역사 왜곡을 알리는 등 홍보전문가로 유명하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수묵화 그린 한 손… 반세기 걸은 한길

    수묵화 그린 한 손… 반세기 걸은 한길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있는 높이 8m의 거대한 소나무 숲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꺼운 껍질로 몸을 휘감고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간 소나무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 왼쪽으로 같은 크기의 수제 옥판선지에 600년 된 노송 한 그루가 넉넉함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화가들에게 있어 가장 그리기 어렵다는 소나무를 사실적인 묘사와 대담한 구도, 먹의 농담과 속도감 있는 필력으로 담아낸 이는 소산(小山) 박대성(71) 화백이다. “경주에 살면서 자나깨나 소나무를 봐 왔지만 그린 적이 없었어요. 뭔가 자신이 없었고 너무 거대해서 감히 그리지 못했죠. 지난해 솔거미술관 개관을 계기로 이제 한번 도전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큰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경북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에 위치한 솔거미술관에서 소산 화업 50년을 기념해 대표작 80여점을 선보이는 ‘솔거묵향-먹 향기와 더불어 살다’전이 열리고 있다. 1999년부터 경주로 터전을 옮겨 작업 활동 중인 그는 지난해 경상북도와 경주시에 평생 그린 회화 435점 외에 글씨 182점, 먹과 벼루 213점 등 작품과 소장품 830점을 기증했다. 박대성관 1전시실은 경주 남산의 삼릉 옆에 위치한 소산 화백의 화실에서 본 솔숲 풍경을 그린 ‘솔거의 노래’와 마을의 당산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제주 곰솔’ 외에 ‘금강설경’, ‘법의’ 등 대작 4점만으로 채웠다. 먹 향기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온 소산 수묵정신의 진수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풍경 가운데 설경은 단순해도 그리기 쉽지 않은 소재로, 소산은 쌓인 눈의 부분은 붓질을 하지 않고 대상을 표현하는 흥미롭고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지난 개관전에 선보인 ‘불국설경’에 이은 신작 ‘금강설경’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속에서 의연한 금강의 풍모가 사뭇 감동적이다. 2전시실은 경주를 담은 경주 이야기 시리즈를 위주로, 3전시실에선 외금강전도, 정방폭포 등 국내외 명승지를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4전시실은 추사 김정희의 서체와 당나라 명필가 장욱, 마오쩌둥의 칼 날리는 듯한 초서체를 모방해 쓴 작품들, 상형문자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등 서예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극사실적인 채색화를 비롯해 금강의 풍경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걸렸다. 소산은 사연이 많은 화가다. 해방둥이로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통에 4살 때 한쪽 팔을 잃었다. 남은 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붓글씨를 쓰며 필력을 키운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수묵을 기본으로 전통의 창조적 계승에 매진한 그는 1966년 화단에 진출해 19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집중 조명받았다. 1988년 호암갤러리에서 대작 100여점으로 개인전을 갖는 등 한국화에선 보기 드물게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경주엑스포 윤범모 예술총감독은 “대담한 구성과 농묵의 강조, 일필휘지와 섬세한 필치의 조화, 여백의 활용, 변화무쌍한 필법 등이 두드러지는 소산의 수묵은 관점적인 것에 집중하는 전통 수묵과 달리 진경 수묵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소산은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그리지는 못했을 것 같다”며 “스스로 답을 찾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탄력이 붙는다”고 말했다. 스스로 ‘신라인’이라 부르는 그에게 왜 경주 남산에 정착했는지 물었다. 그는 “이보다 나은 곳이 있다면 말해 보라”며 “경주의 기운은 다르다. 이곳에서 신라정신을 새롭게 보듬으며 생이 다할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다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054)740-3990. 글 사진 경주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사회신용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클리포드 더글러스 지음, 이승현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192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신용론’의 창시자가 1924년 쓴 ‘사회신용’ 한국어판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엔지니어로서 여러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노동자들의 소득 총액으로는 상품의 총체를 매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해 사회신용론을 탄생시켰다. 재산·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인 ‘기본소득’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특히 기본소득을 통한 분배 정의의 실현 등 사회신용론이 지향하는 핵심 주장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불황과 공황의 시대에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200쪽. 1만 2800원.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김병로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조선’으로 북한을 읽는다는 말은 북한을 과학적이고 내재적인 분석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가리킨다. 남한은 대한민국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이 있듯이 북한도 조선의 역사와 정체성이 있다. 조선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나름대로 합리적 행동 원칙이 존재한다. 저자는 그 안에 깊은 좌절과 분노, 한국전쟁의 엄청난 피해와 충격으로 자폐적 특질이 형성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전쟁 이후 전시체제 형성(1950~60년대), ‘주체’ 사회주의 체제 구축(1970~80년대), 탈냉전 후 ‘조선’ 사회의 분화(1990~2000년대), 사회 체제의 미래전망(2010~2020년대) 등 4부로 구성된 책은 북한의 폐쇄적 사회체제의 진화 과정을 탐구했다. 532쪽. 3만 2000원. 과학의 망상(루퍼트 셸드레이크 지음, 하창수 옮김, 김영사 펴냄) 우리가 믿고 있는 현대 과학의 이론은 모두 진리일까? 영국 과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대 과학이 ‘착각’하는 믿음 10가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자연법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라는 현대 과학의 믿음에 저자는 ‘모든 것이 진화하는 거라면 왜 자연의 법칙만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품는다. 특히 세상 만물의 근본적인 이치는 이미 이론적으로 설명됐다고 여기는 현대 과학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과학적 사고를 지배하는 신념 체계는 사실 19세기에 구축된 이념에 근거한 신앙과도 같은 행위일 뿐이며 이런 믿음이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대부분 과학자가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 주장이다. 524쪽. 2만 2000원. 태양 아래 모든 것(데이비드 스즈키·이언 해닝턴 지음, 우석영 옮김, 로도스 펴냄) 4월 22일은 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지구의 날’이다. 이 책은 캐나다의 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들이 지구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대처를 담아 자연과 인간이 함께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제시한다. 책은 오늘날 인류의 활동으로 어떤 규모로 생물종들이 멸종되고 있는지부터, 현대도시와 에너지 문제, 경제와 기후변화, 그리고 어류 남획의 현실과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 이야기를 건넨다. 저자들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 단위가 아닌 지역·국제 단위의 조속한 협력이 필요하며 현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로는 지구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336쪽. 1만 6000원. 후쿠시마의 고양이(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1년 3월 동일본 원전 폭발사고 이후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을 촬영해 사진집을 낸 일본 사진작가의 두 번째 책. 동물을 돌보는 마츠무라와 고양이 시로·사비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후쿠시마 모습을 담았다. 마츠무라는 후쿠시마에 자발적으로 남아 동물을 돌보는 사람이다. 사진 속 자연은 마치 원전 폭발이 없었던 것처럼 아름답다. 또 천진난만하게 노는 시로와 사비의 모습도 평화롭다. 그러나 마츠무라와 시로·사비 외에는 어느 한 명 보이지 않는 배경이 후쿠시마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츠무라는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돌보며 끝까지 지켜주며 살아가고 싶다. 버려진 동물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기에…. 104쪽. 1만원.
  • [커버스토리] 여행 가방속 백자 밑바닥 스윽 본다…감정하는 데 10분 “진짜 같은 가짜다”

    [커버스토리] 여행 가방속 백자 밑바닥 스윽 본다…감정하는 데 10분 “진짜 같은 가짜다”

    # 지난 19일 오후 1시 인천공항 문화재감정관실(감정관실). 70대 노인이 작은 여행 가방을 끌고 감정관실로 들어섰다. 일본 출국을 앞두고 소장품의 국외 반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가방에서 신문지로 똘똘 감싼 물품들을 하나씩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신문지를 벗겨 내자 청·백색의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청자상감모자합, 분청사기마상배, 해태형 연적 등 고급 도자기였다. 청자류가 3점, 백자류가 8점이었다. 최태희 감정관실장과 최경현 문화재감정위원이 감정에 들어갔다. 최 실장은 33년간 공항 감정관실에서 근무했다. 1977년 신안 해저 유물 발굴 요원으로 활동하는 등 문화재 감정 권위자로 일컬어진다. 전문 분야는 도자기다. 최 위원은 미술사 전공으로 내로라하는 문화재 감정위원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도자기마다 밑바닥을 스윽 훑어봤다. 순간 최 실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손에 든 청자상감모자합을 유심히 살펴보며 감탄했다. “이야, 모방을 해도 진짜 잘 만들었어.” 감정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모두 반출 가능 판정을 받았다. 재현품이었기 때문이다. 최 위원은 국외로 갖고 나가도 좋다는 ‘감정필증’(비문화재확인서)을 작성해 노인의 여행 가방에 붙였다. 최 실장은 도자기 사진을 한 점씩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사흘 전인 16일 출국장 검색 담당 직원에게서 긴급 호출 전화가 왔다. 엑스레이 검색 과정에서 고려청자 비슷한 게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감정관실은 발칵 뒤집혔다. 최 실장도 호흡을 가다듬었다. 옛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재일교포가 고가의 조선백자를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이었다. 미술품 국외 반출 땐 반출 가능 여부를 감정받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빼내 가려다 엑스레이 검색 과정에서 적발됐다. 재일교포는 문화재 밀반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조선백자는 압수됐다. 서둘러 검색대에 도착한 감정관실 직원들은 청자를 살펴봤다. 청자투각호로, 정교하고 아름답게 빚어졌지만 위작이었다. 최 실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화재감정관실은 우리 문화재의 국외 유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감정관실이 뚫리면 누군가 몰래 소장하고 있을 국보급 문화재들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상 제작된 지 50년 이상 된 모든 물품은 감정 대상이다. 전적, 고문서, 회화, 조각, 도자, 공예, 고고·민속 자료, 근대사 자료 등 문화재로 오인받을 수 있는 물품은 출국 전 반드시 공항과 항만의 감정관실에서 반출 가능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감정관실에서 발급하는 감정필증이 있어야 국외로 해당 물품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 ●“외규장각처럼… 한번 유출되면 되찾기 힘들어” 최 실장은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문화재 피해국”이라고 했다. “문화재는 우리 조상들이 창조해 낸 역사적 산물이자 후손에게 길이 물려줘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도서가 고국 품에 안기는 데 145년이나 걸렸습니다. 한번 국외로 빠져나가면 되찾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수많은 문화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는데 이젠 그런 일이 없어야죠. 학술적, 예술적,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외 반출을 금지합니다.” 감정은 3단계로 이뤄진다. 현장 2인 이상 전문가 감정, 현장 여러 전문가들의 종합 감정, 전국 감정관실 전문가들의 화상 감정이다. 감정은 육안으로 한다. 최 실장은 “전공 분야는 달라도 모두 감정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이라고 말했다. “오랜 감정 경험을 통해 전체적으로 한번 훑어보면 진품 여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전문가 2명이 감정하면 대부분 파악되고, 조금 미심쩍으면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감정합니다.” 인천공항엔 도자, 조각, 회화, 공예, 전적 등 7명의 전문 감정위원이 포진해 있다. 감정 의뢰품 가운데 도자류가 50% 이상으로 가장 많고 서화류 25~30%, 공예품류 15%, 나머지는 전적류다. 도자기는 굽(밑바닥)을 제일 먼저 본다. ‘짝퉁’ 도자기 제작자들이 도록이나 진작을 보고 아무리 기막히게 만들어도 굽은 재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시기 도자기에선 그 시기 굽이 나와야 하는데 굽의 발달 과정을 몰라 적당히 만들 수밖에 없다. “굽은 발굴 현장에서 직접 일해 봐야 그 시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요. 굽만 봐도 진위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굽 다음에 문양, 태토(胎土·흙이 구워져 나타나는 형태), 재질 등의 순으로 봅니다.”(최 실장) 서화는 제시나 발문, 인장 유무를 살핀다. 그것을 통해 작가를 알 수 있어서다. 작가를 파악할 수 없으면 그림 양식을 본다.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등 그림 형식마다 독특한 시대 양식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한 남성이 노안도(雁圖) 한 점을 해외로 가져가려다 반출 불가 판정을 받았다. 노안도는 부부 평안을 상징하는 길상화의 하나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유행했다. 작가 안중식, 양기훈, 조석진 등이 즐겨 그렸다. 최 위원은 “그림과 제시의 서체, 인장 등에서 인위적인 면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면서 “제작된 지 50년이 넘었고 작품의 급도 좋았다. 석정(石亭)이라는 호를 추적하면 작가도 파악할 수 있어 반출 불가 판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서적 거의 진품… 항공우편은 엑스레이 검색 최근엔 중국에서 고서적 수요가 많아 전적류를 국외로 갖고 나가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감정관실은 제작 시기, 초판본·중판본 등 판본, 책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감정한다. 지난 14일엔 한 남성이 시전대전(詩傳大全),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 등 3점을 갖고 나가려다 반출 불가 판정을 받았다. 17~19세기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대대로 물려받으며 밑줄 긋고 방점을 찍으며 공부했던 흔적들을 통해 문화적 측면을 살필 수 있고, 한글 주해 등은 학술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최 위원은 “고서적은 다 진품”이라고 했다. “서원, 향교, 종택 등의 서고에서 누군가 훔쳐 시중에 유통한 고서적들을 구입해 해외로 갖고 나가려다 적발되는 이들이 많아요. 도난품은 장서인을 잘라내 소유주를 알 수 없고, 원소유주는 도난당해도 신고를 안 해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요.” 문화재 국외 반출 통로는 크게 세 가지다. 휴대(수하물 포함), 항공우편, 항공화물(컨테이너)이다. 항공우편 검색은 2011년 강화됐다. 그해 인천공항 국제우편물류센터 엑스레이 검색 과정에서 고서적 9점을 항공우편을 통해 중국으로 밀반출하려던 사람이 적발되면서부터다. 최 실장은 “일선 우체국에서 부쳐도 국제우편물류센터로 오게 돼 있다”면서 “고미술품은 우편으로 보내더라도 감정관실에 들러 감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항공화물은 2014년 일반 도자기와 섞어 문화재급 도자기 7점을 컨테이너에 실어 밀반출하려던 사람이 적발되면서 강도 높은 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감정관실은 1968년 2월 김포공항과 부산 수영비행장에 처음 생겼다. 현재 전국 공항과 항만 18곳에서 문화재감정위원 55명(상근 25명, 비상근 30명)이 근무하고 있다. 비상근 위원은 일반 전문가 중 문화재 감정위원으로 위촉된 비공무원이다. 24시간 근무 체제다. “감정은 어렵지 않아요. 자기 물건을 자기가 갖고 나가겠다는데 왜 감정을 받아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상대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최 위원) “출국자 수가 폭증하면서 업무량도 급증했는데 상근직은 10년째 25명입니다. 부족 인력을 비상근직으로 충원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시급히 개선해야 합니다. 상근직도 정규직이 아니라 전문임기제입니다. 5년마다 신규 채용 절차를 거쳐 임용 여부가 결정되죠. 신분 보장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전문임기제는 일반직 공무원이 수행할 수 없는 특수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프로젝트 성격이 짙은 한시적인 업무를 맡습니다. 문화재감정은 한시적인 업무가 아니라 전문성을 요하는 지속적인 업무입니다. 대부분 박사 학위를 갖고 있고 10년 이상 된 전문가인데 전문가에 걸맞은 처우를 해 주지 않아 아쉽습니다.”(최 실장)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창교 100주년’ 원불교의 오늘과 내일

    ‘창교 100주년’ 원불교의 오늘과 내일

    6대 종단 수장도 참석… 법어 봉정식 등 진행 다음달 1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국내외 원불교 교도 5만여명이 모이는 대규모 기념대회가 열린다. 이에 앞서 오는 25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선 한국의 근현대기에 희생된 영령들을 위한 특별천도재가 벌어진다. 국내 최대 민족종교인 원불교가 창교 100주년을 맞아 2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를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은 19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간담회를 갖고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서 원불교의 창립 이후 소중하게 지켜졌던 정신적 자산과 재조명할 부분에 천착해 향후 1000년을 열어 가는 소중한 기점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이자 대미는 5월 1일 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을 기념대회 기념식. 해외 23개국 500명을 포함한 국내외 원불교 교무 1만 2000명과 교도, 국내 6대 종단 수장, 정·재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 등 5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10개 국어로 번역된 법어 봉정식과 법훈 서훈식, ‘정신개벽 서울선언문’ 선포식을 진행한다. 원불교 개교 100년을 결산하면서 세상과의 소통, 미래를 향한 비전선포를 통해 창교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원불교의 으뜸교훈인 정신개벽 의미를 되살리게 된다고 한 원장은 설명했다. 이 가운데 법훈 서훈식은 소태산 대종사의 초기 제자 9인을 종사로 승급해 성인 추대하는 행사. 정신개벽과 섬김·봉사의 결집 메시지가 응축된 원불교의 이적, ‘백지혈인’(白指血印) 주인공들을 통해 원불교 정신을 반추하는 의미 있는 의식이다. 특히 행사 말미에 선포될 ‘정신개벽 서울선언문’에는 도덕부활과 자리이타 등 원불교 2세기 원불교인의 실천강령과 미래비전이 명확히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25일 서울광장의 ‘해원·상생·치유·화합 특별천도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최근의 세월호까지 근현대 100년간 억울하고 힘들게 죽음을 맞은 이들을 위로하고 아픔에 동행하는 행사. 유족들을 초청한 가운데 이념과 진영 논리를 떠나 한국인 모두의 열린 화합 천도재로 마련했다고 한 원장은 전했다. 이와 함께 28~30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과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선 ‘종교·문명의 대전환과 큰 적공’이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며 2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인류평화와 상생’을 위한 세계종교지도자포럼이 이어진다. 한편 원불교는 기념대회 주간 내내 모든 교도들이 소태산 대종사의 서울 교화 유적지를 순례하는 ‘개벽순례’를 진행하며 지난 1월 22일부터 5월 1일까지의 일정으로 빅워크(스마트폰 걷기 기부앱)에 ‘세상을 위한 화합의 발걸음’이라는 모음통을 개설해 걷는 만큼 기부를 하는 사회공헌 걷기 기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원불교 교도뿐 아니라 모든 대중의 걷기 참여를 통해 모인 기부금은 전액 유족과 공익단체에 기부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新국토기행] 해 뜬다… 동해안 최대 휴양도시도 뜬다

    [新국토기행] 해 뜬다… 동해안 최대 휴양도시도 뜬다

    해 오름의 고장 강원 양양군이 지금의 지명으로 자리잡은 지 올해로 꼭 600주년을 맞는다. 고려시대(1416년)에 양주(襄州)에서 양양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수려한 동해를 끼고 있는 양양은 천년 고찰 낙산사, 조선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의 전설이 있는 하조대, 강원 지역 3대 미항 중 하나인 남애항, 요트의 산실 수산항 등의 관광 명소가 59.57㎞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다. 울창한 산림과 바다, 계곡 등 다채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국내 최고의 힐링과 휴양, 레저의 고장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설악산국립공원에는 오색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고, 서울~양양을 잇는 동서고속도로, 속초~삼척을 잇는 동해고속도로가 교차되면서 양양은 동해안 최대 관광·휴양도시로 뜨고 있다. 양양국제공항도 오는 24일부터 중국 상하이 정기 항로가 다시 열리는 등 활성화되고 있다. 국제도시로, 지역 관문으로 톡톡히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6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전통과 자부심이 고스란히 남아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청정 자연 속 양양군의 속살을 찾아 봄 여행을 떠나 보자. >> 볼거리 ●희망의 서운이 깃든 천년 고찰 낙산사 신라 문무왕 676년 의상 대사가 홍련암에서 기도해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낙산사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과 함께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한 보물 제1723호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보물 제1362호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499호 칠층석탑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낙산사 의상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상서로운 구름과 여섯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바다에서 해가 떠날 때는 온 세상이 흔들리고, 하늘에 해가 오르자 털끝이 보일 만큼 환하다”고 읊었다. 그만큼 낙산사는 일출의 명소이고 희망의 서운(瑞運)이 깃든 곳이다. 2005년 대형 산불로 소실된 뒤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기초로 7동의 주요 전각을 조선시대 초기 사찰의 원형 그대로 살려냈다. 큰 법당인 원통보전 입구에는 한국전쟁 때 소실됐던 빈일루(賓日樓)가 단원의 그림대로 복원됐고 설선당, 정취전, 응향각 등의 건물이 옛 문헌의 기록을 기초로 되살아났다. 웅장한 자태로 다시 태어난 원통보전에는 화재 당시 스님들이 지켜 낸 건칠관음보살과 칠층석탑 등의 보물도 옛모습 그대로 자리잡았다. ●산림 휴양 체험 공간 송이밸리자연휴양림 송이밸리자연휴양림은 2012년 양양읍 월리 일대 46㏊에 조성됐다. 산림휴양관, 숲속의 집, 목재문화체험장,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등 조용히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복합 산림 휴양 체험 공간이다. 임도를 활용한 MTB 코스와 왕복 2시간 코스의 구탄봉 등산로에서 자전거, 트레킹은 물론 짜릿한 집라인(줄을 타고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목재문화를 체험하고 국산 목재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재문화체험장은 건물의 아름다움과 내구성, 내실 있는 운영 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굿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층 체험장에서 운영되는 목재 체험 프로그램은 목재체험지도사의 지도하에 산림 부산물을 활용해 액세서리, 솟대, 보석함 등을 만들어 보는 기초 프로그램과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담은 테이블, 서랍장, 수납장 등 원목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보는 목공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세계문화유산 추진 아이들과 함께라면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제격이다. 오산리선사유적은 남한 신석기 유적 중 최고(기원전 6000년경)의 연대를 나타내며 신석기문화의 전파 및 교류에 중요한 과학적 단서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유물 가운데 오산리형 토기와 오산리형 이음낚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고고학 사전에 등재됐다. 박물관에 전시된 덧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유물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박물관의 자랑거리다. 최근 서울 암사동 유적지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오산리 출토 흑요석을 엑스레이 형광선으로 분석한 결과 그 성분이 남한 일대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한결같이 일본 규슈가 원산지인 반면 오산리 것은 400㎞ 이상 떨어진 백두산이 원산지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6000년 전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천년기념물 지정 주전골 입구 오색약수터 오색주전골에서 흘림골로 이어지는 길은 세속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 내는 아름다운 길이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 번뇌를 물리치고자 한다면 오색의 비경을 담아 갈 일이다. 주전골 입구에 있는 오색약수터는 2013년 물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맛이 짜릿하고 철분 냄새가 많이 나지만 예부터 아픈 곳을 낫게 하고 활력을 찾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인근에 있는 오색온천에서 몸을 담근 뒤 더덕향이 그득한 산채비빔밥을 먹고 나면 그야말로 웰빙이다. 2018년부터는 오색온천 인근에서 오색 끝청까지의 3.5㎞ 구간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게 된다. 장애인, 노약자들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장엄한 설악의 비경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영동 최대 5일장, 양양 전통시장 4일, 9일에 열리는 양양 5일장. 사시사철 시골 할머니들이 나물이며 장아찌, 잡곡들을 장마당에 내어놓고 송천떡마을 부녀회에서는 새벽 일찍 만든 떡을, 임천리 마을에서는 전통 방식의 한과(과줄)를 내다 판다. 요즘 장터에는 봄바람 따라 산나물이 가득하다. 쑥, 냉이, 달래, 참두릅, 개두릅, 명이나물, 취나물, 곤드레, 고사리, 눈개승마, 얼러지 등이 제각기 향을 뽐내면서 입맛을 자극한다. 시장 안에는 갓 잡아 올린 문어, 임연수 등의 생선류와 지누아리, 돌김, 사과, 배 등 양양산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남대천 둔치 쪽에서는 토마토, 오이, 가지, 수박 등의 과채류와 상추, 쑥갓 등의 채소류 모종, 어린나무들을 사고파는 손길이 분주하다. 어디를 가도 맛있고 정감 있는 양양시장의 밥집들과 시장을 가득 메운 먹거리들에서 봄의 원기를 듬뿍 느낄 수 있다. 양양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먹거리 ●명품 황금송이(松栮) 양양의 깊은 산과 울창한 숲, 수십년 된 소나무 아래에서 나는 양양송이는 그 향과 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른 버섯들은 죽은 나무에서 균이 발생해 버섯으로 자라지만 유독 송이는 살아 있는 소나무 뿌리에서 균이 발생해 버섯으로 자라는 것이어서 양양송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2006년에는 양양송이가 생산지의 기후, 풍토 등 지리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계돼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받아 지리적 표시제 제1호로 산림청에 등록되기도 했다. 송이와 한우 등심을 넣어 만든 송이버섯전골은 송이의 향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바다의 맛 자연산 홍합 ‘섭’ 동해에서 나는 자연산 홍합을 ‘섭’이라 부른다. 자연산 홍합은 껍데기가 흑진주처럼 반들거리고 보랏빛이 감돈다. 양식보다 2배쯤 크고 값도 비싸다. 고단백 저지방 다이어트 식품으로, 간의 해독 작용을 돕는 타우린이 풍부하다. 술꾼들이 술 마신 다음날 섭국을 찾는 이유다. 양양에서는 섭을 썰어 넣고 부추, 미나리, 양파, 마늘, 고추장, 된장 등과 함께 끓여낸 섭국을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는다. 기호에 따라 산초를 넣어 먹기도 한다. ●봄 산나물, 양양 산채 양양은 설악산, 점봉산,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악지대여서 다양한 산채가 풍성하게 자란다. 산채 주 생육기인 2~6월의 평균 일조시간이 190시간으로 짧아 부드럽고 향이 진한 게 특징이다. 양양 대표 산채는 참두릅, 개두릅, 명이나물, 취나물, 곤드레, 고사리, 눈개승마, 얼러지 등이다. 요즘은 생채가 많이 나서 가격도 비교적 싸고 푸짐해 한꺼번에 많이 구입해서 말리거나 냉동실에 보관해 놓고 수시로 무쳐 먹으면 일년 내내 봄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남대천에 황어와 뚜거리탕 여름 밤, 더위를 쫓으려 냇가에서 멱을 감고 토속 어종을 잡아 고추장, 막장 풀어 얼큰하게 탕으로 끓여 먹던 추억의 뚜거리탕은 양양의 별미다. 바다와 이어지는 남대천 하구 한계목에는 봄이면 황어가 올라오고 가을이면 연어가 올라온다. 먼바다에서 유영을 마치고 모천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은 봄마다 남대천에서 황어가 한창 상류로 올라갈 때 양양에서 많이들 하는 말이다. 임천보를 뛰어오르기 위해 황어가 떼 지어 있는 광경을 보면 이 말이 실감 난다. 연어와 달리 남대천에 오르는 황어는 그대로 회를 떠서 먹는다. 미나리, 양양 낙산 배, 깻잎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춘곤증은 저만치 달아나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남대천 토속 어종인 뚜거리탕 한 그릇을 비우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 추억과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양양의 봄맛이다. ●동치미 메밀국수 양양 메밀국수는 구룡령이 있는 서면 갈천리와 설악산 화채능선 아래 강현면 간곡리, 둔전리, 장산리 마을에서 많이 먹었다. 섬유질이 많아 옷감 재료로 쓰기도 했던 느릅나무의 껍질을 봄철에 벗겨 말려 뒀다가 곱게 가루를 내 부족한 메밀가루나 옥수수가루와 섞어 눌러 먹었다. 지금은 고기 육수와 동치미 육수 두 가지로 나뉘지만 당시에는 동치미 육수로 먹었다. 양양에는 메밀국수 전문점이 50여 곳 있다. 가장 많이 있는 곳은 장산리 일대로 동치미 메밀국수집 2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봄 햇볕이 따가운 날, 시원한 동치미 메밀국수 한 그릇이면 양양의 맛은 모두 섭렵했다고 할 수 있다. 양양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열린세상] ‘제중원 터’에서 인류 공영을 생각한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열린세상] ‘제중원 터’에서 인류 공영을 생각한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뒤뜰에 가면 백송 옆에 ‘제중원 터’라는 돌판이 하나 서 있다. 1885년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앨런이 고종의 윤허를 받아 서양식 병원으로 개원한 제중원 터의 표석이다. 원래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의사 앨런은 미국 공사관의 공의로 서울에 왔다. 앨런의 입국 후 두 달 만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수구파의 대표이며 민비의 조카였던 민영익은 자객의 칼에 맞아 정맥이 끊어져 생명이 위독해졌다. 당시 조선의 의료 수준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됐으나, 조선 조정의 다급한 요청을 받은 앨런이 어려운 외과적 수술 끝에 민영익의 생명을 살려 냈다. 이로 인해 앨런은 고종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됐고 그의 시의가 됐다. 조선의 열악한 의료기술과 시설을 염려한 앨런은 고종에게 서양식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간청을 했다. 고종 또한 선진 의술의 필요성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이를 허락하고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홍영식의 한성 북촌 집을 하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탄생한 것이다. 1900년 제3대 제중원장 올리버 에이비슨의 호소를 들은 루이스 세브란스가 2만 5000달러를 기부했고, 그 돈으로 당시 서울역 앞 복숭아골에 2층 벽돌 건물의 병원 겸 의학전문학교가 세워졌다. 이렇게 탈바꿈을 한 세브란스병원은 20세기 초 전국에 새로운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 여러 선교사들에게 귀감이 됐다. 36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3년간의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고, 외국 원조 없이는 국민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다. 그 시절을 겪은 많은 분들은 지금도 성탄절 즈음 동네 마당에서 외국인들이 보내 준 스웨터와 전지분유를 받고 좋아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60년 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 규모에서 세계 11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며, 그와 더불어 정치·사회 부문에서도 성숙한 나라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원조를 받기만 하던 나라가 세계 최초로 빈국 및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원조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 국민이 항구적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는 28개국의 개발원조위원회 국가 중 16위 정도이며, 국민총소득 대비 23위에 머무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을 인식해서인지 한국의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앞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국제빈곤퇴치기금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으나 재원 조달 방법을 둘러싼 논란 끝에 입법이 무산됐다. 오늘날 세계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연관돼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는 경제의 장기 침체와 위기를 겪고 있고, 모든 국가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불균형은 확대되기만 하고 위기는 반복되고 있다. 또한 테러나 메르스에서 보는 것처럼 전쟁·전염병 및 공해 등 재앙은 어느 한 국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와 개방도가 높은 나라는 자기만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세계 경제의 침체가 겹쳐 경제가 어렵고 국민의 삶 또한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조선을 의료와 교육제도를 통해 도와주었던 손길들과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의 생존과 경제발전을 위해 1995년까지 원조를 했던 선진국들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느 곳인지 명확해진다. 국회 공청회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당선시키고 재선시키기 위해 국제빈곤퇴치기금을 만들었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며 제중원 터의 표석이 떠오르고 아픈 마음이 드는 것이 비단 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 美·蘇 수소폭탄 도발 또 다른 전쟁의 시작

    美·蘇 수소폭탄 도발 또 다른 전쟁의 시작

    수소폭탄 만들기/리처드 로즈 지음/정병선 옮김/사이언스 북스/1160쪽/5만원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됐다. 그러나 그것은 끝인 동시에 시작이었다.1945년과 1950년 사이 미국과 소련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선 치열하게 원자폭탄에서 수소폭탄으로 이어지는 핵무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긴장과 갈등은 서서히 고조되고 과학자, 군인, 정치가들은 전쟁과 동맹이 뒤엉킨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수소 폭탄 만들기’는 원폭 투하로 2차 대전이 종결된 후 수소폭탄과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를 그렸다. 원자폭탄이 탄생해 일본에 투하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원자폭탄 만들기’(1986)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리처드 로즈가 1000여건의 문헌과 육성 증언을 바탕으로 실감 나게 재구성했다. 책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50년이던 1995년 출간돼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 베스트 1위에 올랐을 만큼 화제가 됐었다. 책에 따르면 수소폭탄은 20세기 후반 미국과 소련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 과학, 군사적 사안들이 충돌·분열·융합해 태어난 결과물이다. 강경파, 매파 정치가와 군인들은 적대국이 할 수 있는 일에 대비해 전쟁 계획을 짰고 과학자들은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폭탄 개발에 뛰어들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이고리 쿠르차토프 등 스타 과학자들과 트루먼, 스탈린, 흐루쇼프, 존 F 케네디, 이승만 등 정치가들이 고민과 고뇌, 공포와 광기, 이데올로기와 지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실명으로 그려진다. 당시 활발하게 진행된 러시아의 첩보 활동과 원폭 개발에 얽힌 숨은 얘기도 다루면서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사실도 폭로했다. 1947년 4월 냉전이 개시됐을 때 미국에는 사용 가능한 원자폭탄이 1개도 없었다는 것, 소련은 1960년까지 미국의 핵폭탄을 이용한 전략 폭격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것,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트루먼은 미군의 합동참모본부로 하여금 9개의 원자폭탄을 괌으로 보내 한반도 또는 중국을 핵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토록 했다는 것 등이다. 로즈는 “핵무기는 국가 주권을 제한해 국제사회의 폭력을 줄이는 바로 그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그런 주권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보호했다”고 말한다. 이 미묘한 균형 틈새를 뚫고 핵 기술은 확산됐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지난 1월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책을 통해 되돌아보게 되는 역사의 진실들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해커집단에 언론사 ‘로그인 정보’ 건넨 美기자 유죄 확정

    해커집단에 언론사 ‘로그인 정보’ 건넨 美기자 유죄 확정

    해커집단에게 특정 언론사의 편집권한을 가진 로그인 정보를 건넸다가 적발된 미국 기자가 법정 공방 끝에 유죄가 인정돼 결국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뉴욕타임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로이터 소속 기자 매튜 키스(29)는 2010년 12월, 8개 신문사와 23개 방송사를 거느린 굴지의 미국 미디어 그룹 ‘트리뷴 컴퍼니’의 서버 로그인 정보를 해커집단 ‘어나니머스’에 제공한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이 기자는 트리뷴 서버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트리뷴 컴퍼니 소유 언론사의 컴퓨터 시스템을 파괴하고 특정 기사의 헤드라인 등을 바꿀 수 있도록 동조한 혐의를 받았다. 어나니머스 소속 해커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홈페이지에 접속해 홈페이지 주요 기사의 제목을 바꾸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트리뷴 컴퍼니는 2010년 12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를 인수했으며, 키스는 트리뷴이 이 언론사를 인수하기 두 달 전, 트리뷴이 소유한 새크라멘토 지역방송 ‘KTXL FOX40’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다 해고된 바 있다. 이 기자는 트리뷴 소유의 지역방송국에서 일할 당시 알고 있던 서버 로그인 권한을 해커집단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스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년 뒤 로이터에 입사했지만 해킹 혐의가 제기되면서 2013년 3월 로이터로부터 해고당했다. 미국 새크라멘토 연방법원 검사는 해킹 공모혐의로 이 기자를 기소했고, 현지시간으로 지난 13일 법원은 그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현지 언론은 “키스와 그의 변호사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어나니머스는 전 세계에 3000명 정도의 회원을 갖춘 국제 해커집단으로,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주요 기관의 홈페이지와 서버를 해킹해 논란이 된 바 있다. 2013년에는 한국전쟁 63주기인 6월 25일을 기점으로, 북한 고위관계자 13명의 신상정보 및 중국에 있는 북한 정보군과 관련한 약 4000개의 IP주소, 북한 군인 20여 만 명의 신상정보를 해킹하기도 했다. AP=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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