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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한미동맹 더 강하게 발전할 것 ”

    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한미동맹 더 강하게 발전할 것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해 첫 공식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있는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기념사를 통해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라며 “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초 제막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우리 대통령이 찾은 것은 처음이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중국군 7개 사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 속에 2주 만에 극적으로 철수에 성공한 전투로, 미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 있다. 이는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케 했고, 당시 1만 4000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문 대통령의 부모도 타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67년 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며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고, 빅토리아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제 부모님도 계셨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2년 후 저는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하다”며 “제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67년 전 자유와 인권을 향한 빅토리호의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며, 저 또한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다.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저는 오늘 이곳에 별칭이 윈터킹(winter king)인 산사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며 “이 나무처럼 한미동맹은 더욱더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며, 통일된 한반도라는 크고 알찬 결실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은 기념사에서 “장진호 전투가 대통령님께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대통령님의 가족은 우리 해병, 특히 해병1사단과 개인적 인연을 맺고 있다”며 “인연을 소중히 여겨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넬러 사령관은 “장진호 전투에 관한 위대한 전설은 불가능을 극복한 최고의 일화로 남아 있다”며 “한미 양국과 국민이 함께하는 동맹을 재확인하고 더욱 공고히 했기에 그런 위대한 유산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미 해병은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이 자리에 문 대통령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늘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라며 말을 맺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경희 여주시장, 미국 윌슨빌서 열린 맥아더장군 동상 제막식 참석

    원경희 여주시장, 미국 윌슨빌서 열린 맥아더장군 동상 제막식 참석

    미국을 방문 중인 원경희 여주시장이 6·25 한국전쟁 67주년 기념 맥아더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고 26일 밝혔다. 원경희 시장과 방문단은 지난 24일 오리건주 윌슨빌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맥아더장군 동상 제막식 현장을 지켜보면서 역사적인 의의를 되새겼다. 이날 동상제막식에는 문덕호 시애틀총영사를 비롯해 한국과 미국의 주요 인사와 동포들이 참석했다. 맥아더장군 동상을 미국에 세우게 된 것은 16년 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한국전 참전비를 오리건주 윌슨빌에 세우는 일을 주도했던 임용근 전 오리건주 상원의원이 한국의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이 안타가워 하던 차에 그 동상을 미국 오리건주로 옮겨올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맥아더 장군 동상을 윌슨빌에 세우기로 하고 여러 해 동안 노력한 끝에 이번에 맥아더장군 동상을 제막하게 됐다. 원경희 시장은 이에 앞서 미국 워싱턴 주 중부도시 시애틀에서 22일 시애틀한인회와 문화 교육 등에 걸친 우호교류협약을 체결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美교과서에 ‘한강의 기적·초고속 IT’ 실린다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처음으로 미국 고등학교 현대사 교과서에 실린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컫는 6·25전쟁 이후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 과정과 정부의 역할, 초고속 발전을 이룬 한국 정보기술(IT)의 역사 등 두 부문이다. 25일(현지시간) 세계역사디지털교육재단(이하 교육재단)에 따르면 최근 미국대학입시위원회(CB)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한국 현대사를 미 고교 교과과정에 반영하기로 확정했다. 한종우 교육재단 이사장 겸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은 “미국이 처음으로 세계사 교육에서 한국에 관한 두 가지 주제를 채택했다”며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바로 알리고 ‘친한’ 감정을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메릴랜드주에 본부를 둔 교육재단은 2012년부터 미 교육기관과 교사를 상대로 한국전 참전용사 디지털 교육자료 제작과 교사 총회 등을 진행해 온 한국전쟁유업재단의 자매기관이다. CB는 미 대학과 기타 교육기관 등 6000여곳이 회원으로 가입된 비영리 교육단체로,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출제와 시행,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과과정 수립과 교육자료 제작 등 한국의 교육부 역할을 하는 곳이다. CB는 이르면 오는 가을 학기부터 고교 상급 세계사 과정에 한국 현대사를 포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육재단은 미국 최대 교원연합체이자 역사교육 커리큘럼 표준을 제정하는 ‘미국사회과학 분야 교원협의회’(NCSS)와 함께 교육자료 제작에 착수했다. 교육재단의 이번 사업은 과거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정부 차원에서 진행돼 온 한국사 바로 알리기 사업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교육재단은 미국의 교육과정과 자료 제작을 담당하는 주체인 민간 재단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하고 CB, NCSS 등과 교섭을 벌여 왔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거주하는 한인 학부모 앤드루 심(43)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국 역사가 한 페이지도 안 나와서 무척 실망했었다”며 “이제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 자녀가 ‘모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시험대’ 강경화 외교… 회담 최종 조율 위해 조기 訪美

    ‘시험대’ 강경화 외교… 회담 최종 조율 위해 조기 訪美

    회담 전 의제 조율 성공적일 땐 외교부 개혁 등 추진력 얻을 듯오는 29~30일로 예정된 첫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회담 최종 조율을 위해 주중에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 장관의 방미는 문재인 대통령의 첫 실전 정상외교인 이번 회담의 성공적 개최는 물론 비외무고시 출신인 강 장관 체제가 연착륙하느냐를 가리는 주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문 대통령이 미국으로 출발하는 28일보다 하루 이틀 먼저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앞서 강 장관은 지난 22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의 첫 통화에서 보좌진을 통해 방미 일정을 조율하기로 합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25일 “조기 방미 일정을 조율하고 있으며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정상회담으로 그 결과가 곧장 다음달 초 열릴 예정인 한·중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은 물론 향후 정부의 주요 외교 일정 전반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북핵,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대형 이슈들이 쌓여 있는 데다가 막판에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 등 변수가 등장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강 장관이 충실히 최종 조율을 마치면 불필요한 변수들은 사전에 제거될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은 강 장관에게도 중요한 도전이다. 인사청문 과정 내내 그에게는 북핵 및 4강 외교 경험이 전무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특히 위장 전입 논란에도 청와대는 정상회담 준비를 이유로 강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이번 회담 결과가 시원찮을 경우 청와대는 물론 강 장관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다시 격해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 반대로 회담이 잘 끝나면 이후 재외공관장 인사나 외교부 개혁 작업의 추진력이 강해질 수 있다. 강 장관은 이날 경기 의정부시 한미연합사단·미2사단을 방문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 장관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군은 용맹하게 싸우며 수많은 불가능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면서 ‘흥남철수 작전’을 거론한 뒤 “수일 후 문 대통령이 워싱턴DC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 계기에 흥남철수 작전의 참전용사 분들을 초청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강 장관은 또 “양국 정상은 우리의 포괄적 전략 동맹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의 전략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다룰 최선의 방안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라며 이번 정상회담의 전망도 전했다. 외교부 장관이 6·25에 맞춰 미군 부대를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글로 죽 가당 보믄 큰큰헌 소낭이 나옵니다게. 그듸서 노단펜으로 돌아상 돌으멍갑서” “알아수다. 온 덴 헌 건 어떵 됨수과?”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강원도 도솔산 고지 쟁탈전에서는 난데없이 이같은 말들이 무선 교신을 타고 오갔다. 암호문 같지만 제주도 말이다. 연대와 대대 등 각 통신병을 제주사람으로 두고 제주어로 교신하도록 하는 ‘비밀 작전’이 있었다. 인민군이 교신을 들어봤자 뜻을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리로 죽 가다가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달려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지원 온다고 한 것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도솔산 전투는 무전기를 적에게 빼앗기는 일로 우리 해병의 작전상의 비밀 유지가 어려웠다. 당시 대대장이던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2008년 3월 국방일보 기고문에서 “몇 대의 무전기를 빼앗겼다고 해서 연대 전체의 통신기를 다 바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며 “우리의 통신 내용을 적이 훤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걱정이 큰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평소 태평양전쟁사를 즐겨 읽었다는 공 전 사령관은 태평양전쟁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군이 인디언 ‘나바호(Navajo)’ 족의 언어를 암호로 이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미 해병대에 배치된 나바호족 인디언 400여명은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유 언어를 구사하며 전령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 대대장은 제주어 교신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후 포대 지원, 병력 이동 사항, 부상병 발생 사항 등 모든 교신이 제주어로 대대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대대로 전달됐다. 당시 해병대의 주축인 해병 3기와 4기생 3000명이 모두 제주사람이어서 제주어로 대화가 가능해 지휘 체계에서 메시지 전달이 수월했다.제1연대 1대대 통신병을 한 강용택(86)씨는 “당시에는 제주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많이 진출하지 않았던 데다, TV 등 미디어가 없어서 제주어를 난생처음 듣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강씨는 “제주어는 ‘~라고 햄쪄’(한다) 등 서술어가 짧고 표준어와 전혀 달라서 무슨 말을 하든 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부의 결정에 따라 중요사항이든 가벼운 사안이든 모든 교신을 전부 제주어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비밀 교신작전은 해병대 역사관에 전시되거나 해병대 70년사 등에 수록되지 않았다. 당시 참전한 장교 등 장병들의 증언은 있으나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작고한 해병대 종군기자인 고영일씨는 해병대 3·4기 전우회가 발간한 ‘인천상륙·서울수복 작전의 주역’에서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적에게 점령되었을 때 염리동의 미군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무선전화기가 적에게 뺏겨 부대 간 통화는 도청됐을 것”이라며 제주 출신 해병대가 작전에 동참한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제주어 교신 작전이 진행됐다고 증언했다. 해병대 역사관 관계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3·4기생 가운데 제주 출신이 많았고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 등 장병들의 증언으로 제주어 교신작전은 사실로 확인됐다”며 “이런 사실에 대한 채록 등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자 문대통령인줄...’… 강경화 장관, 정부 레드클라우드 방문

    ‘여자 문대통령인줄...’… 강경화 장관, 정부 레드클라우드 방문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인 25일 경기 의정부 레드클라우드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두번째)이 토마스 반달 미8군사령관(왼쪽)의 안내로 첨단 무기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아파치 탑승 완료!!’…강경화 장관, 의정부 레드클라우드 방문

    ‘아파치 탑승 완료!!’…강경화 장관, 의정부 레드클라우드 방문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인 2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레드클라우드를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아파치에 올라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서울포토] 강경화 외교부 장관, 6.25전쟁 67주년 경기 의정부 레드클라우드 방문

    [서울포토] 강경화 외교부 장관, 6.25전쟁 67주년 경기 의정부 레드클라우드 방문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인 2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레드클라우드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몸보신하세요~’…강경화 장관, 토마스 반달 미8군 사령관에 홍삼 선물

    ‘몸보신하세요~’…강경화 장관, 토마스 반달 미8군 사령관에 홍삼 선물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인 25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레드클라우드 본청 회의실에서 열린 브리핑이 끝난 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토마스 반달 미8군 사령관에게 선물로 홍삼을 전달한 뒤 함께 웃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6·25 한국전쟁의 숨은 영웅…목숨 바친 경찰들

    6·25 한국전쟁의 숨은 영웅…목숨 바친 경찰들

    6·25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불행한 역사 속에는 또다른 희생자들이 있다. 각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던 수만명에 이르는 경찰도 여러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24일 경찰청은 한국전쟁 기간 동원된 경찰력은 6만 3427명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 1만 859명이 교전 중 전사 또는 실종되거나 북한군에게 납치돼 순직 처리됐고, 698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들 경찰관들은 연합군과 함께 투입돼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르거나 각자 근무하던 지역에서 북한국과 교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1950년 6월 25일 춘천의 내평지서(지구대)에서 근무하던 노종해 지서장 등 9명은 압도적 장비와 화력, 병력으로 공격을 퍼붓는 북한군과 1시간 이상 교전하며 군의 움직임을 묶었다. 이들이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는 동안 국군 6사단은 춘천 남쪽에 저지선을 구축했고 이는 이후 북한군의 춘천 점령 시도를 무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들 9명은 모두 전사했다. 7월에는 호남 지역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의 파죽지세 속에 곡성경찰서 경찰관들이 지역을 지키고자 곡성에 남았다. 상부는 이미 퇴각 명령을 내린 후였다. 이들은 29일 압록교 주변에 매복했다가 북한군을 기습해 완승을 거뒀다. 이에 북한군은 주변 지역에 주둔하던 부대들을 곡성으로 소집해 북한군 2개 연대가 전경대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고, 전경대는 결국 48명의 전사자를 낸 뒤 태안사에서 탈출했다. 같은달 강경경찰서(논산경찰서) 경찰관 220명은 1000여명에 이르는 북한군 부대와 교전했다. 북한군과의 18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서장을 비롯한 경찰관 83명이 전사했다. 강경서 전투는 북한군 주력부대의 호남지역 진출을 지연시켜 낙동강 도하작전에 차질을 빚게 했다. 11-12월 벌어진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매우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다. 이 전투에서는 경찰관 중 자원자를 뽑아 별도로 훈련해 구성한 ‘화랑경찰대’와 ‘소속 미상의 경찰 1개 소대’가 연합군과 함께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참전한 미군 증언에 따르면 이들 경찰부대는 열악한 장비와 무기를 갖고도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최전선뿐만 아니라 후방에서도 경찰들의 활약이 빛났다. 1951년 9월 13일 경남 산청군 일대에서는 빨치산 57사단과 산청군 생비량지서의 전투가 벌어졌다. 빨치산 병력은 1000명, 지서를 지키는 경찰은 100명에 불과했다. 이날 생포된 경찰관 5명과 의용경찰 15명은 다음날 인민재판을 거쳐 목숨을 잃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6·25 전쟁 노병들께 특별한 존경 바친다”

    문재인 대통령 “6·25 전쟁 노병들께 특별한 존경 바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노고를 언급하며 “특별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노병들께 바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67주년 국군·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한 소회를 전하면서 이날 행사에 함께했던 최영섭 씨와 제임스 길리스 유엔참전용사 대표의 사례를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최 어르신은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으로 대한해협 해전에 참전했고 네 아들이 모두 장교로 복무했다”면서 “해군이 된 손자가 부축하고 함께 참석한 모습은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군인 가족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길리스 대표는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고 한국전쟁의 가장 위대한 구출작전 중 하나였던 흥남철수 현장에도 유엔군 일원으로 참여했다”며 “흥남철수로 수많은 이들이 새 삶을 꾸리게 됐는데 그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전쟁의 기억과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전우에 대한 미안함을 나누던 두 분이 늙고 불편한 몸을 일으켜 서로를 포옹하던 순간 많은 참석자가 눈물을 훔쳤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선 젊은 국군용사들,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 먼 곳에서 날아와 희생하신 유엔군들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우리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6·25 특집다큐(KBS1 일요일 밤 8시 10분) 한국전쟁 당시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인 우리나라는 보급품 운반에 최악의 전장이었다. 그러나 험준한 산세를 이겨내고 최전방까지 탄약과 식량을 나른 사람들이 있었다. 지게를 지고 전쟁터를 누빈 한국노무단 일명 ‘지게부대’가 그들이다. 지게부대는 대통령령 긴급명령 제6호 징발에 관한 특별조치령로 소집된 35세에서 45세의 민간인들이었고 30만명에 달했다. 실제로는 10대 소년과 60대 노인도 지게부대로 전쟁에 참여했다. 이들은 45㎏가량의 보급품을 지고 16㎞ 떨어진 고지를 왕복하며 전투 현장에서 활약했다. 군번이나 계급장 하나 없이 참전했던 탓에 주목받지 못하고 기억에서 잊혀진 지게부대. 지게 하나로 전장을 누볐지만 이름 없는 영웅으로 남아야 했던 한국전쟁 승리의 주역 지게부대’ 역사를 발굴·추적한다. ■당신은 너무합니다(MBC 토요일 밤 8시 45분) 윤희(손태영)는 결국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현준(정겨운)을 포기하고 해당(장희진)은 경자(정혜선)에게 현준의 여자로 인정받는다. 지나(엄정화)는 해당과 경수(강태오)가 결혼을 약속했었다고 경자에게 폭로하고, 해당은 성환(전광렬)의 집에서 쫒겨난다. ■미운 우리 새끼(SBS 일요일 밤 9시 15분) 박수홍이 절친한 친구이자 자취 경력 20년 차인 배우인 최대성의 집에 방문했다. 배우 최대성의 집은 일명 ‘대학로 시크릿 가든’으로 불린다. 거미줄 쳐진 천장은 물론이고 갈라진 벽, 오래된 음식물 등으로 가득찬 상상 이상의 쇼킹 하우스가 공개된다.
  • 참전 용사와 이등병 손자… 대 잇는 조국 수호

    참전 용사와 이등병 손자… 대 잇는 조국 수호

    20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수료식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이창우(오른쪽·86)씨가 손자 이하람 이병의 전투복 어깨에 태극기를 달아 주고 있다. 논산 연합뉴스
  • 육군 26사단 창설 64주년 참전용사 열병식

    육군 26사단 창설 64주년 참전용사 열병식

    육군 26기계화보병사단이 19일 경기 양주시 사단사령부에서 사단 창설 64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군용 차량에 탑승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열병식을 갖고 있다. 육군 26기계화보병사단 제공
  • [커버스토리] Goodbye 젊음이여, 안녕…Hello 안녕! 젊은이여

    [커버스토리] Goodbye 젊음이여, 안녕…Hello 안녕! 젊은이여

    공직사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부터 1962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인 만 60세를 맞아 차례대로 대거 은퇴했거나 퇴직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2022년까지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 7만여명이 현직에서 물러난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예고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직사회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 물갈이가 예상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빈자리를 젊은 세대가 속속 메우게 되면 공직 문화도 확 바뀔 전망이다. 18일 인사혁신처,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2년까지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으로 물러나는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은 7만 2646명이다. 국가직 공무원이 2만 1212명, 지방직 공무원이 5만 1434명이다. # ‘일벌레’ 였던 그들이 일을 떠나면… 베이비붐 세대의 퇴진은 2015년 55년생 국가직·지방직 공무원 6577명이 공직을 떠나며 시작됐다. 지난해엔 6416명이, 올해는 8129명이 퇴직한다. 2013년 1835명에 불과했던 정년 퇴직자와 비교해 해마다 3~4배 이상이 현직을 떠나고 있다.광역자치단체의 베이비붐 세대 퇴직은 서울시가 2983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시 2959명, 대구시가 2498명으로 뒤를 잇는다.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다른 광역자치단체들도 수백명씩 은퇴한다. 지난해 민간기업의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되기 전 기업 정년은 55세였다. 즉, 민간 영역에서 베이비붐 세대 퇴직은 7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민간기업에서는 현역으로 남은 베이비붐 세대가 거의 없다. 반면 공직사회는 2008년 정년 60세가 의무화됐다. 공직사회의 베이비붐 세대 퇴장은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붐의 전면 퇴진을 의미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전후 세대의 국가 재건을 이어받은 산업화 세대라는 게 중론이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70년대 산업화 이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까지 오는 데 국가 발전의 엔진 역할을 했다”고 했다. 1987년 공직에 입문해 내년 퇴직을 앞둔 문화재청의 한 간부는 “윗세대인 40년대생은 공직의 기초를 다졌고, 우리는 그걸 토대로 공직 전반이 시스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행정 체계를 완성했다”고 했다. 박재홍 경상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베이비붐는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와 1980년대 민주화라는 이중적 성격의 격동기를 경험한 세대”라며 “굴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우리 사회의 ‘낀 세대’”라고 규정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일벌레’로도 통한다. 공직에 대거 입문한 만큼 치열하게경쟁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한 간부는 “베이비붐 당시 한해 외무고시 출신(12~15회)을 50명 뽑았다. 그 전후에는 20명 정도 선발했다. 밤새워 일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일에 몰두해 성과를 인정받은 분들이 장·차관, 차관보 이상을 했거나 하고 있다”고 했다. 1980년 7월 9급 공채로 서울시에 들어가 내년 퇴직하는 한 공무원은 “집과 사무실만 오가며 일에만 매진했다”며 “가정보다는 일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30년 넘게 몸담은 공직을 떠나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겁이 난다. 가족은 물론 이웃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지내야 할지도 걱정”이라고 했다. # 내년 ‘58년 개띠’마저 물러나면… 공직사회 세대교체는 ‘58년 개띠’ 공직자들이 모두 물러나는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58년 개띠’의 퇴직을 시작으로 5년간 퇴직자 수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특히 58년 개띠는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이다. 58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출생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 사상 처음으로 90만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55년 80만 2342명, 1956년 82만 6454명, 1957년 85만 9056명 등 80만명대를 맴돌던 출생 인구는 1958년 92만 17명을 기록했다. 이후 1959년 97만 9267명, 1960년 100만 6018명 등 출생 인구는 급증했다. ‘사상 첫 90만명 돌파’라는 출생 인구 측면 외에도 58년 개띠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 온 것으로 평가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58년 개띠로, 박씨가 중 3이던 1973년에 서울에서 고교 평준화가 시작돼 ‘특정인을 위한 교육개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이들은 대학 시절 유신정권의 몰락과 광주민주화운동, 5공화국의 탄생을 지켜봤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의 수혜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인 만큼 산업화 세대의 상징처럼 인식되며, ‘386’이라 부르는 민주화 세대와도 성향에서 차별성을 지녔다. 58년을 시발점으로 출생 인구가 폭증한 만큼 공직사회 퇴직자들도 58년생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다. 58년생 국가직·지방직 공무원은 내년에 1만 709명이나 퇴직한다. 베이비붐 첫 세대인 55년생 퇴직자(6577명)와 비교하면 62.8%나 증가한 수치다. 2020년 60년생 퇴직자가 1만 3000명을 넘고 2021년 61년생 퇴직자가 1만 3906명으로 정점을 찍는다. # 서울시 내년 58년생 356명 떠나 전국 자치단체별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시는 내년에 58년생 356명이 물러난다. 2015년 55년생 265명보다 34.3% 늘었다. 2019년 59년생부터 퇴직자가 400명을 넘기 시작, 2022년엔 62년생 487명이 현직을 떠난다. 경기도도 58년생이 112명으로 55년생 75명보다 49.3%, 대구는 286명으로 55년생 167명보다 71.2%, 전남도는 99명으로 55년생 62명보다 59.6%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은 공직 문화의 대전환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상명하복의 폐쇄적인 군대식 문화에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공직사회 체질이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은 40~50%가 ‘스마트 워크’를 하는데 우리는 아직 미미하다. 정보화 기기에 능하고 네트워크상 의견 교환에 친숙한 신세대들이 공직에 진출하면 우리도 ‘스마트 워크’ 협업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부서 간, 기관 간 경계도 자연스레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일선 공무원들의 전망도 비슷하다. 부산시의 한 간부는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사용하는 게 일상이 된 신세대들이 공직사회에서 들어오면 가장 큰 폐단인 문서 위주 보고가 줄어들고 신속하고 빠른 의사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인천시의 한 6급 주무관은 “요즘 새로 들어온 공무원들은 소위 ‘공시’를 통과해서인지 업무 적응력이 빠르고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낸다”며 “베이비붐 세대들이 퇴직하면 아무래도 공무원 사회의 권위적인 문화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사무관은 “나이 든 상사보다는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의전과 격식을 덜 따지는 젊은 상사와 일하는 게 편하긴 하지만 공직은 경험과 관록이 중요한 만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며 “급진적인 세대교체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 16개 시·도 9급 공채 경쟁률 역대 최고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정책은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16개 시·도 9급 지방공무원 1만 315명을 뽑는 공채 시험에 지원 서류를 낸 지망생은 22만 501명으로 역대 지방직 공무원 공채 시험 지원자 중 가장 많았다. 평균 경쟁률은 21.4대1을 기록했다. 현 정부는 올 연말까지 4조여원을 투입해 국민안전, 민생 분야 공무원 1만 2000명을 추가 채용한다. 경찰관과 부사관, 군무원 등 중앙 부처 공무원이 4500명이고 사회복지공무원, 소방관, 교사 등 지방 공무원이 7500명이다. 복수의 정부 부처 관계자는 “신규 인력이 한둘만 들어와도 분위기가 바뀌는데, 젊은 공무원들이 많이 들어오면 공직사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했다. 베이비붐 첫 세대 퇴직 이후 세대교체에 따른 변화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시와 복종’이라는 수직적 구조가 사라지고 업무와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문화도 뿌리내리고 있다. 부산시는 권위주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예전엔 상사의 일방적 지시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토론이나 합의를 통해 정책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 보통 1주일에 3번 하던 저녁 회식도 최근엔 확 줄었다. 부산시의 한 7급 주무관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사가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한 달 전부터 날짜를 조율할 정도로 민주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어 “육아휴직이나 연가, 퇴근 등도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서울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서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서울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한국 현대사 바탕이 된 냉전 체제

    한국 현대사 바탕이 된 냉전 체제

    열전 속 냉전, 냉전 속 열전/백원담·강성현 지음/진인진/448쪽/2만 5000원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총서 시리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중국 5개국 학자 12명이 참여한 ‘냉전-분단 아시아의 탄생:전후 신질서 구축과 사상심리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 10편을 묶었다. 저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냉전 체제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한국 현대사가 겪고 있는 질곡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적인 바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시기에 살포된 전단, 90일간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시기를 묘사한 책자 ‘더 레즈 테이크 어 시티’(The Reds Take a City), 한국전쟁 때 한국과 중국에서 발간된 만화 등을 통해 냉전기 아시아에서 벌어진 사상 심리전을 들여다본다는 점이 흥미롭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제1연평해전 승전 18주년 기념식… “그날처럼 NLL 사수”

    제1연평해전 승전 18주년 기념식… “그날처럼 NLL 사수”

    해군 2함대사령부가 15일 경기 평택사령부 내 안보공원에 설치된 제1연평해전 전승비 앞에서 제1연평해전 승전 18주년 기념식을 열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절대 사수’를 결의하고 있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해군이 연평도 근해에서 우리 함정에 선제사격을 가해 한국전쟁 이후 첫 남북 간에 벌어진 해전으로 우리 측의 대승으로 끝난 사건이다. 연합뉴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춘향이, 오작교를 건너서…남원 광한루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춘향이, 오작교를 건너서…남원 광한루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서정주, 춘향유문中 일부) 6월에 만난 광한루는 한 마디로 울울창창하다. 한여름이 그리 멀리 남았음에도, 벌써 손색없는 녹음을 드리운다. 이러하니 응당 예로부터 광한루를 호남제일루라 이름 붙임에 고개 끄덕여지는 것은 자연스러울 터. 여기에 더해 춘향과 이몽룡의 애틋한 연정담도 펼쳐져 있으니 남원의 광한루는 이래저래 관광객 북적이는 연유가 당연스럽다. 전북 남원의 광한루원(廣寒樓苑)이다. 광한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조선 4대 누각으로 불려진다. 그 중에서 평양의 부벽루는 안타깝게도 현재로는 가 볼 수는 없는 곳이 되었고, 지금의 촉석루는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60년에 복원한 누각이며, 밀양에 위치한 영남루 역시 1844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반면 남원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이기에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또한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호남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지닌 우수하며 독특한 조경양식을 지니고 있다. 처음 광한루의 역사를 만든 이는 명재상 황희(1363~1452)였다. 그가 남원 지역에 유배를 왔을 때 ‘광통루’(廣通樓)라는 누각을 이 자리에 지었다. 이후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신선사상에 의거해 달나라의 정자 , 즉 월궁(月宮)의 ‘광한청허부’라는 누각과 흡사하다하여 지금의 ‘광한루’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 때 불에 타 기초만 남았지만, 이를 기반으로 인조 16년(1638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현재 누각에는 부사 이상억이 쓴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편액이 걸려 있으며 김종직, 정철, 정인지, 강희맹, 백광훈, 이경여 등이 쓴 시를 포함하여 총 83점의 편액이 걸려 있어 광한루 역사의 깊이감을 더해 준다. 한편 광한루 앞에는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호수 속에 3개의 섬이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호남의 도교 사상에 입각한 정원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춘향과 이몽룡이 만났다는 오작교(烏鵲橋)는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돌인 지기석을 넣어 다리를 만들었다는 설정과 더불어 아래 잔잔한 호수 물결은 견우가 직녀를 만날 때 건너야 하는 은하수를 상징한다. 이와 더불어 광한루에는 월매의 집과 더불어, 춘향관, 춘향사당, 완월정 등이 있어 반나절 쉬어 가기에도 안성맞춤인 남원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오랜 광한루의 역사만큼이나 아름드리 굵은 나무와 풍성한 대나무 숲은 더운 초여름의 열기를 식히기에도 제격이다. <광한루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혹여 남원 지역을 들러야 하는 일이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나이 지긋하신 부모님들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천거동78번지)/전화 063-625-4861/남원공용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이용 약 15분 소요 4. 감탄하는 점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조선의 대표적인 정원이라는 사실. 울창한 나무와 그늘.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곳.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이름에 비하여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잦지 않은 곳. 6. 꼭 봐야할 장소는? -광한루, 오작교, 춘향사당, 춘향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새집추어탕(625-2443), 현추어탕(636-5163), 수제 전통 빵집 ‘명문제과’(632-0933), 짬뽕‘경방루’(625-2325), 삼겹살 ‘진고개식당’(625-8671) /지역번호 063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gwanghallu.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지리산 둘레길, 혼불문학관, 국악의 성지,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광한루는 우리나라 대표 조선의 정원이다. 또한 호남 특유의 신선사상과 어우러진 풍류 정신이 남아 있는 곳으로 춘향전의 배경이기도 하다. 한 번은 방문해 볼 만한 곳임은 분명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촌, 사람을 품다’ 편이 지난 3일 서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투어 참가자 30여명은 이날 10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를 출발, 통의동 백송터-동양척식주식회사 관사-겸재 정선 생가터-청와대 무궁화동산-우당기념관-벽수산장터-노천명 가옥-윤동주 하숙집-수성동 계곡-이상의 집-통인시장-이상범 가옥-배화여대 캠벨기념관-필운대 등 순으로 2시간 30분에 걸쳐 서촌의 골목 골목을 누볐다. 이번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청와대 무궁화동산, 우당 이회영선생기념관, 노천명 가옥, 이상의 집, 통인시장, 캠벨기념관 등 모두 6곳이다.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지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찍힌 빨간색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쓴 참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햇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나 손목, 가방에 스카프를 맵시 있게 장식하며 멋을 냈다. 해설자 한세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구수한 입담에 탄성을 내뱉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스는 길고 시간은 짧다 보니, 한 해설자는 지름길을 찾아 꼬불꼬불한 서촌 골목길을 내질렀고, 일행은 선두에 따라붙느라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부부, 친구, 자매 등 젊은층이 주를 이뤘고, 일본인 여성도 동행해 ‘장안의 핫플레이스’ 서촌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고 갈파했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집이 그 사람을 존재케 한다는 뜻이다. 거주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집에 대한 관념이 이전처럼 그리 절대적이진 않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촌의 형성사를 알면 애정도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서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을 좀 아는 사람은 ‘북촌보다 서촌’이라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작위적인 북촌에 비해 격은 좀 떨어지지만 서촌의 편안함에 점수를 더 얹는 식이다. 서촌에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중류사회의 서울토박이들이 많이 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봐도 화려한 삼청동, 가회동보다 소박한 옥인동, 통인동에서 오히려 ‘한국을 더 많이 느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골목마다 만갈래 사연과 곡절 숨어 서촌의 이 같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투어 참가자들에게 물어보니 북촌은 사대부와 벼슬아치 같은 지배층이 살았고, 남촌에는 퇴락한 선비들이 산 반면, 인왕산 아래 서촌에는 궁이나 관청일을 보는 아전(衙前)계층이나 고관대작의 일을 봐주는 겸인(?人)같은 중인 이하 서민층이 산 동네로 알고 있었다. 서울 걷기 열풍이 불면서 해설자들이 알려준 판에 박힌 답변이기도 하다. ‘오래 묵은 도시’서울의 정체성을 단숨에 설명하기 쉽지 않고, 뾰족한 답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서울의 역사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주는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녹아있는 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도시가 안고 있는 기억이 도시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촌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거대한 실타래’ 같다. 골목골목마다 천 갈래 만 갈래의 사연과 곡절이 숨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서촌의 모습 바뀌어 인왕산 기슭 서촌에 대대로 서울의 서민층이 살았을 것이라고 알았다면 그것은 오해다. 조선 초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최고 권력의 핵심 배후지였다. 북촌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의 부산물이다. 월남한 피란민과 일거리와 학교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지방민이 무작정 정착한 결과 반세기 만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 서촌의 또 다른 지명인 웃대(상촌·上村)는 경복궁 서쪽 인왕산에서 흘러내린 백운동과 청풍계의 물줄기가 수성동천, 옥류천과 합류하는 위쪽을 말한다.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왕족 이외엔 거주가 불가했다.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의 잠저가 통인동(옛 준수방)에 있었다는 얘기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태종의 집도 그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방원과 왕위를 다툰 배다른 동생 무안대군 방번의 옛집도 자수궁터(옥인동 군인아파트)였다. 퇴위한 정종은 사직단 근처 인덕궁에서 머물렀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수성동 계곡에 있었고, 효령대군이 비운에 간 조카의 집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버린 뒤 세도가와 중인층이 야금야금 틈입했다. 서촌은 광해군의 잊혀진 영토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왕기가 있다’며 경덕궁(경희궁), 인경궁(사직동과 내자동 일대), 자수궁 등 인왕산 아래 3곳에 3개의 왕궁을 짓느라 민가 수천채를 허물고 공사를 일으키는 바람에 인조반정의 원인을 제공했다. 누각동, 누상동, 누하동이라는 지명은 이때 지은 궁궐의 누각에서 비롯됐다. 답사단이 처음 찾아간 통의동 백송터는 영조가 태어난 창의궁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간 무려 247번 이곳을 참배, 바느질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 인왕산이 백악산과 이어지는 기슭인 지금의 청운동과 효자동, 궁정동은 장동 김씨의 옛 터이다. 안동 김씨 서울파인 장동 김씨가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누린 세도정치의 산실이다. 답사단은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는 겸재 정선의 옛 집터와 그 집터에 세워진 자화상 ‘독서여가도’ 동판비를 둘러보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사치를 누렸다. 300여년전 겸재가 인왕산을 바라보던 바로 그 앵글이다. 한 지도사는 인쇄해 온 한성부 지도와 인왕제색도를 일행에게 나눠줘 이해를 도왔다. 장동 김씨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장동팔경첩도, 인왕제색도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다음 코스 궁정동 무궁화동산은 장동 김씨의 영화를 있게 한 김상용·김상헌 형제의 집터이다. 척화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가 새겨진 시비와 궁정동 안가, 효자동에 살았던 시인 박목월의 연애담으로 귀가 즐거웠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 터에 세워진 국립 농학교와 맹학교를 지나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만났다. 인왕산의 또 다른 이름 필운대의 주인 백사 이항복의 직계 11대손이다.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독립운동을 떠난 우당과 육형제를 기리는 기념관이 서촌 신교동에 자리잡은 것은 사필귀정이다.서촌 분위기를 깨는 유리건물 GS남촌리더십센터 고갯길을 내려가면 옥인동47번지 옛 벽수산장이 나타난다. 한때 이 땅의 주인이 서촌의 주인인 시절이 있었다. 장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고종 대의 외척 여흥 민씨에 이어 순종 대의 외척 해평 윤씨 등 조선 말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의 권력 각축장이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정하려던 무학대사를 물리친 정도전의 후예들이 지향한 신권(臣權)정치의 무대였다. 왕의 산, 인왕산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권을 윽박질러 당파정치, 외척정치, 세도정치를 일삼는 바람에 사화(士禍)와 반정(反正)이 되풀이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조선 권력의 배후지, 매국노가 삼켜 인왕산 기슭에서 사직단 북쪽을 일컫는 서촌은 조선초기부터 권력의 배후지이자 왕족의 세거지로 금역이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잠룡들의 사저이자 왕위에서 배척당한 왕족의 도피처였다. 성종 이후 사대부 세력이 조금씩 틈입해오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통제가 풀렸다. 장동 김씨, 남양 홍씨, 기계 유씨를 비롯한 경화사족들이 청풍계와 백운동, 옥류천을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의 뒤를 따라 천수경을 위시한 중인들이 필운대와 인왕산동을 오가며 송석원시사를 열었다. 이들이 이룬 중인문화가 서촌의 한 축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친일 매국노들의 독무대였다. 옥인동의 절반인 2만평이 윤덕영의 차지였고, 이완용도 옥인동 19번지 4000평을 매집해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다. 둘 다 팔지 못할 것(나라)을 팔아서 갖지 못할 것(서촌)을 차지하고 아방궁을 지었다. 옥인동 윗동네는 윤덕영, 아랫동네는 이완용이 나눠 지배했다. 중인문화가 꽃피었던 옥류동 계곡 전체가 개인 사유지가 됐다. 지금의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 이후 두 집의 필지를 분할한 수많은 작은 집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송석원의 역사는 곧 서촌의 역사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3대 세도정치를 편 장동 김씨에게서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여흥 민씨에게 넘어갔다가, 순종효황후의 큰아버지 해평 윤씨 윤덕영이 벽수산장을 지어 소유했다. 한국전쟁 시기 서울을 점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사로 사용됐고, 미군과 유엔청사로 차례로 쓰였다. 프랑스풍 조선 최대의 건물, 벽수산장은 1966년 화재로 불탔고, 1973년 철거됐다. 유일한 증거가 박노수미술관이다. 청전 이상범의 제자 박노수는 집과 작품, 소장품 1000여 점을 종로구청에 기증했다. 진정한 서촌사람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정답 없는 과제하는 아이들… 수업 눈빛이 달라졌다

    정답 없는 과제하는 아이들… 수업 눈빛이 달라졌다

    대구 경서중 ‘교과 통합’ 총리賞 5분짜리 조부모 인터뷰 동영상 기록유산 배우고 영어 자막 붙여 층간소음 연구 등 수업 다양해져 대구 달성군 옥포면 경서중 2학년 학생들은 올 3월 특이한 과제를 받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5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오라는 것.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신 학생들은 근처 경로당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5분짜리 인터뷰지만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야 했고, 처음 해 보는 인터뷰여서 학생들은 적잖이 당황했다.등 떠밀려 마지못해 진행한 인터뷰는 그러나 학생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로 이어졌다. 지루할 줄만 알았던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이 재밌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할머니께서 어릴 적 바닷가에 사셨던 이야기와 그 지역에만 있는 ‘이월’이라는 명절에 대해 말씀해 주셨어요. 책에도, 인터넷에도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머니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어요.” 이 학교 학생 박나경양의 말이다. 박양을 비롯해 2학년 전교생 61명은 이렇게 한국전쟁 이야기, 마을 역사에 얽힌 이야기, 조부모의 학창 시절, 군대 이야기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수업은 경서중 교사들이 올 2월 모여 만든 교과 통합 프로젝트로, 지난 1학년 2학기 자유학기제 수업 이후 연결되는 ‘포스트 자유학기제’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조부모에 대한 인터뷰는 200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메모로’(기억의 은행)에서 착안한 국어 수업이다. 역사 수업에서는 ‘기록문화유산’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배웠다. 기술 수업은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에 영상편집 프로그램으로, 음악은 어떻게 넣고 자막은 어떻게 입히는지 위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영어 수업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인터뷰를 영어로 번역하고 이를 영어 자막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이렇게 만든 61개 영상을 메모로 사이트에 올리는 것으로 이번 달 수업을 마무리한다. 수업을 설계한 나혜정(38) 국어교사는 “수업을 어떻게 바꿔 볼까 교사들이 아이디어를 내 만든 수업인데,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 반응도 좋았다”면서 “자유학기제를 진행하며 새로운 수업 아이디어가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14일 조부모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교과 통합 수업 ‘세상과 나누는 각양각색 이야기, 우리로 성장하다!’로 1등 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은 경서중 수업 사례를 비롯해 교과수업개선 부문 사례 20편, 자유학기활동 부문 16편, 학교 교육과정운영 부문 11편 모두 47편을 ‘자유학기제 실천사례 연구대회’ 우수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미니 광섬유 조명 등 전기회로를 이용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든 경기 중원중 등 입상작 46편의 연구자 101명은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교육부는 수상작들에 대해 “지난해에 비해 자유학기제 기간 다양한 수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예컨대 서울 문현중은 ‘소통’, ‘재판’, ‘애니메이션’ 등을 주제로 과학과 미술, 국어와 사회 등 교과 간 융합 수업을 하고, 수업 연구 동아리에 모든 교사가 참여해 매월 정기모임을 열어 수업 동영상을 제작했다. 이 밖에 ‘무료 실내화 대여소 운영’, ‘층간소음 실태 연구’ 등 생활 속 주제를 선정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기 시흥중 사례도 주목받았다. 입상작은 올 8월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릴 ‘자유학기제 수업콘서트’에서 발표된다. 연구대회 네트워크(에듀넷-티클리어)와 교육부 자유학기제 사이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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