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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개혁시민연대‘신문사주 비리와 소유구조 개혁’토론회

    최근 ‘중앙일보 사태’로 신문사의 소유구조 개선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 가운데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상임대표 김중배)는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문사주 비리와 소유구조 개혁’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갖고 관련된 문제를 집중토론했다.이날 광운대 주동황 교수와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인 김영호 언개연 정기간행물법 특별위원장이 ‘중앙일보 사태의 본질’,‘신문사주 비리와 소유구조 개혁’을 각각 발표했으며 이어 신문사노조위원장들과 언론관련단체 관계자,언론학 교수 등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첫 발제자로 나선 주 교수는 “중앙일보 사태는 사주의 비리가 밝혀져 사법처리되자 중앙일보가 강력대응함으로써 사주의 언론지배구조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홍사장의 구속은 무엇보다도 ‘언론’이라는성역을 허물었고,따라서 시민단체와 여론조사의 지지를 받았다”면서 “연일 ‘언론탄압’을 외치는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반성하는 태도없이 지면을사유화해 설득력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앙일보가 당시에는 굴복했다가 지금에 와서 정권의 언론탄압을 밝히는 것도 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면서 “특히 홍사장 탈세비리와 ‘부당한 언론간섭’은 별개라는 양비론은 중앙일보의 사주비호를 간과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중앙일보의 신문지면 뿐 아니라 소속 언론인들의 대응은 사주의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언론사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사주가 편집권에 간섭하지 않도록 경영과 편집을 분리시키는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호 특별위원장은 “최근 일부 신문사 사주들의 각종 불법·탈법행위가잇달아 터져 언론의 신뢰성이 위기를 맞았다”면서 “중앙일보가 사주의 구속에 대해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1인 체제의 소유구조에서 사주가편집권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확인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조선,중앙,동아,한국일보 등 4개 족벌신문이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독점하면서 신문사주들의 가치관이 여론을 지배해왔다”면서“족벌신문의 독점적 소유형태에서는 자본과 편집의 분리가 불가능해 사주가 편집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재벌,족벌신문은 차입경영과 무모한 사업확장 등 재벌이익을극대화해왔고 그결과 IMF를 초래하는데 일조했다”고 강조하면서 “편집권의 독립을 통해 공정보도를 실현하려면 사주 및 그 관계인에게 집중돼있는 지분한도를 낯춰 소유분산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특위장은 “몇몇 신문사가 여론을 주도하는 현 언론체제에서는 진정한여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와 법제화를 통한 정부의 타율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언개연이 재벌의 소유지배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간법 개정을 입법청원한 것과 지난 6월 신문개혁위원회를 제안한 것 등 언론개혁을 외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일보 신학림 노조위원장은 “언론사주의 비리는중앙일보뿐 아니라 족벌신문 모두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정부는 언론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불공정경쟁 등 기업으로서 언론사가 잘못하고 있는 문제들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민주언론시민연합 임상택 사무총장은 “언론사도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시민단체들은 재벌언론의 잘못을끊임없이 지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중앙일보 사태를 계기로 재벌언론의 소유구조를 제도적으로 바꿔나가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서울시문화상 12명 발표

    서울시는 7일 올해 서울시문화상 수상자 12명을 선정,발표했다. 14개 부문에 걸쳐 서울의 문화발전과 문화예술 진흥에 기여한 시민에게 수여되는 서울시문화상(상금 1,000만원)은 올해 모두 51명이 후보로 올랐으며지구환경과학 및 영상 부문에서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시상식은 서울시민의 날인 오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부문별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인문사회과학 김안제(金安濟)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기초과학 최병두(崔柄斗) 서울대 명예교수▲생명과학 김성훈(金聖勳) 성균관대 교수▲문학 홍기삼(洪起三) 동국대 교수▲미술 하종현(河鐘賢) 홍익대 교수▲음악 안숙선(安淑善) 국립창극단장▲공연 황문평(본명 黃海昌) 한국연예협회 명예이사장▲교육 김귀년(金貴年)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언론 이문희(李文熙)한국일보 상임고문▲출판 전병석(田炳晳) 문예출판사 대표▲건설 유복모(柳福模) 연세대 교수▲체육 김상겸(金相謙) 고려대 교수김재순기자 fidelis@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7)한수산 ‘욕망의 거리’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 한수산은 이듬해에 장편 ‘해빙기의 아침’으로 한국일보에 입선,그 4년 뒤인 1977년에는 서커스 인생을 그린장편 ‘부초(浮草)’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여 70년대 후반기의 팍팍했던 문학적 갈증을 풀어준 인기작가가 되었다.이 무렵에 성행했던 세칭 호스티스 문학으로부터 전환점을 마련한 ‘부초’는 ‘갈보같은 세상에 청순한여인’의 환상을 불러 일으켜 이 작가를 선풍적인 인기로 몰아넣었다. 인기 절정 속에서 작가 한수산이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건 1979년이었다.이역사적인 일대 격변 속에서도 중산층의 감성적인 작품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급증하여 그는 중앙일보에다 1980년 5월1일부터 ‘욕망의 거리’란 장편소설을 연재하게 되었다.한수산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작품의 개요와 포부를 밝혔다. “70년대에 30대를 맞은 사람들.그들의 얼마쯤은 남의 나라 땅에서 피를 흘리며 20대의 나이를 살았습니다.또 누구는 뼈마디 굵은 손을 움켜잡고 바다를 건너 일터를 찾아 떠나기도 했습니다.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일 수도 있었고 또 누구에게는 오욕이기도 했던 저 10년.그 시대의 날금 위에다 진솔했던 한 세대의 청춘이 가졌던 비극을 씨금으로 얹으려 합니다.”제목처럼 서울은 60년대의 ‘만원’(이호철의 유명한 장편 ‘서울은 만원이다’를 상기)의 시대를 지나 ‘욕망의 거리’로 탈바꿈한 지 오래였다.그 욕망의 추적 장치로 작가는 민세희라는 미모의 여인을 내세웠다.그녀의 이력서는 70년대적 욕망의 상징에 썩 어울릴만하다. 소설의 첫 회는 민세희가 졸부의 아들과 호텔에서 벌이는 정사로 시작된다. 남자는 외국으로 떠나야할 처지여서 이별의 정사를 끝낸 뒤 혼자 빗길을 달리다가 사고로 죽고 만다. 아파트를 제공해 주면서 동거하는 남자를 비롯한 뭇 남성들 속에서 그녀의심장을 파고든 상대는 조태호 영화감독뿐이었다.한때 단역을 맡았던 인연으로 알게된 조태호에 대한 세희의 마음은 세속적인 사랑과 예술적인 소망이겹쳐진 지고의 애정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녀에게는 제대후 복학한 동생 경태와,지방신문사에 다니는 정우가 있다.경태는 입대전 애인의 변심을 보고 용약 매진하는데,대기업을 버리고 군소 무역회사에 들어가 자기능력 개발에 진력하여 외국업무까지 파악한 뒤 독립업체를 만드는 걸 그 목표로 삼는다.형과는 달리 정우는 투옥 당한 은사에게면회를 가는 등 사회문제에 몸을 던져 지방신문 기자가 되는데 결국 자신이투옥 당하고 만다. 이쯤 하면 세 남매가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70년대의 한국 사회상을 조명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서 세희의 역할은 경태가 그토록 추구해 마지않는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뒤 한국 남성들은 어떻게변모하는가를 미리 보여주는데 있다고 하겠다.세희는 회사일을 두 아들에게맡기고 은퇴하여 일본에서 주로 지내는,상처한 박회장의 후처로 들어앉는다. 세희보다 두 살이나 많은 박회장의 딸 난주가 찾아와 그녀의 비윤리성을 강변하지만 이건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그녀는 소장수와 백정을 소재로 다뤄일약 인기감독이 된 조태호의 아이를 임신하여 나름대로의 삶을 설계해 나간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대충 이런 줄거리인 소설이한창 무르익어 갈무렵한수산 필화사건이 터진다.누가 봐도,작품내용이나 작가 자신에게,또는 연재매체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이 소설의 필화 전말은 대체 어디일까. [任軒永 문학평론가]
  • [매체비평] 다시 도진 ‘외신 사대주의’

    한국언론의 ‘고질병’ 하나가 다시 도지고 있다. 이른바 ‘외신 사대주의’다. 지난달 30일부터 연일 국내신문·방송에 보도되고 있는 ‘노근리사건’속보기사도 그중의 하나이다.미국 AP통신 보도로 알려진 이 사건에 관한 기사는 이미 5년전 국내에 실태가 공개된 것으로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다만 그동안 국내 유수의 신문·방송들이 이를 외면해오다가 외신이 떠드니까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양’ 덩달아 떠들고 있는 셈이다.한국언론의 해묵은 병폐 가운데 하나인 ‘외신 사대주의’라고 하겠다. ‘노근리사건’이 외부에 처음 드러난 것은 민주당시절인 60년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낸 것이 계기였다.그러나 미군측의 기각으로 역사의 미궁속으로 빠졌다.이후 이 사건이 대중에 공개된 것은 정은용(鄭殷溶·76)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장이 94년 4월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실록소설을 출간하면서 부터다. 당시 이 책을 주목한 언론은 ‘한겨레’가 유일했다.‘한겨레’는 정씨와마을주민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그해 5월 4일자로 싣고 7월 20일자에는 다시집집마다 ‘떼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스케치기사로 실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취재는 월간 ‘말’지로부터 시작됐다.국내언론이 이 사건를 별로 주목하지 않은 것은 일간지가 아닌,월간지가 사건을 다룬데 대한 의도적 폄하였는지도 모른다.‘말’은 그 해 7월호에 ‘6·25참전 미군의 충북 영동 양민 300여명 학살사건’이라는 현지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조명하였다. 2년 뒤인 96년 MBC는 ‘말’의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시사고발프로 ‘2580’에서 다시 재조명하였다.그러나 이후로는 국내 어떤 언론도 이 사건을 주목하지 않았다.다만 ‘말’이 금년 6월호에서 ‘미 제1기병사단 병사들 마침내입 열다’제하의 기사로 다시 속보기사를 실었을 뿐이다. ‘말’은 이 기사에서 유족들의 증언을 입증할 수 있는 당시 미군측의 작전일지를 입수,보도함으로써 이 사건이 미군들의 ‘의도적 소행’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이번 AP통신의 보도는 결국 ‘말’의 자료협조를 토대로 여기에당시 미군들의 증언과 비밀해제 문건을 추가한 정도라고 할수 있다. AP 보도로 국내언론에 ‘역류된’ ‘노근리사건’ 보도는 한마디로 한국언론의 ‘몰역사성’과 ‘외신 사대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 하겠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한겨레’의 보도는 단연 돋보였다.‘한겨레’는 9월30일자에서 이를 1면톱과 해설기사, 이튿날 10월1일자에 다시 종합면 전면기사로 다뤄 이 사건이 ‘역사적 숙제’임을 강조하였다.특히 10월 2일자에는베트남전 당시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밀라이사건’을 소개하고 이 사건을 그에 못지 않은 사건임을 밝혔다. 반면 조선·동아·중앙일보를 비롯,여타 신문들은 사회면의 화제성 기사 정도로 취급하는데 그쳤을 뿐이었다.다만 한국일보가 발빠르게 재미사학자 방선주 박사의 기고를 받아 내용 가운데 일부를 1면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했다.중앙일보의 경우 9월 30일자 제2사회면 박스기사에서 “‘노근리 사건’의 진상이 미국 AP통신의 추적 취재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다”며 이 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무관심과 무지를 드러냈다.AP측의 태도도 문제는 있다.그동안 국내 월간지와 방송에서 보도한 내용은 싹 빼버린 채 마치 자신들이 최초로 단독 발굴,보도한 것인 양 떠들어댄 것이다. 정운현 특집기획팀 차장 jwh59@
  • [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朴正熙와 金大中(2)

    1970년 3월 17일 한강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전 정인숙(鄭仁淑)은 1년정도 미국에 체류했다.아들까지 낳은 정인숙이 도처를 다니며 청와대를 들먹이는 등 말썽을 일으키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정인숙 모자를 미국으로 보낸것이다. 정인숙 모자는 워싱턴 16번가에 있는 ‘우드너’라는 아파트와 같은 호텔에한달 반동안 살다가 뉴욕으로 옮겼다. 당시 뉴욕에는 미국남자와 결혼한 한국여성들의 모임인 ‘한미부인회’라는 모임이 있었다.정인숙의 화류계 친구중에도 한미부인회의 회원이 있어 정인숙도 모임에 한두 번 나왔는데 그때정인숙을 본 기억이 있다.예쁜 얼굴의 젊은 여인이 모자를 쓴 남자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목소리가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남자같은 음색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자신을 ‘미세스 박’이라고 소개했다.내가 물었다. “남편은 무슨 일을 합니까?” “재일교포 사업가예요”. 나는 그때 그 남자아이가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바로 정일권이었다.정인숙이 죽고난 뒤 ‘워싱턴 포스트’의셀리그해리슨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그는 ‘정인숙사건’을 취재중이었다.한국신문에는 어차피 실리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취재원을 밝히지말 것을 전제로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며칠후 ‘워싱턴 포스트’ 1,2면에는 ‘한국의 크리스천 킬러 스토리’라는제목으로 셀리그 해리슨이 쓴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크리스천 킬러’란 미모의 한 영국 고급창녀가 남성편력을 계속하다가 살해당한 사건을 가리킨다. 71년 3월4일 ‘프리덤 볼트 오퍼레이션(한미공수기동훈련)’ 취재차 나는이 신문을 들고 서울에 갔다.‘프리덤 볼트 오퍼레이션’은 ‘팀스피리트’의 전신이랄 수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다.오산공항을 거쳐 숙소인 조선호텔에 도착했을 때 정일권의 비서 김종하(金鍾河·전 신아일보 편집부국장)가나를 찾아왔다. “총리께서 문 기자님이 오신 것을 신문에서 보시고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 정일권의 특징중 하나는 자신의 주변사람들을 잘 챙기는 것이다.특히 자신이 주미대사 시절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워싱턴에서 돌아오면 마지막까지 보살펴 출세길을 열어준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이들을 속칭 ‘워싱턴클럽’이라고 했다.나야 ‘워싱턴클럽’과 관계가 없었지만 정일권은 61년 주미대사 시절 안면을 익혔다고 해서 내가 한국에 가면 종종 ‘워싱턴클럽’의 식사자리에 나를 부르곤 했다. 이처럼 한국에 가면 정일권으로부터 종종 초대를 받았지만 71년 당시만은나를 만나자는 이유가 정인숙사건 때문이란 것을 직감했다.정일권이 워싱턴포스트 취재원이 나라는 것을 짐작했을 것 같았다.나는 나대로 정일권을 만나 진상을 추궁해볼 작정으로 약속장소로 갔다.잠시후 정일권이 측근 한 사람과 나타났다.그런데 앉자마자 뱉아낸 정일권의 발언이 걸작이었다. “문 기자,나는 정인숙과 딱 한번 같이 잤는데 그 아이가 내 아들일 리가없소.나는 이미 불임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몸이오” 아마 요즘 정치인들 같으면 사실이야 어떻든 “나는 정인숙과 관계가 없다”고 딱 잡아뗐을 것이다. “딱 한번밖에 안 잤다”고 변명하는 정일권의 태도를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가군대시절 “야,야”하고 부르던 박정희에게 “각하”,“각하”하면서 끝까지미움을 사지 않고 그 그늘 밑에서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유들유들한 성격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제의 ‘워싱턴 포스트’를 들고 그 길로 정일권의 부인을 만나러 갔다.그녀와 나는 정일권이 주미대사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지금까지내가 만난 여성들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조선여인상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서슴지 않고 정일권의 부인을 꼽을 것이다.나는 들고 간‘워싱턴 포스트’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 사건 아세요?”.정 총리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이 집에 시집와 아들을 못낳은 죄로 우리집 주인이 어디서든 아들을 낳아 오면 받아들이려고 해요.그래서 우리 주인에게 신문에 난 그 아이가당신 혈육이라면 호적에 올리자고 했는데 우리집 주인이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장기영(張基榮·전 한국일보 사주·작고)씨 하고도 의논했어요.장기영씨가 ‘그분이 공직자라 곤란해서 그렇다면 일단 내 호적에 넣어주겠다’고도했는데 본인이 한사코 아니라고 하니 난들 어쩌겠습니까?” 70년대 후반 정일권의 이 현숙한 부인은 세상을 떴다.얼마후 정일권은 재혼을 해 새로 장가든 부인과의 사이에 3남매를 두었다.“불임수술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았는가”하고 따져보고 싶었는데 정일권 스스로 제 발이저렸는지 “불임수술을 풀었다”고 변명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정인숙의아들 정성일(鄭成一·32)은 90년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정일권에게 자기를아들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정일권은 비서를 시켜 4,000만원을 전해주고는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정성일은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까지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 칼럼] 탈선언론의 형이하학

    언벌(言閥)은 군벌·재벌과 더불어 군사독재가 남긴 잔재다. 군벌이 김영삼정권에 의해 하나회 해체와 함께 청산되고 재벌이 김대중대통령에 의해 개혁되고 있는데 비해 언벌은 ‘마지막성역’으로 건재를 과시한다. 언벌은 재벌언론과 언론재벌을 일컫는다. 세계언론사에서 재벌언론이나 언론재벌이 존재하기 어려운,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언론은 재벌을 대변할수도, 재벌이 되어서도 안된다. 언론은 어디까지나 언론사이어야 한다. 기능과 영향력 그리고 패악에 이르기까지 군벌과 재벌에 못지않는 언벌은그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원론적논의가 일고 있을뿐 과거 정권도, 현정권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만큼 뿌리가 깊고 영향력이 강한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언론개혁촉구 150인선언’은 바로 이런 사정을 대변한다. “정권과 시대가 바뀌고 ‘새천년’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우리 언론은 아직도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마지막 성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언론은 사회의 공기로서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본연의 기능을 외면한채 권력과 자본에유착하거나 스스로 권력화하여 매체를 사유화하고 여론을 왜곡함으로써사회민주화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선언’이 담고 있듯이 “족벌과 재벌이 소유와 경영·편집에 이르기까지 신문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현실에서는 다양하고 민주적인 언론문화가 싹틀 수”없다. 최근 중앙일보 홍석현사장 탈세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일부 언론사주와 간부들의 비리와 왜곡보도는 언론계의 탈선이 얼마나 심한가를 보여준다. 윤리적 건강성 상실 한국일보 장재국회장은 해외원정 도박으로 거액의 외화를 날린 것으로 보도되었으며, 조선일보 방씨 일가의 해외재산도피 의혹도 제기되었다. 또 최근물러난 세계일보 이상회 사장은 신문사경영과 관련한 개인비리 등의 혐의로출국이 금지되고 검찰의 조사를 받고있다. 이와 더불어 언론사 고위간부들의 비리와 부패, 기사왜곡 등은 언론인들의 ‘퇴행성 도덕불감증’을 드러낸다. 우리 언론이 윤리적 건강성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신문윤리위는 오래전에언론의 위상과 관련하여 “오늘의 저널리스트는 인간의 정신을 크게 좌우한다는 ‘현대의 교사’의 사명을 맡을 수 있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면에서 ‘대중의 법률가’이겠고 국가의 안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군복없는 군인’이라 볼 수 있겠고 사회의 보건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면에서 ‘사회의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제시한 바 있다. 과연 오늘의 언론이 ‘현대의 교사’‘대중의 법률가’‘군복없는 군인’‘사회의 의사’노릇을 하고 있는가. 윤리위의 다음 구절은 ‘목탁’의 역할을 뒤엎는다. “그와는 반대로 신문이나 신문인은‘현대의 악마’가 될 수 있고‘대중의 사기한’이 될 수 있으며‘국가의 역적’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 한국언론의 위기는 사주나 사장, 간부들의 비리나 기사왜곡에 대해 반성하고 시정하는 노력이 아니라 이를 ‘표적사정’이나 ‘언론길들이기’로 몰고가면서 전혀 반성과 개혁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언론의 정도와 윤리적 건강성을 상실한 자사이기주의의 극치라 하겠다. 작고한 한 신문학자는 “신문기자(언론인)는 민중이 신뢰할 수 있는 진실성을 견지하여야 하는 까닭에 기자가 되기전에 먼저 인간이 돼야한다.”(郭福山)고 지적했다. 타락한 언론인들이 보인 일련의 비행과 이를 지켜보면서도보신때문에 침묵하거나 방조하는 언론인이 전체 언론을 욕되게 한다. 언론권력 개혁시급하다 일부 언벌은 비판과 보도의 기능을 넘어서 이미 정치권력화되고 있다. 두인 브래드리이는 ‘신문과 민주주의’에서 언론권력화의 문제점을 적시했다. “개인적 또는 정치적 적의(敵意)가 신문의 정치비판의 많은 원인이 돼있다. 어떤 대통령후보자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원의 편집자는 반대의 보람없이 그사람이 당선하면 - 그가 조금이라도 실책할 경우, 벼르고 있던 화살로 공격하려 할것이다. 민주당정부가 ‘복지국가’를 만들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공화당원 편집자는 그런 일은 쉴새없이 독자에게 알리려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언론이 ‘개인적’또는 ‘정치적 적의’에서 정부정책을 헐뜯거나 이를 기화로 ‘흥정’한다면 그건 ‘언상배(言商輩)’일 뿐이다. 언론장사꾼이다.사실 보도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언론이 탈선한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정치나 재벌개혁은 공염불이 되고만다. 언론계와 정부는 언론개혁에 나서야 한다. 김삼웅 주필
  • ‘합당話頭’ 던진 JP 外延확대 가속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합당 가능성 시사 발언 이후 정치권 지각변동의 핵으로 등장한 김종필(金鍾泌·JP)총리가 외연(外延)확대에도 주력하고 있어눈길을 끌고 있다. JP는 지난 16일 최석문(崔錫文) 미주JP후원회장과 정진석(鄭鎭碩)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자민련 명예총재 특보에 임명한데 이어 21일에도 김고성(金高盛) 박신원(朴信遠) 정우택(鄭宇澤) 이재선(李在善)의원 등 현역 4명과 원외인 김기옥(金基玉·동작을) 허정남(許正男·여주)위원장,개그맨 김형곤(金亨坤)씨 등 7명에게 특보 임명장을 주었다.전에 임명된 이상현(李相賢)의원과 김상윤(金相允)의성지구당위원장을 포함하면 특보단은 모두 11명이다.JP는 지난 8일에도 한병기(韓丙起)전의원과 임영숙(任英淑) 대한매일 논설위원등 각계 전문가 24명을 국무총리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했었다. JP의 이같은 행보는 내년 총선과 곧 다가올 합당 등을 감안한 다목적 카드로 읽혀진다.총리 자문위원은 이른바 ‘싱크탱크’로 정치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특보단은 그렇지 않다.합당을 비롯한 ‘큰일’에 대비한 친위부대 구축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다소 의외인 것은 비합당파로 분류되는 정우택·이재선의원이 포함된 점이다.당 안팎에서는 ‘반대파 끌어들이기’ 작업으로 해석한다.총선과 관련해서는 정진석특보를 충남 공주에,최석문특보를경남 사천,김형곤특보를 서울 성동갑에 출전시키는 구상도 하는 것 같다. 한종태기자 jthan@
  • 자민련 명예총재특보 鄭鎭碩씨

    자민련 명예총재인 김종필(金鍾泌) 총리는 16일 정진석(鄭鎭碩·40)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명예총재 특별보좌역에 임명했다.정특보는 자민련 정석모(鄭石謨)의원의 차남이다.
  • 엠바고,국가이익의 보루인가?국민 알권리 침해인가?

    “이 자료는 0일 0시까지 엠바고(Embargo)입니다” 취재기자들이 출입처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보도시점 제한’을 뜻하는 엠바고는 국가이익이나 생명에 끼칠수 있는 폐해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으나 ‘알권리’ 침해라는 비판도 사고 있다. 이런 엠바고가 최근 언론계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국내 전국종합지중유일한 석간인 문화일보가 최근 “엠바고를 지키지 않겠다”고 밝힌 탓이다. 문화일보는 지난달 17일 “행정부처와 일부 언론사의 편의주의에 따른 엠바고 남발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18일자 조간 엠바고로 묶인 정부의 ‘부패방지대책’과 보건복지부의 ‘기초생활법’ 기사를 17일 낮 전격 보도했다. 이어 청와대 발표 전까지 엠바고 사항인 대통령일정을 20일 게재,출입기자가 징계를 받기에 이르렀다.그후 문화일보는 25일 편집국 차원에서 엠바고 거부를 공식 결의했다. 엠바고 문제는 이전에도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됐었다.지난 3월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각각 ‘제2차 정부조직개편’‘서울은행 매각’ 관련 엠바고를어겨 징계를 받았고,같은달 병역비리 문제를 조선·국민일보가 스포츠 자매지에 미리 보도해 역시 ‘기자실 출입정치’등의 징계를 당했다.징계는 해당 출입처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내리는 것으로 심할 경우 해당 관청 출입금지조치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면 엠바고는 과연 어디까지 지켜져야 하는 것일까.일선기자들은 엠바고가 깨질 경우 닥칠 ‘취재전쟁’을 걱정하면서도 무분별한 엠바고 남발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한 경찰출입 기자는 “최근 ‘도박’ 관련 사건이 모두 엠바고로 묶여 단독으로 불법 파친코 취재를 해놓고도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엠바고 남발은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엠바고 사항이 아닌데도 부처의 홍보전략 등 행정편의에따라 엠바고를 거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밝혔다.법원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마감시간 이후 알게된 사건의 경우 기자들이 서로 담합,엠바고를 걸고 다음에 쓰기로 했다가 시의성이 떨어져 묵살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엠바고가 본래취지에 맞게운용된다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않다.검찰청의 경우 현재 8건이 엠바고로 정해져 있는데 한 기자는 “검찰의 수사특성상 엠바고가 어느정도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모든 사건에 대해‘수사상의 이유’로 엠바고를 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언론학자들은 엠바고를 깰 때 발생하는 피해가 국민의 알 권리를 넘어서는 경우에만 엠바고가 성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광운대 주동황(朱東晃·신문방송학)교수는 “언론사와 취재원의 유착관계에서 발생하는 엠바고가 국민의 알 권리를 해치는 ‘발표지연주의’로 변색돼선 안될 것”이라고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외언내언] 신문사 여성사장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불리는 워싱턴 포스트 그룹의 총수 캐서린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아버지와 사주이던 남편 필립 그레이엄이 사망하자 지난 63년 워싱턴 포스트의 모든 사업을 물려받았다.그리고 빚더미에 올라있던 신문사를 흑자로 전환시키면서 73년 대표이사 회장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97년말 현재 워싱턴 포스트의 연간 총수입은 19억 달러.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사상 최초의 종합일간지 여성사장이 탄생했다.그러나한국일보 발행인겸 대표이사로 선임된 장명수(張明秀)신임 사장은 부친이나남편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가 몸담고 일하던 신문사의 발행인이 된 것이다.지난 63년 신문사에 입사해 82년부터 써온 ‘장명수 칼럼’으로 독자에게 널리 알려진 그는 이미 수년 전부터 단순한 여성 언론인이라기보다 한국 언론사의 간판 칼럼니스트로 평가받기 시작했다.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는 최근 발행된 ‘인물과 사상’에서 ‘그는 우리나라모든 칼럼니스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언론인이며최상급에 속한다’는 극단적인 찬사를 멈추지 않는다.그가 그동안 써온 2,130여편의 칼럼은 여성·문화·일반사회뿐 아니라 정치칼럼에 이르기까지 가장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하면서도 ‘잔수를 쓰지 않고’ 언론의 감각화와 상업주의를 경계하는 한편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카랑카랑하게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을 잘 쓴다고 해서 누구나 주필이 되고 발행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가 한국 ‘여성주필 1호’나 ‘신문사 여성사장 1호’를 기록한 것은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다.남녀 차별을 가리기 위해 여성을 구색으로 갖추는 경우와도 다르다.필력과 실력은 물론 그의 개성과 재능을 알고 인정한신문사의 유연한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목을 졸라야 하는 마감시간에 쫓겨 자신의 부족한 식견과 판단이 인쇄된 글로 만천하에 공표된다는 것을 괴로워할 때 사측은 오히려 ‘우리는 당신이 날마다 명칼럼을 쓰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한 달에 한번이라도 좋은 글을 쓴다면 성공’이라고 격려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언론사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좋은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를 한 명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나타내기도 하지만 신문사 경영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언제라도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이제 그는 신문경영인으로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거듭 인정받는 일만을 남기고 있다.
  • 한원영씨 8·15광복이후 신문소설연구서 펴내

    신문소설의 재미는 혀끝으로 핥아서 얻어지는 가볍고 얕은 맛에 있고,문예지소설은 어금니로 씹어서 얻어지는 무겁고 깊은 맛에 있다고들 한다.부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다양한 층을 독자로 하는 특성상 얼마간의 통속성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 말들일 것이다.최근 나온 한원영의 ‘한국현대 신문연재소설연구’(국학자료원)를 읽고 있노라면 이런 얘기들을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있게 된다.이 책은 8·15 광복 이후 신문소설을 다룬 본격 연구서지만,여기서 언급한 신문소설사(史)의 에피소드들도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아깝다. 현존하는 중앙일간지로 해방 이후 처음 소설을 연재한 것은 대한매일의 전신인 서울신문이다.46년 5월15·16일 이틀 동안 안회남의 ‘봄(紅桃花이야기)’을 나눠 실었다. 신문소설사에서 가장 큰 스캔들을 남긴 것도 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실은 서울신문이다.전후의 방종과 퇴폐상을 묘사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대학교수를 모독했다”는 황산덕 서울대교수와의 공개 설전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자유부인’논쟁은 또산업경제신문이 4월1일자에 사회면톱으로 “황교수와 정씨가 다방에서 격투를 벌여 정씨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만우절 특집’기사를 싣는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62∼63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박영준의 ‘결혼학교’는 주인공을 영화계의스타 네사람으로 모델을 삼았다.문정숙과 신성일(현재 이름은 姜申星一)·엄앵란·김향이가 그들이었다. 홍성유의 데뷔작으로 58년 한국일보에 연재된 ‘비극은 없다’도 삽화를 맡은 우경희 화백이 여주인공의 얼굴을 인기배우인 김지미를 모델로 삼아 화제가 됐다. 손창섭은 68년 동아일보에 ‘인간공장’을 연재키로 하고 초고까지 만들었으나,허겁지겁 ‘길’을 대신 내보내야 했다.‘인간공장’에서 중학교 입시제도가 가져다주는 폐단을 그리려고 했으나 연재에 들어가기 직전 중학입시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박용구가 63∼65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계룡산’은 연약한 여인들을 색욕의 제물로 삼는 사이비 교주 이야기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검찰에입건되는 등 처음으로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다.중앙일보는 95년 정신과의사 김정일의 메디컬 사이코 스릴러 ‘미로찾기’를 싣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가장 오래 연재된 신문소설은 69∼77년 조선일보에 실린 월탄 박종화의 ‘세종대왕’으로 2,456회다.이어 황석영의 ‘장길산’이 74∼84년에 걸쳐 한국일보에 2,092회를 실어 뒤를 잇는다.월탄은 54∼57년 ‘임진왜란’을 서울신문과 조선일보에 동시에 연재하는 기록도 남겼다. 물론 신문소설의 개념을 이렇듯 사소한 에피소드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한국문단에서 신문은 아직까지도 소설,특히 장편소설의 가장 중요한 발표창구다.신문을 통해 발표되어 문학사에 길이남을 작품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게다가 종합일간지의 경우 최근에는 통속화 경향도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대한매일‘뉴스넷’국내신문중 1위

    대한매일의 뉴스 인터넷 서비스인 ‘뉴스넷(www.seoul.co.kr/www.kdaily.com)’이 아시아 지역 최고의 웹사이트 50위 안에 랭크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뉴스넷’ 서비스는 최근 아시아 지역정보를 전문으로 하는 말레이시아 인터넷 정보회사 아시아코(asiaco.com)가 선정한 ‘종합 아시아 톱50 웹사이트’에서 24위를 차지,한국일보(28위)와 함께 국내 신문으로는 50위내 순위에들었다. 또 뉴스부문만 별도로 순위를 매긴 ‘아시아 톱50 뉴스 웹사이트’ 순위에서도 44위에 올라 중앙일보(45위),코리아 헤럴드(46위)의 인터넷 뉴스 서비스를 제치고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인터넷 뉴스서비스로 뽑혔다. 이같은 사실은 이날 아시아코의 국제담당 포이 테이씨와의 전화통화에서 밝혀졌다.테이씨는 “아시아코는 아시아의 3만여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3개월동안 사이트의 내용,접속속도,조회수 등을 조사,분야별로 50개씩 우수 사이트를 선정한다”고 밝히고 “선정된 사이트에는 ‘Top 50’ 로고를 수여,웹사이트에 부착토록 하고 아시아코의 추천사이트로 소개된다”고 말했다. ‘뉴스넷’은 외국인들을 위하여 영문 사이트를 별도로 운용하고 있으며 매일 국내 주요 뉴스를 10여건 선정,영문으로 번역해 팩스 및 웹사이트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시아코는 매년 두차례씩 상반기(6월∼7월)와 하반기(12월∼1월)에 아시아최고의 인기 웹사이트를 순위별로 공표하고 있다. 이경옥기자 ok@
  • 한국일보사장에 張明秀씨

    한국일보사는 16일 이사회를 열고 박병윤(朴炳潤) 상임고문을 부회장에,장명수(張明秀) 주필을 공석중인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에 각각 선임했다.또 문현석(文顯奭) 부사장을 대표이사 부사장에 임명했다.
  • 부정방지위 ‘우먼파워’ 확산

    보수적인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위원장 李在禎성공회대학교총장)에도‘여성 파워’가 확산되고 있다. 한승헌(韓勝憲)감사원장은 12일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에 신인령(辛仁羚) 이화여대 교수와 유균(柳鈞) 한국방송공사 해설주간, 장명수(張明秀) 한국일보 주필을 새로 임명했다. 신·장 두 위원이 가담함에 따라 부방위의 여성위원은 이미 선임돼 있던 윤순녀(尹順女) 천주교성폭력상담소장,이계경(李啓卿) 여성신문사 대표,이현숙(李賢淑)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 등을 포함해 5명으로 늘어났다. 여성비율이 전체 위원 18명의 21%에서 30%로 증가한 것이다. 감사원은 “여성인사의 국정 참여기회를 넓히고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다양한 소리를 듣기 위해 여성비율을 높였다”고 밝혔다. 정부는 각종 위원회의 여성비율을 올해 안에 23%,내년 말까지 30%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51개 부·처·청·위원회 및 16개 시·도 가운데 7월 말 현재까지 이같은 목표를 충족시킨 기관은 여성특위(81.0%)와 청소년보호위원회(38.5%) 기상청(33.3%) 식품의약품안전청(28.6%) 노동부(27.4%) 법무부(27.0%) 국가보훈처(26.8%) 중앙인사위(25.0%) 교육부(24.6%) 특허청(22.0%) 등 10개 기관과 전라북도(30.5%) 서울시(23.7%) 등 12곳뿐이었다. 한편,여성특위는 정부 기관 가운데 보훈처 기상청 관세청 공정거래위 환경부 특허청에서 여성 참여율이 지난해 말보다 1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도운기자 dawn@
  • SBS는 연예인목숨 담보 시청률 경쟁하나

    TV오락프로가 연예인의 목숨을 담보로 ‘억지재미’를 짜내려다 여자연예인이 중상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달 28일 충북 단양에서 SBS ‘기쁜 우리 토요일’의 녹화중 미스코리아 한국일보 출신 손혜임(21·대구대 사회복지학과 2년)이 교관과 함께 패러번지점프를 하다 물위로 추락,목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당시 손혜임은 번지점프에 성공,TV카메라를 향해 손까지 흔들었으나 이어몸을 묶은 줄을 풀고 3∼4m아래 물로 뛰어드는 과정에서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사고가 나자 SBS는 이 코너자체를 없앴고,손혜임이 출연한 것도 방송하지 않았다. SBS와 피해자 가족들은 이같은 사고를 그동안 숨겨왔다. 당시 사고는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가 한번도 패러번지점프를 해보지 않은 손혜임에게 “패러번지점프를 하라”고 요구해 빚어졌다. 최근 방송사들은 각종 오락프로에 번지점프와 고가사다리 타기 등의 코너를마련하고 연예인이 고공으로 올라가거나 뛰어내릴 때 짓는 표정을 화면에 내보내고 있다.그러나 사전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안전교육이나 시설점검 등에는 소홀하고 있어 연예계로부터 “언젠가 대형사고가 날 것”이라는 우려를 사왔다. 한편 MBC 등 다른 방송사들도 오락프로의 위험한 코너를 속속 폐지하고 있다.MBC는 11일 내보내려던 ‘해결 대작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소방훈련 스타 119’코너를 중도하차시켰다.KBS2 TV는 ‘슈퍼TV,일요일은 즐거워’의 유사한 코너를 없앨 방침이다. 허남주기자 yukyung@
  • 하도급실태 대대적 조사 건설업세등 1,000곳 선정

    원사업자와 하도급업체 간에 이루어지는 각종 불공정거래행위를 파악하기위한 대규모 서면 실태조사가 8일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이한억(李漢億)하도급국장는 이날 “건설과 제조업 분야의원사업자 1,000개를 선정해 하도급대금이나 선급금·어음할인료 등 대금지급 관계와 반품,대물변제,계약서면 미교부 등 각종 불공정거래행위 여부를 묻는 서면 실태조사에 들어갔다”며 “이 조사가 끝난 뒤 8월에는 이 사업자들과 거래하는 하도급업체 2,000개를 선정해 같은 방법으로 조사한 뒤 결과를비교 분석,오는 10월 현장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하도급 불공정행위에 대해 이번처럼 대규모 일제조사가 실시되기는 처음이다. 조사대상 원사업자는 건설업체 400개,제조업체 600개로 법위반 전력이 많은 업체와 규모가 큰 업체들이 주로 선정됐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들이 대부분포함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업과 음식료 자동차 운송장비 제조업체들이 망라돼 있다.특히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대교 웅진출판 한국조폐공사 등 출판·인쇄업체들도 포함됐다. 공정위는 내년에는 조사대상 원사업자 수를 2만개로 늘리고 2003년부터는매년 일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金대통령“부패척결 공직자 중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8일 “부정부패 척결은 모든 분야에서 부정이 있을 때는 구별없이 해야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우선 공직자와 그 가족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한국일보 창간 45주년 기자회견에서 “공직자 외에 다른분야에서도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것”이라면서“그러나 당장 정치인을 목표로 사정을 계획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회의 재창당론에 대해 김대통령은 “당이 구심역할을 하도록 전국정당화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나 이를 재창당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양승현기자 yangbak@
  • 48차 IPI연례총회 개막

    제 48차 국제언론인협회(IPI) 연례총회가 17일 오전 타이완(臺灣) 수도 타이베이의 국가음악청(내셔널 콘서트 홀)에서 리덩후이(李登輝)타이완총통과46개국 언론인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됐다. 오는 19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총회에 한국은 IPI한국위원회 위원장인 방상훈(方相勳)조선일보사장을 단장으로 차일석(車一錫)대한매일사장 등 16명이참가하고 있다. IPI본부는 총회기간중 이사회를 열고,지난 50년간 세계 각국에서 언론자유의 수호 및 증진을 위해 공헌한‘언론영웅’(Press Hero) 50명을 심사,선정할 예정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송건호(宋建鎬)전 한겨레사장,고(故) 최석채(崔錫采) 전 문화방송-경향신문 회장,고(故) 천관우(千寬宇) 전 한국일보상임고문 등 3명이 후보로 추천돼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IPI韓國委長 方相勳씨 재선임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는 21일 이사회를 열고 방상훈(方相勳)조선일보사장을 위원장으로 다시 선임했다.또 윤세영(尹世榮)서울방송회장과 홍석현(洪錫炫)중앙일보사장이 각각 부위원장에 연임됐다. 이사에는 차일석(車一錫)대한매일사장,김성열(金聖悅)동아일보고문,현소환(玄昭煥)IPI종신회원,조희준(趙希埈)국민일보회장,홍성만(洪性萬)경향신문사장,권호경(權皓景)기독교방송사장,오명(吳明)동아일보사장,노성대(盧成大)문화방송사장,이상회(李相回)세계일보사장,김종철(金鍾澈)연합뉴스사장,이정우(李正雨)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사장,박권상(朴權相)한국방송공사사장,장재국(張在國)한국일보회장,최승익(崔乘益)강원일보사장,김종태(金宗太)광주일보회장,이윤원(李閏遠)대전일보사장,김부기(金富基)매일신문사장,김상훈(金尙勳)부산일보사장,김대성(金大成)제주일보사장이 선임됐다.감사에는 장대환(張大煥)매일경제신문사장,박용정(朴勇正)한국경제신문사장이 선임됐다.
  • [제2공화국과 張勉](15)분출하는 욕구(下)/기고

    1961년 2월4일 장면(張勉)총리는 반도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4주년 기념모임에 초청받아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연한다. 장면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괴뢰의 앞잡이들이 ‘조선인민보’나 ‘해방일보’를 발행하겠다고 등록신청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무책임하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독선적인’ 언론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장면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압제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같이,자유가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무절제한 언론에 대한 이 경고를,관훈클럽은 훗날 발간한 ‘40년사’에서“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진지하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李承晩)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신문은 학생세력·민주당과 더불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자유당 정권은,비록 그후의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시대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언론에 대해 탄압을 거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이다.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은 그 무렵 자유당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장면이 대표하는 민주당 신파를 지지했다.따라서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몇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향신문에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도하 각 신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당 정권의 비정(秕政)과 ‘3·15 부정선거’,그리고 이에 따른 학생·시민의 항거를 끊임없이 보도했다. 따라서 4월혁명후 언론은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에 못잖은 ‘제4부’로떠올라 그 힘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언론계의 변화는 먼저 양적인 팽창으로 나타났다.1960년 3월31일 현재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된 각종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간신문은 4·19 전의 41종에서 112종으로,일간통신은 14가지에서 274가지로,주간신문은 136종에서 476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그야말로 ‘사무실 한평에 등사판 하나만 갖추면 통신사 간판을 내걸고 실업자 서너명만 모으면신문사 간판을 내걸 수 있는’시절이었다. 언론사가 급증하자 사이비기자가 판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에 따라강경·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사이비기자 물러가라”며 데모하기도 했다.한국일보가 1961년 2월 말 연재한 ‘기자가 취재한 기자군(記者群)-공갈기자’시리즈를 보면 그들의 성분과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공갈기자’와 ‘진드기기자’들에게는 전직이 있다.…연무대 주변에서진을 친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이 헌병대 문관 아니면 형사,또는 CIC군관,이밖에 퇴역군인이다.그래서인지 ‘진드기기자’들의 취재 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고듣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탐색하고 사람을 취조하는-말하자면 ‘범죄수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통있는 언론사야 행태가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정부 시책을 사사건건물고 늘어져 비난하는 것을 신문의 의무로 아는 듯했다.당시 언론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당 간부장경근(張暻根)이입원중인 병원을 탈출,일본으로 밀항한 사건이 발생한다.이에 서울일일신문은 “면이와 경근이 때문에 창피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장씨 종친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국무총리 장면과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된 장경근을 한데 엮어 비난한 것이었다. 장총리의 공보비서관인 송원영(宋元英)이 서울일일신문의 이관구(李寬求)사장을 찾아가 항의하니 이사장도 “이건 너무했다”면서 윤전기를 멈추고 만평을 뺐다고 한다(송원영 회고록에서). 경향신문 정치부장으로 있다 바로 공보비서관이 된 송원영은 “모든 매스컴이 장면정권을 두들겨팼다.마치 언론자유는 장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처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신문이 보도 면에서 신중과 자제를 잃어(宋建鎬 표현) 독자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사태도 자주 일어났다.부산일보는 동아대 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20일동안 휴간했으며,한국일보는 ‘혁명전야’라는 연재소설에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연세대생을 모욕했다는 항의를 받자 연재를 중단했다.박태선(朴泰善)장로교회 신도 수천명이 대낮에 동아일보 사옥에 침입,난동을 부린일도 있었다. 장면정부는 언론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설득하는 이외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장면정부의 언론 주무장관인 정헌주(鄭憲柱) 국무원 사무처장은 “심지어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쓰곤 했지만 그래도 정부로서는‘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리를 잡겠지’하는 생각에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도 세월이 흐르면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는 그 자율기능을 믿은 것이다. 장면정부는 오히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썼다.가끔 ‘대통령 유시’나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두차례 하는데 그쳤던 이승만과는 달리 기자회견을 매주 한차례 정례화했다.그럴 때면 전 각료를 동원하다시피해 갖가지 질문에 답했다. 또 KBS라디오를 통해 ‘주례 국정보고’도 방송했다.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이 방송에서 장면은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에게 설득조로 이야기했다. 4월혁명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과 신문은 ‘동지’였다.그러나 장면정부가들어서자 어제의 동지는 ‘적’으로 돌변했다.5·16쿠데타후 신문은 장면정부를 망친 ‘3신(新·신문,민주당 구파가 분당한 신민당,신파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회자됐고 군사정권 아래서 모든 자유를 빼앗겼다. 이용원기자 ywyi@[기고] 언론자유 수호 自淨운동 싹 틔워4·19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진 후 한국 언론은 비로소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됐다.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급격히 사라졌고,언론 스스로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허정(許政)과도정부는 1960년 7월1일 법률 제553호로서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이로써 허가제를 규정한 미 군정법령 88호는 폐지됐고,이제 등록만 하면 누구나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부서였던 공보실이 폐지됐고,국가보안법과선거법에 삽입된 언론통제 조항도 삭제됐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언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자유를 누렸다.그러나 갑자기 언론자유가 주어지자 우후죽순처럼 정기간행물이 쏟아져 나와 일간지나 주간지가 4·19 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날 정도가 되면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들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한편 1960년 5월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대구·서울 등지의 여러 신문사에서 노조가 차례로 결성됐고,KBS도 ‘방송중립화 운동’을 펼쳐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그리고 1961년 2월13일에는 일본 거류민단계의 조용수(趙鏞壽)가 중심이 되고 국내 혁신계 인사인 송지영(宋志英) 윤길중(尹吉重)고정훈(高貞勳) 등이 참여한 민족일보가 창간되어 혁신계 세력을 대변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 관한 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항의시위나 난입,그리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이같은 사태는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 한 일부 독자들의 잘못된 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이렇듯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신장됐지만,언론자유는점차로 제약되는 경향을 보였다.집권 이후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언론규제 장치로 ‘외국 정기간행물 국내 배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이것은 신문이 등록제로 대체되면서 폐기된 미군정법령 88호중 제5조만 유효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그것을 대신하는 법령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또한 창간되기도 전에 민족일보에 대해 국회에서 조총련계 자금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창간 이후 민족일보는 서울신문 공무국에서 제작됐는데,민주당 정권은 61년 3월 초에 서울신문에 압력을 가하여 이 신문의 조판과 인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직접 언론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언론자유는 대체로 보장된 편이었다.또한 ‘신문망국론’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던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가 스스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2공화국 시기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허용됐고 또 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작됐다는 점에서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보장된 언론자유를 지키고 언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5·16쿠데타가 터졌다.5·16 이후 언론자유는말살되고,언론은 정권의 통제와 특혜 속에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기업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됐다. [박용규 상지대 교수·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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