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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임]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총동문회 송년의 밤 14일 오후 7시30분,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 13층 송현클럽 017-221-6976
  • [부고]

    ●류주영(전 서인천세무서 사무관)삼영(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과장)남영(서울 서부경찰서 경사)씨 부친상 황보협(전 청주 중앙초등학교 교사)황규호(전 서울신문 문화부장)김진호(사업)씨 빙부상 8일 수원 아주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31)219-6654●김용권(자영업)용성(전 한국통신공사)용준(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씨 부친상 임진혁(동연산업 대표)씨 빙부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410-6912●이동익(사업)동식(〃)동석(일진페이퍼 상무이사)씨 모친상 정섭(동양물산기업)씨 조모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010-2262●전훈배(미국 켄터키주립대 의대 외과교수)씨 부친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3 ●양용태(전 중앙대 의과대학장)씨 별세 희진(서울대보라매병원 신경외과 전문의)희수(DSPG 수석연구원)씨 부친상 김용환(LG전자 부장)씨 빙부상 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92-0699●김효걸(사업)효준(한빛의원 원장)효봉(현대증권 신촌지점 과장)씨 부친상 6일 경기도 일산시 주엽동 성당, 발인 9일 오전 9시 (031)918-6674 ●송평조(삼양하드웨어 회장)씨 별세 성환(삼양하드웨어 대표)지환(포천중문의대 교수)씨 부친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410-6910●이윤석(두산 부장)씨 부친상 이재홍(공무원)이종규(동서울대 교수)김환영(메타컨설팅 대표)씨 빙부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5시 (02)3010-2233●안규상(서울시 교위 장학관)씨 별세 한종(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장)씨 부친상 조재용(한국일보 논설위원)씨 빙부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010-2230
  • [저희 결혼해요] ♂문준모·♀변수현

    [저희 결혼해요] ♂문준모·♀변수현

    너를 만나기 전 주위에서 이상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술 먹을 줄 아는 여자’라고 대답했었다. 언젠가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고민에 빠져 있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가 쟁반 위에 소주 한 병과 묵은 김치 한 접시를 담아오던 장면이 가슴에 남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지. 술 한잔 사이에 두고 이런 일, 저런 일 서로의 가슴 보듬어가며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그렇다고 꼭 술 잘 먹는 여자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 것은 아닌데, 너도 술을 못하지 않는 걸 보면 인연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내가 처음 너와 만난 날, 좋아하는 마음이 싹튼 날, 사랑 고백한 날들도 돌아보면 다 술과 연관되어 있네. 너랑은 같은 ‘국민’학교를 나왔지만 6학년 때 전학 온 너랑 그리 친해질 기회는 없었지. 다만, 큰 키에 하얀 피부만 너에 대한 유일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25살에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모인 동창회 술자리에서 너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새침한 표정으로 익살맞은 말을 던지던 너한테 처음 끌렸던 것 같아. 그리고 서로 눈이 맞은 뒤로는 그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았지. 옛 친구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우리의 주요 무대였던 신촌에서 ‘도어즈’와 ‘버끔(‘거품’의 경상도 사투리)’을 오가며 부어댔던 음악과 맥주를 통장에 모아두었으면 결혼할 때 돈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치? (^- -^) 평생 들어본 적도 없던 록 음악도 듣기 시작하고, 쌈지 록 페스티벌과 DJ.DOC 콘서트를 쫓아다니면서 참 신나게 보냈던 시절이었다. 둘 중 하나가 생일이면 ‘버끔’에 들러 오빠들의 화려한 춤사위를 감상했고, 그런 날이면 ‘대화’가 더 길어졌다.‘대화’가 새벽까지 이어지던 날이면 회사에서 졸다가 ‘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일어나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일쑤였지. 나중에는 신림동에 살던 내가 아예 방을 빼고 신촌으로 이사를 왔잖아, 결국. 한 2년 직장 생활을 하던 네가 갑자기 미국으로 2년 동안 유학가도 되겠냐는 말을 꺼냈을 때, 겉으로는 “그래 갔다와.”하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이 난다. 남들은 남자들이 군대가고 여자들이 기다리는데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기다리는 처지에 처했을꼬 하는 생각을 했다. 네가 참 간도 크다는 생각도 했고…. 하여간 떠나는 사람보다 떠나보내는 사람이 훨씬 힘겹고 처량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시간이 흘러 아무리 네 사진을 봐도 얼굴이 잘 안 떠오를 즈음 가진 돈 탈탈 털어 미국으로 너 찾아 갔던 게 기억에 남는다. 거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에 한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샌프란시스코, 뉴욕,LA, 라스베이거스를 다 돌아봤던 건 참 행운이었던 거 같다. 3일 전이 너를 처음 만난 지 만 5년 되던 날이었다. 돌아보니 널 만나기 전보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이 더 많아졌고, 기억의 군데군데 감사할 사람들이 가득 있어서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다. 특히 네 동생 영준이한테 고맙단 말을 전해야겠다. 너와 늦게까지 놀다가 너희들 집에 갔을 때 영준이가 숙박을 허락해주지 않았던들 우리에겐 오늘같이 기쁜 날은 없었을지도 몰라.(오버?) 그리고 너한테 제일 감사한다. 내 사정이 좋지 않아도 항상 밝은 미소 보여주고, 안아주고, 시원한 오뎅탕 만들어주고, 수육 만드는 방법 가르쳐줘서. 이제 영원히 내 소중한 사람이 된 너, 서로 늙어가는 모습을 본다는 게 겁나기도 하지만 술 한잔 사이에 두고 오래오래 행복하자. 그럼 안녕. ♂문준모(29·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변수현(29·베이직하우스 해외영업팀)
  • [여담여담] 신춘문예 ‘샛별’을 기다리며/이순녀 문화부 기자

    최근 나온 계간 ‘대산문화’겨울호에서 재밌는 글을 읽었다. 소설가 조경란씨가 쓴 단상이다. 내용은 이렇다. 이번 학기에 일주일에 한번씩 대학에서 ‘소설쓰기’를 가르쳤는데 문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생각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더란다. 한국 소설은 물론이고 외국소설도 일본 소설을 빼곤 거의 읽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한 필자는 ‘그렇게들 안 읽고 어떻게 글을 쓰나, 어디 소설 한번 보자.’고 단단히 별렀다. 그런데 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들이 제출한 소설을 읽고 깜짝 놀랐단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글을 보면서 ‘책을 읽으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했다는 일화다. 출판 시장, 그중에서도 문학 분야의 독자 감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소설의 쇠퇴는 심각하다. 오죽하면 문화예술위원회가 침체된 한국 문학을 회생시키겠다며 올 들어 분기마다 우수문학도서와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을 선정해 지원할까 싶다. 단적으로 지난달 넷째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른 소설은 ‘해리포터와 혼혈왕자’(1위),‘도쿄 타워’(4위),‘모모’(8위)등 모두 번역소설이다. 그런데 앞서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렇게 소설을 읽지 않는 세대인데도 신기하게 재능있는 작가들은 해마다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1980년생 김애란과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1981년생 안보윤이 대표적이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 신인작가들은 한국 소설을 읽지 않는 또래집단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문학 관계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아는 구문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낸 까닭은 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와서다. 독서량은 적어도 개성이 강한 글을 쓸 줄 아는 20대 문학지망생부터 열정만은 이들 못지않은 늦깎이 ‘문학청년’들까지 단체로 열병을 앓는 달이다. 문학이 죽네사네 해도 매년 신문사에 투고되는 작품 수에 크게 변화가 없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춘문예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좋은 작가들이 새벽 하늘을 밝히는 샛별처럼 새해 첫날 각 일간지를 장식하길 기대해 본다. 이순녀 문화부 기자 coral@seoul.co.kr
  • 창사30돌 맞은 문학과지성사

    창사30돌 맞은 문학과지성사

    1975년 여름,30대 중반의 두 사내가 서울 종로구 청진동 골목을 한 시간 넘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세들 만한 사무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흘간 발품을 파는 데 지친 한 사내가 말했다.“회사 안 하면 안 될까. 솔직히 난 별로인데….”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김주연과 동아일보 해직기자 김병익. 이들은 1970년 창간한 계간 ‘문학과지성’의 동인인 김현, 김치수 등과 출판사를 차리기로 하고 대표로 사무실을 구하던 참이었다. 그때 두 사람이 사무실 찾기를 포기했더라면 아마도 지난 30년 간 우리 문학계는 크나큰 손실을 입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이들은 청진동 3-3에 7평짜리 사무실을 얻었고, 그해 12월12일 회사 문을 열었다.1970년대 이후 창작과비평사(창비)와 더불어 우리 문학계의 양대 기둥 역할을 해온 문학과지성사(문지)의 공식적인 출발일이다. 서른살 생일을 앞둔 문지가 단행본 형식의 사사(社史)‘문학과지성사 30년,1975∼2005’를 펴냈다.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이인성 성민엽 등 역대 편집 동인들과 김윤식 신용하 김원일 정현종 등 문지와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문인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글들을 한데 묶었다. 김주연은 “유형 자산은 동인 각자가 출연한 총 1000만원이었으나 돈보다 소중했던 것은 문학에 대한 정열, 그리고 출판사를 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린 정치적 억압과 이에 대한 분노였다.”고 회사 설립 당시를 회고했다. 김치수는 “계간 ‘창비’(66년 창간)가 실천적 지성에 비중을 두고 문학의 현실 참여를 주장한 반면, 계간 ‘문지’는 이론적 지성으로 현실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시도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계간 ‘문학과지성’은 1980년 7월말 신군부에 의해 강제폐간된 뒤 무크지 ‘우리시대의 문학’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1987년 ‘문학과사회’로 제호를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1990년대 들어 출판 상황이 달라지면서 수필집, 아동도서, 참고서 등과 번역 소설을 내지 않는다는 창사 당시의 출간 기준은 깨졌다. 하지만 자비출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만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1990년 문지 동인의 주역인 김현이 세상을 뜬 데 이어 3년 뒤 재정적 후견인이던 황인철 변호사마저 유명을 달리하면서 문학과지성사는 주식회사로 바뀌었다.2000년에는 1세대인 김병익 대표가 상임고문으로 물러나고 채호기 사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경영권이 다음 세대에 이양됐다. 문지는 9일 오후 6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출판 기념회를 겸한 창사 30주년 행사를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남들보다 큰 보상… 염치없어”

    대하소설 ‘토지’작가 박경리씨의 팔순잔치가 29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잔치에는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 사위인 시인 김지하, 외손자 김원보ㆍ세희 형제 등 가족들과 문인, 정ㆍ관계, 학계, 언론계 인사 등 평소 박씨와 가깝게 지낸 100여명이 참석해 박씨의 건강과 장수를 축원했다. 박씨는 “자식 체면 때문에 하라고 했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할 줄 꿈에도 몰랐다.”면서 “솔직히 여기에 선 것이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아 염치가 없고, 작가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데도 보상 못받고 떠난 사람에 비해 나는 한 일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장을 찾은 지인들은 작가의 문학적 업적과 소박한 삶에 대해 아낌없는 경의를 표했다. 작가 최일남씨는 “선생을 만날 때마다 글쓰는 모습보다 호미 들고 밭 매는 모습을 봐왔는데 거칠고 험한 작가의 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는 일화를 소개했고, 박완서씨는 “선생은 나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김상현 전 국회의원, 김한길 의원, 정창영 연세대 총장, 유재천 한림대 교수,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진의장 통영시장, 김민기 학전 대표, 영화감독 이광모씨, 작가 오정희 강석경 황지우 강형철 김남일씨 등이 참석했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씨는 195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 ‘표류도’‘김약국의 딸들’‘파시’ 등 다양한 작품들을 펴냈다.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25년 만에 완성한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 낸 무서운 신인 김애란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 낸 무서운 신인 김애란

    “사람의 유전자에는 나무에 대한 친숙한 기억 인자가 있어서 나무로 만들어진 종이나 책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대요. 종이책 시대에 책을 낼 수 있어 기뻐요.” 탁자위에 놓인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를 손끝으로 매만지던 그가 담담한 어조로 소감을 말했다. 김애란. 자신의 이름을 건 첫번째 책을 내놓기도 전에 이미 문단의 유명세를 탔던 무서운 신인이다.1980년에 태어났으니 이제 만 스물다섯.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다니던 2002년, 난생 처음 쓴 단편 ‘노크하지 않는 그녀들’로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을 때부터 싹수는 파릇파릇했다. 하지만 이후 문예지에 한두 편씩 발표한 그의 작품들이 현대문학상 최종심에 오르고,‘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되더니 마침내 이달 초 한국일보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하기까지의 아찔한 속도감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이달초 최연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상복이 많은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동의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어린 나이에 큰 상을 받았다고 주위 어른들이 염려를 많이 하세요. 상의 무게에 눌리거나 겁먹지는 않으려고 해요.” 부모님이 계신 고향(충남 서산)마을에는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단다. 문학상을 신춘문예로 잘못 썼지만 “전봇대에 올라가서 고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놔뒀다. 신춘문예는 동네 어르신들이 주신 상으로 알고 그냥 받기로 했다.”며 웃었다.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는 아버지 부재와 가난의 풍경을 경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표제작을 비롯해 9편의 단편이 실렸다.‘달려아, 아비’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하 단칸방에 사는 ‘나’는 만삭의 어머니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간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애틋하게 그리워하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상할 뿐이다.‘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15쪽) 지방 소도시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성장기 ‘스카이콩콩’, 잃어버린 아버지 찾기와 네스호의 괴수 미스터리를 겹친 ‘사랑의 인사’, 불면증에 시달리는 젊은 직장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그녀가 잠 못드는 이유가 있다’ 등은 모두 작가 특유의 자기 긍정이 지닌 가치와 매력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저 자신 속이지 않는 글 쓰고 싶어” 소설을 쓸 때 스스로도 무슨 이야기가 나올 지 모르는 불안감과 기대감을 안고 출발한다.“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발견해 가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달려라, 아비’에서의 아버지 이야기도 처음부터 구상된 것이 아니라 도중에 아버지가 뛰어들었단다.“글을 쓰면서 ‘어쩌려고 이럴까’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계속 가다 보면 ‘아, 내가 여기 오려고 그랬구나.’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 참 신기해요.”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은 ‘무서운 이야기’다. 어떤 내용인지 묻자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직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답이 무성의해 보였다고 느꼈는지 잠시 후 조용히 말문을 연다.“말이 되든 안 되든, 문장이 되든 안 되든 제가 쓴 소설이 저 자신과 독자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글을 쓰고 싶어요.”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일부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가 인용해서 공평하게 쓸 수 있는 자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해방공간 4개 일간지 영인본(影印本) 작업을 마무리한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정보의 민주화’로 그 의미를 평가했다. 영인본은 말 그대로 문헌 자료를 사진(影)으로 찍어 인쇄(印)해둔 책(本)을 말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종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작업이다. 정 명예교수는 서울·경향신문 조선·동아일보 등 4개 일간지에서 1945년 8·15광복에서 1950년 6·25전쟁 때까지 발행한 신문을 모아 영인본을 냈다. 서울 반포 연구실에서 만나 이번 작업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영인본을 만든 가장 큰 뜻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1차자료’로 활용하자는 데 있다. 실제로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1930∼40년대 시대상황에 대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주로 문화사나 생활사쪽에서 이뤄지는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당시 발행된 ‘잡지’에 기대고 있다. 신문도 소중한 기초 연구자료로 쓰일 수 없을까. 쓰일 수 있다. 다만 잡지와 신문의 차이도 봐야 한다. 신변잡기적 소재를 다루는 잡지와 달리 신문은 아무래도 정치사회적 이슈에 집중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잡지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역사를 공부했다는 저 역시도 이번 기회에 해방공간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요즘 대표적인 ‘수구언론’쯤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가 백범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는 사실이나,38선을 경계로 수시로 일어났던 남북간 무장충돌도 때로는 100여명의 사상자가 생길 정도로 큰 규모였다는 점 등이다. 여순사건도 마찬가지다.“당시 현지에 기자를 보낸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현장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불고 있는 과거청산 논의는 다소 못마땅하다. 장지연의 경우 단편적인 글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이다.“고종의 손자는 일본군 중좌로 히로시마 원폭에 죽습니다. 일본 국방상이 애도하고 대좌로 추서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도 친일입니까?” ‘누가 이랬다더라’식의 한건주의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과 구체적 행동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물론 과거사를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작업에 필요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습니까?”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 작업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영국만 해도 인덱스(index·색인)작업을 높이 평가합니다. 인덱서(indexer)를 전문가로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외면합니다.” 정 명예교수는 국가의 관심부족을 아쉬워했다.“국가가 할 일은 평가 자체가 아니라,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를 충실히 보존·관리하는 겁니다. 평가는 전문 연구자들간 토론과 합의에 맡겨야지요.” 그래서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을 해외 한국학자들에게 보내는 것에 더해 150쪽 분량의 별도 요약집도 낸다.8·15광복이나 6·25전쟁, 김구 선생 암살사건, 북한의 위장평화공세 등과 같은 주요 사건들에 대한 기사만 따로 뽑을 예정이다. 정치적 사건만 다루면 딱딱해질 것을 우려해 서울신문에 처음 선보인 연재만화 ‘블론디’(지금은 한국일보 연재),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처음 발표된 경향신문 지면 등도 함께 넣을 생각이다.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출판기념회 때 내기 위해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영인본을 만들면서 정 명예교수가 가장 신경쓴 대목은 영인본을 펴보는 게 당시의 신문을 펴본다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는 점. 이 때문에 없어진 면은 영인본에 백지 그대로 넣었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대판(지금의 신문크기) 신문은 영인본 첫 페이지에 축소판을 넣고 다음 페이지에 대판 크기의 신문 한 면을 두 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두면에 걸친 제목과 레이아웃을 고스란히 살리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글·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혁명과 웃음/천정환 외 지음

    1964년, 스물 넷의 나이에 단편소설 ‘무진 기행’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김승옥(64).‘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극찬을 들으며 문단에 발을 디딘 그는 이후 대중소설,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는 전방위 문화예술인으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등단 전 시사만화가로 먼저 데뷔했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혁명과 웃음’(천정환 외 지음, 앨피 펴냄)은 소설가 김승옥이 아니라 시사만화가 김승옥을 새롭게 부각시킨 책이다.4·19혁명의 불길이 뜨겁던 1960년, 서울대 불문과 신입생 김승옥은 학비를 벌 요량으로 신생 ‘서울경제신문’에 네컷 시사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필명은 김이구. 순천 고향집의 번지수를 따서 지었다. 콧수염을 기른 전형적인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파고다 영감’은 그해 9월1일부터 이듬해 2월14일까지 134회가 연재됐다. 첫 작품은 장관에게 취직을 부탁하러 온 지게꾼이 ‘도시락 배달국’을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는 이야기. 당시 새로 출범한 장면 국무총리가 청렴한 지도자의 면모를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세태를 반영했다. 날카로운 현실인식에 기반한 신랄한 풍자는 이후 김승옥의 전방위적인 창작활동을 추동한 힘의 단초를 보여준다. ‘웃음과 혁명’이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연습’으로 등단하기 이전의 김승옥을 조명한 책이라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르네상스인 김승옥’(백문임 외 지음)은 5년 간의 짧은 작품 활동끝에 ‘순수문학’의 장을 떠난 이후의 김승옥을 다루고 있다.1967년 ‘안개’로 시작된 그의 영화 이력은 1986년 ‘무진 흐린 뒤 안개’에 이르기까지 16편에 이른다.‘어제 내린 비’,‘영자의 전성시대’,‘겨울여자’ 등 1970년대를 풍미한 영화의 각본들도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저자들은 “김승옥의 문학 바깥 활동이 그저 개인적인 여기나 외도의 소산은 아니었다.”면서 “결코 한번도 제대로 씌어지지 않은, 그러나 꼭 씌어져야 하는 새로운 작가론과 작품론”이라고 밝혔다.2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승옥은 현재 재활 치료 중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부고]

    ●정진규(법무법인 대륙 대표)진만(SKM 감사)진천(흥우산업 대표)진흥(정도케미칼 〃)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2)3410-6915,6925●정운조(전 한국산업은행 부장)씨 상배 병국(연우상사 대표)씨 모친상 전하진(인케코퍼레이션 대표)장태익(포토마인 〃)유병우(남촌병원 내과 과장)씨 빙모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박태양(뉴질랜드 교육문화원 회장)씨 모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30분 (02)3410-6901 ●노중현(사업)맹호(지엔쎄븐 부사장)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010-2239●안성열(공무원)정열(삼성화재 팀장)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37●김일두(명일여고 교사)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05분 (02)3010-2253●강득룡(강화병원 원장)씨 별세 현석(단국대 교수)씨 부친상 송영태(두란노 대표)김주회(사업)박기준(KDA 소장)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010-2238●이남형(자영업)대형(전 주택관리공단 상임감사)두형(대한지적공사 대구경북본부 총무팀장)상형(대한주택공사 고객지원팀장)씨 부친상 박종석(자영업)윤종수(상주 성신여중 교무부장)씨 빙부상 16일 대구 모레아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7시 (053)813-5961●조내서(전 한국일보 이사)씨 별세 철현(바로종합건축 대표)민현(뉴저지 메이플우드성당 본당신부)세현(현진어페럴 차장)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2
  • 일간지 제호 쓴 명필은 누구냐

    일간지 제호 쓴 명필은 누구냐

    신문의 제호(題號)는 바로 그 신문의 얼굴이다. 독자는 자기가 선택한 제호에 모든 신뢰를 걸고 하루의「뉴스」를 읽게 되는 것. 그럼 신문의 얼굴인 그 제호들은 누가 썼을까? 당대의 명필들의 글씨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몇 십 년 제호에 익숙한 독자라도 그 글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거의 모른다. 연륜이 오래된 신문사인 경우 그 신문사의 사장 자신도 잘 모르고 있는 게 바로 제자(題字)를 쓴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처럼「베일」속에 감추어 있는 글씨의 주인공들은 과연 누구일까? 오는 7일은 제13회 신문의 날 - 아득히 잊혀진 제자의 주인공들을 찾아가보자. 현재 서울에서 발간되는 전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일간지는 모두 8개. 이중 대한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의 3개지가 한글제자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신아일보가 한문제자를 쓰고 있다. 글씨체는 거의가 궁체 아니면 예서(隷書). 광범위한 독자층을 상대로 하다 보니 알기 쉽고 눈에 잘 띄는 체를 골라 쓰게 된 것이다. 제자 뒷배경으로 쓰인 무늬로는 한반도가 들어간 것이 동아일보, 대한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5개지, 무궁화를 무늬로 넣은 것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2개지, 횡선(橫線)을 사용한 신문이 대한일보, 서울신문, 신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의 5개지이며, 경향신문만은 아무런 무늬 없이 흰 배경이다. 신아일보는 횡선뿐. 횡선에 한반도를 넣은 신문이 대한, 조선, 서울, 한국 등 4개지로 제일 많고, 동아, 중앙이 무궁화무늬다. 제호는 한반도와 무궁화와 횡선을 가장 좋아하는 모양. 제자를 쓴 사람들은 모두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분들로 역사가 오랜 동아, 조선은 이미 고인이 된 김돈희(金敦熙)씨, 오세창(吳世昌)씨가, 그리고 해방 후의 신문제자는 주로 김충현(金忠顯)씨, 안종원(安鐘元)씨, 이철경(李喆卿)씨 등이 많이 썼다. [조선일보(朝鮮日報)] 위창(葦?) 오세창(吳世昌)씨의 글씨다. 1920년 창간 당시 방응모(方應模) 사장이 직접 오세창씨를 찾아 부탁, 아무런 보수 없이 써준 것이다. 하루는 소전(素?) 손재형(孫在馨)씨가 위창댁을 찾아가니 4, 5개의 제자를 놓고『어느 것이 좋은가 골라 내라』고 하여 소전이『이왕이면 다 신문사로 보내시지요』하였더니 위창은『그러면 신문기자들이 보나마나 이것저것 좋은 글자 골라서 오려 쓸 터이니 안된다』하면서 하나를 골라 보겠다고. 그 후 야간 개칠이 되어 현재까지 쓰여지고 있다. 창간 당시 관여했던 인사들이 모두 작고(作故)하거나 납북되어 신문사 자체기록엔 제자를 누가 썼는지 밝혀져 있지 않고 심지어 몇 십 년을 근속한 고위간부 되는 분도 모르고 있는 실정. 해방 후 신문판형이 바뀌거나 단수(段數)가 조정될 때마다 그 크기는 바뀌었으나 글씨는 여전히 오세창씨의 것. [경향신문(京鄕新聞)] 1946년 10월 창간 당시 편집국장이던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씨가 당대의 명필 안종원(安鐘元)씨에게 부탁, 제자를 받아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경향(京鄕)」은 원래 교황청 기관지인「우르비·엣·오르비」의 의역(意譯)으로 초대사장인 양기섭(梁基涉) 신부가 정한 것. 창간 당시부터 현재처럼 무늬없이「京鄕新聞」의 네 글자만 박아 넣어 쓰다가 4·19 이후 이준구(李俊九)씨가 사장이던 한때 볏잎 무늬를 넣어 썼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창간 당시로 되돌려 현재와 같이 무늬 없이 쓰고 있다. 개칠을 너무 많이 해서 제자의 원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에 최근 창간 당시의 신문에서 제자를 복사해서 원래의 모양을 다시 찾았다. 창간 당시 관여했던 노기남(盧基南) 대주교의 글에 의하면 제자를 오세창씨가 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소전 손재형씨는 안종원 오세창 양씨에게 부탁, 안씨의 것을 썼다고 한다. [서울신문] 우리나라에서 한글제호를 제일 먼저 쓰기 시작한 게 바로「서울신문」이다. 그러나 제호의 운명은 무척 기구해 역대 고위간부가 바뀔 때마다 제호의 글씨와 모양도 바뀌어 왔다. 그 동안 김충현(金忠顯)씨 등 수많은 명필들이「서울신문」이란 제호를 써왔다. 그러다가 1966년 7월 8일자부터 한글 궁체의 제1인자로 알려진 이철경(李喆卿)여사의 정성 어린 글씨를 받아 오늘날까지 계속 써오고 있다. 지금 쓰이고 있는 글씨는 1점 1획의 수정이나 가필 없는「텍스트」그대로이다. 장태화(張太和)사장을 비롯한 간부진은 제자에 여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문화부 기자는 거의 열흘 동안 딴 일은 못하고 이철경여사와 제자에만 매달렸다는「에피소드」도. 이여사는「서울판」「전남판」하는 10개 지방판의 제호 글씨도 또한 썼다. [한국일보(韓國日報)] 「태양신문(太陽新聞)」을 인수, 약 20일 그대로「태양신문」제호를 사용하다 창간한 해인 54년 6월 9일자부터「한국일보(韓國日報)」로 개칭. 약 1년간「韓國日報」로 그대로 쓰다가「한국일보」로 한글로 바꾸면서 독자들에게 제자를 공모했다. 현재 쓰고 있는「한국일보」의 제자는 바로 이 현상모집에서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현상응모서 당선된 사람의 이름은 확인할 길이 없다.(동사(同社) 조사부 보관사사(保管社史)나 사고(社告)철에 남아 있지 않음) 어쨌든 이 현상 당선된 제자를 사장인 장기영(張基榮)씨가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씨에게 들고가 신문에 어울리게 가필한 것이 오늘날 한국일보의 제자다. 자매지인「주간(週間)한국」은 제자는 창간 당시 김기승씨에게 씌운 것을 오늘까지 계속 써오고 있다. [동아일보(東亞日報)] 조선일보보다 창간이 약간 늦은「동아」는 원래 설립자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씨가 朝鮮日報로 제호를 내정했다가 조선일보에 빼앗기는 통에「동아(東亞)」를 채택, 전 동남아를 상대로 한 신문을 만들겠다고 기염이 대단했단다. 글씨는 인촌이 직접 당대의 명필인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선생(작고)에게 부탁, 몇 차례 왔다갔다한 끝에 현재까지 쓰고 있는 글씨로 결정되었다. 김돈희선생의 수제자인 소전 손재형씨의 말을 따르면 김돈희선생은『근대 한국의 제1의 명필』이었다고. 김돈희선생이「東亞日報」의 넉 자를 일부러 멋을 살려 좀 삐뚜름히 썼더니 신문사측에선「곤란하다」고 난색을 보여 5, 6회 다시 썼다고 한다. 인촌선생은 김돈희선생의 글을 받았다고 좋아하는가 하면 김돈희선생은「동아」의 제자가 자기 글씨라 서로 좋아하기도. [중앙일보(中央日報)] 65년 9월 22일 창간 두어 달 전부터 김충현씨에게 부탁 받아 썼다. 당시 삼성(三星)의 모비서가 10여 차례 돈화문 앞 김충현씨가 차린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를 드나들며 몇 차례 받아갔다가 다시 쓰고 한 무척 힘이 든 글씨다. 마지막 김충현씨가 써준 5개의「中央日報」제자 중 몇 개에서 집자(集字)해 썼을 것이라는 게 김충현씨의 의견. 김충현씨는「중앙일보」제자 외에 2개의 휘호(揮毫)를 창간 축하인사로 써주었는데 중앙일보측에선 양복감 한 벌과 10만원을 사례로 보내왔다고. 창간 당시부터 동아일보에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온 동사에서는 제호의 무늬도 동아일보가 쓰고 있는 무궁화무늬를 쓰기로 결정. 동아일보가 무궁화에 둘러싸인 한반도를 그려 넣은 대신 중앙일보는 무궁화무늬만을 넣고 한가운데 한반도 모양의 흰 공백을 두고 있다. [대한일보] 1960년 10월 19일「평화신문(平和新聞)」을 그대로 이어받아 4개월간 쓰다가 61년 2월「대한일보(大韓日報)」로 게재하면서 김충현(金忠顯)씨에게 제자를 부탁, 계속 써왔다. 그러다가 66년 8월, 한글로 바꾸면서 한글 궁체의 1인자 이철경여사에게 글씨를 받아왔으나 획이 섬세하고 가늘다 해서 동사 사장인 김연준(金連俊)씨가 가필(加筆), 획을 굵게 고쳐서 썼다. 그러니까 이철경씨의 글씨도 아니고 김연준씨의 글씨도 아닌 제호를 약 6개월간 써오다가 동사 전무이며 한글학회이사인 한갑수(韓甲洙)씨가 쓴 것이 오늘날 쓰고 있는 제호이다. 한갑수씨의 경우도 5, 6회 글씨를 써서 직접 동판을 떠서 인쇄해 보고 효과가 좋지 않으면 다시 쓰곤 했다. 그러니까 외부인사 아닌 사내 식구에게서 제자를 받아 쓰고 있는 것은「대한일보」단 하나뿐. [신아일보(新亞日報)] 너무 갑자기 창간준비를 서두르다 보니 제자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단다. 장기봉(張基鳳)사장과 평소 교분이 두터운「아마추어」서예가 이(李)모교수가 장사장의 청탁을 받고 써준 것이 창간 당시 신아일보가 쓰던 것. 65년 5월 6일 창간 후 약 한 달 동안 이 글씨를 그대로 써오다가 너무 획이 약해 얼핏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하여 당시 동사 조사부 차장이던 장상섭(張相燮)씨(현재 문화부 차장)가 이교수의 글씨를 더 굵게 가필한 것이 지금 쓰이는 신아일보의 제자 바로 그것이다. 장상섭씨는 기자이면서 한때 교편을 잡은 바 있어 도안(圖案)엔「프로」급 이상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신아일보 제자는 이모교수와 장상섭씨가 합작해 만들어 놓은 셈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4/6 제2권 14호 통권 제28호 ]
  • 한국여성지도자상에 장명수 이사

    대한YWCA연합회는 제3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시상식을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고 여기자로는 처음으로 기명칼럼을 쓴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에게 제3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을, 김성주 인터내셔널 사장에게 젊은지도자상을 각각 수여했다.
  • [부고]

    ● 송보열 前 제일은행장 행원 출신으로 첫 제일은행장에 올랐던 송보열(宋寶烈) 전 제일은행장이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송 전 행장은 지난 88년 제일은행 출신으로는 첫 은행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제일시티리스 회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 서예가인 부인 김정묵 여사와 재훈(삼성서울병원 기획조정실장·성균관의대 교수)·재복(고려대 공대 교수)·재용(서울대 경영대 교수)·재호(경동도시가스 사장)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2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도 포천 서능공원묘지.(02)3410-6901. ● 유석근 前 한국일보 편집위원 유석근 전 한국일보 편집위원이 10일 오전 10시 급환으로 별세했다.53세. 고인은 1978년 한국일보 견습35기로 입사, 체육부장과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정례 씨와 병석(학생), 새보미(학생) 등 1남1녀.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13일 오전. 장지는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나자렛동산.(02)2290-9452. ●이재환(한국야쿠르트 책임연구원)씨 모친상 김진홍(국민일보 논설위원)김창성(두리관세사무소 사무장)씨 빙모상 10일 성인천한방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32)891-4334 ●권오형(전 문경초등학교 교장)씨 상배 기용(농협중앙회 차장)기목(연세대 정보통신처 부처장)기대(대오엔지니어링 대표)기홍(이화공영 부장)기창(서울대병원)씨 모친상 1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392-0299 ●정태용(전 삼우관광 회장)씨 별세 한정자(전 한국여성개발원 선임연구원)씨 상부 석준(미국 거주)주호(〃)민수(건축사)씨 부친상 김윤수(종합건축사사무소 성현 차장)씨 빙부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3410-6905 ●공계진(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을진(사업)운진(〃)씨 부친상 박상조(사업)박상웅(농업)황부상(도화종합건설 부장)씨 빙부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010-2295 ●신항대(재미 사업)항구(명진·화성실업 대표)항락(광주일보 광고국장)씨 모친상 10일 조선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10시 (062)231-8901 ●신동인(충주시 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씨 부친상 9일 청원 초정노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43)216-0564 ●최용길(금강엘이비종합건설 대표)화길(사업)씨 모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3010-2268 ●송승호(자영업)용호(증권예탁결제원 예탁업무부 대리)씨 모친상 9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30분 (02)2650-2752 ●김춘권(전 한양건축 회장)씨 상배 손영식(재미 사업)황태웅(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전무)김장환(전 쌍용제지 상무)정봉화(세림정보 부사장)한상현(영원산업개발 상무)최영식(순천향대 교수)씨 빙모상 10일 강남성모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8시 (02)590-2538 ●박상준(현대시멘트 부장)씨 부친상 김원규(한마음병원 원장)씨 빙부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40분 (02)3010-2265 ●안희준(SK 상무)희경(회사원)씨 부친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410-6909
  • 사진기자협회장에 최종욱씨

    한국사진기자협회는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한국일보 최종욱 기자를 제37대 사진기자협회장으로 선출했다.
  • 故 정운영씨 장서 2만권 모교 기증

    지난 24일 61세를 일기로 타계한 대표적 좌파 경제학자 겸 언론인 고 정운영 경기대 교수의 장서 2만여권이 서울대에 기증된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29일 “고 정 교수의 뜻에 따라 장서의 처분권한을 위임받은 윤소영 한신대 교수가 고인이 소장했던 책 2만여권을 서울대에 기증하겠다고 제안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정 총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중 한 명이자 동문이었던 정 교수의 장서가 우리 학교에 기증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일 뿐 아니라 도서관과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 정 교수는 주류 경제학이 아니라 소수파인 좌파 경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장서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는 ‘정운영 컬렉션’을 만들어 장서를 별도로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정 총장은 “고인은 상대 상학과 64학번이고 나는 상대 경제학과 66학번이었는데 정 교수는 대학 시절부터 ‘상대 신문’에서 활동하는 등 유명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대학원 졸업후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던 고 정 교수는 1981년 벨기에 루뱅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신대 교수로 재직하다 86년 겨울 해직된 뒤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정치경제학을 강의한 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겸 언론인이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강준만 교수 - 조기숙 수석 ‘지역주의’ 날선 공방

    강준만 전북대 교수와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28일 소신의 ‘변절’과 ‘전향’을 둘러싸고 서신 형태를 빌려 지상 공방을 벌였다. 강 교수는 이 날자 한국일보에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께’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제가 우려하는 건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지역주의 낙관론을 역설한 지역주의 전문가인 조 수석님이 청와대 경력 때문에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뒤집어야 하는 사태”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있고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 문화에 빠져 있다.’는 조 수석의 최근 발언을 놓고 “국민의 이성을 의심하는 주장을 했지만 최근 대연정 파동의 와중에서 이성 모독을 느낀 국민들도 많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강 교수는 청와대 사고에 휩쓸려 소신을 저버릴 게 아니라 학자적 양심에 따라 국민과의 소통에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조 수석은 이에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에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님께’란 글을 통해 반박하면서 강 교수의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 수석은 “나는 지역구도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면서 “오히려 나의 오래된 문제 의식이 학자들의 반향을 일으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현실정치에서 논의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조 수석은 학자로서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생각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항상 사직서를 들고 다닌다. 대통령과 저의 철학이 다르고 다른 부분에 대해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언제든지 그만 둘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조 수석은 청와대 입성에 대해 “그동안 내가 쏟아 놓은 말들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면서 “내 말이 사실인 것이 확인되면 내게 공개사과할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부고]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24일 오전 9시 서울삼성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61세. 대구에서 출생한 고인은 1971년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일보·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81년 벨기에 루뱅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와 고려대 강사, 경기대 교수로 활동했다.MBC 시사프로그램 ‘100분 토론’ 사회자를 맡기도 했으며 최근까지 중앙일보에 ‘정운영 칼럼’을 연재했다. ‘시지프의 언어’‘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등 저서를 남겼으며 96년 언론인클럽 언론상(신문칼럼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양선(55)씨와 유경(34)·유신(33) 등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11시.(02)3410-6905. ●재일교포 인권옹호 이이누마 지로 재일교포 인권운동을 펼쳤던 일본인 시민운동가 이이누마 지로 전 교토대 교수가 24일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87세. 그는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에 대한 항의를 계기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교토에서 시민단체인 ‘평화연합’의 주역으로 활약했다.1969년 ‘조선인’이라는 잡지를 창간, 조선문화의 재인식과 재일교포 인권보호를 호소했다.‘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전도사’라는 저서를 냈다. ●이영근(자영업)근호(CMB 대전방송 전무이사겸 CMB 웹엔TV 대표이사)씨 모친상 25일 오전 6시 경북 고령 영생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4)956-4455 ●임길상(자영업)달식(공무원)정상(하나은행 차장)씨 모친상 25일 문경제일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4)550-7700 ●김덕기(근화지주 회장)상기(사업)승기(동양아파트㈜ 대표)씨 모친상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410-6917 ●김준일(부천의원 원장)씨 별세 신동선(시스코 코리아 이사)씨 빙부상 23일 경희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958-9545 ●조두희(한양조씨대종회 부회장)선희(라인앤지 대표이사)수희(동화금사 대표)씨 모친상 조용길(삼성인스빌 대표)씨 조모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02)3410-6919 ●최규근(개인사업)규옥(장애인 신문사 대표 및 사회복지법인 곰두리 복지재단 이사장)씨 모친상 백진기(한화종합상무)씨 빙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방인 27일 오전 7시 (02)3010-2230 ●조용은(101부띠끄대표)씨 부친상 송인국(송인국 정영외과원장)배남신(시애틀 UPS대표)씨 빙부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3010-2269 ●기세환(자영업)세원(대흥상사 사장)세홍(운수업)세학(대흥상사 부장)씨 부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02)3010-2268 ●이승규(KCC건설)씨 부친상 박재우(ASM Karea)씨 빙부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6시 (02)3010-2239 ●이동명(강북구청 건설교통국장)동희(건설업)씨 모친상 강진모(자영업)양영홍(중부교육청 관리과장)소근섭(건설업)황호신(한국전력공사)씨 빙모상 24일 전북 남원시 월납동 333-3번지 자택, 발인 26일 오전10시 (063)635-444 ●권우용(비전 대표이사)씨 빙모상 김문남씨 모친상 25일 경희의료원, 발인 27일 오전8시 (02)958-9546 ●김준기(다예사 대표)윤기(유한양행 부장)홍기(SK텔레콤 부장)형기(다예사)씨 부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3010-2292 ●안효승(한겨레 플러스)유선(필립스전자)씨 부친상 최경희(김·장 법률사무소)씨 빙부상 25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2)392-3499 ●주양일(대선주조 대표이사)배성환(세종대 교수)차흥남(교보생명 전무)장석우(자영업)씨 빙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5 ●최수동(영창실업 전무이사)성동(외환캐피탈 부장)씨 모친상 김정래(현대중공업 전무)김규수(에프원컨설팅 상무)씨 빙모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93 ●김대식(㈜신세계 홍보담당 과장)종식(세원물산)순미(KT 대리)씨 부친상 25일 오후 2시 20분 대구 칠곡가톨릭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053)326-5995 ●김우진(전 삼양사 상무)호진(GS건설 자문역)복신(군산시 보건진료소장)경신(전남대 교수)씨 부친상 김현철(삼일자동차상사 대표)정병수(하이마트 광고홍보담당 상무)씨 빙부상 25일 오전 8시 35분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02)3410-6915 ●조우석(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재석(정철필립어학원장)인석(목동수능학원장)씨 부친상 서현선(세무회계사 대표)씨 빙부상 25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02)2001-1095 ●이창복(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성복(계명대 교수)씨 부친상 정달수(사업)한상화(사업)길호영(천안 충무병원장)씨 빙부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410-6906 고인은 문부성이 일본국가인 ‘기미가요’ 제창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것은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며 1987년 제소, 유명한 ‘기미가요 소송’의 원고대표로 소송을 이끌었다.
  • 국방홍보원장 윤승용씨

    국방부는 22일 신임 국방홍보원장에 윤승용(48) 전 한국일보 정치부장을 내정했다. 오는 26일 임명장을 받고 정식 취임하는 윤 내정자는 향후 2년 동안 군 전용 위성TV 개국 추진 등 홍보원의 현안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전북 익산 출신인 윤 내정자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에 입사,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 등을 지냈다.
  • 외국인용 카지노사장에 박정삼씨

    한국관광공사는 5일 자회사인 외국인전용 카지노 사장에 전 국가정보원 2차장 박정삼(61)씨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한국일보 체육부장, 비서실장, 국민일보 부사장, 스포츠투데이 부사장 등을 거쳐 국정원 2차장을 지냈다.
  • 언론인 저술지원 대상자 선정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은 하반기 언론인 저술지원 대상자 10명을 30일 선정했다. 저술지원 대상자와 저술 제목은 다음과 같다.▲박구재(경향신문 경제부 차장) 화폐로 읽는 세계 인물사▲안기석(동아일보 출판팀 기획위원) 한국 현대 지식인의 계보▲홍성철(문화일보 국제부기자) 유곽, 그 100년의 기억▲주용중(조선일보 사회부 기동팀장) 한국의 20대 집중탐험▲손현덕(매일경제 국제부장) 국제뉴스 제대로 보기▲강동순(KBS감사) KBS와 권력 그리고…▲고주룡(MBC 뉴스편집부 차장)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정석(대한언론인회 회장) 대한언론인회보▲신우식(고 반영환 유고시집간행추진위원장) 솔개는 왜 날지 않는가(고 반영환 遺稿詩集)▲최종수(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건실한 지방신문 만들기 5년(전남일보의 創刊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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