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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오일뱅크 1%나눔재단, 시청각 장애인용 영화 만든다

    현대오일뱅크 1%나눔재단, 시청각 장애인용 영화 만든다

    현대오일뱅크 1%나눔재단이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 ‘암살’의 최동훈 감독 등과 손잡고 시청각 장애인용 영화를 제작한다고 1일 밝혔다. 1%나눔재단과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이날 서울 중구 현대오일뱅크 사무소에서 남익현 재단 이사장과 최동훈, 민규동, 장항준, 강형철 감독이 참석한 가운데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을 위한 사회공헌 업무 조인식’을 가졌다. 배리어프리란 자막과 화면 해설이 들어가 시청각 장애인 등이 즐길 수 있는 영화다. 1%나눔재단은 올해 말까지 배리어프리 영화 2편을 만들고 내년에도 2~3편을 추가 제작할 계획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주말N극장가]가장 먼저 웃었던 ‘타짜3’ 추락...왜?

    [주말N극장가]가장 먼저 웃었던 ‘타짜3’ 추락...왜?

    주말 극장가 이슈를 얄팍하게 살펴보는 ‘주말N극장가’ 코너다. 심도 깊은 분석보다 의식의 흐름을 타고 수다 떠는 코너인지라, 딴죽 거시려면 살포시 ‘백스페이스’ 눌러주시면 감사하겠다. 추석 한국영화 ‘빅3’ 가운데 가장 먼저 웃었던 ‘타짜3’가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 무릎을 꿇었다. 개연성이 부족하고, 전작들에 비해 작품성도 현격히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석 개봉 이후 보름 동안 세 영화의 성적표를 분석해본다. 27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도박판 승부사들의 세계를 그린 ‘타짜: 원 아이드 잭’은 11일 개봉 후 보름 동안 모두 218만 2589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타짜는 추석 시즌에 맞춰 11일 나란히 개봉한 ‘나쁜 녀석들: 더 무비’, ‘힘을 내요, 미스터 리’와 함께 올 추석 극장가 ‘빅3’로 꼽혔다. 타짜는 개봉 첫날인 11일 일 관람객 32만 5558명으로 세 영화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예매율도 무려 전체의 45.93%를 차지했다. 개봉 3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딱 ‘삼일천하’였다. 이후부터 축축 처지기 시작하더니 19일에는 브래드 피트 주연 새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이어 27일에는 ‘양자물리학’,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에 밀리며 현재 6위로 밀려났다. 26일부터는 일 관객도 7000명대로 고꾸라졌다. 이런 분위기라면 손익분기점인 260만명 고지조차 넘지 못할 흥행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11일 당시에는 2위로 출발했지만, 3일 만에 타짜를 따라잡은 뒤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호송차량 탈주 사건이 벌어지자 경찰이 사라진 흉악범을 잡는 극비 프로젝트로 ‘특수범죄수사과’를 다시 소집한다는 내용으로, 동명의 드라마를 토대로 만들었다.개봉 첫날 23만 9753명을 동원해 2위로 출발했고, 예매율 역시 전체의 28.66%로 타짜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3일만에 타짜를 메다 꽂았다. 24일에는 전체 관람객 400만명을 돌파하고, 25일 새로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 1위를 내주고 현재 2위로 밀렸다. 그러나 일 관객수가 4만 5000명을 넘어 흥행이 이어질 전망이다. 새로 개봉한 장사리가 이번 주말 이후 힘을 못 쓸 때에는 1위 탈환 가능성도 있다. 타짜와 나쁜녀석들의 희비를 가른 것은 무엇일까. 화려하게 시작한 타짜는 영화 평점이 5.49점에 불과하다. 특히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영화 내내 개연성이 단 1도 없고 악역들도 도대체 왜?? 라는 반문밖에 안들고”라는 댓글을 비롯해 “타짜2는 잘 만든 영화였다”, “이거 볼 시간에 타짜1을 한번 더보겠다”는 식의 비판이 많다. 탄탄한 스토리를 보여준 전작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나마 “도일출로 나온 박정민의 연기는 좋았다”는 식의 댓글도 눈에 띄지만, 다른 캐릭터에 관해서는 “연기가 엉망”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타짜에 비해서는 좀 낫지만, 나쁜녀석들 평점 역시 6.63으로 준수하지 않다. 타짜의 가장 큰 문제였던 ‘개연성’ 역시 이 영화의 문제로 삼는 평가가 많다. “개연성이 떨어지고, 마동석 캐릭터만 믿고 만든 영화. 너무 뻔한 전개”라는 댓글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반면 “액션 하나는 볼 만 했다”, “마동석의 복수 장면이 시원하다”는 식의 평도 많았다. 개연성이야 떨어지더라도 영화관에서 시간 떼우기 용으로는 타짜보다 낫다고 분석하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큰 피해자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일 것이다. 12년 만에 코미디 영화로 돌아온 차승원을 적극적으로 내세웠지만, 보름동안 고작 115만여명을 동원하는 데에 그쳤다. 27일 현재 일 관객 수가 4500여명 수준이어서 앞으로 흥행 역시 암울한 수준이다. 코미디 영화 황제였던 차승원의 티켓파워가 예전만 못함을 보여주며, 그의 입장으로선 세월이 참 야속할 수 있겠다. 그나마 평점은 7.62점으로 빅3 가운데 가장 높다는 정도에만 만족해야 할 듯 하다.다소 뻔한 이야기지만, 좋은 영화라고 흥행까지 잘 되는 법은 없다. 맞다, 영화판이 이렇게 냉혹하다(그래서 재밌긴 하지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제작자유화·외화 직배·비디오 흥행… 영화산업 패러다임 바뀐 90년대

    제작자유화·외화 직배·비디오 흥행… 영화산업 패러다임 바뀐 90년대

    1990년대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약이 진행되던 시기다. 영화 역시 중요한 산업이라는 인식이 힘을 받았고,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해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주력했으며, 젊은 관객들은 해묵은 ‘방화’의 외피를 벗은 한국영화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들은 2000년대 한국영화가 르네상스의 시기로 진입하는 기반이 됐다. 1990년대 한국영화가 이전의 제작 방식과는 결별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순간을 ‘결혼이야기’(1992)와 ‘쉬리’(1998)가 만들어냈다. 두 영화는 각각 ‘기획영화’의 효시,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연재는 우선 1990년대 한국영화가 ‘기획영화’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어떤 산업적 변화를 만들어갔는지 살펴본다.●위기가 기회로, ‘기획영화’의 등장 1990년대 초입 한국영화계는 변화의 기로에서 요동쳤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투쟁의 강도를 높여갔지만, 외화 직배로 상징되는 글로벌 기업의 시장 진입은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을 택하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1989년 110편, 1990년 111편, 1991년 121편, 1992년 96편 제작된 한국영화는 1990년대 중반 들어 60편대로 제작편수가 줄었고, 한국영화 점유율 역시 1990년 28.7%에서 1993년 15.4%로 준 이후 1994년부터 힘들게 20%대를 회복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할리우드 직배 영화가 보여준 흥행 파워는 시장 개방의 결과를 명백히 보여줬다. 상영 외화 중 직배 비중은 15% 내외였지만, 동원 관객수로 치면 50%를 훨씬 넘겼기 때문이다. 지방 흥행사라는 전통적인 흥행 자본과 연계한 기존 영화사들도 당연히 한국영화 제작보다 외화 수입에 열중했다. 이때 두 가지 요인이 한국영화 판을 새로 짜는 기반이 되었다. 바로 제5차 개정영화법(1985년)과 제6차 개정영화법(1986년)으로 열린 제작자유화와 외국영화사의 국내 진출이다. 특히 비디오 시장은 극장 흥행 외에도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이 합자한 비디오 회사 CIC가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자, 비디오 판권 확보에 다급해진 삼성 등 대기업들이 직접 투자 방식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이다. 이때 제작자유화 조치로 생겨난 신생 영화사들이 제작 주체로 나섰다. 1980년대 후반 대다수 프로덕션들이 비디오용 에로티시즘 영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1990년대 초반 영화 기획과 마케팅 영역의 중요성을 입증한 제작사들이 속속 등장한 것은 제도의 변화가 가져온 순기능이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대통령 연례보고에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1993) 한 편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자동차 150만대의 판매수익과 맞먹는다는 보고가 올라가면서 영화는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거 ‘흥행업’으로 비하받던 충무로 영화산업이 혁신적인 변화를 맞이한 계기는 비디오와 케이블TV 프로그램이라는 창구 효과(window effect)를 기대한 대기업이 속속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다. 지방흥행업자의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들던 방식에서 면밀한 기획을 거치고 대기업의 결재 라인을 통해 자금이 집행되는 제작 환경으로 바뀐다. 정부도 이제까지 서비스산업으로 분류해온 영화산업을 ‘제조업 지원 서비스산업’으로 새로 규정하고, 일반 제조업 수준의 세제·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맞물린 게 바로 ‘기획영화’라는 새로운 제작 방식이다. 제작자유화 물결을 타고 1980년대 후반 영화판에 들어온 젊은 기획자들은 비디오 판권 형식으로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며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다. 그 시작은 1992년 신씨네(대표 신철)의 기획으로 익영영화사가 지방배급업자와 삼성으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아 만든 ‘결혼이야기’(김의석)다. 영화는 서울에서만 52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했고, 한국영화의 ‘산업’적 모델을 제시했다. 현대 한국영화의 특징을 특유의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로 정의할 수 있다면, 바로 이 영화가 출발점일 것이다.●‘기획영화’를 일군 사람들 이처럼 영화산업의 판도를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결혼이야기’는 어떻게 젊은 관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영화관으로 불러 모을 수 있었을까. 신씨네는 10여 쌍의 신혼부부를 밀착 인터뷰해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과 결혼 생활의 디테일한 에피소드들을 시나리오에 녹여냈고, 이는 할리우드 영화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가 한국 것으로 토착화되는 데 일조했다. 원룸형 주거 공간 등 신세대 라이프스타일을 포착한 영화 미술뿐만 아니라, 지금의 간접광고(PPL)처럼 투자 기업의 가전 일체를 화면 속에 배치한 것도 도시적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데 주효했다. 그간 에로티시즘 영화에서 관음증적 시각으로 묘사되던 ‘성’은 신혼부부의 일상을 통해 당당히 전면으로 나섰고, 세련된 유머까지 덧입혀져 대중의 감성과 정확히 조우했다. 당시 홍보실장을 맡았던 심재명의 “잘까 말까 끌까 할까” 같은 재치 있는 카피도 관객 동원에 큰 몫을 했다. 감독의 감성보다는 기획자의 이성으로 제작된 예술적 접근보다는 관객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를 지향한 기획영화는 영화계의 판도를 바꿔나갔다. 특히 기획영화의 관객 전략은 20대 중후반 여성을 핵심 관객층으로 설정했고, 이 계층을 포함한 젊은 관객들은 “한국영화인데도 굉장히 재밌다”며 열정적으로 화답했다. 현재의 젊은 관객들로서는 ‘한국영화는 재미없는 영화’라는 기획영화 이전 평가가 오히려 생소할 것이다. 늘 한쪽으로는 예술영화 강박에 시달렸던 충무로의 감독들도 떳떳하게 대중적 상업영화로서의 완성도를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 화면의 ‘때깔’도 할리우드 영화의 만듦새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점점 좋아졌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로 영화적 감각을 단련해 온 ‘영화 청년들’ 역시 새로운 한국영화를 꿈꾸며 충무로로 모여들었다. 바야흐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판이 형성된 것이다.‘결혼이야기’가 남긴 성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신철, 유인택, 오정완, 심재명 등이 이 영화를 통해 배출됐고, 신씨네가 대우의 투자를 받아 직접 제작한 ‘미스터 맘마’(강우석, 1992)를 통해서 차승재, 김선아, 김무령 등이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 감각의 기획자, 프로듀서의 등장은 1990년대 중반 새로운 영화사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투자와 제작이 분리된 프로듀서 시스템이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강우석이 주축이 된 ‘시네마서비스’, ‘기획시대’가 통합된 이춘연·유인택 공동 체제의 ‘씨네2000’, 차승재의 ‘우노필름’, 심재명·이은의 ‘명필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강우석이라는 존재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영화감독, 제작자, 투자배급사 대표 그리고 극장주 등 199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줄곧 충무로 파워맨 1위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달콤한 신부들’(1988)로 감독 데뷔한 강우석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로 충무로에 이름을 알린 후, 7번째 연출작인 ‘미스터 맘마’의 흥행 성공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강우석 프로덕션을 설립해 직접 영화제작에 착수했는데, 바로 한국영화의 흥행력을 증명한 ‘투캅스’(1993·1994년 한국영화 흥행 1위)이다. 1995년 제작, 투자, 배급을 일원화한 충무로 영화인 기반의 첫 메이저영화사 시네마서비스를 출범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지키며 저력을 과시했다. ‘대중의 심리를 정확하게 읽고 스크린에 끄집어내는’ 연출자로서의 타고난 능력과, 빠른 결정과 강한 추진력으로 성공적인 투자를 이끄는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두루 갖춘 강우석은 2003년 ‘실미도’로 한국영화 천만 관객 시대를 연 장본인이 되었다.●1990년대 장르 공식, 로맨틱 코미디·코믹 액션 ‘결혼이야기’ 흥행 성공에 힘입어 한국영화는 음습하고 어두운 에로티시즘을 벗어나 발랄하고 세련된 로맨틱 코미디의 공간으로 진입했다. 로맨스와 코미디의 합성어인 로맨틱 코미디는 연애담이 중심으로 삼는 할리우드의 대표 장르다. 특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1989)가 한국에서 성공한 것이 로맨틱 코미디 제작 붐에 일조했다. 1990년대 초중반 흥행 시장을 압도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이후 한국영화의 특징적 경향인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이끌었다. 대체로 고학력의 전문직 여성과 가부장적 의식이 남아 있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이들이 티격태격하는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이야기 방식은 1992년 ‘미스터 맘마’(강우석),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신승수), 1993년 ‘그 여자 그 남자’(김의석), ‘가슴 달린 남자’(신승수),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유동훈), 1994년 ‘마누라 죽이기’(강우석), 1995년 ‘닥터봉’(이광훈) 등으로 재차 반복됐다.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준 경쾌한 이야기 전개와 마치 광고를 보는 듯한 깔끔한 영상은 20대 젊은 관객이 한국 대중영화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장르의 힘이 늘 그렇듯 로맨틱 코미디는 1990년대 중반 ‘닥터봉’을 정점으로 시들해졌고, 복고풍 정서 혹은 신세대의 감수성을 담은 멜로드라마로 흥행의 기운이 옮겨갔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중적 멜로드라마 ‘고스트맘마’(한지승, 1996), ‘편지’(이정국, 1997), ‘약속’(김유진, 1998) 등이 전자의 경향이라면, 후자는 도시적 감수성으로 관객과 소통한 ‘접속’(장윤현, 1997)과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정적인 미장센이 돋보인 ‘정사’(이재용, 1998)를 들 수 있다. 한편 전통의 액션영화 장르는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1990)로 복권했다. 이 영화는 단성사 단관 개봉으로만 67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 1977년 ‘겨울여자’가 달성한 59만 기록을 14년 만에 경신했다. 젊은 감독들은 새로운 감각의 액션영화를 선보였다. ‘걸어서 하늘까지’(1992)로 데뷔한 장현수는 ‘게임의 법칙’(1994), ‘본투킬’(1996)을, ‘런어웨이’(1995)로 데뷔한 김성수는 홍콩 누아르 스타일을 청춘·성장영화 속으로 흡수한 ‘비트’(1997)로 신세대의 감수성과 접속했다. 로맨틱 코미디가 멜로드라마의 가지치기 장르이듯 액션영화 역시 코미디 혹은 멜로드라마와 결합해 ‘코믹 액션’, ‘남성·액션 멜로’로 진화했다. 1994년 ‘투캅스’의 흥행 성공이 코믹 액션 장르 붐을 일궜다면 1998년 ‘남자의 향기’(장현수), ‘태양은 없다’(김성수) 등은 액션과 결합한 남성 멜로를 내세웠다. 한편 송능한의 ‘넘버3’(1997)는 액션 장르를 풍자적 감각으로 변형시키며 ‘코믹 액션’ 장르의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뤘다. 이 영화는 2001년 개봉한 ‘조폭마누라’(조진규), ‘달마야 놀자’(박철관), ‘두사부일체’(윤제균) 등 이른바 2000년대 ‘조폭 코미디’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1990년대 중반 새로운 세대가 주도한 영화계는 한국영화도 외화만큼 볼만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냈다. 멜로, 액션, 코미디 3대 장르에 머물던 한국영화는 컴퓨터그래픽을 성공적으로 드라마에 녹인 판타지 영화 ‘은행나무침대’(강제규, 1996), 청소년 영화 장르에 여름 시즌 귀신이야기를 부활시킨 ‘여고괴담’(박기형, 1998), ‘코믹잔혹극’을 표방한 블랙 코미디 ‘조용한 가족’(김지운, 1998) 등 다양한 장르로 만개했다. 산업의 성장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상업주의적 영역의 확대뿐만 아니라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관심까지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을 다룰 다음 연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양적 성장의 정점뿐만 아니라, 1990년대 작가주의 감독군 그리고 영화문화의 형성 등을 살펴볼 것이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타임캡슐·OST 음악회… 광화문서 만나는 한국영화 100주년

    타임캡슐·OST 음악회… 광화문서 만나는 한국영화 100주년

    1919년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을 위한 영화 축제와 한국영화 학술대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10월 26~2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한국영화 100년 광화문 축제’를 개최한다. 축제에서는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식, ‘의리적 구토’를 모티프로 한 퍼포먼스와 영화 촬영현장 재현, 시민을 위한 영화 OST 음악회, 전시회 등이 펼쳐진다. 한국영화가 지나온 1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100가지 기념물들을 디지털 파일로 담아 타임캡슐로 봉인되는 행사도 진행한다. 앞서 기념사업추진위 공식 홈페이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100년 역사를 상징할 수 있는 사건, 기록, 물품에 대한 의견과 이를 시각적으로 기록한 디지털 파일을 신청받았다. 이를 통해 만든 디지털 파일을 타임캡슐에 담아 영화진흥위원회가 앞으로 100년 동안 보관한다. 시민들은 기념사업 추진위 공식 SNS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한국영화 최고의 OST’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 삽입된 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꼽았다. ‘클래식’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자전거 탄 풍경), ‘엽기적인 그녀’(2001)의 ‘아이 빌리브’(신승훈) 등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장호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의리적 구토’는 한국 최초 영화지만 필름 원본도 없을뿐더러 이 영화를 본 사람도 현재 없다”면서 “내용과 줄거리만으로는 재연이 어려워 퍼포먼스를 보여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DMZ 국제다큐영화제 오늘 고양서 개막

    경기도는 20일 오후 7시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 6B홀에서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개막한다고 19일 밝혔다. 개막식을 시작으로 46개국에서 출품된 152편의 다큐멘터리를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오는 27일까지 8일간 펼쳐진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위치한 DMZ와 다큐멘터리가 만나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2009년 1회를 시작한 이래 ‘평화, 소통, 생명’의 가치를 전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어느 해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들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DMZ POV: 다큐멘터리를 만나다’에서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지형도: 한국다큐멘터리 50개의 시선’을 통해 기자와 비평가가 선정한 55편의 한국다큐멘터리 중 10편을 영화제 중 상영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고려 때부터 시작된 동네 역사… 곳곳서 느껴지는 예술혼 숨결

    [흥미진진 견문기] 고려 때부터 시작된 동네 역사… 곳곳서 느껴지는 예술혼 숨결

    추석 연휴인 토요일, 시원한 물줄기와 푸른 북한산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정릉천 문학과 예술의 여정을 시작했다. 정릉에 사는 사람들은 정릉동이라는 명칭 대신 ‘정릉 산다’, ‘정릉 살아요’라는 말로 자부심과 상징적 의미를 드러낸다는 해설을 들으며 고려시대부터 역사를 함께해 온 경국사로 향했다. 정릉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릉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삼각산경국사’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장마가 살짝 가셔서 그랬을까, 안개가 자욱이 앉은 경국사의 모습은 시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고즈넉했다. 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일행은 목각탱화를 간직한 대웅전과 목각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성전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정릉천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초가을 날씨가 무색하게 살짝 더위가 느껴질 때쯤 정릉은 역사적 공간만이 아닌 음악, 미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예술혼이 깃든 장소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박경리, 최만린, 이중섭, 김대현 등 문화예술인들이 정릉에 자리잡고 주변의 다른 이웃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했다 하니 그들이 산책하면서 얻었을 영감에 정릉천이 새삼스레 멋있게 느껴졌다. 소설가 박경리의 집터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대안학교로 쓰이고 있지만, ‘토지’를 집필한 이곳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위인 시인 김지하가 옥살이했을 때 지었던 시 한 편을 듣고 나니 작가의 한이 느껴졌다. 정릉천의 막바지를 따라가니 이번에는 정릉 촬영장과 영화배우 김지미의 옛집이 근처에 있음을 알게 됐다. 한국영화에 한 획을 그었던,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다시 열기를 되찾고 마지막 코스인 옛 청수장 자리로 향했다. 1950~1960년대 신혼여행지였다는 청수장이 지금은 북한산국립공원탐방안내소로 바뀌어 있었다. 가수 조동진이 청수장에서 고은 시인을 만나 ‘작은 배’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정릉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화예술적으로 버릴 곳이 하나도 없는 곳이라고 느끼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김미선 책마루연구회 연구원
  • ‘아워바디’ 최희서 “개봉 이틀 후 결혼, 실감 안 나지만 행복”

    ‘아워바디’ 최희서 “개봉 이틀 후 결혼, 실감 안 나지만 행복”

    배우 최희서가 오는 28일 결혼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선 영화 ‘아워 바디’(Our Body)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연출을 맡은 한가람 감독과 주연 배우 최희서, 안지혜가 참석했다. 최근 직접 결혼 소식을 알린 최희서는 “영화 ‘아워바디’가 개봉하고 이틀 후에 결혼하기 때문에 결혼 하루 전까지도 무대인사, GV 하고 결혼하는 날만 죄송하게도 자리를 비우게 됐다. 결혼 다음날에도 무대인사, GV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결혼이 실감 나지 않지만 열심히 행복하게 준비해보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아워바디’는 8년간 고시 공부만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방치하던 주인공 자영(최희서 분)이 우연히 달리는 여자 현주(안지혜 분)를 만나 함께 달리기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최희서는 “한 여성의 변화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품이 드물지 않나. 그런 점에서 ‘아워바디’가 용기 있는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이 작품에 출연하면 용기있는 배우가 될 것 같았다”면서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언젠가 평범한 여성의 삶에서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제가 원하던 영화였다”고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또 “이 작품 덕에 달리면서 제 삶이 바뀌었다”며 “‘아워바디’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운동을 하고 있다. 몸의 정직함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위로가 되더라.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몸은 정직한 결과를 주지 않나. 운동에서 위로 얻는 걸 알게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워바디’는 세계 5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제43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이미 뜨거운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제43회 홍콩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한국 영화 100주년’ 부문에 초청,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개봉 전부터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오는 26일 개봉.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8월 한국영화 관객 수, 7년만에 최저

    지난달 한국영화 관객 수가 8월 기준으로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4일 영화진흥위원회의 ‘8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영화 관객 수는 1천80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8월보다 421만명 줄어든 수준이다. 8월 한국영화 관객수는 2013년부터 작년까지 6년 연속 2천만명을 웃돌다가 7년 만에 1천만명대로 떨어진 셈이다. 한국영화 관객수가 급감한 주 원인은 이른바 천만영화 부재와 중박영화 실종 탓이란 게 영화계의 관측이다. 실제로 여름 시즌마다 탄생한 천만영화는 전체 관객 수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2014년 ‘명량’, 2015년 ‘베테랑’, 2017년 ‘택시운전사’, 2018년 ‘신과함께-인과 연’이 각각 1천만명을 동원했지만 올해 8월에는 828만명을 불러 모은 ‘엑시트’가 최고 기록이다. 중박영화도 나오지 않았다. ‘봉오동 전투’가 468만명을 동원하며 전체 흥행 순위 2위에 올랐으나 손익분기점(450만명)을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외화의 경우 ‘분노의 질주:홉스 & 쇼’가 334만명을 불러모으며 전체 흥행 3위에 올랐다. 지난달 100만명 이상을 동원한 유일한 외화다. 외화 흥행작이 7월에 몰린 탓에 8월 외화 관객 수도 작년 8월보다 124만명 줄어든 681만명에 그쳤다. 8월 외화 관객수로는 2012년 이후 최저치다. 이에 따라 한국영화와 외화를 합친 전체 극장 관객 수는 2천481만명으로,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김성호 기자 kimus@seoul.co.kr
  • [영화 볼까요] 믿고 보는 ‘빅3’…통쾌하거나 감동적이거나

    [영화 볼까요] 믿고 보는 ‘빅3’…통쾌하거나 감동적이거나

    올 추석 극장가는 ‘빅3’의 싸움이 치열할 전망이다. 추석 하루 전인 11일 굵직한 한국영화 3편이 한꺼번에 개봉한다. 이 밖에 아이들과 즐길 만한 영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타짜’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나쁜 녀석들’ 동시 개봉 ‘타짜: 원 아이드 잭’은 도박판 승부사들의 세계를 그린 허영만 화백 만화 원작 ‘타짜´ 시리즈 세 번째 영화다. 1편 ‘타짜’(2006)는 568만명, 2편 ‘타짜-신의 손’(2014)은 401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번 편은 전설적인 도박사 짝귀의 아들 일출(박정민 분)이 매력적인 여성 마돈나(최유화 분)와 엮이면서 위기를 맞는 내용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일출은 도박판에서 속아 궁지에 몰린다. 그런 그의 앞에 애꾸(류승범 분)가 등장해 거액의 도박판을 제안한다. 셔플의 제왕 까치, 연기력을 갖춘 영미, 기러기 아빠이자 숨은 고수 권원장이 팀에 합류한다. 성격도 특기도 다른 타짜들이 모여 힘을 합친다는 설정이 ‘오션스 일레븐’이나 ‘도둑들’을 연상케 한다. 139분, 청소년 관람불가.‘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차승원표 코미디’ 영화다. 철수(차승원 분)는 칼국수 맛집 수타 달인이다. 우월한 외모, 근육질 몸매이지만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딸 샛별(엄채영 분)이 나타난다. 백혈병에 걸린 샛별은 같은 병을 앓는 친구에게 특별한 생일선물을 주겠다며 병원을 몰래 빠져나오고, 철수가 무작정 샛별을 따라나서면서 좌충우돌 사건이 벌어진다. 코미디 영화라곤 하지만, 여행 과정에서 그저 바보인 줄로만 알았던 철수의 애달픈 과거가 밝혀지며 관객의 눈물 콧물을 쏙 뺀다. 111분, 12세 관람가.‘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2017년 동명 원작 드라마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사상 초유의 호송차량 탈주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은 사라진 흉악범을 잡는 극비 프로젝트로 ‘특수범죄수사과’를 다시 소집한다. 오구탁(김상중 분) 반장이 과거 함께 활약했던 전설의 주먹 박웅철(마동석 분)을 찾아가고, 사기꾼 곽노순, 전직 형사 고유성을 영입해 새로운 팀을 구성한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유쾌한 호흡을 선보인다. 영화로 만들면서 드라마보다 그 규모도 커졌다. 114분, 15세 관람가.●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영화도 선보여 ‘빅3’의 틈바구니에서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한 영화도 눈에 띈다. 11일 개봉한 ‘플레이모빌: 더 무비’(99분, 전체관람가)는 렉스가 장난감 세계에 빠지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난감 ‘플레이모빌’의 바이킹, 시크릿 에이전트, 로봇, 푸드트럭 드라이버, 요정 대모까지 다양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영화 ‘안녕 베일리’(109분, 전체관람가)는 ‘베일리 어게인’(2017) 이후 이야기다. 반려견 베일리가 이든에게서 딸 씨제이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를 수행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한다. 지난 5일 선보인 ‘동물, 원’(97분, 전체관람가)은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동물들과 동물원에서 그들을 정성스레 돌보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다. 충북 청주랜드동물원에서 펼쳐지는 따뜻한 이야기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캐나다 핫독스 국제다큐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은 작품으로, DMZ국제다큐영화제 젊은 기러기상과 서울환경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추석 한국영화 ‘빅3’…‘타짜’ 가장 먼저 웃었다

    추석 한국영화 ‘빅3’…‘타짜’ 가장 먼저 웃었다

    ‘타짜: 원 아이드 잭’, ‘나쁜 녀석들: 더 무비’,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올 추석 극장가 ‘빅3’ 가운데 가장 먼저 웃은 것은 타짜였다. 첫날 관객 수에서 선두를 차지했고, 예매율에서도 다른 두 영화를 압도했다. 도박판 승부사들의 세계를 그린 ‘타짜: 원 아이드 잭’은 허영만 화백 만화 원작 ‘타짜’ 시리즈 3번째 영화다. 전설적인 도박사 짝귀의 아들 일출(박정민 분)이 매력적인 여성 마돈나(최유화 분)와 엮이면서 위기를 맞는다. 그런 그의 앞에 애꾸(류승범 분)가 등장해 거액의 도박판을 제안한다. 12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첫날인 11일 일 관람객 32만 5558명으로 세 영화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예매율은 무려 45.93%에 이른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사상 초유의 호송차량 탈주 사건이 벌어지자 경찰이 사라진 흉악범을 잡는 극비 프로젝트로 ‘특수범죄수사과’를 다시 소집한다는 내용이다. 2017년 동명 원작 드라마를 바탕으로 오구탁(김상중 분) 반장이 과거 함께 활약했던 전설의 주먹 박웅철(마동석 분)을 찾아가고 새로운 팀을 구성한다. 개봉 첫날 23만 9753명을 동원해 2위로 바짝 따라붙었지만, 예매율이 28.66%로 다소 뒤처진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칼국숫집에서 일하는 철수(차승원 분) 앞에 갑자기 딸 샛별(엄채영 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우월한 외모, 근육질 몸매지만 정신지체가 있는 철수가 무작정 샛별을 따라나서면서 좌충우돌 사건이 벌어진다. 간만에 차승원이 코미디 영화로 복귀했지만, 관객 5만 4859명으로 3위로 밀렸다. 빅3 가운데 타짜가 먼저 웃었지만, 네티즌 평점은 반대여서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네이버 네티즌 평점 기준 ‘타짜: 원 아이드 잭’이 6.81점,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7.99점,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8.07점이다. 빅3를 제외한 전체 상영작 가운데 한국영화 2편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추석 극장가는 한국영화 5편의 싸움이 될듯 하다. 조정석과 윤아의 단짠 코미디 ‘엑시트’가 누적 관람객 926만 5309명으로 천만 고지를 앞두고 있으며, 김고은, 정해인의 로맨스 ‘유열의 음악앨범’이 118만 3151명을 동원했다. 그러나 예매율이 각각 2.17%, 1.62%에 불과해 빅3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5·18 광주 데자뷔’ 홍콩의 택시운전사, BBC 기자에 “우리의 싸움 전해달라”

    ‘5·18 광주 데자뷔’ 홍콩의 택시운전사, BBC 기자에 “우리의 싸움 전해달라”

    BBC 중국 특파원 트위터 올려택시기사, 요금 안 받겠다 사양“‘홍콩은 포기 안 해’ 전해달라”‘홍콩판 택시운전사’ SNS 화제 ‘임을 위한 행진곡’ 홍콩 울리기도6월 시작된 홍콩 시위 석 달째미 의회, ‘홍콩 민주주의법’ 추진시위대 이끄는 조슈아 웡, 독일행“기자 양반, 요금은 안 받겠소. 고마운 건 내쪽이오. 부디 세상에 전해주시오. 홍콩 사람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울 거라고.” 영국 BBC방송의 중국 특파원인 스티븐 맥도넬은 지난 9일 홍콩 국제공항에서 가슴 뭉클한 일을 겪었다. 공항까지 자신을 태워준 택시기사가 한사코 요금을 사양한 것이다. 이름 모를 택시기사는 외신 매체가 있어 정말 고맙다면서 맥도넬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러면서 자유를 쟁취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홍콩 시위대의 싸움을 세상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맥도넬은 이 일을 트위터(@StephenMcDonell)에 즉시 올렸다. 그의 글은 5000번 이상 리트윗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맥도넬은 “홍콩의 정치적 위기로 이 택시운전사의 생계는 곤란해졌을 것”이라면서 “시위대 때문에 장사에 피해를 본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물론 만났지만, 시위대를 지지하는 자영업자가 이처럼 많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고 적었다.홍콩 및 중국 재외국민을 비롯한 트위터리안은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댓글을 1000건 이상 남겼다. 이 가운데는 맥도넬의 사연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 영화 ‘택시운전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중국어, 영어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방탄소년단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한 트위터리안은 “훌륭한 한국 영화 한편이 생각난다”고 적었다. “택시운전사의 홍콩버전”이라는 평도 있었다. 또다른 이용자는 이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를 언급하며 “언젠가 홍콩 시위도 더 많은 영화와 TV작품으로 볼 수 있길 바란다”며 적었다. 그러자 맥도넬은 택시운전사의 포스터를 첨부하면서 “정말 좋은 영화다. 실화를 담은 놀라운 이야기다. 강력 추천”이라고 화답했다.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기사 김사복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총 관객수 1219만명을 기록한 이 영화에서 배우 송강호씨는 신군부의 무자비한 살상을 목도하고,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려 한 힌츠페터를 적극적으로 돕는 택시운전사를 연기했다. 영화는 같은 해 9월 홍콩과 대만에서도 개봉됐다. 영화를 본 현지 시민들은 당시 SNS에 “우리는 언제쯤 역사를 직면할 수 있을까”, “스크린에 당신들의 이야기를 옮길 수 있다니 부럽다”, “객석이 울음바다였다”, “비슷한 어떤 사건(텐안먼 사태)이 자꾸 생각난다”는 등의 감상평을 남기며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했다. 지난 6월 9일 시작돼 3개월간 이어진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홍콩 시민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촛불집회 등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거울 삼기도 했다. 시위 초기 통기타를 든 한 참가자는 “구글에서 ‘광주의 노래’를 검색해보라. 한국영화 3편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을 봤다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소개했다.이 참가자가 중국어 가사를 붙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르는 영상은 SNS에서 화제가 됐다.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에 대한 자국 언론의 보도를 통제하는 가운데 홍콩 시민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국제 언론에 크게 의존하는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시위대는 현장을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이 다치지 않게 적극적으로 보호하기도 한다.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진압에 나서자 현장을 중계하는 외국인 기자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안전모를 쓰게 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취재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홍콩 시위는 3개월 째 접어들었다. 시위대는 송환법의 완전한 철회와 시위대에 대한 폭도 지정 철회 및 홍콩 경찰의 무력진압에 대한 정식 사과, 체포된 시위대의 전면 석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하지만 중국 정부는 시위대를 범죄집단으로 규정하고 “모든 범죄행위는 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의 특별지위를 지속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과 함께 홍콩의 기본 자유를 억압한 책임이 있는 자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한편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의 주역이자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은 9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해 “홍콩은 새로운 냉전시대의 베를린”이라며 “자유 세계가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우리와 함께하길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추석 극장가 흥행 이끌 한국영화 삼두마차는

    추석 극장가 흥행 이끌 한국영화 삼두마차는

    올 추석 극장가에는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이하 타자 3),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나쁜녀석들: 더 무비’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2년 ‘광해,왕이 된 남자’, 2013년 ‘관상’, 2016년 ‘밀정’처럼 추석 흥행의 영광을 이어갈 작품이 나올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0일 오후 3시 30분 기준 ‘타짜 3’이 예매율 31.2%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나쁜 녀석들’과 ‘힘을 내요’는 각각 28.7%와 18.4%로 2위와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추석 개봉작 최초로 천만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추석 연휴 3일간 182만7801명이 봤고, 개천절 징검다리 연휴까지 총 6일 간 306만9376명 관객이 들었다. 올 추석은 주말을 합하면 연휴 기간이 4일이다. 게다가 추석에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2016년 소폭 감소했지만 최근 10년 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허영만 작가의 ‘타짜’ 시리즈 가운데 3부 ‘원 와이드 잭’을 각색한 ‘타짜3’은 청년문제를 독창적으로 풀어낸 저예산 장편 ‘돌연변이’의 권오광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전설적인 타짜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란 주인공 도일출을 박정민이 연기했다. 권 감독은 “포커를 모르는 관객도 재밌게 볼 수 있도록 심리 묘사에 집중했다”고 밝혔다.청소년관람 불가 등급인 점과 기존 ‘타짜’ 팬층의 기대를 넘어서야 하는 점은 걸림돌이다. ‘타짜’ 최동훈 감독은 “서스펜스와 유머가 가득하다”고 평했다. ‘타짜-신의 손’ 강형철 감독은 “다채로운 캐릭터가 넘쳐나는 추석 선물 세트 같은 영화”라고 ‘타짜 3’에 만족감을 표했다. ‘나쁜 녀석들:더 무비’는 액션 영화다. 케이블 채널 OCN 동명 드라마의 확장판이다.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다’는 원작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왔다. 대신, 규모를 키우고 이야기를 달리했다. 연출을 맡은 손용호 감독은 지난 4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다만, ‘타짜’와 마찬가지로 원작 드라마 팬들의 기대를 넘어야 하는 것이 숙제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가족 영화다. 어수룩한 아버지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어린 딸이 대구 여행을 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이야기다. 영화는 2003년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계벽 감독의 전작 ‘럭키’(전국 관객 697만명)도 ‘웃픈’ 영화였다. 블라인드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차승원의 코믹 연기에 웃다가 진한 부성애 연기에 울었다.올여름 극장가는 조용했다. 해마다 여름이면 ‘빅4’ 배급사가 경쟁하듯 내놓는 텐트폴무비가 ‘엑시트(CJ엔터테인먼트)’ 하나였다. 추석을 피해 여름 개봉을 택한 ‘나라말싸미’, ‘봉오동 전투’는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영화계 관계자는 “이번 추석영화 3편은 규모나 화제성 면에서 예년보다 못한 편”이라고 말했다. 3편의 개봉작이 부진했던 여름 성적을 만회하고 추석 극장가 흥행을 이끌지 귀추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198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바로 제작 자유화 물결 그리고 할리우드 직배(직접배급) 영화의 상륙이다. 1985년 7월 제5차 개정영화법 시행으로 자유롭게 영화사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그 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 12월 제6차 개정영화법의 공포로, 외국영화사의 국내 진출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추석 시즌에 개봉한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에이드리언 라인, 1987)가 할리우드 영화사의 첫 직배 영화였다. 영화인들은 격렬한 직배 저지 투쟁에 나섰고, 이는 청년 영화인들의 영화계 민주화 투쟁, 또 스크린쿼터 투쟁으로 이어졌다.이 시기 한국영화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충무로에서는 이장호와 배창호의 후예들이자 영화운동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이명세 등이 등장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일련의 사회비판적 영화들을 내놓았다. 바로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로 명명된 작품 경향이다. 또 대학과 사회운동단체 등 제도권 영화계 밖에서는 한국 특유의 영화운동이라고 할 ‘독립영화’가 등장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1990년대의 르네상스를 예비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포착해 본다.●제작 자유화 그리고 직배 저지 운동 제5공화국 정권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혹은 올림픽이라는 정권 차원의 과업 때문인지 문화예술 영역을 강조했고, 예산 지원과 규제 검열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가동했다. 1984년 영화시책부터 반영된 영화예술 및 영화산업 활성화 방안도 당시 문화정책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었다. 1962년 1월 제정부터 1973년 제4차 개정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영화법이 국가의 통제를 위해 존재했다면 1984년 12월 공포된 제5차 영화법은 개방 영화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다. 영화제작업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됐고, 전격적인 독립제작제도까지 신설됐다. 영화업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제작 신고만 하면 누구나 연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1986년 하명중영화제작소를 시작으로 그해 27곳이 신고한 독립제작사는 1980년대 후반 100여곳에 달할 정도로 영화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남프로덕션(대표 정지영), 파랑새(윤명오), 새빛영화제작소(주경중), 흙바람(장경기), 장산곶매(이은) 등이 충무로 시스템의 안팎에서 독립제작에 열중했다. 문화공보부의 영화 검열 업무도 심의제로 이름을 바꿨고, 주관자 역시 반관반민 기구인 공연윤리위원회로 이관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 육성 및 자율화 정책이 추진된 배경에는 1985년부터 시작된 한미 영화협상이 있었다. 미국영화수출협회(MPEAA)의 끊임없는 압력 끝에 한국영화는 전면적인 시장 개방이 예고된 상태였다. 결국 제6차 영화법 개정(1986년 12월 31일)으로 1987년 7월 미국 영화사들이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올림픽 기간인 1988년 9월 추석 프로그램으로 UIP(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미국 메이저영화사의 연합배급사) 직배 1호 ‘위험한 정사’가 개봉했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존립 기반이 무너졌다며 격렬히 저항했다. 대부분의 영화사는 여전히 한국영화 제작보다 외화 흥행 수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9일 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철야농성으로 시작된 미국영화 직배 반대 운동은 9월 24일 수백명의 영화인이 ‘위험한 정사’를 개봉한 신영극장과 코리아극장에서 점거농성을 하며 더욱 격앙됐다. 직배 저지 투쟁은 해를 넘기면서 더욱 과격해졌다. UIP 직배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관람석에서 암모니아 통과 뱀 자루가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극장 안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1990년까지 영화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결국 직배 반대 운동은 한계를 드러내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화 창작자, 제작자, 영화관 소유주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너무나도 이해관계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6년, UIP 직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이면에 직배 영화 배급권을 둘러싼 극장주들의 암투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도전·실험 기반한 ‘코리안 뉴웨이브’ 등장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박광수, ‘성공시대’의 장선우,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명세 그리고 1988년 직배 반대 운동을 통해 영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남부군’(1990)의 정지영 등 다소 유화적인 사회 분위기에 등장한 새로운 감독군과 작품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코리안 뉴웨이브의 등장은 제작, 검열 등에 관한 영화정책의 변화와 맞물린 결과였고,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성취한 사회변혁의 기운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뉴웨이브의 선두주자는 박광수였다. 그는 데뷔작 ‘칠수와 만수’에서 장기수 아버지를 둔 만수(안성기 분)를 통해 연좌제 문제를 언급했고,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서는 탄광촌으로 도피한 운동권 대학생을 다루며 주제 의식에서도, 영화 미학에서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장선우는 영화적 화두와 미학적 스타일을 고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선우완과 공동 연출한 ‘서울황제’(원제 서울예수, 1986)로 검열의 수난을 겪은 그는 실질적인 데뷔작 ‘성공시대’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1990)과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에서 물러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연출 방향을 전환했다.박광수와 장선우가 예민한 사회적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영화언어에 대한 실험을 놓치지 않았다면, 정지영은 전통적인 영화 화법을 기반으로 한국 현대사의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는 쪽이었다. 그는 3년 동안 매달린 ‘남부군’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 남한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정면으로 다뤘고, ‘하얀전쟁’(1992)에서는 베트남전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해 갔는지 그려 내며 사회파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두 작품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을 한국영화에서 가장 먼저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정지영의 과감한 행보는 이후 한국영화가 소재와 검열의 한계를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한편 이명세는 사회 비판의 장에서 물러나 영화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열중했다. 데뷔작 ‘개그맨’(1989년 개봉)은 갱스터와 코미디 장르의 관습을 흥미롭게 비트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특별한 구성을 축조해 냈다. 이후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 ‘첫사랑’(1993) 등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감독의 화면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이처럼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단일한 범주로 묶기 힘든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국영화 세대교체이자 르네상스의 가교 사실 코리안 뉴웨이브가 공식적인 운동이나 영화 사조로서의 집단적인 흐름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이장호, 이원세, 배창호 등으로부터 비판적 리얼리즘 시각을 계승하며 영화언어의 자각을 통한 미학적 실험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전체 혹은 1990년대 중반까지로 범위를 더 넓힐 수도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의 이장호,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배창호, ‘만다라’(1981)의 임권택부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의 배용균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간한 영문 자료집 ‘Korean New Wave’에서 대상 작품들의 시기를 1980년에서 1995년까지로 설정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크게 보면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0년대 한국영화가 이룬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1980년에 활동을 재개한 이장호를 비롯해 배창호, 정지영, 신승수, 장길수, 박철수 등이 충무로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은 것과 영화운동 세대인 장선우, 박광수, 박종원, 이정국 등이 1980년대 후반 충무로에 입성한 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또한 이장호의 조감독 출신이 배창호, 장선우, 박광수 등이고 배창호의 조감독 출신이 신승수, 이명세 등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는 흐름을 엿볼 수 있다.시대정신을 새기며 새로운 영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새로운 물결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예감하게 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장미빛 인생’(1994)의 김홍준, ‘세상 밖으로’(1994)의 여균동, ‘세 친구’(1996)의 임순례, ‘넘버3’(1997)의 송능한, ‘초록물고기’(1997)의 이창동 등이 등장했고, 이들 작품은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제 의식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뉴웨이브’로 명명됐다. 물론 장선우를 위시해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역시 1990년대 내내 진가를 발휘했다. 그들의 작업은 1990년대 한국영화가 작가주의 미학과 대중적 감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모범이 되는 것이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권력에 맞선 독립영화, 그들에겐 ‘투쟁’이었다

    권력에 맞선 독립영화, 그들에겐 ‘투쟁’이었다

    1980년대는 ‘운동’으로서의 영화가 발화하고 실천된 시기다. 충무로의 자본과 배급구조를 벗어난 비제도권 영화들이 현실사회의 참여와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작되고 상영돼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독립영화의 정의가 자본뿐만 아니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까지 포함돼야 하는 이유다. 소형영화, 단편영화, 작은영화, 열린영화, 민중영화, 비제도권 영화 등으로 불리며 대안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을 펼친 1980년대의 영화운동은 1990년 1월 30일 ‘한국독립영화협의회’ 결성을 계기로 ‘독립영화’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한국 영화운동의 역사를 보려면 1979년 최초의 대학 영화단체로 결성된 서울대 영화연구회 ‘얄라셩’부터 거론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1982년 최초의 진보적 영화단체 ‘서울영화집단’의 설립에 주축으로 나서 1980년대 영화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박광수, 문원립, 홍기선, 송능한, 황규덕, 김홍준 등이 성원으로 활동했다. 제3세계 영화운동에 주목한 서울영화집단은 ‘민중영화론’을 주창하며 ‘수리세’(1984) 등의 소형영화를 만들었고, 1983년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를 출간하는 등 이론 작업도 진행했다. 1986년 서울영화집단을 비롯해 영화운동을 해 온 소규모 영화집단들이 발전적으로 해체, 통합하면서 ‘서울영상집단’이 결성됐다. 단체명은 영화운동을 필름 매체로만 한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홍기선, 이효인이 ‘파랑새’(8밀리, 40분, 1986) 사건으로 구속된 후 서울영상집단은 UIP 직배 저지 투쟁 등 충무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민족영화연구소’와 민족문화운동연합 산하의 서울영상집단으로 조직이 분리된다. 1989년 서울영상집단은 ‘들풀’, ‘새힘’과 함께 ‘노동자뉴스제작단’을 결성, 노동운동 현장을 기록한 ‘노동자뉴스’로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배급 시스템을 확보하는 값진 성과를 이룬다. 1987년에는 ‘작은영화제’ 이후 활발하게 결성됐던 대학 영화패 중 총 13개 대학이 모여 ‘대학영화연합’이 탄생했고, 그해 7월 서울예전, 중앙대, 한양대 영화패의 청년 영화인들이 ‘장산곶매’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장산곶매가 만든 최초의 16밀리 장편 ‘오! 꿈의 나라’(이은·장동홍·장윤현, 1989)는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언급한 최초의 극영화다. 이 영화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국 150개 공간에서 500회 이상 상영하며 1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대안적인 상영망 구축의 훌륭한 선례를 남겼다.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작품 ‘파업전야’(이은·장동홍·장윤현·이재구, 1990)는 동시 상영 투쟁을 전개하고 관객들이 스스로 공권력에 대항해 상영을 성공시키는 등 1980년대 영화운동을 대표하는 귀중한 성과로 기록된다. 1980년대 충무로의 변방에서 대안 진영을 구축했던 대학 영화동아리 혹은 문화운동 출신의 청년들은 이후 대거 상업영화계로 이동해 199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전을 주도했다.
  • 이용관 “BIFF, 글로벌 영화제 재도약할 것”

    이용관 “BIFF, 글로벌 영화제 재도약할 것”

    “작년에 정상화를 내세웠는데 전국의 관객들, 영화인들의 도움으로 대내외적으로 안착했다고 봅니다. 연초부터 실시했던 대대적 조직·인사 개편, 프로그래밍 재개편을 통해 올해 글로벌 영화제로 재도약하겠습니다.”(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다이빙벨’ 부침 이후 ‘재도약 원년’을 내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새달 3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등 부산지역 6개 극장의 37개 상영관에서 85개국 303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폐막작을 비롯해 행사계획이 공개됐다. 개막작에는 카자흐스탄 출신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일본 리사 다케바 감독의 공동 연출작인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 선정됐다. 카자흐스탄 버전 서부극을 표방한 영화로,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두나무’로 뉴 커런츠 상을 수상한 인연이 있다. 폐막작은 2016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뉴 커런츠 부문에서 넷팩상을 받았던 임대형 감독의 신작 ‘윤희에게’다. 한 모녀를 통해 사랑의 상실과 복원을 전한다. 상영작 303편 중 150편(월드 프리미어 120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30편)이 영화제를 통해 처음 관객과 만난다. 특별기획 프로그램 ‘한국영화 100주년 특별전’에서는 역대 한국영화 10선을 선보인다. 김기영의 ‘하녀’(1960), 유현목의 ‘오발탄’(1961), 임권택의 ‘서편제’(1993),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 등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영화들을 한자리에서 볼 기회다. 또 다른 특별기획 프로그램인 ‘응시하기와 기억하기-여성감독 3인전’에서는 인도의 디파 메타, 말레이시아의 야스민 아흐마드, 베트남의 트린 민하의 8작품을 상영한다. 동남아시아의 여성과 소수자, 이민자, 하층계급을 응시하며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과 종교 문제를 다루는 감독들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전쟁의 상처 안고 살아가는 60년대 ‘인간 군상’을 엿보다

    전쟁의 상처 안고 살아가는 60년대 ‘인간 군상’을 엿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8회 서울의 영화3(이만희 감독의 귀로)’ 편이 지난 24일 중구 정동과 서소문동 그리고 서울역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의 마지막 다섯 번째 순서였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 5시 집결지인 시청역 2번 출구에서 출발했다. 먼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정동 전망대에 올라 영화의 주요 무대 중 한 곳인 정동과 덕수궁 일대를 조망했다. 이어 정동제일교회~배재학당역사박물관~고려삼계탕~시위병영 터~호암아트홀을 차례로 둘러봤다. 가톨릭 성지로 거듭난 서소문역사공원은 칠패시장과 만초천, 처형장의 옛 흔적을 품은 곳이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서울역의 황혼을 지켜본 뒤 서울역 광장에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무형유산인 영화 귀로와 유형유산인 고려삼계탕, 서울역 고가도로, 서울역 광장 등 모두 4곳이었다. 해설을 맡은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영화의 주요 현장에서 영화보다 더 재미난 영화 이야기를 들려줬다. 참석자들은 흥미진진한 60년대 미스터리 멜로드라마에 숨을 죽였다.한국영화사의 거장 이만희(1931~1975) 감독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쟁이었다. ‘인간 이만희’의 삶은 온통 전쟁이 지배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에 참전, 통신병으로 5년간 복무한 그는 “내가 가진 기억은 군대와 영화밖에 없다”,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으면 직업군인으로 살았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연출작 51편 중 11편이 전쟁영화였으며 멜로물에도 전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켰다. 소설가 김승옥은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나자 “당신은 포탄 속을 묵묵히 전진하는 병사들 편이었고, 좌절을 알면서도 인간의 길을 가는 연인들 편이었고 그리고 폭력이 미워 강한 힘을 길러야 했던 젊은이의 편이었다”는 압축적인 헌사를 묘비명으로 바쳤다. 전쟁영화 감독 역이 가장 앞에 놓인 것처럼 그의 영화에 담긴 휴머니즘, 시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해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는 모두 전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흔히 대표작으로 ‘마의 계단’(1964), ‘만추’(1966), ‘귀로’(1967), ‘휴일’(1968) 등을 꼽지만 그의 진정한 대표작은 1963년 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다. 이 전쟁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그는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됐다. 이만희 감독은 한국영화의 전성기인 1960년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시킨 인물이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가 개발한 기존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재해석했고, 대사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과 분위기로 영화를 느끼게 했다. 전쟁영화도, 멜로드라마도, 액션스릴러도, 시대극도 자신의 스타일로 창조한 스타일리스트였다.이만희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1960년대 한국영화를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대중 지향의 장르영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미학과 예술성을 개척했다. 영화 ‘귀로’는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눕게 된 남편(김진규 분)을 돌보던 아내 지연(문정숙 분)의 망설임과 선택에 관한 영화다. ‘가부장제 현실과 자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실존적 고투를 벌이는 여성 캐릭터’라고 평가할 만하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젊은 남자와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심리와 도시의 풍경이 맞물린 감각적인 멜로드라마다. 이상과 현실, 권태와 욕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한 여인의 몸부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육교, 가로등, 거리의 시계, 서울역 광장을 통해 여주인공의 결핍과 욕망을 대사 없이 상징적으로 화면에 담았다. 영화에는 남편이 있는 이층 방으로 연결되는 계단, 연인과 함께 밤을 보내는 여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리고 언덕 위에 있는 성당까지 이어진 돌계단 등 세 종류의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들은 욕망과 죽음 혹은 구원과 파멸을 은유한다. 또한 이 계단들은 삶과 죽음, 허상과 실상을 구획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허상의 삶 너머에는 아득한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 계단 숏들의 미세한 변주는 지연의 심리 변화와 이 부부의 관계 변화를 암시한다. 그리고 이 계단 전후에 반복되는 사건들이 배치된다. 반복과 차이의 구조는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기차역에서 신문사로 가는 길에 나오는 건널목에서는 기차가 지나가고, 육교를 걸을 때 대형 시계가 보인다. 또 핸드백은 이별을 예감하게 한다.1960년대 후반 서울의 모습이 영화를 통해 인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고가와 육교 그리고 지하도는 1960년대 후반 서울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 건조물들이다. 이 시기 도로와 교량 건설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서울은 차량을 위한 도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아현고가도로는 준공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도심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은 외곽으로 쫓겨났다.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타고 싶지만 막상 타고 보면 답답하다”고 여주인공은 말한다. ‘귀로’에서 여주인공은 남편의 심부름으로 ‘잔설’이라는 제목의 신문 연재소설 원고를 신문사에 전달하기 위해 경인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역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이동하기 위해 스쳐 가는 곳이다. 남편의 소설 원고를 신문사에 전달하기 위한 주기적인 외출이 그녀를 숨 쉬게 한다. 그녀는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기차를 타고 신문사로 간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외출은 그녀에게 ‘짧은 여행’이다. 기차는 한 장소와 다른 장소를 연결한다. 인천과 서울을 왕복하는 지연의 동선은 세 번에 걸쳐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기본적으로 그녀의 동선은 기차~서울역~육교~신문사로 이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그 역순이다. 이 동선에 남산 야외음악당과 서울역 근처의 성당을 산책하는 것이 가끔 낄 뿐이다. 그녀는 서울의 거리를 걷는 여성 산책자다. 그녀의 집은 정주의 공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속에 사로잡힌 폐쇄의 공간일 뿐이다. 서울 나들이는 실존의 이유를 찾는 여정이다. 그녀는 존재는 도시의 군중 속에 있다. 서울 도심의 유일한 철도건널목인 서소문건널목은 하루 평균 560회가량 열차가 지나다니는 전국 통행량 1위 건널목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전통적인 처형장이었지만 천주교 역사에서는 순교성지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수많은 순교자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한국 교회의 단일 순교지로는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곳이다.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를 배출한 국내 최대이자 세계적인 성지다.남대문과 서대문 사이 서소문은 도성과 마포, 용산을 잇는 관문이자 조선시대 1번 국도인 의주를 잇는 중요한 문이었다. 서소문과 그 서쪽 약현 사이 저지대를 가르며 안산과 인왕산에서 발원한 만초천이 한강으로 흘렀는데 그 유역을 따라 시가지가 발달했다. 군자창, 만리창 등 관영창고가 위치했고, 칠패시장과 소의문 밖 시장이 서로 이어졌다. 종로시전, 이현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을 형성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우리나라 왕성 5부 안의 애오개는 서강으로 가는 길이고, 약고개는 용산으로 가는 길로서 곡물이 폭주하고 수레가 부딪치고 사람이 어깨를 부딪는 곳”이라며 번잡한 시가지로 묘사했다. ‘귀로’의 여주인공이 서울역에서 세종로 신문사로 가는 길에 건넜던 그 서소문건널목에는 아직도 사람과 열차가 분주하게 지나다닌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차 망우리 ■일시 및 집결장소: 8월 31일(토) 오전10시, 망우역 1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미래유산 톡톡] 서울역·거리… 한국영화 대중성 기여한 ‘귀로’

    [미래유산 톡톡] 서울역·거리… 한국영화 대중성 기여한 ‘귀로’

    1967년 개봉한 이만희 감독의 ‘귀로’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표상을 내면화한 작품으로 1950~1960년대 신문매체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 주는 멜로영화다. 한국영화의 전성기에 특히 인기가 높았던 멜로드라마는 신문소설을 원천으로 한국영화의 대중성에 기여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한국전쟁 때 성불구자가 된 남자 주인공 동우(김진규 분)가 자신과 아내인 지연(문정숙 분)의 사생활을 신문소설로 연재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지연과 돌아가야만 하는 지연의 갈등 구조로, 서울역이 장소의 중심에 있다. 신문 연재소설을 신문사에 전달하기 위해 경인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지연은 고가, 육교, 지하도를 거치며 신문사로 향한다. 똑같은 코스를 역으로 밟아 다시 서울역까지 도착한 지연의 동선에는 정확한 시간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지연은 서울 나들이에서 실존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 지연은 소설가 남편과 익명의 대중으로부터 이중 감시를 받는 대상이다. 지연은 자신을 테두리 안에 가두려는 동우와 그 틀을 깨고 나오기를 원하는 대중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또 한편 ‘이상이 없는 세상에 이상을 심어 준다’는 평가에 휘둘리는 자신을 자조적으로 바라본다. 영화 ‘귀로’는 이러한 내러티브에 “독자의 흥미와 모든 관심은 그 여인의 행동에 쏠려 있는 겁니다”, “여인의 자세에 벌써 변화가 왔어야 하는 거죠” 등 신문사 부장의 말을 빌려 오히려 당대의 고전적인 시각보다 인간다움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탈(脫)고전적인 관점을 언급한다. 지연은 자신에게 첫눈에 반한 신문기자 강욱(김정철 분)과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정원 한편에서 자신과 동일시하며 키우던 개가 동우의 총에 맞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지연은 여느 때와 같이 동우가 있는 2층 계단을 오른다. ‘귀로’ 속의 계단은 삶과 죽음, 구원과 파멸, 욕망과 죽음으로 대변된다. 지연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는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피동적 인물을 스스로 없앤다는 상징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한국영화의 역사’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의 역사’ 임권택 감독은

    52번째 ‘잡초’ 영화인생 전환점 작가적 자의식 작품에 담아 ‘취화선’ 칸 감독상… 세계적 반열193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임권택은 부친과 삼촌의 좌익 활동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몸소 겪었다.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좌우의 살벌했던 이데올로기 투쟁은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빨치산 활동을 한 부친 탓에 그의 집안도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고초를 겪던 18세의 임권택은 어렵사리 다니던 광주 숭일중학교(당시 6년제)를 관두고 혈혈단신 부산으로 떠난다. 피란지에서의 생활 역시 하루 노동으로 연명하는 고된 나날이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군화 장사를 시작하며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1950년대 중반 한국영화 제작이 활기를 띠면서, 임권택도 우연한 기회에 영화계에 들어가게 된다. 서울로 올라간 군화 장사꾼들이 ‘장화홍련전’(정창화, 1956)을 제작했는데, 영화 일을 도와달라며 그를 부른 것이다. 처음에는 제작부 일과 소품 담당을 하다,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에 들어가며 어깨너머였지만 연출을 배우기 시작한다. 28세였던 1962년 만주웨스턴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고,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많을 때는 한 해 7~8편을 만드는 직업 감독으로 다작의 시기를 거쳤다. 주로 사극과 액션, 전쟁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충무로 시스템에 순응한 감독이었지만, 대신 장르영화의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영화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은 52번째 연출작 ‘잡초’(1973)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작가적 자의식을 영화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인터뷰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실문화연구, 2003)에서 그는 “‘잡초’가 내 삶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영화라면 ‘왕십리’는 내 살고 있는 땅을 사랑하기 시작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이장호, 하길종 등 ‘영상시대’ 감독들이 새로운 한국영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구석에 몰린 느낌”을 받았다던 임권택의 회고에서, 당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라는 그의 뼈아픈 고민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왕십리’(1976)는 ‘별들의 고향’(1974), ‘바보들의 행진’(1975) 등 1970년대 ‘청년영화’들에 대한 그의 대답과도 같은 영화다. 이후 그는 ‘족보’(1978), ‘짝코’(1980),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등 작가주의 감독 임권택으로 평가되는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의 삶이 반영된 한국적인 주제를 놓고 조심스럽지만 치열하게 ‘한국’영화를 찾아가던 때인 것이다. ‘서편제’(1993)로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100만 흥행에 성공한 후, ‘춘향뎐’(2000)의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취화선’(2002)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계기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2014년 김훈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배우 안성기가 합류한, 102번째 작품 ‘화장’을 연출했다. 임권택은 한국영화의 역사, 그 자체다.
  • ‘영화 불황’ 1980년대… 반공영화 외피 두른 ‘짝코’, 실제는 분단영화였다

    ‘영화 불황’ 1980년대… 반공영화 외피 두른 ‘짝코’, 실제는 분단영화였다

    1980년대 초반 한국영화를 수식한 문구는 ‘사상 최악의 불황’이었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침체 국면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20년간의 길고 어두운 터널은 1990년대 후반 한국영화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1980년대는 우리 영화가 맞이한 가장 암울한 시간이었지만, ‘방화’(邦畵)라는 이름을 떨치고 ‘한국영화’로 탈바꿈하는 쇄신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번 연재는 1980년대 전반기 영화계의 상황과 어려운 상황에도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임권택의 영화 작업에 관해 살펴보려 한다.●‘에로영화’가 판친 방화의 시대 1980년대는 우리 영화를 ‘방화’로 부르던 시대였다. 일본에서 ‘외화’(外畵)와 구분해 자국영화를 지칭하기 위한 ‘방화’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곧잘 사용됐고, 1990년대 초반까지도 쓰였다. 한국에서 사용한 방화라는 말 역시 단순히 국산영화를 지칭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1980년대에 한국영화를 호명하던 방화의 어감은 우리 영화의 초라한 모습을 상징하는 좀 더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었다. 영화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화계와 그 영화를 냉소하고 자조하면서, 언론들은 외국영화에 주도권을 내주고 줄곧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한국영화를 꼬집으며 그렇게 불렀다. 관객들 역시 성우들의 후시녹음 목소리로 상징되는 완성도 낮은 우리 영화를 방화로 부르며 불신과 멸시를 담았다. 1980년대 초중반 영화계는 1970년대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신정권이 구축한 통제정책이 승계되었고, 한국영화는 여전히 외화수입쿼터의 대체물로 취급받았다. 1981년도 영화시책에서 당국은 한국영화 제작편수를 100편 내외로 설정하고, 등록된 20개의 제작사가 각 4편 이상을 의무적으로 채우도록 했다. 그리고 2편 이상의 ‘우수영화’를 제작할 때마다 또 대종상에서 최우수·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 외화수입쿼터 1편을 부여했다. 이처럼 영화제작은 산업 자체의 동력을 만들지 못했고, 1980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91, 87, 97, 91, 81편으로 채 100편을 넘기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1980년대는 단관 개봉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영화문화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81년 공연법 개정으로 300석 미만 소극장의 자유로운 설립이 가능해지자, 영화소극장도 빠르게 등장한 것이다. 덕분에 대형 스크린을 보유한 기존 개봉관과 부도심에 새로 들어선 소규모 영화관으로 관람 문화가 재편됐다. 한편 1980년 12월부터 방영된 컬러 방송으로 컬러 TV가 빠르게 보급되었고, 가정용 비디오의 인기가 극장 흥행을 잠식해 갔다. 1984년 VTR 보급 대수가 50만대를 넘었다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80년대는 ‘안방극장’이 제대로 힘을 받기 시작한 때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그랬듯, 한국의 극장가 역시 대형영화와 저예산영화로 생존책을 모색했다. 전자는 ‘닥터 지바고’(1965), 70밀리 영화 ‘벤허’(1959) 같은 대작 외화의 리바이벌 상영이, 후자는 괴기·무협·코미디 장르들이 역할을 맡았다. 관변축제인 ‘국풍 ‘81’을 위시로 전두환 군사정권은 섹스, 스크린, 스포츠로 국민들을 우민화하는 ‘3S 정책’을 펼쳤다. 당연히 에로티시즘에 대해서는 검열이 느슨해졌고, 기다렸다는 듯 1980년대를 상징하는 에로티시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소극장 그리고 대여용 비디오 시장의 붐이 에로영화의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애마부인’은 1980년대 에로영화, 나아가 당시 한국사회의 영화문화 자체를 대변했다. 1982년 서울극장 한 관에서 넉 달이나 상영한 이 영화는 31만의 관객을 동원한다. 성적 스펙터클의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에로티시즘 장르는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토속에로’라는 별칭을 얻으며 시대극과도 결합했다. 토속에로영화들은 해외영화제의 관심과 수상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대부분 상업성이 절대적인 목적이었고 비디오 시장과 맞물리며 시리즈로 양산되었다. 전자가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이두용, 1983),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받은 ‘씨받이’(임권택, 1986)라면, 후자는 ‘뽕’, ‘산딸기’, ‘변강쇠’ 등을 들 수 있다.●‘짝코’ 어떤 계기로 기획되고 만들어졌나 한국영화사의 가장 우울했던 시기, 임권택은 가장 잘나가는 감독 중의 한 명이었다. 1970년대의 그는, 제작자에게는 외화쿼터용의 우수영화를 안겨주고 영화진흥공사에는 국책영화를 척척 만들어주는 감독이었다. 여러 영화학자들에 의해 한국 ‘분단영화’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짝코’ 역시 기획의 외관상으로는 당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반공영화였다. 이는 1980년 관제영화제인 19회 대종상에서 우수반공영화상을 받고, 이듬해 20회 대종상에서 반공영화부문 특별상을 재차 받았던 것에서 증명된다. 제20회 대종상영화제부터 우수반공영화상을 특별부문으로 변경해 역시 외화수입쿼터 1편을 부여하기로 했는데, 반공영화가 부족하자 마침 개봉을 못한 ‘짝코’에 다시 기회가 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1983년 뒤늦게 개봉해 일반 관객들과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 정치사회적 혼란과 한국영화의 불황이 극에 달한 시기, 임권택 감독과 송길한 작가는 왜 반공영화라는 외피를 두른 ‘짝코’를 만들려고 했을까. 실제 영화는 어떤 계기로 기획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짝코’의 영화화를 위해 임권택과 송길한이 의기투합한 이유는 바로 시대적 배경과 자기 성찰에 있었다. 그들이 이 영화의 기획에 착수한 때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좌절로 끝나고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한 시점이다. ‘서울의 봄’의 대학생 시위대들이 그리고 광주의 시민들이 ‘빨갱이’로 둔갑되었던 바로 그때다. 임권택의 증언에 의하면 1980년은 “혼란기에 빠져든다고 해서 놀라기에는 너무 많은 혼란의 시대를 살아” 온 자신을 반추할 수 있었던 시기다. 그는 이후 협업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송길한 작가를 처음 만나 기존의 국책반공영화를 벗어나고자 마음먹고, 그의 개인사와도 연결되는 빨치산의 이야기를 통해 좌우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다. 둘은 한 달 동안 여관방에 틀어박혀, 종군작가 김중희의 단편소설을 거의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영화는 전투경찰 송기열(최윤석)과 빨치산 부대 대장 짝코(김희라)의 30년에 걸친 비극을 세련된 플래시백으로 오가며, 열강의 대리전이었던 한국전쟁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시켜 가는지 보여준다. 송기열은 평생을 바쳐 짝코를 추적하지만 결국 둘은 오갈 데 없는 부랑아들이 모이는 갱생원에서 만난다. 이미 노인이 된 둘의 비극은 갱생원에서도 계속된다. 송기열은 무장공비 이력의 죗값을 받게 하기 위해 짝코를 데리고 나가려 하고, 짝코는 몰래 수은을 먹여 송기열을 죽이려고 한다.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송기열은 기어코 짝코와 함께 갱생원을 탈출한다. 하지만 이미 한국사회는 거리의 경찰들조차 무장공비라는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송기열은 짝코와 함께 고향에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과연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리를 잡은 짝코는 숨을 거두고 송기열은 희미하게 웃는다. 사실 이 장면은 그들이,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육신이 결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함을 보여준다. 열차 속 송기열은 아주 짧은 회상으로 아내와 아들과의 단란했던 시절을 떠올릴 뿐이다. 둘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던 자신들의 처지를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깨닫게 된다. ●“한국 사람이 아니고는 만들 수 없는 영화” 임권택은 영화를 통해 송 경사와 짝코가 국가의 꼭두각시였고, 더 나아가 한국전쟁 시기 남한과 북한은 열강들의 장기 알에 불과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시나리오와 영화 본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두 차례의 검열을 통해 그의 직접적인 발언은 삭제됐다. 바로 다음의 두 장면이다. 6·25 특집 TV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한 미국인 교수가 한국전쟁이 열강들의 국지전 시험장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갱생원을 도망 나온 송기열과 짝코를 만난 경찰이 망실공비가 뭐냐고 물어보는 장면으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에는 검열 후의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전자의 경우 TV에서 6·25 프로그램이 잠깐 나온 후 이를 본 짝코가 송기열에게 “저 사람들 말이 진짜라면 말이시… 나나 거그나 불쌍한 사람들이여”라고 말하는 장면만 남았다. 후자는 “망실공비?”라는 대사는 지워진 채 경찰의 입 모양만 남았다. 이는 “망실공비도 몰라”라며 송기열이 애처롭게 반응하는 대사에서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권택은 촬영은 했지만 흔적만 남기는 방식으로 당국의 검열에 순응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이 대목의 아쉬움을 표했지만, 도리어 지금의 우리는 장르영화 그리고 국책영화로 단련된 그의 연출 내공을 짐작하게 만든다. 영화의 본질적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두 해 연속 반공영화상을 휩쓸며 국책 반공영화로서 인정받았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무예·음식·다큐… 3색 국제영화제 잇따라 열린다

    무예·음식·다큐… 3색 국제영화제 잇따라 열린다

    29일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새달 6일 ‘서울국제음식영화제’ 새달 20일 ‘DMZ 국제다큐’ 개막‘영화 보기 좋은 계절’ 늦여름, 초가을. 색다른 테마를 앞세운 영화제들이 관객들을 만난다.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충북 청주·충주에서 열리는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는 무예를 테마로 한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다. 전 세계 20개국 51편의 무예·액션 장르 영화가 상영된다. 개막일에 할리우드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와 무술 감독 척 제프리스 등 스타급 인사들이 방문해 관심을 끈다. 음식을 테마로 한 서울국제음식영화제는 다음달 6일부터 11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다. 올해로 5회를 맞는 영화제에서는 각양각색의 음식과 다양한 문화권의 삶을 담은 장·단편 영화 60여편을 준비했다. 베를린, 선댄스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신작들과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 가능한 음식문화에 대한 논의를 담은 작품 등이 주를 이룬다. 대표 프로그램인 ‘먹으면서 보는 영화관’, 영화·음식계 명사들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맛있는 토크’도 예정돼 있다. 제11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상영하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수를 예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렸다. 다음달 20∼27일 경기 고양·파주 일대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평화와 생명, 소통을 주제로 총 46개국, 150편 영화를 상영한다. 개막작으로는 20대 청년들이 목포역에서 출발, 서울역과 블라디보스토크, 베를린까지 기차 여행을 하며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을 그린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박소현 감독)가 선정됐다. 올 칸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 수상작 ‘사마를 위하여’도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남북문제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DMZ비전: 인터 코리아’ 섹션도 운영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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