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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로의 탈출 북의 가족 이해할 것”/공항회견 일문일답

    ◎“차내동료들 술취해 잠든새 이탈/92올림픽 한국대표로 뛰고 싶다” 북한의 운동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망명한 유도선수 이창수씨(24)는 4일 상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갖고 『자유로운 세계인 한국에 오니 더 없이 기쁘다』고 감격해 했다. 그는 이 회견을 통해 망명동기며 북한 사회의 실정을 있는대로 털어놓았다.회견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소개해본다. ­귀순동기는. ▲교포총국의 지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이홍만·54)가 상부에서 TV를 뇌물로 바치도록 요구하는 것을 거절했다가 보복으로 직장에서 쫓겨나 이른바 「혁명화사업」이란 명분아래 평양의 화물자동차사업소에서 보수없이 강제노동을 하게됐다.형(창봉·27)도 조선체육대 유술(유도)선수로 있다가 이때문에 추방되는등 가족 모두가 극도의 불이익처분을 받아왔다. 나 역시도 이번 바르셀로나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조치와 함께 탄광에 보내질 것이 뻔해 이같은 결심을 하게 됐다. ­망명경로는. ▲대회가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의사를 밝혔더니 내년 올림픽개최관계등으로 그곳에서는 곤란하므로 파리에서 준비하고 있으라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대회를 마치고 파리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에서 다른 선수들이 술을 먹고 잠든 틈을 이용해 탈출,총영사관측에 망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세한 탈출경로는 도와준 분들을 위해 밝힐 수 없다. ­이번 대회과정에서 어떤 심정이었나. ▲지난해 아시안게임때부터 마음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해 망명에 대해 고민해왔다.이때문에 시합에 임할 마음의 준비가 안된 탓인지 경기가 안풀려 2회전에서 탈락했다. ­해외에서 한국선수를 만났을때 인상은. ▲국제대회에 출전해 남북선수들이 얘기를 나누다보면 비교가 된다.우리는 경기에 한번 지면 심하게 욕을 먹는다.이때문에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져 경기에 지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한국의 선수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경기에 임하는 것 같아 부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아는가. ▲국제대회에 여러번 다녀보면서 한국선수와 자주 접촉했으며 특히 정훈선수와는 많은 얘기를 나눠 자유로운 나라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간부들이 『한국선수와 얘기하지 말하』고 단속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맘놓고 얘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선수와 대화하면 『총화(탄광등에서의 강제노동을 통한 의식화)를 엄하게 하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북한의 경제나 다른 사정은. ▲일반 주민들이 배급받는 식량은 60%만 쌀이고 나머지는 밀쌀(밀)과 옥수수이다.이나마 한달정도 배급이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 상당한 대우를 받는 운동선수들 조차도 이번 세계대회에 앞서 훈련과정에서 밀밥을 먹기도 했다. ­이번대회에서 78㎏급으로 체급을 올려 출전하게 된 이유는. ▲지난 89년 유고의 베오그라드 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딸때는 71㎏급이었으나 지난해부터 남한의 실상을 알게되고 북한에서의 불이익처분을 받게 되면서 의욕을 잃어온 탓에 체중조절에 소홀해져 몸무게가 늘었다. 앞길이 뻔한 마당에 힘들게 체중조절하며 좋은 경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망명으로 인해북한의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지금쯤은 가족모두 평양에 없을 것이다.어디에 끌려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나라도 잘돼야 한다는 생각이며 가족들도 내가 자유를 찾아갔다면 이해해줄 것으로 믿는다. ­북한의 다른 선수들도 망명할 가능성은. ▲많을 것이다.운동선수들은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아 북한에서 교육받은 것과 다름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낄 수가 있다. 다만 현지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주춤할 뿐이다. ­선수들끼리 북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가. ▲감시가 심해 함부로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얼마든지 얘기할수 있다. ­김현희에 대해 아는가. ▲들어보지 못했다. ­마유미는 아는가. ▲북한당국은 『남조선에서 마유미를 두고 일본사람인데도 조선사람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의 희망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의 대표선수로서 운동을 계속해 내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참가하고 싶다.
  • 외언내언

    유니버시아드는 대학(UNIVERSITY)과 올림픽(OLYMPIAD)의 합성어.글자그대로 대학생들의 올림픽이다.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데 참가자격은 대학재학생이거나 졸업후 2년까지의 아마추어 선수.1926년 프랑스의 장 프리장이란 사람이 유니버시아드를 창설했는데 이 대회가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 것은 1959년 이탈리아의 트리노대회.그래서 트리노대회가 최초의 유니버시아드로 공인됐다.◆한국이 유니버시아드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1967년 일본 도쿄대회.8개종목 1백8명이 출전,종합순위 10위를 차지했었다.북한은 이보다 훨씬뒤인 85년 일본 고오베대회에 모습을 나타냈다.이 대회에서의 남북한종합순위는 북한 9위,한국 12위.그러나 이후 남북한은 줄곧 내리막길.한국의 경우 한 대회에 메달 한두개씩을 건져 20위권밖에서 맴돌았고 북한도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지금 영국의 셰필드에서 열리고 있는 91유니버시아드에서는 남북한선수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북한이 체조에서 금메달 10개 한국이 1개를 따내 체조에 걸린 금메달 19개중 남북한이 11개를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고 테니스남녀복식에서도 한국선수들이 우승했다.또하나 값진 결실은 남자 마라톤우승.한국의 황영조가 2시간12분40초로 금메달을 따내 유니버시아드 사상 처음으로 마라톤을 제패했다.유니버시아드가 올림픽보다는 수준이 떨어지지만 「육상의 꽃」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은 쾌거로 평가해도 좋을 듯.◆91유니버시아드에서 남북한선수들이 선전,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단일팀을 구성하지 못한 것.21일 현재 북한이 종합순위 4위,한국은 7위인데 남북한의 메달을 합치면 소련을 제치고 3위로 뛰어오른다.이번에는 실패했지만 92년 알베르빌동계올림픽과 바로셀로나하계올림픽에서는 기필코 남북한단일팀을 구성,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올림픽무대에서도 크게 떨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기능올림픽 9연패/한국선수단에 축전/노 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제31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종합우승한 우리나라 선수단에게 축전을 보내 노고를 치하했다.
  • 화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제31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가할 한국대표선수단 결단식이 18일 하오 3시 서울 용산구 보광동 정수직업훈련원 강당에서 열렸다. 최병렬 노동부 장관은 이날 결단식에서 선수·지도자 및 대회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한 뒤 이번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주기를 당부했다. 이번 대회에는 네덜란드와 미국·일본 등 25개국에서 기계조립 등 34개직종에 4백30명의 선수들이 참가하며 우리나라는 32개 직종에 32명의 선수를 파견한다.
  • 「철인 아시아컵」 참가 일 선수/수영하다 심장마비사

    ◎연맹,경기 전면 취소 【제주=김영주 기자】 2일 상오 8시30분쯤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에서 전 일본 트라이애슬론연맹이 주최하는 91트라이애슬론 아시아컵 제주대회에 참가했던 일본인 오미아 지카라씨(50·일본 대판시 추추분정1의 233)가 수영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오미아씨는 이날 한국선수 8명,일본선수 5백89명 등과 함께 이날 상오 7시부터 시작된 수영경기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했다. 또 상오 9시10분쯤 제주시 연동 신성부락 입구도로에서 수영대회를 마치고 자전거경기에 나섰던 일본 선수 요다케 요시키씨(18)가 도로를 횡단하던 강담 할머니(70)를 치어 강 할머니의 오른쪽 무릎을 다치게 했다. 상오 9시50분쯤에는 북제주군 애월읍 신엄리 새마을금고 앞 도로에서 제주5바6125호 봉고승합차(운전자 강행준)가 자전거경기를 벌이던 일본 선수 히로야 나카오씨(29)를 치어 히로야 선수의 오른쪽 무릎이 크게 다쳤다. 대회주최측인 전 일본 트라이애슬론연맹은 오미아씨를 제주의료원으로 후송한 뒤 사이클 등 경기를 속행하려 했으나 비가 오는 날씨와 오미아씨 사망 등의 이유로 대회를 전면 취소했다. 이 대회는 당초 출전선수들을 이날 상오 7시부터 하오 11시까지 제주도 일원 총 2백30.2㎞ 구간에서 수영·사이클·마라톤을 휴식없이 완주토록 한 다음 3일 상오 9시30분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우승철인에 대한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 신문선 스포츠서울 논평위원(관전평)

    ◎남 개인기ㆍ북 조직력의 “명승부 한판” 한국의 개인기가 북한의 조직력을 압도한 경기였다. 한국은 전후반을 통해 노련한 경기운영과 개인기로 전력을 극대화 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김주성이 이끄는 링커진들의 임기응변은 승리의 출발점이었다. 수시로 위치를 교체,북한선수들의 혼란을 유발시켰으며 이것은 미드필드 장악으로 연결돼 파상공세를 가능케했다. 결승골도 이러한 미드필드의 우위에서 터졌다. 김주성이 단독 드리블로 북한 페널티에리어 왼쪽을 파고들자 당황한 수비수가 파울을 범했다. 구상범의 프리킥이 문전으로 날자 황선홍이 뛰어들며 헤딩슛,볼은 북한 골문 오른쪽에 정확히 꽂혔다. 개인기의 우세가 득점으로 연결된 상황이었다. 한국은 전반 10여 분이 흐를 때까지는 매끄럽지 못한 경기를 펼쳤다. 무리하게 중앙돌파만을 시도,북한의 전진수비에 쉽게 차단당했고 이렇다 할 찬스로 연결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후 김주성 고정운의 빠른 발을 이용한 측면돌파에 주력하면서 경기의 흐름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후반에서는 한국선수들이 경기흐름을 늦춘 것이 주효했다. 후반 중반까지 소강상태로 끌고간 것이 북한선수들을 위축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팀플레이를 무시하고 중거리슛을 남발한 것은 아쉬웠던 점으로 지적된다. 북한은 평양대회 때보다 크게 부진했다. 스피드와 체력을 바탕으로 한 역습을 노렸으나 미드필드 싸움에서 뒤지는 바람에 패스가 매끄럽지 못했고 문전볼 처리도 미숙했다. 김경일이 김주석을 밀착 마크했으나 개인기의 열세로 김주성을 묶는데 실패,결정적인 찬스를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GK 김충의 민첩성과 순발력은 크게 돋보였다. 김충은 2∼3개의 결정적인 슛을 막아내 실점을 최소로 줄였다. 승부를 떠난 경기였지만 묘기가 속출,모처럼 수준높은 축구를 보여주었다.
  • 북한 축구팀 이끌고온 2인

    ◎선수단장 김유순/정치입지 갖춘 체육계 실권자 남북통일축구대회 2차전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선수단 일행 78명을 이끌고 서울에 온 김유순 단장(62)은 북한체육계의 최고실권자. 지난 71년 3월 정무원 체육지도위원회(현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76년 위원장(체육부장관급)에 올랐으며 78년 북한인사로는 처음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에 피선됐고 북한올림픽위원장도 겸임하고 있다. 평양출생으로 김일성대학을 졸업,곧바로 로동당 조직지도부에서 근무했으며 76년 이후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2년 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된 데 이어 86년 최고인민회의 8기 대의원(국회의원)에 피선돼 정치적 입지도 탄탄하다. ◎부단장 김형진/평양대회 진두지휘한 실무책 북한선수단 김형진 부단장(52)은 북한국가체육위윈회 부위원장(체육부차관급) 겸 올림픽위원회 부의원장으로 지난 11일 평양 5ㆍ1경기장에서 있었던 남북통일축구대회 1차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북한체육계의 실무총책. 북경아시안게임 기간중 한국측 실무진들과 접촉을 계속,통일축구대회 협상을 마무리지었으며 한국선수단의 평양체류 때는 모든 일정을 협의하고 지휘했다. 평양체육대학출신으로 졸업 이후 줄곧 체육행정가로 일해 왔으며 지난해 3월 남북체육회담 단장을 맡아 뛰어난 두뇌회전과 기억력,달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부인과의 사이에 4자매를 두고 있다.
  • 통일축구 우리 선수단 평양 나들이

    ◎「고향의 봄」 등 합창하며 석별의 정 나눠/인민학습당 열람실엔 「김부자 어록」 투성이/송별만찬장에 경음악밴드 동원해 흥돋워 ○서울 국립도서관 규모 ○…남북 축구 1차전을 마친 한국선수단 일행은 12일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 동안 북한의 인민학습당을 둘러보았다. 북한이 자랑하는 인민학습당은 서울의 국립도서관 격이나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열람실 강의실 어학연수실을 갖춘 세계 최대규모라고 관계자들은 자랑이 대단했다. 입구의 중앙홀은 모두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3백평 남짓한 광장은 학습관의 모습을 높여 보이게 설계되어 있었으며 열람실마다 이곳은 「김일성 수령께서 다녀가신 곳」이라 적은 빨강푯말이 붙어 있었다. 2층의 열람실은 모두 12개로 도서자료함 등이 항목별로 놓여져 있었고 열람실 이용자들은 주로 김일성,김정일의 어록과 과학서적,외국논문 등을 읽고 있었는데 서적들의 지질과 표지의 질은 떨어지는 것이 많았다. 3층은 주로 강의실. 이중 8백석 규모의 대강의당은 대형화면이 설치되어 있어 영상강의를 할수 있고 녹음 녹화실도 따라 갖춰져 있어 외국의 교육이 특히 활발하다고 안내원들은 설명했다. ○…단절 45년 세월로 남북한 용어가 달라졌다. 우리가 쓰는 두음법칙을 북한은 쓰지 않아 「ㅇ」이 「ㄹ」로 표기되는 것. 「이」가 「리」,「이용실」이 「리용실」,「노동」이 「로동」으로 표기되는 것이나 외래어를 순한글로 바꾼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어벌벌」 「남새」 등 뜻을 알 수 없는 용어도 적지 않다. 「어벌벌」은 음식물이 얼큰하다는 말이고 「남새」는 채소. 서커스는 「교예」,아이스크림은 「에스키모」라고 부르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하나 아이스케키와 구별하기 위해 에스키모라고 한다는 것. ○모란관서 송별만찬 ○…4박5일의 평양체류 마지막날인 12일 하오 7시50분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한국대표 76명을 모란관에 초청,송별 만찬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는 북한의 북경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를 비롯,많은 체육관계자들이 참석,한국측과 어울렸다. 이날 만찬 말미에는 경음악밴드까지 등장,한껏 흥취를돋우었는데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ㆍ「고향의 봄」을 합창하기도 했다. ○학생소년궁전 돌아봐 ○…한국선수단 76명은 12일 하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돌아보고 1시간 남짓 예술공연을 관람.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은 지난 64년 소년학생들의 과외교양학습을 위해 부지 10만3천㎡에 세워진 매머드급 건물로 가장 높은 곳은 55.3m의 탑식 건물. 현재 이곳서 과외활동중인 예술소조는 모두 1백20개이고 5천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으며 각종 서클룸만도 7백개에 이른다고 안내원은 설명. ○식단에 단고기탕 내놔 ○…『수경이는 녹두나물을 참 좋아했습니다』 선수단 숙소인 고려호텔 3층 식당의 총책임자인 서지실 봉사과장(48ㆍ여)은 평양축전에 자신이 1년 전 임수경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말했다. 지난 85년 고려호텔이 생기면서 봉사책임자가 된 서씨는 세계 각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식단을 꾸며야 하는데 각국 손님들의 입맛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씨는 11일 저녁 식단에는 남쪽 선수단에게 「단고기탕」(보신탕)을내놓기도 했다.
  • 92올림픽­내년 세계탁구/“남북 단일팀” 원칙 합의

    ◎한국축구단,오늘 판문점 통해 귀국 남북 교류의 새장을 연 남북통일축구경기 참가 한국선수단이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3일 상오 8시30분 평양역에서 열차편으로 개성과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돌아간다. 한국선수단은 평양방문 기간중 북한측과 91년 나고야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국측은 또 오는 12월 서울서 열릴 월드더블컵탁구대회에 북한측을 초청한다는 뜻을 전달했으며 오는 21일 북한축구팀이 서울에 올 때 탁구팀 초청교류ㆍ단일팀 구성문제를 깊이있게 협의키로 했다.
  • 남북선수 손잡고 입장… “화합함성” 7분

    ◎통일축구 열리던 날의 경기장/공차다 넘어지면 내남없이 부축… 관중 박수/「5ㆍ1경기장」 15만석 꽉채워… 단일깃발로 응원 ○전광판엔 「민족 대단결」 ○…홍백의 남북 축구선수단은 하오 3시5분 서로 손을 잡고 5ㆍ1경기장 트랙에 모습을 나타냈다. 15만 관중은 남북 선수가 2열로 손을 잡고 들어오자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쳤다. 선수들이 손을 흔들며 천천히 운동장을 반바퀴 돌아 경기장 중앙에 서서 인사를 하자 장내는 함성과 함께 딱딱이 소리가 진동했다. 밴드는 「우리의 소원」을 연주했고 이때 전광판은 「민족 대단결」을 새겼다.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는 7분 동안 잠시도 쉬지 않았다. ○태극기ㆍ인공기없이 진행 ○…경기장 전광판은 「북」 「남」이라고 출전팀을 소개했고 태극기와 인공기는 보이지 않았다. 또 맞은편 쪽 전광판에는 『남측 축구선수단을 열렬히 환영한다』 『조국은 하나다』는 구호가 번갈아 나왔다. ○외신기자들,감독인터뷰 ○…이날 남북통일축구경기장에는 대회비중을 감안한 탓인지 남북기자들 외에도 타스통신 신화사통신 등 평양 주재 외신가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눈길. 외신기자들은 특히 한국 북한 감독들에게 집중 인터뷰공세를 펴는 등 남북축구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 ○“소원은 통일” 메아리 ○…관중들은 관중석 30여군데에 배치된 악대리듬에 맞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다. 15만명이 한꺼번에 쏟아낸 함성과 딱딱이 소리가 원형지붕에 메아리쳤다. 엄청난 응원열기에 한국측 인사들도 매우 상기된 표정. 북한측은 이날 흰 바탕에 하늘색 지도가 그려진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 깃발을 들고 나왔다.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린 5ㆍ1경기장은 경기가 벌어지기 3시간 전인 12시부터 15만 좌석을 모두 채운 채 단일팀 깃발을 흔들며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탠드 하단에 자리잡은 대규모 악단(2백여명)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하자 관중 모두 따라부르며 흥을 돋웠다. 관중들은 북한 당국에서 각 기관별 직장별로 배분한 무료 초대권을 갖고 입장했고 질서정연하게 응원전을 펼쳤다. ○“아주대회보다 큰 감명” ○…평양설계전문학교 3년생인 정해진 씨(20)와 김용순씨(20)는 『중앙 TV로 생중계되지만 통일염원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 나왔다』며 남쪽 선수들이 운동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환호성. 국토사업소에 근무한다는 송도일 씨(34)는 『체육 부문에서 처음으로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면서 『지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함께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받았는데 이번 통일축구대회는 그것보다 더 큰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ㆍ백 유니폼 입고 나와 ○…국기없는 홍백의 유니폼을 입은 남과 북의 선수들은 공을 빼앗긴 후 되찾기 위해 태클을 하다가도 상대가 다칠세라 나가던 발을 거둬들였다. 공을 놓고 다투다 넘어지면 모두가 달려가 부축했다. 관중들도 너나 할 것없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평양TV의 중계아나운서도 양팀을 「남측」 「북측」으로 중계했다. 본부석에는 정동성 체육부 장관과 김유순 북한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나란히 앉아 파인플레이가 펼쳐질 때마다 박수를 치며 서로가 『이겨라』라고응원했다. 전반 25분 김주성이 첫골을 넣자 관중들의 함성이 스탠드를 흔들었다. 골을 넣으면 습관적으로 펄쩍 펄쩍 뛰던 김주성도 멈칫 서서 관중들에게 깍듯한 인사를 보냈다. ○서로 격려하며 재회약속 ○…5시17분 통일염원을 안고 남북이 함께 뛴 평양통일축구전이 끝났다. 종료 직전 PK성공으로 북측이 역전승을 거뒀으나 전광판의 시계가 멈춘 후 주심의 호각소리가 길게 울려퍼지자 선수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거렸다. 땀으로 범벅된 윗옷을 바꿔입은 선수들은 다시 장래를 진동하는 박수소리에 보답하는 깊은 인사를 했다. 한국선수들은 바꾼 옷을 입고 관중들에게 축구공을 던져주었다. 23일 서울서 다시 만나 한바탕 놀아주기를 기약하면서. 이날 경기심판(주심 장석진,부심 전천익 리광호)은 모두 북한이 맡았다.
  • 남북통일축구 평양대회

    ◎김주성,전반 25분 「통일골문」 열었다./한국,PK로 역전패…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선전 90분” 【평양=방석순ㆍ우정식 특파원】 역사적인 남북통일축구대회 첫 경기는 11일 하오 3시22분 북한의 선축으로 시작,90분간 민족화합의 한마당을 이루었다. 한국은 이날 GK 최인영 수비수 김판근 구상범 홍명보 정용환,미드필더 윤덕여 이영진 최순호김주성,그리고 공격수에는 서정원과 고정운을 스타팅 멤버로 내세웠다. 북한은 GK에 김충을 비롯,김광민 오영남 김경일 정영만(이상 수비수) 탁영빈 방광철 리정만(이상 MF) 윤정수 김윤철 윤철(이상 FW)을 내세워 이에 맞섰다. 15만명의 대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이날 경기에서 흰색 유니폼의 북한은 빠른 전진패스로 한국 문전을 공략했고 붉은색 유니폼의 한국은 노련미를 내세워 득점을 노렸다. 초반 북한의 빠른 패스로 두 차례 실점위기를 모면한 한국은 전반 25분 아시아의 슈퍼스타 김주성이 최순호의 어시스트를 받아 「통일축구」의 첫 포문을 열어 기선을 장악했다. 페널티에리아 한복판에서 볼을치고 들어가던 최순호가 북한 수비수에 걸려 넘어지며 얻어낸 프리킥을 최순호 김주성의 콤비 플레이로 북한 골문을 깨끗이 갈랐다. 최순호가 북한의 수비벽을 마주보며 오른쪽에 포진한 김주성에게 짧게 밀어주자 이를 김주성이 통렬한 오른바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뽑았다. 경기장은 관중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북한은 30분이 넘어서면서 실점 만회를 위해 줄기차게 한국 문전을 공략했으나 김주성 최순호 등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깊이 가담한 한국골문을 뚫지는 못했다. 전반 스코어는 한국이 1­0으로 앞섰다. 그러나 북한은 후반 시작 4분 만에 전반의 실점과 똑같은 상황에서 동점골을 뽑아 1­1의 팽팽한 균형을 이루어 냈다. 노련한 공격수 윤정수가 한국 페널티에리어 정면에 떨어지는 로빙 볼을 향해 헤딩,따라붙은 한국수비 윤덕여의 차칭으로 프리킥 찬스를 만들어 냈다. 윤정수는 페널티에리어를 막아선 한국수비벽을 오른쪽으로 휘돌아 들어가는 절묘한 스핀킥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남북선수들의 치열한 공방전은 관중들의 손에 땀을쥐게 했으며 그라운드 곳곳에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으나 서로가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 세우는 우애 넘친 플레이로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선수들 가운데 특히 김주성은 공격과 수비지역을 뛰어다니며 위협적인 슛을 날리거나 교묘한 페인팅으로 상대선수를 따돌리며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날 한국의 플레이는 체력의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아 이전과 같은 뛰어난 기동력이나 조직력을 보이지 못했다. 북한은 뛰어난 스피드와 힘의 축구로 한국문전을 역습,경기종료 시간이 지난 후 루스타임 2분께 문전혼전중 얻은 페널티킥을 탁영빈이 성공시켜 역전의 결승골을 얻었다. ◇남북통일축구 평양 1차전 북한 2 (0­1 2­0) 1 한국 ○“북한선수 차징에 놀라” ▲박종환 감독=한국은 선전했으나 북한 선수들의 파이팅이 놀랍다.아쉬운 것은 북한의 극심한 홈그라운드 텃세였다. 후반들어서만 다섯차례나 북한측이 범한 파울을 무시했고 후반 종료와 함께 북한에 허용한 페널티킥은 납득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이겼어도 석연치 않아” ▲명동찬 북한감독=석연치 않은 기분이다. 우리 선수들이 다소 흥분했는지 처음에는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관중환호로 심판이 경기를 잘못 볼 수 있는데 문지기가 공을 걷어차고 불쾌감을 나타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 경기에서는 더욱 화합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 「화합」 열기에 찬물 끼얹은 PK판정

    ◎한국 역전패에 북한측서도 안타까운 표정/최인영ㆍ이영진 비신사적 행위 비난받을 만 안타깝고 어처구니 없는 10초였다. 서로가 밝은 낯으로 등을 두드리며 함께 통일의 걸음을 한 발작 디뎠다고 말하려는 순간 주심의 호각소리가 좋은 분위기를 순식간에 깨고 말았다. FIFA 국제심판인 북한의 장석진 주심은 경기종료를 불과 10여초 남겨놓고 페널티킥을 선언,한국이 1­2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페널티킥이 주어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은 둘째치고 스탠드의 많은 관중과 본부석의 북측 인사 선수 한국관계자들까지도 1­1의 가장 좋은 승부를 기꺼워하며 그대로 경기가 끝나기를 바라는 순간이어서 패널티킥 선언은 5ㆍ1경기장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주심은 한국의 이영진이 북한 공격수 조인철의 점프 때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 밀어다며 직접 프리킥을 선언했다. 절대로 페널티킥을 주어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 한국코칭 스태프의 이야기다. 조인철이 공중볼을 처리하기 위해 이영진을 누르고 뛰어오른 것이어서 한국에 공격권이주어져야 할 상황이었다. 이날 주심은 경기중 북한선수들에게 무슨 말인가를 자주했다는 것이 경기후 한국선수들의 이야기다. 한국이 역전패한 순간 본부석의 김유순 북한체육위원회 위원장 김형진 부위원장도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관중들의 호응도 크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해서 이겨야 될 이유가 있었을까. 주심의 판정에 대해 김형진 부위원장은 『무승부가 훨씬 좋은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한 평양시민은 볼멘 목소리로 『개운치 않다』고 했다. 한국이 역전골을 먹자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공을 밖으로 걷어차낸 한국 GK 최인영과 경기중 비신사적 행위를 연발한 이영진도 질타를 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어렵게 성사된 남북 체육교류의 첫발은 결국 뜻하지 않은 일이 터져 막판분위기가 급변하고 말았다. 오는 23일 서울의 2차전에서는 이같은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제3국의 국제심판을 배정,공정하게 경기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둥근 공… 흐르는 핏줄/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한반도의 남북한은 지금 불꽃튀는 설전이나 탁상공론으로서 접촉하기보다 살이 부딪히고 핏줄이 통하는 물리적 접촉으로서 대화하고 교류하는 듯하다. 평양에서 열렸고 곧 이어 서울에서 열릴 통일축구경기로서 그러하다. 북경 아시안게임이 분단 이후 최대의 남북접촉이라면 서울ㆍ평양간 통일축구는 민족분단 이후 최초 최대의 물리적 육체적 접촉이라 할 수 있다. 축구는 차고 배구는 때린다. 농구는 넣고 탁구는 치고 정구는 서비스한다. 모든 구기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상대와 더불어 말없이 대화하고 공하나에 마음을 실어 상호 교류한다. 그런데 지금 평양과 서울,서울과 평양간에는 불과 5백그램짜리 축구공 하나가 동포간에 끊어졌던 혈맥을 잇고 체온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공은 둥글다.모나지 않아 정지하지 않으며 항상 흐르며 율동한다. 구기게임이 갖는 묘미와 그 냉엄한 승부성을 얘기할 때 곧잘 그렇게들 표현한다. 구기중에도 특히 축구는 그 특유의 직절성과 의외성으로 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공이 흐르며 정지하지 않음은 직절성이고그것의 둥글ㅁ은 의외성이다. 공을 구사하는 주체의 기량에 따라 자유자재한다. 축구는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의 국기처럼 여겨져 왔다. 남북 젊은이 대표들의 통일축구 교환경기를 보면서 남북문제 접근도 축구에서 배우며 축구처럼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국기와 같은 축구교환경기는 잘만 하면 양쪽의 동포들을 텔레비전 앞에 집단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 「통일독일」 이전 동독측이 서방이념이나 사회풍조(문화ㆍ유행)가 들어오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분야가 바로 텔레비전 방송이다. 당시 동독지역의 85%가 서독 텔레비전 방송 가청지역으로서 수백만 동독인들이 서독 제1TV의 분데스리가 축구경기를 시청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하오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독일의 통일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널리 퍼졌던 것이다. 남북한 축구,아니 모든 경기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판문점의 입씨름으로는 되지 않을 일들이 젊은이들의 「육체적 접촉」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지난 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로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도 그랬다. 그 이전 해외경기에서 맞닥뜨리면 민망스러울 정도로 표출됐던 상호 불신감과 적대감이 싱가포르에선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여름 북경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때도 그랬다. 과거 남북한 스포츠선수들이 해외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시선과 대결의식,그리고 그보다 더한 불신감과 적개심은 사실 분단 그 자체의 비극보다 더 안타깝고 처절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천리마」라는 게 있다. 지난 85년 7월호에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선수와 싸워 2대1로 이겨 우승한 주성철이라는 소년선수의 얘기가 실렸다. 그런데 이 선수의 코치는 1회전과 3회전에서 이겼다면 2회전에서도 이겨 3대0으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며 2대1의 스코어가 당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선수도 이를 수긍했다. 그들의 대남 불신감 내지 경쟁심의 깊이를 알려주는 얘기다.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때이다. 사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 선수에게 우승소감을 물었다. 그 선수는 서슴없이 『수령님의 명을 받들어 남조선과 미제들의 숨통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고 했다.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남북한간 불신과 경쟁심은 이러했다. 그무렵 어느 사회통계에는 한국이 국제경기에서 꼭 이겨야 할 상대가 북한(44%),일본(31%),소련(14%),미국(8%),중국(3%)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북한팀과 외국팀이 시합할 때 북한이 승리했으면 하는 희망은 51%였다. 통일은 쉽지 않다. 열망과 기대만으로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과 폭력으로는 될 일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화적방법 이외 달리 없는 것이다. 지난 3일 베를린시 중심가 의사당앞 광장에서 역사적인 통독이 선언되던 날 세계는 경이와 찬탄의 눈초리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 통독제전의 맨 앞줄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던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동방정책(OST POLITIK)으로 통독의 기틀을 마련했던 전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였다. 브란트에게는 처음부터 패전 독일의 분단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분단된 독일의 부자연스러운 긴장상태는 인류평화를 위해 완화돼야 한다. 독일에 대항하여,또 독일을 제외하고 유럽은 건설될 수 없다』는게 그의 정치적 소신이었다. 그는 또 진보적 민족주의 신념의 평화주의자였다. 베를린 봉쇄 등 지역분쟁으로 삼엄한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53년 서베를린 시의회의장으로서 브란트는 연방의회에 출석하여 이렇게 연설했다. 『평화적 통일의 쟁취가 어떤 다른 외교적 업무나 계획에 우선해야 한다. 천팔백만 동독인들은 우리의 간섭이나 무관심에 상관없이 어떤 위험에서도 구출돼야 한다. 독일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독일문제에 협상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독일 통일을 위해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과 보다 선명한 목표설정을 통한 통일을 요구한다』 분단국 어느 한쪽의 정치지도자로서 이 이상의 통일절규는 달리 있을 수 없다. 브란트는 지금 행복한 노경에서 그 평화적 통일독일의 실체를 맞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솟구쳤고 서울에서 율동할 축구공 하나에 집중되는 7천만 동포들의 눈을 의식하며 우리는 지금 거세게 변하는 역사의 무대의 전면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가 움직여야 할 차례인 것이다. 둥근 공이 흐르듯 민족도 둥글게 모이고 핏줄도 다시 이어져 흘러야 한다.
  • 여자경기 취소

    【평양=방석순ㆍ우정식 특파원】 분단 45년만에 처음 열리는 남북통일축구대회가 11일 하오3시 평양 5ㆍ1 경기장에서 열린다. 경기는 당초 남녀팀 모두 치를 예정이었으나 북한측의 요청으로 여자경기는 취소됐으며 남자 경기는 평양측의 기술지원을 받아 이날 저녁 녹화중계될 예정이다. 9일 순안공항에 도착,평양에서 첫밤을 보낸 한국선수단은 상오 10시부터 6시간동안 훈련을 가졌으며 취재 기자단은 평양시가지 취재활동을 벌였다. 또 하오5시부터 1시간 동안은 일행 전원이 서커스를 관람했다. 한편 오는 23일 서울에 오는 북한 선수단은 잠실 롯데월드호텔(임원)과 지난 9일 개관한 올림픽 유스호스텔(선수)에 묵게 된다.
  • 통일축구 열리는 평양의 표정

    ◎서커스장에 입장하자 관객ㆍ출연자 기립박수/체육기자연,북측에 이길용씨 생존확인 요청 ○널뛰기 전회비행 선봬 ○…한국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10일 하오 4시부터 평양 광복거리에 있는 평양교예(서커스)극장에서 열린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 평양교예단은 세계대회에서 몇차례 1위를 한 요술(마술) 널뛰기 전회비행(공중트라피스)팀 등이 소속된 북한의 가장 뛰어난 교예단. 북한에서는 서커스의 인기가 대단해 함흥ㆍ청진에도 교예단이 있으며 평양교예단은 평일에는 매일밤 한차례,명절에는 낮과 밤 두차례 공연을 하며 좌석 3천5백석이 빌 때가 드물다고 안내원은 설명. 정동성 체육부 장관 등 한국선수단 일행이 교예극장에 들어서자 출연자들은 문앞까지 나와 반갑다고 인사했고 극장 안에 미리 입장했던 관람객들은 기립박수로 환영. 이날 공연에서 계란재주란 코미디를 한 공훈배우 윤광섭 씨(63)는 자신이 배우경력 33년의 원로급이라며 자동차 운전사로 일하다 지난 58년부터 배우생활을 했고 한국 원로가수 김정구 씨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다며『하루빨리 남북의 희극인들도 교류를 해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측 보도태도에 촉각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 10일 하오 7시쯤 판문점을 통해 행낭편으로 처음 이곳 한국선수단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에 도착하자 북측 기자들은 『우리도 1면에 대서특필됐는데 서울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들도 크게 다뤘구먼』이라고 말하고 『이번에 온 기자들은 매우 사실에 근거하여 보도했구먼』이라고 첨언. ○해설없이 사실만 보도 ○…북한 노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은 7일 조간에서 한국선수단과 기자단이 평양에 도착한 사실을 7면과 8면(모두 8면 발행)에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북남 통일축구경기에 참가한 남측 선수단 평양에 도착 수많은 군중들 거리에 떨쳐나가 열렬히 환영」제하로 3단으로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한편 북한 중앙TV는 10일 하오 7시 저녁 뉴스시간에 남북 축구경기를 위해 9일 평양에 도착한 한국선수단의 방북소식을 화면이나 해설없이 사실보도만 했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은 남북 통일축구를 위한 한국선수단의 평양방문 기간 동안 일제 때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당시 체육기자 이길용 선생(74)의 생존여부를 확인해 주도록 10일 북한올림픽위원회 김형진 부위원장에게 요청. 이길용 선생은 1936년 손기정 씨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청전 이상범 화백과 함께 손씨 가슴의 일장기 사진을 지운 후 신문에 게재,일제에 의해 투옥됐었다. 이 선생 가족들은 6ㆍ25 때 남북으로 갈렸는데 이 선생의 장남 이태영 씨(49)도 체육기자로 활약,현재 중앙경제신문 체육부장(국장대우)으로 재직중이다. ○…이날밤 김일성광장에서는 로동당창당 45주년기념 경축무도회가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을 비롯한 1백25개국 경축사절단과 북한의 고위급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진 경축무도회에는 원색차림의 남녀 5천여쌍이 참가,휘파람 등 댄스뮤직에 맞춰 군무를 펼쳤다. 북한 중앙TV는 이날밤 7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경축무도회 행사를 생중계했으나 한국 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
  • 말도 잊은 40년만의 부자포옹/축구인 이회택씨 평양서 아버지 상봉

    ◎같은 호털방서 밤새워 “지난얘기” 두손을 만지작거리며 계속 문쪽에 눈길을 주고 있던 리용진씨(63)가 벌떡 일어났다. 『회택이 아니냐,회택이구나』 리용복씨(58)도 달려가 이회택감독(44)을 얼싸 안았다. 10일 하오9시 고려호텔2층 회의실. 아버지 용진씨,삼촌 용복씨보다 늦게 홀에 들어온 이감독은 한꺼번에 다가온 아버지와 삼촌에 안겨져 이쩔줄을 몰라했다. 기억조차 희마한 아버지얼굴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 40년만의 부자상봉은 아들을 한눈에 알아본 아버지의 오열과 아슴푸레한 기억속에서 방황하던 아들의 생경함으로 더욱 아픈 장면이 계속되었다. 감정이 복받치듯 아버지는 울음을 터뜨리며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띠엄띠엄 한마디씩 말을 이었다. 『회택아,이게 40년만이구나』 『예,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야,회택아,다시한번 보자』 고려호텔2층 회의실은 이산과 상봉의 아픔이 진하게 퍼져있었다. 6.25전쟁때 의용군으로 나섰다가 북쪽으로 간 아버지와 4살때 생이별. 얼굴한번 못보고 말한번 듣지못하고 40년을 살아온 아들의 만남은 당초 하오9시께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황해북도 신계군 정봉리 집단농장에서 일찌감치 달려온 아버지와 남북통일축구경기 한국선수단을 따라와 고려호텔에 묵고있던 이감독이 예정시간보다 3분먼저와 이들의 만남은 하오8시57분에 이루어졌다. 부자는 한순간 엉겨붙어 3분간의 억센 포옹으로 40년의 한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알아보겠느냐』 『할아버지와 꼭 닮았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우리야 행복하게 산다. 못만날줄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할아버지는 6.25다음 다음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때까지 즐거울때나 슬플때나 아버지 이야기만 했습니다』 『자식걱정으로 편히 가시지도 못했겠구나』 말문을 튼 부자는 그제서야 일가친척의 안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는 하루면 오갈 수 있는 갈이 40년만에 이어진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야기하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꼭 쥐고 어루만졌고 또 어루만졌다. 이날 40년만의 부자상봉은 전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이었던 아들 이씨가 지난해 이탈리아 월드컵최종예선전때 북한의 박두익감독에게 아버지의 생사확인을 부탁,생존을 확인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이들 부자는 이날 밤10시35분까지 1시간40분동안 대화를 나눈후 일단 이감독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22층 21호에 들어가 문을 닫고 밤새워 이야기를 계속했다. ○“형 조속상봉 기대”/이회택씨 삼촌 한편 경기도 김포읍 사우리에 살고 있는 이감독의 둘째 삼촌 이용섭씨(56)는 『TV화면을 통해 형님을 보니 기쁘기 짝이었다. 아직 63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70세나 75세 노인으로 보여 안타깝다. 하루라도 빨리 형님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회택이가 평양에 갈때 부친께 드린다고 한복한벌과 사슴뿔을 가지고 갔다』고 전하고 『나는 20년전 어머니 환갑때 찍은 가족사진을 보냈다』고 밝혔다. ◎상봉부자 일문일답/“1천만이산가족 우리처럼 만나야”/이회택/“분단된후 처음 아들 보니 꿈만같아”/아버지 ­(이감독에게) 아버지를분단이후 처음 만난 소감은. ▲이감독=아버지ㆍ삼촌과 만난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현재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이 남북한 합쳐 1천만명이나 되는데 이를 계기로 나혼자만이 아닌 천만이산가족이 이렇게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감독에게) 아버지와는 어떻게 헤어졌는가. ▲이감독=당시 4살인 나로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다. 6.25동란이 우리를 갈라놓게 된 것이다. 서로 이념이 다르고 사상이 달라 아버지와 나는 남과 북으로 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에게) 우선 40년만에 아들을 만난 소감은. ▲아버지=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수령님과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분단이후 처음으로 아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기쁘기 그지없다. 고마운 은공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고 있으며 40년만에 내아들 회택이를 만나고 보니 꿈만 같다. ­(아버지에게) 아들을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나. ▲아버지=어릴때 모습이 기억에 가물하다. 그러나 아버님(이감독의 할아버지)으로부터 회택이가 나를 닮았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아버지에게) 아들의 생존소식을 언제 알았나. ▲아버지=지난해 8월 지도원이 찾아와 살아있다고 해서 알았다. 또 그자리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감독에게) 만나는 첫 순간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는가. ▲이감독=어렸을때 사진으로 보아왔고 지난해 9월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월드컵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에서 북한의 박두익감독이 건네준 사진을 받아본 순간 아버지와 삼촌을 분명히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감독에게) 이감독은 부자상봉의 큰 기쁨을 나눴는데 앞으로 이산가족간의 자유왕래에 대한 견해는. ▲이감독=이산가족의 만남은 남북 국민간의 염원이다. 북남통일ㆍ남북통일이니 하는 말이 안들리도록 좋은 여건이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북조선 사람들이나 남한사람들이 언젠가 단합되고 한나라가 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감독에게 집요하게) 현재 이산가족이 남북 합쳐 1천만명이 되는데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게 남북주민들간에 일치된 바람일줄 안다. 이감독의 입장에서 통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몫이 있다면 이에 대한 계획은. ▲이감독=통일은 정치하는 분들이 하루빨리 좋은 안을 내놓아 해결책을 찾고 이산가족도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중국과 관계개선의 기폭제”/노대통령,아주게임 선수단 격려

    노 대통령은 10일 상오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선수단과 응원단을 청와대 녹지원으로 초치,금메달 수상자 등 유공자들을 포상한 뒤 다과를 함께하며 격려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소련ㆍ동유럽 여러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데 서울올림픽이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북경대회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오늘날의 스포츠는 나라와 나라,민족과 민족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대회에서 남북 체육인들이 만나 남북 통일축구대회를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합의한 것은 남북고위급회담 및 각종 남북 교류와 함께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다과회에는 한국선수단 6백75명을 비롯,경기단체장 등 7백18명이 참석했으며 카누 3관왕인 천인식 선수 등 7명이 체육훈장 거상장을,펜싱 금메달리스트 탁정임선수 등 76명이 체육훈장 백마장을,레슬링의 김상규 선수 등 37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우리축구단 평양도착/내일 경평전/북경서 「조선민항」 이용

    【평양=방석순 특파원】 분단 이후 처음 열리는 남북통일축구대회 참가 한국선수단이 취재기자단 20명과 함께 9일 낮 12시 조선민항 편으로 평양에 도착,평양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남북간 민간교류는 지난 85년 이산가족만남 이후 두번째. 정동성 체육부 장관을 비롯한 선수단 일행 76명이 비행장의 환영인파를 헤치고 나와 평양시가지의 군중속을 뚫고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한 것은 1시간45분 만이었다. 한편 인솔단장인 정동성 체육부 장관은 고려호텔 회의실에서 『조국분단 반세기 만에 친선을 다짐하는 남북통일 축구경기를 갖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곳에 왔다. 이번 경기가 남북 체육인들간의 우의를 다지고 격의없는 대화의 장으로 발전해 조국통일에 이바지되기를 바란다』는 도착성명을 발표하고 평양시민들의 환영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순안비행장에는 북한올림픽위원회 김유순 위원장 등이 영접나와 고려호텔까지 선수단을 안내했다. 남북통일축구경기는 11일 하오 3시 열린다. 이번 경기는 평양측의 기술지원을 받아 같은 날 서울에TV녹화방영될 예정이다.
  • 우리축구팀 평양 도착하던 날/방석순ㆍ우정식 특파원 제1신

    ◎엄청난 환영인파… 호텔입장에만 30분/순안공항 3천명 마중… 악수세례/옥류관 만찬 땐 「우리의 소원」 합창/숙소 고려호텔 한증탕ㆍ파친코장 갖춰 서울신문사는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생생히 취재ㆍ보도하기 위해 본사 북경아시안게임 합동취재단원이었던 방석순 차장(스포츠서울 체육1부)과 우정식 기자(〃 사진부)를 9일 평양에 특파했다. 다음은 두 기자가 보내온 평양도착 제1신. ▷공항◁ ○…9일 낮 12시 정각 남쪽 선수단과 기자단들을 태운 조선민항 특별기가 도착하자 순안공항은 환영분위기에 달아올랐다. 공항에 나온 3천여 남녀 환영객들은 모두 손에 꽃을 들고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라는 함성을 지르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기내에서 간단히 인적사항을 대조하는 것으로 입국수속을 끝낸 선수단ㆍ기자단중에서는 정동성 체육부장관이 맨처음 트랩을 내렸다. 정 장관이 내려서자 환영나온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ㆍ김형진 부위원장ㆍ최용해 축구협회장이 다가와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악수를 나눴다. 또 30여명의 북한 기자들이 몰려나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선수단이 트랩에 모습을 나타내자 일부 환영객들은 트랩 앞까지 다가와 남녀 축구선수들의 손을 잡으며 『잘왔다』 『조국통일』 등을 외쳤다. 또 일부 환영객들은 최순호ㆍ김주성 등 한국 남자 축구선수들을 목마 태워 환영객 터널 사이를 1백여m나 행진했고 다른 선수단과 기자단들에도 손목을 잡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날 환영객들은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과 청년ㆍ어린이 등으로 다양했는데 이들은 한국선수단ㆍ기자단을 태운 10대의 승용차와 3대의 버스가 공항을 떠나자 뒤따라 뛰기도 했다. 환영객중 일부 부인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생전에 남쪽 축구선수가 평양에 오는 것을 보고 통일 멀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양 베어링공장 노동자인 김영희씨(23ㆍ여)는 『7일 방송과 신문을 통해 남쪽 축구선수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며 아침 일찍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렸다고 말했다. ▷연도◁ ○…순안공항에서 한국선수단 숙소인 창광거리 고려호텔까지는 약 21㎞. 차량이 많지 않은 데다 4차선으로 도로가 넓은편. 선수단 차량행렬이 지날 때마다 일반 차량이 일단 정지해 30여분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였으나 이날은 환영인파와 여러번 선수단 차량의 길이 막히는 바람에 1시간45분이나 소요됐다. 환영인파는 김일성광장에서부터 고려호텔까지 특히 많았는데 기자단 및 선수단이 호텔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 호텔 앞까지 들어가는 데도 30여분이나 걸렸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호텔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1천여명의 평양시민이 몰려들어 버스에서 내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만찬◁ ○…9일 평양시 모란봉 대동강변 청류벽에 자리잡은 한식집 옥류관 남북선수단 만찬은 분단 이후 어느 때에도 볼 수 없었던 절절한 동포애를 나눈 꿈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최용해 북한 축구위원장이 한국선수단을 초청,마련한 만찬에서 한국의 정동성 체육부 장관ㆍ북한의 김유순 체육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남녀 선수 임원 취재기자에 이르기까지 참석한 모두는 하나로 엉켜 피붙이임을 확인했다. 하오 7시10분 시작된 만찬은 각테이블에 남북 체육관계자ㆍ선수ㆍ임원들이 고루 섞어 앉아 잉어회 해상꿩 완자볶음 잣죽 신선로 등 전통음식을 즐기며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아버지를 북에 둔 이회택 감독과 그 아버지 소식을 전해준 박두익 감독,한국땅에 오빠 한필성씨를 둔 한필화씨,통일축구 대임을 맡은 박종환 감독,명동찬 감독 등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다. 만찬이 끝날 무렵 북한 가수들이 민요에 심취해 있던 남북 체육인들은 흥이 오르자 「우리의 소원」등의 노래를 합창하기도 했다. 정동성 체육부 장관은 김유순 북한 체육회 위원장의 손목을 이끌고 테이블을 돌며 남북 교류와 통일을 향한 전진을 다짐했으며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무대 위아래에서 통일을 합창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부자상봉을 앞둔 이회택 감독의 눈에도,나이어린 남북축구선수들의 눈에도 모두 그렁그렁 이슬이 맺혔다. 남북의 만찬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넘게 진행됐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남과 북의 모든 체육인들은 상기된 얼굴로 통일을 향하는 징검다리의 첫 돌을 놓았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보였다. 이날 정동성 체육부장관은 북측에 용과 호랑이가 그려진 도자기를 선물하는 등 초청에 응한 귀빈으로서 만찬장을 주도했다. ▷숙소◁ ○…지난 85년 남북 고향방문 당시 서울 손님을 맞았던 고려호텔은 45층에 2개 빌딩이 나란히 있고 평양 최고급호텔로 객실 5백여개,호텔 지하에는 안마실ㆍ한증탕ㆍ이발소ㆍ파친코장이 있다. 이날 고려호텔에는 북한 노동당 창립 45돌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각국 대표단도 같이 묵고 있는데 베란다에 나와 호텔에 들어서는 한국선수들을 구경하기도.
  • “남북 스포츠교류의 물꼬는 텄다”/북경아시아드 취재기자 방담

    ◎남북,자연스런 공동응원… 한핏줄 확인/「서울대회」 복제판 “만만디” 경기운영 허점/양궁 김수녕의 인기 최고… 북한 류경식당엔 서울손님들 북적 □참석자 김응숙(스포츠서울 편집부 국장) 김동준(서울신문 사진부장) 이대행( 〃 체육부 차장) 정태화( 〃 〃 기자) 오병남( 〃 〃) 최철호( 〃 사회부 기자) 김명환( 〃 사진부 기자) 최해국( 〃 〃) 송수남(스포츠서울 체육1부장) 방석순( 〃 〃 차장) 이병진( 〃 〃 기자) 노창현( 〃 〃) 박형규( 〃 〃) 신명철( 〃 체육2부 기자) 김수인( 〃 〃) 정민철( 〃 사회부 차장) 김창규( 〃 사진부 기자) 우정식( 〃 〃) ­주최국 중국의 일방적인 독주 속에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이 7일 막을 내렸습니다. 당초 65개 정도의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한국은 예상보다 11개 모자라는 54개밖에 못따냈지만 86년 서울대회에 이어 연속종합 2위를 차지했지요. 세계 속의 또하나의 세계가 존재하는 거대한 중국이 공화국 창건 41년 만에 치른최대 규모의 국가행사였던 이번 대회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대회를 지켜본 한국측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번 대회가 86년 서울아시안게임의 복제판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중국은 이번 대회 운영의 기본틀을 86년과 88년에 서울에서 있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가져왔으니까요.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시스템과 경비관계 업무로 여겨집니다. ○중국 일방적 독주 ­재미있는 것은 컴퓨터마저 중국인의 기질을 닮아 시스템이 올라오는데 「만만디」였습니다. 물론 경기장에서의 입력작업은 대체로 빠른 편이었습니다만. 경비관계는 특수상황의 한국보다 훨씬 더 철저했습니다. 특히 여러 곳을 휘젓고 다녀야 하는 취재진들의 불만을 많이 샀습니다. ­중국은 일반적인 대회준비 뿐만 아니라 경기력에서도 중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였던 게 엄청난 금메달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중국 체육의 저력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요. ­역시 엄청난 인구가 기본바탕이겠지요. 여러 갈래의 종족들이 특정종목에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것이 좋은 예일 겁니다. 내몽고 출신의 레슬링 선수,길림에서 뽑인 축구선수,하북에서 온 농구ㆍ배구의 장신선수들. 이들이 모여 1백83개의 금메달을 끌어 모은 겁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남북이 보다 진전된 관계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얻은 큰 수확일 것입니다. ­당초 희망사항이었던 단일팀 구성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치고 남북한 공동응원,남북기자의 만남,그리고 11일 평양에서 있을 남북 통일축구 등은 스포츠가 통일의 물꼬를 트는데 앞장서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개막식 때부터 남북 관계는 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경기장별로 사소한 의견충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8천여명의 남북한 사람이 마주했던 것을 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선수들은 선후배ㆍ형 동생처럼 지내는데 오히려 응원단 등 주위 사람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남북 통일축구는 대회 폐막이 다가오면서 아시안게임보다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지요. ­그런데 통일축구 자체는 큰 의미가 있지만 협의과정ㆍ취재단 구성 등에서 매끄럽지 못한 점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취재단은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으로 구성됐고 더욱이 출장가는 기자마저 정부가 지정하는 등 아직도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통일축구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평양에 가는 기자들의 명단은 폐막을 며칠 앞두고도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명단은 북한기자에 의해 알려지는 등 이해 못할 대목이 많았지요. 특히 지난 4일에야 체육부 직원이 회사로 「어느 기자의 사진을 제출하라」는 식으로 취재기자 선정을 알려왔습니다. ­파견기자 선정 실무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아요. ­정부가 출장기자를 선정했다는 점이 심히 우려됩니다. ­큰 대회를 치르다 보면 이런 저런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지요. ­도로사이클의 경우 대회 주최측에서 경기코스에서 연습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경기장 도착 버스시간이 자꾸 늦어져 한국선수단이 별도로 버스를전세내 다니기도 했습니다. ○정부서 기자 선정 ­탁구 테니스는 경기스케줄을 예고없이 바꿔 취재기자들을 골탕먹게 했습니다. 각 종목에 걸쳐 중국의 텃세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만 언어소통이 원할하지 못해 이곳저곳에서 불편을 겪었습니다. 특히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요원들과는 심심찮게(?) 몸싸움을 벌였지요. ­북경시민들은 국제대회 관전경험이 적은 탓인지 일부 종목에서는 매너가 수준이 하였습니다. 특히 정숙을 절대 필요로 하는 역도경기장의 경우 여기저기에서 선수들이 경기진행에 애를 먹더군요. ­북한이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소동을 벌였던 복싱경기장은 중국 한국 일본 등이 판치는 다른 경기장과 달리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 응원단의 기세가 높았습니다. 복싱에서 만큼은 해볼만 하다는 것이었지요. ○오누이처럼 다정 ­판정문제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이번 대회에서 북한은 여러 종목에 걸쳐 심판판정의 불리를 겪어야 했습니다. 여자 체조 2단평행봉의 김광숙은 2위에 그쳤지만 실력은 금메달감이었다는 것이 경기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북한이 심판판정에서 밀린 것은 오랜기간 국제무대에 나오지 않아 종목별로 외교(?)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인 것같습니다. ­짧은 기간에 워낙 많은 한국인들이 북경시내에 몰려들게 돼 꼴불견도 적지 않았지요. ­우선 응원단이랍시고 많은 달러를 들여가며 온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응원은 뒷전이고 어디로 갔는지 경기장에 나오는 숫자는 30여명을 넘지 못했습니다. 응원단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달고 온 뽀빠이 이상룡씨가 결국 실력발휘를 못했습니다. ­한국인이 몰리는 바람에 재미를 본 곳은 북경시내 한국 음식점이었습니다. 특히 선수촌 근처에 있는 진로식당 북한직영의 류경식당은 점심 때면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볐습니다. 마치 서울시내 점심 때 식당모습과 흡사했습니다. 류경식당은 몰려드는 남쪽 손님들 때문에 룡성맥주를 트럭으로 실어나르는 등 진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선수촌,경기장 등 대회와 관련된 장소에서 만나는 중국인은 상당히세련되고 친절한 모습이었습니다만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대회진행과 북경시민의 생활이 서로 겉돌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관중들 매너 엉망 ­중국으로서는 메달숫자 등 외형적인 성공보다는 금세기 초반 유럽열강과 일본에 침략당해 구겨졌던 자존심을 이번 대회를 통해 되찾았다는 데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중국인민들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국가적 자긍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수녕은 금 1ㆍ동 1개의 성적에 그쳤지만 인기는 최고였습니다. 메달과는 관계 없었지만 예선라운드에서 세계 신기록 2개를 세운 것이 이곳 매스컴 관계자들에게 크게 어필했지요. ○국가적 자긍심 대단 ­한국 여자 양궁 실력에 이곳 매스컴 관계자들은 혀를 내둘렀습니다. ­개인전 4위인 한희정이 단체전에 못나설 정도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한희정은 동료 3명이 출전한 단체전을 지켜보며 경기장 한구석에서 내내 눈물을 흘려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시안게임 열전 16일 동안 독자 여러분에게 경기소식은 물론 아시아의 거대한 대륙 중국에 대해 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 했습니다만 얼마나 궁금증을 덜어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북경아시안게임 소식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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