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한국문학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국정농단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입법예고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인간 존엄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국제 의제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74
  • 일본인 한국문학에 높은 관심/90년대 들어 소설등 소개 잇따라

    한국문학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 재일동포 문학평론가 안우식씨는 17일 「8·15이후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수용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열린 한일문화교류기금 주최 강연회에서 『9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에서의 한국문학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문예지 「신조」에 번역돼 실린 장정일의 중편소설 「아담이 눈뜰 때」가 요미우리신문 및 도쿄신문의 문예시평란과 아사히신문의 사설에 언급된 사실과 90년 번역출간된 「한국현대시선」이 91년도 「요미우리문학상」연구·번역부문상을 수상한 사실 등을 열거한 안씨는 이는 『한국문학이 일본문예관계자나 출판계로부터 세계의 앞선 문학의 하나로 인정받는 증거』라고 풀이했다.이밖에 일본의 문예지·세계문학전집·세계문학대사전 등에도 한국문학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고 밝힌 안씨는 50,60년대에 비해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평가했다.안씨에 따르면 53∼70년까지 일본에 번역소개된 한국소설은 고작 1백10여편 정도.그것도 상업출판물을 통해 소개된 작품은 10편 정도에 불과,한국문학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70년대에 들면서 일본인 중심의 「조선문학회」발족,「오적」필화사건으로 인한 시인 김지하투옥 등이 한국문학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안씨는 설명했다.
  • 찬사 비난/엇갈리는 재평가/춘원탄생 1백돌… 삶·업적을 돌아보면

    ◎긍정/계몽사상가·근대문학의 개척자/부정/친일행적은 명백한 반민족 행위 ▷긍정론◁ 춘원의 가장 큰 업적을 꼽는다면 19 17년 「무정」이란 장편소설을 내놓음으로써 한국 신문학의 새로운 기원을 이룩했다는 점을 단연 들 수 있다.「무정」혹은 춘원의 문학사적 중요성은 한국문학 연구에 있어 가장 많이 다뤄진 작가가 춘원이라는 데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문학평론가 이재선교수(서강대)는 「문학사상」2월호에 실은 논문 「형성적 교육소설로서의 무정」에서 「무정」이 『신소설에서 관념적으로 제기되었던 근대적 이념의 문제들을 정서적인 흥미화와 더불어 새로운 서사법과 형태미학으로 발전시켰다』며 『신소설의 변환적인 완결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 형태의 한 모형을 제시한 점에서 현대소설사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기념비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무정」을 평가했다.이와함께 문학평론가 권영민교수(서울대)는 「문학사상」2월호에 기고한 「춘원문학을 향한 열아홉개의 화살」이란 글을 통해춘원문학에 대한 상반된 시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춘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는 「한국신문학의 아버지」(주요한),「근대소설적 문체의 확립자」(김우종)등이다. ▷부정론◁ 춘원 이광수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은 주로 춘원의 친일행적과 연관된 것들이다.그러나 「무정」혹은 춘원문학의 대수롭지 않음을 다루거나 강렬한 비난조의 논의들도 더러 있다. 춘원의 친일행적과 관련하여 친일문제연구가인 김삼웅씨(반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가 최근 발간된 연구서 「친일파Ⅱ」에 춘원의 친일행적을 사례별로 집중검토한 글을 게재해 관심을 끈다.이 연구에서 김씨는 춘원에 대한 긍정적 재조명작업에 대해 『친일매족행위 측면보다는 「업적」쪽에 치우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며 『업적은 업적대로 공정하게 평가하되 친일반민족의 행위는 그것대로 준엄하게 단죄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삼웅씨는 「최남선과 이광수의 친일행적연구」라는 예외논문에서 『이광수의 친일행적은 가히 광적이었다』고 밝혔다.40년부터 45년까지 6년간에 걸쳐춘원이 각종 장르의 글을 통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부르짖으며 조선청년들에게 징병·학병지원 등을 권고했다는 것. 춘원문학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 역시 권영민교수가 「문학사상」2월호에 기고한 글 「춘원문학을 향한 열아홉개의 화살」에 소개되고 있는데 「공중누각의 이상주의가 만연한 한푼의 가치도 없는 껍데기문학」(김수산),「모순과 자가당착만 남은 문학」(김동인),「역사적 진보성을 포기한 문학」(임화),「위선의 문학」(김동석),「만질수록 덧나는 상처」(김현),「이행기문학의 변태적 양상」(조동일)등이 그것들이다.
  • 중국·인도까지 작품무대로/「해외기행문학」 새 장르로 정착

    ◎89년 여행자유화후 문인들 잦은 나들이/여행지 체험·사상·풍물 작품화… 문학의 지평 넓혀 우리 문학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지난 89년 해외여행 자유화조치 이후 개인별 혹은 단체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던 문인들이 그 성과물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우리문학의 지리적 배경이 훨씬 넓어지고 있는 것.최근 하재봉씨가 지난 해 뉴욕 체류 경험을 장편소설 「콜렉트 콜」에 담아낸데 이어 시인 조병화 백한이씨가 작년 여름 문협주최로 중국 연변에서 열렸던 해외문학 심포지엄에 잇따른 중국여행체험을 각각 시집 「낙타의 눈물」과 기행문집 「핏줄 오만 리」에 실어냈다.이에 앞서 소설가 강석경씨가 89년 4개월여의 인도여행 후 기행집 「인도기행」을 펴냈으며 인도 및 미국으로 수도여행을 떠났던 시인 류시화씨도 지난 해에 명상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수필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동시에 펴냈다. 이밖에 중단편소설로 김원우씨가 「머리속의 도시」,안정효씨가 「황야」,박혜근씨가 「실로폰소리」를 문예지에발표했으며 조성기씨도 중국기행체험을 「돈황의 춤」이란 연작소설 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같은 작품들은 대개 외국여행체험을 직접 소재로 채용하고있거나 현지의 사상과 풍물 등을 반영하고 있어 신선하게 읽힌다.지금까지의 교포문학과는 달리 일종의 기행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할 이 작품들은 서머싯 몸이나 조셉콘라드가 자기들 나라의 문학을 살찌웠던 방식으로 한국문학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올해에도 서정주 고은 황지우 유만상 하재봉 이상희 박라연 등 많은 문인들이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따라 해외여행에 따른 활발한 작품출간도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먼저 미당 서정주시인은 78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월경 러시아를 향해 출발할 예정이다.그의 여행목적은 러시아문학 이해와 러시아 체제변동을 현지인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한 것으로 미당은 어학연수 후 코카서스지방에 2년간 체류할 계획이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소설가 유만상씨는 올해에도 방학을 이용해 인도 네팔 스리랑카를 여행할 계획이다.이미 중국 남미 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바 있는 유씨는 세계풍물기와 관련소설을 준비중이다.작가 하재봉씨도 올 9월 연월차휴가까지 몰아 3주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할 예정이며 시인 이상희씨도 티벳 여행을 꿈꾸고 있다.이밖에 시인 고은씨가 영화화하는 소설 「화엄경」의 현지취재차 영화감독 장선우씨와 인도를 둘러볼 계획이고 시인 황지우씨도 그가 추구하는 「고향찾기」의 일환으로 인도여행을 타진하고 있다. 문인들은 해외여행에 있어 일반인과는 달리 장기 체류를 적극 원하고 있는데 이는 여행지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것으로 이제까지의 여행관의 변화를 드러내 보여준다.또한 문인들의 행선지가 인도권으로 몰려 있는 것도 특징이다.이는 요즈음 문단에 유행하는 선사상 혹은 정신주의의 영향 그리고 인도에 심취해 있는 강석경 류시화씨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그리고 많은 작가들의 인도여행은 우리 문학의 정신성을 깊게 하리라는 기대도 낳고 있다. 그러나 문인들의 해외여행에 대해 이제까지의 기행문학의 미진한 성과를들어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문인들의 해외여행에 대해 『여행체험이 우리 삶의 공간적 배경을 넓히고 소재의 확대를 가져옴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높일 수 있지만 호기심만 충족시키는 단순한 「새것 콤플렉스」로 떨어질 위험도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눈을 돌려 시선을 넓히되 그것이 우리문학의 진정성과 우리문제의 성찰에 도움이 되는 쪽이라야 한다』고 말했다.
  • 예술의 나라서 읊은 “한국의 시”

    ◎파리 「시의 집」서 「한국시의 밤」 처음 열려/김승희씨,「오감도」「초혼」등 9편 낭송/불 동양어대 이병주교수의 시사강의도 파리에 「시의 집」(메종 드 라 포에지)이라는 것이 있다.시내 한복판인 제1구의 레 알 지하철역에서 랑뷔토 거리쪽 출구로 나온뒤 안내판을 따라 몇 발짝만 걸으면 한 건물의 2층에 있는 「시의 집」에 이르게 된다.「집」이라고 하지만 객석 1백50석 정도의 소극장처럼 꾸며진 방이다. 「시의 집」은 파리시의 문화진흥정책에 따라 80년대초부터 운영되고 있는데 시와 관련된 갖가지 행사가 거의 매일 열리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한국시의 밤」이 28일 열렸다.이날밤 행사는 「시의 집」(원장 미셸 드 몬)과 파리한국문화원(원장 조성장)이 함께 마련한 것이었다.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이병주교수의 「한국시사」 강의가 있은 뒤,이상의 「오감도」(오감도)제1호와 「아침」 등 5편,김소월의 「초혼」1편,김승희씨의 「유서를 쓰며」 「배꼽을 위한 연가1」 「달걀 속의 생」 등 3편이 낭송되었다. 객석은 두 나라 사람들로대충 자리가 채워져 모양새가 괜찮은 편이었다.노영찬대사 내외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윤정희부부가 나왔고 앙드레 파브르교수(국립동양어대학교수)등 한국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습을 보였다. 무대에는 배경으로 고전시가 「청산별곡」을 쓴 한글병풍이 쳐지고 중앙에 마이크가 놓였으며 한쪽에는 책상,다른 한쪽에는 돗자리 하나가 깔렸다.이 돗자리에는 재불국악인 변규만씨가 정악연주 차림으로 앉아 대금으로 배경음악을 깔기도 하고 낭송 사이사이 간주도 넣었다.김승희씨가 중앙 마이크 앞에 서서 한국어로 시 한편을 낭송하고 나면,책상을 앞에 하고 한켠에 앉은 프랑스인 낭송전문가가 같은 작품을 불어로 낭송했다. 이 행사는 한국의 시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었지만,우선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관심은 언어를 달리했을 때 시의 음성적 전달이 얼마나 가능하냐에 쏠렸다.마침 안식년을 맞아 파리에 온 문학평론가 김치수교수(이대·불문학)는 이날의 시낭송을 듣고 『이제까지 들어본 것중 가장 잘 맞아떨어진 낭송회였다』면서 『불어 번역이 아주 좋고 낭송도 훌륭했다』고 말했다. 가능성을 이날 저녁에 보게 되었다. 시 번역은 서강대 최현무교수와 프랑스 출판사에 근무하는 그의 부군이 했다.이 부부는 이미 이청준 이문렬 조세희 이균영 등의 소설을 불역하여 출판하는 등 프랑스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는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날 프랑스인의 불어역시 낭송은 속도와 고저를 다양하게 구사하여 드라마틱하게 들리는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우리가 흔히 접해오던 이른바 「낭송조」의 고정관념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가령 「오감도」가운데 『제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제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제4의 아해가…』 같은 부분은 속도를 「점점 빠르게」하여 증폭되는 공포를 표현하고 있었다. 「시의 집」 운영 또한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었다.규모는 크지 않지만 알차다는 느낌이었다.지난 한해 시낭송과 강의 등 행사가 2백50여회 열렸다고 한다.올해 1년치 행사 계획표를 보면 8월 한달과 월요일을 빼고는 행사가 없는 날이 없다.무대를 제외한 벽면을 이용해서는 전시회를 연다.입장은 유료이며 「시의 집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회원을 모집하여 연회비를 받는다.회비는 개인회원 1백프랑(약1만5천원),후원회원 5백프랑 이상이다. 「시의 집」에서의 첫 한국문학행사는 낭송을 통한 우리 작품의 소개라는 새로운 길을 시험한 것이었다.메시지의 발신자와 매개체라는 측면에서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 통합시조시인협 새 회장/정완영씨(인터뷰)

    ◎“분열청간,한국문학의 종가위상 높이겠다” 『나뉘어 있던 협회가 한데 합친데 무엇보다 기쁩니다』 19일 상오11시 한글회관에서 있었던 한국시조시인협회 통합총회에서 새 회장에 추대된 정완영씨(72).그는 자신이 회장이 된 것보다 분열을 겪었던 협회가 통합된데 대해 더욱 의미를 두었다. 『그간 협회의 분열로 신인이나 지방시인들이 특히 설 자리를 몰라 애를 태웠지요.그러나 이제 깨끗이 화합을 이루었습니다』 회원 5백여 명중 1백70명 가량이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 정씨는 통합을 전제로 새 회장직을 받아들였다.『조직관리엔 문외한이지만 분열을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였다』고 정씨는 덧붙였다.이로써 지난해초 선거인단 선거에서 이상범씨가 회장으로 선출된 뒤 도덕성 시비 끝에 이상범·이태극씨를 중심으로 하는 두 집행부로 갈리었던 한국시조시인협회가 1년간의 파행과 난항을 겪은 후 통합문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제까지 내부에서 소모시켜왔던 역량을 대외적으로 발산,한국문학의 종가인 시조의 위상을 높이고 회원들의 권익을되찾겠습니다』 이밖에도 정회장은 협회기관지와 협회상을 계속 유지하고 1년에 두번의 세미나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시조시인협회는 19일 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이우종 이근배 이은방 서벌 김준 등 5명을 뽑았다.
  • “우리 문학작품 해외소개에 역점”(인터뷰)

    ◎북한 가입 주선… 남북문학교류위도 만들 계획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주력함과 함께 남북문학교류위원회도 만들어 통일시대에 대비토록 하겠습니다』 9일 열린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제38차 정기총회에서 제27대 회장으로 선출된 문덕수씨(64·시인)는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사업에 최대의 역점을 두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씨는 이날 하오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열띤 선거전과는 달리 조용히 치러진 펜클럽선거에서 경쟁후보 정을병씨(소설가)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새 회장에 당선됐다.이로써 문씨는 모윤숙·전숙희씨 등이 장기집권하며 이끌어온 한국펜클럽의 여인수장 시대의 막을 내리는데 주역이 됐다. 문씨는 지난 87년 펜클럽회장선거에 출마,전숙희 전회장과의 경합 끝에 낙선의 고배를 마신바 있어 이번 당선이 그에겐 더욱 기쁜 일이다.『날씨가 궂은데도 지방에서 많은 분들이 올라와 고맙다』며 당선이 확정된뒤 문씨는 문단원로와 신입회원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번 선거전이 금권이 난무하는 등 정치권과 같은 과열·타락 양상을 보였던데 대해 『앞으로 선거공영제의 도입등 선거제도의 개선을 통해 그같은 폐단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3년 설립이래 한국펜클럽은 작가들의 인권문제에 너무 매여왔습니다.이제 창작 표현의 자유도 상대적으로 진전된만큼 위축된 위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때입니다』 과거 한국정치사의 기복과 어려움을 같이한 한국펜클럽이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국제적인 면에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는게 문씨의 생각이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뛰어난 문학작품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을 한번도 타지 못했습니다.우선 우리문학을 외국에 널리 읽히도록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한국펜클럽이 담당할 것입니다』 문씨는 이를 위해 한국문학을 외국에 번역·출판할 직속출판사와 국내외문학을 연구하는 문학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말했다.그리고 이에 앞서 국내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외국에 번역·출판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번역상설기구를 우선적으로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문씨는 무르익어가는 통일의 기운에 발맞춰 『북한이 국제펜클럽에 가입토록 노력하겠다』며 북한및 북방국가와의 문학교류에도 힘쓸 것임을 밝혔다. 이밖에도 문씨는 회원들의 글이 발표될 수 있도록 월간지 「펜문학」도 창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56년 「현대문학」에 시 추천으로 등단한 문씨는 지금까지 「황홀」「선·공간」등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다.또한 문씨는 73년부터 월간시지 「시문학」의 주간으로 일해오고 있으며 현재 홍익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 남북 작가 독서 회의/홍명희 친손자 참석

    남·북한 문인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대학 한국학연구소(소장 헬가 피트)가 오는 6월24∼28일 주최하는 한국문학세미나에 한국측에서 소설가 박완서씨(소설가)와 김윤식(서울대) 김신영(고려대) 정종화(〃) 김승옥 교수(〃) 등이 참가,북한의 작가·학자 및 유럽의 한국학 전공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게 된다. 「한국의 통일과 고전·현대문학의 역할」이란 주제로 이번 세미나를 마련한 훔볼트대학측은 「임꺽정」을 쓴 월북작가 홍명희의 친손자 홍석중씨(소설가)를 포함,5명의 북한 문인·학자를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박완서씨 등의 「북한주민 접촉신청」을 승인할 계획이라고 29일 밝혔다.
  • 남북영화제 오늘 전야제/양측대표단 뉴욕에 도착… 내일 개막식

    ◎홍국태ㆍ홍영희 남북오누이 상봉 가능성 【뉴욕=김정열특파원】 분단 45년만에 남북영화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1회 남북영화제가 한국측 대표단과 북한측 대표단이 모두 도착,예정대로 10일(한국시간) 전야제에 이어 11일부터 개막된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부총장 엄길손(영화감독)을 단장으로한 북한측대표단은 지난6일 중국민항편으로 뉴욕에 도착했으며 한국영화업협동조합 강대선이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9명의 공식대표단과 14명의 비공식대표로 구성된 한국측도 지난8일 뉴욕에 도착,주최측인 뉴욕남북영화제 집행위원회(위원장 주동진)의 환영을 받았다. 한편 9일현재 북한측대표단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숙소에 들어간뒤 일체 외출을 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측대표단장 엄길손은 정무원 부총리급에 해당되는 고위급 인사이며 오미란과 홍영희는 북한을 대표하는 인기배우이다. 특히 홍영희는 한국측 비공식대표단원중 한명인 홍국태씨(50ㆍ한국문학주간ㆍ대한변협회장을 지낸 홍승만씨의 아들)의 6촌여동생으로 김정일이 발탁,17세때인 70년 「꽃파는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게된 배우로 북한지폐에 얼굴이 실릴정도로 유명하다. 홍영희의 아버지는 승현씨로 6ㆍ25때 월북했다가 외동딸 영희가 10세때인 지난63년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전향,84년 사망했다. 이번 영화제집행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오는 14일까지 계속되는 영화제기간동안 홍국태씨와 조카 홍영희씨가 자연스럽게 상봉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특히 앞으로 양측이 합작영화제작 문제 등 남북교류를 위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문학 편집장 노명석씨

    소설가이자 월간 「한국문학」편집장 노명석씨가 교통사고로 30일 상오3시 서울 남서울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43세. 경남 창녕에서 47년 출생한 노씨는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83년 「현대문학」으로 데뷔,창작집 「용사냥」 「문」 등을 간행했다. 발인은 10월2일 0시 장지 창녕 선영 415­5001.
  • 북녘 손님을 보내며… /실향작가 강용준씨

    ◎“겨우 잡힌 「통일의 가닥」 놓칠 수 없기에 「망향설움」도 삼키며 화답 기다리려오”/새벽부터 통일로 달려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5년쯤 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그때도 이와 비슷한 취지와 내용의 글을 어느 일간지에 쓴 일이 있다. 상당한 세월의 흐름이 있은 뒤의 얘기라 지금 그 구체적인 내용이며 정확한 날짜 등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무슨 가무단의 교환방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했던 바로 그 회담때의 일이 아니었던가 싶고,그나마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식의 다분히 냉소와 불신이 주조가 된 그런 글이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그로부터 5년간의 세월이 지나 북측 대표단을 다시 맞게 되었고,3박4일 동안의 일정이 모두 끝나 이제 다시 또 그들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면 5년전의 그때와 거의 비슷한 내용 비슷한 느낌을 되풀이 확인하고 체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고,그 가사에 또 그 곡조로구나」 이렇게 다가온다. 예의 그 불신감이며 냉소라고 하는 악마 같은 놈 말이다. 이 점 필자는분명이 해두려한다. 어떤 당위성이나 분위기의 압력 때문에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 개인의 경우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저쪽의 이른바 통일전선 노선이 변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우리는 저쪽을 믿어야 하고 또한 믿을 수 있으며,그래야지만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우리앞에 바짝 다가서게 된다. 하는 투의 발언을 어느 얼빠진 대학교수 하나가 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야말로 대단히 수상하고 진짜로 얼빠진 언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결과적으로 오히려 반통일주의자의 행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속으로는 이렇다 할 신념도 자신감도 없으면서 그저 시세에 따라 무책임하게 언동해대는 감상주의적 작태,혹은 또 그 얄팍한 인기주의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하는 식의 편승주의 내지 파렴치한 기회주의적 작태를 필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점 대단히 기이하지만 이번은 그 색감이며 분위기가 약간은 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아직은 너무 막연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없어서 그 섬세한 기미의 핵심을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전체적으로 와닿는 느낌이 전과는 조금 다르다. 4일 상오 10시경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으로 넘어온 북측 대표들의 표정이며 언동들이 비교적 밝고 활기에 차 있었다는 점,서울이 처음이라는 연형묵 총리가 계속해서 『45년동안 넘어서지 못한 곳을 오늘 넘어와 보니 쉽게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을때 그것이 예의를 갖춘 인사말쯤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가슴에 와닿는 부피같은 것 때문에 이제까지 많이 보아온 그 과장된 경직성의 제스처며 혹은 또 그 무지막지한 혁명선동자 같은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런 사정들 때문이었는가. 북쪽의 연총리가 경제테크노크라트 출신이라는 사실도 이쪽의 신경을 풀어놓는 일에 다소간의 심리적 기능으로 작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강영훈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서 『여기 북과 남의 동포형제들이 어울려 있지만 누가 북이고 누가 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가 갈라져 있는 것이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해준다』고 했다는 대목을 기사를 통해 읽으면서 필자는 솔직히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런데 남북한 유엔 단일가입 문제,팀스피리트훈련 문제,콘크리트장벽 철거문제,미군 및 핵철수문제 등을 다시 들고 나왔을 때는『아이고』하고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이것이 또 그 판에 박은 자장가인 것이다. 남북문제라고 할 때 가장 현실적인 당면의 문제이면서 절실하고 또한 가장 해결이 쉬운 이산가족의 재회문제에 대하여 북측은 거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또한 필자는 그렇게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한 것」이 불과 몇시간 전의 일이었는데…. 막말로 필자는 우리식의 나이로 겨우 스무살일 때 그림자까지 합쳐야 겨우 혈혈단신의 몸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이에는 자그마치 40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의 틈이 끼어들었고 따라서 내일이면 환갑의 나이가 된다. 앞으로 필자몫의 시간이 어느정도나 남아있는 것일까.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오지 못한 터라 결코 많은 시간이 남아 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흔한 말로 그 전에 한번쯤이라도 고향땅을 밟아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모형제의 생사라도 확인해 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지 않을까. 근년으로 접어들면서 필자는 이런 식의 절박감 같은 것을 일종의 섬뜩한 본능처럼 종종 체험하게 된다. 그래 필자의 경우 속으로는 불신감과 냉소감으로(더 노골적으로는 분노감과 증오감으로) 속이 편치가 않으면서도 북측 대표들이 판문각을 넘어오는 그 시각부터 3박4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나 돌아가는 그 시각까지 내내 텔레비전앞에 붙박이듯 앉아서 양측 대표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흡사 기도라도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이른바 실세라고 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필자 같은 사람의 처지로서는 알 길도 없고 또한 솔직히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어쨋든 한 국가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총리들이 아닌가. 이번만은 어떻게든 좀 해달라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그들의 언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던 것이다. 북측 대표들이 돌아가는 7일 아침 필자는 참 웃기지도 않게 평소 같으면 9시쯤이나 되어야 겨우 일어나 꾸무럭대기 시작하는 평소의 생활패턴에도 불구하고 진새벽부터 일어나 소란을 피웠고 이번엔 서둘러 그들이 거쳐갈 통일로까지 직접 달려갔으며 그리하여 또한 그들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이제 알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그 절박감과 또한 기도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원컨대 원로에 몸들 편히 잘들 가시도록. 아울러 부탁하거니와 85년도인가 가무단을 따라 서울을 다녀간 기자들을 텔레비전앞에 끌어다 놓고는 『거 보니까니 남반부 인민들은 거저 소원이 밥이라도 한번 실컷 먹어보구 죽었으믄 한이 없갔다 그러더구만요』하는 식의 그 우스꽝스러운 짓거리 역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마시도록 당부한다. □약력 ㆍ1931년 황해도 안악태생 ㆍ1950년 평양사대 재학중 인민군 입대,참전중 포로 ㆍ1960년 「사상계」 제1회 신인상에 「철조망」 당선 문단데뷔 ㆍ한국문학 창작상ㆍ작가상ㆍ대한민국문학상 수상.
  • 모스크바대생 3명 한국유학

    ◎연대에 입학… 한국문학등 수학/“한국사회가 북한보다 개방적” 연세대와 모스크바대의 학술교류협정에 따라 서울에 유학온 라미나 안나양(22)과 아스몰로프 콘스탄틴(22)ㆍ라브코프 겐나지군(22) 등 모스트바대 한국학과 학생 3명이 3일 연세대에 입학,첫수업을 받았다. 이들은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1년과정으로 한국문학ㆍ군사학ㆍ정치제도 등을 수강,15학점씩을 취득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날 하오 학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까지만해도 모스크바대에서 한국학을 배우는 학생이 10여명에 불과했으나 한소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올해에만 20여명이 새로 입학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소련영화촬영때 통역으로 한달동안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다는 겐나지군은 『북한은 전체적으로 사회분위기가 경색돼 있었으나 한국은 누구나 자기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하는 등 북한보다 개방적』이라고 말했다.
  • 연대서 러시아어 강의 처음맡은 마주르교수

    ◎“한국문학 연구 소련서도 활발”/모스크바대에서 한국어 처음 강의/「노한대사전」도 집필한 “우리말통” 한국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소련인교수가 직접 강단에서 러시아어과 학생(40명)과 러시아어를 가르친다. 연세대학교는 28일 소련 모스크바대학의 유 마주르교수(66)를 초청,9월3일 개강과 함께 올해 처음으로 신설된 러시아어에 관심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학기동안 매주 9시간씩 「노어입문Ⅰ」,「노어연습Ⅱ」 등을 강의토록 했다. 그가 연세대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하게 된 것은 지난 2월28일 모스크바대학의 로구노프총장이 내한,연세대측과 교수 및 학생교류각서에 서명한데 따른 것으로 양대학은 매년 교수 1명,학생 5∼6명씩을 교환하게 된다. 마주르교수는 1924년 중국 만주의 부해두에서 태어나 32년 소련으로 이주,50년 모스크바대학교 동양대학 한국어과를 졸업한뒤 소련에서는 최초로 한국어강의를 맡았었다. 지난58년부터 1년간 북한과학원 어문학연구소에서 한국어를 연구하기도 한 마주르교수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역사문법강의를 듣는 등한국어와 한국문학연구에 전념해 왔으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파생어조성」ㆍ「노ㆍ한대사전」ㆍ「노ㆍ한회화집」 등 여러권의 한국어관련 저서를 내기도 했다. 마주르교수는 최근 서울에서 열렸던 제12차 세계시인대회에도 참가한바 있다. ­소련에 있어서의 한국어 및 한국문학연구자는 얼마나 됩니까. 『전문적 연구가가 30여명되며 연구기관도 많습니다, 소련과학아카데미산하의 동방학연구소가 모스크바에 있고 그 지부가 레닌그라드에 있습니다. 이밖에 과학아카데미산하 세계문학연구소와 모스크바대학교 아시아ㆍ아프리카대학에 각각 한국어과가 있고 레닌그라드대학과 극동국립대학에 동방학부가 있어 한국어ㆍ한국문학연구는 활발한 편입니다』 ­소련내의 한국문학연구자료나 연구실적으로는 어떤 것을 들 수 있습니까. 『연구기관마다 자료는 풍부한 편입니다. 한국관계연구기관에서 펴내고 있는 책으로는 연구논문과 자료집인 「세계문학사」중에 한국문학편이 있고 「세계문학문고」중에도 한국문학작품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문학사」는 전9권중 지금까지 7권째가 나왔는데 92년에 완간할 예정이며 「세계문학문고」는 무려 2백권으로 엮어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홍길동전」이 수록되고 있습니다』 ­이기영ㆍ이태준 등 북한의 옛문인들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기영선생은 8ㆍ15후 47∼48년도부터 알았습니다. 친선협의회위원장 자격으로 푸시킨탄생기념행사때 모스크바를 왔었는데 그때는 세계의 유명작자들이 함계 왔었습니다. 그후 러시아시대의 작가 고걸탄생기념행사 때도 왔었는데 그때 이기영선생은 「땅」 「봄」 「인간수업」 「쥐불」 등의 작품집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설야씨 등과도 만났지만 그분은 문단활동보다는 사회ㆍ정치활동을 많이한 분이었죠』 ­옛날에 나온 「조선시인선집」을 읽으셨다고 들었는데 읽어보니 어떻던가요. 『훌륭한 시들이 많았습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조국애가 넘치는 시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20년대말 소련으로 망명해 와서 소련에서 연구와 시작생활을 한 조명희란 시인이 있는데 그도 조국애가 넘치는 명시를 많이 발표했었습니다』 ­한ㆍ소의 문학을 비교한다면. 『솔직히 말해 한국시인들은 지금도 소련시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김경린시인 같은 분은 근년들어 시각적인 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소련에도 시각적인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탈이념”… 민중문학의 변신/장석영 문화부장(데스크메모)

    우리 문단 일각에서 한국문학이 처해있는 문학적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해보려는 노력이 여러 측면에서 서서히 전개되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문단의 변화는 최근들어 신문사 데스크로 보내어져 오는 젊은 문인들의 작품속에서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그동안 창조적 작품을 경시하며 기성문학론을 전면 부정하던 민중문학진영의 작가들이 민중문학을 비난하고 붓을 꺾는가 하면 흑백논리의 비극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높은 서정성과 깊은 철학이 담긴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흑백논조에 깊은 자성 80년대 민중문학진영의 일선에서 행동하며 시를 썼던 하종오시인은 얼마전 자작대표시선집 「젖은 새 한마리」를 내놓고는 이념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혐오를 느껴 절필을 선언했다고 한다. 민중문학진영의 그간의 시작활동에 대한 그의 비판은 신랄하고 날카롭기만 하다. 『현재 민중시단에서 시다운 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민중시인 스스로도 괴롭게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시를 써내고 있습니다.타성에 젖어 이념적 표현만 반추하거나 주관적 감정만 드러내 시인 개인의 시작 욕구만 자위한다면 이러한 시는 오히려 인간의 삶을 퇴보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합니다』 그가 개탄해 마지않는 것은 요즘 우리 시단에 이러한 시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양적 사유의 땅으로 돌아와 펴낸 이성복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은 우리에게 더욱 신선한 목소리로 들려온다. 80년대 시단에 충격처럼 몰려왔던 해체시의 1세대인 이씨는 이 시집에서 한용운이나 김소월을 연상시키는 시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미 소개된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돌아보면 우리는 길이 끝난 자리에 서 있는 두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그리고 그 사이엔 아무도 발디딜 수 없는 고요한 사막이 있습니다…』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니고 안과 밖이 역시 둘이 아니며 사랑과 증오가 하나인 세계,즉 물아일체의 사상을 터득하게 된 것이 그를 흑백논리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한다. ○휴머니즘적 색채 표방 투쟁의 고개를 넘어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시인들은 더 있다. 「삼청교육대 정화작전」등 군부독재정치에 대한 고발문학 형식의 글들을 자주 써온 시인 이적씨가 「이별과 절망의 둔주곡」이란 연애시집을 내놓았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운동시를 써온 여류시인은 연시만 모은 새 시집을,중견시인 최하림씨는 「사랑의 변주곡」을 펴냈다. 또 40여명의 시인들이 각각 다른 목소리로 노래한 사랑의 시들을 한데 모아 「서랍속에 숨은 사랑이야기」란 합동연시집도 나왔다. 작가들은 시를 통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과 그리움을 담고 있는 휴머니즘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기자는 70년대 이래 문학의 실천성과 민족문학의 문학성을 주창해왔던 시인 고은씨를 만난 일이 있다. 그때 그는 90년대 민족문학운동의 방향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문학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따뜻함과 눈물겨움을 알고 있는 인간이 하는 행위』라고 정의하면서 80년대의 계급투쟁의 문학풍조를 신랄히 비판했다. 『앞으로 젊은문학인들 속에서 문학다운 문학,인간의 목소리가 담긴 문학이 창출되어야 하며 또 창출될 것입니다』 투쟁을 완화하고 당파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인간회복의 길을 젊은 작가들에게 제시한 그의 이같은 발언은 그 당시엔 매우 충격적으로 들렸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해도 민족민중문학론자들의 대부분이 문학을 정치투쟁의 도구로 삼으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단계까지 뛰어넘는 극도의 투쟁선전용으로 이용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징후를 예감한 그의 말이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데서 또 한차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의 말을 더 이상 빌지 않아도 문학이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까닭은 그것이 언제나 인간의 내밀한 정신세계를 진실의 세계로 이끌어 주고 영원한 인간성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것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가진자나 못가진 자의 어느 한쪽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 모든 삶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인간행위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삶의 갈등과 모순을 올바르게 잡아 나가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로의 회귀를 주장하기도 하고 못가진 자의 애환과 고통을 말이 아닌 글로 기록하며 부도덕한 기업가의 추악한 단면들을 들추어내 사회에 고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이나 고발이 삶의 갈등과 모순을 제거하기는 커녕 더욱 심화시키는데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삶의 질곡을 없애면서 갈등의 첨예보다는 갈등을 뛰어넘어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문학작품이 가지고 있는 지속적 호소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진실의 제시기능」이다. 작품이 구현하고 있는 진실의 넓이나 깊이에 따라서 작품이 발휘하는 호소력 또한 달라진다. 삶의 진실이 너무나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하는 감탄스런 말들은 감동적인 작품에 한해서 토로되기 때문이다. ○「진실」창출에 더 노력을 어느 학자가 말했듯이 흔히 우리들은 시와 시인을 얘기할 때 최우선 순위가 되는 판단기준을 그가 얼마만큼 좋은 시를 남겼느냐 하는데 두고 있다. 좋은 시를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육사를 기억하고 윤동주를 추모하는 것은 그들이 민족어 상실의 시대에 모국어로 고통과 간구의 언어를 남겨 놓았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좋은 시를 남겨 주었다는 사실 때문인 것이다. 아뭏든 지금까지 민중문학이라는 난기류에 가리워졌던 이들 젊은 문학도의 전인적 모습이 뒤늦게 나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갑고 유쾌한 일임에 틀림없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이같은 노력이 우리 문학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무한한 발전을 가져오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 해외문학 심포지엄 북한문인 초청 협의/한국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이사장 조병화)는 오는 8월초 북한을 비롯,북미ㆍ동구권 등에서 활동하는 한국문인들과 국내문인들이 만나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한국문학의 향방을 모색하는 제1회 해외문학 심포지엄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갖기로 했다.
위로